2023/10/10

알라딘: 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2005

알라딘: 유림 1 (1부 1권)


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은이)열림원200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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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04쪽
152*223mm (A5신)
426g
ISBN : 9788970634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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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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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유림 2 (1부 2권) -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
유림 4 (2부 1권) - 백화제방(百花齊放), 선함에 이르는 길
유림 5 (2부 2권) - 격물치지(格物致知), 바름에 이르는 길
유림 6 (2부 3권) - 이기이원론(理氣二元說) 겸양에 이르는 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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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천5백 년 유교의 역사를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 최인호가 유교의 역사와 유교가 찬란히 꽃피운 인문과 문화, 시대가 낳은 동양의 대사상가들을 특유의 대담하고 거침없는 문장으로 되살려 놓았다. 유교의 기원인 공자에서부터 유교의 완성자인 퇴계, 유가 사상을 잇는 제자백가들의 행적과 사상이 시공을 초월해 펼쳐진다.

작가는 공자, 노자, 맹자, 안자, 장자, 주자, 묵자, 순자, 왕양명, 조광조, 퇴계, 율곡 등 동양 교양과 고전의 원형인 대사상가들의 드라마틱한 조우를 보여준다.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소크라테스와 예수, 붓다의 이야기도 곁들여 성인의 출생이 지닌 시대적 필연성을 되짚었다.

1부 1권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은 공자의 정명주의를 바탕으로 왕도 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조광조의 이상과 실패를 그린다. 1부 2권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은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행적과 일화, 사상을 중심으로 사람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를 들려준다. 1부 3권 '군자유종(君子有終), 군자에 이르는 길'에서는 공자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며 성리학을 완성한 퇴계의 철학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1부 3권이 유가의 전반기 원시림이라면, 2부는 유림의 울창한 숲이라고 할 수 있다. 4권은 유가의 계승자들이었던 맹자를 중심으로 순자, 묵자, 양자 등 백화제방(百花齊放)을 다루며, 5권은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퇴계를 찾아가 단 사흘 동안이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깊은 영향을 받은 거유 이율곡의 생애를 그린다.

6권에서는 퇴계사상의 골수인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형성과 발전과정, 그리고 불과 6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경전을 편찬하고 유교의 진리를 선언한 지성 공자의 생애를, 공자의 고향 곡부를 통해 되살렸다.


목차


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책머리에
제1장 천인무간(天人無間)
제2장 기묘사화(己卯士禍)
제3장 지치주의(至治主義)
제4장 문정공(文正公)

유림 2 (1부 2권) -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
제1장 첫 번째 출국 - 노자와 안자
제2장 두 번째 출국 - 노자와 공자
제3장 황금시대
제4장 세 번째 출국 - 상가지구(喪家之狗)
제5장 네 번째 출국 - 양금택목(良禽擇木)
제6장 공자천주(孔子穿珠)

유림 3 (1부 3권) - 추로지향(鄒魯之鄕), 군자에 이르는 길
제1장 명기두향(名妓杜香)
제2장 상사별곡(相思別曲)
제3장 추로지향(鄒魯之鄕)
작가 후기더보기



책속에서


무릇 한 사람에서 천만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 한 가지 일에서 천만 가지 일에 이르기까지 그 일이 실로 복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心)' 이라는 것과 '도(道)'라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가 아닌 것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천만의 사람과 천만의 일들이 비록 서로 다르고 복잡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관통하는) 도와 마음이 하나인 것은 하늘의 근본 이치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천하를 함께 한다는 가르침으로써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감화시키면 천하의 마음도 내 마음의 올바름에 감화되어 감히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나의 도리로써 인도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크고 넓음에 감화되어 선한 대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도리와 마음이 성실한가, 못 한가에 따라 나라가 잘 다스려질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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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최인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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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3년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청년 문학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 더보기

수상 : 2011년 동리문학상, 2003년 현대불교문학상, 1999년 가톨릭문학상, 1982년 이상문학상, 1972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 <최인호의 인생 꽃밭>,<길 없는 길 4>,<길 없는 길 1> … 총 219종 (모두보기)
최인호(지은이)의 말
오늘날 공자와 조광조, 이황, 이이 등의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들지 모르지만 그것은 미시적인 생각이다. 요즘처럼 과도기로 인한 혼돈의 파고가 높을 때 일수록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시대라도 진정한 혁신과 변화를 하려면 그 중심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원칙을 유교에서 목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를 되살려 현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으려 한다. 유림은 옛날 얘기도 아니고 케케묵은 교훈적 내용만을 담은 것도 아닌, 재미있는 현대적 이야기로 읽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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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템스강의 작은 서점>,<최인호의 인생 꽃밭>,<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등 총 215종
대표분야 : 한국시 7위 (브랜드 지수 190,278점), 에세이 14위 (브랜드 지수 414,572점),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18위 (브랜드 지수 180,99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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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산으로 내가 갈 수 없으면 산이 내게 오게 할 수밖에(산중일기)

출생1945. 10. 17. 서울특별시, 사망2013. 9. 25.
학력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1985년 잃어버린 왕국 발표부터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그 전의 작품들은 별들의 고향 하나 읽어 봤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 졌고 대중적, 저질, 통속문학이라는 비평이 많다. 그래선지 잃어버린 왕국 이후론 그런 성향의 작품이 보이지 않고 내 취향의 작품이 많다.
2008년 고령의 지산동 고분으로 기억한다. 최인호가 고분에 누워 가야의 바람을 맞으며 가야의 하늘을 보고 있다. 제4의제국 가야 다큐멘터 첫 장면이다. 최인호의 역사 추적. 이때부터 최인호에 빠져 그의 역사소설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의 소설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만, 유림, 이황의 단양군수 시절 관기인 두향과의 관계 서술부분에서 작가의 역사인식에 실망.
근데 첫 작품인 잃어버린 왕국을 아직도 읽지 못했다.
아이러니다.ㅠㅠ
드라마도 상도 임상옥, 해신 장보고
해신 장보고는 소설과 내용이 너무 다르다. 최인호 해신이 원작이라지만 완전 다른 작품이라...

☆ 임상옥과 홍경래 http://naver.me/xev83k4c
☆ 상도 http://naver.me/5i9fEoNk
☆ 홍경래 평서대원수, 혁명아, 천하제일왕
http://naver.me/5thxya8f
☆ 박기풍 홍경래의 난(?) 진압
http://naver.me/xsUO0auU
우군칙 http://naver.me/FPuvx1lS
홍총각 http://naver.me/FUGJd4jX
김창시 http://naver.me/FtYerEW1

♧ 읽은책 24 📚
상도 3
해신 3
길없는길 4
제4의제국 3
제왕의문 2
유림 6
별들의 고향 2
산중일기

♧ 읽어야할 책 12 📚
잃어버린왕국5
지구인3
가족2
인연
천국에서온 편지...가지고 있는 책 여기까지만 읽자


☆ 홍경래의 난. 변태섭 한국사 통론 362~363p

이러한 농민층의 저항은 마침내 민란으로 발전하였다. 이미 세도정치가 시작된 직후인 1800년(순조 즉위년)에 경상도 인동에서 60여명의 농민이 관아를 습격한 사건이 발생한 것을 비롯하여 1808년 이후로는 함경도 단천·북청과 개성·춘천 등지에서 이러한 사건이 계속 일어났으니, 이는 조선사회의 모순이 농민의주체적 항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1811년(순조11)에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이었다. 이 난은 그 규모나 성격에 있어서 단순한 민란의 단계를 벗어나 농민전쟁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몰락 양반인 홍경래·禹君則·李禧著(희저)·金昌始 등의 지도 하에 영세농 등 몰락농민을 기본 구성원으로 하고 여기에 광부·일용노동자·뱃사공 등이 가세하여 봉기한 것이었다. 이들은 처음 嘉山에서 난을 일으켜 곽산 · 박천 · 정주 · 태천 · 선천 · 철산 ·용천 등 7개 고을을 점령하였지만 곧 정부군의 반격에 의해서 만 4개월만에 진압되었다.

홍경래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원인인 사회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 난의 구성원은 당시의 사회변동에 의해서 배출되고 그 속에서 피해를 받는 계층들이었으니, 몰락 양반·상인·광산경영자 · 임노동자, 그리고 농민등 모두가 그러하였다. 세도정치의 부패와 특권 어용상인에 대한 반발, 그리고지주제에 대한 부정 등이 이들의 사회의식을 고양시키고 투쟁의 대열에 서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적으로 만연되어 있었으므로 따라서 민란은 이후에도 각지에서 계속 일어나게 되었다.
홍경래의 난이 진압된 이후 제주도 · 용인 · 전주 등지에서 민란이 계획 되었다가 사전에 발각당한 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또한 1833년(순조 33)에는 서울에서 미곡상과 관리들의 농간으로 쌀값이 폭등하자 영세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킨사건이 일어났고 1841년(헌종 7)에는 경주의 농민 수백명이 서울까지 올라와환곡의 부정을 고발하는 복합상소(대궐 앞에 엎드려 올리는 상소문)를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도시민이나 농민들의 동향은 적극적인 항거의 방향으로나아가고 있었으니, 이제 민란은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 박기풍(朴基豊)

조선후기 황해도병마절도사, 평안도병마절도사, 좌우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유(汝有).
부사 박성(朴聖)의 아들이다.

1777년(정조 1) 무과에 급제, 1780년에 선전관이 되었고, 1800년(순조 즉위년) 함경북도절도사, 1807년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11년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도총부부총관으로 양서순무중군(兩西巡撫中軍) 겸 선봉장이 되어 청천강 이북의 각 고을을 회복하였다.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를 겸하여 정주성을 네번이나 공격하여 전세는 유리하였으나 박기풍의 성격이 유약하여 규율을 잡지 못하고 모두 실패하였으므로, 홍문관의 탄핵을 당하고 그 대신 유효원(柳孝源)을 교대하여 마침내 파성하게 되었다.
그 뒤 1813년 좌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815년 이후 좌우포도대장, 1821년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1823년 좌우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박기풍(朴基豊))]











































































































대장정 2022-04-02 공감 (34) 댓글 (4)





역사 소설을 좋아하고, 최인호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썼다고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유교(儒敎) 가지고 있는 보수적 이미지 때문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기가 꺼려졌던 책이기도 했다.

과연 유교은 보수적이기만 한 것일까?



이 책은 저자가 조광조의 삶을 추적하는 기행문 형식으로 시작해서

조광조의 삶을 작가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소설,

다시 조광조의 위패가 있는 심곡서원과 조광조의 묘를 가게된 작가가

조광조 사후 500년이 지난 현재 느끼는 감회를 적고 있는 소설과 기행문의 중간형태의 작품이다.



조광조

그는 그가 죽은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가 논란인 인물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조광조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취할려고 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정당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이 판을 치는

현대사회에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조광조의 사상, 유교에서 찾을려고 하고 있다.



과연 유교는 현대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조광조가 유배갈 때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흰색과 검은색의 짝짝이이지만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선물한다.

그의 벗 양팽손이 신발이 이상하다고 말하자 조광조는 '발에 딱 맞는데 색깔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 쪽에서 보면 흰색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고, 다른 쪽에서 보며 검은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유교도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유교는 보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것이고,

다르게 보면 현대 정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처럼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광조의 말처럼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발에 딱 맞으면 그만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덩 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유교가 보수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버리고 현대사회에서 맞고 옳은 것은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수기(修己)중 이었으니까...
azaling 2006-04-13 공감 (12) 댓글 (0)





“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




작가 최인호가 15년 전부터 구상하였다는 소설 ‘유림’은 이렇게 조광조가 유배지 능주에서 사사당하기전 썼다는 절명시와 함께 그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곳에 세워진 ‘적려유허비’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이 좀 뜻밖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화자가 작가 자신인 것이다.




작가는 15년 전 경허스님을 주인공으로 불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을 신문에 연재하던 중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출발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 원효를 탄생시키며 찬란한 꽃을 피웠듯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2천5백년 전 중국에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교. 그는 유교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우리의 민족성을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 2부 6권으로 완성될 소설 ‘유림’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작가는 ‘조광조’를 선택했다.




조광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또 있을까...

17세에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 정굉필에게 사사하고 관직에 나가서는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으며 끊임없이 개혁정치를 펴다 반대파인 훈구파에 탄핵되어 결국 기묘사화로 인해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친 인물 조광조...

이율곡은 그를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정치에 뛰어든’ 아마추어 정치가로, 퇴계는 ‘천품이 뛰어나고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을 다스리지 못한’ 실패한 정치가로 평가하였으며, 역모를 꾀했다 하여 탄핵되었으나 수많은 선비들은 그 부당함을 호소했고, 제대로 장사조차 치를 수 없는 죄인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나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받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또한 그가 ‘내가 이리 죽게 되었으니 흉가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유배지는 ‘적려유허비’가 세워지고 유적지가 되었으며, 조광조가 그의 부친이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던 곳은 서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호를 받은 지 30년 후에 서원이 세워졌고, 그 후에도 사액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 130년이 흐른 효종에 이르러서야 임금에게 편액을 받았다. 이렇듯 조선시대 내내 엇갈리고 있는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또한 조광조를 가장 나중에 선정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작가가 조광조를 선정했을 당시의 고뇌와 그의 평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를 갈 당시 갖바치가 바쳤다는 짝짝이 신발의 일화를 통해서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함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모두 역사에 기록된 실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서술한 모든 이야기가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기 쉬우나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의 이야기는 허구이다.

이는 어느 날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신발을 신고 관아에 출근했던 정도전이 “왼쪽에서 보면 흰 신발만 보일 것이요 검은 신발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른쪽에는 검은 것만 보일 것이고 흰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했던 예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 속에서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신발은 비록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이었으나 발에 꼭 맞는 신으로, 조광조의 정치 철학은 한쪽에서 보면 개혁적이다 한쪽에서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빛깔에 있지 않고 꼭 맞는 신발에 있음을 이르고 있는 것이다. 조광조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지적함과 함께 오늘날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일화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




그렇다면 조광조가 결국 이루고자 함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그것은 공자의 유교 이념에 입각한 성리학적 지치주의를 이상적으로 실현하려 함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됨이 하나이니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하늘의 뜻이 실현되려는 이상사회가 되어야 하며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완성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광조는 공자의 마음으로 정치를 개혁하려 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중종 또한 공자가 되어주기를 소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광조는 비록 실패했지만 공자의 사상으로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한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조광조의 발에 꼭 맞게 신겨졌던 신발인 공자에게로 이어진다. 2천5백년전 중국에서 시작된 유교...인, 의, 예, 충, 효를 이야기하는, 이제는 낡아빠진 듯한 유교를 이제 와서 소설을 통해서나마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공자에게, 조광조에게 혼란한 현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


얼음무지개 2005-09-06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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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의 왕도정치 어지러운 난세에 올바른 정신을 가진 당신이 그립습니다
인문학에길을묻다 2010-07-16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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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와 소설의 버무림?
루시아 2008-01-2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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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아야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조광조를 보며 그의 정명사상을 본받고 싶다.
오손도손 2011-05-1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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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에 대한 객관적 해석 그리고 선비의 정신을 일깨우게 하는 중독성 있는 책임.
동래유인 2008-08-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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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매미가 저리 우는 까닭은



어찌된 일인지 새벽부터 매미 소리가 요란합니다. 매미는 수컷만 울 수 있다죠.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매미의 삶은, 아시다시피 참으로 허무합니다. 7년 여, 많게는 십 수년을 번데기로 살다가 여름 한철 구애의 목청을 높이는 것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성충으로 고작 한철만 살다 떠나 갑니다. 그 짧은 생이 아쉬워 새벽부터 이리 울어대는 걸까요.

매미 소리를 듣다가 비운의 정치개혁가 조광조가 떠오릅니다. 33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계에 진출하고 중종의 총애를 받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중종의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정치개혁가 또는 실패한 이상주의자 조광조. 십 수년을 묻혀 있다가 고작 한철 암컷을 유혹하여 씨를 뿌리고 세상을 뜨는 매미처럼, 조광조 역시 그 짧은 4년의 행적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낡은 정치의 개혁'이라는 선각자적 씨를 뿌리고 갔습니다. 4년이라고 해도 실제로 본격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한 건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 매미가 저리 처절하게 우는 건 짧은 생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꼭 해야할 일을 하고 떠나야한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인호의 《유림》 1권을 읽었습니다. 조광조 편입니다. 2권은 공자, 3권은 퇴계 이황편입니다. 4,5,6권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맹자, 노자, 이율곡에 대한 글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정암 조광조가 죽기 직전 유배되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능주의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1권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주가 되는 이런 글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큐 소설'?

1장 〈천인무간〉에서는 적려유허비를 찾아 500 년 전의 조광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은 하나'라는 천인무간의 사상을 견지했던 조광조에 대한 개관 성격의 글입니다. 조광조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와 기묘사화로 불리우는 조광조의 유배와 죽음의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광조를 찾아 떠나는 본격적인 여행은 2장부터입니다.
2장 〈기묘사화〉에서는 말 그대로 기묘사화의 전말을, 3장 〈지치주의〉에서는 조광조의 핵심 정치사상인 지치주의를, 4장 〈문정공〉에서는 조광조의 사후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문정공은 조광조를 존경하였던 선조가 죽은 조광조에 내린 시호입니다.

읽는 내내 몇 년전 TV에서 방영했던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연상되었습니다. 첩의 딸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정난정이 주인공이었는데, 그 시기가 바로 조광조의 시기와 일치합니다. 당시 주인공 강수연 뿐만 아니라 경빈 박씨 역을 맡은 도지원의 표독스런 연기가 볼 만 했습니다. 매향이 역의 박주미도 예뻤죠 아마도^^. 드라마인 만큼 픽션이 상당히 가미되어 역사적 사실보다는 거의 흥미 위주로 흘렀던 것 같습니다.
임혁이 갖바치 역으로 나왔는데, 그 당시 저는 갖바치라는 존재 역시 '픽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천민인 갖바치가 조정의 고관대작인 조광조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갖바치는 꽤 비중있는 역사적 인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조광조가 유배지로 떠날 때 그가 건내 준 희고 검은 짝짝이 가죽신 한 켤레와 참언 한 구절은 마지막까지 화두가 되어 조광조에 대한 평가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참언 한 구절은 이러합니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저자는 그 가죽신이 바로 '공자'라고 말합니다.

아차차, 이거 천기누설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죽신의 비밀을 풀기 위한 저자의 사고의 흐름이 책 뒷부분의 주된 내용인데 그 결론을 미리 말해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아니하고 위와 같은 말의 뜻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인물의 갈등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는 평론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 정도 천기누설이 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하고 남기고 싶은 말들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이 책은 수많은 고사들이 중첩되어 있어 '지식'으로서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출근 시간에 쫓겨 요약 정리할 시간이 부족함이 안타깝네요.

결과적으으로 맥을 못 짚은 리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저 재미있으니 그 재미를 느끼고 싶으면 직접 봐라,는 식의 무례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제 글 실력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글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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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좋은날 2005-07-22 공감(3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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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길을 묻다



“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




작가 최인호가 15년 전부터 구상하였다는 소설 ‘유림’은 이렇게 조광조가 유배지 능주에서 사사당하기전 썼다는 절명시와 함께 그가 사약을 받고 죽은 곳에 세워진 ‘적려유허비’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이 좀 뜻밖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화자가 작가 자신인 것이다.




작가는 15년 전 경허스님을 주인공으로 불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을 신문에 연재하던 중 인도에서 석가모니에 의해 출발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 원효를 탄생시키며 찬란한 꽃을 피웠듯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2천5백년 전 중국에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교. 그는 유교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고는 우리의 민족성을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 2부 6권으로 완성될 소설 ‘유림’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작가는 ‘조광조’를 선택했다.




조광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또 있을까...

17세에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 정굉필에게 사사하고 관직에 나가서는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으며 끊임없이 개혁정치를 펴다 반대파인 훈구파에 탄핵되어 결국 기묘사화로 인해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친 인물 조광조...

이율곡은 그를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정치에 뛰어든’ 아마추어 정치가로, 퇴계는 ‘천품이 뛰어나고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을 다스리지 못한’ 실패한 정치가로 평가하였으며, 역모를 꾀했다 하여 탄핵되었으나 수많은 선비들은 그 부당함을 호소했고, 제대로 장사조차 치를 수 없는 죄인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나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받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또한 그가 ‘내가 이리 죽게 되었으니 흉가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유배지는 ‘적려유허비’가 세워지고 유적지가 되었으며, 조광조가 그의 부친이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학문에 정진했던 곳은 서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호를 받은 지 30년 후에 서원이 세워졌고, 그 후에도 사액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 130년이 흐른 효종에 이르러서야 임금에게 편액을 받았다. 이렇듯 조선시대 내내 엇갈리고 있는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또한 조광조를 가장 나중에 선정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작가가 조광조를 선정했을 당시의 고뇌와 그의 평가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를 갈 당시 갖바치가 바쳤다는 짝짝이 신발의 일화를 통해서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임에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가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함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모두 역사에 기록된 실제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서술한 모든 이야기가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기 쉬우나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의 이야기는 허구이다.

이는 어느 날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신발을 신고 관아에 출근했던 정도전이 “왼쪽에서 보면 흰 신발만 보일 것이요 검은 신발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오른쪽에는 검은 것만 보일 것이고 흰 것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했던 예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 속에서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바친 신발은 비록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은 짝짝이 신발이었으나 발에 꼭 맞는 신으로, 조광조의 정치 철학은 한쪽에서 보면 개혁적이다 한쪽에서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빛깔에 있지 않고 꼭 맞는 신발에 있음을 이르고 있는 것이다. 조광조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지적함과 함께 오늘날의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일화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




그렇다면 조광조가 결국 이루고자 함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그것은 공자의 유교 이념에 입각한 성리학적 지치주의를 이상적으로 실현하려 함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됨이 하나이니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하늘의 뜻이 실현되려는 이상사회가 되어야 하며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완성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광조는 공자의 마음으로 정치를 개혁하려 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중종 또한 공자가 되어주기를 소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광조는 비록 실패했지만 공자의 사상으로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한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조광조의 발에 꼭 맞게 신겨졌던 신발인 공자에게로 이어진다. 2천5백년전 중국에서 시작된 유교...인, 의, 예, 충, 효를 이야기하는, 이제는 낡아빠진 듯한 유교를 이제 와서 소설을 통해서나마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공자에게, 조광조에게 혼란한 현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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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무지개 2005-09-06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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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꾸민 조광조 이야기



글쎄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은 소설은 아니다. 어디를 읽어봐도 소설이라곤 하기엔 곤란하다. 다만 지금시대의 최고의 소설가가 쓴 글이라서 책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했는가 추측한다. 차라리 기행문이라 하면 적당하다.역사적 사실을 당대의 최고의 소설가(픽션)의 눈으로 바라보는 책으로 알고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조광조와 중종 그리고 그 시대의 역사적 사료들의 단편을 모아서 덧붙이고 꾸미고 하는 글솜씨에 감탄한다.

나는 가끔 역사를 되돌리고 내 편의대로 생각해본다. 만일 어떤 역사적 사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묘사화가 없고 중종이 조 광조를 계속 신임하였으면 조 광조의 알성시 대책처럼 하늘의 도가 널리 퍼졌을까? 아니면 조 광조 자신이나 또 다른 한계에 막혔을까? 참 재미있는 구상이다. 내 생각으로는 조 광조도 훈구파와 같은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한 이치이다.

조광조는 급진적인 개혁가는 아니다. 성리학으로 중무장한 원칙론자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공자의 말씀밖에 없다는 원칙을 세워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를 막는 모습이다. 자기의 테두리 범주에 벗어난 모든 사람은 타도의 대상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조 광조의 정적인 정국공신들의 처세술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일관되고 자기의 원칙에 충실하다 보니 한 번의 반란에 무너지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했다. 조 광조 답게 살다 간 것이다.

조선의 권력구조, 성리학의 전달 경로와 사상, 그 시대적인 배경을 미미하게 아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이 책으로 유교를 전부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무리가 있다, 소설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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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터봉 2005-08-12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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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부 1권



역사 소설을 좋아하고, 최인호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썼다고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유교(儒敎) 가지고 있는 보수적 이미지 때문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기가 꺼려졌던 책이기도 했다.

과연 유교은 보수적이기만 한 것일까?



이 책은 저자가 조광조의 삶을 추적하는 기행문 형식으로 시작해서

조광조의 삶을 작가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소설,

다시 조광조의 위패가 있는 심곡서원과 조광조의 묘를 가게된 작가가

조광조 사후 500년이 지난 현재 느끼는 감회를 적고 있는 소설과 기행문의 중간형태의 작품이다.



조광조

그는 그가 죽은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가 논란인 인물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조광조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취할려고 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정당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이 판을 치는

현대사회에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을 조광조의 사상, 유교에서 찾을려고 하고 있다.



과연 유교는 현대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조광조가 유배갈 때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흰색과 검은색의 짝짝이이지만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선물한다.

그의 벗 양팽손이 신발이 이상하다고 말하자 조광조는 '발에 딱 맞는데 색깔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 쪽에서 보면 흰색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고, 다른 쪽에서 보며 검은 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유교도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유교는 보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것이고,

다르게 보면 현대 정치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처럼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광조의 말처럼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발에 딱 맞으면 그만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덩 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유교가 보수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버리고 현대사회에서 맞고 옳은 것은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읽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을 통해 수기(修己)중 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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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aling 2006-04-13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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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초월한 작품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최인호다'라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관련 지역을 찾아 다니다가 툇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이야기 풀이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가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절묘한 연결이 작가의 현실적인 탐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사실감을 더 해주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셨던 옛 위인들의 노력과 사상에 커다란 감흥을 느낄 수 있었고, 본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을 눈의 가시로 여겨 축출해내는 사람들이 승리한다는 점에서 분노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득권자의 이익을 모두 다 빼앗는것이 아닌 조금씩 더 많이 나누어 가지는 식의 정치가 필요하지 않을 까 싶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너무나 개인적이고 그들만의 이익을 쫓는 현재의 정치 풍조에 대해서 "국민들을 위한 명분과 도덕적으로 알맞은 정치로의 회귀가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해서 더 좋은 방향이 아닌가" 라고 꼬집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들의 이익을 ! 위한 싸움에는 눈에 불을 켜고 난리를 치고,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 중대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넘어가는 답답하기만 한 현 정치판에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 작가에게 크게 공감하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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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장미 2005-07-08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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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유림』에 나타난 유가사상 연구 - 한국콘텐츠학회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 한국콘텐츠학회 : 논문 - DBpia

최인호의 『유림』에 나타난 유가사상 연구 - 한국콘텐츠학회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 한국콘텐츠학회 : 논문 - DBpia



최인호의 『유림』에 나타난 유가사상 연구

A Study of Confucian Ideology in Choi In-ho's Novel, The Confucians
저널정보한국콘텐츠학회
한국콘텐츠학회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학술대회자료
한국콘텐츠학회 2017 춘계종합학술대회
2017.5 397 - 398 (2page)
저자정보음영철 (삼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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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유림』에 나타난 유가사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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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한국 유교와 인간의 도덕적 심성(1) 이황
호학 ・ 2021. 3. 21.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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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유교의 전개와 특징

(1) 유교 사상의 수용과 전개

① 삼국시대: 선진(先秦) 유교 주체적 수용. 정치와 생활 원리로 활용되었다. 예) 덕치, 왕도정치, 세속오계, 왕의 도덕성 강조, 삼년상, 효 중시 등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7322&docId=3339367&categoryId=47322 - 삼국시대 유교 (지식백과)



출처: 지식백과


② 고려말: 성리학 수용. 성리학이 정치적 사회적 개혁의 이론적 기초로 활용됨.




고려시대 불상이 못생긴(?) 이유는 지방 호족들이 너도나도 불상을 만들다보니 기술자 수요가 늘어나 개성이 있는 지방기술자도 불상작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출처: 아래 지식백과)

고려의 불교 문화재 - 고려 시대에 못생긴 불상이 많이 만들어진 까닭은?

고려는 불교 국가였던 만큼 불상과 탑을 많이 만들었고, 지방에 따라 그 모양도 다양했는데요. 특히 커다랗고 못생긴 불상들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해요. 다음 불상을 보세요. 얼굴이 크고 못생겼지만 강한 기상을 느낄 수 있지요? 이렇게 생긴 불상들은 주로 지방에 많았답니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지방의 한 호족을 만나 그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 1. 지방 호족들이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 불상을 만들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파주에서 방귀 좀 뀐다는 호족이외다. 그건 그렇고 궁금한 게 뭐라 그러셨소? 아, 그렇지. 지방의...

m.terms.naver.com



(고려는 중앙 집권이 어려웠던 나라다. 태조 왕건부터 지방 호족들의 연합으로 이뤄진 정권이었음. 그래서 지방 호족들은 대토지를 갖고, 노비 등을 자신들이 갖고 힘을 키웠다. 이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해준 종교는 불교다. 특히 불교의 선종은 지방의 힘을 키워준 사상임. 불교가 지방호족들이 타락하는데 영향을 주자 이제는 중앙집권적 질서를 강조하는 성리학이 개혁의 주된 사상으로 등장하였다.)




안향(오른쪽)이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들여온후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개혁을 시도했다. (출처:지식백과)




③ 조선 초, 중기: 성리학 발달. 조선은 1392년 건국되었다.

(2) 조선 성리학의 특징

① 국가 통치 이념으로 개인의 도덕적 완성 + 이상 사회 실현 위한 실천적 방안 제공하였다.

② 중국 성리학의 심성론 관련 탐구를 심화시켰다.

③ 사단칠정 논쟁 비롯한 다양 논쟁 전개함.​



2. 이황의 성리학 사상: 순수한 도덕 본성의 발현 강조

(0) 이황 생애



이황(1501~1570)


1501년 출생.

병약했던 이황은 체조법 스스로 만들며 건강관리를 했다.



이황의 활인심방.

(출처: https://m.blog.naver.com/mgrrm36/10187379137)


성리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동방의 주자라고 칭해졌다. 그에게 왕들도 관직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황은 번번히 거절했다.

그 이유로 당시 사림파들이 훈구파와 정치적 다툼에 화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이황 친형도 을사사화 때 희생되어, 이황은 병을 핑계로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사실 이황 본인의 가정사도 좋지 않아서 아내가 27살 때 둘째를 낳다 돌아가시고, 그 후 맞이한 둘째 부인도 아이들 낳다 돌아가신다. 심지어 아들도 병을 앓다 돌아가심.. (☜이런 이황은 학문에 몰두하여 시련을 학문으로 승화시켰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함..)​



(1) 특징

이황은 기본적으로 주자의 성리학을 고스란히 따랐지만 주자의 이기론을 재해석하고, 사단 칠정론을 체계화했다.

이와 기 중에서 이를 강조함.




(2) 이기론

① 이귀기천설: 순선한 원리적 개념인 이는 존귀하고, 선악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현상적 개념으로서의 기는 비천하다는 것.





이는 기를 주재하는 장수와 같고, 기는 이의 주재를 받는 졸병과 같다.

이는 사물에 대해여 명(命)하기는 하되 명을 받지 않으므로 기가 이길 수 없다.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


퇴계집




왼쪽에서 장수가 명령하면, 오른쪽 졸병들이 싸움에 임한다. (출처: 주몽 드라마)


https://youtu.be/ZWdaw2ZHmlk ㅡ주몽 드라마 (2분10초)



이러한 이황의 주자의 이와 기 설명을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왜 이런 주장을 펼쳤을까?

당시 도덕적 숭고함을 가진 사림파들이 훈구파에 의해 많은 희생을 당해서, 이황은 사화를 피해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에 매진했었다.

그래서 이러한 시대상이 학문에 녹아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즉, 순선한 부류의 사림파가 선악이 혼재된 훈구파보다 앞서야 하며, 그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일설의 해석이다.(약간 설이라 생각하면 된다) 절대적으로 선한 이와 그렇지 않은 기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




훈구파의 모함으로 조광조는 사약을 받는다. (출처: 여인천하)


https://youtu.be/9zQ_D_ueR2I ㅡ사약 영상(4분부터

주초위왕 사건과 기묘사화 : 조광조, 함정에 빠지다

저는 지금 궁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직접 궁에 나와 있습니다. 글자 모양으로 벌레가 갉아먹은 나뭇잎이 발견되었는데요. 이 글자들로 인해 조정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 글자들은 바로 ‘주초위왕’입니다. 과연 무슨 뜻이며 어떻게 된 일인지 함께 알아볼까요? [ 1. 조씨가 왕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다] 주(走)와 초(肖)를 합치면 조(趙)가 되지요? 이는 곧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조씨는 곧 조광조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로 인해 조광조는 반역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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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조광조 사화)



② 이기호발설: 이와 기는 모두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기는 물론이고 이도 운동성을 가진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주자의 성리학과 맞지 않는 것처럼 보여 당대의 학자들에게서 비판을 받았다.




이황은 주자를 계승했다. 하지만 주자가 이(理)의 능동성을 부정했던 것과 달리 이황은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어떤 근거로 이황은 이(理)의 능동성을

주장하였는가?


그것은 주자의 일부 말에 근거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황 曰: 주자가 "이는 감정과 의지가 없고 조작능력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이 본연의 체(體)를 말한 것이다.

"그것이 때에 따라 발현되고 이르지 않는 데가 없다."라고 말한 것은 이의 신묘한 작용[用]을 말한 것이다.

본체의 무위(無爲)만을 보고 작용이 드러나는 운행을 알지 못하여 이를 죽은 물건으로 본다면 이것은 도리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퇴계집


위의 주장을 다시 설명하자면, 이황은 원래 주자도 이(理)는 '조작능력' - 즉 뭔가 만들고 움직이는 능력이 없는 것이 원래 본연의 체(體; 원리)라고 했지만, 때에 따라 '이(理)도 발현될 수 있다, 작용이 드러나는 운행이 있다(때에 따라)'라는 주자의 말에 근거하여 이(理)도 신묘한 작용[用]이 있다고 이황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자가 이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가 (때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상반된 말을 하니 (올타커니~) 이황이 주자 말을 근거로 이의 운동성을 주장한 것이다.





왜 이황은 이(理)가 움직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을까?


그것은 인간의 도덕성은 오직 이(理)의 작용하에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기는 선악이 혼재되어 있기에 기가 움직이면 도덕성 확보에 100% 보장이 안된다.

100% 선한 이(理)가 직접 움직여야 100% 선한 도덕적인 인간, 도덕적 사회가 보장되는 것이다.



(3) 사단칠정론

이황과 기대승은 편지를 통해 사단 칠정 논쟁을 벌였다. 이것이 당대에 엄청난 관심을 받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황이 살던 곳에 '정지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천명과 인성의 관계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설을 붙였는데, 그것이 바로 "천명도설"이다



정지운의 천명도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천명도설은 이황과 기대승의 사칠논변의 발달이 되었다.


정지운이 천명도설에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사단발어리),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칠정발어기)"라고 작성했고, 스스로도 뿌듯했던지 이황에게 잘 썼는지 점검을 부탁했다. 이황은 그 글귀를 보고,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사단리지발),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칠정기지발)"이라고 고쳐준다. 두 가지의 차이점은??

정지운은 사단이 리에서 발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단의 출처가 리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리가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이가 잘 발현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원래 주자대로 해석한다면 움직이는 기를 통해 이가 드러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황은 보다 더 이의 능동성을 강조하여, 사단은 직접 리가 움직여 드러난 감정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여기서 이황의 이기호발설이 처음 알려지게 된다.



이 일화에 소문이 퍼져 많은 학자들이 감탄했지만, 당시 32세 젊은 학자인 기대승은 용감하게 이황의 생각을 반박하는 편지를 이황에게 보낸다. 그때 이황은 58살의 유명한 학자였는데 어린 학자의 비판에 대해 차근히 반박하는 답장을 보낸다. 이런식으로 편지를 8년동안 많은 편지를 주고 받는다.




왼쪽: 기대승 오른쪽: 이황


이렇게 젊은이의 용기있는 반박과 퇴계의 겸손한 대응.

어떻게 결론이 났을까?



이황이 기대승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일부 수정한다.

하지만 이황은 기본적인 입장에서 변함이 없었고, 기대승도 처음 입장을 고수하여, 팽팽하게 각자 입장 고수하며 논쟁을 마친다.



여기서 동방의 주자라고 불리는 이황의 겸손함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d4w-FdoDJwU ㅡ사칠논변 다큐



이황 입장을 정리하자면

1) 이와 기는 분명히 나눠야 한다. 예) 이귀기천설

2) 본연지성과 기질지성도 분명히 나눠야 한다. 이와 기를 나눌 수 있듯이 인간의 본연지성과 기질지성도 분명히 나눠야 한다. 본연지성은 이 자체이고 순선하다. 하지만 기질의 영향을 받은 기질지성은 선악이 섞여있다.

3) 사단과 칠정도 분명히 나눠야 한다. 사단은 이가 발하여 나타나는 감정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나타나는 감정이다.[사단리지발 칠정기지발] 이렇게 나누는 이유는 사단은 100% 선한 감정이기에 100% 선한 이가 발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황은 기대승의 말대로 일부 자신의 수정한다. 이황이 사단-리 , 칠정-기 이런식으로 분류하게 되면 이와 기는 현실적으로 같이 붙어 있다는 주자의 사상[이기불상리]에 어긋난다는 기대승의 주장을 인정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 것이다.



사단은 이가 발하고 기가 따른 것이고, [사단-이발이기수지]

칠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탄 것이다. [칠정-기발이이승지]


퇴계집



칠정이 이와 기를 겸하였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분명합니다.

칠정을 사단과 비교하여 말하자면, 기와 칠정의 관계는 이와 사단의 관계와 같습니다.

따라서 발현하는 것에 각각 혈맥이 있고, 그 이름에는 모두 가리키는 것이 있기 때문에 위주가 되는 것에 따라 나누어 이와 기로 귀속할 수 있습니다.


퇴계집




위 주장은 이황이 다음과 같이 비유하기를,

사람이 말을 타고 말에게 어디로 가자고 지시를 했는데, 말이 잘 따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사람=이(理) , 말=기(氣)






그렇기에

사단: 사람[理]이 잘 말을 지시했는데, 말[氣]이 잘 따르는 상황. ☞ 100% 도덕적 감정이 확보됨.

칠정: 말[氣]이 사람[理]을 태웠는데, 말이 마음대로 가는 상황. ☞ 나쁜 욕망에 빠질 가능성이 높음. 하지만 칠정 감정에서도 사람[理]이 주재능력을 잘 발휘한다면, 도덕 감정을 확보할 수 있음.



이렇게 이황은 사단과 칠정의 연원이 다르다고 보고, 양자를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도덕적 기준과 인간의 욕망을 혼동하는 오류를 방지하고자 하였다.​





기가 따르지 않는 이는 나올 수가 없고, 이가 타지 않는 기는 곧 이욕(利慾)에 빠져서 금수(禽獸)가 되는 것이니,

이것은 바뀔 수 없는 확고한 이치입니다.


퇴계집


(4) 수양론

① 거경과 궁리의 병행을 강조함. (이것은 성리학의 기본 논리와 같다)

② 경(敬)의 실천을 특히 강조하다.

경의 주된 실천 방법에는 다음과 같다. (늘 경건하게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주일무적: 마음을 한군데 집중하여 잡념이 들지 않게 함. ​

·정제엄숙: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엄숙한 태도를 유지함.

·상성성: 항상 깨어있는 정신 상태를 유지함.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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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망중한담 2017 2 4 1207
‘노자(老子)’ 강의가 끝날 때 어머니를 EBS에 모셔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만날 때마다 감동적 이었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난 4월 5일 향년 9
5세로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1910년생이니까 20세기를 거의 완벽하게 채우신 분입니다. 우리 민족의 모든 고난과 영
광을 역사와 함께 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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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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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운명하시는 순간에 느낀 것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니는 혼수상태로 계시다가 깨끗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숨이 ‘딸깍’하는 순간에 육신을 보니까 완벽하게 그 모습 그대
로였습니다. 그러나 그 ‘딸깍’하는 그 순간의 느낌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살아 움직이는 경락이 순간
적으로 사라지고 (얼굴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시신의 얼굴(느낌)은 정말 달랐습니다. 가슴에 귀를 대어보니 심장은 안 뛰
고 ‘꾸르륵’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순간에 펑펑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막내인 저는 엄마 젖을 오래 빨았는데, 초등학교 때까지도 나오지도 않는 젖을 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막내기 때
문에 (어머니의) 정이 깊었습니다. 나오지도 않는 젖을 빨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변화는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0.001%의 변화도 안되는 것입니다. 바로 ‘딸깍’하는 순
간의 변화가 99,999%의 변화였습니다. 죽는 순간의 변화는 너무나 큰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의 사이에 있습니다. (이것이) 기적 같은 사실입
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려면 생명의 작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는 것은 그게 전부라는 것입
니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https://hablife.tistory.com/607 3/14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사이에서 변화라는 것은 너무나 미미한 것임에도, 그 안에서 우리는 싸우고 남을 미워합니다.
생명을 보유하고 있는 한, 인간은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며 평등한 존재입니다. 생명이 있는가와 없는가, 그것이 인간의
전부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사는 것의 고귀함을 한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돌아가신 자리에서 시신을 옮기지 않고, 전통적인 예식에 따라 그 양반이 사시던 곳, 즉 집에서 했습니다
그대로 백(魄)이 가라앉고 혼(魂)이 날아 갈 수 있다고 믿기에 시신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빈소는 영안실을 빌렸지만 시신
을 옮기지는 않고 집에서 염을 하고 입관을 했습니다.
누나가 어머니의 수의가 든 함을 가져왔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손수 마련하신 수의 보따리 속에는 80년 전 시집 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와 연두색 저고리가 있었습니
다. 어머니께서는 그 옷을 입고 가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수의 같은 이런 수의가 우리 민족사의 마지막 수의일
것입니다.
장례식 집사자는 ”이렇게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수의는 처음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운명했었을 때 자기의 삶의 터전이었던 그 자리에서 염(殮)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 삶의 코스모스에서 혼(魂)
은 하늘로 가고 백(魄)은 땅으로 스미게 됩니다.
▷ 코스모스(Cosmos) 질서와 조화의 구현으로서의 우주
저는 평생을 기독교신앙으로 살았으면서, 기독교 철학을 공부했으면서,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만 인류 운명을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신앙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기독교도 입장에서 본다면 제 행동이나 사상이 이단자 같을 수 있고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빈소에 스님이 찾아오면 저는 염불을 하게 하고 (염불 못할 것이 어디 있어요?!) 교회에서 조문객이 오면 앉아서 찬송가
를 부르게 했습니다. 당연한 거지요.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 김용옥의 사상에 대해서 개입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어떤 사상을 깨
닫게 되어 어머니께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는 참으로 재미있게 들어주셨습니다. ‘칸트’니 ‘헤켈’이니, 무슨 이야기 등 제가
나름대로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몇 시간이건 들어주셨습니다. 어머니처럼 제 강의를 잘 들어 주신 분이 없습
니다.
우리 사회는 인간에 대한 평등관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https://hablife.tistory.com/607 4/14
우리 어머니는 나처럼 공부를 하신 분이 아닙니다. 대단한 교육을 받으신 분이 아니지만, 내가 아무리 어려운 이론을 개
발했어도 그것들을 모두 이해해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러한 제 모습을 통해서 당신이 교화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한 이야기의 상당부분은 어머니의 신
앙을 무너뜨리는 이야기였습니다.
형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단이라 할지 몰라도, 우리 어머니는 100% 나의 사상을 이해하시고 한번도 내가 그릇된
길로 가고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영상 :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호적' 1/4
진짜 기독교 신앙이라 하는 것은 나를 핍박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려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사랑이 없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쉽습니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https://hablife.tistory.com/607 5/14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선거의 당락만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본질과 대의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기독교는 증오의 종교가 아니고 사랑의 종교입니다
구약이 인간에게 증오를 가르쳤다면 신약은 철저하게 사랑 무조건 적인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두가 평등합니다 숨을 딸깍하는 순간까지도 인간의 고귀한 모습입니다
저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부럽습니다
벌써 공부도 제대로 못했는데 벌서 이렇게 늙어 가는구나… 그렇지만 결국은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귀
하고 이것이 기쁘고 이것이 고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동학을 강의할텐데 동학사상은 오늘의 우리 모습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우리 민족의 Bible이라고 생각합니
동학사상의 모든 가능성은 동학 이전의 최한기崔漢綺라는 사상가에 의하여 그 시대적 정신이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최
근에 이 최한기라는 걸출한 사상가에 관한 아주 재미나는 문헌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오늘은 그것을 중심으로 그분의 족
적을 한번 보기로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집 호적등본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정확하게 준호구準戶口라는 것입니다
조선왕조를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조선왕조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백성국민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3년마다 호구조사를 했는데 출생자 이주자 사망자를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것을 호적중초戶籍中草라 하며
정식 호적을 만들기 위한 전단계의 기초 자료로써 신청자호주가 직접 작성합니다
호주戶主라는 말은 일제의 산물이고 당시는 주호主戶라고 했습니다
主戶는 그 호집의 주인이라는 호주의 개념이 아니라 그 집에서 부역 병역 등의 국역國役을 담당할 대표적 인물을 말
하는데 호주라는 말 자체가 남성 중심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여자가 결혼하면 여자의 성姓이 없어지는데 한국은 여자 성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 주호(主戶) : 단순한 호주의 개념을 넘어서 국역(國役)을 담당
우리나라의 호적제도는 완벽하게 양성 평등 즉 남녀평등제도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17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거의 남녀가 평등한 세계적으로 드문 남녀 평등 사회였기 때문에 남
편이 죽으면 부인이 승계했습니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https://hablife.tistory.com/607 6/14
19세기 말엽 최한기의 호적에도 남자 쪽 4조四祖가 나오고 그 다음에 여자 쪽 4조四祖가 함께 나옵니다
호적중초戶籍中草는 집에서 작성해서 향청鄕廳 지방의 말단 기관=주민센터에 제출하는데 최한기는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한성부에 제출합니다
이 당시의 한성부는 서울의 호적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전국의 호적을 모두 관리했습니다 제출된 호적문서는 호적고
戶籍庫 호적을 보관하는 곳에 보관되었기 때문에 인구가 많은 곳의 호적고는 규모가 컸습니다
호적단자戶籍單子를 제출하면 받았다는 접수 도장을 찍고 관청에서 보관했습니다 호적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고 과
거科擧 보러 갈 때나 송사訟事 등에 초본이 필요하면 관청에 가서 필사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함풍咸豊 중국의 연호 2년1852 모월 한성부에서 발급
당시 최한기의 주소지 한성부 漢城府 서부西部), 양생방養生坊), 송현계松峴契), 삼통三統), 삼호三戶)에 사는 생원
生員 최한기崔漢綺 ▶방坊 > 동洞
호적단자戶籍單子는 호주가 손수 써서 향청鄕廳이나 한성부漢城府에 제출하는 호적원문입니다
한성부漢城府=서울는 태조 5년에 1396년 정도전이 5부 52방으로 나누고 그 이름도 만들었는데 조선말까지 유지되었
습니다
과거시험의 문과에는 대과와 소과가 있었습니다
소과는 생원시 진사시로 나뉘었는데 초시初試를 거쳐 회시會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자를 생원
生員이라고 했습니다
崔漢綺의 호적 서문
崔漢綺 年五十 癸亥生 本朔寧
父 通政大夫 行 昆陽郡守 兼晋州鎭管兵馬同僉(첨)節制使 光鉉
生父 學生致鉉 祖 學生配觀 曾祖 成均生員之嵩
外祖 金모薄 本安東 娶朴氏 齡五十三 庚申生 籍蕃南 父 學生宗赫 祖 學生經源 曾祖 學生師完
外祖 通訓大夫 行魯城縣監 兼公州鎭管兵馬節制徒尉 李集明 本慶州 率有幼學柄大 年三十四 己卯生 娶申氏 齡三十七 丙子
生 籍高齡 率奴婢秩 婢 五月 年庚子生 父 不知 母婢一分 一所生
최한기는 나이가 50이며, 계해생이고, 본관은 삭녕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이며 곤양군수와 진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무관 벼슬)를 겸직한 광현이다.
사조의 생부는 학생 치현이고, 조부는 학생 배관이다. 증조부는 성균관 생원이며 이름은 지숭이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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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는 김ㅇ박 이고 (이 당시 호적 기록에 사용된 종이는 ‘호적지’라고 해서 질이 좋지 않았는데, 특히 이 종이는 질이
나쁜 것이기 때문에 이름의 가운데 자가 없어졌다) 본관은 안동이다.
아내는 박씨이고 나이는 53세(최한기 보다 3세 위)인 경신생이며 본관은 반남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학생 종혁, 조부는 학생 경원이다.
영상 :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호적' 2/4
증조는 학생 사완이고, 외조는 통훈대부로, 로성 현감과 공주진관병마절제도위를 겸직한 이집명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슬하에 유학 병대가 있는데 그의 나이는 34로 기묘생이고 아내는 신씨이며, 나이는 37세, 병자생이고 본관은 고령이다.
노비를 여러 명 거느리고 있는데 차례로 말하면, 여자 노비는 이름이 오월이며, 나이는 경자생이고, 그녀의 아비는 알 수
없으며, 어미의 이름은 일분이고 소생이 하나 있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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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己酉 1849) 호구상준자(戶口相準者)
이 호적은 3년 전의 호구와 비교하여 같다는 의미
최항(崔恒 1409~1474)
삭녕 최씨(朔寧崔氏) 중 유명인사.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
<용비어천가> <동국정운> <훈민정음 해례> <경국대전> 등 찬진.
최한기의 호적에 들어있지 않은 아들과 딸들은 반드시 딴 곳에 등재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국가조선에서는 호구가 많
아야 세수稅收가 많았기 때문에 등재하는 쪽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호적을 줄이려 했던 반면에 조정에서는 늘리려
했습니다 이런 것은 조선조 호적제도의 문제점이엇습니다
조선조의 호적은 양반이라는 신분을 과시하고 과거 때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양반들의 재
산인 노비문서도 되었기 때문에 호적에는 노비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노비(奴婢) 노(奴)=남자 종, 비(婢)=여자 종.
양반들은 노비의 숫자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천자수모법賤子隨母法을 제정했습니다
고려시대인 1039년 처음 제정된 이 법은 고려시대부터의 풍습이 된 악법惡法이었습니다
어미가 천인이면 비록 아비가 양인이라 할지라도 어미의 신분을 따라 천인이 된 것인데 노예의 숫자를 늘리려는 데에
이 법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양반들에게는 좋은 법이었으나 국가적으로는 손해였습니다 노비로부터는 세금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노비제도는 조
선왕조의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노비제도를 폐지하려고 해도 양반들이 반대했습니다
조선왕조에서 노비제도가 없어진 것은 동학농민혁명 때인 갑오경장 이후 부터입니다 갑오경장甲午更張 당시에 동학
혁명의 요구 중 하나는 노비제도의 폐지였는데 갑오경장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노비제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17세기 내지 18세기에는 노비의 인구가 확실하게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중 절반이
노비의 후손들입니다 그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와서 양반 상놈 따지는 것은 전부 사기입니다
▷ 종들은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노비 문서의 성명은 대부분이 이뿐이=伊분伊, 개똥=介동, 칠돌=七乭(돌 밑에 을의 음을 따서 씀) 등등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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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영상 :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호적' 3/4
조선시대의 공문서 결재決裁는 한성의 당상관堂上官 정삼품지금의 국장급 이상이 수결手決로 했습니다 서양보다
우리가 먼저 수기사인 私印을 했던 것입니다 도장은 일제의 산물
그러나 한성 같은 데서는 민원이 많아 사인을 도장화圖章化하여 사용했습니다 최한기의 호적에 나오는 결재 사인私
印은 수결이 아니고 사인을 도장화한 것입니다
사조四祖란 부父 조祖 증조曾祖 고조高祖를 말하는데 호적에는 먼저 남자 쪽 사조四祖가 나오고 그 다음 여
자 쪽 사조四祖가 나옵니다
호주인 남자 쪽이 사망했을 때 지금은 아들이 승계하지만 고려시대를 거쳐 17세기 중엽까지 즉 장자상속의 유교 종법
사회 이전까지는 완전히 남녀평등이었기 때문에 여자가 승계상속를 했습니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https://hablife.tistory.com/607 10/14
이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입니다
최한기는 44살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부자간의 연령 차이가 16살이었는데 16살 연하의 아들이 그의 평생 친구였습니다 책을 저술하면서 아들과 담소하고 아
들이 아버지의 글을 필사하면서 사이 좋게 살았다고 합니다
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살았던 최한기의 말년은 엄청나게 가난해져서 저서를 쓰는데 종이가 없어서 쌀을 외상으로 빌려
종이를 사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최한기가 망한 이유는 책을 너무 많이 사느라 가산을 탕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신간 서적이 나오면 한양서울의 모든 서점이 최한기에게 가져갔다고 합니다 최한기는 이처럼 책을 사기 위해
서 집도 팔고 패가망신을 했다고 하는데 다음의 일화를 읽으면 책에 대한 그의 애착을 알 수 있습니다
或言購書多費者(혹언구서다비자) 惠岡曰(혜강왈) 假令此書中人(가령차서중인) 竝世而居(병세이거) 雖千里(수천리) 今吾
不勞以座致之(금오불로이좌치지) 購書雖費(구서수비) 不猶愈於齎粴而適遠乎(불유유어재리이적원호)
어떤 사람들은 내가 책을 사는데 돈을 많이 쓴다고 하는데, 가령 이 책 속의 사람이 수 천리 떨어져 살고 있다면 그 먼 길
을 갔다 와야 할 것인데 책을 사면 돈이 들지언정 나는 지금 힘 안 들이고 앉아서 그 사람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가!
구서購書 책 구입에 가산을 탕진한 최한기는 말년을 초라하게 보내다가 죽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학문에 대한 열정
속에서 살았던 분이며 이런 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이렇게 개명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10/10/23, 3:43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 호적'
https://hablife.tistory.com/607 11/14
영상 : 영상 :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5강 '죽음과호적' 4/4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망중한담 2017 1 19 1501
천즉기 기즉천 (天卽氣 氣卽天)
Content Life 만족한 삶 홈 태그 미디어로그 위치로그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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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2/15
항상 이렇게 강의를 들으려 와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격려 덕분에 이 강의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
니다.
저는 지난 주 문화일보 기자직을 그만 두었습니다. 2002년 12월 2일에 발령이 난 이후로 2004년 4월 3일까지, 문화일보
의 평기자로서 1년 반 동안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문화일보의 편집국 분위기는 일체의 외부 간섭이 없었기 때문에 편집국은 그들의 상식 위에서 신문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신문사 측에서 저의 기고문인 ‘도올고성’의 주관적 해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기 때문에 제가 그만두게 되었습
니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3/15
'도올 고성'이라는 칼럼에 실린 제 글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문화일보는 치우침 없는 신문을 만들고
자 하기 때문에 '도올 고성'을 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문제라고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 수정이라도 하겠다고 했으
나 그들은 저의 제의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선비는 각필(閣筆)은 할 수 있으나 곡필(曲筆)은 할 수 없다” 하
고 문화일보를 그만 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글에는 해석이 들어가 있고 치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치우지 않는다는 기사는 있을 수 없습니
다. 치우치는 (치우칠 수 밖에 없는) 기사를 어떻게 공평하게 싣느냐가 안 치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태에 대해서 서로 상충되는 견해의 기사라 할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는 아량이야 말로 치우치지 않는 언론의
자세인 것입니다.
제가 칼럼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 중에서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하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금, 법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크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 등을 통해서 미국의 재판과정을 볼 때는 법원이 마치 극장 같습니다. 원고 · 검사 · 피고 간에 형사 사건에 대
한 공방을 진행하는데, 이 장면에서 법정은 하나의 드라마 무대와 같습니다. 재판은 12명의 배심원 앞에서 진행됩니다.
배심원은 다수결로 유죄(Guilty), 무죄(Innocent)가 여부를 결정하고 판사는 형량만을 결정합니다. 중요한 사실 인정은 배
심원이 하며, 후속적인 형량결정만 판사가 하는 것입니다.
재판정에 참석한 배심원은 전혀 법률 전문가나 법조인이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일반 시민이며, 사법부에서 무작위로 뽑
은 사람입니다.
법관이 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에 관한 진위 판단이나 사실인정은 법관이 아닌 그 시대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에 맡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서 배심원 제도가 생긴 것입니다.
▶당사자주의 : 형사소송절차에 있어서 원고인 검사와 피고인이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진행시키는 주의. 직권주
의에 대칭되는 말.
배심원제도에는 진위 자체의 인위적 결정은 인식론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는 생각, 즉 진위 여부나 시비의 판단
은 그 사태가 속한 사회의 상식적 컨센서스(Consensus=합의)에 맡기자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영미법에서의 법(Law)은 있는 것(Being)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Becoming)입니다.
법을 존재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생성론적으로 생각합니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4/15
영미법, 특히 시민의 권리에 관한 민법은 법전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상식에 의해서 법률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불문법(Unwritten Law)이라고 합니다. 영미법은 불문법이며. 관습 및 판례 중심의 법입니다.
불문법(不文法 Unwrittenlaw) : 영미법 : 관습•판례 중심
성문법(成文法 Writtenlaw) : 대륙법 : 법전 중심
그에 반해서 성문법은 법전 중심이며, 독일과 프랑스 계통의 대륙법을 말합니다.
법전은 하나의 시스템이며, 법관이 그것을 해석하고, 인간사회의 질서, 규범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대륙법 중에서는 참심
제도를 두어 국민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서양에서 법이라는 것은 마그나 카르타 이래로 귀족들이 왕권을 제약하기 위해 자기들이 낸 일종의 성명서 같은 것입니
다. 그런 성명서들이 역사 속에 계속 쌓여서 법이 된 것입니다. 법은 반드시 그 역사의 내재적 맥락과 체험으로부터 우러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법관권위주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헌법학자 뢰빈슈타인은 헌법을 ①규범적 헌법, ②명목적 헌법, ③장식적 헌법으로 분류했습니다.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되었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역사의 내재적 맥락과 관계가 희박한 명목상
의 헌법입니다.
법이란 옷과 같은 것으로 신체가 바뀌면 옷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치 어린 아이에게 멋진 어른의 옷을 입혀놓고
어린이가 커서 맞춰지도록 하는 것과 같은 것(우리 헌법과 같은 것)을 명목적 헌법이라고 합니다.
성문헌법으로는 미국의 헌법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대표적인 성문헌법인 미국 헌법은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에 항거하면서, 신대륙에 어떠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미
국의 사상가 비전을 요약해서 제임스 메디슨을 비롯한 55명의 대표가 필라델피아에 모여 1787년에 성립한 것이 미국 헌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시민들은 그들의 헌법을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모든 민권헌법은 계속 수정될 수 밖에 없고, 계속 수정되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헌법도 Amendment 즉 수정안들이 누
적되어 이루어진 헌법입니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5/15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금은 이런 말이 굉장히 설득력이 있지만 전두환 시대에 이런 말을 하면 어땠을까? 당시의 헌법은 “대한민국은 독재국
가다. 주권은 독재자에게 있고 권력은 독재자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어야 맞는 헌법이었다는 말입니다.
영상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1/4
영국의 헌법은 불문율로 되어 있는 불문헌법(Unwritten Constitution)입니다.
세계 역사상 법치와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가 영국이라고 하지만, 막상 영국에는 헌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그나
카르타(1215), 권리청원(1628), 인신보호법(1697), 권리장전(1689), 왕위계승법(1701) 등이 계속 이어져온 것입니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6/15
예를 들자면 :
Status of judicial precedent, text books, law books, the writings of historians and political theorists, the biographies a
nd autographies of statesmen, the columns of every serious newspaper, the volumes of Hansard, the minutiae of eve
ry type of government record and publication. This is what is meant by saying the English constitution is unwritten.
교과서, 법률저서, 역사가들과 정치이론가들의 저작, 정치이론가들의 저작, 정치가들의 자서전과 자필문서, 모든 주요 신
문의 사설, 정부의 기록 간행물 등등 모두가 영국 불문법 헌법에 속한다.
영국의 헌법이 불문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 정도전에 의해 ‘조선경국전’이라는 이름의 성문헌법이 최초로 만들어지고, 성종 때 <경국대
전:經國大典>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불문법이 있었는데, 공자의 사상에 예(禮)와 법(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子曰(자왈): 道之以政(도지이정), 齊之以刑(제지이형), 民免而無恥(민면이무치), 道之以德(도지이덕), 齊之以禮(제지이례),
有恥且格(유치차격)
정치로써 백성을 이끌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은 법망(형벌)을 피하기 위해 염치를 버리게(부끄러움을 모르
게) 될 것이다.
백성을 덕으로서 이끌고 예로서 가지런히 한다면 백성들은 염치도 있고 질서도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의 <경국대전>은 왕의 통치수단으로써의 법이기 때문에 골격은 형법(Criminal Law)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법은 형법이었습니다. 법을 포도청 나졸이 백성들을 때려 잡는 무서운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
을 ‘피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됐습니다.
민법(民法)은 것은 법을 통해서 백성(국민)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사상을 법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법을 통해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법을 통해서 역사를 바꾸고, 법을 통해서 혁명을 하고, 법을 통해서 진
리를 밝힌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조선시대(까지)의 법은 형법뿐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오랜 세월 동안 전통적 규범이었던
우리의 예(禮)와 법(法)은 (백성의 권리를 밝히는) 민법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불문법으로도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유교사상은 불문법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법 체제에서 유리되어 갔습니다.
조선역사 500년 동안 추구한 것은 4단(四端)이었는데, 이것은 서양의 자연법(Natural Law)사상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인간
의 본성에 내재하는 도덕적 질서’를 말합니다.
조선의 주리론(主理論) 전통은 자연법의 추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7/15
주리론, 곧 자연법 추구는 노모스(Nomos)를 뛰어넘는 피지스(Physis)였습니다. 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우리가 법
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법을 위해 있는 것 같은 이런 난센스(Nonsense)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노모스 Nomos : Latin어로 Melody, 즉 ‘가락’
▶피지스 Physis : Latin어로 ‘자연의 작품’ 또는 ‘물리적인 성질’
우리는 조선 사상사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사상사를 강의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모든 (근원적인) 문제가 현재의 우리 현실과 얽혀있다는 것에 있습니
다.
조선왕조는 500년을 지내면서도 근원적으로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산 후기에 이르러)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의 변화가 오기 시작할 때 그것을 감지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는 대표적
인 사상가로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琦)라는 인물이 꼽힙니다.
▶최한기(1803~1877)의 본관은 삭녕(朔寧), 호는 혜강(惠岡), 19세기 중엽, 새로운 사상 패러다임을 만든 대 사상가. 원
래 개성 사람으로, 서울로 이주했다.
최한기의 선조는 집은 부유한 편이었지만 10대를 통해 과거급제자가 없었습니다. (家素裕 : 집은 원래 부자였다).
최한기는 어려서 양자를 갔는데, 무과에 급제한 양(養)증조부인 최지숭(崔之崇)에 이어 양부인 최광현(崔光鉉)도 무과 급
제를 하여 벼슬은 곤양군수와 진주진관 병마동첨절제사에 이르렀습니다.
19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사상가인 최한기는 서울 남대문 시장 쪽, 지금의 한국은행 본점 자리에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
았습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의 <조선상식문답속편>에 의하면, 조선 역사에서 가장 저술을 많이 한 사람이 최한기이며, 저서는 <명
란주집>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 권을 저술했다고 하므로 아마 300~400권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보통 3~4책이 한
권 임). 그가 저술한 책 중 상당부분이 유실되었으나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최한기는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당대의 명망가들과 교류가 없었고 제자가 없었고 문집도 없었습니다. 정약용은 제자가 있었지만 최한기는 제자가 없었
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선조 말에 가장 많은 저서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동양 전통 고서 외에도 당대에 출간된 서양
의 (인문) 서적은 물론 모든 과학서적까지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8/15
영상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2/4
그리하여 중국 북경 정양문 내의 인화당(人和堂)에서 최한기의 30대 저서인 <신기통>과 <추측론>을 묶어 <기축체의>
라는 이름의 활자 디럭스판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조선의 학계에서는 최한기를 잘 몰랐고 19세기 조선에서는 중인들이 가장 깨어있었으며, 그들은 해외여행도 자주했기
때문에 역관(譯官)이나 중인(中人)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인(中人)이란 조선 시대에 양반과 상민의 중간에 있던 신
분 계급을 말합니다.)
실제로 최한기는 당대의 어마어마한 양반임에 틀림없습니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9/15
역사적인 대작(大作)들을 저술한 그의 저택 안에는 기화당(氣和堂), 양한당(養閒堂), 장수루(藏修樓), 긍업재(肯業齋) 등의
네 채의 건물과 24명의 종(남 13명, 여 11명)이 있었습니다.
당시(구한말)의 조선은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도정치와 민비(閔妃=명성황후), 대원군, 고종황제 간의 세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던 혼탁한 사회였습니다.
이처럼 엉망인 정치상황 속에서도 최한기는 정치와 권력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인류 평화를 생각하고 세계를 바라보면서
살다가 갔습니다.
우리는 조선 후기가 최한기와 같은 사상가가 활동할 수 있었던 문화였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
치사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최한기는 너무도 멋지게 살다 간 희대의 인물이었습니다.
최한기를 19세기 조선의 Cosmopolitan(=세계인)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최한기 사상의 특이점은 오륜(五倫)에 일륜(一倫)을 더한 육륜(六倫)이라 하는 데서 엿볼 수 있습니다.
君臣有義(군신유의), 父子有親(부자유친),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 朋友有信(붕우유신)의 오륜(五倫)에
兆民有和(조민유화)를 더했습니다.
兆民有和(조민유화)란 억조창생, 즉 모든 인간은 화합한다는 뜻입니다.
최한기는 55세에 한국 역사상 최초의 세계인문지리서인 지구전요(地球典要)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지구전요(地球典要)
에는 나라이름, 수도, 인구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최한기의 유일한 친구는 대동여지도의 저자인 김정호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분 이상의 위대한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국민이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합니다. 나라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근대정신의 소산입니다.
김정호의 지도는 오늘날의 인공위성이 촬영한 것보다 더 정확합니다. 생김새(지형)도 정확합니다. 걸어 다니면서 어떻게
그렸을까? 현대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미스터리 투성이입니다.
종래의 지도는 김정호의 지도에 비교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김정호의 친구인 최한기도 정확한 세계지도를 그렸습니
다. 모든 나라의 수도, 인구, 정치제도 등을 적었습니다.
文一平(1886~1936)의 조선명인전(朝鮮名人傳)에는 최한기와 김정호가 남산 꼭대기에 올라 밤의 별을 쳐다보면서 다음
과 같은 말을 나눈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두 위인은 기(氣)를 토하면서 말했습니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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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를 먹고 살고 있으니 무언가 조선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학문으로서 치안
(治安=치민<治民>과 안민<安民>)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닌가!”
“조선의 정치가 무엇 하나 돌아가는 것이 있는가? 안동김씨, 풍양조씨들이 전부 사랑방 정치를 하고 있지 않는가? 국정
은 날로 혼미해가고 있다. 정호야! 너는 지리(地理 : 땅의 이치)를 맡아라. 나는 천문(天文=天紋=하늘의 무늬=하늘의 질서
=모든 보편적 법칙)을 맡겠노라”고 기염을 토했다고 합니다.
지리를 공부한 김정호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남겼고, 천문을 공부한 최한기는 기학(氣學)을 연구했습니다.
천즉기(天卽氣), 기즉천(氣卽天) 하늘은 기로 되어 있고 기는 곧 하늘이다. 즉, 우주는 기다.
“나는 기를 연구하겠다.”한 최한기는 평생을 기(氣) 하나의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과거 우리가 알았던 (성리학) 이기론의 기가 아니라, 이 사람의 기는 100% 과학적인 기였습니다.
‘기학(氣學)’은 최한기가 55세 때 연구한 우주론의 대작입니다. 이 책은 19세기 조선의 가장 개명한 사상가인 최한기의
포괄적 우주론을 담고 있다. 최한기의 ‘기학(氣學)’은 정말로 위대한 책입니다.
‘기학(氣學)’ 서두에,
中古之學(중고지학), 多宗無形之理(다종무형지리), 無形之神(무형지신), 以爲上乘高致(이위상승고치)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학문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무형의 리(理)와 무형의 신(神)을 받들었다. 애매모호한 것을 숭상했
다.
신기(神氣)는 신천(神天=God)에 해당하는 최한기의 기(氣)개념입니다.
혜강 최한기는 하느님도 기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 자체가 형체이며, 신적인 것이므로 모든 것은 유형으로 환원되어
야 한다고 합니다.
혜강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논점은 바로 무무(無無)입니다.
무무(無無)란, 무(無)는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유형의 구체적 증거가 있는 것이고 형태가 없는 것은 무(無)라는 말
입니다.
“모든 것은 유체적인 유형의 근거가 있는 것이고 그 유형의 근거도, 형체가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경우에도), 우리
가 무형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이 유형이다. 앞으로 내가 하는 학문은 형체가 없는 것이라고는 없다.”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11/15
이것이 바로 ‘최한기의 근대 과학사상’의 출발이다.
영상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3/4
정도전에서 이퇴계에 이르는 모든 유학적 패러다임은 최한기에 의해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개명(開明)한, 현실적인, 세계의 학문으로 발전해 가게 됩니다.
개화기의 사상가들(김옥균, 유길준, 박영효 등)은 서양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일본에 가서 서양을 배
웠습니다. 서양 제국주의 학문인 진화론의 희생양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동도서기(東道西器) 운운하는 유치한 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東道西器 : 동양의 도에 서양의 그릇, 즉 정신은 동양적인 것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양의 물질문명을 수용한다는 의미
10/10/23, 3:41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4강 '법과 기학'
https://hablife.tistory.com/596 12/15
최한기는 조민유화(兆民有和), 즉 지구상의 모든 민족, 종족이 편견 없이 대등하게 교류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19세기 당시에도 그는 “흑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같이 대접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서양의 과학은 뛰어나다. 기학에 있어서도 그들은 근거 있는 유형의 기로부터 법
칙화시켰다. 그들은 모든 것을 계량화시키고 잴(계측할)수 있게 해 주었다. 이때까지 우리가 무형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서양문명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문명을 깊게 배워야 한다”고 질책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19세기 중엽이라 하면 민란이 가장 많이 일어나고, 외세가 가장 빈번히 침범해 오는 처참한 역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는 이렇게 위대한 사람,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최한기입니다. 그의 저서는
2세기가 지난 오늘날에 읽어도 현재의 어떠한 물리학자의 세계관보다 뛰어난 것이며, 거의 2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이
책에 상응하는 과학적 우주론이 한국인에 의해 시도된 바는 없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나와서 소리치는 것은 도올 김용옥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이 땅에는 저보다 몇 백배 훌륭한 사상가들이 꾸준히, 남모르게 피눈물을 흘리며,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키워 온 역
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바야흐로 이들이 꿈꾸었던 세계를 이룩하려는 역사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우리
의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한 명도 빠지지 말고 투표장에 가서 귀중한 한 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 됩니다.
만 20세의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한 표의 투표권이 주어지기까지 인류 문명은 희랍인들의 데모크라시로부터 시작해서 2,
500년 동안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오늘의 여러분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2.500년 동안 왕정과 투쟁해서 얻은 (민주주의 투쟁의) 결과인 것입니다.
현재의 나의 존재를 우연적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기나긴 인류사의 정신문명의 성취 속에 나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
고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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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망중한담 2016 12 31 1601
조선 유학은 인간을 이성의 주체로 파악하기보다 감정의 주
체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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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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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탄핵정국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번 시간에도 뭔 이야기를 하나 쳐다 볼 사람이 많
을 것 같은데. 제가 사실은 몸이 상당히 아프지만 강의를 안 할 수가 없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의사입니다. 병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현대인의 병은 전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몸 안에서 오는
발병은 전부 다 칠정(七情)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 유학은 인간을 칠정의 주체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조선 의학도 인간을 감정(七情)의 주체로 파악했다.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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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상사의 한 정점인 이제마(李濟馬 1837~1900)도 인간의 질병을 감정의 문제로 파악했다. (▶ 이제마(李濟馬:1837~190
0): 조선조 말엽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창시한 대 사상가)
이제마는 인간의 성정에 있어서 애노희락(哀怒喜樂)의 치우친 상태를 분석하는 것으로 사상의학의 틀을 세우고 인체를
상중하(上中下)의 3초(焦)로 나누었습니다.
사상의학에서 모든 체질(Constitution)은 선천적으로 오행관계가 치우쳐 있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제마 4체질 분류
1. 태양인(太陽人)
폐가 크고 간이 작으며 가슴 윗부분이 발달한 체형.
목덜미가 굵고 실하며 머리가 큰 대신에 허리 아랫부분이 약하며, 엉덩이가 작고 다리가 위축되어 서있는 자세가 불안
정해 보인다.
다른 사람과 사교하는 데 소통을 잘하는 장점이 있고, 과단성이 있어 사회적 관계에 유능하다.
태양인은 소변량이 많고 잘 나오면 건강하다. 입에서 침이나 거품이 자주 나오면 병이 된다. 담백한 음식이나 간을 보
하고 음을 만들어 주는 식품이 맞다. 지방질이 적은 해물류나 채소류가 좋으며 병에는 오가피장척탕이나 미후등식장
탕이 좋다.
2. 소양인(少陽人)
비대(脾大) 신소(腎小)하며 가슴이 성장하고 충실한 반면 엉덩이 아래로는 약하다.
상체가 실하고 하체가 빈약하며 앉은 모습이 외롭게 보인다. 말하는 것이나 몸가짐이 민첩해서 경솔하게 보일 수도 있
고 눈에 정기가 있고 입술은 엷으며 턱은 뾰족하고 성격은 급하면서 쾌활하다.
굳세고 날랜 장점이 있고, 일을 꾸리고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양인답게 굳세고 강인함도 있고 적극성도 있어서 어
떤 일에 착수하는데 어려워하지 않는다.
소양인은 대변이 잘 통하면 건강상태이다.
비뇨기 ·생식기 기능이 약하며 일반적으로 배추 ·오이 ·보리 ·밀 ·녹두 ·해삼 ·돼지고기와 찬 음식을 좋아하고, 더운 음식
과 기름기 많은 음식을 싫어한다. 병에는 양격산화탕 ·육미지황탕 ·양독백화탕 ·형방폐독산 등을 많이 사용한다.
3. 태음인(太陰人)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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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크고 폐가 작으며 허리 부위의 형세가 성장하여 서있는 자세가 굳건한 반면에 목덜미 기세가 약하다. 보통 키가
크고, 작은 사람은 드물다. 대개는 살이 쪘고 체격이 건실하며 간혹 수척한 사람도 있어도 골격만은 건실하다.
성격은 꾸준하고 침착하며 무슨 일이든 시작한 일, 맡은 일을 이루어 성취하는 데 장점이 있으며 어느 곳에서나 잘 적
응하는 재간이 있다.
태음인은 땀구멍이 잘 통하여 땀이 잘 나오면 건강하다.
호흡기와 순환기 기능이 약해서 심장병 ·고혈압 ·중풍 ·천식 등에 걸리기 쉽고 지방질이 많은 식품은 좋지 않다. 고단백
질의 식품이 좋고, 채소류 ·해물류가 좋고, 자극성 있는 조미료나 닭고기 ·개고기는 해롭다. 병에는 청폐사간탕이나 태
음조위탕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4. 소음인(少陰人)
신대(腎大) 비소(脾小)하며 엉덩이가 크고 앉은 자세는 크지만 가슴둘레를 싸고 있는 자세가 외롭게 보이고 약하다. 보
통은 키가 작으나 드물게 장신이 있고 상체보다 앞으로 수그린 모습을 하는 사람이 많다.
유순하고 침착하며, 사람을 조직하는 데 능하다. 마음 씀씀이가 세심하고 부드러워 작은 구석까지 살펴서 계획한다.
소음인은 음식소화만 잘 되면 건강하다.
먹는 양도 적고 빙과류 같이 찬 것이나 생맥주 같은 것을 먹으면 설사하기 쉽다. 고추 ·파 ·마늘 ·감자 ·미나리 ·닭고기 ·
명태 ·개고기 ·대추 등과 더운 음식, 매운 음식을 좋아하며 찬음식을 싫어한다. 병에는 십전대보탕 ·향사양위탕 ·보중익
기탕 ·곽향정기탕 ·소합향원 등이 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폐(肺) : 호흡기관인 Lung(폐장기)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두뇌를 포함한 인간 상초 전체의 기능→금기(金氣)에 해당
동양에서는 肺(金)과 肝(木), 脾(土)와 腎(水)는 상극(相剋)관계로 봅니다.
(즉, 하나가 성하면 다른 하나는 쇠한다는 것.)
人稟臟理(인품장리), 有四不同(유사부동)
1. 肺大而肝小者(폐대이간소자) 名曰太陽人(명왈태양인)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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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있어 상초가 강한 사람은 하초가 약하다. 화를 잘 내지만 금방 잊는다. 결벽증이 많고 괴팍하다. 예술가가 많다. 간
이 작기 때문에 육식을 피해야 한다.
살이 쉽게 빠지는 스타일. 머리가 크고 엉덩이가 작고 가슴 윗부분이 발달. 가을을 만나면 안 좋다. 木: 봄을 만나야 좋다.
방향으로 말하면 동쪽. 봄만 되면 펄펄 난다. 금붙이는 안 좋다. 금니도 안 좋다.
태양인 인구 분포는 논할 가치가 없을 만큼 거의 없다.
2. 脾大而腎小者(비대이신소자) 名曰小陽人(명왈소양인)
비위가 좋은 사람. 속이 덥다. 소화를 잘한다. 성격이 좋아 욕을 먹어도 소화를 잘 시킨다. 살결이 보드랍고 얼굴이 흰 사
람이 많다. 성격이 급해서 기차 시간 한 시간 전에 나가는 사람이다. 화를 잘 낸다. 뒤끝이 없다.
소심하여 일찍 약속장소에 나간다. 성격이 좁고, 화를 잘 낸다. 애노(哀怒)의 감정 표시를 잘한다. 그러나 뒤 끝이 없다. 가
슴부위가 성장하여 충실하다. 솔직 담백하고 의협심이나 봉사정신이 강하다. 성격이 급하고, 마무리가 부족하다. 소양인
인구 분포는 30% 정도.
3. 肝大而肺小者(간대이폐소자) 名曰太陰人(명왈태음인)
소위 ‘간뎅이가 부은’ 사람. 과감하게 일한다. 술을 잘 먹는다. 이런 사람은 하초가 강하고 상초가 약하다. 사업가, 국회의
원 등. 자본주의시대는 태음인의 시대. 키가 크고 체격이 좋으며, 목덜미의 기세가 약하다.
꾸준하고 침착하여 맡은 일은 꼭 성취하려고 한다. 보수적이어서 변화를 싫어한다. 봄을 만나면 아프다. 봄에 조심해야 한
다. 봄을 탄다는 것은 체질적으로 봄에 간화가 성해지기 때문이다. 봄에 조심해야 한다.
태음인 인구분포는 50% 정도.
4. 腎大脾小者(신대비소자) 名曰小陰人(명왈소음인)
신장이 크고 비장이 작으며 비위가 좋은 사람. 정치가.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 예술가 등. 육식은 좋지 않다. 흡연도 피해
야 된다. 돈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의(義)를 버리고 안일한 것을 좋아하는 형으로, 게으르기 싶다. 하체 비만 스타일 - 엉덩이가 크고 어깨가 좁은 형. 유순하
고 침착하다. 내성적이며 적극성이 적고 추진력이 약하다.
소음인 인구 분포는 20% 정도.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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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1 of 4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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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피하고, 꼭 알아야 하는 최근의 국제정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동북아 국제정세에는 두 개의 문제가 있는데, 대만문제와 남북문제가 있습니다. 대만문제는 이념문제, 통일문제 등이 상
당히 복잡해서 역사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만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대만(섬)은 중국문화권 밖에 있었는데 명나라 때부터 중국역사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게 됩니다.
대만은 원주민이 사는 섬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방어계(南方語系)의 폴리네시안이며, 필리핀 최북단의 Bantam군도와 생
활습관 및 언어가 비슷하고 동일한 문화권에 속하는 고산족입니다.
대만을 영어로 Formosa, 즉 ‘아름다운 섬’이라 하는데 대만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람들이고, 그들이
이 섬을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Ilha Formosa라고 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람들이 대만을 처음 발견했지만 이 섬을 최초로 식민 지배한 나라는 네델란드(Netherlands)입니다
Netherlands의 총독이 1624~1662년 38년간 식민지 지배를 한 것입니다.
1653년 효종 당시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이 탔던 상선(商船)도 Netherlands의 대만 총독부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배였
습니다.
대륙에서 명(明)이 망하고 청(淸)이 들어서자 반청(反淸)운동을 일으켰던 정성공(鄭成功)은 대만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러
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나라가 정성공을 격파하고 대만을 청나라 복건성 관할의 ‘대만부’로 만들었고, 이렇게 해서 청나
라가 대만을 212년간 지배한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동학(혁명) 이후에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승리합니다. 이토히로부미(안중근의
사에 의해 하얼빈 역두에서 저격 피살됨)가 시모노세키(下關)조약에서 청국으로부터 전쟁배상금조로 대만을 넘겨 받아 1
895~1945까지 50년간 식민지 지배를 합니다. 즉 조선 동학혁명의 대가로 일본은 대만을 얻은 것입니다.
대만은 일본에 의해 50년간 지배되었지만 식민지 피해의식은 없었습니다. 대만사람들은 자기들이 한번도 나라를 가져 봤
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식민지 피해의식이 없습니다.
대만의 지배자는 스페인→네덜란드→명나라→청나라→일본→중국국민당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https://hablife.tistory.com/581 8/18
대만사람들에게는 식민지 통치자가 바뀐 것이 더 좋았습니다. 특히 일본의 대만통치가 대만인들에게 가장 좋은 정치였습
니다. 학교도 세워 주고, 도로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만인들의 저항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통치자들과 50년간 좋은 사이로 지냅니다.
대만은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즉 1945년 8월까지 50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았는데, 일본의 패전으로 전승국인 중국에 반
환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 내란 중이었기 때문에 중국에는 주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대만을 (중국 국가가
아닌) 국민당에게 넘겨줍니다.
대만을 접수한 국민당 패잔병들은 중국말은 못하고 일본말을 하는 대만인들을 모든 사회분야에서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
지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대만사람들의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게 됩니다.
1947년 2월 27일, 저 유명한 대만인 대학살사건이 발생합니다.
양담배를 팔던 한 대만 노파가 국민당 병사에게 무참하게 타살되자 불만에 쌓여있던 대만사람들의 ‘민중봉기’가 타이베이
시 연평북로에서 일어나는데, 이 민중봉기를 저 유명한 2.28사건이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약 2만 여명의 대만인이 학살됩
니다.
오늘 날의 대만 사람 가운데 2.28사건과 연루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행정 보도 자료에 28,000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민간 소문에는 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만 전체의 산하가 피로 물
들여졌습니다. 이때부터 38년간 대만은 국민당 정부의 계엄령 하에 놓여있었습니다.
우리는 (국민당이 대만에 세운 정부를) 자유중국이라고 불렀습니다.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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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2 of 4
대만 국민의 85% 가량은 본성인(本省人)과 대만인이고 나머지 13% 정도가 외성인(外省人)입니다.
본성인은 청나라 때부터 대만에 와서 사는 사람이고, 외성인은 1945년 8월 이후 대륙에서 온 국민당원들과 가족들을 말합
니다. 본성인과 외성인 사이에는 피맺힌 한이 있습니다.
본성인 출신인 이등휘가 1984년 중화민국역사상 최초로 직접선거에 의해서 부총통(부통령)으로 당선되고 (총통인 장징궈
의 죽음으로) 1988년~2000년까지 국정을 주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대만 독립정신이 고취됩니다.
1986년. 여전히 계엄령 치하인 대만에서 본성인 130여명이 중심이 되어 야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을 창당하는데, 2004년
천슈이벤(陳水扁)이 외성인 후보와의 직접선거에서 승리함으로서 대만 역사상 최초로 국민당이 아닌 야당 출신의 총통이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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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됩니다.
본토민(本土民) 중심의 본성인과 대만 원주민은 기나긴 400년 동안 국가의식을 가져 보지 못했습니다. 민진당의 집권으로
인하여 대만 민중들은 400년 동안의 외세지배로부터 주체적인 나라를 가져야겠다는 갈망을 한 층 높게 가지고 있지만 外
省人들은 이것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였던 국민당 출신의 외성인들이 하루아침에 친공(親共)의 대륙주의자로 변해버립니다. 이 상
황은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코믹한 것인가를 실감케 하는 것입니다. 본성인들이 볼 때는 웃기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자기들에게 반공(反共)을 부르짖다가 이제는 친공산주의자가 되어 “대만은 대륙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
하고 있습니다.
반공의 보루였던 대표적 신문, 연합보(聯合報),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의 신문들도 대륙의 인민일보(人民日報)와 논조를
같이 하며 “대만은 대륙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만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합니다.
일변일국(一邊一國)을 표방하며 그들은 해양국가로써의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한편, “대만은 이미 더 이상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자유중국)은 미국의 힘(영향력)으로 UN상임 5개국의 하나였지만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고 본
토의 중국과 수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2004년) 대만의 GNP는 22,000불,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입니다. 외화 보유고
세계 2위, 해외투자 2,000억불의 부국입니다.
미국의 최대 목적은 어떻게 하면 중국을 견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빙자해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속셈이 있다. 한편 북한이 말썽을 부리니 한국과 일본이 MD(미국이 주
도하는 대북한 미사일 방어체제)에 참여하라고 (압박하며)... 이런 문제가 걸려있는 한, 미국은 쉽사리 한국에서 철군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대만은 중국 본토에서 떨어지는 것이 더 낫습니다.
대만은 미국에게 “영원히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다.” 미국은 대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대만 독립을 주
장하는 陳水扁(민진당 출신, 본성인)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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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水扁은 국민당의 옌친(蓮戰)과 본성인 출신의 친민당(親民黨)의 송초유(宋楚瑜)와 대전하다가 결국에는 친민당과 합쳐
서 승리했습니다.
박빙의 신승(辛勝)이긴 하지만 최초로 본성인에 의한 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
민진당 후보(천수이벤)의 승리는 그것이 비록 압도적이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대만 인민의 자주적 열망 확산의 표상이며,
동아시아 역사의 민주세력의 진보를 나타냅니다.
중국은 대만을 흡수하는 문제에 급급하지 말고, 대만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자신의 도덕성을 고민해야 할 것입
니다.
대만 사회의 내재적 모순에 상응하는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더
커집니다.
티베트문제와 고구려 (동북공정) 문제도 그럴 것입니다.
고구려 문제가 왜 생겼는지 아십니까?
과거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 사람들이 자기네 역사로 무리하게 흡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인데 중국
은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남북통일의 대비책인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면 당장 고구려의 고토인 만주 땅의 역사적 정체성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중국
은 이 문제를 미리 못박아 두자는 것입니다.
중국은 한 때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거대한 제국주의를 운영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세계를 그렇게 보고 있는데 우리는 이게 뭐냐?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살고 있으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힘이 없으면 그대
로 멸시당하고 처참하게 당하는 것입니다.
강남에 가면 필리핀(출신) 식모들이 많다는데, 필리핀도 막사이사이가 집권하고 있을 때만 해도 일본 정도의 수준이었지
만, 마르코스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 필리핀 사람들은 세계의 식모국 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이미지 추락은 회복하기 어렵
습니다.
우리나라도 조금만 있으면 대학을 나와도 그렇게 (식모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릅니다.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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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없으면 금방 처참한 나라가 됩니다.
우선 우리는 국방력강화를 해야 합니다. 우선 자주국방을 해야 합니다. (자주국방을) 무엇으로 하느냐, 돈으로 합니다.
자주 국가는 자주국방, 경제 활성으로 가능합니다.
대기업 같은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활동이 제 자리를 찾아 빨리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정
치가 바로 서야 합니다. 빨리 정치를 개혁해야 합니다.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깔보이면 안됩니다.
내 자식을 서울 대학에 보낼 것만 걱정하고 있지요?
세계정세 속에서 하루 속히 제 궤도에 올라가느냐, 인접국이 우리를 깔보지 못하게, (우리의 국력이 그들과 같아질 수는
없지만) 그들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필요로 하게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건재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질서가 보장되고 우리나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소통되며 (국제)평화 협력에 실
효성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 가장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국방력을 키워야 됩니
다.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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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도올 김용옥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3 of 4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란이 빨리 종결되어서 빨리 부패가 청산되고, 썩은 시대가
지나가고, 우리나라가 빨리 경제 및 국방문제에 매진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총선에 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습니다만, 나 도올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표창 받을 수 있는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어김없이 츠르게 될 오는 4.15 총선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보스(Boss)없는 선거
우리나라 최초로 보스(Boss) 없는 정당이 보스 없이 선거하여 보스 없는 정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https://hablife.tistory.com/581 14/18
지금까지 모든 선거는 보스체제하에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보스가 없습니다. 과거엔 전두환, YS, DJ 등의 보스
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정치판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최초의 보스 없는 선거를 하게 됩니다.
2. 금권 없는 선거
이번 선거는 금권과 결탁되지 않는 최초의 선거가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선거가 얼마나 금권에 썩은 선거였던가를 알 것입니다. 공정선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금권이 최소화 되는 최초의 선거입니다.
3. 국민적 관심이 높은 선거
이번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선거가 될 것입니다.
가장 (국민 의식이) 깨어난 선거가 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투표를 하는, ‘투표율이 가장 높
은 선거’가 될 것이다.
이번 선거는 우리 역사에 획기적인 진보를 이룩할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역사가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아서 진정한 민생 안정을 이룩하고 부국강병으로 달려갈 수 있는 새날이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10/10/23, 3:40 PM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3강 '사상의학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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