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8

井筒俊彦『意識と本質――精神的東洋を索めて』読解:禅でも易でも東洋思想ならとにかく本書【リメイク版】





===


井筒俊彦『意識と本質――精神的東洋を索めて』読解:禅でも易でも東洋思想ならとにかく本書【リメイク版】






135

DISLIKE

SHARE

DOWNLOAD

THANKS

CLIP

SAVE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SUBSCRIBE
00:00 言語によるカオスの分節化 04:14 普遍的本質と個体的本質 08:47 ユング心理学概説 10:19 ①理学の格物窮理 15:49 ②「元型」的本質論 21:18 ③プラトンのイデア論と孔子の正名論 【補足1】禅問答について言及しましたが、井筒さんによると禅は絶対に「本質」を認めないので(一切は「空」とされるので)、「本質」抜きのカオスの認証が禅者一人一人に要求されるのだそうです(p25)。噛み砕いていうと、もともと素粒子も何も存在しない0であるのに1に見えるのは何故か体得せよというスタンスなのだと思います。 ただこの頃、私は強く思うのです。学術的な概念に囚われるよりも、自分自身で哲学・思想を咀嚼・血肉化し、毎日をよりよく生きていく方がよほど大事だし有意義であると。私は「本質」を認める立場を採っていますが、それでも大愚和尚の動画をよく拝見しています。「諸行無常」「一切皆苦」「諸法無我」「涅槃寂静」……ええなあと感じます。 正確さは大事です。ただ正確さに縛られるのではなく、尊重したうえで自分自身の物語/宗教を生み出し、磨きをかけていく方がよほど重要です。極論、間違っていても幸福ならそれでいいんです。哲学・思想・学問、こういったものは全て、よりよく生きるための道具に過ぎないということも、また忘れてはならないのだと思います。 【補足2】ヘーゲルの『精神現象学』と格闘するに当たって、あれこれ定義をいじりましたが、基本的に「本質」といったらここで紹介させていただいた内容を想起すれば大丈夫だと思います。例えば「言霊」ですね。ボードリヤールの動画で述べ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通り、私は日本語を単なる記号と見做す考え方がどうも味気なくて馴染めないので、本質と合致した言語だと考えるのが好きだったりします。 【参考文献:新品で入手できます】 井筒俊彦『意識と本質 精神的東洋を索めて』 https://amzn.to/3kPQ5Ms 田中正人『哲学用語図鑑』 https://amzn.to/392uz2A 【品切れ状態】 トール・ノーレットランダーシュ『ユーザーイリュージョン』 https://amzn.to/3uGOOhP 本田透『喪男の哲学史』 https://amzn.to/3HFNfnX 当チャンネルはAmazonアソシエイトに参加させていただいています。 ※※※※※※※※※※※※※※※※※※※※※※※※※※※※※※※※※※※ 動画素材で主に利用させていただいてます。 〇mixkit https://mixkit.co/free-stock-video/ 〇coverr https://coverr.co/ 〇videvo https://www.videvo.net/ 画像素材で主に利用させていただいてます。 〇pixabay https://pixabay.com/ 〇いらすとや https://www.irasutoya.com/ 〇artvee https://artvee.com/ 〇ぱくたそ https://www.pakutaso.com/ 音声素材で主に利用させていただいてます。 〇効果音ラボ https://soundeffect-lab.info/




Chapters
VIEW ALL







言語によるカオスの分節化
0:00



普遍的本質と個体的本質
4:14



ユング心理学概説
8:47



①理学の格物窮理
10:19



②「元型」的本質論
15:49



③プラトンのイデア論と孔子の正名論
21:18



SHOW LESS



19 Comments

SORT BY



Add a comment...










ポトラッチ4 months ago
意識と本質を読んだのはもう何年も前なので、いい復習になりました。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最近転職したり小説を書き始めたりして、バタバタしていていたのでYouTubeから離れていましたがやっと落ち着きました(小説も最初は軽い喜劇を書くつもりがそれでは欲求不満を覚え『死の欲動が満たされないというか』、やたら暴力的で破滅的なものになったり…)  死の欲動といえば、木村敏という精神病理学者がフロイトのタナトスという概念を批判的に継承していますが(存在者の個別性を取り消して、生成のディオニュソス的世界に回帰しようとする衝動と定義してました。ビオスとゾーエーという概念をもちいて。関係としての自己という本でした)、木村敏さんを取り上げる予定はないでしょうか?最近木村敏さんを集中的に読んでいて、滅法面白いので、押し付けがましいようですが質問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なんか支離滅裂な文章になってすいません。最近死の欲動という概念がめっちゃ気になってて…。自分が宗教や芸術に惹かれるのも、死の欲動が強いせいじゃないかと思ったりして。この動画に関係して言えば、個別的に認識する表層意識から無意識へ突き進むのに死の欲動が関係してるような気がして…。Show less








REPLY







Hide reply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4 months ago
お久しぶりです、コメント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木村さんに限らず、精神分析を扱う予定はまったくありません。何か、肌に合わないんですよ……。死の衝動についてはバタイユの動画で述べた通り、エロスに含むのが本来であると私は考えています。 転職なさったのですね。まだ大変な時期かも知れませんが、執筆とともに無理せず頑張ってくださいShow less


2



REPLY










MARIA4 months ago
このチャンネルの動画を300回ぐらい観ています。いつも素敵な動画を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1





REPLY







Hide reply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4 months ago
繰り返し御視聴いただけるのは本当に嬉しいです。こちらこそ、いつ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1



REPLY










Mo'4 months ago
名著の名解説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自分は本に出てくる嘔吐のような経験をしましたが、考えるにつけ東洋、西洋思想という区別はどうかな?と思うようになりました。なぜなら近代においてどれほどの東洋人が東洋思想をもって生きているのかは疑問です。私の考えでは身体に付くエゴが強く、拒絶反応のような、受け入れがたい反応を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最近は思っています。動画の説明では、著者が言語が影響すると言っていますが、すると意識も脳だけの問題になり、すると宗教家の言うことが個人の脳内で起こっている事だけを説明する事になるようでどうなんだろうかと思います。実際自分の存在含めて、幻想、宇宙の見る夢。それを答えとして腑に落ちるとすれば、別ですが。でも実際この肉体はあ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これをどうとらえればよいのか、、、何度も読み返そうと思い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Show less


1



REPLY









芥川龍之介4 months ago (edited)
いつも興味深い動画を投稿してくださ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この動画を視聴し、天人五衰の最後のセリフ、それも心々ですさかい、を思い出しました。 しかし、理性で世界を捉えるってのはしんどいですね、僕は阿呆者ですから自己の肉体への刺激を通してでしか世界を把握できませんw 阿呆者の理性など下手の考え休むに似たりですから、僕は肉体への刺激を信ずるのみですw いつか虚空の頂から真理が顕現するを僕の肉体が捉えてくればいいのですがね……wRead more






REPLY







Hide reply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4 months ago
コメント、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誰もが五官を通して現実を認識しますよね。その解釈は十人十色で、この点に関して超越論的な要素は入ってきません。例えば、この文章から受け取る「現実」(印象)は、読む人によって異なる。これは、いたって科学的(理性的)な話です。 『天人五衰』の最後の台詞は、唯識論ですね。唯識論になると自分の認識しているものだけが実在する、つまり五官を通して感じられるあれやこれやは自分の中だけ真実ということになり、心心ですさかいという台詞に結びつきます。Read more


1



REPLY










TK‐474 months ago
いつも珠玉の私小説ならぬ、私動画。勉強になります。鈴木大拙は、悟りとは無意識を意識できるようになることと定義しました。まさに誰でもlsdやdmtという幻覚剤で人工的に悟れるんですよね。


4



REPLY







Hide 4 replies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4 months ago
私動画……(笑)でも真面目な話、「新たな文体を手に入れた」くらいの面白さはありますね。 鈴木大拙、悟りについてそんな定義をしているのですか。ナチュラルハイじゃないと意味がないというか、いつまでも神秘的な領域に留まることはNGで、現実に戻り教えを広めよ(世に貢献せよ)というのが本筋なのだそうです。Read more


3



REPLY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4 months ago
「インスタント・禅」なる呼び方まであったのですか……。全然、知らなかったです。今更ながら、潜在意識に関する皆さんの造詣の深さに驚かされています。勉強になるなあ(*´ω`*)


2



REPLY









Shirou Matanuska Oldtown4 months ago
ただ、そのギャップを埋めたイノベーター達は世界に新たな概念を生み、大きく世に貢献しているという。 インスタントだとしても、そこで得られる禅による気づきが肯定される理由なんですね。


1



REPLY










0 shusei3 months ago
仏教における「妄想」は「もうぞう」と読みまする。(重箱の隅をスマン!








REPLY







Hide reply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3 months ago
「もうぞうふんべつ」なわけですね。いや、勉強になりました。御指摘いただきまして、誠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ω`*)






REPLY










Amok3 weeks ago
冒頭でおっしゃっていた服による世界の分節化というのは、バルトのことですかね?






REPLY







Hide 2 replies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3 weeks ago
バルト及び、バルトを下敷きにした鷲田清一さんの著作を意識して述べています。






REPLY









Amok3 weeks ago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なるほど、鷲田さんの本はかなり分かりやすいものが多いですけど、バルトらしさはありますものね。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REPLY










kazuki3 months ago
道(みち)ではなく道(タオ)ではないでしょうか??






REPLY







Hide reply





何か分かりづらいチャンネル
3 months ago
読み方は「みち」で間違いありませんが、お望みなら「タオ」でも大丈夫だと思いますよ。

====

이츠키 슌히코 『의식과 본질――정신적 동양을 곁들여』





=== 이츠키 슌히코 의식 과 본질 ――


정신적 동양을 색 해라 』 언어에 의한 혼돈 의 분절화 04:14 보편적 본질  개체 적 본질





























③플라톤의 아이디어론과 공자의 정명론 【보충 1】선문답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이통씨에 의하면 선은 절대로 「본질」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일절은 「하늘」이라고 되기 때문에), 「본질 빼낸 혼돈의 인증이 선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요구된다고 합니다(p25). 씹어 부서고 말하면, 원래 소립자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0인데 1로 보이는 것은 왠지 체득하라고 하는 스탠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요즘, 나는 강하게 생각합니다. 학술적인 개념에 사로잡히는 것보다, 스스로 철학·사상을 씹어·혈육화해, 매일을 보다 잘 살아가는 편이 좀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저는 「본질」을 인정하는 입장을 채택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오오바오 화상의 동영상을 잘 배견하고 있습니다. 「제행 무상」 「모든 고통」 「제법 무아」 「제도관정」… 정확성은 중요합니다. 단지 정확함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존중한 뒤에 자신의 이야기/종교를 만들어 내고 연마를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극론, 잘못해도 행복이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철학·사상·학문, 이런 것은 모두 잘 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도 또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충 2】헤겔의 「정신 현상학」과 격투하는데 있어서, 이것저것 정의를 괴롭혔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본질」이라고 하면 여기에서 소개해 주신 내용을 상기하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언령」이군요. 보드 리얄의 동영상으로 말씀드렸던 대로, 나는 일본어를 단순한 기호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 아무래도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본질과 합치한 언어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참고 문헌 : 신품으로 입수할 수 있습니다 【품절 상태】 토르·노렛 랜더쉬 “유저 일루전” https://amzn.to/3uGOOhP 혼다 토오리 “ 상남 의 철학사” 받고 있습니다. ※※※※※※※※※※※※※※※※※※※※※※※※※※※※※※※※※※※※※※ 동영상 소재로 주로 이용하겠습니다. 〇mixkit https://mixkit.co/free-stock-video/〇coverr https://coverr.co/〇videvo https://www.videvo.net/ 이미지 소재로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〇pixabay https://pixabay.com/〇이라스토야 https://www.irasutoya.com/〇artvee https://artvee.com/〇파쿠타소 https://www.pakutaso.com/ 음성 소재로 주로 이용하겠습니다. 〇 효과음 실험실 https://soundeffect-lab.info/




Chapters
VIEW ALL







언어에 의한 혼돈의 분절화
0:00



보편적
본질 과 개체



본질


_
_



_
_



_



LESS



19 Comments


Add a comment... 포틀릿 4 months ago











의식과 본질을 읽은 것은 이미 몇 년 전이므로 좋은 복습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전직하거나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엉망이었기 때문에 YouTube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마침내 침착했습니다. 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하는가』, 과연 폭력적이고 파멸적인 것이 되거나… 자의 개성을 취소하고, 생성의 디오뇽소스적 세계에 회귀하려고 하는 충동이라고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계획이 없을까요? 최근 기무라 토시 씨를 집중적으로 읽고 있고, 멸법 재미 있기 때문에, 밀어붙이는 것 같습니다만 질문하였습니다. 어쩐지 지리멸렬한 문장이 되어 죄송합니다. 최근 죽음의 욕동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궁금해서… 자신이 종교나 예술에 매료되는 것도, 죽음의 욕동이 강한 탓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이 동영상에 관계해서 말하면,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표층 의식으로부터 무의식으로 돌진하는데 죽음의 욕동이 관계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Show less








REPLY







Hide reply 뭔가 알기 어려운 채널 4 months ago 오랜만입니다, 코멘트 감사합니다 기무라 씨에 한하지 않고, 정신 분석을 취급할 예정은 전혀 없습니다. 뭔가 피부에 맞지 않아요… 죽음의 충동에 대해서는 바타이유의 동영상에서 말했듯이, 에로스에 포함하는 것이 본래라고 생각합니다. 전직하셨습니다. 아직 힘든 시기일지도 모르지만, 쓰기와 함께 무리하지 않고 노력해 주세요 Show less 2













REPLY MARIA 4달 전 이 채널의 동영상을 300회 정도 보고 있습니다. 항상 멋진 동영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REPLY Hide reply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채널 4 months ago 반복적으로 시청하실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이쪽이 항상 감사합니다 REPLY Mo' 4 months ago 명저명명 해설 감사합니다. 자신은 책에 나오는 구토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만, 생각에 동양, 서양 사상이라는 구별은 어떨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근대에 있어서 얼마나의 동양인이 동양 사상으로 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신체에 붙는 에고가 강하고, 거절 반응과 같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최근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설명에서는 저자가 언어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만, 그러면 의식도 뇌만의 문제가 되고, 그렇다면 종교가가 말하는 것이 개인의 뇌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만을 설명하는 것이 되도록 그래서 어떨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자신의 존재를 포함하여 환상, 우주의 보는 꿈. 그것을 대답으로 힘줄에 떨어진다고 하면, 다르지만. 하지만 실제로 이 육체는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 , , 몇번이나 읽어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Show less REPLY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4 months ago (edited)








































































항상 흥미로운 동영상을 게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동영상을 시청해, 천인 오쇠의 마지막 대사, 그것도 마음 속으로 사카이,를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이성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힘들군요, 나는 아저씨이기 때문에 자기의 육체에의 자극을 통해서만 세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w 아오자의 이성 등 서투른 생각 쉬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나는 육체에의 자극 을 믿을






뿐입니다 w 있습니다. 모두가 오관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는군요. 그 해석은 십인십색이며, 이 점에 관해서 초월론적인 요소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이 문장으로부터 받는 「현실」(인상)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이것은 매우 과학적 (이성적) 이야기입니다. 『천인 오쇠』의 마지막 대사는 유식론이군요. 유식론이 되면 자신의 인식하고 있는 것만이 실재한다, 즉 오관을 통해서 느껴지는 어쩌면 이것 속은 자신 속에서만 진실이라는 것이 되어, 심심하고 사카이라는 대사에 연결됩니다. Read more REPLY TK-47 4 months ago 언제나 주옥의 사소설이 아닌, 나 동영상. 공부가 됩니다. 스즈키 오오츠키는 깨달음이란 무의식을 의식할 수 있게 된다고 정의했습니다. 바로 누구나 lsd나 dmt라는 환각제로 인공적으로 깨닫는군요. REPLY Hide 4 replies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채널






















































4 months ago
나동영상… 스즈키 오오츠키, 깨달음에 대해 그런 정의를 하고 있습니까? 내츄럴 하이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할까, 언제까지나 신비한 영역에 머무르는 것은 NG로, 현실로 돌아가 가르침을 퍼뜨려라(세상에 공헌하라)라고 하는 것이 본근이라고 합니다. Read more


3



REPLY 뭔가 알기 어려운 채널 4 months ago 전혀 몰랐습니다. 이제 잠재 의식에 관한 여러분의 조예의 깊이에 놀라게되고 있습니다. 공부가 되구나(*´ω`*) REPLY Shirou Matanuska Oldtown 4 months ago 단지, 그 갭을 메운 이노베이터들은 세계에 새로운 개념을 낳고 크게 세상에 공헌하고 있다고 한다. 인스턴트라고 해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선에 의한 주의가 긍정되는 이유군요. REPLY shusei months ago 불교의 ' 망상'은 '이제'라고 읽는다 .








































































「이젠 흠뻑」인 것이군요. 아니, 공부가 되었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ω`*)






REPLY Amok 3 weeks ago 처음부터 말씀하셨던 옷에 의한 세계의 분절화라고 하는 것은, 발트의 일입니까? REPLY Hide 2 replies 뭔가 알기 어려운 채널 3 weeks ago 발트 및 발트를 깔아 놓은 와시다 키요이치씨의 저작을 의식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REPLY Amok 3 weeks ago @ 뭔가 알기 어려운 채널 될수록, 와시다씨의 책은 꽤 알기 쉬운 것이 많습니다만, 발트다움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PLY kazuki 3 months ago 도로(미치)가 아니라 도로(타오)가 아닐까요? REPLY Hide reply 뭔가 알기 어려운 채널 3 months ago 읽는 방법은 「미치」로 틀림없습니다만, 원한다면 「타오」에서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REPLY ==








































































































==
=

希修 제사 음식은 귀신들을 위한 보시 220706

(2) Facebook

希修  제사 음식은 귀신들을 위한 보시 
.
"... ... With the break-up of the body, after death, he reappears in the realms of the hungry shades. He lives there, he remains there, by means of whatever is the food of hungry shades. He lives there, he remains that, by means of whatever his friends or relatives give in dedication to him. ... ... The donor does not go without reward." -- AN 10:177.
.
A가 n번째 생을 마치고 n+1번째 생을 받아 지옥, 축생계, 인간계, 천상계 아닌 아귀계로 윤회했을 경우만, 오직 이 경우에만 n번째 생에서의 A의 친지 친구들이 A의 제사상에 올려 준 음식을 A가 취할 수 있음. 보시는 보시하는 자에게 공덕이 됨. 
(그러나 의식 수준이 높은 존재에게 보시하는 것이 의식 수준이 낮은 존재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공덕을 갖는다는 것이 불교의 교리, cf. AN 9:20. 한 사람의 귀천은 타고나는 신분이 아닌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부처님을 평등주의자라 부르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선천적인 신분에 의한 귀천 구분에 반대하신 것일 뿐 행동에 의한 귀천 구분까지 반대하신 것은 아님.
https://www.accesstoinsight.org/.../an09.020.than.html... )  
.
그렇다면, 아귀계의 존재인 귀신이 한 차원 높은 윤회계의 인간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제사/굿을 하는 건, 고등학생이 중학생에게 미적분 풀어 달라 하는 것과 비슷한 일 아닐까? 또 “나에게 제물을 바쳐라!” 강요하는 존재, 그러지 않으면 불행과 재앙을 내리겠노라 사람들을 협박하는 귀신은 과연 제사라는 보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윤회계의 조폭에 불과한 걸까? 무속인들이 하는 얘기들에도 뭔가 근거는 있겠지만, 왜곡/오류가 포함되어 있거나 아니면 조폭의 협박에 끌려다니는 것과도 비슷한 결과가 될 수 있거나 그런 것일 듯. (타니사로 스님은 아귀계의 귀신들을 위한 보시 방법으로서, 명상이나 선행을 할 때 ‘이 행동에 공덕이 있다면 그 공덕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과 나누겠다’ 생각하는 방법을 권하심.) 
.
시험합격, 건강, 극락왕생을 공부, 운동, 수행 아닌 제사, 부적, 기도로써 성취하고자 하는 실현불가 헛된 소망은 업을 이해 못 하는 어리석음인지라, 그래서 종교적 의식에 대한 의존이 ‘聖者의 4단계 중 1단계인 수다원이 되기 위한 조건들’ 중 하나인 3 족쇄 (자기정체성에 대한 관념, 의심, 종교적 의식에 대한 의존) 제거에 포함되는 것. 이 3가지 족쇄를 뿌리 뽑았다는 말은 결국 8정도의 첫 요소인 Right View의 토대를 갖췄다는 뜻이기도 함.    
.
초기불교와 기타 영적 전통들 간의 차이 #9. 초기불교는 타력구제 신앙이 아닌 자력구제 수행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506732516365493
.
ACCESSTOINSIGHT.ORG
Velāma Sutta: About Velāma
1 comment
希修
'제사 음식은 귀신들을 위한 보시'라는 제목은 AN 10:177의 내용을 한 구절로 압축했을 뿐이고, ‘이 행동에 공덕이 있다면 그 공덕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과 나누겠다’ 생각하는 방법을 타니사로 스님이 권하시는 건 미국은 어차피 제사를 지내지 않는 문화이니 미국인들에게 현실적인 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일 뿐 제사 지내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 제사 지내는 문화권에서 제사라는 형식이 후손들에게 가질 '수' 있는 의의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얘기도 아니건만, "'제사 음식은 귀신들을 위한 보시'라는 표현은 너무 단순한 거 아니냐. 타니사로 스님 허당"이라는 '비판'을 하는 분도 계시니 놀랍다.
.
"한국에서 충돌이라고 하면 갈등과 같은 부정적인 개념을 떠올리지만 과학 연구든, 사회 갈등이든 충돌을 해야 해결되는 게 많다. 연구 과정에서 모두가 같은 의견을 내면 수만 명이 모여 봤자 발전이 없다. 배운 게 다르고, 남녀가 다르고, 출신 지역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면 의견이 갈리고 갈등이 생긴다. 입자가 충돌해 새로운 입자를 만들어내듯 생각이 다른 것에 머물지 않고 서로 충돌해야 솔루션(해결책)이 나온다. 충돌은 갈등이 아니라 만남이라 생각한다." https://www.chosun.com/.../18/UBMAJ5K3C5AAPDXO4SDR4YQE5M/...
.
80억 인구가 다 똑같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진솔한 만남'은 어떤 면에선 '충돌'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음에 동의한다. 매사를 너무 take personally 하여 다름의 정직한 표현 자체를 지나치게 두려워 하다 보니 '다름의 표현' 내지 '비판'이라고 하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제대로 익히고 훈련할 기회 자체가 성장과정에서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지라, 그야말로 영점 조준 안 된 채 무조건 거칠게 헐뜯거나 비웃기만 하면 '날카로운 비판'이 된다고 착각하는 내 세대의 한국 분들을 페북에서 종종 마주친다. 나도 그 세대인지라 예외가 아니므로 나나 잘 하면 될 일이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허수아비 때리기'는 '다름'의 영역이 아니다.
.
< 부처님이 언급하신, 대화 상대로 부적합한 사람 >
* 질문의 형식에 맞는 정직한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
* 사실-비사실, 가능-불가능에 대한 전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
* 대화 맥락을 파악 못 해서이든 아니면 자신의 논리가 달려서이든, 대화 주제에서 벗어나는 얘기를 하며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드는 사람.
*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존중 않거나 짜증과 조롱으로 응하거나 대화 주제와 무관한 흠을 잡는 사람.
* 대화의 목적은 무지/혼란으로부터의 해방이어야. 이외의 다른 목적 (자기 의견의 강요, 자기 화풀이, 상대방 조종 등)을 가진 사람도 대화 상대로 부적합.
-- AN 3:67~68
.===
AN 9.20 PTS: A iv 392
Velāma Sutta: About Velāma
translated from the Pali by
Thanissaro Bhikkhu
© 2011
X
The updated version is freely available at
This version of the text might be out of date. Please click here for more information
===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staying near Sāvatthī in Jeta's Grove, Anāthapiṇḍika's monastery. Then Anāthapiṇḍika the householder went to the Blessed One and, on arrival, bowed down to him and sat to one side. As he was sitting there, the Blessed One said to him, "Householder, are gifts still given in your family?"

"Gifts are still given in my family, lord, but they are coarse: broken rice cooked with bran, accompanied by pickle brine."[1]

"Householder, regardless of whether a gift is coarse or refined, if it is given inattentively, disrespectfully, not with one's own hand, as if throwing it away, with the view that nothing will come of it: Wherever the result of that gift comes to fruition, one's mind will not incline to the enjoyment of splendid food, will not incline to the enjoyment of splendid clothing, will not incline to the enjoyment of splendid vehicles, will not incline to the enjoyment of the splendid five strings of sensuality. And one's sons & daughters, slaves, servants, & workers will not listen to one, will not lend ear, will not make their minds attend for the sake of knowledge. Why is that? Because that is the result of inattentive actions.

"Householder, regardless of whether a gift is coarse or refined, if it is given attentively, respectfully, with one's own hand, not as if throwing it away, with the view that something will come of it: Wherever the result of that gift comes to fruition, one's mind will incline to the enjoyment of splendid food, will incline to the enjoyment of splendid clothing, will incline to the enjoyment of splendid vehicles, will incline to the enjoyment of the splendid five strings of sensuality. And one's sons & daughters, slaves, servants, & workers will listen to one, will lend ear, will make their minds attend for the sake of knowledge. Why is that? Because that is the result of attentive actions.

"Once, householder, there was a brahman named Velāma. And this was the nature of the gift, the great gift, he gave: He gave 84,000 gold trays filled with silver, 84,000 silver trays filled with gold, 84,000 copper trays filled with gems. He gave 84,000 elephants with gold ornaments, gold banners, covered with nets of gold thread. He gave 84,000 chariots spread with lion skins, tiger skins, leopard skins, saffron-colored blankets, with gold ornaments, gold banners, covered with nets of gold thread. He gave 84,000 milk cows with tethers of fine jute and copper milk pails. He gave 84,000 maidens adorned with jeweled earrings. He gave 84,000 couches spread with long-fleeced coverlets, white wool coverlets, embroidered coverlets, rugs of kadali-deer hide, each with a canopy above & red cushions on either side. He gave 84,000 lengths of cloth — of finest linen, of finest cotton, of finest silk.[2] To say nothing of the food & drink, staple & non-staple food, lotions & beddings: They flowed, as it were, like rivers.

"Now, householder, if the thought should occur to you, 'Perhaps it was someone else who at that time was Velāma the brahman, who gave that gift, that great gift,' that's not how it should be seen. I was Velāma the brahman at that time. I gave that gift, that great gift. But in that gift there was no one worthy of offerings; no one purified that gift.

"If one were to feed one person consummate in view,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the gift, the great gift, that Velāma the brahman gave.

"If one were to feed one once-returner,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the gift, the great gift, that Velāma the brahman gave, and if [in addition to that] one were to feed one person consummate in view, and to feed 100 people consummate in view.

 "If one were to feed one non-returner,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ere to feed 100 once-returners.

"If one were to feed one arahant,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ere to feed 100 non-returners.

"If one were to feed one Private Buddha,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ere to feed 100 arahants.

"If one were to feed one Tathagata — a worthy one, rightly self-awakened —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ere to feed 100 Private Buddhas.

"If one were to feed a community of monks headed by the Buddha,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ere to feed a Tathagata — a worthy one, rightly self-awakened.

"If one were to have a dwelling built and dedicated to the Community of the four directions,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ere to feed a community of monks headed by the Buddha.

"If one with a confident mind were to go to the Buddha, Dhamma, & Sangha for refuge,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ere to have a dwelling built and dedicated to the Community of the four directions.

"If one with a confident mind were to undertake the training rules — refraining from taking life, refraining from taking what is not given, refraining from illicit sex, refraining from lying, refraining from distilled & fermented drinks that cause heedlessness —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ith a confident mind were to go to the Buddha, Dhamma, & Sangha for refuge.

"If one were to develop even just one whiff of a heart of good will,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if one with a confident mind were to undertake the training rules...

"If one were to develop even for just a finger-snap the perception of inconstancy, that would be more fruitful than the gift, the great gift, that Velāma the brahman gave, and [in addition to that] if one were to feed one person... 100 people consummate in view, and were to feed one once-returner... 100 once-returners, and were to feed one non-returner... 100 non-returners, and were to feed one arahant... 100 arahants, and were to feed one Private Buddha... 100 Private Buddhas, and were to feed a Tathagata — a worthy one, rightly self-awakened — and were to feed a community of monks headed by the Buddha, and were to have a dwelling built and dedicated to the Community of the four directions, and with a confident mind were to go to the Buddha, Dhamma, & Sangha for refuge, and with a confident mind were to undertake the training rules — refraining from taking life, refraining from taking what is not given, refraining from illicit sex, refraining from lying, refraining from distilled & fermented drinks that cause heedlessness — and were to develop even just one whiff of a heart of good will."

Notes
1.
The Commentary states that Anāthapiṇḍika is here referring to alms that he gives to the poor; his alms to the Sangha remained of high quality. However, it might have been that this discourse took place during a time of famine, when even Anāthapiṇḍika was reduced to giving only the coarse food both to the Sangha and to the poor. If that is the case, then we can read the Buddha's remarks to Anāthapiṇḍika as reassuring him that in straitened circumstances it is still fruitful to give, even when one can only give coarse things. The merit of the gift is determined more by the state of mind with which it is given than by the external quality of the gift.
2.
This translation follows the Thai edition of the Pali Canon. The Burmese and Sri Lankan editions list four kinds of cloth — rather than just the three listed here — adding wool as the third of the four.
===

希修


< 초기불교와 기타 영적 전통들 간의 차이 #9. 초기불교는 타력구제 신앙이 아닌 자력구제 수행 >
.
기복신앙이 문제인 건,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딱히 바람직하다거나 반듯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사행심'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 다른 존재나 요행에 기대고자 하는)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神이든 鬼神이든 (인간계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는 신이라 부르고 낮은 차원의 존재는 귀신이라 부르는 분들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존재들은 구분 없이 전부 신이라 부르는 분들도 있고) 누군가가 실제로 나의 기도/기원에 응답하여 나를 돕는다 하더라도 그게 결국 채무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스스로 농사 지어 얻은 열매가 아니라면 그걸 대신 경작해 준 혹은 도와 준 존재에게 갚아야 하는 것은 신/귀신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무속 포함 여러 종교들에서도 아예 공공연하게 하는 얘기. (생각과 말 포함 모든 행위에 결과가 따른다는 게 업 이론. 종교적 행위/믿음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며 공짜는 없다.)
.
그런데 글자 그대로 완전한 신이라면 인간의 공양, 제사, 숭배, 사랑이 필요할 리가 없을 듯. 그러니 기복신앙도 하나의 선택일 뿐 무슨 비난까지 받아야 하는 일은 물론 아니지만, 무속이든 4대 종교에 꼽히는 종교든 욕망/필요/질투 등에서 해방되지도 못 한 그런 존재에게 복을 빌고서 채무자로 사는 타력구제 신앙보다는, 정신적 유아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복을 짓는 자력구제 수행이 훨씬 떳떳하고 성숙하며 의연한 태도인 것 같다. (초기불교에선 神도 아직 해탈 못 해 윤회계를 떠도는 존재들일 뿐이므로 부처님보다 열등하건만, 그 어떤 神다도 우월한 부처님조차 업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누구의 업도 대신 해결해 주시지 못 한다. 자비로운 보살이 중생을 지옥에서 구해 내고 극락으로 데려가고 등의 얘기들은 후대에 창작된 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상반됨.)
"I am the owner of my actions, heir to my actions, born of my actions, related through my actions, and have my actions as my arbitrator. Whatever I do, for good or for evil, to that will I fall heir." -- AN 5:57
"If one holds oneself dear, one should diligently watch oneself." -- Dhp 157
“One truly is the protector of oneself; who else could the protector be? With oneself fully controlled, one gains a mastery that is hard to gain.” -- Dhp 160
"By oneself is evil done; by oneself is one defiled. By oneself is evil left undone; by oneself is one made pure. Purity and impurity depend on oneself; no one can purify another." -- Dhp 165
"You yourselves must strive; the Buddhas only point the way." -- Dhp 276
.
그러니 어쩌면, 기도/기원에 ‘응답’ 받았다고 해서 “우주와 통했다”며 좋아만 할 일은 아닌지도. 그게 누군가로부터의 ‘응답’이 아니라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영혼을 판 댓가'일 수도 있고 단순히 자기 자신의 정신력일 수도 있으니. (법구경이 말하듯 “Phenomena are preceded by the mind, ruled by the mind, made of the mind.”인지라, 인간의 의식의 힘이 물리적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자체는 새삼스럽게 놀라워 할 일이 아니다.)
.
그런데 타력구제 신앙이 채무가 된다는 얘기가 만약 사실이라면, 정한수 떠놓고 빌던 옛 어머니/할머니들의 자손사랑은 자손을 오히려 공동채무자로 만드는 결과가 된다 ㅠㅠ. “한국인만큼 영성/신끼가 강한 민족도 없다”고들 하는데 (태몽은 한국인만 꾼다는 얘기가 있다. 빙의나 접신 같은 현상도 한국엔 왜 이리 흔한가 싶고), 이것도 다 옛날엔 어느 집이든 조상에도 빌고 하늘에도 빌고 삼신할머니에게도 빌고 산신령에게도 빌고 마을에 큰 나무만 있어도 거기다 빌고 이사 가면 그 땅 신에게 또 빌고 그런 식으로 살아서, 그렇게 자꾸 불러들이니 온갖 신/귀신들이 다 몰려들어 (정치에서도 맨날 망자 못 놓아보내고 오히려 계속 불러들임) 인간과 신/귀신들 간의 상호 공생/기생 관계가 너무 끈끈해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 하라는 공자님 말씀이 옳았던 것 같고, 그런데도 제사를 지내 온 건 과연 좋은 일이었나 하는 의문도. 뭐 기복이나 제사 관습이 없는 문화권은 없지만, 조상들 제사를 이 수준으로까지 챙겨 온 사회도 흔치는 않을 듯.

.
'제사 음식은 귀신들을 위한 보시'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pfbid0rxyWyz4YVFof5sL8sjy8m6KHCBSW3gg5dT8XBrvsJnai8ii5DHPhy7jQYP39EtfHl
.

ACCESSTOINSIGHT.ORG

Velāma Sutta: About Velāma


17You, 崔明淑, Sungsoo Hong and 14 others


너른

세상에 정말 공짜는 없더군요. 얻었으면 내줘야 하는 게 무언가는 있는 것 같아요.
개로 태어나기도 쉽지는 않지만, 그게 성공한다 해도 댓가가 따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너른

希修 그 생에 업을 받지 않으면 그 다음 생에 받을 것이겠죠. 그게 길인지 흉인지는 모르겠지만요.^^;;

希修

이명훈 그쵸. 행동-결과인 업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듯 합니다.

Young Wook Aiden Kim

새길만한 말씀이에요.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는 깊이있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希修

Aiden Kim 감사합니다. 무슨 우주와 소통하여 빨리 부자되는 비법이라든가 무당들이 유툽에 넘치는데 그런 현상이 좀 우려스러워서요. 그렇다고 무속인들을 사기꾼 취급하는 건 또 옳지 않은 듯 하고, 사실 따지고 보면 무속이든 4대 종교로 꼽히는 종교든 인간을 정신적 유아기에 묶어둔다는 점에서 타력구제 신앙은 본질적으로 다 마찬가지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Kraus Kraus

예전에 신학을 전공하신 분이 신에 대해서 하셨던 말씀이 '신이 먹는 양식은 신도들의 믿음'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신을 믿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그 신의 힘도 강해진다는 종교학적인 그런 이론인지 믿음인지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고 그런다고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채무관계가 없는 가장 깔끔한 관계가 바로 조상신이죠. 그래서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풍습이었습니다. 유럽의 경우 기독교 전파로 인해서 우상숭배라면서 많이들 사라졌지만, 로마시대까지만해도 가정마다 사당 같은 것을 만들고 떄마다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죠. 그 풍습이 동유럽쪽에는 남아있어서 그쪽은 제사를 지낸다고 하더군요.
아프리카도 제사 풍습이 있고, 동남아쪽도 조상이나 죽은 가족에 대한 제사 풍습이 있고요.
이런 것들도 모두 초월해서 홀로 서는 것이 소위 말하는 부처의 길, 수도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그런 것들을 문화적 관습으로 간주한다면 그런 것들도 다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希修

Kraus Kraus 예, 그런데 조상-후손 관계가 '깔끔'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조상 묘를 안 돌봐서, 제사를 안 지내서, 혹은 젊어 죽은 조상의 한이 달라붙어서 후손들에게 우환이 생긴다는 얘기들을 무속인들이 흔히 하는데, 겁줘서 몇천만원짜리 굿을 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보다 그 분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는 것 같고 그 이유는 그런 귀신들'도' 있기 때문일 것 같거든요. 후손에게 섭섭하다고 그런 심술을 부리는 조상이 있을까 싶습니다만, 인간들 중에도 평생 자기 자식 학대/착취하고 심지어는 성폭력에 살해까지 하는 부모들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
사실 초기경전에도 그런 비유가 있죠. 음식도 그늘 한 점도 없는 불타는 사막을 끝없이 계속 걸어야 하는 것이 지옥의 삶이고, 중간 중간 잠시 쉴 수는 있으나 음식과 그늘은 찾을 수 없는 것이 아귀의 세계이고, 그늘과 음식을 종종 만나기도 하는 것이 인간계의 삶이라구요. 그래서 귀신들은 배가 고파서 또는 인간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인간계를 떠나지 못 하고 인간들을 조종 혹은 인간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것이구요. '수호신'이라는 단어도 있듯이, 인간을 협박하거나 괴롭혀 뭔가를 얻어내려는 신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도와 주고 싶어 하는 천상계의 신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봐야 윤회계에서 해방되지 못 한, 즉 탐진치가 아직 남아 있는 존재들이기에, 거기에 의지하는 것은 도박과도 같다고 생각됩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도와 주겠다는 '좋은' 의도에서 하는 행위가 오히려 그 상대에게 스트레스나 민폐만 끼치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간섭 심한 시어머니의 '사랑'이나 의욕/'진정성'만 넘치고 능력은 없는 정치지도자들을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
그러니 조상신을 섬기든 다른 신을 섬기든 각각 나름의 위험부담이나 비용은 따르는 것 같고, 문제는 나의 조상신이 특정 종교들에서 말하는 신들보다 수준이 높은가 낮은가?인데.. 뭐 정확한 판단은 어려우니 결국은 각자의 선택이고, 사실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선하기만 한 조상신이라 해도 이승에 미련 갖고 머물면 그 집착이 당신 본인에게 좋을 리 없을 것이니, 조상신에 매달리지 않고 보내 드리는 것이 오히려 후손의 도리라 여겨지구요. 아무리 '도움'을 주고 받은들 진짜 중요한 업 자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다른 존재를 도와 줄 수 없는 것이니까요.
.
신도들의 믿음을 먹고 사는 신들이 전도도 시키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살육하게 하고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얘기라 생각됩니다. (부처님도 '존재'를 'feeding'이라 정의하셨죠. 음식/먹이에 여러 종류가 있을 뿐. 그래서 다른 존재들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 즉 다른 존재들을 '먹이'나 '먹이 제공자'로 삼지 않는 것이 불교에선 윤리라 여겨지구요.) 요즘 정치계에 '아수라'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는데, 실제로 초기경전에서 '아수라'는 탐욕과 성냄이 많은 신이잖아요. 탐진치가 인간보다 적어서 신으로 윤회하긴 했지만, 신으로 태어난 후에는 오히려 인간보다도 더 탐진치를 부리며 사는 것이죠. (그래서 아비담마 같은 논장에선 후에 아수라계를 인간계 바로 아래에 위치시키기 시작했지만, 초기경전에 보면 아수라는 분명 인간보다 높은 신입니다.) 그러다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하구요. 그래서 팔정도의 첫째 요소가 Right View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선행이나 명상 (어떤 종교의 어떤 명상이든 기도든)만 해도 천상계로 윤회할 수는 물론 있는데, 문제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Right View가 없다면 신이 되어서도 탐진치를 부리다가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그런 반복을 무수하게 한다구요. 그러나 일단 Right View가 생기고 나면, 그 때부터는 점점 더 상위차원으로만 윤회하지 내려가는 일은 안 생기다네요, ㅎㅎ.



希修

문화뿐 아니라 자연환경의 영향도 크기는 하겠지만, 티벳은 천장(天葬)이라고, 시신을 잘게 토막내고 뼈와 살도 아예 분리해 줘서 독수리 떼가 척추만 남기고 완전히 먹어치우게끔 하는 장례방식을 취하는데, 수백명이 모여 밤까지 새워 가며 성대하게 장례 치르고 예전엔 3년동안 자식이 정상적인 생활도 못 하고 그 후에도 평생 제사를 지내 줘야지 그러지 않으면 산소만 건드려도 조상이 후손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한국의 문화는.. 생각할수록 참 씁쓸합니다. 귀신들 스포일시키면서 그 귀신들에 휘둘리며 사는 모습. 집착과 한을 놓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고 미화하는..


Kraus Kraus

希修 문화라는 것이 다양하죠. 도가 삼서 중 하나인 열자라는 책에 보면 각 나라의 풍습에 대해서 나오는데 말씀하신 티벳의 장례 풍습에 대해서도 나오고, 또 다른 나라의 경우 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나머지 한 분을 귀신의 아내 또는 남편이라고 하며 내쫓는다고도 하더군요.


으로써 구원받는 게 아니라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고통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어떤 분들은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초기불교는 철학보다도 심리학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심리조작의 비밀” 저자는 자립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이드 심리치료에 초기불교 수행을 견준다. (초기불교를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을 대승불교가 폄하 조롱하며 만든 용어가 바로 ‘소승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