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0

알라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알라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은이)창비2004-10-01초판출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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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424쪽
152*223mm (A5신)
594g
ISBN : 9788936470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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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랍계 필리핀인 무함마드 깐수로 위장한 북한공작원으로 구속되었던 정수일의 옥중편지 모음집. 1996년 체포된 후 2000년 8월 석방될 때까지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다. 편지의 내용 대부분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지나온 삶에 대한 회고로 이루어져 있다.

무함마드 깐수가 아닌 남한 사회에서 정수일로 살기 위한 포부와 지나온 학문 인생, 감옥 생활 등과 여러 일화들을 엿볼 수 있으며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실었다. 책에는 일제의 압박을 피해 이주한 유민의 후손으로 태어나 연변에서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광복 후 중국의 외교관으로 일하다 북녘으로 환국, 남녘으로 환향한 지은이의 생애가 담겨 있다.

일상생활에 대한 가벼운 감회보다는 진지한 통찰과 사색의 결과를 담은, 학자로서의 풍모가 잘 드러나는 서간집이다.


목차


편지글을 엮어내며

제1부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올라라
40년 학문인생
학문의 초야를 일구어
무위의 낙과가 될 수 없다
겨레의 품으로
민족사의 복원을 위해
이방어의 여신에 사로잡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
너그럽고 검소하게
사형을 구형받고서
마의 2주
연마끝에 이룬 복이 오래 간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학문에서의 허와 실
스승과 제자가 한 포승에 묶여
눈밭에 그려본 인생의 파노라마
46년 만에 올린 감방의 설날차례
판결받은 ‘학문적 열정’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올라라
바른 길을 가르치는 글
인생은 갈아엎기
참된 나
민들레 송
두견주로 생일축배를
나를 뛰어넘을 후학이 되라
옥중 좌우명-수류화개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
바다 같은 너그러움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애정
배고프면 밥먹고, 곤하면 잠잔다
달에 관한 단상
우리만의 단풍
자유에의 사랑은 감옥의 꽃
유종의 미
지성인의 인생패턴
호랑이의 꾸짖음
인고 속의 '씰크로드학' 구상
중국의 국비유학생 1호
위공
주어진 길을 걸어가리

제2부 새끼줄로 나무를 베다
새끼줄을 톱 삼아 나무를 베다
'가죽코 짚신'에 깃든 자애
'생의 시계'는 멈춰세울 수 없다
겨레의 꽃, 해당화
새하얀 눈밭에 찍는 발자국
뭇별 속의 보름달
피로 쓴 책만을 좋아한다
삶의 화두
시대의 소명
지성의 양식
겨레의 소중함
겨레에 대한 앎(1)
겨레에 대한 앎(2)
겨레에 헌신
'글자전쟁'에 부쳐
언 붓을 입김으로 녹인 보람
겨울밤 무쇠같이 찬 이불 속에서
귀곡천계
늙지 않는 비결
외삼촌이 들려준 천금 같은 이야기
3.1독립가를 되뇌며

제3부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네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다
사제의 영원한 인연
법고창신
분발, 분발, 또 분발
'학식있는 바보'
선과 악은 모두 나의 스승
서늘맞이
'제2의 광복'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비명에 간 제자를 그리며
삼궤고를 덜다
단풍인생
참문화
서리 속의 호걸, 국화
인생에 만남은 단 한번
눈덮인 분단의 철책 걷히지 못한 채
달아나지 않고 남아 있는 과거
제구실을 못한 기성세대
얼과 넋이 살아숨쉬는 우리의 민속놀이
할 일에 날짜가 모자라는구나
겨레붙이를 중심에 놓고
나무의 참 테마
얼마간 부족한 것이 행복의 필수조건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네
수의환향
겨레의 다시 하나됨을 위해
내 고향 칠보산
양심을 가진 학문
죽부인
40년 만에 만난 동생
잉크 값어치나 했으면
접기


책속에서


지난주(11월 28일)에 나는 법정에서 사형이란 극형을 구형받았소. 물론 생에 대한 인간본연의 애착으로 보면, 불운이라고나 할까 비명이라고나 할까 하는 이런 식의 운명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인과율(因果律)로 따지면 항변의 여지가 없는 귀결일 수도 있는 것이오. 물론 나도 보통인간으로서, 더욱이 이 싯점에 이르러서까지도 못한 일을 너무나 많이 남겨두어 아쉬워하는 미련의 인간으로서, 또 이 시대, 이 겨레를 위해 무언가 더 남기고 싶은 의욕이 간절한 대망(待望)의 인간으로서, 생을 더 연장하고 싶은 마음, 아니 그 이상의 절규마저 어찌 없겠소. 그러나 인생의 도리 앞에서는 스스로가 수긍하고 대범해져야 하는 법이오.

인생이란 유한한 것이오. 어차피 누구나 다 맨손으로 이승에 왔다가 빈손으로 저승에 가게 마련이오. 그런데 그 유한에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자연순응적인 유한과 인위적으로 조작된 인위조작적인 유한의 두 가지가 있소. 대체로 인간은 자연순응적인 유한에서 그 생을 마감하는 것이오. 이것을 보통 운명이라고 하오. 그러나 드물게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유한에 생을 맡기는 경우도 있소. 이를 카리켜 비명(非命)이라고 하오. 인간에게는 운명이니 비명이니 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오. 인간의 삶에서 진짜 중요하고 유의미(有意味)한 것은 어떻게 유한, 그것도 극히 짧은 유한 속에서 무한을 살고, 또 그것에 대비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오.

- 본문 57~58쪽에서 접기
2차대전 때 유명한 에스빠냐의 반파시즘 투사이자 작곡가이며 지휘자였던 '첼로의 성자" 빠블로 까잘스는 고령에도 강인한 투지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오다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을 남겨놓았소. "지난번 생일로 나는 93세가 되었다. 물론 젊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나이는 상대적인 문제다. 일을 계속하면서 주위세계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면 사람들은 나이라는 것이 반드시 늙어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나에게 있어서 인생은 더 매혹적이다."-282~283쪽 접기 - sujae25



저자 및 역자소개
정수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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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옌볜에서 태어나 옌볜고급중학교와 베이징대학 동방학부를 졸업했다. 카이로대학 인문학부를 중국의 국비유학생으로 수학했고 중국 외교부 및 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평양국제관계대학 및 평양외국어대학 동방학부 교수를 지내고, 튀니지대학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및 말레이대학 이슬람아카데미 교수로 있었다.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동 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간 복역하고 2000년 출소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으로, 문명교류학의 세계적 권위자로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신라·서역교류사』『세계 속의 동과 서』『기초 아랍어』『실크로드학』『고대문명교류사』『문명의 루트 실크로드』『문명교류사 연구』『이슬람문명』『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한국 속의 세계』(상·하)『실크로드 문명기행: 오아시스로 편』『문명담론과 문명교류』『실크로드 사전』(한글·영어)『실크로드 도록』(육로·해로·초원로편)『민족론과 통일담론』『우리 안의 실크로드』 등 이 책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정수일 회고록』을 포함해 29종 36권, 역주서는 『이븐 바투타 여행기』(전 2권)『중국으로 가는 길』『혜초의 왕오천축국전』『오도릭의 동방기행』등 4종 5권으로 총 33종 41권의 저서 및 역주서가 있다.

정수일 어록

• ‘다민족’과 ‘다문화’는 각이한 민족들의 정체성이 존중될 때만이 비로소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
• ‘세계사적 시대’ ‘민족사적 시대’는 층위적 개념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상호 보완적이며 평행적인 개념이다.
• ‘일체성’이야말로 미래의 인류를 다 같이 공생 공영할 수 있게 하는 역사의 원초적 뿌리이며 밑거름이다.
• 나는 나의 학문관을 아위중, 술이작, 천일정의 세 기둥으로 받쳐 세우고 그 실천에 일로매진했다.
— 아위중(我爲重): 우리의 것이 중요하다
— 술이작(述而作): 선인의 것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새것을 창작하다
— 천일정(穿一井): 한 우물을 깊이 파다
• 인류가 염원하는 ‘보편 문명’은 결코 어떤 특정 집단에 의해서만 성취되지 않으며, 그 누구의 전유물로 전락될 수도 없다.
• ‘보편 문명’은 오로지 서로의 부정이 아닌 긍정, 상극이 아닌 상생 속에서 문명 간의 부단한 상부상조적 교류를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
• ‘문명의 교류’는 인류가 공생 공영하는 이상사회로 가는 첩경이다. 접기

최근작 :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문명의 모자이크 유럽을 가다 1>,<우리 안의 실크로드> … 총 5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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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무함마드 깐수’ 교수가 북한 간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그는 당국에 체포돼 자신은 북한에서 온 ‘정수일’이라고 순순히 밝혔다. 한국인이었던 그의 아내조차도 신분을 몰랐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감추었다. 5년여의 감옥생활 끝에 2000년 석방됐을 ... 더보기
모든사이 2009-12-31 공감 (8) 댓글 (0)



옥중 서간집을 제법 읽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시작해서, 서준식의 <옥중 서간>,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이번엔 정수일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까지. 정수일 선생의 편지글의 특징이라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투명한 정신의 소유자임이 명징하게 드러나 보인다는 점이다. 보통 감옥 생활이라면 감옥의 고... 더보기
글샘 2005-09-25 공감 (42) 댓글 (0)



한걸음씩 읽으려던 독서 계획을 어느 순간 무너뜨리고 몰아쳐서 읽어버리게 만든 책. 옥중서간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깊은 성찰과 높은 집중력으로 쓰인 글일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나의 상상을 넘어서는 글이 담겨 있는 책. 어렸을 때 지구를 집어 삼키려는 빨갱이 문어를 포스터로 그렸는데, 공산당의 침략을 잘 표현했다며 게시판에 내 그림이 붙었을때도, 간간이... 더보기
chika 2005-07-15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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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에 실패...양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워
청보리 2012-07-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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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네요.
중3인 아들의 요청으로 구입을 했는데 같ㅇ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pek-john 2014-06-0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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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옥중 서간집을 제법 읽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시작해서, 서준식의 <옥중 서간>,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이번엔 정수일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까지.

정수일 선생의 편지글의 특징이라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투명한 정신의 소유자임이 명징하게 드러나 보인다는 점이다. 보통 감옥 생활이라면 감옥의 고통과 과거사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하기가 쉬운데, 이 편지글들을 읽다 보면, 마치 감옥처럼 꾸며 놓은 세트장에서 한 편의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글임에도, 그의 글에서는 설명하는 투가 역력하다. 천상 선생 스타일의 문장이다.

분단이란 상황의 희생양이 되어 이유도 없이 감옥에 갇혀버린 국가보안법의 희생자, 무함마드 깐수.

그만의 아랍권 경험들을 총정리하여 우리 나라의 진부한 학술 풍토에 일거 새 바람을 몰아올 수 있었던 <실크로드학>의 맹아를 일거에 얼려버린 국가 보안법. <문명 교류학>에 대한 그의 애정은 새 시대에 적합한 학문적 훈풍이었음에 분명한데, 국보법의 낡은 틀은 학문에 앞서 해체돼버린 <이즘>의 비수를 들이대어 버린 것이다.

은둔국으로 취급된 우리 역사의 오명을 벗길 수 있는 역사적 고증을 <실크로드학>의 적임자로 자처하는 필자는 출감 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펴고 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급격히 관심이 쏠린 아랍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 대하여 <이슬람 문명>등 다양한 접근으로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다.

그의 독특한 이력은 십여 개 국의 언어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그의 투철한 민족적 지성관은 분단 시대의 학술적 바탕을 세우기에 탄탄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감옥살이의 팍팍함을 단풍, 서설등을 통해 낭만적으로 극복하고, 현실에 대한 비관보다는 학문에 대한 열정의 표출을 통한 생산적 옥살이를 소의 해에는 <소처럼> 우직하게, 호랑이 해에는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토끼 해에는 <토끼처럼> 지혜롭게 넘기려고 하는 것이다.

'군자는 만년에 다시 정신을 백배 가다듬어여 한다' ( 晩年君子 更宜 精神百倍)는 자세는 진정한 학자의 자세를 일깨우기에 적당한 말이다. 이처럼 그분의 글 속에는 나를 일깨우는 말들이 셀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각고 면려하는 자세라 하겠다.

바람이 비껴 불고 빗발이 급한 곳에서는 다리를 꿋꿋이 세워야 하고, 꽃이 만발하고 버들이 흐늘 거리는 곳에서는 눈을 높은 곳에 두라(風斜雨急處 要立得脚定 花濃柳艶處 要著得眼高)라는 글은 역경에 처했을 때는 의지를 굳게 가다듬고, 순경에 처하여 영화를 누릴 때는 그 한 때의 영화에 현혹되거나 만족하는 속물이 되지 말고 도덕의 높은 경지를 지향하여 숭고하게 살라는 뜻을 가르친다.

선인 혜초에 대해 부끄럼을 느끼면서는 '수치임을 알면 분발할 용기가 생기는 법(知恥近乎勇)'이라 하였고,

몸은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 게을러져서 허물어지기 쉽다( 形不勞則怠惰易弊)라 하여 게으름을 경계하였고, 게으름이란 의지가 나약한데서 나오는 것이라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우리의 육체가 정원이라면 우리의 의지는 그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라고 하였다. 에디슨의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inspiration)과 99퍼센트의 땀(perspiration)으로 이루어진다’는 말과 함께. 역시 대단한 노력가이다. 그 의지는 새끼줄을 톱 삼아 나무를 베는(繩鋸斷木) 자세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磨斧爲針) 정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이의 국어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탐독하는 자세와 천고마비처럼 잘못 쓰이는 말들에 대한 고구는 그의 한국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느끼게 한다.(천고마비란 원래 초원에 사는 흉노족이 가을철이면 말을 살찌워 겨울 준비를 위해 노략질을 하던 것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천고마비는 시련의 상징이지 우리처럼 아름다운 가을 하늘로 써서는 안 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평범한 곳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로 ‘참맛은 다만 담백할 뿐이고, 덕 높은 사람은 다만 평범할 뿐이다.(眞味只是淡 至人只是常)는 말도 음미할 만한 말이다.



최북의 초옥산수에 쓰인 화제 空山無人 水流花開를 걸고 두고두고 읊어볼 말들이다.


초옥산수, 최북


소를 타고 느릿느릿 걸어가신 선생의 글을 읽으며 고결한 학자의 꿋꿋함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던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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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9-25 공감(4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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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없어도



이슬람 문명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이슬람과 관련한 정수일 선생의 명성은 들었으되 역서고 저서고 간에 그분의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았다.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감되었다는 소식도 석방되었다는 소식도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라는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이 책이 그가 그의 아내에게 보낸 옥중편지 묶음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편지글을 엮어내며'라는 제목의 맨 앞글에서 편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상례인데 이를 어기고 책을 내는 것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밝혀놓았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 '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한 지성인이 남긴 글로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써놓아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자신을 지성인이라고 이렇게 당당하게 칭하는 분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졸고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상투적인 겸손도 지겨웠지만 자신을 지성인이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표현하는 부분이 멋져보이면서도 조금 생경스러웠다고 할까.

그가 옥중에서 아내에게 써서 보낸 이 편지들은 나중에 책으로 묶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쓰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엄숙하고 정갈하고 한결같을 수가 없다.

13, 4년 전 나도 광주교도소에 몇십 년째 복역중인 한 장기수 어른과 몇 년 동안 꽤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환갑을 조금 지난 분이었는데 얼마나 다정하고 재기가 넘치는 편지를 쓰시는지 그의 편지를 읽으면 옥중에 있는 사람과 바깥에 있는 사람과, 또 우리들의 연령이 바뀐 것 같다고 느꼈다. 내가 편지 속에서 느꼈던 넘치는 그 에너지대로 그분은 출소하자마자 옥중에서 혼자 책으로 공부한 한의학 지식을 살려 민중탕제원에서 일을 하시고, 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식까지 올리셨다. 나는 신문을 통해 그분의 출옥 소식을 듣고 결혼 소식을 들었다. 아이를 업고 남편과 신림동인지 봉천동인지 무슨 성당에서 열린 그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인파를 뚫지 못하고 먼빛으로 뵙고만 왔다. 영화 <송환>을 보러가서 극장 화면을 통해 본 내 옛 펜팔 남자친구(?)는 여전히 젊고 패기가 넘치는 모습이어서 기분이 좋았다.(언젠가 페이퍼로 쓴 적이 있다.)

1980년대 말, 몇 년째 줄기차게 백수였던 나는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한 구절 한 구절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엎어지고 자빠졌다. 신영복 선생은 나에게 그 책을 통해 용기를 줌으로써 인생에 어떤 모션(!)을 취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나는 취직이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이렇듯 책은 어떤 사람의 인생 행로를 구체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 정도면 내가 사람들의 옥중서신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가 이해 될 것이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담담하고 정갈하되 어쩌면 조금은 심심한 옥중서신이다. 어느 날 불쑥 엄습한 외로움과 괴로움을 아내에게 에둘러 호소할 법도 한데 눈을 씻고봐도 그런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쓸데없는 양념을 치지 않은 담백하고 순수하고 평범한 삶이 진짜 삶'이라는 일절이나 , 민들레를 일러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수수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에서 그의 철학의 일단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배고프면 밥먹고 곤하면 잠잔다' '새끼줄을 톱삼아 나무를 베다' '얼마간 부족한 것이 행복의 필수조건' 이라는 소제목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이 책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서울구치소에서 대구교도소로 이감하기 전날 면회온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입산수행하는 셈치고 마음 편히 보내세요." 옥중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아내라니! 그녀의 편지까지 몇 장 실었으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화답이라도 하는 듯, '감옥은 한낱 외로움과 괴로움의 공간만은 아니고 서로의 사랑과 믿음, 연대를 확인하고 굳히는 공간이기도 하오.' 출옥 전날 그가 아내에게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얼마나 이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고결한 학자인지 실천적인 지식인인지 존경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인간의 풍모를 보았다. 읽고 있는 책 여백에 녹두장군의 시를 메모하고, 또 국어사전에서 만난 낯선 우리말을 빽빽히 독서중인 책의 여백에 적어가며 복습한 사진을 보고는 잠시 숙연한 기분에 젖기도 했다. 결혼기념일 날 아내에게 쓴 편지 '너그럽고 검소하게'는 내 수첩에 몽땅 옮겨 적고 싶었고......

어쩌면 들뜨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읽어내려간 이 책에서 나는 저자가 말한 많은 것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직접 말로 표현하진 않았어도 그가 아내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마음은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민족과 학문에 대한 한 지성인의 절절한 회고록을 두고 무슨 사랑 타령이냐고? 글쎄 말이다. 그런데 난 그런 이상한 독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수고하는 당신에게'라고 써내려간 선생의 편지. 그는 아내에게 어떤 행운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직접 만든 듯한 네잎클로버 도장으로 네 페이지의 편지 귀퉁이를 맞춘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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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3-13 공감(34) 댓글(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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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그 꿈을 이루소서



무함마드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 교수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한동안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수일 교수는 이미 알려진 대로, 만주 북간도(현재의 옌볜(延邊)) 출신으로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평양외국어대학, 말레이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다 북한 공작원 신분이면서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국내에 들어와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다 1996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5년간 옥살이를 하고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세상에 다시 나왔습니다. 복역중에 <이븐 바투타 여행기1,2>, <중국으로 가는 길> 등을 완역했고, 출옥 후에도 <고대문명교류사>, <이슬람 문명>, <문명교류사 연구> 등의 저서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의 역주서를 펴냈습니다. 비록 간첩 혐의로 복역하고 나왔지만, 그 사상의 좌우를 떠나 ‘동서문명교류사’와 ‘아랍 이슬람학’의 개척자임은 누구나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5년간의 옥살이를 하는 동안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펴낸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당국에 붙잡히는 그 순간까지도 그를 외국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5년 간의 옥중 편지 시작을 그의 소설같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엽니다. 그러나 5년 간의 지리한 옥살이임에도 그의 편지 어디에도 유약한 표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40년을 학자로서 매진해온 그의 학문적 열정과 집념이 그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저에게 채찍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문명교류학을 통해 민족사를 복원하겠다는 '순수한'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빌게 되었습니다. 제 표현의 한계로 인해 그의 열정과 바람, 학문적 깊이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입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민족에 대한 그의 애정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편지 곳곳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다듬고, 옥중에서 그의 염원인 민족사 복원을 위한 문명교류학 관련 저술에 매진합니다. 그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가고(牛步千里)',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게(牛踏不破)', '언 붓을 입김으로 녹이며', '새끼줄을 톱 삼아 나무를 베는' 과 같은 표현이 있는데, 한 번 눈으로 들어온 문장이 머릿속을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참으로 두고두고 나를 단련하기 위해 되새겨야 할 문장들입니다. 이 외에도 동서고금의 고전과 다양한 문헌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편지를 보노라면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433일 동안 국어대사전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단어 한단어 빠짐없이 보고 익혔다는 그의 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참 많이 반성했고, 더불어 많은 어휘를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1996년 9월 14일자 편지를 시작으로 출옥하기 하루 전인 2000년 8월 14일자 편지로 끝이 납니다. 400 여 페이지의 짧지 않은 글을 읽으면서 저는 시종일관 그의 학문적 열정과 지식의 깊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국어를 포함해 동양어 7종과 서양어 5종, 모두 12종의 언어를 익힌 이야기, 때마다 반복되는 한·중간의 역사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민족사를 복원하겠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학문의 총림(叢林)에서 무위(無爲)의 낙과(落果)가 되지 않으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학문과 더불어 살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어줍잖게 책 좀 읽고 어룽더룽 아는 바를 글로 쓰는 제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저의 게으름이나 느즈러짐을 새삼 경계하기 위해 천협(淺狹)하게 아는 바라도 애써 쓰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할 뿐입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5년의 옥살이를 우보천리(牛步千里)하면서 호보(虎步)로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결같이 그를 옥바라지한 그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인지, 아니 실정법상 간첩인지도 모르고 지냈던 그의 아내의 절대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던들 이 모든 것이 불가했을 것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인고의 쓰라림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나를 잊어주오'라고 단장(斷腸)의 절규를 한 바 있었지. 그러나 당신은 '기다림'으로 '잊음'을 멀리하겠다고, 정녕 기담(奇譚)같은 큰 사랑으로 화답해왔소." 가슴이 아프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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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목 2004-10-17 공감(21)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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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한국의 노신을 만나라.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재생용지일까. 종이의 느낌도 424페이지를 다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과자를 야금야금 먹으며 그 먹는 맛에 기쁨 반, 작아져가는 과자를 보는 아쉬움 반의 마음으로 이제 막 다 읽었다. 다 읽었다는 것이 이렇게 오래도록 아쉬워본 적은 참 오랫만의 일이다.

지금 당장 저자에 대한 지금의 내 마음을 적어보라면,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롤모델,

학문에 대한 열렬함에 전염되고싶다.

민족에 대한 20살 청년같은 꼴통(?) 신심을 갖춘 사람

이미륵의 감수성과 내가 알고있는 모든 해박한 사람을 다 적어보아야할 것 같은 사람.

조로하는 한국사회에서 환갑도 넘으시고, 간첩(?)이시기까지 한 분이 써놓은 피로 쓴 영혼의 편지를 읽었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겠다라고...그리고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게' 굳건히 다지겠노라고.... 선생의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부끄러움에 계속 무릎꿇는 자세로 다시 고쳐앉곤 했다.....어떤 조건 하에서도, 자신의 영혼이 훼손되지 않는 길을 찾을 줄 아시는 분.....부조리하고, 고통스럽지만 있는 그대로의 엄정한 현실을 정면승부하며 살아온 아름다운 인생.....인간의 존엄이란 어떻게 생기고, 지켜지는가를 보고싶은 사람은 꼭 이 책을 봐야한다. 더군다나 조로하는 한국 사회에서 10대도, 20대도, 30대도, 40대도 여전히 '이미 늦었다'라고 탄식하며 살아오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학문을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첫눈에 알아보았다. 학문하는 사람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무한한 긍정. 공부를 시작하려면 먼저 책상치우다 지쳐서 한숨자고 시작하려드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고, 한해의 게획은 봄에 있으며,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있다'라고 독려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뭐라도 할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아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에 대해 집요하게 반박하며 긍정하는 그 사고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민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내게 또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종교, 민족 분쟁에 대해 좀 촌스럽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저자의 주장이 합리적인 부분은 더 공부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어릴적 추억을 듣노라니, <압록강은 흐른다>가 떠올랐고, 촌각을 아껴쓰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명이 났고, '늙음이란 성숙이나 기여를 뜻하지만, 낡음이란 썩음이나 쓸모없는 대명사'이니 '늙은 젊음'으로 살아야한다고 하시는 부분에서는 나도 저렇게 늙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자연을 찬미한다. 이상기온으로 날씨탓하기 좋아하는 투덜거리는 우리네와는 달리 자연이 주는 의미를 읽어내려 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렇게 자연을 존경하듯이, 자기 아닌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탁월함을 배워, 스승의 중요성, 제자로 연결되는 환생하는 시간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그래서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한국의 노신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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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마리 2004-10-10 공감(1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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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조선지식인의 역정

1996년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무함마드 깐수’ 교수가 북한 간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그는 당국에 체포돼 자신은 북한에서 온 ‘정수일’이라고 순순히 밝혔다. 한국인이었던 그의 아내조차도 신분을 몰랐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감추었다. 5년여의 감옥생활 끝에 2000년 석방됐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석방 직후 그는 초인적인 집필력으로 ‘실크로드학’·‘고대문명교류사’ 등의 역저와 ‘이븐 바투타 여행기’·‘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 난해한 고전을 잇따라 펴냈기 때문이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정수일씨의 파란많은 인생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감옥 밖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은 이 책은 사적인 내용의 서한집이 아니다. 정씨는 분단시대의 비극이 그대로 농축돼 있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민족주의자이자 이슬람 학자로서의 공부 내력과 포부를 담담히 서술한다. 남한 사회에 그는 ‘간첩 깐수 교수’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치열한 학자로서의 면모다.



그는 한국어·일본어·중국어·아랍어·페르시아어·말레이어·타갈로그어 등 동양어 7종과 러시아어·영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12개 언어에 능통한 인물이다.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그의 학문적 궤적과 성취는 학계에서 세계 일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다른 이력만큼이나 그가 풀어놓는 에피소드들도 눈길을 끈다.



그는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해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했다. 중국 내 젊은 조선족 엘리트들이 ‘잔류파’와 ‘환국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다 자신은 조국의 건설을 위해 북한행을 택한 과정, 압수당한 ‘고대문명교류사’ 원고를 사형을 구형한 검사한테 돌려받은 일화 등 불우했던 천재학자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중국 외교부에서 일할 때 저우언라이 가문의 한 여성으로부터 구애를 받았으나 이미 북한행을 결심한 그는 구애를 거절했다. 이 ‘러브스토리’는 그의 법정 신문에서도 화제가 됐다.



중국 잔류파로 중국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낸 조남기씨와 그의 삶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같은 중국 내 조선족 엘리트였던 조남기씨가 남한 언론으로부터 ‘조선족 영웅’ 대접을 받았던 반면 ‘조국’인 북한을 택한 그는 영어의 몸이 됐던 것이다. 그는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두루 섭렵하고 ‘실크로드학’이라는 미답의 영역을 개척하는 그에게 ‘간첩’이라는 수식과 감옥생활은 삽화에 불과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정수일씨는 세계적인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강단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이만한 학자를 대접하는 데 한국 사회는 너무나 인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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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사이 2009-12-31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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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정수일 회고록

알라딘: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 정수일 회고록 
정수일 (지은이)arte(아르테)2022-12-01






604쪽

책소개
88년 일생 전반을 조국 통일의 소명을 품고 문명사 연구에 매진했던 ‘민족주의자’이자, 28년간 종횡 세계 일주를 수행한 ‘코즈모폴리턴’, 정수일의 회고록. 저자의 인생에는 이상야릇한 흥밋거리와 격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조영물이 수두룩이 널려 있어, 개인 일생의 기록을 넘어 한국사와 세계사가 조우하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펼쳐진다.

세간의 풍문을 포함해 저자의 인생 처세에 관한 언설은 다채롭다. 중국의 첫 국비유학생(카이로대학), 유망한 외교관,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으나 후회 없이 단념한 사람, 가족을 뒤로하고 민족 통일의 광야에 나선 통일 역군, 당당한 민족주의자, 상반된 두 사회제도하에서 살아본 ‘이색인(異色人)’, 6개국 국적으로 세계를 누빈 다국적자, 음지와 양지를 넘나든 ‘이중인(二重人)’, 남북한에서 대학교수를 지낸 사람, 박사학위와 교수직 피탈자, 이산의 한 맺힌 실향민, 분단 시대의 ‘불우한 천재 학자’, 극형의 사지에서 구출된 행운아, 세계의 변혁을 꿈꿔온 변혁가, 가족 열두 명의 경조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불초불성자, 종횡 세계 일주를 수행한 세계주의자, 제3대 세계실크로드학회 회장을 지낸 실크로드학의 학문적 정립자, 다중어자(폴리글롯), 세계 4대 여행기 중 3대 여행기의 한글본 역주자(이븐 바투타, 혜초, 오도릭), 심지어 베이징대학 팀 축구선수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


목차


시작하며 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아온 한 시대인이 오롯이 남기는 글 4

서장 시대적 소명과 시대인 15
청년기, 민족 통일의 꿈을 품다 17
장・노년기, 겨레 헌신을 위해 학문의 뜻을 펼치다 28

1장 유랑 화전민의 아들로 나고 자라다 35
알아낸 뿌리, ‘본’ 37 | 천년 고토를 떠난 유민 44
우리 집 ‘가족사 사전’에 없는 표제어들 56 | 3업을 겸직했던 조강지처를 기리며 75
더부살이 티 없는 완벽한 조선인 유민 사회 82 | 모래판에서 ‘천자문’을 익히다 87
일제의 식민지 동화교육에 시달리다 94 | 동트기 전의 칠칠암야 107
천지개벽의 광복을 맞다 113 | 지능에서 일어난 ‘돌연변이’ 122

2장 개천에서 만리장천 비상하다 133
새벽길 열어준 정든 요람, 옌볜고급중학교 135
개화의 싹을 틔운 요람의 터전, 룽징 142 | ‘선구자’적 기상으로 영혼을 일깨우다 149
나를 돌아보게 한 빛바랜 학적부 160 | 분에 넘치는 시골내기의 베이징행 170
인생 도약의 뜀틀이 되어준 모교, 베이징대학 182
시대의 학문적 소명에 부응하다 191
지덕체를 겸비한 인간형 ‘삼호’ 200 | 스승 지셴린 선생을 기리며 211
조국 헌신은 지고의 위업 216

3장 문명의 요람에서 세태에 눈뜨다 225
유학, 두 수반이 공들인 합작품 227 | 나일강 문명에서 잉태된 모교, 카이로대학 237
나세르가 새롭게 모색한 ‘혁명철학’ 243 | 반가운 겨레붙이와의 뜻깊은 만남 246
아랍의 세계적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 250 | 모로코, 내 인생의 변곡점 264
개가 짖어대도 대상은 전진한다 267

4장 통일 성업의 광야에 서다 279
‘잔류’와 ‘환국’의 곡직 평가는 역사의 몫 281 | 교육 일선에서 청춘을 불태우다 286
통일 성업으로의 마음을 더욱 가다듬다 293
구절양장 10년을 에돌아 통일 광야에 서다 300
민족사의 복원, 충사민족 이휘기사 306 | 고전은 ‘앎의 샘’이고 ‘삶의 거울’ 320
맥 빠진 민족론의 재생적 담론 327 | 민족주의 역기능론과 폐기론 333
민족주의 정립 불가론의 허구성 342 | 민족주의는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 349
반통일적 ‘분족론’의 부당성 363 | 통일의 편익과 ‘진화통일론’ 372

5장 후반생을 설계한 영어의 5년 381
옥중 좌우명, 수류화개 383 | 감옥은 인성 도야의 도량 389
옥사는 격폐된 ‘학문의 산실’ 392 | 한고와 삼궤고 398

6장 옥중에서 구사한 학문 연구 총람 405
나의 학문관 409 | 문명교류의 통로, 실크로드 414
『실크로드 사전』, 미증유의 문명교류 사전 425
실크로드 현장을 사진으로 집대성한 3대 도록 433
문명의 교류, 이상사회로 가는 첩경 438 | 불화만을 부채질하는 ‘문명충돌론’ 448
이슬람의 바른 이해 457

7장 후반생의 문턱을 넘다 473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랴 475 | 지인들의 후의로 후반생의 문턱을 넘다 479
앎의 목마름을 풀어준 ‘거시기산악회’ 486 | 아내의 지성 어린 묵묵헌신 495

8장 종횡 세계 일주의 꿈을 이루다 501
종횡 세계 일주와 ‘세계일화’ 503 |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 510
문명의 보고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과 그 문명 513
모자이크식 유럽 문명 519 | 아시아 문명의 관용적 공존 524

마치며 여명을 잉태한 낙조에 한생을 고이 묻고 훨훨 떠나련다 530
고마웠던 세월에 남긴 몇 가지 족적 531
고마움을 채 갚지 못한 아쉬움 549

색인 560
정수일 약력 569
정수일 저서 및 역주서 목록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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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8 나는 일찍이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良識)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를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천혜의 행운 속에 나름대로 떳떳한 시대인으로서 삶의 궤적을 개척하느라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와서 이러한 궤적과 행운으로 내 삶의 좌표를 두루 자리매김해 봤을 때, 과연 이 시대가 요청하는 시대인의 반열에 낄 수 있을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에 대한 답안은 바로 이 회고록의 전편을 갈무리하고 있는 화제의 총결산에서 얻을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약 100년의 세월(1934~)은 수천 년 인류 문명사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하지만, 세계사나 민족사를 통틀어 보기 드문 난세와 격동으로 점철된 시대다. 이러한 시대적 특징은 나를 포함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그만큼의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소명을 부과하고, 그 수행을 사명으로 기제하고 있다. 그러나 개개인이 처한 구체적 환경과 인성(人性)이 천차만별이라 부과된 시대적 소명을 받아들이는 입장과 태도, 실천하는 의지와 결과는 각인각색일 수밖에 없다. 접기
P. 32 일체성이 확보된 인류의 미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해답을 내놓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과된 막중한 시대적 소명이다. 나는 작금 새롭게 열린 문명담론의 장에서 그리고 그 담론의 당위성을 현장에서 검증하는 종횡 세계 일주의 과정을 통해 종래의 진부한 정치적·경제적 내지는 군사적 패러다임이나 방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이른바 ‘문명대안론(文明代案論)’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각각 상이한 문명권 사이에 활발한 문명교류를 통해 인류 모두에게 유용하고 수용되는 ‘보편 문명’을 창출함으로써 공생 공영의 미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비전과 실현 방도도 밝혔다. 접기
P. 33 돌이켜 보면, 나는 세계사와 민족사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격랑을 헤가르며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는 한 시대인으로서 미미한 족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나름 미력하나마 기를 쓰며 살아왔다. 이제 내일의 여명을 점지(點指)하면서 저물어 가는 저 노을에 한생을 묻고 떠나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어언간 황혼기에 접어든 지도 한참이 되었으니. 못다 한 일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도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없다. 절명을 각오하면서까지 이루려 했던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그 짐을 후세에게 넘겨주는 것이 가장 아쉽고 통탄스럽다. 못다 한 일, 바라던 일은 쇠잔하는 인생과 더불어 지는 노을이 잉태하고 있는 여명이 트면 누군가에 의해 이어지고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접기
P. 87~88 이렇게 나는 비록 낯선 이역이지만 전통적 민족 정서와 분위기가 그대로 짙고 훈훈하게 깔린 유민 사회 특유의 배경 속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소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서당을 다닌 일은 지금껏 유년 시절을 기릴 만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부모님에게는 비록 무학이지만 자식들만은 꼭 공부시키고 출세하게 만들겠다는 남다른 소망과 교육열이 있었다. 더불어 사회봉사 정신으로 우리 집 윗방에 서당을 차려놓고 훈장님을 모셔다가 숙식을 함께하면서 동네 또래 아이 10여 명의 부모님들과 힘을 합쳐 서당을 꾸려나가기도 했다. 여러 사람의 열렬한 호응과 열성적인 참여 속에 서당은 2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훈장님은 유가(儒家)에 일가견이 있는 노선비로서 현거(懸車, 나이 칠십)를 넘겼지만, 매사에 엄격한 분이셨다. 두메산골 후진 농촌의 자그마한 사설 서당이지만, 훈장님의 가르침에는 한 치의 느슨함도 없었다. 도식대로 회초리를 옆에 두긴 했지만 한 번도 휘두르신 적은 없었다. 접기
P. 166 사실 나의 고급중학교 시절의 대부분은 두만강 너머 지척에서 일어난 민족상잔의 전쟁과 병행했다. 전쟁이 발발한 첫날부터 시종여일 내 머리를 휘감고 있던 것은 전쟁의 종언과 더불어 오게 될 통일의 그날, 어떻게 ‘겨레 헌신’이라는 초지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걱정이었다. 나는 민족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 이 전쟁이 불원간 민족의 재통일로 결말이 날 것이라는 예단(豫斷)을 내렸다. 뒷일이 보여주다시피 이 예단은 성급하고 미숙한 오판이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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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정수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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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옌볜에서 태어나 옌볜고급중학교와 베이징대학 동방학부를 졸업했다. 카이로대학 인문학부를 중국의 국비유학생으로 수학했고 중국 외교부 및 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평양국제관계대학 및 평양외국어대학 동방학부 교수를 지내고, 튀니지대학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및 말레이대학 이슬람아카데미 교수로 있었다.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동 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간 복역하고 2000년 출소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으로, 문명교류학의 세계적 권위자로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신라·서역교류사』『세계 속의 동과 서』『기초 아랍어』『실크로드학』『고대문명교류사』『문명의 루트 실크로드』『문명교류사 연구』『이슬람문명』『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한국 속의 세계』(상·하)『실크로드 문명기행: 오아시스로 편』『문명담론과 문명교류』『실크로드 사전』(한글·영어)『실크로드 도록』(육로·해로·초원로편)『민족론과 통일담론』『우리 안의 실크로드』 등 이 책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 정수일 회고록』을 포함해 29종 36권, 역주서는 『이븐 바투타 여행기』(전 2권)『중국으로 가는 길』『혜초의 왕오천축국전』『오도릭의 동방기행』등 4종 5권으로 총 33종 41권의 저서 및 역주서가 있다.

정수일 어록

• ‘다민족’과 ‘다문화’는 각이한 민족들의 정체성이 존중될 때만이 비로소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
• ‘세계사적 시대’ ‘민족사적 시대’는 층위적 개념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상호 보완적이며 평행적인 개념이다.
• ‘일체성’이야말로 미래의 인류를 다 같이 공생 공영할 수 있게 하는 역사의 원초적 뿌리이며 밑거름이다.
• 나는 나의 학문관을 아위중, 술이작, 천일정의 세 기둥으로 받쳐 세우고 그 실천에 일로매진했다.
— 아위중(我爲重): 우리의 것이 중요하다
— 술이작(述而作): 선인의 것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새것을 창작하다
— 천일정(穿一井): 한 우물을 깊이 파다
• 인류가 염원하는 ‘보편 문명’은 결코 어떤 특정 집단에 의해서만 성취되지 않으며, 그 누구의 전유물로 전락될 수도 없다.
• ‘보편 문명’은 오로지 서로의 부정이 아닌 긍정, 상극이 아닌 상생 속에서 문명 간의 부단한 상부상조적 교류를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
• ‘문명의 교류’는 인류가 공생 공영하는 이상사회로 가는 첩경이다. 접기

최근작 :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문명의 모자이크 유럽을 가다 1>,<우리 안의 실크로드> … 총 5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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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태양의 그늘 3>,<태양의 그늘 2>,<태양의 그늘 1>등 총 408종
대표분야 : 추리/미스터리소설 18위 (브랜드 지수 106,067점), 에세이 26위 (브랜드 지수 262,13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세계사와 민족사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격랑을 헤가르며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며 살아온 시대인,
소설 같은 삶을 이어온 전설적 인물, 정수일의 회고록

“나는 오로지 시대의 소명만을 따라 살아온 한 시대인일 뿐이다.”

88년 일생 전반을 조국 통일의 소명을 품고 문명사 연구에 매진했던 ‘민족주의자’이자, 28년간 종횡 세계 일주를 수행한 ‘코즈모폴리턴’, 정수일의 회고록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가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저자의 인생에는 이상야릇한 흥밋거리와 격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조영물이 수두룩이 널려 있어, 개인 일생의 기록을 넘어 한국사와 세계사가 조우하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펼쳐진다.
세간의 풍문을 포함해 저자의 인생 처세에 관한 언설은 다채롭다. 중국의 첫 국비유학생(카이로대학), 유망한 외교관,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으나 후회 없이 단념한 사람, 가족을 뒤로하고 민족 통일의 광야에 나선 통일 역군, 당당한 민족주의자, 상반된 두 사회제도하에서 살아본 ‘이색인(異色人)’, 6개국 국적으로 세계를 누빈 다국적자, 음지와 양지를 넘나든 ‘이중인(二重人)’, 남북한에서 대학교수를 지낸 사람, 박사학위와 교수직 피탈자, 이산의 한 맺힌 실향민, 분단 시대의 ‘불우한 천재 학자’, 극형의 사지에서 구출된 행운아, 세계의 변혁을 꿈꿔온 변혁가, 가족 열두 명의 경조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불초불성자, 종횡 세계 일주를 수행한 세계주의자, 제3대 세계실크로드학회 회장을 지낸 실크로드학의 학문적 정립자, 다중어자(폴리글롯), 세계 4대 여행기 중 3대 여행기의 한글본 역주자(이븐 바투타, 혜초, 오도릭), 심지어 베이징대학 팀 축구선수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
저자는 미수를 맞은 이 시점에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실타래를 한 오리로 엮어내는 ‘주제어’를 떠올렸다. 그 주제어는 바로 ‘시대의 소명에 따름’이라는 화두다. 저자는 20~21세기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 ‘시대인’으로, 그저 소정된 시대의 피조물로 소명에 따라 뚜벅뚜벅 할 일을 좇아 걸어왔을 뿐이라고 회고한다.
“어떤 이는 나더러 ‘경계인’이니 ‘통일인’이라고 하는데, 두루뭉술한 ‘경계인’도 아니고 통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통일인’이라 불리는 것은 가당치 않다”라고 역설하며, 일찍이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를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세계사와 민족사를 통틀어 보기 드문 난세와 격동으로 점철된 시대를 살아온 ‘시대인’임을 고백한다.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에는 무수한 시대의 질곡 속에서 각인각설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인생 역정이 담겨 있고, 그의 인생관, 세계관, 자연관, 학문관, 도덕관이 허심한 어조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통일관’과 ‘민족관’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역작으로서, 한국 근현대사의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 정수일의 학문적 업적에 대한 찬사
“분단 시대 비운의 천재 학자” ―《뉴욕타임스》
“소설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살아온 전설적 인물” ―《바이두》
“세계의 석학! 문명교류학의 길을 연 위대한 사상가” ―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계간《창작과비평》편집인)
“그는 자유인, 세계인이다. 국경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다” ― 김훈(소설가)
“그의 학문적 재능을 이데올로기의 희생물로 사장시켰다면, 이 같은 성과는 없었을 것”
― 이희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
“명철한 민족론, 가뭄 끝에 내린 단비” ― 김진환(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난 실사구시에 기초한 통일담론의 정초자” ― 정창현(평화경제연구소 소장)

민족 통일의 광야에 선 문명교류학의 세계적 권위자,
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아온 한 시대인이 오롯이 남기는 글

“나는 내 운명을 ‘비운’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분단 시대의 소명에 부응하는 사명인(使命人)으로만 살고 싶었다.”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는 저자가 구십 평생 겪은 복잡다기한 인생의 여정과 시대적 배경, 인생관의 총체가 9장 61절로 엮여 있다. 저자의 전반부 인생 60년(1934~1995)은 족보로부터 가족사, 식민 사회 망국의 화전민으로서 보낸 유년기의 삶, 괄목할 만한 청소년기의 학업성취, 외교 일선에서의 활동, 남북한 대학교수 생활 등이 포함돼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고, 옥살이의 과도생(1996~2000)을 거쳐 후반생(2001~현재)에 이르는 30여 년은 여러 가지 제약 속에 오로지 학문 연구에 삶의 초점을 맞추어, 평생을 천착한 ‘민족론’의 당위성과 인류의 숙명적 생존 전략인 ‘문명교류학’을 확신하게 된 학자로서의 삶이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은 또한 저자의 ‘세계일체(世界一體)’ ‘사해일가(四海一家)’ 철학관을 실재로서 증명하는 탐험사를 처처에 담았다. 동서남북을 가로세로로 누빈 28년간의 종횡 세계 일주의 일화를 포함해, 앞표지를 넘겨 면지를 펼치면 저자가 지나온 실로 방대한 〈세계 일주 노정도〉가 그려져 있다. 제1기-이집트 유학 생활 3년(1955.12.~1958.8.), 제2기-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 근무 및 알제리전쟁 간여 4년(1959.1.~1963.3.), 제3기-북한에서의 통일 광야로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남한 진출 준비 9년(1974.3.~1983.3.), 제4기-남한에서의 실크로드 집중 탐사 12년(2006.7.~2018.7.), 이렇게 총 28년이 소요된 노정은 저자의 시야의 지평을 무한대로 넓힌 기제인 한편, 저자의 확고해진 세계관을 증명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여정을 ‘문명교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는 방향타로 삼고, ‘시대의 학문적 소명’에 따른 목마름을 해소했다.
저자의 인생에서는 두 번의 결정적 변곡점이 있었다. 그 동인은 모두 ‘통일 역군’을 자처하며 한생을 불사르려는 신념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첫 번째 변곡점은 중국 외교관으로 있다가 양양한 전도를 뒤로하고 민족 통일 성업에 헌신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워 정정당당하게 ‘북한으로 환국’한 것이며, 두 번째 변곡점도 역시 통일 성업의 광야에 솔선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북한에서 남한으로 진출’한 것이다.
이렇듯 저자의 전반생은 민족 통일을 위해 헌신할 구상을 무르익히고 두 번의 변곡점이 증명하는 ‘실천의 삶’이었고, 후반생은 겨레 헌신을 위해 학문의 뜻을 펼치며 민족 공동체, 통일 문제에 관한 집요하고도 엄밀한 분석과 동시에 문명교류사 연구를 필생의 과녁으로 삼으며, ‘학문적 천착’에 잠심몰두한 삶이었음을 회고한다.

망국의 유랑민 후예, 카이로대학 유학, 중국 외교부 활동, 알제리 해방전쟁의 체험…
압제당하는 민족들의 비운을 함께한 ‘시대인’의 길

정수일은 1934년 옌볜의 명천촌에서 출생해, 망국의 유랑민 후예로 이역인 중국에서 일제가 강요한 식민지 노예교육을 받던 유년기를 지냈다(1934~1944). 낯설기만 한 일본어로 마지못해 공부를 하다 보니 성적은 내내 중위권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맞은 광복이라는 엄청난 시대적 변혁은 저자에게도 터닝포인트가 된다. 저자는 광복 후 2년간의 공부는 광복 전 5년간의 공부를 상쇄할 만큼, 그 자신도 의아할 정도로 학업성취가 판이해졌다고 기록한다.

“광복이란 실로 엄청난 시대적 변혁으로서 부지불식간에 일상을 360도로 바꿔놓았다. 일제강점기에 작고 허름한 소학교밖에 없던 백두산 자락의 심산유곡에도 학교가 생겼다. 지역 유지들이 중의를 모아 조선족 자치 초급중학교인 광동중학교(光東中學校)를 세워 고작 소학교밖에 못 나왔던 시골내기들에게 중등 공부를 이어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광복과 더불어 어디서 퍼올린 열정인지는 딱히 알 수 없으나 공부가 마냥 즐겁고 흥겨웠다.”

1947년 수석으로 광동중학교에 입학해 3년간 선두 자리를 늘 지켰으며, 옌볜의 유일한 고등중학교인 옌볜고급중학교에 입학했다. ‘시대상’과 더불어 ‘세계상’에 관해서도 눈뜨기 시작했다. 세계는 서로 어울리고 소통하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세계일체’라는 대동의식이 광복을 분수령으로 해서 소년기, 12세부터 싹텄다(1945~1949). 이는 대학 시절 문명교류, 역사, 민족이라는 인문학 탐구에 경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비록 이역 옌볜이 유랑하다 정착한 고향이지만 조선족으로서 저자는 한민족의 당당한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음을 술회한다.

“시대적 소명관 측면에서 보면, 이 과정에서 중국의 소수민족 일원으로서 사회주의적 중국이 내게 부과한 시대적 소명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은 훗날 외국 유학과 외교부에서의 봉직, 알제리 전장에서의 체험 그리고 사상 초유의 세계적 진영 논리의 탐구 등 다원적인 현장 활동과 실천 및 경험을 통해 20세기의 격동하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 사명인, 시대인으로서의 보다 확장된 시대적 소명관을 갖게 되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옌볜고급중학교 졸업 후(1950~1952), 신중국 건립 후 첫 국가적 통일 시험에 합격해 베이징대학 동방학부에 진학해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에 몰두하는 청년기를 보냈다. 대학 입학 때부터 미래의 외교관 양성 대상으로 지목되어 외교부에 소환될 때까지 줄곧 당국의 자질 검증을 받았고(1953~1955), 대학 4년째 중국 국비유학생 제1호로 선발되어 카이로대학 인문학부에 3년간 유학했으며(1956~1958), 이어 외교부 서아시아-아프리카사 연구관으로의 업무 수행 및 알제리전쟁터에 파견되어 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독립투쟁 나라들과 연대했다(1959~1963).

“(외교부 연구관으로 임명되어) 유익한 시간을 보낸 지 1년 반이 되던 어느 날, 예단했던 대로 외교 일선에 소환되었다. ‘예단했던 대로’라기보다 ‘소원했던 대로’가 더 적절한 표현 같다. 왜냐하면, 병역 경력이 전무한 서생으로서 나는 언젠가는 포화 속을 누비면서 자신을 전사의 기질로 담금질하고 싶었으며, 또한 그러한 현장에서 압제당하는 민족들의 비운을 함께 체험하면서,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참된 세계인이라는 신념을 세워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수일은 알제리 전선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대사관을 거점으로 아프리카 나라들, 특히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나라들과의 광범위한 연대 활동을 통해 20세기를 살아가는 한 시대인으로서 갖춰야 할 국제주의적 면모를 체질화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회고한다.

북한으로의 환국, 남한으로의 진출, 정치범으로의 낙인…
시대의 비장한 격동 속 파란의 삶
한국 근현대사, 북간도 유민사, 중국사, 이슬람사, 실크로드사, 문명교류사에 길이 남을 인물

알제리 해방전쟁의 정화는 저자의 시대적 소명 의식에 전환을 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민족사적 소명’의 절박성에 대한 확신으로, 저자가 삶에서 ‘담대한 변곡점’이라 일컫는 환국에 영향을 미친다. 총리 저우언라이, 외교부장 천이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의 환국 문제는 설전과 논쟁으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저자의 집요한 설득 끝에 최후 결재를 얻어 혈혈단신 북한으로 귀환하게 된다(1963). 그때 그의 나이 29세였다.

“오로지 민족적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성업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것이 변곡점의 확고한 변이었다. 그렇지만 나와 중국 측은 이 변의 이념적 바탕에 관해 진정한 민족주의인가 아니면 협애한 민족주의인가를 놓고 맞장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 승산 없는 짓을 아예 그만두라고 선의의 권유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일찍부터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고 동서고금의 방대한 민족문제 관련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섭렵한 데다가, 외교 일선에서 진정한 민족주의의 정체를 터득했기 때문에 당당히 맞장을 떴으며, ‘계란’이 아니라 굳을 대로 굳은 돌덩이로 ‘바위’와 부딪혔다.”

오매불망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겼지만 그 조국은 반으로 갈라져 등지고 살아가는 치욕의 분단국이었다. 많은 할 일 가운데 주저 없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일 성업에 헌신하는 것’을 천명으로 택하고, 통일이야말로 온 겨레의 가장 긴박한 시대적 소명임을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했다.
북한에서는 평양국제관계대학 및 평양외국어대학 동방학부의 교수로 대학의 교육 전선에서 대외 인재 양성 사업의 사명을 띠고 12년을 보냈으며(1963~1974), 요동치는 남북 정세에 따라 숙원이던 통일 성업에 뛰어들 호기를 잡고 준비를 하며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까지 아우르는 민족 공동체에 관한 지식을 온 힘으로 쌓아나갔다(1975~1979). 튀니지대학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1980~1981), 말레이대학 이슬람아카데미 교수(1982~1983)를 지내고, 1984년 남한 땅을 밟게 되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헤어진 할머니와 부모님, 형제들, 조강지처, 세 딸들을 그리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평양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이 불효자에 의해 허공으로 증발하고야 말았다. 그때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몇 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아버지(63세)와 어머니(76세)는 세상을 떠나셨다. 이러한 비보는 두 분이 고인이 되신 지 30~40년 후인 2011년 옌볜의 옛집을 찾아갔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장남으로 임종조차 지켜드리지 못한 불초, 늦어도 너무나 늦게 두 분이 고이 잠드신 묘단에 참회의 짙은 피눈물이 섞인 술잔을 올리며 용서를 빌었다. 생전에 어머니를 모셨던 형제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만년에 무슨 환각에서인지 늘 사진틀에서 내 사진만을 골라서 몸에 간직하고서는 앞이 탁 트인 뒷더거지(뒷동산)에 올라 내가 금방 올 것이라고 길만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셨다고 한다.
(……) 처의 사망 비보에 관해서는 내가 2016년 옌볜에 사는 큰누이를 찾아뵈었을 때 누이에게서 듣게 되었는데, 기일을 비롯해 확실한 사망 경위에 관해서는 더 이상 들은 바가 없다. 한평생 고생만 한 조강지처, 현모양처인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다니……. 일편단심 통일의 광장에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기다리겠다던 당신,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기일이 언제인지도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모르는 이 부족하고 매정한 남편을 저 황천에서라도 한번 맘 놓고 크게 질타해 주오!
(……) 나는 지난해(2021) 대한적십자사가 주관하는 이산가족 상봉 준비 조처의 일환으로, 세 딸의 상봉에, 애타는 염원을 담아 혈액 채취와 ‘영상 편지 보내기’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회고록을 쓰고 있는 이 시각까지도 그 결과가 오리무중이지만, 그 어느 때인가 상봉의 순간이 오고야 말리라는 간절한 기대만은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민족 분단의 비운을 하루속히 가셔야 한다는 절박한 소명에 따라 가족을 뒤로하고 민족 통일의 광야에 나섰으나, 한 인간으로서는 이산의 한 맺힌 실향민이 되어야 했다. 남한으로의 진출을 위해 부득이 위장 신분인 무함마드 깐수(아랍인)로 활동하던 저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다(1996). 정수일은 6개국 국적자, 12개국어 능통자라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음지와 양지를 넘나드는 이중인으로 살아왔다. 그의 역사는 단지 개인의 회고록이 아닌, 대한민국의 민족사, 북간도 유민사, 중국사, 이슬람사, 실크로드사, 문명교류사, 세계사의 한 증거로 길이 남을 것이다.

옥중 학문의 실천일로, 아위중·술이작·천일정
“비바람에 세상이 난세가 되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예순이 넘어 ‘시대적 소명에 따르는 사명’의 소행이 일순 범행으로 단죄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수인 생활을 시작했을 때, ‘민족에 대한 학문적 천착’에 전력투구하여 결실을 이뤄냈다. ‘민족론’과 ‘통일 담론’의 상보적 개념인 ‘문명교류학’의 기초학문인 실크로드의 학문적 정립을 굳건히 세운 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후반생을 설계한 영어의 5년”이었다고 회고하며, 〈옥중에서 구사한 학문 연구 총람도〉를 표로 붙여 술회한다.(406-407쪽)
최종 목표는 ‘문명교류학의 학문적 정립’으로 옥중에서 그 얼개를 구사하고, 출옥 후 보완한 표로서 2020년까지의 수행 상황을 회고록에 담았다. 기수 23건(‘문명담론과 문명교류’ 포함), 수행 중 1건(‘중세문명교류사’), 미수 5건(‘근·현대문명교류사’ 포함) 등 총 연구 29건을 망라했다.
저자의 학문관은 아위중(我爲重, 우리의 것이 중요하다), 술이작(述而作, 선인의 것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새것을 창작하다), 천일정(穿一井, 한 우물을 깊이 파다)의 세 기둥이었다. 이는 일찍이 대학 시절부터 싹을 틔워온 것으로 이순을 넘겨 세상과 격폐되는 수인의 신세가 되면서, “해볼 만한 일은 오직 ‘학문으로의 귀환’ 하나뿐”이었음을 고백하며, 그 실천에 매진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감옥이라는 낯설고 탐탁잖은 환경을 타개할 정신적 지주와 행동의 나침반을 궁리한 끝에 ‘수류화개(水流花開)’를 옥중 좌우명으로 삼았다. 세상이 비바람으로 인해 난세가 되더라도,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에 격폐되어도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맑고 깨끗하며, 피는 꽃처럼 낙천적이고 종당에는 결실한다는 철학이 담긴 언구다. 저자는 앎의 심조를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던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회고한다.

“이제 학문으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사명감, 비록 영어의 몸이 되었지만 학문의 총림에서 결코 무위의 낙과(落果)가 될 수 없다는 분발심, 뒤처진 우리의 학문을 추켜세워야 한다는 사명감과 오기에서 감옥이라는 처절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문 연구에 문자 그대로 잠심몰두했다. 정말 나에게는 ‘할 일에 날짜가 부족(惟日不足也)’했다.”

옥살이라는 극한의 인고 속에서 옥사는 격폐된 ‘학문의 산실’, ‘인성 도야의 도량’이라는 신념으로, 문명교류학의 이론적 토대인 실크로드학의 정립을 위해 『실크로드학』『실크로드 사전』『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비롯해 약 2만 5000매에 달하는 관련 서적을 저술함으로써 실크로드학의 토대를 구축했다.
출옥 후 『실크로드 사전』과 『해상 실크로드 사전』, 『실크로드 도록』(3대 간선, 한·영 총 6권), ‘4대륙 여행기’ 저술 7권을 거쳐 2020년 『우리 안의 실크로드』를 펴내는 등 ‘실크로드학’의 체계적인 학문적 정립에 매진했다.

세계 평화를 꿈꾼, 민족주의자로서 세계주의자
사진 67장에 담은 인생 역정과 화두, 온 세상이 한 송이 꽃
“내일의 여명을 잉태한 낙조에 고이 묻고 미련 없이 훨훨 떠나련다”

저자는 실크로드학이란 새로운 인문학의 개척을 위해 ‘천일정’의 자세로 20여 년간 한 우물을 깊이 팠더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문명교류학’으로의 진화를 설계하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출옥 후 학문 연구를 위해 국적 취득 신청서를 법무부에 제출했고, 3년이 지나 2003년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문명교류학’의 물적 토대 구축을 위한 저술 및 역주 활동을 병행했다. 세계 4대 여행기 중 3대 여행기인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 이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오도릭의 동방기행』을 차례로 역주했으며, 『고대문명교류사』 『문명교류사 연구』 『이슬람문명』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한국 속의 세계』(상·하) 『문명담론과 문명교류』 『민족론과 통일담론』 등 이 책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를 포함해 29종 36권, 역주서 4종 5권을 포함하면 총 33종 41권을 집필하며, 문명교류학 연구에 전념했다.
수상 이력 또한 독보적이다. 제42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출판상 번역 부문(『이븐 바투타 여행기』),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부문(『실크로드 사전』), 제1회 문무대왕 해양대상 해양문화 부문 대상, 제5회 국제실크로드 학술대회 최우수논문상(「실크로드와 경주」)을 수상했다.
이렇듯 방대한 분량의 학문적 결실을 맺었지만, 저자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한 토막의 문자화도 하지 못한 ‘북간도 유민사’를 제대로 엮어보자던 욕망은 영영 꿈으로 남을 아쉬움이라 평한다. 그에게 옌볜 명천촌은 “새벽길을 열어둔 정든 요람”인 제2의 고향이자 “더부살이 티 없는 완벽한 조선인 유민 사회”로, 민족의식의 싹을 틔운 잊지 못할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가 지나온 인생 여정을 엿볼 수 있는 사진 67장을 실었다. 옌볜 명천촌 생가, 할머니와 함께한 가족사진, 북에서 이별한 조강지처와 세 딸, 저자의 소년기, 카이로대학 유학 시절, 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 근무 시절, 종횡 세계 일주의 기록 등이 컬러로 현장의 생동감을 살려 담겨 있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한 주제는 ‘세계일화(世界一花)’다. 저자가 각지를 다니며 촬영한 세계 9개 지역의 야생화가 한국 백두산의 고상한 흰 꽃을 필두로 시계 방향의 원을 그리며 장식되어 있다(동아시아-북유럽-남아메리카-동아프리카-남아시아-중앙아메리카-동유럽-남아메리카-동아프리카 순). 문명교류학의 학문적 천착에 일로매진한 저자가 “인류가 공생 공영하는 이상사회로 가는 첩경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세계의 일체성)’이라는 화두에 담겨 있다”라는 철학을 역설하는 장이다. 저자가 28년간 세계를 종횡무진 이동하면서 개척한 길의 최종적 깨달음이자, 세계의 변혁을 꿈꿔온 변혁가로의 낭만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이기도 하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정수일이라는 뛰어난 사상가, 전무후무한 전설적 인물의 한생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기쁨과 동시에, 소수민족 유민으로서 겪은 고초와 이산의 한의 정서, 수인의 신세로 세상과 격폐되나 고집스럽게 희망을 찾아내는 낙관을 절절히 간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새 나라 건설 초기의 중국의 시대상, 아랍-이슬람 세계의 문화, 실크로드의 새로운 개념(구대륙 밖의 문명교류), 문명교류학, 창의적인 민족론과 통일담론(진화통일론) 등 다종다양한 역사적, 문명사적 지식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한 지성으로 기복무상한 여정을 이 회고록을 통해 결산하고, 절명을 각오하면서까지 이루려 했던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후세에 짐을 넘기는 것을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늘 ‘불급함’ 속에서 초조히 살아왔다. 불급함은 내 인생의 연속이었다. 오, 불급함이여, 더는 나를 괴롭히지 마소서! 이제 나는 그 불급함을 내일의 여명을 잉태한 낙조에 고이 묻고 미련 없이 훨훨 떠나련다”. 접기


Namgok Lee 원불교는 인류적 보편성을 가진 위대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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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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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아무래도 나라가 망할 것 같다’라는 글을 올린 후, 한 원불교 교무님으로부터 따뜻한 댓글을 선물 받고 댓글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은 아마 미국에서 활동 중이신 것 같다.
내가 원불교를 만난 것은 70년대 말의 자신의 사상적 전환기와 스스로 관계를 끊은 단체와의 인연으로 4년간의 징역을 살고 나서, 우연히 어떤 지인(知人)으로부터 원불교 교전을 선물 받아서 그 첫 장을 열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구호를 보면서였다.
이 짧은 문장 속에 내가 그 동안 고민해 온 내용이 함축되어 있엇다.
내가 지금까지 전류가 흐르는 듯한 만남 가운데 하나였다.

대학시절부터의 벗인 고(故) 휴암스님이 계시던 은혜사 기기암에 보름 정도 머물면서, 그 동안의 생각을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징역 살고 얼마 안되었을 때이니까,  3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그 때 썼던 글은 어디로 갔는지 잃어버렸는데, 그 제목이 ‘혁명(革命)에서 개벽(開闢)으로’ 였던 것은 기억한다.
물질 개벽은 과학기술에 의한 생산력 발달과 넓게는 사회제도까지를 포함하고, 이것은 인간이 외부를 변화시키는 행위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정신 개벽은 인간 자신의 가치이념체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즉 아집(我執)과 소유(所有)라고 하는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정신 혁명이다.

이 행위능력과 자기중심적 가치체계의 필연적인 모순을 물질이 개벽되기도 전에 예견한 소태산 선생의 예지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원불교는 이 땅에서 출현했던 종교 가운데서도 인류적 보편성을 가진 위대한 종교라고 생각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지금 이 구호는 더욱 실감 있게 다가온다.

특정한 종교를 떠나 정신이 개벽된 즉 아집과 소유를 넘어선 사람들 1%면 세상을 바꿀 수 잇다. 이 사람들이 주축이 돼서 시민 르네상스도, 새로운 정치운동도, 새로운 경제 시스템도 만들어간다면, 아마 세계 역사에 가장 선구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의 절망을 저녁의 원대한 꿈으로 바꿔본다.
‘나’를 넘어선 동지들이여, 단결하자! 그리고 새 세상을 건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