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9

간척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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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

최근 수정 시각: 2018-10-10 15:37:28


분류
자연지리



자연지리 관련 정보


1. 개요2. 방법3. 비판4. 역간척5. 한국의 간척
5.1. 주요 간척지5.2. 북한의 간척6. 세계의 간척
6.1. 네덜란드6.2. 일본6.3. 홍콩6.4. 싱가포르6.5. 마카오6.6. 아랍에미리트
干拓 / reclamation


1. 개요[편집]


호수나 바닷가에 제방을 만들어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거나 매립하여 육지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보통 바다를 매립하는 경우를 가리키지만 호수를 간척하는 것도 포괄한다. 간척을 할 때 방조제를 쌓고 그 안쪽을 분할하여 담수호로 만드는 경우도 있기에 땅을 메워 올리는 매립은 간척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2. 방법[편집]


간척지를 만들기에 유리한 곳은 넓은 갯벌이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선의 굴곡이 많고, 방조제 앞쪽에 사주나 섬이 많은 곳이 좋다. 필요에 따라 간사이 국제공항처럼 바다를 간척 할 수도 있으나 수심이 깊을 수록 공사 비용이 증가하고 부등침하 같은 문제의 발생이 증가한다. 현대적인 항만시설은 대부분 소규모라도 간척 및 매립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과거 농지를 얻기 위해 간척을 했으나 현대는 공업부지나 주택, 공항시설등을 목적으로도 건설한다.

간척지에 제방을 만들어 바닷물을 막고, 담수호를 만들고 물을 빼면서 토지를 만들어 나간다. 배수 시설을 통해 드러난 저지대를 염류 농도를 낮추고 침수 피해 방지등을 위해 매립과 복토를 통해 터돋움을 한다. 한국의 경우 주변 산을 토취장으로 만들어 거기서 나온 흙들을 매립토로 활용하기도 한다. 환경파괴를 미뤄 놓고 보면 산지를 깎아 평지로 활용 할 수 있어 얻을 수 있는 부지가 늘어 난다. 경우에 따라 항로나 항만을 준설한 준설토를 이용하여 간척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국토 전체가 저지대로 매립토가 부족하기 때문에 배수 시설을 갖추어 해수면 이하의 간척지로 활용한다. 때문에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배수시설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 간다.

바다의 간척지는 토양에 소금기를 포함하고 있어 농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씻어내야 한다. 간척지는 저지대이기 때문에 소금기가 비를 통해 자연적으로 씻겨 내려가기 위해서는 수십년이상 걸린다. 배수시설을 통해 물빠짐을 좋게 만들고 육지의 흙을 복토, 매립해서 농경지로 사용가능한 시기를 앞당긴다.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면 '간척촌'이 나타나게 된다. 간척촌은 농업, 염전, 양식, 양어장 등의 사업을 하게 되는데, 전형적인 형태는 간척지를 농경지로 활용하는 농촌이다. 간척촌은 대개 계획적으로 조성되기 때문에 가옥의 배열이 규칙적이고 바둑판 모양이다.
3. 비판[편집]


갯벌을 잠식하여 환경 파괴를 일으킨다고 비난받는다. 과거 갯벌을 쓸모없는 땅이나 유휴지로 생각했으나 생태학적으로 높은 생물다양성을 가지며 생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생태계 중의 하나이다. 또한 자정능력도 뛰어나서 바다의 콩팥으로 불리기도한다.

농경지의 중요성이 감소한 현대에는 경제적으로도 따져도 간척 후 농업 수익보다 갯벌에서의 지역 어민 소득이 더 낫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새만금 간척사업 비용은 1998년 당시 2조 500억원 규모로 추산했지만, 이미 이 때부터 농경지 개발로는 투자이익을 환수하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산업단지 개발로 선회해야 했다.

환경 파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점은 조수 흐름의 방해다. 현재도 목포, 군산과 같이 간척으로 이루어진 도시들은 상습적인 홍수피해에 시달리고 있는데, 조류가 흘러나가야 할 길목을 간척으로 틀어막고 있으니 물이 넘칠수밖에 없는 것이다.[1] 때문에 새만금 신항만은 조수흐름을 고려해 인공섬 형태로 건설한다고는 하지만 워낙 넓은 면적을 방조제로 막아버렸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안그래도 세계적으로 조수간만차가 크기로 유명한 서해에서 이러한 점은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4. 역간척[편집]


간척의 반대로, 기존의 육지를 갯벌과 같은 해안 습지로 되돌리는거나 원래 육지였던 지역을 물로 만드는일을 말한다. 위의 비판에서 나오는 것처럼 환경 파괴와 경제성의 변화로 인해 오히려 갯벌의 가치가 더 커져서 이를 위해 갯벌로 복원하는 것. 충청남도에선 금강 하구 지역의 역간척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도 순천만 지역의 간척지를 역간척하여 습지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5. 한국의 간척[편집]



붉은 부분이 구 간척지, 파란 줄무늬가 당시 공사 중이던 간척지. 단, 붉은 부분은 자연적인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곳도 포함한다.



삼국시대 서기 300년경 전북 지역 해안선[2]과 현재 2015년의 해안선. 자연적인 퇴적 작용과 간척사업을 통해 호남평야가 만들어 졌다.


간척에 따른 강화도 해안선의 변화

한국은 서남해안이 리아스식 해안으로 갯벌이 넓게 발달하고 수심이 얕아 간척에 좋은 입지를 가졌다. 소규모 간척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행했는지 불분명하나 고려 시대부터 간척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1235년 강화 영안제 축조를 시작으로 1246년 고려 서북면 병마절도사 김방경이 평안북도 정주군(현 정주시) 위도(葦島)에서 바닷가에 둑을 쌓고 개간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256년 몽골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제방을 쌓아 둔전을 만든 고려사 권79의 기록이 보인다. 1356년 전라도 임피 연해지역에 제방을 쌓고 개간한 기록도 있다.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서 1414년에는 경기도의 통진(通津)과 고양포(高陽浦)[3]에 방조제를 축조하였고, 세종 때에도 해안에 둑을 쌓아 농지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16~17세기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한 인구압과 수리시설 및 축조 기술의 발달로 민간에 의한 간척 사업이 활발했고 치부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해남, 진도 굴포, 노화도, 고금도등을 간척해서 치부한 해남 윤씨가문이 그 예이다. 이러한 간척지는 언답(堰畓), 언전(堰田)이란 명사로 언급되며 기록에서도 ~포(浦)로 불리던 곳이 ~평(坪)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도 산미증식계획 등을 목적으로한 서남해안의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현대의 토목 기술을 사용한 대규모 간척 사업은 광복 이후 이루어졌으며 농지 확보를 위한 간척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가 이후 산업단지나 항만 건설을 위한 목적으로도 간척사업이 시행되었다. 2008년 기준 간척지 총 면적이 1,100 ㎢ 정도로 달하며 새만금송도국제도시 등 공사 중인 면적도 440㎢에 달한다. 2016년 기준으로는 1864㎢ 가 해방 이후 간척사업으로 새로 생긴 국토이다.[4] 80년대 어린이 학습만화에서는 미래 한반도 지도를 아예 직선 네 개로 된 사다리꼴(...)로 그려넣는 패기를 보이기도 했다. 통일 이후 기존 22만km2 에서 2배 확대한 44만km2. 이러면 되나?? [사진]

2000년대 들어 환경파괴와 경제성 문제로 많은 반대에 부딪혔으며 최대 간척 사업인 새만금 간척 사업이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90년대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수립 당시에는 서해안과 남해안의 갯벌을 대부분 매립하는 계획이 있었다. 새만금의 몇 배에 달하는 규모로 서해안 지방의 섬을 대부분 육지로 만들어버리는 무지막지한 계획이다. (그 돈 통일하는데 쓰면 생기는 우리땅이 얼마.) 그러나 이 계획은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논쟁을 겪은 뒤 환경파괴 문제와 비용 대비 경제 효과 문제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5.1. 주요 간척지[편집]



경기도


화성호 - 원래 화성시 우정읍서신면 제부도 ~ 안산시 대부도를 연결해서, 화성의 화 옹진군[6]의 옹자를 붙여 화옹호를 만들계획이었으나, 화성시 우정읍에서 시작하여 화성시 궁평리까지만 간척하기로 하여, 이름도 화성호로 바뀌었다.


현대자동차남양연구소 - 현대차그룹이 구 화성군 남양면 장덕리(현 화성시 남양읍 장덕리)에 있는 공유수면을 사서, 바다를 메꾸고, 현대자동차 주행시험장을 지었다.


시화호[7] : 이후 담수호를 포기하고 해수 순환을 하는 조력발전소가 위치한다.


송산그린시티


시화멀티테크노밸리


배곧신도시


인천광역시


강화도: 군량미를 얻기 위하여 강화도 주변에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간척 사업 결과 강화도의 면적은 몇배로 불어났고 인근의 다른 섬들과 통합되었다.


인천 도심 상당수 : 본래 19세기 말엽까지 바다와 갯벌인 곳이 많았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도 :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위해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갯벌을 매립했다.


송도국제도시 : 1990년대 최기선 前 인천시장이 송도 해상신도시를 만들기위해 매립 시작.


청라국제도시 : 1980년대 동아건설이 산업단지와 농지를 만들기 위해 매립하였다가 LH공사에 매각하여 개발함


충청남도


서산 간척지


전라북도


계화 간척지: 부안군에 위치.


새만금 간척사업 : 전라북도 군산시, 부안군 일대의 서해안을 간척하는 사업이다.


전라남도


광양제철


광양항


여수국가산업단지


보성군 득량만 간척지: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방조제가 완공되었다.


고흥군 간척지: 21세기 들어와 농업 용지 쓰임새로는 가장 넓다


부산광역시


남포동-이 때문에 1호선 남포역 공사 당시 바닷물이 들어오는 등 난공사를 펼쳤다고.


마린시티


용호만매립지


남천 삼익비치


명지오션시티


부산신항


부산항 북항 및 원도심 : 19세기 말엽에서 일제강점기에 간척.
5.2. 북한의 간척[편집]


북한 역시 해안선이 복잡한 서해를 중심으로 간척사업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1백리 제방을 둘러 만든 신도군이 있으며, 염주 다사도-철산 사이 대계도간척지에는 새만금방조제의 절반이 넘는 약 18km의 제방이 건설되어 있다. 평북 대계도간척지와 황남 룡매도간척지는 최근 김정은 정권에서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규모 간척사업이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경제 침체와 식량수급의 불안정이 심화되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에 매진했다. 1980년대 북한이 계획한 방조제의 길이는 1,072km, 간척지 면적은 30만 정보에 달한다고 한다.관련글 문제는 이렇게 엄청난 돈을 퍼부어 간척지를 건설하느니, 그 돈으로 비료를 사오고 협동농장을 개혁하는 쪽이 몇배는 낫다는 것이다(...)

간척지 염분 0.3% 이상이면 밭농사 실패해 - 한국농정신문



간척지 염분 0.3% 이상이면 밭농사 실패해 - 한국농정신문



간척지 염분 0.3% 이상이면 밭농사 실패해

김황수진 기자
승인 2011.07.0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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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 둘러싼 각계각층의 목소리 (2)

간척지 염분 0.3% 이상이면 밭농사 실패해
제염, 배수시설 갖춘 뒤 해야

-이경보 과장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벼맥류부 간척지농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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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농지의 특징은?
첫째 염이 높다. 바다, 갯벌을 막아 농지화한 거라서. 바닷물의 염분농도가 3%이다. 이게 간척농지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염분이 높게는 3%까지 나온다. 대부분 3% 이하지만. 간척농지 염분은 대체로 0.1~3%로 분포되는데 염이 높으면 작물재배가 불가능하다. 염을 제거해야 농사가 가능하다. 벼가 자랄 수 있는 염분 한계는 0.3%다.
둘째, 염분이 많으면 그 안에 모래, 점토, 비사가 분산되기 때문에 물이 잘 안빠져 배수가 불량해진다.
셋째, 간척지는 농업환경 조성이 안되있어서, 비옥도가 낮다. 비옥도가 낮으면 농사가 잘 안된다.

-간척농지에서 재배 가능한 작물은?
제염이 되면 밭작물도 농사가 다 가능한데, 내염성이 어느정도 있어도 재배가 가능하다.
연구결과 맥류-청보리, 밀, 호밀, 트리필케일, 귀리 등의 경우 염분 0.2%에서 70%의 수량성(수확량)을 보였다. 염분 0.3%에서는 50%의 수량성을 보였다. 율무,조,수수,땅콩,옥수수도 0.2% 농도에서 70~80% 수량성 보인다.
염분이 0.4% 이상이 돼버리면 밭작물 재배는 불가능하다. 0.4~0.5% 상태에서 계속 환수(물 공급)를 해서 염도를 낮춰줘야 한다.

-간척농지에서 사료작물 재배시 문제점은?
간척지의 특성상 비가 안오고 가뭄이 되면 염이 밑에서 계속 올라온다. 표토에서 염이 축적되면 작물 생육이 불가능하다. 물을 대줘서 제염을 시켜줘야 한다.
안정적으로 재배를 하려면 염을 차단해주기 위한 시설을 해야 한다. 지하관개나 암거(땅을 깊게 팜)를 통해 물빠짐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나무톱밥을 집어넣는다던지… 그런데 이런 시설은 비용이 많이 들어서 쉽지 않다.
간척지의 최소 95% 이상은 논농사이다. 작년까지 논농사를 짓고, 올 해 밭농사를 하려면 바로는 실패한다.

-최근 정부 장려로 간척논에서 사료작물 재배로 전환한 농가들에 어려움이 많다.
그런 농가들을 방문하고 토양특성도 보고 하는데 대부분 제염, 배수기반 조성이 안돼있다. 고랑도 깊이 파줘야 하는데... 새만금을 제외한 대부분의 간척지는 미사 함량이 모래 함량보다 많아서 물빠짐이 좋지 않다.
원래 간척지 농사는 벼 위주로 했었는데… 우리 과도 2008년 10월에 과가 생겼다. 아직 2년밖에 안됐다. 그동안 정책건의도 하고 영농활동자료도 만들어서 제공하고 있다. 농가들로부터 간척농지에서 사료작물 재배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농민현장에 나가서 문제점을 발굴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

-간척농지 전국에 얼마나 있나?
간척농지 규모는 전국 13만5천ha이다. 그 중 밭작물 규모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다. 대부분, 거의 논농사라고 보면 된다. 밭작물 재배는 근래에 새롭게 하는 것이다.

자급률 높이기 위한 무리수… ‘전시행정’

-중앙대 윤석원 교수

-간척지 논을 밭으로 전환해 농사를 짓다가 피해를 봤다는 농민들이 있다.
작황이 좋지 않은 이유를 봐야 한다. 기후가 안좋아서인지…

-염해와 습해 때문이라고 농민들은 보고 있다.
간척지는 염해와 습해를 입는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마 정부 입장에서는 옥수수나 밀 등 타작물들의 자급률이 낮으니 높여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취지는 좋았는데 농지에 적절하고 농사에 적합한 건지 정교하게 따져서 권장해야 하는데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것 같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흉작이 아니라 염분과 물 때문이라면 이것은 목표를 채우기에 급급한 전시행정이다. 너무 서둘렀다. 급하게 보여주려 한 것이다.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기 추진한 것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하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웃음)

-간척논에 사료작물을 심는 정책은 쌀에 대한 감산정책이다, 이 정책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하나.
옥수수나 대체곡물을 심어서 타작물 자급률을 높여야 하는 건 맞은데. 쌀이 많기 때문에, 쌀이 남으니까 거기다 이거(타작물) 심어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보다는 타작물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세워야 할 것.
쌀은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 남쪽과 북쪽 모두를 고려해야 하고, 식량주권과 안보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쌀이 남는다지만 그렇게 많이 남는 것은 아니다. 쌀이 남으니까 줄여야 한다는 발상은 경계해야 한다.

사업자체 반대는 일러… 부작용 검토해야

-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 양서란 보좌관

-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에 대해 들어봤나
작년에 쌀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니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고안해낸 사업이다. 지난 해 8월 쌀산업 대책의 일환으로 나왔는데, 작년에는 신청자가 별로 없어서 지원을 높이고 작물을 다양화하는 등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에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 농업계도 필요성을 인정했었다.

-간척지 논을 밭으로 전환해 농사를 짓다가 피해를 봤다는 농민들이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간척지 피해사례의 경우) 예견된 인재였는지, 예측하지 못한 불상사였는지 봐야 하나… 정부와 농민 모두가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본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논소득기반다양화사업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시행해 나가면서, 시정해야 할 부분인지 제도 자체가 문제인지 판단해야 한다. 피해사례를 더 조사해보도록 하겠다.
농민들이 사업 신청을 할 당시에, 밭농사에 적합한 땅인지 등이 점검되어야 하는데 상세한 지도 없이 이루어졌다면 이 부분은 개선되야 한다.

그러나 간척지에서 밭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간척지만 신청대상에서 제외한다면 간척지 농민들 입장에서 ‘왜 우리만 안돼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작년에는 쌀이 너무 남아돌아 문제였고, 올해 기상 악재로 쌀 생산량이 대폭 줄었다. 농민도 정부도 그 때 그 때 반응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밭작물 강요한 적 없어” 선택은 농민 몫 … 실패 정부 탓 아니다

- 농진청 식량축산과 정동완 담당자

-농진청에서 하는 대체작물 사업은 어떤 것이 있나?
금년에 논 벼 대체 팝콘옥수수 상품화 시범사업이 있다. 가급적 밭작물 사업은 논에서 하는 것으로, 논에서 밭작물 확대 재배를 유도하고 있는 추세이다. 내년에는 다양하게 논에 타작물 사업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예를들어 대규모 콩·옥수수단지 조성, 작부체계 시범사업 등이다. 예산은 단지당 2~3억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올 9~10월에 윤곽이 잡힐 것이다.

-간척지에서 사료작물을 심었다가 실패한 농가들의 사례가 보여지고 있는데?
간척지의 경우 무작정 작목을 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시범적인 도입이 필요하다. 밀의 경우 간척지에서 적응하려면 5년~10년씩 걸린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턱대고 작목 선정을 하는 것은 위험에 노출될수 있다. 시범적으로 해봐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간척지 농민들에게 정책적으로 권장한 것 아닌가?
권장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밭농사로 전환한 농가들에게 지원을 해준 것 뿐이다. 농가들이 간척지에 맞는 품목인가는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어야 했다. 실증시범포를 운영해보고 리스크를 줄여가며 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간척지에 밭작물을 심었는데 실패를 했다. 어떤 보상이나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정부가 농민에게 무한봉사를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보면 그렇겠지만 정부도 나름대로 교육을 많이 시행했다. 논에다가 타작물을 재배하는 기술 책자를 시군 농업기술센터에 보급을 했고 도·시·군 대상으로 교육도 해왔다. 그러나 모든 농가들이 교육을 받았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금년에 39회에 걸쳐 2600명에게 교육이 진행됐다.
간척지에 대해 정밀하게 지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가의 책임도 있다. 내 땅이 이 작물이 적합한지 아닌지는 해당 농가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시군 농업기술센터에 전화 한통화 하면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자본주의라지만 300평당 돈 30만원 지원받겠다고 무턱대고 자기 땅에 맞지 않는 작물을 심어서야 되겠나. 정부가 거기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간척논을 밭농사로 전환하려는 농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재배품목을 정하기에 앞서 간척지가 된지 몇년이 됐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논 토양의 성분 분석과 염분 측정을 해야 한다. 지역별로 품목별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서 해야 한다. 가장 첫째로, 적지를 선정해야 하고 두번째로 그 지역의 주산품목, 안정적인 작물을 선정해야 한다.
간척지 타작물 재배에 앞서, 할 수 있는 곳인지 기술 검증이 먼저 필요하다. 아무래도 (전환하는 것 보다는) 안정적으로 해오던 품목이 나을 듯 하다.

간척지 밭작물재배 연구 2년 채 안돼 “정책 시기상조다”

- 농진청 식량과학원 맥류사료작물과 이상복 담당자

-간척지에 사료작물을 심으면 어떤 문제가 있나?
먼제 제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염분이 0.3% 이내여야 한다. 특히 신간척지의 경우 더 그렇다. 수확량은 염농도에 따라 0.3% 이내라면 많게는 70~80%에서 적게는 40~50% 정도 나온다. 0.3% 이상이 되면 아예 수량을 얻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어떤 작물을 심으면 좋을지 농민들에게 문의가 종종 들어온다. 사료작물 중에서 청보리, 밀은 그나마 (염분을) 견딘다. 견딜 수 있는 작물을 먼저 도입하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조기에 간척지 염도를 낮추는 작업을 해줘야 한다. 물로 한 번 벼농사를 짓고 난 후에 (밭작물을) 심으면 훨씬 그런게 줄어든다.
염농도가 얼마인지 파악을 우선 하고... 한계치(0.3%)에 가까우면 어떤 작물도 못자랄 수 있다.
농가들이 정부지원금을 받을 때에는 염농도 제거를 먼저 시작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정부는 (밭작물을) 도입하는 것을 먼저 원하기 때문에…(간과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지원을 받고도 어떤 작물도 자라지 못하면 안되지 않겠나.

-간척농지에 타작물을 심는 사업이 많이 있나?
아직 많지는 않다. 최근 영산강지구에 콩을 도입시키려고 하는데, 갈대가 많이 나서 지난해에 실패를 봤다. 잡초는 한번 제거해도 다음해에 또 나기 때문에 2~3년은 제거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쌀이 남아도니 타작물 사업을 희망하는데 아직은 시기상조다. 실패사례가 많은 상황이라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전국적인 실패사례를 조사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김황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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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 농사준비 해볼까... 간척지 벼 농사 '염분 0.3% 이하' - 농업경제신문



春 농사준비 해볼까... 간척지 벼 농사 '염분 0.3% 이하' - 농업경제신문



春 농사준비 해볼까... 간척지 벼 농사 '염분 0.3% 이하'

홍미경
승인 2018.01.22 17:20






[농업경제신문=홍미경 기자] 여전히 겨울 한파가 거세지만 농사꾼들은 슬슬 봄 농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간척지를 개간해 농사를 짓고 있다면 제염작업에 특히 신경쓰는 것이 좋다.

국립식량과학원 측은 "새로운 간척지로 염분이 많이 집적되어 있는 토양 또는 전년도 염농도가 높은 지역은 벼 재배의 한계 토양염분 농도인 0.3% 이하가 되도록 제염하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봄갈이를 하여 환수횟수를 많이 할수록 제염효과가 높고 논갈이 및 물 갈아대기 횟수가 적을 때는 얕게 갈이 하는 것이 깊이갈이 하는 것보다 갈이흙층의 제염효과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염분농도가 높고 유기물이 적은 논은 볏짚, 퇴비를 시용하거나 객토를 하면 땅심이 높아지고 제염효과도 크다.

간척지(시화, 화옹, 석문, 이원, 남포, 새만금, 고흥, 삼산, 군내, 보전, 영산강)에 유기물 시비기준은 10a에 퇴구비 1,600㎏, 볏짚 600㎏을 시용하면 된다.

이외에 염분농도가 높은 간척지에서 조기제염을 위해서는 암거배수를 설치해도 좋다. 이는 염분의 상승을 막고 표층의 염분을 하층 배수구를 통하여 제거해 준다.

암거배수에 의한 벼 수량 증수효과는 1년차에서는 34~51% 정도 확보할 수 있고 그 후 점차 감소하지만 무(無)암거배수 보다 절대 수량은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진다.

The Convert Series: Rebecca Burley - The Toast



The Convert Series: Rebecca Burley - The Toast




The Convert Series: Rebecca Burley

By Daniel Mallory Ortberg

on June 1, 2016 in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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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ike talking with people who have changed religions. Here is one of them. Previously: Tamelonie Thomas.

Rebecca is a Quaker living in Atlanta with her wife, two dogs, and cat. She is an aspiring children’s librarian.

Hi, Rebecca! Can you tell me a little bit about your religious background growing up?

I grew up super fundamentalist, like, almost Quiverfull, and am now an atheist Quaker. My wife and I were married under the care of our Quaker meeting a few weeks ago, and if a few years ago, someone had told me I’d have a religious wedding ceremony, I would have laughed at them, but now I can’t imagine having done it any other way.

I grew up in a Christian tradition that taught that people are broken and worthless and that it’s only God’s love that makes us good. I think people are good. I don’t think we need a Deity to make us that way.

It took me a while to find my worldview after becoming an atheist. There were a few years of “Okay, I don’t believe in God. Now what?” A lot of atheist writing didn’t inspire me or offer good answers to those questions. It wasn’t until I started researching Quakerism that the pieces really started to fall into place and my worldview as an atheist took shape. The basis of Quakerism is that there is that of the Light in everyone. (What the Light is is up to the individual. For some, the Light is the Christian God, for others it’s simply the capacity for goodness and compassion in everyone.) And I really loved that. There is goodness in me naturally. It doesn’t take a God to make me good. It doesn’t take a God to make me worthy of love. It doesn’t take a God to make me want to help people. Those things are a natural part of me and it’s my responsibility to bring those qualities out in myself and to help people find those qualities in themselves.

Knowing that my good qualities are an inherent part of me and not something I only have because of God has been a relief as well as a responsibility. It can be easy to let those qualities become hidden under selfishness and anger, so I have to take care of them and foster them. They are my responsibility.

Can you tell me a bit about when you first learned that there were spiritual/non-religious options other than the tradition you were raised in?

I don’t remember when I first heard about atheism. I always knew there were people who didn’t believe in God, and I always knew they were The Enemy. The first atheists I met were probably in high school, kids who I realize now as an adult were rebelling for the sake of rebelling, not because they were giving any great thought to theology and philosophy. I remember getting into debates with them, working so hard to convince them that God was real while also being envious of their non-belief, the freedom they must have felt from it. I was always jealous of atheists, though it wasn’t until I was in my 20s that I took it on for myself.

There was a period of time in my late teens and early twenties when a lot of awful things happened to my family. For several years we had a streak of one person a year ending up in the ICU and none of us knowing if they would wake up the next day — illness, overdose, car accidents, a different person each year. The comments and “encouragement” I saw in cards and Facebook posts were horrifying. “Can you imagine how much worse it could have been if God wasn’t watching over you?” “Satan tries his hardest to knock us down, but we have to get right back up!”

I realized during that time that I didn’t see the world as a battlefield for cosmic forces. Satan was not attacking my family and God was not fighting back for us. I was very angry for a couple of years. Angry at religious and the awful lies I had been told for so long. I’ve leveled out a lot in the past few years. I’m not bothered so much at the idea of God or whether or not people believe in one, but I do still get angry about the lies believers tell, the lies I believed for so long, about gender and sexuality and morality, that you constantly have to be pleasing to God and that only God makes you worthy as a person.

So how did you become a Quaker?

After I got over the initial thrill of being an atheist (because it was thrilling, finally feeling that freedom I’d always been told I’d find in Christ, but never did), I started missing parts of religion, mainly the community and ritual. There’s so much value to be found in ritual; it can be very grounding and comforting. I tried out a few gay-affirming congregations, and I tried a couple of Unitarian Universalist churches, but the services felt really cheesy to me. My journey to Quakerism honestly started when I remembered reading The Witch of Blackbird Pond and figuring that if the Quakers were burned as witches, I would probably like them.

I went to a few meetings sporadically over the year or so and really loved them. I loved how the meetings were open and affirming and solemn. The Atlanta Friends Meeting has unprogrammed worship, which means that we sit in silence for an hour and if someone feels led to give a message, they speak. I was worried at first that this might mean speaking in tongues, but it doesn’t. At least not that I’ve ever experienced. Sometimes we can have whole meeting with no one saying a word, and sometimes there will be meetings where it seems there was more speaking than silence.

It wasn’t until I started seriously dating my wife that I started going regularly. She grew up in a similar Christian environment as me and went through a lot of the same hurt from it that I did, though her faith in God is still very strong. We started talking about what we wanted for our future family, what kind of community we wanted our kids to be brought up in, what we wanted them to learn about faith and religion. I mentioned that I’d gone to AFM a few times before, and she said she’d gone to some Quaker meetings when she lived in Philly. So we decided to try it together. Our first meeting together was like finding the puzzle piece that completed our relationship. We knew where we wanted to go and what we wanted to be together.

My favorite thing about Quakerism is that it is a place for doubt, but it’s not a sorrowful doubt: it’s a joyful doubt. When I was a Christian, it was ingrained in me that the answer to every question is in the Bible. It was okay to have doubts and ask questions, just so long as you got your answers from the Bible and took them as the final word. With Quakerism, it’s perfectly okay if you questions are never answered, if your doubts are never assuaged. Maybe every god is out there, maybe no god is out there, but either way, we have each other, we have this community, and we can work together to be the source of strength and stability we each 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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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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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chariahary · 128 weeks ago
Hey Friend!
I think "My journey to Quakerism honestly started when I remembered reading The Witch of Blackbird Pond and figuring that if the Quakers were burned as witches, I would probably like them." is my favorite explanation for how someone came to Quakerism. I remember being so psyched there were Quakers in that book in grade school. Although it being set in the 17th century did reinforce my classmates assumptions that I did not have electricity in my house...
2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35Vote up

leider_hosen · 128 weeks ago
Hi Friend! I am also an atheist Quaker, though I come at it from a very different background than you. This was great to read and I'm glad you've found something that seems to suit you so much better. I especially like the line of joyful doubt. Continuing revelation!
2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35Vote up

atlasblue85 · 128 weeks ago
I feel like my understanding of Quakerism (and pretty much every other religion) was very misinformed by my Catholic upbringing, as in like, it died out with William Penn. So thank you for this much more modern view of it, I think it's something I could be much more interested in in it's modern form than my previous view of it as just the people who burned witches and ate oatmeal maybe?
28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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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sargh · 128 weeks ago
I never even knew that this was a thing! This sounds pretty amazing, thanks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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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aunaKale · 128 weeks ago
As a theist Quaker, thanks for the interview.


+68Vote up

ocwut · 128 weeks ago
...figuring that if the Quakers were burned as witches, I would probably like them.

That is probably the best reason behind joining a religion that I've ever heard.
1 reply · active 128 weeks ago

+62Vote up

hannahfish · 128 weeks ago
While I have always liked Quakerism from afar, I never looked into it enough to realize that there was room for atheists there!

I think the convert series will be what I miss most about the Toast.
2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16Vote up

Crivens · 128 weeks ago
I (unexpectedly) love this series. I miss it already.
1 reply · active 128 weeks ago

+48Vote up

LackStratagem · 128 weeks ago
Not fully Quaker, sorta Quaker-adjacent in that I've had my kids in their schools for a decade. Unprogrammed Meeting is the very thing for folks recovering from an overly religious upbringing: no clergy, no gospel, nobody banging on about your immortal soul, just time and space to reflect with open-minded reasonable folks, then coffee and cookies. It has healed what Father Charles had torn asunder.

Thanks for sharing your journey.
1 reply · active 128 weeks ago

+21Vote up

ashurredly · 128 weeks ago
I've considered going to a meeting and this article is making me more interested in doing it. Trivial question - what is considered acceptable to wear?
5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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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saroo · 128 weeks ago
I loved this.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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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kyrbeast · 128 weeks ago
If a person was interested in learning more about Quakerism, are there any books people would particularly recommend? (Beyond, naturally, The Witch of Blackbird Pond)
11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16Vote up

bookwormV · 128 weeks ago
Thank you for this - it was really interesting! I'm really glad you have found a community that makes you happy and are no longer having to deal with hurtful fundamentalism.

I find Quakerism really appealing, and if I ever did want to join a religion, it would be that. I like the fact that it has space for, as you put it, "joyful doubt", and that one can be an atheist and a Quaker. The close association with social justice is also something which is very important to me. I don't think I would ever actually become a Quaker (I would prefer to follow the ideals I am drawn to without doing so within a religious framework, and I would be uncomfortable being part of a belief tradition that did include theists and was considered by most to be part of Christianity. Also, I am not remotely spiritual), but it sounds really great all the same.


+14Vote up

alder_tree · 128 weeks ago
I didn't know you could be an atheist Quaker! What I've read of the Quakers has often appealed to me. I might start looking up local friends meetings.

Also: I was just thinking about The Witch of Blackbird Pond recently! I loved that book in middle school, so much that I bought a copy for myself. I lost it in some move or another, and now I think I might replace it.
3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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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h42 · 128 weeks ago
The Witch of Blackbird Pond A+++, so wish I had read as a child. And Quakerism is definitely one of the options I researched for my partner and I when we became atheists, before realizing we just like to sleep in and go on long walks in the stead of religious services. But I filed it away as a maybe, someday.
1 reply · active 128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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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nia · 128 weeks ago
I don't think we have Quakers in Australia which makes me really sad because I'd like to check out a meeting. Silent communal reflection sounds pretty great, I have to say.
2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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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cklemeswash · 128 weeks ago
What a lovely piece. I'm sorry to say I knew nothing at all about Quakers (to the point of naively assuming the oats *were* related to them), and am so glad to read about something so new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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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headedwolf · 128 weeks ago
Quakerism sounds amazing. Is there a map of meeting houses, or a way to find the closest one to you? And are visitors usually welcome?

The main thing i learned about Quakers in all my childhood reading (which involved a lot of older literature) was that they used thee and thou. Does anyone know when that died out, or do some places still use that language?
5 replies · active 128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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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jillgirl · 128 weeks ago
"The comments and “encouragement” I saw in cards and Facebook posts were horrifying. “Can you imagine how much worse it could have been if God wasn’t watching over you?” “Satan tries his hardest to knock us down, but we have to get right back up!”"

Uggggghhhhh! I HATE those kinds of "encouraging" comments. I know they come from a place of good intentions, and I know some Christians (and maybe members of other faith traditions) don't know how to do faith without Calvinism and similar "God was/wasn't watching you" lines of thinking. But it really can be so discouraging and hurtful and just make you angry at God when people keep insisting in so many words that something terrible happened in your life because God wanted it that way. I'm sorry this happened to you. I'm glad you found a faith tradition you feel at home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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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ie White · 127 weeks ago
The first time I went to a Quaker meeting, I worried that I wouldn't be welcome or worse (for me), I would be "too welcome". My fears were quickly allayed. I felt comfortable right away. Everyone was welcoming without being overbearing. One thing I was told and that I find to be very true is that it can be very hard work to be Quaker. There is no creed, so all the work in determining truth is up to the individual. It is both liberating and exhausting!
1 reply · active 102 weeks ago

2018/11/16

0509 남성욱.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분석> 북한이 '긴급구호'보다 '개발지원' 선호하는 이유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과)
2005.09.12 11:12:00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이 최근 세계식량계획(WFP)측에 2006년 1월부터 식량지원 방식을 '긴급구호'에서 '개발구호'로 전환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인도적 식량 지원을 더 이상 받지 않음에 따라 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와 120여 명에 달하는 모니터링 요원의 철수도 요구했다. 북한의 지원 방식 변경 요구의 배경은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북한은 왜 긴급구호를 거절했을까?**

우선 최소한의 식량수급이 안정됨에 따라 WFP의 긴급구호의 필요성이 감소했다. 북한은 지난 2003년 415.6만 톤, 2004년 423.5만 톤의 식량을 생산함으로써 9년만에 대풍을 기록했다. 지난 2000년 이후 계속 소폭이나마 증산에 성공한 데 이은 결실이었다.

이를 북한 사회의 연간 최소 식량소요량 510만 톤과 비겨 볼 때 부족량은 100만 톤 미만이다. 그나마 우선 한국에서 50만 톤, 중국에서 15만 톤의 식량을 지원함으로써 부족량은 30만 톤 미만일 뿐이다. 또한 최근에는 경제난이 소폭이나마 개선되어 국제사회에서 상업적 베이스로 수입하는 양이 10만 톤을 상회하고 있다.

지난 95-98년 간의 극심한 자연재해로 생산량이 350만 톤 미만으로 하락하고 부족량도 200만 톤 수준이던 시기와는 수급상황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개선된 것이다. 이같은 식량 수급상황의 개선은 국제기구의 지원이 갖는 중요성이 약해졌음을 시사한다.

둘째, 지원 효과가 큰 경제적인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현행 국제기구의 대북한 긴급구호(emergency assistance)는 지난 1995년부터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통상 지원기간인 3년을 넘어 10년째 계속되어 온 것이다.

이에 따라 지원자가 한계를 절감하는 기부자의 피로(doner's fatigue)가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은 WFP의 긴급지원 순위에 있어서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아프카니스탄 등 기아로 신음하는 국가보다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 국제기구의 대북 지원량도 95년 초기에는 100만 톤을 넘었으나 현재는 10만 톤 수준으로 전체 외부 지원량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반면에 모니터링은 북핵 위기 등으로 대폭 강화됨에 따라 지원의 긍정적 효과보다는 지원에 따른 체제노출의 부정적 효과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인도적 차원의 긴급 지원은 단순히 물고기를 던져주는 것으로 농업 생산성 증가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특히 인도적 지원은 주민들의 대외 의존성을 확산시키고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식량 부족의 근본적 해결에 근본적인 기여도 하지 못한다. 결국 북한 당국은 농업생산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개발구호(development assistance) 형태로 지원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우선 석유수출기구(OPEC)의 자금대출로 2004년 완성된 개천-태성호 물길공사 등 농업 기초 인프라 구축은 개발지원의 바람직한 사례다. 주민들의 자립심을 배양하면서 증산에 기여하는 방안이 '작업과 식량연계 프로그램(Food For Work Program)'이다. 이는 댐 및 저수지 등 관개시설 보수나 경지정리 등에 북한 주민을 참여시켜 작업대가로 식량을 지원받게 하는 동시에 농업구조 개선사업을 진행시켜 농업생산성을 배가시키는 자립 프로그램이다. 식량 지원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게 만드는 동시에 생산성 증가에 기여하게 하는 일석이조 프로그램으로 후진국에서 개발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다.

***'모니터링'은 자칫 김정일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어**
마지막으로 국제기구의 철저한 모니터링에 대한 거부감이다. WFP는 지난해부터 배급의 투명성을 위해 감시제도를 강화함에 따라 전국 213개 군에 대해 한달 평균 450회에 걸쳐 배급 상황을 확인하고 있고 올해부터 무작위로 70여 곳을 추출해 실사(實査)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물자는 환영하지만 인적 접촉은 최소화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강도, 양강도 등 산간오지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실사는 지방의 체제유지에 상당히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빈곤으로 생활수준이 낙후된 지역에 대한 국제기구 요원들의 접근은 김정일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국제기구 요원들이 산간 오지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지방 모니터링 활동은 김정일 체제의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지역의 민심을 동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차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농업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크게 농업 내부와 외부로 구분된다. 농업 내부의 원인은 효율성이 부족한 협동농장의 집단생산 방식에 기인한다. 협동농장은 생산의 작업단위인 분조의 규모가 15인 이상으로 작업 과정에서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발생해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개인의 이기심이 발휘되는 텃밭의 생산성이 협동농장의 생산성보다 높은 것은 불가피하다.

농업 외부의 원인은 농업자재의 절대 부족과 연관돼 있다.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 및 활판 비닐 등은 농업 생산에 필수적인 자재들이다. 이들의 투입은 생산성 향상에 직결되는데, 이 농업자재는 일반경제의 발전 수준과 연계돼 있다.


즉,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해야 하고 농기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계공업이 발달돼야 하나 현재 북한경제의 수준으로 농자재를 충분히 공급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북한의 농업 생산성은 1ha(3000평)당 4000톤으로 200평 1마지기에서 3-4가마를 생산하는 수준이다. 남한의 6-7가마와 비교해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북한의 개발지원 요구는 이와 같은 농업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토양의 개선, 이모작의 개발, 농기계 수리공장의 건설 등이 북한의 요구사항이다.

***'개발지원으로의 전환'을 WFP가 수용할지는 미지수**

북한의 요구를 국제기구가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개발지원의 경우에도 '현장 접근 없이는 식량지원도 없다(no access, no food)'는 원칙에 따라 식량배급 실태조사 없는 개발 구호가 북한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식량 지원량이 적은 개발구호를 북한에게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효율성도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06년이되면 일단 긴급구호를 중단시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전국 6개 지역의 WFP 사무소를 철수시켜 일반 주민과의 접촉을 중단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서 당분간은 제한된 지역에서 개발구호를 부분적으로만 시행하는 방안을 WFP와 협상할 것 같다. 2006년에도 식량 생산이 흉작을 기록하지 않고 한국과 중국 등 연례적인 외부의 지원량이 축소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WFP 지원 요청은 체제노출이 최소화되는 수준에서만 이뤄질 것이다. 특히 남북농업협력 등을 통해 남한의 농자재를 체계적으로 공급받고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농업구조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namsung@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