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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김철수
2012.05.11 | 조회 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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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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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 일본
필자가 일본에 대해 얘기할 때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는 한국 속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속담에는 자연에 대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불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는 조심하고 조심하란 경구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일본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맞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믿음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화산, 지진. 자연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사람들은 가늠하지 못한다. 곧 믿지 못한다. 대신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끼리 믿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 내부 구성원끼리의 믿음이지만.

작년에 일본열도 동북지방에서 큰 쓰나미가 덮쳐 일본 역사에 전무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픔을 딛고 조용히 사후대처를 해 나가고 있다. 소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메이와쿠 문화’라 칭송도 들으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일본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종교에서 찾고 있다. 필자는 일본종교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써왔다. 왜? 일본사회를 이해하는데 종교(문화)는 필수라 보기 때문이다. 종교만큼 미지의 세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발견되는 중요한 주제가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가라는 주제이다. 이 주제에 답할 수 없다면 그건 종교가 아닐 것이다. 섬나라인 일본에는 해외로부터 갖가지 종교가 흘러들어왔다. 자생적 종교라 믿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인 신도(神道)도 그 중 하나이다. 일본인의 의식 저변에는 신도 등 갖가지 종교문화에서 구성되어진 사고방식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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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일본사회에는 종교도 참 많다. 마치 ‘종교의 전시장’ 같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에게 “당신의 종교는?” 하고 물으면 “무종교”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예를 찿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종교들이 단지 병존하여 있는 전시장이 아니라, ‘토착적이고 외래적인 종교적, 문화적 전통들이 일본인의 고유한 신앙, 감정, 접근방식에 따라 서로 섞이고 짜인 일종의 직조물’과 같은 모습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신의 나라, 곧 수많은 가미[神, 精靈]로 가득 찬 나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일본인은 종교에 이상스럽게 무관심’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특정 종교를 갖고 있다고 응답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30% 전후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 8월,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이 조사한 〈종교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고 답한 사람이 75%에 달했고(그러나 ‘신불神佛에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54%였다), ‘종교를 믿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23%였다. 곧 ‘종교를 가진 인구’는 1979년 조사에서 34%였던 것과 비교하면 11% 감소한 것이다. 이는 근 30년 간 거의 일관된 경향을 보인다. 미국인의 91% 정도, 그리고 한국인의 50% 이상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종교를 갖고 있다’라고 응답하는 비율과 비교해 본다면, 일본인의 종교 귀속의식은 희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세적이며, 풍부한 종교적 생활
그러면 도대체 일본인의 종교관은 어떤 것일까?
일본사회에는 신도, 불교, 기독교, 신종교 등 각종 계통의 종교단체가 400개를 넘고, 그 활동도 사회 전체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여러 면에서 ‘종교적’인 심성과 행위를 보여준다. 경제나 정치,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종교를 제외해버리면 그 의미(meaning)가 상실되어 버릴 정도로 일본인들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면 유명한 신사를 찾아 참배한다. 불교의 성지인 고야산(高野山) 등에서 특정 기업의 번영을 기원하는 기업공양탑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가정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장상이나 불단, 신단(神棚, 가미다나)들, 그리고 각종 종교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출생, 결혼, 장례식 등 각종 통과의례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사회에서 공양(供養)의 확대현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조나 죽은 자에 대한 공양, 그리고 유산, 중절, 사산된 태아[水子みずご, 미즈고]에 대한 수자공양(竪子供養). 그러한 공양시설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다. 전국유산아(流産兒) 무연(無緣) 공양탑(生長의 家에서 1961년 건립), 오사카에 세워진 73미터나 되는 수자공양탑[辯天宗冥應寺] 등은 모두 낙태아의 위패를 제사하고, 지장(地藏)을 만들어 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쿄에는 페트(애완동물)공양탑도 있고, ‘00家愛犬之墓’라 적힌 납골당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는 인형공양도 있으며, 최근 못쓰게 되어버린, 곧 생명력이 다한 게임기 공양도 있다.

14110_p132_07현대사회는 합리화 및 효율화를 지향한다. 반면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특히 보이지 않는 음(陰)적인 세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신세계를 찾고 있다. 이러한 마음의 갈망이나 불안감을 종교는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종교를 일러 ‘위협산업’이란 말까지 들릴 정도이다. 종교가 인간 삶과 죽음을 다루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여러 지역에 동물묘지[動物靈園]가 설립되어 번성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인형, 게임기의 생명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소(小)가족화 된 오늘날 개나 고양이 등이 자녀 형제와 똑같이 가족의 일원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그 대행 역할을 종교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종교의 특이성에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일본인들은 특정 종교에 귀속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풍부한 종교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에도(江戶)시대(17~19세기 중반)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면 신사(神社)에 가서 신에게 출생을 알리고, 일상생활은 유교윤리에 따르다가, 죽었을 때는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대개 남자아이는 출생 후 31일째, 여자아이는 33일째, 그리고 ‘7-5-3’이라 하여 남자아이는 3, 5살, 여자아이는 3, 7살 되는 해 11월 15일 신사참배를 한다.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씨신(氏神, 우지가미: 지역공동체가 숭배하는 신)에 대한 출생신고로 씨자(氏子, 우지코: 지역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구성원)의 일원이 되었음을 인정받기 위함이다. 신에게 아이의 성장을 보고하고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으며, 지역공동체로서는 공동체의 일원을 맞아들이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유교적 일상생활이 근대 서구적 양식으로 바뀌어 결혼식은 교회에서 치루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의 인사(初詣, 하츠모우데)는 신사에서,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올리는 모습을 흔히 접하게 된다. 이러한 다중신앙은 일본인에게 종교란 현세를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일본인에게 진리란 현실 그 자체이며, 현실을 넘어선 이념이나 법칙이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절대라든가 보편이라든가 불변성 혹은 영원성이라는 관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 모두가 그대로 진리일 뿐이며,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일본인의 사유방식은 이 세상에 완전히 절대적인 것은 없고 가미(神)조차 오류를 범한다. 진리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 선과 악, 흰 것과 검은 것을 분명히 하려 든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싸울 때에도 양쪽 모두 이기고 졌다는 식의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이 곧 일본인이 고대로부터 형성하여온 ‘화’(和)의 관념과 통해 있다. 오갈 데 없는 섬나라에서 평화는 상이한 것들의 공존, 그것을 허용하는 관용성이 가장 현실적인 화(和)라고 보는 것이다.


신불습합(神仏習合)으로 이뤄진 신관
이런 화(和)의 정신이 종교에도 스며든 것인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부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전까지 신불습합(神仏習合)이 일반적이었다. 신도와 불교가 나눠지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불교사원(寺院) 내에 신사의 토리이(鳥居)가 있고, 하지만 대보살(八幡大菩薩), 신사의 신을 불(仏, 호토케)이라 부르는 사례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 근대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곧 일본은 고래로부터 ‘팔백만 신’을 숭배하는 독특한 종교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석가도 예수도 일본에 오면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취급되어 버린다. 동시에 일본인은 해외의 사상을 변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바꿔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려 보라. 여기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 썩음의 신, 강의 신….

유바바 : “여기는 말이야, 인간이 올 곳이 아니야. 8백만의 신령님들이 지친 몸을 달래러 오는 목욕탕이란 말이다.”

일본에서 신을 ‘가미’(カミ)라 한다. ‘가미’는 선악, 귀천, 강약, 대소 그리고 초인적이냐 아니냐 하는 구분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 어떤 의미에서든 위력 있는 존재를 뜻한다.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위력을 발현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미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가미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실제로는 1천이 좀 넘는 신들이 보이고, 『고사기』에도 300개 이상의 신이 등장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정의이다.

“가미는 우선 옛 기록에 나타나는 하늘과 땅의 신이며, 또한 그 신들을 숭배하는 장소인 사원에 거주하는 정령들이다. 거기에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 조차 없다. 그리고 조류, 짐승, 수목, 초목, 바다 같은 것도 포함된다. 옛날 관례로는 비일상적인 것, 초월적인 덕목을 지닌 것,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을 막론하고 ‘가미’라고 불렀다.”

‘팔백만 신’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 신의 수는 무수히 많다. ‘가미’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다수라는 뜻이다. 가장 많은 것은 천체, 산, 들, 강, 바다, 바람, 비 등 지수풍토 등을 비롯하여 새, 짐승, 벌레, 수목, 풀, 금속, 돌 등 자연현상이나 자연물에 붙여진 가미의 명칭이다. 위인, 영웅, 귀족 등이 가미로 여겨지기도 했다. 근세 말기에는 인간 자체를 가미로 모시는 이키가미(生き神) 관념까지 나타났다. 이 과정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없어졌고, 신을 절대적 존재로 보지 않는 종교의 세속화와 세속의 종교화 토양이 조성되기도 했다.

일본인은 고대로부터 신과 부처들을 여러 가지로 짜 맞추면서 모셔왔다.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독점적으로 믿는 태도는 발달되지 않았다. 구미에서는 기독교도이면서 이슬람교도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본인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한 집안에 불단과 신단이 동시에 모셔져 있다. 출생해서는 신사에 가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기를 바라며, 죽어서는 불교식 장례식을 거치는 것이 보통 일본인의 삶이다.

일본인의 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종교적 행동을 볼 수 있다. 종교적 혼합이나 절충현상이 심하다. 정월에 신사를 참배하고, 춘분 추분을 중심으로 한 7일간이나 백중맞이(盆:봉. 8월 15일 조상을 제사하는 불사)에는 사찰,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때로는 신종교의 레크리에이션에 참가한다. 그래도 그들은 별로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많으면서도 또 대다수는 ‘종교심은 중요하다’고 답한다. ‘무종교이지만 종교심은 중요하다.’ 어쩌면 종교가 생활 속에 파고들어 습관화되어 버려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무종교라는 의미는 교단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의미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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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역사연구가이자 작가인 이자와 모토히코(井沢元彦)는 일본인의 무의식에는 강렬한 원령(怨霊)신앙과, 원령을 발생시키지 않는 ‘화’(和)의 신앙이 있고, 신도는 그 위에 성립했다고 지적하였다. 불교도 결국은 원령을 진혼(鎮魂)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었으며, 일본인의 독특한 ‘언령’(言霊, 우리가 내뱉는 말속에도 영이 깃들어 있어 말을 삼가야 된다는 믿음)신앙도 일본인이 무의식 내에 ‘화’(和)를 이루려는 사고구조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원령 신앙을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노노케’(もののけ)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령(死靈), 원령이다. 무차별한 환경파괴로 인해 사라지는 숲의 원한이 낳은 재앙의 신 다타리 신의 저주, 그 저주를 풀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노력은 일본 원령신앙의 한 단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의 종교현황
14110_p132_04그러면 교단종교를 중심으로 일본사회의 종교현황을 살펴보자. 문부과학성의 종교통계조사에 의하면, 일본에서 종교 신자수는 신도계가 약 1억 580만명, 불교계가 약 8,900만명, 기독교계가 약 200만명, 그 외 약 900만명으로 합계 2억 600만명이 된다. 일본의 총인구가 1억 2천명 정도이므로 2배 정도의 신자수가 되는 것이다. 신도계와 불교계만으로도 거의 2억명이 된다. 이는 조사가 설문조사로 행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 단체의 신자수를 많게 신고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다른 이유도 있다. 일본에서는 신도, 불교의 신자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전술한 대로 오랫동안 신불습합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메이지 초기에 신불분리(神仏分離)가 이루어진 후에도 신도와 불교 사이의 구별이 애매한 면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신단[神棚]을 모신 가정에 불단이 있는 경우가 많고, 불교사원의 단가(檀家)인 동시에 신사의 씨자(氏子)인 가정이 많다. 이처럼 신도를 신앙하는 자와 불교에 귀의하고 있는 자를 포함하면 2억명을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신도와 불교 2개의 종교가 일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가 불교를 흡수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토착신앙이 되었다고 파악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 신도와 불교는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
신도는 크게 나눠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사신도(神社神道), 막말(幕末) 이래 형성된 교파신도(敎派神道) 및 종교단체를 결성하지 않고 가정 및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신도(民俗神道)가 있다.

14110_p132_05신사신도는 명확한 교의(教義)가 없고(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명확한 교의가 있다), 엄밀한 입신(入信) 규정도 없다. 씨자(氏子)로 들어가는 것이 이에 가깝지만, 신단[神棚]을 설치하거나 신사에 기부 및 제사(祭事)에 참여하는 경우를 신자로 보는 경우도 많다. 현재 종교법인이 된 신사는 약 8만개이며, 또 종교법인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숭경(崇敬)을 받고 있는 신사도 다수 있다. 이러한 신사에서 받들어지는 제신(祭神)은 흔히 팔백만 신이라 불리는 것처럼 실로 다양하며, 또 제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사 중에는 신궁, 대사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신사들도 있으며, 이 중 신궁은 일본왕실과 관련된 신사이거나 역대 일본왕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신도의 종교전통 내에서 특정 조직자 창교자의 종교체험을 중심으로 교리를 만들고 신자가 형성되는 조직종교이다. 때문에 신종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흑주교(黑住敎), 출운대사교(出雲大社敎), 부상교(扶桑敎), 어악교(御嶽敎), 신리교(神理敎), 금광교(金光敎), 천리교(天理敎) 등이다.

불교

일본의 불교는 대부분 대승(大乗)불교이다. 불교는 일본역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신자수를 보유하고 있다. 불교는 6세기에 일본에 전래되었다. 나라(奈良)시대(710~794)에는 ‘남도육종’(南都六宗)이라 하여 삼론종(三論宗), 성실종(成実宗), 법상종(法相宗), 구사종(倶舎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厳宗) 등이 널리 퍼졌다. 가마쿠라(鎌倉)시대(1185~1333) 초기까지 일본불교는 8종이었다. 남도육종에 천태종, 진언종이 더해졌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에 정착한 불교문화를 배경으로 호넨(法然)의 정토종, 신란(親鸞)의 정토진종, 일련(日蓮)의 일련종 등 일본인 자신에 의해 독자적인 불교가 형성되었다. 또 이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임제종과 조동종도 전해졌다.
2차대전 이전에 종교단체법이 성립될 때 28종파로 정리되었지만, 2차대전 이후 종교법인령이 성립되고 정부 인가제가 시행되면서 다수의 불교 교단이 분파 독립되어 2007년 말 현재 154개의 불교종파가 존재하고 있다.

기독교
기독교의 일본 전도는 1549년 로마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 Xavier)가 일본에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초두에는 수십만 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기독교를 금지하였고, 도쿠가와(德川) 막부도 철저하게 탄압을 하여 기독교도는 이후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었다. 일본에 기독교의 본격적인 재포교가 준비된 것은 막말 경(19세기 초 중반)이었다. 서구 열강이 일본의 개국을 요구하면서 선교사들도 일본열도에 상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독교 신도수는 현재 세례를 기준으로 하여 공식적으로 전인구의 0.8%이다. 사비에르가 일본열도에 최초로 포교했던 직후의 시기에도 1%를 넘었었다. 현재 신자수가 1%를 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일본의 기독교 관계자는 이를 ‘1%의 벽’이라 부르고 있다. 이 비율은 구미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가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낮다. 또 한국 등 아시아 전체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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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자수가 적다고 해서 기독교가 일본의 문화, 사회에 점하고 있는 위치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 기독교의 위상은 그 공식적인 신자수를 능가하는 위치에 있다. 일본에서 기독교는 불교에 이어 제2위의 종교이며, 기독교를 제외하고 일본의 종교를 말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기독교는 일본사회에서 문화적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추진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왔던 것이다. 다만 일본사회에서는 예로부터 명확한 입신(入信) 의례를 거쳐 종교조직의 회원이 된다는 습관이 정착되지 않은 점 등 때문에 공식적 신자수가 적게 보고되고 있을 뿐이다.

교파별로 나누어 보면, 신자수가 제일 많은 교파는 가톨릭(구교)이다. 가톨릭의 총수는 45만명 정도로 일본 총인구의 0.3%이다. 프로테스탄트(신교)의 최대교파는 일본기독교단이다. 또 프로테스탄트 중에서 복음파라 불리는 교파는 구미권의 기독교에 비해서도 성서신앙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또 특정 교회에 속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성서만을 보는 ‘무교회 운동’(지도자는 内村鑑三, 우찌무라 간산이 유명하다)도 있다. 그리스정교(일본정교회)의 신도수는 일본에서 1만명 전후로 추정되며, 또 여호와의 증인도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신종교, 일본사회의 종교 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1991년), ‘행복의 과학’이 돌연 일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를 주도한 자는 일본인들의 동경하는 도쿄대학의 법학부 출신이었고, 그가 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쿄돔에서는 그의 탄생제가 거액의 비용을 들여 성황리에 치러져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행복의 과학’은 신종교였다. 소위 신종교가 종종 쓰는 수법인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포교전략’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1990년대는 세기말적 흐름이 일본사회를 지배하면서 제4차 종교 붐이 일어난 시기였다. 일본사회에서 이러한 종교 붐 현상은 몇 차례 있었다. 제1차가 막말유신기, 제2차는 2차 대전 패전 직후, 제3차가 1970년대였고, 바로 제4차가 1990년대였던 것이다.

19세기 막말유신기, “에에쟈나이까”
19세기 일본사회에는 역사적인 거센 조류가 몰아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부터 러시아와 영국 군함들이 통상을 요구하며 다가왔으나 막부는 쇄국을 고집해 문을 열지 않았다. 백성들의 생활은 불안했다. 1853년에는 미국의 페리제독이 군함[黑船] 네 척을 이끌고 와 개항을 요구했다. 아니 위협했다. 결국 막부는 미국의 강화 요구를 받아들여 이듬해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일본의 문을 개방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혼란스러웠고 민중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이 때 민중들 사이에서는 구원을 바라는 심리에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참배하는 것이 대유행하였다. 이를 ‘오카게마이리’(お陰參り)라 한다. 이세신궁에 모신 신의 음덕을 바라는 참궁(參宮)이었다. 1830년의 오카게마이리는 약 500만명의 인파가 들끊었다. 오사카에서 이세(伊勢)에 이르는 길가에는 참궁을 위한 인파가 혼잡하였고, 그 사람들은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의 신위(神威)를 받들어 미친 듯 “에에쟈나이까(いいじゃないか)”로 쓴다. 곧 “(세상바꿈이)좋지 아니한가”를 노래하고 춤추며 이세신궁으로 향했다. 이러한 참배물결의 큰 파도가 지나가면서, 봉건체제의 틀을 깨트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1867년 막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大政奉還]했고, 조정은 천황정치의 부활을 정식 공포했다[왕정복고]. 이듬해 천황은 수도를 쿄토에서 도쿄로 옮기고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이것이 메이지유신(1868)이다. 이에 따라 신정부는 1869년에 다이묘(大名)들의 영지와 영내 백성들을 천황에게 반납하게 하고[版籍奉還], 1871년에는 종래의 번을 폐지하고 대신 전국을 현으로 나누어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했다[廢藩置縣]. 또한 메이지정부는 신사신도를 ‘국가의 종사(宗祠)’로 불교, 기독교와 달리 취급하여, 이세신궁을 정점으로 한 국가신도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래서 신사는 국가가 제사 및 보호 유지해야만 하는 시설이 되었다. 이러한 막말유신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흑주교(1814), 천리교(1838), 그리고 금광교(1859) 등 많은 신종교들이 출현하였다.

20세기 세 번의 종교 붐, ‘신들의 러시아워’
20세기에는 1945년, 일본의 패망 직후와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 그리고 1990년대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세 번의 종교 붐 현상이 있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일본사회에서 국가신도가 폐지되었다. 천황 스스로가 신격(神格)을 부정(인간선언)하였고, 정교분리와 신교자유를 보장하는 신헌법이 시행되었다. 일본종교사에 미증유의 변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히도노미찌, 대본, 혼미찌, 창가교육학회(1946년에 창가학회로 개칭) 등이 조직을 재건하여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동안 국가신도에 종속되었던 천리교와 금광교도 재출발하고 있었다. 또 생장(生長)의 가(家), 대일본관음교단(오늘날 세계구세교), 지우(璽宇, 1945), ‘무아(無我)의 춤’으로 인해 ‘춤추는 종교’로 일약 유명한 천조황대신궁교 등이 재건 재발족 개교되었다. 이처럼 전후부흥기는 여러 신종교들이 난립 경쟁 발전한 소위 ‘신들의 러시아워’ 시기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는 대체적으로 평온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낮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출호조에 힘입어 일본 국내에서 풍요의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 시작된 신비 주술 붐은 소위 ‘신신종교’ 및 ‘작은 교단’의 유행현상으로 나타났다.

이전과 비교하여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많은 젊은이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번화가에는 ‘파친코점보다 그 수가 많다’라고 언급될 정도로 소교단이 배출되고 얼마 안돼 신신종교로 불리워질 정도로 대교단으로 급성장하는 예도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의 4번째 종교 붐은 세기말적 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세기말 때마다 찾아오는 종말론 이야기, 특히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예언 등은 서두에 보았듯이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신종교들을 탄생시켜 주고 있었다.

현재 일본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종교단체로 등록된 신종교 교단수만 보더라도 300여개가 넘고 있고, 신자수도 대략 인구의 1~2할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신종교 교단들은 각종 교육기관 및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출판 문화사업 등을 전개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신종교 단체인 창가학회의 정계진출은 일본사회를 놀라게 하였고, 이 이외에도 PL, 영우회(靈友會), 입정교성회(立正校成會), 생장의 가 등의 신종교 단체가 정치와 끊임없이 관련을 맺어왔다. 또한 이러한 신종교 교단들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식의 종교관
일전에 이름있는 한국의 기독교계 인사가 일본사회는 격조가 낮은 여러 잡신들을 모시기 때문에 벌을 받아 자연재해가 휩쓴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사회, 아니 일본의 종교문화를 잘 모르고 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인들은 종종 ‘풀 한포기, 나무 한 조각, 심지어 우리가 내뱉는 말[言] 한 마디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의식조사에서 ‘믿는 종교(교단)는 없으나 신불(神佛)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일본인이 응답이 다수라는 결과도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현대 일본인의 대다수는 실제로 종교의례에 참가하면서도 특정 종교조직에 대한 귀속의식은 희박하고, 스스로는 ‘무종교’(無宗教)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일본인이 신 및 불(仏)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믿고 있지만 특정의 교단종교에 귀속하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과 일본사회의 종교 실태를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차라리 ‘일본교’(日本敎)라 부르고 싶을 때가 많다. 일본의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신앙, 팔백만신, 일상생활을 신도 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수용하고 녹여내는 습합(習合)신앙 등은 ‘일본교’라는 명칭을 무색치 않게 할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은 무종교라기보다 일본교라는 종교의 신도’ 라고 주장하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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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Doyoung Peak 코로나 19와 불교의 이단(異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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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와 불교의 이단(異端)
전염력이 강한 신종 감기인 코로나 19로 사회 전반이 혼란하다.

코로나 19의 전염 형태가 보균자와 밀접한 대면접촉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종교모임이 전염병의 주요 전파수단이 된 것이 대구 신천지교회 사례였다.

이후 종교계도 방역당국에 적극 협조하고 있지만 최근 개신교 소속 사랑의 교회에서 많은 확진가가 나오자 확진자가 나온 회당(會堂)에 대해 비난도 증가한다.



최근 불교계에서는 일련정종 서울포교소에서 20명의 확진자가 나오자 9월 8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불교계 대형 29개 종단 협의체)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종단협은 일련정종은 한국불교 종단이 아니고, 서울시의 법인 허가를 받지 않은 임의단체, 군국주의 찬양과 신사참배 합리화 등 한국불교계 및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은 단체이고, 한국불교계의 코로나 19 극복 노력을 훼손하고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주장하자 각종 언론은 이를 받아 보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전형적인 기득권 종교권력의 면피와 자기 위상 강화의 행위이기에 그 내용을 기록한다.



1) 일련정종은 일본불교종파 맞다.

이번 일련정종 서울포교소 감염환자로 알려진 한국 일련정종은 500년 역사를 가진 일본불교 일련종의 한 종파다.

일본 천태종의 젊은 승려 나치렌은 1523년 최상의 진리는 법화경에 있으나 말법시대가 오면 ‘남묘호렌겟쿄(南無妙法蓮華經)’ 만 외우면 성불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일련종을 개창한다.

당시 나체렌은 이단으로 취급되며 막부의 살해위협과 유배 등에 시달리다 1282년 10월 61세로 입적하고 그 제자들에 의해 다시 많은 분파로 발전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련종, 일련정종, 창가학회(SGI), 창가학회의 정치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공명당(정당)이다.

자신들이 신앙하는 불교적 가치를 구체적인 현장에서 일구는 일련종 계열 종파들의 노력은 그 내용을 떠나 한국 불교도들이 본받아야 할 지점이라 생각한다.



2) 불교는 국가와 종파에 따라 차이가 있지 않다.

불교는 2564년 전 인도에서 발생해 각 지역으로 전파되며 각 지역 특성에 맞게 정착된 다양한 종파가 존재해 왔고 서로 교류를 통해 발전해 왔기에 각국의 불교종단이 다른 나라의 불교 종파에 대해 우위를 주장한다거나 폄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만약 자국의 종파만이 그 종교의 최고라면 그 종파는 세계 최고의 종교로 전 지구적인 종교가 돼야 하지만 현실의 한국불교에서 그런 종파나 세계인이 인정하는 종교인이 배출되었나?

이런 상황에서 불교 회당에서 코로나 환자가 나왔다고 ‘우리 쪽은 아니야’란 선 긋는 행동에 한국불교의 최대 종파들이 모인 단체가 먼저 나서서 할 말인지 부끄럽기만 하다.



3) 법인격이 없는 임의 종교단체는 사이비가 아니다.

종교의 시작은 국가의 관리 아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근대로 들어와 서로 불간섭의 관계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종교단체에 인격을 부여해 관리하는 것에 장단점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지만 임의단체라고 하여 종교의 진정성이 없다는 식의 예단은 반대한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바른불교재가모임이란 불교단체 역시 법인 등록이 없는 임의단체이지만 그 안에 구성원들을 보면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교도가 대부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란 단체에서는 바른불교재가모임을 불교를 파괴하는 곳이란 지정했지만 조계종과 그 소속 승려들의 범계행위에 대한 단체의 지적과 행동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4) 일련종의 군국주의 찬양과 신사참배 역사

일련종 조선 전파는 임진왜란 당시 일련종의 열성적 신자인 왜장 가등청정에 의해 전해진다.

당시 가등청정은 선조의 장남인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는데 명나라와 강화조약 후 임해군의 4살된 아들과 6살 딸은 인질로 끌고 갔고 임해군의 아들은 13살에 일련종 승려로 출가해 일련종의 개산조사인 탄생지에 세워진 탄생사 제18대 주지를 역임하면서 일련종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근대에 들어 1881년 일련종(日蓮宗)의 와타나베 이치웅(渡邊日運)이 건너와서 일련종 포교소를 설립하고 쿄토(京都) 묘각사의 주지였던 아사히 미츠(旭日苗)는 부산으로 건너와서 ‘일종해외선교회’를 조직하고 각지에 지부를 설치해 포교활동을 한다.

1895년 사노 젠레이(佐野前勵)란 승려가 조선지부장으로 부임해 5월 5일 조선국왕의 성수와 중흥유신의 성업을 축하하는 대법회를 개최법회를 개최하는데 당시 1만 4000여의 대군중이 모인다.

이는 시대상황을 비교해 볼 때 교황의 방문집회나 최근 광화문 촛불집회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모인 행사였다.

일련종은 1945년 일제 패망 후 일본으로 돌아가기까지 64년간 포교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일본 군국주의 찬양과 신사참배 유도, 창씨개명 등에 앞장선 사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권력의 부역행위는 당시 조선에서 활동한 개신교, 천주교, 불교, 기타 종교와 종단의 공통된 모습이지 일련종만의 모습은 아니다. 특히 한국불교계는 친일청산을 한 역사가 없고 친일에 앞장선 승려들을 고승으로 지금까지 찬양하고 있다.



5) 일본 불교가 군국주의의 앞잡이가 된 이유

일련종을 비롯한 조선에 진출한 일본 불교계가 군국주의 찬양과 신사참배에 앞장선 배경에는 일본 불교계가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1192년부터 676년간 일본은 쇼균이란 군사독재자가 통치하는 시대가 1868년 천왕과 내전에서 패하자 천왕이 직접 통치하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정부가 탄생하고 천왕을 살아있는 신으로 섬기는 신도(神道)가 중흥한다.

신도(神道)는 천왕숭배 내지 조상숭배를 핵심으로 하는 국수주의적 종교로 막부가 후원한 불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자 일본 불교계는 생존을 위해 메이지정부에 적극 협조하며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통치에 적극 부역한다.



6) 역사문제, 일본 조동종을 본받읍시다.

과거 역사를 통해 종교의 행위가 사회악이 될 수 있다는 인식과 반성이 종교인이 먼저 가져야 하지만 우리 사회 종교와 종교인들에는 이런 것을 찾기 힘들다.

1992년 11월 일본 조동종이 식민지 시기 조선에 대한 범죄행위에 대한 참사(참회와 사과)의 글을 적고 군산 동국사에 세운 비문을 옮겨 본다.

"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 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포교라는 미명 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 특히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 버렸는데,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사상이나 신앙을 초월해 훨씬 엄숙하다. 우리들은 다시 한번 맹세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그리고 과거 일본의 억압 때문에 고통을 받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깊이 사죄하면서 권력에 편승하여 가해자 입장에서 포교했던 조동종 해외 전도의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하는 바이다." (1992년 11월 20일 조동종 종무총장 大竹明彦)



7) 코로나 19와 신앙형태

한국 종교계는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보건당국의 집회자제에 협조에 이구동성으로 협력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처방인가 고민할 차례다.



첫째 각 종교마다 집단예배가 일변인 신앙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신앙방식의 모색이 향후 종교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형 회당 유지와 종교성직자의 생계를 위해 대형 종교집회가 개최되는 악순환은 종교 몰락의 지름길로 본다.

둘째 내 종교만을 위하고 다른 종교에 대한 배척과 차별 심화가 잘못이라는 인식을 종교 성직자가 교도들에게 먼저 인식해 줘야 한다.

다름과 공존은 사회구성과 유지의 기본이고 종교의 시작이다.

셋째 종교인은 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발 벗고 나섰다.

종교인이 먼저 코로나 사태를 통한 참신앙의 모색과 들어내지 않는 자원봉사를 통해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의 이상을 확인하는 방법이 아닐까?

또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완치된 환자 중 신천지교인들이 혈장기증에 적극 나선 것은 가장 종교인다운 모습의 하나로 생각한다.



일련정종의 서울포교소는 종교집회는 정부가 권고한 종교집회의 규정사항을 지켰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교당이 위치한 건물구조의 문제를 소홀히 한 점, 무증상 환자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감염을 인지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원인이었지만 종교장소에서 코로나 19 환자가 발생했다고 종교 자체를 비난하는 기득권 집단의 행태는 불교도로서 심히 불쾌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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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종단협 “일련정종은 무허가 일본불교 종파” - 법보신문

BEOPBO.COM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일련정종은 한국불교 종단이 아니며, 법인 허가를 받지 않은 임의단체다.”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최근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일련정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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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용태

ㅎㅎ 이제 깨달음도 국가고시원에서 라이센스를 발행해 줘야 하나... 깨달음 1급 기사... 깨달음 2급 기능사... ㅎㅎㅎ

 · Reply · 5 d · Edited

성수진

군산에서 자랐습니다.

동국사도 알구요.

법보신문에는 이런 기사도 실리는군요.

늘 그렇듯 오늘도 저는 뭐하나 딱히 아는 것이 없구나;; 란 생각뿐ㅠㅠ

코로나가 정말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하네요.

더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공유해도 될까요?

 · Reply · 4 d

Doyoung Peak

성수진 공유해주신디니 감사합니다.

 · Reply · 4 d

성수진

Doyoung Peak 고맙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_()_

동국사 얘기에 근처 흥국사에 살던 고등학교때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절에서 사는 친구가 뺑뺑이 돌려 미션스쿨 와서 교회 출석 도장 못 받아와 성경시간에 매 맞았던 기억ㅠㅠ

'미션 스쿨'이 갑작스레 궁금하여 나무위키 돌려보니 ^^;; 다시 또 많은 것이 새삼스럽구만요.

종립학교와 미션스쿨의 차이,

정교회 전주예고,

대종교 미션스쿨 홍익대, 천도교 미션스쿨 동덕여대 고려대 ....

세상은 참~ 넓구만요^^~~~

정말 알 수 없어요ㅎㅎ;;

 · Reply · 4 d · Edited

성수진

정교회도 놀라운데 전주예고(조카 셋 졸업;;)가 관련이라니 다시 또 아는게 없어요^^;;

 · Reply · 4 d

Doyoung Peak

성수진 한국불교에서 종교법인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는 조계종(동국대,중앙승가대), 천태종(금강대), 진각종(위덕대), 원불교(원광대)가 있고 위 종단과 천태종, 총지종 등이 초중고교를 운영합니다.

개신교는 종교중 가장 많은 학교를 갖고 있고 천주교는 카톨릭대학교를 갖고 있습니다.

천도교는 홍익대를 갖고 있었으나 정권에 빼앗깁니다.


2020/09/12

불교언론-46.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 법보신문

불교언론-46.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 법보신문



46.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현진 스님 승인 2019.12.11 10:38 호수 1516 댓글 0기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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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ā)는 남방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이를 북방불교에선 지(止, 사마타)와 관(觀, 위빠사나)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지관(止觀)수행은 북방불교에서도 중요한 수행법 가운데 하나이다.



지(止)란 수행함에 있어서 밖으로는 일체의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안으로는 일체의 생각에 흔들리지 않은 채 마음을 특정의 대상에 쏟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관(觀)이란 ‘지’의 수행을 통해 얻은 고요한 마음의 상태에서 바른 지혜를 끌어내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가는 것을 말한다. 지관수행법은 흔히 흙탕물을 가라앉혀 맑힘[止]으로써 물속을 들여다볼[觀] 수 있다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지’는 초선부터 제4선까지 색계의 4가지 선정인 사선(四禪)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욕계를 벗어나 색계에 접어들면 욕망은 사라졌지만 일상적인 사유작용은 여전히 지속되며 욕망에서 벗어났다는 희열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 것을 초선(初禪)이라 한다. 그 다음 일상적인 사유작용도 가라앉고 집중된 마음의 상태인 삼매에 머물게 되는데, 그로 인한 희열감과 행복감은 느끼는 것이 제2선(第二禪)이다. 그리고 제3선(第三禪)에 가닿으면 모든 희열감이 사라지고 단지 평정된 마음에 머묾으로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갖출 수 있게 되며, 제4선(第四禪)에선 제3선에서 갖추어진 모든 것들이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선의 상태에 대해선 경전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수행하는 이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자신이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 점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관’은 있는 그대로를 알고서 바라보는 것인 여실지견(如實知見)을 통해 성취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사념처(四念處)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사념처란 수행자가 자신의 존재상황을 철저히 대상화시켜놓은 상태에서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과 법(法)으로 분류될 수 있는 존재일반이 일어나[生] 머무르다[住] 사라지는[滅] 것을 지긋이 주시함을 말한다. 수행자는 그럼으로써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다는 무상(無常)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인식된 고(苦)를 바탕으로 무아(無我)를 간파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解脫]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멀찌감치 단속직원이 다가오는데 차문을 열려고 키를 찾아도 보이지 않는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친구에게 건네는 ‘아이~ 좀, 가만히 생각해봐!’라는 말, 이 말속에 지관(止觀)수행의 개요가 오롯이 담겨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 천태지의 선사를 만나 복잡다단해진 지관 수행의 방법이 모두 들어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止, 가만히)하고서 관(觀, 생각해보다)하란 말인 셈이니 그리 터무니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생활불교로는 원효 스님께서 한 마디 진언만 외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던 ‘나무아미타불’이 있고, 고난의 티베트 민족을 감싸 안고 있는 진언 ‘옴마니반메훔’, 그리고 일본의 일련 스님에 의해 창시되었다가 창가학회에 의해 제창된 ‘남묘호렌게꾜’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과 비교해 봐도 지관수행의 생활어인 ‘가만히 생각해보다’는 집중력을 길러주는 한 마디 진언(眞言)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수행(修行)에까지 나아가게 하는 실행력이 분명 덧대어 있다.



그렇다고 맨날 ‘가만히 생각해보라!’거나 ‘가만히 생각해보자!’를 되뇌기만 한다고 그 실행력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하게 가만히 생각해보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인 ‘가만히’와 ‘생각해보다’가 될 수 있을까? 궁리하다 결국엔 더 나은 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사선(四禪)에 근거하고 사념처(四念處)를 행하는 지관수행에 들어설 때 생활불교는 수행불교로 올곧게 전환될 수 있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2019/07/18

Socially Engaged Buddhism. King, Sallie B. 2018

Socially Engaged Buddhism. King, Sallie B.(e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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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troduction
2 Philosophy and Ethics
3 Spirituality
4 War and Peace
5 Economics
6 Ecology
7 Human Rights and Criminal Justice
8 Challenging Tradition
9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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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ly Engaged Buddhism is an introduction to the contemporary movement of Buddhists, East and West, who actively engage with the problems of the world―social, political, economic, and environmental―on the basis of Buddhist ideas, values, and spirituality. Sallie B. King, one of North America’s foremost experts on the subject, identifies in accessible language the philosophical and ethical thinking behind the movement and examines how key principles such as karma, the Four Noble Truths, interdependence, nonharmfulness, and nonjudgmentalism relate to social engagement.
Many people believe that Buddhists focus exclusively on spiritual attainment. Professor King examines why Engaged Buddhists involve themselves with the problems of the world and how they reconcile this involvement with the Buddhist teaching of nonattachment from worldly things. Engaged Buddhists, she answers, point out that because the root of human suffering is in the mind, not the world, the pursuit of enlightenment does not require a turning away from the world. Working to reduce suffering in humans, living things, and the planet is integral to spiritual practice and leads to selflessness and compassion.
Socially Engaged Buddhism is a sustained reflection on social action as a form of spirituality expressed in acts of compassion, grassroots empowerment, nonjudgmentalism, and nonviolence. It offers an inspiring example of how one might work for solutions to the troubles that threaten the peace and well being of our planet and it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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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4, 2018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I found this book to be wonderful and informative. Engaged Buddhism is simply putting Buddhist principles into practice in the world at large. Most people think that Buddhism is just about getting enlightened and feeling calm and serene. But there is more to it than that. It's not just about working on your inner self. It is about showing compassion to all beings by working to eliminate suffering both here and abroad to both humans and animals. The Buddha told us we are all interconnected and depend on multiple factors just to exist. For example, without the sun, the air, the soil, our parents, our communities, etc we would not be here. We are "interdependent" as Thich Nhat Hahn would say. So what happens to one effects all in one way or another. Therefore it is our duty to reach out and help all who are suffering. That is engaged Buddhism in a nutshell.
As a Buddhist myself I found this book engaging and well thought out. It is a must read for anyone who wants to know how to use your Buddhist values to make a difference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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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ed it it was amazing
It's hard to imagine a better book to read if you have the following questions: How does Buddhism contribute to solving societal problems ranging from poverty to the ecological downfall? What are the obstacles (and of course, the leverage) that Buddhist tradition, texts, and ideology present to Buddhists who want to tackle issues such as women's rights and the Indian caste system? Who are the socially engaged Buddhists of recent times and what have they done in their respective societies and fields of interest?

It's really interesting to see a religion at work in the real world of suffering, hunger, poverty, oppression, etc. and to observe its internal struggle to free itself from some of its limi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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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행복을 위한 불교지성들의 위대한 도전 - 아시아의 참여불교
샐리 킹,크리스토퍼 퀸 (지은이),박경준 (옮긴이)참여불교재가연대2003-06-01






603쪽
160*230mm
1146g
ISBN : 9788995433003


목차


제1장 서문: 참여불교의 기원과 양상

제2장 암베드까르 박사와 불교적 해방에 대한 해석학

제3장 TBMSG,현대 인도에서의 담마혁명

제4장 아리야라뜨네와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 운동

제5장 붓다다사 비구 : 공의 시각으로 일관된 그의 삶과 사상

제6장 사회재건을 위한 술락 시바락사의 불교비전

제7장 아시아의 여성불교인과 비구니 교단

제8장 티베트 해방운동 속에 담긴 불교의 원리

제9장 틱닛한과 '베트남 통일불교회':중도주의운동

제10장 창가학회: 조화롭고 평화로운 사회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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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샐리 킹 (Sallie b.king)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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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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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원시불교의 사회·경제사상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군법사를 역임하였고 불교문화연구원 연구원, 인하대학교 등의 강사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역서로는 <민중불교의 탐구>, <문화의 진보에 대한 철학적 성찰>, <원시불교사상론>, <불교사회경제학>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대승경전관 정립을 위한 시론>, <불교의 노동관 소고> 등이 있다.


최근작 : <불교학의 사회화 이론과 실제>,<불교사회경제사상>,<다비와 사리> … 총 5종 (모두보기)







불교학의 사회화 이론과 실제 - 삶의 예술로서의 응용실천불교학 ㅣ 프라즈냐 총서 44
박경준 (지은이) | 운주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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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회경제사상
박경준 (지은이)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10년 11월
20,000원 → 19,000원 (5%할인), 마일리지 1,000점 (5% 적립)





지구를 구하는 경제학 - 불교로부터의 제언
이노우에 신이치 (지은이), 박경준 (옮긴이) | 우리출판사(서울출판) | 2008년 10월
10,000원 → 9,000원 (10%할인), 마일리지 500점 (5% 적립)
(1) | 세일즈포인트 : 48
절판
BOOK

Socially engaged Buddhism / Sallie B. King.c2009

Sallie B. 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