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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4

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1,2,3) 에큐메니안

왜 교토학파인가 - 에큐메니안


왜 교토학파인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1)

이찬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07 


앞으로 이어질 이찬수 교수님의 “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는 지난 2월16일 한국문화신학회ㆍ기독교통합연구소ㆍ난잔종교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계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한 주신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김승철 소장님과 이찬수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교토학파(京都學派, Kyoto School)는 불교적 입각점 위에서 서양철학을 창조적으로 소화해냄으로써 지금까지는 없거나 미미했던 새로운 논리를 창안해냈다. 그로 인해 서양 철학자의 눈에는 가장 대표적인 동양철학 학파로 자리매김했고, 일본의 철학 수준을 세계적 차원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단순히 철학자들의 순수한 연구 모임으로 그친 것은 아니다. 본의든 본의 아니든, 교토학파 사상가들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군국주의 혹은 침략전쟁의 정당화에 기여했다는 비판적 평가도 받고 있을 만큼, 이들의 사상은 일본 및 동아시아 근대의 정치 지형의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정치적 영향에 대한 분석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흐름

하지만 교토학파는 어디까지나 학자들이 이끈 철학적 ‘학파’이다. 따라서 그 학문적 넓이와 깊이에 대한 분석과 사상적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특징부터 요약해보자.

교토학파는 서양의 존재(Being) 혹은 실체(essence/substance) 중심 논리의 한계 내지 불철저성을 비판하면서, 불교적 공(空, Emptiness) 혹은 절대무(絶對無, Absolute Nothingness)의 입장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Heart Sutra)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에 담긴 “즉(卽)의 논리”(Logic of Soku)를 서양철학의 언어로 규명해낸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교토학파의 개조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Nishida Kitaro, 1870-1945)는 “공(空)의 장(場)”(Field of Emptiness) 안에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이른바 “장소적 논리(場所的 論理, Logic of Place)”를 창안했다. 이러한 니시다(西田)의 언어와 사상이 제자들에게 계승되면서 일단의 학문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 교토학파의 개조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Nishida Kitaro, 1870-1945) ⓒGetty Image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Nishitani Keiji), 타나베 하지메(田邊元, Tanabe Hajime),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 Hisamatsu Shinichi) 등 후학들은 스승인 니시다(Nishida)의 사유를 계승하면서도 저마다 독특한 입장을 펼쳤다. 이들의 입장을 한 마디로 획일화시킬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사상적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니시타니(西谷, Nishitani)는 니시다의 철학적 틀을 이용해, 니체(F. Nietzsche)의 허무주의가 도달하지 못한 그 극단의 지점을 “공의 장”(Field of Emptiness)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세계가 허무주의적 방랑에 머물지 않고 도리어 허무를 관통해 철저하게 긍정될 수 있는 논리를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선사(禪師, Zen Master)이자 학자인 히사마츠(久松眞一, Hisamatsu)는 일체의 유신론적 형태를 거부하고 자신의 깨달음 체험에 근거해 철저한 무신론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는 세상만사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최후의 의지처를 타파함으로써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선사상-“萬法歸一歸何處”(『碧巖錄』 第45則)-의 현대적 표현이 철저한 무신론이라고 해석했다.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는 『금강경』(金剛經, Diamond Sutra)에서 따온 표현인 “즉비”(卽非, Sokuhi)의 개념을 활용해 “즉비의 논리”(Logic of Sokuhi; Logic of self-identity in self-negation)를 창안했다. 이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대립과 차별[非]을 넘어선 절대긍정의 세계, 다시 말해 ‘즉(卽, 긍정, identity)’이 그대로 ‘비(非, 부정, negation)’인 세계를 규명하고자 했다.

이들이 대체로 선(禪의, Zen) 입장에서 서양철학을 포섭하고자 했다면, 타나베(田邊元)는 정토진종(淨土眞宗, Jodo Shinshu)의 시각을 중시했다. 그는 공(空)과 역사를 직접 동일시하기보다는, 공이라는 보편적 진리와 역사적 구체화 사이의 ‘매개’(媒介, mediation)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부각시켰다. 공이 그대로 색(空卽是色)일 수 있는 근거, 절대 진리의 세계와 구체적 현실 세계 사이의 상즉성(相卽性, inter-identity)은 인간의 자기부정적(自己否定的, self-negational)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매개’의 철학(philosophy of mediation)을 전개했다. 그의 입장은 제자 타케우치 요시노리(武內義範, Takeuchi Yoshinori)를 통해 계승되었다.

교토학파의 사상적 기반, 선불교

이들 간에 강조점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토학파는 불교적 입각점, 특히 공(空)의 입장에서 서양 사상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면서 세상과 역사의 존재 원리를 긍정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서양철학의 언어를 사용해 불교적 세계관을 살리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을 시도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서양철학 안에서 불교적 정신을 찾기도 했다.

니시타니(西谷, Nishitani)와 우에다(上田, Ueda) 등 많은 이들이 에크하르트(M. Eckhart)의 신비주의와 같은, 선(Zen)과 통할 수 있는 부정신학적(否定神學, negative theological) 흐름을 중시하고, 성서를 자주 인용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서양 사상의 근간에 있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배후’(背後)를 드러내면서, 그곳에서 동양 전통과의 유사성을 보되, 동양 사상의 우월성, 그리고 일본 철학의 보편성을 강조하려는 내심도 들어 있다. 서양적 정신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논리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지 못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이 컸다.

그런 까닭에 이들이 종횡무진 사용하는 서양의 언어 속에서도 빛나는 것은 언제나 동양적, 불교적, 특히 선적(禪的) 정신이다. 그것도 좁혀 말하면, 일본 안에 흐르고 있는 대승불교적 정신이다. 공(空, Emptiness)의 철학을 통해 현실세계, 즉 색(色, Form)의 세계를 긍정하는 논리를 현대화시켰다는 데에 이 학파의 사상사적 의미가 지대하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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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 입체적이지 못하다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2)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22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교토학파는 존재 중심의 서양적 논리가 전제하고 있는 그 최종적인 지점을 서양철학의 언어로 타파했다. 그리고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동양적 논리를 정립했다. 서양의 종교 및 철학자들은 교토학파 사상가들이 서양철학의 언어로 구체화시킨 동양적 논리를 통해 특히 불교철학의 심원함을 다시 보게 되었다.

교토학파의 철학은 불교의 사상적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오던 한국의 일부 종교학자들에게도 한국의 사상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서양적 세계관까지 통합할 수 있는 한국적 논리를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가진 한국의 연구자는 아직 소수에 그칠 뿐만 아니라, 교토학파 수준의 논리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한 상태이다. 존재 중심의 서양적 사유와 존재에 매이지 않는 동양(특히 불교철학적)의 사유가 별도의 장에서 공존하고는 있지만, 공존의 ‘논리’가 충분히 성립되었거나 온전한 ‘융합’의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의 연구 분야, 종교계가 압도적

이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교토학파가 한국 종교 및 종교철학 관련 학계에 어느 정도 소화되고 있는지, 연구의 전망은 어떤지, 그리고 교토학파 연구와 관련하여 어떤 과제에 직면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가늠해보고자 한다. 정치학 및 문학자 등에 의한 교토학파 관련 논문들도 일부 출판되어 있지만,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사상에 대한 연구는 종교 관련 학자들에 의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많다. 실제로 관련 단행본들은 대부분 종교 및 종교철학적 저술이나 번역서들이다. 이것은 교토학파가 기본적으로 종교 혹은 종교철학의 언어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는 신학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의 작업이 불교적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에 의한 것보다 더 많다. 한국에서 교토학파 연구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두던 신학자들이 먼저 시도했고, 신학적 지평을 불교적 세계관에 어울리도록 확장하면서 ‘한국적 신학’을 확립하려는 의도의 표현이기도 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형식과 언어를 넘어서는 더 보편적인 언어를 추구하는 이들에 의한 모험적 시도들도 있었다.

교토학파의 난해한 언어 이해가 관건

그렇기는 하지만 교토학파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교토학파 연구는 질과 양 모두에서 여전히 초보 단계이다. 무엇보다 교토학파를 입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한국인 전문 연구자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아직 한국인에 의한 교토학파 전반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여타의 일본 사상 연구에 비해, 교토학파에 대한 한국인의 연구 성과나 연구자들은 소수에 머물고 있다.

▲ Nishida Kitaro with staffs and students around 1913(K. Nishida, Nishida Kitaro Zensyu, Vol.14 [Tokyo: Iwanami Syoten, 1951]) ⓒhttp://www.kyoto-u.ac.jp/cutting-edge/cutting_edge/page32.html


이것은 순수한 종교철학 연구가 학계의 주류에서 더 주변으로 밀려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교토학파 사상가들의 심층적이고 종합적이며 난해한 언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의 철학적, 불교적, 신학적 이해가 종합되지 않고서는 교토학파의 논리의 심층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불교적, 신학적, 순수 철학적 연구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류에 편승한 실용주의적 연구가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교토학파 전문 연구자들이 더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교토학파의 사상사적 의미가 종교나 철학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교토학파의 일본 및 동아시아의 정치사적 의미가 적지 않고, 전술했듯이, 한국에서도 일부 정치학 혹은 문학자들이 이 부분에 관한 연구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교토학파의 시대적 의미와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고찰하는 연구도 그 자체로 중요한 작업들이다.

하지만 교토학파는 기본적으로 종교 및 철학적 연구 체계로서, 이 학파의 철학 및 논리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런 영향력의 근원을 간과하는 표층적 연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교토학파의 종교철학적 논리와 학문적 종합성 및 정치사회적 영향력까지 두루 소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에 부족한 점

그런 척도로 본다면,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는 여전히 그 심층까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의 영역에 머물고 있거나 각종 연구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종교 관련 연구자조차 교토학파의 내밀하고 심오한 철학적 언어를 충분히 소화하기는 간단하지 않은 마당에, 종교 관련 연구자들이 교토학파의 일본 및 동아시아의 정치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힘에 부치는 일이다.

일본의 정치사적 언어에 익숙한 정치학자가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서양철학의 존재론과 일치시키는 교토학파의 논리와 섬세한 언어를 충분히 따라가기는 더욱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글에서 한국 내 종교 관련 연구자들에 의한 연구를 중심으로 보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종교철학자 중에서도 대체로 신학적 배경을 지닌 이들에 의한 연구가 좀 더 많다. 일부 불교학자들이 교토학파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불교학자는 교토학파의 서양철학적 혹은 신학적 언어를 충분히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신학자는 대승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토학파의 엄밀한 언어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는, 연구자의 관심에 따라 단편적으로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종합적이고 심층적으로 정리한 본격적인 단행본 출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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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3)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29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 기독교권에서(아마 전 영역에 걸쳐서도) 교토학파를 다루었던 최초의 인물은 최태용(崔泰瑢, 1897-1950)으로 보인다. 그는 1920년부터 일본에 유학하면서 기독교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1924년 귀국 후 한국의 기성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을 했다.(1)

▲ 최태용 목사는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일본 교토학파의 사상을 수용하고 이론화 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다. ⓒGetty Image


최태용의 교토학파 수용

1928년에 다시 도일해 메이지 가쿠인 대학(明治學院大學)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토학파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32년 귀국 후에 썼던 그의 글에는 니시다 기타로(Nishida Kitaro)가 말하는 장소론을 차용해 “아담의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장소에로의 옮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구조가 니시다의 장소론 혹은 행위론과 거의 같다. 1936년도에는 니시다의 “절대모순적 자기동일”의 논리에 기대서 “다수와 한 개체는 부정적 관계”에 있으며 “한 개체 즉 다수”라는 논리를 통해 여러 ‘교파들’과 전체로서의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했다.

나아가 1946년 해방 정국에서 한국적 국민운동론을 만들고 실제로 국민운동을 펼치는 과정에 교토학파 사상가들의 제국이론을 차용하기도 했다. 최태용이 자신의 논리가 교토학파 철학자들에게서 왔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고, 그가 교토학파 자체를 연구했거나 체계적으로 소개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운동에 뛰어든 1940년대 후반의 강의록 『新國家觀』에 스즈키 시게타카(鈴木成高), 타나베 하지메(田邊元), 미키 기요시(三木淸)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상 안에는 분명히 교토학파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이미 1930년대에 교토학파의 논리를 일부 소화해 ‘국민’과 ‘국가’, ‘교파’와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하고,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국민 통합을 통한 국가 구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구체적으로 농촌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던 그의 전력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홍정완, “해방 이후 남한 ‘국민운동’의 국가·국민론과 교토학파의 철학”(2010)에 잘 소개하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변선환 교수의 본격적인 교토학파 연구

한국 전쟁기를 지나 이른바 근대적 학문이 본격 시작될 때까지 한국에서 교토학파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 교토학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선구자는 변선환(邊鮮煥, 1927~1995)이다. 토착화 신학 및 아시아 신학의 확립을 위해 종교간 대화를 시도했던 변선환은 스위스 바젤대학(University of Basel)에 늦은 나이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1976)에서 자신보다 젊은 일본의 신학자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1932~)의 신학을 다루었다.

▲ 일본 교토학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작고하신 고 변선환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Getty Image


귀국 후 감리교신학대학에 재직하면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아베 마사오(阿部正雄) 등의 사상 전반을 한국 신학계에 소개했다. 그 영향력 하에서 최범철(崔範澈)이 석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절대무와 한스 발덴펠스의 겸허신학”(1986)를 발표했다. 또한 김광원(金光源)은 “발덴펠스의 생애와 사상”(1988)이라는 제목으로 불교와 소통할 수 있는 신학적 입장을 소개한 소논문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변선환의 직·간접 제자인 김승철( 金承哲), 이찬수(李贊洙) 등이 교토학파 사유체계를 중심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를 시도하면서, 점차 한국어로 된 본격적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토학파 관련 서적들의 번역과 출판

▲ 변선환 교수의 제자로 교토학파의 서적을 번역·출판하는데 가장 공을 쏟은 일본 난잔대학의 김승철 교수 ⓒ에큐메니안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와 관련하여 가장 획기적인 일은 1990년대 초·중반 불교계 출판사 ‘대원정사’(大圓精舍)가 후원하고 변선환(邊鮮煥), 김승철(金承哲) 등 기독교 신학자가 번역에 참여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총서’가 발행되었던 일이다.

이 때 교토학파 관련 주요 저술들, 특히 
  •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의 『종교란 무엇인가』(1994), 
  • 한스 발덴펠스(Hans Waldenfels)의 『불교의 空과 하나님』(1993)이 번역되었다. 
또한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의 『無神論』(1981)을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타키자와 카츠미(瀧澤克己), 오다가키 마사야(小田垣雅也) 등의 신학적 응답과 엮어서 번역한
  •  『無神論과 有神論』(1994)이 번역된다. 

그리고 아베 마사오(阿部正雄)가 20여 년에 걸쳐 쓴 주요 논문들을 묶어 번역한
  •  『禪과 現代哲學』(1996), 
  • 『禪과 現代神學』(1996), 
  • 『禪과 宗敎哲學』(1996)이 출판된다.

마지막으로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의 『바울과 정토불교, 예수와 선』(1998)이 번역되어 모두 8권의 주요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교토학파가 본격 연구될 수 있는 기초가 놓이기 시작했다. 필자도 이 가운데 아베 마사오(Abe Masao, 阿部正雄) 저술의 한국어 번역에 참여하기도 했고, 그의 글들에서 사상적 도전을 제법 받기도 했다.

이 가운데 위 8 권의 책의 절반 가량을 한국어로 소개한 이는 김승철(金承哲)이다. 김승철의 노력으로 교토학파(京都學派)가 한국의 일반 종교 관련 연구자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김승철은 교토학파의 논리를 매개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의 이론적 심층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출판사 사정으로 이 시리즈가 폐간되면서(2) 교토학파가 더 많은 이들에게 좀 더 깊게 소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이 출판물들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교토학파의 사상적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고, 소규모지만 후속 연구로 이어졌다.

▲ 변선환 교수와 김승철 교수 등에 의해 번역된 출판된 교토학파 관련 서적들. 하지만 출판을 맡았던 대원정사의 폐간되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에큐메니안


미주
(미주 1) 이것은 1935년 ‘기독교조선복음교회’(Korea Evangelical Church)라는 교단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미주 2) 불교전문 출판사에서 기독교 및 신학과 연관된 책을 내는데 대한 교단 내부의 오해 및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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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 이찬수 특강 6.25.일.오후3시 zoom 380-389-5679

(3) Philo Kalia - <초대>현신가나안교회 주일 모임 및 가나안 정모 안내 내일은 주일입니다. 내일은 현대신학에... | Facebook

12 m 
<초대>현신가나안교회 주일 모임 및 가나안 정모 안내

내일은 주일입니다. 내일은 현대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현신가나안교회가 모이는 주일로서, 

이찬수 박사님(전 보훈교육원장)을 모시고 종교신학 특강을 갖습니다. 형편되시는 분들은 충무로 사랑방에 많은 참여바랍니다. 샬롬!
*이찬수 박사님은 학위논문부터 지속적으로 
종교신학 및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의 최전선에서 연구한 학자이며 실천가입니다. 
이 분야에 관한 이찬수 박사의 저서 2권과 역서 2권을 사진으로 소개합니다. 
아래
1. 일시: 2023.6.25.일.오후3시
2. 장소 및 접속: 충무로 사랑방+zoom(ID:380-389-5679)

3. 주일모임진행
1부: 주일성찬예배
2부: 현대신학특강 (강사: 이찬수 박사. 주제: 종교신학)
3부: 가나안 정모(정기모임)일 코이노니아
현신가나안교회









야기 세이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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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Absolute: The Dialogical Future of Religious Reflection Paperback – 1 May 1990
by Leonard Swidler (Author)
5.0 out of 5 stars 2 ratingsAfter the Absolute: The Dialogical Future of Religious Reflection
Leonard J. Swidler



Professor Leonard Swidler is a global theologian who has pioneered and contributed to the field of interfaith Dialogue for more than 50 years. He has been a professor of religion at Temple University since 1966. He is currently the Editor-in-Chief of the ecumenical research journal and the founder and director of the Dialogue Institute. He has written more than 200 papers and 90 books. Buddhism Made Plain (1996) and After the Absolute (Dialogical Future of Religious Reflection, 2003) have both been translated into Korean. Dr. Swidler has contributed to establishing the theoretical foundations of global ethics with Hans Küng since the 1990s, and the Dialogue Decalogue for his proposed interfaith Dialogue has been translated into many languages today. It is described by many as the most convincing theoretical basis for conducting Dia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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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0

「교토학파와 일본 기독교의 문화내개화의 시도」대한 리뷰(야규마코토) : 콜로키움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교토학파와 일본 기독교의 문화내개화의 시도」대한 리뷰(야규마코토) : 콜로키움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교토학파와 일본 기독교의 문화내개화의 시도」대한 리뷰(야규마코토) 관리자 2017.07.25
첨부파일0추천수0조회수701



「교토학파와 일본 기독교의 문화내개화의 시도」에 대하여2 MONTHS AGO BY 무영 정 IN 다시 개벽이다 TAGGED: 개벽, 개벽신문, 개벽신문 63호, 개벽하는 사람들, 원광대학교, 콜로키움


* 이 글은 개벽신문 63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제5회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대학중점연구 콜로키움

야규 마코토(柳生眞)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지난 3월 17일,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제5회 대학중점연구 콜로키움이 개최되었다. 이번 콜로키움에서는 <교토학파와 일본 기독교의 문화내개화(文化內開花)의 시도>라는 제목으로 일본 난잔대학(南山大學) 난잔종교문화연구소의 김승철(金承哲) 교수를 발표자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이찬수 HK연구 교수를 토론자로 모시고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 학파인 교토학파(京都學派)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의 일본에서의 토착화, 일본 문화와 기독교 사상과의 조화·융합 시도, 기독교와 불교사상 혹은 자연과학과의 대화에 대해 논의했다.

교토학파(京都學派)는 교토대학(京都大學)을 중심으로 활약한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 1870~1945)와 그의 제자들로 서양의 사상·철학·종교와 동양(혹 일본)의 융합을 시도한 학파로 잘 알려져 있다. 교토학파는 크게 그 내용이 다양하고 종교색이 강한 우파(右派)와 마르크스주의에 접근한 좌파(左派)로 나뉘는데 이번 발표에서는 교토학파 우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사상의 일본 토착화, 기독교와 불교의 사상적·철학적 융합 시도에 대해 다루어졌다. 김승철 교수가 발표에서 문화 내 ‘개화(開花)’라고 쓴 것은 일본이라는 ‘토양’에서 바깥에서 들어온 기독교라는 ‘씨앗’을 어떻게 뿌리내리게 하고 키우고 꽃피우게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일본 기독교의 특수성
일본의 기독교 포교는 1549년 성 프란시스코 자비엘이 전국시대 일본에 와서 로마가톨릭 선교를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금교령을 내린 이래로 도쿠가와 막부는 에도시대를 통틀어서 기독교 포교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네덜란드를 제외한 모든 서양국가와의 외교·통상 관계를 전면 금지시키고 철저한 기독교 탄압정책을 취했다. 1853년에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의 내항으로 인해 도쿠가와 일본이 개국했다. 그 이후 일본에 오는 서양인이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믿거나 서양인끼리 성당·교회를 가지는 것은 허락되었으나 일본인이 기독교를 믿거나 일본인에게 포교하는 것은 계속 금지되었다.

심지어 유신 초기의 메이지정부(明治政府)도 애당초 기독교 탄압 정책을 계승했고 가쿠레 키리시탄(숨은 기독교신자. 몰래 가톨릭 신앙을 지키던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다. 서양 각국의 압력과 비판을 받고 메이지정부가 기독교 탄압을 중지한 후에도, 또 대일본제국헌법(1889년 공포, 1890년 시행)으로 신앙의 자유(제국헌법제28조)가 보장된 이후에도 일본 기독교는 늘 반일본적이고 반국가적인 종교라는 이유로 사회 지도층, 보수층의 반발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 사이에 기독교에 입신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일본의 문화적 토양에 뿌리내리게 하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1945년의 패전 후 일본국헌법에서는 “국가의 안녕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이라는 규정이 없어지고 완전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었다(일본국헌법 제20조 제1~3항). 그 후 옛날과 같은 기독교에 대한 시기와 적대감, 경계감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기독교(가톨릭, 성공회 등도 포함해서) 신자 수는 일본 인구 약 1억2천만 명 중 불과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 혼합적인 일본의 풍토를 가리켜 흔히 “일본인은 연초에 신사(神社)에 참배하고, 기독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절에서 장례식을 지낸다.”고 농담처럼 말해진다. 기독교가 운영하는 학교나 대학, 병원도 많다.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와 같은 기독교 유래의 연중행사가 정착된 지도 오래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오늘날 일본에서 기독교는 표면적, 주변적, 부수적인 것은 잘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반면에 가장 핵심적인 유일신(唯一神) 신앙, 혹은 하나님과 1대1로 맞서는 강렬한 자아의 개념은 여전히 서양적인 것, 또는 비일본적인 것으로, 다시 말하면 일본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몇 백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낯선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기독교계 내에서는 다수파의 일본인에게 어떻게 유일신 신앙을 수용시키느냐가 계속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한편 일본을 거울삼아 기독교 스스로를 보았을 때,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너무 비타협적이고 불관용적이어서 다른 문명·문화·종교와에 갈등, 대립을 빚지 않았을까, 다종교·비기독교문화에 대해 너무 억압적이고 패권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으로 임하지 않았을까, 너무 인간중심주의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도 제기되었다. 일본, 더 나아가 아시아의 종교와 사상, 특히 불교와의 대화는 그러한 기독교의 자기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토학파의 기독교와의 대화
종교 간 대화를 추진해 온 신학자인 얀 반 브라흐트(Jan Van Bragt)는 기독교가 불교와 대화해야 할 동기에 대해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는 토착화의 동기, 즉 너무 서구 기독교를 직수입한 일본 기독교를 “일본인의 마음의 금선(琴線)에 와 닿는 예수의 얼굴을 찾아서”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알리게 한다는 동기이다. 가톨릭 문학자인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일본인 기독교도로서 영성, 죄와 구원, 그리고 “예수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나름대로 답을 제시하려 했다. 최근에 영화화된 『침묵(沈默)』에서 그려진 예수의 모습, 탄압을 견디지 못해 후미에(踏畵)1를 밟고 기교(棄敎)하려 한 선교사로 도리고 신부 앞에 예수가 나타나 “밟아라. 너에게 밟히기 위해 나는 왔다.”고 말한 “동반자로서의 예수”의 모습에는 교회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대화의 동기, 즉 소수파로서의 기독교인들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불교도와 대화하고 신학적 통로와 중계를 마련하려는 동기이다.

세 번째는 탈 서양적 형이상학의 동기이다. 이것은 지상적 존재를 정초(定礎)하려고 형성된 그리스 철학의 논리가 종교적 사실, 특히 셈족(유태)적 사고방식에 그 근원을 둔 기독교를 표현하는 데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각과 함께 그 희랍적 범주나 논리를 가지고 표현된 신학(과 그것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앙과 이성”의 대립)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구적 기독교 신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신앙과 자유와의 갈등, 대립을 불교철학의 논리를 도입함으로써 풀고자 하는 것이다.

혼다 마사아키(本多正昭)는 기독교인으로서 불교의 “즉(卽)의 논리”와 만나면서 기독교에의 입신이 단순한 불가역성(不可逆性)이 아니라, 그것과 동시에 사랑과 자유와 신뢰와 사귐은 가역성의 지평에서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에 저 불가역성이 이러한 가역성의 인(因)이라고 해야 된다고 말했다. 또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오노데라 이사오(小野寺功)는 가톨릭 신학과교토학파의 총수인 니시다 기타로 철학의 “장(場)의 논리” “절대무(絶對無)의 장소”를 접목시킴으로써 일본적 영성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니시다의 ‘장소’론은 기독교적인 ‘삼위일체가 거기에 있는 장소’(三位一體のおいてある場所)로서 파악할때, 실로 의미 깊은 해결책이 마련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일본적 영성의 실존적 자각의 논리인 ‘절대무의 장소’의 사상과, 성서와 교회의 신앙적이고 계시진리의 근본적인 논리 구조를 나타내는 삼위일체론은 가장 깊이 상접(相接)하는 하나의 진실의 사태가 된다.”고 말했다.

오노데라는 일본적 영성(靈性)을 “대지적 영성”, “대지성(大地性)”이라고 설파한 불교학자이자 일본 선불교와 선문화를 영어로 외국에 소개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와도 친교가 두터웠다. 그는 “우리들의 이성에 있어서 절대무인 근원은 기독교적인 신앙 의식에 있어서는 삼위일체적 구조를 취한다. 그리고 니시다가 말하는 절대무의 장소는 절대와 상대가 교류하는 장소, 또는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이 탄생하는 ‘장소’인 어떤 대지적(大地的) 영성(靈性)의 이념화의 시도이고, 성경의 ‘거기에 있어서 있는 장소’로써 절대자의 자기사영점(自己射映點)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하면 절대무의 근원이 기독교적인 신앙의식으로는 삼위일체론이 되고, 니시다가 말하는 절대무의 장소는 대지적 영성의 이념화임과 동시에 절대자가 스스로를 투영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가톨릭 신학과 니시다 철학, 스즈키 다이세츠의 철학을 아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학자인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도 기독교인으로서 불교를 배우고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구원이란 인간의 개인적·사회적인 본래성, 전체성의 회복이고, 그 중심은 원래 자기·자아인 인간이 자기·자아로써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지만, 이 ‘자각’은 기독교적 메시지의 중심임과 동시에 불교적 깨달음(覺)과 본질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또 야기는 “… 예수는 사람이 어떠한 교단에 속하는 어떠한 교의를 받들고 있는가가 아니라, 사람의 존재방식이 사실상 무엇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는가가 문제라고 가르쳤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배타성을 비판했다.

교토학파를 비롯한 일본의 종교철학자·신학자·사상가들의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 접목 시도는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시도한 반 브라흐트나 종교다원 주의를 주장한 존 힉(John Hick)과 같은 기독교 절대주의와 배타성에 반대한 종교 철학자·신학자와도 호응하면서 니시다의 “절대무의 장소”, 스즈키의 “대지적 영성”, 그리고 불교의 “깨달음”(覺)의 논리 등을 통해 기독교 신학과 불교와의 접목, 서구기독교의 배타성(排他性)·독선성(獨善性) 배제, 그리고 일본의 지적 풍토에의 기독교 토착화를 시도했다.

한국적 상황에서 보는 교토학파와 기독교와의 대화
일본이 근대화한 이래로 기독교 또는 서양문명·철학을 수용하거나 그것에 대응·대결할 때에는 불교사상 중에서는 특히 선불교(그리고 그것에 유래하는 니시다의 장소론, 스즈키의 대지적 영성론)를 내세웠다. (유교사상을 내세울 때는 양명학(陽明學)을 내세워 기독교나 독일관념론과 대비시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김승철 교수는그 배후에 서구 근대적 사유의 근간이 되는 근대적 자아에 대한 일본 지식층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적한다.

다만 종교다원주의의 사상적 전통과 시도는 일본만의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인도, 중국, 한국 등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던 범아시아적인 사상적 맥이다.
동서양의 사상적 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또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그때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어떤 사상이 주로 서구사상 또는 기독교를 맞이할 “호스트” 역을 맡느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승철 교수는 불교의 경우 한국에서는 한용운(韓龍雲)이 화엄사상(華嚴思想)을 내세웠고, 중국에서는 유식사상(唯識思想)이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주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찬수 교수는 “김 교수님의 발제 내용은 한국적 상황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논평하면서 “두 가지 생각거리”를 제시했다. 하나는 교토학파의 니시다의 수제자이자 니시다철학의 비판자인 타나베 하지메(田邊元)의 사상이다. 타나베는 니시다의 “즉(卽)”의 논리에게는 “매개”가 결여되고 있어서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할 적에 공(空)을 색(色)과 “즉(卽)”하게 해주는 매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매개를 중시하지 않고서는 절대무가 자기를 한정해 사물의 세계로 나타나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식의 근저에서 “인식하려는 의지(Willezur Erkenntsis)”가 도덕적 실천을 통해 인간적 오성과 신적 직관을 연결하는 매개로 적용한다고 지적했다.

타나베는 일본 정토진종(淨土眞宗)의 개조인 신란(親鸞)의 사상을 들어서 아미타불(阿彌陀佛), 그리고 그 본원(本願), 중생의 신심(信心)의 세 가지를 중요한 요소로 요약할 때 “신심”은 바로 매개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극락정토에 인도하지 않는 한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는 본원을 세우셨고, 아미타불의 은총과 중생의 신심은 별개의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신심이야말로 아미타불의 본원을 구체화시켜주는 매개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신심이 없는 중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인식하고 깨달을 수 없다). 타다베는 신란의 사상에서 니시다가 보지 못했던 “매개”의 구조를 발견한 뒤 이것을 진리 체험의 타력적 차원에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교토학파이면서 니시다적인 “절대무의장”이론에 부족한 “매개”에 주목하여 독특한 구제론(救濟論)을 전개한 것이다.

또 이찬수 교수는 불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시하면서 양자 사이에는 서로 겹치는 공통성의 겹치지 않는 문화적 차이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독교만이 아니라 불교에도 역시 일종의 도그마성이 있고, 또 불교 자체가 기독교나 서양철학과 만나서 변화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제 “문화내(文化內)”가 아니라 서로가 문화의 틀을 뛰어넘는 것이 필요할 거라고 덧붙였다.

남은 과제들
종합토론에서는 “왜 한국 사람으로서 종교다원주의라고 말하고 종교회통주의(宗敎會通主義)라고 말하지 않는가?”라는 지적이 나왔다. “종교다원주의”는 오히려 하나의 신성(神性)이 다양한 모습(종교)으로 표현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다원(多元)”이라는 말은 어색하다. 그것보다 오히려 원효(元曉)의 화쟁회통(和諍會通) 이래 흔히 쓰여 온 “회통”이라는 말이 더 바람직하다는 느낌이 든다. 또 조선 시대에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청나라에서 많은 서학(西學) 서적들을 가져와 동서 회통을 시도한 적이 있고, 19세기의 최한기(崔漢綺)와 같이 자타(自他)의 통(通), 동양전통의 기철학과 서양과학과의 통, 정치의 통, 사회경제의 통, 심지어는 교(敎)와 교 사이의 통까지 포괄적으로 논리화한 사상가도 있었다. 그리고 동학(東學)의 최제우(崔濟愚)는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라고 하는 기독교와도 불교, 또는 유교와도 완전히 다른 영성론을 주장했다. 이렇듯 한국에는 깊고 오래된 사상적 전통이 있고 서구 기독교와의 대화도 충분히 가능한 역량과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쪽에 더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이번 회의에 청중으로 참석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26년간 교토포럼을 주재해 온 경험에서 “대화할 때 대화자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가장 일본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일본과 대화했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 내 개화”라는 대목에 대해서도 일본은 외부의 문화·사상을 받아들여서 자기 토양 속에 끌어들여서 “개화”시키는 것은 잘 해왔기 때문에 이제 문화의 문화 사이의 “문화 간 개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교토포럼을 하면서 교토학파의 학자들과 늘 논쟁을 벌여온 것이 바로 니시다 철학의 “절대모순(絶對矛盾)의 자기동일(自己同一)”의 논리였다고 한다. 이 논리는 필경 동화(同化)의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 필요한 것은 한사상·한철학이 지니는 “절대모순의 자타상생(自他相生)”의 논리, 즉 자기와 타자가 모순이 있어야 오히려 서로, 함께 산다는 논리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석
1 후미에는 예수 또는 성모마리아를 부조한 동판을 가리킨다. 에도시대에 몰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천

2023/06/08

Taechang Kim 何のために生きるのか - '神さま', '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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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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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何のために生きるのかという問い掛けに直答するのは
稲盛和夫氏.

"旅立っていく私のたましいをより美しいものにしたいという気持ちがあるのです.
それがどうも神さま、あるいは自然が、われわれに与えてくれた '人生の意味' なのかもしれないとおもいます." ( p. 127 )

"どうも考えてみれば、生まれたときに頂戴してきた私のたましいというものは、まだまだ未熟だったかもしれない. しかし、この厳しい現世の荒波にもまれながらたましいを磨いて、死ぬときには、生まれたときのたましいよりも、もっと美しいものにしておきたい. 死というのは肉体の死ではあっても、たましいにとっては永遠の旅立ちだと私は思いますので、その旅立っていく私のたましいをより美しいものにしたいという気持ちがあるのです. それがどうも神さま、あるいは自然が、われわれに与えてくれた '人生の意味' なのかもしれないと思います. 私の会ではそういうことを話して、だから経営者として自分が存在するのであれば、、少なくともみんなを幸せにしてあげられるような経営をしていこうな、というようなことを言っているんです."
( pp. 128-129 )

"私の人生の目的は、死を迎えるときに、私の 'たましい'
がさらに磨かれて美しくなっているのかどうか. それだけが人生の目的だと思うものですから、あらためてこの人生のなかで自分のたましいを磨いていくことをしようと思っているんです."
( p.170 )

わたくし自身の生死観とかなり近似しているのでよく
共感共鳴出来る. わたくし自身の哲友飛岡健博士のユーモア溢れる言い方をすれば、ピンピンキラキラコロリの真髄かな?

Kyoshi Yamamoto

生涯、智慧と徳と正義を求め、魂の浄化に励んできたソクラテスが、死の直前に語った言葉(プラトン著「パイドン」参照)、その晴れ晴れとしたた境涯と、稲盛氏の「魂をより美しく」という求道心とが共振しているように感じました。


Taechang Kim
rntsdopoSeu662ug6ia8tu0f09fh0487aml8i91ul8l63mci131hml30i026 ·






Taechang Kim信仰における '神さま' と哲学における '神' とは結局同じなのか、あるいは全く違うのか、違うのであればどう違うのか、よく考えて見ようと提案したい.


Yasuhiro Takeda

比ゆ的い言えば、神とは、わたし自身の存在のこと。
私が生きている実感・不思議・面白さ・驚異・驚嘆・驚愕。外には何もない。
神への畏れ?神への感謝?神への愛?そういう類の言葉は、人間最大の虚妄で哀しい。
ありのままの私の存在の言葉にならぬ不可思議と悦び。なんという幸せ。

2023/06/07

Philo Kalia - Robert Powell, Christian Zen: 『선과 그리스도교』, 심광섭 역

Philo Kalia - Robert Powell, Christian Zen: The Essential... | Facebook


Robert Powell, Christian Zen: The Essential Teachings of Jesus Christ,
『선과 그리스도교』, 심광섭 역
(서울: 예술과영성, 2023) 소개 및 서평


도마복음서에 관한 국내의 저서나 역서들이 신약성서 학자보다는 종교학자, 철학자, 영성가들이 출간한 책들이 주종을 이룬다. 
본 역서의 저자 로버트 포웰도 이력에서 나타나듯이 인도 힌두교 영성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핵심 개념은 ‘비이원론’(advaita, 不二)이다.

도마복음서의 부제가 “예수의 비밀말씀”인데 저자는 예수 말씀의 비밀을 열 수 있는 적절한 열쇠를 제대로 적용하여 이해하면 예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무시간적인 ‘비이원성’(Advaita, non-duality)의 가르침으로서 
세계의 위대한 모든 종교들의 내적 의미를 은밀하게 표현한 것이다.
......

예수께서 친히 자신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에게 그저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히 경고한다(특히 62절과 93절을 보라).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오늘 모든 말씀의 표현에 들어있는 ‘비이원성’(advaita, 不二)을 세상에 밝힐 만한 시점이 도래했다. 

말씀의 밀의주의로부터 더욱 일반적으로 접근 가능한, 다시 말해 말씀을 어떤 방식으로든 변형시키려거나 의미를 떨어뜨리려는 시도 없이 자연스럽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수는 그의 가르침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분명하게 말씀한다. 
그의 가르침은 감각적 기관을 통해 경험되거나 정신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르침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말하자면, 

“나는 너희에게 눈으로 결코 보지 못한 것, 
귀로 결코 들어보지 못한 것, 
손으로 결코 만져보지 못한 것, 
사람의 마음에 결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을 줄 것이다.”
(17절 말씀). 

이 관점에서 보면 예수의 말씀은 
끝없는 추론이 아니라 
  • 직관을 강조하는 선(禪, Zen) 
  • 모든 지적 개념을 넘어가는 
  • 자기 입증적인 초월적 진리에 대해 
  •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통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을 말한다는 것
저자의 해석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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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도약해보면...

도마는 12제자들 중 베드로 요한 야고보처럼 늘 지근거리에서 예수를 동행했던 코어 그룹에 속하는 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롯 유다처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가 예수를 적군에 팔아먹은 제자도 아니다. 공관복음서에는 ‘도마’가 제자들의 명단에만 나온다. 유독 요한복음서만이 네 차례 언급한다. 그것도 소극적이거나 회의적이거나 약간 부정적인 어조로 도마를 소개한다.

⑴ 나사로의 죽음 현장에 출발하기 전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무엇을 믿게하고 싶다고? - 나사로가 결코 죽지 않았다, 그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고 말하였다”(11:16) - 부정적, 절망적

⑵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는니라(14: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14:5) 질문하는 도마-> 14:6

⑶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요 21:2)

⑷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20:25)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μὴ γίνου ἄπιστος ἀλλὰ πιστός, Do not be unbelieving, but believing"(20:27)

교회는 전통적으로 의심은 불신이고 죄의 결과라고 가르쳐 왔다. 죄와 의심은 모두 소외상태의 표현이기 때문에 의심을 금지한다. 그러나 죄의 결과로서의 의심이 아니라 믿음의 한 요소로서의 의심도 있다. 
폴 틸리히는 “신앙이 믿음으로 이해된다면 비판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앙이 궁극적 관심이라면 의심과 비판은 필연적 요소이다. 신앙은 무한자에 대한 경험이고 교제이다. 신앙은 의심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정복하는 용기이며, 의심을 제거하지 않고 그것을 신앙의 요소로 취한다.”고 말한다.

요한복음과 비슷한 점도 많으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요한이 믿음을 강조한 데 반해 도마복음은 일관되게 ‘비밀말씀’을 강조한다. 
이 비밀말씀은 한편으로 궁극적 실재인 ‘空’과 ‘無’라는 존재론적 차원을 말하고 
다른 한편 실존적 차원인 ‘깨달음’(gnosis)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 비이원성의 자각은 깨달음의 자각과 같다. 
  • ‘空’은 텅빔이고 텅빈 온통이고 열려 있음 그 자체이다. 
  • 텅빈 온통으로서의 없음(無)의 상태는 한마디로 ‘깨끗함’이다. 
  • 모든 이원론적 끝(대극점)이 완전히 다 깨뜨려진 가이-없는 상태인 것이다. 
  • 모든 끝(대극성, 양극성, 이원론, 모순, 변증법)을 다 깨어버리는 부정 그 자체의 체험이 바로 ‘깨달음’이다. 
  • 나 자신의 끝(한계)까지도 깨져 다다르게 된 체험이 곧 ‘깨달음’이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이 깨지고 나 자신도 깨져 존재하는 것 속에 빠졌던 상태에서 깨어나 이제 비로소 나의 근원이고 바탕인 텅빈 온통 하나와 하나되는 체험이 곧 ‘깨우침’이다.
(이기상, <다석과 함께 여는 우리말 철학> 참조)

깨달음의 체험은 심오하고도 광활하다. 깨달음을 통해 내 속에 살아 계신 하느님(한얼), 내 속에 있는 참나(얼나)를 봄으로써 새 생명으로 태어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요 20:18). 이런 맥락에서 도마의 의심은 믿음을 뚫고 이러한 깨달음의 지혜에 가닿게 하는, 믿음과 비이원성의 지혜에 도달하는 의심이다.
 
요한복음은 도마를 통해 ‘믿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도마를 통해 ‘믿음’을 칭송한 요한복음도 막달라 마리아가 “내가 주를 보았다”(요 20:18)는 바로 이 ‘봄’(見, 觀)의 차원을 잠시 간과하고 있다. 
처음에 육안으로 보려고 했던 도마는 불신의 도마로 비난받지만 주님의 허락으로 안목의 욕망이 세례를 받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으로 변화한다. 
그렇지만 요한복음에는 봄(깨달음)과 믿음의 이원론이 여전히 남아 있다. 
도마복음은 바로 이 이원론을 넘어선 것이다. 

도마복음은 실재를 공(0)과 총체성(∞)으로 보는 비이원론의 不二적 세계로 돌파한다. 그 세계는 견인성(見人性, 얼나)과 견신성(見神性, 한얼)의 상호내주(Schechina)와 사귐(Perichoresis)이 무위이화(無爲而化)하는 見性의 세계, 곧 空(0)의 세계이며 하나님 나라(∞)의 세계이며, 풍성한 생명의 세계이다.
 
불이적 세계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산 아이를 둘로 나눌 수 없는”(왕상 3:25) 생명의 세계, 하여 우리는 생명을 선택하라는 주님의 말씀(신 30:19)을 따를 수밖에 없는 불이적 세계이다. 
저자가 도마복음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마술열쇠로 제시한 아드바이타는 
최근의 기후위기나 포스트(트랜스)휴먼, 신유물론(인류세의 철학, 사물철학/신학, 객체지향적 존재론), 정동(affectus)이론 등의 이론과 함께 생명신학과 생명운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실재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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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ung Sun Jung
    동의합니다. 불이의 세계라는 게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의 근원 진실이라 봅니다. 불이는 불일을 전제하고, 불일은 불이로 나아나는 것 아닐른지요.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리 정리해서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 Philo Kalia
      정병선 아~~! 감사합니다. 이런 동의와 지지를 받으면 천사의 보호를 받는 느낌입니다. 계속 성원해주십시오.



  • Taechang Kim
    심광섭목사님의 말씀글들을 읽으면서 그 동안 몰이해와 무반응 가운데서 고분진력했던 同学哲友들(예컨데 이기상 김상일 )의 형설지공을 잊지않고
    공공지로 승화발전시키려는 공공하려는 의지가 느껴져서 흐뭇합니다. 한가지만 엿주어보고 싶은 건 공(空 0)과 무한(無-限 ㅇㅇ)도 不二不一가 아닐까, 그래서 서로 다른 차원처럼 표기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염려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일체의 차단 차별 차이의 장벽을 깨붓음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데서 이룸(=깨달음)이라 여기고 그 경지의 실상은 율곡의 성학집요에 나오는 "聴於無声、視於無形" 이 아닐까 체감되는데요.

    Philo Kalia
    Taechang Kim
    (1) 저도 공과 무한에 대해서 선생님과 생각을 같이 하고 싶은데, 그래서 "空(0)의 세계이며 하나님 나라(∞)의 세계이며, 풍성한 생명의 세계이다. "라고 썼습니다. 그렇지만 不二不一이 늘 진동으로 다가옵니다. 살아 있는 긴장이랄까요; (2) "聴於無声、視於無形" 사실 영적 감각론에서 도달하고자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Taechang Kim
    Philo Kalia
    불이불일이 진동으로 다가온다는 말씀글이 저 자신의 생명감각에 공진공명을 이르킵니다. 불이불일은 평온한 静態가 아니라 살아 진동하는 動態로 체감되기 때문입니다.

    유용선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신앙과 종교심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깨달음이 신앙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도마복음 연구회 창립과 번역서 복간은 그 어두운 눈에 길잡이 등불이 되어줄 거예요. 가는 길에 화나고 답답한 순간도 많겠지만요.
    2
    • Philo Kalia
      유용선 강고한 교리, 제도, 관습으로 똘똘 무장한 자들과는 그 어떤 소통도 불가능한 경험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다른 사안들을 통해 교류의 길을 발견하리라 소망합니다.
  • 조용현
    도마복음은 외경 중의 하나로 영지주의자들의 교과서로만 알아서 가까이 하면 안될 저서 쯤으로 알았는데, 다시 보아야 할 지혜와 복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Philo Kalia
      조용현 네, 맞는 생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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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禪)과 그리스도교 -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 가르침 | 도마복음 연구 시리즈 3
      로버트 포웰 (지은이),심광섭 (옮긴이)예술과영성2023-06-02



      기독교 일반 주간 21위|
      Sales Point :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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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쪽

      목차


      저자 서문

      예수의 밀의적 유산을 열기 위한 마술 열쇠
      가르침의 범위
      사도들과 그들의 해석
      예수의 비밀 말씀과 저자 주석

      용어사전

      옮긴이 후기


      책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과 자신을 대변하는 말씀의 본질은 단지 지각된 정체성만이 아니라 인간의 참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보통 한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혀 참된 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피상적인 감각적 인상의 배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인상들로부터 생각과 개념과 이미지들과 그리고 연합된 감정들의 다중성이 구성된다. 간결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정체성은 관찰과 특정한 몸의 실존에 의존되어 있다. 그것은 분명 감각의 산물이고 증거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우리 실존의 궁극적 근거로 취한다.
      「예수의 밀의적 유산을 열기 위한 마술 열쇠」 중에서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