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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Kang-nam Oh - 내 종교만 진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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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교만 진리인가?


요즘 책 정리, 서류 정리, 통신문 정리 등을 하고 있는데, 옛날에 써서 학회에서 발표했거나 잡지에 실렸던 영어 논문이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 일반인들이 관심이 있어할 것 몇 가지를 한국어로 요약해서 페북에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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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부처님 오시는 날 조계사 앞에서 소란을 피운 일부 개신교인들을 보면서 오늘은 1983년 캐나다 종교학회에 제출했던 <Some Analogical Models for Religious Pluralism>(종교 다원주의를 위한 몇 가지 유비적 모델)이라는 논문의 요지를 올리고자 합니다.  

사실 요즘은 종교 다원주의라는 말이 곡해되기 쉬워 별로 쓰지 않고, 상호성(mutuality), 수납성(acceptance)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편리를 위해 다원주의, 다원성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겠습니다. 곡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I. 서론

 오늘날의 문화적 특성 중 하나는 종교 다원주의라 할 수 있다.  이제 종교 개혁 시대에 통용된 “cujus regio, ejus religio”(누구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그의 종교가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 통용되지 않는다.(종교 개혁 시대에는 영주가 가톨릭이면 거기 사는 모든 사람이 가톨릭 교인이고, 영주가 개신교면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개신교인이 되는 것을 두고 한 말)  우리 주위에는 여러 종류의 신앙을 가진 여러 종류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와 같은 다종교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은 일반적으로 배타주의로 표출되기 일수다.  캐나다 학자로서 하버드 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 소장을 지낸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교수는 이런 배타적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대부분의 종교 제도는 외부인들에게는 어리석거나 심지어 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기이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다....그러나 이제 이런 무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1979)
          이제 많은 사상가들이나 종교학자들은 이런 배타적 태도, 혹은 존 힉이 말하듯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던 천동설의 “프톨레마이오스 식 시각(Ptolemaic perspective)”처럼 모든 종교가 내 종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식의 믿음은 오늘처럼 다문화적이고 다종교적인 세상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지탱할 수도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오늘날 살아있는 사람 중에 어느 한 종교가 다른 모든 종교보다 더 위대하다고 확언할 수 있을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There is no one alive today who knows enough to say with confidence whether one religion is greater than all others.)고 했다.  “내 종교가 유일한 진리 종교라고 믿는 배타적 마음은 죄된 마음 상태로 그 죄란 바로 교만의 죄다.”고 했다.(1957)
          자기 종교가 진리의 전매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아직까지 실질적으로(de facto) 널리 퍼져 있지만, 그것은 법적으로(de jure) 무지하고, 나이브하고, 미숙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오만하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다른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신학적 제국주의도 영구적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된다.”(Like any other forms of imperialism, theological imperialism is a menace to permanent world peace.)고 했다.(1944)
          현세의 다원주의적 성격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시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르치아 엘리아데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실로 우리는 이미 전지구적(planetary) 문화에 접근하고 있고, 머지않아 아무리 국지주의적인(provincial) 역사가나 철학자나 신학자라 하더라도 다른 대륙 출신의 동료들이나 다른 종교 신도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고 자신의 신념을 형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1966) 
          필자는 이 페이퍼에서 종교적 다원주의를 위해 학습효과를 위한 방편(heuristic device)의 일환으로 몇 가지 유비적 모델을 제시하고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 모델들은 각기 다른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진리주장(truth-claims)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서로 병립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목적에서 제시해 보려는 것이다.  이중 몇 가지는 고전적 내지 일반적인 것이고 몇 가지지는 요즘 것이나 필자 자신의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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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교만 진리냐?(2)

지난 번 다종교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비유들을 열거하기 전에 서론적으로 다종교 현상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종교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지금부터 종교간의 이해와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비유들을 하나하나 검토해볼 계획입니다. 
처음부터 밝히는 것은 이런 비유들이 모든 종교적 배타주의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무결의 열쇠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비유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 등이 돌아간다는 천동설처럼 내 종교를 중심으로 다른 종교들이 돌아간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이 돌아간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시각(Copernican perspective), 모든 종교는 진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일깨우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제시해 보는 것이다.  모든 비유는 사실과 모든 점에서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이를 좀 어려운 말로 하면 tertium comparationis, 비유에는 커버되지 않는 사각 지대가 있다는 뜻이다.  다음에 열거하는 비유들을 살피면서 이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II. 유비적 모델들  
1.  길(Paths)
종교다원주의에 가장 많이 쓰이는 비유 모델은 “길”이라는 비유다.  모든 주요 종교들은 모두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각이한 길들이라는 것이다.  비록 출발점과 과정을 다르지만 모두 산꼭대기에서 만나는 것이니 길이 다르다고 서로 다투지 말라는 뜻이다.
이 비유는 주로 힌두교 사상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힌두교 성자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1834-1886)를 들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각이한 신도들이나 시대나 국가에 알맞게 여러 가지 종교를 마련해 주었다.  모든 교설들은 오로지 각기 다른 여러 가지 길일 뿐이다.  어느 한 가지 길 자체는 결코 신일 수 없다. 실로 누구든 어느 한 길을 마음을 다한 헌신으로 따르면 그는 신에 이를 수 있다. 아이싱을 입힌 케이크를 위에서 먹든 옆에서 먹든 다 같이 단맛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다투지 말라.  그대가 그대 자신의 믿음과 의견에 확고하게 서있듯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들의 믿음과 의견에 서있을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
 이 말을 인용한 종교학계의 거장 휴스턴 스미스는 “종교들이 신학이나 의전이나 교회조직 같은 산기슭에 머물러 있는 한 그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종교들이 신도들을 산꼭대기를 향해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한 그들은 모두 수납가능한 것이다.  종교들 간의 다름은 비통해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인류의 종교적 모험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산을 오르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을 자기들의 길로 데려오려고 산 아래만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비유는 많이 인용되기는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종교가 산꼭대기를 향하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어떤 종교는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을 자기들의 종교적 목표로 삼고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종교는 오히려 강가나 바다가, 혹은 넓은 들을 달리거나 숲 속을 거닐며 즐기는 것이 자기들의 종교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그 유명한 토마스 머튼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다른 방식을 존경하라는 근본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2. 색깔(Colors)

내 종교만 진리라는 생각을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는 두 번째 비유로 여러 다른 종교들은 다른 색깔들이라는 비유가 있다.  다른 색깔들은 "무색의 빛이라는 분화되지 않은 빛의 근원(one undiferentiated source of uncolored light)"에서 나온 각각 다른 색깔이라는 뜻이다.  이것 역시 힌두 전통에서 이야기되는 것이지만 근래에 와서 스위스 출신 사상가 프리조프 슈온(Frithjof Schuon, 1907-1998)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슈온은 궁극실재로서의 분화되지 않은 무색의 빛이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인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로 분화되어 나왔는데, 이것이 바로 개별 종교라고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각각 다른 종교지만 각각의 색깔들은 “모든 형식, 모든 상징, 모든 종교, 모든 교설” 등의 바탕이 되는 무색의 ‘신비스러운 근원(numinous source)’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는 한 모두 인류에게 공헌하는 것이라 본다.
 슈온은 종교들을 현교적 종교(顯敎, exoteric religion)와 밀교적 종교(密敎, esoteric religion)로 구분한다.  종교들은 현교적 차원에서는 빨강, 초록, 노랑 등 모두 다 다른데, 이런 다름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했다.  반면  밀교적 차원에서는 여러 종교들이 다양한 색깔들처럼 무색의 빛의 근원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본다.  그런 일치를 그는 “초월적 일치(transcendent unity)”라고 했다.
종교들이 각각 다른 길이라는 비유와 각각 다른 색깔이라고 하는 비유는 이른바 종교적 평행주의(parallelism)의 입장이라 볼 수 있다.  각 종교는 제 갈길을 가거나 제 나름대로의 색깔을 띄고 있으니,  남의 종교에 간여하지도 말고 개종시키려 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오로지 더  좋은 그리스도인, 더 좋은 불교인, 더 좋은 힌두교인이 되라고 하는 셈이다.
이 두 가지 비유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 비유들은 여러 가지 종교 전통들 간의 상호 영향이나 배움 같은 것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모든 길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이런 길들 중 하나에 들어섰으면 그 길을 따라 갈 것이지 그 길에서 나와 다른 곳을 둘러보는 것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이다.”하는 식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도 “각자의 종교의 깊이로 꿰뚫고 들어감”을 강조하고 종교 간의 개종을 반대했다는 점에서 평행론자에 가깝지만, 그를 순수한 평행론자라 할 수는 없다.  그는 “not conversion, but dialogue”이라고 하여 개종은 반대했지만 대화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1964, 95)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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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교만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가? (4)

4. 지도(Maps)

내 종교만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독선에서 벗어나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유 네 번째로 들고 싶은 것은 “지도”다.  여러 가지 종교는 여러 가지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지도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비유에 의하면 여러 가지 지도가 거리의 단위라든가 지정학적 구별을 위한 국가들의 색깔이라든가 학교나 교회, 사찰, 온천 등을 표시를 하는 지도 제작법의 차이로 인해 다 다르지만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목적지로 가는데 도움을 주는 한 모두 수납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지형지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엉터리 지도 제작자가 만든 지도는 사람들을 엉뚱한 곳으로 잘못 인도할 수 있다.  따라서 지도 제작자가 올바른 지도를 만들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그들이 의도한 목적지로 인도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고 지금도 성공하고 있는 지도인데도, 그것이 우리가 우리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각각의 지도를 가지고 서로 대화하고 연구해서 각자의 지도에서 빠진 것,  있을 수 있는 잘못을 수정, 보완하고, 보다 정확하고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기 쉬운 지도를 만드는데 함께 힘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5. 손가락(Fingers)

종교 다원주의를 위한 “손가락” 비유는 선불교(禪佛敎)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선불교에서는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설이나 상징이나 의식(儀式)이나 형식 등 모든 것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標月指)”이라 한다.  손가락은 우리의 시선을 달로 향하게 하여 우리가 달을 보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손가락 자체가 우리의 시선을 독점해서 우리가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산통이다. 달을 본다는 목적에서 떠나 손가락의 길이나  굵기나 색깔이나 거기 난 털의 숫자 같은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종교도 우리가 궁극 의미를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이런 최종의 목적을 떠난 교리 논쟁이나 진리 주장은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나 조사(祖師)들이라도 우리의 주목과 헌신을 모두 앗아가 우리가 달을 보도록 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그런 부처, 그런 조사는 구도의 길에서 만나면 죽여버리라고 한다.  이른바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것이다. 
선불교에서 물론 달을 본다고 하는 것은 깨침의 경험, 궁극실재에 대한 직관과 통찰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면 손가락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물론 아직 달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손가락이 달을 보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가리키는가, 혹은 연못이나 호수에 비친 달을 가리키고 있는가 서로 대화하고 서로 배워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중국 고전 장자(莊子)에도 나온다.  이른바 “득어망전(得魚忘筌)”이다.  물고기를 잡았으면 물고기 잡는 틀은 잊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득의망언(得意忘言), 곧 본뜻을 알아차렸으면 말은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의 궁극 목표가 정해지고 거기에 합의하였으면 각자 그 목표를 향한 수단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쓸데없는 논쟁으로 누가 더 잘났다고 떠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궁극 진리는 말 너머에 있는 것이다.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가르침처럼,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56장)
며칠 전에 “낮에 나온 반달”을 보았다.  진짜 달을 볼 수 있었으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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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5)

6. 약(Medicines)

종교 간이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비유 그 여섯 번째는 종교를 “약”으로 보는 것이다. 종교를 약으로 비유하는 것은 종교사에서 오랜 전통이다. 영어로 구원이라는 말이 “salvation”인데, 이 말은 어원적으로 완전하게 됨, 건강하게 됨(becoming whole or healthy)이다. 여러 가지 종교들은 여러 가지 영적 증상에 대한 각기 다른 약처방(prescriptions)이라 보는 것이다.
이 비유는 불교에서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을 용한 의원이라 보는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병에 한 가지 약만 처방하는 ‘돌팔이 의사(quack)’가 아니라 아픈 사람람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의 결과를 토대로 약을 처방하는 의원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웅변이야”이다. 용수(龍樹)에 의하면 “부처님은 상황이 요구하는 데 따라서 아트만(self, substance)을 긍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했고,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하기도 하고, 둘을 다를 부정하기도 했다.”(Murti, 247)
이 비유는 왜 이렇게 많은 종교가 있는가, 심지어 한 종교 안에서도 다른 가르침들이 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저명한 종교학자 휴스턴 스미스 교수에 의하면 “종교가 모든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비록 같은 전통 안에서도 거의 무한한 다양성으로 퍼져 나가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H. Smith, 1958, 3)
이 비유를 적용하면 종교 전통들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우주와 우리들의 삶에 대해 깔끔하고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사상체계를 세우는데 관심이 있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영적 질병들을 고치는 데 적합한 여러 가지 약을 처방하는데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에 여러 가지 병이 있는 한 여러 가지 처방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한 처방전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나머지는 모두 틀렸다고 하는 생각은 있을 수 없다.

7. 음식(Foods)/식당(Restaurants)
각각 다른 종교들은 각각 다른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비유될 수 있다. 라틴어 속담에 “De gustabus non est disputandum”이란 것이 있다. 입맛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한 식당이 모든 음식에 대해 혼자 전매특허를 받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 식당에서 전문으로 하는 음식과 손님들의 입맛이 잘 맞아야 하는데, 손님의 입맛은 대체적으로 비슷하기는 하지만 다 같을 수는 없다. 한 식당이 모든 손님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다.
좀 더 좁혀서 같은 식당이라 하더라도 손님들의 입맛이 각각 다르므로 어느 한 가지 음식이 맛있는 음식이다, 제일 좋은 음식이다 단정적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Gina Cerminara 라는 분은 이런 비유를 소개한다.
큰 뷔페 식당이 있다고 하자. 50가지나 60가지 각각의 음식이 진열되어 있다. 손님들이 줄을 서서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접시에 담았다. 각각 다른 이유로 다른 음식을 골랐다. 손님들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면 똑 같은 경우는 드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나만 옳은 음식을 골랐다. 당신은 가서 내가 골라 담은 것과 같은 것으로 골라 담으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 상황을 보면 많은 사람이 자기가 선택한 종교만 유일하게 옳은 종교요 남의 종교는 그릇되다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이 비유는 종교적 배타주의가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남에게 성가신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자격 있는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이 맛도 좋고 영양학적으로도 적절하다면 각자 자기의 성향과 필요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것이지 어느 한 가지를 남에게 강요하면 곤란하다. 물론 분명히 영업적 이익만 생각하고 건강을 해치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는 것이 판명된 경우라면 그런 식당의 음식은 피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스스로도 음식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8. 언어(Languages)
서로 다른 종교들은 서로 다른 언어들과 같다고 보는 견해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올바르고 참된 언어는 없다. 모든 언어들은 특정 사람들이 저들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능력이 있다. 모두가 다른 언어들보다 모국어를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유일하게 올바르고 진실된 언어이고 다른 모든 언어는 올바르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배타주의적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 심지어 외국어를 배워 사용할 수도 있다. 무슨 언어를 사용하든지 그 언어가 표현하려 하는 깊은 뜻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의 거장 괴테가 “하나의 언어만 아는 사람은 아무 언어도 모른다”고 했는데, 종교학의 창시자 맥스 뮐러는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했다. 내 모국어, 내 종교를 귀하게 여기지만 내 언어, 내 종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어, 이웃 종교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웃 종교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이웃 종교와의 대화가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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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어머니
종교를 어머니에 비유할 수 있다. (아이를 앵버리 시키는 특별한 어머니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 어머니가 나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어머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내 어머니를 어머니로 모셔라 할 수도 없고, 또 다른 모든 어머니는 무조건적으로 글렀다고 할 수도 없다. 내 종교가 나에게는 최고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내 종교로 들어오라고 할 수도 없고 이웃 종교는 무조건 안 된다는 주장도 불가능하다.

나가면서
진리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내 것이면 진리, 네 것이면 무조건 엉터리라 하던 종래까지의 관행은 이제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있다. 내 것, 네 것 구분하는 대신 인류의 보편적 행복과 안녕에 기여하는가 하는 것 등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모든 종교는 특별히 사악한 종교가 아닌 이상 모두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2021/06/28

그들은 왜 ‘도마복음’에 흥분하는 것일까? - NEWS M

그들은 왜 ‘도마복음’에 흥분하는 것일까? - NEWS M

그들은 왜 ‘도마복음’에 흥분하는 것일까?

양재영
승인 2019.02.05 

2010년을 전후로 한국에 쏟아져 나온 ‘도마복음’ 관련 서적들은 당시 교계에 열띤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도마복음’ 논란의 중심에는 <예수는 없다>로 잘 알려진 오강남 교수의 <또다른 예수>(예담, 2009년)와 도올 김용옥 교수의 <도마복음 한글역주1,2,3>(통나무, 2010년) 등이 있었다.

최근 이들은 SNS와 언론을 통해 도마복음에 대한 소개와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면서 2차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오강남 교수는 자신의 SNS와 모 기독언론을 통해 도마복음 114개의 어록에 대한 소개와 재해석을 연재하고 있으며, 도올 김용옥 교수는 자신의 유투브 채널인 ‘도올TV’를 통해 <도올 김용옥 기독교 성서 이야기: 도마복음 강해>를 현재 28강까지 소개하고 있다.

도마복음 파피루스



“도마복음은 새로운 복음이다”

특히 김 교수는 도마복음 강해를 시작하기 전 ‘도마복음을 말한다’는 제목으로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목사, 오강남 교수 등과 함께 2010년 대담한 내용을 ‘도올TV’에 소개하면서 도마복음 논쟁을 시작했다.

한신대 명예교수인 김경재 목사는 이 대담을 통해 ‘도마복음’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열린 자세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반사람에게는 (도마복음이) 외계인의 담론으로 들릴 수 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에 경전의 종교가 되었다. 이렇게 4-5백년을 지내온 사람에게 도마복음은 외경 내지는 위경으로 평가절하 될 것이다. 경전종교에 세뇌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열린 마음으로 풍요로운 정신적 문화의 향상을 위한 자료로 환영할 것 같다. 두 그룹으로 나눠질 것 같다.”고 평했다.

또한, 기독교의 사회적 위기를 지적하며 호불호를 떠나 초기 말씀 어록을 읽어 볼 것도 권유했다.

그는 “한국 기독교가 최근에 일반 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인기가 없는 종교가 된 것은, 기독교가 너무 딱딱한 교리적 종교로 변해버렸다는 것과 예수를 엄격한 도덕적 훈계자로 가르치든지, 삼위일체 존재 속에 넣어서 초자연적 신적 존재로 세뇌를 시키는 것에 대해서 코드가 안 맞으니까 외면하고 떠난 것이다”라며 “일단 교리나 도덕체계에 포장되기 이전에 실제적으로 역사 속에서 살았던 솔직한 예수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의 초기의 말씀 어록을 집대성한 것을 찾았으므로 호불호를 떠나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투브 채널인 도올TV에서 소개한 '도마복음을 말한다'의 한장면(좌로부터 정강길 실장, 도올 김용옥 교수, 김경재 목사, 오강남 교수)


‘예수는 없다’의 오강남 교수는 ‘도마복음’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것을 주문했다.

오 교수는 “기독교에 이런 전통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도마복음에서 발견되는 예수는 공관복음에서 다루는 예수와 너무나 다르더라. 공관복음에서는 ‘나를 따르라’, ‘나의 제자가 되라’, 요한복음에서는 ‘나를 믿으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마복음에서는 ‘깨달아라’,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을 찾으라’ 라고 말한다. 이건 기독교에서 듣지 못했던 새로운 복음, 새로운 예수님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도마복음이 4복음서에 선행하는 자료로 예수께서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올은 “도마복음 자료는 현행 4복음서의 핵심자료와 거의 중복이 되고, 114개의 말씀자료라는 것이 워낙 치밀한 구성자료를 가지고 있다. 중간 몇 개는 후대에 성립할 수 있으나, (도마복음이) 4복음서 이전 자료로서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이 자료를 참고해 가면서 어떻게 변형시켜갔는가를 (제 책을 통해) 상당히 치열하게 다뤘다”라며 “도마복음에 기초해서 역사적 예수의 상을 철저하게 새로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예수는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분이라는 점이다. ”고 주장했다.


“위경으로 순진한 기독교 신자를 유혹하지 말라”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 교계 내부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주류이다.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는 김용옥 교수의 ‘도마복음’에 대해 일부 학자들의 의견을 대세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김씨는 도마복음이 영지주의 사상에 기초해 기존 복음서의 내용을 짜깁기한 후대의 외경문헌이 아니라 그것들 본래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로빈슨, 크로산 등 서구 학자들의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라며 “도마복음이 예수의 본래적 원형을 담아내고 있다는 주장은 도올의 말대로 학계의 대세가 아니며 일부의 주장일 뿐이다. 그가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크로산을 비롯한 학자들은 북미 성서학계의 지극히 적은 일부 신약성서학자들 및 고대기독교문헌학자들이다”고 반박했다.

장신대 김철용 교수는 ‘도마복음’이 왜 정경과정에서 퇴출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복음서가 네 권으로 형성된 것에는 ‘정경의 형성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도마복음’은 정경에서 제외됐다. 오늘날 ‘위경이라고 한다. ‘도마복음’은 왜 퇴출되었는가? 다양성만 이야기 하지 말고, 통일성도 말해야 한다. 무조건 다양하다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전체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역사적 예수와 초대교회 성장과정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있을 때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교계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서울 큰나무교회 박명룡 목사는 모 기독교 매체에 실린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라는 글을 통해 도올의 ‘동양적 범신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목사는 “그(도올)는 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일까? 그 표면적 이유는 기독교가 너무 기득권층이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올바르게 전파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 심층적 이유는 그의 철학적 전제 때문이다”라며 “도올의 신관과 기독교의 신관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는 기독교를 철저히 비판한다. 도올의 신관은 ‘동양적 범신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중국의 일원론 사상에 근거해 우주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신이고 인간을 포함한 유기체로서의 전 우주 자체가 신이라고 믿는 범신론적 신관을 가지고 있다. 도올은 이 동양적 범신론적 신관의 잣대로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들소리신문의 발행인인 조효근 목사는 “기독교의 보편적 신학에서는 오강남 교수의 이원론에 기초한 영지주의(Gnostic)적 견해와 단성론(예수는 피조물이다) 신학은 비(非)기독교 신학으로 이미 단정한지가 1천6백 여년이 지났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강남 교수는 자기의 비교종교학 실력으로 착하고 순진한 기독교 신자를 유혹하려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경고했다.

도마복음은 1945년 12월 무함마드 알리라는 이집트 농부가 다른 몇사람과 함게 나일강 상류 나그 함마디(Nag Hammadi)라는 곳에서 땅을 파다가 토기 항아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52종의 문서와 함께 발견된 것으로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디두모스 유다 도마가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2021/06/23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③-4 오강남 교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 아주경제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입력 : 2021-01-27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③ 오강남 교수 <上>




아주경제와 유튜브 채널 '다석의 생각교실'이 공동 기획한 '내가 본 다석, 내가 들은 류영모'의 두 번째 인터뷰이는 비교종교학으로 명망이 높은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오강남 명예교수다. 코로나 19로 오 교수가 한국에 오지 못하고, 나를 비롯한 취재진이 캐나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줌(Zoom)을 이용해 인터뷰가 이뤄졌다.

대학을 갓 졸업한 유수민 인턴기자가 카카오톡 통화로 오 교수에게 줌 작동법을 코치하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오 교수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나고 목소리가 들렸다. 음성 전달에서 캐나다와 서울 사이에 0.5초 정도의 시차가 있었으나 큰 불편은 없었다. 서울의 아주경제 스튜디오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오 교수의 서재를 연결해 화상 인터뷰를 두 시간 동안 진행하면서 세상이 '코로나 이전(BC·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After Corona)'로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캐나다로 두 사람이 출장 인터뷰를 갔더라면 5박6일 걸릴 일을 두 시간으로 단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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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릴레이 인터뷰'는 다석을 연구한 학자, 다석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제자 등 10 여명을 연속으로 만날 계획입니다. 인터뷰를 종이신문,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보도하고 나중에 책으로 펴내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4개 매체에 활용하는데요. 여기는 지금 아침 10시인데 캐나다 밴쿠버는 몇 시입니까?

“오후 다섯 시입니다.”

나는 2년 전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해 부차트 가든 등을 주마간산으로 둘러본 적이 있다. 밴쿠버 섬(Vancouver Island)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태평양 연안에 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1 정도 되는 큰 섬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풍광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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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님의 최근 저서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세계적인 종교인 57명을 다루었더군요. 한국인으로는 류영모 함석헌 두 분이 들어있던 데요.

“한국에도 원효 지눌 이퇴계 이율곡 최수운 등 사상가들이 많지만 내가 두 분을 선정한 이유는 한국 종교의 가장 큰 특색인 기복(祈福) 종교를 타파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석학회 회장 정양모 신부는 ‘인도가 석가를, 중국이 공자를, 그리스가 소크라테스를, 이탈리아가 단테를,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독일이 괴테를 각각 그 나라의 걸출한 인물로 내세울 수 있다면 한민족이 그에 버금가는 인물로 꼽을 수 있는 분이 바로 다석 류영모’라고 말했습니다. 좀 과한 것 같지만 다석 류영모의 위상을 잘 얘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한테 직접 배우신 박영호 선생은 ‘다석은 인류의 스승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석을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분이 함석헌 선생입니다.”

-오 교수님은 표층(表層)종교와 심층(深層) 종교를 구분하는 말이나 글을 많이 쓰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합을 금지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복신앙으로 번성한 표층종교의 종말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표층종교와 심층종교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늘상 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다섯 살 정도까지는 산타가 정말로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굴뚝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고,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벽난로 옆에 달린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간다는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은 어린아이의 정신 발달 과정에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한테는 그것이 1년을 기다리는 이유고, 착한 일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자라 어머니가 양말에 선물을 넣는 것을 눈치 채면서 산타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는 대신 '산타 이야기는 식구들 사이에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구나, 나도 선물을 받지만 말고 부모님이나 동생에게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단계 올라가는 겁니다.
아이가 철이 들면 '산타 이야기는 가족 사이에 사랑을 베풀 뿐 아니라 온 동네에, 혹은 더 넓은 사회, 좀 더 넓게 세계의 불우한 이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구나' 라고 깨닫게 됩니다. 좀 더 성숙하면 '불우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만 사랑을 베푸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이 없게 해야 한다, 환경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산타 이야기는 하늘이 내려오고 땅이 화답하는 천지합일(天地合一), 신이 내려오고 인간이 화답하는 신인(神人)합일을 상징하는 이야기라는 깨달음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의 산타클로스 믿음 수준에 머물러있다면 일종의 '종교적 발달장애'라고 할 수 있지요.
표층종교는 이기적인 나를 잘 되게 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헌금이나 보시를 하더라도 나와 내 식구가 현세와 내세에서 잘 되기 위해서, 기도를 할 때도 내가 잘 되도록 비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심층종교는 이기적인 나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내 속에 있는 신성, 불성, 참 나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나 혼자와 가족만 잘 되기만을 비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함께 잘되기를 바라는 결의를 다지는 심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한 자 한 획도 가감 없이 믿어야 한다는 문자(文字)주의가 표층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을 하던데요. 문자주의가 왜 문제가 되는 거죠?

“류영모 선생은 이기적인 나를 '제나'라고 하고 내 속에 있는 참나를 '얼나'라고 했습니다. 제나에서 얼나로 바뀌는 것, 이를 제나에 죽고 얼나로 살아나는 죽음과 부활이라 할 수 있는데, 류영모 선생은 이를 '솟남'이라 하셨습니다. 류영모 선생님의 경우 어느 종교든지 이렇게 제나에서 얼나로 솟나게 해주는 종교는 모두 유익하다고 봅니다.

표층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합니다. 교회나 절에서 한 얘기를 무조건 믿는 것은 맹신 광신, 미신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무조건적 믿음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독립적 사고 능력을 박탈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심층종교는 이와 달리 이해와 깨달음을 강조해요. '보고 깨달아라'는 것이죠.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서 해방돼 무엇이 바른지를 계속 추구하는 종교, 열린 종교입니다. 무엇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새로운 눈뜸입니다. 부처님도 '무조건 믿지 말고 실험해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여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 종교만 옳다'는 근본주의는 폭력

표층종교는 신은 하늘에 있고 인간은 땅에 있다는 식으로 신과 인간, 신과 세상을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이른바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신의 초월(超越)만을 강조하지요. 심층종교는 신이 밖에도 있지만 내 안에도 있다고 봅니다. 어느 면에서는 신의 초월보다 신의 내재를 더 강조합니다. 신이 우리 속에 있는데, 우리 속에 있는 신이 바로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결국 '신과 나는 하나'라고 봅니다. 이런 사상을 강조하는 신관을 범재신론(汎在神論 ·panentheism)이라고 하는데, 동학(東學)이 이런 신관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한울님이 따로 계시지만 우리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시천주(侍天主)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한울님이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끝내 나와 한울님은 하나다' '인간이 바로 신이다' 하는 것이 인내천(人乃天)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동학에는 '나만 한울님이 아니다. 내 이웃도 한울님이다' 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정신도 있습니다.

표층종교는 문자주의를 고집합니다. 성경이나 여러 경전에 있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층종교는 이와 대조적으로 '문자 너머를 보라', 류영모 선생님 용어로 '속나를 보라'고 합니다. 깨달음을 통해 신을 경험하는 일은 너무나도 엄청나 도저히 문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 경전은 결국 상징이나 은유를 통해 그 경험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징적 은유적인 문자는 그 경험으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경험 자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걸 무시하고 '문자 그대로 믿어라' 라는 것은 성경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선불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합니다. 문자에 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한국 기독교의 다수는 근본주의자들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에 나온 것이면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문자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안 되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표층종교는 자기만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합니다. 독선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 프란체스코 교황은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올바르지 못한 것이지요.”

-미국에서는 제일 큰 동창회가 교회 졸업동창회라는 말도 있다던데요. 교회 신자가 감소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교회보다 훨씬 재밌는 것이 많기 때문인가요?

“교회가 문자주의에 매달리면 그 문자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6일 만에 창조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태양 보고 '서라' 했더니 태양이 섰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을 성경의 문자 그대로 믿으라고 하면 요즘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심청전을 보면 심청이가 물에 빠져서 용궁에 갔다가 연꽃에 실려 송나라 황후가 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심청전의 메시지가 중요한 거지, 용궁이 정말 있느냐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성경의 메시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거지 이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들을 그대로 믿으라고 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소위 가나안 교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가나안은 '안 나가'를 거꾸로 한 말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은 성경에 나오는 지명인데… 미국의 보수적인 목사가 쓴 책 제목이 입니다. 지금 기독교인이 죽고 나면 기독교인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교회도 졸업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동창회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미국은 그래도 서방국가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셈입니다. 북유럽 쪽은 기독교인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북구의 제일 잘 산다는 세 나라에는 실질적으로 '신이 없는 사회'라는 겁니다. 기독교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나 필요하지 그 외에는 별로 상관없는 사회가 된 거예요.”


다석 류영모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 왼쪽부터 방수원 현동완 류영모 김흥호 함석헌.

-이 인터뷰의 문패가 '내가 본 다석, 내가 들은 유영모'지요.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함석헌과 다석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죠.

“함 선생이 오산학교에 다닐 때 다석이 교장으로 오셨어요. 그 전에 평교사로 가서 한 몇 년 가르치다가 오산학교를 그만두고 나올 때 다석은 표층적(表層的)인 기독교를 버렸습니다. 두 살 아래인 동생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봐야 효험이 없어 기복신앙이 소용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으면서 붐이 일었을 때 다석도 톨스토이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했습니다. 그 무렵 노자의 도덕경과 불경을 배웠습니다.

함석헌 학생이 교장으로 온 다석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석도 함 선생을 특별한 제자로 생각했습니다. 다석이 일제의 간섭으로 1년 만에 교장 노릇을 못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함 선생이 배웅하러 나가는데 다석이 '내가 오산에 왔던 것은 함, 자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던가 보네'라고 특별한 관계임을 말했습니다. 그 후에 계속 사제 관계를 유지했는데 나이는 10살 차입니다. 생일이 똑같습니다.”
함석헌은 “내가 부족하지만 이만큼 된 것도 다석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당대에는 함석헌이 세속적으로 다석보다 유명했다. 그가 입만 열면 "다석이 나의 스승"이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석을 알게 됐다. 오 교수는 캐나다와 한국에서 여러 번 함석헌을 만나 깊게 교류하면서 다석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오 교수는 다석을 만나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다고 책에 썼다.

-말년에 두 분 관계에 묘한 갈등과 결별이 생깁니다. 다석 제자인 박영호 선생이 쓴 <다석 전기>에 보면 함 선생의 여자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여자 문제는 흠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 세계 종교인 57명의 반열에 함 선생님을 올린 뜻이 궁금합니다.

“조금 곤란한 질문인데 나름대로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에 거론된 사람 중에 여자 문제와 관계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 겸 종교학자로 꼽히는 폴 틸리히도 여자 문제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실존철학의 대가 마르틴 하이데거, 인도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마하트마 간디도 여자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도 마찬가집니다.

함석헌의 스승으로 이름 높아진 다석

함 선생님의 문제를 알지만 그런 문제보다는 함 선생님의 심오한 사상, 실천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과(功過)가 있는데 저는 공을 보고 그 공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토에 사는 목사님이 나 보고 '폴 틸리히가 여자 문제가 있는데 왜 자꾸 인용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폴 틸리히의 깊은 통찰은 내가 종교를 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석이 오산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바꿔놓고,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 선생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고서 정작 본인은 나중에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함석헌 선생이 한때 따르던 무교회주의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다석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과 탈(脫)종교화 현상은 다른 건가요?

“다석은 미리 깨달은 거죠. 문자주의적 믿음이 현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거죠. 계몽주의 이전 시대에서는 목사나 신부, 종교 지도자들이 하는 말을 거의 그대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몽주의 시대가 지나가고, 현대 과학 생물학이나 심리학 같은 학문이 발달하고, 특히 인터넷 속에서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데, 2천, 3천년 전의 세계관과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교리를 강요하는 종교는 설득력이 있을 수 없죠. 지금 그런 걸 강조한다면 그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입니다. 더 이상 지탱하기가 힘들죠.
그런데 류영모 선생은 무교회주의자는 아니었어요. 함석헌 선생이 처음에는 김교신 등 무교회 사람들과 같이 <성서조선> 운동을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도 무교회주의에 처음에는 호응했지만 나중에는 결별합니다.

일본인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신학은 소위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대한 류영모 선생님의 해석은 완전히 달라요. 류영모 선생은 사상을 풀어갈 때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를 가지고 풀이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서 세로로 선 것이 사람이고 가로로 누운 것은 땅, 위의 점은 하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이냐, 인간이 땅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상징하는 표시'라고 풀이합니다. 대속(代贖)신앙이 아니라 자속(自贖)신앙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인데 정통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이 땅에 자기 아들 예수를 보내서 예수가 죽음으로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다'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다석은 그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자기의 씨(신성)를 각 사람 속에 심어줬다고 해석합니다. 우리 속에는 전부 신성이 있고, 불교에서는 그걸 불성, 유교에서는 인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참나, 얼나 이런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하늘에서부터 주어진 씨라고 보는 것이죠.”

-미국에는 교회 신자들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며 예배를 드리면 스트레스가 줄고, 가깝게 지내는 교우도 생기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성경 말씀을 생각하며 나쁜 유혹에 덜 빠지고… 그런 착한 신앙도 기복신앙, 표층 종교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겁니까?

가나안 교인과 안나가 교인


“저는 교회의 공동체적 요소를 좋게 생각합니다. 서로 가깝게 지내면서 돕고, 우의를 다짐하는 것은 좋습니다. 제 형님도 미국 LA에 사는데 교우들이 모여서 매일 아침 골프 치러 가고…. 세상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은 교회 말고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형제나 일가친척도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지요.

그러나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갈등과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사 편과 장로 편, 오래된 신도와 새 신도 편 등으로 편을 갈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상당수 교인들이 교회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고 호소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교인들, 거꾸로 '안나가' 교인들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교인들이 오래 산다는 말이 정확한 통계에서 나온 말일까요. 교회에 안 나가는 북유럽 나라들의 평균 수명이 더 길 것 같은데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제가 LA 어느 목사님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목사 사모들의 경우 생명보험비가 더 높다고 하더군요. 스트레스가 아주 높기 때문이죠. 목사 사모라는 특수 위치 때문에 자기의 전공을 살리지도 못한 체 교회에 묶여 있어야 하고, 남편 목사가 여신도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신경 쓰이고, 그렇다고 불평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교회가 사교적이고 즐겁기 만한 모임이 아니고, 자기들의 이기적 '제나'를 추구하는 투쟁의 장소가 되기 쉽습니다. 이상적인 '얼나'를 찾는 장소로 적합한지 다시 생각해봐야죠.”

(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박하늘 인턴기자)

<오강남 교수 약력>
- 1941년 출생
- 1965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학사
- 196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석사
- 197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박사과정 수료
- 1976년 캐나다 맥마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Ph.D)
- 1980~2006년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
- 1986, 2011년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 1990~98년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 1991~96년 북미한국인종교학회 회장
- 저서 "도덕경"(1995, 개정판 2010), "장자"(1999년), "예수는 없다"(2001, 개정판 2017년)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2011, 개정판 2019) 등 다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④ 오강남 교수 <下>






내가 오 교수와 처음 만난 것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하던 2001년경이다. 오 교수는 그때 현암사에서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펴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개안(開眼)을 하는 느낌을 받고 동아닷컴에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을 읽은 오 교수가 서울에 왔을 때 신문사로 찾아와 처음 만나게 됐다. 그 뒤로 나는 종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그에게 전화나 메일로 자문(諮問)을 했다. <예수는 없다>는 2001년 5월 초판이 나온 이래 개정판까지 42쇄를 찍은 장기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면 정통 기독교인 중에는 오 교수의 안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기독교 계통의 어느 목사가 ‘하느님 보호해주심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고, 설사 감염되더라도 성령의 불로 깨끗이 낫게 되리라’고 장담했는데 그 사람도 코로나에 걸렸어요. 트럼프처럼요. 오 교수가 최근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교회’라는 글에서 ‘교회에 모여서 코로나를 낫게 해달라고 합심 기도를 하는 그 집회 때문에 코로나가 더 확산된다’고 지적했던데요. 하느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건가요?

“전광훈 목사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기도나 종교 행사와는 관계가 없고, 방역이 중요합니다. 마스크를 쓰느냐, 손을 잘 씻느냐,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막을 수 있는 거지, 기도한다고 안 걸리는 게 아닙니다. 코로나가 ‘저주냐, 축복이냐’ 하는데 저주도 아니고, 축복도 아닙니다.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저주도 되고 축복도 된다고 봅니다. 코로나를 기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모이면 점점 퍼지고 이건 저주가 돼요,

예수님은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고, 한두 사람이 모이는 곳에도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함께 모여 예배를 할 수 없다고 야단인데, 비대면으로 조용히 예배 드리고, 이런 기회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속의 얼나를 찾는다면 축복이겠지요. 내 속에서 우러나는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 혹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 얼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글에서 코로나 이후 소위 기복(祈福)신앙, 유대교의 율법으로부터 내려온 인과응보 사상이 힘을 잃을 것 같다고 했는데요.

“하느님이 착한 사람에게 상 주고 나쁜 사람에게 벌 준다면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죄를 지어 그렇게 됐고, 걸리지 않은 사람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는 게 되죠. 코로나 걸린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순수한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인간이 겪는 행복과 불운을 신의 상벌(賞罰)로 가르는 것은 오늘날 먹히지 않는 사상입니다. 그걸로 사람을 협박하면 안됩니다. 달라이 라마가 <종교를 넘어>라는 책에서 “인간이 잘해서 나중에 극락 간다, 못해서 지옥에 떨어진다, 이런 식의 협박이나 회유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 속에서 좋은 일을 하면 즐겁고 나쁜 일을 하면 스스로 고통이 되는 것을 감지하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티베트불교의 성지 포탈라궁 앞에서. [사진=오강남 제공]

-오 교수가 한국에서 신흥종교가 번성한 데는 정감록 비결의 영향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데요. 이제는 국립공원이 된 계룡산에 옛날엔 불교, 기독교 계통 신흥종교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도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풍수설이 전해지고 비결서에 새 왕조의 터전으로 지목되면서 신흥종교들이 모여들었다는 거지요. 왜 기독교계 신흥종교들까지 십승지지를 찾아갔을까요.

“한국의 신흥종교는 대체적으로 혼합종교적(syncretic) 특색을 가집니다. 이것저것 필요하다면 다 받아들이지요. 예를 들어 절에 삼신각이 들어와 있다든가, 기독교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다든가 하는 것은 한국 샤머니즘적 요소가 들어온 것이라 봅니다. 정화수 떠놓고 장독대 앞에서 빌던 치성의 연장이죠.”

-한국 교회가 일제시대, 6·25 전쟁을 겪으면서 급성장했고, 서울에는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교회들도 많은데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한국 교회는 복 받고 부자 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머리 둘 곳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고 거기서 예수님을 찾는 것은 모순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 기독교 상당수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황금을 섬기는 맘모니즘(mammonism)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 하면 대형교회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내가 아는 몇몇 작은 교회의 목사님들은 참 존경스러워요. 교회를 나오는 사람이든 안 나오는 사람이든 아이들을 통학시켜주고, 어려움을 도와주지요. 상당수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제왕과 같죠. 천국에 가도 그보다 좋은 대접을 받긴 힘들 겁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대체로 배타적이죠. 왕왕 불상 훼손 행위를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빚는데요. 다석 사상은 기독교 유교 불교에다 노장 사상까지 들어가 있으니 정통 기독교 신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통 기독교인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사실이죠. 종교학을 창시했던 독일인 막스 뮐러가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한 말을 들려주고 싶군요. 여러 종교를 뒤섞고 혼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내 종교라도 어떤 위치에 있는 건지, 어떤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는 것인지, 서로 비교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스 큉은 '종교 간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해서 네 종교가 어떤 것인가, 내 종교가 어떤 것인가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타종교라는 말도 안 쓰고 이웃 종교라고 합니다. 이웃 종교가 서로 상생하고 도와주는 길벗으로서 살아가면 서로 좋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힘쓰게 됩니다.”

동서양 종합한 독창적 종교 사상

‘종교 없는 삶’의 저자 필립 주커먼(Phil Zuckerman)은 '오이즘(Aweism·경외주의)'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종교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한 눈으로 보는 삶의 태도다. 캐나다와 미국의 알래스카 주에서는 태평양에서 자란 연어들이 자신이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어 사냥꾼인 물개나 곰이 목을 지키는 위험한 여로다. 밴쿠버에 있는 오 교수의 집 옆으로도 태평양으로 통하는 개울이 있는데 10월이면 알을 낳기 위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을 만날 수 있다.

암컷들은 목숨을 걸고 수천km 떨어진 고향을 찾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러면 수컷들이 알을 부화시키고 따라 죽는다. 오 교수는 이것을 아하이즘(Ahaism)이라고 바꾸어 부른다. 봄에 파란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온다든가, 겨울에 앙상한 가지에서 꽃이 핀다든가 그런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대우주의 움직임이나 신비스러움을 발견할 때 ‘아하’하고 감탄하는 것을 ‘아하이즘’이라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깨달음을 얻었을 때도 ‘아하’ 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아우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기적인 것은 없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어느 쪽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오 교수는 종교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산 밑에서는 약간의 나무와 꽃들이 보이지만 올라갈수록 멀리 호수와 넓은 들판이 보인다. 그 때 ‘아하!’ 하게 된다. 새로운 발견이다. 종교는 어느 면에서 ‘아하! 경험의 연속’이다.
“옛날에는 깨달음을 얻었다든가 심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뭄에 콩 나듯 했어요. 왜냐면 그때는 98% 이상이 문맹이었어요. 심층종교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앉아서도 미국, 유럽 유명한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하이즘’ 혹은 심층에 접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심층종교의 민주화’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항아리에 담겨 있다 1600년만에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이집트의 고대어인 콥트어로 기록돼 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농부가 밭에서 발견한 항아리 속에서 도마복음이 출현했습니다. 오 교수님은 도마복음 해설서도 썼는데요. ‘오강남 복음’이라고 혹평하는 목사들도 있더라고요. 도마복음은 기독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4세기경 니케아 공의회에서 승자가 된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승리의 여세를 몰아 4복음서 외에는 모두 폐기처분 하라고 명령했는데, 나그함마디에 있던 사원에서는 나중에 다시 찾아보려고 그랬는지 항아리에 넣어서 땅에 묻었어요. 그러다가 1600여년이 지나 1945년에 발견되었는데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의 어록 114개만 기록되어 있어요. 행적에 관한 것은 없어요. 예수의 수난이라든가,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에 관해서도 없습니다.
도마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깨치라’고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은 ‘믿으라 믿으라 믿으라’ 그러잖아요? 그리고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도마는 믿지 못하는, 의심하는 도마(doubting Thomas)라고 나옵니다. 요한복음에 대비되는 도마복음은 믿음(pistis)이 아니라 깨달음(gnosis)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깨달아야만 거기에서 종교가 줄 수 있는 참된 청복((淸福)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도마복음의 특징입니다.

나의 ‘도마복음’ 풀이에 다석을 몇 번 인용했습니다. 도마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자기 땅이 아닌 땅에서 노는 아이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땅 주인이 와서 땅을 되돌려 달라고 하니 그 아이들은 땅 주인이 보는 데서 자기들의 옷을 벗고 땅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다석도 삶을 ‘놀이’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묶고 묶이는 큰 짐을 크고 넓은 ‘한데’에다 다 싣고 홀가분한 몸으로 놀며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당에는 이 몸까지도 벗어 버려야 한다. 다 벗어 버리고 홀가분한 몸이 되어 빈탕 한데로 날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마복음은 ‘홀로’를 강조하는데, 다석도 해혼하고 홀로 되심을 실행했다고 봅니다.

도마복음과 4복음서는 상당 부분 겹치지만 겹치는 부분도 의미를 달리합니다. 예를 들어 4복음서에서 양이 우리를 빠져나와 길 잃은 양이 되지 않습니까? 불쌍한 양이 되어서 예수님이 양을 안고 다시 우리로 들어온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도마복음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길 잃은 양이 아니라, 99마리의 양들과 달리 너무 특출하기 때문에 거기에 그대로 섞일 수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스스로 그 무리를 탈출해서 자기 나름의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용감한 양입니다. 그래서 양을 찾았을 때 예수님이 ‘나는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귀하게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도마복음은 용기를 가지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를 강조합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엘레인 페이젤스(Elaine Pagels) 교수는 도마복음 전문가인데, ‘도마복음이 만약 폐기 처분되지 않고 기독교 전통의 일부로 남아있었다면 지금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가 훨씬 쉬워졌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도마복음에서 하는 예수님 말씀이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제 책 제목을 ‘또 다른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문 마지막에 ‘도마복음이 기독교와 불교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99마리 이탈한 한 마리 양은 자유로운 영혼

-오 교수가 ‘교회를 지배하는 신학은 암흑시대라고도 하는 중세와 근대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면서 ‘교회를 개혁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신학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아까 말한 대로 무엇보다 신관(神觀)이 바뀌어야 하는 거예요. 하늘 위에 계셔서 낮고 천한 인간을 보시면서 잘한 사람은 칭찬하고 못한 사람은 벌주고 나중에 죽어서 잘한 사람은 천당 보내고, 못한 사람은 지옥 보내고, 이런 식의 신관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걸 가지고 교회를 유지하는 방식은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유럽 같은 데서는 안 되잖아요.
지금 젊은이들은 ‘나는 종교적이 아니다. 나는 영성적이다’하는 말을 씁니다. ‘전통적인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내 속 깊이의 영적인 영성에 주목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고 나를 찾겠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의 신관과 성경관 역사관이 통째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에 맞는 패러다임에 입각한 그런 기독교가 탄생해야지요. 그것이 제가 말한 심층종교적 요소를 받아들인 기독교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이 류영모 함석헌 선생이 지향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종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의 초상

-다석 류영모의 기독교관을 보면 톨스토이가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요.

“톨스토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다석은 독창적이라서 어느 한 사람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명상해서 발견한 것을 독창적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 괴테, 이런 사람들보다 어느 면에서 더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사람들은 서양에서 태어나 서양 사상만 가지고 생각했어요. 공자나 노자는 동양 사상만 가지고 생각했고요. 다석은 동양 서양 한국까지 다 알아서 종합적인 사유를 했고, 특별히 한국말을 가지고 자신의 독특한 신학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빈탕 한데’라든가, ‘가온 찍기’라든가.
특히 하느님을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계신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하느님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해요.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신이 절대적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없어요.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려니 그것도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노자의 경우는 ‘무’라고 하지만 류영모 선생은 둘을 합해서 ‘없이 계신 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는 불교의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과 비슷한데요. 한문보다는 얼마나 우리한테 착 들어맞는 말입니까.”

-다석 류영모의 종교 철학과 사상이 표층종교적인 신학을 개혁하는 데 빛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요?

“그럼요. 류영모 사상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자극 받아서 새로운 설명 방법이 나와야죠. 새로운 세대에 의미 있는 방법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해석해주는 겁니다. 함석헌 선생은 ‘껍데기를 붙들고 있는 정통 기독교는 역사의 골목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은 근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얼마 안 가서 근본주의는 지탱할 수 없을 겁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그 전 10년 사이에 종교인구가 300만명이 줄어들었어요. 어느 목사가 한국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 1만개 정도는 없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넷 예배를 본다지만 교회에서 떨어져 있으면 헌금을 덜 하게 되니 종교는 앞으로 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는데 어쩌다 세계 각국의 종교를 비교연구하면서 때로는 개신교를 비판하는 길로 나가게 됐는지 궁금하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0리를 걸어서 경북 안동읍 교회에 갔습니다. 바로 위의 형님이 서울에 있는 교회학교를 다니다 방학 때 내려와 종교와 성경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관심이 커졌어요. 그래서 중학교를 교회학교로 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 2학년까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3학년 때 터는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종교에 대해서 뭔가 새롭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와중에 고등학교 때 루돌프 볼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라는 조그마한 책을 읽었습니다. 유동식 교수가 번역한 그 책을 읽으면서 종교를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보겠다는 마음에서 종교학과를 택했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분위기는 주로 서양 종교사상이나 종교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거기서 대학원을 마치고 캐나다 유학을 가서 보니 그 학교는 서양종교와 동양종교를 반반씩 가르치고,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서양종교를 부전공으로, 서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동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으로 나갈 때 세계종교를 가르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그때 인도의 승려 용수(龍樹·150년경~250연경)의 중관론(中觀論)을 연구한 세계적인 학자 T. R. V. Murti 교수의 강의를 1년 들으면서 종교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노장사상과 선불교를 공부하고 화엄 철학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기독교 교적을 자진해서 정리하고 나니 종교에 대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독자가 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죠.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했다는 사람들도 생기죠.”

종교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인다

밴쿠버는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은 동네다. 겨울이 되면 낮에는 7도, 여름에는 낮에 더울 때가 25도고 30도를 넘어가는 일이 없다.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온다.
“화상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밖에 비가 오고 있습니다. 그 대신 4월부터 10월 초까지는 한국의 초가을 같은 청명한 날씨입니다. 단점을 찾자면 여기는 일자리가 별로 없고 집값이 비싸지요. 그런데 밴쿠버 교민들 중에 여기가 999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천(1000)당에서 한 끗 모자란다고….”
오 교수는 서재의 블라인드를 걷으며 마운드 베이커의 산자락을 보여주었지만 서재 밖의 원경(遠景)은 줌 화면에 잡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들 셋에 손자는 네 명. 자손에 모두 ♂만 있다. 며느리 둘이 모두 한국계인데 북미에서 태어나 오래 살다 보니 평소에도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셋째 아들은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여자 친구가 중국계 싱가포르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외할아버지가 한국계다. 두 남녀가 아마 한국계 DNA에 끌려서 가까워졌을 수도 있다.

내가 “50대 중반 무렵의 오 교수님을 처음 만난 것 같은데 지금 팔순에 접어들었죠”라고 묻자 “내년이면 80”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말해주시죠. 이 답변을 끝으로 국제 화상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쓴 책의 대부분은 제가 먼저 쓰겠다고 한 것은 거의 없어요. 어디서 부탁을 해서 쓰거나 연재를 한 것을 모아서 쓰거나 한 거죠. 지금도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요청이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책 쓰는데 바쳐야 할까요. 제가 쓴 책 중에 영어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여력이 있으면 그걸 번역하려고 생각 중이죠. 여기저기 강연 요청이 있는데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못 갔습니다. 올 10월에는 한국 종교 발전 포럼이라고 하는 모임에서 강연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때까지는 상황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골프도 열심히 치려고 합니다. 코로나 끝나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물 흐르듯이 사는 게 제 라이프 스타일입니다.”(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박하늘 인턴기자)

2021/06/05

Kang-nam Oh 몇 가지 질문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병마)는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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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1itSptonshorored  · 
몇 가지 질문

얼마 전 어느 사려 깊은 분이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며 저와 다른 한 분 목사님께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자신은 현재의 기독교를 떠났지만 “참종교인, 참기독교인으로 깨우침의 길을 가고 싶”은데,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한 질문입니다.  많은 질문 중에서 제가 답할 수 있는 몇 개를 골라 답을 했습니다.  물론 제 답이 그분이 가진 문제에 대한 완벽한 대답일 수 없다는 것 이해합니다.  그런데 일반 패친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실 수 있으실지 궁금하여 여기 옮겨 봅니다.  본래의 질문은 제가 짧게 요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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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병마)는 물러가라”하여 병이 사라졌음을 제가 직접 체험했습니다. 알라나 무함마드의 이름으로도, 부처나 기타 다른 이름으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나요.

오강남 생각: 병이 기적적으로 낫는 체험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체험을 일단 설명하려 하면 그 즉시 그것은 자기가 속한 종교적 사회적 배경에서 나온 해석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배경을 가지신 분은 물론 하느님이나 예수님이나 성령이 고쳐주신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스스로가 상제라 주장하는 증산교 교주 강증산은 하느님이나 성령이라는 용어를 빌리지 않고도 병을 낫게 했습니다. 힌두교나 불교에서도 ‘싯디’라고 하여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불교도 일반 신도의 경우는 하느님이나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피나 보살들의 도움에 의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경우 하느님이나 성령 악령의 개입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유신론적 설명은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정통 기독교에서처럼 인격적인 신을 상정한 해석도 가능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해석이라 주장할 수는 없겠지요.  

아시겠지만, 종교가 없는 분들은 암으로부터의 기적적인 치유를 spontaneous remission라고 하면서 신이나 초자연적 힘의 개입 같은 것을 상정하지 않고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마치 옛날에는 간질병이 악귀가 들어서 생기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뇌세포의 변이에서 생긴 결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면에서 신을 개입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 비가 오느냐, 왜 경제가 엉망이냐, 왜 병이 들기도 하고 낫기도 하느냐 하는 등의 문제에 신을 가정하면서 신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기상학, 경제학, 의학, 과학 같은 것이 무의미하게 됩니다.  인류가 지금 같은 지식을 축적하게 된 것은 이런 알지 못했던 현상에 대한 설명 체계에서 신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크게 일어나게 된 것은 예수의 부활승천 사건의 목격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부활이 없다면 교회에 모든 것을 바치는 우리는 불쌍한 자들이라는 바울의 생각이기도 한데, 부활승천은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요?

오강남의 생각: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우리가 불쌍한 자들이라는 말을 했는데, 전체 문맥을 보아서 저는 육체적 부활보다 옛 사람에서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을 더욱 강조한 것이 아닌가 여깁니다.  그 장 끝부분에 바울 스스로도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한 것을 보면 무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는” 매일 영적 죽음과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산 것을 자랑으로 겨긴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영적 죽음과 부활의 경험이 없는 삶은 헛것이라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안믿는 것보다 무한대로 더 낫다는 파스칼의 다소 드라이한 논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믿는 것이 삶 속에서도 낫다고 봅니다. 심층종교인이 누리는 평안 때문이지요.

오강남 생각: 신이 있다고 하는데 베팅했다가 없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이 별로 없는데, 신이 없다고 했다가 신이 있으면 완전히 망하게 되기 때문에 신이 있다고 믿는 쪽에 베팅하는 것이 좋고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좋다는 파스칼의 “도박 논증(wager argument)”을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해드리는 것과 안 해드리는 것에 대해 하느님이 그렇게 신경 쓰실까 하는 문제가 있지요.  저는 하느님이니 천국 지옥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으면 어느 정도 초기에는 믿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머리가 커지면서 믿기지 않는데 억지로 믿으려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억지로 믿으려 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존 레논의 <이매진>의 노랫말처럼 천국도 지옥도 종교도 없으면 싸울 일도 목숨 바칠 일도 없고 세상에 평화가 온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신이 존재하고 내세 심판이 있어야 현재의 도덕적 생활이 가능한 것 아닌가요?

오강남 생각: 임마누엘 칸트의 실천이성에 의한 신 존재 증명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UBC 대학의 아라 노렌자얀 지음, 오강남 (해제) 김영사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신은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가 악하는게 만드는가>를 읽어보시면 옛날에는 이런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수렵채집 사회에서 공동사회로 발전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지켜보는 신’이 있어야 도덕적 생활이 가능하고 이로 인해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그런 신은 필요 없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경우 그런 신이 없어도 훌륭한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지요.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런 것을 믿는 것이 오히려 독자적인 결단에 의한 윤리 생활에 방해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신의 뜻이라 치부하므로 인간들이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복지 사회가 되는 데도 장애 요소가 된다고 합니다.  

필 주커먼이 쓴 <종교 없는 삶> (판미동, 오강남 해제) 나 기타 <신이 없이도 선할 수 있는가>류의 책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책들입니다.   덴마크나 스웨덴 노르웨이 등 제일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건전한 나라들은 실질적으로 “신 없는 사회”(이것도 필 주커만 책의 제목입니다.)라는 것입니다.  그 반대도 성립하는데 미국이 신을 믿는 사람들의 제일 많은데, 유럽 국가들에 비해 범죄율, 도덕성, 문맹율 등 여러 면에서 뒤진다고 합ㄴ다.  미국 국내에서만 보아도 루이지애나 등 교회출석율이 제일 많은 남부 바이불 벨트 주들의 범죄율이 가장 높고, 반대로 교회 출석율이 가장 낮은 북동부 버몬트 주나 서북부 오레곤 주가 범죄율이 가장 낮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감옥에 있는 죄수들 중 무신론자는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감옥에 있는 죄수들의 통계수치를 보면 기독교인들의 범죄율이 다른 종교의 범죄율보다 높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팩트체크 부탁합니다.

3 comments
Seongdoo Cho
두번째 문제는 불교도들에게 윤회의 인정과 비슷한 문제인것 같습니다.
붓다재세시 단멸론이 도덕적 방종의 근거로 사용되었기에 배척 되었던것과 비슷하네요.
윤회와 업이 없이도 충분히 도덕적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굳이 윤회론도 필요가 없어지겠네요..
감사합니다.
 · Reply · 1 h
Guho Jo
불교의 성립 근거인 윤회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2021/04/15

"한국의 간디" - 오강남의 함석헌 이야기 : 네이버 카페

"한국의 간디" - 오강남의 함석헌 이야기 : 네이버 카페

"한국의 간디" - 오강남의 함석헌 이야기


나눔회원 1:1 채팅

함석헌

-생명평화민주비폭력 등을 위해 힘쓴 한국의 간디



하나님은 다른 데선 만날 데가 없고우리 마음속에생각하는 데서만 만날 수가 있다자기를 존경함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믿음이다……그것이 자기발견이다




들어가며


다석 류영모 선생이 가장 아끼던 제자가 함석헌 선생이었고함석헌 선생이 가장 존경하던 스승이 류영모 선생이었다함석헌 선생은 다석의 1주기에 다석 선생의 제자들이 다석 선생의 집에 모였을 때 내가 부족하지만 이만큼 된 것도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두 분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이었다우선 11살의 차이였지만 생몰 일자가 거의 같다똑같이 3월 13일에 출생하고 돌아가신 날도 류영모 선생님은 2월 3일 저녁함석헌 선생님은 2월 4일 새벽으로 몇 시간 차이일 뿐이다그야말로 의미 있는 우연이라고 할까두 분 모두 흰 두루마기를 즐겨 입으셨고수염을 기르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분의 근본 사상이 여러 면에서 같았다는 사실이다두 분 모두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소개되었다필자로서는 류영모 선생을 뵙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면함석헌 선생은 여러 번 뵙고, 1979년 캐나다 에드먼튼에 살 때 필자의 집에 유하시면서 필자가 근무하던 알버타 대학교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시고 종교학과 교수들과 대담도 하실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은 더 없는 영광이라 생각된다.


대조적인 점은 류영모 선생에 비해 함석헌 선생은 키도 크시고 외모도 출중하셨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류영모 선생이 생의 후반에서 비교적 은둔적이고 금욕적인 면이 강했던 데 비해 함석헌 선생은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한국 민주화에 직접 참여하시는 등 사회 개혁에도 힘을 많이 쓰셨던 점이라고 볼 수 있다신비주의 전통에서 즐겨 쓰는 용어를 빌리면 함석헌 선생은 행동하는 신비주의자라 할 수 있다.


마침 함석헌 선생이 나는 왜 퀘이커교도가 되었는가하는 제목의 자서전적인 글을 쓰셨는데그것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구성해 본다.


그의 삶


신천 함석헌咸錫憲(1901~1989)은 (여기서부터 존칭 생략평안북도 황해 바닷가 용천에서 아버지 함형택과 어머니 김형도 사이의 32녀 중 누님 아래 둘째로 태어났다. 5세경 누님이 배우는 천자문을 옆에서 듣고 모두 외었다여섯 살에 기독교 계통의 사립 덕일 소학교에 입학하고 긴 댕기머리를 잘랐다함석헌에 의하면 전통 종교가 창조적인 생명력을 잃은 형식적 전통에 불과할 때 바닷가 상놈의 고장으로 알려진 자기 마을에 새로 들어온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넣어주었다고 한다그는 기독교 계통 사립 초등학교에서 하느님과 민족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홉 살 때 나라가 일본한테 아주 망하고 어른들이 예배당에서 통곡하는 것을 보았을 때 어린 마음에 크게 충격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인해 아주 낙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후일 함석헌은 자기가 열세 살까지 지금 생각하기에도 순진한 기독 소년이었다고 고백한다. 14세에 양시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16세에 졸업한 다음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이것은 나중 의사가 될 목적이었다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순진성이 많이 없어지고 과학을 배우면서 성경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양고보 2학년 17세에 한 살 아래의 황득순과 결혼했다.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수리조합 사무원소학교 선생으로 일하기도 했다그해 11월 장남 국용이 출생하고 2년 후 장녀 은수가 태어났다그는 모두 2남 3녀를 두었다그는 이때를 회고하며 집에서 2년 동안을 있노라니 운동 이후 폭풍처럼 일어나는 자유의 물결과 교육열 속에서 젊은 놈의 가슴이 타올라 날마다 빈둥빈둥 놀면서 썩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1921년 21세에 다시 학업을 계속하려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4월이라 입학 시기가 지나 어디에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그러다가 우연히 길가에서 집안 형 되는 함석규 목사를 만나그가 써주는 편지를 가지고 정주 오산학교에 가서 3학년에 편입되었다그해 여름이 지나고 류영모가 교장으로 부임하고, 9월 개학식 때 함석헌은 처음으로 류영모를 만나게 되었다함석헌에 의하면 그는 류영모의 영향으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처음으로 한국이 필요로 하는 뭔가를 찾기 시작하고또 류영모로부터 노자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그 결과 남을 따라 마련된 종교를 믿기보다는 좀 더 참된 믿음을 요구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그러나 그는 교회에서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더욱이 교회가 점점 현실에서 먼 신조주의信條主義’, 교리중심주의로 굳어지게 되자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 되기 시작했다오산학교와 류영모의 영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함석헌은 1923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갔다그해 9월에 난 대지진으로 도쿄시의 3분 2가 타버렸다일본 정치가들은 민심수습책으로 한국인들이 폭동을 계획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한국인 약 6천명이 학살되었다이를 본 함석헌은 기독교를 가지고 내 민족을 건질 수 있을까?” 번민하기 시작했다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렇다고 도덕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할 수도 없었다오래 동안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 형편으로는 교육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에서 일본 유학을 결심한 그 본래의 의도대로 1924년 지금의 교육대학에 해당하는 도쿄 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갔다새로 입학한 기쁨에 교회를 찾아가다가 동갑내기 1년 선배인 김교신金敎臣을 만나고김교신이 우치무라의 성경연구회에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우치무라는 오산학교에서 류영모 선생에게서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그 당시에는 우치무라가 생존인물인지도 몰랐는데김교신을 통해 그가 도쿄에 살면서 성경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과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다함석헌은 존경하는 스승 류영모가 언급한 인물이라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우치무라의 무교회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는 별도의 예배형식이 없이 성경을 읽고 십자가에 의한 속죄를 강조하며 해석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고 한다여기서 함석헌은 성경이란 이렇게 읽어 나갈 것이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그러면서 사회주의와 기독교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번민에서 벗어나 크리스챤으로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28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귀국오산학교로 돌아와 역사 선생으로 일했다그러나 역사 선생이 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역사란 것이 온통 거짓말투성이일 뿐 아니라 한국 역사가 비참과 부끄럼의 연속이어서학생들에게 그대로 가르치자니 어린 마음에 자멸감과 낙심만’ 심어줄 것 같고다른 사람들처럼 과장하고 꾸미려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민에 고민결국 자기에게는 세 가지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음을 확인했다첫째 한민족으로서 민족적 전통을 버릴 수 없고둘째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버릴 수 없고셋째 영국 역사가 H. G. Wells의 The Outline of History를 읽고그 영향으로 받아들인 과학과 세계국가주의를 버릴 수 없었다이 셋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이 셋을 다 살리면서 역사 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된 것인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고난의 메시야가 영광의 메시야라면고난의 역사는 영광의 역사가 될 수 없느냐?’하는 것이었다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다시 용기가 나 역사 교수를 계속할 수 있었다말하자면 한국 역사의 keynote를 고난suffering’으로 보는 역사관이 확립되고 이런 역사관에 입각해서 한국 역사를 재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치무라의 성서연구모임에 참석했던 유학생들 여섯 명이 귀국하여 성서연구모임을 만들고 󰡔성서조선聖書朝鮮󰡕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했는데함석헌은 고난의 견지에서 한국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글을 연재했다이것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라는 명작이 되어 나왔다이 책은 나중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이름의 개정판으로 나왔고류영모의 맏아들이 번역하여 영문판으로도 나왔다.


오산학교에 10년간 있었는데그때는 스스로 십자가 중심 신앙에 충실한 무교회 신자였다고 했다그러나 본래 교파를 싫어하여 무교회라는 것이 생겼는데아이러니하게도 무교회도 하나의 교파로 굳어가는 것 같고또 우치무라에 대한 개인숭배 태도가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 반감을 느끼고더욱이 중요한 것은 자주적으로 생각을 깊이하면서 예수가 내 죄를 대신해서 죽었음을 강조하는 우치무라의 십자가 대속 신앙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심정적으로는 무교회주의에서 떠났지만그것을 크게 공표하여 부산을 떨 필요를 느끼지 않아 그런대로 몇 년을 지났다.


오산에 있으면서 한국의 구원은 믿음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통해 농촌을 살려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오산에 온 것도 이를 실천하기 위함이라고 믿었다그러나 1936~1937년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점점 가혹해지자 함석헌은 죽을 지언정 이에 맞서야 한다고 하였지만 오산학교 행정자 측은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그는 평생을 바칠 마음으로 왔던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38년 봄 눈물로 교문을 나왔다.”


교문은 나왔지만 차마 학생들을 떠날 수는 없었다오산에 머물면서 일요일마다 학생들을 만났다그렇게 2년을 보내다가후배 김두혁이 평양 시외에서 경영하던 덴마크식 송산농사학교를 넘겨주겠다고 하여 1940년 그리로 갔다가자마자 설립자가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검거됨에 따라 함석헌도 덩달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억울하게 1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오니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1942년 김교신이 󰡔성서조선󰡕에 실린 조와弔蛙라는 우화 때문에 잡지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잡혀가는 사건이 터져다시 감옥에 들어가 1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왔다이 때문에 나중 독립유공자 자격으로 대전 국립묘지에 이장될 수 있게 된 것이다출옥 후 다시 농사를 짓고 있는데, 2년 후 해방이 되었다.


함석헌은 이때까지 감옥을 네 번그 후로도 세 번 더 들어갔는데감옥에 있을 때 얻은 것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그는 감옥을 인생대학이라 부르고감옥 속에서 불교 경전도 보고노자장자도 더 읽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신비적인 체험도 얻었다고 한다이런 경험을 통해 모든 종교는 궁극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확신에 이를 수도 있었다함석헌은 감옥에서 깨달은 바를 스스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것은 단순히 국경선의 변동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인간 사회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려는 세계혁명의 시작이다세계는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국가관이 달라져야 한다대국가주의시대大國家主義時代가 지나간다세계관이 달라지고 종교가 달라질 것이다아마 지금과는 딴판인 형태를 취할 것 아닐까종교의 근본 진리야 변할 리 없지만 모든 시대는 그 영원한 것의 새로운 표현을 요구한다각 시대는 제 말씀을 가진다장차 오는 시대의 말씀은 무엇이며누가 받을까새 종교개혁이 있기 위해 이번도 새 학문의 풍()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그러면 역시 과거의 새로운 해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새로운 고전古典 연구가 필요하다그 고전은 어떤 것일까서양 고전이 될 수는 없다그것은 이미 다 써먹었다그럼 동양 고전을 다시 음미하는 수밖에 없을 거다막다른 골목에 든 서양문명을 건지는 길은 동양을 새로 맛보는 데서 나올 것이다.”


특히 종교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는데기성 종교는 국가주의와 너무 깊이 관련되었기에 낡은 문명과 함께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마치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를 말한 디트리히 본회퍼나 2000년 전 예수 탄생 때 동방에서 선물이 온 것처럼 지금도 동방에서 새로운 정신적 선물이 와야 한다고 한 토마스 머튼을 읽는 기분이다

 

해방 후 사람들의 강권에 의해 임시자취원회 위원장이 되고이어서 평안북도 임시정부 교육부장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반공 시위인 신의주 학생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 소련군 감옥에 두 번이나 투옥되었다밀정이 되기를 요구하는 소련군정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남한으로 넘어왔다. 1947년의 일이다.

월남하여서는 무교회 친구들의 협력으로 일요 종교 강좌를 열어 1960년까지 계속하면서 말로나 글로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젊은이들 사이에 그의 사상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필자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 그 당시 󰡔사상계思想界󰡕에 실린 그의 글들을 읽었다그의 생각이 일반에게 알려지면서 한국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낙인찍고그의 무교회 친구들도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세 가지 주된 이유는 그가 십자가를 부정하고기도하지 않고너무 동양적이라는 것이었다그러나 함석헌은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십자가에서 몸소 지는’ 십자가를 강조한 것이고기도도 형식과 인간끼리의 아첨에 지나지 않는’ 공중기도를 삼갈 뿐이라고 하고동양 종교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그저 교파적인 좁은 생각으로 동양적인 것을 배척하는 것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었다고 한다결국 표층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심층 종교로 들어가는 함석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일로 구태여 무교회와 결별할 생각은 없었다무교회를 떠난 결정적 계기는 중대한 사건’ 때문이었다그가 오산 시절부터 간디를 알고 오래 동안 간디를 좋아해 간디 연구회를 만들 정도였는데동지들 사이에서 간디의 아슈람 비슷한 것을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1957년 천안에 씨알농장을 만들고 젊은 몇 사람과 같이 지내게 되었다이때 도저히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형세는 돌변했다친구들이 모두 외면하고 떠나버린 것이다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그러면서 관념적으로 믿고 있고 감정적으로 감격하던 십자가가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었다그는 그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십자가도 거짓말이러라
아미타불도 빈말이러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도 공연한 말 뿐이러라
내가 쟝발장이되어 보자고 기를 바득바득 쓰건만 나타나는 건 미리엘이 아니고 쟈벨 뿐인 듯이 보이더라
무너진 내 탑은 이제 아까운 생각 없건만 저 언덕 높이 우뚝우뚝 서는 돌탑들이 저물어가는 햇빛을 가리워 무서운 생각만이 든다.”


이때를 예견한 것인가함석헌은 1947년 월남 이후 지은 그의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심정이 토로하고 있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救命袋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不義의 死刑場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못 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스승 류영모마저도 그를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끝내 그를 내쳤다그러나 물론 그에 대한 사랑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다석일지󰡕에 보면 함은 이제 안 오려는가영 이별인가” 하며 탄식하는 등 7~8회에 걸쳐 제자 함석헌을 그리는 글이 나온다류영모는 내게 두 벽이 있다동쪽 벽은 남강 이승훈 선생이고 서쪽 벽은 함석헌이다고 할 정도였다.


심정적으로는 그럴지라도 겉으로는 스승으로부터도 버림받아 홀로 된 그에게 퀘이커가 나타났다퀘이커에 대해서는 오산 시절부터 들었지만 좀 별난 사람들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한국 전쟁 후 구호사업으로 한국을 찾은 퀘이커들을 만나 처음으로 퀘이커 신도가 된 이윤구를 통해 퀘이커를 접하게 되었다. ‘갈 곳이 없는’ 상태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퀘이커 모임에 나갔다. 1961년 겨울이었다이렇게 되어 196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퀘이커 훈련 센터인 펜들힐Pendle Hill에 가서 열 달 동안비슷한 성격의 영국 버밍엄에 있는 우드브루크Woodbrooke에 가서 석 달 동안 지내게 되었다이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퀘이커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룻밤 뽕나무 그늘 밑에서 자고 가려는 중의 심정이었다그러다가 1967년 미국 북 캐롤라이나에서 열렸던 퀘이커 세계 대회에 퀘이커 친우들이 그를 대해 주는 데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느껴서 결국 퀘이커 정회원이 되었다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수평선너머를 내다봅니다.

내가 황햇가 모래밭에서 집을 지었다 헐면서 놀 때에 내다보던 수평선,

피난 때 낙동강 가에서 잔고기 한 쌍 기르다 죽이고 울면서 내다보던 수평선,

영원의 수평선너머를 나는 지금도 내다봅니다.”


함석헌은 류영모와 달리 현실참여에 적극적이었다. 1961년 장면 정권 때 국토 건설단에 초빙되어 5·16 군사 정권이 들어오기 전까지 정신교육 담당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0년에는 잡지 󰡔의 소리󰡕를 창간하여 그의  사상을 널리 펼치고 동시에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는데,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의해 폐간되었다가 1988년 8년 만에 복간되었다군사 정권에서는 군사 독재에 맞서서 1974년 윤보선김대중 등과 함께 민주회복국민운동본부의 고문역을 맡아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느라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이런 민주화 운동을 인정받아 1979년과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퀘이커 봉사회의 추천으로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9년 췌장암으로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 2월 4일 새벽 5시 28, 87년 11개월 가까이날짜로 33,105일을 사시고 세상을 떠났다함석헌을 따르며 그의 가르침을 받은 박재순 박사에 의하면돌아가시기 전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연장시키려 애쓰셨다는데그것이 스승 류영모가 돌아가신 날에 맞추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고 한다장례식은 조문객 2 명이 오산학교 강당에 모여 오산학교장으로 치르고 경기도 연천읍 간파리 마차산에 묻혔다가,  2002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자로 건국훈장이 추서되고이에 따라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영원한 들사람에게는 약간 의외의 조치가 아닌가 여겨지는 면도 있다.


그의 가르침


함석헌은 동서고금의 정신적 전통에서 낚아낸 깊은 사상을 바탕으로 일생을 통해 일관되게 생명평화민주비폭력 등을 위해 힘쓴 행동하는 신비주의자’, 세간에서 말하는 한국의 간디라 할 수 있다성경에 보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누가복음6:40) 했다󰡔도마복음󰡕이나 󰡔장자󰡕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류영모 선생님의 제자이지만어느 면에서 스승이 이루지 못한 부분을 보충했다는 의미에서 청출어남이청어남靑出於藍而靑於藍의 경우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함석헌의 사상이 어떻게 세계 종교의 심층곧 신비주의 전통과 통하는가그의 가르침이 어떻게 우리가 살펴본 인류의 정신적 스승들의 사상을 통섭하고 있는가몇 가지 예를 들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는 경전을 끊임없이 고쳐 해석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경전의 생명은 그 정신에 있으므로 늘 끊임없이 고쳐 해석하여야 한다.…… 소위 정통주의라 하여 믿음의 살고 남은 껍질인 경전의 글귀를 그대로 지키려는 가엾은 것들은 사정없는 역사의 행진에 버림을 당할 것이다아니다역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가 스스로 역사를 버리는 것이다.”


종교적 진술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정통주의나 근본주의적’ 태도는 종교의 더욱 깊은 뜻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심각하게 받아들이려면 문자적으로 읽을 수 없다고 한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둘째는 자라나는 신앙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신앙은 생장기능生長機能을 가지고 있다이 생장은 육체적 생명에서도 그 특성의 하나이지만신앙에 있어서도 그러하다신앙에서 신앙으로 자라나 마침내 완전한 데 이르는 것이 산 신앙이다.”

옛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는 낡아 빠진 종교다우리들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말하는 종교는 낡아 빠진 종교이다신학적인 설명을 강요하기 휘해 과학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종교도 역시 낡아 빠진 종교다.”


자라지 않은 신앙은 죽은 신앙생명이 없는 신앙이다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다시 바람(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결국에는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도마복음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우리의 의식구조가 변화를 받아 점점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는 하나님은 내 마음 속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데선 만날 데가 없고우리 마음속에생각하는 데서만 만날 수가 있다.

자기를 존경함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믿음이다……그것이 자기발견이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가장 본질적인 나라는 뜻에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참 나라 할 수 있다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참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이런 발견을 일반적으로 일컬어 깨침이라 한다심층 종교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   


넷째,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나는 역사적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믿는 것은 그리스도다그 그리스도는 영원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그는 예수에게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내 속에도 있다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와 나는 서로 다른 인격이 아니라 하나라는 체험에 들어갈 수 있다그때에 비로소 그의 죽음은 나의 육체의 죽음이요그의 부활은 내 영의 부활이 된다속죄는 이렇게 해서만 성립된다.”


놀라운 통찰이다예수는 자기 속에 있는 그리스도혹은 그리스도 의식Christ-consciousness임을 발견한 분이다우리도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예수와 같은 그리스도 의식에 동참하여 그와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 1945년에 발견된 󰡔도마복음󰡕을 비롯하여 심층 종교의 기본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사랑이 이긴다는 가르침이다.


평화주의가 이긴다.

인도주의가 이긴다.

사랑이 이긴다.

영원을 믿는 마음이 이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세계 거의 모든 종교 신비주의 심층 전통에서는 나와 하느님이 하나임을 말함과 동시에 나와 다른 이들다른 사물들과도 결국 일체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이다. “어떤 경우가 천박한 이해인가나는 답하노라. ‘하나의 사물을 다른 것들과 분리된 것으로 볼 때’ 라고그리고 어떤 경우가 이런 천박한 이해를 넘어서는 것인가나는 말할 수 있노라.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있음을 깨닫고 천박한 이해를 넘어섰을 때라고.”


여섯째는 너와 나는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나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남과 같이 있다그 남들과 관련 없이 나는 있을 수 없다그러므로 나와 남이 하나인 것을 믿어야 한다·남이 떨어져 있는 한나는 어쩔 수 없는 상대적인 존재다그러므로 나·남이 없어져야 새로 난 그러므로 남이 없이그것이 곧 나다 하고 믿어야 한다.”


함석헌은 내 속에 참 나가 있다”, “이 육체와 거기 붙은 모든 감각·감정은 내가 아니다”, “나의 참 나는 죽지도 않고늙지도 않고변하지도 않고 더러워지지도 않는다고 하면서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나와 만물이 하나임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가히 사사무애事事無礙의 경지다.    


일곱째는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좁아서는 안 되겠지요우주의 법칙생명의 법칙이 다원적이기 때문에 나와 달라도 하나로 되어야지요사람 얼굴도 똑같은 것은 없지 않아요생명이 본래 그런 건데종교와 사상에서만은 왜 나와 똑같아야 된다고 하느냐 말이야요생각이 좁아서 그렇지요다양한 생명이 자라나야겠는데……


이사야나 아모스만이 하느님의 예언자가 아니라 동양의 공··장도 모두 다 하느님의 예언자다.

궁극적 실재가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말이나 문자로 표현된 것의 절대적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궁극 실재에 대한 우리 인간의 견해見解는 그 타당성이 결할 수밖에 없다모든 견해가 이럴 진데 나의 견해만 예외적으로 절대로 옳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자연히 다원적 사고를 인정하게 된다거의 모든 심층 종교신비주의 전통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런 몇 가지 예만으로도 함석헌의 사상이 류영모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세계 신비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아는 데 충분하리라 생각한다특히 오늘 한국의 종교들이 거의 표층 종교 일색으로 변해 있는 상태에서 이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된다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나 도로테 죌레Dorthee Soelle가 미래의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심층적인 종교신비주의적 종교일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류영모·함석헌의 사상에서 미래 종교의 광맥을 보는 듯하다 하면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