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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1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19)그분은 오직 '사랑'을 말했을 뿐이었다 - 아주경제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19)그분은 오직 '사랑'을 말했을 뿐이었다 - 아주경제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19)그분은 오직 '사랑'을 말했을 뿐이었다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20-02-10

다석 류영모, 톨스토이, 우치무라와 종교 본질에 대한 입장들


[우치무라 간조]

임종 때도 일본 융성을 말한 우치무라

우치무라 간조는 70세인 1930년에 눈을 감으며 "인류의 행복과 일본국의 융성과 우주의 완성을 기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예수와 일본을 늘 함께 생각했던 애국적인 신념을 드러낸 유언이었다. 그가 일본을 비판할 때도, 거기엔 깊은 애국심이 바탕으로 깔려 있었다.

그가 남긴 사상인 '무교회주의'는 평생 투쟁적으로 살았던 신앙적 삶의 기반 같은 것이었다. 또한 세상에 남겨놓은 결실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무교회주의는 나의 신앙이다. 혹자가 감리교회 신자이고 혹자는 침례교회 신자이고 혹은 성공회 신자이고 회중교회 신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무교회 신자이다."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는 다석 류영모가 교회를 탈피하면서 주창했던 비정통 기독교와는 어떻게 다른가.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접근은 류영모 신앙이 지닌 독보적이고 근본적인 가치를 돋을새김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류영모는 톨스토이의 신학적 입장과 마찬가지로 '교회' 자체가 성서에는 없는 기업적 시스템이며, 예수의 초인적 면모나 '기적' 또한 믿음을 돋우고자 후세에 덧붙인 가필일 뿐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교회를 중심으로 교파를 형성하고 그 밖의 신앙행위를 이단으로 배격하는 서양기독교의 골격에서 스스로 이탈하고자 했다.

그는 정통을 표방하는 교회들을 비판함으로써 이런 생각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교회를 나와 성서 속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가르침을 가려내고 동양적 통찰과 함께 적용하여 그 보편성을 실천하는 길을 걸었다.

우치무라 '무교회'는 서양식 기독교에 대한 반대

그러나 우치무라의 경우, 삿포로 농학교에서 놀라운 형제애를 체험했던 '7인형제의 작은 교회'의 함의를 신앙적 신념으로 발전시켰다. 교회와 목사 중심의 서양 기독교가 아니라, 교인들이 신앙적으로 평등하며 자발적인 형식으로 움직이는 '교회 아닌 교회'를 실천한 것이다. 일본 기독교에 서양 전통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뿌리 깊은 애국적 주체성의 발로이기도 했다.

그의 무교회는 교회를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의 제도주의와 성례전주의를 거부한 것이다.

제도주의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는 계급시스템이다. 믿음 안에서 신도들은 철저히 평등하다는 얘기다. 또 신앙을 형식에 가두거나 교파적 신조가 구원을 독점한다고 주장하는 교파주의 혹은 배타주의를 비판했다. 예수 이후에 생겨난 인위적인 형식과 구분들이 본질적인 신앙을 오히려 훼손하거나 왜곡한다고 본 것이다.

성례전주의는 세례와 성만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세례는 죄를 정화시키는 기적적 힘이 있는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신앙생활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만찬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형제·자매로 거듭나는 신앙행위라고 해석했다.

우치무라는 말했다. "나에게 교회는 없지만 그리스도는 있다.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내게도 교회가 있고, 그리스도가 나의 교회다." 그는 새로운 '교회'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성서를 새롭게 읽을 것을 제안했고, 그것이 '성서연구회'다. 기존의 기독교계에서는 성서를 연구한다는 시도 자체가 불경이었다.



[김교신]

조선산 기독교를 주창한 김교신

김교신(1901~1945)은 기독교를 계속해서 새롭게 표현하는 영적인 것으로 이해한 우치무라의 주장들을 '진정한 복음'이라고 믿었다. 복음의 진리를 일본 역사현실 속에서 실천하려는 우치무라는 그에게 진정한 기독교적 예언자로 여겨졌다. 그는 1927년부터 조선성서연구회 5명과 함께 '성서조선'을 발행한다. 이 잡지는 1942년 일제에 의해 폐간된다. 그는 이 잡지에서 '조선산 기독교'를 주창한다.

일본은 그가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해 감옥으로 보냈다. 1944년 전염병에 걸린 조선노동자를 간호하다가 감염되어 세상을 떠났다. 이후 '조선 무교회'는 친구였던 함석헌에 의해 주도된다. 그러나 함석헌은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의 격랑 속에서 우치무라의 무교회를 벗어나 새로운 역사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우치무라는 당시 조선에 대해 과감한 우호적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3·1운동의 일제 탄압과 관동대지진의 대학살에 대해선 침묵했다. 김교신이 조선의 독립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영국과 스코틀랜드 관계처럼 되면 좋지 않겠느냐"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그는 기독교적 평등관을 실천하고자 했지만, 일본에 대한 애착을 넘어선 보편적 투철함은 지니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우치무라는 조선의 영적인 세계까지 노리는 영적 제국주의의 야심가"라는 맹렬한 국내 비판(김린서)까지 받기도 했다.

류영모는 비교적 우치무라에 대한 말을 아꼈지만, 자신과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외국 선교사에 반대하여 사도신경 정신에 입각해 교회 본래의 정통신앙을 세우고자 했죠. 나와 톨스토이는 (교회를 벗어난) 비정통신앙입니다."



[레프 톨스토이]
나와 톨스토이는 우치무라와 다르다

이 뒤에 이어질 류영모의 말을 대신해준 건 에드윈 헤치('허버트강연집')였다. "예수의 산상수훈과 사도신경 사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불과 100년 사이에 다른 종교가 됐다. 정치화하고 세속화했다. "

레프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상수훈인가 사도신경인가?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후자를 택했다. 사도신경은 교회에서 기도로 가르쳐지며 읽혀지지만 산상수훈은 심지어 교회에서 읽혀지는 복음 구절에서도 제외되고 그래서 전체 복음서가 읽혀지는 날을 제외하고는 교회의 집회에서 신도들은 결코 듣지 못한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말인지, 기독교도들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신앙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산상수훈과 사도신경이 이렇게 택일을 해야 하는 선택지인지, 그것이 지니는 논리적 갈등이나 모순이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감히, 왜 저런 질문을 던져 1800년 기독교 역사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예수의 참 메시지는 산상수훈

산상수훈은 성경 마태복음 5-7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산상수훈은 '성서 중의 성서'라고도 불리며, 예수가 선교활동 초기에 갈릴리의 작은 산(가버나움) 위에서 제자들과 군중에게 행한 설교다. 이 설교는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기본적인 기독교 윤리지침으로 꼽힌다. 내용은 '8개의 복'과 사회적 의무와 자선행위, 기도, 금식, 이웃사랑에 대한 가르침이다. 참된 신앙생활의 내면적 본질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말하고 있는 대목들이기도 하다.

심령이 가난한 이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임이요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 /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 옳음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배부를 것이요 / 연민을 지닌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연민을 받을 것이요 / 마음이 맑은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하느님을 볼 것이요 / 평화롭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느님 아들이란 얘길 들을 것이요 /옳음을 위해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다 <'산상수훈' 중에서>

'복이 있나니'의 앞에 있는 8가지 조건들은 역설에 가까운 것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된 삶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 '내가 잘되는 것'이 중심이다. 그러나 이 8복은 모두 남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으며, 공동체나 집단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자기의 것을 덜어내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산상수훈은 8복을 말한 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고 한다. '세상'이라고 표현된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며, 소금과 빛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할 역할을 말한다. 소금의 역할은 세상의 부패를 막는 역할과 세상의 맛을 내는 역할이다. 빛의 역할은 어둠의 세상을 밝히는 역할과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역할이다. 현재의 역할과 미래의 역할을 겹친 비유로 말하고 있다. 소금이 그 맛을 잃거나 등불을 등경 위에 두지 않고 말 아래 두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면서, 예수는 소금답고 빛답게 사는 것이 기독교적인 삶이라고 말해준다.

사도신경, 신앙 '이단'의 판단 근거

한편 사도신경은 사도(apostle)가 전해준 신경(creed)으로 기독교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과 규범을 가리킨다. 사도는 예수의 제자를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의 메시지 전달자들을 말한다. 2세기의 교회에서 정리된 세례의 믿음 고백 형식이 3세기 이래로 전하여 사도신경의 기본이 되었다. 4세기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사도신경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10세기에 완결된 형태로 서방종교에서 사용된다. 사도신경은 사도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전승에 기초해서 만들었으므로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도신경은 이단을 판단하는 기초근거가 된다.

사도신경은 이런 형식을 지닌다. (1)나는 전능하신 하느님, 창조주를 믿습니다 (2)나는 그의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며 장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다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3)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4)나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와 교제와 죄를 사함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사도신경은 '내가 지금 여기서 믿는다'는 실존적 신앙을 강조하고 그 믿음이 전승되어온 것임을 강조한다. 이 강조는 이단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단은 예수를 통해 계시해준 하느님이 아니라 개인적인 체험과 믿음 위에 세운 신앙이라는 논리다. 사도적 전승이 아니라는 점이 이단을 가르는 핵심이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한다. "1800년 전 이교도들이 사는 고대 로마세계 한가운데 이상하고도 새로운 가르침이 나타났다. 이 가르침은 예수라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옛 종교의 모든 규칙 대신 오직 내면적 완성과 진리, 그리고 그리스도의 화신인 사랑을 내세웠다. 이 가르침은 그 내면적 완성의 결과, 즉 예언자들이 예언한 외면적 완성인 신의 나라를 보여주었다. 이 가르침에는 진리, 교리와 진리의 일치 말고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이 가르침에는 사람을 변호하여 정당화하고 그를 구원한다는 행위는 없었다." 즉, 예수의 가르침은 산상수훈의 내면적 완성과 사랑만이 본질이었다는 것이다.



[다석 류영모]복음서에는 오늘날의 '교회'가 없었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실존적 신앙고백의 핵심에는 예수가 말한 '무욕과 사랑'은 전혀 없고 오직 인간과 다른 초인적인 기적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재확인하는 내용들만 담겨 있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교회'라는 현재의 개념이 비성서적이며 비기독교적이라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복음서에서는 교회라는 말이 딱 두 차례 나오는데, 단순한 모임을 가리킬 뿐 신앙의 기관이나 시스템을 가리키는 의미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가톨릭이나 그리스 정교회의 교리문답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교회를 문제 삼는 더 큰 까닭은 스스로를 무오류로 주장하고 '이단'을 설정하는 개념으로 활용하여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에 대한 추구를 억압하고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가 자임했던 '사람과 신의 중재자'는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스스로 가르침을 인간 각자에게 알려주러 왔는데 왜 또 다른 중재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리스도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교회가 세워놓은 교리들이 인위적이고 형식적인 허구임이 밝혀질 수밖에 없다. 교회에 대해 이렇게 놀랄 만한 발언을 쏟아낸 이가 대문호이자 종교사상가인 톨스토이였다. 이 땅에서 톨스토이의 이 같은 사상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에서 구체적이고 확장적으로 실천하고자 한 사람이 다석 류영모였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

2021/06/29

나는 함석헌을 어떻게 보았는가? 함석헌 사상의 위상: 동서정신문화를 융합한 생명철학





나는 함석헌을 어떻게 보았는가?

함석헌 사상의 위상: 동서정신문화를 융합한 생명철학



1. 함석헌을 보는 관점

1) 유동식에 따르면 대표적 한국인 원효, 율곡, 함석헌, 세 사람은 자기 종교에 충실하고 다른 종교에 포용적이면서 내적으로도 통합적인 관점을 지녔다. 그 가운데 함석헌은 동서문명을 아우르는 세계적 지평을 열었고 훨씬 많은 글을 남겼다. 원효의 사상, 일심론, 무애론, 화쟁론은 함석헌 속에 다 녹아 있다.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모두 함석헌의 사상 속에 녹아 있다.



2) 함석헌은 생명·역사의 시공간적 지평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바닷가에 살았던 그는 수평선, 천평선(天平線)을 생명과 역사의 수평선, 천평선으로 보았다. 함석헌의 삶과 사상을 상징하는 것은 바다이다. 바다는 한없이 깊고 크면서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출렁인다. 또 바다는 모든 것을 아우르고 품어주는 큰 하나, 전체다. 그의 삶과 사상은 태평양 바다처럼 큰 파도가 치고 태풍과 폭풍이 불어오면서 평화로운 바다와 같다. 깊고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태평하다.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변화, 삶의 소식. 미래 전망적, 혁신과 변화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생명과 역사의 역동성을 강조했으며, 생명, 하나님을 동사로 보았다. 생명 속에서 살아 있는 하나님을 ‘~려 함’으로 영원한 미완성으로 보았다. 하나님은 절대 초월자, 영원 불변자, 영원 부동의 북극성이면서 나의 삶과 역사 속에 만물 속에 살아 숨 쉬는 미완의 존재다. 초월적 영성, 형이상학적 정신을 생명과 역사의 지평 속에서 생각하고 표현하고 실현했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와 삶에 대해 유기체적 통합적이면서 혁명적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3) 동서정신문화를 창조적으로 융합하면서 민중의 주체적 자각을 이루다. 한국근현대와 세계근현대의 시대정신, 민족정신을 구현하다. 근현대 한국민족 속에서,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속에서 함석헌의 삶과 정신, 사상과 실천 속에서 동서정신문화가 정화되고 해방되었다. 함석헌에게서 민의 주체적 자각이 가장 온전하게 구현되고 동서의 정신문화가 가장 깊고 창조적이고 온전하게 융합되었다. 동서정신문화가 종합되어 새로운 민주적 세계문명이 형성되었다. 함석헌은 세계역사가 하나 됨을 향해 직진하고 있다고 보았다.



4) 정신과 사상의 해방구: 국가의 지배권력과 지배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 정신과 사상의 해방구가 열린다. 히브리 기독교의 아브라함, 그리스의 이성철학, 기축시대의 종교철학은 모두 정신과 사상의 해방구에서 생겨났다.

한국근현대: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국가의 지배권력과 이념에서 벗어나 동서문명이 깊이 만나고 민중이 해방되는 정신과 사상의 해방구가 열렸다. 위대한 인물과 사상이 탄생한다. 히브리 기독교, 그리스 헬레니즘, 기축 시대보다 더 크고 깊은 해방구가 열릴 수 있다.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은 한국근현대의 성현들이다. 장기려에 따르면 한국인은 500년 후에나 함석헌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서구문명과 동양문명의 틀 안에서 함석헌을 이해할 수 없다. 서구문명과 동양문명의 정신·사상적 틀은 2천년, 2천 5백년 전에 형성된 것이다. 고대와 중세의 시대적 한계,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제약으로 함석헌을 이해하기 어렵다. 함석헌을 이해하려면 시대비판과 문명비판을 해야 한다.





2. 서구문명과 동아시아문명의 반성과 비판



1) 서구문명비판: 서구문명의 정신적 토대와 기둥은 히브리 기독교 정신과 그리스 헬레니즘 철학이다. 히브리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은 생명의 중심과 주체인 영혼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신앙이다. 인간의 영혼을 가장 깊고 높이 드러내고 실현한다. 히브리 기독교 신앙은 생명과 역사에 대한 초월적 관점과 이해를 제공한다. 그리스 헬레니즘 철학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면서 진선미에 대한 고결한 이념과 목적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을 제공한다. 서구문명의 사명은 영혼을 살리고 해방하는 기독교 하나님 신앙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그리스의 이성철학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도 기독교정신과 그리스철학을 통합하지 못했다. 물질론과 기계론에 함몰된 현대서구문명은 기독교정신과 그리스형이상학을 버렸다. 물질의 세계는 생명없는 죽은 것이고 기계의 세계는 영혼없는 세계다. 물질론과 기계론에 사로잡힌 세계는 함석헌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2) 동아시아 문명 비판: 농본적 사회질서에 토대를 둔 동아시아 문명은 하늘과 땅 사이의 생명과 인간을 존중하는 유기체적 통합적 세계관을 확립했다. 하늘은 생명과 인간의 아버지고 땅은 생명과 인간의 어머니다. 천지인합일의 유기체적 생명적 세계관은 도덕적이고 통합적이지만 엄격한 과학(수학, 기하학)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영혼에 대한 이해를 주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세계관은 근현대의 역동적, 주체적, 혁신적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아시아의 합일적 세계관도 함석헌의 역동적 주체적 삶과 정신을 이해할 수 없다.



3) 고대와 중세사상의 비판: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고대와 중세의 사고방식으로는 근현대의 정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개별적 주체의 자각이 없고 개인의 나가 확립되지 않으면 근현대의 정신과 사상이 아니다. 고대와 중세의 사상적 특징은 전체와의 합일, 신비적 일치다. 천인합일, 신인합일, 범아일여, 무위자연, 무념무상, 제법무아는 모두 개별적 주체를 전체에 귀속시키는 사상이다.



4) 근현대의 정신: 동서문화가 합류하여 더 크고 힘차고 풍부하고 역동적으로 되는 것이 근현대의 정신이다. 과거가 기준이 될 수 없다. 과거의 정신과 사상은 근현대의 정신과 사상 속에서 이해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근현대가 과거보다 훨씬 더 크다. 언제나 하나님, 생명은 오늘 여기에 살아 있다. 모든 현재는 과거보다 새롭고 크고 높은 것이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죽은 것이고 허물이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 삶과 역사의 중심에서 과거를 비판하고 이해해야 한다.

생명과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계승하면서도 비판하고 극복하여 딛고 넘어서서 새 역사를 지어가야 한다. 따라서 예수도 하나님은 지금 살아계신 분이라고 하였다. 모세는 그렇게 말했으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하였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3. 함석헌 사상의 성격과 특징



1) 생명(역사) 체험의 사상: 생의 주체와 전체와 진화혁신의 관점에서 보자. 생명 철학자 함석헌 사상은 삶, 사상, 행동이 일치된 사상이다. 삶과 역사를 실현하고 완성하고 형성하고 창조하는 사상과 실천, 활동이다. 한국근현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사상가. 자기 생명을 온전히 살았던 사상가, 생명을 온전히 구현하고 심화 발전 향상시킨 사상가.



2) 오늘의 생명과 역사의 중심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 성령, 예수, 진리가 오늘 여기 생명과 역사 속에 살아 있다.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의 관점, 공자, 플라톤의 관점이 아니라 생명과 역사 자체의 자리에서 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나의 생명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나의 영혼, 몸, 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내 생명의 주체(나)의 자리서, 생명 전체의 자리서 자람과 혁신의 자리서 보라!



3) 생명과 역사 속에서 동서양의 합류를 이룬 사상가

한국과 동양의 한사상, 유교 불교 도교, 서양의 기독교, 민주정신, 과학기술사상을 하나로 통합하여 사상과 정신의 바다를 열다. 태평양 바다같은 함석헌 사상



4) 동서양의 사상과 정신을 치유하고 정화하고 완성한 사상가:

함석헌의 사상과 정신 속에서 볼 때 한사상, 유교, 불교, 도교가 잘 보이고 기독교, 민주정신, 과학기술사상도 잘 보인다. 함석헌을 그것들 안에서 보지 말고 함석헌 안에서 그것들을 보라!

한사상: 하나이면서 크고 개체이면서 전체인 것, 큰 하나!를 추구하는 한국정신문화에서는 정이 깊고 하나 되기를 좋아하지만 개별적 주체의 개성과 창의의 나가 약화되기 쉽다. 비판의식, 저항의식 약화된다. 함석헌은 한사상을 깊이 받아들이면서 인격적 깊이와 자유, 자아의 극복과 초월, 전체의 자리 강조. 탈바꿈, 혁신과 변화를 강조했다. 한사상을 현대화, 심화하고, 변화와 혁신, 개성과 초월과 결합하였다.

공자 안에서 함석헌을 보지 말고 함석헌 안에서 공자를 보아야 한다. 공자의 사고의 틀 속에 함석헌을 가두면 안 된다.

도교의 새로운 해석: 장일순, 이현주 노자 이야기. 天地不仁 聖人不仁, 만물과 백성을 풀개처럼 여긴다. 장일순과 이현주는 이것을 도(道) 공(空) 무(無) 하나(一)의 관점에서 풀이했다. 함석헌은 스스로 하는 생명의 주체의 관점에서 풀이했다. 만물, 생명, 인간은 저마다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방법을 알고 있다.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벌레, 여우, 늑대, 호랑이는 각자 저마다 살아갈 수 있고 저마다 스스로 살아야 한다. 생명의 근본원리 ‘스스로 함’이다. 스스로 하고 스스로 살게 하는 것이 천지와 성인의 길이다.

불교를 잘 이해한 함석헌: 진리가 종교보다 위대하다. 버림과 비움, 자기초월에 대한 성찰! 불교의 탈역사성, 물질관, 생명관 비판.

함석헌의 정신과 사상 안에서 동서정신문화가 합류하고 정화되고 해방되고 완성되었다. 기독교의 해방, 혁신을 이루고 새 종교로! 기복신앙, 샤머니즘, 신화적 피안주의, 종말론 교리주의, 관념 지식의 종교, 도덕적 문화적 종교, 개인경건의 종교를 넘어서 초월적 하나님 신앙과 영혼의 신앙, 주체와 전체를 살리는 기독교. 역사와 나라를 구하는 새 역사를 짓는 종교

민주정신과 국가주의: 부국강병과 약육강식의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계급투쟁, 세력다툼, 권익투쟁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생명을 실현하고 완성하고 고양시키는 민주주의, 민주정신을 확립하다. 씨ᄋᆞᆯ사상은 민주적이면서 민, 생명, 정신의 사명과 뜻을 실현하였다.

과학기술: 이성과 과학 강조하면서 살아있는 우주, 지구 강조, 생명과 영의 깊이! 물질론과 기계론을 넘어서 고결한 뜻과 영혼, 과학적 이성과 영성의 통합!

20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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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禧年, 영어: jubilee, 히브리어: יובל, yobel 요벨)은 성경에 나오는 규정으로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 이 해가 되면 유대인들은 유일신 야훼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준 자기 가족의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쉬게 한다. 희년은 7월 10일 속죄일에 선포되었다. 유대인들은 분배받은 땅을 기업(基業, Inheritance)이라고 하여 영구히 팔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따라서 땅의 매매는 희년까지 한시적으로만 이루어졌고 희년 전이라도 매도자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매도자, 혹은 매도자의 친족이 희년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정당한 값을 치르고 땅 무르기가 허용되었다.


목차
1희년에 대한 성서적 근거 및 어원
2희년에 일어나는 일
2.1땅 회복과 자유 선포[1]
2.2집 회복[2]
2.3노예 해방[3]
2.4부채 면제
3예수와 희년
4희년 주기에 대해(49년설과 50년설)
4.150년 주기설
4.249년 주기설
5희년 절기(음력 7월 10일)
6같이 보기
7참고 문헌
8각주
9외부 링크
희년에 대한 성서적 근거 및 어원[편집]

본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12지파 백성들에게 상속의 땅을 분배하셨다. 태어날때부터 먹고 살도록 하신 것. 그리고 안식년과 희년에는 빚을 탕감해주도록 명하시고 특히 희년에는 모든 자들이 자신의 땅으로 되돌아가도록 하심으로써 재물이 백성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셨다. 생각해보라. 빚이 계속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성경에서는 동족간에 이자도 받지 말라고 하였다. 구약성서 안에 전승된 이스라엘 전승들은 대개 고대 근동 지방에서 통용되었던 다양한 관습법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희년은 신학적 성격에 있서서 고대 근동의 관습법들과는 전혀 다른 매우 특이한 성격을 띤 법이다. 즉 희년에 이루어지는 땅과 집 회복, 노예 해방, 채무 면제에 대한 요구는 고대 근동 세계의 수많은 사회개혁 시도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이러한 사회개혁 요구를 항상 주기적으로 제도화하려고 한 것은 오로지 희년제도뿐이었다. 우리말 '희년'이란 영어: jubilee'를 번역한 것이고, jubilee는 히브리어: יובל, yobel 요벨을 음역한 것이다. 요벨은 수양의 뿔을 의미한다.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된 이유는 이 독특한 50번째 해가 되면 요벨 나팔을 불며 희년을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희년에 일어나는 일[편집]

희년이 되면 땅과 집이 원 주인에게 돌아가고 노예가 해방되며 부채가 면제되었다.

땅 회복과 자유 선포[1][편집]

희년이 되면 전국 모든 거민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각자 상속받은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칠 년이 일곱 번이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사십구 년이 끝난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뿔나팔을 크게 불어라. 나팔을 불어, 너희가 사는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너희는 오십 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누릴 해이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이다. ”

— 레위기, 25:8-10


희년이 되기 전이라도 땅 무르기를 할 수 있다.
“ 네 친척 가운데 누가 가난하여, 그가 가진 유산으로 받은 땅의 얼마를 팔면, 가까운 친척이 그 판 것을 무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것을 무를 친척이 없으면, 형편이 좋아져서 판 것을 되돌려 살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판 땅을 되돌려 살 때에는, 그 땅을 산 사람이 그 땅을 이용한 햇수를 계산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값을 빼고, 그 나머지를 산 사람에게 치르면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땅을 판 그 사람이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그 땅을 되돌려 살 힘이 없을 때에는, 그 땅은 산 사람이 희년이 될 때까지 소유한다. 희년이 되면, 땅은 본래의 임자에게 되돌아간다. 땅을 판 사람은, 그 때에 가서야 유산 곧 분배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다. ”

— 레위기, 25:25-28


만일 한 유대인이 가난해서 소유지를 팔아야 할 경우에 우선 '기업 무를 자'가 나서야 했다. 이는 가까운 친척 중 하나가 그 땅을 산 사람에게 땅을 살 때 치른 액수를 물어주고 그 땅을 다시 되찾아서 그것을 자신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줌으로써 대가족이나 지파의 연대감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만일 그러한 '기업 무를 자'가 없거나, 있다 해도 그 자신이 그것을 되돌려 살 만한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그 땅을 판 사람 자신이 나중에 그것에 필요한 액수를 조달할 능력이 되면 그 땅을 되돌려 살 수 있었다. 이 액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로 낮아지게 된다. 왜냐하면 희년이 될 때까지 그 땅에서 수확할 수 있는 금액을 치르면 되기 때문이다. 되돌려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라도 희년이 되면 무조건 자기 땅으로 회복되었다.

집 회복[2][편집]

일반인의 집은 1년 안에 무르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레위인의 집은 언제든지 회복된다.
“ 성곽 안에 있는 집을 팔았을 때에는, 한 해 안에는 언제든지 되돌려 살 수 있다. 집을 판 사람은 한 해 동안은 그것을 무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판 사람이 그것을 한 해 안에 되돌려 사지 못하면, 성곽 안에 있는 그 집은 아주 산 사람의 소유가 되어, 대대로 그 자손에게 넘어간다. 희년이 되어도, 본래의 집 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성곽이 없는 마을에 지은 집은, 그것들을 토지와 같이 여겨, 판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고, 되돌려 살 힘이 없을 때에는, 희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본래의 임자가 그것을 다시 차지한다. 그러나 레위 사람의 성읍, 곧 그들이 유산으로 받은 성읍 안에 있는 집은 그렇지 않다. 레위 사람은 성읍 안에 있는 집을 팔았어도, 언제든지 그것을 다시 무를 수 있다. 그가 무르지 않으면, 성읍 안에 있는 그 팔린 집은, 희년이 되면, 본래의 임자에게 되돌아간다. 레위 사람의 성읍 안에 있는 집은, 이스라엘 자손이 레위 사람의 유산으로 준 것이기 때문이다. 레위 사람의 성읍에 딸린 땅도 또한, 영원히 레위 사람의 유산이기 때문에 팔 수 없다. ”

— 레위기, 25:29-34

노예 해방[3][편집]

희년이 되면 모든 유대인 노예들은 해방된다.
“ 너의 곁에 사는 동족 가운데서, 누군가가 가난하게 되어서 너에게 종으로 팔려 왔어도, 너는 그를 종 부리듯 해서는 안 된다. 너는 그를, 품꾼이나 임시 거주자처럼, 너의 곁에서 살도록 하여야 한다. 너는 희년이 될 때까지만 그에게 일을 시키다가, 희년이 되면, 그가 자식들과 함께 너를 떠나, 자기 가족이 있는 조상에게서 받은 유산의 땅으로 돌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

— 레위기, 25:39-41

“ 너와 함께 사는, 나그네 신세 된 외국 사람이나 임시 거주자 가운데는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는데, 마침 그 이웃에 너의 동족이 살고 있다가 가난하게 되어서, 그 외국 사람에게나, 너와 같이 사는 임시 거주자에게나, 그 가족 가운데 누구에게, 종으로 팔렸다고 하자. 종으로 팔려 간 다음이라 하더라도, 그는 종으로 팔릴 때에 받은 값을 되돌려 주고 풀려 날 권리가 있다. 그의 친척 가운데 누군가가 값을 대신 치르고 그를 데려올 수 있으며, 삼촌이나 사촌이 그를 데리고 나올 수도 있고, 그의 가문에 속한 살붙이가 그를 데리고 나올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넉넉하게 된 뒤에, 스스로 그 값을 치르고 나올 수도 있다. 그 경우에 그는, 종으로 팔렸던 그 해로부터 희년이 될 해까지의 햇수를 자기를 산 사람과 함께 계산하여, 그 햇수에 따라 돌려줄 값을 정하여야 한다. 그 가운데서 그가 주인을 섬기며 일한 기간은, 그가 이미 주인에게 일을 하여 준 기간이므로, 값의 일부를 치른 것으로 계산하여야 한다. 아직 희년까지 남은 햇수가 많으면, 남은 햇수 만큼 많이 내고 나와야 한다. 그는 종으로 팔릴 때에 받은 몸값에서, 그 집에서 일한 햇수의 품삯을 떼낸 나머지를 무르는 값으로 치르면 된다. 희년까지 남은 햇수가 얼마 되지 않으면, 그 햇수를 따져서 그만큼 적게 치르면 된다. 이 때에도 그는 일한 햇수와 남은 햇수를, 자기를 종으로 산 주인과 함께 계산하여, 무르는 값을 정하여야 한다. 주인은 그를 해마다 고용하는 것으로 하고, 그를 품꾼으로 대접하여야 한다. 어떤 주인이라도 그 종을 심하게 부려서는 안 된다. 위에서 말한 여러 방법 가운데 어느 하나로도 풀려 날 길이 없다 하더라도, 희년이 되면 그는 풀려 날 수 있다. 자기만이 아니라 자식들도 그와 함께 풀려 난다. ”

— 레위기, 25:47-54

부채 면제[편집]

안식년에 빚을 면제해 주기 때문에 희년이 되면 역시 빚이 면제 된다.
“ 매 칠 년 끝에 그 해의 끝에 빚을 면제하여 주어라. 면제 규례는 이러하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어라. 주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친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된다.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너희의 친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한다. ”

— 신명기, 15:1-3


또한 유대인끼리는 이자 없이 대부해 주어야 한다.
“ 너의 동족 가운데, 아주 가난해서,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의 곁에 살면, 너는 그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 너는 그를, 나그네나 임시 거주자처럼, 너와 함께 살도록 하여야 한다. 그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안 되고, 어떤 이익을 남기려고 해서도 안 된다. 네가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안다면, 너의 동족을 너의 곁에 데리고 함께 살아야 한다. 너는 그런 사람에게, 이자를 받을 목적으로 돈을 꾸어 주거나, 이익을 볼 셈으로 먹을거리를 꾸어 주어서는 안된다. ”

— 레위기, 25:35-37

예수와 희년[편집]
“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

— 누가 복음서, 4:18-19, 21


누가 복음서 4장 18,19절은 예수가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구절로 예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인 동시에 예수와 구약성서의 깊은 관계를 보여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본 구절은 이사야서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 주 야훼의 영을 내려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야훼께서 우리를 반겨주실 해, 우리 하느님께서 원수갚으실 날이 이르렀다고 선포하여라.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여라. ”

— 이사야, 61:1-2


신약성서 누가 복음서 말씀은 예수가 안식일에 유대인들이 늘 하던 대로 회당에서 말씀을 읽을 차례가 되자 맨 처음 펴서 읽은 성서이야기로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다가, 특히 예수는 21절에서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다. 예수가 낭독한 원전에 보다 가까운 구약 이사야서를 살펴보면, 우선 야훼의 영이 예수에게 내린 목적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소식은 구약 이사야서에 같거나 유사한 표현들이 몇 군데 나오는데 '아름다운 소식'(이사야 40장 9절, 10절), '좋은 소식'(이사야 52장 7절) 등으로 표현되며 그 소식의 핵심 내용은 40장의 경우 '야훼가 장차 강한 자로 임함으로써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는 내용이고 52장의 경우 '야훼가 통치한다'는 내용으로 '야훼가 통치하는 나라'로 요약될 수 있다.

예수도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 즉 야훼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복음서 4장 17절)는 외침을 바탕으로 사역을 시작하였으며 공생애 대부분 동안 '하느님 나라' 즉, 야훼의 나라를 역설했다. 이사야 61장 1절에서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표현이 나오는데 바로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라는 표현이다. 이때 자유는 히브리어로 '드로르'라는 표현인데, 바로 구약의 안식일 관련 규정 중 포로를 해방하는 내용으로써 희년의 자유 선포, 즉 희년의 나팔이 울리면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기 땅과 가족에게로 복귀하라는 선언을 의미한다.[4] 특히 에제키엘 46장 16~18절에서는 회복된 나라의 이상으로 '희년의 선포'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는 앞의 '야훼의 나라'에 대한 아름다운 소식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희년 주기에 대해(49년설과 50년설)[편집]

희년 주기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가 있는데, 7번의 안식년 다음 해를 희년으로 보는 견해와 7번째 안식년을 대안식년(super-sabbath), 즉 희년으로 보는 견해, 두 가지다.

50년 주기설[편집]
“ 너희는 오십 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누릴 해이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이다. 오십 년이 시작되는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켜야 하는 해이다. 희년에는 씨를 뿌리지 말고, 저절로 자란 것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저절로 열린 포도도 따서는 안 된다. ”


— 레위기, 25장 10~11절


는 구절을 근간으로 한다. Lesetre, Paton, Delitschz, Strack 등의 학자들이 지지하며 전통적으로 지지받는 견해이다.

49년 주기설[편집]
“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칠 년이 일곱 번이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사십구 년이 끝난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뿔나팔을 크게 불어라. 나팔을 불어, 너희가 사는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

— 레위기, 25:8~9절


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차적으로 2년 연속되는 땅 휴경이 가져오게 될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을 고려하는 Wetzstein, Kugler, North 등의 학자들의 견해 때문에 생기게 되었다. 참고로 희년의 선포일은 희년을 맞이하는 해의 일곱 번째 달의 열 번째 되는 날(대속죄일)로, 이 날 양각나팔이 울려 퍼지면, 기업(Inheritance)이 원주인에게 회복되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자유가 선포된다.[5]

희년 절기(음력 7월 10일)[편집]

“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칠 년이 일곱 번이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사십구 년이 끝난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뿔나팔을 크게 불어라. 나팔을 불어, 너희가 사는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너희는 오십 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누릴 해이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이다. ”

— 레위기, 25:8-10

“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일곱째 달의 보름날부터 이레 동안은 주께 예배하는 초막절이다. 초막절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

— 레위기, 23:34-35


이스라엘의 월력은 한국의 음력과 비슷하다. 이스라엘은 한국보다 1달 빠르다. 7월 10일에 뿔나팔을 크게 불며 희년을 선포하게 된다. 이어서 7월 15일부터 초막절이 시작된다. 구약성경의 7월 10일은 한국 음력 8월 10일이 된다. 즉 한국의 명절 추석(음력 8월 15일)이 시작되기 5일 전에 희년 나팔을 분 것이다. 1988년 9월 서울올림픽대회에 참가하였던 이스라엘 선수들은 대회 기간 중에 있었던 우리 민속 명절 추석 행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들의 초막절과 한국의 민속 명절 추석이 같은 날에 시작되기 때문이다.[6]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복음과상황 2017년 6월호에서 '희년을 실천하는 교회'를 주제로 이성영, 최종원, 이영재, 장승익, 이파람의 글 또는 인터뷰가 실렸다. 희년사상을 장학기금 및 기본소득으로 적용한 사례가 소개됐다.
대천덕 (2007). 《《신학과 사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CUP.
김병하 (2005). 《《희년 사상의 영성화》》. 대한기독교서회.
대천덕 (2003). 전강수 역, 편집.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홍성사.
전강수/한동근 공저 (2000). 《《토지를 중심으로 본 성경적 경제학》》. CUP.
헨리 조지 (1997). 김윤상 역, 편집.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Frederick Verinder (1996). 이풍역, 편집. 《《하나님의 토지법(내 이웃의 지계표)》》. CUP.
대천덕 (1993). 《《토지와 자유》》. 무실.


각주[편집]

레25:8-10, 25-28
레25:29-34
레25:39-55
자세한 내용은 '#희년에 일어나는 일' 참조
자세한 내용은 희년의 정의 및 #희년에 일어나는 일 참조
한국과 이스라엘의 공통점
외부 링크[편집]
희년함께
토지+자유연구소

Binsom Lee다석 유영모 성관계란 무엇인가

Facebook

성관계란 무엇인가

다석 류영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잘못은 인생을 맛으로 살려는 때문이라고 끊어 말할 수 있습니다. 맛으로 사는 이는 방사(房事)를 호기욕(好奇欲)의 대상으로만 여겨서 육체적 본능의 욕구를 만족하고 향락하는 기회로만 여깁니다. 그리하여 그 틈을 타고 싶고, 꾀를 부려 얻고자 미칩니다. 맛으로 살려는 이는 짐승이 되어 꿈틀거리는 꼴을 그려보고 미칩니다."
성관계라는 말은, 남녀의 교접을 한참 에둘러서 한 말입니다. 이렇듯 그것을 바로 말하기를 꺼리는 까닭은, 그것에 대해 켕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석은 성관계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성관계는 이성관계의 준말로, 이성과 관계를 맺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성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성(性)의 본질적 차이를 가리키는 말로 봅니다.
다석은 성(性)을 신과 동일시하여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 따르면 이성은, 절대성(絶對性)과 상대성(相對性)을 가리키게 됩니다. 절대성은 신이며 상대성은 인간입니다. 인간에게 상대성과 다른 성을 지닌 존재, 즉 이성은 신 밖에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이성관계 혹은 성관계란, 인간이 신을 만나는 관계행위 전체라고 봅니다. 인간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동성(同性)이라고 했죠. 동성이지만, 인간의 증식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진 뒤에 약간의 구조를 설계해 서로 다른 것처럼 디자인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녀의 사랑은 중요하지 않은가. 이 문제에 대해 다석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남녀의 사랑은 바로 '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방식'을 그대로 욕구의 형태로 부여해놓은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듯,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듯, 인간이 신을 사랑하는 '완전한 관계'를 모델로 심어놓았다는 겁니다. 
남녀 사랑을 통해, 신에 대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고 실행하며 온전한 자기희생과 육체적 욕망의 초월까지 지향함으로써 그 완전함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거죠. 

다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남녀의 맛이 아니라 남녀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남녀의 뜻은 신의 거룩함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남녀의 사랑이 신의 사랑에까지 도달할 때 영원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천국까지 끌고갈 수는 없지만, 부부의 사랑을 천국의 사랑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습니다. 
남녀의 정사를 쾌락이라고 하지만 대개 어리석은 짓입니다. 
나도 51세까지 범방(犯房성생활)을 했으나, 이후엔 아주 끊었습니다."

/빈섬.
=====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40)] 
나는 51세까지만 범방(犯房)을 했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isomis&logNo=221924863996


류영모 김효정 부부

[빈섬 이상국의 '다석 류영모'(40)] 1941년 2월18일 아침에 온가족을 모아놓고 51세의 류영
모는 아내 김효정과의 해혼(解婚)을 선언했다. 결혼(結婚, 혼인을 맺음)을 하였으니 그것을 푸는
'해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해혼은 부부간의 성생활을 끊는 것이었다. 결혼생활 자체를 끊
는 이혼과는 다른 개념이다.
해혼을 선언한 날은 하루 한끼 식사를 선언한 다음날이었다. 두 가지를 연이어 발표한 까닭은,
그 두 가지가 인간이 짐승으로 사는 욕망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식색(食色, 식생활과 성
생활)을 금욕 수준으로 절제함으로써 신을 향한 수행의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
"이 세상 최대 흥미와 관심은 식색입니다. 일체 문화활동의 노력하는 초점이 식색 욕구를 충족
시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볼 필요
가 없습니다. 식색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짐승입니다. 짐승은 고뇌도 없이 식색을 자유로이 충족
하며 사는 목적이 오직 그것입니다. 부귀(富貴)란 말은 식색의 사회적 표현입니다.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을 소망하는 까닭은 오직 잘 먹고 잘 놀고자 함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게 다 채
워진 것 같지만, 돌아보면 짐승에서 하나도 더 나아간 것이 없습니다. 적어도 '얼' 빠진 인생을
살지 않으려면, 이 단순한 욕망에 미쳐있는 것이라도 면해야 합니다."
다석 류영모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40)] 나는 51세까지만 범방(犯房)을 했습
니다
그날 류영모와 김효정 부부의 방 한 가운데에 긴 책상이 놓여졌다. 방은 옛 두칸짜리 방으로 폭
이 2.4m 정도였고 길이는 4.6m 쯤 되었다. 그 한복판에 책상 벽이 놓인 것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류영모 부부에게는 아주 다른 의미가 되었다.
류영모는 남녀 사랑에서 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진짜 이성(異性)은 하느님
뿐이며 사람은 모두가 상대적으로 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이란 바로 상대성과
절대성이며 이것이 인간과 신의 진정한 '이성관계'라는 것이다.
"사람은 남녀의 맛이 아니라 남녀의 뜻을 읽어야 합니다. 남녀의 뜻은 신의 거룩함을 깨닫게 하
는 것입니다. 남녀의 사랑이 신의 사랑에까지 도달할 때 영원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천국까지 끌고갈 순 없지만, 부부의 사랑을 천국의 사랑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류영모가 식색(食色)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은, 북한산 아래서 은거생활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나
서였다. 그는 전원(田園)의 한적한 취향을 누리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5년의
궁신지화(窮神知化)였다. 신을 궁극적으로 깨달아감으로써 인간과 만물이 생성 소멸하는 이치
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 궁신지화는 육신이 지니고 있는 짐승의 성질(수성, 獸性)을 놓고 얼의
나로 직진하는 정신의 조짐이기도 하다. 치열한 다섯 해의 산중 영성수행은 이 길을 찾아내고
있었던 셈이다. 식색을 끊자. 성령과 직면하는 일은 이것부터이다.
그가 일일일식과 해혼을 잇따라 선언한 것은 강력한 수행의 단계로 진입하는 선언이었다. 식욕
과 색욕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존재다. 잠깐의 절제는 할 수 있지만, 평생을 통
틀어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과 유혹을 감
내해야 하는 일이다. 류영모는 대체 왜 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들을 이
토록 단호하게 끊고자 했을까.
뜻밖에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해명해준다. 그는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지만, 쾌락이 완성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쾌락은 자연적인 욕망의 충족이지 그것을 넘어선 과욕이 아니다. 가짜 식욕과 색욕을 경계하
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식사와, 사랑으로 일어난 진정한 섹스 외에는 하지 말라. 빵 몇 조각
물 몇 모금 정도의 욕구 충족이면 충분하다. 이것저것 먹고싶은 것은 가짜다. 결핍으로 인한 고
통이 일단 사라지면 육체적 쾌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욕망을 부리는가. 그때의 욕망
은 쾌락의 형태를 바꿔서 지속하려는 행위다. 이 변태적 욕망은 본능적인 욕망과는 다르며, 마
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추구하기 위해 몸을 이용하고 있는 것
일 뿐이다."
류영모는 자신의 '단색(斷色)'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남녀의 정사를 쾌락이라고 하지만 대개
어리석은 짓입니다. 나도 51세까지 범방(犯房, 성생활)을 했으나 이후엔 아주 끊었습니다. 아기
낳고 하던 일이 꼭 전생에 하던 일같이 생각됩니다. 물론 정욕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레프 톨스토이와 마하트마 간디의 금욕 수행 또한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톨스토
이는 류영모보다 62년 위였기에 청년기에도 그의 저서를 접할 수 있었다. 21세 더 많은 간디의
자서전이 출간된 것은 1927년이었다. 늦어도 40대 때에는 그의 책을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톨스토이는 젊을 때 여러 가지 성적 일탈을 범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참회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결혼한 부부의 성교는 간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내일지라도 단순히 성욕의
만족을 위한 성교는 죄악이라는 생각에 일리가 있다. 인류를 존속시킬 수 있을 정도의 성교는 2 0 섬
정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와의 성교라도 정신적인 사랑 없이 또 시기를 무시한 채 육
욕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면 간음이라고 보는 게 옳다. 아기의 출생을 목적으로 정신적인 사랑
을 가지고 이뤄지는 아내와의 성교만은 죄가 아니다. 그것은 신의 뜻이다."
간디는 이렇게 생각했다. "결혼은 인생에서 자연스런 것이며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아니다.
결혼은 신성한 정화(淨化)의 의식이다. 결혼 이후 혼인생활을 유지하며 자제의 생활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이상적이다."(간디의 '어록' 중에서)
37세에 간디는 금욕생활에 들어간다. 1906년의 일이었다. "최후의 결심을 할 때는 참으로 힘이
들었다. 나에게는 있어야할 힘이 없는 것 같았다. 욕정을 어떻게 누를 것인가. 아내와 육체관계
없이 지내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붙들어주는 신의 뜻을 믿고 이것을
시작했다. 그 맹세를 한 지 20년이 됐다. 56세가 된 지금도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브라마차랴(금욕)을 지키는 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매순간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영원한 경각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간디는 13세에 결혼해 37세에 금욕을 했다. 25년간 성생활을 한 것이다. 류영모는 25세에 결혼
해 51세에 해혼 선언을 했다. 성생활을 한 것은 27년간이었다. 류영모는 간디가 영원한 경각심
으로 살았다고 고백한 그 대목에서 보다 투철한 실행을 위해, 부부 안방 공간을 둘로 나누는 명
시적인 금욕을 표방하지 않았을까.
류영모는 남녀의 교합에 대한 욕망을 '성욕(性欲)'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건 성욕이 아니라 육욕(肉慾), 색욕(色慾), 혹은 수욕(獸慾, 짐승욕망)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
이다. 성(性)은 신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인 천명(天命之謂性, 천명을 일컬어 성이라고 한다, 중
용에 나오는 말이다)을 가리킬 뿐이다. 세상의 음란한 행위나 마음에 쓰이는 '성'이라는 말은,
그 신의 생명을 모독하고 있는 셈이다.
톨스토이는 서양사람들이 남녀가 어울리며 파티를 여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했다. 차라리
동양처럼 '남녀 분별'을 지키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는 독신으로 살았으며, 여자에게 음욕을 품은 적이 없었다." 음욕을 품는 것이 실성(失性,
신을 잃어버린 것)한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얼'의 의지가 강한 사람은 금욕생활의 길을 걷
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들딸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아들 의상과 자상은 40이 넘어서 결혼을
했고, 제자들 가운데 독신으로 산 사람은 없었다. 딸 월상도 결혼을 했다. 결혼식 때는 아버지
류영모가 직접 주례를 서기도 했다. 집안에서 혼인식을 했는데, 신랑신부를 방안에 나란히 앉히
고는 '오늘부터 두 사람이 손잡고 함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라고 간결한 성혼 선언을 했다. 이
엄격한 금욕주의자의 주례, 그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오갔을까. /빈섬.

2021/06/26

알라딘: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

알라딘: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 - 바울 공동체의 사회 문화 환경   
웨인 믹스 (지은이),박규태 (옮긴이)IVP2021-03-25원제 : The First Urban Christians: The Social World of the Apostle Paul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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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530쪽152*223mm (A5신)742gISBN : 9788932818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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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Biblical Archaeology Review 출판상 신약학 부문 최고상, 미국종교아카데미 역사서 부문 최고상 수상작. 뛰어난 성서학자인 저자는 방대한 양의 고대 문헌과 현대 자료를 기반으로 1세기 기독교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샅샅이 탐구한다.

저자 웨인 믹스는 이러한 도시 기독교의 형성 과정 및 기독교 공동체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바울 관련 문서들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재구성하여 보여 준다. 당시 교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지위, 기독교 공동체 내의 치리 방식, 세례와 주의 만찬으로 대표되는 의식 등을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저자는 성경 자료에 담긴 사소한 정보를 단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으며, 다양한 고대 문헌 및 고고학적 정보를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에 신뢰성을 더한다.
목차
2판 서문
1판 서문
들어가는 글
초기 기독교를 사회적 관점에서 서술하는 이유
몇 가지 반론
바울계 기독교

1장 바울계 기독교의 도시 환경
바울과 도시
시골에서 도시로
폴리스에서 제국으로
도시 사람들
도시 대 시골
국제도시
이동성
그리스-로마 도시의 여성
관계
도시의 유대교와 바울계 기독교
바울계 기독교의 도시

2장 바울계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내 수준
‘프롤레타리아’인가, ‘중류층’인가?
사회 계층 측정하기
인물 연구에서 얻는 증거
간접 증거
뒤섞인 계층, 모호한 지위

3장 ‘에클레시아’의 형성
환경에서 찾아본 여러 모델
교제와 그 경계
온 세계를 아우르는 한 백성

4장 통치
분쟁 처리
추론

5장 의식
작은 의식
세례: 입교 의식
주의 만찬: 연대를 다지는 의식
알려지지 않고 논쟁의 대상인 의식

6장 믿음의 패턴과 삶의 패턴
한 하나님, 한 주, 한 몸
묵시와 혁신의 관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메시아
악과 그 반전
상관관계

약어
참고 도서: 인용한 2차 저작
보충 참고 도서
주요 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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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저자 찾아보기
주제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정보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도 해석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우리에게는 아귀가 다 들어맞게 해 줄 어떤 열쇠와, 우리에겐 낯설기만 한 로마 속주의 도시(혹은 그런 시간의 경계를 초월한 어떤 “지중해 문화”)에 있던 사회가 독특하게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집약해 줄 이론적 틀을 찾고픈 유혹이 크다. 하지만 그런 열쇠는 없다. 후견인-피후견인 관계가 그런 열쇠가 아니며, 명예-수치 사회도 그런 열쇠가 아니다. 지위의 불일치, 일상사가 된 성령의 은사, 인간을 서로 쌍을 이루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로 보는 견해, 시장경제 이전의 경제에서 이루어지는 합리적 선택, 집단 체계의 역학도 그런 열쇠가 아니다. 이런 환유어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 가운데 일부 혹은 심지어 전부가 대변하는 관점이 사실은 이미 주어진 일부 증거를 우리가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끔 도와주거나 또는 우리가 그 존재를 몰랐던 증거를 발견하게 도와줄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그런 생각은 여전히 추상적이어서 1세기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남겨둔 수수께끼 같은 자취에 오랫동안 몰두하며 탐구하는 것을 결코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렇게 몰두하며 탐구해야만 나중에 “기독교”가 될 운동이 계속 이어 갈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도시에서 꾸려 나간 삶을 구성하는, 다양하고도 복잡하며 역동성이 넘치는 인간관계를 비로소 얼마라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하나로 모으는 일은 결국 과학보다 예술에 가깝다. 내가 아는 과학자들은 그들이 탐구하는 과학 속에도 많은 예술이 존재함을 기꺼이 인정한다. 나는 새 표지를 입고 나온 이 책이 독자들을 계속 독려하여 풍부한 상상을 동반한 연구 작업에 동참하게 하고, 종국에는 독자들이 고대 그리스도인을 이전보다 좀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하게 되길 소망한다.
_2판 서문 중에서  접기
바울은 도시 사람이었다. 도시의 숨결이 그의 언어를 통해 전해진다. 예수가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와 가라지 비유, 임차농들, 진흙으로 지붕을 만든 움막은 거름과 흙이 뒤섞인 냄새를 물씬 풍기며, 그리스어로 기록된 글에서 팔레스타인 지역 마을에서 사용하던 아람어가 종종 느껴진다. 한편 바울이 감람나무나 정원의 은유를 사용할 때는 그리스어가 유창하게 흘러나오고, 농촌보다는 학교 교실이 떠오른다. 바울은 김나시움이나 경기장, 또는 공방에서 가져온 그리스어 수사의 전형적 표현에 더 익숙한 사람 같다. 더구나 바울은 도시에 의존하여 생계를 꾸려 가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을 하면서?사도행전에 따르면 천막을 만들면서?생계를 꾸렸다. 그는 일종의 씁쓸한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을 변호하거나 교훈을 줄 목적으로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이 사실을 몇 차례 되새겨 준다. 이렇게 장인의 삶을 살던 그는, 노예든 자유인이든, 고대 사회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속한 농사꾼들과 달랐고, 자기 소유의 농지에 의존하여 부와 지위를 누리던 극소수의 행운아들과도 달랐다. 도시 수공 노동자 가운데는 노예와 자유인이 있었으며, 이들의 지위와 재산은 극도로 가난한 이로부터 상당히 안락하게 살던 이에 이르기까지 그 차이가 꽤 컸지만, 모든 이가 철저히 도시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농사꾼처럼 도시를 적대시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귀족들처럼 자신만만하게 ‘폴리스’와 ‘코라’를 지배하는 권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이 위험에 처했던 지역을 열거하면서 이 세계를 도시와 광야와 바다로 나눈다(고후 11:26). 그의 세계에는 생산을 담당하던 교외 지역인 ‘코라’가 포함되지 않으며, 도시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_1장 중에서  접기
우리가 살펴본 증거는 단편적이고 무작위적이며 분명하지 않은 것도 종종 있었다. 우리는 바울 공동체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려 줄 통계 자료를 인용할 수 없고, 어느 바울계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수준을 완벽하게 서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그룹들을 인상파 회화의 스케치 정도로는 묘사할 수 있게 해 줄 실마리를 많이 발견했다. 이는 몇몇 단계의 사회적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최고 수준과 최저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는다.…하지만 최고점과 최저점 사이에 속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잘 나타나 있다. 얼마나 많았는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노예들도 있다. 하지만 바울 서신이 이런저런 소소한 실마리를 통해 그 존재를 가장 많이 일러 준 “전형적” 그리스도인은 자유인 수공업자나 소규모 무역상이다. 직업상 이런 범주에 속한 이들 일부는 집과 노예, 자기 경비로 여행할 능력 및 부유함을 나타내는 다른 표지를 지녔다. 일부 부자는 그리스도인 개인과 그룹에 필요한 집과 모임 장소를 비롯해 다른 섬김을 제공했다. 사실 이런 부자들은 후견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_3장 중에서  접기
교회도 다양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구성원들이 모인 복합체였다. 교회 구성원들이 이전에 서로 맺었던 그리고 교회 밖에서는 여전히 맺고 있는 여러 유형의 관계?주인과 노예, 부자와 빈자, 노예 출신 자유인과 후견인, 남성과 여성 등?는 세례 의식과 주의 만찬을 통해 경축한 ‘코뮤니타스’와 긴장 관계를 나타냈다. 이런 역할들이 나타내는 익숙한 위계 구조 그리고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카리스마를 통해 특별함을 부여하시는 성령의 자유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했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과 평등과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을 강조할 뿐 아니라 유동성과 다양성과 개별성을 표현하는 상관관계적 상징도 강조하는 모습을 바울 서신에서 발견한다.
로마 제국 동부 지역의 열두 개 남짓 도시에 있던 이 기이한 소그룹들은 (비록 그들 스스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겠지만)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 몰두했다. 머지않아 그들의 사상, 그들이 하나님을 표현한 이미지, 그들이 삶을 꾸려 간 방식, 그들이 행한 의식은 그들이 생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그들도 예측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지중해 유역과 유럽의 문화가 겪은 엄청난 변화의 일부가 된다.
_6장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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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울계 기독교의 기원과 구성에 대한 사회사적 연구의 고전으로 오랫동안 각광받아 왔다. 이 책이 나온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참신한 독서의 쾌감과 계몽의 각성을 타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른바 사회과학적 또는 사회학적 접근 방법이 성경 연구에 끼쳐 온 도전과 긍정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사례에서 보듯, 오늘날 사회 구성체에서 추출한 생경한 전문 용어와 이론적 틀이 성경 텍스트를 압도하여 그 속에 성경적 세계를 끼워 맞추려는 견강부회의 무리수를 범하기 쉬운데 이 책 이전과 이후 바울계 기독교를 다루는 데서도 이런 패착이 적지 않았다. 이에 비해 이 책은 일차 증거 자료를 신중하게 분석하고 당시의 폭넓은 배경사적 지식을 동원하여 바울계 기독교의 구성원과 조직 구성체를 당대의 사회적 맥락에서 풍성하게 조명하되, 그 안에 내장된 종교적 상징 체계의 특수성도 놓치지 않는다. 여기에 오늘날 사회학적 이론의 얼개나 전문 용어 등은 이러한 바울의 도시 선교와 ‘에클레시아’의 실체를 더 세밀하게 규명하여 증폭시키는 보조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그의 ‘절충주의’ 내지 ‘온건한 기능주의’의 겸손한 접근법이 특출하게 빛을 발하는 결실로 나타난 것이리라. 앞으로도 그 고전의 반열에서 명멸하는 이 책의 학문적 기품은 지속될 것이다. - 차정식 (한일장신대학교 신학부 교수, 『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 저자) 
이 책은 바울의 선교와 그가 세운 교회들의 생활상에 관한 탐구다. 이 획기적 기획의 배후에는 신약성경의 ‘사상 세계’에만 몰두하던 당시 학계의 ‘비현실성’을 반성하고, 우리의 이해 속에 현실적 구체성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놓여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 세계’에 주목한다. 당시의 사회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바울 공동체의 ‘도시 중심적’ 성격을 관찰하고, 당시 신자들의 ‘사회적’ 위상을 따진다. 또 당시 사회의 맥락에서 교회의 형성과 운영 및 다양한 의식이 어떤 의미였을지 추적하며, 신자들의 신학 혹은 신념들이 이런 ‘사회 세계’에서 어떤 의미였을지 묻는다. 당시 교회가 살았던 현실을 촘촘히 더듬으면서 그들이 구축하고자 했던 새로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복음이 신학으로 쉽게 환원되는 우리 풍토 속에는 여전히 ‘비현실성의 공기’가 짙게 흐른다. ‘사회 세계’에 대한 관심을 복음의 초월성에 대한 부정으로 속단하는 경향도 만만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중요한 책의 번역은 많이 늦었지만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25년 전 저자의 제자로서 배웠던 얼마 동안의 경험은 지금도 강한 인상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끝내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았지만, 기독교 신앙과 신약성경의 현실성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매우 유익한 자극이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가 나와 같은 유익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권연경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갈라디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저자) 
길을 잃었을 때는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 1세기 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척박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독교가 탄생하고 교회가 퍼져 나갔는가? 이는 세속화되고 물화되어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물음이다. 이런 맥락에서 웨인 믹스의 고전적인 책이 재출간된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는 사회학적 이론이나 성서비평학에 무지하지 않다. 그러나 1세기 교회와 가장 근접한 문헌인 신약성경을 연구의 자료로 삼은 그의 방법론으로 인해, 1983년 출간 이후 이 분야의 연구가 진척·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1세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효하다. 출간 20년이 지나서 낸 2판에 별 수정이 없는 이유다. 이 책은 1세기 교회의 사회사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넘어서, 우리가 현재 당면한 문제를 풀어 가는 일에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들을 잘 이해할수록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선명해진다. - 김형국 (나들목교회 대표목사, 신학박사, 하나복DNA네트워크 대표) 
한 마디도 허투루 쓰지 않은 놀라운 책이다. 서양의 신학교에서 신약 개론과 바울 서신개론의 교과서로 오랫동안 사용된 이 책을 이제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어 무척 반갑다. 이 책은 사회사적 연구의 지평을 열어 현대 신약학의 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는데, 이 책을 출발점으로 수많은 학자가 사회사적 성경 이해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며 신약학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저자 웨인 믹스는 로마서 16장에 나열된 이름들에서,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서 고기를 먹는 행위에서 사회적 함의를 읽어 낸다. 당시, 세례를 비롯한 교회의 의식은 단순한 상징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실체의 변화를 낳았다. 바울 서신에 나오는 신학적 담론과 교회의 예전은 모두 당시의 역사, 문화, 사회적 층위와 분리될 수 없다. 믹스는 부유하는 난해한 신학 개념들을 이해하려 애쓰느라 붕 떠 버린 신약성경 독자들의 발이 1세기 지중해 세계 한복판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도시에서 번성한 초기 기독교 운동의 실제 모습을 ‘보고 만지면서’ 신약의 구절과 단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일찌감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은 현대 신약학의 성과를 이해하기 원하는 신학도와, 깊이 있는 성경 공부를 하고 싶은 신자 모두의 필독서다. - 김선용 (신약학 독립 연구자(PhD, 시카고대학교)) 
모든 역사적 사건은 일회적이다. 사회학의 이론은 사회의 현상들을 일반화시켜서 이해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역사와 사회학의 만남은 조심스럽다. 2천 년 전의 역사는 당연히 자료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그 공백을 사회학 이론의 적용으로 메우려는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믹스는 처음 그리스도인의 역사에 접근하기 위해 사회사적 자료와 사회학 이론의 영역에 과감히 발을 내디디면서도, 역사학자의 엄밀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이런 과감성과 신중함의 조화가 이 책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이라는 환경에 초점을 맞춘 것도 큰 공헌이다. 원서 부제에 나오는 ‘사회적 세계’라는 말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사도 바울이 활동했던 세계의 사회적 역동을 분석하기도 했지만, 처음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 세계, ‘종교’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의 사회적 태도와 관계, 세계관과 상상력을 바꾸어 놓았던 한 세계의 건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단순히 신약성경의 배경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 삶과 신앙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다른 방법으로는 이르기 힘든 지점까지 안내해 주는 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담임목사, 전 한일장신대 신약학 교수) 
어느 시대나 그룹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한 특별한 공동체를 다룬 이 사례 연구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이 사례 연구는 다른 모든 공동체를 이해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 로버트 브라운 (New York Times Book Review) 
믹스만큼 여러 부류 사람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던 영적 조상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 이가 없었다고 느끼는 것은 독자나 나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익히 아는 것을 신선한 각도에서 발견할 가능성을 찾던 이들에게 이 책은 읽으라고 추천할 만한 책,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읽어야 할 책이다. - 마틴 마티 (Christian Century) 
너무나 필요했던 권위작. - J. L. 홀든 (Times Literary Supplement) 
저자 및 역자소개
웨인 믹스 (Wayne A. Meeks)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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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성서학자요 초기 기독교 사회사 연구자다. 1932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교에서 신약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후 예일 대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초기 기독교 사회사, 복음서, 초기 기독교의 윤리관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해 왔다. 현재 예일 대학교 종교학부 명예교수로 있으며, The Origins of Christian Morality, In Search of the Early Christians 등의 책을 썼다.
최근작 :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 … 총 23종 (모두보기)
박규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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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교회 사역을 했으며, 현재는 사역에서 물러나 번역과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묻혀 있는 좋은 책을 찾아내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그리스도와 지성』 『두 지평』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이상 IVP), 『성령』 『예수와 그 목격자들』 『주 예수 그리스도(이상 새물결플러스), 『구약의 종말론』 『바울의 종말론』 『예수에서 복음서까지』(이상 좋은씨앗), 『꺼지지 않는 불길』 『안식일은 저항이다』(이상 복있는사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알맹e), 『네 편의 초상,... 더보기
최근작 : <번역과 반역의 갈래에서>,<쉼> … 총 76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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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슬픔을 쓰는 일>,<하나님은 인격적인가>,<하나님은 유일한가>등 총 671종
대표분야 : 기독교(개신교) 4위 (브랜드 지수 1,496,672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1세기 도시 문화를 알면 신약성경이 제대로 보인다

Biblical Archaeology Review 출판상 신약학 부문 최고상
미국종교아카데미 역사서 부문 최고상

1세기 기독교 바울 공동체를 사회사 관점에서 직조해 낸, 현대 신약학의 지형을 바꾼 역작! 뛰어난 성서학자인 저자는 방대한 양의 고대 문헌과 현대 자료를 기반으로 1세기 기독교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샅샅이 탐구한다. 각고의 연구 끝에 탄생한 이 책은 출간 이래로 수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아 왔으며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기독교 역사 분야의 고전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1세기 기독교의 도시적 특성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첫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시골에서 양을 치는 목자나 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 고기를 낚는 어부가 등장하는 시골의 모습일 것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익숙했던 주일학교 성경 공부 교재는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런 이미지를 강화해 주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회심한 뒤에 로마 제국의 공인 종교가 된 기독교는 그런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첫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했던 지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 그리고 뒤이어 로마 사람들에 의해 도시화되었다. 이런 도시화는 이른 시기부터 기독교 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따라서 기독교는 도시 종교로서 로마 제국 전역에 퍼졌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형성
이러한 1세기 기독교의 중심 인물은 바울이었다. 바울은 그리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학문적 교양을 갖춘 도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역자들은 고린도,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로마 속주의 여러 도시에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부에는 그들만의 특징적 문화가 만들어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기독교 의식 두 가지는 입교 과정에서 행한 세례와 구성원들이 친교를 나누는 주의 만찬이었다. 이러한 의식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주위의 이방인들을 명확하게 구분시켜 주는 경계선 역할을 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유대를 강화해 주었다. 반면에 각계각층의 사회 구성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회적 지위, 이방인과 유대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둘러싼 갈등이 그 핵심 이슈였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과 결과가 사도행전 및 바울 서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의 의의
이 책의 저자 웨인 믹스는 이러한 도시 기독교의 형성 과정 및 기독교 공동체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바울 관련 문서들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재구성하여 보여 준다. 당시 교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지위, 기독교 공동체 내의 치리 방식, 세례와 주의 만찬으로 대표되는 의식 등을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저자는 성경 자료에 담긴 사소한 정보를 단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으며, 다양한 고대 문헌 및 고고학적 정보를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에 신뢰성을 더한다.
이렇듯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자세한 정보를 근거로 탄탄하게 저술된 이 책은 1983년에 처음 출간된 이래로 수많은 이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2003년에 출간된 2판에는 새롭게 발견된 고고학 정보를 추가함으로써 저자의 논지는 더욱 견고한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초판 출간 이후에 일찌감치 기독교 역사 분야의 고전으로 올라섰던 이 책은 그 독보적 지위를 한층 더 굳히게 되었다.

■ 독자 대상
_초기 기독교 역사를 공부하는 신학생 및 목회자
_바울 시대의 사회 문화에 관심 있는 학생 및 평신도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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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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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
Jürgen Moltmann
위르겐 몰트만
위르겐 몰트만
출생1926년 4월 8일 (95세)
독일 독일 함부르크
국적독일 독일
분야조직신학정치 신학
소속괴팅엔 대학교
출신 대학튀빙엔 대학교 신학 학사
지도 교수오토 베버
주요 업적종말론
그리스도론
수상그라베마이어 상 (2000년)
종교그리스도교(개신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년 4월 8일 ~ )은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이다. 현재 튀빙엔 대학교 신학분야의 명예 교수로 있으며 에베하르드 융엘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와 더불어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독일 개신교 조직신학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괴팅엔 대학교에서 오토 베버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본 대학교를 거쳐 1967년 튀빙엔 대학교의 조직신학교수가 되어 1994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칼 바르트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른스트 블로흐등의 영향 아래 종말론,정치신학그리스도론성령론창조론에 관한 저서를 남겼으며 해방신학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84-85년에는 기포드 강연의 강연을 맡았으며 2000년에는 루이빌 대학교에서 수여하는 그라베마이어 상(종교 분야)을 받았다. 미하엘 벨커미로슬라브 볼프 등이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생애 및 활동[편집]

1926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 육군에 입대하였으나 영국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1945년 그 당시에,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포로로서 영혼의 수렁에 빠져 있던 나를 예수는 찾아주었다. "그는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왔다." ...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그는 나에게 왔다."[1]

포로수용소에서 그는 아비투어(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칠 수 있는 교육을 받았으며 YMCA에서 세운 도서관에서 디트리히 본회퍼의 저작과 라인홀드 니버의 책들을 접했다.

종전 후 1948년 그는 독일로 돌아와 괴팅엔 대학교 신학부에서 개신교 신학을 공부했다. 당시 괴팅엔에서는 게하르트 폰 라트가 구약을, 권터 보른캄이 신약을, 에른스트 볼프가 교회사를 가르쳤다. 하지만 몰트만에게 당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은 한스 요아힘 이반트였다.[2] 이후 그는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엘리자베트 벤델과 함께) 오토 베버의 박사후보생이 되었고 17세기 칼뱅주의자였던 모이제 아미라우트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독일 개신교회의 목사로 안수를 받아 1958년까지 브레멘에서 목회를 했다.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부퍼탈 신학대학교(Kirchliche Hochschule Wuppertal)[3], 1963년부터 1967년까지 본 대학교, 1967년부터 1994년까지 튀빙엔 대학교에서 조직 신학을 가르쳤다.[4]

그는 개신교회 교단만이 아니라 정교회와 천주교회의 일치시키기 위한 에큐메니컬운동에 앞장선 WCC에 큰 영향을 끼친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1963년부터 1983년까지 개신교와 정교회, 천주교회의 성례와 직제의 기준을 형성하기 위한 WCC 신앙과직제위에 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천주교회의 개혁기관지인 콘칠리움(CONCILIUM)의 공동 출판위원직을 맡기도 했다. 그는 서방교회 신학 범주를 넘어 동방기독교의 신학을 포함하는 삼위일체론을 전개하여 에큐메니칼적 입장에서 WCC를 지지했다.[5]

위르겐 몰트만 저서 목록[편집]

  • Die Gemeinde im Horizont der Herrschaft Christi (Neukirchen-Vluyn, 1959)
  • 《희망의 신학》이신건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Theologie der Hoffnung. Untersuchungen zur Begründung und zu den Konsequenzen einer christlichen Eschatologi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64)
  •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김균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Der gekreuzigte Gott. Das Kreuz Christi als Grund und Kritik christlicher Theologi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72)
  •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이신건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Kirche in der Kraft des Geistes. Ein Beitrag zur messianischen Ekklesiologi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75))
  •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김균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Trinität und Reich Gottes. Zur Gotteslehr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80)
  •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김균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Gott in der Schöpfung. Ökologische Schöpfungslehr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85)
  • 《예수 그리스도의 길》김균진,김명용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Der Weg Jesu Christi. Christologie in messianischen Dimensionen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89)
  • 《생명의 영》김균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Der Geist des Lebens. Eine ganzheitliche Pneumatologi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91)
  • 《오시는 하나님》김균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Das Kommen Gottes. Christliche Eschatologi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95)
  • 《과학과 지혜》김균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3.; Wissenschaft und Weisheit. Zum Gespräch zwischen Naturwissenschaft und Theologi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2002)
  • 《몰트만 자서전》이신건, 이석규, 박영식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Weiter Raum. Eine Lebensgeschicht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2006)
  • 《희망의 윤리》곽혜원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Ethik der Hoffnung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2010)
  • 《살아 계신 하나님과 풍성한 생명》. 박종화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Der lebendige Gott und die Fülle des Lebens. Auch ein eitrag zur Atheismusdebatte unserer Zeit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2014)

위르겐 몰트만 관련 도서 목록[편집]

  • 리처드 보컴《몰트만의 신학》. 김동훈, 김정형 옮김, 크리스천헤럴드, 2008.; Richard Bauckham, The Theology of Jürgen Moltmann (Edinburgh: T&T Clark, 1995)
  •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편집), The Future of Theology: Essays in Honour of Jürgen Moltmann (Grand Rapids (MI), Eerdmans, 1996)
  • 미하엘 벨커미로슬라브 볼프 (편집), Der lebendige Gott als Trinität: Jürgen Moltmann zum 80 (Geburtstag: Gütersloher Verlagshaus 2006)
  • 이형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비추어 본 몰트만 신학》(한들출판사, 2006)
  • 이형기, 《알기 쉽게 간추린 몰트만 신학》(대한기독교서회, 2001)
  • 이종인, 《희망의 두 지평: 에르스트 블로흐와 위르겐 몰트만의 희망사상》(박영사, 2017)
  • 신옥수, 《몰트만 신학 새롭게 읽기》(새물결플러스, 2015)
  • 한국조직신학회(엮음), 《희망과 희망 사이: 몰트만과 그의 신학》(한들출판사, 2005)

각주[편집]

  1.  몰트만, 위르겐. 《몰트만 자서전》 1판. 대한기독교서회. 53쪽. ISBN 9788951114175. 2018년 1월 25일에 확인함.
  2.  몰트만, 위르겐. 《몰트만 자서전》 1판. 대한기독교서회. 64쪽. ISBN 9788951114175. 2018년 1월 25일에 확인함.
  3.  독일에서는 종합대학과 분리된 독자적인 신학대학을 '교회전문학교'(Kirchliche Hochschule)라고 칭한다. 대한민국의 신학대학교와 같다.
  4.  http://www.munzinger.de/search/portrait/J%C3%BCrgen+Moltmann/0/11731.html
  5.  김진만. 《동방정교회 신학과 WCC》.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