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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알라딘: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박보희 1,2,3 (2000)

알라딘: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1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1 - 운명의 기로
박보희 (지은이)홍익200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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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쪽
148*210mm (A5)

[절판]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1 - 운명의 기로
[절판]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2 - 성령의 질풍
[절판]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3 - 구원의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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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골학교 훈장에서 육사 생도로, 외교관에서 종교인으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달려온 지은이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책을 펴냈다.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외치며 프레이저 위원장을 준엄 하게 꾸짖었던 지은이. 김일성주석 사망 때, 국내 일간지 발행인 신분으로 단신 평양에 건너가 조문함으로써 국민적 파란을 일으켰고, 시골학교 훈장에서 육사생도로, 외교관으로, 종교인으로 파란에 찬 일생을 보냈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이 어떻게 통일원리(통일교)와 만나게 되었고, 왜 통일교인이 되었는지, 또 세인들이 지탄과 박해를 어떻게 견디어 내었는지를 인생유전을 토대로 세세하게 서술하였다. 제 3 권에서는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 및 김일석 주석 조문 파동을 당시 분위기를 살려 전하고 있다.


목차


제1권 - 운명의 기로

1장 도고산 정기 밑에서
2장 6.25 전쟁과 육사생도 2기
3장 미국 군사유학
4장 청천벽력
5장 영어에 대한 도전
6장 통일원리와의 만남
7장 택함받은 한국
8장 나는 왜 통일교인이 되었는가
9장 문선명 선생께서 걸어오신 길
10장 주미대사관의 '선교사'

제2권 - 성령의 질풍

11장 미국에 퍼지는 성령의 불길
12장 박해의 물결
13장 미국의회에서의 증언
14장 미국 대통령 선거의 기적
15장 냉전 종결을 인도한 워싱턴 타임즈
16장 소련해방을 위한 또 하나의 무기 - 카우사 운동
17장 20세기의 십자가 - 짜여진 감옥에의 길

제3권 - 구원의 세기

18장 워싱턴 타임즈 사장 납치사건
19장 소련해방의 숨은 영웅
20장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
21장 김일성 주석 조문 파동
22장 21세기, 지복천년으로의 새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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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보희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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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1950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후, 대한민국을 위해 사는 군인이자 외교관이었다. 1956년부터 UN군 사령부 미 군사고문단장의 전속부관으로 복무하였고, 1961년 주미 한국대사관 육군무관으로 임명받고 3년 반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1957년 문선명 선생을 만났으며 이후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하늘의 섭리를 전하는 대사로서 활동하였다. 1964년 명예퇴역한 후 미국을 중심한 문선명 선생의 세계적인 활동을 최측근에서 보필한 통역자이자 보좌관으로 활동하였다. 미국 워싱턴타임스 사장과 세계일보 사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한미 우호관계 증진과 한국의 문화외교에 기여한 공로로 화랑무공훈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하였다. 2019년 성화(별세). 접기

최근작 : <모스크바에서 평양까지>,<천상의 증언>,<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1> … 총 7종 (모두보기)

육사 장교·문선명 통역·겹사돈·북한 진출…‘통일교 2인자’ 떠나다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육사 장교·문선명 통역·겹사돈·북한 진출…‘통일교 2인자’ 떠나다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육사 장교·문선명 통역·겹사돈·북한 진출…‘통일교 2인자’ 떠나다

등록 :2019-01-13 20:08수정 :2019-01-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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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전 세계일보 사장 별세…향년 90


지난 12일 별세한 박보희 전 세계일보 사장.‘통일교 2인자’ 박보희 전 <세계일보> 사장이 12일 오전 7시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

193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육사 2기 생도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52년 미국 유학을 거쳐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 보좌관을 지냈다. 57년 통일교에 입문한 그는 61년부터 세계 선교사로 활동했다. 62년 리틀엔젤스 창설, 65년 미국 워싱턴교회 설립, 69년 한국문화재단 초대 총재 등으로 통일교의 ‘승공’ 이념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1961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 보좌관으로 떠날 때. 왼쪽부터 문선명 총재와 윤기숙·박보희 전 사장 부부. 사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특히 고인은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가 71년 미국 등 세계 순회 포교에 나설 때 통역 겸 특별보좌관으로 수행하면서 실세로 부상했다. 그는 뛰어난 영어 실력과 능수능란한 표정으로 청중을 사로잡아 통일교를 서구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공신이 됐다.


1976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폭로로 불거진 ‘코리아 게이트’(박동선 사건)에 연루된 고인은 78년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눈물을 흘리며 증언한 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코리아 게이트를 조사하는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프레이저 위원회)에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외려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에게 공격을 퍼붓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공개 증언으로 위기를 빠져나왔다. 그의 증언은 2000년 회고록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1·2·3권>(홍익출판사)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1984년 2월 문선명 총재의 아들(흥진·영정)과 박보희 사장의 딸 훈숙(맨오른쪽)의 영혼 결혼식 장면. 사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고인은 문선명 총재와 겹사돈을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째딸 박훈숙(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문 총재의 둘째 아들 흥진이 교통사고로 숨지자 84년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고인의 둘째 아들 진성도 문 총재의 둘째 딸 인진씨와 나란히 결혼했다.

통일교에서 창간한 <세계일보>의 사장 시절인 1991년 12월, 그는 문 총재와 김일성 주석의 평양 단독 회담을 주전한 이래 통일교의 북한 진출을 주도하고, 94년 7월 김 주석 사망 때는 남쪽에서는 유일하게 직접 조문해 김정일을 만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으로 3년간 외유 생활을 해야 했다.



1994년 1월 평양에서 김일성(오른쪽) 주석과 박보희(왼쪽) 사장. 사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2013년 부인 윤기숙(2017년 별세)씨와 결혼 60주년 회혼례를 열고 생애화보집을 냈던 고인은 지난해부터 경기도 가평 통일교 청심국제병원에 입원해왔다.

유족으로는 박나경·준선(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미국 자산관리 대표이사)·진성·훈숙(유니버설문화재단 이사장), 연숙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5시, 장례식 15일 오전 8시 천복궁교회. (02)3010-2000.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박보희 - 나무위키

박보희 - 나무위키

박보희

최근 수정 시각: 
박보희
朴普熙 | Bo Hi Pak
박보희선생사진
출생
사망
2019년 1월 12일 (향년 88세)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청심국제병원
묘소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파주원전
학력
천안농업학교 (졸업)
육군정보학교 (영어과 / 수료)
포트 베닝 미 육군보병학교 (수료)
조지타운 대학교 (외교학 / 학사)
가족
아버지 박동현, 동생 박노희
아내 윤기숙 [1]
장녀 문훈숙, 장남 박준선, 차남 박진성, 양자 박사무엘 등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
복무
최종 계급
중령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상훈
화랑무공훈장 (1951년)
금성 화랑무공훈장 (1953년)
포트 베닝 미 육군보병학교장 표창 (1957년)
주한미군사고문단장 표창 (1959년)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표창 (1960년)
대한민국 국무총리 표창 (1963년)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표창 (1971년)
국민훈장 목련장 (1971년)[2]
은관문화훈장 (2002년)


1. 개요2. 상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종교인기업인이자 한국문화재단의 총재였다. 통일교의 창시자인 문선명의 사돈이며, 동시에 문선명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이었다.

2019년 1월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영어 위키백과, 수상 및 훈장 참고 출처

2. 상세[편집]

1930년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현 아산시 염치읍)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6년 천안농업학교를 졸업했고,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충남 아산시의 도고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0년 6월 1일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로 입교하였다.[3] 그러나 육사 생도가 된 지 24일 만에 6.25전쟁이 발발하여 생도로서 6.25전쟁에 참전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제9보병사단 제28보병여단 소속이었으며, 전쟁 중 소대장, 중대장, 연대작전장교로까지 전쟁에 임했다. 이후 1952년 미국 포트 베닝 육군보병학교에 유학을 가 신임장교 지휘참모과정을 수료했고, 1955년,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에서 근무하면서 육군정보학교 어학반(영어과)을 수료했다. 이후 다시 미국 포트 베닝 육군보병학교의 특수연합군반으로 유학을 가 1956년 수료했다. 그는 포트 베닝에서 화학기 교관으로 근무했다. 그 후, 1957년 UN군 사령부 내 미 군사고문단장 전속부관, 1960년 대한민국 국방부차관 보좌관, 1961년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국방무관 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또한 1961년부터 1965년까지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외교학 전공을 하여 학사 학위를 수료했다.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중령까지 임하다가 1964년에 명예퇴역하였다.

1957년 통일교에 입교하여 문선명과 인연을 맺었다.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했기에 미국 정치인들과 어느 정도 아는 사이이며, 영어 실력이 유창하며, 특히 동시통역을 잘하기에 문선명의 총애를 받았다. 문선명의 동시통역사로도 활동했다. 통일교 2인자 소리까지 들으며 워싱턴 타임즈세계일보평화자동차, 금강산국제그룹 등 통일교 계열 기업들의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단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선화예술학교 교장, 선화학원 이사장, 한국문화재단 총재를 역임했다. 2010년에 리틀엔젤스와 함께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참전국 16개국 순회공연을 주도하기도 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문선명이 "압록강을 헤엄쳐서라도 조문하러 가라"고 명령했는데, 의외로 북에서 순순히 조문단 수용 의사를 밝혀 방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무단 방북으로 간주되었고, 차기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대한민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해외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박정희 정부의 코리아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1978년 미 하원 청문회에 서기도 했다. 이는 애당초 통일교 자체가 코리아게이트에 깊이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프레이저 보고서 참고.

독립협회를 이끈 서재필의 조카이자, 하버드대학을 졸업하여 박정희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한 서영수를 포함한 6명이 1984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박보희를 납치하여 권총으로 위협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서영수 일당은 권총으로 박보희를 위협하며 몸값 100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FBI에 검거되어 실패하였다. 당시 이런 사건을 벌인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라 통일교에 불만이 많아서라고 한다.#

그의 딸인 발레리나 문훈숙[4] 문선명의 죽은 아들 문흥진과 영혼결혼하였다. 박보희는 1984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라플라타가톨릭대학'의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다.
[1] 1933년 4월 25일생, 2017년 10월 14일 별세[2] 국민훈장 동백장이라는 기사도 있으나, 상훈 검색 결과 목련장인 것으로 확인됨.[3] 1946년 입교한 육사 2기와는 다른 기수이다.[4] 원래 이름은 박훈숙이다. 통일교 교리에 따라 남편의 성을 따름이다.

통일사상 - 서문 (序文)

통일사상 - 서문 (序文)

통일사상 - 서문 (序文)
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by 갓골 2010. 1. 6. 

서문 (序文)

지난 2, 3년간은 세계가 일찍이 없었던 대격변을 경험한 기간이었다. 세계적화를 표방하면서 20세기의 세계를 뒤흔들던 소련 제국이,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소련의 사멸이라고 하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리고 소련을 인수한 러시아 공화국 옐친대통령은, 1992년 6월 미국을 방문한 후 상하양원에서 가진 합동연설회에서 `공산주의는 사멸했다'고 선언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를 다시 부활시킨다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서 해방된 구 소련은 아직껏 가야 할 방향을 상실한 채 혼란과 경제적 파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일부 국가에 있어서는, 경제의 개혁과 개방을 목표하면서 동시에 사회주의 제도와 공산당독재를 견지한다고 하는 모순을 지닌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편 민주주의 세계의 기수인 미국은 걸프전쟁의 승리의 영광은 잠시였을 뿐, 방대한 적자경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급속히 그 지도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땅에 떨어지고, 민주주의 세계에는 강력한 리더가 없어진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민족과 종교의 대립에 의한 분쟁, 경제마찰 등이 분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혼란을 틈타고 각종 형태의 복고주의마저 대두하고 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AIDS의 만연, 소말리아 등 후진국에 있어서의 빈곤과 기아가 심화되고 있어서 인류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이와 같은 혼란과 불안속에서 세계는 지금 인류를 이끌 새로운 이념과 지도력을 절실히 요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문선명(文鮮明)선생님 내외분이 추진하시는 통일운동 및 여성해방운동이 유일한 희망의 빛으로서 인류 앞에 찬연히 빛나기 시작하였다.



통일사상(統一思想)은 문선생님의 사상으로서 통일운동 및 여성해방운동의 이념인 바, 하나님주의 또는 두익사상이라고도 불리운다. 하나님주의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라는 뜻이며, 두익사상(頭翼思想)이란 우익도 아니요, 좌익도 아니며, 더 높은 차원에서 양자를 포용하는 사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새로운 가치관에 의한 애타정신으로써, 좌익사상인 공산주의로부터는 증오심, 투쟁심 및 물질주의를 제거하고, 우익사상인 민주주의로부터는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를 제거해서 대립하는 양자를 화해시키고, 공동으로 하나님과 인류의 숙원인 이상세계의 실현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도록 양자를 이끌기 위한 사상이 바로 하나님주의이며, 두익사상이며 통일사상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통일사상은 인류의 부모요, 모든 종교를 설립한 최고의 중심인 하나님의 참된 사랑에 의하여, 대립하는 여러 민족과 여러 종교를 화해시켜서 인류 대가족이념을 실현함과 아울러, 인류의 모든 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영원한 하나님의 참사랑에 의한 이상세계를 창건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상이다. 따라서 어떠한 난문제라 하더라도 통일사상(하나님主義)을 적용한다면 쉽게 또 근본적으로 풀리게 된다.



필자는 오늘날까지 제자의 한 사람의 입장에서 문선명선생으로부터 배운 사상(통일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선생님의 제시와 지도하에 진행해 왔다. 일찍이 수많은 인생문제를 지닌 채 인생의 항로에서 번민해 온 필자는 1956년 입교 후 문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사상) 속에서 인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놀랍고도 엄청난 진리가 함축되어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때 나에게 비쳐진 선생님의 모습은 진리의 보고요, 사상의 용천이셨다. 한번 말씀이 시작되면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사상의 샘물이 한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가르치시는 진리의 사상에 도취되어 시간가는 줄을 모르는 때도 비일비재하였다. 그만큼 그 말씀 모두가 나에게는 진실로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그 귀중한 사상도 이것을 듣는 데서만 끝나버린다면, 마치 꿰지 않은 구슬이 분실되기 쉽듯이 귀중한 말씀 한마디 한마디도, 그 보배로운 사상의 한 토막 한 토막도, 그 일부가 기억의 세계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생문제를 고민한 필자가 이 진리의 사상에 의해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 진리와 사상의 구슬들을 꿰어서 지난날의 필자와 같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구슬(진리)의 사슬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귀중한 보배를 꿰는 심경으로 가르쳐 주신 많은 사상을 홀로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1972년 여름, 문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서 일본에서의 한?일교수친선학술대회에 참가하는 기회에 일본 통일교회의 지성적인 간부들에게 그동안 정리한 것을 강의했던 바 의외의 좋은 반응에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귀국 즉시 보고를 드리자 그동안 정리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라고 명령을 내리심과 동시에 5~7개의 분과로 구성되는 통일사상연구원을 만들어서, 말씀을 계속 정리하면서 사상운동을 전개하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사상을 다시 재정리하여서 1973년에 친필에 의한 통일사상요강의 표제하에 통일사상연구원의 이름으로 그 제1판을 출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모두가 필자가 초창기때부터 선생님의 사상을 선생님의 지도하에 정리한 것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이 필자의 명의가 아닌 통일사상연구원의 이름으로 출판한 것은 본서의 내용이 전부 선생님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선생님의 통일원리를 선생님의 지도하에 집필한 유효원(劉孝元) 전협회장이 자신의 명의로 내지 않고 교회(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명의로 출판한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밝히고 싶은 것은 첫째로 이 책속에 정리된 체계화 그 자체가 통일사상이 아니라 선생님의 사상 자체가 통일사상이며, 체계화는 선생님의 사상의 기술형식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이때까지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사상을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히 전하고자 하는 생각은 많았으면서도, 능력의 한계 때문에 필자로서는 표현의 정확성을 기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던 것이며, 그 때문에 출판된 내용들 중에는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통일사상은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문선명 선생님의 이론체계이기 때문에 사상에 관심있는 학자들이 반드시 읽어 볼 필요가 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몇 사람의 외국인 학자들에게 영역한 책을 보낸 바 있었다. 그런데 그 후에 의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저자(著者)의 이름이 없는 책이란 독자에 대해서 실례일 뿐만 아니라 사상의 발표에 있어서 때 때로 일기 쉬운 논쟁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선생님께 선생님의 사상을 학자의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자들이 읽어 줄 필요가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틀린 표현이나 문장에 대한 책임(文責)을 져야할 당사자로서 부득이 임시로 필자의 명의로써 출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는 것을 말씀드렸던 것이다.



그 후 일본어판(統一思想解說과 統一思想槪要)과 영어판(Explaining Unification Thought와 Fundamentals of Unification Thought)은 모두 필자의 이름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전연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그것은 서언속에 이 책의 내용은 모두 문선명 선생님의 사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소개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책의 내용이 필자의 사상인 것처럼 오해하는 학자들이 적잖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필자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했던 것이다.



그 후 최근에 이르러 선생님의 사상을 전공한 제자들이 여럿이 탄생되었다. 즉 선생님의 사상을 계승한 통일주의 학자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서 통일사상을 학생들에게 강의할 수 있게까지 되었으며, 또 통일사상에 관한 논쟁도 이 학자들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게까지 에 이르렀다. 즉 책 출판에 있어서 문책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미 필자의 이름을 표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저자를 선생님으로 한다는 것도 적당치 않다고 느껴졌다. 그것은 독자에 대해서는 대체로 문책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본서의 내용은 하늘의 사상인, 선생님의 심오한 사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또 그 일부나마라도 하늘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대필되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상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의 하나는 한 사상부문을 체계화할 때 그 부문에 관한 종래의 학자들의 사상을 비교 검토하여 그들의 사상보다도 통일사상이 우수하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인 바, 이 작업 또한 완벽하게 되었다고는 자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원리강론을 쓰신 유효원 전협회장이, 그 내용이 모두 문선생님의 통일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명의로 발행할 수 없었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원리강론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의 이름으로 발행된 것처럼 통일사상을 서술한 본서(통일사상요강)도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서 초판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통일사상연구원(統一思想硏究院)의 이름으로 발행하게 되었다. 단 이번에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서 서명밑에 부제(頭翼思想)를 붙이기로 하였다. 통일사상요강의 초판이 나온 후, 선생님께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더 깊은 진리를 알려 주시곤 하였으며, 그때마다 그것을 정리하여 사상의 체계속에 삽입하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에 발간된 신판은 초판에 비하면 그 내용이 크게 증대되었다.



통일사상은 모든 사상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그 사상의 전개 순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순서에 따라서 배열되었다. 즉 통일사상은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관한 이론으로서 맨 처음 원상론(원상론)을 다루었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인간보다 만물이 먼저 창조되었기 때문에 만물에 관한 이론으로서 존재론(存在論)을 다루었다. 만물 다음에는 인간이 창조되었다. 따라서 제3의 부문은 본연의 인간에 관한 이론인 본성론(本性論)이 된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창조된 짐승과 새들을 아담에게 데리고 가셨다(창2:19~20). 아담은 이것을 보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인간이 그 때 만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인식하고 사고하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4, 제5번째에 다루어지는 부문은 인식론(認識論)과 논리학(論理學)이다. 그리고 아담과 해와는 3대축복을 완성해야 했는데, 그것은 창조이상의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격을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이상의 세계는 이러한 인격을 완성한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 중심의 가치관이 실현된 세계이다. 따라서 제6의 부문은 가치론이 된다.



아담과 해와가 책임분담을 다하여 완성하면 성장기간(成長期間) 중의 그들의 체험을 자녀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자녀들은 가벼운 책임분담으로 성장하여 제1축복을 완성할 수 있도록 교육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제7의 부문은 교육론(敎育論)이 된다. 그런데 제1축복은 제2축복, 제3축복과 함께 3대축복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교육론은 제2 및 제3축복의 교육적 측면도 아울러 다루고 있다.



인간이 성장하면 결혼해서 창조본연의 가정을 이루게 되는데, 따라서 8번째는 가정의 규범의 학으로서의 윤리학(윤리論)을 다루게 된다. 다음은 만물주관이다. 인간은 만물을 사랑으로 주관하고 만물은 인간에게 미를 돌리게 되어 있다. 따라서 9번째는 예술론(藝術論)을 다룬다. 그런데 주관이란 자연만물의 주관 뿐만 아니라 실천항위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이 모두 주관의 개념에 포함된다. 통일사상은 아직은 정치, 경제 등을 취급하고 있지 않으나 이들의 시대적변천의 측면인 역사는 이것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10번째는 역사론(歷史論)이 된다.



이상의 모든 분야에 일관해서 작용하고 있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의 이론이 11번째의 방법론(방법론)이다. 방법론은 그 성격상 원상론의 다음에 삽입되어야 할 것이나, 기존 사상의 방법론과 비교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제일 나중에 넣었다. 이상이 통일사상의 11개 부문의 배열의 본래 순서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인식논과 논리학은 종래의 인식론이나 논리학도 다 함께 다루고 있어서 초심자에게는 좀 난해할 것이 예상되었으므로 편의상 이것을 뒤로 돌려서 방법론의 바로 앞에 넣기로 하였다.



다음에 겸해서 한 말씀 하고자 하는 것은 상술한 바와 같이, 본서의 내용은 이때까지 발표된 문선명(文鮮明) 선생의 사상의 주요 부분을 정리한 것뿐이며, 선생님에 의해서 앞으로 더 깊고 더 새로운 진리가 속속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하여 필요하면 선생님의 직접 지시에 의해서 그 새로운 부문은 그때그때 추가되리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책자가 세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하여, 필설로 표현키 어려운 박해 속에서 그 일생을 바쳐 오신 문선생님의 사상을, 보다 더 깊게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 여러분께 일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서언(序言)을 마치기로 한다.

문선명 선생, 그는 누구인가?

문선명 선생, 그는 누구인가?

 

 

 

 

 

인간 문선명 선생님은 누구이신가 - 박보희 선생 간증

인간 문선명 선생님은 누구이신가 - 박보희 선생 간증


인간 문선명 선생님은 누구이신가 - 박보희 선생 간증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천일의 창

by 갓골 2013. 1. 25. 

인간 문선명 선생은 누구이신가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왜 나는 이 제목 ‘인간 문선명 선생’을 두려워 했을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내 소견으로 다룰 수 없는 엄청난 제목인 까닭이다.

지난 22년을 모시고 따라왔고 최근 10년 동안은 미국에서 이 어른을 모시고 전세계와 미국의 50개 주를 누비면서 모든 말씀과 강연을 통역했으면서도 이 제목을 놓고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몰라 고민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22년을 모시고 따랐다 하지만 사실은 이제야 겨우 문선명 선생을 알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영어에 "Scratch the surfac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깊은 속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겨우 손을 댔을 뿐’이라는 뜻이다.22년간 문선명 선생을 모시고 따르면서 겨우 나는 문선명 선생의 인격에 "Scratch the surface"한 것처럼 그 겉을 만져본 격이라 하겠다.

산이 너무 높거나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산의 높이를 측정하기가 어렵다. 또 측정하는 데는 자가 있어야 한다. 그 자는 재는 물건에 상당한 자라야 한다. 예를 들어 태평양의 물속을 재는데 30센티 자를 가지고서는 재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마치 문선명 선생을 태평양 바다에서 비교한다면 이를 재보려하는 나는 30센티 자에 불과하다. 도저히 이 일은 불가능한 과업이다.
나는 이 어른을 모시면서 항상 역사에 이런 분이 또 있을까 하고 감탄해 마지 않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지 2천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분의 인격을 다 알았다 할 자가 없다고 본다.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이 이분을 연구하여 박사학위의 논문을 썼지만, 아무도 그 인격을 다전파한 사람은 없다.

석가모니, 공자, 맹자 나아가 마호멧트도 같은 대열에 속할 것이다.
오늘날 나는 문선명 선생을 논하라면 이 기준에서 비교나할까. 이 어른은 60세 당대에 한국 사람으로서 단군 할아버지 이래 처음으로 세계 역사에 충격을 주었으며 이 어른은 앞으로 백년, 천년, 수천년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서 역사에 남기는 그 충격이 보다 커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분의 사상과 철학과 인생관은 벌써 우리 세계에 사는 오색인종의, 그 언어와 문화의 배경을 막론하고 수백만의 사람에게 변화를 일으켰다. 이와 같은 인격적 변화는 앞으로 이 어른께서 이 땅 위에 생존하시는 당대에 수천 수억의 인류에게 영향과 충격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감히 예언할 수 있다. 이런 어른에 대하여 그 생활을 통해 보고 느낀 인격적인 모습을 쓰라고 하니 나로서 감당하기 힘들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번 이분의 60회 회갑을 맞이하여 가까이 모신 어린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몇 마디를 적으라고 하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었고 또 기적이 일어나서 한국에 2일을 더 체류하게 되어 별 수 없이 이를 시도해 보려 하는 것이다.



1. 선생님의 이상은 ‘하나님 해방’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집약해 본다면 ‘하나님 해방’이라고 표현하고 싶다.우리는 해방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런데 그 해방이 하나님의 해방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당황한다.인류의 해방, 어떤 억압에서의 해방, 빈곤에서의 해방, 질병에서의 해방, 식민지에서의 해방, 다 멋있는 해방이라는 말이요, 뜻이 통하지만, 갑자기 하나님의 해방이라는 것을 논하게 될 때는 도대체 그 뜻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어떤 철인도 어떤 종교가도 하나님 해방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으며 책에 쓴 일도 없다. 그런데 문선명 선생께서는 흔히 그의 설교 가운데 설교의 결론으로 하나님의 해방을 부르짖고 나선다. 이것은 새로운 말이며 새로운 사상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으로부터 해방하자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입니까? 문선명 선생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하자! 그 자식들이 마치 병석에 신음하는 부모를 병고로부터 해방시키려고 애쓰는 것처럼 하나님을 해방하려고 몸부림 치며 사시는 분이 문선명 선생이시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을 논의해 본 적이 없다. 2천년의기독교 역사도 하나님의 슬픔과 그분의 고통에 대하여 설파하지 못하였다. 하나님 하면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완전무결한 분으로서 저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축복을 내리고 계시는 분으로 우리는 늘 알아왔다.우리는 문선명 선생에 대하여 이제까지 인류가 아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아신 분이라고 해야 옳겠다.

그래서 문선명 선생께서는,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보는 것이요, 하나님을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믿는다는 단어는 실증을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부모가 나를 낳아준 분이라고 나는 믿는다고 하지 않는다. 엄연한 사실을 놓고는 믿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오늘날까지 기독교가 하나님을 믿어 왔다. 그 말은 곧 그들이 하나님을 엄연한 사실로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선명 선생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 나는 하나님을 ‘안다’고 선언하고 나선 분이시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을 보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같이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했다. 문선생님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바로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 말한 그 예언의 실현이다. 하나님을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보시는 분이 문선명 선생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을 속속들이 알고 하나님의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알고, 하나님의 심정 속에 뛰어들어서 알고 보니 그 하나님이 영광가운데 계시는 기쁨과 존귀와 평화의 하나님이 아님을 아신 것이다. 그 하나님은 창세 후 오늘날까지 이루 형용하기 어렵고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픈 사정 속에서 신음하시며 고통을 겪으면서 애통해 하고 계시는 하나님인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발견은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발견이며, 최초의 발견이다. 하나님을 알고 보니 그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영광의 하나님도 아니셨다. 마치 자식을 잃고 그 죽은 자식을 얼싸안고 우시는 그 부모의 모습과 비슷한 하나님을 문선명 선생은 발견한 것이다.
부모되신 하나님께서 자식된 인간들이 서로 투쟁하여 상극하고 있는 실상을 바라보시는 그 하나님은 비참한 하나님임에 틀림없다. 고통의 아버지요 그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역사는 애통해 하는 역사였다. 영어에 "heart broken God"이라는 말이 있다. ‘심장이 깨어진 하나님’그 하나님을 그 아무도 초상화로 묘사해 보지 못했다. 역사에 처음으로 문선명 선생이 아셔서 그 하나님의 참모습을 초상화로 그려 보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 초상화를 온 세계에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드려야 한다는 운동을 제창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선명 선생의 하나님 해방 운동인 것이다. 그 운동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통일교회의 운동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해방하자고 하시는가?

타락한 인간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가지고 완성의 영역으로 이끌어가는 길만이 하나님을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해방하는 길이다. 이 운동이 바로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이요, 통일교회의 운동인 것이다.하나님을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해방해 드린다는 말은 결국 이 땅 위에 본연의 지상천국 이념을 실현해 드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을 내려다 보실 때 환희와 기쁨으로서 너털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세계로 되돌려 놓자는 것이다. 이 운동은 바로 문선명 선생의 사상을 집약한 내용이며, 그 사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 해방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이렇게 역사상 처음으로 본연의 하나님을 철저히 아시는 분이 나타났기 때문이요, 그렇게 철저히 아시는 터 위에서만이 이와 같은 주의와 운동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사랑에 미치신 분


‘하나님을 위해 철저히 미치신 분’이라고 하면 표현이 점잖치 못한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이상 더 정확한 말로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에 나는 굳이 이 말을 쓴다. 성서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일 큰 계명 가운데 ‘너희는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하는 계명이 있다. 뜻과 성품과 마음을 다한다는 말을 영어로 하면 "All your mind, all your heart, all your soul" 마음과 심정과 영혼을 다하여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해라이다. 그러면 이 말을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데 적용해 보자.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뜻과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사랑했다면, 또 영어에서의 표현처럼 마음과 심정과 영혼을 다하여 사랑했다면 그는 그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을까! 또 요즘 흔히 한 여성이 한 남성을 그렇게 사랑했다면 흔히 우리가 할 수 있는 표현은 그 여성은 그 남성을 위해서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을 진실로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뼈저리게 느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역사에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수준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미치신 분이다라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 분은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고 피땀 흘리며, 하나님과 더불어 온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알고 보니 그 하나님 아버지가 슬픔의 아버지요 고통의 노예가 된 하나님인 것을 안 까닭에 그 하나님의 슬픔을 역사에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분은 하나님의 해원이란 말을 즐겨 쓰신다. 아마도 이 역사상에 그 누구도 그 하나님을 위해서 문선명 선생 이상 눈물을 흘린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일화를 듣는다. 통일교회의 초창기에 있어서 우리 선생님께서는 그 많은 시간을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나는 기도생활로 하루를 보내셨다. 한번 무릎을 끊고 앉으시면 열시간도, 14시간도, 때로는 17시간도 진실로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 하나님의 울음을 울어줄 분이 또 있을까? 그는 너무도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에 무릎과 팔굽에는 굳은 살이 박히었다.

기도가 시작되면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다. 식음을 잊으시고 잠자는 것도 잊으신다. 이것은 문선명 선생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선생님의 생활원칙인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통역관을 통해 설교하심에도 불구하고 아침6시에 설교 말씀이 시작되었는데 오후 다섯시에 끝났으니 장장 11시간동안 설교를 하신 것이다. 그런데 설교를 끝내고 나서 ‘이제 점심때쯤 됐나’라고 말씀을 하신다. 이 어른은 사람들에게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위해서 미쳐서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 돈, 이성, 명예, 학문보다 하나님을 위해 미쳐보라고 말하신다. 또 2년 전에 이 어른은 일년 간 표어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미치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위해 미치는 그 인생은 거룩한 인생이요 보람있는 인생이다. 그렇게 쏟은 피와 땀의 가치는 영원히 지워질 수없는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몸소 실천하시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앞서 실행하시는 분이 선생님이시다.
한때 미국의 어떤 고위 정치인이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었다. 물론 준비없이 대화로부터 시작된 이 자리에서 감동받은 이 미국의 정치인은 마지막 결론으로 하는 말이 ‘레버런 문은 하나님에게 미치신 분 이구요. 어디를 찔러도 하나님의 말씀만 나옵니다.‘고 평했다. 그 말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선생님의 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 차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철두철미 미치신 분을 나는 보았다.


3.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신분


세상 모든 일을 책임지려고 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선명 선생은 철두철미 그 생활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산다는 책임감에 넘친다. 하나님은 무형이시다. 그 무형의 하나님에게 유형의 몸을 제공하신다고 생각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은 하나님의 군과 귀 그리고 입을 대신한 것이요, 선생의 몸은 하나님의 몸을 대신한다고 생각한다.
문선명 선생은 종교지도자라고 해서 오직 종교에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 아니다. 세상 만사에 관심을 쏟으신다. 그 일이 경제의 일이건 정치의 일이건 산업의 일이건 문화의 일이건 관계치 않는다. 선생은 완전히 자연인이시다. 선생은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신다. 어디서 지진이 일어나면 그것을 염려하며 밤을 세우신다. 어디서 기근이 있다 하면 그것을 염려하며 밤을 세우신다. 어디서 기근이 있다 하면 그것을 염려하여 기도하신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다보시려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식들의 만사에 관심을 갖는 분이시다. 부모가 집안의 모든 일을 관여하시듯 세상 모든 일을 관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의 아버지요. 그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그 하나님과 같이 우리도 세상의 모든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하여 책음을 져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선생은 철두철미 이 세상은 내가 아니면 구원할 수 없다고 하는 신념에 차 있으시다. 그렇기 때문에 자나깨나 세상의 되어지는 일에 고통을 느끼실 뿐 아니라 책임과 아픔을 느끼신다. 미국에 가서는 미국을 책임지려 하신다. 이것은 세계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해 놓고는 온 세계에 되어지는 일에 책임을 지려 하신다. 오늘날 민주세계가 공산주의의 침범을 받아 불난집과 같이 되어지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다. 그렇게 때문에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문제의 하나가 공산주의 문제라고 설파하신다. 공사주의가 세계 제패를 완성한다면 그것은 곧 이 지상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추방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땅위에 공산주의를 어떻게 몰아낼 것인가를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는 하나님이실 것이다. 또 그 하나님을 참말로 아는 사람일진대는 하나님께서 공산주의에 대해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느껴야 할 것이다.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신 것이다.
문선명 선생은 그의 어깨로 세계 공산주의 문제를 책임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공산주의는 문선명선생과 더불어 최후의 결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선명 선생은 승공이념을 이 땅위에 펴시었다. 이것은 역사에 처음으로 공산주의의 거짓됨과 그릇됨을 폭로하는 것이요, 공산주의가 궁극에 있어서 인류의 적일 뿐 남 아니라, 하나님의 적인 것을 폭로하는 주의이다. 이제 이 승공이념 앞에 공산주의는 역사에 처음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 오직 공산주의를 이기는 참다운 길은 진리에 의한 것이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것을 온 세계에 들어내는 데서부터 출발된다. 하나님이 안계신다 하는 주의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주의가 이길 때에 분명히 망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은 수세에 몰리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60년동안 공세를 거듭하여 세계의 3분의 1을 집어 삼켰다. 그러나 한국이 낳으신 문선명 선생이 주창하시는 승공이념은 비로소 공산주의를 수세로 몰고 간다. 나는 단언한다. 이제 우리 조국 한국에 세계 공산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무기가 탄생할 것이다. 그것이 문선명 선생 자신이요, 그것이 문성명 선생의 사상인 것이다. 이 사상으로 무장하면 한 국가는 물론이요, 나아가서는 자유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데까지 전진해야 할 것이다. 공산세계까지도 마지막에는 해방시켜줘야 할 책임을 느끼시는 분이 문선명 선생이시다. 공산주의의 심볼이 되는 모스크바가 워싱턴 머뉴먼트 다음 대회의 집회목표라고 하는 것은 선생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고 보겠다. 어떻게 보면 선생은 온 세계 공산주의를 없애고 나아가서는 이 땅위에 지상천국을 이룩하는 혁명군을 모집하고 계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바로 그 혁명의 사상이, 이 지상천국을 이루어 드리려는 그 혁명의 사상이 결국은 메시아 사상이라고 하겠다.

나는 선생을 모시고 영국에 간 일이 있다. 그 때만 해도 거의 10여년 전이다. 영국에 통일교회 교도들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선생이 가신다고 하니까 영국의 신도 약 25명이 한 방에 모여 앉아 선생을 환영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선생은 느닷없이 질문하시기를 ‘너희들 가운데 자기 혼자 영국의 구원을 책임 지겠습니다 하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셨다. 영국의 구원을 혼자 책임 진다는 엄청난 과제 앞에 그 누구도 손을 번쩍 들어 대답하는 청년이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 몇 명의 구세주를 필요로 하겠느냐“고 물으셨다.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도 대답을 못하니까 선생님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시면서, ‘그러면 2쳔년 전에 몇 명의 메시아를 이 땅위에 보내셨지?"하고 물으셨다. 그때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고 모두들 대답했다.

다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이 온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데 하나님은 한 분의 메시아를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이 조그마한 영국을 구원하는데 과연 메시아적 사명을 할 사람이 몇 명이나 필요하겠느냐? 너희들이 진실로 메시아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메시아의 인격을 본받아서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려고 하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명이나 필요하겠느냐‘고 재차 물으시면서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면 여기 모인25명도 많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용기를 얻어 모두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선생은 웃으시면서 영국에는 25명의 메시아가 있으니 너무 많지 않으냐고 말씀하시었다.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구원하고 남는다는 결의를 가지고 나가라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4. 진실로 소박한 분


놀라울 정도로 ‘문선명 선생은 소박하고 자상하신 분’이시다.
한때 미국에서 야외집회가 있었다. 모처럼 야외에 나가셔서 신도들 앞에 설교하신다고 하니까, 미국의 유명한 ‘people"이라는 잡지사의 사진반과 기자들이 대거 출두해서 선생의 말씀과 그 장면을 기사화했다. 그때 그 기사의 서두에서 선생님께서 입으신 복장을 묘사하기를 영국에서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양복에다 보석으로 장식된 수만불짜리 시계를 차시고, 그 구두는 역시 미국제가 아닌 영국에서 특별 주문한 수백불 짜리 구두이며 하는 식으로 와이셔츠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전체 의복을 황금으로 뒤집어 쓴 것 같이 묘사해서 기사를 쓴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과는 달리 그 날 선생께서 입으신 양복은 한국의 어느 양복점에서 만든 허름한 라사지의 양복이요, 시계는 그분의 아드님으로부터 생신 선물로 받은 40불짜리 시계며, 구두는 미국에서 산 싸구려 40불짜리 신발을 신고 계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선생의 생활은 참 소박하고 간결한 생활을 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분을 모셔오면서 한번도 이분께서 음식을 놓고 탓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음식이라면 무엇이든지 맛있게 드신다. 또 절대로 호화식이나 식도락을 싫어하신다. 특히 많은 미국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 이유중의 하나가 미국의 대중음식점으로 알려진 소위 ‘맥도날드’라고 하는 햄버거점에 선생님 내외분께서 자주 출입하신다. ‘맥도날드’라고 하는 음식점은 어린아이들이나 서민들이 들어가서 간단히 식사를 하는 연쇄점인데 거기서 파는 햄버거는 대체로 1불 미만이고 조그마한 햄버거는 40∼50센트이다.
선생은 언제든지 자녀들을 거느리고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드시는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한 나머지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았다. 미국 50개 주를 누비면서 강연을 하실 때는 항상 강연이 끝나면 수고한 젊은 이들을 데리고 가서 그 간소한 햄버거를 같이 드시며 그들의 수고를 위로해 주시곤 한다. 선생의 이러한 소박한 생활은 미국 젊은 신도들의 전통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선생께서 1974년도에 50개 주의 강연을 40일 동안에 누비시면서 순방하실 때는 프리머스라고 하는 허름한 차를 타시고 밤낮없이 여행을 하였는데 그때 내가 모시는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식사를 너무 거칠게 하시는 것이었다. 항상 거리에 차를 세우고 수퍼마켓에 들어가서 빵봉지 하나에다 오이 김치 한 통과 고기 내장으로 만든 스프 한 봉지를 사가지고 그것으로 식사를 때우면서 40일간을 순방하시었다. 그분이 미국에서 입으시는 옷은 기성복집에 가서 바지 하나에 9불, 한 벌을 사도 30∼40불이면 해결되는 그런 옷을 사서 입으신다. 그러면서 이분은 또한 공금에 대하여 그렇게 철저하실 수 가없다. 항상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늘의 돈을 함부로 한푼이라도 썼다가는 하늘 앞에 도둑이 되는 줄 알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가르치시며 그분 스스로가 먼저 실천하시는 어른이시다. 또 이분은 남을 위해서 돈 많이 쓰기에도 세계 제일의 기록을 세우시는 분이 문선명 선생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우리 제자들이 항상 감명받는 일화가 있다. 선생께서 이북공산당의 감옥에서 고생하실 때 그곳에서 주는 밥덩이 가지고는 도저히 연명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서 만이 생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선생 께서는 남들이 배고파 죽어가는 그 판에 자기 몫으로 받은 거칠은 보리밥 한 덩어리를, 그것을 다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데 그것을 절반으로 갈라서 동료들에게 주고 자신은 그 절반을 드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의 입에서 밥을 꺼내 먹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처참한 환경 가운데서도 선생께서는 사랑을 베푸셨고, 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셨다. 그러한 인생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통일교회 신도들이 물질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5. 무한히 크고 섬세하신 분


선생은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인이라고 하는 그 범주를 벗어난다. 선생은 완전히 세계인이시다. 선생을 만나 말씀을 듣는 자마다 느끼는 것은 이분이 어떻게 한 인간으로서 이렇게 웅대하고도 엄청난 꿈과 사상과 철학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분은 제자들과 같이 앉으면 세계를 논하고 천주를 논한다. 이 지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저 영적인 세계를 철저히 설파하신다.
결국 선생은 이 땅 위에서 모든 악과 죄악을 무찌르는 싸움을 시작하시기 전에 벌써 그 싸움을 영적인 세계에서 싸워 이기신 것이다. 그 세계를 평정해 놓고 그 세계의 통일을 이루고 나서 결국 잔여 병력을 소탕하는 것과 같은 싸움을 지상의 싸움이라고 설파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전략을 논하고 천주의 세계를 설파하시는 그 스케일이 얼마나 큰지 가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느끼게 하시는 것이다. 22년간 따르면서 아무리 들어봐도 새롭고 아무리 통역을 해봐도 항상 새로운 말씀이시다.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예지가 있고, 진리가 있고 기쁨이 있으며 소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주의, 주장을 설파한다 하더라도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선생은 이와 같은 엄청난 말씀을 하시면서도 그것이 허무맹랑한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정확한 실천이 뒷받침된다. 섬세하게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나는 또 이렇게 크신 어른이 어쩌면 그렇게 섬세하시고 작은 일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가 하는 것에 놀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면 평소에 선생께서 옷 입는 것을 많이 보아왔지만 단추 하나 흐트러 놓는 때가 없다. 넥타이를 매더라도 언제나 반듯하게 핀을 꽃아 정확하게 매신다. 선생께서 항상 바쁜 일과를 보내시면서도 옷깃 하나 흐트러짐 없는 섬세한 면을 보여주신다.
나는 또 한 가지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선생께서 1950년대의 한국동란 이전 이북 흥남감옥에서 근3년간을 공산당 밑에서 형을 치르던 세상 지옥이라고 할 수 있는 절박한 가운데서도 한 올 두 올 주워 모은 실을 가지고 젓가락집을 손으로 짰다고 하는데 얼마나 섬세하게 잘 짜여졌는지 모른다고 하는 말을, 일찍이 선생을 따르던 제자들을 통해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선생께서는 아무리 긴박한 가운데서도 여유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솜씨 또한 놀랍다고 하겠다. 글씨도 잘 쓰실 뿐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신다. 미국에서는 젊은 신학생들에게 그물을 짜는 법도 가르치시고 고기 잡는 일도 가르치셨다. 그물 짜는 선생님의 솜씨를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었다. 선생님은 여행을 하실 때 난 그 가방 속을 보고 깜짝 놀랐다. . 그 가방 속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어야 할 곳에 딱딱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생님의 평소 생활 모습이 언제나 흐트러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선생은 자리에 앉으면 언제나 몸을 곧게 가지시고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시다.. 절대로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시다. 이와같이 외형적으로 섬세함을 보여주시는 선생의 일면일면은 그분의 내적인 섬세함을 또한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6. 목표는 최고의 정상에 둔다.


‘무엇이든 최고의 정상을 목표하시는 분’이다. 선생께서 유년시절을 보내신 일화에 대해 그분의 가까운 친척을 통해 들을 때가 많다. 또 선생 자신도 그의 유년시절에 있었던 일화를 가끔 말씀해 주시는 때가 있다. 그런데 그분의 어릴 때나 이제 환갑을 맞으시는 오늘날에 있어서나 항상 그분의 생활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분은 무엇이든지 최고의 정상을 정복하지 않고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시다 하는 것이다. 이분은 일상 생활에서 역사를 의식하신다.

이분은 일상 생활을 통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그 무엇을 항상 생각하신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이 이어받아야 할 전통을 스스로 세우신다. 그 전통은 최선을 다하여 새로운 기록을 깨쳐 가라는 것이다. 한때 선생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일생을 살면서 이 세상을 왔다간 사람 중에, 가장 잠을 적게 자고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누구보다도 잠자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한 신기록을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문선명 선생과 같이 잠을 안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한 사람은 역사에 없을 것이다. 그분이 12시 이전에 침실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옛 청파동 초대교회에서 모시는 동안에도 밤을 지새워 한시 두시 세시까지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이 일상 생활이었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 일찍 다섯시가 되기 전에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신다. 미국에 가서도 이분은 주무시는 것을 잊으신다. 의자에 앉은 채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음날 일로 넘어가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선생님보다 10세가 아래인 이 필자도 도저히 선생님 앞에서 나는 젊다고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도저히 선생님의 기록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러하신 선생을 모시는 보좌관으로서, 가장 어려운 점과 소원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정말로 잠이 모자라 잠을 실컷 자는 것이라 하겠다.

역사에 이분처럼 많은 말씀을 하신 사람이 또 있을까! 또 그 말씀이 철두철미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하나님을 중심한 말씀이고 보니 이것 또한 신기록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선생은 항상 말씀하시기를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어려운 길이요, 고난의 길이요, 눈물의 길이요, 형극의 길이지만 감사하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하시고 우리보다 더 고통과 슬픔을 참고 나오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그런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다면 어찌 우리가 이만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불평할 수 있을 것이냐고 반문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찾고 계신다고 설파하시면서 나는 지칠 수 없고 안갈 수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가 가는 길이 보람이 있고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가르치신다.

최근 몇 해 동안은 보스톤 근해 바다에 나가셔서 ‘투나’를 낚으신다. 물론 선생은 직업적인 어부는 아니시다. 그런데 몇 년 간을 거듭하시는 가운데 선생은 이 지방의 유명한 투나잡이의 스승이 되셨다. 선생의 배는 아침 일찍이 출항했다가 밤에 늦게 돌아오시기 때문에 그 배가 돌아오는 것을 보는 사람이 없다. 여름에는 수백 척의 투나잡이 배들이 모여든다. 이 배들은 ‘Sports fishing"에 참여하기 위하여 세계의 보호들이 호화판 배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여기서 제일 많이 잡은 사람에게는 상패를 준다. 그런데 문선명 선생께서 이곳에 등장한 이후로는 그 누구도, 30년의 역사를 가진 사람도 선생의 기록을 따르는 자가 없다. 그리고 1979년에 낚으신 것으로서 또 한번 신기록을 세우셨다. 드디어 천파운드가 넘는 투나를 낚으신 것이다. 이제 이 지방에서 문선명 선생의 투나잡이는 신화적인 얘기가 되었다. 그래서 선생께서 가시는 곳에는 반드시 투나가 몰려온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New Hope"라고 하는 선생의 배가 출범을 하면 그 뒤에는 여러 배들이 뒤따라 온다. 선생의 배가 정박하면 그 근처에서 닻을 내리고 고기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생께서 고기를 낚아서끌기 시작하면 모든 배에서는 어떻게 하시나를 배우기 위해서 쌍안경을 가지고 쳐다본다. 그런데 아무리해봐도 선생의 기록을 따라갈 수 없으니 최근에 와서는 결국 문선명 선생은 바다의 고기까지도 세뇌해서명령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기적은 없다. 기적은 만드는 것이다. 선생은 철두철미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동시에 철두철미 인간이 해야 할 책임을 잊지 않는 분이시다. 그야말로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 사람의 책임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그 유명한 말을 철두철미 실천하신다.


7. 강인한 투지와 의지의 소유자

“한번 손을 대시면 끝장을 보시는 분”이다. 미국에서는 흔히 선생의 인격을 평하여"Born Fighter"라고 한다. 그 뜻은 투쟁가로서 혁명가로서 태어난 분이라는 것이다. 본인이 보기에도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승리하기 위하여 한 분을 특별히 보내셨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강인한 투지와 의지력의 소유자이시다.
그런데 선생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우리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시기 때문에 피로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말은 곧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어도 아픔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신다.

선생께서 1965년 처음으로 각 나라의 신도들을 순방하시기 위한 비자를 받기 위해 신체검사를 하신 일이 있다. 그때 흉곽 X-Ray를 찍어본 의사는 깜짝 놀라서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께서는 언제 늑막염을 앓으신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X-Ray 사진에 나타난 선생의 흉곽에는 옛날에 늑막염을 앓으신 흔적이 지금도 크게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선생은 너무도 뜻에 대한 사명에 골몰하시는 동안에 병마가 그 몸을 엄습한 것을 감지할 여유도 없으셨다. 드디어 그 병마는 선생의 강인한 정신력과 철석같은 의지 앞에 굴복을 한 것이었다. 이것이 선생의 생활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비록 서투른 통역관을 써서 그 말씀을 가르치신다 하더라도 이와같이 강인한 정신력과 그 의지는 서양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이 약한 사람도 한번 선생의 말씀을 듣게 되면 용기를 얻어 새로운 신념과 각오로서 다짐하고 나서는 것이다. 선생의 말씀에서는 부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기운을 잃고 죽어가던 생명들도 한번 그분 앞에 나와서 한두 시간 말씀을 듣고 나면 완전히 회춘한 새싹 모양 그 생명이 부활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언젠가 신학교에 가셔서 말씀을 하시게 되었는데 마침 그때 통역관이던 필자가 옆에 없으니까, 내 입이 어디 갔느냐고 고함치며 웃으시는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선생의 입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그 별명을 들을 때마다 그이상 영광된 별명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스스로 반문한다. 선생의 입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입이시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역하는 선생의 입이 ‘나’라면 이는 사명적인 면에서 영광된 사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는 선생께서 하시는 말씀을 통역하지 않는다. 말씀 이전에 숨어 있는 그분의 정신을 통역하는 것이요, 그분의 심정을 통역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유능한 유엔총회의 통역관이라도 선생의 통역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선생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은 다만 그분의 말씀 통역에 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의 적절히 흐르는 하늘에 대한 충성과 효성, 그리고 혁명가적인 투지 "Born Fighter"의 정신, 병마도 불사르고 나가는 강인한 신체에서 흘러나오는 그 정신의 통역은 곧 영적인 통역이요, 인격의 통역이요, 신념의 통역인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 먼저 감동받는 사람은 바로 통역관인 것이다.


8. 선생은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신다.

마지막으로 결론 맺고 싶은 것은 문선명 선생은 조국 대한민국을 진실로 사랑하시는 애국자라는 것이다. 작년에 한국에 돌아오셔서 한국 지역 사회 개발연구원의 초청에 의해 한국의 저명인사들 앞에서 강연하실 때 그 제목을 ‘조국이여 빛나라!’항상 선생의 심금 속에는 내 조국 대한민국을 잊으시는 날이 없으시다. 그리고 선생은 이 조국을 영원히 세계인들이 선망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시기에 분주하시다. 결국 조국 대한민국을 세계 사람들의 신앙의 조국으로 만드시려는 것이다. 앞으로 오색인종 세계 1백20개 국의 국민들은 한국을 신앙의 조국으로서 순례할 때가 올 것이다. 불원한 장래에 이 날이 올 것이다. 세계 인류가 한국에서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기쁘게 사랑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우리 조국은 그동안 오랜 역사를 통하여 자랑스러운 역사라기보다는 눈물과 비애와 치욕의 역사를 겪어왔다. 지난 36년간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 바로 그것이다. 또 오늘날 공산주의에 의하여 1천7백만의 이북동포들이 신음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의 역사는 비애의 역사요 고난의 역사이다. 이 고난과 비애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결심하신 분이 문선명 선생이시다. 이는 우리 조국강토 한반도가 영원히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잊혀지지 아니하며, 영원히 인류 해방사에 기여하는 새 민족으로서 등장하는 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다. 이 이상 더 애국하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최근에 나는 어떤 신문사 사장을 만나서 대담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최근 한국 개항 백년사를 특집으로 다루기 위해서 한국의 개항 백년사를 연구하다 보니, 그 개항백년의 역사가 치욕의 역사요, 부끄러움의 역사요, 떳떳치 못한 역사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마지막 10년 기간에 드디어 통일교회라고 하는 어떤 이념의 단체가 탄생하여 새로운 운동으로서 세계 만민 앞에 한민족의 기개와 한민족의 우수성과 한민족의 박애정신을 높이 외침으로써 세계의 존경과 추앙을 모으게 하였으니 우리 민족 개항 백년사에 있어서 체면이 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생께서 하신 그 일은 다만 한국 개항 백년사에 체면을 세우는 정도가 아니다. 단군 할아버지 이래 처음으로 세계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 이념과 한 지도자로 인하여 영원히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영원한 하나님의 역사에 해방국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해방자의 은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위에 계속 되는한 영원할 것이다.
‘조국이여 빛나라!’ 이는 선생의 염원이시다. 그리고 조국을 빛나게 만드는 역사는 우리 당대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영원히 자손 만대에 이어져 나갈 것이다. ‘인간 문선명 선생’ 이분은 대한민국이 산출한 최고의 보물이며, 이분의 이름은 인류 역사의 새 여명이시다. “인간 문선명 선생” 이분은 하나님의 해방자이시다.

* 이글은 박보희 회장께서 수십년간 문선명 선생내외분을 모시고 느끼신 간증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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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100만달러 상금 선학평화상 제정

국내 최대 100만달러 상금 선학평화상 제정

국내 최대 100만달러 상금 선학평화상 제정

입력 2014.08.11 
 민병오 부국장 (eagleeye@dailian.co.kr)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 단일상으로는 국내 최대인 100만 달러 규모의 평화상을 내년부터 제정, 시행한다.

선학평화상위원회는 11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내외 각계 지도자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학평화상 출범식'을 가졌다. 위원회는 내년 8월부터 매년 평화세계와 인류의 복지를 위해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선학평화상을 시상하게 되며, 시상금은 국내 최대 규모인 100만 달러(약 1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상은 고(故) 문선명 가정연합 총재의 성화 2주기(8월12일) 기념사업으로 추진된다.

초대 위원장에는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이 추대되었으며, 위원으로는 보트로스 갈리 전 UN 사무총장, 래리 비슬리 워싱턴타임즈 사장, 오노 요시노리 일본 전 관방장관, 조계종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 한국외교협회 정태익 회장 등 12명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수상자 선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세계적 저명인사를 위원으로 위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 위원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선학평화상은 상을 시상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평화를 위한 활동들이 지속적으로 정착되고 문화로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평화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철승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국가와 인종, 종교와 문화를 초월하여 전 방위적으로 세계적인 활동을 전개했던 문 총재의 유지를 받들어 한학자 총재의 발의로 제정된 선학평화상이 창설자의 평화 정신을 선양하고 발전시키는데 원동력이 되기 바란다”며“범세계적 차원의 평화운동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오는 10월 말까지 80여 개국의 전 세계 지도자 1000여 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들에게 수상후보자를 추천 받고, 2015년 4월까지 후보자의 적격성 실사 및 심의를 거쳐 심사위원들이 최종 수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또한 향후 시상식과 함께 심포지엄, 페스티벌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과 함께 후보자 및 수상자들의 지속적인 활동과 홍보 지원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대중화하는데 앞장선다는 방침이다.

2022/08/08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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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버님 말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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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1. 23:47

 이웃추가
< 참아버님 말씀 >

선생님이 자서전 내기를 꺼려하는 사람이야. 전부를 다 알고 있다고. ...이번에 선생님이 낸 자서전은 부모님 생애의 1/10, 1/100 내용도 못돼. 다 실천하고 지금까지 나온 거지. 이 일을 못하면 어디로 갈 거야? 선생님 자신도 그래요. 이 일을 못 해내면 어디로 갈 거예요?
[2009.4.23-천정궁]

이 땅에 무엇을 남기고 가야할 것이냐?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이 실적이야.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책임이 다가오는 6월 1일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의 자서전을 중심삼은 것인데, 역사적인 내용의 자서전을 발표하였지만 그것은 일부분이야. 살 껍데기 밖에 안 돼. 살과 뼈는 어디 가고 골수는 어디로 갔으며 피살과 땀은 어디로 갔느냐 이거야. 그 모든 것을 다 모아 완성할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한데. 그 피땀의 내용을 보탤 수 있는 존재는 누구냐? 한국에서 시작한 모든 뜻이 점점 작아져서는 안 돼. 

...문총재는 가야할 때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느냐 이겁니다. 대신자를 세우고 싶었고 상속자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선생님이 떠나간 그날부터는 이것이 끝장 날 텐데,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자서전이고 (앞에 놓인 책을 두드리시며) 남긴 글입니다. 글! 진리를 대신할 수 있는 표시된 내용의 그 책자입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선생님의 자서전을 중심삼고 생애를 넘어 후손까지도 뜻을 중심삼고 상속해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명과 환경보다도 미래의 후손들보다도 그것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자서전의 내용을 중심삼고 상속받아 책임을 넘어 더 플러스 시켜 나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의 자랑이요, 세계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2009.5.15-천정궁]



문선명 선생 자서전 출판기념회 (2009.6.1)
< 참아버님 말씀 요약 >

내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라는 자서전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김영사의 여러분들이 수고한 것을 감사해요. 자서전이라고 하면 내가 기록해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기록하려고 하니 지난 역사가 너무 복잡하고 많기 때문에 책 한 권 가지고는 안되겠어요. 내가 그 동안 말씀한 책 출판 된 것이 7~8백여 권이나 되어 방대한 내용이에요. 

자서전 가운데 무엇을 중요시 하느냐 하면 하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애천' 해 봐요. 하늘이 얼마나 커요. 수천만 년의 하늘을 알지도 못하는데 하늘을 어떻게 사랑해요? 그게 숙제였습니다. 하늘을 알아야 합니다. 덮어놓고 아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잘 난 사람도 이해할 수 있고 얻어먹는 거지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하늘을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보여주어야 됩니다.

자서전을 쓰려면 그런 내용을 써야 될 텐데, 그렇게 볼 때 이번 김영사의 수고한 그 요원들에 대하여 감사해요. 나를 만나지도 않고 썼는데, 유명한 사람들은 대신 써주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 아들딸들 중심삼고 만나지도 않고, 그 쓴 것을 내가 하루에 한 번씩 세 번을 읽었어요. 읽으면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쓰기 위해 얼마나 수고했겠나' 생각하며 김영사에 대해서 눈물을 흘려준 사람입니다.
이와같이 내가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기록해 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내가 몇 점을 줄 것이냐, 84점을 주었습니다. 
< 참아버님 말씀 >

자서전의 결론을 누가 지어 주어야 돼? 역사적인 결론이야.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라는 거야. 누구도 결론을 못 지을 내용을 말해 놓은 거야. 세상에 내가 못나서 이런 놀음 하는 것 아니야
[2009.6.3-천정궁]

선생님의 자서전 제목이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야. 평화를 사랑하는 혈통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목 볼록이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009.8.19-천정궁]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자서전을 중심하고 선생님의 생애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공산주의 싸움, 평화의 세계 전반적인 모든 사상계 체계를 가지고 따라가서 연결된 순서에 의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열심히 했으면 열심히 한 그 기준을 중심삼고 두 배 세배 더 열심히 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2009.10.19-천정궁]


자서전에 별야별 이야기가 다 있다. 삶의 백과사전과 같다.
[2010.10.1-천화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