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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


펜앤드마이크
23 August 2016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

김일성의 주체농법은 농업 생산량 감소를 막아 보자는 바보들의 대증요법이다. 면적당 소출이 떨어진 만큼 면적을 늘려 총생산량을 회복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농지는 산비탈로까지 밀려 올라갔다. 비가 오면 토사가 흘러내리는 환경 재앙은 주체농법의 명징한 결과다.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계화, 농자재와 비료 등 농업의 공업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김일성뿐만은 아니었다.

마이너스 금리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도 비슷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일본은 대체로 2011년을 정점으로 급격하게 금리를 내렸고 2014년부터는 역금리로 돌아서 지금은 스웨덴 -1.25%, 스위스 -0.75%, 유로존 -0.40%, 일본 -0.1% 등이 역금리다. 대부분은 중앙은행 예치금에 대해서만 마이너스를 적용하고 일반 대출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지만 덴마크에서는 일반 대출에도 적용하고 있다. 현금 보관비용과 마이너스 이자를 합친 한도 내라면 일반 대출에도 역금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농법과 비슷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저축률은 세계 최고인 20.1%까지 치솟아 버렸다. 제로 수준이던 스웨덴 저축률도 16.5%까지 급등했다. 덴마크도 8.1%로 뛰었다. 저축률이 줄곧 하강해 온 일본도 2.1%로 반전했다. 소비를 늘리자고 도입한 아이디어였지만 결과는 저축의 증가였다. 저축자들은 줄어든 이자수익만큼 오히려 예금총액을 늘리고 있다. 소비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승수적으로 줄고 있다. 케인스가 말한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적 상황이지만 은퇴자도 청년들도 끝내 저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저축자들은 투기상품을 찾거나 저축 총량을 늘려 장래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이 고령화 시대에 마이너스 금리는 노후 불안을 더욱 부채질한다. 더구나 은행 다니느라 닳게 될 구두축 비용도 아깝기 때문에 돈은 빠른 속도로 퇴장한다. 화폐 유통속도는 떨어지고 돈을 풀수록 시중 현찰이 사라진다. 바보만 모르는 미스터리다.

‘돈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반감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근대 신용화폐가 도입되면서 극에 달했다. 이자수익에 세금을 매기거나 감가상각 제도를 통해 ‘돈의 불멸성을 파괴하고, 자가증식을 차단하자’는 주장의 현대적 선구는 1916년 실비오 게젤의 《자연적 경제질서》다. 우리는 오늘날 케인스 《일반이론》 23장에서 그의 이름을 보게 되는데, 한때는 헨리 조지 이상의 열광적 추종자가 있었다고 한다. 화폐 이자율이 실물자본의 성장 한계라고 주장한 게젤은 이자율을 제거하면 경제 성장이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돈 벌어봤자 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거나 “장사 잘 해봤자 임대료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할 때의 바로 그 화폐 수익을 제로 혹은 그 이하로 만들어야 실물 경제가 성장한다는 대증요법이다. 게젤은 적정 마이너스 금리를 연 5.2%로 제시하기도 했다.

케인스는 게젤이 유동성 선호라는 개념을 몰랐다고 비판하면서도 장차 마르크스보다는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뿔싸. 케인스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케인스는 저축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저축을 결정하고, 다시 소비가 투자를 결정한다면서 자본의 희소가치를 제거할 때까지 이자율을 끌어내리자고 주장했다. 그렇게 소비를 자극하면 완전고용과 부의 평등한 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낮은 이자율 이론은 결국은 자신이 되살려냈던 게젤의 결론 즉, 마이너스 금리로까지 미끄러져 갔다.

케인스는 이자생활자의 안락사, 투자자의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이자생활자는 안락사했는지 모르지만 실물경제의 활기도 동시에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그들이 없애고자 했던 투기 거품만이 산처럼 솟아 올라 보통 생활인의 미래까지 저당잡히기에 이르렀다. 진정 안락사하고 있는 것은 화폐도 이자도 부도 아닌 것 같다. 케인스와 함께 태어난 거시경제학이야말로 안락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07 [[북 주체농법 성역인가, 비판 봉쇄말라 | 한국은?



북 주체농법 성역인가, 비판 봉쇄말라 | Redian
북 주체농법 성역인가, 비판 봉쇄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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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05일 10:21 오전



『삼국유사』2권에 등장하는 신라 48대 경문대왕, 토머스 불핀치가 엮은『그리스 로마신화』의 그리스 왕 미다스, 유고슬라비아의 폭군 왕은 모두 ‘당나귀 귀’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 이야기 속의 백성들은 한결같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진실을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받았던 것도 비슷하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가 아직도 버젓이

혹시라도 공개적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경우에는 왕들은 파리 잡듯이 백성들의 목을 자르는 폭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동원하거나 길쭉하고 커다란 모자를 이용하여 당나귀 귀를 가릴 수 있었던 왕들도 백성들의 입소문만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담배를 피거나 마늘을 까먹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전환시대 새로운 시대를 말하자’는 기치를 내건 <2007 한국사회포럼>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한국사회포럼의 ‘식량주권대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식량주권과 식품안전」이라는 제목의 토론문을 제출하였다. 전농 측은 내 토론문 중에서 ‘고투입식 농업의 환경파괴 역기능’을 비판한 부분과 ‘고투입식 농업과 식량위기 : 북한의 사례’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였다.

토론문에 대한 일부 삭제 요구는 정부나 국회 주최의 토론회에서도 경험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한국사회포럼은 2001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세계사회포럼은 ‘열린 만남의 공간‘을 추구하며, 소수자의 의견과 다양성을 존중한다. 한국사회포럼의 지향도 세계사회포럼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농업, 하루빨리 고투입식 농업에서 벗어나야

먼저 고투입식 농업의 환경파괴 역기능이 과연 삭제되어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자.

현재 한국의 농업은 농약, 비료, 항생제, 살충제, 석유 등을 다량 투입하고 있어, 식품안전을 위협하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은 1990년~2003년 동안 연평균 12.8㎏/ha의 농약을 사용했다. 한국의 농약 사용량은 전 세계 146개국 가운데 대만, 코스타리카, 콜롬비아에 이어 4위를 기록했으며, OECD 국가 중에서는 1위라는 부끄러운 성적을 받았다.

반면 미국은 2.3㎏/ha의 농약을 사용하여 OECD 국가 중에서 13위를 기록했다. 통계상으로 한국의 농업은 미국보다 5.6배나 많은 농약을 사용하고 있다. 화학비료 사용량(1990~2003)도 422kg/ha로 OECD 국가 중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04년 1년 동안 국내의 축ㆍ수산물 생산에 투입된 항생제 사용량은 1,500만 톤으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축ㆍ수산물 1톤을 생산하기 위해 약 1kg의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의 항생제 사용량은 1톤 당 31g의 항생제를 사용하는 스웨덴보다 32배, 43.7g의 항생제를 사용하는 덴마크 보다 22.8배, 145.6g의 항생제를 투입하는 미국 보다 6.86배, 356g의 항생제가 들어가는 일본 보다 2.8배 더 많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생산성 증대만을 목표로 농약, 비료, 항생제 등을 많이 투입한 결과, 토양과 하천과 바다 등 환경을 파괴하고 식품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김주석 교시 따른 주체농업, 북 식량위기 주 원인 중 하나

다음으로 고투입식 농업이 대량 아사의 참극을 빚은 북한의 식량위기의 원인이었다는 부분을 살펴보자.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 발생한 대규모 식량위기는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과 사회주의권의 몰락,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 비효율적인 집단농업 체제뿐만 아니라 고투입식 농업방식이 그 원인 중의 하나였다.

북한의 농업은 에너지(전기)와 석유 집약적인 구조였다. 북한은 농업 근대화의 기치 아래 수리화, 화학화, 전기화, 기계화 등을 추진하였다. 단위 면적당 화학비료 사용량을 비교해보면, 남한이 1990년에 415kg/ha를 투입했으며, 북한은 1990년에 무려 405kg/ha에 달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사회주의 방식의 무역으로 들여오던 석유공급이 중단되면서 화학비료 사용량이 급감하게 된다. 북한의 단위 면적당 화학비료 사용량은 1994년 157kg/ha, 1996년 45kg/ha로 급격히 감소했다.

한편 김일성 교시에 의한 주체농업도 북한의 식량위기를 촉발한 주요 원인 중의 하나였다. 북한 당국은 산비탈에 옥수수 재배를 위한 다락밭 개간과 밀식재배를 지시했다. 옥수수는 지력을 고갈시키는 대표적인 작물이며, 산비탈의 다락밭은 옥수수 재배, 화학비료의 사용, 밀식재배에 의해 자연재해에 취약한 상태로 변해갔다. 이러한 비판은 『굶주리는 세계』(프랜씨스 라페 외 지음, 허남혁 옮김, 창비)를 통하여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농 측에서 특히 문제를 삼은 것은 “김일성 교시에 의한 주체농업”이라는 표현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부분이 왜 토론문에서 삭제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한국사회포럼에서 북한과 김일성에 대한 비판이 금기와 성역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해명을 들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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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포럼의 원칙과 정신은 무엇인가?

한편 식량주권 대토론회 준비위원회가 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과연 한국사회 포럼의 원칙과 정신에 적합한 방식이었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식량주권 대토론회 2차 준비위원회 회의자료에 따르면 “소시모(소비자시민모임)에서는 송보경 교수를 통해 패널토론과 준비위 참가요청이 들어온 상황이나 ‘쇠고기 문제’와 관련한 상황으로 보류”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 소시모가 정부의 쇠고기 값의 국제적인 비교에 관한 용역을 받아 그 결과를 발표하여 논란을 빚은 사실 때문에 이러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재정 후원과 관련하여 “정재돈 농민연합 상임대표, 문경식 전농의장, 이영수 국장이 농림부 장관을 13일에 면담했다. (농림부는) 취지에 공감하면서 지원방안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과 함께 ‘토론회 제목 변경’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소시모의 토론 참가요청을 보류한 준비위원회가 어떻게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뿐이 아니다. 1차 준비위원회 회의 자료에는 한국사회포럼 식량주권국제토론회 예산이 최소 1,388만원~최대 1,848만원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 농어업 회생을 위한 의원모임에 후원 요청을 하면서 똑같은 예산안이 3,025만원으로 바뀌어 있다.

과연 전농을 제외한 식량주권 대토론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국가톨릭농민회,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낙농육우협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 4-H본부,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전국새농민회, 한국생협연합회, 학부모학생운영협의회, 경실련, 녹색연합, 전국여성연대(준),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등 다른 단체들도 모두 회의 자료와 다른 이러한 예산안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내용 예산안과 대외용 예산안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농림부나 농협에 재정 후원을 요청할 때는 어떤 예산안을 제시하였는지도 궁금하다.







‘식량주권’은 21세기 운동의 새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2007년 한국사회포럼에서 굳이 무리하게 농림부의 후원을 받으면서까지 많은 비용을 들여 쿠바, 베네수엘라, 말리, 일본, 네팔, 비아 깜페시나 등을 초청한 국제 토론회를 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약간의 의문이 든다.

지난 2004년 고려대에서 개최되었던 아시아 민중사회운동 회의에서도 ‘식량주권 국제토론회’를 벌인 적이 있고, 올 4월 29일에도 농수축산신문과 농정혁신포럼이 공동으로 ‘FTA시대 농정의 새 패러다임 – 식생활의 변화와 식량주권’이라는 토론회가 개최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국내 운동단체들이 모여서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에 대한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정의하는 내실 있는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많은 비용을 들여 거창하게 국제토론회를 하는 것보다는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이 농업, 농민, 생태, 환경, 식품안전 문제를 아우를 수 있는 21세기 한국사회의 진보의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Right’를 ‘권리’라고 번역해서 사용한 것은 1864년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청나라에 체류하던 윌리엄 마틴(William Martin)은 1864년, 헨리 휘턴(Henry Wheaton)의 『국제법원리(Element of International Law)』(London, Philadelphia, 1836)를 『만국공법(萬國公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다. 이 책에서 마팅는 ‘Right’를 ‘권리(權利, quanli’)’라고 번역했다.

마틴은 ‘특권(特權, tequan), 주권(主權, zhuquan)’ 같은 번역어들도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sovereignty’가 ‘주권(主權, zhuquan)’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sovereignty(주권)’는 원래 라틴어 ‘superanus(우월)’에서 유래한 말로 프랑스어 ‘souverainet(최고권력)’라는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주권이라는 개념은 정치학이나 국제법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며, 주권의 소재를 둘러싸고도 인민주권과 국가주권 등의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식량주권에 대한 비판적 성찰 필요

아울러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식량, 식품, 식료의 개념도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 게다가 식량주권과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식품에 관한 권리, 다시 말해 식량주권과 굶어죽지 않고 생존할 권리 사이의 관계도 어느 권리가 더 상위개념인지 불분명하다.

그 뿐만 아니라 식량주권과 식량안보 및 식품안전의 관계, 식량주권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전농이 주창하고자 하는 ‘국민농업’이나 ‘통일농업’이 진정으로 21세기 한국사회 운동의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토론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1996년부터 지난 10년간 농민의 길(Via Campesina),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식량과 발전 정책연구소(Food First/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 피앙(FIAN ; the FoodFirst Information and Action Network), 세계 식량주권 포럼(the Forum for Food Sovereignty), 세계사회포럼(WSF), 세계식량기구(FAO)를 중심으로 제기된 ‘식량주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한국 사회운동의 비판적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열린 공간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임금님이 당나귀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객관적이고 당연한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인 것 같다. 대안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2008년에는 한국사회포럼이 소수자의 의견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보다 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8/12/18

"한국의 간디" - 오강남의 함석헌 이야기 : 네이버 카페



"한국의 간디" - 오강남의 함석헌 이야기 : 네이버 카페

"한국의 간디" - 오강남의 함석헌 이야기 | 자유게시판

2018.12.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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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생명, 평화, 민주, 비폭력 등을 위해 힘쓴 ‘한국의 간디’




“하나님은 다른 데선 만날 데가 없고, 우리 마음속에, 생각하는 데서만 만날 수가 있다. 자기를 존경함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믿음이다……그것이 자기발견이다”


들어가며

다석 류영모 선생이 가장 아끼던 제자가 함석헌 선생이었고, 함석헌 선생이 가장 존경하던 스승이 류영모 선생이었다. 함석헌 선생은 다석의 1주기에 다석 선생의 제자들이 다석 선생의 집에 모였을 때 “내가 부족하지만 이만큼 된 것도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두 분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이었다. 우선 11살의 차이였지만 생몰 일자가 거의 같다. 똑같이 3월 13일에 출생하고 돌아가신 날도 류영모 선생님은 2월 3일 저녁, 함석헌 선생님은 2월 4일 새벽으로 몇 시간 차이일 뿐이다. 그야말로 ‘의미 있는 우연’이라고 할까? 두 분 모두 흰 두루마기를 즐겨 입으셨고, 수염을 기르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분의 근본 사상이 여러 면에서 같았다는 사실이다. 두 분 모두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소개되었다. 필자로서는 류영모 선생을 뵙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면, 함석헌 선생은 여러 번 뵙고, 1979년 캐나다 에드먼튼에 살 때 필자의 집에 유하시면서 필자가 근무하던 알버타 대학교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시고 종교학과 교수들과 대담도 하실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은 더 없는 영광이라 생각된다.

대조적인 점은 류영모 선생에 비해 함석헌 선생은 키도 크시고 외모도 출중하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류영모 선생이 생의 후반에서 비교적 은둔적이고 금욕적인 면이 강했던 데 비해 함석헌 선생은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한국 민주화에 직접 참여하시는 등 사회 개혁에도 힘을 많이 쓰셨던 점이라고 볼 수 있다.신비주의 전통에서 즐겨 쓰는 용어를 빌리면 함석헌 선생은 ‘행동하는 신비주의자’라 할 수 있다.

마침 함석헌 선생이 “나는 왜 퀘이커교도가 되었는가”하는 제목의 자서전적인 글을 쓰셨는데, 그것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구성해 본다.

그의 삶

신천 함석헌咸錫憲(1901~1989)은 (여기서부터 존칭 생략) 평안북도 황해 바닷가 용천에서 아버지 함형택과 어머니 김형도 사이의 3남2녀 중 누님 아래 둘째로 태어났다. 5세경 누님이 배우는 천자문을 옆에서 듣고 모두 외었다. 여섯 살에 기독교 계통의 사립 덕일 소학교에 입학하고 긴 댕기머리를 잘랐다. 함석헌에 의하면 전통 종교가 창조적인 생명력을 잃은 형식적 전통에 불과할 때 ‘바닷가 상놈’의 고장으로 알려진 자기 마을에 새로 들어온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기독교 계통 사립 초등학교에서‘하느님과 민족’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홉 살 때 나라가 일본한테 아주 망하고 어른들이 예배당에서 통곡하는 것을 보았을 때 어린 마음에 크게 충격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인해 아주 낙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후일 함석헌은 자기가 “열세 살까지 지금 생각하기에도 순진한 기독 소년이었다”고 고백한다. 14세에 양시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16세에 졸업한 다음,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이것은 나중 의사가 될 목적이었다.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순진성이 많이 없어지고 과학을 배우면서 성경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양고보 2학년 17세에 한 살 아래의 황득순과 결혼했다.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수리조합 사무원, 소학교 선생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해 11월 장남 국용이 출생하고 2년 후 장녀 은수가 태어났다. 그는 모두 2남 3녀를 두었다. 그는 이때를 회고하며 “집에서 2년 동안을 있노라니 운동 이후 폭풍처럼 일어나는 자유의 물결과 교육열 속에서 젊은 놈의 가슴이 타올라 날마다 빈둥빈둥 놀면서 썩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1921년 21세에 다시 학업을 계속하려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4월이라 입학 시기가 지나 어디에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길가에서 집안 형 되는 함석규 목사를 만나, 그가 써주는 편지를 가지고 정주 오산학교에 가서 3학년에 편입되었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류영모가 교장으로 부임하고, 9월 개학식 때 함석헌은 처음으로 류영모를 만나게 되었다. 함석헌에 의하면 그는 류영모의 영향으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처음으로 한국이 필요로 하는 뭔가를 찾기 시작하고, 또 류영모로부터 노자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남을 따라 마련된 종교를 믿기보다는 좀 더 참된 믿음을 요구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서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더욱이 교회가 ‘점점 현실에서 먼 신조주의信條主義’, 교리중심주의로 굳어지게 되자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 되기 시작했다. 오산학교와 류영모의 영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함석헌은 1923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갔다. 그해 9월에 난 대지진으로 도쿄시의 3분 2가 타버렸다. 일본 정치가들은 민심수습책으로 한국인들이 폭동을 계획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한국인 약 6천명이 학살되었다.이를 본 함석헌은 “기독교를 가지고 내 민족을 건질 수 있을까?” 번민하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렇다고 도덕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할 수도 없었다.오래 동안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 형편으로는 교육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에서 일본 유학을 결심한 그 본래의 의도대로 1924년 지금의 교육대학에 해당하는 도쿄 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갔다. 새로 입학한 기쁨에 교회를 찾아가다가 동갑내기1년 선배인 김교신金敎臣을 만나고, 김교신이 우치무라의 성경연구회에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치무라는 오산학교에서 류영모 선생에게서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 당시에는 우치무라가 생존인물인지도 몰랐는데, 김교신을 통해 그가 도쿄에 살면서 성경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과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함석헌은 존경하는 스승 류영모가 언급한 인물이라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우치무라의 무교회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는 별도의 예배형식이 없이 성경을 읽고 십자가에 의한 속죄를 강조하며 해석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함석헌은 “성경이란 이렇게 읽어 나갈 것이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와 기독교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번민에서 벗어나 ‘크리스챤으로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28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오산학교로 돌아와 역사 선생으로 일했다. 그러나 역사 선생이 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역사란 것이 ‘온통 거짓말투성이’일 뿐 아니라 한국 역사가 ‘비참과 부끄럼의 연속’이어서,학생들에게 그대로 가르치자니 어린 마음에 ‘자멸감과 낙심만’ 심어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처럼 과장하고 꾸미려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민에 고민, 결국 자기에게는 세 가지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음을 확인했다. 첫째 한민족으로서 민족적 전통을 버릴 수 없고, 둘째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버릴 수 없고, 셋째 영국 역사가 H. G. Wells의 The Outline of History를 읽고, 그 영향으로 받아들인 과학과 세계국가주의를 버릴 수 없었다. 이 셋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이 셋을 다 살리면서 역사 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된 것인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고난의 메시야가 영광의 메시야라면, 고난의 역사는 영광의 역사가 될 수 없느냐?’하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다시 용기가 나 역사 교수를 계속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한국 역사의 keynote를 ‘고난suffering’으로 보는 역사관이 확립되고 이런 역사관에 입각해서 한국 역사를 재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치무라의 성서연구모임에 참석했던 유학생들 여섯 명이 귀국하여 성서연구모임을 만들고 ��성서조선聖書朝鮮��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했는데, 함석헌은 ‘고난’의 견지에서 한국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글을 연재했다. 이것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라는 명작이 되어 나왔다. 이 책은 나중��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이름의 개정판으로 나왔고, 류영모의 맏아들이 번역하여 영문판으로도 나왔다.

오산학교에 10년간 있었는데, 그때는 스스로 ‘십자가 중심 신앙에 충실한 무교회 신자’였다고 했다. 그러나 본래 교파를 싫어하여 무교회라는 것이 생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무교회도 하나의 교파로 굳어가는 것 같고, 또 우치무라에 대한 개인숭배 태도가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 반감을 느끼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자주적으로 생각을 깊이하면서 예수가 내 죄를 대신해서 죽었음을 강조하는 우치무라의 십자가 대속 신앙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 심정적으로는 무교회주의에서 떠났지만, 그것을 크게 공표하여 부산을 떨 필요를 느끼지 않아 그런대로 몇 년을 지났다.

오산에 있으면서 한국의 구원은 ‘믿음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통해 농촌을 살려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오산에 온 것도 이를 실천하기 위함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36~1937년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점점 가혹해지자 함석헌은 죽을 지언정 이에 맞서야 한다고 하였지만 오산학교 행정자 측은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그는 평생을 바칠 마음으로 왔던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38년 봄 “눈물로 교문을 나왔다.”

교문은 나왔지만 차마 학생들을 떠날 수는 없었다. 오산에 머물면서 일요일마다 학생들을 만났다. 그렇게 2년을 보내다가, 후배 김두혁이 평양 시외에서 경영하던 덴마크식 송산농사학교를 넘겨주겠다고 하여 1940년 그리로 갔다. 가자마자 설립자가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검거됨에 따라 함석헌도 덩달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억울하게 1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오니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1942년 김교신이 ��성서조선��에 실린 「조와弔蛙」라는 우화 때문에 잡지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잡혀가는 사건이 터져, 다시 감옥에 들어가 1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왔다. 이 때문에 나중 독립유공자 자격으로 대전 국립묘지에 이장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출옥 후 다시 농사를 짓고 있는데, 2년 후 해방이 되었다.

함석헌은 이때까지 감옥을 네 번, 그 후로도 세 번 더 들어갔는데, 감옥에 있을 때 얻은 것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는 감옥을 ‘인생대학’이라 부르고, 감옥 속에서 불교 경전도 보고, 노자, 장자도 더 읽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신비적인 체험’도 얻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모든 종교는 궁극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확신’에 이를 수도 있었다. 함석헌은 감옥에서 깨달은 바를 스스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것은 단순히 국경선의 변동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사회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려는 세계혁명의 시작이다. 세계는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국가관이 달라져야 한다. 대국가주의시대大國家主義時代가 지나간다. 세계관이 달라지고 종교가 달라질 것이다. 아마 지금과는 딴판인 형태를 취할 것 아닐까? 종교의 근본 진리야 변할 리 없지만 모든 시대는 그 영원한 것의 새로운 표현을 요구한다. 각 시대는 제 말씀을 가진다. 장차 오는 시대의 말씀은 무엇이며, 누가 받을까? 새 종교개혁이 있기 위해 이번도 새 학문의 풍(風)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역시 과거의 새로운 해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고전古典 연구가 필요하다.그 고전은 어떤 것일까? 서양 고전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다 써먹었다. 그럼 동양 고전을 다시 음미하는 수밖에 없을 거다.막다른 골목에 든 서양문명을 건지는 길은 동양을 새로 맛보는 데서 나올 것이다.”

특히 종교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기성 종교는 국가주의와 너무 깊이 관련되었기에 낡은 문명과 함께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마치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를 말한 디트리히 본회퍼나 2000년 전 예수 탄생 때 동방에서 선물이 온 것처럼 지금도 ‘동방에서 새로운 정신적 선물이 와야 한다’고 한 토마스 머튼을 읽는 기분이다.

해방 후 사람들의 강권에 의해 임시자취원회 위원장이 되고, 이어서 평안북도 임시정부 교육부장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반공 시위인 신의주 학생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 소련군 감옥에 두 번이나 투옥되었다. 밀정이 되기를 요구하는 소련군정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남한으로 넘어왔다. 1947년의 일이다.

월남하여서는 무교회 친구들의 협력으로 일요 종교 강좌를 열어 1960년까지 계속하면서 말로나 글로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젊은이들 사이에 그의 사상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필자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 그 당시 ��사상계思想界��에 실린 그의 글들을 읽었다. 그의 생각이 일반에게 알려지면서 한국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낙인찍고, 그의 무교회 친구들도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세 가지 주된 이유는 그가 십자가를 부정하고, 기도하지 않고, 너무 동양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함석헌은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십자가에서 ‘몸소 지는’ 십자가를 강조한 것이고, 기도도 ‘형식과 인간끼리의 아첨에 지나지 않는’ 공중기도를 삼갈 뿐이라고 하고, 동양 종교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그저 교파적인 좁은 생각’으로 동양적인 것을 배척하는 것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표층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심층 종교로 들어가는 함석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일로 구태여 무교회와 결별할 생각은 없었다. 무교회를 떠난 결정적 계기는 ‘중대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가 오산 시절부터 간디를 알고 오래 동안 간디를 좋아해 간디 연구회를 만들 정도였는데, 동지들 사이에서 간디의 아슈람 비슷한 것을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1957년 천안에 ‘씨알농장’을 만들고 젊은 몇 사람과 같이 지내게 되었다. 이때 ‘도저히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형세는 돌변했다. 친구들이 모두 외면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 그러면서 관념적으로 믿고 있고 감정적으로 감격하던 십자가가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십자가도 거짓말이러라
아미타불도 빈말이러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도 공연한 말 뿐이러라
내가 쟝발장이되어 보자고 기를 바득바득 쓰건만 나타나는 건 미리엘이 아니고 쟈벨 뿐인 듯이 보이더라
무너진 내 탑은 이제 아까운 생각 없건만 저 언덕 높이 우뚝우뚝 서는 돌탑들이 저물어가는 햇빛을 가리워 무서운 생각만이 든다.”

이때를 예견한 것인가? 함석헌은 1947년 월남 이후 지은 그의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심정이 토로하고 있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救命袋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不義의 死刑場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못 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스승 류영모마저도 그를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끝내 그를 내쳤다. 그러나 물론 그에 대한 사랑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다석일지��에 보면 “함은 이제 안 오려는가. 영 이별인가” 하며 탄식하는 등 7~8회에 걸쳐 제자 함석헌을 그리는 글이 나온다. 류영모는 “내게 두 벽이 있다. 동쪽 벽은 남강 이승훈 선생이고 서쪽 벽은 함석헌이다”고 할 정도였다.

심정적으로는 그럴지라도 겉으로는 스승으로부터도 버림받아 홀로 된 그에게 퀘이커가 나타났다. 퀘이커에 대해서는 오산 시절부터 들었지만 ‘좀 별난 사람들’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한국 전쟁 후 구호사업으로 한국을 찾은 퀘이커들을 만나 처음으로 퀘이커 신도가 된 이윤구를 통해 퀘이커를 접하게 되었다. ‘갈 곳이 없는’ 상태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퀘이커 모임에 나갔다. 1961년 겨울이었다. 이렇게 되어 196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퀘이커 훈련 센터인 펜들힐Pendle Hill에 가서 열 달 동안, 비슷한 성격의 영국 버밍엄에 있는 우드브루크Woodbrooke에 가서 석 달 동안 지내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퀘이커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룻밤 뽕나무 그늘 밑에서 자고 가려는 중의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1967년 미국 북 캐롤라이나에서 열렸던 퀘이커 세계 대회에 퀘이커 친우들이 그를 대해 주는 데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느껴서 결국 퀘이커 정회원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수평선너머’를 내다봅니다.
내가 황햇가 모래밭에서 집을 지었다 헐면서 놀 때에 내다보던 수평선,
피난 때 낙동강 가에서 잔고기 한 쌍 기르다 죽이고 울면서 내다보던 수평선,
영원의 수평선너머를 나는 지금도 내다봅니다.”

함석헌은 류영모와 달리 현실참여에 적극적이었다. 1961년 장면 정권 때 국토 건설단에 초빙되어 5·16 군사 정권이 들어오기 전까지 정신교육 담당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0년에는 잡지 ��씨의 소리��를 창간하여 그의 ‘씨 사상’을 널리 펼치고 동시에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는데,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의해 폐간되었다가 1988년 8년 만에 복간되었다. 군사 정권에서는 군사 독재에 맞서서1974년 윤보선, 김대중 등과 함께 민주회복국민운동본부의 고문역을 맡아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느라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이런 민주화 운동을 인정받아 1979년과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퀘이커 봉사회의 추천으로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9년 췌장암으로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 2월 4일 새벽 5시 28분, 87년 11개월 가까이, 날짜로 33,105일을 사시고 세상을 떠났다. 함석헌을 따르며 그의 가르침을 받은 박재순 박사에 의하면, 돌아가시기 전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연장시키려 애쓰셨다는데, 그것이 스승 류영모가 돌아가신 날에 맞추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고 한다. 장례식은 조문객 2 명이 오산학교 강당에 모여 오산학교장으로 치르고 경기도 연천읍 간파리 마차산에 묻혔다가, 2002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자로 건국훈장이 추서되고, 이에 따라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영원한 ‘들사람’에게는 약간 의외의 조치가 아닌가 여겨지는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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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르침



함석헌은 동서고금의 정신적 전통에서 낚아낸 깊은 사상을 바탕으로 일생을 통해 일관되게 생명, 평화, 민주,비폭력 등을 위해 힘쓴 ‘행동하는 신비주의자’, 세간에서 말하는 ‘한국의 간디’라 할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누가복음6:40) 했다. ��도마복음��이나 ��장자��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류영모 선생님의 제자이지만, 어느 면에서 스승이 이루지 못한 부분을 보충했다는 의미에서 ‘청출어남이청어남靑出於藍而靑於藍’의 경우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함석헌의 사상이 어떻게 세계 종교의 심층, 곧 신비주의 전통과 통하는가, 그의 가르침이 어떻게 우리가 살펴본 인류의 정신적 스승들의 사상을 통섭하고 있는가, 몇 가지 예를 들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는 경전을 ‘끊임없이 고쳐 해석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경전의 생명은 그 정신에 있으므로 늘 끊임없이 고쳐 해석하여야 한다.…… 소위 정통주의라 하여 믿음의 살고 남은 껍질인 경전의 글귀를 그대로 지키려는 가엾은 것들은 사정없는 역사의 행진에 버림을 당할 것이다. 아니다, 역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가 스스로 역사를 버리는 것이다.”

종교적 진술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정통주의나 근본주의적’ 태도는 종교의 더욱 깊은 뜻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려면 문자적으로 읽을 수 없다”고 한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둘째는 ‘자라나는 신앙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신앙은 생장기능生長機能을 가지고 있다. 이 생장은 육체적 생명에서도 그 특성의 하나이지만, 신앙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신앙에서 신앙으로 자라나 마침내 완전한 데 이르는 것이 산 신앙이다.”


“옛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는 낡아 빠진 종교다. 우리들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말하는 종교는 낡아 빠진 종교이다. 신학적인 설명을 강요하기 휘해 과학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종교도 역시 낡아 빠진 종교다.”

자라지 않은 신앙은 죽은 신앙, 생명이 없는 신앙이다. 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다시 바람(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결국에는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도마복음』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의식구조가 변화를 받아 점점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는 ‘하나님은 내 마음 속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데선 만날 데가 없고, 우리 마음속에, 생각하는 데서만 만날 수가 있다.
자기를 존경함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믿음이다……그것이 자기발견이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가장 ‘본질적인 나’라는 뜻에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참 나라 할 수 있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참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발견을 일반적으로 일컬어 ‘깨침’이라 한다. 심층 종교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


넷째,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나는 역사적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믿는 것은 그리스도다. 그 그리스도는 영원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 그는 예수에게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내 속에도 있다.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와 나는 서로 다른 인격이 아니라 하나라는 체험에 들어갈 수 있다. 그때에 비로소 그의 죽음은 나의 육체의 죽음이요, 그의 부활은 내 영의 부활이 된다. 속죄는 이렇게 해서만 성립된다.”

놀라운 통찰이다. 


예수는 자기 속에 있는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 의식Christ-consciousness임을 발견한 분이다. 

우리도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예수와 같은 그리스도 의식에 동참하여 그와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 

1945년에 발견된 ��도마복음��을 비롯하여 심층 종교의 기본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사랑이 이긴다’는 가르침이다.

“평화주의가 이긴다.
인도주의가 이긴다.
사랑이 이긴다.
영원을 믿는 마음이 이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세계 거의 모든 종교 신비주의 심층 전통에서는 나와 하느님이 하나임을 말함과
동시에 나와 다른 이들, 다른 사물들과도 결국 일체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이다. “어떤 경우가 천박한 이해인가? 나는 답하노라. ‘하나의 사물을 다른 것들과 분리된 것으로 볼 때’ 라고. 그리고 어떤 경우가 이런 천박한 이해를 넘어서는 것인가? 나는 말할 수 있노라.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있음을 깨닫고 천박한 이해를 넘어섰을 때’라고.”


여섯째는 ‘너와 나는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나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과 같이 있다. 그 남들과 관련 없이 나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와 남이 하나인 것을 믿어야 한다. 나·남이 떨어져 있는 한, 나는 어쩔 수 없는 상대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나·남이 없어져야 새로 난 ‘나’다. 그러므로 남이 없이, 그것이 곧 나다 하고 믿어야 한다.”

함석헌은 “내 속에 참 나가 있다”, “이 육체와 거기 붙은 모든 감각·감정은 내가 아니다”, “나의 참 나는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더러워지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나와 만물이 하나임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가히 사사무애事事無礙의 경지다.

일곱째는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좁아서는 안 되겠지요. 우주의 법칙, 생명의 법칙이 다원적이기 때문에 나와 달라도 하나로 되어야지요. 사람 얼굴도 똑같은 것은 없지 않아요? 생명이 본래 그런 건데, 종교와 사상에서만은 왜 나와 똑같아야 된다고 하느냐 말이야요. 생각이 좁아서 그렇지요. 다양한 생명이 자라나야겠는데……”

이사야나 아모스만이 하느님의 예언자가 아니라 동양의 공·맹, 노·장도 모두 다 하느님의 예언자다.

궁극적 실재가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말이나 문자로 표현된 것의 절대적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궁극 실재에 대한 우리 인간의 견해見解는 그 타당성이 결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견해가 이럴 진데 나의 견해만 예외적으로 절대로 옳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자연히 다원적 사고를 인정하게 된다.거의 모든 심층 종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런 몇 가지 예만으로도 함석헌의 사상이 류영모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세계 신비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아는 데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오늘 한국의 종교들이 거의 표층 종교 일색으로 변해 있는 상태에서 이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된다.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나 도로테 죌레Dorthee Soelle가 미래의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심층적인 종교, 신비주의적 종교일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류영모·함석헌의 사상에서 미래 종교의 광맥을 보는 듯하다 하면 과장일까?*


#함석헌 #오강남 #경계너머아하 #류영모


2018/04/21

오강남. 도덕경 - 개정판, 원문 영어 번역문 수록

알라딘: 도덕경 - 개정판, 원문 영어 번역문 수록


 늙은 선생. 새창으로 보기

가넷 ㅣ 2016-01-16 ㅣ 공감(3) ㅣ 댓글 (0)





  어렸을 적에는 노자를 신선으로, 노자가 남겼다는 도덕경의 신비한 비밀을 간직한 서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매체의 영향 탓이였는지는 모르겠다.  오강남 역본을 고르게 된 건 2009년도인데 막 대학을 졸업하고 난뒤에 취업 준비 내지는 시험준비로 괘나 불안한 당시였는데, 구입하고는 잠시 읽다가 덮어두었다. 영 내키지 않았던 탓이다.  기억으로는 오강남 역본의 장자를 읽고 나서 세트로 구입해버렸던 것 같은데, 우화라서 재미있기라도 한 장자와는 달라서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 이제야 일독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 예전에는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에서야 그나마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81장으로 이루어진 이 도덕경(물론 다양한 노자가 있다는 건 안다)은 하나 다 내게 들어온 건 아니다. 취사 선택하며 마음을 다졌다.  종종 이해못할 구절들이 많았고... 아니, 거의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역자의 해설이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냥 억지로 갖다 붙힌 느낌도 없지 않았고, 그냥 짜증나는 잔소리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은 건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간다는 것이었다. 알듯 말듯한 이야기지만,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노자도덕경하상공장구>를 빌려왔다. 바로 읽을까 했지만, 조금 기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나가기로 했다. 뭐 급할 것이 뭐가 있나.  그 외에도 해제주의자의 도덕경인 <사유하는 도덕경>, 왕필의 주,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노자>, <백서 노자>를 구입해두었다.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도 구입해두었다. 이건 태학사에서 나온 두 권이 있는데 책무덤에 같혀 버려서 찾을 길이 없다. 나중에 정리할 때나 볼 수 있겠지.  이 책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는 것 같지만, 일단 초심자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라서 구입했다. 강신주 박사의 노자에 대한 이야기는 일전에 지식인 마을이라는 총서에서 나온 <장자&노자>를 통해 접한 바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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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집중과단순함  ㅣ 2015-07-23 ㅣ 공감(1) ㅣ 댓글 (0)

수년 전 알라딘에서 오강남 풀이 도덕경을 구입하고 읽고서는 구절구절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아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볼 정도로 애장도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본문과 해설을 같이 보다가 나중에서 본문만 보는 게 좋더군요. 그 이유는 오강남 저자의 해설이 기독교과 도덕경을 관련지으려는 의도가 곳곳에서 보였기때문입니다. 물론 여러 참고문헌을 참조하고 저자의 생각을 추가한 결과이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견강부회식 해석이더군요. 전체적으로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여러 지은이의 도덕경을 보기도 했는 데, 돌이켜보면 제대로 된 해설은 많지 않았습니다. 동양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도덕경을 서양서적의 해석을 참고하는 문제와 저자들의 한자중국문화의 이해부족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관심있는 분들은 동양문화와 철학 전반에 대한 깊이있는 공부와 한문해석을 통해 제대로된 도덕경의 의미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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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인간의 다면성 새창으로 보기

밍교 ㅣ 2014-07-26 ㅣ 공감(0) ㅣ 댓글 (0)

우리 사회는 냉소의 시대이다.



최악 속에서 힘겹게 차악을 골라야하는 상황들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최선이 없다며 냉소하기 시작했다.



러셀이 한 말처럼 힘이 없는 자는 냉소한다.



그리고 냉소하기 때문에 더 힘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지나치게 똑똑하고 냉소적이고 무력해졌다.







과연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반 시민이 냉소하지 않고 참여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원하는 지향을 향해 촉구'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촉구하는 여론을 형성하여 그로써 지배 세력을 압박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후 작동해야 할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니, 냉소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나 역시 냉소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지친다.



누구나 뭘 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다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대다수는 ‘아직 죽지 않은 자’로서 계속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주류의 질서를 선택하고,



여전히 다른 삶을 꿈꾸는 소수의 사람들은 주변의 작은 삶들을 긍정하며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골몰한다.



전자는 성공하지 못하고 그저 ‘아직 죽지 않았을 뿐’이고,



후자는 그 미덕과 더불어 선명한 한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나는 더 이상 생각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런 맥락 속에서 도덕경을 읽으며, 나는 노자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향한 지향을 보여주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노자는 두 가지 길 중 첫 번째 길을 제시하며, 아직 죽지 않은 자로서 영원히 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탁월하게 보여준다.



그 길이 옳건 그르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존재하기 때문에 도이고, 그렇기 때문에 행해야 하는 것이다.







천지는 불인하고, 세상은 이미 이러하고, 사람들은 선악의 너머에 존재한다.



이는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지만, 나의 냉소에 하나의 근거로 더해질 뿐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책들은 일종의 칼날같은 것이라면,



나의 세계관을 깨트려주는 칼이야말로 나에게 소중하고 유용한 연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 칼이 나와 결이 같아 그저 스며들기만 한다면 그것은 그저 자기 확인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논어는 모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세상을 보는 방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 속에는 공자가 원하는 세계가 있었다.







도덕경은 노자의 뛰어난 우주관과 정확한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 칼끝이 제국의 정당화로 향한다.



그 속에는 노자가 원하는 세계가 없다.



그저 이미 존재하는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사투가 들어있다.







노자를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절대자가 다스리는 세계, 그리고 그 절대자마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치열한 세계에서 그의 글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글이 지금 나에게 어떤 생명력을 지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제국에 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덕경은 생생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고,



제국의 너머를 바라는 누군가에게는 권모술수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냉소와 무기력을 넘되 처세로 나아가고 싶지는 않은 나에게, 노자는 힌트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의 변화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인간의 본질이란 얼마나 견고한 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찰할 줄 아는 인간의 지성 역시 얼마나 유구한 지에 대해 좀 더 깊은 고찰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문과 함께 참고로 본 이 책은 나와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주면서,



형이상학적인 왕필식 해석을 하는데, 그 점이 참고는 되었으나, 그렇게 설득력 있진 않았다.







특히 한 장에서 여러 모순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오랜 세월 계속된 편집의 이유인지, 노자 본연의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점에 대한 명확한 생각없이 그 생각들을 연결해버린다.







참고는 되지만, 역시 원문을 읽는게 좋을 것이고,



원문을 읽지 못한다면 번역문 정도를 참고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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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오강남] 새창으로 보기

그랜드슬램  ㅣ 2013-01-07 ㅣ 공감(0) ㅣ 댓글 (0)













상선약수 (上善若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노자님의 말씀을 압축한다면 상선약수라고 말할 수 있다.



수 백,수 천년된 고전이 현실의 사람에게 보약이 되고 제대로 된 길을 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지금 나도 정확한 답은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조금씩,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어제보다 성숙해진 마음과 행동,실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책을 읽는 이유이자 고전을 독서하는 이유다.







하루 아침에 깨닫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가장 휼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낮은 데를 찾아가 사는 자세,



심연을 닮은 마음"







나도 물처럼 살고 싶다.



흐르는 물처럼 잔잔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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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aider ㅣ 2012-06-26 ㅣ 공감(1) ㅣ 댓글 (0)

사실 이 책은 읽은지 꽤 된 것인데, 그 누가 老子의 道德經을 한 번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도 수시로 꺼내 한 구절씩 읽으며 그 깊은 뜻을 새기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정작 노자의 의도와는 자꾸 멀어지는 느낌이다.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구절들과, 시대를 넘어 그 상황에 맞게 재해석되기를 반복하는 고전 중의 고전, 노자. 물론 나의 한자 실력이 노자만큼 된다면 그와 직접 대화하면서 질문하고 잘못 해석한 부분에 대해 교정을 받겠지만, 불행히도 노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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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  ㅣ 2011-06-15 ㅣ 공감(1) ㅣ 댓글 (0)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것보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스럽다.”- 비트겐슈타인 (22쪽)



성인(聖人) ? 도덕경에서 약 30번 정도 사용되며, 어원적으로 귀가 밝은 사람, 귀가 밝아 보통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잘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27쪽)



중국에서 최고의 인격신으로 모시는 하늘님(上帝) ?37쪽



“말이 많으면 좋지 않다”고 가르치는 것은 도덕경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훈이다.(41쪽)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은 도의 최고 상징이다.(52쪽)



부유하든 가난하든 재산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인생의 더 깊은 면에 눈을 돌려 보지 못하고 평생을 그저 돈 생각만 하다가 마쳐 버릴 위험이 있다.(59쪽)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인간이 혼魂과 백魄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혼은 정신적인 면을 관장하고, 백은 육체적인 기능을 주관한다고 보았다. 몹시 놀란다는 표현으로 ‘혼비백산’이란 말이 있지만 문자 그대로 혼이 날아가고 백이 흩어지면 사람은 죽어 버린다.(62쪽)



동양에서는 예부터 오행五行의 원리에 따라 오복이니 오륜이니 오관이니 하는 것처럼 많은 것을 다섯가지로 분류하는 습관이 있었다. (69쪽)



토마스 아퀴나스-신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우리가 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뿐(78쪽)



아놀드 토인비-종교라 했을 때 내가 뜻하는 것은 …. 자기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100쪽)



도덕경은 도道를 체득함으로 자유를 구가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德을 갖도록 가르쳐 주는 말씀經이다.(107쪽)



종교란 궁극적으로 구원을 목표로 하는데, 구원이란 온전함(wholeness)을 회복하는 일이다.(114쪽)



노자,장자에서는 이 ‘혼돈’을 모든 것의 시원으로 본다. 통전적, 통일적 실체로서 모든 가능성을 그 속에 머금고 있는 ‘완전한 무엇’이다.



사회의 통념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삶의 깊은 의미를 찾아 이를 추구하는 참삶(how to live)의 문제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오로지 사회에서 떠받드는 고루한 윤리체계를 비판 없이 받아들여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만 매끈하게 꾸미려는 처신(how to behave)의 문제가 주관심사가 되어 버린 사회.(181쪽)



구슬처럼 영롱한 소리를 내려 하지 말고 돌처럼 단단한 소리를 내십시오(184쪽)



임금이 자기를 과인寡人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부름(186쪽)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진리는 역설”이라고 했다. 진리는 상반되는 듯한 두 명제를 동시에 포괄하기 때문이다.(194쪽)



아힘사 ? 간디를 통해 유명해진 이 말의 본뜻은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음’이다. 정치적인 용어로는 ‘비폭력’, ‘무저항’이라고 한다.(202쪽)



자기 주장, 자기 줏대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섞일 수가 없다. 자기를 진정으로 비운 사람만이 어느 누구와도 진정한 의미의 교류가 가능하게 된다.(204쪽)



신학자 니버의 기도

“하느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시옵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고,

그리고 이 두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208쪽)



기독교 신자 가운데 특히 열성적인 교파 신도를 만나도 자기가 세상의 모든 진리는 독점하고 있는 양 무슨 질문이 나와도 척척 박사처럼 잘도 받아넘긴다. 이런 식으로 미리 다듬어지고 학습된 말재주에 능하다고 정말 달변이라 할 수 있을까?(212쪽)



17세기 유럽에서는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내면 세계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에 대항하여 내면 세계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하는 사상가가 나오게 되었다. 대표적인 이가 파스칼, 몽테뉴, 존 던, 칸트 같은 사람이다.(221쪽)



중국에서는 도가道家와 도교道敎를 구별한다. 도가에서는 생사에 집착함이 없이 자유스러운 참삶(eternal life)을 주된 가르침으로 삼는 반면, 도교에서는 보약,금단,부적,요술,방중술 등 어떠한 수단을 쓰든지 장생불로(長生不老)하고 될 수만 있으면 신선이 되어 죽지 않는 불멸을 이상으로 가르친다는 점이다. (233쪽)



어느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간을 소비하면서 죽어 가는 것이다.(234쪽)



도와 덕은 물론 본질적으로 같지만 도가 본체론적인 면을 가리킨다면, 덕은 도에서 나오는 내재적 창조력이나 그 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도가 개인이나 개체 안에서 작용할 때 그 힘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여 덕이라 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237쪽)



남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는데도 뭔가 허전하고 모자란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우리가 이렇게 내면적인 세계, 도에 접하기 전에는 영원에의 목마름이 충족될 수 없다. “주님,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 안주하기 전에는 안정을 찾을 수 없습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242쪽)



덕德-도에 입각하고 도를 터득했을 때 얻어지는 신선하고 활기찬 생명력, 도의 활성화에서 나오는 약동적인 힘을 뜻하는 것.(250쪽)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知者不言,言者不知)-도덕경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많이 인용되는 구절 가운데 하나(257쪽)



도데체 도를 따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며 정확하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구체적 첫걸음이 바로 근검 절약.(273쪽)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생선을 구울 때는 우선 칼로 배를 따서 내장을 뺀다든가 뼈를 추린다든가 하지 않고 통으로 굽는다.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들쑤시지 않는다.익을 때까지 가만히 놓아 두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완전히 내팽개쳐 두는 것은 아니다.(275쪽)



고대 사람의 생각으로는 세상에 사람을 못살게 하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움직이는 귀신이요, 다른 하나는 보이는 세계를 다스리는 위정자였다.(277쪽)



큰 나라는 강의 하류…….유가에서는 하류를 천히 여기고 상류를 좋아하는 데 반해 도가에서는 하류를 상류보다 좋게 여긴다.(281쪽)



책을 한 권 쓸 때 ‘360쪽짜리 책 한 권’이라 생각하는 대신 ‘하루 한 쪽’ 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일이 더 쉬워질 수 있다.(289쪽)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일만은 이루고 말리라는 강한 집념과 집착 때문에 실패했을 경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감과 실의에 빠질 수 밖에 없다.(295쪽)



도덕경에서는 루소를 비롯한 자연주의 정치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국민을 교육한다는 것은 결국 국민이 본래 가지고 있던 순박한 본성을 후패케 할 뿐이라고 한다.(299쪽)



불초不肖는 ‘같지 않다’는 뜻인데, 확대된 뜻으로 불초소생이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부조의 덕망이나 유업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미흡함, 똑똑지 못함, 쓸모없음 등을 가리킨다.(309쪽)



간디에게 많은 영향을 준 톨스토이가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마태5:30)고 한 것을 가장 중시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사실이다.(315쪽)



조셉 캠벨에 의하면 위대한 정신적 영웅은 이렇게 일반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refusal to return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324쪽)



사실 진리는 단순하고 담백한 것이다.(324쪽)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있으면 손가락에 우리의 전적인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 아니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보아야 한다. 상징 자체에 붙들리는 것이 아니라 상징의 일깨움을 따라 상징이 상징하는 바를 알아본다는 것이다.(324쪽)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합니다.(知不知上)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하는 것은 병입니다.(不知知病) (327쪽)



공자님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하라.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논어2:17)라고 했다.(327쪽)



도덕경에서 말하는 용기란… 의연함과 침착함을 유지함으로 상대방을 압도하고 상대방 스스로가 더 이상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336쪽)



긴 안목으로 보면 하늘이 그렇게 엉성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방의 잘잘못을 가지고 당장 너무 조급하게 반응하지 말라. 결국은 하늘의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될 것이라는 하늘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337쪽) 사필귀정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죽음보다 더 큰 가치, 자기가 믿기에 궁극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할 각오가 되었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경우이다.(339쪽)



도가적 입장에서 보면 살아가는 데 어떤 목표를 정하고 삶을 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행복은 나비와 같다…..행복은 고양이 꼬리에 달린 방울과도 같다.(345쪽)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353쪽)



깊은 원한은 화해하더라도 여한이 남는 법입니다.(358쪽)



기도는 하늘이 남보다 나를 더 잘봐주기를 바라서 드리는 주문이나 편법이 아니다. 어떤 면책권이나 치외 법권적 특권을 얻어 내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기도는, 넒의 의미의 종교는 내가 하늘의 뜻에 내 뜻을 맞추고 하늘의 길에 내 발걸음을 맞추기 위한 자기 낮춤, 자기 비움의 작업이다.(361쪽)



진리의 말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한다.(368쪽)



진리의 말은 변론이 아니라고 한다. 양쪽을 다 같이 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사물을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분명히 딱 쪼개고 끊는 논리적인 변론일 수가 없다. 변론을 잘 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자기가 가진 제한된 생각이나 고정 관념을 평소 달달 외우고 있던 틀에 맞추어 독단적으로 그리고 일사천리로 주장하는 일이다…. 어느 종교에서 열성파 신자가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할 성서 구절만을 달달 외워서 타교파 사람을 공박하는 따위와 같은 것이다.한 가지 생각, 곧 자기가 가진 생각만 옳고 다른 생각은 모두 틀렸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우선은 무지의 특권인 확신을 가지고 힘차게 말할 수 있다. (369쪽)



사랑이나 진리 같은 정신적인 것은 나누어 주면 줄어드는 산술 법칙이 아니라, 나누어 주면 줄수록 오히려 더 많아지는 역설의 법칙이 적용된다.(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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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다 ㅣ 2011-06-14 ㅣ 공감(3) ㅣ 댓글 (0)

이 글을 쓰기 전 몇 개의 리뷰를 읽어보았다. 대부분은 오강남의 도덕경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더러는 노자의 사상을 왜곡해서 한심하며,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평가도 있었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동양 철학을 전공하는 전문가도 아니고 이 책에서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생각도 없기 때문에 이 책이 도덕경을 180도 왜곡 했다 한들 나는 그것을 별로 중요한 관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도덕경을 하나의 자기 계발서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사상에 관련된 책을 이번에 처음 읽어 보았다. 나는 철학에 철자도 모르는 사람이며, 노자에 대해서도 역시 전혀 알지 못했다. 오강남의 도덕경 81장을 다 읽은 지금 역시 도와 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겠다. 분명히 다른 여러 가지 번역본에 비해 오강남의 도덕경은 일반인이 읽기 쉽게 집필 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내가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지 쉽게 마음속으로 다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어떠한 리뷰' 에서 말하듯이 대통령이나 왕이 아닌 그냥 '평범한 일반인' 에게 전혀 쓸모 없는 것이냐? 그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려한다.





나는 공대생이다. 지금 현재 학생이라는 나의 신분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노력'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력이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짧은 인생이지만, 지금까지 경험해본 바로는 '노력'은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근심에 쌓여 있으면 어떠한 노력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도덕경'을 매우 높게 평가 하고 싶다.





나는 성격이 근심이 많고 대인관계를 썩 잘 해내지 못한다. 겉으로 봐서는 사람들과 매우 원만한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항상 불안하고 불편하고 욕심이 많다. 그러던 중 등교 길에 '도덕경' 을 읽기 시작했다. 신기 하게도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면 마음이 매우 편안해지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음' '무소유'에서 비롯되는 마음은 결코 아니었다. '도뎍경' 에서도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마라", "완전한 비움"처럼 무소유와 비슷한 말이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그것과는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일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왠지 다음과 같은 것을 갖게 되어서 인지 싶다. 바로, 항상 상대적인 평가로 고통 받고 남들보다 우위서지 못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나 자신을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잣대를 갖게 된 것이다. 이 것을 어떠한 구절에서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나는 언제나 이러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외유내강' 이라는 중국인들의 가치관이 도덕경에서 출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81 개의 전장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도덕경은 왕, 재상을 위해 쓰여진 것 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에게는 전혀 필요 없거나 혹은 안 읽는 것보다 못한 것 같은 그러한 구절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걸러가며 읽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시대가 바뀐 만큼 적용할 수 있는 문장도 바뀌었으니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내 짧은 견해를 늘어놓았고, 이제 결론을 맺어야 할 것 같다. 분명히 도덕경 이라는 밥상에는 여러 반찬 들이 많이 차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얼마나 자신에 게 필요한 영양가 있는 반찬을 골라서 먹느냐 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반찬은 안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도덕경에는 매우 영양가 있고 주옥같은 반찬들이 곳곳에 많이 차려져 있다는 것이다.





'물'과 같이 되라. 물은 누구와도 겨루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낮은 곳으로 흘러갈 뿐이다. 하지만 물은 만물을 존재하게 한다.







총 : 2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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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비워 나를 완성시키는 도덕경 새창으로 보기

doorumgil  ㅣ 2010-02-06 ㅣ 공감(2) ㅣ 댓글 (0)

 도가사상의 원조인 노자의 저술로 알려진 도덕경, 그냥 '무위자연'으로만 배웠던 노자를 알기위해 도덕경을 일독하였다. 많은 도덕경 번역서가 있지만 읽기 쉽게 풀어쓰고 분량도 적당한 현암사판 도덕경을 선택하였다. 



  도덕경이 시종 강조하는 것은 무위와 비움이다. 없음으로 있음을 만들고, 하지 않음으로써 함을 만드는 역설의 철학이다. 이는 다시말해서 있음과 함의 주류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의 문제점을 노자는 부국강병을 달성하기위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예법을 강조하는 인위적인 작위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보았다. 애초부터 주류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탄생한 소수자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노자의 핵심적 역할이자 한계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진보정당이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현실문제에 대한 환기의 역할을 하지만 수권정당으로는 어려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이 든다



 5천자 정도의 간결한 격언집으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해석하기에 따라 의견이 분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가령 36장의 '오므리려면 일단 펴야합니다. 약하게 하려면 일단 강하게 해야 합니다. 폐하게 하려면 일단 흥하게 해야 합니다. 빼앗으려면 일단 줘야합니다.' 라는 부분은  법가에서 정적을 치는데 필요한 정략적 음모로 읽힌다. 이구절은 원래 만사 흥망성쇠나 생주이멸을 뜻하는 것이라 역자는 말하는데 그 본질적인 면보다 세상사람들에게 권모술수의 처세술로 더 많이 알려진 것이다. 도덕경을 우리가 그동안 익숙한 자구해석이나 이분법적 사고로 바라볼때는 인생의 처세술이나 뜬구름 잡는 명상록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 같다. 내용을 자구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하나의 <도>라는 이미지로 크게 받아들여 깨우쳐야 하는데 쉽지않은 일이다.



 도덕경이 이야기하는 큰도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동안 남들과 비교하며 욕심과 소유욕의 굴레에서 스트레스를 받던 나를 돌아보고 무언가 계속 서두르며 눈에 보이는 양적인 쌓임을 성취라 자족하던 조급한 발걸음을 한박자 늦춰야 겠다는 고민을 잠시나마 하게된건 도덕경을 읽은 후 큰 소득이었다.



더불어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 교수가 번역하여 그런지 성경구절과 비교하여 풀이한 구절이 여러곳에 나열되어 있는점이 특징이다. 산은 하나인데 어느 방향에서 오르느냐에 따라 내용과 과정이 달라진다는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만드는 부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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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는 도덕경 새창으로 보기

스파피필름  ㅣ 2009-05-30 ㅣ 공감(1) ㅣ 댓글 (0)

도를 도라 하면 더 이상 도가 아니라는 그 유명한 도덕경의 구절을 난생 처음 읽어봤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는 순간 사랑이 아니게 되는 것처럼 이라고 농담을 해본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마음이 어지럽다. 단순하고 명료한 무언가를 생각하고 집중하고 싶은데 딱히 그럴만한 대상이 없다. 한마디로 마음 둘 곳이 없구나. 하여 잡은 이 책.. 총 81장으로 되어있고 한 장당 서너 페이지로 하루에 한장씩 읽어도 마치 마음이 정화되는 것처럼 차분해진다. 무위, 상선약수와 같이익히 알고 있는 개념도 글을 통해 다시 확인하니 새롭다. 살아가면서 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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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노자에게 듣다 새창으로 보기

minerva ㅣ 2009-05-17 ㅣ 공감(1) ㅣ 댓글 (0)

  노자에게 듣다, 듣기가 어려운 부분은 살면서 배워 나가기로 하고, 일단 듣는다. 노자는 시적인 은유로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 가르침을 준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서 함을 발견하고, 없음의 쓰임에서 있음의 이로움을 역설하며, 하고서도 드러내려 내세우지 않는 깨달은 자의 자세를 말한다.





  1장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이 하늘과 땅의 시작이며

  이름이 있는 것은 모든 것의 어머니.

  항상 욕망이 없다면 그 신비스러움을 볼 수 있으며

  항상 욕망이 있다면 그 분명함을 볼 수 있다.

  이 둘은 한 근원에서 나왔으나 이름만 다를 뿐,

  그 같음을 어둠이라 부른다.

  어둠 속의 어둠이어라 모든 신비의 문이여!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 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덕경 1장은 많은 흥미로움을 주는데, 우선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뜻은 무엇인가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말로 표현되면 이미 도를 떠나서 다른 무엇이 된다는 뜻 같기도 하다. 나는 ‘도’를 도 말고도 다른 것으로 대체해 본다. 내가 이루려는 목표, 사랑 등으로. 문맥이 통하기에 더 생각해 본다. 우리는 쉽게 사랑을 말하고, 쉽게 자신의 꿈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말로 설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게 노자의 입장이다.





  도를 꿈을 사랑을 한 가지로 보는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일상 생활 속에서 이룰 것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셋이 함께 가야 행복할 텐데, 욕심을 낸다. ‘부를 수 있는 도는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임의로 이름을 지어 부르는 모든 대상들 또한 유한자로서 영원하지 못하다. 개체를 반복해서 이어가더라도 더 이상 그 이름은 아닌 것. 이름지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한정하는 것으로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기 위해 도를 행하되 그 자체로서 충만하고, 이름을 짓되 그 자체로서 충만하면 될까? 이름을 짓기 시작한 때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욕망이 없고있음으로 하여 신비로움과 분명함을 볼 수 있다. 흔히 빛을 경외하며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빛을 빛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둠이다. 그런 논리로 욕망이 없기 때문에 신비로움을 볼 수 있고, 반대로 욕망이 있기 때문에 분명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둘의 근원은 어둠, 어둠 속의 어둠, 그것은 모든 신비의 문이라 일컫는 것에서 밝은 면과 그것을 그것답게 하는 어둠을 함께 보는 눈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가 인생무상으로 흐르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길을 걷는 성인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은 노자의 사상이 그만큼 원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로서 오히려 우리들에게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이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루려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정도로 해야 한다, 그러니 그런 것을 꿈꾸지 말라, 아니 말하거나 부르기 전에 이런 전제 정도는 알고 출발하라. 다소 어감이 딱딱해졌더라도 이해하시길. 아마도 노자는 좀 더 부드럽고 자상한 면모를 지녔으리라.





  오히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무위자연을 역설하고 있는 노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시대를 앞서 산 철학자일 것이다. 전편에 흐르는 마음결로 사상은 철학자, 절대자, 군주,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까지도 들여다보는 혜안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위자연은 아마도 모든 것을 끝까지 열심히 해낸 자의 역설 같이 느껴진다. 다 하고 나서도 그 다함을 드러내지 않는 태연함, 속속들이 체험하고 나서 느끼는 여유로움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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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듣기. 새창으로 보기

누구개 ㅣ 2009-01-05 ㅣ 공감(1) ㅣ 댓글 (0)

아담한 사이즈와 읽기 쉬울 것 같은 편집(대중적으로 씌여졌음에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때문에 서점에 가면 늘 현암사의 시리즈들을 훑어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중에 읽은 것은 두세권에 불과하지만.



주말에 술먹고 하루 신세를 진 친구 방 한 구석에 그 현암사의 도덕경이 꽂혀 있었다. 빨간 책들 사이에 외롭게 있는 것같아 기왕 진 신세라는 생각에 '안 읽으면' 달라고 했다. 선듯 내주는 친구.

고마운 친구^^.



긴 휴가를 맞아 다시금 읽어 봤다.

대학때, 그리고 사춘기 시절 도가와 관련한 책들을 간혹 읽곤 했었다.(이 책도 서점 한구석에 앉아서 다 읽었었다.) 초탈한 도인들을 사뭇 경외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면서. 다시 읽어 본 도덕경, 정확히는 주석자가 다시 '읽어준' 도덕경은은 예전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단지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는 '최소한 도는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닌 것'은 일러준다'는 식의 말장난에 가까운 이해를 위한 책읽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첫번째로 주석자가 그 뜻을 우리 삶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낸 것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말을 위한 말,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어야 한다는 도덕경의 가르침을 도덕경의 해설에서 부터 실천하고자 노력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만큼 그 참 뜻을 밝히기 위해 이전의 다양한 해석들을 읽고 읽었을 것이리라. 또 그 문구를 언어적 해석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입하여 성찰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지식과 경험이 일천한 나는 도덕경은 물론 해설까지도 짐작할 뿐이지만 말이다.)



두번째는 10여년이라는 세월이 읽기의 깊이를 다르게 해주었다는 생각이다. 그간 얼마나 지혜로워지고 얼마나 지식이 쌓였겠는가. 하지만 그간 부딧친 사람들, 사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만난 (알지 못했던) 나 자신들. 그런 경험과 혼란들이 다시 읽는 도덕경을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믿는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언어와 대상과의 인식론적이고 본질적인 간극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대상을 명명하기 위해,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 사고의 관성이거나) 만들어진 이분법적이고 정태적인 언어적 시스템과 그 기반인 인간의 일차원적인 욕망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고자 함이 아닐까?



옛 선인들의 깊은 통찰과 본질에 대한 탐구는 시대를 초월한다. 아마도 그것은 죽어서 쌓여있는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직관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인간 본질/자연 그 자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일테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도덕경. 두고 두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괜한 흥분에 '장자를 읽다'라는 책까지 사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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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2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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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새창으로 보기

Jeanne ㅣ 2007-06-05 ㅣ 공감(3) ㅣ 댓글 (0)





학교 다닐 때 쓴 것.



(당연히 잘 쓴 글은 못되고)  재밌다.



난 참 재밌는 아이야... ^__^







비교가 맞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언이 인생에 대한 각론이라면 전도서는 총론이라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비교하자면 공자의 논어는 잠언에 해당하고 노자의 도덕경은 전도서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두 사상이 거의 동시대 즉 춘추전국 시대의 어지러운 사회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대책’을 제시한 차원의, 같은 외부적 동기에서 나온 사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본서를 읽으면서 순수하게 묵상하게 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머리가 상당히 복잡해져 무언가를 논하기엔 정리가 힘든 상태였었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또한 본서가 어떤 비범한 명상이나 체험, 인물따위에서 비롯한 산물이 아닌, 유교의 사상이 교조화된 시대에서 그에 대한 반발의 사회적 ‘의도’에서 저술된, 그런 선도적 목적과 개혁의 노력이내재되어 있다는 점이 text를 그 자체로 깊이 묵상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많은 의문점과 결론지어지지 않는 복잡스러운 생각들을 대충 정리해보고 싶다.







우선 ‘도’의 본질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결부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처음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도가사상은 언뜻 보면 유사성이 있는 듯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도가사상은 올바른 정치와 삶의 자세를 위한 절대불변의 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절대적 진리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것이 아닐까.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불가지론’으로 정의될 수 있는 노자의 도에 관한 기본 생각은 우리가 진정한 진리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 되어질수 가 없다. 그것은 ‘無’이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유사점이 있다. 후자가 진리자체를 거부한다는 데에 차이가 있을 뿐 현대인들도 진리가 혹시 존재한다 할지라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 되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는 거부의 의사가 담긴 결론이고 도가 사상은 그것을 깨달아 체득할 것을 가르치는 것에 차이가 있다.) 또 다른 면에서 장자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되었는데 자신이 진정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된 꿈을 꾼 건지 혼동하는 이야기에서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흡사한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내가 차원(dimension)을 적절하게 연결(match)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 한가지로는 ‘절대신’으로 대표될 수 있는 관념주의 문화의 다른 시대/장소의 사상과 접목시켜볼 때이다. 각 문화에서 도덕과 윤리의 기준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AD 4세기 무렵을 기점으로 시작된 관념주의 단계의 서구사회에서는 신에 대한 봉사의 형태가 지역의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비롯하여). 여기에서 관념주의란 어떠한 절대적 가치의 실재를 믿는 것을 말한다. 그 가치가 절대적 신에게서 부여되었으며 그러므로 신적권위를 갖는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 자체로 악한 것’과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절대’라는 수식어와 모순적인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아즈텍 부족은 신에게 정결한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어 -지극히 반인륜적인- 바쳤다.[1] 신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가혹한 대가를 치뤄 왔던 것이다. 노자는 서구인들이 믿었던 이 ‘절대적 가치’를 ‘도’라 하지 않을 것임은 당연하다. ‘절대적 가치’라 이름 지어지지만 지역문화에 따라 다양성을 지녔던 그 모순은 그 ‘절대적 가치’가 진정 ‘절대적 가치’가 아님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인가? 둘을 접목시켜보자면 노자가 더 우위에 있는 것을 ‘도’라 명명한 것이라고 이해되어지는데 -그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도라 하지 않는다 – 이 논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진정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절대적 신이 아닌 그러한 존재라고 한 역사적 시기와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상정되었던 ‘道보다 하위인’ – 도라고 불릴 수 없는 – 하나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둘을 비교하기에 도가사상은 종교를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철학이라 할 수 있고 삶에 관한 지혜를 중심으로 하지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종교는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내가 전혀 비교 불가능한 차원의 양자를 무식하게 연계지은 것인가?)



 마지막으로 ‘절대불변의 법칙’과 ‘창조주의 창조질서’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하여.



그가 말하는 ‘도’는 신이 아닌 만물의 움직임의 근거이다. 말없이 만물을 생성화육하게 하는 저 자연 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는 그것을 ‘절대불변의 법칙’이라고 일컫는다. 계절의 변칙 없는 주기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우주의 생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절대불변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는그것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이해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절대적 진리란 것은 없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는 우주의 ‘법칙’, 즉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가 근거 없이믿는 미신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 감각시대를 사는 ‘감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인간이 무엇을 추론할 수 있을까. 인간이 자연을 한정된 범주에서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과학이 발전해왔다. 하지만 과학이 자연이 어떻게 존재하고 작용하는지 훌륭히 설명해 내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또한 아무리 객관적 진리라고 외쳤던 과학 조차도 실험자의 의도와 해석에 좌우된다는 그 실망은 가히 파격적이었을 것이라생각된다.  과학에의 실망은 각자가 인지하는 세계가 각자의 진리라고 말하는 진리관으로 이어진다.  노자가 말하는 ‘영원불변의 법칙’ 그리고 엄연한 실제적 자연의 질서에 대해 이 시대의 사상은 어떤 결론을 내리나.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화이트헤드의 <이성의 기능>에서 이해한 바를 언급하자면 그는 그것은 모든 생물학적 현상을 완벽하게 물리적 현상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유기체인 생물은 어떠한 목적인(이성이 기능하는 출발점) – ‘산다’, ‘잘산다’, ‘더 잘산다’로 간략화되는 - 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물의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몸 속에서 발견되는 목적적 인과에서 유추하여 우주에도 그러한 힘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대충 이러한 논리로 결국에는 창조론을 터무니없다고 여기고 무신론적인 우주관을 제시하는 것 같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인간의 육체와 실재하는 자아를 완전히 벗어난 형이상학적 초탈을 의미한다면 노자가 말하는 이상적 경지는 고요히 흐르고 낮은 곳에 처하길 즐기는 물과 같이 감정적(인격적)으로 겸손하며 사심 없는 담담한 내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힌두교가 현상적/경험적 세계의 모든 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연습하는 철학이라면 본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는, 애써 바꾸려 작위하지 않는- 그렇게 행동해야 할 근거를 인식할 것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이해했다.



 <실은 노자는, 성인은 천지의 무위자연의 법칙을 몸소 인간에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인이 하는 일은 하늘의 도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장 解義 중>



비록 역자의 해의이긴 하지만 이 구절에서 나는 노자의 사상이 초기 기독교에게 영향을 미친 스토아학파와유사하다고 생각했다.(좀 단편적인 비교이긴 하지만) 후자역시 인간이 inexorable law에 도달하려 train할 수있고 철학의 목적은 자연의 법을 understand, obey and adjust 하기 위함이며 현명한 사람은 우주의 법(질서)에 mind가 부합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제9장이 제시하는 미덕은 ‘중용’인 것 같다. 조금 부족하게, 겸허하게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 태도는 어디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물을 조금 부족하게 받아놓고 쓰는 사람은 현명하며 아낄 줄 알고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누군가가 물이 넘치도록 틀어놓은 채로 사용한다면 그는 헤프고 마음이 섬세하지 않으며 차분한 성품을 지니지 못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밥을 먹을 때에도 조금 부족하게 먹는 것이 육체의 건강에는 물론 정신 건강에도 좋다. 욕망에의 절제 없는 개방, 즉 방종은 인간의 마음을 퇴폐적으로 만든다. 칼을 잘 다루어 보지 않은 사람은 칼을 갈 때 무조건 쓰임의 효율성만을 생각하여 더욱 날카롭게 갈 것이다. 그럴수록 예리하여 잘 자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을 많이 다루어본 사람은 적당히 날카롭게 갈 것이다. 부러지거나 꺾어지기 쉬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면만 바라보고 극단으로 치우쳐 행동하는 것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 무엇이든 여러가지 면을 신중히 고려하여 적정 線을 파악하고 이루어가야 함이 마땅하다.







 <건전한 정신이란 몸과 마음을 도에 집중하여 기가 흩어지지 않고 유화함을 체득하여 순수하고 꺠끗함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마음에 더럽혀짐이 없이 도에 집중된다면 심오한 경지에 이를 것이며, 그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반성하여 흠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10장>



 ‘영아와 같은 상태’라고 표현하였다. 어린아이는 세상을 많이 경험하지 않았고 머리가 자라지 않았으므로 순수하게 세상을 인식한다.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복잡한 술수로 처세할 줄 모른다. 배운 것을 의심하지 않고 거짓이란 것을 알지 못한다. 더러움으로 물들지 않은 그 마음은 흠이 없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의 삶은 참으로 순전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이다.



 20장은 철학적 가르침과 더불어 탄식과 푸념 섞인 듯한 표현이 감상을 자극한다.



<세상의 여러 사람들은 기뻐 웃으면서 소나 양의 맛있는 고기를 즐기는 듯,…나만은 홀로 휑하게  빈 가슴으로 평안하고 고요하게 있네..나른하고 고달파서 돌아갈 곳 없는 사람과도 같네…>



 33장은 그 어느 장보다도 받아들이기 평이하고 귀감이 되는 교훈이다. 앞의 장들이 추상적이고 대의적인 반면 본 장은 비교적 소시민적이고 개인적인 교훈도 준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지혜 있는 자이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더욱 명철함이 있는 자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자이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더욱 강한 사람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고, 근면 역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자이다…>



전혀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정말 멋진 교훈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가르치는 이익과 손실에 대하여 나도 또한 가르친다. ‘남들은 강한 것, 있는 것이 이익이라고 가르치지만 나는 약한 것, 없는 것이 유익하다고 가르친다.’ –42장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다 –44장







날뛰어 움직이면 추운 것을 이기고, 고요히 있으면 뜨거운 것을 이긴다. –45장



고요함을 찬양한 내용이다. 일상에서 발견되는 현상으로 아주 재치있게 비유하였다.







나는 착한 사람을 선으로 대한다. 나는 착하지 않은 사람도 또한 선의로 대한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선인이 된다. 나는 믿음성이 있는 자를 믿는다. 그러나 나는 믿음성이 없는 자도 또한 믿는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성인이 된다. –49장



모든 사람을 이렇게 대함으로서 그들을 진정 그렇게 변화시키는 사람은 정말 ‘성인’이라 할 수 있는 위대한힘을 지닌 사람이다.







사욕이 생기는 구멍을 막고 사욕이 들어오는 문을 닫으면 몸이 다할 때까지 노고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 구멍을 열어 놓은 채 거기에서 생기는 일들을 잘 처리하려고 하면 몸이 다하도록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52장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며,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분(忿)을 풀며, 그 광채를 부드럽게 하여 티끌과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을 심원×신비한 동일이라고 한다. –56장



사욕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문을 닫고 그리하여 날카로운 것을 둔하게 만들어 질박함을 지키고, 분노하는격정을 풀어 누그러지게 하여 다툼의 근원을 없애 버린다. 특히 남의 눈에 드러나 보이는 광명을 흐리게 하여 티끌과 함께 있으면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해의>



언어적 표현 자체가 문학적 감흥을 주는 장이다. 메시지 또한 그렇다. 외우고 싶은 구절이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겸허하게 저자세를 취하면 작은 나라가 거기에 붙게 되고 –61장



크면 클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저자세를 취하라는 가르침.







훌륭한 전사는 무용을 부리지 않고, 싸움을 잘 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적에게 가장 잘 승리하는 자는 적과 대전하지 않고, 사람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 앞에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쓰는 길이라고 한다. –68장



 백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잘 



 싸우는 것이다.  –孫子



 한 번 생각하고 반응하는 나에게 두 번 생각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한 발짝 물러서는



 여유로움…그 진부한듯한 교훈을 새롭게 깨닫게 해준 것이다.







알면서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상덕이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71장



사람이 살았을 떄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으면 곧고 강하다. 초목도 살았을 때에는 부드럽고 연하지만죽으면 말라서 야물다. 그런 까닭에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속성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속성이다. 그런 까닭에 군사가 교만하여지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여진다. 강대한 것은 아래에 있고, 유약한 것은 위에 있다. –76장



 가장 경탄을 자아내는 장이다. 그 비유의 절묘함과 유약함의 힘.







산다는 것, 그것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생명의 태어남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작위’로 삶을 메우려 한다. 욕심, 쾌락, 야망…을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삶의 목적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물질과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 그리고 자기PR시대로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드러내기를 추구하는 현대인들과 그런 경향을 자연스레 많이 답습하는 나. 그런 나에게 이 어찌보면 진부하면서도 실천하기엔 낯선 그런 교훈들이 ‘도덕경’이라는 권위로 인한 새로운 뉘앙스로 내게 깊이 생각해보고 좀 더 여유로움을 지니게 하는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생각해본 것을 덧붙이자면 노자가 제시하는 정치는 작은 생선을 삶는 것처럼 백성들을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법령을 자주 변경하거나 많이 만들어내서 국민의 생활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제한하고, 명령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60장>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멍청’하고만 있는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일은 그것이 쉬울 때에 처리하고, 큰일은 그것이 미세할 때에 해결하라.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데서부터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63장



대충의 그림은 그려지지만 과연 이 사상은 현대의 정치에 어떤 효용성과 의미를 지니는가. 도무지 적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토록 범죄가 갈수록 잔인하고 극악해질뿐더러 수단방법도 과학기술의 무궁한 발전에 부응해 고차원적인 시대에, 또한 원조교제 등 윤리체계가 무너지는 시기에 무위 자연의 사상은 괴리감만 줄 뿐이다. 아마도 도덕경의 저자들이 현 세대를 보게 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 같다. 백성들이 너무 지혜로와서…





[1] 감각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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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새창으로 보기

평범 속의 비범 ㅣ 2006-05-13 ㅣ 공감(10) ㅣ 댓글 (0)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어서 좋군요. 나름의 뜻을 새겨서 보여주는 것도 좋구요. 다만 원문의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약간 어렵더라도 새겨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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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수가 OTL 새창으로 보기

風月樓主  ㅣ 2005-02-24 ㅣ 공감(28) ㅣ 댓글 (1)

이런류의 리뷰를 쓰시는 분들께서 흔히 혼동하시는 것이 있다.



이런 책의 좋은 주옥같은 구절들은 원전에서 있는 것이며, 아무리 좋은 번역이라도 원전을 훼손하거나 자신만의 주관이 너무 들어가는 것은 해석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자신만의 깨달음 등을 방해하곤 한다는 것이다. 요컨데, 이런 책에서 중요한 내용은 얼마나 보기 좋은지가 아니라 원본에 충실한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문열씨의 삼국지에 낮은 평가를 주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초이스! 와 현암사라는 이름에 넘어가 판본 확인도 안한 나도 잘못이지만 이 책은 더욱 대단하시다 _-b 오탈자는 애교요, 나름대로의 의역에 다른 판본을 보지 못했다면 이것이 정론인양, 옳은 해석인양 넘어가 볼뻔 했다. 마음을 비우고 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도덕경을 보면서 자꾸 슬금슬금 화가 치밀어 책을 엎은적은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장자도 오강남씨의 저서를 비싼 돈주고 사서 봤는데 그녀석까지 제대로 된 판본인지가 의심스러울정도다.



쉽게 들고 다닐수 있는 이동성. 잘된듯해 보이는 번역내용. 이런것이 전부는 아니다. 처음 본 판본이 해석은 철저히 배재된 채로 원문과 번역만을 실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거부감이 더욱 할런지 모르겠다. 화려하지만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은 듯한 그런느낌. 그런 찝찝함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한다. 다른 판본이나 구해서 다시 구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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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의 도덕경 새창으로 보기

노자읽기 ㅣ 2004-10-29 ㅣ 공감(2) ㅣ 댓글 (0)

가장 쉽고, 편하고 무난한 해석본을 보고 싶다면, 단연 오강남의 도덕경이다..책이 작고, 편집도 깔끔하고, 단단한 겉 표지에, 내용도 쉽게 잘 만들어진 책이다..이것이 기독교 종교 철학자의 솜씨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그런데 쉬운 만큼 오역은 게 중 심한 것 같다.  특히 13장의 경우는 매우 독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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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흐르듯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새창으로 보기

md1221  ㅣ 2003-11-23 ㅣ 공감(2) ㅣ 댓글 (0)

중.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가볍게(?) 훝고 지나갔던 노자의 사상에 대해서 접할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는 무위자연...뭐 이정도 기억이 난다. 사상 자체가 뭐랄까 좀 신비하고 다른 사상과는 독특함이 느껴지는거 같아서 기회가 되면 한번 책을 보고자 했는데 원전과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서 괜찮았던거 같다.



도덕경은 80장이 약간 넘는 분량이고 1장은 대략 1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몇몇 장은 약간 고루하고 설명을 읽어도 잘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내용이 훌륭하다.



원전만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잘모르고 수박 겉핡기 식으로 넘어 갈 수도 있지만 다음장에 그장의 설명이 같이 나오니 내가 모르고 넘어간 부분에 대해 많이 알수 있다.(물론 저자의 주관이 약간씩은 들어간듯 하다)



소위 요즘 범람하는 성공, 자기계발 쪽의 도서의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이 많아 신선하기도 하고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편안함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소장하고 있다가 속상하거나 스트레스 받을때 읽어도 도움이 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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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2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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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새창으로 보기

kje0525 ㅣ 2003-11-08 ㅣ 공감(1) ㅣ 댓글 (0)

역자는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의 비교 종교학 교수로 있는 오강남이다. 그는 서두의 '독자들에게'라는 글에서 '이렇게 신나는 책을 읽어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은 김치찌개의 맛을 모르고 한평생을 마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불쌍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책을 다읽고 난 뒤의 내생각도 그와 같다.



'장자'는 '도덕경'과 함께 노장 사상의 성전이랄 수 있겠는데, '도'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도'를 내비취고 있는 책이다. 사실 오강남 풀이의 이책은 장자 전문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에게 장자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진 내편 7편과 그외에 외편과 잡편에서 자주 거론되는 몇몇 내용들을 담고 있다.



나는 요즘 '낭만주의는 해방이다'라는 명제를 생각해 내고 그기서 나의 사상적 단초를 마련할려고 하고 있다. 직감을 통해 경험과 논리의 협소함을 초월하고 우주의 총체성에댜한 통찰을 얻는 것은 분별지에 속박당한 주객해체의 억압적 담론을 해방할 수 있는 힘이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이 힘은 주체 중심의 왜곡된 낭만주의를 넘어 나와 나 이외의 모두를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인식할 수 있는 화엄의 경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장자'에서 특히 2장의 '제물론'은 물(인식의 대상인 객체)를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이 장은 모든 분별지의 극복을 통해 있음의 없음과 없음의 있음이라는 상식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획기적인 변혁과 그로써 얻을 수 있는 자유는 '도의 경지'를 일컫는 것이다. '도'는 말도 아니고 개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 그렇다. 도는 해방이다. 도를 해방이라고 규정한 것 자체는 내가 도를 구속한 것이 되지만 도는 분명 해방이다. 해방 그것이 도인 것이다.



'장자'는 심오한 책이다. 개념지어질 수 있는 피동형의 책이 아니라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도 모든것을 말하는 역설 그 자체의 책이다. 이 역설의 경지는 진리일까? 도일까? 나늠 말하지 못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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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새창으로 보기

mem1980 ㅣ 2002-12-08 ㅣ 공감(0) ㅣ 댓글 (0)

얼마전 그것도 2년이나 됫군 도올 김용옥 선생이 티비에 등장해 노자에 대해서 강연을 했엇고 한때 노자 센세이션이라고도 할수있을만한 일들이 벌어졌었다. 그때 노자관련 서적이 인문 베스트에 많이 들어가 있엇다. 그 이후에 다시 도올선생이 나오고 다시 동양 고전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한 노자가 과연 어떠하길래 그렇게 떠들어 대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동양 고전에 대해서 무지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좀 궁색한 면이 있엇기에 이책을 구입햇다. 책을 읽는데 무슨 도덕책을 읽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제목도 비슷하다. 하지만 먼가 안에 깊은 뜻이 담겨져 잇는것 같다. 근데 아직은잘 모르겟다. 더 열심히 읽어봐야겟다. 즉 한번바서 잘 모르겟다 이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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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의 도는 空이 아니다 새창으로 보기

jd5024 ㅣ 2003-04-18 ㅣ 공감(0) ㅣ 댓글 (0)

사람들은 자주 착각을 한다. 노자의 도는 공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채워서 없애는 것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느낌이 좋다.. 수많은 번역서가 있지만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책의 향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매번 언제 읽어도 새롭다..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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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의 한계를 넘어 진리를 이해하는 사유체계로 새창으로 보기

곽지희 ㅣ 2002-08-14 ㅣ 공감(0) ㅣ 댓글 (0)

도덕경은 당시 주류의 사상에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흐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환경오염, 인위적이고 상업적인 자본의 횡포, 빈부의 차 현재의 많은 문제점들의 원인들도 지적해줄 수 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환기를 할 뿐이지 현실적으로 전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도덕경에서 나타나 있듯이 도, 무위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애쓰지 않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나는 도덕경의 사상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점 보다는 새로운 사유체계를 이루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도와 덕에 관한 경전은 말중심의 사유체계에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도에 대한 정의는 그 서술하는 즉시 한계에 봉착하게 되며, 따라서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라는 진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를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서 로고스 중심주의적 사유체계는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사유체계로 도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도는 오히려 언어 중심의 사유체계를 뛰어넘는 이미지 중심의 사유체계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지도 또한 개념적 또는 추상적인 의미 규정과는 달리 대상을 구체적으로 감각적으로 재현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정의할 때에 우리는 논리적 사유방식, 즉 로고스 중심주의적 사고로 이미지의 하나의 측면만을 말하겠다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지는 규정이나 논리에서 벗어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붙잡아야 하며, 이미지에 대해 정의 내리는 주체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하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를 로고스 중심적인 사유체계로 정의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은 도를 정의할 때 가지는 어려움과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특히 이미지는 명백하게 현존하는 인식이나 사물의 재현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부재하는 것의 표현도 아니다 . 몽젱은 “이미지는 절대 존재와 아무 관계가 없으며 또한 비존재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 이미지는 현존하지 않는 절대 존재의 독특한 표현 양태이다. 이미지는, 부재와 현존을 맺어준다. 게다가 이미지는 우리에게 이 부재를 현존케 하고, 그 부재의 현존을 하나의 기호관계로 뚜렷하게 해준다.”고 했다.



인간이 현재 세상에서 그 무언가 결핍을 느끼고 그 무언가를 표현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의 이미지인 것이며, 인간은 언제나 결핍을 느끼는 존재하는 의미에서 언제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서 도와 덕에 대해서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단지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에 대한 이미지의 공유일 것이다. 도에 대해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전달될 수 있다는 점. 이것은 이미지 중심의 사유체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접합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지는 그것이 관련되는 모든 영역(실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지만) 즉 논리, 미학, 윤리, 교육, 정치, 형이상학, 예술, 철학에서 하나의 근본토대를 차지하고 있다 .



이미지와 상상력이 서구의 합리주의내에서 경시 받아오다가 이제서야 인류의 공통분모로 그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 . 도의 성격, 즉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말로 표현할 때는 어렵지만 상상력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신비함은 언어 중심주의가 아니라 이미지 중심주의라는 대안적인 새로운 사유체계와 닮은 점이 많으며 이렇게 이미지중심주의로 전환하며 이해할 때, 그 본래적인 진의가 전달될 수 있어 보인다. 또한 그 동안 주류에서 외면되어 왔던 인류의 공통분모인 이미지와 상상력의 의미를 도라는 궁극의 진리로 극대화 시켜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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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노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 새창으로 보기

shinny2002  ㅣ 2003-08-07 ㅣ 공감(1) ㅣ 댓글 (0)

오강남 교수의 책을 몇 권 읽으며 그의 편견없는 종교, 철학의 식견에 감탄을 하곤 했다. 몇 해 전 도올의 노자와 21세기를 몇회 보면서 좀 의아하기도 하고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노자에 대한 서적을 몇 권 읽었던 적이 있다. 도올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를 계기로 노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니까. 그의 도덕경 해설로 뭇사람들이 노자에 대해 관심을 갖을 수 있었다는 것 만큼은 고마운 일이다.



고등학교 윤리책에서 배운 단 한 줄의 노자 '노자의 무위자연설' 그 때 윤리선생님의 해설을 생각하면 기막힌 한숨뿐이다.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해설을 하셨었는데, 차마 내 모교의 선생님을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아 생략하겠다. 그만큼 노자에 대한 평가가 왜곡돼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이제라도 노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다행이란 생각이다. 빠르게 소용돌이 치는 사회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세상에서 그의 말씀 하나 하나는 등대처럼 절실하고 안타깝다. 지금이야말로 자연으로 돌아가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시도해야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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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2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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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 외로운 투쟁과 나눔의 미학 새창으로 보기

페르 ㅣ 2002-01-03 ㅣ 공감(1) ㅣ 댓글 (0)

원문을 통한 [도덕경]읽기와 해석은 많은 인내와 한자 실력을 필요로 했다. [도덕경]을 읽는 일은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내용과 느낌 점에 있어서는 마음의 양식을 채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BS를 통해서 간간이 강좌를 들어보기도 했지만 강사의 견해가 많이 들어가 큰 도움은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대학],[중용],[논어]의 잠언들(나는 이 책들을 인생의 잠언 집이라고 명명한다.)



배울 때는 상당히 지루한 경향이 있었지만 (물론 개인적인 욕심과 한문강좌를 수강하면서 시험이라는 필요에 따라서 잠정적인 외우기에 불과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도덕경]은 인간의 가치관과 자연관, 사회 그리고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하는 고서라고 본다. 특히 [도덕경]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를 지향하는 현대인의 자연관(미국과 유럽)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대두되면서 지대한 관심사가 되어 근래에 와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책이다.



[도덕경]-제1장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모든 수식어를 불허하는 이 한 문장은 나를 [도덕경]에 빠지게 하는 문구였다.

-(명가명, 비상명)



希言自然(희언자연) 말이 없는 것이 자연이다.(제 23장)

知人者智, 自知者明(지인자지,자지자명)-남을 아는 것은 지혜이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명철함이다.(제33장)

無執故無失(무집고무실)(제 64장)-집착이 없으니 상실이 없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관과 인간사의 뚜렷한 차이점은 자연은 집착이 없고 말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자연은 넘치면 덜어낼 줄 알고 사람은 넘치더라도 그 욕심이 끝이 없으니 시사하는 바가 이렇듯 크다.



만물과 더불어 되돌아 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대순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반자도지동-즉 되돌아감이 도의 근원이다. 도는 일체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하는 도=자연이라는 성립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덕경]에서 보여주는 자연관은 이렇듯 순수한 원리를 통해서 아낌없이 주는 것이 자연이라고 본다. 그 동안 우리의 패러다임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위주로 형성되어온 가치관이었다면 현대는 개인주의 경향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이단시되어 온 [도덕경]의 가치가 새롭게 재평가되어지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칫 각박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여유라도 주지 않을까?



아무튼[도덕경]은 새로운 가치관의 틀에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세계가 변화하고 세계관이 이동하는 현시점에서 우리의 새로운 지침서로 부각하고 있는 [도덕경]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은 준책이다.



세상은 나뿐만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공간이다. 이 공동체의 공간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하고 대자연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독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인간 실존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현시대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 그리고 가치있는 삶의 방법을 모색해 나가기위한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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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고의 도덕경 주해 새창으로 보기

정기립 ㅣ 2001-08-22 ㅣ 공감(1) ㅣ 댓글 (0)

도덕경은 동양 최고의 경전이다. 원전의 본문은 겨우 원고지 25매 분량밖에 안되지만, 한자 한자에 담긴 함축성과 상징성, 그리고 그 의미의 깊이와 넓이 때문에 후대의 주석가들이 쓴 주해서만 해도 종류가 수천가지나 되며 해석방법도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국내에도 많은 종류의 노자 도덕경 주해서가 있었지만, 이 책이 그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느낀다. 역자 오강남씨는 최근 '예수는 없다'라는 책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분으로, 캐나다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고 도덕경 번역을 18년전부터 준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 구석구석에 역자의 세심한 정성이 배어있는 듯하다. 역자는 우리말 번역을 모두 경어체로 썼다. 심원한 우주의 진리를 먼저 터득한 고대 사상가가 그것을 반말로 전달하리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부터가 설득력이 있고, 실제로 번역된 본문을 읽어보면 친근감과 그윽한 감동이 느껴진다.



이 책이 국내에서 나온 도덕경 주해서 중에 최고라는 것은 번역된 본문만 읽어보아도 바로 느낄수 있다. 이전에 나온 번역들처럼 우리말 문장 자체가 의미를 알기 힘들어서 몇번씩 읽어야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냥 술술 읽혀지면서 의미가 통한다. 이 점이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이다. 역자는 거기다가 자기나름의 느낌과 이해를 토대로 충분한 분량의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여 놓았고 그 내용또한 알짜배기이지만, 나는 굳이 그것까지 읽어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역자가 18년 전부터 도덕경 풀이를 준비한 노고의 결실이라 하겠다.



누군가가 도덕경을 읽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해 줄 것이다. 이미 선물도 많이 했다. 역자는 캐나다에서 오래 체류하며 공부한 분인 것으로 안다. 아마도 캐나다라는 나라의 환경이 이 책의 열매에 기여하지 않았을까? 중국만큼 광대한 영토를 가졌으면서도 인구가 고작 3000천만에 불과한 나라... 밑에 있는 미국에 비해서 사람들이 그다지 경쟁없이 욕심부리지 않고도 살수 있는 나라, 그야말로 무위의 실천이 가능해보이는 나라. 노자의 사상을 실천하면서 산다는 것이 과연 어느민족 누구에게나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남겨본다.




2017/12/27

“예수는 혁명가…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은 위험”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예수는 혁명가…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은 위험”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예수는 혁명가…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은 위험”



등록 :2015-12-22



김형석 명예교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가 모교인 연세대 뒷길을 걷고 있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본 예수

▶휴심정 바로가기







그는 목사도 아니고 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철학자이다. 평생을 철학교수로 살았다. 지난 9월 그는 96살의 나이에 <예수>를 썼다. 그가 쓴 <예수>는 1만권 이상 팔렸다. “예수가 누군가를 묻고, 그 예수와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모색하고 경건히 탐구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 이상의 고마움이 없겠다”고 서문에서 겸손하게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그가 예수를 안 것은 중학교 1학년, 14살 때였다. 건강이 나빠 삶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그 겨울 그는 예수를 만났다. “내가 찾은 것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었고, 영혼의 친구로서의 예수였다”고 한다. 그는 고백한다. “예수를 안 뒤 지난 80년 동안 하루도 하나님과 예수는 내 생활에서 떠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예수를 잊거나 떠난 때가 있어도 예수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가까이 있기 때문에 모르는 점이 많았던 예수를 지난여름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예수를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알려주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 주제는 과연 인간 예수가 우리의 신앙적 대상이 되는 그리스도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목사도 아니고 신학 전공도 안한

나이 96살, 평생 평신도







건강 나빠 삶의 한계 느꼈던 14살

독서를 통해 예수를 알고

그의 가치관, 기독교 정신 체화







목사의 설교로 예수 알았다면

이미 기독교를 포기했을 것

그들은 기독교 지식에만 매달려







큰 교회가 성공이라는 생각에

참된 기독교 정신 버려

교회만 가면 천당 간다는 건 죄악







김수환 추기경 말처럼

교회는 사회 위해 있는 것이지

사회가 교회 위해 있는 것 아니다







지금도 하루 2번 강연, 원고지 40장 써



그가 말하는 ‘친구’는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지성인들이었다.



백살을 그리 멀리 남겨놓지 않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사진)는 놀라우리만큼 건강하다. 1970년대 중반 그가 쓴 에세이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60만 독자가 읽었다. 허무와 죽음, 고독과 절망, 좌절감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절망을 극복하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그의 철학적 수필집은 당시 초베스트셀러였다.



그는 지금도 하루 두 차례의 강연을 하고, 원고지 40장 이상의 글을 쓴다. 대장 내시경은 평생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위 내시경은 20년 전에 딱 한 번 해봤다. 물론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어릴 때 그는 건강의 열등생이었다. 중년까지는 친구들과 비슷했다. 그럼에도 그는 젊은 시절 못지않은 정열과 건강으로 노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의 건강 ‘비결’을 우선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우선 그에게 <예수>를 쓴 이유를 물었다.





김형석 명예교수는 <예수>를 쓴 이유는 인간 예수임을 밝히고, 그가 그리스도임을 주변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한국 교회 비정상적 모습 걱정



“나는 독서를 통해 예수를 알았지, 결코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안 것이 아니다. 만약 설교를 통해 기독교 신앙에 접근했다면, 이미 기독교를 포기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통해 예수를 알고, 예수의 인생관, 가치관,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체화했다. 목사들은 예수의 인생과 가치를 알려주기보다는 기독교 지식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지식은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면 교체된다. 또 참된 신앙에 들어가는 데는 열쇠가 필요하다. 그 열쇠는 바로 예수이다. 예수와 나의 관계를 알지 않고는 기독교 주변에만 서성이게 된다. 많은 교인들이 ‘나 교회 다닌다’며 만족한다. 교회에 가서 헌금을 많이 하면 높은 직분도 준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를 만났나?’ 물으면 ‘아직 못 만났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는 인간 예수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책임을 감당한 인간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이어서 한국 교회의 비정상적인 ‘교회주의’를 걱정했다. “오늘날 교회는 사랑의 봉사보다는 소유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좀더 큰 교회, 좀더 많은 신도를 자랑한다. 유럽의 수백년 걸려 지은 큰 성당은 건축미와 예술성은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성당의 건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을 견뎌야 했고, 고귀한 생명과 인권이 유린당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예수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에선 이미 1970년대 버림받아



교회가 곧 기독교라는 생각이 위험하다고 했다. 기독교는 가족과 병원 같은 많은 공동체를 포함하고 있고, 대표적인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교회는 사회를 위해 있는 것이지, 사회가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바티칸 교황이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1500년 걸렸다. 젊은 김수환 신부가 이런 생각을 했기에 비슷한 생각을 한 바오로 6세가 그를 추기경으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큰 교회가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교회는 참된 기독교 정신을 버렸다.” 그는 1972년에 세계일주 여행을 하며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이미 그때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버림받고 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교회는 한때 700명까지 신도가 있던 대형교회였으나 당시 예배 보는 신도가 20명뿐이었다. 목사는 5명이나 됐는데 예배 보는 내내 목사들은 입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다음주에 들른 영국 런던의 가장 오래된 큰 교회는 일주일 있다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천주교 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코펜하겐의 큰 성당은 문을 닫고 도서관과 주민센터로 변했다.” 그는 교회주의에 빠지면 기독교 정신이 버림을 받는다고 했다. 목사의 설교에는 교리와 교권은 있는데 인권은 없어서 지성인들이 교회를 외면한다고 했다. “큰 교회 목사들은 교회에 안 오면 죄인이라고 강조한다. 죄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다. 목사들이 교회만 나오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고, 교회만 나오면 천당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했다.



그는 예수의 혁명가적 정신을 강조했다. “예수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도덕적인 인간의 의무를 다하도록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신앙적 은총을 내린다고 했다. 또 정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이는 복이 있으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의 표현은 그 자체가 계명과 교리에 속박됐던 구약 전체에 대한 도전이자, 로마제국의 권력에 대한 항거적인 혁명정신”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한 사람의 통치자를 위해 모든 사람이 노예화되는 것을 정당시하던 당시 시대정신을 뒤엎는 소중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평신도이면서 권위 있는 성경학자이길 원하는 김 교수는 가난한 목수로 일하던 예수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인류를 구원하며 느껴야 했던 인간적 고뇌와 두려움을 성경 곳곳에서 느꼈다고 한다. 그런 예수이기에 평생 함께한다고 했다.








지팡이 보청기 틀니 없이 꼿꼿



그에겐 노인들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지팡이나 보청기, 틀니가 없다. 50살 중반부터 혼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영을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한다. 그것이 그의 장수와 건강의 비결일까?



그는 나이를 먹어도 일을 멈추지 않고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건강을 잊었어요. 아마도 건강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며 “앞으로 1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기자는 대학 1학년 때 그의 ‘철학개론’ 강의를 들었다. 중간고사 문제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차이를 논하라”였다.(그때 그 과목을 C학점을 받아 장학금을 못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고 싶었으나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음식점에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해 예약을 부탁했다. “몇 분 오시냐?”는 질문에 그는 “한 명”이라고 답한다. 문득 그가 지난 세월 익숙해졌을 ‘인간적 고독’에 대해 떠올랐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723093.html?_ns=c1#csidxbd5b6cd7cc18d2280450ec13c8a6664

2017/07/21

"원자력 발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 - 지속가능저널

"원자력 발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 - 지속가능저널



"원자력 발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대담]박진희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 송상훈 (사)푸른아시아 전문위원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8기의 일시 가동 중단을 시작으로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 선언까지 확고한 탈핵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을 천명한 문 대통령이 실제로 행동에 나서 로드맵에 따라 하나씩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장은 찬반여론이 팽팽하다. 시민·사회단체는 탈핵은 시대적 흐름이라며 정부의 정책을 반겼지만 이해관계가 직결된 원자력업계와 야당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탈원전을 둘러싸고 구체적 움직임이 목격되고 있고 논란이 뜨거운 상황에서 14일 탈핵에너지교수모임 박진희 공동대표(동국대)를 만나 탈핵을 포함한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실천하는 국제 NGO (사)푸른아시아의 송상훈 전문위원이 대담을 진행했다.

탈핵에너지교수모임 박진희 공동대표(동국대)와 국제 NGO (사)푸른아시아의 송상훈 전문위원이 14일 동국에서 탈핵을 포함한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이소록
(송상훈)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했다. 신규 원전 신고리4호와 신한울1, 2호는 사실상 완공되어 가동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공정률 27.7%인 신고리 5.6호 공사 중단 여부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대통령의 결단에 대하여 논란이 많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박진희)탈원전을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국내 에너지정책이 만들어진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1978년도에 고리 1호기가 처음 가동된 이후로 지금까지 정부차원에서 원전을 멈추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송)얼마 전 탈원전을 반대하는 교수 417명의 성명서 발표가 있었다. 탈원전 정책 추진은 전력 수급 불안정, 에너지 안보 위기, 민생부담 증가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우선 에너지 안보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자.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원유 수입 5위, 석탄 수입 3위, LNG 수입 9위 국가이니 에너지안보를 위해서라도 원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박)에너지 안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급의 안정성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는 96%에 달한다. 만약 가스 수송로가 봉쇄된다거나, 중동에서 석유공급이 중단된다면 우리나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즉, 해외 상황의 변화에 직접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려면 해외에서 들어오는 에너지 공급 라인의 안정화가 필요적이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원전을 통한 에너지안보를 주장한다. 비록 우리나라가 우라늄을 수입하지만 연료를 가공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의 해외 의존율이 별로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는 오히려 재생에너지 개발을 통해서 확고해질 수 있다. 풍력, 태양열 등의 재생에너지는 애초에 해외에 의존할 필요도 없거니와 안전하기 때문이다.

(송)하지만 재생에너지는 ‘간헐성’ 이라는 문제를 갖고 있다. 전력수급에는 차질이 없을까.

(박)원전과 달리 태양광, 풍력, 지열 등 재생에너지 발전은 24시간 가동이 어렵기 때문에 간헐적이라는 특징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활용에서는 단일에너지원을 하나씩 사용하지 않는다. 태양광, 풍력, 지열 등을 모두 결합해 복합발전을 한다면 간헐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복합발전을 위해서는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라는 기술적 전제가 확보되어야 한다. 한국에는 아직 스마트 그리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폐쇄된 원전 설비용량 전부를 바로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그 가교기술로 가스발전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2030년이 되면 모든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원전 제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2021년에서 2030년까지 원전 25기 중 11기의 가동을 중단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LNG를 통해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복안이다. 문 정부의 계획에 따르자면 2030년 우리나라의 에너지믹스는 LNG 37%, 석탄 25%, 원전 18%, 재생에너지 20%다. 공급에 큰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송)원전을 폐지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애초에 잘못된 전력수요예측을 꼽는다.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많은 전력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수요를 과도하게 예측해서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지으려고 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더구나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은 사실상 대부분 중국에서 가져가고 있고, 한국에서는 4차산업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대부분의 산업이 저전력 산업으로 전환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동의하나.

(박)2030년까지 계획한 신규 원전은 7차 전력수급계획에 기초하였다. 7차 전력수급계획은 2029년까지 연간 전력 소비량이 3.2~3.5%씩 증가한다는 것을 전제로 발전 설비량을 계산했다. 그러나 2013, 2014, 2015년도 전력소비증가율은 3.5%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더 많은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보자는 생각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전력 예비율(현재 설비가 되어있는데 가동하지 않는 설비율)은 이미 60%에 달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계산 결과에 따르면 가스발전을 늘리면 2030년까지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더라도 총량공급에 있어 전력예비율은 15%가 될 것이기에 전력 부족 사태는 없다. 더군다나 지적한 대로 4차산업은 저전력ㆍ저탄소 기술에 기반하므로 과도한 전력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 (대담이 이루어진 이날, 전력거래소는 2030년 우리나라 전력 수요가 2년 전에 예측했던 것보다 1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발표했다.)

(송)원전을 멈추면 전기료가 크게 인상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박)전기료가 얼마나 인상될 지는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렵다. 한전에서 발표한 발전원별 판매단가를 기준으로 전기요금을 계산해보면 탈원전시 전기요금이 인상된다는 주장은 맞다. 120원 정도의 단가인 가스발전을 두 배로 증가시켜 원전의 공백을 메꾼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수가 있을 수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가 발전용 에너지 세제개편의 의지를 드러낸 만큼, 발전단가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발전용 유연탄에는 거의 과세하지 않는 데 비해 LNG에는 높은 세율이 부과하는 편이다. 석탄 세율을 높이고 LNG 세율을 낮추도록 조정한다면 발전단가가 달라진다. 거기에 석탄과 원전연료의 외부비용(발전에 따른 사회·경제·환경적 비용. 가령 온실가스배출, 미세먼지, 대기오염, 국민 의료비용, 폭발사고와 방사능 누출, 폐기물 처리에 따른 제비용 등등)까지 모두 고려한다면 원전의 발전원가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송)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원전 운영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 후쿠시마 같은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전 1위국인 미국에서 일어난 스리마일섬 사고, 원전 3위국인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 원전 4위 러시아의 체르노빌 사고 등을 보았을 때 사고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박진희
(박)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지진 안전지대라고 생각해 왔지만, 경주 지진을 통해 그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동안 비활성 단층이라고 생각했던 양산단층, 율산단층의 활성단층 가능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 주변 30km에 15만 명의 인구가 거주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주변에 부산, 울산 등 대도시가 산재해 있어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하다. 국내 원전은 기본적으로 규모 6.5에서 7.0까지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그 이상의 지진은 버티기 어렵다. 더 높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낮다지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원전사고를 완벽히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탈원전을 하는 것이다.

(송)원전이 풍력발전보다 CO2배출이 적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온배수 배출로 인한 CO2 발생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동해의 CO2 농도를 태평양과 비교해 추정했을 때 원전에서 배출된 CO2는 1,156만 톤으로 추산된다. 이 양은 2013년 한국의 CO2 배출량 총계 6억9450톤의 1.2% 상당한다. 과연 원전이 탄소 중립적일까.

(박)에너지원의 탄소배출량을 제대로 따져보기 위해서는 전 주기평가(LCA)를 해야 한다. 우라늄광산에서부터 시작해 최종적으로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고 이후 폐기처분하는 과정,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는 데에서 나오는 탄소배출까지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만 원전이 탄소중립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다. 원전은 발전할 때, 엄밀히 말해 핵분열반응 과정에서는 탄소배출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탄소 중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전 주기평가를 했을 때에는 태양광발전과 원전 사이에 탄소배출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탈원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폐기물 처리 문제 때문이다.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기술은 원전을 가동하는 그 어떤 국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장소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인 것이다. 고준위 폐기물 처리 대안으로 지층 매립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지층 매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방사선 반감기를 고려해 10만년동안 지층에 아무런 지진이나 외부변동이 없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석탄발전은 논외로 하고, 그동안 인류가 원전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한 이유는 원전 외에 경제성 있는 에너지 개발 기술을 갖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대안이 충분히 제시되고 있다. 바로 재생에너지다. 경제성과 안전을 맞바꾸는 일을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송)새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앙 집중형 에너지 정책을 지방 분권형·분산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박)그렇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철저히 중앙 집중형이다. 그동안 지방이 에너지정책에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 충남에서 화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여 서울에 전력을 공급하면서 오히려 충남은 미세먼지에 시달리게 되는 억울한 일이 빚어졌다. 에너지 분권화, 청정에너지로 지역에너지 전환 등이 이루어진다면 예시한 충남처럼 지방은 에너지 자립이 가능해 질 것이다. 에너지에 대한 자치 권력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또한 에너지 소비자가 생산자가 될 수 있기에 에너지를 대하는 시민의 의식도 달라질 것으로 본다.

(송)에너지 분권화를 이룬 독일에서, 에너지 발전시설을 마을이 소유해 주민들이 수익을 나눈다고 들었다. 이러한 사례가 또 있나.

(박)덴마크가 대표적이다. 덴마크는 풍력발전에서 시작해 바이오매스 발전까지, 에너지협동조합의 형태로 에너지 분권화가 이루어졌다. 에너지 발전 시설의 마을 공동 소유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영국이다. 마을에서 태양광, 바이오매스 발전을 통해 전기를 팔아서 수익을 얻고 이 돈을 마을회관 기금 등으로 쓰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개인들이 재생에너지 발전에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제도의 뒷받침이 있었다. ‘발전차액지원제도’는 재생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력 가격과 기성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력 생산단가 차액을 정부가 보상해주는 제도다. 공급업자들이 전력을 높은 고정가격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개인은 그만큼 이익을 얻게 된다. 작년 에너지 협동조합 이익률이 4%에 달하면서 재생에너지는 이제 투자개념으로 확대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발전차액지원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종 에너지 소비자인 개인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독일에서 2000년대에 전기가격 15원 중에서 1원을 재생에너지 부담금으로 매겼다. 에너지 협동조합이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이 투자함에 따라 그 다음해에는 2원으로 재생에너지 부담금을 늘렸고, 부담금이 늘어나면서 전기요금이 17유로에서 24유로로 올라갔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개인에게는 재생에너지 부담금을 물리면서 수출 위주의 산업체에는 면세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최근 문제를 인식하여 부담금을 조정하고 있다. 부담금이 조정된다면 개인의 부담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여러 국가에서 그리드패리티(화석연료 발전단가와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시기)를 달성한 만큼 앞으로 재생에너지 가격은 계속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난다고 해서 전기요금이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요금인상이 있더라도 잠깐일 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경제적인 발전원은 재생에너지다.

(송)기후변화 시대를 맞는 국가의 에너지 정책방향과 시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박)지금까지 에너지 공급을 이야기했지만 에너지 전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일이다. 지금 수준의 소비를 지속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절대적인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지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원전 중단 여부를 넘어서서 수요관리에 방점을 맞춘 정책으로 전환 및 법제개편이 필수적이다. 시민들 역시 전력 소비량을 절대적으로 감축하지 않으면 결코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


탈핵에너지교수모임

2011년 11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 탈핵의 필요성을 느낀 교수들이 모여 결성했다. 현재 정회원 100여명이 활동 중이며 다수의 후원회원도 참여하고 있다. 탈핵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강연, 토론회, 출판 사업, 연대활동을 주로 한다.



대담 송상훈 (사)푸른아시아 전문위원





이소록 / KSRN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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