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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한국이 낳은 진인 류영모(柳永模)의 생애와 영성 (1-2) - 당당뉴스




한국이 낳은 진인(眞人) 류영모의 생애와 영성 (1)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1년 03월 27일 (일) 14:08:35

한국이 낳은 진인(眞人) 류영모의 생애와 영성 (1)



▲ 다석 류영모


류영모는 1890년 3월 13일(경인년 음력 2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냈다. 아버지 류명근은 연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고 후에 장로가 되었으며, 모친 김완전은 정동교회 권사로 신앙생활을 했다. 두 분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류영모가 16세(만15세)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 들인지 5년 후의 일이었다. 류영모는 어릴적에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고 통감과 맹자를 배웠다. 신식 학교가 생기자 서울에 있는 수하보통학교를 거쳐서 경신중학교에 들어갔다. 그가 기독교계 학교인 경신학교에 들어간 데는 사연이 있다. 1910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후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던 차에, 15세의 소년 류영모는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서울 종료에 있는 YMCA를 드나들었다. 거기서 초대 총무인 김정식의 연설을 듣고 감동되어 기독교에 입신하게 되었으며, 그의 영향으로 경신학교와 관계가 있는 연동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가 경신학교 졸업반에 있을 때, 남강 이승훈의 부름을 받아 평북 정주에 있는 오신학교 교사로 부임되어 갔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20살이 되던 해였다.

류영모가 오산학교 교사로 갔을 때 그곳에는 여준, 신채호, 윤기섭, 이광수 등이 교사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 때 독실한 신자였던 류영모는 오산학교에 기독교의 정통신앙을 전했으며, 그의 영향으로 당시 교장이던 남강 이승훈도 기독교 신자가 되어, 후에 3.1 운동 33인 가운데 기독교 측 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류영모는 3.1 독립운동의 정신적인 산파역 중 하나의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오산학교 재직 중 류영모에게는 사상적인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그는 거기서 톨스토이, 노자, 불경 등을 접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교회의 전통신앙을 넘어서 보다 심층적인 영성적 종교/신앙을 추구하게 되었다.

류영모는 대학에 진학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물리학교에서 과학(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거기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버렸다. 그때 그의 심경의 큰 변화를 일으킨 직접적인 동기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톨스토이의 사상적 영향이 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귀국한 후 류영모는 김효정과 결혼하여 슬하에 삼남 일녀를 두었고, 자신은 부친의 사업(피혁업)을 도우면서 당대의 천재들이라고 불리던 정인보, 최남선, 이광수, 문일평 등과 교우하면서 최남선이 발행하는 <청춘지>에 종종 기고하였다.

그후 류영모는 3.1운동으로 인해 폐허되었던 오산학교가 재건되면서 일제에 의해 쫓겨난 고당 조만식 교장에 이어 오산하교 교장으로 취임했으나 일제가 교장인준을 거부하는 바람에 일년 반 만에 물러나야 했다. 이로 인해 류영모는 마음의 아픔을 겪었지만 당시 그 학교 졸업반에 재학 중이던 함석헌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후로 함석헌은 불과 11년 연상의 류영모를 평생 동안 큰 스승으로 존경하고 극진히 모셨다.

서울에 온 류영모는 YMCA 총무 현동완의 간청으로 월남 이상재의 뒤를 이어 일종의 종교 강좌에 해당하는 연경반(硏經班)을 맡게 되었다. 이 강의는 1928년부터 1963년까지 약 35년간 지속되었으며, 함석헌, 김흥호, 서영훈, 류승국, 박영호 등도 참석하였다. 여기서는 성경 중에서 특히 요한복음이 많이 강의되었으며, 동양의 고전/경전들 즉 도덕경, 반야심경, 금강경, 논어, 중용 등의 내용도 다루어졌다. 한편 류영모는 일본의 우찌무라(內村)에게 영향 받은 김교신, 송두용 등 성서조선지 동인들과 사귀면서 그 모임에도 종종 참석했으며, 성서조선지에 기고도 하였다. 그리고 성서조선사건 때는 함석헌, 김교신, 송두용, 류달영 등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서 감옥살이(57일간)도 하였다. 그런 중에도 때때로 광주(빗고을)에 있는 한국의 토착 수도원이라 할 수 있는 동광원에 내려가 말씀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도 하며 지내기도 하였다.

류영모는 아버지의 반대로 농촌생활을 못하였으나, 부친의 상을 벗은 후 북한산 비봉 아래에서 과수원 농사도 하였다. 그 후 구기동 산자락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계속 생활했다. 그때부터 그는 일일 일식의 금욕생활을 하며 아내와는 해혼(解婚)을 선언하고 잣나무 판자 위에서 혼자서 자며 깊은 사색과 명상의 수도생활을 영위했다. 이것은 류영모가 고대 이집트의 수도사들이나 성안토니와 같은 사막의 수도자의 금욕적 영성생활을 몸서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46년 4월 26일에 생애를 마친다고 일년 앞서 선언하고, 그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30년 동안 쓴 것이 다석일지(多夕日誌)이다. 그것이 그가 남긴 유일한 유저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특히 주목할 일은 류영모는 그의 일지나 강좌에 있어서 깊은 종교적/철학적 사상들을 순수 우리 말 한글로 풀이하여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생전에 노자, 중용, 금강경, 반야심경, 천부경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그 중 일부는 김흥호 씨와 박영호 씨에 의해 정리 출판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류영모는 1981년 2월 3일 33200일을 살고 91세의 나이로 특별한 병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평소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 특히 함석헌 김흥호 류달영 박영호 박재순 제씨에 의해 그의 사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최근(1998년)에는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에서 강의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는 생전에 특별한 티를 내지 않고 보통사람으로 살았으나 그를 가까이서 보고 따르건 사람들은 그를 보통 사람이 아닌 큰 스승으로 존경했으며, 심지어 한국 땅에 보낸 공자나 노자와 같은 진인(眞人) 혹은 성인(聖人)으로 느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소년시절에 접한 기독교 신앙을 평생토록 간직하고 살았지만, 전통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고, 동양의 전통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 및 한국의 고유종교사상까지를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상호 조명 내지 통섭하여 웅대한 통전적/우주적 영성으로 승화시킨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류영모는 한국이 낳은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요 또한 심오한 영성(사상)을 지닌 탁월한 영성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인상에 대해 박영호씨의 형 박인호씨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분장되지 않은 예수, 석가, 공자의 본 모습을 알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 런데 다석 류영모 선생의 모습을 뵙고는 옛 성자들의 본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초라하리만큼 소박한 생활, 송구하리만큼 겸손한 태도, 천진하리만큼 순수한 마음, 그리고 놀라우리만큼 번쩍이는 지혜를 느꼈다."(박영호 엮음, 다석 유영모, 100쪽)

끝으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즉 류영모는 과연 그리스도 신앙인이었나 하는 질문이다. 어떤 이가 예수, 석가, 공자 가운데 누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류영모는 그런 비교는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하고는, 객관적으로 서열을 매길 수은 없지만 주관적으로 누구를 더 좋아할 수는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에게도 의중 인물이 있다고 했으며, 내가 잘못하였을 때 내게 잘하라고 책망을 내리시는 분이 바로 나의 의중지인(意中之人)인데, 그가 바로 자신의 참 스승인 예수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한 자신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류영모는 아무리 유불선 등 여려 종교 사상들을 섭렵하고 그들 속에 깊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의 심중 깊은 곳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종교/교회 지도자들은 다석 류영모에게서 참 종교인의 바른 자세와 영성적 삶의 모범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먼 과거의 사람들이 만든 "교리"(dogma)와 문자주의라는 틀 속에 갇혀서 생명이 깜박거리고 있는 종교 혹은 교회를 살려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한 그에게서 성경의 심오한 진리들을 깊이 탐구하고 해석해 내는 영적 통찰력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어떤 의미에서 성경 속에 담긴 깊은 사상과 깊은 영적 진리들을 바로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바로 오늘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사료된다. <계속>


▲ 류기종 박사


인봉 (211.232.208.151)

2011-03-28 15:41:12




오늘날 한국 기독교, 그 중에서도 개신교 체제 내에서 다석선생을 되돌아보고 공부하며 학이시습의 즐거움을 반추할 수 있는 인사가 있다는 것이 반갑고 놀랍군요?

앞으로의 글이 무엇을 말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할 것입니다. 건필을 기도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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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진인 류영모(柳永模)의 생애와 영성 (2) - 당당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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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진인 류영모(柳永模)의 생애와 영성 (2)
류기종 | rkchg@hanmail.net





입력 : 2011년 04월 03일 (일) 16:13:21
최종편집 : 2011년 04월 05일 (화) 16:52:05 [조회수 : 3042]







한국이 낳은 진인 류영모(柳永模)의 생애와 영성 (2)

다석 류영모의 <중심 사상>



1. 하나님 곧 일자(一者)와 귀일(歸一) 사상

▲ 류기종 박사


다석은 하나님을 태일(太一)이라고 불렀다. 태일은 곧 궁극적 일자(the Ultimate One)라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근원인 궁극적 실재로서의 일자(一者) 혹은 절대자로서, 만유와 모든 인간은 이 궁극적 일자(한아님/한얼님)에 힘입어 살고(존재하고) 하나님을 머리에 이고/모시고 위로 하나를 향해 올라가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궁극적 일자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귀일 철학사상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님도 한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가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상과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엡4:6, 롬11:36).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궁극적 하나(일자)이면서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전체(the whole)가 하나님이다. 궁극적 하나로서의 하나님은 만유를 자신 안에 포함하며 또한 만유는 하나님 안에서 노닌다. 여기서 우리는 다석의 하나님 이해에 있어서 하나님과 우주만물과의 관계를 일즉다(一卽多)의 관계로 이해한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의 범재신론적 신관 및 우주관의 색채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류영모에 따르면 이 궁극적 일자로서의 하나님은 유한한 우리 인간들에 대해서는 없는 상태로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비적 존재로서의 얼(靈)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은 보이는 실체가 아니며 어떤 모양도 지니지 않기에 무(無)와 같은 존재이다. 즉 하나님은 텅 빈 허공과 같이 없이 계시는 분이이시다. 아마도 다석은 불교의 궁극적 실재로서의 절대무(絶對無) 혹은 공사상(空思想)의 원리를 깊이 파악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류영모는 하나님을 장횡거(張橫渠)가 말한 태허(太虛)로도 표현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은 본디 이름이 없다. 하느님에겐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하느님에게 이름을 붙이면 이미 신이 아니요 우상이다"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우리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살며, 또한 얼나(영적인 존재)로 거듭나서 이 근원적인 궁극적 일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임을 거듭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그 길을 바로 알려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류영모가 이해한 하나님은 전적으로 초인격적이면서 동시에 인격적인 반대로 인격적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초인격적인 실재(하나님)라고 말할 수 있겠다.


2. 가온찍기

다석은 55년 9월 22일 일지에서 “가온찍기”란 뜻을 지닌 말로서 “직상일점심”(直上一點心, 마음에 한 점을 찍고 곧장 위로 오른다) 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 이후로 그는 이 "가온찍기"([.])란 뜻을 나타내는 말을 여러 형태로 설명하였다. 우선 가온이란 말은 하늘과 땅의 중심 즉 모든 시간(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영원)과 공간의 중심을 나타낸다. 고로 “가온찍기”란 하늘과 땅 즉 모든 시간과 공간과 영원의 한 복판/중심에 한 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가온찍기"란 자신의 존재의 중심과 또한 우주(만물의) 중심을 정확히 맞추어서 저 무한/영원의 세계로 직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류영모의 "가온찍기"는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우리 인간이 자신의 존재와 또한 우주만물의 생성 변화의 깊은 이치 곧 존재의 신비(mysteries of beings/existences)를 올바로 깨닫는 견성(見性) 혹은 대각(大覺)의 순간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가온찍기"는 우리 인간의 큰 깨달음의 순간 즉 붓다의 정각(正覺) 혹은 영성가들의 영적 대각성(spiritual enlightenment)의 순간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류영모는 "가온찍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라는 것의 무한한 가치를 자각하고 날아가는 새를 화살로 쏘아 맞히듯이
곧이곧고 신성하고 영특한 영원한 나의 한 복판을 정확하게 명중시켜 진리
의 나를 깨닫는 것이 가온찍기"[.]"이다. 나의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의 긋
(끝)이 나타난 것이다.... 가고 가고 영원히 가고 오고 오고 영원히 오는 그
한복판을 딱 찍는 가온찍기"[.]"야말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찰나 속에
영원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늘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며 곧이 곧 가온찍기"[.]"가 인생의 핵심이다. 그러나 깨닫는
가온찍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끝끝 내내 표현해보고 또 표현해보고
나타내보고 또 나타내보여야 한다. 내가 내 속알을 그려보고 내가 참나를
만나보는 것이 끝끝 내내이다.(다석어록, 박영호 편, 홍익재간, 31쪽)


3, 얼나와 제나

다석 류영모의 사상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얼나"라는 개념일 것이다. 류영모에 따르면 얼(靈/Pneuma/신성)은 영적 생명 혹은 성령 혹은 진리을 지칭한다. 따라서 제나(selfish ego) 혹은 몸나(bodily person)는 인간의 죄성인 탐진치를 완전히 벗지 못한 인간 곧 육적인 사람 혹은 자연인을 의미하며, 얼나는 진리를 완전히 깨친 사람으로서 득도견성(得道見性)한 사람 즉 영적인 사람(spiritual person)을 지칭한다. 따라서 얼나는 진리의 영인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진리를 깨친 사람 곧 진리를 깨침으로 모든 속박에서 해방된 온전한 자유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얼나는 영인靈人) 곧 영적인 사람, 진인(眞人) 곧 진리를 소유한 사람, 도인(道人) 곧 도(道)와 하나가 된 사람, 법인(法人) 곧 무상정등정각(正覺)을 한 사람을 지칭한다. 그런 점에서 예수와 석가는 진정한 의미의 "얼나"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류영모는 이 얼나의 개념을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사료된다.

류영모에 따르면 얼(靈)은 개체가 아니라, 전체이며, 무소부재며,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상대적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얼 혹은 얼나(신 혹은 신성)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신성 혹은 불성인 얼 혹은 얼나는 없는 곳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으나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제나가 죽고 없어질 때, 철저히 회개/회심하고 새로 태어날 때 "얼나"가 탄생하게 된다. 다석은 예수가 "나는 길이요 진리여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고 말한 나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한 나, 그리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고 말한 "나"는 바로 지연인/육신의 예수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영적 존재로서의 "얼나"를 칭한다고 말했다. 다석은 얼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의 의미란 내가 깨달은 얼나로 하느님의 아들이란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란 것을 깨달으면 아무 때나 죽어도 좋습니다. 내 속에
벌써 영원한 생명(얼나)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얼나는 죽
지 않는 생명이기에 이 몸은 아무 때나 죽어도 좋습니다. 밥 먹고 똥누고 하
는 일을 얼마나 더 보자고 애쓰는 일은 참 우스운 일입니다. 얼나는 죽음이
없습니다. 이 껍데기 몸이 죽는 것이지 참 나인 얼(얼나)은 죽는 것이 아닙니
다. 죽음이란 이 몸이 퍽 쓰러져 못 일어나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껍데기가
그렇게 되면 어떻습니까? 진리(하느님의 생명)인 얼나는 영원한 것입니다.


4. 탐진치 3독과 인간의 죄성(원죄)

류염모는 특히 인간의 실존 이해에 있어서 기독교와 불교의 양측의 입장을 함께 종합해서 본 듯하다. 즉 기독교는 인간의 현존재를 최초 인간 아담의 타락에 의한 원죄의 유전으로 인한 죄성이 만인에 보편적으로 깃드려 있다고 보는데 대해서 불교는 인간이해의 핵심으로서 탐(貪,탐욕), 진(瞋,분노/시기/질투/미움), 치(痴,무지/어리석음/성적충동) 3독을 보편적 성질로 이해한다. 이 탐진치는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동물이나 생물들의 삶의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류영모는 이 탐진치의 속성을 동물의 속성 곧 수성(獸性)이라고 말하고, 인간이 참으로 인간답게 즉 도덕적인 존재로 혹은 영적인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이 수성인 탐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의 자연적 특성을 탐진치 3독의 내재성으로 보는 불교적 인간 이해는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언급한 인간의 죄성(롬1:29-31,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분쟁, 악독, 수군거림, 우매, 배약, 무정함, 무자비 등)에 대한 진술과 매우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참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 동물적 요소인 탐진치의 속성 혹은 죄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류영모는 말한다. 따라서 그는 우리 인간이 참 자유인 즉 득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참사람 곧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인 '얼나"가 되기 위해서는 이 3독(죄성)을 극복하고 거기에서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 자유함을 얻는 일이 바로 제나 혹은 몸나에서 얼나로 거듭나는 일이다. 이 삼독(죄성)을 극복하는 일은 정신적 존재인 인간이 각자의 믿음(하느님에 대한 충신(忠信)과 깨달음 및 자신의 영적 정진을 통해서 이룩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종교(신앙)가 있고 경전이 있고 철학이 있고 도덕이 있고 과학이 있는 것이다. 류영모에게 있어서는 기독교와 불교는 이 탐진치(죄성)의 극복을 위한 최고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5. 씨알과 하느님의 아들

"얼나"의 개념과 함께 다석 류영모 사상의 가장 독특한 것의 하나는 그의 "씨알"사상이다. 류영모의 씨알 사상은 요한 일서3장 9절의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알)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의 말씀에 기초한 듯하다. 류영모는 이 구절을 자주 인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요한일서의 이 말씀은 요한복음 3장에 있는 예수 자신의 말씀인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5-6)란 말씀과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내용이다. 둘 다 하나님께로 났다는 것과 영(성령)으로 났다는 공통성이 있다.

따라서 씨알이란 육적인 나에서 영적인 나로 솟난(승화된) 인간 곧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즉 인간의 자연적 상태(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 존재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씨알의 원형은 바로 전적으로 위로부터 난자 곧 하나님의 아들(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다. 류영모에 따르면 하느님께로부터 옹글게 혹은 전적으로 난자가 바로 하나님의 동생자이다. 따라서 내 속에 와 있는 얼인 하느님의 아들(로고스 혹은 영적 생명)이 바로 내속의 하나님의 씨알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하나님의 씨 혹은 씨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류영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알인 독생자를 믿지 않으면 멸망한 것이다. 위로
거듭날 생각을 안 하니 그것을 모르니까 이미 죽은 것이다. 몸의 숨은 붙어 있
지만 벌써 멸망한 것이다. 이 몸이 죽지 않는다거나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하면
못쓴다. 위로 난 생명(얼나)을 믿어야 한다. 몸이 죽는 게 멸망이 아니다. 벗어
질게 벗어지고 멸망할 게 멸망하고 영원한 생명의 씨알이 자란다. 거듭난 생명
의 씨알로서 위로 나야 그게 사람 노릇을 바로 하는 것이다. 얼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짐승의 새끼다.(박영호 편, 동
방의 성인 다석 유영모, 도서출판 무애, 369쪽 이하)

류영모는 그의 씨알사상을 농사짓고 일해서 먹고 사는 모든 평민들에게도 적용시켰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의 아들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민중 혹은 민주(民主)라는 말을 "씨알님"이라는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어 썼다. 따라서 "위로 머리 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다. 모든 사람은 거듭날 생명의 씨(알)로 위로 솟나(거듭나)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람 노릇을 바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그에게는 민(民)이 씨알이고 주(主)로 받들어야 할 님들이다. 따라서 백성인 씨알님(民主)을 잘 받드는 것이 민주정치라고 하였다. 그래서 "씨알을 위함이 곧 하나님을 위함이다. 이 소자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씨알을 모른다 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 함도,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백성만 위한다 함도 다 거짓이다"라고 하였다. 류영모의 이 씨알 사상은 후에 그의 제자인 함석헌에 의해서 민중 신학의 중요개념의 하나인 "씨알철학" 사상으로 옮겨져서 19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와 운동의 중요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 씨알사상의 뿌리는 바로 다석 류영모에게서 나온 것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요한일서의 "하나님의 씨"(the Seed of God)란 말(요일3:9)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6. 기독교와 동양 종교들과의 만남

류영모는 그의 신앙생활의 초기 특히 그의 오산학교 교사 시절에는 열정적인 십자가 신앙의 소유자여서 그의 영향으로 교장 이승훈을 비롯하여 학교 전체가 기독교학교로 발전하였고, 거기에서 주기철, 한경직, 김주항, 함석헌 같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그가 오산학교를 떠나오면서 그는 톨스토이의 탈 전통신앙의 영향과 함께 유교 불교 도교 등 동양의 종교들의 경전들을 접하고 또한 그들을 깊이 연구하면서 그의 신앙은 점차 그들을 통섭(通涉)하는 통전적(統全的) 영성으로 승화되어 갔다. 그 중에서도 류영모는 특히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는 깊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류영모가 이해한 기독교와 불교의 친밀성 혹은 공통점의 가장 중요한 점은 불교의 공(空/빔/없음)과 기독교의 하나님(靈/하느님/한얼님)을 그 근본(본질)에 있어서 매우 밀접한, 어떤 의미로는 동일한 진리를 다른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본 점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빔(Emptiness) 속에 계시는 분" 혹은 "없이 계시는 분"이라는 말을 지주 했다. 이 말은 고대 기독교 신비가(영성가)들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앎의 한계를 전적으로 넘어서는 절대초월의 "궁극적 실재"(Absolute Reality) 혹은 "캄캄한 어둠 속에 계시는 하나님"(God in Darkness) 사상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류영모에 따르면 "빔" 곧 공(空) 혹은 허공은 지순(至純/ultimate purity)의 하나님의 마음을 지칭한다. 즉 허공의 상징은 진선미 곧 순수하고/깨끗하고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허공(빔)을 알고 허공(빔)을 존중하여 맘에 품고 살 때 아름답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다석이 아무리 유불선 등 동양의 전통 종교 사상들 속에 깊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다원주의적 입장으로 흐르거나 또는 종교 혼합주의적으로 흐르지 않고,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해한 하나님 아버지 신앙 곧 만인과 만유를 하나님의 한 부분(씨알들)처럼 차별 없이 대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신앙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석은 늘 (하나님을) 아버지(아버디) 아버지(아버디)라고 불렀으며,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알고 그 분을 위로(존귀히) 모시고 살며 또한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을 깨달아서 잠시적인/물질적인 세상에 함몰되지 말고 참사람 곧 영적인 사람 즉 "얼나"로 거듭나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고 살 것을 강조했다.

다석 류영모의 신앙(영성) 혹은 그의 종교적 입장에 관해 그의 사상적 제자인 박영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 류영모는 (말하기를) 예수는 공가가 못한 하나님 아버지와 부자유친(父子有親)을 하였다. 그러나 석가는 사고무친(四顧無親)이야 라고 하였다. 이는 공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못하였고 석가는 하나님 아버지를 입에 올리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였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류영모는 크리스천이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박영호의 이 표현은 다석이 동양의 전통종교들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 사상에 깊이 침전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의 큰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나오는 말:

▲ 다석 류영모


다석은 신학자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며 또한 목사나 장로와 같은 교회의 직분자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한 평신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깊은 (영성적인) 사상들이 나올 수 있을까? 필자는 그의 사상은 바로 그의 진지한 수도사적인 영성적인 삶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의 깊은 사상과 영성이 그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의 가정을 통해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의 가정이 곧 한 수도원의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일생은 한 가정에서 행해졌으나 그의 삶은 고대 이집트나 시리아의 수도사들의 삶과 같이 (동양의 고전/경전들과 함께) 성경에 대한 깊은 연구와 병행하여 지속적인 깊은 사색과 묵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그의 호 다석(多夕)은 바로 깊은 사색과 명상(기도)에 대한 그의 강한 애호(愛好)를 나타고 있다. 그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상사(相思) 혹은 영적인 밀애(密愛) 행위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신비주의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삶은 곧 연속적인 기도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의 영성은 바로 그의 지속인 기도(영적 혹은 신비적 사색)의 산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석은 진정한 의미의 탁월한 영성가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필자는 서구 기독교의 영성가들 즉 고대교회의 영성가들인 이레니우스와 클레멘트와 오리겐을 비롯해서 버나드와 마이스터 엑크할트 같은 중세교회의 영성과 루터와 칼빈을 중심한 종교 교개혁자들의 영성 및 근대 경건주의자들의 영성 그리고 토마스 머턴이나 샤르댕과 같은 현대의 영성가들에 이르기 까지 주로 서구 기독교의 영성가들의 중심사상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영성을 알리는 일에 주력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다석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들을 접하고 큰 감명(환희)과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류영모의 영성 곧 그의 삶과 사상이 서구교회의 어느 뛰어난 영성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고 심오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으며 또한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그의 영성(사상)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널리 알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늘의 우리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는 세계교회가 주목하는 큰 교회들이 있으나 세계에 내놓을만한 신학(특히 영성신학)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석의 사상과 영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정양모씨는 "앞으로 다석사상 연구가 진척되어 널리 알려지면 세계의 신학계가 놀날 날이 반듯이 오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고, 심일섭씨는 "21세기에 다석사상 이상의 신학사상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박재호씨는 세속화된 이 나라 기성종교들이 거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석사상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성천재단을 세운 고 류달영씨는 "다석을 공자 못지않게 어진 분이라고 말한다 해도 다석의 인품을 아는 한 사람으로써 거부감 없이 수긍하게 된다. 다석사상이라는 값진 유산을 이 민족의 정신적 뿌리로 삼고 나아가 국경과 시대를 넘어서서 인류의 유산으로 꽃피우도록 힘써야 하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위의 분들은 다석 류영모의 사상과 영성이 비단 우리 한국(교계 및 종교계)뿐 아니라 세계적 관심과 주목을 받아야 함을 인식한 분들이라 사료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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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봉 (211.232.208.151)

2011-04-05 21:39:12




예수고 다석이 자기 이름을 알리고자 했겠습니까?
다석이 가장 좋아하고 스승으로 삼아 닮고자 했던 이가 예수였지요. 예수를 그냥 믿기만 한 것이 아니고, 예수의 삶을 자신도 살고자 했어요. 그런 이가 어찌 다석 뿐이었겠어요? 그리고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것도 어떻게 예수가 산 것과 똑같아야만 하겠냐고요?

생김새도 다르고, 삶의 여건, 조건들이 다 다르거늘, 수많은 예수가 각각 그 자리에 서있다면 어떤 삶을 살았겠어요? 그것을 찾는 것이 결국은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행동에서 나오는 그 모양을 보면 어디 겁나서 예수를 믿을 수 있겠냐고요?

아마도 다석의 예수 사랑은 그런 점에서 지금 이 땅의 예수믿는다는 사람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저는 kinbong 이란 이름으로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필자의 건필과 이 땅의 예수 사랑에 훈풍이 불기를 기도하는 사람이지요. 예수나 다석이라는 이름이 우상이 되어서도 아니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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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5

톨스토이 고백록 A Confession - Wikipedia

A Confession - Wikipedia



A Confession
AuthorLeo Tolstoy
Original titleИсповѣдь
CountryRussia
LanguageRussian
Published1882 (publication year)
Media typePrint (paperback, hardcover)
TextA Confession at Wikisource
A Confession (pre-reform RussianИсповѣдь; post-reform RussianИсповедьtr. Íspovedʹ), or My Confession, is a short work on the subject of melancholia, philosophy and religion by the acclaimed Russian novelist Leo Tolstoy. It was written in 1879 to 1880, when Tolstoy was in his early fifties.[1]

Content[edit]

The book is a brief autobiographical story of the author's struggle with a mid-life existential crisis. It describes his search for the answer to the ultimate philosophical question: "If God does not exist, since death is inevitable, what is the meaning of life?." Without the answer to this, for him, life had become "impossible".
The story begins with the Eastern fable of the dragon in the well. A man is chased by a beast into a well, at the bottom of which is a dragon. The man clings to a branch that is being gnawed on by two mice (one black, one white, representing night and day and the relentless march of time). The man is able to lick two drops of honey (representing Tolstoy's love of his family and his writing), but because death is inevitable, he no longer finds the honey sweet.
Tolstoy goes on to describe four possible attitudes towards this dilemma. The first is ignorance. If one is oblivious to the fact that death is approaching, life becomes bearable. The problem with this for him personally is that he is not ignorant. Having become conscious of the reality of death, there is no going back.
The second possibility is what Tolstoy describes as Epicureanism. Being fully aware that life is ephemeral, one can enjoy the time one has. Tolstoy's problem with this is essentially moral. He states that Epicureanism may work fine and well for the minority who can afford to live "the good life," but one would have to be morally empty to be able to ignore the fact that the vast majority of people do not have access to the wealth necessary to live this kind of life.
Tolstoy next states that the most intellectually honest response to the situation would be suicide. In the face of the inevitability of death and assuming that God does not exist, why wait? Why pretend that this vale of tears means anything when one can just cut to the chase? For himself, however, Tolstoy admits he is too cowardly to follow through on the most logically consistent response.
Finally, Tolstoy says that the fourth that he is taking is the one of just holding on, living despite the absurdity of it, because he is not willing or able to do anything else. So it seems utterly hopeless - at least without God.
So Tolstoy turns to the question of God's existence. After despairing of his attempts to find answers in classic philosophical arguments for the existence of God (e.g. the Cosmological Argument, which reasons that God must exist based on the need to ascribe an original cause to the universe), Tolstoy turns to a more mystical, intuitive affirmation of God's presence. He states that as soon as he said "God is Life," life was once again suffused with meaning. This faith could be interpreted as a Kierkegaardian leap, but Tolstoy actually seems to be describing a more Eastern approach to what God is. The identification of God with life suggests a more monistic (or panentheistic) metaphysic characteristic of Eastern religions, and this is why[citation needed] rational arguments ultimately fall short of establishing God's existence. Tolstoy's original title for this work indicates as much, and his own personal "conversion" is suggested by an epilogue that describes a dream he had some time after completing the body of the text, confirming that he had undergone a radical personal and spiritual transformation.

History[edit]

The book was originally titled An Introduction to a Criticism of Dogmatic Theology, as the first part of a four-part work that also included A Criticism of Dogmatic TheologyThe Four Gospels Harmonized and Translated (the basis for The Gospel in Brief), and What I Believe (also published in English as My Religion and My Faith).[2]
The first attempt at its publication took place in 1882 (Russkaya Mysl, No 5), but Tolstoy's work was removed virtually from the whole edition of the journal[clarification needed] by Orthodox Church censorship. The text was later published in Geneva (1884), in Russia as late as 1906 (Vsemirnyj Vestnik, No 1).[3]

References[edit]

External links[edit]




톨스토이 고백록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박문재 (옮긴이)현대지성2018-08-01 원제 : A Conf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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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160쪽

현대지성 클래식 21권. 톨스토이의 삶은 40대에 정지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사는 게 두려웠고, 삶에서 도피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삶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삶의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과학, 역사,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탐독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학문에서는 별 도움을 얻지 못했다. 결국 톨스토이는 정신적 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위기는 51세 때 절정에 이르렀고,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 시점에서 쓴 책이 바로 <고백록>이다.

인간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톨스토이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반평생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그 답을 찾았다. <고백록>에는 그토록 찾아 헤맨 의문에 대한 답과 그것을 찾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이 담겨 있다. 전반부에는 자신의 삶과 사람들에 대한 회의,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러나 차츰 생각을 정리하고, 그가 찾은 답을 차분하게 제시한다. 그 답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한다.


목차


제1장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제2장 나의 청년 시절
제3장 진보에 대한 미신적 믿음과 형의 죽음
제4장 정지되어 버린 나의 삶
제5장 학문과 나의 삶에 대한 의문들
제6장 현인들의 인생관
제7장 인생에 대한 네 가지 접근 방법
제8장 대중들로부터 깨달은 것
제9장 이성에 기초하지 않은 지식
제10장 새로운 삶에 대한 발견과 의문
제11장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12장 하느님을 찾는 과정
제13장 인간이 사는 목적 : 신앙의 본질
제14장 종교의식에 대한 의문들
제15장 참된 신앙
제16장 진리를 추구하며
후기

해설 / 에일머 모드
톨스토이의 생애
톨스토이 연보
접기


책속에서



P. 21 진보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또 하나의 사건은 내 형의 죽음이었습니다. 내 형은 지혜롭고 선량하며 진지한 사람이었는데도 아직 젊은 나이에 병에 걸쳐서 일 년 넘게 힘든 투병생활을 하다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살아 왔고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고통스럽게 죽... 더보기
P. 71 이성에 기초한 지식의 길을 따라가서는 삶을 부정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오직 이성을 부정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뿐이었고, 이것은 내게는 삶을 부정하는 것보다 한층 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P. 72 모순이 생겨났고, 이 모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이성이라고 불러왔던 것이 사실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이성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내게 비이성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 더보기
P. 75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유일한 지식이라고 생각해왔던 이성적 지식 외에도, 인류 전체가 소유해 온 또 다른 종류의 지식, 곧 이성에 기초하지 않은 지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류 전체에게 삶의 의미를 알게 해주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신앙이라는 지식이었습니다. 신앙은 내게 이전과 마찬... 더보기
P. 89~90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인간도 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에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동물들과 다릅니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할 때, 나는 그런 인간은 행복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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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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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남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가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유년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 더보기


최근작 : <톨스토이 단편선>,<안나 카레니나 (합본 특별판)>,<철학자 소크라테스 죽음> … 총 1460종 (모두보기)

박문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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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및 대학원 구약학(Th. M.)을 마치고, Biblica Academia에서 라틴어를 수학하였다. 역서로 헤르만 리델보스의 『바울 신학』, D. A. 카슨의 『요한복음』, 비슬리 머리의 『예수와 하나님 나라』,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 F. F. 브루스의 『바울』, 프란시스 투레틴의 『칭의』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 번역한 책으로 『칼빈 주석』(「공관복음」, 「요한복음」, 「로마서」)이 있다.


최근작 : <매튜 헨리 주석 : 욥기> … 총 12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의 삶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자살 충동을 느꼈던 세계적인 대문호의 진솔한 고백

톨스토이의 삶은 40대에 정지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사는 게 두려웠고, 삶에서 도피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삶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삶의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과학, 역사,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탐독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학문에서는 별 도움을 얻지 못했다. 결국 톨스토이는 정신적 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위기는 51세 때 절정에 이르렀고,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 시점에서 쓴 책이 바로 『고백록』이다.
인간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톨스토이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반평생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그 답을 찾았다. 『고백록』에는 그토록 찾아 헤맨 의문에 대한 답과 그것을 찾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이 담겨 있다. 전반부에는 자신의 삶과 사람들에 대한 회의,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러나 차츰 생각을 정리하고, 그가 찾은 답을 차분하게 제시한다. 그 답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불명확한 인생의 실체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톨스토이의 고백을 통해 그와 같이 새로운 삶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톨스토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일에 자신의 삶과 지성을 온전히 바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된 것은 그의 나이 40대 때였다. 톨스토이는 삶의 수수께끼를 이해하는 열쇠를 찾기 위해서 자신과 같은 귀족 계층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의 삶을 살펴봤다. 그리고 주요 종교 및 과학, 철학에 이르는 저작들을 읽고 연구하는 데 10여년을 사용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우화로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조금 후에는 죽음의 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삶의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 속으로 떨어져 있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전에는 나의 고통을 덜어 주는 꿀들을 핥아 먹으려고 했지만, 그 꿀들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였고, 낮과 밤이라는 흰 쥐와 검은 쥐는 내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용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꿀은 내게 더 이상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내 눈에는 오직 내가 피할 수 없는 용과 쥐들만이 보였고, 나는 그것들로부터 내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이 지어낸 우화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삶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는 삶에 대한 의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네 가지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방법은 “무지”였다. 여기에서 무지는 삶이 악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방법은 “쾌락주의”였다. 쾌락주의는 삶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용이나 쥐들을 애써 외면한 채 우리가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을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누리고, 우리 눈앞의 잎사귀에 잔뜩 묻어 있는 꿀을 최대한 맛있게 핥아 먹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이 악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인위적으로 삶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고 결단력 있는 몇몇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이다.
네 번째 방법은 “약함”에서 온다. 약함으로 인한 방법은, 삶은 악하고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삶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죽음이 삶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살을 통해 이 기만적인 삶을 신속하게 끝장내는 데 필요한 결단력과 강단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의 삶에는 그래도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시간을 끌며 기다린다.

마침내 인생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톨스토이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그는 반평생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답을 찾았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인간도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에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동물들과 다릅니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할 때, 나는 그런 인간은 행복하고 그의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느낍니다.”

톨스토이는 그토록 찾아 헤맨 의문에 대한 답과 그것을 찾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고백록』에 오롯이 담았다. 접기








내용은 좋은데 오탈자가 상당히 많네요. 존대 어투에서 갑자기 ~이다 라고 하기도 하고ㅡㅡ
두비둥둥 2018-12-0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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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은 ‘3I‘다.


C (confession) = 3I (Identity / Innovation / Ideal)



고백록에 대한 나의 결론이다.

즉 고백록은 다음의 세가지 질문에 대한 톨스토이의 진솔한 대답이다.

나는 누구인가? (Identity)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Innovation)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Ideal)


1. Identity

고백록은 나에 대한 정체성 찾기다.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면 '나는 창의적인 예술가다' 와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가졌던 톨스토이가 적지 않는 나이에(51세) 이러한 고민에 빠지게 된 것도 흥미롭다.

고백록은 회심이다. 회심(回心, conversion)이란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다. 죄를 향해 나가다가 삶의 방향을 바꾸어 성장하는 과정이 바로 회심이다. 아이덴티티가 없으면 회심의 바람이 가슴속에 불어오기 마련이다. 가슴은 텅 비고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럽다. 톨스토이는 말했다 "나의 삶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후에 다시 일어서서 전진할 수 있었다.


2. Innnovation

고백록은 톨스토이 혁신의 신호탄이다. 마음이 허락하는 변화를 한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그런 변화일 것이다. 철저한 자기 고백과 그를 통한 깨달음은 그의 위대한 창작의 저수지가 되었다. 인생과 사상과 작품의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른바 '톨스토이즘'의 탄생이다. 소설가 이전에 사상가, 종교예술가, 도덕가, 교육자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다. 마지막 소설 <부활>의 네흘류도프는 곧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이다.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


3. Ideal

고백록은 이상주의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삶이란 지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다. 실천 가능성에 많은 우려가 따른다. 빈부와 신분의 격차가 없고, 자유, 도덕, 신앙의 꿀이 넘치는 사회를 지향하고 신앙과 이성의 균형을 이루고 예수의 가르침을 가지고 살되 그것이 이성의 기준에도 부합되는 삶. 즉 진리에 충만한 삶을 지향한다. 톨스토이 자신은 토지를 나누어 주고 농민과 함께 생활을 하는 등 최선의 실천을 경주했다. 톨스토이는 또한 영원히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것은 곧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톨스토이처럼 하지 못했다. 이상주의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옥에티이다.

* 장 자크 루소 <고백록>, *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를 더불어 읽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알라딘: [전자책] 톨스토이 고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