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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

반야심경 - 다석사상으로 본 불교, 다석사상전집 5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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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 다석사상으로 본 불교, 다석사상전집 5

박영호 (지은이)두레2001-11-29



408쪽152*223mm (A5신)571gISBN : 9788974430320



책소개다석 류영모(多夕 柳永模)의 사상에 입각해 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반야심경>을 역해(譯解)했다. 지은이 박영호는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다석사상을 일반에 널리 알려온 다석 류영모의 제자. 이 책은 지난 1961년 서울중앙 YMCA 연경반 강좌에서 들은 다석의 <반야심경> 강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반야심경>을 쉬운 우리말로 번역, 풀이한 뒤, 다석의 종교다원주의적 관점과 비교종교학인 관점에서 <반야심경>과 <성경>을 비교했다. 필요한 부분에는 해설을 붙였다. 결론적으로 석가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스승인 다석 선생은 여러 종교의 교의(敎義)와 방법를 통합해 궁극적인 하나의 진리를 발견해 낸 분이다. 그것이 귀일(歸一)사상이다. 상대세계를 벗어나 절대세계를 추구할 때, 인간은 니르바나님(하느님)을 만나고 니르바나님(하느님)과 일치하여 하나가 된다는 내용. 그런 맥락에서 부처님과 예수님의 사상도 같다고 보았다.




제자인 박영호도 같은 관점에서 <반야심경>을 해석했다.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심경(prajna-paramita)>의 준말로 불교 가르침의 요체. 여기에서 prajna-paramita(반야바라밀다)는 '니르바나님(절대세계)에게 이르는 지혜(얼나)'라는 뜻이다.




박용호는 이 '얼나'로 솟아남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 삶의 참뜻을 깨닫고, '제나'(自我)에서 영생의 '얼나'(靈我)로 솟아나자는 것이다. 탐진치(貪瞋痴)로 사는 '나'(自我)는 '거짓된 나'이므로 영(靈)적인 '나'로 거듭나 '참다운 나'에 이르자고 말했다. 이 '참나'는 다시 '절대존재(니르바나님)'와 이어진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다석의 사상의 핵심을 <반야심경>을 통해 다시 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차

1.영원한 생명을 깨달은 석가 붓다 ...19 2.석가붓다의 말씀인 불경 ...26 3.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산물 ...35 4.반야바라밀다심경의 가치 ...43 5.현장이 번역한 반야심경 ...50 본편 - 금강경 풀이1.관자재보살은 누구인가 ...59 2.니르바나님은 내 맘속에 있다 ...72 3.짐승인 제나는 거짓나 ...85 4.얼나는 모든 괴로움을 떠났다 ...98 5.지혜 으뜸의 샤리푸트라 ...112 6.있다 없어지는 것은 거짓이다 ...123 7.제나가 죽어야 맘이 빈다 ...134 8.다시 샤리푸트라를 불렀다 ...148 9.니르바나님은 없이 계신다 ...159 10.영원한 절대존재 니르바나님 ...169 11.얼나에는 육근이 없다 ...181 12.얼나에는 죽지 않는다 ....194 13.제나로 죽어야 얼나를 깨달아 ...208 14.얼나는 얻는 것이 아니다 ...222 15.짐승 성질을 이긴 참사람 ...234 16.니르바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247 17.'나'라는 생각이 없어야 빈 맘 ...260 18.얼나는 두려움이 없다 ...271 19.거꾸로 박힌 꿈꿍이를 멀리 떠나자 ...286 20.깨달으면 얼나로 하나다 ...316 21.니르바나님이 참나이다 ...333 22.마음 모아 외우면 뚫린다 ...346 23.니르바나님께 가자 ...358 24.니르바나님께 이르는 말씀을 바친다 ...370 부록-천부경




저자 및 역자소개

박영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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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학교를 다니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나 열일곱 살에 헌병대에 징집되었다. 살벌한 전장에서 그는 죽이는 사람과 죽어 가는 사람, 죽은 사람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밤이 되어 눈을 감아도 해골과 시체들이 눈앞에 떠다녔다. 그렇게 신경쇠약에 걸려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며 방황하던 중 톨스토이를 알게 되었다. 그는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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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제나에서 얼나로>,<예수와 다석>,<청교도 실천신학> … 총 3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종교사상가이자 종교다원주의의 선구자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다석 류영모(多夕 柳永模)의 사상에 입각해 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반야심경』을 역해(譯解)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미 다석사상을 소개하고 알리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바 있는 다석의 제자 박영호(朴永浩)이다. 그는 1961년 서울중앙YMCA 연경반 강좌에서 다석의 『반야심경』 강의를 들은 것을 바탕으로 『반야심경』을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고 풀이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석의 종교다원주의적 관점과 비교종교학인 관점 하에 『반야심경』을 『성경』등과 비교해 해설을 붙여 놓았다. 따라서 불교인은 물론 타 종교인들까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또한 석가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 놓았는데, 이것이 이 책의 특징이자 다른 『반야심경』 해설서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동서양의 주요 종교와 고전을 깊게, 폭넓게 연구했던 다석은 여러 종교의 교의(敎義)와 방법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 궁극적인 진리는 '하나(一)'로서 끝내는 같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것이 다석의 귀일(歸一)사상이다. 즉 그것은 상대세계를 벗어나 절대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며, 상대세계를 넘어설 때 인간은 니르바나님(하느님)을 만나고 니르바나님(하느님)과 일치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 하나(一)로 돌아가자는 것이 부처님과 예수님의 사상이며 신앙이다. 따라서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어떤 서물(庶物)이나 인물(人物)이나 조형물(造型物)을 예배하는 일을 그만두자는 것이다. 부처님과 예수님은 절대이며 전체인 하나(一) 외에는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절대세계를 추구하는 것은,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제나'(自我)와 육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몸나'에서 벗어나 참다운 자아인 '얼나'(靈我, 영적인 나, 불교에서 말하는 法身)를 찾는 것이라고 다석은 보았다. 사람이 이 '얼나'(法身)를 찾아 참다운 자아에 이를 때 절대세계와 하나가 되어 생사(生死)를 넘어서는 참다운 자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다석사상의 핵심이다. 다석은 기독교의 성령(聖靈)이나 불교의 불성(佛性), 유교의 속알(德), 노장사상의 도(道)도 깨우치면 모두 하나의 진리로 귀착된다고 가르쳤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 서서 불교와 석가붓다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반야심경』(반야다라밀다심경)은 불교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불교의 경전이다. 이런 까닭은 『반야심경』이 260자에 한자로 씌어진 짧은 경전이지만 불교의 핵심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석 류영모도 서울 종로에 있는 중앙YMCA 연경반 강좌에서 불경을 강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불교는 그 역사가 2천5백 년이나 되는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사상이다. 우리가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자면 불교를 알아야 한다. 불교를 모르고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불교의 경전은 어느 종교의 경전보다 방대하다. 그런데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알면 불교 전반을 알 수 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은 불교의 요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반야심경』을 아는 것과 얼나를 깨닫는 것과는 다른 일이라고 말한다. 얼나(法我)를 깨달아 제 맘속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면 석가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뛰어넘어 얼나(法我)의 근원인 니르바나님을 우러러야 한다고 말한다. prajna-paramita(반야바라밀다)는 니르바나님(절대세계)에게 이르는 지혜(얼나)라는 뜻이다. 이 책은 각자 맘속에 있는 참 붓다를 깨닫고 그것을 의지해 '얼나'로 솟나는 체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참뜻을 깨닫고, '제나'(自我)에서 영생의 '얼나'(靈我)로 솟나 니르바나님으로 영원 무한하자고 일러 준다. 탐진치(貪瞋痴)로 사는 '나'(自我)는 '수성(獸性)의 나이기 때문에 '거짓된 나'이며 이러한 수성을 벗어나 영(靈)적인 '나'로 바꾸어야만 '참다운 나'에 이르러 절대존재(니르바나님)와 이어진다는 다석의 깨우침을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얻게 될 것이다. ♣ 다석 류영모의 반야바라밀다심경 풀이 있다시보이(觀自在)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깊이 갔을 적에 다섯 꾸럼이(五蘊) 비임(空)을 비춰보니 모든 쓴 걸림(苦厄)을 건넜다. 눈 맑은 이(舍利子)야, 빛깔(色)이 비임(空)과 다르지 않고 비임이 빛깔과 다르지 않다. 빛깔이 바로 이 비임. 비임이 바로 이 빛깔. 받·끎·가·알(受想行識)이 또한 다시 이 같으다. 눈 맑은 이야. 이 모든 올(法) 비임 보기는 낳도 않고 꺼지지도 않고. 때 끼지도 않고 깨끗도 않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이러므로 비임 속엔 빛깔 없고, 받·끎·가·알도 없고, 눈계(眼界)도 없고 뜻알계(意識界)까지도 없고, 어둠(無明)도 없고, 또 어둠 다 함도 없고, 늙어 죽음도 없고, 또한 늙어 죽음 다함까지도 없다. 쓴·몬·끄·길(苦集滅道) 없고, 앎(智) 없고, 얻(得)도 없다. 얻음이 없음으로써 보리살타가 반야바라밀다로 말미암아 마음의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무서움 있을 게 없어, 거꾸로 박힌 꿈꿍(夢想)에서 멀리 떠났다. 마지막 니르바나(涅槃) 셋계(三世) 모든 부처가 반야바라밀다로 말미암아 아누다라삼먁 삼보리를 얻었으므로 반야바라밀다가 이 크게 신통한 욈(呪), 이 크게 밝은 욈, 이 위없는 욈, 이 댈 수 없는 댐(等)욈으로 온갖 씀(苦)을 저칠 수 있음이 참이고 거짓 아님을 앎으로 반야바라밀다 욈을 말하노니 곧 욈을 말하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디사바하. ♣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1890∼1981) 다석 류영모는 온 생애에 걸쳐 진리를 추구하여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이다. 젊어서 기독교에 입신(入身)했던 다석은 불교와 노장(老莊), 그리고 공맹(孔孟)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철학사상을 두루 탐구하여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진리를 깨달아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신적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1910년대에 우리나라 3천재, 5천재의 하나라는 말을 들었고 남강(南岡) 이승훈, 정인보, 최남선, 이광수, 문일평 등과 교유하면서 그들의 외경을 받았다. 다석은 평생을 오로지 수도와 교육에 헌신하면서 일생 동안 '참'을 찾고 '참'을 잡고 '참'을 드러내고 '참'에 돌아간 '성인'이다. 김교신(金敎臣), 함석헌(咸錫憲), 이현필, 류달영 같은 분들이 다석을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는데, 특히 오산학교 제자였던 함석헌은 생전에 다석을 그리며 "내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오늘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묻혀 있었던 보화와 같은 다석의 사상이 다시 드러나 빛을 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어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마하트마 간디처럼 드높은 경지에 이른 위대한 정신적인 스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자들은 다석의 종교다원주의가 서양보다 70년이나 앞선 것에 놀라고 있다. 다석의 종교사상은 1998년 영국의 에딘버러(Edinburgh)대학에서 강의되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자기를 꼭 지키고 있는 분이란 것이 몸매에나 말씨에나 걸음걸이에나 늘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도 마음을 헤쳐놓음(放心)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앉으면 언제나 꿇어 앉으셨고 한번도 무릎을 세우거나 다리를 뻗거나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이때까지 인생을 헛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석헌 저자 소개박영호(朴永浩)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0여 년 동안 다석(多夕)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다. 현재 성천(星泉)문화재단의 다석사상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성천아카데미에서 다석사상과 함께 노장(老莊)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문화일보」에 다석사상에 관한 글을 325회에 걸쳐 연재했다. 그 밖의 저서 및 엮은 책으로는 『중용(中庸) 에세이』,『다석어록』,『다석 추모문집』,『노자(老子)』,『장자(莊子)』,『다석 류영모 명상록』,『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상)』,『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하)』,『다석 류영모가 본 예수와 기독교』, 『다석 류영모가 본 불교, 금강경』 등이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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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모 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많은 듯; 김흥호의 노자익 강해 4권 참조 구매

madwife 2015-12-1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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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 생각이 난다. 박영호씨에게 감사하다. 허나 소소한 점과 치명적인 점을 지적한다.




-원어 인용이 실수가 많다 (프뉴마 표기가 모두 잘못되었다. p. 298 메타베베켄에도 철자가 빠져있다)




-몸 없는 부활이 아니라, 예수 부활은 `얼몸`이다.(얼나 얼몸=참나, 눅9:29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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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다고기 2014-04-0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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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새길이야기 :: 최성무 - 다석 류영모의 생각과 믿음

다석 류영모의 생각과 믿음
Webzine 새길이야기 ::
3호 한국의 종교개혁자들 / 생각하다


2017.11.29 17:15








최성무

다석학회




다석 류영모(1890~1981)의 삶



다석 류영모는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이다. 그는 성경·불경·노자·장자·공자와 맹자를 두루 탐구하였으며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을 세웠다.



류영모는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청을 받아 평안북도 정주에서 2년간 오산학교 교사를 지냈다. 1921년에 조만식의 뒤를 이어 오산학교 교장이 돼 1년간 봉직하였다. 그때 함석헌이 졸업반 학생이었다. 1928년부터 종로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1963년까지 강의하였다. 51세에 삼각산에서 하늘과 땅과 몸이 하나로 꿰뚫리는 깨달음의 체험을 하였다. 이때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세 끼를 합쳐 저녁을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多夕)이라 하였다. 일생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무명이나 베로 지은 거친 옷을 걸치고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생전에는 함석헌과 김흥호 같은 20세기 한국 기독교를 이끈 지도자들의 스승으로 알려졌다. 1981년 세상을 떠난 후에야 독창적인 종교 사상의 체계를 세운 철학자로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의 제자 박영호(유일하게 마침보람을 받은 이)의 많은 저서에 의해 그의 사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2005년에 ‘다석학회’가 만들어졌으며 2008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독창적인 사상가로 소개되었다. 2016년 ‘다석 아카데미’가 설립되어 여의도 ‘성천문화재단’에서 매주 ‘다석사상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35년 동안 이어진 연경반 강의에서 다석은 스스로 지은 시조와 한시뿐만 아니라, 유교경전, 성경, 불경의 경구를 직접 모조지에 써서 칠판에 붙여놓고 강의하였다. 다석의 강의는 예수와 붓다와 공자, 삶과 죽음, 절대세계와 상대세계, 민주주의 인권을 넘나들었다. 방대한 지식과 독창적인 생각이 어우러지는 지혜의 향연이었다. 영감이 샘솟아 신명이 나면 자작한 시조나 한시에 가락을 붙여서 노래처럼 읊었고 때로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기도 하였다.



류영모의 생각



오늘날 이 사회는 도덕, 윤리의식의 파탄이라 할 수 있는 아노미(Anomie) 증상을 보인다. 이는 한마디로 진리인 하나님의 성령 결핍증이다. 이 나라는 여러 종교가 번창한 종교의 나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성령결핍증이 무슨 말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나라 종교집단은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 진리의 성령(불성)과는 거리가 멀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 알뜰히도 착한 일을 하면 순(舜) 같은 사람들이고, 닭 울면 일어나 살뜰히도 잇속을 챙기면 도적 같은 사람들이다.”(「맹자」 진심 편)라고 하였다. 착한 일을 하는 순(舜) 같은 이는 드물고 잇속을 챙기는 도적 같은 이들만 많다.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은 예수는 팔레스타인 유혹의 돌산이 있는 광야에서 40일 동안이나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다. 그때 예수는 밥을 먹어야 사는 요셉과 마리가 낳은 몸의 나가 참나(眞我)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성령)으로 사는 얼의 나가 참나인 것을 깨달았다. 얼의 나는 하나님의 생명이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자아(自我)의 의식(意識)을 점령하여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이 자율성이다. 그래서 예수가 이르기를 “물처럼 붓는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몸으로 난 것은 몸이요 얼로 난 것은 얼이니 내가 네게 얼로 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요한 3:5~7)고 하였다. 이것은 석가가 부다가야에서 진리를 깨달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류영모(柳永模)도 말하기를 “나도 예수, 석가가 마음으로 경험한 것을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류영모 자신도 얼나로 솟났다는 말이다. 우리도 얼나로 거듭난 사람의 언행을 보고 들어서 얼나로 거듭나야 한다.



사람을 신격화해서 하나님처럼 받들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얼과 참으로 예배드릴 분은 하나님뿐이다. 신비한 일 가운데 신비한 것은 이 우주 속에 내가 있다는 점이다. 우주가 있는 것이지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주와 나는 하나이다. 우주의 탄생이 나의 탄생이다. 나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라 우주의 죽음이다. 우주의 탄생에서 나의 탄생이 이어졌듯이 나의 죽음이 우주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나는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의 죽음이 뇌관의 폭발이 되어 남산 외인 아파트가 허물어지듯 우주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 우주가 가리고 있던 참나의 모습이 문득 드러났다. 문득 깨달음(頓悟)이다. 그리하여 비롯도 없고 마침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영생의 존재가 나타났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신령(神靈)의 존재가 밝았다. 이 절대존재가 참나인 하나님이시다. 예수가 말하기를 “나타내려 하지 않으면서 숨은 것이 없고 드러내려 하지 않으면서 감춘 것이 없다.”(마가 4:22)고 하였다. 이것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류영모가 말하기를 “이 우주는 거짓이다. 이 생명은 가짜다. 이것은 있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거짓이요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한 참생명을 찾아야 한다. 참나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거짓 존재는 없어져야 하고 가짜 생명은 죽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죽을 몸뚱이를 위해서 애를 쓴다. 그리하여 이제는 평균수명이 여든 한 살로 늘었다. 일이십년 더 살게 된 것이 큰 복이라도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늙고 병든 몸으로 가족과 사회의 푸대접을 받으면서 서럽게 사는 것이 어찌 복된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몸뚱이를 위해 바치는 정성을 영원한 생명을 위해 바쳐야 한다. 예수는 영원한 생명인 얼의 나를 위해 맘과 뜻과 힘을 다하라고 하였다. 우리가 류영모에게 배우고자 하는 것은 멸망의 몸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할 얼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 얼나를 위해 살면 멸망의 몸나도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영광을 입고 보람을 얻게 된다.



우주와 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를 나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류가 70억에 이르러도 주관으로 나뿐이다. 이 나란 누구인가? 나만은 나를 알아야 할 터인데 아는 것 같아도 사실은 모른다. 기껏 안다는 것이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사는 누구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나를 알았다고 할 수 없다. 나란 우주적 소산(所産)이다. 이 우주가 없으면 나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를 낳은 우주를 모르고는 나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이 우주의 주체인 실재(實在)와 나와의 관계가 밝혀져야 나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학문화 시킨 것을 우리는 종교라 한다. 종교의 경전 맨 처음에 반드시 우주론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종교란 우리들 각자의 의식에 눈뜨는 장(場)인 우주현상의 배후 내지 그것을 초월한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뜻한다.”(아놀드 토인비, 「회고록」)



“이성(理性)은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와 사람과의 관계를 정립하도록 하는 능력이다. 이제 모든 사람의 우주에 대한 관계는 동일하기에 이 관계를 설정하는 종교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한다. 사람들이 하나 되는 것은 사람들에게 다다를 수 있는 육체 정신의 최고의 행복을 준다. 종교란 인간과 무한(無限)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톨스토이 「종교론」) 그 우주론이 얕고 깊고는 둘째 문제이다. 우주와 나와의 관계를 정립하려는 우주인으로서의 자각이 중요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로 말하신 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우둔하고 무식하도다.”(예레미야 10:12~13)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우주인의 관념을 가진다면 주소가 어디에 있겠는가.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면 우주에 산다고 하면 그뿐이다. 도대체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것이 우스운 것이다. 우주공간에 태어난 것으로 알면 어디에서도 잘 수 있고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적어도 태극천하(太極天下) 그 어디에 갖다놓아도 ‘나는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 우주를 삼킬 듯이 돌아다녀야지 집 없다 걱정, 방 없다 걱정, 병 난다 걱정, 자리 없다 걱정, 그저 걱정하다가 판을 끝내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우주여행가가 되어 훨훨 돌아다닌다고 꼭 우주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불꽃이 문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문제이다. 어떤 이(칸트)는 일생동안 고향에서 사십 리 밖을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생각의 불꽃이 우주의 주인이 되면 그것으로써 우주인으로 사는 것이 된다.”(류영모, 「다석 어록」)



그런데 오늘의 종교는 어떤가. 기독교·불교·유교 할 것 없이 모든 종교가 우주와 나와의 관계를 알아보려고도 않는다. 천문학자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같은 우주물리학자들에게만 우주를 맡기려 한다. 그들은 우주의 일부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데 애쓰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우주 전체와 나와의 관계를 정립할 생각조차 못한다. 우주 전체와 나와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밝힌 이가 예수·석가·공자·노자 같은 성현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스승들의 가르침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종교 본연의 의미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엉뚱한 복(福) 타령만 한다. 화복(禍福)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복을 사고팔기에 여념이 없다. 노자(老子)는 말하기를 “화에는 복이 붙어 있고 복에 화가 엎드려 있다(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노자」 58장)고 하였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신앙도 없이 살고 있다. 일부 교양 있고 부유한 소수인은 교회의 암시(暗示)에서 풀려나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대개의 경우 모든 신앙을 어리석은 짓으로 보거나 또는 대중 위에서 권세를 휘두르는데 유리한 무기로 본다. 이와는 달리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신앙하는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가 교회의 최면에 걸려 신앙의 형태로 암시되는 것을 맹종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우주에 있어서 사람의 좌표를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 아리송하게 한다. 이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무엇도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하고 있는 소수와 교회의 최면술에 걸려 있는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두 부류의 상호관계로 오늘의 소위 종교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톨스토이, 「종교론」)



우주의 실재(實在)와 나와의 관계를 밝히는데 있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밖으로 멀리멀리 나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안으로 깊이깊이 들어가는 길이다. 밖 길은 태양계를 벗어나, 은하우주를 벗어나 무한우주로 광속(光速)보다 몇 만 배 더 빠른 심속(心速)으로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가 속한 은하우주에만도 1천억 개 이상의 별들이 구름덩어리를 이루고 있어 성운(星雲)이라 한다. 은하우주와 같은 우주가 1천억 개 이상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별의 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대우주의 태극계에는 약 1백50억 년 전에 우주란(宇宙卵)이란 덩어리(樸)가 터져서 우주 개벽이 이루어졌다고 짐작하고 있다. 이를 대폭발(Big Bang)이라 이른다. 노자의 「도덕경」에 등걸이 흩어져서 그릇이 되었다(樸散則爲器)고 하였는데 박산위성(樸散爲星)이 된 것이다. 우주란이란 박(樸)이 터져서 별이 되는 그 광경을 상상해보라. 불꽃놀이처럼 별구름꽃이 화려하고 장엄하게 펼쳐졌을 것이다. 이 별 불꽃놀이에 비하면 사람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란 소꿉장난도 못 된다. 대우주의 별구름 불꽃놀이는 1백50억 년을 이어져오고 있다. 블랙 홀(black hole)이니 화이트 홀(white hole)이니 하는 것이 바로 이 불꽃놀이의 연속이요 준비다. 이것이 불경에서 말하는 수많은 꽃으로 장엄하다는 화엄(華嚴)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성운단(星雲團)의 대우주가 장엄하지만 그 성운단들을 포용하는 허공(虛空)이야말로 무한광대(無限廣大)의 신비가 아니겠는가!



밖 길로 가서 이르는 곳은 무한의 허공이 마지막이다. 불경에서 허공을, 노장(老莊)에서 무(無)를 그렇게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의 근원은 허공이요 무(無)이기 때문이다. 공(空)과 무(無)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다. 류영모는 허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주 빈 절대공(絶對空)을 사모한다. 죽으면 어떻게 되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야말로 참이 될 수 있다. 무서운 것은 허공이다. 이 허공이 참이다. 이것이 하느님이다. 허공 없이 진실이고 실존이고 어디 있는가. 우주가 허공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허공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빈탕한데, 허공이다. 백간짜리 집이라도 고루고루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허공인 하느님아버지의 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류영모, 「다석어록」)또한 타고르는 「인간의 종교」에서 “진리는 형이상학에 의해 탐구된 무한이다.”라고 하였다.



이제 나란 무엇인가를 살필 수 있다. 무한허공에서는 먼지 한 알만한 은하우주이고 은하우주에서는 먼지 한 알만한 지구이고 지구에서는 먼지 한 알만한 것이 나이다. 그러니 어떻게 되는가. 나란 있다고 하기가 쑥스럽고 부끄럽다. 차라리 없다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란 위이무(位而無)이다. 이게 나다.



“땅 위의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벌레가 이 우주 안에 없다고 해서 어떻다는 것인가. 지구도 달과 같이 생물이 없이 빤빤하게 있다고 해서 무슨 서운한 것이 있는가. 우주조차도 마침내 다 타버린다는 사상이 있다. 우리가 옷에 묻어 있는 먼지 하나를 털어버린다고 해서 누가 눈 하나 깜짝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인류를 털어버린다고 해서 무엇이 서운하겠는가. 똥벌레 같은 인류지만 생각함으로써 사상을 내놓아 여느 동물과 다르다고 하는데 이 사상(思想)이 문제다.”(류영모, 「다석어록」)



석가·노자·장자·류영모는 무극(無極)인 허공에서 우주의 실상(實相)을 보았다. 모든 유(有)는 허상(虛像)에 지나지 않는다. 불생불멸의 허공이 사람의 본성이라면 생멸(生滅)의 유물(有物)은 사람의 가성(假性)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有)를 낳는 무(無)를 그리며 무와 하나 되려고 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안길이 있다. 태극우주의 궁극적인 실재(實在)를 찾기 위해서는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예수도 “하늘나라가 너희 속에 있다.”(누가 17:21)고 말하였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자기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다. 지성(至誠)을 다하고 정성(精誠)을 다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해서 자기의 속알(德)이 밝아지고 자기의 정신이 깨면 아무리 캄캄한 밤중 같은 세상을 걸어갈지라도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류영모, 「다석어록」)



맘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나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나로는 우선 몸이 있다. 이 몸이 참나인가. “몸사람으로는 호기심과 살맛(肉味)을 찾아다니는 짐승이다. 그래서 몸의 근본은 악과 친하려고 한다. 우리의 몸은 어찌 보면 원수요 감옥이다. 그런데 몸이 성하지 않으면 이중(二重)으로 갇힌다. 우리의 혈육(血肉)이란 이런 것이다. 이건 짐승이다. 몸을 쓰고 있는 한은 별수 없이 이런 것이다. 이 몸은 며칠 전에 어쩌다가 부모님의 정혈(精血)로 내가 시작되었으며 실없이 시작했으니 조만간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사람이란 우스운 것이다. 잘 먹고 빨래를 잘 내놓는다. 그러면 제가 잘 살거니 한다. 이게 다 꿈지럭거리며 벌레노릇 하는 거다. 나는 몸의 일은 부정이다. 모든 것을 몸을 위해 일하다가 죽어 그만두게 된다면 정말 서운한 일일 거다. 나는 이를 부정한다. 그거 남 먹는 것 남 입는 것에 빠지지 않겠다는 게 살살이(肉體生活)다. 요새 사람들은 모두 육체의 건강, 수명의 연장에만 신경을 쓴다.”(류영모, 「다석어록」) 이제 내 살(肉)을 뚫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다음에 만나는 것이 맘이다. 맘이 맘을 심판한다. 이것이 반성이다.



“맘은 덧없는 거다. 심무상(心無常)이다. 나는 예수 믿소 하고는 그 다음에 하는 말이 흔히 ‘맘 하나만 잘 쓰면 되지’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맘이 덧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고도 하지만 맘이 모든 죄악의 괴수라고도 했다. ‘네가 맘의 스승이 되어야지 맘을 너의 스승으로 하지 말라’(「열반경」)고 하였다. 맘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 우리 맘속에는 더러운 게 많이 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 속을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했다. 이것은 모순 중의 모순이다. 이게 우리의 착각인 것 같다. 하느님의 성전은 저 위의 나라인데 이 속에 반영(反映)되어서 그렇지 우리 속에 정말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반영을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다. 맘은 생사(生死)의 제한을 받는다.”(류영모, 「다석어록」)



몸의 나도 참나가 아니고 맘의 나도 참나가 아니다. 몸과 맘의 나가 참나가 아니라고 하는 나만 남는다. 그것은 하느님이 보내시는 성령 곧 얼나다. “사람은 몸으로는 분명히 짐승인데 짐승의 생각을 하지 않고 거룩한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 얼사람으로 솟나는 우리의 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란 태어나서 다른 것을 직접·간접으로 잡아먹고 살지만 얼이 있어 맘속을 밝혀 위로 한없이 솟아나려 함이 인생길이다.”(류영모, 「다석어록」) 이것이 맘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예수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 7:13~14)라고 하였다. 제나(自我, ego)의 종족보존으로 사는 것은 넓은 길로 가는 것이고 얼나의 진리보존으로 사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맘속으로 들어가서 궁극으로 만난 것은 위로부터 온 성령의 나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 보았다. 보내신 그리스도란 영원한 생명이다. 우리에게 산소가 공급되듯이 성령이 공급되는 것이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줄곧 오는 영원한 생명이다.”(류영모, 「다석어록」) 성령의 나로서는 성령을 보내시는 이는 아버지시고 성령의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우주의 실재와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반드시 몸과 맘으로 된 제나가 참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제나가 참나거니 하고 있으면 참나인 성령은 만나지 못한다. 제나가 거짓나임을 알 때 성령이 온다. 이를 회개(悔改)라 회심(回心)이라 견성(見性)이라 자각(自覺)이라 한다. 그러면 이제까지 제나가 지닌 탐진치(貪瞋痴)에 좇아 살던 제나가 나라는 주권을 성령인 얼나에게 바친다. 그러면 얼나가 제나를 다스리며 부리게 된다. “종교는 우리가 깨달은 진리에 동물적인 수성(獸性)을 종속시킴으로써 갈등을 조화시키는 데 그 생명이 있다.”(타고르, 「인간의 종교」) “동물적 개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생존하는 모든 조건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며 또 불필요하기도 하다. 동물적 개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적 개체의 행복을 부정하고 동물적 개체를 인생으로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동물적 개체를 이성적 의식에 종속시켜야 한다.”(톨스토이, 「인생론」)



밖으로는 허공이라는 절대, 안으로는 성령이란 절대가 이 우주의 실재다. 허공과 성령은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다. 허공처럼 없이 계시는 성령의 님이 하느님이시다. 사람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닫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이는 사람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삶의 절대목적이다. 이것을 못하면 실패의 삶이다. 예수·석가·공자·노자의 일치된 생각이다. 불생불멸의 영원한 생명을 예수는 영의 나, 석가는 법의 나, 공자는 덕의 나, 노자는 도(道)의 나라고 하였다.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몸으로 난 것은 몸이요 얼로 난 것은 얼이니 내가 네게 위로부터 나야 한다는 말을 기이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 3:5~8)



구경(究竟)에서는 예수·석가·공자·노자의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에 종교 간에 갈등이나 대립할 까닭이 없다. 종교 사이에 갈등하고 대립한다면 아직 그들이 받드는 스승이 가르친 구경의 자리에 이르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어떠한 종교에 속하느냐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자기의 종교와 신앙만이 옳다고 하는 것은 유치하다. 인간성이 다양한 것을 찬양하고 신앙의 형태가 다양한 것을 찬미하고 싶다. 나는 자기들만의 종교와 신앙이 옳다고 하는 특정 종교의 교도가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어떤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더 고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정신의 고귀성과 자유가 결여된 교회가 자만에 빠져서 다른 종교와 교회를 무시하는 것에 실망한다.”(헤르만 헤세, 「종교에 대하여」)



일원다교(一元多敎)



나는 종교근본주의자도 다원주의(多元主義)자도 아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범신론적 유일신을 믿는 평범한 신앙인이다. 범신론이라 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는 그 분의 영(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고 유일신이란 오직 한분 계시고 그 분을 믿는 사상을 유일신관이라 한다.



일원다교란 한분 하나님께 가는 길이 한길만이 아니라는 뜻이고 여러 길(多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 길들은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어느 종교로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시카고에서 세계종교학자들이 모여 종교 대회를 하였는데 거기서 나온 결론은 모든 종교의 내용과 성격이 약 80%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가 역사를 살펴보면 80%이상이 종교로 인한 전쟁이었고 제일 비참한 전쟁이 종교전쟁이었던 것이다.(십자군 전쟁, 중동전쟁 등)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 속에는 예수의 사상이 없고 불교에는 석가의 명상이 사라지고 유교는 공자의 하늘 가르침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 종교의 공통점을 살펴보자.



첫째, 호칭만 다르지 한분의 절대자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만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열반(니르바나)이 있다. 극락세계나 하늘나라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유교의 천제(天帝)도 하나님의 다른 이름이다. “하늘의 덕이 나를 낳았다.”라고 한 공자의 말은 하늘의 성령이 나를(德, 참나, 얼나)낳았다는 말이다.



둘째, 기독교의 성령, 불교의 불성(다르마), 유교의 덕성, 노자의 도까지도 글자만 다를 뿐 다 같은 뜻의 동의어다.



셋째, 인간 죄의 근원을 예수는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누가 12:15)” “화내지 말라(마태5:22)” “음욕을 품지 말라”(마태 5:27)라고 했고 석가도 열반경에 보면 삼독(三毒)이라 하여 탐진치 곧 탐욕(貪欲) 진에(瞋恚) 치정(痴情)을 끊어야 한다고 설법하였다. 공자도 삼계(三戒)라 하여 여색을 경계하고 얻음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모두가 같은 내용이다. 예수 석가 공자의 내용이 일치한다. 그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밖에도 많이 있다. 진리는 꿰뚫어보아야지 관념으로는 찾을 수 없다. 다른 데로 같음을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조화란 모든 것이 섞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독특함을 간직한 채 서로 어울리는 것이다. 나와 다르기에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내가 뚜렷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마치 빛은 어둠이 있기에 그 빛이 뚜렷하게 빛나는 것처럼,.. 예수가 말한 것처럼 “세상 끝 날에는 하늘의 영(성령)을 만인에게 부어줄 것이다.” 여기서 세상 끝이란 지구가 끝나는 종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자아(自我, ego)의 세계가 성령을 받은 참나(얼나, 성령의 나)로 인하여 종말을 고하고 하늘의 영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예수의 주기도문의 “하늘나라를 이 땅에 저희들이 나타나 뵈오리다.” 이것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의 소명이 아니겠는가.



다(多) ᄋᆞᆯ(All) 사상



‘ · ’자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졌지만 하늘을 뜻한다. 우리 말 한글의 원초 모음인 천( · ) 지(ㅡ) 인(ㅣ)에서 하늘을 뜻한다. 발음으로 ‘ · ’은 상황에 따라 ‘어’, ‘오’, ‘우’로 소리를 낸다. 그래서 다ᄋᆞᆯ은 ‘다얼’, ‘다올’, ‘다울’의 세 가지 뜻을 지녔다.



먼저 ‘다얼’에 대해서 말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는 그분의 영(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는 그분의 얼(영)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내가 생각하는 원수에게도 하나님의 영(얼)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얼을 강조했다. ‘한 민족의 얼’이라든가, 어른(얼이 온 분), 얼래(신기할 때), 얼빠진 놈, 얼이 섞인 놈 등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요즘 농가에서 동물이나 식물에게 음악을 듣게 해서 키워 잘 자라게 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추상적인 하나님의 믿음에서 실제적인 믿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막연히 사랑하는 것에서 확실한 사랑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제자들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하신 뜻을 살펴야 할 것이다.



들에 핀 이름 없는 꽃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물며 사람에게서야,...... 그래서“이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메말라가는 풀에게 물 한 컵 주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에게 미소 짓는 것, 이것이 말로 외치는 사랑보다 더 크다. 하나님이 모든 피조세계를 창조했다고 하면서 지으신 작품은 미워하고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다음은 ‘다올(옳)’이다. 다 옳다. 옳고 틀림은 주관적인 경우가 많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상대방에서 보면 틀릴 수도 있다. 또 상황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옳고 그름이 바뀌기도 한다. 성경에서도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라 하였다.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영원한 옳음(참, 진리)은 없다. 때문에 그냥 옳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하다. 분쟁과 싸움을 방지하는 지혜이다. 여기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싹튼다.



끝으로 ‘다울’(우리, 울타리)이다. ‘울’은 우리라는 뜻과 한 울타리라는 뜻이다. 나 혼자는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 속에 나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대기권을 울타리로 한 지구마을의 공동체이다. 지구가 사라지면 모두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지구어머니 뱃속에 있는70억의 쌍둥이 형제, 자매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땅에서 마치고) 하늘로 가는 것이 죽음이라지만 하늘에서 보면 탄생일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 가면 지구 어머니 형제, 자매로 만날 것이다. 구약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이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 아버지라고 했지 야곱의 하나님 할아버지라 하지 아니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한 형제, 자매임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어려움, 고통, 즐거움을 같이 해야 할 것이다.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다석 유영모의 생활 모습
이 대담은 다석 유영모 연구가인 박영호와 박재순이 다석의 일상생활과 사상을 주제로 2004년
12월 12일 성천문화재단에서 한 것이다. 다석은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 교사와 교장을
지냈고 서울YMCA 연경반(성서연구반)을 지도한 사상가였다. 대담은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
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한신대 프로젝트(“한국개신교가 한국근현대의 사회 문화적
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한신대 학술원 신학연구소의 허락을 받아
영호와 박재순의 대화를 두 회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자 주







박재순: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가장 가까웠던 제자이신 박영호 선생님을 모시고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사상과 삶의 모습에 대해서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다석에 대해서 이제까지 알려
지지 않은 깊숙한 그런 말씀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박영호: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씨의 소리」에 발표된 다석 선생님에 대한 박 교수님의 논
문을 봤습니다. “공부 많이 하셨다.” 했는데, 가까이 뵙게 돼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박재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영모 선생님을 세상에 널리 알린 첫 번째 업적을 가진 분으로
저는 박영호 선생님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유영모 선생님의 강좌를 가장 충실하게
韓國敎會史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청도인
2018. 7. 6. 10:15
이웃추가
13 1
정연이네 집
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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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셔서 유영모 선생님으로부터 마침보람, 졸업장을 받으신 유일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
생님은 제자로서 스승 유영모 선생님을 어떤 분으로 보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영호: 제 나이가 다석 선생님하고 40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오래 모신 편은
아닙니다. 다석 선생님이 69, 70세 되셨을 때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보
다는 한 30년 이상 늦게 다석을 만났지요. 제가 다석 선생님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은 옳
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석의 만년에는 다른 분이 안 계시고, 김흥호 선생님만 계시고, 제가
자주 구기동 드나들면서 선생님 가르침도 받고 그랬습니다. 제가 다석의 전기(傳記)를 쓰기 위
해 자료를 수집하려고 하는데 다석 선생님께서 전기에 대한 것은 김흥호 교수님하고 두 사람이
의논해서 처리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에 대한 내 사상의 멀고 가깝고 바르고 거슬리
는 것에 대한 것은 김흥호 님과 상의해서 해라.” 하는 공식적인 통보를 받고서 처음부터 김흥호
교수님하고 둘이서 유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김흥호 선생님께서 그때 이대에 계시니까 바
쁘셨어요. “난 바쁘니까 필요한 자료가 있다고 그러면 대학 도서관에서 다 뽑아줄 테니까 박 선
생님이 전적으로 맡아서 하시오.” 그래서 제가 만년에 선생님하고 더 가깝게 지내는 계기가 되
었습니다.
박재순: 어떻게 박 선생님만 마침보람을 받으셨는지요?
박영호: 저만 받았다 그러니까 다른 분들께는 굉장히 송구스럽게 되었는데요. 마침보람을 받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내가 선생님을 자주 집으로 찾아가고 편지를 하고 그랬습니다. 하루는
고향에 계시는 형님 내외분이 찾아왔기에 창경원 구경하시라고 모셔다드리고, 나는 또 구기동
으로 선생님 뵈러 갔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뜻밖에, 선생님께서 “날 찾아올 생각도 말고, 편지할
생각도 말아야 된다. 그걸 단사(斷辭)라 한다.” 하시면서, 찾아오지 말라 이거예요. 내게는 너무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박재순: 선생님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죠?
박영호: 그렇지요. 정신적으로 독립하란 말이죠. 보통 소들이 어미 소가 송아지를 잘 먹이다가
젖 뗄 때가 되면 발길질 탁 하면서 젖 떼는 것처럼 딱 이렇게 자르는 걸 느꼈어요. 나는 정신적
독립은 못 되었는데, 『주역』의 단사, 말씀 사(辭) 자 끊을 단(斷) 자 ‘단사’라 그러면서 그 단사를
하고 정신적 독립을 해서 다 흩어져서 각기 제 노릇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셨습니다. “그냥 함
께 어리바리 있으면 뭐 되느냐, 너는 너대로 가서 너 한 사람 구실하고, 나는 나대로 하는 거지,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러셔요. 그래서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말씀
이 옳거든요. 함 선생님이 “자기 지어서 자기가 먹는 거다. 내가 생산하는 게 내 자신의 식량이
되는 거다.” 하고 말씀을 하셨지만, 아직 나 스스로 정신적인 생산을 할 정도도 못 되었는데 선
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제 선생님께서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더라도 선생님 만나러 안
가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그렇게 한 5년 정도 선생님을 찾아뵙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정병호 선생이라는
분을 보내서 박영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내가 상처(喪妻)했다는
소리를 들으셨던가 봐요. 정병호 선생이 이제 선생님이 찾으시니까 한번 가보라고 그래서, 다시
5년 만에 구기동 선생님 댁을 찾아가 “저는 이제 선생님 곁을 떠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어
요. 선생님도 “나는 ‘은혜’라는 말을 쓰기 싫어가지고, ‘힘입어’라고 말하는데, 앞으로 힘입어서
잘 사시오.” 하셨습니다. 이렇게 둘이 고별인사를 했어요. 그랬더니 뒤에 봉합 엽서에다 마침보
람, 졸업장이라 그러고, 그 안에다 당신 한시를 적어서 우편으로 보내오셨어요.
그때 난 톨스토이를 좋아했는데 “대학은 학문의 묘지”라고 말한 톨스토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서 대학을 가지 않았습니다. 톨스토이도 대학 중퇴한 사람이거든요. 내가 톨스토이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신앙도 비정통이 되다 보니깐, 비정통을 용납해줄 한국 신학교가 없잖아요
. 그래서 신학교도 못 갔지요. 13 1
정연이네 집
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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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가 처음에는 정치 기사를 못 쓰게 되어 있었어요. 정주영 씨 정치적 활동을 억제하
려고 그랬지요. 「문화일보」 이규영 회장이, 다석 선생님을 소개함으로써 「문화일보」를 살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내게 글을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소개해야 할 텐데, 난 대학이라고는 안
가봤고, 졸업장 하나 받은 게 있다면 다석 선생님께 졸업장 하나 받은 거 하나 있다고 하니까
그럼 몇 분이나 그런 졸업장을 받았냐고 묻더라고요. 글쎄 난 모르겠는데, 아마 다른 사람이 받
았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그랬더니 그 말이 커져서, 다른 제자분들한테는 굉장히 송구스럽게
되었어요.
박재순: 유영모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북두칠성처럼 빛나는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한마
디로 다석 선생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유달영 선생님은 다석을 공자 같은 분이라고
하셨지만, 공자하고는 다른 면도 느껴집니다. 공자는 유영모 선생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분으
로서, 유영모 선생님처럼 철저한 금욕과 영의 세계를 탐구한 분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공자는 제자가 3,000명이었다고 하니까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었
습니다. 그러나 다석의 정신세계가 공자보다 내면적으로는 훨씬 더 깊은 거 아닐까요?
박영호: 성천 유달영 선생님도 다석 선생님은 공자 이상 가는 인물이라고 추모 모임 때 자주 말
씀하시곤 그랬어요. 저는 한마디로 다석 선생님은 우리에게,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업그레이드된
어떤 고차적인 신관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국부적이고
저차원적인 신관에서 보다 높은, 21세기의 정신을 이끌어갈 수 있을 만한 신관을 제시하셨습니
다. 강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지내신 심일섭 교수가 “21세기에도 다석 사상 이상의 어떤 신학
이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다석은 21세기에 두루두루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새
로운 신관을 제시해준 분이라고 봅니다. 모든 종교를 다 같이 아우르면서, 그야말로 회통할 수
있는 신관이지요. 그러나 혼합종교는 아니에요. 김흥호 교수님조차도 박영호처럼 그렇게 이야
기하게 되면 혼합종교가 되는 거 아니냐 그러셔요.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
지 않아요. 다른 종교들을 소화하면서 다석 선생 나름의 하나의 새로운 신관을 만들어낸 거지,
그냥 혼합만은 아니죠. 그것을 종합하고, 새롭게 하나의 신관을 제시하는 거죠.
박재순: 다석의 신관의 새로운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박영호: 하나님은 상대적, 부분적 존재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모든 존재 그 자체, 전체가 하나
님이다 이거예요. 상대적인 것은 하나님의 하나의 부속품이지, 하나님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만 계시는 것이고, 그 하나님 영역 안에 우리 인간들도 있고, 별도 있고, 만물들이 있는 거
지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 것보다 더
바보 같은 소리입니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은 있다 없다의 지경을 넘
어서 없음(無)과 있음(有)을 아우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본 정체는 허공이시며 성령이신 없
이 계신 님입니다. ‘없이 계신 하나님’이지요. 그러니까 유신론 무신론을 다 넘어섭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계시고 허공으로 계시기 때문에 없이 계시는 것이고, 그게 말씀으로 만물이
되었다고 그렇듯이, 성령의 일부가 절대성을 잃어버리면서 상대화되어서 만물이 되었다고 하
니까 만물조차도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성령과 허공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존재이고, 상대적인 만물은 자꾸 생겨나면서 변하는 존재니까 하나님은 변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유와 무를 합한 이 전체가 하나님입니다. 전체로서는 하나님만 존재하
는데,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인간이, 뭇 생명이 잠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
석의 신은 인간적인 신화적 신도 아니고 범신론도 아닙니다. 성령과 허공으로 계시면서 만물을
창조하고 생성하는 하나님입니다. 불교의 허공과 기독교의 하나님이 여기서 회통됩니다. 그게 ‘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거죠.
박재순: 하나님을 성령과 허공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주 새롭게 들리고, 유와 무를 통합한다고
하는 말씀도 새롭게 들립니다 13 1
. 다석 선생님이 하나님은 유무상통(有無相通)이라고 말씀하시기
정연이네 집
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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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하셨지요.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함께 쓰는 것을 유무상통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유무
상통이라고 하니까 더욱 새롭게 들렸습니다.
참 좋은 말씀인 것 같고, 두고두고 새기고 좀 더 생각을 이어가야겠지요. 그런데 유영모 선생님
의 사상은 남기신 글을 보고, 또 박영호 선생님이나 김흥호 선생님이 또 많이 풀이를 해주셨으
니까 그런 걸 연구하면 될 것 같은데, 유영모 선생님의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 그런 건 사실은
박 선생님이 안 계시면 어디 가서 여쭤볼 수도 없습니다. 그런 걸 꼭 여쭤봐야겠다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데요. 우선, 저희가 유 선생님을 보면 ‘1일 1식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하신 분이
다. 1일 1식을 통해서 건강도 유지하고 정신적인 깊은 세계까지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는데, 식
사하는 모습에 대해서, 식사량이나 식사시간이나 반찬 가지 수나 그런 거를 자세하게 말씀해주
세요.
박영호: 함석헌 선생님하고는 다르게 다석 선생님은 자신에 대해서나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글
로 쓰신 일도 없고, 강연을 하실 때도 그런 얘기는 별로 말씀 안 하셨어요. 함석헌 선생님조차
도, 다석 선생님이 장로 아버지의 아들이라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은 다석
선생님이 먼저 교회 다니고 그 뒤에 아버님이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석 선생님이 성령을
받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때가 쉰두 살 때입니다.
이때부터 생활 패턴이 확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부인하고 해혼하고, 금욕생활에 들어가고, 1일
1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남이 알지 못하는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신 것 같아요. 그전에도 알
만큼은 다 아셨어요. 그때 인간이라는 건 몸뚱이로는 완전히 동물, 짐승이라고 여기셨어요. 동
물들은 먹어야 하고, 싸워야 하고, 새끼 쳐야 하는데, 그걸 불교적 용어로 말하자면 ‘탐진치’거든
요. 탐(貪)–탐욕부리고, 진(瞋)–성내고, 치(癡)-색욕인데, 그게 동물의 본능인데, 예수님과 부처님
은 뭐냐면, 동물이면서 동물이기를 거부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아들 노릇하는 거
거든요.
다석 선생님에 따르면 예수님 말씀대로 산 이가 부처님이고, 부처님 말씀대로 산 분이 예수님
이지요. 전구가 여러 개 있지만 전원은 똑같듯이, 예수나 석가의 인격체, 객체로는 다 다른데 영
적인 근원은 다 같기 때문에 그렇게 똑같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나 부처님한테
는 우리가 탐진치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잖아요. 식욕에서 모든 탐욕이 시작되니까 먹는 걸 절
제해야 된다, 안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완전히 안 먹으면 죽어버리니깐 하루 한 끼 먹
는 거지요. 이 몸은 우리 머슴인데, 이걸 심부름 시키자면 안 죽을 만치만 먹는 게 한 끼 먹는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타고나기를 아주 평화적인 인물로 나셨기 때문에 자기와의 싸움을 강
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식색에 대한 금욕을 강조해요. 1일 1식 하면서 성생활 딱 끊어버린 것은
탐진치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래서 해혼도 하셨지요.
다석 선생은 저녁을 잡수시는데, 그냥 젊은이 밥 한 그릇 정도 드셨어요. 나는 70세 때 만났는
데 그때도 젊은이 밥그릇 정도로 잡수셨습니다. 원래 소년 시절에 학교 다닐 때도 도시락 안 가
지고 다니셨거든요. 2식밖에 안 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2식을 아주 오래 하셨죠. 1식하기 전
에는 생식도 하시고 솔잎도 잡수실 때도 있고, 콩이나 쌀 불려서 생식도 한 1년인가 하시기도
했어요. 육식을 좋아하시지도 않고, 그냥 반찬이 올라오면 ‘나 오늘 돼지고기 몇 점 먹었어.’ 할
정도로 공개하시고. 반찬 몇 가지 안 드셨어요. 워낙 살기를 그렇게 사셨으니깐요.
박재순: 저도 70년 중반에 딱 한 번 퀘이커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하고 같이 세검정 유 선생님
댁을 찾아뵈었어요. 두세 시간 앉아서 여러 분들하고 말씀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너
무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얼굴이 그냥 신선 같으시더라고요. 머리카락은 완전 하얗고, 볼은 발
갛고, 어린아이처럼 입술도 새빨갛고, 입에서는 늘 침이 고이신다고 하시는데, 정말로 입에는
물이 가득하시더라구요. 국이나 물은 많이 드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박영호13 : 그리고 또 국물이 있더라도 밥은 밥대로 먹고 1
, 국은 국대로 먹어야지, 같이 먹으면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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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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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힌다고, 밥만 먹어야 꼭꼭 씹힌다고. 또 비벼서 잘 드셨어요. 속에 들어가면 저절로 위 속에서
다 비벼지는데, 미리 비벼서 먹는 게 좋다고. 썩썩 비비시진 않고, 설설 비벼서 드셨지요.
박재순: 밥을 제물이라고 하고, 식사하는 것을 진정한 예배라고도 하셨지요. 왜 1일 1식을 하냐.
아침은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고, 점심은 이웃을 위해 드리고, 저녁만 나를 위해서 먹는다고 그
러셨다는데, 혹시 그런 말씀 들은 적 없으십니까?
박영호: 서울YMCA 총무 하신 현동완 선생님이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과일을 안 먹
는 건 환자를 위해 안 먹는 거”라는 그런 소리를 자주 하셨어요. 도산 선생님이 ‘나는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한다.’ 그러듯이, 유 선생님은 밥을 먹는 것도 하나님을 위
해 먹고, 잠자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잔다고 하셨고,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기도하기 위해 밥
먹는 것이고, 밥 먹는 것도 기도하기 위해서 밥 먹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유 선생님이 마지막 2
년 동안은 기억상실증에 걸리셨거든요. 사모님과 나를 보시고, “저 얼굴이나 이 얼굴이나 눈에
는 익었는데 시작을 모르겠다.” 말씀하시기도 하셨지요. 그러면 부인도, 제자도 못 알아보신 거
죠.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말년에 뇌를 한 번 다치셨던 것이, 그것이 재발하셨나요?
박영호: 낙상하셨는데, 그래서 그때 제가 의사이신 최태사 선생한테 물어봤었는데, 직접적인 관
계는 없을 것 같다 그래요. 요즘 의사들에 따르면 이하고 뇌하고 관계가 깊어서, 많이 씹어야
뇌의 혈액순환이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석 선생님이 이가 안 좋으셔서 일찍 빠졌습니다.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다른 데는 다 건강하셨는데.
박영호: 이를 해 넣지도 않았는데 그게 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만으
로 아흔한 살 사셨는데, 돌아가시기 2년 전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셨어요. 부인이 6개월 먼저
돌아가셔서, 산에서 그날 밤을 새우는데, 왜 집에 안 가느냐고 하셨어요. 당신 부인 돌아가신 것
도 모르는 거죠. 그러니 기억을 완전히 잃으셨는데도, ‘아버지~ 아버지’ 하고 간헐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것은, 신앙이 잠재의식에까지 뿌리를 내렸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
었어요.
박재순: 그리고 그럴 때도 무릎 꿇고 계셨다고….
박영호: 늘 무릎 꿇고 계셨죠. 선생님은 한복을 안 입으셨어요. 선생님은 요가에 대해 일가견을
가지셨어요. 그래서 몸에 균형을 잡는 걸 굉장히 강조하고 그러셨는데, 그래서 마지막까지 일어
서서 바지를 입으셨어요. 마지막에 일어서서 바지를 입으시다가 넘어지셨어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못 일어나시고,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그때만 오줌똥 받아내고 그랬지,
깨끗하게 돌아가셨어요.
박재순: 대단하시네요. 완전한 기억상실 상태인데도 2년 동안 그렇게 깨끗하게 지내셨다니! 이
가 빠진 것은 60대 때 빠진 건가요?
박영호: 내가 69살 때 뵈었는데, 그때도 앞니만 몇 개 있더라고요. 그런데 5년 뒤에 가니깐 몽땅
다 빠셔서, 저 어금니 한두 개만, 하하 웃으실 때 어금니 한두 개만 있더라고요.
박재순: 왜 그러셨을까요? 저작을 많이 안 하셔서 그런가요?
박영호: 그게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는데, 아드님들이 의치를 자꾸 하라고 해도. 어머님도 90 가
까이 사셨는데, 내가 어머니한테도 못 해드렸는데, 내가 뭐 틀니까지 해야겠느냐고, 그냥 살다
가 죽겠다고.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데, 잇몸으로 살면 되는 거지 하시며 그냥 사셨어요.
박재순: 잇몸으로도 식사는 잘하셨나요?
박영호: 그렇죠. 경제적으로 근검절약하는 거 몸에 밴 분들이지요. 함 선생님도 마지막에 서울
대학 병원에 계실 때, 하루는 홍익재 사장이 ‘선생님 가까이서 봬야지.’ 해서 내가 홍익재 사장
하고 함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야 되는데, 따님이 혼자 있어서 우리가 모시고
화장실 갔었는데 13 , 화장실에서 종이를 뜯어드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종이를 좀 길게 뜯었더니, 1
정연이네 집
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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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되겠느냐 하시며 반을 뚝 잘라가지고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다석 선생님도 아주 근검절
약 하세요. 달력 뒷치에 글 쓰시고, 시 쓰시고 하셨어요. 그렇게 물건 아끼는 것은 두 분이 똑같
아요. 함 선생님 그 휴지 조금 많이 뜯은 거 딱 갈라서 쓰시는 거 보고 홍 선생이 깜짝 놀라더라
고요.
박재순: 선생님의 자제분들 얘기 들어보니까, 생선을 먹을 때는 가시 채로 먹으라고, 가시를 발
라내지 못하게 하셨대요.
박영호: 가시에 영양분이 있지요.
박재순: 함 선생님의 삶과 정신은 유 선생님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함 선생님에
게 여자 문제가 있어서 유 선생님은 서운해하셨지만, 함 선생님의 많은 부분이 유영모 선생님
한테서 왔습니다. 유 선생님의 깊은 사상과 높은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에 함 선생님의 사상과
실천이 깊고 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영호: 이기백 교수의 아버님 이찬갑 선생님이 왜 함석헌이 자꾸 유영모를 닮아가느냐고 공개
적으로 비난을 했어요. 한동안 함 선생님도 한복 입고, 머리를 좀 깎으시고 그랬거든요. 유달영
선생님에 따르면 함 선생님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석 선생님 닮으려고 애쓰신 분이다. 1일
1식하고, 한복 입은 거나, 고무신 신고 다니는 거나. 다석 선생님은 가난한 사람 차림으로는 나
가도 부르주아지 차림을 해서는 바깥에 못 나간다 그러셔요. 나도 이거 넥타이 맨 지 얼마 안
돼요. 넥타이 매다가도 선생님한테 갈 때는 풀고 가고 그랬어요.
박재순: 유 선생님이 잠은 어떻게 주무셨나요?
박영호: 잠은 보통 열 시 전후에 주무셔요. 드러누웠다고 하면, 코 소리가 아주 요란해요. 그래
서 코 곤다는 걸 글로 쓰신 것도 있어요. 당신도 모르시는데, 아마 코 곤다는 소리는 들으셨나
봐요. 그래서 코 고는 그걸 가지고 시조로 쓰신 것도 있어요. 아주 죽은 듯이 그렇게 주무셨어
요. 잠이 안 오고 그런 거는 없어요. 세 시, 네 시면 딱 깨셨어요. 그때 깨가지고 다석일지 쓰시
는 거예요. 저녁에 쓰는 게 아니에요. 아침에 생산하는 거죠. 암탉이 꼬꼬댁 하면서 새벽에 알
하나 낳듯이, 다석 선생님은 시 한 수 내놓는다고 서영훈 선생님이 자주 말씀하셨죠. 일기라 해
서 내가 뭐 했다는 것을 쓰지 않고, 전부 다 한시 아니면 시조를 쓰셨는데, 한시가 한 1,300수,
시조가 한 1,700수 됩니다. 쓸 게 없으면 그냥 날짜만 이렇게 써놓으셨어요. 여행을 하신 경우
에는 일지를 쓰지 못하셨지요.
박재순: 주무실 때는 어떻게 주무셨나요? 대 자로 주무셨나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은 널판에 주무셨잖아요. 관 하나를 사서 관의 밑바닥 판만 갖다 놓고 그
위에서 주무셨어요. 이만치 두꺼워요. 관에서 주무셨던 셈이지요. 죽기 전에 관 속에 들어가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 죽음하고 가깝게 지내기 위해 그렇게 주무셨어요. 사람이 죽음을 잊어버리
면 잡념이 자꾸 들어오거든요. 죽음을 마주해야 잡념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쉰두 살 때부터 그
렇게 주무셨습니다. 공자님은 송장 잠을 자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송장 잠을 자야 한
다는 거예요. 송장처럼. 인간들이 허리가 펴져야 하는데, 낮에는 자꾸 굽어지잖아요. 그러니깐
허리가 딱 펴질 정도로 바로 자야 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잠을 깊이 주무셨어요.
박재순: 선생님은 숨 쉬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는데, 자면서 숨을 깊이 쉰다고 했으니
까.
박영호: 숨은 자는 동안 더 활달하게 호흡을 한다고 그래요. 다석 선생님은 성령을 숨님이라고
했어요. 어떤 때는 기라고 하기도 하는데, 몸도 늘 숨을 쉬어야 되듯이, 잠자는 동안에 영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숨 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우리도 글 쓰다가 꽉 막혀서 안 될 때는 한잠 자
고 깨면 이 잠재의식에서 다 풀어져서 글이 되는 그런 경험, 교수님도 잘 아실 거예요. 그게 잠
재의식이 활동을 해서 영적으로 해결이 되는데, 그것을 선생님은 성령의 활동으로 생각하셨지
요.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자는 동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의식에 13 1
, 잠재의식에
정연이네 집
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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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를 하셔서, 어떤 영감(inspiration)을 받는 거라고.
박재순: 잠자는 게 수행이네요. 잠자는 게 기도고. 숨을 쉬어서 하나님의 성령과 통하는 것이군
요.
박영호: 낮에 기도할 때 왜 눈을 감느냐? 이 세상 보면서 하나님하고는 대화하기는 어려우니까
눈 감고 기도하는 거니까, 밤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에는 기도가 더 잘 되는 거지요.
박재순: 선생님이 한 서너 시에 일어나서 맨 처음 하는 것이 무엇이었나요? 냉수마찰이요?
박영호: 나중에는 마른 수건 마찰도 하시고, 수건이 없으면 손으로 빠닥빠닥 소리가 날 정도로
온몸을 문지르세요. 집에 계시면 대야에 물 떠다가 하셔요. 세숫대야 하나면 목욕 다 되는데, 목
욕탕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요.
박재순: 그러면 냉수마찰을 20대 때 처음 하셨다고 하는데, 밖에서 하셨다고 했는데.
박영호: 물이 꽝꽝 얼었는데, 그거 깨가지고 하셨죠. 그래도 감기 한 번 안 걸리셨어요.
박재순: 그래서 말년까지 냉수마찰을 밖에서 하셨나요?
박영호: 선생님이 물 길어다가, 그때 사랑방에 계실 때는 사랑방 안에서 하시고, 마당에서도 하
시고, 우물가에서도 하시고. 그다음에는 옛날 주택이 많이 들어서기 전에는 개울 앞에서도 하시
고. 그래서 지금도, 평창 둘째 아드님 댁에 계실 때 개울에서 냉수마찰 하는 거 보신 분들이 많
아요. 그 노인이 그렇게 훌륭한 분이신 줄은 몰랐다고요. 요즘 새벽사람 가르치지, 다석 선생님
은 진짜 새벽사람이지. 아드님이 그러는데, 젊을 때는 늦잠 자고 그러셨대요. 원고 써놓고 늦게
까지 주무셨는데, 쉰두 살 이후로는 완전히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져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셨
어요.
다석 선생님에 따르면 정신이란 에너지, 호르몬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왕성해야 기도도 할
수 있고, 철학도 할 수 있고, 예술도 할 수 있는 거지요. 정력이 있어야 예술도 하고, 노동도 하
고, 기도도 할 수 있는 건데 왜 자꾸 그것을 방사로, 사정을 해버리고, 아까운 에너지를 낭비하
느냐는 겁니다. 새벽은 피로가 다 풀려서 제일 정력이 왕성할 때거든요. 그때 정신활동도 제일
잘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 시간을 요긴하게 쓰신 거죠. 저도 나중에 그렇게 해보니까 하루
온종일 글 쓰는 것보다도 새벽에 하는 것이 더 성과가 좋아요.
박재순: 묵상을 어떻게 하시나요?
박영호: 언젠가는 내가 새벽에 가니까, 아직도 글 쓰고 있으면서 ‘내게는 쓰는 게 기도다.’고 하
셨는데, ‘내 기도는 참선에 가깝다.’ 그러셨어요. 명상을 하는 그런 타입이고, 그다음엔 글 쓰는
것 자체가 영감 받는 기도의 시간이었지요.
박재순: 시간을 정해놓고 참선과 묵상을 하셨나요?
박영호: 새벽마다 주로 무릎 꿇고 눈 감고, 몸을 이렇게 흔들흔들 하시면서 명상하셨지요. 선생
님은 하루 온종일, 전천후 비행기라고 하듯이, 전천후 기도예요. 하루 특별한 시간만 내놓고 기
도하는 분이 아니에요. 늘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분이지, 어느 시간만 딱 정해놓고 그 시
간에만 기도하는 분은 아니었어요. 하루 온종일 하나님하고 떨어지는 일이 없는 그런 생활을
하셨죠.
박재순: 선생님이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법이 있으셨습니까? 이를테면 다리를 쭉 뻗는다든지,
기댄다든지.
박영호: 그런 거 없어요. 다석 선생님은 앉는 자세, 무릎 꿇는 자세가 달라요. 보통 우리는 이렇
게 발을 깔잖아요. 다석 선생님은 안 그래요. 다리를 여덟 팔 자로 이렇게 펴고, 궁둥이가 땅에
닿게 해서 온종일 좌상에 앉으셔서 지내셨어요. 이 자세를 궤(跪) 자, 발족 변에 위험하다 위를
써서 궤 자라고 하는데, 온종일 이 자세로 똑바로 앉아 계셨어요. 늘 긴장이 되고 허리를 굽힐
수가 없는 자세로, 하루 온종일 이렇게 지내셨어요. 함 선생님하고 ‘「성서조선」 사건’으로 감옥
에 들어가셨는데 13 1
, 간수들이 자꾸 무릎 꿇으라고 하는데 유 선생님은 시키지도 않는데 온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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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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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있으니깐 간수들이 탄복을 하더래요. 그러니 선생님이 무릎에 혹이 달릴 정도로 굳
은살이 배겼어요. 그렇게 온종일 앉아있는 거예요. 낮에는 눕는 일이 없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꿇어앉으시니까, 우리가 편하게 앉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우리가 꿇어앉아 있으면 한 시간만
지나면 아파서 이렇게 앉다 저렇게 앉다 그러는데, 선생님은 꿈쩍하지 않으셨어요. 참 기적 같
은 일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치매 상태가 되었는데도, 그렇게 앉는 것은 똑같아요.
박재순: 제가 70년대 중반쯤에 유 선생님 찾아뵙고, 참 짧은 말씀이었지만 큰 인상을 받은 것
중 하나는 ‘스스로 해야 한다. 손이 하는 일을 발이 도우면 안 되고, 발이 하는 일을 손이 도우면
안 된다.’ 하시고 ‘이렇게 하는 거다.’ 그러면서 80이 넘은 노인이 무릎 꿇고 앉으셨다가 갑자기
한쪽 발을 세우시더니 그 발로 번쩍 일어나시더라고요.
박영호: 그리고 누웠다가 손 안 대고 딱 일어나셨지요.
박재순: 그러니까 늘 앉아서 단전호흡을 이렇게 하시고 그러셨나 봐요. 또 영감이 나면 글을 쓰
시고, 시를 쓰시고. 그 당시에 정인보 선생님이나 최남선 선생이나 다 학자셨는데, 유영모 선생
님이 특별히 한학에 깊고 동양학의 대가라는 평판을 들으셨다고 그러는데, 유영모 선생님의 한
문 실력이라고 할까, 또 공부법은 어떻게 하셨나요?
박영호: 오산학교 교장으로 오는데, 육당 선생이 두려워하는 분은 오직 이 분뿐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니깐 춘원 선생이 지금 상명여대 있는 데 이사 왔을 때, 다석에게 노자 이야기를
들었다고 나와요. 김흥호 교수님도 정인보 선생님한테 물으니깐, 동양학에 대해서는 다석 선생
님한테 배워라 하셨고, 그다음엔 춘원 선생님한테 가니까 또 다석 선생한테 가서 배워라 하셨
대요. 보통 우리나라에 옛날 삼천재라는 분이 육당 최남선 선생하고, 춘원 이광수 선생하고, 원
래 이북에 간 홍명희 선생인데, 그분 빼고 정인보 선생을 집어넣었는데, 김교신 선생님 하는 말
이 삼천재, 사천재 하는데 다석 선생님도 포함하더라고요. 김교신 선생은 이 삼천재가 두려워하
는 분은 유영모 선생이라고 하셨지요. 다석 선생도 천자 책을 집에서 아버님한테 배웠는데, 다
섯 살 때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도 하고, 뒤에서부터 거꾸로 암송을 했다고 해요. 다 알고
눈에 환하게 보인데요, 천자 책이. 그러니 이래도 외우고 저래도 외울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타
고나신 것 같아요.
박재순: 강의는 어떻게 하셨나요?
박영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틀거리에 맞게 미리 구상을 해서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한 주제가 떠오르면 그에 대해서 아는 걸 다 말씀하시니까 끝이 없어요. 네 시간도 좋
고 다섯 시간도 좋고. 난 농사짓는 사람이니까 짐승들이 들에 있으니까 말씀을 듣다 말고 먼저
나와야 돼요. 세계대학봉사회에서는 일곱 시간 강의를 했다고 해요. 보통 오후 두 시에 모여서
겨울에는 컴컴할 때까지 했지요. 12월 한 달, 8월 한 달은 쉬고. 보통 두 시에 모여서 일찍 끝나
야 보통 여섯 시 또는 네 시에 끝났고, 보통 서너 시간 다 넘어요.
박재순: 혼자만 말씀하시나요? 질의응답 같은 건 없고요?
박영호: 없어요. 당신 혼자만 말씀하셨어요. 이따금 유승국 교수, 김흥호 교수님도 오셨지요. 당
신 혼자만 말씀하시기에도 시간이 없었는데요. 주소록 하나 만들지 않고, 인사시키는 일도 없고
얼굴은 얼굴대로 알고 지냈지요. 김흥호 선생님이 그러잖아요. 구기동 가서 『중용』을 배우는데
하루는 같이 나오는 분한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평안도 용천이라고 해서, ‘그러면 함 선생
님을 아세요?’ 그러니까 ‘내가 함석헌이요.’ 그랬대요.
박재순: 유 선생님은 언제부터 가르치셨대요?
박영호: 월남 이상재 선생님 돌아가시고, 1928년인가 YMCA 연경반에서 후임자를 구하는데, 최
남선 선생님이나 김정식 선생님을 비롯해서 여러 분들이 다석 선생님을 추천했다고 해요. 현동
완 총무가 집으로 왔더래요. 그래서 거기서 강의하시게 되었대요. 『노자』하고 『중용』은 집에서
강의했어요 13 . 선생님이 1
『중용』과 『노자』는 완역했고, 『장자』나 『맹자』는 발췌를 해서 가르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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셨거든요. 집에서 아침 일곱 시에 시작했는데 함 선생님은 오류동에서 구기동까지 걸어가셨다
는 거 아니에요. 김흥호 교수는 서대문에서 댁까지 걸어오셨고. 일곱 시에 시작하면 열두 시 될
때까지 말씀을 하셨어요. 서경덕 상서의 글을 번역해서 가르쳐주시고, 불경도 많이 가르치시고,
『반야심경』은 완전히 강의를 해주셨어요. 『반야심경』 번역도 있죠. 그러니까 우리 성경만 읽던
사람들이 불교를 알게 됐어요. 유승국 교수님도 다석 선생님을 만나서 불경도 읽게 되고 성경
도 읽게 됐다고 해요. 다석 선생님을 먼저 알아서 함 선생님을 알게 된 경우도 있고, 함 선생님
을 먼저 알아서 유 선생님한테로 넘어간 경우도 있지요. 물론 함 선생님 쪽에서 넘어간 사람이
숫자가 많지요. 네 그렇지요. 그렇죠. 머 넘어간 게 아니죠. 나는 넘어갔는지 몰라도.
박재순: 유 선생님이 집안일이나 농사일은 어떻게 하셨나요? 농사를 직접 지으셨나요?
박영호: 나도 체력이 약하지만 선생님의 손발은 나보다 크시더라고요. 키는 나보다 작고. 선생
님의 아버님이 선생님보고 ‘니가 뭔 농사짓느냐? 농사 감독이나 하면 하겠지’ 하셨대요. 그러나
당신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집안 청소에 이르기까지 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셨어요.
다석 선생님의 가방을 받아드리려고 하면 안 시켜요. 어린아이들에게도 잔심부름 안 시켰어요.
양반들이 잔심부름 시키는 거, 안 한다는 거지. 잔심부름 시키면 둘 다 병신 된다는 거지. 사모
님이 다리가 아프실 때 당신이 가셔서 사골 뼈 사다가 고아드렸어요. 큰일 할 때, 다른 사람 힘
빌려야 할 때만 빌리지요. 첨에는 머 며느리 없을 때는 아예 물 한 컵도 안 주시고, 며느리 생기
면서 꿀도 타오고 차도 타오고 그런 일이 자꾸 벌어져요. 밥상을 당신이 부엌 앞에 갖다놓으셔
요. 당신은 아무것도 안 잡수셔요. 우리만 손님으로 왔으니까 마시지요. 설거지를 하시지는 않
았어요. 한번은 내가 구두를 신고 갔는데, 구두 위에 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시고 가족들이
떨어뜨렸다 생각하고 선생님께서 내 구두를 닦아놓으신 일도 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서민적이셔요. ‘귀족화되면 안 된다 이거야. 기독교가 상놈의 종교인데 귀족
종교가 되면 안 된다 이거야’. 권위는 전연 부리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함 선생님은 그 앞에서
두려워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권위는 영적인 힘에서 오는 권위였지요. 겨울이 되어야 두루마기
입으시고, 두루마기 고름 아닌 단추 끼우시고, 여름에는 베 고이 입으시고. 아주 서민적이셨어
요.
세수할 때 비누 같은 것도 안 쓰시고 이는 소금으로 닦으셨어요. 아주 서민적이세요. 『주역』에 ‘
지천대통’(地天大通)이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서대문의 독립문에 있는 천지비석처럼 하늘궤가
위에 있고 땅궤가 아래 있으면 답답하다는 거예요. 지가 위에 올라가고 하늘이 아래로 가면 확
트인다는 거예요. 시골서 사는 사람 서울서 살고, 서울서 사는 사람 시골서 살고. 그래서 왜 뭣
좀 안다는 사람들이 자꾸 시골로 내려가야 지천대통이 되지, 자꾸 권위만 부리고 있어서는 서
민들이 살지를 못한단 말이에요. 나는 맨 끄트머리가 되고 땅의 먼지하고 가깝게 되는 게 자기
라는 거예요.
박재순: 예수님 가르침하고 같네요. 예수님의 성육신하고 같네요.
박영호: 그렇죠. 땅의 권위를 부리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드님들도 대학공부 안 시켰죠. 하
기야 그때만 해도 중학교 한 고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시기예요. 사람들한테 떠받드는 사람
되면 하나님한테 미움받는다는 거예요. 공부를 많이 해서 지배층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서민들
을 수탈해먹는 죄를 짓게 되어서 하나님한테 미움받는 존재가 되는데, 왜 그렇게 자꾸 그렇게
되느냐 이거지. 사람들한테 떠받드는 존재가 되면 하나님한테 미움받는 거 누가복음 17장엔가
나와요. ‘왜 자꾸 자식들 공부 많이 시켜서 귀족 만들려 하냐, 지배계급이 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서민들 피 빨아 먹는 존재가 되려 하느냐.’ 그런 서민의식이 철저해요. 그래서 내가 농사짓는 거
와 보시고, 내가 쓴 『새 시대의 신앙』이라는 책을 보시고 내 사상을 변질시키지는 않겠다고 여
기셔서 기특하게 여기지 않았나 생각해요.
박재순13 : 선생님은 어떻게 보면 기독교 신앙이나 성서로부터 자유롭게 나간 것도 같지만 1
,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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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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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유 선생님처럼 성서를 문자적으로 실천한 사람도 없다고 여겨져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은 예수님하고는 아주 가까운데 현 기독교하고는 멀죠. 선생님은 오늘날
기독교하고는 가까울 수 없다고 하셨어요. 유교를 통해서는 공자나 맹자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지금 불교를 봐서는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진짜 예수님을 알려면 어떤 의미
에서는 다석 사상을 알아야죠. 그래서 지금 톨스토이 주장은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도그마를 위
해서 예수님을 양념으로 써먹었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
석 선생님이 톨스토이 영향을 받았지요.
박재순: 바울 얘기는 하지 않으셨나요?
박영호: 지금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얼굴마담 정도로 되어 있는 거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
하지는 않는 거죠. 다석 선생님은 몸으로, 삶으로 산제사를 드린 것 같아요. 평생이, 전부가 예
배였어요. 성경을 철저하게 생활화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수님 가르침대로 사신 분이에
요. 내가 밥 먹는 거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먹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상의 미사가 어
디 있습니까? 비정통이 아니라 정통이죠. 선생님은 식사하실 때 가족들이랑 같이 드시지 않고
따로 드셨어요. 손님이 오시면 겸상을 하죠.
박재순: 일상생활에서 유 선생님의 특징이 있나요?
박영호: 괴짜라는 말 많이 들을 정도로 생활 자체가 남다르셨지요. 걸어갈 수 있는 데는 다 걸
어가셨죠. 오류동 송두영 선생 모임에 가실 때도 몇십 리 되는 길을 걸어가셨죠. 인천까지 걸어
서 다녀오기도 하셨습니다. 김흥호 선생님은 <개성당일 왕복래>(開城當日 往復來)라는 한시가
「성서조선」에 실린 것을 보시고 유 선생님이 하루에 개성까지 걸어갔다 오셨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해요. ‘개성당일’은 일본이 항복한다는 뜻을 함축한 말인데, 함 선생님만 그 뜻을 파악하
셨어요. 포천에 할아버지 산소가 있었는데, 하루 한 끼 먹는 일을 시작하고 새벽같이 가서 당일
에 오셨어요. 송두영 선생하고는 굉장히 가깝게 지내셨어요. 송두영 선생의 신앙은 정통적인데
도 두 분이 친하셨어요. 송두영 선생님과 함 선생님이 만나면 방에서 서로 큰절을 하고 “선생님
,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인사한 후 서로 대화를 나누셨다고 해요. 다석 선생님은 남한테 엎
드려서 큰절하는 걸 싫어하셨어요. 마을 젊은이들이 세배하러 왔는데 ‘그거 왜 하는지 모르겠다
.’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세배 대신에 선생님 시를 암송하면 선생님이 좋으셔서 ‘아멘’ 하셨어
요. 일제 때 신채호 선생님이 세수할 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셨다고 그래요. 일제에 굴하지
않기 위해서, 사대주의가 싫으니까. 자주정신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지요. 오랜 세월 중
국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살았으니까 그게 너무 분통해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거지요.
박재순:: 유영모 선생님은 동양학의 대가로서 기독교 정신과 동양종교, 민족사상을 종합하고,
얼과 정신, 몸을 곧게 세우고 사신 분으로 압니다. 유 선생님의 사상을 한마디로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박영호:: 유 선생님은 대단한 노력형이셨어요. 댁에 보면 고전 책이 많았어요. 다석 선생님은 정
적인 분이니까 골똘히 혼자서 연구하셨지요. 다석 선생님은 선생님이 없잖아요. 한문도 아버님
한테 배우고 서당에서 김인수 선생이라는 분한테 『맹자』 배운 거밖에 없죠. 그러고는 경신학교
한문 선생님이 김도희 선생님인데 다석 선생님의 한문 실력이 선생님 못지않았다고 해요. 한자
를 파자(破字)해서 한시도 쓰고 해서 김도희 선생님이 아주 탄복을 했대요. 나중에 『화엄경』을
어떤 스님한테 배웠다고 하지요. 타고난 천재에다가 대단한 노력형이라서 깊이 파고들 수 있었
지요.
박재순:: 안창호, 이승훈, 여준, 신채호가 모두 신민회의 중심인물들이지요. 안창호가 교육을 통
해 국민을 일깨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해서 이승훈 선생님이 오산학교를 세웠지요. 그
런데 유 선생님이 책을 읽으실 때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요? 이를테면 주자는 글을 읽을 때 이
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밑줄을 그었대요 13 1
. 두 번째 볼 때도 이해가 안 되면 이해될 때까지 노
정연이네 집
10/22/2019 다석 유영모의 생활모습 / 기독교사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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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다가 안 되는 건 또 밑줄 긋고, 세 번 읽을 때는 또 그래도 이해 안 되는 건 또 밑줄 긋고 해
서 마지막에는 이해 안 되는 게 없을 때까지 읽었다고 해요.
박영호:: 다석 선생님이 1971년에 저한테 성경책을 하나 주셨어요. 1909년도 판 신약성경인데
온통 빨간 방점을 찍어놓고 빨간 줄을 그어놓기도 했어요. 성경책이 거의 빨갛다 할 정도예요.
하루도 성경 안 읽을 때가 없었대요. 한창 젊을 때 30, 40, 50대까지도 거의 날마다 성경을 읽으
신 것 같아요. 형이상학이 약한 주희가 하나님에 대한 걸 잘 모르면서, 사서에다가 주석을 붙여
놓아서 그 영향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서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거의 무신론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다석 선생님은 ‘공자, 맹자가 다 하나님만 아는 분들인데 그렇게 되느냐?’ 하시고, 유교
가 이렇게 잘못된 거는 하나님을 내버려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다석 선생님의 유교 해석은 주희와 달라요. ‘천명지위성’(天命之爲性)에서 천명이란 하나님의
명령이고 생명은 성령인데 그 성령이 내게 온 것이 생(性), 바탈이라는 겁니다. 바탈이라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내가 쓰는 것이고. 성령을 내가 모시고 따라가는 걸 ‘솔성지위도’(率性
之謂道)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 왔는데, 내게 오신 하나님, 성령의 뜻을 좇아서
가는 게 길입니다. 나만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고 같이 가지고 하는 게, 그게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라는 겁니다. 다석의 유교 해석은 기존 유학자들의 해석하고는 전연 달라요.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박재순:: 다석은 자신의 하나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유교 경전을 해석하신 것이죠?
박영호:: 그렇죠. 공자도 하나님의 천명, 하나님의 생명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대인을 두려워한다고 하셨지요. 공자의 하나님은 상상 이상으로 인
격적인 하나님이에요. 그야말로 신격의 하나님이죠. 이 세상 사람은 날 몰라주는데 하나님만 날
알아준다고 공자가 말씀하셨지요. 공자는 그런 신격의 하나님을 믿은 분인데, 지금 유교인들은
효도나 하고 제사 지내는 게 유교인 줄 알아요. 천(天)을 그냥 원리로 생각합니다. 다석 선생님
의 공로가 있다면 오리지널 예수를 생각하고 드러내고 오리지널 부처님, 오리지널 공자, 맹자,
장자를 드러내고 맛보여준 것입니다. 함 선생님이 노자를 많이 하신 것도 그게 다 다석 선생님
의 영향이죠. 유 선생님이 다른 사람의 주석을 보긴 보셨는데, 의지하지는 않았죠. 당신이 독창
적으로 하셨죠.
박재순:: 다석 선생님은 일본에서 물리학을 하셨고, 천문학, 수학을 좋아하셨고, 서양 학문을 접
해서 과학이나 화학을 가르치셨다는데, 서양 학문에 대한 공부는 어느 정도 하셨을까요?
박영호:: 영어는 잘 못하셨어요. 영어에 약한 걸 그걸 아쉽게 생각하셨지요. 당신이 미션스쿨에
다니면서 일어를 알았기 때문에 빨리 서양 학문을 받을 수 있었죠. 춘원 선생님이 일본에서 중
학교 졸업하고, 오산학교에 톨스토이 전집을 가지고 왔다 그래요. 그때 톨스토이 전집을 읽어보
신 거죠. 20대 초에 톨스토이뿐 아니라, 읽을 수 있는 것은 일어를 통해서 거의 다 읽으셨어요.
그때만 해도 간디 책은 많이 번역이 안 됐을 때니까.
서양 철학자 중에서는 에크하르트를 좋아하시고, 김교신 선생하고 가깝게 지내면서 무교회에
서 칼라일을 워낙 좋아하니까, 칼라일의 『의상(衣裳)철학』도 읽으셨고. 철학도 뭐 읽으시긴 하
셨는데 워낙 당신이 신앙적인 사람이셔서 특정한 철학에 매이지는 않으셨지요. 헤겔의 정반합
이라는 거는 인류에게 공헌하는 소리다. 변증법 같은 거는 인정하셨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당
신한테는 한 단계 아래잖아요. 그걸 우리한테 가르쳐 주려고 하지는 않으셨어요. 괴테도 인정하
시고 말씀하셨지요. 서양 사상에 대해서 전부 다 한 차례는 독서를 하셨는데, 당신 마음에 드는
거는 톨스토이하고 에크하르트하고 몇몇 영성에 뛰어난 분들이었어요. 교의신학에 갇힌 분들
은 그야말로 코드상 안 맞으니까 우리한테 언급을 하지 않았어요.
박재순:: 데카르트 글도 보셨을까요? 소개서가 아니라 직접 그 사람들의 책을 보셨나요?
박영호13 :: 그렇죠1
. 일본 책을 통해서 읽어보신 것 같아요. 6・25 때 책을 많이 잃어버렸잖아요.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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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렸어도 많이 남아 있었는데, 거기서 대략 뭐를 읽으셨는지 짐작을 할 수 있죠. 거기에 그런
책들이 있어요. 일어를 하셨고, 영어는 좀 약하고, 에스페란토어는 잘 하시고, 중국말을 하셨죠.
김교신 선생님 모임에서 다 원어로 성서를 연구하기 때문에 희랍어도 조금 아시고 히브리어도
조금 아셨어요. 다석의 성경을 보면 희랍어로 된 문구가 나오고, 『다석일지』에도 많이 나와요.
우리말 성경을 많이 보시고 일어 성경도 보시고, 중국어 성경도 보셨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공동번역 나왔을 때도 선생님이 아주 연로하셨을 때인데 제일 먼저 가셔서 사가지고 오시더라
구요. 지금 성경에 잘못된 게 많으니까 옳게 번역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축소판 팔만대장경도
사다 놓으셨어요. 선생님은 될수록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한글, 우리말을 연구
하셨고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를 많이 보셨지요.
박재순:: 일지에 보면 삼일철학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시는데 혹시 선생님이 대종교와 가까이
하시거나 가까운 분이 계셨던가요?
박영호:: 대종교 총책임자였던 윤기복 선생은 만주로 피난 갔다 온 분인데 그분이 구기동에 찾
아오기도 하고 다석 선생님이 그분을 찾아가기도 하셨지요. 『천부경』, 『삼일신고』 같은 것도
윤기복 선생 쪽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천부경』은 우리말로 번역해서 『다석일지』에 실려 있
어요. 유승국 교수님은 다석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천부경』 풀이를 들었대요.
박재순:: 『천부경』을 풀이하면서 한보다 무에 초점을 두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에서 형이상학적
깊이를 본다는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한에서 시작해서 한으로 끝나는데, 그게 맞는 풀이 같
아요. 유무 이야기도 나오지만 결국은 한(하나님)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천부경』을 직역한 것
이면서 한(韓) 사상, 하나님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잘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유와 무보다 더
깊은 곳에 하나님이 있다.” “시작과 끝이 한이다.”
박영호:: 쉰두 살 때 유 선생님께 정신적 혁명이 일어나는데 완전히 자기 개체가 깨지고, 하나님
, 전체의식으로 의식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어요. 예수님도 “내 속에 하나님이 와서 말씀하시
는 것”이라고 하시잖아요. 하나님의 판단으로 판단하는 게 다 옳다고 하셨어요. 모든 걸 하나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 아
니겠습니까? 그게 이루어진 게 쉰두 살 때였죠. 다석 선생님은 귀일(歸一), 하나로 돌아가자, 하
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노년에 빗자루질을 많이 하셨어요. 빗자루가 닳을 정
도로 청소를 하셨대요. 선생님은 깨끗을 말씀하셨지요. “끝까지 다 깨진 게 깨끗한 거다. 더럽다
는 것은 덜 없어져서 더러운 거다. 또 깨어서 끝내는 것이 깨끗한 거다.”라고 하셨어요. 우리말
을 살려내려고 애쓰셨지요.
박재순:: 말놀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말은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우리말을 수만 년 동안 써왔고 앞으로도 쓸 말인데 이 말을 다듬고 이 말에 새로운 의미
를 부여하면 민족이 새로워지는 거 아닙니까?
박영호:: 그럼요. 가장 친근한 게 말인데, 말에다가 의미를 부여해서 영향을 주는 게 얼마나 큽
니까? 한신대 채수일 선생님이 “신학을 독일어로 해야 되느냐? 우리말로 신학도 하고 철학도
하신 이가 다석 선생님이다.”라고 하셨어요.
박재순:: 강의하신 모습이나 강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박영호:: 제가 농사짓다가 가면 나 한 사람 앉혀놓고 당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하셨어요
. 당신은 점심을 안 드시지만 우리는 배가 고프잖아요. 그렇게 한 사람 앉혀놓고도 열강을 하시
고, 겨울에는 털 스웨터를 입으셨는데, 열강을 하시니까 더워서 벗어놓고 하시고, 어떤 때 신이
나면 당신 글에다가 가락을 붙여서 시조 읊듯이 설명하셨어요. ‘ㅣ’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당신
이 서서 “이~이~” 하시며 “이거는 세계적으로 공통어야. 이이 저이 하는 게 좋은 거지. 미스터니
김 상이니 하냐?”라고 하셨어요. 영어 ‘I’만 아니라 희랍어 이요타도, 중국어도 하나가 사람을 가
르킨다는 겁니다. 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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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걸어오시니까 시간 늦으시는 법이 없어요. 낙상해서 하루 못 오실 때가 있었는데 기다
려도 안 오셔서 구기동에 찾아가니까 경황이 없어서 못 알렸다고 그러셔요. 다른 책은 아무것
도 안 가지고 오시는데 옛날 신구약 성경 하나만 천으로 만든 가방에 들고 다니니까 누가 사주
팔자 보냐고 하더래요. 그래서 “하나님 관상 본다.”고 하셨대요. 신구약 성경 하나만은 꼭 들고
오시고 다른 고전들은 노트에 쓴 것만 들고 오시지요.
다석 선생님은 함 선생님처럼 달변은 아니시지만 시적인 표현, 은유적인 표현을 잘하셨어요. 눈
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설명하려면 비유를 잘해야 하는데, 유 선생님은 나무에서 똑 따온 과일
같은 싱싱한 비유를 잘 하시죠. 말씀하시다가 한참 신이 나면 손짓 발짓으로 춤을 추셨어요. 보
통 음란한 춤은 하체를 많이 움직이잖아요. 선생님은 신이 나서 상체를 움직이시며 춤을 추셨
어요.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기쁜 것이다.” 기쁨은 기를 느끼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기철학을
하시잖아요. 기쁨은 기를 뿜어내는 거지요. 배가 ‘고프다’, ‘슬프다’, ‘바쁘다’에서 ‘쁘다’는 느끼는
거예요. 성령이 뿜어져 나와야 되는 거지요. ‘인생이 만날 우울증에 걸려서 어떻게 사느냐, 기쁨
이 넘쳐야 신앙생활이지. 분열증 걸리고 우울증 걸리는 게 신앙인에게 있을 수 있느냐.’는 말입
니다. ‘기쁘다’에서 ‘쁘다’는 ‘느끼다’를 뜻하고, ‘기’라는 건 한자의 ‘氣’가 아닌 우리의 ‘기’라는 겁
니다. 그걸 성령으로 연결시켜서 기쁨이란 ‘그렇다, 옳다, 맞다’면서 성령을 느끼는 게 기쁨이라
는 겁니다. ‘인생이 기뻐야지 울상을 짓고 해서 되느냐 이거야. 신앙인은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기쁘다 이거야. 죽는 것처럼 기쁜 게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다석 선생님의 신앙생활에서 52세를 전후로 다른 것이 있어요. 「성서조선」에 다석 선생님이 3
8년 만에 믿음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쓰셨어요. 그전에는 지금 교회에서 말하듯이 육신의 예수
를 그대로 그리스도로 믿었는데, 52세 이후에는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온 하나님의 영이 그리
스도이지 예수님의 몸뚱이 그 자체, 마리아가 낳은 인간 자체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온 영적인 생명인 하나님의 성령이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다석 선생님
은 예수님도 영적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석 선생님은 2,000년 전 예수
나 석가한테 온 영원한 생명이 자신에게도 왔다고 하셔요. 그런 영적 체험을 한 것은 쉰 두살
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영이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너, 나가 없다는 거예요. 영
으로는 예수 따로 있고, 석가 따로 있고, 유영모 따로 있고, 간디 따로 있고 그런 것이 아니고 영
적인 생명으로는 너, 나가 없기 때문에 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회통이 되는
데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니까, 교회하고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유승국
선생님에 따르면 다석 선생님은 유교에 대해 선생님이시고, 불교에 대해 선생님이시고, 기독교
에 대해 선생님이신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나 석가나 공자, 맹자 중심으로 해서 그런 거지
현재의 기독교, 현재의 유교, 현재의 불교와는 안 맞는 거예요.
다석 선생님의 기조정신은 예수님의 속에 온 영이에요. 그것을 제일 잘 나타내고 실천해 보여
준 사람이 예수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은 나에게
신앙을,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오직 한 분의 선생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을 믿은 분인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하고 분별이 안 되지 않나요. 석가나 공자,
맹자 이런 분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이야기한 것을 유 선생님은 굉장히
좋아하신 거예요. 결국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르쳐주는 것이 종교거든요. 그 관계를,
가장 절대와 상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것이 제
일 좋아서 예수님을 좋아하셨지요.
박재순:: 유 선생님이 예수님을 제일 좋아하고 가까이하신 것은 사실이지요.
박영호:: 그렇죠. 한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한테 분명하게 가르쳐 준 분은 예수님이지요. 다른 분
들도 그것을 가르쳐줬는데 난삽한 데가 있어요. 예수님의 생애조차도 하나님 아버지한테 충성
하고 효도하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셨어요 13 1
. 그래서 “나는 예수가 제일 좋다.”고 다석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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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하게 말씀하세요.
박재순:: 혹시 유 선생님이 여성과 관련해서 특별히 하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빨래하고 청소하
는 여인네들이 한사귀족(閑士貴族)들의 속구주(贖救主)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여
성들이 더러움과 때를 씻어주는 구세주라고 하신 것을 보면 여성들에 대해 친애하는 마음이 있
으셨던 것 같은데, 혹시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특별한 시각 같은 것이 있으셨나요?
박영호:: 선생님은 좀 모순된다고 할까 이율배반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기독교는 아버지종교’라
고 하셨어요. 말에서 ‘ㅏ’가 기본음이거든요. 영어의 ‘A’도 그렇고. 일본어도 ‘아이우에오’에서처
럼 ‘아’가 먼저 되고 애기들이 옹아리할 때 나는 소리도 아래아(ㆍ) 소리거든요. 유 선생님은 아
버지를 ‘아바디’라고 해요. 지금도 함경도에서는 아바디라고 하지요. 아바디에서 ‘아’는 모든 음
의 시작을 나타내고, ‘바’는 ‘밝아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디’는 땅을 굳게 딛고 실천한다는 것
을 나타낸다고 풀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가지고 세상이 밝아지도록 그것을 디
디고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어–머니, 아–머니, 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필요 없다는 겁니다. 성숙한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독립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숙한 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만 있으
면 된다는 거지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것도 집에서 부인네들이 다 수고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인네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이 레닌복,
노동복을 입으시기도 했고, 늘 간편한 옷을 입으셨는데 그 까닭은 여자들의 일손을 덜게 하려
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를 이기기 위해서 탈가족해야 된다는 거예요. 가족밖에 모르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셨지요.
또 국가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런 나라에 쫓아가서는 안 되고 하나님 나라를
쫓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 이기주의가 개인 이기주의보다 더 무서운 거거든요. 국가를 벗어
나 하나님 나라로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국가 민주주의가 잘 되어야 하고, 가정도 유지
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지요. 가정이 다 깨져버리면 애들을 어떻게 키우느냐, 그리고
몸뚱이도 건강해야지 건강을 잃어버리면 이중으로 다치는 거라고 하셨어요. 이런 국가, 우리가
따라갈 필요가 없다, 그런 공무원 하지 말라 이거예요. 그러면서도 ‘이 우주가 얼마나 장엄하냐!
이 우주가 혼불 나는 거다.’ 하셨어요. 우주도 상대 세계를 초월해야 된다는 거예요. 상대적 우
주에 갇혀 있으면 감옥이라는 거예요. 다석 선생님 집 앞에 가면 지금은 현대빌라가 들어섰는
데 네모난 돌에 사람 인(人) 자를 써 놓았어요. 그것은 죄수 수(囚) 자거든요. 몸, 집, 국가, 우주
조차도 내 관이고 수의고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다석 선생님은 몸, 가족, 국가, 우주를 늘 이중
적으로, 모순과 이율배반으로 보셨어요.
박재순:: 벗어나자고 할 때는 이 몸이 죄수복인데, 그러나 또 살자고 할 때는 이 몸이 굉장히 소
중한 존재가 되지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해요. 몸이 병이 나버리면 이중으로 갇힌다는 겁니다
. 그러니까 몸 성해야 한다. 몸 성히, 맘 좋이, 뜻 태우를 말하셨어요.
박재순::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에 붙어 있는 나는 어린애이니까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박영호:: 그렇죠. 상대세계를 멀리하고 절대세계로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독립해서 절대세계로
나가는 것을 뜻하고, 어머니는 상대세계를 뜻하는데, 상대세계는 나를 키워주고, 나를 안고 있
는 어머니 탯집 같은 건데 이것을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박재순:: 금욕을 강조하셨는데 다 금욕해서 애도 안 낳고 가정도 없어지는 것에 대한 말씀은 안
하셨나요?
박영호:: 선생님 말년에 함 선생님 스캔들이 있고 그때 인구폭발 된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많이
나올 때여서 금욕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13 1
. 씨앗도 두루 흩어져서 나야 되는데 씨 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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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한 군데 쏟아 놓으면 다 죽는다는 거지요. 모든 짐승들도 스스로 수를 조절해서 인구폭발
로 자멸하는 일은 없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이것을 조절하지 못해서 자멸한다면 이
런 창피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셨지요. 될수록 결혼하지 말고 자식 낳지 말라고 하셨
어요. 옛날 같으면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데 지금은 인구가 폭발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내 감
히 이런 소리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생식하고 자식을 낳은 것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니까 영원한 생명을 붙잡고 생식을 하지 말자고 하셨어요. 마하트마 간디도 정신적
인 아들인 제자를 길러야지 하나님의 나라를 번식시키는 거라고 했지요.
박재순:: 다석 선생님의 금욕사상을 젊은이들에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성
적인 자유 속에 살아가니까 금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거든요.
박영호:: 다석 선생님도 ‘30대는 암만 가르쳐도 실천하기 어렵다. 40이 넘어야 그게 되더라.’고
하셨어요. 사람이 40-50이 되어야 철나는데, 그것도 30대에 아주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40-50대
에 철이 나지 안 그러면 40-50대에 더 바람난다는 거요. 탐욕을 다스려 보시를 하고, 노여움을
다스려 자기를 이기고, 생식하고 자식 낳고 싶은 것을 참으라는 이야기요. 탐진치(貪瞋癡)를 다
스린 후에 정진하여 반야, 선정에 이르는데 그것은 절대자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에고’로서의
자아가 완전히 없어지고 절대 속에 내가 동화되는 것을 선정이라고 하고, 하나 되는 것, 귀일하
는 것, 개체의식이 완전히 소멸되고 전체의식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적
인 생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이야기하셨어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데, 그게 아니고 영적인 생명으로 하나님이 주신
성령으로 내가 아버지와 하나 되는 거지 예수의 몸뚱이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와 나가 하나 되었다는 말씀이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말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
다.
박재순:: 마지막으로 다석 선생님과 관련해서 하실 말씀을 해주시죠.
박영호:: 다석 선생님이나 나는 비정통이기 때문에 교의신학자들을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
습니다. 다석 선생님은 오직 예수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하는
분들 가운데 나에게 욕할 사람이 많을 텐데 욕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고 오히려 몇 분은 찾아오
기도 하고 이제까지 예수밖에 몰랐는데 당신 책을 읽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다석 선생님은 교회 밖에서 나온 하나님의 큰 효자이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라
고 말하는 분도 계셔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데 목회하는 분들은 교의신학을 따르기
때문에 다석의 책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김경재 교수님이나 정양모 교수님이나 심
일섭 교수님 이런 분들은 많이 이해해 주시고 당신네 글에 유영모라는 이름을 나타내셔요.
박재순:: 요새는 유영모 선생님의 말씀을 많이들 하세요.
박영호::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싶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들은 다석 사상을 참고하시
면 예수님을 바로 아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석 선생님은 날 보고 찾아오지 말라
고 할 정도로 우리는 교단이나 조직을 만드는 데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다만 선생님의 사
상을 알고 싶은 사람은 성천 유달영 선생님이 세우신 성천문화재단에 사무실에 ‘다석 사상 연
구회’라고 간판을 붙여 놓았어요. 목회하시는 분들이나 스님들이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궤도 수
정을 하는 데 다석 사상이 참고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대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석 사
상을 공부해서 예수님의 본모습을 아는 데 참고로 하고, 앞으로 21세기 모든 종교가 회통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종교가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앞으로
모든 종교를 회통해서 진일보한 자리에서 다석 사상을 공부한다면 잘 이해될 겁
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오늘날 불교에서 부처님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부처님의 신앙은 불상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니르바나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13 1
. 적멸(寂滅)은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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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바나를 의역한 것이고 열반은 음역한 것입니다. 절은 니르바나님을 모신 보배로운 궁전이라
서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같이 우상 배격한 사람 없어요. “부처님은 니르바
나라는 하나님을 믿은 분이다.”라고 발표를 했어요.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적멸보궁이라고 했
습니다. 앞으로 불교가 하나님 신앙에 가까워지고, 기독교가 예수님이 믿던 진짜 아버지 하나님
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톨스토이의 말대로 이슬람교를 기독교의 하나의 종파로 본다면 종교들
사이의 벽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높은 차원에서 종교는 정치인들을 가르쳐야 되는 거예요. 함 선생님이 다석 사상을 똑바로 지
켰다면, 함 선생님이 스캔들만 없었다면 함 선생님의 입을 거쳐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질 않았을까 아쉽게 생각합니다. 현 정부의 정치인들이 어정쩡한 사상으로 지금 정치
하고 있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부터 다석 사상을 한 번 읽으면 비전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선조 들어서면서도 유교를 기조정신으로 정치철학으로 하고, 고려시대에도 불교로
하듯이 민주정부도 기조정신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386세대들은 젊을 때 민주화 운동할 때 좌
경 서적 봤을 텐데 그런 바탕으로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어요. 다석 사상 전집이라도 한 번
읽고 하면 올바른 정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고, 오늘날 교회나 모든 종교의 분쟁도 다
석 사상에서 회통할 수 있는 21세기의 정치나 종교의 기조정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미국의 소로우가 물질적인 재산을 재산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신적 재산의 총화가 진짜 우리의
국부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GNP만 따지지 말고 정신적인 GNP를 따졌을 때 우리 다석 사상
의 무게가 우리의 국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달영 선생님은 우리는 이제껏 사상을 수입만
했는데 예수님 사상도 수입했고, 부처님 사상도, 노장, 공자, 맹자도 수입만 했는데 이제는 다석
사상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때가 한 번 왔으면 좋겠
어요. 외국과 국내에서 박사학위 받은 분이 여럿입니다. 석사학위 논문은 한 20여 편 나왔을 거
예요.
내가 다석 선생님을 호랑이를 고양이로 그리지 않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많은데, 선생
님의 생각을 크게 왜곡하거나 변질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교단에 계시는 교
수님들께서 많이 연구하셔서 종파의식에 갇혀 계시지 마시고 확 열린다면 한국 신학계가 확 달
라지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한국에 신학 공부하러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진짜 Univ
ersity가 된다면 여기서는 불교 가르치고, 여기서는 유교 가르치고, 여기서는 예수님 가르치고.
그런 신학교가 생기지 않겠는가 꿈을 꾸는데 성천문화재단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요. 저도
70이 넘어서 바통 터치할 사람을 물색하려고 하는데 젊은 분들이 나타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
아요. ( ‘기독교사상’ 2018년 5·6월호)

2019/10/21

알라딘: [전자책]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알라딘: [전자책]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eBook]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 최현숙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
최현숙 (지은이)글항아리2019-02-01

































8.9100자평(3)리뷰(4)

종이책 페이지수 208쪽, 약 7.8만자, 약 2.5만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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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구술생애사 전문 작가라고 하지만 한 손에 모아지지 않는 삶을 살아온 최현숙 작가의 에세이집은 제목처럼 힘차게 자신의 삶을 한 지점에 모아내고 있다. 똑바로 마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두렵고, 괴롭고, 지루하거나 아프거나 아무튼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똑바로 마주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자기 고백적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고백 서사가 아니다. 사적인 삶을 정치적으로 살아내려는 세월 속에서 나온 자기 성찰적 결들을 띤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 관한 한 ‘사회적 쓸모’라는 공적 자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처음에 천주교 운동을 통해 가난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그녀는 진보정당 운동, 요양노동, 구술사 작업 등을 통해 빈곤을 견디는 힘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함께 내왔다.

노인들과의 만남은 특히나 각별하다. 마지막에 전 생애를 되돌아본다는 건 볕들지 않았던 삶에 서사를 구축하면서 제 의미를 찾아주는 일이다. 이야기는 힘이 있다. 꿰어지지 않았을 땐 몰랐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상처로 버무려진 관계투성이였다면 그것을 희석시키는 힘도 기억과 재해석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목차


1부 이런 삶은 모른다고 하는 당신에게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
속도와 효율에 대한 강박
두려움과 혐오를 티 내지 않고 감춰서 문제에 휘말리지 않은 날에 대한 되새김질
빈곤을 견디는 힘
퀴어 환갑쟁이의 미풍양속
도벽의 퇴로
금연 13일차
장애 여성 구술생애사 작업에 들어가며
천주교회의 내일은 얼마나 걸려야 올까
덜 불행한 삶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 아닌 시민

2부 치열하게 중심을 잡고 살기
중하위 계층 5060세대 여성들이 나누는 세월호 이야기
새끼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자기 통곡을 삼킨 에미가 밑불을 놓았다-‘비온뒤무지개재단’ 창립총회에 참석하고 와서 “내 살은 거럴 우예 다 말로 합니꺼?”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밀려난 삶: 근로자로도 자궁으로도 쓸모없는
혁명의 징후를 보여주는 출산파업

3부 비하와 경멸은 당신들 몫이다
“선생님들요, 듣고 계십니까?:『숫자가 된 사람들』을 읽고
모든 개인은 구구절절 각별하다: 가난 속으로 들어가는 구술생애사
한만삼을 빼돌린 형들 조직
최근 일련의 기억투쟁들
예수는 세상의 모든 지옥 속에 있다: 교회에 갇혀 모독당하는 예수
가슴에 올라타 망치로 내리찍어

4부 사적이고 정치적인 늙음과 죽음
그래 갱년기야, 내 몸 안에서 놀아라
“너희끼리 잘 살고 우린 내버려둬”
복귀 불가능한 하강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자기가 뭐라고 울분에 서러움까지
죽음의 경로를 결단해야: 노인을 집에 둘 수 없는 세상에서
엄마 노릇 딸 노릇 사람 노릇

5부 나의 가족에 관하여
하루 세끼니 꼬박 64일간 192개를 모은 쿠폰: 엄마, 이번 여행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그러고 나서 담배 이야기는 서로 간에 처음이다: 2015년 5월 친정 식구들과 부산여행
서자 춘섭과 양반집 셋째 여자 서당골댁
안가네 막내 시누이와 둘째 큰올케
두 번째 책을 아버지에게 선물하다
두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엄마
엄마의 해체를 관찰하며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요즘도 가끔 꾸는 꿈의 한 종류.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를 명확히 해 그 행복을 그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으면 된다. ‘자급하며 소신을 품고 실천을 나누는 살이나 지금이나 나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더라. 소박한 일상과 지존감을 다치지 않을 만큼의 물질이, 그 자체로도 단출하고 소신과 실천에도 도움이 되더라. 지금처럼 살고 있으면 나이는 오는 대로먹어질 테... 더보기 - :Dora



저자 및 역자소개
최현숙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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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생애사 작가. 1987년부터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했고,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에 몸담으며 여성위원장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8년부터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하며 할머니·할아버지들의 넋두리를 듣다가 혼자 듣기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받아 적기 시작해 ‘구술생애사’라는 것을 하게 됐다. 지금은 전업 작 가로 일하며 노인을 비롯해 편견과 배제로 경계 바깥으로 밀려 난 사람들에 관한 다양한 글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할배의 탄생』,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더보기


최근작 : <작별 일기>,<할매의 탄생>,<노년 공감> … 총 1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물러날 곳이 없는 데서는 맞선다
그 치열함이 우리를 만든다

예순두 살의 여자가 있다. 그는 24년간 혈육인 가족과 살았고 24년간 스스로 만든 가족과 살았으며 또 14년간 이리저리 떠돌면서 살았다. 그렇게 예순두 살인 그녀는 지금 수원에 위치한 원룸에 살면서 근처 실버타운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뵙고 있다. 그녀는 노숙자, 시골 노인, 시장 상인 등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온 구술생애사 전문 작가다. 『할배의 탄생』이란 책도 펴낸 바 있다. 지금은 “교양을 부리며” 살아온 가난하지 않은 실버타운의 나이든 노인도 삶을 관찰하고 있다. 그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
구술생애사 전문 작가라고 하지만 한 손에 모아지지 않는 삶을 살아온 최현숙 작가의 에세이집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제목처럼 힘차게 자신의 삶을 한 지점에 모아내고 있다. 똑바로 마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두렵고, 괴롭고, 지루하거나 아프거나 아무튼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똑바로 마주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책에 담긴 것은 그러한 깨달음들이다. 동성애, 가난, 종교, 장애 등 “한국 사회의 지뢰만 골라 밟아온” 그녀가 자신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려 한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이런 삶은 모른다고 하는 당신에게’ 말을 거는 1부의 첫 글은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여자’는 ‘좋은 엄마’라는 막중한 이데올로기와 겹치는 문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과연 어떤 삶을 걸었을까. 그녀의 작은아들은 17세에 가출을 했다. 좋은 엄마라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남편은 아들을 찾아 나서지 않는, 혹은 자기처럼 걱정하지 않는 그녀를 향해 심한 비난을 했다. ‘자기 발로 나간 아이가 자기 발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이 생각을 정리해내는 동안 그녀는 많이 힘들었고, 그런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힘들었다. 그녀는 사실 훨씬 더 독한 각오까지 했다. ‘아들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그리하여 내 남은 삶이 자책과 주변의 원망에 짓눌리는 것까지도 나는 감수하겠다’는 각오였다. 이것이 당시 그녀가 작은아들의 가출을 마주하고 홀로 정리해낸 감성과 이성의 경합물이었다. 그때의 불안과 이질감과 죄책감은 이후로 그녀 안에 계속 남아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끌어내져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 구실을 해왔다.
저자의 글은 삶의 굽이마다 패여 있는, 옹이가 되어 있는 지난날의 자책과 상처로 가득하다. 그것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검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엄마이면서 퀴어이면서 어릴 적 자기와 맞서는

태어나보니 가부장적 가족과 사회 한가운데였고, 타고난 성정 또한 고분고분하지 않아 지뢰밭 같은 세상에서 피하기보단 치열하게 맞서 살아왔다. 그것들은 안팎으로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공공적 자아로서의 자기 삶도 잊지 않으며 테두리를 잘 지어온 생애라 그 삶은 가장 사적이면서도 윤리적 의미까지 적잖이 내비치고 있다. 결혼생활 24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그걸 못다했기 때문일까. 예순이 넘은 지금 30대의 두 아들이 꿈속에서 갓난아기로 나온다. 아이들은 칭얼대며 엄마한테 보살핌을 바란다. 기저귀 갈아준 지 오래됐는데 그녀는 다른 일로 무척 바쁘다. ‘이러다간 누가 미친년이라고 하겠어.’ 죄책감과 조바심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아이는 먹이지 못하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를 계속 살펴보자. 약간 함몰된 젖꼭지라 아이를 낳았을 때 주변 사람들은 우유 수유를 권했지만 그녀는 모유 수유를 했다. 살갗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런 꿈을 꾸는 건 왜일까. 그녀는 의심한다, 모성애의 명확한 의미와 유래, 쓸모와 그 공공성을. 하지만 딱 잘라 규정하기 어렵다. 모성애는 본능적인 것이라서 아무리 ‘모성 이데올로기’를 벗겨내려 해도 죄책감과 뒤엉키고 나면 통곡을 자아내고 그래서 그녀는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자기분열적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폐적이고 자기중심적 모습을 드러내는 모성애, 그 학습된 수치심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물론 이런 엄마는 보통 엄마와는 다른 이물감을 일으키는 존재지만 그것이 한 여자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엄마로서의 그녀는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해 24년의 결혼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이는 한 정당의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과도 연결되어 성소수자 관련 정책에 목소리를 내왔다. 개인적으로는 두 아들과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두 아들의 결혼식을 모두 참석하지 않은 엄마>라는 글에서 아들들과의 단절된 관계, 그걸 회복하고 싶은 바람, 아들 결혼식 당일 눈물을 터뜨린 이유,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이야기된다.
결혼 전 저자는 원原가족과 24년을 살았다. 맏딸로서 오빠와의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그녀에게 세상은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큰딸을 양반집 규수에 현모양처로 키우겠다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자기 길을 만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녀. 지뢰를 밟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치열하게 맞붙는 삶을 택했고, 거기서 무수한 갈래길이 만들어져 공적/사적 자아로서 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엔 타고난 성정도 있으리라. 이젠 아흔이 다 된 아버지와 예순이 넘은 딸은 서로 무릎 사이의 간격을 좁히며 때론 언어로, 때론 눈물로 서로를 이해해보려 시도한다. 사무쳤던 기억들은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며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려 하고 있다.

치열하게 중심을 잡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책에 등장하는 자기 고백적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고백 서사가 아니다. 사적인 삶을 정치적으로 살아내려는 세월 속에서 나온 자기 성찰적 결들을 띤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 관한 한 ‘사회적 쓸모’라는 공적 자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처음에 천주교 운동을 통해 가난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그녀는 진보정당 운동, 요양노동, 구술사 작업 등을 통해 빈곤을 견디는 힘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함께 내왔다.
노인들과의 만남은 특히나 각별하다. 마지막에 전 생애를 되돌아본다는 건 볕들지 않았던 삶에 서사를 구축하면서 제 의미를 찾아주는 일이다. 이야기는 힘이 있다. 꿰어지지 않았을 땐 몰랐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상처로 버무려진 관계투성이였다면 그것을 희석시키는 힘도 기억과 재해석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전작 『할배의 탄생』에서 어떤 독자들은 그리 도덕적이지도 않고 타인에게 열려 있지도 않은 존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삶들을 왜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저자는 되묻는다. 유부남에게 속아 스물다섯에 낳은 딸 하나를 혼자 키웠고 아직도 밥벌이를 하는 70대의 간병인 할머니가 왜 비정상이란 말인가? 홀아비 목수가 노가다로 번 돈을 술집 여편네들한테 퍼주며 평생 공사장을 떠돌았기로서니, 그게 대체 누구에게 죄이며 피해란 말인가? 화신백화점을 구경 왔다 삼팔선과 임신으로 끈이 떨어진 열아홉 평양 처자가 남의 나라 전쟁에 팔려온 미군에게 몸을 팔며 새끼를 목사로 키웠기로서니, 뭐가 어쨌다고 왈가왈부들인가? “빈곤에 대한 동정은 혐오이자 자기 불안이다.” 빈곤과 무엇이든 할 거면 그것을 견디는 힘을 직시하면 된다. 고단한 노동으로 세상을 떠받치며 되는대로 나눠먹으며 질기게 살아온 삶들이다. 혹 세상의 희망이 있다면, 바로 이들에게서 나올 것이며, 걸고넘어지자면 가진 자들이 사회에, 지구 생태계에 끼친 해가 훨씬 막대하다.
또 다른 치열한 삶에 시선을 옮겨보자. 여기 평범하지 않은 자식과 부모가 있다. 고등학생 아들은 자기가 아무래도 여자인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부모는 그런 아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한 정당의 소수자위원회를 찾아왔다. 부모는 자식을 통속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통념에 근거하여 서로를 대하고 규정지을 때 예민한 존재들은 상처 입기 마련이며, 새로운 삶은 잘 열리지 않는다. 그 아이의 엄마가 새끼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자기 통곡을 삼킨 채 밑불을 놓아 ‘비온뒤무지개재단’이란 것이 창립되었다.
속도와 효율의 돈맛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근로자’로서나 ‘자궁’으로서도 쓸모없는 여성 장애인들 또한 가장 치열하게 사는 부류다. 저자는 이들의 활동보조로 거리를 따라 나섰다가 느리기만 한 장애인들 속에서 자신의 속도와 효율 강박을 되돌아본다. 근로자와 자궁으로 배양되는 비장애인들의 세상에서, 이들 여성이 노는 판에 끼어든 경험은 반역의 꿀맛을 알게 해주었다.

늙음과 죽음은 사적이고 정치적이다

세월을 어느 정도 흘려보내면서는 누구나 제 나이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저절로 먹어지는 나이는 없기에 저자는 나이테를 확실히 새기면서 한발 한발 나아간다. 주변에서 죽음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요즈음, 그녀는 말한다. “산 자들만 쑥덕대는 죽음에 관한 소문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무섭다느니 외롭다느니 슬프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산 자들의 느낌이다.” 늙어죽음은 거듭되는 소멸과 해체, 노쇠와 병증, 통증과 느려짐과 불가능해짐에 이어 오는 것이어서 마침내 죽음에 닿음을 마음으로 치하하게 된다는 것.
2008년 4월 총선에 출마했던 그녀. 하필이면 선거운동 기간에 갱년기가 찾아왔다. 후보는 당의 마이크인데 목소리가 쉬어 잘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방광염 통증에 이어 월경은 거의 끝났고, 시도 때도 없는 발열 증상과 질내 건조 증상이 나타났다. 불평하자면 안 할 수 없는 게, 발열로 감기가 들락거리고 성관계도 편치 않다. 하지만 갱년기를 사적인 몸의 퇴락으로 규정지을 수만은 없다. 그건 알고 보면 매우 정치적인 단어이고 장해, 우울증, 울병, 여성 문제 등의 용어와 붙어다니면서 마치 성적 존재로서의 여성이 끝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를 확장하면 남성 중심의 성 이데올로기 안에서 한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끝나는 시기라는 의미다.
노년을 관찰하는 한 대상으로서 엄마의 해체되어가는 몸을 지켜보는 요즘, 저자는 “사적 관계만 넘어선다면 늙어죽음은 감사하고 필수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빈곤 가구의 절반을 노년이 차지하는 현시대에는 죽음 근처까지 불평등이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위안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 그것에 다가갈수록 욕망과 일상은 단출해지며, 삶의 테두리를 더 단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이는 오는 대로 먹어질 테고, 그에 따라 늙음과 질병과 장애도 따라와서 나를 이룰 것이다. 그 끝에 죽음이 오거나 잡을 테고, 그다음은 이승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최선을 다할 작정만 한다. 접기


북플 bookple







조금은 거칠지만.. 치열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
bright 2018-12-2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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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없이 써질 수 없고, 구구절절 각별한 무수한 나?들의 이야기를 가벼이 여기지 않은 이기에 써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그래서 오늘도 내 얼마나 치열하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삶을 똑바로 바라보고’자 마음을 움켜쥔다.
anne 2018-11-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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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스러운 삶에 대한 태도
주열매 2018-12-3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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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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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나를, 삶을, 타인을, 지금을, 여기를 똑바로 마주하기.
내게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네.

저자의 글은 치열하고,
단어 마다, 문장 마다 갈아넣은 느낌이 든다. 그게 무엇이든.
나도 이렇게 치열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 최현숙은 힘을 아끼는 법이 없다. (...) 신중하지만 단호한 문장으로 이 책은 빛난다. (...) 이번에 쓰지 못하고 삼킨 말이 얼마나 많을지 훤하다. 그 모든 이야기를, 또 다른 책을, 벌써부터 손꼽아 기다린다.˝ (이다혜 작가)

나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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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bomi 2018-11-14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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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치열한 삶을 거쳐내고 마주했던(하고있는) 저자의 내밀한 일기. 노년에 관한 어떤 책을 읽다 그녀의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평범한 한 여성으로서 그것이 아니라 더 관심이 갔다ㅡ 열정이 바로 그녀의 삶.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에너자이저 최현숙님의 열정적인 삶을 지지하고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강연도 신청했다.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를 명확히 해 그 행복을 그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으면 된다. ‘자급하며 소신을 품고 실천을 나누는 살이나 지금이나 나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더라. 소박한 일상과 지존감을 다치지 않을 만큼의 물질이, 그 자체로도 단출하고 소신과 실천에도 도움이 되더라. 지금처럼 살고 있으면 나이는 오는 대로먹어질 테고, 그에 따라 늙음과 질병과 장애도 따라와서 나를 이룰 것이다. 그 끝에 죽음이 오거나 잡을 테고, 그다음은 이승의 일이 아니다. 죽음 이후는 차치하고, 이승의 남은 삶도 궁금하지 않다. 오는 대로 최선을 다할 작정만 한다. 1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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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9-01-08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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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주는 책




삶의 한 단계를 넘어가며 희미해지고 흐릿해지고 멍해지고 흔들리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지만 헛발질을 하거나 두 손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린다.

역설적으로 나이듦의 예찬론에서 그런 헛발질이나 허우적거림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한다.

또렷한 정신과 치열한 마음가짐과 흐트러짐없는 몸가짐을 가진 중장노년의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도 그리될까 두려운 마음에, 서글픈 마음에, 절박한 마음에 동동거리고 허우적거리다가 이 책에 손이 닿았다.




또박또박 쓰인 책 제목과 또박또박 쓰인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단 하나 글 하나

이 책 하나가

온정신을 또렷하게 만들고, 마음을 곧추어세우고, 몸을 정돈하게 한다.

그것은 저자가 또박거려서가 아니라 제 걸음을 뚜벅 내딛는 덕분이다.




나로서 나를 오롯이 마주보는 장년의 시간 속에서

외로움과 빈곤을 똑바로 마주할 힘

나의 욕망을 오롯이 드러냄이 허락되는 장년의 시간 속에서

나의 욕망과 함께 타인의 고통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을 힘

나의 성취를 되돌아보고 다져져나갈 여유를 가질 장년의 시간 속에서

나의 성취가 이 사회 안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구체적이고 치열하게 사유할 힘




그리고

나의 독자성과 나의 욕망과 나의 성취가

당신의 독자성과 당신의 욕망과 당신의 성취를 초과한다는 오만을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 책이.




외롭고 빈곤하지만

나를 나로서 마주보게 한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나의 욕망에 죄의식을 가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게 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과대평가되더라도

그저 나의 성취를 반성하고 꿋꿋이 계속하게 한다.




나의 나이듦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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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icor 2018-12-1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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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


지인이 추천할만한 책이 없냐고 묻기에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로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던 책을 꼽았다. 최현숙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진보활동가인 최현숙씨는 24년간 결혼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여성이 좋아졌다고 돌연 커밍아웃을 하며 이혼을 했다. 그 뒤부터는 애인과 함께 살다가 헤어지면 또 홀로 지내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았다. 2008년에는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그녀가 매체에 그간 기고했던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평소에도 도전을 좋아하고 용기가 있는 지인에게 어울릴 것 같아 추천을 했었는데, 엊그제 직접 읽어보다가 부리나케 연락해야만 했다. 추천 취소예요. 아마 안 좋아할 것 같아요.

직접 읽어보니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만한 책이다. 논조는 대단히 강하고, 문장은 다소 거칠게 느껴지며, 글을 쓸 때 대부분의 사람이 하기 마련인 기본적인 필터링 따위가 전혀 없다. 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최근에 몸이 안 좋다는 이야기에 누가 섹스를 너무 많이 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섹스를 많이 한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고 갱년기 증상이었다고 언급한다거나, 여성 노인의 성생활에 대해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데 ‘꼴렸다거나’, 뭐 이런 내용이 가감없이 나온다. 그나마 나의 머리와 손을 거쳐 한 번 정돈된 것이 이러하고, 실제 표현은 더욱 생생하다.

물론 섹스가 다루지 못할 주제는 절대 아니지만, 예상과 너무 다른 내용들이라 좀 놀랐다고 해야하나. 아마도 이토록이나 생생하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목소리(선정적이란 표현보다는 적나라하다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를 듣는 것이 오랜만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본인 스스로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를 널뛰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와닿는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주장이 상당히 강한데, 해당 부분이 평소 나의 생각과 좀 달라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도 같다. 아마도 나의 페친들 중 어떤 이들이라면 읽다가 매우 화를 냈을지도.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된 것은 나의,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느라고 모두 애쓴다.”는 그녀의 어머니의 말처럼 그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와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폐경기’라는 용어에 대한 의견이나 고부갈등을 바라보는 시각 등 여성주의 이슈를 대하는 것 또한 기존의 페미니스트들과 사뭇 다른 방향이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이토록 용감하고 치열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1957년생. 생각해보면 그 연배에 결혼생활을 무려 24년이나 하고서 중간에 커밍아웃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는 자체가 엄청난 기백이다. 우리 엄마와 같은 나이인데. 그만큼 삶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강하고 용기 있는 그녀임에도 아이들과 관련한 대목을 읽을 때는 감춰두었던 여리고 약한 부분이 드러난다. 그러고보면 자녀가 성소수자인 경우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부모가 성소수자인 경우의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아들들의 마음과, 그 아들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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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쵸 2018-12-18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