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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김봉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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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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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1916년 ~ 1966년?)은 한국의 의학자이다.

생애[편집]

1941년에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야전병원 의사로서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산알의 존재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이후 김봉한은 월북하여 평양의과대학에서 동물실험 등을 통해 인체에 존재하는 경락의 실체에 대해 연구한 결과 몸안에 많은 수의 ‘산알’과 이것을 잇는 그물망같은 물리적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만들고, 이를 ‘산알이론’으로 확립하고, 1961년에 경락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김봉한은 1960년대 중반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에게 반당분자로 몰려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연구결과는 신소재 섬유인 비날론 등과 함께 1960년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의 3대 업적으로 꼽힐만큼 칭송을 받았으며, 당시 동구권 과학자들 사이에서 선풍적 관심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이론에 대해 ‘비인도적인 생체실험을 통해 연구된 것’이라는 소문과 국제적 의혹이 제기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김봉한과 그의 '산알이론'을 매장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내용은 70년대 후반 일본을 통해 국내에 소문으로 흘러들어왔으며 이를 소개한 책자가 1992년과 1997년 국내에서 작가 공동철에 의해 발행됐다. 공동철의 책 "김봉한"[1][2]은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 일본에서 먼저 발행된 도서 등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각주 및 참고 자료

↑ 공동철 (1992년 9월 1일). 《김봉한》. 학민사. ISBN 10 - 8971930187, ISBN 13 - 9788971930182.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9월 10일에 확인함.
↑ 공동철 (1997년 1월 31일). 《김봉한 2》. 학민사. ISBN 10 - 8985656856 , ISBN 13 - 9788985656856.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9월 10일에 확인함.

藤原知,芹澤勝助 (2001년 8월 25일). 생활의학연구회, 편집. 《경락의 대발견:김봉한 학설의 경이와 지압법대계(일월건강 3)》. 일월서각. ISBN 10 - 8974400278, ISBN 13 - 9788974400279.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9월 10일에 확인함.
한승섭 (2006년 4월 19일). 《응급처치 동의보감》. 중앙생활사. pp.70-71쪽. 경락은 생명체에서 바로 이들 기와 혈이 순환하는 이동통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몸 속에는 이러한 기혈의 통로가(중략) 눈으로 볼 수 없고 단지 한의학적 개념으로만 인식되었던 경락이 북한의 의학자 김봉한에 의해 그 실체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오래전에 발표되어 세계 의학계에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을 이른바 '봉한학설'이라 부르고 있다. (중략) 김봉한은 서울 의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6.25사변으로 월북하게 되었고, 그 후 평양의과대학 생물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양의학의 과학화 산업의 중심인물로 부각되어 1961~1965년까지 다섯편의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하여 세계의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1967년 북한의 최대 정변 중 하나인 갑산파 숙청사건에 연루되어 그의 학설은 하루아침에 매장되었다.
김지하 (2008년 1월 29일).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pp.93쪽. 북한의 기 연구가 김봉한이 숙청을 당했는데요, 그는 한때 일본에서 유명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이 아니고 숙청된 가장 큰 이유가 인민군을 산 채로 실험했다는 데 있습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걸린 것이지요. (중략) 중요한 것은 기가 물질이 아닌데도 물질화한다는 것입니다. 미묘하게 그것을 어떤 순간에 포착하느냐가 문제인거죠. 김봉한이나 화담(서화담)을 보면 일치하는 것이 있는데 기는 일종의 물질이면서 물질적인 생성 전체의 條理, 즉 그것이 그렇게 되는 까닭이 바로 이치이고 그 움직임, 바로 끝없는 생성의 功能을 靈이라고 하고 그 오묘함을 神이라고 합니다.
김지하 (2008년 1월 29일).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pp.220쪽. 이제마 식으로 하면 장기 세포가 四象입니다. 이것은 코스모스, 드러난 질서입니다. 허준에 의하면 삼재론에 입각한 3단전-이것은 신선도에 꾸준히 내려오던 것인데, 상중하단전-을 중심으로 해서 780여개의 경락이 있습니다. 이것은 숨겨진 질서입니다. (중략) 거기에 수많은 카오스 혈들이 있어요. 북한의 김봉한이 보고한 겁니다. 780경혈, 경락 이외에 30여가지 혼돈혈이 열려있다는 거예요.
고진석 (2007년 4월 20일).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 천케이(TRC). pp.144~148쪽. 봉한학설에서 말하는 봉한관은 투명한 까닭에 이를 확인하려면 주변조직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염색약이 중요한데, 김봉한 교수는 논문에서 '특별한 청색 염료'같은 식으로 모호하게 표현했을 뿐 약물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성과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의 소광섭 교수팀이 연구에 뛰어들면서부터인데, 우선 김봉한 교수가 논문에서 사람의 혈관내에 있다고 주장한 '내봉한관'의 실체를 확인하기로 한 소 교수팀은, 여러나라를 돌며 김봉한 팀의 연구자료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얻은 자료를 참조해 새로운 염색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고, 2002년 6월 마침내 형광현미경을 통해 흰쥐의 혈관에서 내봉한관으로 추정되는 실체를 구분해냅니다. 현관 안에서 근육 또는 피부 안쪽 세포에서나 발견되는 '막대모양'의 핵을 가진 전혀 새로운 조직을 발견한 것입니다. (중략) 소 교수는 이를 정리해 2004년 미국 해부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해부학 기록' 5월호에 발표했고, 논문은 표지에 올랐습니다. 2004년 여름에는 흰쥐의 간 표면에서 유사한 조직이 발견되었고, '봉한관'뿐 아니라 관끼리 만나는 봉오리인 '봉한소체'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 교수팀은 설명하는데, 이 내용은 그해 9월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 침구수의학회에서 발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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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분류: 1916년 출생
몰년 미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생물학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의학자
침구사
연구부정행위자





2022/12/16

[알라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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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지은이)소나무2022-06-02





























전자책 미리 읽기

전자책정가
17,600원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3.83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252쪽

책소개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2022/08/26

이윤선 - 김상준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읽으며

14010101-03062022000.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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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읽으며 달포 전 어느 술자리에서 김교수 가 내 손을 잡고 한 얘기가 있다. 장 군에게 무슨 세부 전공이 있겠나. 모든 것을 통할(統轄)하는 것이 장 군이지 음! 이분네가 사람 보는 눈 이 좀 있구만 하하하, 그랬는데 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저작을 보고 알게 되었다. 에둘러 스스로를 지칭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김장군! 내 말이 맞지 않소? 장자의 붕새를 몬 순 지역의 바람 혹은 태양으로 읽어 내고 북명에서 남명으로의 종축을 통해 문명의 횡축을 추적한 시선 말 이요. 이를 붕새의 양 날개라고 했 다. 사실 오래전 유사한 추적들을 몇 군데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이를 몬순과 연결해 설명하는 방식은 처 음 접했다. 아마 내 과문 탓일 것이 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 혹은 생태 적 현상으로 호명하는 남동풍이니 북서풍이니 하는 언술을 새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종축은 문화권 문명권별로 여러 개 혹은 수십 개 설정할 수 있다. 저자 는 말한다. 동아시아 중심의 종축에 붕새가 있고, 서남쪽을 향해보면 또 하나의 붕새 가루다가 있다. 그뿐이 겠는가. 용과 봉황, 뱀과 나가 (Naga) 등 수많은 종횡의 대칭이 있다. 그가 길을 열었으니 이제 누 군가 대칭성 회복의 기제들을 소환 하고 추적하게 될 것이다. 사회과 학, 자연과학 따위면 더욱 좋다. 다 만 영감 가득한 이 책의 핵심, 문명 의 진로에 대해 내가 언급하기는 어 렵다. 내 수준을 훌쩍 넘어서기 때 문이다. 또 하나의 길을 찾은 어떤 젊은이들처럼 더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 길 없던 시절, 혼인하 여 큰아이를 낳고 이름을 붕(鵬) 이라 지었던 만용을 만회하기 위해 서라도, 일찍이 동학의 최제우에서 증산의 강일순으로 혹은 흰그늘의 김지하 등으로 어쩌다 꼬리를 무는 북명(北溟)의 성근 성운(星雲)을 올려다볼 따름이다
===
⥭⥒⚒<⁣⇆ ⥯⑿⶯> 붕(鵬)새의 날개
===
⥭⥒⚒<⁣⇆ ⥯⑿⶯> 붕(鵬)새의 날개
말이 맞지 못하야 이 날밤 삼경시에
바람이 차차 일어난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 내려 깃발을 바래보
니 청룡주작(靑龍朱雀) 양기각(兩旗
脚)이백호현무(白虎玄武)를응하야서
북으로펄펄삽시간에동남대풍(東南大
風)이 일어 기각이 와지끈 움죽 기폭판
(旗幅版)도 떼그르르 천동(天動)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더니 간담
이 떨어지는지라~ 판소리 적벽가 중 동
남풍 부는 대목이다. 적벽대전 눈 대목
의하나, 긴박한장면이기에자진모리로
노래한다. 이 바람 아니었으면 주유가
조조의 백만 대군을 맞아 어찌 화공(火
攻)을 펼 수 있었겠는가.
우리네 이름으로 흔히 마파람이라 한
다. 배산임수를 정향(定向)으로 맞은편
에서 불어오니 맞바람 이고 동쪽으로
살짝 비꼈으니 샛마 다. 새파람과 마파
람의 틈바귀, 남도말로 새다구 바람이
다. 봄철부터 비를 데리고 오는 바람이
기에 비올바람 이다. 반대로 북에서 내
려오는 바람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격이
니 하누바람 이다. 샛마 와 대칭되는
서북풍이라 흔히 늦하누 라 한다. 이러
한 바람의 들고남이 비와 눈 혹은 가뭄
과 동행하는 몬순(monsoon)지대에 우
리가 속해 있다. 어찌 계절풍뿐이겠는
가. 철마다 해 뜨고 지는 길이와 각이 달
라지는것이며, 북두칠성기울어순환하
는 이치가 다르지 않다. 고대 이래 이것
은 신화와 전설로 은유되기도 하고, 철
학과 과학으로 표명되기도 했다. 다만
숨겨져 있으니 일각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각양으로 표명되었으나 선뜻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붕새의날개, 문명의진로>의시선
그런데 말이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아카넷, 2021)라는 책을 펼치다
가 무릎을 쳤다. 노숙과 함께 주유를 찾
아간 공명은 남병산에 올라 칠성단을 쌓
고 제를 지냈는데, 김상준 교수는 한해
륙 어느 산에 올라 칠성단 쌓고 제를 지
냈던 것일까. 청명하던 하늘에 동남풍
불어닥쳐 조조의 백만대군 무찌르듯 그
의언어는화살이되고화선(火船)이되
어 종횡무진 지구별의 여러 지축을 울리
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징검징검 바람
거슬러 팽창하는 서양의 어딘가에 대고
불화살을쏘아대기시작한것이다. 나같
이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알아채기 어렵
다. 북명(北溟)에서남명(南溟)으로흐
르다 다시 되돌아 흐르는 몬순의 바람만
이 아니다. 그 위에 일출 일몰의 길이를
조절하는 태양이며 구만장천 지구별 전
체를 날개짓하는 장자의 붕새를 포착했
으니 천리안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참
고로 북쪽의 하늘바다 북명이나 남쪽의
하늘바다 남명, 곤(鯤)이라는 물고기나
붕(鵬)이라는 새들 모두 장자의 창작물
이다. 김교수의 눈초리가 옹골찬 것은
횡축의 문명 흐름에서 종축의 붕새를 읽
어내는 섬세함에 있는 것 아닐까. 급기
야 저자의 새로운 적벽대전에서는 서양
의 팽창근대를 뒤집어엎는 새로운 문명
의전장(戰場), 내장(內張)근대의승전
을 예고하기에 이른다. 아니 이미 깃발
을 올리는 중이다. 내장근대, 안(in)으
로의 확장(pand) 이라는 뜻일 텐데, 유
럽내전체제와동아시아평화체제, 군현
과 봉건, 무(武)와 문(文), 중심과 주변
은 물론 태평천국의 난에서 동학혁명까
지 종횡무진 추적하다가 중국 내전, 베
트남 전쟁, 우리 민족상잔의 전쟁, 전염
병과기후위기, 500여년을관통하는어
딘가에 도달한다. 그 지점에 코리아 양
국체제가 있고 붕새의 양 날개가 있다.
천 쪽에 가까운 대작을 어찌 한 페이
지 칼럼에 담아낼 수 있겠는가. 다만 몇
군데대화들이귓전을맴돈다. 대항해시
대 낙차 창출의 연속과정이 서구의 팽창
근대가지속된기술이었다. 팍스브리태
니카의 시대,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처럼
중국도 군사적 정복을 통해 낙차 를 만
들어 정복하려는 욕망이 있었지만 실패
했다. 우리가 아는바 구체적인 근대의
기점은아편전쟁이다. 하지만저자는근
대의기점을혁명적으로올려잡는다. 세
계 역사학계가 근대화=서구화=문명화
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 도식을 폐기한
지오래되었다는설명도덧붙인다. 마찬
가지로 문명화=일본 식민지 지배라는
공식도 부정한다. 총생산과 인구 두 부
분의 증가율이 두드러지게 커지는 시기
를 기점 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
아시아 내장(內張)근대와 서양 팽창근
대라는 대립항을 도출하고 붕새를 중심
으로 하는 동아시아 부상의 당위를 설명
하고싶었을것이다. 이쯤에서김교수가
이리 말하지 않겠나. 그리 꼼꼼하게 읽
다니.... 그러면 내가 대답한다. 다 먹
어 봐야 맛을 압니까. 손가락 끝에 찍어
보기만 해도 하하하... 이리 대답하면
책을 다 읽지 않았거나 듬성듬성 훑었다
는 것을 혹시 숨길 수 있으려나. 아니 그
것보다는 저자도 얘기했듯 서문의 종합
발제만 가지고도 붕새의 날개짓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니, 구체적인 사례
야 두고두고 읽어나가면 될 일이다. 권
두에 길을 잃었던 나에게, 이제 그 나이
에도달한오늘의젊은이에게 라는표제
를 붙였다. 헤드라인에는 <도덕경> 22
장을 인용하였다. 멀리 돌았기에 온전
하고, 굽었기에곧다 그래서일까. 멀리
돌아 굽어 생각하면 어렴풋이 보인
다. 반어법이나 변증법보다는, 주역의
대대성(對待性) 회복으로 읽는 것이 옳
을 것이다. 서양의 팽창에서 동양의 내
장으로 전진하는 것이 진보요, 다시 무
(武)에서 문(文)으로 이행하는 것이 형
류세형(形-流-勢-다시形)의 순리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죽
은 시인의 사회 인 우리 현실의 쪽팔
림 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퇴행하는 역사일지라도 그것이 일
시적이라는 안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재구성했던 갱번론 과 물골론 을
덧붙여 술안주 삼을 수 있으려나.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남명 이르렀던 태
양이 북명 향하는 어느 계절, 동남풍
예비하는 그의 형창설안(螢窓雪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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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⑿⶯> 붕(鵬)새의 날개 말이 맞지 못하야 이 날밤 삼경시에 바람이 차차 일어난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 내려 깃발을 바래보 니 청룡주작(靑龍朱雀) 양기각(兩旗 脚)이백호현무(白虎玄武)를응하야서 북으로펄펄삽시간에동남대풍(東南大 風)이 일어 기각이 와지끈 움죽 기폭판 (旗幅版)도 떼그르르 천동(天動)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더니 간담 이 떨어지는지라~ 판소리 적벽가 중 동 남풍 부는 대목이다. 적벽대전 눈 대목 의하나, 긴박한장면이기에자진모리로 노래한다. 이 바람 아니었으면 주유가 조조의 백만 대군을 맞아 어찌 화공(火 攻)을 펼 수 있었겠는가. 우리네 이름으로 흔히 마파람이라 한 다. 배산임수를 정향(定向)으로 맞은편 에서 불어오니 맞바람 이고 동쪽으로 살짝 비꼈으니 샛마 다. 새파람과 마파 람의 틈바귀, 남도말로 새다구 바람이 다. 봄철부터 비를 데리고 오는 바람이 기에 비올바람 이다. 반대로 북에서 내 려오는 바람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격이 니 하누바람 이다. 샛마 와 대칭되는 서북풍이라 흔히 늦하누 라 한다. 이러 한 바람의 들고남이 비와 눈 혹은 가뭄 과 동행하는 몬순(monsoon)지대에 우 리가 속해 있다. 어찌 계절풍뿐이겠는 가. 철마다 해 뜨고 지는 길이와 각이 달 라지는것이며, 북두칠성기울어순환하 는 이치가 다르지 않다. 고대 이래 이것 은 신화와 전설로 은유되기도 하고, 철 학과 과학으로 표명되기도 했다. 다만 숨겨져 있으니 일각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각양으로 표명되었으나 선뜻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붕새의날개, 문명의진로>의시선 그런데 말이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아카넷, 2021)라는 책을 펼치다 가 무릎을 쳤다. 노숙과 함께 주유를 찾 아간 공명은 남병산에 올라 칠성단을 쌓 고 제를 지냈는데, 김상준 교수는 한해 륙 어느 산에 올라 칠성단 쌓고 제를 지 냈던 것일까. 청명하던 하늘에 동남풍 불어닥쳐 조조의 백만대군 무찌르듯 그 의언어는화살이되고화선(火船)이되 어 종횡무진 지구별의 여러 지축을 울리 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징검징검 바람 거슬러 팽창하는 서양의 어딘가에 대고 불화살을쏘아대기시작한것이다. 나같 이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알아채기 어렵 다. 북명(北溟)에서남명(南溟)으로흐 르다 다시 되돌아 흐르는 몬순의 바람만 이 아니다. 그 위에 일출 일몰의 길이를 조절하는 태양이며 구만장천 지구별 전 체를 날개짓하는 장자의 붕새를 포착했 으니 천리안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참 고로 북쪽의 하늘바다 북명이나 남쪽의 하늘바다 남명, 곤(鯤)이라는 물고기나 붕(鵬)이라는 새들 모두 장자의 창작물 이다. 김교수의 눈초리가 옹골찬 것은 횡축의 문명 흐름에서 종축의 붕새를 읽 어내는 섬세함에 있는 것 아닐까. 급기 야 저자의 새로운 적벽대전에서는 서양 의 팽창근대를 뒤집어엎는 새로운 문명 의전장(戰場), 내장(內張)근대의승전 을 예고하기에 이른다. 아니 이미 깃발 을 올리는 중이다. 내장근대, 안(in)으 로의 확장(pand) 이라는 뜻일 텐데, 유 럽내전체제와동아시아평화체제, 군현 과 봉건, 무(武)와 문(文), 중심과 주변 은 물론 태평천국의 난에서 동학혁명까 지 종횡무진 추적하다가 중국 내전, 베 트남 전쟁, 우리 민족상잔의 전쟁, 전염 병과기후위기, 500여년을관통하는어 딘가에 도달한다. 그 지점에 코리아 양 국체제가 있고 붕새의 양 날개가 있다. 천 쪽에 가까운 대작을 어찌 한 페이 지 칼럼에 담아낼 수 있겠는가. 다만 몇 군데대화들이귓전을맴돈다. 대항해시 대 낙차 창출의 연속과정이 서구의 팽창 근대가지속된기술이었다. 팍스브리태 니카의 시대,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처럼 중국도 군사적 정복을 통해 낙차 를 만 들어 정복하려는 욕망이 있었지만 실패 했다. 우리가 아는바 구체적인 근대의 기점은아편전쟁이다. 하지만저자는근 대의기점을혁명적으로올려잡는다. 세 계 역사학계가 근대화=서구화=문명화 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 도식을 폐기한 지오래되었다는설명도덧붙인다. 마찬 가지로 문명화=일본 식민지 지배라는 공식도 부정한다. 총생산과 인구 두 부 분의 증가율이 두드러지게 커지는 시기 를 기점 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 아시아 내장(內張)근대와 서양 팽창근 대라는 대립항을 도출하고 붕새를 중심 으로 하는 동아시아 부상의 당위를 설명 하고싶었을것이다. 이쯤에서김교수가 이리 말하지 않겠나. 그리 꼼꼼하게 읽 다니.... 그러면 내가 대답한다. 다 먹 어 봐야 맛을 압니까. 손가락 끝에 찍어 보기만 해도 하하하... 이리 대답하면 책을 다 읽지 않았거나 듬성듬성 훑었다 는 것을 혹시 숨길 수 있으려나. 아니 그 것보다는 저자도 얘기했듯 서문의 종합 발제만 가지고도 붕새의 날개짓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니, 구체적인 사례 야 두고두고 읽어나가면 될 일이다. 권 두에 길을 잃었던 나에게, 이제 그 나이 에도달한오늘의젊은이에게 라는표제 를 붙였다. 헤드라인에는 <도덕경> 22 장을 인용하였다. 멀리 돌았기에 온전 하고, 굽었기에곧다 그래서일까. 멀리 돌아 굽어 생각하면 어렴풋이 보인 다. 반어법이나 변증법보다는, 주역의 대대성(對待性) 회복으로 읽는 것이 옳 을 것이다. 서양의 팽창에서 동양의 내 장으로 전진하는 것이 진보요, 다시 무 (武)에서 문(文)으로 이행하는 것이 형 류세형(形-流-勢-다시形)의 순리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죽 은 시인의 사회 인 우리 현실의 쪽팔 림 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퇴행하는 역사일지라도 그것이 일 시적이라는 안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재구성했던 갱번론 과 물골론 을 덧붙여 술안주 삼을 수 있으려나.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남명 이르렀던 태 양이 북명 향하는 어느 계절, 동남풍 예비하는 그의 형창설안(螢窓雪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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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3

김지하로 가는 길

김지하로 가는 길

김지하로 가는 길

[김지하를 추도하며] 2
정지창 평론가·전 영남대 교수 | 
 기사입력 2022.06.18

김지하(金芝河), 뭇생명들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죽임의 문화에 온몸으로 저항한 비극의 주인공이 마침내 무대에서 퇴장했다. 1941년부터 2022년까지 그는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생존자로,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새 하늘 새 땅'을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그가 갇혀 있던 감옥을 탈출하지는 못했다.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1974년 1월」)의 이마에는 슬픔과 고통과 투쟁과 명예와 패배와 배신의 낙인이 찍혀 있다.

「황톳길」과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롯한 빼어난 시편들을 절규처럼 토해낸 저항시인, 「오적(五賊)」을 비롯한 담시(譚詩)로 박정희 군사독재의 본질을 폭로하고 풍자하여 감옥으로 유폐된 민주투사, 희곡 「금관의 예수」와 마당극 「진오귀굿」으로 민중연극의 새 지평을 연 극작가, 「풍자(諷刺)냐 자살(自殺)이냐」,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 같은 독창적인 평론과 시(詩) 선집 『꽃과 그늘』의 후기인 「깊이 잠든 이끼의 샘」이 바로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학적 쟁점이자 미학의 준거가 된 민중문학의 도저한 이론가, 심오한 생명사상가이자 동학연구자, 전인미답의 생명문화운동을 열어젖힌 실천적 행동주의자.

'시인 김지하'는 그를 부르는 일반적 호칭에 불과할 뿐, 그의 본질에 부합하는 이름은 결코 아니다. 그를 따라다니는 숱한 찬사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김지하는 여전히 '활동하는 무(無)'이다.

김지하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으나 그의 혼은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그의 상상력은 끝을 모르고, 왕성한 '구라'는 여전히 생동한다. 첫 시집 『황토』가 독자들에게 당혹과 공포를 안겨주었듯이, 그의 담론들은 여전히 우리의 친숙한 고정관념들을 전복시킨다.

그는 언제나 참된 의미의 전위(아방가르드)였다. 서정시, 담시, 마당극, '대설(大說)', 그리고 생명담론으로, 그는 언제나 기존의 고정관념들을 깨뜨리고 상식을 뒤집어엎었다. 비난과 찬사는 의례 아방가르드에게 따라다니는 법, 그는 감옥에서 얻은 깊은 병에 시달리며, 병을 스승으로 삼아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헤쳐왔다. 그리고 "내 생명을 살리는 일로부터 나의 생명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이런 비난과 찬사 사이의 긴장과 고통은 평생 그를 편안하게 쉬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1970년대 유신시대의 혹독한 죽임의 감옥 속에서 '빨갱이'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저항시인에서 생명담론의 전도사로, 동학의 개벽사상과 증산교의 천지굿을 통해 한반도의 해원과 상생을 이룩하려던 문화운동가로, 그리고 마침내 현대 서구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개벽의 꿈을 실현하려는 문명개벽론자로 그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기수였던 김지하가 감옥이라는 한계상황에서 '생명'이라는 화두에 눈을 뜨고, 동학을 비롯한 한국사상의 맥락 속에서 동서양의 생명사상을 녹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생명담론을 빚어낸 것은 20세기 후반부 한국문화사와 사상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그의 생명사상에 대해서는 비판과 옹호가 팽팽히 맞서고 있으나, 어쨌든 한 시대를 상징하던 시인이 민주화운동의 지평을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으로 끌어올린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생명담론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그것이 고도의 농축된 시적 언어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어떤 대목에서는 손에 잡힐 듯이 친근한 이야기로 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풀어내지만, 때로는 고답적인 상징언어와 천의무봉의 상상력으로 우리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태고의 시간대로 비약하거나 성층권을 벗어난 무한공간으로 질주하기도 한다.

어떤 개념의 그물에도 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유목민적 상상력, 어떤 장르로도 포괄할 수 없는 도도한 장광대설, 어거지를 쓰자면 '우리시대의 크나큰 민중광대'라는 이름이 그나마 그에게 어울릴 법도 하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을 선도한 가장 풍성하고 독창적인 노마드적 예술가이자, 우리시대 척박한 사상의 황무지에 새로운 민중사상·민중문화운동의 씨를 뿌린 아방가르드에게 붙일 수 있는 호칭은 '민중광대'가 제격이다.

사실 시인, 극작가, 평론가, 사상가, 운동가의 재질을 두루 갖춘 재주꾼이 곧 광대가 아닌가. 광대의 '삼삼구라 빙빙접시'를 어찌 서구적 미학 개념과 담론체계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바흐찐 식으로 구비(口碑)적 민중언어의 이야기꾼이라고 불러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비천하고 풍요로운 구비문학의 사육제'라는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김지하는 장편소설의 이야기꾼과는 생판 족보가 다른 사랑방의 이야기꾼이나 소리판의 광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김지하 

그렇다. 넓고 큰 재주꾼, 광대(廣大)가 바로 그의 이름이다.

첫 시집 『황토』의 후기에서 김지하는 '악몽'과 '강신(降神)'과 '행동'의 시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억눌린 민중의 절규와 원귀들의 한을 전달하는 무당으로서 시대의 어둠을 헐떡거리며 기어나가는 피투성이의 포복을 계속했다. 그런데 이러한 삶과 텍스트의 일치, 삶과 싸움의 일치는 "세계에 대한, 인간에 대한, 모든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이같은 "사랑의, 뜨거운 사랑의, 불꽃같은 사랑의 언어"이다.

김지하 문학의 원형질은 바로 이러한 약동하는 뜨거운 사랑의 맥박, 뜨거운 육성의 생생한 느낌이다. 그의 삶과 문학은 늘 내면과 외면의 이중구속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간절한 염원으로 요동치고 있으며, "타는 목마름으로" 새 하늘 새 땅을 찾아 헤맨다.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메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황톳길」 첫머리)


여기서 "나는 간다 애비야"라는 직접화법은 "나는 간다"라는 서술형과는 생판 다른 직접적인 호소력과 생동감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나'라는 시적 화자는 넋두리나 독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라는 '애비'에게, '가마니 속에서 죽은 애비'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있다.

독자는 여기서 폭염의 한낮에 시뻘건 황톳길을 따라 철삿줄에 묶여가는 '나'가, 죽어 가마니에 덮여있는 '애비'에게 던지는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순간 독자는 마당판의 관객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직접적인 호소력은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이라는 구절의 반복에 의해 증폭된다. 이 구절은 마지막 연에서도 긴박한 호흡으로 반복됨으로서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관객의 반응을 계산하고 긴장감을 고조시켜 자신의 호흡에 일치시키는 솜씨는 바로 노련한 광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황톳길」을 비롯한 서정시와 「오적」을 비롯한 담시, 「진오귀굿」을 비롯한 마당극(마당굿)은 장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민족적 정서를 바탕으로 판소리와 탈춤, 가사, 민요 등 민족전통의 형식을 원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대체로 구어체이면서도 독자나 관객을 향해 말을 건네거나 주고받는 '이야기체'로 되어 있다.

1970년을 기점으로 민중광대 김지하는 텍스트와 삶의 일치를 추구한 서정시와 독창적인 민족형식인 담시와 마당극,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중문화운동의 질풍노도시대를 열었다. 그 영향력은 문단을 넘어 연극(채희완, 임진택을 중심으로 한 마당극운동, 인혁당 사건을 다룬 연우무대의 「4월 9일」이나 극단 아리랑의 「인동초」 같은 기록극), 미술(오윤의 민중판화), 음악(김민기의 민중가요), 영화(장선우의 「성공시대」 등), 카톨릭농민회와 한살림운동 등 여러 방면으로 확산된다.

1980년대 이후 김지하는 담시와 '대설'을 통한 왕성하고 다성적(多聲的)인 외향적 발언에서 점차 내향적 성찰과 침묵으로 이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서정시와 담시, 희곡, 담론 등을 뭉뚱그려 보면 발언의 총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시의 경우, 초기의 풋풋하고 피맺힌 절규와 중기의 무성한 '구라'가 점차 잦아들어 필경 잎 떨군 앙상한 가지처럼 짧은 시행 몇 줄만 남았다가 마침내 묵언(默言)으로 접근하지만, 이와 반비례하여 이른바 사상 담론은 풍성해지고 다양해진다. 초기의 김지하는 글을 통한 발언이 왕성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글의 양은 줄어들고 말의 양은 많아지는 것이다.

광대는 언제나 관객과 몸짓과 사설로 댓거리한다. 김지하도 언제나 관객에게 직접화법으로 호소하기를 좋아한다. 그가 글보다 말 쪽으로 쏠린 것은 광대의 체질상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지하는 1980년대 이후 주로 시사적 화제의 대상으로만 주목을 받았다. 그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침묵은 이유야 어떻든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현상을 간과하는 직무유기일 것이다. 이제는 그의 말과 글, 즉 텍스트 전체를 차분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 김지하가 없었다면 20세기 후반부의 한반도는 얼마나 쓸쓸하고 헐벗은 적막강산이었을까.

그러나 김지하라는 큰 산은 틈이 많은 빈 산이다. 노년의 김지하는 청년 김지하 자신을 부인하는 듯한 자기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필화사건을 일으킨 문제의 장시 「다라니」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같은 시론(時論)들, 심지어는 그의 난초 그림과 병(病)과 침묵까지도 함께 거두어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그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30년 군사독재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과 거기서 태어난 자들이 할 일이 아닐까.

이 글은 2002년 2월 문예미학회에서 염무웅 선생 회갑기념 특집호로 발간한 논문집 『민중문학』에 실린 졸고 「광대(廣大)의 상상력과 장광대설(長廣大舌)」을 축약, 수정한 것이다. 앞으로 이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본격적인 김지하론으로 발표할 생각이다.필자


정지창 평론가·전 영남대 교수 최근글보기


완허
2022-06-18 13:16:2300
인간의 오만함이 어떻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지 온몸으로 보여준 광대입니다. 박원순과 더불어 삶의 씁쓸함을 크게 던져주신 분입니다. 아무리 추어올리려고해도.... 억압에 의한 것도 아닌 그저 개인의 욕심으로 스스로 어둠으로 걸어들어간 이 시대의 다스베이더로 기억할렵니다.

[김삼웅] 김지하 평전 | 72화절필선언과 은둔ㆍ칩거ㆍ투병 - 오마이뉴스

절필선언과 은둔ㆍ칩거ㆍ투병 - 오마이뉴스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72화

절필선언과 은둔ㆍ칩거ㆍ투병[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2] 그는 늘 심한 병환에 시달렸다
22.08.21 
김삼웅(solwar)



▲ 우리 옛 신화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강조하는 김지하 시인 우리 옛 신화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강조하는 김지하 시인
ⓒ 정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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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의 출간과 함께 절필을 선언한 그는 원주의 자택에서 은둔, 칩거, 투병생활로 여생을 보내었다. 2019년 11월 25일 아내 김영주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는다. 아내는 그동안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왔다.

시인의 사후 추모문화제에서 '미발표 시 8편'이 소개되었다. 절필선언 후에 쓴 것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교감>, <헌화>, <열리리>, <심화(心火)>, <사랑은 공경>, <처용>, <살아라>, <하늘세계> 등이다. 하나 같이 짧은 내용을 담고 있다. 네 수를 소개한다.

교감


내가 멀리서
너를 부르면

청산이어라

강물이어라
구름이어라.

헌화

뜨겁고
붉은 사랑이로라
이 늙음
아니 부끄리시면
절벽 위
꽃 꺾어
고이 바치리
뜨겁고
붉은
어허, 사랑이로라.

열리리

열리리 열리리
꽃 같은
한 사랑이면
천지 장벽
사람 그늘
열리리 열리리
꽃 같은
한 사랑이면.

심화

밤은 꿈속에 타고
꿈은
몸 속에 타고
아아
불타는 하늘
불타는
님의 눈빛. (주석 7)

▲ 김지하와 그의 신간. 김지하와 그의 신간.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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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심한 병환에 시달렸다. 1991년 2월에 쓴 '고백'을 들어보자.

"나의 병명은 심한 정신분열증이었고, 두 번이나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치료는 끝났다. 그러나 이것이 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정신분열은 결코 유전이 아니다." (주석 8)

사형선고를 받고 얼마 후 무기형 그리고 다시 얼마 지나서 석방한 박정희 정권을 향해 "내가 미쳤는지 시대가 미쳤는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만큼 그는 광란의 권력과 최전선에서 맞서다 광기를 갖게 되고, 그런 중에서도 담시, 서정시, 희곡ㆍ생명사상ㆍ울려사상 등 빼어난 작품과 철학사상을 남겼다.

"얼마간의 광기가 없으면 시인이 되지 못한다." - (M.T. 키케로)고 했던가. 세계문학사에 큰 별이 된 문인ㆍ철학자ㆍ사상가 중 병고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 시인 김지하 <유목과 은둔> 마산문화문고 시인 김지하 <유목과 은둔> 마산문화문고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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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문학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에서 몇 사람의 사례를 찾는다.

무엇보다도 정신의 생명력이 이 병들고 쇠약한 육체를 이겨낸, 이러한 인간승리는 유례없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병자였고, 그의 청동 같은 불후의 명작은 부서지고 무력한 팔다리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가물가물 타오르는 정신의 불꽃에서 얻어낸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의 몸 한가운데 가장 위험한 병이 도사리고 있었고, 이는 영원히 현현하는 무서운 죽음의 표상인 간질병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가 예술활동을 펴온, 삼십 년간 간질을 앓았다. (주석 9)

병리학적으로 볼 때 횔덜린에게는 명백하게 드러난 파멸은 없었고, 건강한 정신과 병적인 정신 사이의 명확한 경계선도 없었다. 횔덜린은 아주 서서히 내면으로부터 불이 붙은 것이다. 광기의 힘은 깨어 있는 그의 이성을 산불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태워 버린 것이 아니라,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타고 있는 불마냥 서서히 태웠던 것이다. 그의 존재의 일부인 신적인 부분만이, 다시 말해서 시와 가장 잘 결합되어 있는 부분만이 석면(石綿)처럼 저항했다. 그러니까 그의 시적 통찰력은 광기를 극복했고, 선율은 논리를, 리듬은 언어를 극복했다. 어쩌면 횔덜린은, 시가 이성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 파멸의 상황에서도 절대적 완성에 이른 유일한 예가 될 것이다. (주석 10)

머리를 마비시킬 정도로 지끈지끈 쑤시는 두통으로, 니체는 비틀거리며 몇날 며칠 동안 감각을 잃고 소파와 침대의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각혈을 동반한 위경련ㆍ편두통ㆍ신열ㆍ식욕부진ㆍ무력감ㆍ치질ㆍ변비ㆍ오한과 밤이면 식은땀을 흘리는 증세, 그리고 오싹할 정도로 나쁜 혈액순환이 끔찍한 병마령들이다. 게다가 거의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나쁜 혈액순환이 그 끔찍한 병마령들이다. 게다가 '거의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나쁜, 두 눈'은 조금만 무리를 해도 곧 부어오르며,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정신노동자인 그는 두 눈의 시력으로는 '하루에 한 시간 반' 이상 일할 수 없었다. (주석 11)


주석
7> <추모문화제 자료집>, 76~77쪽.
8>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37쪽.
9> 슈테판츠바이크, <천재와 광기>, 97쪽.
10> 앞의 책, 265쪽.
11> 앞의 책, 352쪽.

태그:#김지하, #김지하평전, #시인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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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2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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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지하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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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후반이면 건강한 사람도 기력이 크게 쇠약해진다.

긴 옥살이와 고문을 겪고 정신적 고뇌, 여기에 시대와 불화 그리고 거듭된 필화ㆍ언화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쉬이 씻기지 않고 쇠약해진 영육을 갉아먹다.

76세이던 2017년 초 절필을 밝히면서 그동안에 남긴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하나는 앞에 소개한 마지막 시집 <흰 그늘>이고 나머지가 신작 산문집으로 정리한 <우주생명학>의 원고였다. 마지막 저서 두 권을 펴낸 손정순(시인ㆍ<쿨트라> 발행인)의 증언이다.

2017년 1월 지하 선생님께서는 나를 원주로 부르셨다. 홍용희 교수와 함께 원주 댁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시내 카페로 갔다. 선생께서는 2014년 갑오(甲午) 12월 15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 2년에 걸쳐서 쓴 원고뭉치를 내밀었다. 1권의 시집 노트와 우주생명학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매일 쓴 노트 4권이었다. 선생께서는 매체에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미발표 신작 시집 <흰 그늘>과 신작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내게 맡기며, 생전에 펴내는 '마지막 저서'라고 선언하셨다.

출판계약서에 사인하시는 선생님께 글을 안 쓰시면 많이 외로우실 텐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지 여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제 그림만 그리시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믿지 않았다. (주석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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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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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생명학>은 1부 <궁궁弓弓 유리 화엄 대개벽>, 2부 <우주생명학(1)>, 2부 <우주생명학(2)>, 3부 <우주생명학(3)>으로 구성되었다. 서문이다.

나는 최근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더듬어 찾고 있었다.
누굴까?
잃어버린 선생 수운(水雲)이시다.
그런데 겨울 어느 날 선생님이 오셨다.
그래서 이 책이 시작된다.
모른다.
나는 이 책이 이제부터의 이 나라와
세계의 길이라는 것, 그것뿐!
그리고 짧은 '시김새'와 함께
나는 이제 어릴 적의 한(恨)〈그림〉으로.
그리고 저 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뿐! (주석 13)

마지막 저서 <우주생명학>은 240쪽에 불과한 산문집이지만 그의 사유와 사상ㆍ철학이 오롯이 담긴 역저이다. 주제에 따라서는 섹트와 픽션이 섞이고 실제와 상상력이 부딪치는 등 논리성은 부족하지만, 그만이 갖고 있는 사유의 세계를 여전히 식지 않은 입담과 필력으로 종횡무진한다. 다음 대목을 보자.

미국 노암 촘스키가 인정했듯이 한국은 지난 60여 년 동안에 어렵게도 그 엄혹한 분단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였다.

이제 새로운 국가목표가 제시되고, 근본적인 요구인 '남녀ㆍ음양ㆍ빈부'등의 본질적 해방과 평등이 성취되는 '통일'과 '동서사상 화합'과 세계 인류의 새 길을 이끌어 갈 '참 메시지 민족의 길'을 창조해야 하고 우주와 생명의 큰 변화 속에서 참다운 '선후천융합대개벽(先後天融合大開闢)'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것이 '궁궁弓弓 유리 화엄 대개벽'이다.

이미 다 공언되어 있듯이 '궁궁(弓弓)'은 동학의 진정한 세계상이요, '유리'는 정역(正易)의 앞으로 올 춘분ㆍ추분 중심의 4천년 유리세계와 '세계 여권운동'의 상징적 목표인 '유리천정'의 그 '유리'다. 그리고 당나라 여자 임금 측천무후가 창안한 상업시장인 '유리창'의 표현이다. (주석 14)

김지하가 말년에 쓴 원고를 정리하여 마지막 책으로 엮은 손정순의 견해이다.

김지하 시인 스스로가 2여 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그의 시학과 미학사상을 정리하며 펴낸 시집 <흰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은 한 개인의 문학사적 위치와 작품의 성과를 묻기에 앞서, 온갖 모순과 혼돈으로 점철된 21세기 속에서 우리의 동질성과 주체성을 어떻게 세워갈 것인가 하는 새 길, 새 문명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라 믿는다. (주석 15)


주석
12> 손정순, <김지하의 시학과 미학사상을 정리한 마지막 저서>, <쿨투라>, 2022년 7월호.
13> <우주생명학>, <작가의 말>, 작가, 2018.
14> 앞의 책, 12쪽.
15> 손정순, 앞의 책, 8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김지하평전, #시인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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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7

프레시안 김지하를 추도하며 [1-11]

관점    김지하를 추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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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김지하를 추도하며] 여기까지 다들 애썼다!

[김지하를 추도하며] 여기까지 다들 애썼다!

[김지하를 추도하며] 여기까지 다들 애썼다!

[김지하를 추도하며] 6

황석영 소설가  |  기사입력 2022.06.22.

이제 우리 나이 팔십이 되었지만 나는 몇 년 전부터 주위의 경조사에 참례하지 않게 되었다. 수년 동안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글 쓰며 은거했고, 칠십대 중반쯤에 부모님 유해를 납골당에 모시고 제사도 폐하면서 저절로 남의 장례식장에도 발길을 끊게 되어버렸다. 옛사람들도 늙은이가 되면 인편으로 부조나 보내면서 바람결에 지인들을 떠나보내던 것이다.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다. 눕고 싶구나.

석가모니의 마지막 장면이다. 깨달음을 얻었을 때 마셨던 우유 한 잔과 죽음의 원인이었던 버섯 몇 개는 똑같은 타인의 공양물이었다.

죽음은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저 모퉁이'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길의 끝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러하듯 나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청년 김영일을 만난 것은 그의 외삼촌 정일성이며 조동일 등이 연출을 하고 나의 고교 동창 친구들 몇이 배우가 되어 연극을 하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유진 오닐의 연극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결핵성 미열을 가진 문예반 청년이었다. 나는 남도를 떠돌다 베트남 전쟁을 거쳐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고, 그는 조태일이 꾸려가던 시인지를 거쳐 김지하 시인이 되어 있었다. 시대는 마침 박정희의 유신시대였고 우리는 한없이 목마르고 거칠었다. 이용악, 백석이 그랬듯이 김지하는 모던에서 토박이로 차림새를 갖춘다. 이는 이미 우리가 60년대에 6.3 투쟁을 통과하며 습득한 문화체험의 결과이기도 했다. '오적'과 '비어'를 거치며 그는 수년간 우리 곁을 떠나있게 된다. 도피 시절 간간히 만나면서 그는 나에게 후배들과 더불어 현장문화운동을 이끌어 줄 것을 당부했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가 김수영을 비판한 적이 있으나 그것은 김수영의 일상을 간과했던 탓이다. 김수영의 일상은 소시민적 모양새였지만, 그것은 '살아 돌아온 자'의 치열한 일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누군들 일상을 견디는 장사가 있으랴. 

팔십년 광주를 거쳐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석방되었고, 감호처분자의 신세로 바깥 세상에 던져졌다. 김지하는 사상가로 성장하여 돌아왔으나 일상을 여전히 간과했던 듯하다. 이는 지식인들의 일종의 투옥 후유증일 수도 있었다.

그의 생명사상이나 수운 해월의 가르침들은 김지하의 때와 장소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김지하는 김영일의 무거운 짐이었다. 시인은 누구나 자기 시대와 불화할 권리가 있으나 또한 그 불운을 견디어내야만 한다.

그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호통을 치고 나서 분노한 민심의 표적이 되었을 무렵에 나는 마침 평양에 있었다. 나는 젊은이들의 연이은 자살투쟁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북의 소설가 홍석중은 그 소식을 보며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말의 뜻은 옳지만, 차라리 침묵하느니만 못하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홍석중이 말했다. 

"김지하니까." 

김지하는 투옥되어 있던 나에게 면회도 왔고,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일산에 살고 있었다. 만날 적마다 그는 뭔가 스스로를 해설하려고 애썼다. 그의 담론은 어느 부분 번쩍였지만 늘 비약의 연속이었다. 미디어와 출판사들은 뭔가 얻어가려고 끊임없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말이 미끄러진다고 했던가. 그의 말과 현실은 그래서 어긋나고는 했다.

"시시데기는 령 넘어가고 새침데기는 골로 빠진다." 

라는 옛말이 있지만 그의 외로움은 깊어갔다. 그의 비약적인 담론을 참을 수가 없다고 누군가 불평하면, 시인 최민은 간단하게 타일렀다. 

"그냥 진지하게 들어주면 되잖아."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잠자코 들어주면 김지하의 격앙된 정서는 가라앉았다. 

어느 무렵부터인가 그의 잠적이 시작되었다. 그의 아내 김영주에게서 내게 급박한 전화가 왔다. 그가 열흘 이상 연락이 없어 어디 갔는지 못 찾겠다고 했다. 사방에 수소문하여 그가 백양사에 있다고 알려주면서야 그가 행려자처럼 이곳저곳 떠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래 전에 그는 심한 환각증에 시달린 뒤에 치료를 받고 술을 끊었다. 물론 그는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그냥 허전해서 떠돌았을 것이다. 

어느 해 대선 시기에 박근혜에서 비롯된 풍파 역시 그 나름대로의 해원의 뜻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매체들이나 또는 강연회장의 청중들은 내게 김지하를 어찌 생각하는가 벼르듯이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김지하는 아픈 사람이라고, 그가 나을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말하곤 했다. 

스승이 젊은 소리꾼에게 물었다. 

"소리도 좋고 기량도 좋고 재간도 뛰어난데 그것만 좋은 놈을 머라고 하는지 아냐?" 

"그것만 좋다뇨?" 

"소리든 머든 다 사람이 하는 거 아녀?" 

하고 나서 스승은 말했다. 

"소리에 그늘이 있어야 한다고. 그늘이 없는 재간꾼을 노랑목이라구 그러지." 

"그늘이 무엇인데요?" 

"그게 살아가면서 아프게 곡절을 겪다보면 생기는 거지." 

스승이 막걸리 한 잔을 주욱 들이키고 나서 다시 말했다. 

"헌데 그늘이 너무 짙어지고 바닥까지 갈아 앉으면 소리가 넘어갔다구 그런다. 소리가 넘어가 버리면 쓰잘데기 없는 소리가 되어버려. 할 필요두 없구 들을 필요두 없는 소리가 되지."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 

"흰 그늘이 되어야 쓰지." 

"흰 그늘이란 무엇인가요?" 

"그건 그믐밤에 널린 흰 빨래 같은 것이니라."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달도 없는 그믐밤에 흰 이불 홑청이 널려 있다.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그것은 어둠 속에서 희부연 하게만 느껴질 정도일 것이다. 누군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겨워 몇 날 몇 밤을 실컷 울고 나서 피시식 하고 저절로 나오는 희미한 웃음 같은 것. 그리고 그 웃음의 시초는 차츰 서슴지 않게 되고, 까짓 거 다시 살아내자 하는 신명을 타고 일상으로 자신을 끌어내어 줄 것이다." 

"흰 그늘이 소리의 끝인가요?" 

젊은 소리꾼이 물었더니 스승은 머리를 흔들었다. 

"더 있지. 남을 여, 소리 향, 여향이라는 게 있다네." 

"여향은 또 어떤 것입니까? 

"먼 산사에서 범종을 칠 때 마지막으로 당목을 때리고 나서 그치면 뎅 하는 소리가 울리고 잔음이 길게 여운을 끌며 퍼져 나간다. 데에에엥 하며 소리의 여운은 길게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간다. 그리고 어느 결에 사방은 고요한 정적에 이른다. 그 고요한 정적이 여향이니라." 

소리꾼은 모든 소리가 그친 정적이 어째서 소리의 최고 경지가 되는가를 묻지 못했다. 스승도 여향이 무엇인지 똑똑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은 아주 조금씩만 나아져 간다. 그래서 세월이 답답하고, 지난 자취는 흔적도 없이 잊혀 가고, 먼지 같은 개인은 늙고 시들고 사라져 간다. 

우리가 김지하를 그냥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기억을 더듬는 것은 아직도 시절이 마뜩치 않고 남은 안타까움이 많아서다.

이것이 남루하지만 숙연한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