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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5

임건순 - 나무위키 -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임건순 - 나무위키

임건순

최근 수정 시각: 2022-02-08 18:07:59




분류
대한민국의 철학자
1981년 출생
보령시 출신 인물
서울시립대학교 출신

1. 개요2. 생애3. 사상4. 저서5. 출처

1. 개요[편집]

임건순(1981~ )은 법가, 유가 분야를 주로 다루는 동양철학자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 서울특별시 종로구 거주. 현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제3의길 집필진.

2. 생애[편집]

생애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원추각막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데다 집안이 가난하여 등록금이 싸고 장학금이 많은 서울시립대학교에 진학했다.[1] 본래는 행정학과 전공이었으나 학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으며 박사학위는 받지 못했다. 임건순 본인은 이를 두고 "나는 지적 불법체류자"라고 칭했다.

2010년대 중반 무엇인가를 계기로 운동권에서 돌아섰고 지금은 격렬한 운동권 비난론자가 되었다. [이 사람]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3. 사상[편집]

임건순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인문학은 중산층만을 위한 배부른 학문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정치적으로는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보수진보도 없다고 주장한다. 보수 세력은 게으르고 안일하게 행동하며 과거에만 머무른 채 진보하지 않는 배부른 돼지이며, 진보 세력은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선민의식이 몸에 밴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라고 비판한다. 문재인 정권 이후로는 조선일보, 월간조선에 칼럼을 연재하고 펜앤드마이크등의 매체에서 정규재과 함께 말을 나누는 등, 속마음이야 어떻든 일단 담론장에서는 확실히 보수 쪽 논객으로 기능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중국에 나라를 팔아먹고 중국 공산당 귀족 계층으로의 편입을 계획하는 집단이라고 믿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해 특히 비판적으로 접근하는데, 소위 '386' 기득권, 현 정권이 페미니즘 세력과 연합하여 나라를 분열의 장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네들 이득만 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가열차게 비판하였으며, "진보의 민낯을 보여주어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출처

4. 저서[편집]

《야구오패》
《생각이 많으면 진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임건순 “우리나라 지도자, 오기의 리더십 배워야”복장에 주목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손자병법》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 노자》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대학, 중용》
《도덕경》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한국에서 법가 읽는 법》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하여》

5. 출처[편집]

신동아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사회공헌저널 <보편복지라는 위선과 야만의 탈 -임건순>

[1] 고등학교는 대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이 사람]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한국은 조선시대로 귀환 중… 집권 386은 철들지 않은 꼰대”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자기들이 정의로우니 권력 누려야 한다고 믿는 집권 386은 孟子 영향받은 조선 사대부의 亡靈”
⊙ “중국인은 孫子의 자식들… 손자 및 손자의 영향받은 老子 이해하면 중국인 속이 보일 것”
⊙ “韓非子는 개인의 이기심 긍정했던 애덤 스미스와 유사”
⊙ “386이라는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左派·右派 경쟁을 할 수 있을 것”
⊙ “右派는 더 이상 기득권 세력 아니다… 말과 글에 투자해야”
⊙ 諸子百家 해설서 등 11권의 책 펴내… 이번 달부터 서로 비슷한 문제의식 가졌던 동서양 사상가들을 살펴보는 ‘동서양 사상 크로스’ 연재

임건순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저서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생각이 많으면 진다:우리가 몰랐던 류현진 이야기》 《야구오패: 한국 야구를 지배한 감독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책 제목만 봐도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중국 고전을 만만치 않게 섭렵했음이 느껴진다. 손자(孫子)나 노자(老子)를 제외하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비교적 생소한, 중국사상사의 비주류(非主流)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손자병법》이 ‘동양의 첫 번째 철학’, 《노자》는 제왕학(帝王學)이자 병법(兵法)이라니 이 또한 생경하다.



임건순 작가의 諸子百家 관련 저작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이가 백발이 허연 70대 한학자(漢學者)나 ‘꼰대’ 모습이 완연한 50~60대 대학교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위 책의 저자는 임건순(任建淳), 38세 젊은이다. 지금까지 펴낸 11권의 책을 제외하면 세속적 의미에서 내놓을 만한 이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시각으로 제자백가를 재해석해 저술과 강연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아직 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나름 열광하는 팬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임 작가가 페이스북에서 토해내는 현실, 특히 386세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눈길을 끈다. 지난 5월 28일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자.


‘386의 생각은 다 옳은가?’

〈시사인에서 20대 남자들에 대한 기사를 읽어봤는데 이런 질문들 던지고 싶다.

1. 젊은이들이 386을 무조건 정치적으로 지지해줘야 하는가?

2. 젊은이들이 386과 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그들이 주입하는 가치관을 자기 것으로 해야 하는가?

3. 젊은 샐럽과 지식인들도 386의 세계관에서 허우적대며 그들이 궁금한 것, 혹은 원하는 것들 대신 해결해주고 그래야 하나?? 이것도 넓은 의미에선 부역행위 아닌가?

386과 다른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 보수고 수구고 일베고 괴물이란다. 특히 ×××라는디 그놈의 20대 ×××론은 언제까지 계속 우려먹을 것인지.

아니 386의 생각이 다 옳은가. 386과 다른 생각하면 악마여?? 그저 젊은 애들은 운동권 출신 진보를 자임하는 자들에게 표 주는 기계로 살아야 하나. 그리고 젊은 샐럽, 그래 젊은이들 중에 사회적 스피커와 마이크를 쥔 자들도 386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논해야 하나. 니들도 386이냐? 참 여러 가지 이건 아닌데 생각이 드는 기사였다. 기사에 깔려 있는 전제들이 영….

젊은이들이 386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386 지지하기만 하고 386의 가치관을 자기 신조로 삼아 살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고, 맑고 밝고 명랑한 시상이 만들어질 것인디 나만 그걸 몰랐나 봐. 그냥 몇 마디 말로 통치면 되는 거 아녀. ‘야 이 ×××들아, 왜 민주당과 문재인 지지 안 해. 당장 생각 고쳐먹고 다음 총선, 대선 때 또 민주당 사람들 찍어!!’ 이러문 되는 거 아녀. 그저 386과 다른 생각한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닥치고 문제라고 놓고 보는 시각 자체가 구역질 나.〉


‘知的 불법체류자’

고향인 충남 바닷가의 느긋한 사투리를 섞어 쓰면서 애써 칼날을 감추고는 있지만, 386세대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이 느껴진다. 《월간조선》은 7월호부터 원석(原石) 같은 젊은 동양철학자이자 작가 임원순의 글을 연재한다. ‘동서양 사상(思想) 크로스’는 세상사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제자백가 사상가와 15~18세기 유럽 철학자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기획이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임건순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 1981년생이면 한문은 고사하고 한자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세대일 텐데 어떻게 한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까.

“외할아버지가 한학을 하셨습니다. 직접 배운 건 아니지만, 덕분에 어려서부터 한문에 대한 공포감이 없었죠. 그것도 일종의 ‘문화적 자본’이겠죠.”

― 행정학과 출신인데 어떻게 제자백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학부에서 교수님들이 ‘늘 행정학은 사회과학이다, 경제학이나 정치학 같은 인근 학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제자백가는 철학이라기보다는 종합 사회과학입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대학원 가서 제자백가를 공부하는 것보다, 학부에서 사회과학을 튼튼하게 공부한 사람이 대학원에서 제자백가를 공부하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 한문 공부는 언제 본격적으로 했습니까.

“2008년부터 1년 동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했습니다. 1년 동안 무조건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를 다 외워야 합니다. 무식하지만 가장 빠른 지름길은 역시 원문(原文)을 달달 외우는 것이에요.”

임건순 작가는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知的) 불법체류자’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유학도 갔다 와야 하고 제도권에서 박사학위도 받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요. 대학에서 특강 외에는 강의해본 적도 없고요. 그런 시민권・영주권이 없으니 불법체류자죠.”

― 시민권을 획득하려고 노력은 해보았습니까.

“굳이 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영주권・시민권을 얻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허락하지 않은 것도 있고요.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 걸 굳이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상황에서 뭐라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원망할 것도 없고….”

― 서울시립대 행정학과를 나왔는데, 공무원시험 봐서 직장 잡고 가정 꾸려 평범한 삶을 살아보려는 생각은 안 해보았습니까.

“어려서부터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주 단호한 대답이었다.


원추각막

― 와, 정말요? 대단하네요.

“초・중・고교 때 선생님들이 ‘건순이 쟤는 조직형 인재가 아니라 장인(匠人)형 인재다. 그냥 내버려둬라’ 하면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 때문에 저를 차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도 선생님들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어요. 새 책을 낼 때마다 그때 선생님들의 성함을 꼭 적어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 그때 선생님들은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신 걸까요.

“‘늘 혼자서 책을 읽고 있고, 엉뚱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하더라. 얘는 자기 생각을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창의력이라는 것은 시험을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바꾼다거나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마련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쟤는 저럴 수 있어’ 하면서 묵인하고 배려해주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싶어요.”

― 원추각막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각막이 망막을 뚫고 나오는 건데, 그래서 시력이 좀 안 좋습니다.”

―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눈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지장은 없습니까.

“지장이 있기는 하죠.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면도 있어요. 눈이 잘 안 보이다 보니 공부할 때 소리 내서 읽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암기가 잘됩니다. 글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습관이 되니, 글을 쓸 때도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처럼, 독자가 술술 읽을 수 있게 쓰게 되더군요. 노트 한 권 쓸 것을 소리 내어 거듭해서 읽고 외우다 보면, 머릿속에서 내가 스스로 재평가하고 의미부여를 하면서 머리에 저장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저술가로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국주의와 제국질서

― 제자백가 얘기를 좀 하기로 하죠. 중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인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 온갖 사상이 만개(滿開)한 후로 한 번도 그토록 다채로운 사상을 꽃피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15세기 이후 다양한 철학사상을 꽃피우면서 이를 바탕으로 근대로 진입하지요.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제자백가 사상을 꽃피우던 춘추전국 시대는 유럽의 15~18세기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 나라로 쪼개져서 서로 경쟁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15~18세기 유럽의 경쟁은 제국주의(帝國主義)를 낳은 반면, 기원전 중국의 경쟁은 제국질서를 낳았습니다. 제국주의는 경쟁을 계속해나가는 것이지만, 제국질서는 경쟁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상적인 활력뿐만 아니라 군사혁명(군사 전략・전술・기술상의 변혁)이나 기술적인 혁명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제국주의와 제국질서라… 흥미로운 얘기네요.

“제국질서 아래서는 상인(商人)들의 지위가 높아질 수 없었죠. 여러 나라가 경쟁해야 상인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발언권도 올라가거든요. 군주들이 상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니까….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진(秦)나라, 한(漢)나라 같은 거대제국이 생기면서 중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커다란 진보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한비자, 개인의 이기심과 인센티브 강조”



한비자(왼쪽)와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결과적 평등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 제자백가 중 누구에게 가장 관심이 갑니까.

“지금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한비자(韓非子)가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은 과도한 공공(公共)부문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시장경제를 한다고 하지만 규제가 너무 많고 관치(官治)의 영역이 비대합니다. 그래서 한비자가 필요합니다. 한비자는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애덤 스미스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 한비자 하면 흔히 ‘법(法)’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국가의 힘을 최대한 동원하려던 국가주의자로 인식합니다. 그런 한비자가 ‘자생적(自生的) 질서’를 강조한 프리드먼이나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와 통한다니, 뜻밖이네요.

“애덤 스미스와 한비자는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이기심(利己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었죠. ‘각자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가지고 잘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런 상태에서 사회적 분업(分業)이 돌아가야 한다’ ‘나라는 개인들의 사적(私的) 욕망을 발현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줘야 하고, 그래야 국력도 강해진다’ 등.

법가(法家)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말했는데, 강병 이전에 부국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살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개개인의 욕망, 돈을 벌려는 마음, 잘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억누르면 안 된다고 한비자는 말합니다.”

― 재미있네요.

“또 한비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지지는 것처럼 하라’는 노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작은 생선을 지질 때에는 약한 불로 하고 함부로 뒤집으면 안 되는 것처럼, 법령들을 자주 바꾸거나 덫을 놓는 규제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 혹시 ‘평등’에 대해서도 한비자가 얘기했나요.

“한비자는 결과의 평등을 철저하게 부인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 더 부지런을 떤 사람, 자기 능력을 발휘한 사람, 더 많은 리스크를 짊어진 사람들이 사치하고, 방탕하고,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사는 것이 당연하다’ ‘결과의 평등을 내세우면 인센티브 체계가 무너져서 국력이 약해진다’고 봤습니다. 경제학적 통찰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마오쩌둥, “노자는 兵家의 書”

― 제자백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정서적 공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묵자(墨子)입니다. 묵자는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을 잘 이해한 것 같아요. 서구(西歐)에서는 묵자를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자로 보는 것 같더군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고학(苦學)을 했고, 지금도 가난한 학인(學人)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 묵자가 사회민주주의자라니,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보니 사회민주주의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봐요. 구성원들의 정신적 건강함, 사회적・공적(公的) 신뢰가 있어야만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묵자가 개인과 계약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 데에 눈길이 갑니다. 한국인에게 부족한 것이 계약에 바탕을 둔 사고(思考)입니다. 묵자에 대한 책을 하나 쓰기는 했지만, 기회가 되면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묵자를 책으로 다시 써보고 싶습니다.”

― 노자를 문명비판론적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국가주의자로, 노자의 《도덕경》을 병법서로 해석했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도덕경》은 ‘어떻게 하면 왕의 권력을 길고 안정되게 가져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를 고민한, 군주를 위한 통치술입니다. 중국이나 구미(歐美)에서도 그렇게 이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희(朱熹・주자)는 ‘제자백가 중에 노자가 가장 독하다’고 했고, 마오쩌둥(毛澤東)은 ‘《도덕경》은 병가(兵家)의 서(書)’라고 했습니다.”

― 어떤 점 때문에 《도덕경》을 병법서로 보는 건지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죠.

“노자의 유명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죠? 손자는 ‘병법의 극치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이 흐르는 것이 지형을 따라서 늘 변하듯이 군대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죠. 노자는 그걸 시적(詩的)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노자를 손자와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대목이 무척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손자와 노자를 같이 이해하는 논문이 꽤 많이 있어요.”


“한국인은 殺身成仁, 중국인은 明哲保身”



《손자병법》과 고구려에 대해 강의하는 임건순 작가. 사진=유튜브 캡처
임건순 작가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자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의 자식들’입니다.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는 공맹만 가지고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손자의 자식’들입니다. 손자와 그의 영향을 받은 노자를 이해해야 중국인들의 속이 보일 것입니다.”

― 우리 한국인들이 ‘공맹의 자식들’이라….

“한국인들은 명분(名分)과 당위(當爲)를 중시하지만 중국인들은 철저히 실리(實利) 위주죠. 우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강조하지만, 중국인들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을 강조합니다. 그런 중국인들의 의식의 연원은 손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명청대(明淸代)에 만들어진 후흑학(厚黑學), 36계의 뿌리도 손자에게 있는 것 같고요.”

― 서양 정치학과 철학은 어떻게 공부하게 됐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백가 시대의 중국과 15~18세기 유럽의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상황이 비슷하면 사람들이 비슷한 사고(思考)를 하지 않을까’ 해서 서양 사상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묵자와 토머스 홉스’ ‘한비자와 니콜로마키아벨리, 애덤 스미스’ ‘공자와 에드먼드 버크’ ‘순자(荀子)와 데이비드 흄’이 비슷하더군요. 서양의 철학・정치학을 공부하는 것이 제자백가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월간조선》에 연재할 ‘동서양 사상 크로스’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고전(古典)은 질문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책들이 고전입니다. 고전은 뭔가 원점(原點)에서 사회와 인간, 국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자극을 주거나, 원점에서 검토해보려고 안간힘 쓸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전 속의 동서양 사상가들이 던진 질문을 가지고 오늘의 한국 사회를 한번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朝鮮化’



사대부의 특권을 주장한 孟子.
―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 돌아가는 얘기를 좀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즘 페이스북을 보면 ‘조선(朝鮮)으로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더군요.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386운동권들은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들과 똑같은 사고를 갖고 있어요. 저는 이들이 조선시대의 망령(亡靈)들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옳다, 정의롭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이런저런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리스크와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옳다, 우리가 과거에 정의를 위해 투쟁했다’고 하는 당위(當爲)만 가지고서 도덕을 얘기합니다. 자기들의 정치권력, 기득권(旣得權)을 정당화하고, 그 기득권을 쭉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조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서 기업과 상인, 과학기술자, 의사 같은 전문가 집단을 공격하고 있죠. 자기들은 사대부, 위 집단들은 상민(常民)이나 중인(中人)으로 생각하는 거죠.”

― 그런 조선적인 모습은 역시 ‘맹자-성리학’적인 건가요.

“(한숨을 쉬며) 유교(儒敎)는 공자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공자도 아니고 맹자의 나라 같아요. 맹자가 처음으로 지식인 계급, 사대부 계급의 특권과 독재, 정치권력의 독과점(獨寡占) 같은 것들을 주장했거든요. 《논어》를 보면 ‘군자는 이래야 한다, 이럴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군자의 의무와 자격, 책무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반면 《맹자》를 읽다 보면 ‘군자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누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금 집권세력은 누리는 것만 생각하는 것 같고, 어떤 책임과 의무를 지고 공적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근대는 小人과 謀利輩의 사회”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군자(君子)라고 믿는 사람들, 군자라는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사회는 근대사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근대사회는 ‘나도 소인(小人)이고 너도 소인이다’ ‘너도 모리배(謀利輩)고 나도 모리배다’라는 걸 다 인정하면서, 소인과 모리배들이 적당히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사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주의고 시장경제겠죠. 군자라는 자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건 이런 근대에 대한 부정입니다.”

― 과거에 ‘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말이 있다가 근래에는 ‘산업화→민주화→조선화(朝鮮化)’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와 통하는 말이군요.

“제가 386 기득권 세력들을 비판하는 것도 단순히 ‘좌파를 때려잡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근대적 합리성을 가진 사회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작업도 단순히 그들이 나쁘다,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걸 넘어서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더 나은 청사진을 제자백가와 15~18세기 유럽 고전에서 찾아보고자는 것입니다.”

임 작가는 “조선화로 넘어가면서 리스크(위험)를 짊어지는 것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박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저는 우리가 사대부의 나라가 아니라 상인과 무사(武士)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또다시 군인들이 정치하거나 기업인들이 정치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전선(前線)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국종 교수가 외상(外傷)센터 지원 얘기하잖아요? 그건 돈을 지원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리스크를 짊어지고 전선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이나 전쟁에서 이긴 사람들, 살벌한 경쟁투쟁에서 끊임없이 자기들의 능력을 입증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구의 힘이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부족한 게 많지요.

“우리도 지방자치 선거할 때 공천 헌금하는 지역토호들을 내세울 게 아니라, 미국처럼 군인이나 경찰 생활하다가 장애를 입은 이들을 공천하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을 왜 패럴림픽에만 내보냅니까? 그들이 당장은 서툴러도 공동체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일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래야 시민사회가 건강해지고 정신이 건전해질 것입니다.”


“우파가 공짜 바라는 건 자기 부정”

현 집권 386세대를 이렇게 혹독하게 비판하는 임건순 작가가 4년 전 쓴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에서는 한국 보수세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묻자 “한국 보수는 너무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상이 변해가면 ‘과거에 내가 이런 공(功)이 있다’는 것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변해야 합니다. 반공(反共)이니 산업화 같은 것을 넘어서 ‘우리가 어떤 철학과 가치(價値)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국가주의와 결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가치와 철학, 상징자산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수세력에게는 그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 상징자산이란?

“딱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나 이미지 같은 걸 말하는 거죠. 지금으로 치면….”

― 좌파의 노무현(盧武鉉) 같은 존재를 말하나요.

“그렇죠. 우파에게 새로운 상징자산이 있나요? 그 사람들은 박정희(朴正熙)나 이승만(李承晩) 가지고 계속될 줄 알았나 봐요. 그게 아닌데…. 기존 상징자산이 기능을 못 하면 다른 걸 찾아봐야 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과연 어떤 철학, 가치,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너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공짜를 좋아했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데….”

임 작가는 “우파는 공부를 아예 안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을 갖고 다녔어요. 우리나라의 보수정치인 중에 애덤 스미스적 가치, 철학에 기초한 사람이 있나요?”

― 없죠. 그 부분은 공감합니다.

“좌파는 몰라도 우파는 공짜를 바라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밖에 안 됩니다. 사람 키우려는 생각도 없는 것 같고요.”

― 그래요. 책을 내도 ‘책 하나 보내줘’ 하지 ‘내가 사 볼게’ 하는 사람이 없지요.

“기업가나 자본가라는 사람들은 ‘정권이 못살게 군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세련된 가치와 레토릭으로 자기들을 변호하고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지원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소외된 사상가・철학자・작가들을 찾아서 조금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들에게 ‘우리도 지금 이렇게 변하고 있고, 변할 테니까,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세련된 말과 글, 언어들을 생산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건 일종의 거래입니다. 날로 먹을 수는 없어요.”

― 우리나라 기업은 그런 것에 장기적 투자를 하기보다는 좌파 시민단체, 좌파정권에게 살살 때려달라고 뇌물 주면서 5년 견뎌낼 생각만 했죠. 좌파 시민단체들에게 ‘삥’ 뜯겨 건물이나 지어주고….

“자기의 말과 글, 언어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당당하게 자기 권리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말과 글, 자기 철학이 있으면 삥 뜯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386, 심각한 피터팬증후군”



2003년 8월 남북경협 지속 발전에 관한 기자회견을 한 386세대 정치인들.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를 읽으면서 중국 제자백가 사상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 비해, 기성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은 표현이나 방식이 표피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을 막으면서 빠르게 국가 건설을 해야 했고, 그런 과정에서 무리도 있었겠죠. 그런 것은 나이가 들면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삶의 모순과 복잡성이 보이고,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이승만은 독재자이기도 하지만 평생 독립운동을 한 ‘건국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일본은 침략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두 가지 측면을 다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저도 옛날에는 그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런 걸 인정해야 하고 양쪽 다 껴안고 가야 합니다.”

― 페이스북 등에 386에 대해 비판한 글을 쓴 걸 보면, 그들을 거의 증오하는 것 같더군요. 왜 그렇게 386세대를 미워합니까.

“386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아직도 젊은이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철들지 않았다는 걸 너무 공개적으로, 또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요. 젊은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 사람들은 ‘꼰대’들입니다. 그런데 꼰대가 되기 전에 한 번은 철이 들어야 하거든요. 어르신들 말씀대로 어렸을 때는 아이다운 모습이 있어야 하는 거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단계마다 해야 할 일과 모습이 있는 겁니다. 나이 먹어서 꼰대가 되는 건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철도 안 든 꼰대는 곤란합니다.”

― 저도 아직 대학 시절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대학 다니는 자식을 둔 놈들이 자기가 아직도 대학생인 줄 안다’고 꼬집곤 합니다.

“심각한 피터팬증후군입니다. 대학 다니는 아들,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딸을 둔 사람들이 자기가 아직도 20대 청년인 줄 알고 있어요.”

임 작가는 “한국 사회는 386이라는 악성 종양,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좌파・우파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논개처럼 산업화 세력을 껴안고 절벽으로 떨어져 버린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386세대를 껴안고 절벽 아래로 떨어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좌파는 50대의 기득권・탐욕・이기심이, 우파는 70대의 노추(老醜)가 문제입니다. 그들이 물러나줘야 합니다.”


“이제는 좌파가 기득권 세력”

― 문재인 정부가 ‘적폐(積弊)청산’한다고 하잖아요.

“자기들이 적폐예요.”

― 대학 시절 운동권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 그리고 제 눈에 비친 운동권 모습이 너무 위선적이었어요. 지금도 그들이 하는 걸 보면 말과 행동이 너무 모순되는 게 많아요.”


― 어떤 걸 두고 하는 말입니까.

“386세대 교수들을 보면 대학원생들에게 함부로 하면서도 신문에 쓰는 칼럼에서는 자신을 아주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지요. 최순실 사건 때, 박근혜 정권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지만 자기들끼리는 엄청 밀어주고 끌어주고…, 민노총이 너무 막 나간다 싶은데도 지식인이란 사람들은 그들을 옹호하고 눈감아주고….”

― 임 작가는 이념적으로 어느 쪽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진보인 것 같아요.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자기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못사는 사람들을 정치가 챙겨야 한다’ ‘과학적 사고, 합리적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진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인식의 지체(遲滯)’ 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 무슨 얘기입니까.

“이미 대한민국에서 기득권 세력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우파라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전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들이 아직도 여당이고 기득권자인 줄 알고 있어요.

좌파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차명(借名)・가명(假名) 등기하지 말고 실명(實名)으로 하고, 비판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들이 아직도 비판하고 저항하는 입장인 줄 알면서 자유한국당이나 재벌들을 욕하는데, 기득권은 이미 그들에게 완전히 넘어갔어요. 사실 그런 흐름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중에도 계속되고 있었죠. 탄핵은 그걸 추인(追認)한 것에 불과합니다. 운 좋게 우파가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말과 글, 이런저런 조직들을 저들이 갖고 있는 한, 우파는 대통령만 명목상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저들의 수중에 있게 될 것입니다.”

― 우파가 왜 권력을 빼앗기게 됐다고 봅니까.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안보 우산’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지다 보니 그때부터 배가 부르고 안심하게 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영구분단 선언하자”

―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과거에는 현실로서의 북한은 우리의 적(敵)이지만, 당위로서의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같이 통일을 위한 동반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만 포기! 차라리 영구분단을 선언해버리면 좋겠어요. 통일부는 ‘평화청(平和廳)’으로 이름 바꾸어서 외교부 산하로 넣어버리고….”

― 영구분단이라니…. 국민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가 설득력 없어요. 젊은이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기성세대야 통일되는 걸 보고 샴페인 터뜨리고 얼마 후에 무덤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쟤들(북한주민들) 먹여 살리느라고 거지꼴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통일비용보다 분단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적대적 분단, 돈 많이 드는 분단만 있느냐’고…. 한 나라였다가 갈라선 벨기에-네덜란드처럼 그냥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요.”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얘기가 돌아왔다.

“《월간조선》이 기회가 되면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일을 좀 해주었으면 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低評價)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의 이행, 북방정책 등의 업적이 많습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올랐고, 소득분배도 고른 편이었으며, ‘중산층의 꿈’이 생겼습니다. 아마 87년 체제 이후 최고의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실제보다 과대평가된 면이 많다고 봅니다.”

― 요즘 흔히 갖고 있는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인격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통해 누가 국민의 삶을 개선해주었는가’ 하는 측면에서 정치인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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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조선으로의 퇴보를 멈춰라”

  •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 ● 11권의 동양철학 저서 펴내고 대중 강연…“젊은 도올 보는 듯”
    ● 상위 10%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조선스러운’ 대한민국
    ● “노무현은 과대평가, 노태우는 과소평가”
    ● “열 명에게 욕먹더라도, 한 명에게 자극되는 글 쓰고파”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회자된다. 인문·사회학 분야가 천대받는 세태의 방증이다. 문(文)·사(史)·철(哲)로 대표되는 순수 인문학 처지는 더 어렵다.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임건순(37). 동양철학자 겸 저술가. 대중 강연도 한다. 어렵고 딱딱한 동양철학을 쉽게 녹이고 풀어내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시대의창),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세(勢),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등 그간 출간한 동양철학 분야 책만 11권. 집필 중이거나 집필 예정인 책도 10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책들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며 중쇄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척박한 인문·사회 출판계의 떠오르는 별’로 평가받는다. 

임건순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양철학 외길을 걷는 독행자(獨行者)다. 석·박사 학위는 없다. 대학 및 연구소 등 제도권에 적(籍)을 두지 않았다. 학술·연구단체와 인연도 없다. 혈혈단신 ‘임건순’이란 이름 석 자로 승부를 건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걷지만 행보는 거침없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임건순 책의 애독자인 손상범 영남대 교수(국제통상학부)는 “임건순의 말과 글에서 ‘젊은 시절’ 도올 김용옥을 연상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 불법체류자’라 정의하는 임건순은 한국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보 중”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를 만났다.

‘혈혈단신 임건순’

다수가 기피하는 철학, 그중에서도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대학은 행정학과로 입학했습니다만, 정치학·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반을 두루 공부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은 사실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회와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 학자들입니다. 정치사상이자 종합사회과학인 거죠. 관중(管仲)이나 한비자(韓非子)는 경제학으로 접근해도 좋습니다. 그들의 경제학적 통찰은 기가 막히죠.” 



제자백가 사상이 가지는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자백가를 다른 표현으로 선진(先秦·진나라 이전) 철학이라 합니다. 통일제국 진(秦) 이전과 이후 철학 양상은 사뭇 달라요. 선진 철학이 역동적이고 재기발랄하다면, 후진(後秦) 철학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합니다. 통일제국 성립이라는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아 학문적 자유도 줄고, 수성(守成) 시대에 맞춰 개인의 수신(修身)에 중점을 두게 됐기 때문이죠. 형이상학 내지는 관념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열국(列國)이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던 시대의 ‘백화제방(百花齊放)’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가 제자백가의 ‘역동성’과 ‘재기발랄’의 매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 사유의 다양성과 다원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제자백가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저술과 강연으로 이들 사상을 대중화함으로써 한국 사회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그만의 ‘운동’인 것이다. ‘묵자’ 상동(尙同)편 상(上)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람마다 의로움(義)을 달리하였다.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두 사람이 있으면 두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의로움이 있었다. 사람의 수가 더욱 많아지면 의로움 역시 많아지는데….

임건순은 이 구절에 대해 “여러 사람이 등장해 ‘내 이야기 좀 들어보라’며 떠들어댄 당대 상황을 보여준다”며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해 서로 힘을 겨룬 것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좋은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공자(孔子)·맹자(孟子)가 아닌 묵자(墨子) 등 이른바 비(非)주류 사상가 연구에 주력합니다. 

“균형 있게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제자백가는 ‘백화제방’이란 표현처럼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활짝 핀 아름다운 꽃들이에요. 수많은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한두 송이(공자·맹자) 꽃만 바라보고 마나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인생 역정은 순탄치 않다. 각막이 원뿔 모양으로 튀어나온, ‘원추각막’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다. 가난도 따랐다. 원하던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학 대신, 학비가 저렴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시립대학에 진학했다. 고학(苦學)은 필연. 사회로 나온 후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초 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돈으로 수년을 버티기도 했다. 오늘날도 이른바 ‘도시빈민’ 신세다. 

“제 고향은 충남 보령군,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시골입니다. 한마디로 전 ‘촌놈’이죠. 집안 형편도 어려웠어요. 본디 양반 가문도 아닌 것 같고요. 그렇다 보니 학문적 관심도 성리학(性理學)에서 자연 묵가(墨家)와 양명학(陽明學)으로 옮겨갔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열정적으로 구세(救世)하려던 묵자,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다른 일에 종사하지만 그 도(道)는 같다’는 이업동도(異業同道)를 주창한 양명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유학파가 인문학 망친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최근에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법가(法家)다. 올해 ‘법가’ 관련 책을 출간할 계획이고, 최근 이랜드그룹 후원으로 10강에 걸쳐 ‘한비자’를 강의하기도 했다. 법가에 천착하는 것 또한 그의 처지와 무관치 않다. 

“제가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데다 가난해서인지 성격이 거칠고 강한 편입니다. 영춘권(詠春拳)을 비롯해 무술도 좋아합니다. 평등 원리가 강하고 기득권·중간 착취계급 타파를 목적으로 하는 법가 사상에 끌립니다. ‘근대국가’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전근대’ 조선으로 귀환했다고 봅니다. 상위 10%의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사회로 변해버렸으니까요.” 

임건순은 사회주의 용어로 ‘사회경제적 위치·계급적 좌표’가 학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한국 동양철학계가 외면해온 분야를 파고들게 된 셈이다. 

“우선 저 자신이 서 있는 사회·경제적 위치를 자각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제 좌표를 정확하게 인지해야죠. 그다음 저와 문제의식이 일치하는 사상가와 텍스트를 찾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것이 ‘인문학적 사유’ 혹은 ‘인문학을 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처한 환경과 이를 바탕으로 생긴 문제의식 때문에 비주류가 되었다는 그는 한국 학계 풍토를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 대학에서 손자(孫子)나 오기(吳起)를 주제로 논문을 쓰면 석·박사 학위를 받기 힘들죠. 아마 안 줄 겁니다. 묵가, 병가, 법가 등을 공부한 저 같은 사람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일 거예요(웃음).” 

한국 사회 ‘인문학 열풍’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이라 보나요. 

“한국 사회 인문학은 ‘중산층 특화 교양’입니다. 쉽게 말해 여유 있는 사람이나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라고 할까요? 배부른 사람들 구미에 맞춘 위로와 위안을 진정한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인문학이란? 

“춘풍(春風)이 아니라 추상(秋霜) 같아야죠.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당장의 진실 혹은 진리는 비참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시현하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팩폭(팩트 폭행)’이죠.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한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극이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만인에게 존경받기보다는 적을 만들더라도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싸우고 싶어요.” 

그는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인문학 위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 인문학과와 거기 교수들의 위기죠. 학령인구 감소로 인문학 전공 위주로 진행되는 학과 통·폐합 때문에 전임교수 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언제 인문학이 제대로 연구·교육된 적이 있습니까?” 

인문학 전공 학생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무늬만 인문학 전공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텍스트를 해독해 자신의 말과 글로 풀어내는 ‘내공’ 있는 인문학 전공자가 몇이나 있습니까?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하는 학생을 얼마나 보셨나요? A4용지 한두 장 분량이라도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부생, 대학원생의 민낯이죠.” 

원인이 뭘까요. 

“해외 유학파가 교수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적 문제,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기 위한 노력과 시스템의 부재, 모국어를 천시하는 풍토 등이 한데 뒤섞였기 때문이에요.” 

박상익 우석대 교수도 ‘신동아’ 3월호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학파들은 외국 이론·사상 ‘운반책’ 노릇이나 하고 있습니다. 로컬(local)에 기반한 상상력은 제로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나 번역서를 출간하는 데 게으릅니다. 명색이 선생이라면서 ‘아웃소싱’할 게 따로 있지, 학문 후속 세대를 제대로 양성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유학이나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해법으로 ‘제국(帝國) 연구’를 제시한다. 

“한국은 여러 이유로 인문학이 뿌리내리기 힘든 환경입니다. 한국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시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쌓는 데 필요한 외국 고전과 명저가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에겐 제국 경험이 없습니다. 

저는 제국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국의 야만성, 침략성이 아니라, 제국 운영의 메커니즘, 제국 창업자·수성자들의 철학과 수사(修辭), 제국이 성립하기 위한 물적·사상적 토대 등을 연구해 대중과 공유해야 합니다.”

‘배부른 돼지’와 ‘위선자’

그는 제국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선량한 피해자 의식’을 깨야 한다고 주문한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만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다. 

“수학과 과학도 인문학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철학의 핵심은 개념입니다. 이는 수학·과학과 일맥상통합니다.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훈련법을 수학·과학에서 차용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수학·과학 분야에서 먼저 쉬운 한국어로 개념과 현상을 가르치면, 이 분야 전공자 중에서 장차 철학자로 대성할 인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철학자로서 진단하는 한국 사회 보수 및 진보의 문제점은? 

“보수는 배부른 돼지고, 진보는 위선자죠. 한국 사회에 진정한 보수 및 진보 세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보수 세력은 너무 배가 불러 사상적으로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인재를 키우는 데도 소홀했습니다. 왜냐? 진보와의 경쟁에서 지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요. 사상적으로 권위주의를 탈피, 자유주의·시장주의로 진화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반면 진보는 시쳇말로 ‘내로남불’이 심합니다. 위선과 허위의식도 강하고요. 도덕적 우월감에 기반한 선민의식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만 옳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오만과 독선도···.” 

진보의 대표적 위선은 뭐라고 봅니까. 

“자신들도 기득권 집단의 일부이면서, 이를 애써 부정하거나 아닌 척하는 거죠. 조선시대 양반과 닮았습니다. 지배층이자, 자신의 기득권 수호에만 관심 있는 집단이란 점에서요. 절대 다수인 서민의 삶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들을 위하는 척하죠. 자신은 절대 선, 상대방은 절대 악으로 규정하며 명분과 도덕 투쟁을 벌이는 모습도 매우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보 세력을 ‘위정척사적 사대부’라고 정의합니다.” 

임건순은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행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빠져 있던 ‘한심한’ 나라다. 주 원인은 지배 이념인 성리학에 있다. 명분에 집착하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를 고착화해 백성 차별을 당연시했다. 역동성도 없었다. 무엇보다 문을 닫고 살며 대외 환경 변화에 무지했다. 

“대한민국의 영어 국호는 ‘Korea’이지 ‘Chosun’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회 진보를 하자면서 왜 자꾸 조선시대로 돌아가려 합니까? 일례로 교사와 공무원이 최고 직업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잖아요. 다들 공무원 되려는 세상이 되면 실험실 불은 꺼집니다. 사업가는 사업을 접습니다. 안정적인 것을 찾을 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고려(Korea) DNA’도 있습니다.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해요. 고구려와 고려의 진취성과 역동성, 개방성을 살려야 합니다.” 

그는 “‘샌님의 나라가 아니라 ‘무사·상인의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사·상인의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요. 

“성리학이 명분인 이(理)에 집착한다면 양명학은 현실인 기(氣) 또한 중시합니다. 성리학만 공부하면 양명학이 만든 직업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양명학은 직업에 차이를 두었을 뿐,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조선이나 오늘날의 한국이 성리학만 편식한다는 겁니다. 같은 유교권인 중국이나 일본은 그러지 않습니다. 일본 장인정신의 뿌리는 양명학에 있습니다. 중국인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려면 ‘손자병법’, 병법서 혹은 제왕학서로서의 ‘노자’를 읽어야 합니다. 

호방한 양명학은 무인·상인들에게 어울립니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합니다. 의병을 일으키고, 기업을 창업하는 것과도 잘 맞습니다. 광복 후 한국 발전에는 무인(군부)과 상인(사업가)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이들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죠.”

‘고려 DNA’ 살려야

임건순은 이승만 초대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를 ‘고려 DNA’가 잘 반영된 시기라고 평했다. 무인과 상인을 중심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저평가된 대표적 대통령”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노태우는 ‘시계(視界) 제로’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이끈 훌륭한 파일럿이었습니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며 ‘연착륙’에 성공했어요. 민주시민사회 건설에도 큰 공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노태우 정부 때 노동자 임금도 인상되고, 내수 시장도 확장됐습니다. 소득 분배도 고른 편이었죠. 이 속에서 ‘중산층 꿈’이 생겼습니다. 대외적으로 북방 정책을 추진한 것도 획기적인 일입니다. 노태우는 군인 출신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극적 최후 때문에 과대평가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참여정부 시절 불공평이 심화됐고, 세종시 등이 비효율과 자원 낭비를 불러왔습니다. ‘화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국민 편 가르기를 통한 득표 전략을 추구한 점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노태우는 보수·진보 진영 양쪽에서 인기가 없는 인물입니다. 

“역사학자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에 노태우 재평가가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군부독재의 연장선상에서 노태우를 평하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노태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반민주·독재 옹호’로 낙인찍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겠죠. ‘노태우’ 이름 석 자만 나오면 공격부터 해대는 보수 및 진보 진영의 정치권도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태우는 과(過)보다는 공(功)이 훨씬 더 큰 인물입니다. 언젠가는 재평가해야 하며, 재평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동아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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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3

틱낫한이 서양에 영향을 끼친 까닭과 배울 점 / 이도흠 불교평론

틱낫한이 서양에 영향을 끼친 까닭과 배울 점 / 이도흠 < 상좌불교 < 특집 < 기사본문 - 불교평론

틱낫한이 서양에 영향을 끼친 까닭과 배울 점 / 이도흠
기자명 이도흠   입력 201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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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불교, 무시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1. 머리말

틱낫한(Thích Nhất Hạnh) 스님! 1926년 10월 11일 작은 나라 베트남에서 태어나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 2대 생불로 추앙받는 이, 베트남전 반대와 평화운동을 주도하여 1967년 노벨상 후보로도 오른 이, 베트남의 임제종을 대표하는 스님이자, 상즉종(相卽宗, Order of Inter-being)의 창시자, 100권에 이르는 저서를 지은 시인이자 사상가로 그 저서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읽히고, 프랑스의 자두마을(Plum Village), 미국의 단풍림승원(Maple Forest Mo-nastery)과 청산법원(Green Mountain Dharma Center), 녹야원 승원(Deer Park Monastery)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음은 물론, 틱낫한센터가 다른 종교에는 철옹성인 이스라엘에도 있는 사상가이자 명상운동가이다.

2010년 5월 28일 현재 틱낫한으로 구글에 검색하면 10,800,000건이 뜬다. 그의 책은 적지 않은 종이 미국과 서양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또 스테디셀러다. 그의 음성과 노래와 법문이 담긴 오디오와 시디도 만만치 않게 팔리며, 그의 글은 서양의 대안문명, 명상, 평화를 추구하는 잡지에 즐겨 인용된다. 심지어 증권투자를 설명하는 글에도 그의 글이 인용되고 응용되기도 한다.

그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서양의 대중과 지식인이 가장 존경하는 동양인이다. 자두마을과 승원엔 연일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방문객과 수행자가 찾아들고, 여기서 명상과 수행을 접한 이들, 그의 글을 읽은 이들은 물질보다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는 삶으로, 욕망을 증대하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절제하는 삶으로, 갈등과 싸움보다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삶으로 바꾸고 있다. 소국의 틱낫한 스님이 서양인에게 이리 깊은 감동을 주고 영향력을 미치는 비결은 무엇일까? 특히 그는 임제종의 법맥을 계승한 자이면서 초기경전에 근거한 마음챙김 수행을 추구하는 자다. 이런 그에게서 한국 불교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2. 틱낫한의 사상과 수행법

1) 서로 존재(inter-being)의 연기론과 보살행

스님의 사상을 대표하는 핵심 개념은 스님이 창시하여 이끄는 불교를 상즉종(相卽宗, Order of Inter-being)이라 할 정도로 ‘서로 존재(inter-being)’라는 것이다. 이는 간단히 말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상호 침투하면서 다른 것들과 공생을 바탕으로 한다는 의미다.

지금 한 탯줄은 당신을 태양과 연결해 주고, 다른 탯줄은 하늘의 구름과 맺어주고 있죠. 구름이 거기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도, 마실 물도 없죠. 구름이 없다면, 우유도, 차도, 커피도, 아이스크림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못하죠. 탯줄은 당신을 강과 맺어 주고, 다시 숲과도 이어 줍니다. 계속 명상한다면, 당신이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우주의 삼라만상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삶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뿐만 아니라 식물과 광물과 공기와 물과 대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연기론을 삼라만상의 상생(相生)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서로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 서로 조건이 된다. 햇빛, 태양, 토양, 씨앗, 비료, 농부 등 모든 것이 꽃의 개화에 관계한다. 어느 하나라도 없거나 부족하면 꽃은 피지 않는다. 세상에 별개의 사물이란 없다. 모든 것은 우주의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는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서로 관련을 맺고 있고 서로 조건이 된다. 이렇듯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들과의 상생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생명체뿐만 아니라 식물과 광물과 공기와 물과 지구에 의존하면서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틱낫한은 화엄 연기론을 바탕으로 연기의 진리를 좀 더 역동적으로 전개한다.

자, 옥수수 낟알을 심읍시다. 일곱 날이 지나면 싹이 트고 옥수숫대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옥수숫대가 우리의 키만큼 높이 자란 후 심었던 낟알을 볼 수 없죠. 하지만, 낟알이 죽었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옥수숫대에서 아직 옥수수 씨를 볼 수 있습니다. 옥수숫대는 미래를 지향하는 낟알의 이어진 몸이며, 낟알은 과거를 지향하는 옥수숫대의 이어진 몸입니다. 낟알이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지면 낟알이 사라지면서 그 몸에서 옥수숫대가 자라고, 옥수숫대는 낟알에 담긴 유전자 정보대로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당분이 십 퍼센트 담겨 있다면 그 성분대로 자라고 있으니 옥수숫대에 낟알이 담겨 있습니다. 둘은 같은 사물이 아니지만, 서로 완전히 다르다며 떨어트려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옥수숫대와 씨의 관계처럼, 당신과 엄마 또한 완전히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서로 전혀 다른 인간 또한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 의존하고 조건이 되면서 관계를 맺는 연기의 진리입니다. 어떤 사람도 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존재하려면, 우리는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서로 보듬어 주는 ‘서로 존재’이어야 합니다.

이 대목을 보면 원효가 《금강삼매경론》에서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연기론을 씨와 열매의 비유로 설명한 것과 유사하다. 낟알과 옥수숫대는 하나가 아니라 별개의 사물이다[不一]. 하지만, 낟알이 찰옥수수면 찰옥수수가 열리는 옥수숫대가 자라고, 옥수숫대가 메옥수수이면 그 유전자를 가진 낟알이 나온다. 그러니, 둘도 아니다[不二]. 낟알은 옥수숫대 없이 존재하지 못하고, 옥수숫대 또한 낟알 없이 존재하지 못하니 공(空)하다. 하지만, 낟알이 땅에 떨어져 자신을 소멸시키고자 하면, 거기서 싹이 나고 옥수숫대가 자란다. 겉으로 보면 옥수숫대에 낟알이 없는 것 같지만 낟알에 담긴 유전자 정보는 그대로 존재하여 옥수숫대를 형성하니, 옥수숫대 안에 옥수수 씨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옥수숫대는 미래를 지향하는 낟알의 연속체이며, 낟알은 과거를 지향하는 옥수숫대의 연속체이다. 둘은 같은 사물이 아니지만,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분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존재는 상즉상입(相卽相入)한다.

우리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뭇생명, 사람과 우주 삼라만상의 관계가 이와 같다. 이것이 바로 서로 의존하고 조건이 되면서 관계를 맺고 상즉상입하는 연기의 진리다. 어떤 사람도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존재하려면, 우리는 ‘서로 존재(inter-being)’이어야 한다. 이 사람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도 저 사람에 영향을 미친다. 서로가 서로 안에 들어와 있다. 저 사람이 웃으면 나의 근육도 긴장을 푼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저 사람의 근육도 긴장을 풀며 엔돌핀이 몸 안에 돈다. 이처럼 인간은 다른 사람들, 우주 삼라만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 서로가 상즉상입하는 ‘서로 존재’다. 이처럼 서양의 현상학이나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와 차이를 갖는, 다른 존재들과 인드라망처럼 관련을 맺고 또 서로 조건이 되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존재가 바로 ‘서로 존재’이다.

모든 것이 연기되어 있고 무상하므로 무아(無我)다. 하지만, 씨가 자신을 소멸시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것에서 보듯, 자신을 부정하여 다른 것을 존재하게 한다. 이런 상호 관련과 조건 속에서 가유(假有)로서 찰나의 순간 존재하는 것은 있다. 이처럼 연기와 무상을 인정하면서도, 가유로서 존재하며 다른 존재와 연관을 맺고 스스로는 공하지만 다른 것과 상생, 상즉상입의 관계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틱낫한은 ‘서로 존재’로 명명한다.

서로 존재는 스스로는 공하지만, 다른 것과 관련 속에서만 존재를 드러내기에 다른 것과 상생과 상즉상입을 전제로 한다. 싸우는 두 사람이 서로 이복형제라는 사실을 알면 싸움을 중지할 것이다. 서로 미소 짓는 일이 서로의 몸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면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러기에 연기론은 보살행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서로 존재이기에 나의 미소는 상대방을 미소 짓게 하고, 나는 다시 그 미소를 보면서 행복해진다. 내가 선의 씨앗에 물을 가려 주어 이를 꽃으로 피어나게 하면, 그도 또한 선의 씨앗에 물을 주어 꽃으로 피우고 어느새 세상은 평화와 자비, 형제애, 사랑, 비폭력의 아름다운 꽃이 흐드러진 꽃밭이 된다.

2) 불성의 꽃밭론

틱낫한 스님은 인간의 마음을 밭에 비유한 불교식 비유와 일체 중생에 불성(佛性)이 있다는 대승의 불교관에 따라 불성론을 설명한다. 그는 역사상의 부처님과 살아 있는 부처님, 곧 궁극적인 부처님을 구분한다.

역사상의 부처님은 오늘날 인도와 네팔 국경에서 가까운 카필라 성에서 태어났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하나 두었다. 출가해 여러 가지 명상을 수행하다가 득도했다. 80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가르침을 전했다.

살아 있는 부처님은 궁극적인 실재의 부처님으로서 모든 사상이나 관념을 넘어서는 분이다. 우리가 언제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분이다. 살아 있는 부처님은 카필라 성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쿠시나가르에서 죽지도 않았다.

역사상의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실재한 고타마 싯다르타이며, 살아있는 부처님은 궁극적인 실재이자, 살아서 우리 안에 늘 내재한 분이라 우리가 언제나 가까이 다가가서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틱낫한은 이를 《법화경》 〈신해품〉의 우화를 통해 설명한다. 집을 떠나 50년이나 가난하게 살던 아들이 어느 날 막일꾼 자리를 얻기 위해 왕실 가족까지 찾을 정도로 부유한 상인의 집에 간다. 그 상인이 바로 그의 아버지였는데 아들은 몰라보지만 아버지는 한눈에 알아본다. 아버지는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아들에게 모른 체하고 낮은 일자리에서 서서히 높은 일자리를 주며 돌본다. 죽을 때가 돼서야 그는 그가 친아들임을 밝힌다. 이를 두고 틱낫한은 “이 대목은 부처가 《법화경》을 통해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므로 누구나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 순간과 같다. 그리고 빈궁한 아들의 마음 상태는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길에서 자신도 부처의 자식이며 보살이라는 가르침을 듣고, 이를 인정하는 성문의 마음 상태와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틱낫한은 철저하게 ‘본래성불(本來成佛)’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음에 이르렀느냐고, 부처에 오른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에게 “당신은 부처가 아닙니까?”라고 되묻는다고 한다.  

그럼 모든 인간에게 불성이 있는데 왜 악이 행해지는가. 그는 이 문제를 선과 악의 씨앗과 꽃밭의 비유로 설명한다. 인간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악이 행해지는 것은 인간의 마음밭에 선의 씨앗도 있고 악의 씨앗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어떤 때 선의 씨앗이 싹을 틔우게 하지만, 어떤 때는 탐욕과 어리석음과 분노로 악의 씨앗을 싹트게도 한다. 행복, 사랑, 자비, 평화, 형제애, 평등, 비폭력의 씨앗에 물을 주고 폭력, 두려움, 증오의 나쁜 씨앗에는 물을 주지 않으면, 선의 씨앗이 싹을 틔워 꽃으로 피어나 행복과 평화의 꽃밭을 만든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가려서 물 주기 수행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밭에 행복, 사랑, 자비, 평화, 형제애, 평등, 비폭력 등의 긍정의 씨앗도 있고 증오, 폭력, 두려움, 화, 집착 등의 악의 씨앗도 있으므로 긍정의 씨앗에 물을 주어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어나게 하고 악의 씨앗엔 물을 주지 않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수행을 뜻한다.

꽃밭에 어떤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할 때 그 식물을 나무라는 이들은 없다. 물이나 영양, 햇빛이 부족한가, 땅이 좋지 않은가 살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나쁜 일을 행하거나 쉽게 화를 내는 것은 선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을 게을리하였기 때문이지, 그 사람의 탓이 아니다. 어떤 악한 사람이라도 선의 씨앗에 물을 주고 악의 씨앗엔 물을 주지 않는, 가려서 물 주기 수행을 하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 주기를 곧잘 잊어버리거나, 생각이 나도 잘 실천하지 않는다. 때로는 악의 씨앗에 물을 주어 분노와 증오와 화를 키운다. 

이처럼 틱낫한은 본래성불의 입장에서 수행과 선을 결합시켜 불성의 꽃밭론을 전개한다. 누구나 불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수행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으며 선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을 깊은 지혜로써 깨달아 바로 불성을 보는 것이다. 그 순간 그곳은 선과 깨달음의 꽃밭이 된다. 그에게 부처와 깨달음과 선은 하나다.
 
3) 지금 이 순간의 깨달음

틱낫한 스님의 사상은 ‘지금 여기에서’ 출발한다. 스님은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여 이 순간의 경이에 만족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고 말한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마음을 가다듬어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우리 집’에 있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은 부모님의 집에 살면서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집 밖의 세상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엄마 뱃속에 있는 ‘자식들의 궁궐’처럼 진실하고 청정한 집이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어떤 지역, 어떤 나라, 어떤 지정학적 지점, 어떤 문화적 집단, 어떤 인종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낄지라도, 우리에게는 진정한 집이 있습니다. 엄마의 몸속에 있을 때 집과 같은 평안함을 느꼈죠. 아마 당신은 평화롭고 안전한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몸 안에도 그 집이 있으며,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진정한 집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 집은 시간이나 공간, 국적이나 인종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당신의 진정한 집은 추상적인 이데아가 아니라 당신이 언제든 만질 수 있고 매 순간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당신이 마음챙김 수행과 참선을 하여 붓다의 가피를 받으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의 몸과 마음은 완벽한 평안함으로 충만해져 진정한 집에 이르는 것입니다. 누구도 당신에게서 그 집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나라를 점령하고 당신을 감옥에 가둘 수는 있지만, 당신의 진정한 집과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우리 앞에 닥치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가 이미 없는데, 과거에 얽매인 이들은 현재의 경이와 즐거움을 모른다. 그들에게 과거는 감옥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미래에 사로잡힌 이들은 미래의 승진과 출세, 혹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한다.

우리가 찾고 있는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우리는 이런 경이를 만날 수 없다. 내일로 미루는 자, 과거에 묶여있는 이들은 지금 내 앞에 펼쳐지는 현재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만나지 못한 채 지나친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최고의 경이로움과 행복과 만날 수 있다.

집에 가서 깨달음의 숨을 쉬면, 몸과 마음은 아주 빠르게 함께 하나가 됩니다. 자, 들숨을 쉬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들숨에만 정신을 집중합니다. 들숨에 자신의 백 퍼센트를 투여하여 집중합니다. 당신은 곧 들숨이 됩니다. 들숨에 집중하며 참선을 하면 어느 순간에 몸과 마음은 하나가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완전히 살아 있고 전적으로 참여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완벽한 극락인 엄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려고 더 이상 열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이미 바로 거기, 당신의 집에 다다른 것입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를 담는다.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나는 내가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느낀다. 숨을 쉬면서 능선 위로 이어진 푸른 하늘,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봄날의 숲, 비 내린 뒤 물안개에 잠긴 시냇가, 단풍이 곱게 든 사이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을 저녁의 오솔길, 눈이 내려 온 들판이 은세계로 변한 위로 불쑥 솟아 있는 두 그루 소나무, 그리고 계절에 관계없이 동네 마당이나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해맑게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떠올린다. 멈춰 서서 조금 깊게만 바라보면 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절로 숨을 깊이 쉬게 되고, 절로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는 이 순간이다. 미소를 짓는 순간 온 얼굴의 힘살들은 긴장을 풀고 엔돌핀이 돌며, 온몸에 따스한 에너지가 감돈다. 이 순간 나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불성이다. 우리 얼굴을 본 이들 또한 미소를 짓는다. 그 순간 그의 마음밭에 있는 선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어난다. 이것이 보살행이다.

틱낫한 스님이 깨달은 화두는 “나는 도착하였다. 나는 집에 있다.(I have arrived. I am home.)”이다. ‘집’의 의미는 ‘깨달음, 열반, 극락’ 등과 통하며 ‘자궁’과도 통한다. 숨쉬기 명상, 걷기 명상, 품어 안아 주기 명상 등 마음챙김 수행의 궁극 목적은 자궁이나 집과 같이 모든 고통을 없애고 ‘지금 여기에서’ 마음이 지극히 평안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고향의 집안일 날로 황량해 가고/ 나그네 속세에서 갈 길 멀어라/ 마음 따라 눈 돌려 사알짝 보면/ 그 발밑 서 있는 곳 바로 내 고향(古園家業日荒凉/ 遊子迷津去路長/ 若向箇中廻眼覰/ 元來脚下是吾鄕”이란 고려 말 선승 충지(冲止, 1226~1292)의 선시가 떠오른다.

유리창의 티끌만 지우면 청정한 하늘이 드러나듯, 내 안에 불성이 있으니 마음의 티끌만 없애 버리고 미소를 지으면, 내 안의 부처가 드러난다. 그러니 내 몸이 곧 부처요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 바로 집이요, 극락이다.

4) 위빠사나와 선을 결합한 수행법

틱낫한 스님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우리 승가는 임제종의 법맥을 잇고 있고, 저는 임제종 41대이며, 제자들은 42대로 선불교 전통과 맞닿아 있다.”고 하였다. 그가 가장 애독하는 경전은 《법화경》이다. 하지만, 그의 수행법은 철저히 빠알리 경전에 입각한 것이다. 그의 수행법은 팔리정전(巴利正典) 중부(中部 Majjhima Nikaya) 부단품(不斷品 Anupada-Vagga)의 한 경전으로 몸에 관한 명상과 수련에 대한 경전인 《신행념경(身行念經, Kayagatasati Sutta)》, 네 가지 거대한 명상에 관한 법문, 즉 몸(身)·느낌(受)·마음(心)·대상(法)에 대한 마음챙김 명상을 다룬 장부(長部 Digha Nikaya), 《대품(大品 Maha-Vagga)》 《대념처경(大念處經, Mahasatipatthana Sutta)》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몸 속의 몸에 대한 명상’인 《신행념경(身行念經 Kayagatasati Sutta)》에서 붓다는 몸의 각 부분과 전신에 담겨 있는 긴장을 푸는 수련 방법을 얘기합니다. 편안하게 몸을 눕히고 엑스레이 촬영기가 지나가듯 전신을 죽 훑어본 다음 신체의 각 부분에 집중하세요. 머리에서 시작하여 발끝에서 마치세요. “숨을 들이쉬면서 내 머리를 생각합니다. 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향해 미소를 보냅니다.”라고 말해 보세요. 계속해서 나머지 몸도 그리 해 보세요. 봄날에 농부가 가을의 풍요로운 수확을 꿈꾸며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종자를 바라보듯, 엑스선이 아니라 마음챙김 수행의 빛으로 몸을 바라보세요. 더도 말고 십오 분만 마음챙김 수행을 하여 그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몸을 천천히 바라보세요.

충분히 깨달은 마음으로 몸의 각 부분을 인식하고서 마음챙김 수행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몸을 살며시 얼싸안으세요. 그러면 몸의 각 부분은 긴장을 풀고 평안해집니다.

미소야말로 몸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방편입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지은 첫 미소는 완벽하게 평안한 미소였습니다. 얼굴엔 수많은 힘살이 있습니다.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면 힘살이 긴장을 합니다. 하지만 들숨을 쉬며 얼굴의 힘살들을 생각하고 날숨을 쉬며 그 힘살들에게 미소를 짓는다면, 얼굴의 힘살들은 긴장을 풀어버릴 것입니다. 들숨과 날숨과 더불어 얼굴이 바뀝니다. 한 번 짓는 미소가 기적을 불러옵니다.

《신행념경》에서 붓다는 몸 안에 있는 자연의 네 원소를 깨달으라고 하였습니다. 자궁 속에서 물, 불, 공기, 흙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태아가 자궁의 양수 속에서 쉴 때 엄마는 산소와 영양분을 보내 자궁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태어난 후에 네 원소 사이의 균형이 잘 이루어지면 건강하죠. 하지만 이 균형을 잃으면, 우리의 몸은 온기를 잃고 제대로 숨을 쉬는 데도 지장을 받습니다. 때때로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숨을 쉬면, 네 원소가 자연스럽게 다시 균형을 되찾습니다. 

붓다는 몸의 위치와 행위도 깨달으라고 하였습니다. 좌선을 할 때,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고요함과 굳셈과 평안함을 이루고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앉습니다. 앉건, 걷건, 서건, 눕건, 매 순간 우리는 몸의 위치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건, 몸을 숙이건, 웃옷을 입건,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인식합니다. 이런 인식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마음을 가다듬어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우리 집’에 있는 것입니다.

틱낫한의 입장에서 볼 때 수행이란 현재를 충만히 사는 것이다. 마음챙김(mindfulness)은 온전히 깨어 있으면서 삶의 매 순간을 깊이 있게 사는 것이다. 마음챙김 수행은 밥을 먹든, 걸어가든, 참선을 하든 마음을 집중하여 숨을 쉬면서 깨어 있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과 기쁨을 자각하며 그를 행하는 수행법이다. ‘지금 여기에서’ 현재의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여하여, 하나하나에 대해 깊이 음미하여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타인, 또는 세계와 조화와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한 잔의 물을 마실 때도 우리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마시거나 다른 생각을 하며 마실 수 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물을 마실 때, 나는 진정한 존재가 된다. 명상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 안에서, 느낌 안에서, 마음 안에서, 그리고 이 세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깨닫는 것이다.

그의 수행법은 몸과 마음 자체, 또 그 변화와 움직임을 관찰한다는 점에서는 위빠사나 수행과 같지만, 지금 여기에서 자연이든, 사람이든 모든 대상과 철저히 하나가 된다는 점은 선과 같다. 초기경전에 입각했지만 임제종의 생활선풍이 섞여 있는 것이 그의 수행법의 요체다. 예를 들어, 위빠사나가 발을 옮길 때마다 하나하나의 동작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데 반하여, 틱낫한의 걷기 명상은 걸으면서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를 가슴에 품으면서 마음에 평안함을 갖는 데 더 초점을 둔다.

일상이 바로 도(道)다. 앉고, 걷고, 먹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앉고, 걷고, 먹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깨달음이란 앉아 있을 때 앉아 있음을, 걸을 때 걷고 있음을, 먹을 때 먹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앉아 있으며 앉아 있음의 즐거움을 알고, 걸을 때 걷는다는 것에 기뻐하고, 먹을 때 먹음의 행복에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한 잔의 물을 마실 때도 저 구름이 비를 내리고 냇물이 되어 흐르고 어느 나무가 품어 땅에 스미어 있다가 샘으로 솟아 내 몸으로 들어옴을 안다. 저 구름이 없었다면, 냇물이 없고 숲이 없고 땅이 없었다면 저 물이 없음을 인식한다. 그 물이 내 몸으로 들어가 마른 몸을 적시고, 물에 담긴 미네랄과 산소가 온몸의 세포에 얼마나 강한 활력을 줄 것인가 생각하며 기뻐한다. 그리 에너지를 되찾은 몸이 저 땅과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환희심에 잠긴다. 그 순간 물은 내 몸이 된다. 물과 내 몸과 마음은 100퍼센트 하나가 된다. 내가 100퍼센트 나 자신이기 때문에 물 또한 내게 스스로의 모습을 100퍼센트 드러낸다. 따라서 나와 물이 둘 다 진정한 존재가 되고, 물을 마시는 순간 삶이 그곳에 참으로 존재하게 된다.

걷든, 앉든 숨을 쉬면서 명상에 잠기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경지, 지금 여기 이 순간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숨을 들이쉬면서 내 몸을 바라보며 마음에 평화를 담는다. 숨을 내쉬면서 온몸의 힘살들의 긴장을 풀며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이 순간 우리는 느낀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됨을, 내가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걸으면,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곧 극락이 된다. 숨을 들이쉬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 조상들과 부모님과 세상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고 있음을 실제 현실처럼 자각한다. 자각하는 순간 진리의 비가 우리 잠재의식의 깊은 곳에 있는 선의 씨앗을 흠뻑 적신다. 그리하여 내일 다시 걷거나 숲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거나, 출근을 하여 잠시 창밖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그 씨앗에 싹이 돋아날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그와 공존하려는 마음이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이 순간이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이며 발을 디디고 있는 그곳이 바로 정토다. 틱낫한에게 명상과 선과 정토는 하나다.


3. 틱낫한이 서양에 영향을 미친 까닭

틱낫한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서양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으며, 다른 스님들이 소신공양을 하고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갇힐 때 홀로 프랑스로 갔다. 그의 사상도 쉽고 명료하지만, 심오함은 조금 떨어지며 그만의 독창적인 점은 부족하다. 책도 내용이 많이 겹친다. 하지만, 그의 불교사상이 서양인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주고, 또 서양인의 일상에 명상과 수행을 가져다주고, 그들이 마음의 평안과 자비를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데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이다. 그의 책은 쉽고 평이하게 읽히지만, 마치 잘 쓴 선시처럼 진여에 다가간 자만이 낼 수 있는 내공이 느껴져 곱씹으면 씹을수록 깊이 있는 울림이 있다. 《법화경》이든 《금강경》이든 핵심을 간파하여 이를 쉽게 전달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기도 한다.

틱낫한이 서양인에게 깊은 감동을 준 까닭은 개인의 능력과 함께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이 작용하였다. 무명의 승려를 전 세계적인 인물로 만든 것은 스승 틱꽝득(Thích Quảng Đức, 釋廣德, 1897∼1963) 스님의 소신공양이다. 그는 종교의 자유와 후에시에서 학살당한 가족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1963년 6월 11일 사이공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소신공양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퓰리처상을 받은 말콤 브라운의 사진을 통해 서양에 알려졌다. 화염 속에서도 전혀 표정의 일그러짐 없이 결가부좌를 흩트리지 않은 채 조용히 죽음에 이르는 의젓한 모습은 많은 충격을 주었다. 서양인이 이를 자살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자 틱낫한 스님은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 속에서 틱낫한은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공양은 서구 기독교의 도덕 관념이 이해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언론들은 그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그 본질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항 행위도 아닙니다. 분신 전에 남긴 유서에서 그 스님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압제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틱낫한은 ‘현실참여불교재단’을 설립해 베트남 청년불자들을 모으는 한편 불교의 자비정신을 통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베트남 농촌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틱낫한은 불교평화연맹(Buddhist Peace Fellowship, 美)을 방문해 베트남 평화운동을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켰고, 이를 계기로 1967년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추천됐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7년도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틱낫한을 추천하며 “베트남의 역사는 외세와 타락한 부자들의 착취로 가득하며, 지금도 베트남인은 전쟁과 압제로 인하여 가혹하게 억압받고 헐벗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인들에게 이 같은 악몽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통치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는 전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정치가, 종교지도자, 학자와 작가들을 만나 평화사상을 전파하고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그의 평화사상은 모든 종교가 서로 대화하고 세계인이 형제애와 인류애를 가지고 만나는 데 중요한 기념비를 세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틱낫한은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하는 지도자로 나서고, 미국의 히피와 68혁명세대가 이에 동참하며, 이들 중 상당수가 불교에 심취하게 된다. 이들에게 명상과 마음챙김 수행과 평화의 메시지는 아주 밝고도 분명한 빛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틱낫한은 서양인에게 불교의 자비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반전평화운동의 현자로 부각된다.

또 하나는 대안의 삶의 추구 경향이다. 서양은 근대화와 산업화로 물질문명의 풍요를 이루었으나 소외의 심화, 불안과 고독의 일상화 등 내면의 빈곤을 겪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 소외와 고독, 불안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이루는 삶, 빠르고 충만한 삶에서 느리고 여백이 많은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이런 삶을 지향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서양의 명상과 수행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불교의 명상과 수행에서 답을 찾게 되었다. 이런 붐이 불교, 그중에서도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을 중심으로 한 명상과 수행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특히, 패럴랙스 출판사는 그런 운동과 삶의 구심점이 된다. 이 출판사는 1986년에 틱낫한 스님의 책을 전담하여 발행하는 출판사로 출발하여 100권에 가까운 틱낫한 스님의 책과 시디, 오디오를 발행하고 있다. 그중 채 열 권에 이르지 않는 책이 틱 스님 이외의 저자인데, 그는 아난, 달라이 라마, 그리고 고은이다. 고은은 《무엇? 108선시집》을 이 출판사에서 발행하였다.

이런 두 가지 맥락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틱낫한 개인의 역량도 무시하지 못한다. 틱낫한이 서양에 영향을 끼친 제일 요인은 불교 사상과 수행을 현대화, 대중화, 서양화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불교철학을 서양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개념인 행복, 평화, 사랑, 공존과 결합시켰다. 그는 서양인에게 만물이 무상(impermanence)한 것이니 그를 통해 현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찰나의 순간에 만족하고 기뻐하라고 권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안의 모든 것과 서로 관련을 맺고 있어 무아(non-self)한 것이니, 모든 것과 공존하는 평화의 길을 걸으라고 가르친다. 모든 것은 고통이고 고통은 집착과 무지에서 오는 것이니, 욕심과 증오와 화에서 벗어나 열반(nirvana)에 이르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이 한 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른다는 것을 분명히 볼 것입니다. 구름이 없다면 비는 내릴 수 없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나무는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면 종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종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구름이 필수입니다. 만일 구름이 이곳에 없다면 종이도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름과 종이는 서로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종이 안을 더욱 더 깊이 들여다보면 햇빛을 볼 수 있습니다. 햇빛이 없다면 숲이 성장할 수 없고 아무것도 자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조차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햇빛 또한 이 한 장의 종이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이와 햇빛은 서로 공존합니다.
 
틱낫한은 종이와 구름의 비유를 통해 연기론에 대해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고, 이를 공존과 연결시키고 있다. 연기론에서 상호 관련성에 대해 말하지만, 가장 핵심인 시간에 따른 인과관계나 서로 조건이 되는 상호 의존성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중중무진의 화엄의 연기론과 같은 단계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사상이 쉽고 명료하지만 심오함은 덜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틱낫한의 선택이다. 하나는 실체론에 젖어 있는 서양인에게 관계성의 사유로 전환하여 구체적으로 세계를 이해시키려는 뜻이고, 연기론을 서양의 공존과 평화의 철학과 관련시키면서 새롭게 해석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그가 포옹하기 명상에 대해 서술한 것을 먼저 들어보자.

저는 가족의 누구에겐가 화가 났을 때, 또 화가 나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품어 안는 명상을 할 것을 권합니다.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삼백 년 동안 존재하리라고 마음으로 생생하게 그려보세요. 그러고 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은 팔을 벌리고 그를 껴안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이 너무도 진귀함을 압니다. 숨을 내쉬면서 삶의 이 순간을 소중히 품습니다. 그를 품어서 안아 주기를 간절히 열망한다고 말하면서 당신 앞의 사람에게 미소를 보냅니다. ……상대방을 따뜻하게 품어 안아서 당신의 몸과 마음이 함께 절대 현존과 삶의 충만함을 창조하는 이 순간, 이것은 의식입니다. ……당신 또한 세 단계의 마음챙김 숨쉬기 수행을 실행해 보세요. 첫 들숨과 날숨을 쉬는 동안에 당신과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살아 있음을 의식하세요. 둘째 들숨과 날숨을 쉴 때는 당신과 사랑하는 사람 모두 지금으로부터 삼백 년 동안 이곳에 존재하리라고 생각하세요. 셋째 들숨과 날숨을 쉴 때 당신과 그가 모두 살아 있다는 깨달음으로 다시 돌아가세요. 당신의 포옹은 점점 깊어질 것이고, 그래서 당신은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위의 수행을 어렵다고 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쉽고 누구나 일상에서 할 수 있으면서도 반복하는 사이에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포옹하면서 상대방에 숨겨진 불성을 드러내고 나도 그에 감화를 받아 불성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그는 2,600년 만에 처음으로 계율을 현대화한 스님이기도 하다. 2003년 3월 31일 서울에 있는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컴퓨터와 자동차, 인터넷 사용에 맞도록 개정된 계율을 발표한 바 있다. 
둘째, 틱낫한은 대승과 상좌불교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회통(會通)하고 있다. 그는 임제종의 41대로 가장 애독하는 경전은 《법화경》이지만, 《법화경》과 《금강경》 같은 대승경전을 해석할 때 상좌불교식 해석과 대승불교식 해석을 겸한다. 그의 수행법은 팔리정전인 《신행념경(身行念經》 과 《대념처경》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지금 여기에서 마음의 평안과 깨달음에 이르려는 것은 임제종의 생활선과 맥을 닿고 있다.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을 보면, 《법화경》을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1장~10장, 12~14장), 궁극의 차원으로 들어가기(《법화경》 11장, 15-19장, 22장), 실천의 문을 열기(20장, 23~28장), 깨달음에 이르는 길로 육바라밀, 보시, 지계, 포용성, 정진, 선정, 지혜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역사적인 차원은 우리를 기원전 5세기경 인도에서 가르침을 펼쳤던 부처와 만나게 해 준다. 우리는 그 역시 인간이었음을 깨닫고, 진리를 향한 그의 열망과 수행, 그가 걸었던 길을 열심히 쫓아가게 된다. 궁극의 차원은 부처의 가르침이 갖는 영원한 의미, 시공간을 초월한 법의 본질을 보여 준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누구나 이 영원한 의미를 발견할 것이므로, 궁극의 차원과 만나기 위해 다른 어딘가를 헤맬 필요는 없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역사적 차원의 일상 속에서 궁극의 삶이 주는 기쁨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법화경을 공부할 때는 경이 어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시선을 지상에 고정시키고 있을 때-나무와 풀, 언덕과 산, 혹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때-우리가 서 있는 곳은 역사적인 차원, 삶과 죽음의 세계이다. 그러나 허공을 응시할 때는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궁극의 차원 속으로 들어간다.
 
마명(馬鳴)이 생멸문(生滅門)과 진여문(眞如門)으로 나누었듯, 틱낫한은 역사적인 부처와 살아 있는 부처, 역사와 삶 차원의 불교와 궁극의 깨달음으로서 불교를 나눈다. 전자가 상좌불교와 가깝다면 후자는 대승과 가깝다. 그는 “《법화경》의 문을 열어 놀라운 법을 만나려면, 이처럼 역사적인 차원과 궁극의 차원을 모두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마명이 진속불이(眞俗不二)를 설파하였듯, 비록 대승경전이라도 두 가지 차원에서 보아야 불교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하듯, 그래야만이 역사적 부처를 따라 진리를 향한 그의 열망과 수행의 길을 지극하게 추구하게 되며, 궁극의 차원으로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궁극적인 실체로서의 진여실체에 이른다. 

셋째, 틱낫한은 시인이기도 하지만, 능란하고 정확하게 은유(meta-phor)를 사용하여 이해를 쉽게 하면서도 감성에 호소하는 시적인 문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은유란 한 개념이나 대상을 다른 개념이나 대상과 견주어 양자 사이의 유사성(likeliness)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를 유추(類推, analogy)하여 한 대상이나 개념을 다른 무엇으로 전이하여 비유하는 것이자, 담론 안에서 작동 시 수용자가 주어진 세계관과 문화 안에서 형성된 개념 체계와 상상력에 따라 원관념과 매체관념 사이의 관계를 유추하여 의미작용을 일으키는 방식이자 행동하는 양식이다. 창조의 장에서 보면 은유는 두 개념이나 대상 사이의 유사성을 유추하는 것이다. 수사의 장에서는 은유는 전이다. 해석의 장에서 보면 이는 원관념과 매체관념 사이의 동일화이다. 소통의 장에서 보면 발신자가 보낸 코드에 대하여 수신자가 유사성의 유추에 의하여 해석한 의미작용을 일으키고 이에 따라 실천하는 양식이다.

철학의 생성의 면에서 보면, 반달에서 색즉시공이나 화엄의 은밀현료구성문을 떠올리듯 사물의 어떤 속성이나 실체를 발견하는 자체가 은유다. 철학의 이해와 수용의 측면에서 보면, 인언견언(因言遣言)의 진리를 달과 손가락의 비유를 통하면 이해가 쉽듯, 추상적인 무엇을 사물로 전이하여 유사성의 유추에 의해 의미작용을 일으켜 의미를 해석하는 매개로 작용하는 것이 은유다. 틱낫한 스님은 불성을 꽃으로, 연기를 구름과 종이의 관계로 비유하듯, 어렵고 추상적인 불교 개념을 일상의 사물의 은유로 대체하여 쉽게, 핵심을 파악하게 하는 한편, 은유의 시적 표현을 통해 논리적 이해와 함께 감성의 설득도 꾀하고 있다. 그의 글이 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감동과 울림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넷째, 틱낫한은 환유를 즐겨 사용하여 구체성을 갖는 해석과 감동을 유도한다. 

환유란 한 개념이나 대상을 다른 개념이나 대상과 견주어 양자 사이의 인접성(contiguity)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를 연합적으로 연결하여 한 대상이나 개념을 경험적 기호로 대체하여 비유하는 것이자, 담론 안에서 작동 시 수용자가 주어진 세계관과 문화 안에서 형성된 경험과 기억에 따라 원 대상과 비유 대상 사이의 연합적 연상을 하여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차이를 유추하여 의미작용을 일으키는 방식이자 행동하는 양식이다. 창조의 장에서 보면 환유는 두 개념이나 대상 사이의 인접성을 유추하는 것이다. 수사의 장에서는 환유는 경험적 대체다. 해석의 장에서 보면 이는 원래 대상과 비유 대상 사이의 연합적 연상을 통한 구체적 해석이다. 소통의 장에서 보면 발신자가 보낸 코드에 대하여 수신자가 자신의 맥락에서 인접성의 유추에 의하여 해석한 의미작용을 일으키고 이에 따라 실천하는 양식이다. 간단히 말하여 환유는 칠판−지우개, 학자−먹물, 촌놈−핫바지처럼 인접성에 따른 유추다. 이 때문에 은유가 동일성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환유는 이를 깨는 구체성과 관련이 된다. 틱낫한은 나무와 꽃, 대지, 차, 쌀 등 아름다운 자연의 대상과 우리 주변의 일상의 사물을 수시로 등장시켜 삶과 일상의 구체성 속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불교 세계를 느끼도록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최상품의 바나나, 벌꿀, 달콤한 쌀, 사탕수수”에 비유한다. 이를 한국식으로 바꾸어 “우리 어머니의 사랑은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 붉게 잘 익은 사과, 달콤한 벌꿀, 쫄깃쫄깃한 인절미와 같습니다.”라고 말해 보자. 추상적인 사랑이 구체적인 사물로 전환되고, 그 구체적인 사물과 연관된 유년의 기억과 추억이 떠오르며 어머니의 사랑을 깊으면서도 가깝게, 바로 옆에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다섯째, 교리와 사상과 수행과 삶이 일치하였다. 

틱낫한은 16세에 출가한 이후 60여 년을 쉼 없이 경전을 읽고 수행을 하고 시를 짓고 글을 썼다. 개인의 고통만이 아니라 사회의 고통, 나만의 평안과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평안과 행복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세계를 순회하며 반전 평화운동을 전개하였고 불교평화대표단 의장으로 파리평화회의를 이끌었다. 그는 지금도 자두마을에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 종교계에 핀 두 송이 꽃,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고 노벨상 후보로 추천될 정도로 높은 자리에 이르렀지만, 지금도 몸소 채소밭을 가꾸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진 숲에 감동하면서 숨을 쉬고 내쉬면서 모든 것에 감사하고 내 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사랑하며 자신이 서 있는 곳을 극락으로 삼아 매 순간 환희심에 충만하여 살아간다. 이처럼 교리와 사상과 수행이 일치하는 삶이 서양인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여섯째, 명상 및 승가 공동체의 설립과 운영이다. 

그는 자두마을을 비롯하여 미국의 단풍림승원, 청산법원, 녹야원 승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공동체의 눈은 공동체 몸의 응집된 통찰력이자 지혜라고 단정한다. 그곳에서 그는 승려는 물론, 탐방객과 함께 수행을 하고 가르침을 전한다. 그들은 명상과 수행을 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한편, 그들만의 계율을 지키며 더불어 살면서 공존과 평화의 지혜를 터득한다. 이곳에 며칠만 들른 사람도 깊이 감동을 하고 생활 방식과 세계관을 바꾸게 된다. 더구나 걷기 명상, 포옹하기 명상, 설거지 명상 등 모든 생활 자체가 명상이고 수행이며,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틱낫한 작곡의 노래를 부르며 수행하기에 참가자는 거의 대부분이 매료될 뿐만 아니라 불교와 틱낫한의 사상과 수행법과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일곱째, 그는 온화한 평화주의자로 비폭력 평화운동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의 이력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평화와 행복과 자비를 역설하고 실천한다. 자두마을뿐만 아니라 단풍숲 승원(Maple Forest Monastery) 등에서 이곳에 오는 이들을 따스하게 품어 안아 준 다음 함께 숨을 쉬고 명상을 하고 걷는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가 마음밭에 있는 평화와 자비, 공존의 씨앗에 물을 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의 씨앗은 꽃으로 피어나 흐드러진 꽃밭을 이룬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온화하고 평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그일 것이다. 늘 마음이 평화로운 분이며 다른 이들을 평안하게 하고 미소 짓게 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다. 그의 미소를 대하면, 그의 환한 얼굴을 마주하면, 그의 지혜로운 말씀을 들으면, 그의 너른 가슴에 안기면 방금까지 화를 내고 싸웠던 이들도 엄마 품에 안긴 아가처럼 평안함과 행복함을 느낀다.


4. 한국 불교가 배울 점

한국불교에서도 틱낫한과 비슷한 승려를 찾으라면 단연 도법 스님이 떠오른다.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언어의 한계 때문에 세계적인 명성까지는 얻고 있지 못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틱낫한을 능가하는 점도 있다. 온몸을 던져 사회적 실천을 하는 점, 도법 스님이나 불교를 따르는 이들뿐만 아니라 산내면의 주민과 더불어 공존하는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점, 지리산의 자연과 절과 사람과 하나가 되는 삶을 추구한다는 점, 절과 대안학교와 한생명, 인드라망공동체와 같은 조직, 귀농학교 등이 한데 어우러진 지역공동체를 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틱낫한보다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류 불교는 아직 고식과 아집과 아만에 휩싸여 있다.

송의 《석자비탁집(釋子非濁集)》 에 보면 신라 사람 승유(僧兪)가 아함경을 공부하는 이를 보고 나무라자 꿈에 천동자(天童子)들이 나타나서 승유를 때리며 “소승으로서 사다리를 삼아 대승에 이르는 것이 그대 나라 법식이다.”라고 말한다. 《삼국유사》 〈흥법〉 편 ‘원종흥법 염촉멸신(原宗興法 厭髑滅身)’ 조에서도 “대, 소승의 불법이 서울의 인자한 구름이 되어 여러 곳의 보살이 세상에 나타나기도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원효의 저서에도 대승과 소승의 경전, 대승적 해석과 상좌불교적 해석이 회통하고 있다. 이제 한국불교도 틱낫한 스님이 행한 것처럼, 간화선을 종지로 하되, 상좌불교의 교리, 계율, 위빠사나의 수행법을 과감하게 수용하여 양자를 종합한 것을 21세기 한국불교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

21세기 대중은 경전에는 없는 고통과 욕망에 휘둘리고 있다. 지금 대중은 미디어의 조작에 따른 고통, 정치적 억압과 폭력에 따른 고통, 환경파괴에 따른 고통,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고통, 공동체의 해체에 따른 고독과 고통,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물화(物化)와 소외에 따른 고통, 해마다 수십 억 개체의 인간과 생명이 죽어가는 고통, 디지털 시대에 와서 가상과 시뮬라시옹에 현혹되는 고통 등 중세와 분명히 다른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중세적 고통을 멸하라고 한다면 대중은 고승의 설법일지라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제 스님들은 한국 대중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에 함께 서서 그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가 성찰하고, 더 나아가 이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고통이 치유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하려면 달라진 사회와 대중을 알아야 하고, 이를 잘 분석하고 종합한 서양의 인문학과 사회과학도 공부해야 한다. 아울러, 대안은 보수적인 것에서 진보적인 것까지 여러 차원이 있겠지만,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고통이 해소될 수 있는 사회개혁과 가난하고 소외된 중생의 구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승려대회에 대중들이 외면한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한국불교가 보살행을 관념으로만 외쳤지 실천행을 별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가한 자를 승려라 할진대 온라인으로는 세속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승려 가운데 육식을 하거나 생명을 해하는 일을 다반사로 하는 이들도 많다. 서양의 스님이나 불교도들에게 한국 불교의 인상을 말하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상 가운데 첫째로 등장하는 것이 스님의 육식과 쥐와 같은 동물의 살생이다. 한마디로 진리와 계율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승려가 너무도 많다. 염불보다 잿밥, 곧 돈과 권력에 더 이끌리는 승려도 비일비재하다. 일부지만, 이들로 인하여 대중들은 승가뿐만이 아니라 불교 자체에 대해 회의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큰스님들은 권위를 버리고 누구든 아랫사람을 대하면 미소를 짓고 따스하게 포옹해 주는 삶의 자세와 넉넉함이 필요하다. 종단도 관료화에서 벗어나고 권력에서 독립해야 한다. 계율을 현대에 맞게 수정하되, 계율과 더불어 자유로운 승가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  

경전의 한글화와 대중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아직 한문투의 문장, 현학적인 개념어와 기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틱낫한스님이 이룩한 것처럼 경전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문장화하고, 불교사상서들은 좀 더 정확하고 명료한 은유와 환유를 사용하여 쉬우면서도 핵심의 진리에 다가가게 해야 한다. 

21세기 오늘, 대중들 또한 화폐증식, 재현의 위기, 가상성 등 경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욕망을 과잉발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위적으로 욕망의 소멸을 말한다면, 경전상의 계율만을 고집한다면, 스님 독단의 모노드라마와 같은 수행법과 의례만을 강요한다면, 종단이 관료들의 성으로 남는다면, 한국 불교는 차츰 소수 종교로 전락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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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양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의상·만해연구원 연학실장, 한국학연구소 소장, 《문학과 경계》 주간 등 역임. 현재 실상사 화엄학림 외래강사,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 통일법요집편찬 연구위원. 저서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 다수. 본지 편집위원.

 이도흠 ahurum@hanmail.net

2022/01/13

형질인류학 - 위키백과, Biological anthropology physical anthropology

형질인류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형질인류학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영장류의 머리뼈. 인간, 침팬지, 오랑우탄, 마카크

형질인류학(形質人類學), 혹은 자연인류학(自然人類學)이라고도 불리는 이 학문은 인간의 행동 및 생물학적 양상, 인간과 관련된 영장류 그리고 멸종한 인류의 조상들에 대해 연구한다. 인류학의 하위 분과로서는 계통학인류 연구에 대한 생물학적 견해를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분과[편집]

형질인류학은 몇 가지 하위 분과를 가지고 있다.
고인류학에서는 인류 진화의 증거가 되는 화석들을 연구한다. 고인류학에서는 멸종한 인류와 다른 영장류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류 진화의 환경적 배경을 탐구한다.
영장류학에서는 영장류의 행동양상, 형태, 그리고 유전자에 대해서 연구한다. 인간과 영장류의 상동성과 유사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류의 특성이 왜 그렇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환경생태학에서는 진화학적-환경학적 관점에서 수렵 채집, 재생산, 개체 발생 등과 같은 행태적 적응 양상에 대해 연구한다.
인간생물학은 생물학과 형질인류학, 영양학과 의학이 합쳐진 영역이며 전지구적 관점에서의 건강, 진화, 해부학, 생리학, 적응, 집단 유전학에 대해 탐구한다.
생고고학(生考古學)에서는 고고학적 자료들을 통해 인류 문화의 종적을 탐구한다. 고고학적 자료란 이를테면 연조직이 포함된 뼈 화석등을 말한다. 생고고학 연구자들은 인체 골 해부학, 고인류병리학, 고고학들을 총체적으로 연구한다.
고인류병리학은 고대의 질병들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고인류병리학에서는 뼈 화석이나 미라화된 연조직에서만 관찰 가능한 병인(病因)뿐만 아니라 영양장애, 시간에 따른 형태의 변화, 신체적 외상, 생체역학적 부상에 대한 단서 등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법인류학이란 골 해부학, 고인류병리학, 고고학, 그리고 여러 인류학적 분과들의 종합학문으로 사망 사건에 대한 재구성을 목표로 한다.


Biological anthrop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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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logical anthropology, also known as physical anthropology, is a scientific discipline concerned with the biological and behavioral aspects of human beings, their extinct hominin ancestors, and related non-human primates, particularly from an evolutionary perspective.[1] This subfield of anthropology systematically studies human beings from a biological perspective.

Branches[edit]

As a subfield of anthropology, biological anthropology itself is further divided into several branches. All branches are united in their common orientation and/or application of evolutionary theory to understanding human biology and behavior.

History[edit]

Origins[edit]

Biological Anthropology looks different today than it did even twenty years ago. The name is even relatively new, having been 'physical anthropology' for over a century, with some practitioners still applying that term.[2] Biological anthropologists look back to the work of Charles Darwin as a major foundation for what they do today. However, if one traces the intellectual genealogy and the culture back to physical anthropology's beginnings—going further back than the existence of much of what we know now as the hominin fossil record—then history focuses in on the field's interest in human biological variation. Some editors, see below, have rooted the field even deeper than formal science.

Attempts to study and classify human beings as living organisms date back to ancient Greece. The Greek philosopher Plato (c. 428–c. 347 BC) placed humans on the scala naturae, which included all things, from inanimate objects at the bottom to deities at the top.[3] This became the main system through which scholars thought about nature for the next roughly 2,000 years.[3] Plato's student Aristotle (c. 384–322 BC) observed in his History of Animals that human beings are the only animals to walk upright[3] and argued, in line with his teleological view of nature, that humans have buttocks and no tails in order to give them a cushy place to sit when they are tired of standing.[3] He explained regional variations in human features as the result of different climates.[3] He also wrote about physiognomy, an idea derived from writings in the Hippocratic Corpus.[3] Scientific physical anthropology began in the 17th to 18th centuries with the study of racial classification (Georgius HorniusFrançois BernierCarl LinnaeusJohann Friedrich Blumenbach).[4]

The first prominent physical anthropologist, the German physician Johann Friedrich Blumenbach (1752–1840) of Göttingen, amassed a large collection of human skulls (Decas craniorum, published during 1790–1828), from which he argued for the division of humankind into five major races (termed CaucasianMongolianAethiopianMalayan and American).[5] In the 19th century, French physical anthropologists, led by Paul Broca (1824-1880), focused on craniometry[6] while the German tradition, led by Rudolf Virchow (1821–1902), emphasized the influence of environment and disease upon the human body.[7]

In the 1830s and 1840s, physical anthropology was prominent in the debate about slavery, with the scientific, monogenist works of the British abolitionist James Cowles Prichard (1786–1848) opposing[8] those of the American polygenist Samuel George Morton (1799–1851).[9]

In the late 19th century, German-American anthropologist Franz Boas (1858-1942) strongly impacted biological anthropology by emphasizing the influence of culture and experience on the human form. His research showed that head shape was malleable to environmental and nutritional factors rather than a stable "racial" trait.[10] However, scientific racism still persisted in biological anthropology, with prominent figures such as Earnest Hooton and Aleš Hrdlička promoting theories of racial superiority[11] and a European origin of modern humans.[12]

"New Physical Anthropology"[edit]

In 1951 Sherwood Washburn, a former student of Hooton, introduced a "new physical anthropology."[13] He changed the focus from racial typology to concentrate upon the study of human evolution, moving away from classification towards evolutionary process. Anthropology expanded to include paleoanthropology and primatology.[14] The 20th century also saw the modern synthesis in biology: the reconciling of Charles Darwin’s theory of evolution and Gregor Mendel’s research on heredity. Advances in the understanding of the molecular structure of DNA and the development of chronological dating methods opened doors to understanding human variation, both past and present, more accurately and in much greater detail.

Notable biological anthropologists[edit]

See also[edit]

References[edit]

  1. ^ Jurmain, R, et al (2015), Introduction to Physical Anthropology, Belmont, CA: Cengage Learning.
  2. ^ Ellison, Peter T. (2018). "The evolution of physical anthropology".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165.4: 615-625. 2018.
  3. Jump up to:a b c d e f Spencer, Frank (1997). "Aristotle (384–322 BC)". In Spencer, Frank (ed.). History of Physical Anthropology1. New York City, New York and London, England: Garland Publishing. pp. 107–108. ISBN 978-0-8153-0490-6.
  4. ^ Marks, J. (1995) Human Biodiversity: Genes, Race, and History. New York: Aldine de Gruyter.
  5. ^ "The Blumenbach Skull Collection at the Centre of Anatomy, University Medical Centre Göttingen". University of Goettingen. Retrieved February 12, 2017.
  6. ^ "Memoir of Paul Broca".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0: 242–261. 1881. JSTOR 2841526.
  7. ^ "Rudolf Carl Virchow facts, information, pictures"Encyclopedia.com. Retrieved February 12, 2017.
  8. ^ Gail E. Husch (2000). Something Coming: Apocalyptic Expectation and Mid-nineteenth-century American painting - by Gail E. Husch - ...the same inward and mental nature is to be recognized in all the races of menISBN 9781584650065. Retrieved February 12, 2017.
  9. ^ "Exploring U.S. History The Debate Over Slavery, Excerpts from Samuel George Morton, Crania Americana". RRCHNM.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December 11, 2016. Retrieved February 12, 2017.
  10. ^ Moore, Jerry D. (2009). "Franz Boas: Culture in Context". Visions of Culture: an Introduction to Anthropological Theories and Theorists. Walnut Creek, California: Altamira. pp. 33–46.
  11. ^ Americ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 "Eugenics and Physical Anthropology." 2007. August 7, 2007.
  12. ^ Bones of contention, controversies in the search for human origins, Roger Lewin, p. 89
  13. ^ Washburn, S. L. (1951) “The New Physical Anthropology”, Transaction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Series II, 13:298–304.
  14. ^ Haraway, D. (1988) “Remodelling the Human Way of Life: Sherwood Washburn and the New Physical Anthropology, 1950–1980”, in Bones, Bodies, Behavior: Essays on Biological Anthropology, of the History of Anthropology, v.5, G. Stocking, ed., Madison, Wisc.,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pp. 205–259.

Further reading[edit]

External links[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