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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6

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 종교와 젠더연구소

종교&성평등소식 1 페이지 | 종교와 젠더연구소


212 [불교계 젠더 프리즘] ‘치마불교’ 오명 속 종단 운영은 남성 몫

211 [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⑤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

210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 ④ 티베트 국왕의 수행 스승 ‘락쉬밍까라 공주’

209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 ③ 모순된 현실 속 보살의 길은 살림여성주의

208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 ② 여성은 왜 조계종 총무원장이 될 수 없나

207 [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① '손 없는 여자'

206 모든 생명의 평등함을 위하여,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 강의 후기 / 이규린

205 살아가게 만드는 일, 살림에 주목하다, <살림의 정신은 보살, 살림 페미니즘> 후기 / 이규린

204 공존하며 억압에서 해방으로, <불교, 페미니즘에 물들다>강의 후기 / 이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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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며 억압에서 해방으로, <불교, 페미니즘에 물들다> 강의 후기


지난 11월 25일,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에서 세 번째 강의인 ‘불교, 페미니즘에 물들다’가 진행되었다. 종교와 젠더 연구소에 옥복연 소장이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불교와 페미니즘이 결합한 불교페미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불교페미라는 용어는 아는 단어와 아는 단어의 조합이지만, 우리에게 낯설다. 하지만 불교와 페미니즘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종교의 역할이 유일신을 찬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종교와 인권운동은 얼마든지 융화될 수 있다.

불교의 교리와 페미니즘은 일맥상통한다

불교와 페미니즘은 ‘해방과 평등’이라는 같은 정상을 바라본다. 붓다의 가르침 중에는 모든 생명체는 동등하며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인간평등과 깨달음을 통하여 고통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해방사상이 있다. 이는 성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되고 성평등을 이루고자하는 페미니즘과 유사하다.
이들은 동일한 믿음을 갖고 있다. ‘억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변화가 가능하다’라는 믿음이다. 불교와 페미니즘은 억압으로서의 해방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생명의 존귀함에 주목하며 평등을 성취하기 위해 실천하고 끊임없이 탐구한다. 불교와 페미니즘은 생명의 존귀함을 인정하고 평등을 성취하기 위한 실천이론의 양상을 띤다.

그럼에도 불교는 페미니즘적이다

해방과 평등의 사상이 배어있는 불교에도 부정적인 여성관이 존재한다.
‘여성업설’에서는 전생에 업이 많아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니, 선업을 해서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야 한다’고 하며, ‘여성불성불론’에서는 ‘여성은 성불을 하지 못하니 성불을 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상은 여성 신도의 깨달음에 장애물을 만들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성 신도가 지켜야 할 여덟 가지 경법인 ‘팔경계’는 ‘비구니(여성)는 비구(남성)를 욕하거나 꾸짖지 못하며, 또 비구(남성)의 파계, 파견, 파위의 등을 비방하지 못한다’ 와 같은 여성을 남성에 종속시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지위가 지극히 낮던 인도사회에서 여성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팔경계’를 만들었다는 의견이 있으나, ‘팔경계’의 원칙들은 엄연히 여성억압의 성격을 띤다.

불교에도 여성을 하등시하는 내용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교에서도 페미니즘적으로 유의미하다.
마라의 세 딸들을 통하여 여성이 유혹자로 나오는 반면, 땅의 여신 스타바라를 통하며 여성이 부처의 가르침을 증언하는 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여성불성불론’이 있는 반면, 여성과 남성은 똑같이 본래 부처이며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는 태아라고 말하는 ‘여래장’이 있다.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이며, 부처의 가르침은 인간의 해방과 평등이다. 여성의 억압은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여성불성불론과 같이 여성과 남성에 차별을 두는 사상은 따르지 않고, 여래장과 같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자격으로 인정하는 사상이 퍼져야 한다. 과거에 쓰여진 경전에 어떠한 여성혐오적인 관점이 포함되었는가에 주목하기보다, 그 경전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추출해내며 의미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페미는 아직 작은 불씨다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어느 한 청자가 “불교 내 불교페미의 인식은 어떤가”라고 질문하였다. 옥복연 소장은 그에 대해서 “아직 불교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여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지 않다.”라고 답하였다.
최근 들어 불교의 여성 신도 수는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기존의 여성 신도가 타 종교로 이동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옥복연 소장은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교는 와해된다”고 말하였다. 사회가 페미니즘에 물들고 있는 현재, 불교도 페미니즘에 물들어 변화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과 불교는 인간의 평등과 해방이라는 똑같은 곳을 바라보니 공존할 수 있다. 불교와 페미니즘이 공존하여, 억압에서 해방으로 변화하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http://cafe.daum.net/bsge/dyOc/60?svc=cafe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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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게 만드는 일, 살림에 주목하다, <살림의 정신은 보살, 살림 페미니즘> 후기

/ 이규린

지난 12월 2일,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에서 세 번째 강의인 ‘살림의 정신은 보살, 살림 페미니즘’이 진행되었다. 김정희 가배울 사단법인 대표가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살아있는 것을 살게 만드는 살림과 살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살림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살림’은 ‘죽임’의 반댓말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칸트의 정언 명령이 ‘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게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이고, 살림의 정언명령은 ‘살아있는 것을 살게 하라’이다. 또한, 살림의 의미는 단순히 가사노동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살림은 경영의 의미를 내포한다. ‘나라살림’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살림 페미니즘은 여성과 동물을 착취하는 억압의 연쇄에서 벗어나 먼 선사시대 여성들의 집단적인 깨달음 이자 살아있는 것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 ‘살림 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살림 페미니즘은 집단 영성인 ‘살림 얼’을 우리 모두가 내재하고 있다는 믿음 하에 전개된다.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 갖고 있는 ‘살림 얼’이 인도하는 길에서 종종 벗어나기도 한다. 살림 페미니즘은 ‘살림 얼’로 다시 회귀하기 위해 성찰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자하는 방향성을 품고 있다.

이원론을 따르지 않는 살림 페미니즘

우리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익숙하다.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백인과 유색인, 여성과 남성. 양극단의 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원론적 세계관 속에서 육체는 정신의 속성을 갖지 않고, 정신은 육체의 속성을 갖지 않는다.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은 차별을 만들기 쉽다.
근대사회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따랐던 시대인 만큼, 성차별적인 시대였다. 이는 근대 철학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여성은 이해를 잘 못하고 감정과 분노에 쉽게 따르는 경향이 있다. 또 대부분 예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해도 없으며 그에 대한 재능은 찾아 볼 수 없다.”

여성을 감정적인 동물로 치환하며 예술에서 배제하는 이 발언은 누가하였을까? 진보적인 성향으로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남긴 말이다. 그는 평등과 자유를 바탕으로 철학을 펼쳤으나, 이원론적인 세계관 하에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었다.

“여자가 정부의 우두머리가 된다면 국가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여자는 보편적 요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일시적 기분과 우발적 의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위의 말은 독일의 이상주의 철학에 매듭을 지었다고 평가 받는 프리드리히 헤겔의 발언이다. 모든 여성을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결정을 내리는 비합리적인 존재로 표현하며, 여성의 정치 참여에 반색을 표했다.
이러한 성차별적은 발언은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 기인한다.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은 차별적 편견을 쉽게 형성한다. 이원론적 세계관 안에서 여성과 남성은 다른 속성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여성은 감성적이며 남성은 이성적이다. 이원론적인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면 차별은 쉼없이 탄생한다.
반면에 살림 페미니즘은 전일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살림 페미니즘은 불교의 교리 중 하나인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를 긍정한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이 명구는 색이나 공에 대한 분별과 집착을 떠나 실체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살림 페미니즘의 세계관 속에서는 세상이 모두 하나의 유기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인도의 생태철학자 사티쉬 쿠마르의 어머니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애야, 너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단다. 네 안에 너의 영혼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 울창한 상수리나무를 갖고 있는 도토리처럼 말이야.”

살림에 주목하라

가부장제는 예로부터 살림을 하등시해 왔다. 살림을 여성만의 것으로 떠밀고, “너를 희생해서라도 가문과 자식을 살려라”라고 명령한다. 살림의 몫을 여성만의 것으로 두지 말고,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살림 페미니스트인 김정희는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의 가해자 조주빈에 대해서 ‘그러한 악인은 육아를 받지 못했기에 탄생하였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혜성처럼 등장한 악인이 아니다. 악을 방치하는 사회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악심은 서서히 자라고, 이윽고 미성년자 여성을 협박하여 성을 착취하고 ‘죽임’으로 내모는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성장과정을 조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악인이 다시는 탄생하지 않도록 ‘살림’에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살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타인과 나 사이에 경계선을 긋지 말고, 서로가 서로를 엄연한 생명으로 여기며 함께 살림의 길을 걷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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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의 평등함을 위하여,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 강의 후기

/ 이규린

지난 11월 25일,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의 마지막 강의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가 진행되었다. 현경 미국 유니언신학대 교수이자 관음젠스쿨 불교법사 겸 살림이스트가 진행하였다. 현대 문화에서 쉽게 버려지는 자연에 관한 이야기와 여성과 자연의 공통점, 불교와 페미니즘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갖었다.


페미니즘이 불교에게, 불교가 페미니즘에게

현존하는 모든 종교는 가부장적 문화에 의해서 왜곡되어 있다. 모든 생명이 이어져있음을 인정하고, 평등을 쫓고자 하는 불교마저도 가부장제를 피해가지 못했다. 전생에 덕을 쌓으면 남자로 태어나고, 전생에 덕을 못 쌓으면 여자로 태어난다는 ‘여성업설’, 여성의 몸으로는 성불하지 못한다는 ‘여성불성불설’등, 불교는 불평등적인 사상이 내재하였다. 평등을 가르침으로 삼는 불교가 어째서 이러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다음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전, 현경 교수는 해외의 스님이 한국에 입국하였을 때 통역을 맡았다. 스님은 한국의 절에서 방문하였고, “비구니들은 일어서서 비구들에게 절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더니 해외의 스님은 비구를 향해서 절하기를 잠시 망설였다고 한다. 옆의 비구니들이 절을 하니 따라서 절을 하고는, “이것이 한국 불교인가요?”라고 현경 교수에게 물어 보았다고 한다. 같은 불교이더라도, 비구를 향해서 절을 하는 문화는 국가에 따라서 공통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현경 교수는 이에 대해 한 마디 덧붙였다. “이는 한국 불교라기보다는, 한국의 가부장제였다.” 비구니가 비구에게 예를 갖추어야 되는 것은 여자가 남자를 받드는 전통의 연장선이었다. 즉, 이것은 ‘한국식 불교 전통’이었다.

평등을 가르침으로 삼는 불교에 불평등한 사상과 문화가 잔존하는 이유는 종교는 각 나라의 문화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국가가 갖고 있던 문화적 전통, 추가로 덧붙여지는 남성 중심의 해석이 불교에 개입되며 불교의 불평등적인 전통을 만들어낸다. 불교의 오랜 역사만큼, 불교 속 가부장제는 차곡차곡 쌓여왔다.

“불교가 입고 있는 오래된 때를 벗겨주는 이태리 타올이 페미니즘이다.”

현경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페미니즘은 불교가 입은 가부장제라는 때를 벗겨줄 것이고, 불교는 페미니즘이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코스모 비전(사회 또는 문명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제공할 것이며, 불교와 페미니즘이 만나면 더 많은 가능성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불교와 페미니즘은 끊임없이 서로 대화해야하는 파트너”라고 표현하였다. 불교,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은 모든 생명의 존엄과 모든 생명의 평등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상이다. 불교와 페미니즘은 만날 수 있는 면적이 넓다.

자연과 여성, 그리고 연기론

자연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은 생명이 아닌 물질로 여겨지는 등, 매우 유사한 형태를 취해왔다.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과 자연이 비슷한 처지라는 것은 플라톤의 이원론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플라톤의 이원론 속에서 남자는 문화로 비교되었고, 여자는 자연으로 비교되었다. 비물질적인 것은 고상적이며, 육체적·지구적·여성적인 것은 하등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나아가 모든 존재는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며 ‘존재의 사다리’를 제시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치는 신, 남자, 여자, 아이들, 노예 남자, 노예 여자, 노예인 아이들, 동물, 식물, 광물 순으로 높다. 자연의 일부인 광물은 존재의 사다리의 맨 밑바닥에 있는 죽은 존재였다.

에코페미니즘의 눈으로 보면, 이원론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는 불교의 사상 ‘연기론’은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매우 유익한 세계관이다. 이원론 속에서는 인간의 문명과 자연은 별개의 것이기에, 자연이 죽어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생명이 죽으면 자신도 죽는 것이 생명이다. 자연이 죽으면 인간이 죽는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사라지기에 이것도 사라지는 연기론의 세계관이 현실 속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더 가깝고, 자연과 인간에게 더욱 유익하다.

우리는 자연을 착취할 정도로 무분별한 탐욕의 자본주의,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타인을 죽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쟁이 존재하는 ‘죽음의 문화’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문화는 생명을 착취하며, 점점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생명의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남성의 세상에서 남성과 평등해져 똑같은 파이를 받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여성을 향한 억압과 자연을 향한 억압이 모두 부서지고, 모든 생명이 생명으로서 존중 받는 세상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 또한 우리의 미래에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http://cafe.daum.net/bsge/dyOc/65?svc=cafe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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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① '손 없는 여자'
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20-12-24 

▣ 최형미 여성신문 특집 칼럼 (5회에 걸쳐 연재)

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①이다감 박사 
‘여성의 손의 상징과 영성의 관계’
세계 곳곳서 발견된 ‘손 없는 여자’ 민담
여성이 손을 잃어가는 단계는
가부장제 사회에 편입되는 모습


[인간평등과 해방을 주창한 붓다의 가르침과 성평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과의 필연적인 만남으로 탄생한 불교 페미니즘. ‘성평등불교연대’가 주관하는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 강좌’는 가부장성에 오염되고 왜곡된 교리들을 불교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강좌 내용을 축약해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출처 :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422


[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손 없는 여자’

최형미 여성학자
승인 2020.11.27 

[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①이다감 박사 ‘여성의 손의 상징과 영성의 관계’
세계 곳곳서 발견된 ‘손 없는 여자’ 민담
여성이 손을 잃어가는 단계는
가부장제 사회에 편입되는 모습


[인간평등과 해방을 주창한 붓다의 가르침과 성평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과의 필연적인 만남으로 탄생한 불교 페미니즘. ‘성평등불교연대’가 주관하는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 강좌’는 가부장성에 오염되고 왜곡된 교리들을 불교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강좌 내용을 축약해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프랑스 영화 ‘GIRL WITHOUT HANDS’ 포스터.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 강좌’ 첫 번째 강의는 지난 11월 18일 열렸다. 첫 강좌는 서울 불교대학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다감 박사의 ‘여성의 손의 상징과 영성의 관계’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강의에서 소개된 ‘손 없는 처녀’ 이야기는 듣기도 생소하지만 섬뜩한 느낌마저 있다. 상담심리사이며 구룹 투사 꿈작업 안내자인 이 박사는 여성들이 ‘손이 잘린 꿈’을 꾼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꿈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다. 그리고 ‘손 없는 처녀’ 민담이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 걸쳐 퍼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에서는 ‘손 없는 색시’라는 이름으로 인형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 박사는 이것을 여성의식단계를 보여주는 ‘원형’으로 해석하고, 이를 여성 정체성 발달 단계라고 표현했다.

종, 십자가, 초, 향, 연꽃, 구유는 종교적 상징이다. 희생, 깨달음, 맑음, 그리고 소박한 영성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손을 영성과 연결한 사람이 있었을까? 중세시대에 죽은 성자들의 뼈다귀, 손톱, 머리카락 등이 성물로 거래된 적은 있었다. 성자의 몸 일부분을 간직하며 그의 정신을 되새기는 상징이었을 뿐, 사람의 특정신체를 영적인 것으로 여긴 것 같지는 않다. 몸과 더 멀어져야 영적으로, 이성적으로 된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우리의 언어와 사고를 가둬버린 이원론의 굴레는 몸을 부정하는데 뿌리를 둔다.
유럽의 ‘손 없는 처녀’ 설화를 담은 일러스트. ⓒPhilipp Grot Johann



이 박사는 “손을 가슴에 얹어보세요”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따뜻한 손은 긴장한 마음, 일에 쫓기는 급한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기도하는 손, 절하는 손, 합장하는 손 등. 손은 우리 삶 전체에 영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손이 잘려나가는 꿈을 꾸는 여성은 누구일까? 그는 루마니아의 ‘손 없는 처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방앗간 주인이 악마의 유혹에 빠져 자기 딸을 팔아버렸다. 딸은 슬퍼 울었지만, 아버지에게 순종했고 결국 악마에게 손을 잘라준다. 그 후, 딸은 보호해 주겠다는 부모를 떠나, 그를 사랑한 왕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은손을 선물 받는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모략으로 아이와 함께 숲으로 쫓겨나고, 아이와 7년간 숲에서 살아가며 신의 은총으로 진짜 손이 자라난다. 그리고 재생된 손으로 남편을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된다.“

이 박사는 여성이 손을 잃어가는 단계를 가부장제 사회에 편입되어가는 여성의 모습으로 해석했다. ‘노(No)’ 할 수 없는 여성, 폭력과 편견에 대항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을 모두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잘라준 희생적인 여성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질서에 순종하며, 여성적인 것을 잘라버리고 남성적 가치를 따르는 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가부장제 사회에서 희생적인 여성도, 남성처럼 지배적인 여성도 손 없는 처녀라고 보고 있다. 페미니스트 영성가 도요다는 영성과 창조성을 잃어버린 현대 여성을 손이 잘린 여성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모습이다.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 강좌’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다감 박사가 ‘여성의 손의 상징과 영성의 관계’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최형미



‘손 없는 처녀’는 부모를 떠났지만, 타자의 도움으로 잠시 가짜 손을 갖는 반쪽짜리 독립을 한다. 그러나 결국 주변의 모략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돌봐야 할 아이만 데리고 숲으로 버려진다. 직장을 잃은 여성, 폭력과 마주 선 여성, 낙인찍힌 여성, 노인 여성, 장애 여성, 어머니가 된 여성, 여성들은 얼마나 쉽게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서 외면당하는지.

이 박사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손 없는 처녀’는 신의 은총으로 아이를 기르고 나무를 껴안을 수 있는 손이 자라 왕비처럼 고귀한 존재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결론은 얼핏 보면 급하게 낙관적이고 논박 불가능한 신을 끌어들여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의존할 것이 없는 여성, 바로 그들이 세상의 권력과 조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더 빨리 깨닫고 더 깊고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여성학자 press@womennews.co.kr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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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 ② 여성은 왜 조계종 총무원장이 될 수 없나
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20-12-24 

- 최우혁 / 여성신문 특집 칼럼 (5회에 걸쳐 연재)



“불교는 과연 여성 친화적인가?” “불교가 페미니즘과 어떻게 결합이 가능한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평등불교연대’가 마련한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라는 강좌의 두 번째 강의에서 들을 수 있었다. 지난 2020년 11월 25일 종교와젠더연구소 옥복연 소장이 ‘불교, 페미니즘에 물들다’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는데, 이 사간에는 불교, 페미니즘, 그리고 불교 페미니즘의 “상서로운 만남”의 과정과 성격, 그리고 전망을 깊고 넓게 펼쳤다.

먼저 옥 소장은 불교사에서 위대한 세 명의 여성 영웅, 즉 붓다의 어머니 마야왕비, 양모 고타미, 아내 야소다라의 삶을 분석하며 붓다는 페미니스트라고 결론을 내린다. 2600여년 전 땔감 한 묶음과 딸을 바꿀 정도로 남성중심사회에서 마야왕비는 깨달음의 단계에 들고, 고타미는 비구니승가의 대표로 ‘아라한’이라는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했고, 야소다라도 최상의 지혜를 갖춘 비구니가 됐다.

출처 :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743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 여성은 왜 조계종 총무원장이 될 수 없나 -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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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여성은 왜 조계종 총무원장이 될 수 없나


최우혁 가톨릭여성신학자, 서강대 강사
승인 2020.12.08 

바다에서 용을 타고 나타나서 어려움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제공 성평등불교연대



“불교는 과연 여성 친화적인가?” “불교가 페미니즘과 어떻게 결합이 가능한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평등불교연대’가 마련한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라는 강좌의 두 번째 강의에서 들을 수 있었다. 지난 2020년 11월 25일 종교와젠더연구소 옥복연 소장이 ‘불교, 페미니즘에 물들다’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는데, 이 사간에는 불교, 페미니즘, 그리고 불교 페미니즘의 “상서로운 만남”의 과정과 성격, 그리고 전망을 깊고 넓게 펼쳤다.


먼저 옥 소장은 불교사에서 위대한 세 명의 여성 영웅, 즉 붓다의 어머니 마야왕비, 양모 고타미, 아내 야소다라의 삶을 분석하며 붓다는 페미니스트라고 결론을 내린다. 2600여년 전 땔감 한 묶음과 딸을 바꿀 정도로 남성중심사회에서 마야왕비는 깨달음의 단계에 들고, 고타미는 비구니승가의 대표로 ‘아라한’이라는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했고, 야소다라도 최상의 지혜를 갖춘 비구니가 됐다.

마야왕비 등 불교사 여성 영웅 많지만
성차별 만연… 불교페미니즘 탄생

위대한 여성 영웅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불교계는 여성의 몸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며 여성 비하와 성별 위계를 일상화하고, 뛰어난 여성들의 역사는 왜곡·축소되거나 무시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교단 내 성차별이 만연한 상황에서 불교를 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불교페미니즘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다고 옥 소장은 분석한다. 즉, 1990년대 신자유주의 이후 여성 내부의 다양함과 차이를 인정하며 등장한 불교페미니즘은 인간(여성) 해방을 주창하고, 인간(여성)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인간(여성)행복을 위한 실천을 강조하는 등 불교와 페미니즘의 상호 변증법적인 통합으로 탄생했다고 본다.

옥 소장은 불교는 페미니즘에 탈이분법적이고 탈유일신적인 인식과 실존적인 고민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공하고, 페미니즘은 불교에 성평등한 관점과 성평등한 사회로의 변혁을 위한 실천이론을 제공하면서 성보적인 관계를 형성했다고 본다. 특히 고정불변의 실재는 없으며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상호 의존적이라는 불교의 공성사상, 모든 인간은 불성(깨달음의 DNA)을 가진 존재, 그리고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보살과 자비 사상 등 불교의 기본 가르침 그 어디에도 성차별이 합리화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타라보살상.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겠다며 서원을 세우고, 고통에 빠진 중생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기 위해 한쪽 발을 옆으로 빼고 앉아있다. 제공 성평등불교연대



붓다 가르침, 기록·전승은 ‘비구’ 몫
여성출가자 규범·처벌도 남성이 정해

특히 티베트불교는 여성을 지혜의 상징으로 중시하는데, 남성적인 자비와 여성적인 지혜의 결합을 인격화한 남녀교합상(남녀가 성적 행위를 하는 듯 끌어안고 있는 상)은 매우 흥미로웠다. 티베트불교에는 오늘날까지도 불교신자들에게 추앙받는 타라보살이 있고, 여성 부처로 인정받는 예세 초겔도 있다니, 이처럼 여성성을 중시하는 불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여성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거나, 100세 비구니라도 갓 출가한 비구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비구니 팔경계가 오늘날까지 적용되고 있을까?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단에서 여성 출가자는 왜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등 지도자적 지위에 오를 수 없을까? 옥 소장은 그 원인을 “제도적인 실패”로 규정한다. 예를 들면 붓다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기록, 암송, 전승하는 이 모든 과정은 남성출가자인 비구들의 몫이었고, 여성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나 처벌도 남성이 정했다. 여성들은 사회, 교단, 그리고 여성 스스로 내면화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차별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라진 비구니승단을 복원하고, 여성의 관점으로 경전을 재해석하며, 위대한 여성들을 발굴하여 널리 알려 불교여성들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불교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이전을 회복하는 상서로운 만남인 동시에, 가부장제 이후를 열어가는 상생으로 함께 전개될 것을 기대해본다.

혁 가톨릭여성신학자, 서강대 강사 press@womennews.co.kr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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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여성은 왜 조계종 총무원장이 될 수 없나

최우혁 가톨릭여성신학자, 서강대 강사
승인 2020.12.08 18:28

바다에서 용을 타고 나타나서 어려움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제공 성평등불교연대



“불교는 과연 여성 친화적인가?” “불교가 페미니즘과 어떻게 결합이 가능한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평등불교연대’가 마련한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라는 강좌의 두 번째 강의에서 들을 수 있었다. 지난 2020년 11월 25일 종교와젠더연구소 옥복연 소장이 ‘불교, 페미니즘에 물들다’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는데, 이 사간에는 불교, 페미니즘, 그리고 불교 페미니즘의 “상서로운 만남”의 과정과 성격, 그리고 전망을 깊고 넓게 펼쳤다.


먼저 옥 소장은 불교사에서 위대한 세 명의 여성 영웅, 즉 붓다의 어머니 마야왕비, 양모 고타미, 아내 야소다라의 삶을 분석하며 붓다는 페미니스트라고 결론을 내린다. 2600여년 전 땔감 한 묶음과 딸을 바꿀 정도로 남성중심사회에서 마야왕비는 깨달음의 단계에 들고, 고타미는 비구니승가의 대표로 ‘아라한’이라는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했고, 야소다라도 최상의 지혜를 갖춘 비구니가 됐다.

마야왕비 등 불교사 여성 영웅 많지만
성차별 만연… 불교페미니즘 탄생

위대한 여성 영웅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불교계는 여성의 몸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며 여성 비하와 성별 위계를 일상화하고, 뛰어난 여성들의 역사는 왜곡·축소되거나 무시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교단 내 성차별이 만연한 상황에서 불교를 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불교페미니즘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다고 옥 소장은 분석한다. 즉, 1990년대 신자유주의 이후 여성 내부의 다양함과 차이를 인정하며 등장한 불교페미니즘은 인간(여성) 해방을 주창하고, 인간(여성)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인간(여성)행복을 위한 실천을 강조하는 등 불교와 페미니즘의 상호 변증법적인 통합으로 탄생했다고 본다.

옥 소장은 불교는 페미니즘에 탈이분법적이고 탈유일신적인 인식과 실존적인 고민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공하고, 페미니즘은 불교에 성평등한 관점과 성평등한 사회로의 변혁을 위한 실천이론을 제공하면서 성보적인 관계를 형성했다고 본다. 특히 고정불변의 실재는 없으며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상호 의존적이라는 불교의 공성사상, 모든 인간은 불성(깨달음의 DNA)을 가진 존재, 그리고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보살과 자비 사상 등 불교의 기본 가르침 그 어디에도 성차별이 합리화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타라보살상.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겠다며 서원을 세우고, 고통에 빠진 중생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기 위해 한쪽 발을 옆으로 빼고 앉아있다. 제공 성평등불교연대



붓다 가르침, 기록·전승은 ‘비구’ 몫
여성출가자 규범·처벌도 남성이 정해

특히 티베트불교는 여성을 지혜의 상징으로 중시하는데, 남성적인 자비와 여성적인 지혜의 결합을 인격화한 남녀교합상(남녀가 성적 행위를 하는 듯 끌어안고 있는 상)은 매우 흥미로웠다. 티베트불교에는 오늘날까지도 불교신자들에게 추앙받는 타라보살이 있고, 여성 부처로 인정받는 예세 초겔도 있다니, 이처럼 여성성을 중시하는 불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여성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거나, 100세 비구니라도 갓 출가한 비구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비구니 팔경계가 오늘날까지 적용되고 있을까?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단에서 여성 출가자는 왜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등 지도자적 지위에 오를 수 없을까? 옥 소장은 그 원인을 “제도적인 실패”로 규정한다. 예를 들면 붓다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기록, 암송, 전승하는 이 모든 과정은 남성출가자인 비구들의 몫이었고, 여성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나 처벌도 남성이 정했다. 여성들은 사회, 교단, 그리고 여성 스스로 내면화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차별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라진 비구니승단을 복원하고, 여성의 관점으로 경전을 재해석하며, 위대한 여성들을 발굴하여 널리 알려 불교여성들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불교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이전을 회복하는 상서로운 만남인 동시에, 가부장제 이후를 열어가는 상생으로 함께 전개될 것을 기대해본다.

릭여성신학자, 서강대 강사 press@womennews.co.kr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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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 ④ 티베트 국왕의 수행 스승 ‘락쉬밍까라 공주’

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20-12-24 13:08 조회753회 댓글0건

▣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④
‘여성의 눈으로 다시 읽는 불교사’ 조승미 담마학교 대표
:숨겨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다


티베트 국왕의 수행 스승 ‘락쉬밍까라 공주’

- 이규린 아카마지 회원, 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재학 / 여성신문 특집 칼럼 (5회에 걸쳐 연재)



한국불교에서 여성수행자인 비구니는 독립된 비구니승단을 이루고 남성수행자인 비구와 동등한 교육시스템에서 공부하고, 동일한 승복을 입고, 삭발을 하는 등 겉으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비구니는 수계를 받을 때도 비구니승단은 물론 비구승단에서도 계를 받아야 하고, 비구에게는 복종해야 한다는 여덟 가지 계율(팔경계)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이러한 성차별적인 현실에서 위대한 여성성취자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조 대표는 티베트불교에서 여성성을 매우 중시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날 티베트불교 탱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바즈라요기니는 여성 붓다로 불린다. 여성적 에너지의 상징이자 모든 붓다의 어머니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성성을 무시하거나 삭제한다면 진정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게 된다. 티베트불교, 특히 딴뜨릭불교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위대한 여성 성취자는 락쉬밍까라였다. 공주 출신으로 높은 수행력을 성취한 그가 딴뜨릭불교에 대해 가르침, 수행법, 계보를 기록한 문헌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출처 :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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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티베트 국왕의 수행 스승 ‘락쉬밍까라 공주’

이규린 아카마지 회원, 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재학
승인 2020.12.19 08:39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
‘여성의 눈으로 다시 읽는 불교사’ 조승미 담마학교 대표
:숨겨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다
딴뜨릭불교의 여성 성취자 락쉬밍까라. 제공 성평등불교연대



지난 12월 9일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 4강은 불교학 박사인 조승미 담마학교 대표가 ‘여성의 눈으로 다시 읽는 불교사’를 주제로 진행했다. 조 대표는 불교사에서 지워지거나축소된, 위대한 여성수행자의 역사를 딴뜨릭불교와 선불교에서 어렵게 찾아 소개했다. 불교사를 통해 볼 때, 과연 여성수행자는 남성수행자처럼 깨달음을 이룰 수 있었는가? 티베트불교와 중국불교에서 여성수행자는 어떤 위치였으며, 그들의 성취는 왜 전해지지 않았을까?


한국불교에서 여성수행자인 비구니는 독립된 비구니승단을 이루고 남성수행자인 비구와 동등한 교육시스템에서 공부하고, 동일한 승복을 입고, 삭발을 하는 등 겉으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비구니는 수계를 받을 때도 비구니승단은 물론 비구승단에서도 계를 받아야 하고, 비구에게는 복종해야 한다는 여덟 가지 계율(팔경계)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이러한 성차별적인 현실에서 위대한 여성성취자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조 대표는 티베트불교에서 여성성을 매우 중시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날 티베트불교 탱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바즈라요기니는 여성 붓다로 불린다. 여성적 에너지의 상징이자 모든 붓다의 어머니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성성을 무시하거나 삭제한다면 진정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게 된다. 티베트불교, 특히 딴뜨릭불교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위대한 여성 성취자는 락쉬밍까라였다. 공주 출신으로 높은 수행력을 성취한 그가 딴뜨릭불교에 대해 가르침, 수행법, 계보를 기록한 문헌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비구니선사 기원행강(1597~1654) 제공 성평등불교연대

락쉬밍까라는 딴드릭수행에 있어서 반드시 여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당시 국왕이었던 자신의 오빠에게 “왕국의 재산을 포기하고 승려가 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결국 국왕은 권력 암투가 횡횡하는 속세에서 벗어나 출가해 수행을 성취하게 되었다니, 락쉬밍까라는 여동생이 아니라 수행의 스승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중국불교에서도 위대한 여성성취자가 많았다. 특히 명나라말 청나라초 시대는 불교의 쇠퇴기라고 하지만 여성의 눈으로 본다면 황금기였다고 한다. 당시 뛰어난 비구니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선사의 전기 문헌인 『오등전사』에는 비구니선사 50명이 기록됐다. 여성의 어록도 종종 출판됐고, 비구니선사 7명의 어록이 대장경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경전 속에 비구니 이야기도 포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불교사에서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티베트 불교의 여성붓다 바즈라요기니. 제공 성평등불교연대



이처럼 위대한 비구니들의 등장에는 수준 높은 문화와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고학력 여성이 증가하고, 마음을 중시하는 양명학의 등장이 불교 가르침과 잘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불교의 해방사상은 성평등 사상으로 연결되고, 교육받은 엘리트여성들이 교단에 들어와 문집을 발행하는 등 비구니들의 활발한 수행의 배경이 되었음을 알 명말청초 여성 상황은 오늘날과도 유사해서, 현대여성들에게도 큰 파동을 전해준다. 유튜브 등 미디어의 혁신적 발달은 문집 시장 발달과 유사하며, 여성의 고등교육도 그렇다.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위대한 여성들에게서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의 활동을 따라가다 보니, “여성들에게도 도전과 성취의 역사가 있었구나”라는 자부심을 얻었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21세기에 사는 내가 힘을 얻는다니,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다.

하지만 불교사에서 여성 연구가 여전히 미비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조 대표는 “여성의 눈으로 읽는 불교사는 기초단계”라며 “불교는 부처님만의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향하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불교 속 여성 이야기는 여남 모두가 함께 발굴하고 그려가야 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불교사에 여성이 있다’를 넘어서서, ‘여성들에 의해서 붓다의 가르침이 정확하게 해석되고 실천됐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사 속 여성들이 우리들에게 속삭이고 있다. 이제 여성의 에너지를, 힘을 보여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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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페미니즘과 만나다]⑤

[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 / 현경

한주영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 여성신문 특집 칼럼 (5회 연재 마지막)




생태 파괴와 기후 위기의 절박한 상황에서 인류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멸종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확률이 딱 50%라고 답하며 불교, 에코페미니즘, 그리고 오래된 여성 문명의 회귀에 대해 진지하고도 재미있게 강의를 해준 분은 현경 교수였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비록 '줌'으로 만났지만, 참으로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그는 미국 유니언신학대교수로 재직 중이기에 신학자로만 알았는데, 미국에서 불교 스승들을 만나서 관음젠스쿨 불교법사 역할도 하고 있으며, 많은 저서를 통해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특히 자신을 살림이스트로 소개하기를 좋아했다.

현경 교수는 코로나가 그 누구도 할 수 없던 일, 즉 바쁜 일상을 멈추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 환경, 생태 등을 돌아보고, 생명공동체인 지구 살리기에 대한 절실함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코로나여신’으로 명명했다. 마스크가 불편하지만 자신의 호흡을 바라 볼 수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기 자신과 만날 시간이 많아졌다. 이것은 바로 명상 과정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그는 강의에 들어가면서 10여 분간 명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주 차분하게 공기, 바람, 나무, 개울, 땅, 하늘을 보며 결국 자신을 만나는 여정을 소개하면서, 폭력, 억압, 분노, 절망 등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제대로 멈추어야 함을 강조했다.



출처: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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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

한주영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승인 2021.01.07 10:22

[불교, 페미니즘을 만나다] (끝)
중국 만수선사의 관세음보살상 ⓒ성평등불교연대



생태 파괴와 기후 위기의 절박한 상황에서 인류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멸종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확률이 딱 50%라고 답하며 불교, 에코페미니즘, 그리고 오래된 여성 문명의 회귀에 대해 진지하고도 재미있게 강의를 해준 분은 현경 교수였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비록 '줌'으로 만났지만, 참으로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그는 미국 유니언신학대교수로 재직 중이기에 신학자로만 알았는데, 미국에서 불교 스승들을 만나서 관음젠스쿨 불교법사 역할도 하고 있으며, 많은 저서를 통해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특히 자신을 살림이스트로 소개하기를 좋아했다.


현경 교수는 코로나가 그 누구도 할 수 없던 일, 즉 바쁜 일상을 멈추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 환경, 생태 등을 돌아보고, 생명공동체인 지구 살리기에 대한 절실함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코로나여신’으로 명명했다. 마스크가 불편하지만 자신의 호흡을 바라 볼 수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기 자신과 만날 시간이 많아졌다. 이것은 바로 명상 과정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그는 강의에 들어가면서 10여 분간 명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주 차분하게 공기, 바람, 나무, 개울, 땅, 하늘을 보며 결국 자신을 만나는 여정을 소개하면서, 폭력, 억압, 분노, 절망 등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제대로 멈추어야 함을 강조했다.

현경 교수는 불교와 페미니즘의 만남으로 불교를 덮고 있는 가부장성의 때를 걷어 낼 수 있다고 단언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기성 종교들이 인간 해방과 평등을 부르짖으며 등장하지만, 점차 그 사회의 가부장성으로 인해 종교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성 종교가 새로운 지역으로 전파될 때는 종교 본래의 모습을 더 잘 보여주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불교가 서구로 유입될 때는 붓다의 가르침, 즉 교리를 강조하면서 서구 문화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불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서구에서 발전한 페미니즘과 결합되면 불교는 보다 친여성적으로 변화하며 인간 해방이라는 본질에 다가간다고 그는 주장했다.




불교와 에코페미니즘의 결합

전체 인류사를 돌아볼 때, 약 5000여 년 정도에 불과한 남성중심사회는 특히 적자생존, 지배와 종속, 죽임의 문화였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이전 오래된 문명의 시대로 돌아가면 생명 존중, 돌봄 등 여성 중심 사회가 있었다. 남성 중심의 위계적인 문화가 인류의 종말을 운운하는 이 때, 살림의 문화로 바꾸는 것이 페미니즘, 특히 에코페미니즘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의 무소유와 연기의 세계관은 에코페미니즘의 주장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기에, 이 둘의 결합은 살림의 지름길이라고 현경 교수는 주장한다.

불교와 에코페미니즘은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정복과 파괴의 문화, 무한 경쟁에서 상대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남성과 평등해지기를 거부하고, 살림의 문화로 서로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현경 교수는 에코페미니스트라는 말보다 살림이스트라는 말을 선호한다고 한다. 불교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관세음보살은 아픈 환자를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낫고 쳐다만 봐도 자비심으로 감복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보살은 남자를 만지면 여성 혐오에서 벗어나고, 정치를 만지면 민주주의가 살아나고, 경제를 만지면 노사가 연대하는 경제로 살아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신의 모습을 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인도불교에서 남성이었지만, 중국에 전래된 후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지배와 종속, 심판, 죽임의 아버지의 문화에서, 돌봐주고 안아주는 어머니의 문화로 바뀐 것인데, 이는 누군가의 강요로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민초들에 의해 300년 동안 서서히 변화했다고 한다. 여성의 몸을 한 관세음보살이 가장 강력한 지배남성인 왕을 상징하는 용을 타고 중생들을 구제하는 모습, 이는 아주 오래된 문명에서 존재했던 여신의 모습이다. 거기에서는 어머니중심의 문화가, 차별이 아니라 평등이,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 지역 중심으로 의식의 폭발이 일어났던 제1의 축의 시대를 지나 제2의 축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남성성이 아니라 여성성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 지성이, 그리고 지역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의식 폭발이 발생하고 있다. 협력과 연대를 통한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이 때, 살림과 돌봄, 성장과 공존을 위해 불교페미니즘이 앞장서서 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한주영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press@womennews.co.kr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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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젠더 프리즘] ‘치마불교’ 오명 속 종단 운영은 남성 몫

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21-01-21 12:23 조회672회 댓글0건

[불교계 젠더 프리즘] ① 불교여성, 기복을 넘어 주체로 서다


<불교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불교 교단 내 주요 젠더 이슈들을 살펴보고 성차별적인 교단의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총 5회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1898년 한양 북촌에서 양반가 처자인 김소사, 이소사가 여자도 사람이라며 여성의 교육권, 투표권, 직업권을 요구하는 ‘여권통문’을 발표했다. 너무 놀랍고 신기하다며 황성신문 1면에 실렸던 이 최초의 여성인권선언 후 한국여성의 사회 참여는 급격하게 확대됐다. 일제 식민지하 여성들은 단체를 조직해 계몽과 독립운동에도 나섰는데, 당시 불교여성들의 활약상도 두드러졌다. 붓다의 가르침에 기초한 여학교를 세우거나 사찰이나 포교당 등에서 직업학교를 운영하기도 했고, 해방운동에 동참하며 중생 구제라는 대승불교 보살의 삶을 실천했다.

하지만 타 종교와 비교하면, 근대 불교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는 승려가 결혼하는 왜색불교를 한국불교에 이식하면서 교단을 탄압했고, 재가여성불자들은 독신의 전통불교를 지원하면서 교단 수호에 앞장서야만 했다. 여학교나 여성단체를 통한 여성 인재 양성에 적극적이던 타종교와는 그 처지가 너무도 달랐다. 물적 토대조차 미약했던 한국불교는 그나마 남성출가자인 비구교육에 전념했기에, 여성불자들은 교리를 공부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이하중략...)

출처 : 여성신문, 전영숙 불교여성개발원 불교여성연구소 소장 (2021.1.13)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003&utm_source=d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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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젠더 프리즘] ‘치마불교’ 오명 속 종단 운영은 남성 몫


전영숙 불교여성개발원 불교여성연구소 소장
승인 2021.01.13

[불교계 젠더 프리즘] ① 불교여성, 기복을 넘어 주체로 서다


<불교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불교 교단 내 주요 젠더 이슈들을 살펴보고 성차별적인 교단의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총 5회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1898년 한양 북촌에서 양반가 처자인 김소사, 이소사가 여자도 사람이라며 여성의 교육권, 투표권, 직업권을 요구하는 ‘여권통문’을 발표했다. 너무 놀랍고 신기하다며 황성신문 1면에 실렸던 이 최초의 여성인권선언 후 한국여성의 사회 참여는 급격하게 확대됐다. 일제 식민지하 여성들은 단체를 조직해 계몽과 독립운동에도 나섰는데, 당시 불교여성들의 활약상도 두드러졌다. 붓다의 가르침에 기초한 여학교를 세우거나 사찰이나 포교당 등에서 직업학교를 운영하기도 했고, 해방운동에 동참하며 중생 구제라는 대승불교 보살의 삶을 실천했다.

하지만 타 종교와 비교하면, 근대 불교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는 승려가 결혼하는 왜색불교를 한국불교에 이식하면서 교단을 탄압했고, 재가여성불자들은 독신의 전통불교를 지원하면서 교단 수호에 앞장서야만 했다. 여학교나 여성단체를 통한 여성 인재 양성에 적극적이던 타종교와는 그 처지가 너무도 달랐다. 물적 토대조차 미약했던 한국불교는 그나마 남성출가자인 비구교육에 전념했기에, 여성불자들은 교리를 공부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지난 2017년 부처님오신날인 5월 14일,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 중 관불의식. 신도 다수가 여성이지만 여전히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뉴시스·여성신문



교단 성차별 비판한 여성들
사찰 떠나거나 냉담 신자 돼

더욱 안타까운 점은 해방 이후 왜색불교의 후유증이 교단 내부 분규로 이어지면서, 중생 구제를 위한 활동보다는 교단 정화가 더 큰 과제였다. 이 과정에서 교단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그래왔듯이, 여성불자는 교단을 수호하고 독신 출가자를 지원해야만 했다. 1980년대 이후 여성운동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여성 정치세력화가 두드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불자들의 사회 참여는 타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고 교단도 사회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일부 여성불자들이 사회 이슈들에 관심을 가지면 수행이 덜 된 사람이나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비난받기도 했고, 교리를 제대로 배울 곳이 부족했기에 기복적인 신행에 머물기도 했으며, 이웃종교처럼 서구의 앞선 여성리더들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기에 조직화도 쉽지 않았다.

똑똑하고 주관이 있는 재가여성불자는 환영받지 못했다. 스님들, 특히 비구스님들은 출가자라는 권위에 도전받기를 원치 않았고, 남성불자들은 남성중심적인 기존의 젠더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여성불자는 자녀들을 절에 데려오거나, 스님의 가르침을 무조건 따르거나, 시주와 봉사를 의무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무리 사회에서 뛰어난 여성리더라 할지라도 교단에 들어오는 순간,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신자가 되어야만 했다. 다수 신자가 여성이며, 법당이나 공양간의 봉사자 또한 대부분 여성이지만, 이들의 신행은 미신적인 기복불교, 치마불교로 비난받으며 종단이나 사찰 운영에서 소외되었다.

교단 내 성차별에 비판적인 여성들은 사찰을 떠나거나 냉담 신자가 되어 사찰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기에, 여성불자를 조직하고 체계적인 활동을 꾸려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계 불교국가들에서도 도움 받을만한 여성단체가 많지 않았으며, 서구에서 먼저 본부가 꾸려지거나 활동 경험들을 전수받기도 하는 이웃종교 여성단체들과는 상황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동안 한국의 여성불자들은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길 없는 길을 개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1월 8일 불교여성개발원 주최 ‘신년법회 및 여성불자 108인의 날’ 기념식 모습. ⓒ불교여성개발원



여성불자 조직화한 불교여성개발원
인재풀 만들어 네트워크·협업도

이처럼 재가여성 조직화가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불자들의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스무 돌 성년을 맞이한 재가여성 불교단체가 있으니, 바로 ‘불교여성개발원’이다. 물론 이웃 종교 여성단체들의 긴 역사와 비교할 때 20년이라는 세월은 비교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의 행보는 한국불교여성운동사 뿐만 아니라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의 재가여성불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단체는 종단의 포교원 산하단체로 출범했지만 단순히 포교를 넘어 대사회적 이슈로 관심을 확대했고, 소속 사찰 중심 활동의 울타리를 넘어 전국적으로 연대하며 불교의 대사회적 실천을 위한 자발적 단체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월 8일 불교여성개발원 주최 ‘신년법회 및 여성불자 108인의 날’ 기념식 모습. ⓒ불교여성개발원

불교여성개발원에서 눈여겨봐야 할 활동 가운데 하나는 2003년부터 격년으로 전국의 재가여성불자 중 여성리더 108인을 선정해서 여성지도자 인재풀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전국적 네트워크로 다양한 분야의 여성리더를 연결한 것은 여성운동의 관점에서도 매우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업주부로 사찰신도회 운영 경험을 가진 회원과 전문직 회원들의 협업을 통해 인드라망의 그물처럼 대사회적 실천의 장을 확대해 나간다. 청소년 교정교화사업, 생명존중운동, 다문화봉사, 군장병 위문, 한부모 가족지원, 건강밥상 지킴사업, 불교여성연구 등 여러 대상을 위한 조직적 활동도 눈에 띈다. 여성불자들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이 단체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이들이 내딛는 발자취마다 불교여성운동의 역사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교여성개발원 불교여성연구소 소장 press@womennews.co.kr다른기사 보기






2021/10/14

[의식과 본질] 이즈쓰 도시히코 Toshihiko Izutsu 意識と本質

알라딘: 의식과 본질



의식과 본질   
이즈쓰 도시히코 (지은이),
박석 (옮긴이)
위즈덤하우스  2013-04-08
원제 : 意識と本質

18,000원

- 절판 확인일 : 2017-03-09

새상품 eBook 중고상품 (5)
판매알림 신청 50,000원

399쪽

책소개

인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등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존재에 대한 논제를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이 질문을 가장 심도 깊게 연구한 학문이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그토록 오랫동안 인류의 가장 직접적인 질문을 연구한 학문임에도 아직 전체적인 흐름도, 통일성도 없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워낙 동양철학의 뿌리가 깊고 방대한 탓에 감히 하나로 엮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동양철학에 체계적인 흐름이 없다는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동양철학을 삶의 뿌리로 두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것이 ‘존재론적 위기’가 될 수 있다.

<의식과 본질>의 저자인 이즈쓰 도시히코는 불교·선불교·노장사상·공맹사상·신유학·힌두교·탄트라·이슬람·카발라 등 동양철학에 속해 있는 갖가지 종교와 민족의 수많은 사상의식‘본질’이라는 서양철학의 키워드를 빌려 동양철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제시한다. 
이 책은 동양의 수많은 사상과 깨달음을 학문적으로 재배치하려는 첫 번째 움직임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류의 다양한 사상적·학문적 연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동양철학을 주체적·실존적으로 이해하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목차

제1장 본질에 대한 동서양의 다양한 관점
제2장 개체적·구체적 실존, 보편적·추상적 본질
제3장 본질과 존재, 일반화와 개체성
제4장 말라르메와 송대 신유학의 본질론
제5장 신을 위해 본질론을 부정한 이슬람의 원자론
제6장 신이 없어도 본질을 부정한 선종
제7장 선은 고요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다이내믹하다?187
제8장 본질론으로 보는 샤먼과 신비가의 이마주
제9장 《주역》의 원형 이마주, 무의식의 구조
제10장 불교의 만다라와 유대교의 세피로트
제11장 신의 내부에서 펼쳐지는 세피로트 만다라
제12장 이데아론·정명론·보편 본질 실재론

책을 마치며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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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2 본질이 실재하지 않아도, 본질이라는 존재응고점이 없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는 또 그것 나름대로의 실재성이 있다. 본질은 없지만 사물은 있는 것이다. 본질의 실재성을 철두철미하게 부정하면서, 경험 세계에 대해서는 이른바 허무주의가 아니라 분절된 존재에 꿈이나 환상 같은 것으로는 결론 내릴 수 없는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은 동... 더보기

P. 67 개념적 본질의 세계는 곧 죽음의 세계다. 싱싱하게 살아서 약동하는 생명은 거기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 앞에 있는 사물은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자신의 실재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살아 있는 사물을 살아 있는 그대로 잡을 수 있으려면 자연스럽고 소박한 실존적 감동을 통해 ‘깊게 마음에서 느끼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P. 103 꽃이라는 이름은 본래는 실재하지 않는 꽃의 본질을 망상적으로 불러일으킨다. 허공에 불러일으킨 그 허구의 본질을 부정론자, 예를 들어 불교사상가는 외적 실재에 근거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여겨 즉시 떨쳐버린다. 반대로 긍정론자, 예를 들어 니야야, 바이세시카 학파에게 꽃이라는 말은 실재하는 꽃의 실재하는 본질을 지시하는 것이다.

P. 126 정좌靜坐와 달리 궁리窮理는 현저하게 존재론적인 것을 제1의 특징으로 삼는다. 모든 존재자의 깊은 곳에는 본질이 숨어 있다는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확신이 없다면 궁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이 유교가 선종과 전혀 다른 점이다.

P. 378 동양철학에서 인식이란 의식과 존재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뒤얽힘이다. 그리고 의식과 존재의 이 뒤얽힘의 구조를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본질의 실재성의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실재성을 긍정하든지 부정하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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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즈쓰 도시히코 (井筒俊彦) (지은이) 

1914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게이오대학에서 니시와키 준자부로를 사사했고, 언어학자로서 출발해 그리스 신비사상사, 러시아 문학 등을 강의하는 한편, 『아라비아 사상사』, 『신비철학』, 『아라비아어 입문』 등 초기 대표작을 간행했다. 1949년부터 시작된 연속 강의 「언어학 개론」을 바탕으로 1956년 『언어와 주술』(영문 저작)을 발표했고, 이 책 덕분에 로만 야콥슨의 추천을 받아 록펠러재단 펠로로서 1959년부터 중근동, 구미에서 연구 생활을 하였다. 1959년 코란의 윤리적 용어 구조를 밝힌 『의미의 구조』(영문)를 발행했다. 1960년대부터 맥길대학과 이란 왕립철학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연구와 강연, 집필 활동에 종사했으며, 『코란에서의 신과 인간』, 『이슬람 신학에서의 믿음의 구조』, 『수피즘과 노장사상』 등 영문 저작을 정력적으로 발표했다. 1967~82년에 거의 매년 스위스 에라노스 회의에서 노장사상과 선 · 유교 등 동양철학에 대해 강연했으며, 일본에 귀국한 뒤로 해외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철학을 일본어로 저술하기로 결심하고 『의식과 본질』, 『의미의 깊이』, 『코스모스와 안티코스모스』, 『초월의 언어』 등 대표작을 발표했다. 1993년 자택에서 서거했다. 접기

최근작 : <이슬람 문화>,<의식과 본질>,<이슬람> … 총 4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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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 (옮긴이)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상명대학교 글로벌인문학부대학 중국어권지역학전공 교수
저서: <두보 초기시 역해>(솔출판사, 공저), <동양사상과 명상>(제이앤씨), <대교약졸,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이는 중국문화>(들녘), <송대의 신유학자들은 문학을 어떻게 보았는가>(역락), <불가능한 누드>(들녘), <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들녁), <의식과 본질>(위즈덤하우스), <한산 시선>(지식을만드는지식)
최근작 : <참선 잘하그래이>,<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하루 5분의 멈춤> … 총 2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자크 데리다가 인정한 세계적 석학, 이즈쓰 도시히코의 대표작

이즈쓰 도시히코는 국내에서는 낯선 인물이지만,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거장’이라는 칭호로 존경을 표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이다. 그는 전 세계 종교철학의 경전과 고전의 대표 언어인 희랍어·라틴어·히브리어·산스크리트어·한문 등을 자유로이 구사했으며 아랍어·영어·불어·독어·러시아어 등 20여 개 이상의 외국어를 섭렵한 일본 역사상 전후무후한 천재였다. 주 전공은 이슬람 철학과 이슬람 신비주의로, 이란의 왕립 이슬람사상연구소의 교수로 있었으며, 일본에서 최초로 《코란》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 신비주의, 근대 러시아 문학에 관한 저작도 많이 남겼으며 만년에는 유식불교·선불교·밀교·노장사상·주자학·카발라·중세 스콜라 철학까지 관심을 확장시켰다고 한다. 그가 지금까지 이룬 학문적 영역은 누구도 쉽게 따라잡기 어렵다.

《의식과 본질》은 이즈쓰 도시히코의 대표작으로, 일본에서 30년간 꾸준히 읽히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며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의 탁월한 외국어 실력과 방대한 학문적 관심과 지식을 바탕으로 수십 년 동안 동서양 사상계를 분석, 한 권에 통합·정리·집약한 작품이다.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동양철학의 범주는 불교·선불교·노장사상·공맹사상·신유학·힌두교·탄트라·이슬람·카발라 등으로,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고금의 사상과 인물을 한 권 안에 모두 담아냈다.

‘본질’이라는 이름 아래 만난 수많은 사상적 거인들

저자는 ‘본질’을 키워드로 동양사상을 한눈에 훑고 있지만, 사실 본질은 중세 기독교 스콜라 철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동양철학에서 익숙한 키워드는 아니다. 독자들은 서양철학 특유의 개념을 가져다 동양철학이라는 이름 아래 나열하는 그의 글을 보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곳곳에 등장하는 서양철학자들과 그들의 문제의식이 동양철학과 혼합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낯선 시도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저자의 치밀한 의도 아래 철저하게 비교·분석한 결과다.

예를 들어 저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데아가 사물의 변하지 않는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운을 떼다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한다”는 공자와 맹자의 정명론正名論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곧 바이세시카의 명실론名實論이 주장한 “이름은 그저 개념의 세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이데아론·정명론·명실론이 본질을 설명하는 방식은 달라도 같은 사상체계 아래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구토》에서 본질을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중국의 노자의 유명有名과 무명無名 논리를 끌어와 거론하고, 

또 공통적으로 본질의 허망함을 인정한 대승불교의 공空사상, 샹카라 베단타 철학의 불이론不二論이 어떤 차이점이 있었는지 비교·분석한다. 

이슬람 철학과 중국의 성리학·선종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설명하고, 
주역의 팔괘티베트 밀교의 만다라,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에 나오는 생명나무 세피로트가 상징하는 유사성을 설명한다. 

그의 이런 시공간을 넘어선 통합적 사고가 철학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 바쇼독일의 시인 릴케의 시세계가 어떠한 관점에서 본질을 이야기했는지를 설명하고, 
중국 초나라의 애국시인이자 샤먼인 굴원의 무속적 정신세계장자의 철학적 우화의 세계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분석한다. 
또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정신세계중국 송나라의 주자학자들이 주장했던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세계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까지 이 한 권 안에 집약해놓았다.

이 밖에도 
  • 기독교 스콜라 철학자 둔스 스코투스, 
  • 에도 시대 일본의 사상가 노리나가, 
  •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가 이사크 루리아, 
  • 신화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질베르 뒤랑, 
  • 이슬람 사상가 이븐 알 아라비, 
  • 원자론의 집대성자 무하마드 가잘리, 
  •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가인 아베로에스, 
  • 그와 비교되는 이슬람 사상가 스후라와르디, 
  • 주돈이·정이천·주자 등
 다양한 학자들이 사상적으로 연계되어 나오고 있다.

전 세계의 사상·종교·철학의 깨달음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새로운 사상체계를 정립하는 학문적 업적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독자들은 《의식과 본질》 한 권만으로 
동양사상을 포함한 인류의 정신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수많은 사상적 거인들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세상은 과연 진짜일까?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단순히 동양의 종교·사상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닌,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음과 명상에 관한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곳곳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책은 철학서인 동시에 명상서라 할 수 있다. 
저자 이즈쓰 도시히코는 학자인 동시에 선수행자였으며, 그의 선불교에 대한 언급들을 보면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적 체험이 통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천에서 나온 깨달음을 담고 있기에, 이 책에 담긴 글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독자들은 저자 이즈쓰 도시히코의 실천적 깨달음을 통해, 
지금껏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사물들이 
  •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인지, 
  • 아니면 본질은 없지만 우리 눈에 비칠 뿐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사물과 현상을 보는 인식이 바뀌어 
가치관과 인생관에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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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글 작성 유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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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보기‘( 실상, 진리, 선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분석적 고찰. 앵무새 흉내를 내는 여타 대부분의 책들과는 비교되지않는 군계일학적 저술! 실험 데이터적 근거가 없는 점이 아쉬우나, 아직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일 듯.  구매
그냥 2016-08-3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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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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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본질

이 책에서 말하는 의식과 본질에 대한 접근은 너무 어렵다. 
오랜 세월 인류는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많은 철학을 발전시켰다. 
어쩌면 인간 본연에 관해 파고들었기에 인류가 지금껏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과 본질은 눈으로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정신과 육체의 이어짐을 말하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 충분한 고민이 없는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물론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한다면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충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보니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문장을 읽으면서도 알 듯 말듯하게 감은 오는데 명확하게 한번에 이해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저자가 의식과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온 세상의 모든 철학적 개념들을 더불어 설명한다. 중국, 이슬람, 서양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사람들이 말하는 철학적 개념들이 등장한다.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에 관한 개념 역시 철학적 소양이 부족해서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또한 문화에 따라 본질을 이해하는 틀이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은 더욱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과연 그 실체가 무엇일까? 하나로 확고부동하지 않고 주관적인 흐름이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이 개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오롯이 알기란 좀 더 내공을 쌓아야 할듯하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다각적인 방법과 접근으로 의식과 본질을 설명하는 저자의 생각의 끝이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보니까 점점 더 조바심이 생긴다.앞으로 이 책을 여러 번 읽는다면 그 의미의 일부를 깨우칠 수 있을까?

- 접기
현식님 2013-04-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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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본질 [意識と本質 : 精神的東洋を索めて(1983)] - 이즈쓰 도시히코

1. TV 프로그램들. 특히, 프로야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 화면에 등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저 모습이 프로가 낼 수 있는 베스트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즉, TV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화면은 엄청난 내공이 쌓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의식과 본질>을 읽으면서 TV의 결과물조차도 책에 비하면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의식과 본질>은 뭐랄까... 시각적 외. 모든 감각의 내공. 특히, 내면의 고뇌가 누적된 결과물이랄까? 

동양과 서양의 종교와 철학의 개념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책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본질의 3가지 분류에 따라서 하나의 범주로 묶어내거나 해체하는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음...앞으로 이어나갈 글이 옳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를 적어보기로 한다. 

2. 

아무리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모든 불가능을 배제하고도 남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실이다. 

- 트위터 탐정 설록수, 189p-

토실여왕님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이 문장은 <의식과 본질>에 따르면 세 번째 본질긍정론에 해당함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불가능함을 제거하고 남은 것이 진실이라는 의미는 곧,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불가능을 제거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같은 맥락이고, 그것이 바로 본질이 표층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세 번째 본질론에 해당했다.   

3. 나는 항상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생각했다. 책의 개념에 따르면 나는 마히야(보편적 본질의 세계, 플라톤의 이데아)를 버리고 후위야(즉물적이며 경험적인 리얼리티를 표방)로 간 릴케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릴케처럼 이 세상의 본질의 유무에는 상관없이 내가 중심이 되어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고 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어쩌면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자 하는 실존조차도. 실존 자체가 하나의 본질로서 작용함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내가 실존의 영역에서 보려 했던 것은. 즉, 무의식적인 문화적 학습을 통하여 얻어진 관점이라는 큰 틀로 봤을 때, 첫번째 본질긍정론을 따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의식과 본질>의 첫 번째 본질론은 표층의식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심층의식에서 깊게 사물을 보는 것인데, 그러한 바라봄에 있어서 모든 것을 무로 만드는 단계가 선행하고, 그 뒤에 순간적인 번뜩임이 등장하여 존재가 분절화하여 등장한다고 한다. 또한 그러한 번뜩임이 존재하는 문학이 대체적으로 시 문학에 많이 분포한다. 그래서 시에 등장하는 언어는 언어 그 자체가 사실적이지 않고 상징적인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이한 관점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4. 참고로 두 번째 본질긍정론은 첫번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심층의식에서 본질을 찾는 것인데, 여기서는 샤머니즘처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원형의 본질이 있고, 그러한 본질은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의 가운데에 있는 M의 영역에서 이마주(상징적 이미지화)된 것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고 말한다.  

 이래의 글은 갈림길을 읽고 적은 '사실'과 '진실'에 관한 생각이다.

소설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결과에 의하면 '사실'은 인간이 느끼는 개인적인 관념이다. 헌데 그것은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아주 커다란 개념이다. <갈림길>에 의하면 '진실'이란 신이 만들어놓은 것과 같다고 여겨진다. 그에 비하면 '사실'은 아주 작은 것을 다룬다. 그리고 '사실'이라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실'을 '진실'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존재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여기서 '사실'이란 표층에서 부유하는 인간의 판단이고, '진실'이란 아마도 두 번째 본질긍정론의 본질과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가깝게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은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한 모습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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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예 2013-04-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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