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3

공동번역성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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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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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성서 속표지

공동번역성서(共同翻譯聖書[1])는 대한민국의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환으로 공동으로 구성한 성서공동번역위원회가 1977년 부활절에 편찬한 한국어 성경이다. 현재는 대한성공회와 한국 정교회만이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편찬 경위[편집]

공동번역성서를 집필중인 선종완 신부와 문익환 목사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야 천주교측은 라틴어 성경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성서에 쉽게 접근해야한다는데에 뜻을 모았다. 이후 자국어 성경을 이미 번역하여 출간하던 세계성서공회와 자국어 번역을 처음 해야 하는 천주교는 신구교 성서공동번역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한국어 성경을 출간하던 대한성서공회와 천주교 번역 위원회가 합의를 하게 되었다. 공동 번역을 위해 김재준, 이태준 목사, 박양운 김남준 신부를 위시로 1968년 1월에 구약공동번역위원회가 발족한다.[2]

참여자들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 대학원 초대 원장인 김정준 목사, 대한성서공회의 정용섭 목사, 한신대학교 교수인 문익환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최의원 배제민 목사가 개신교측 번역위원으로, 가톨릭대학교 교수인 선종완 신부 등 6명이 천주교측 번역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구약성경은 사해 문서의 내용이 반영된 루돌프 키텔의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1937)을 원전으로 삼아 번역에 착수하였다.[3]

1969년 1월에 신약공동번역위원회가 구성된다.[4] 이후 1971년에는 505쪽 분량의 신약성서가, 1977년에는 외경을 포함한 구약성서 1,997쪽이 발행된다.[5]

개요[편집]

원문 판본[편집]

공동번역 구약성서의 원본이 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구약성서의 원본의 판본은 루돌프 키텔이 편찬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3판(1937)을, 신약성서의 원본의 판본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출판한 《그리스어 신약성서》 1판(1961)을 참고하였다[6]. 천주교에서는 선종완 신부가, 개신교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문익환 목사와 곽노순 목사가 번역 원고를 마무리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이현주 목사가 문장과 맞춤법을 교정하였다.[7]

공동번역 개정판[편집]

1971년에 신약성서의 원문이 번역되었고 이어서 1977년에 구약성서의 원문이 번역되었다. 1989년 이후에는 개정된 한글 맞춤법, 표준어 개정안을 반영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도 불가타역을 기준으로 하여 공동번역 제2경전의 편집을 조정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1995년 1월 21일 '공동번역 성서 개정위원회'를 조직하고 개정을 시작하였다. 공동번역 개정판의 '원문 판본'이나 '번역 원칙'은 《공동번역성서》 초판과 같다.

공동번역 개정판을 펴낼 때에는 명백히 틀린 것만 고친다는 소폭개정의 원칙을 두었는데, 각 세부항목은 다음과 같다.

  • 고쳐서 좀더 부드러워지더라도, 틀리지 않다면 그대로 두었다.
  • 명백한 개선이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공동번역을 존중하여 그대로 두었다.
  • 맞춤법 교정도 소폭 개정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의 폭으로, 명백히 틀린 것만 고쳤다.
  • 띄어쓰기는 가독성을 고려하여 붙여 쓸 수 있는 것은 붙여서 교정하였다.

이외에도 현재의 공동번역 성서와 통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바 불가타 순서를 기준으로 하여 재편집하는 등의 개정을 새로 시도하였다. 천주교용 성경에서는 노바 불가타 순서를 참고하여 재편집하여 여러가지 제2경전을 뒤에 따로 모으지 않고 합쳐서 현 공동번역 성서 초판의 목차 순서대로 편집하였다.[8] 이 때 개정 내역은 우측 각주를 참고하라.[9]

교파별 분류[편집]

개신교용과 천주교용이 따로 출판되고 있는데, 천주교용의 경우 개신교측에서 구약 외경으로 여기는 제2경전이 천주교회의 노바 불가타에 따라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구약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신약성서 부분만 따로 출판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개신교용은 외경이 있는 판본과 외경이 없는 판본으로 출판되었고, 개정판에서는 천주교용과 개신교용으로만 출간했다.

공동번역성서 사용 교회[편집]

공동번역성서는 대한성서공회를 통하여 출판되었으며, 1977년 공동번역성서 번역 이래 한국의 천주교회와 한국 정교회가 채택했다. 개신교 교단 중에서는 대한성공회가 채책하였고, 대부분의 교단은 교육용으로 활용하였고, 소수 교회에서만 채택하였다. 2020년 기준, 한국 정교회와 대한성공회 등은 공동번역성서를 예식에 사용한다.[10][11] 일부 진보적 교회에서 예배시 사용하나 대부분의 교단은 개역개정 성경전서를 예배시 사용한다.

개신교측은 출판 초기에는 학생들을 위한 성경으로 활용하기도 했으나, 교육용으로만 한정 사용하고 예배시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1993년 표준새번역 성경전서가 출판되며 이를 대신하고, 공동번역 성서는 교육용으로도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 개신교 교단에서는 거의가 새번역 성경전서나 개역개정 성경전를 채택하여 사용한다. 교단이 채택했다는 의미가 강제적인 사항이 아니므로 개신교 중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는 일부 개교회들은 공동번역성서를 예배용 성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12]

천주교회에서는 공식적인 첫 한글번역본으로 채택하여 사용했지만, 1984년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1991년에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 (보급판)》(분도출판사)를 출판하였고 교회력 2006년(2005년 대림절)부터 자체 번역한 《성경》(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을 전면 채택함에 따라, 현재는 예식에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대한성공회와 한국 정교회가 공동번역을 교회에서 예식용 성서로 채택하고 있다. 1982년 대한성공회에서 사용을 인가받은 성공회 공동기도문(1965년판 성공회 공동기도문의 부분개정판)에는 공동번역성서를 감사성찬례에 쓰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2004년 개정된 성공회 기도서와 성서정과에서도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한다.

평가[편집]

감리교 목사이자 아동문학가인 이현주 목사[13]와 구약신학자이자 시인인 문익환 목사가 참여했으므로 를 읽는 듯한 뛰어난 문체와 정승, 거뭇, 잠뱅이 등 한국어 어휘들이 사용됨으로써 한국어의 아름다움이 묘사되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14]

뿐만 아니라 공동번역성서는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협력에서 의미 있다. 대한민국 기독교 내부에서 개신교는 천주교를 이단이며 타락의 원흉으로, 천주교는 개신교를 열교로 치부하던 분위기를 개선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개신교회나 천주교의 주님의 말씀인 성서를 함께 번역했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호평을 받았다.

반면, 읽기는 편해졌으나 말씀의 권위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서 강하게 와닿지 않게 되었다는 보수적인 비평도 존재한다.[15] 하지만 이 또한 공동번역성서에서 천주교의 새번역 성경으로 이행될 때 성경을 읽는 맛이 덜 하다는 내부의 의견이 있는 바로 익숙함과 낯설음의 차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한다는 해석이 있다. 성서의 권위는 읽기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을 어떻게 읽어내서 감동하게 하는가에 있다는것이 그 근거이다.[16]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공동번역성서의 표지에는 공동번역성서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공동번역성서로 읽고 쓰는게 맞다.
  2.  “「経典」하나로”경향신문. 1968년 2월 21일.
  3.  “新舊敎 合同 舊約飜譯”동아일보. 1968년 6월 11일.
  4.  “한글성경 번역사 9. 「공동번역 성서」 (1977)”. 《대한성서공회. 2020년 12월 27일에 확인함.
  5.  “공동번역성서(共同飜譯聖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0년 12월 27일에 확인함.
  6.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아가페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한글 성경의 종류
  7.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이현주의 <공동번역 성서>에 대한 생각
  8.  “한글성경 번역사 10.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 (1999)”. 《대한성서공회. 2020년 12월 27일에 확인함.
  9.  전무용 (2003년 10월 31일).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무엇이 어떻게 개정되었는가”. 《성경원문연구》 13: 139–156. doi:10.28977/jbtr.2003.10.13.139ISSN 1226-5926.
  10.  한국기독교장로회 김진호 목사의 논문과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잡지 《제3시대》에서는 공동번역성서를 인용한다.
  11.  개역개정판은 개역한글판을 기초로 번역한 고어체 한글성서이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제작한 개역개정판 홍보 포스터에 의하면, 개신교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대한예수교장로회한국기독교장로회기독교한국루터회기독교대한복음교회 등이 개역개정판을 채택하고 있다.
  12.  경기도 부천시의 한국기독교장로회 지평교회 등은 전교인의 동의로 공식 예배용 성경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 사례이다. (2015년 상반기에 김용민 목사의 벙커-1교회 에서 예배용 성서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13.  이현주 목사는 웅진출판 위인전시리즈 간디이야기를 썼고, 생활성서에서 베드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복음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14.  성경의 역사
  15.  크리스천투데이 - 표준새번역성경과 공동번역성경의 오류
  16.  아름다운 우리말 성경 이대로 사라지나

외부 링크[편집]


알라딘: [전자책] 이심전심 묵상용 공동번역 성경

알라딘: [전자책] 이심전심 묵상용 공동번역 성경

[eBook] 이심전심 묵상용 공동번역 성경  epub 
도서출판 함께사는세상 (지은이)함께사는세상2017-08-31



이심전심 묵상용 공동번역 성경


전자책정가
9,900원

책소개

본 도서는 대한성서공회의 공동번역 '성경 본문'과 그에 따른 '대화식 해설'을 수록해 놓은 책입니다. (가톨릭용) 『 성경 본문과 그 내용에 대해 '너와 나'가 대화를 하고, '너와 나'가 서로 묻고 답하는 새로운 방식의 성경해설 』 

성경은 마르지 않는 샘으로서 끝없는 우리 갈증을 풀어 줍니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샘에서 물을 길어 마시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비추어 성경을 읽으려고 애씁니다. 

우리 의도는 성경 본문을 더욱 다가서기 쉽게 하여 그 샘물이 우리가 부딪치는 문제와 추구하는 이상을 넉넉히 적시도록 물길을 터주고 잡아 주는 데 있습니다. 
이 같은 노력의 열매가 이 해설판 성경입니다. 
이 해설판 성경의 해설은 『대화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가 모두 함께 나아가는 길에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미리보기를 이용하시면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 보실 수 있습니다.


목차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차례
추천사
펴내는 말
머리말
성경해석
신약성경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가 복음서
요한 복음서
사도행전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고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고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립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골로사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데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데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
디도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야고보 서간
베드로의 첫째 서간
베드로의 둘째 서간
요한의 첫째 서간
요한의 둘째 서간
요한의 셋째 서간
유다 서간
요한 묵시록
구약성경
Chapter 38
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
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상권
사무엘기 하권
열왕기 상권
Chapter 52
Chapter 53
역대기 상권
역대기 하권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또 다른 역사서들
토비트기
유딧기
에스델기
마카베오기 상권
마카베오기 하권
시서와 지혜서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지혜서
집회서
예언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애가
바룩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가서
나훔서
하바꾹서
스바니야서
하깨서
즈가리야서
말라기서
Chapter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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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역본인 공동번역 성경에 묵상용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서 좋았습니다. 성경 통독용이 아닌 슬로우 리딩용으로 묵상하며 한단락씩 읽어 나가기에 좋습니다. 모바일 기기에 설치해 놓으니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보기에 좋습니다.  

알라딘: 빈탕한데 맞혀놀이

알라딘: 빈탕한데 맞혀놀이

빈탕한데 맞혀놀이 - 다석으로 세상을 읽다   
이정배 (지은이)동연출판사2011-11-02


책소개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다석학회 회원으로 다년간 다석사상을 연구해온 이정배 교수가 다석과 관련하여 연구한 두 번째 책이다. ‘빈탕한데’란 다석 유영모 선생이 ‘허공’을 순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다석 선생은 평생의 소원을 그 ‘빈탕한데’ 맞혀(맞춰) 노는 것이라고 했다. 곧 ‘없이 계신 이’의 실체는 ‘빈탕’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살아가는 것을 ‘빈탕한데 맞혀 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토착화’는 WCC의 JPIC(정의·평화·창조의 보존) 한국 대회에서 기독교의 10대 과제로 뽑힐 만큼 중요한 과제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이듯이 신토불이(神土不二)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의 옷을 입고 들어온 하느님이라면 우리의 옷을 입혀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토착화 신학의 과제이고 저자는 토착화 신학의 원류, 토착화 신학의 절정을 다석에게서 찾는다. 토착화된 신학이기에 세계적인 신학일 수 있다. 다석을 세계적인 신학자 반열에 서슴없이 올릴 수 있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머리말

서론_ 미정고(未定稿)로서의 예수 - 多夕 유영모를 만나기까지
1. 신학적 영향사(影響史)의 개관
2. 오늘의 시각에서 본 가족사와 학창시절
3. 一雅 변선환 선생
4. 프릿츠 부리와의 만남
5. 스승 없이 스승되어 살기
6. 초현실주의 신학자 이신(李信)의 재발견
7. 토착화 신학의 절정으로서 多夕학파의 기독교 이해
8. 신학함의 동반자가 있어 행복했던 25년

제1부 한국 신학의 두 과제, 토착화와 세계화를 아우른 多夕의 기독론

1장. 多夕신학에서 본 ‘역사적 예수’의 기독론
들어가는 글
1.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의 기독론 비판의 근거 - 부활 이전/이후 예수상(像)의 구별
2. 초자연적 유신론 및 인습화된 ‘케리그마’ - 바울 신학과의 연계를 중심하여
3. 역사적(부활 이전) 예수의 신성(神性)과 영(靈)기독론 - ‘참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 이해
4. 역사적 예수의 한국적 재(再)케리그마화 - 영(靈)기독론에서 多夕의 ‘얼’기독론으로

2장. 多夕신학 속의 자속(自贖)과 대속(代贖), 그 상생(相生)적 의미
들어가는 글
1. 기독교 케리그마(Kerygma)는 불변의 상수(常數)인가?
2. 역사적 예수 삶의 탈(脫)현대적 조명
3. 多夕의 예수 이해, 상생적 구속론의 사상적 토대로서 <天符經>과 三才사상
4. 역사적 예수 삶의 재(再)케리그마화로서 多夕의 스승기독론 - 대속(代贖)과 자속(自贖)의 상생(相生)적 차원
나가는 글

3장. 민족과 탈(脫)민족 논쟁의 시각에서 본 多夕신학 - A. 네그리의 『제국』과 『다중』의 비판적 독해
들어가는 글
1. 토착화 신학의 토대로서 ‘한국적 주(정)체성’, 그 실체는 있는가?
2. A. 네그리의 민족주의 비판의 새 차원 - ‘제국’의 도래와 세계적 가난의 실상
3. 다중(多衆)의 삶정치(Biopolitics)와 ‘유러피언 드림, 그 공감의 정치학’
4. 한국적 ‘통섭론’에서 본 새문명론과 多夕의 ‘다중(多衆)’기독론 - 3세대 토착화론에 대한 소견
나가는 글

제2부 두 번째 차축시대와 회통적 기독교 - 종교다원주의의 한국적 이해

1장. 귀일(歸一)사상에 근거한 多夕의 유교 이해
들어가는 글
1. 多夕의 시각에서 본 유교와 기독교 만남의 역사 및 평가
2. 역사적 유교의 한계와 歸一사상에 근거한 유교 본래성 이해
3. 유교경전에 대한 多夕의 신학적 해석학
4. 성서 풀이 속에 나타난 후천(後天)시대의 多夕의 기독교상(像) - 귀일(歸一)사상에 근거하여
나가는 글

2장. 多夕신학 속의 불교
들어가는 글
1. 삼재론(三才論)의 틀에서 이해된 多夕의 신학적 회통 원리
2. 불교와 기독교 간의 소통 원리로서의 여래장(如來藏)사상 - 삼재론(三才論)에 대한 불교적 이해
3. ‘自他不二’적 구원(해탈)론으로서 십자가 사건 - 돈오돈수(頓悟頓修)적 점수(漸修)론과의 대화
4. ‘얼나’와 불교적 ‘無我’(成佛) - ‘덜 없는 인간’을 넘어서

3장. 기독교의 동양적, 생명적 이해 - ‘빈탕한데 맞혀 놀이’와 진물성(盡物性)을 중심으로
들어가는 글
1. 없이 계신 하느님과 귀일(歸一)사상
2. 십자가와 참(얼)나
3. 바탈[本然之性]로서의 성령
4. 빈탕과 하나되는 삶 - 자속과 대속의 불이(不二)적 관계
나가는 글

제3부 多夕으로 오늘의 세상 읽기 - 多夕신학과 현대 사조와의 만남

1장. 생명담론의 한국적 실상 - 생명담론으로서 多夕신학의 자리매김을 위하여
들어가는 글
1. 생명의 형이상학적 이해, 그 새로운 시도들
2. 신과학의 전일적 생명론과 그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
3. 진화생물학의 생명담론 실상과 전개 및 비판 - ‘通涉’ 개념을 중심으로
4. 한국에서 전개된 자생적 생명철학 - 동학, 多夕 그리고 에코페미니즘의 한국적 수용
나가는 글 - 현대적 생명담론과 多夕사상의 치열한 만남을 꿈꾸며

2장. 한국적 통섭론(通涉論)으로서의 多夕신학 - E. 윌슨의 ‘생명의 편지’에 대한 한 답신
들어가는 글
1.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편지』 풀어 읽기 - 생명을 위한 연대의 제안
2. 『생명의 편지』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 - 토마스 베리의 우주 진화적 신학과 샐리 맥페이그의 성육신적 생태신학을 중심하여
3. 기후 붕괴 및 종의 멸종 시대와 多夕의 생명사상 - ‘統攝’을 넘어 ‘通涉’으로
4. 한국적 통섭론(通涉論)의 시각에서 본 『에코지능』과 『생체모방』 - 多夕 생명사상의 구체적 실상
나가는 글

3장. 種의 기원과 種의 멸종 사이에서 본 多夕의 ‘없이 계신 하느님’
들어가는 글
1. 다윈 진화론의 핵심 내용과 기독교와의 갈등 배경
2. 진화론에 대한 현대적 논의들 - 유물론적 진화론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3. 진화론적 유신론에 대한 신학적 논의들 - 설계, 성사(聖事)를 넘어 ‘약속’으로?
4. 창조와 성육의 통합으로서의 우주적 그리스도와 多夕의 ‘없이 계신 하느님’ - 약속을 넘어 ‘책임’으로!
나가는 글

접기
책속에서

서론 중에서

필자의 多夕연구는 크게 세 방향에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多夕의 동양적 기독교를 서구 종교다원주의 틀에서 다루되 그와의 변별력을 강조했다. 소위 그의 ‘얼기독론’을 서구 다원주의 시각의 급진적 내재화로 본 것이다. 최근에는 그의 ‘얼기독론’을 ‘다중多衆기독론’이란 이름으로 개칭하기도 했다. 두 개의 ‘탈脫’ 탈현대와 탈식민성을 의식했던 까닭이다. 둘째는 多夕사상을 일본 교토학파와 견줄 만한 사상체계로 이해하는 일이었다. 해서 필자에겐 多夕한 사람만이 중요하지 않았고 함석헌 · 김흥호를 비롯하여 박영호 등 多夕을 스승으로 모신 이들의 사상과 多夕과의 관계를 묻는 일이 소중했다. 多夕학파란 이름하에 이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틀거지를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불교에 초점을 맞춘 교토학파의 기독교 이해와 다른 점도 확연히 드러났다. 무게 중심이 기독교에 있었던 까닭에 이들에게 예수는 이론적 전거만이 아니라 고백적 토대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多夕의 기독교 사상을 민족문화 속에 스며든 <천부경>, 그 영향사의 정점으로 보았고 유불선(儒佛仙)은 물론 동학(東學)과도 회통할 수 있는 대승적 틀을 그에게서 발견했다. 십자가를 수행적, 자/타불이(自/他不二)적 대속론(代贖論)의 차원에서 설명한 것이 바로 그 핵심 증거이다. 성직만 있고 수도(修道)의 개념이 간과된 한국 기독교에게 그의 수행적 기독론은 상당히 유의미하다. 향후 필자는 多夕이 남긴 난해한 원전을 더욱 깊이 읽어갈 생각이다. 그러나 多夕을 과거적 시각에서가 아닌 현대 신학적 주제들과 맞부닥트릴 계획이다. 이미 다중(多衆), 생태신학, 진화신학, 역사적 예수 연구의 차원에서 多夕을 조명한 글들을 준비해놓았다. 물론 이런 글쓰기는 多夕한 개인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多夕학파의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多夕연구는 순수 종교적 · 이론적 차원에서만 비롯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식치 못했으나 동양적으로 이해된 십자가 개념 속에 진정으로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케리그마(kerygma)가 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多夕에게는 십자가를 지신 스승 예수가 중요했고 그의 십자가를 ‘일좌식 일언인(一座食一言仁)’이란 말로서 동양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십자가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인 것은 그것을 믿는 차원을 넘어 그렇게 사는 길밖에 없을 터, ‘일좌식 일언인’이란 말 속엔 자본주의와 맞설 수 있는 삶의 에토스가 가득 차 있다. 소승적으로 자신 한 몸 수신(修身)하는 차원이 아니라 세상에 가득 찬 죽음의 세력(자본주의)과 맞서는 길이란 것이다.
필자 역시도 처음에는 多夕사상 속에서 개인적 차원만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전 재산이 오늘의 동광원의 기초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제 뜻 버려 하늘(아버지) 뜻’이룬 예수의 십자가는 오늘날 반(反)생태적 천민자본주의와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치열하게 공적(公的)인 삶으로 부르는 것, 사(私)와의 사투(死鬪)를 벌리는 일이 多夕에게 ‘일좌식 일언인’으로서의 십자가였던 것이다. 필자가 多夕사상 속에서 한국적 생명신학의 정수를 재인식하고 이에 몰두하게 된 것도 결국 이런 이유 때문이다. 多夕사상 속에 신학적 화두인 ‘생명’을 발견한 것은 필자에겐 은총 그 자체였다. 향후 한국적 생명신학의 차원에서, 아니 내 자신의 삶 속에서 多夕사상을 깨치고 체화시키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할 뿐이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정배 (지은이)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대학원, 스위스 바벨대학교 신학부(Dr. Theol)를 마치고, 1986년부터 2016년까지 30년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미국 게렛신학교, 버클리 GTU, 일본 동지사대학교 신학부에서 활동했으며, 감신대 부설 통합학문연구소를 창설했고 이끌었다.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한국문화신학회, 조직신학회 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대화 위원장, 생명 평화마당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사단법인 나눔문화 이사장직을 수행했고 최근에는 3.1운동 백 주년 종교개혁 연대 공동대표, 국제기후시민종교네트워크(ICE) 상임 대표, 현장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정배의 생명과 종교 이야기』, 『이웃 종교인을 위한 한 신학자의 기독교 이야기』, 『 생태 영성과 기독교의 재주체화』, 『빈탕한데 맞혀놀이-多夕으로 세상을 읽다』,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한국 개신교 전위 토착신학 연구』, 『켄 윌버와 신학』, 『기독교 자연 신학연구』, 『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신학』, 『 토착화와 생명 문화』 등이 있고 최근에는 『종교개혁 500년 以 後신학』과 『3.1정신과 以後신학』을 공동으로 엮어냈다. 접기
최근작 : <유영모의 귀일신학>,<세상 밖에서 세상을 걱정하다>,<우리는 하느님을 거리에서 만난다> … 총 4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꽃을 볼 때 온통 테두리 안의 꽃만 보지 꽃을 둘러싼 허공, 곧 빈탕을 보지 않습니다. 허공만이 참입니다.” - 다석일지 중

현대 담론을 다석 유영모의 사상으로 읽어내다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다석학회 회원으로 다년간 다석사상을 연구해온 이정배 교수가 다석과 관련하여 연구한 두 번째 책 『빈탕한데 맞혀 놀이 - 多夕으로 세상을 읽다』를 펴냈다. 첫 번째 책,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을 내며 다석 사상을 깊이 있게 내재화시킨 저자는 이 책에서 다석사상으로 현대의 신학 담론들, 현대 사조들과 만남을 시도한다.
‘빈탕한데’란 다석 유영모 선생이 ‘허공’을 순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다석 선생은 평생의 소원을 그 ‘빈탕한데’ 맞혀(맞춰) 노는 것이라고 했다. 곧 ‘없이 계신 이’의 실체는 ‘빈탕’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살아가는 것을 ‘빈탕한데 맞혀 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토착화’는 WCC의 JPIC(정의·평화·창조의 보존) 한국 대회에서 기독교의 10대 과제로 뽑힐 만큼 중요한 과제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이듯이 신토불이(神土不二)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의 옷을 입고 들어온 하느님이라면 우리의 옷을 입혀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토착화 신학의 과제이고 저자는 토착화 신학의 원류, 토착화 신학의 절정을 다석에게서 찾는다.(물론 다석 스스로는 토착화라는 단어를 쓴 적은 없다.) 토착화된 신학이기에 세계적인 신학일 수 있다. 다석을 세계적인 신학자 반열에 서슴없이 올릴 수 있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론 “미정고(未定稿)로서의 예서 - 多夕을 만나기까지”에서는 저자 자신의 신학적 실존, 삶의 여정 속에서 만난 多夕의 의미를 정리한다. 숫한 신학 여정에서 씨름하며 만난 뭇 이론들과 만나 씨름했던 저자가 온전히 무릎 꿇을 사건을 多夕사상을 만난 것이라고 하는 저자의 삶으로 다석을 반추한다.

1부 “한국 신학의 두 과제, 토착화와 세계화를 아우른 多夕의 기독론”에 속한 세 논문은 소위 역사적 예수 연구 결과물들과 탈(脫)민족주의 이론들과의 대면을 통해 多夕이 이들 담론들 속에 내재된 서구적 갈등, 곧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 민족과 탈민족주의 간의 대립을 동양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적시한다. 1부에서 제시한 자속과 대속의 불이(不二)적 성격 나아가 多夕의 ‘얼기독론’의 재해석으로서 다중(多衆)기독론을 통해 이들 서구 담론에 대한 동양적 응답을 접할 수 있다.

2부 “두 번째 차축시대와 회통적 기독교 - 종교다원주의의 한국적 이해”에서는 역으로 한국 고유한 종교들, 즉 유교와 불교와 만날 수 있는 신학의 적실한 가능성으로서 多夕사상을 언급한다. 축(軸)의 시대 종교들의 영향력이 실재하는 한국 땅에서 서구식의 어떤 종교다원주의 유형도 이런 실상을 온전히 밝힐 수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多夕이 한국 고유한 <천부경(天符經)>의 귀일(歸一)사상의 빛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유교와 불교를 풀었기에 두 번째 차축(後天)시대(후천시대)에 합당한 회통적 기독교를 말했다고 확신하며 글을 풀어나간다.
마지막 3부 “多夕으로 오늘의 세상 읽기 - 多夕신학과 현대 사조와의 만남”에서는 우리 시대의 화두인 생명담론과 多夕사상의 상관성을 논한다. 진화생물학자로서 생태학에 관심 깊은 E. 윌슨의 통섭(統攝)적 생명론을 多夕의 눈으로 비판했고 다윈 진화론에 대한 서구적 논의구조 속에 뛰어들되 종(種)의 멸종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多夕신학의 얼과 구조가 얼마나 더 현실적 대안일 수 있는가를 역설한다. 동서양에서 논의되는 생명담론들의 빛에서 多夕의 생명사상을 자리매김한 것도 저자가 주안점을 둔 곳이다. 접기

유영모·함석헌 사상 연구 발표집 Ⅰ 제22차 세계 철학대회 2008

cs.libp.net/ofmkorea/CS4_2120.asp?F1=19874&F2=1&B1=&B2=&B3=&B4=&SAIR2=&MASTER=&R1=151&R2=&R3=

유영모·함석헌 사상 연구 발표집 Ⅰ / 제22차 세계 철학대회
저자사항 씨알[편]
발행사항 서울 / 재단법인 씨알 / 2008
형태사항 237p. / 초상화(인물사진) / 30cm
주기사항 제22차 세계 철학대회/때: 2008.8.2(토)-3(일)/곳: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목암홀 ---

  
 목차정보

3분과 : 유영모의 철학 : 생명과 종교 
11:10-11:10 개회 인사 / 박재순 소장 

11:10-12:30 주제 발표 

  • 생명은 웋일름을 따르는 몸사름 多夕 생명사상의 영성적 차원 / 이기상 교수 = 1 
  • 天符經을 통해서 본 東學과 多夕의 기독교이해 / 이정배 교수 = 25 
  • 道가철학과 多夕사상 / 강지연 교수 = 47 
  • 없이 계시는 하느님 多夕 유영모의 절대자 이해 / 윤정현 교수 = 57 
  • 12:30-12:50 질의 토론 

4분과 : 함석헌의 철학 : 정치와 평화 
14:00-14:10 개회 인사 / 이정배 교수 
14:10-15:30 주제 발표 
  • 내면의 정치학 - 함석헌 정치사상 / 이규성 교수 = 83 
  • 함석헌의 인간관 - 호모 레지스턴스 / 김상봉 교수 = 95 
  • 함석헌의 평화사상 - 예수ㆍ간디ㆍ함석헌의 비폭력 저항 / 유석성 교수 = 119 
  • 함석헌의 민중 평화론의 탈근대론적 해석 / 정지석 교수 = 145 
  • 15:30-15:50 질의 토론 

5분과 : 함석헌의 철학 : 역사와 현실 
16:00-16:10 개회 인사 / 정지석 교수 
16:10-17:30 주제 발표 
  •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나선형적 역사관의 형성요소에 관하여 / 김경재 교수 = 149 
  •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예수의 하느님 나라 비유 - '저절로 그러함'을 중심으로 / 김명수 교수 = 171 
  • 모성성의 주춧돌 위에 세워진 씨알, 생명사상 / 차옥숭 교수 = 193 
  • 핵심역량 개발과 마음의 계발 다석의 中庸에 대한 관점 / 이종재 교수 ; 송경오 교수 = 217 
  • 17:30-17:50 질의 토론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③-4 오강남 교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 아주경제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입력 : 2021-01-27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③ 오강남 교수 <上>




아주경제와 유튜브 채널 '다석의 생각교실'이 공동 기획한 '내가 본 다석, 내가 들은 류영모'의 두 번째 인터뷰이는 비교종교학으로 명망이 높은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오강남 명예교수다. 코로나 19로 오 교수가 한국에 오지 못하고, 나를 비롯한 취재진이 캐나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줌(Zoom)을 이용해 인터뷰가 이뤄졌다.

대학을 갓 졸업한 유수민 인턴기자가 카카오톡 통화로 오 교수에게 줌 작동법을 코치하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오 교수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나고 목소리가 들렸다. 음성 전달에서 캐나다와 서울 사이에 0.5초 정도의 시차가 있었으나 큰 불편은 없었다. 서울의 아주경제 스튜디오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오 교수의 서재를 연결해 화상 인터뷰를 두 시간 동안 진행하면서 세상이 '코로나 이전(BC·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After Corona)'로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캐나다로 두 사람이 출장 인터뷰를 갔더라면 5박6일 걸릴 일을 두 시간으로 단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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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릴레이 인터뷰'는 다석을 연구한 학자, 다석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제자 등 10 여명을 연속으로 만날 계획입니다. 인터뷰를 종이신문,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보도하고 나중에 책으로 펴내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4개 매체에 활용하는데요. 여기는 지금 아침 10시인데 캐나다 밴쿠버는 몇 시입니까?

“오후 다섯 시입니다.”

나는 2년 전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해 부차트 가든 등을 주마간산으로 둘러본 적이 있다. 밴쿠버 섬(Vancouver Island)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태평양 연안에 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1 정도 되는 큰 섬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풍광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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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님의 최근 저서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를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세계적인 종교인 57명을 다루었더군요. 한국인으로는 류영모 함석헌 두 분이 들어있던 데요.

“한국에도 원효 지눌 이퇴계 이율곡 최수운 등 사상가들이 많지만 내가 두 분을 선정한 이유는 한국 종교의 가장 큰 특색인 기복(祈福) 종교를 타파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석학회 회장 정양모 신부는 ‘인도가 석가를, 중국이 공자를, 그리스가 소크라테스를, 이탈리아가 단테를,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독일이 괴테를 각각 그 나라의 걸출한 인물로 내세울 수 있다면 한민족이 그에 버금가는 인물로 꼽을 수 있는 분이 바로 다석 류영모’라고 말했습니다. 좀 과한 것 같지만 다석 류영모의 위상을 잘 얘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한테 직접 배우신 박영호 선생은 ‘다석은 인류의 스승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석을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분이 함석헌 선생입니다.”

-오 교수님은 표층(表層)종교와 심층(深層) 종교를 구분하는 말이나 글을 많이 쓰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합을 금지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복신앙으로 번성한 표층종교의 종말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표층종교와 심층종교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늘상 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다섯 살 정도까지는 산타가 정말로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굴뚝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고,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벽난로 옆에 달린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간다는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은 어린아이의 정신 발달 과정에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한테는 그것이 1년을 기다리는 이유고, 착한 일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자라 어머니가 양말에 선물을 넣는 것을 눈치 채면서 산타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는 대신 '산타 이야기는 식구들 사이에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구나, 나도 선물을 받지만 말고 부모님이나 동생에게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단계 올라가는 겁니다.
아이가 철이 들면 '산타 이야기는 가족 사이에 사랑을 베풀 뿐 아니라 온 동네에, 혹은 더 넓은 사회, 좀 더 넓게 세계의 불우한 이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구나' 라고 깨닫게 됩니다. 좀 더 성숙하면 '불우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만 사랑을 베푸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이 없게 해야 한다, 환경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습니다. 산타 이야기는 하늘이 내려오고 땅이 화답하는 천지합일(天地合一), 신이 내려오고 인간이 화답하는 신인(神人)합일을 상징하는 이야기라는 깨달음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의 산타클로스 믿음 수준에 머물러있다면 일종의 '종교적 발달장애'라고 할 수 있지요.
표층종교는 이기적인 나를 잘 되게 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헌금이나 보시를 하더라도 나와 내 식구가 현세와 내세에서 잘 되기 위해서, 기도를 할 때도 내가 잘 되도록 비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심층종교는 이기적인 나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내 속에 있는 신성, 불성, 참 나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나 혼자와 가족만 잘 되기만을 비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함께 잘되기를 바라는 결의를 다지는 심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한 자 한 획도 가감 없이 믿어야 한다는 문자(文字)주의가 표층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을 하던데요. 문자주의가 왜 문제가 되는 거죠?

“류영모 선생은 이기적인 나를 '제나'라고 하고 내 속에 있는 참나를 '얼나'라고 했습니다. 제나에서 얼나로 바뀌는 것, 이를 제나에 죽고 얼나로 살아나는 죽음과 부활이라 할 수 있는데, 류영모 선생은 이를 '솟남'이라 하셨습니다. 류영모 선생님의 경우 어느 종교든지 이렇게 제나에서 얼나로 솟나게 해주는 종교는 모두 유익하다고 봅니다.

표층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합니다. 교회나 절에서 한 얘기를 무조건 믿는 것은 맹신 광신, 미신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무조건적 믿음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독립적 사고 능력을 박탈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심층종교는 이와 달리 이해와 깨달음을 강조해요. '보고 깨달아라'는 것이죠.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서 해방돼 무엇이 바른지를 계속 추구하는 종교, 열린 종교입니다. 무엇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새로운 눈뜸입니다. 부처님도 '무조건 믿지 말고 실험해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여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 종교만 옳다'는 근본주의는 폭력

표층종교는 신은 하늘에 있고 인간은 땅에 있다는 식으로 신과 인간, 신과 세상을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이른바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신의 초월(超越)만을 강조하지요. 심층종교는 신이 밖에도 있지만 내 안에도 있다고 봅니다. 어느 면에서는 신의 초월보다 신의 내재를 더 강조합니다. 신이 우리 속에 있는데, 우리 속에 있는 신이 바로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결국 '신과 나는 하나'라고 봅니다. 이런 사상을 강조하는 신관을 범재신론(汎在神論 ·panentheism)이라고 하는데, 동학(東學)이 이런 신관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한울님이 따로 계시지만 우리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시천주(侍天主)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한울님이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끝내 나와 한울님은 하나다' '인간이 바로 신이다' 하는 것이 인내천(人乃天)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동학에는 '나만 한울님이 아니다. 내 이웃도 한울님이다' 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정신도 있습니다.

표층종교는 문자주의를 고집합니다. 성경이나 여러 경전에 있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층종교는 이와 대조적으로 '문자 너머를 보라', 류영모 선생님 용어로 '속나를 보라'고 합니다. 깨달음을 통해 신을 경험하는 일은 너무나도 엄청나 도저히 문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 경전은 결국 상징이나 은유를 통해 그 경험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징적 은유적인 문자는 그 경험으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경험 자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걸 무시하고 '문자 그대로 믿어라' 라는 것은 성경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선불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합니다. 문자에 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한국 기독교의 다수는 근본주의자들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에 나온 것이면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문자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안 되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표층종교는 자기만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합니다. 독선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 프란체스코 교황은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올바르지 못한 것이지요.”

-미국에서는 제일 큰 동창회가 교회 졸업동창회라는 말도 있다던데요. 교회 신자가 감소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교회보다 훨씬 재밌는 것이 많기 때문인가요?

“교회가 문자주의에 매달리면 그 문자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6일 만에 창조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태양 보고 '서라' 했더니 태양이 섰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을 성경의 문자 그대로 믿으라고 하면 요즘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심청전을 보면 심청이가 물에 빠져서 용궁에 갔다가 연꽃에 실려 송나라 황후가 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심청전의 메시지가 중요한 거지, 용궁이 정말 있느냐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성경의 메시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거지 이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들을 그대로 믿으라고 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소위 가나안 교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가나안은 '안 나가'를 거꾸로 한 말이라고 합니다. 가나안은 성경에 나오는 지명인데… 미국의 보수적인 목사가 쓴 책 제목이 입니다. 지금 기독교인이 죽고 나면 기독교인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교회도 졸업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동창회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미국은 그래도 서방국가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셈입니다. 북유럽 쪽은 기독교인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북구의 제일 잘 산다는 세 나라에는 실질적으로 '신이 없는 사회'라는 겁니다. 기독교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나 필요하지 그 외에는 별로 상관없는 사회가 된 거예요.”


다석 류영모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 왼쪽부터 방수원 현동완 류영모 김흥호 함석헌.

-이 인터뷰의 문패가 '내가 본 다석, 내가 들은 유영모'지요.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함석헌과 다석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죠.

“함 선생이 오산학교에 다닐 때 다석이 교장으로 오셨어요. 그 전에 평교사로 가서 한 몇 년 가르치다가 오산학교를 그만두고 나올 때 다석은 표층적(表層的)인 기독교를 버렸습니다. 두 살 아래인 동생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봐야 효험이 없어 기복신앙이 소용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으면서 붐이 일었을 때 다석도 톨스토이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했습니다. 그 무렵 노자의 도덕경과 불경을 배웠습니다.

함석헌 학생이 교장으로 온 다석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석도 함 선생을 특별한 제자로 생각했습니다. 다석이 일제의 간섭으로 1년 만에 교장 노릇을 못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함 선생이 배웅하러 나가는데 다석이 '내가 오산에 왔던 것은 함, 자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던가 보네'라고 특별한 관계임을 말했습니다. 그 후에 계속 사제 관계를 유지했는데 나이는 10살 차입니다. 생일이 똑같습니다.”
함석헌은 “내가 부족하지만 이만큼 된 것도 다석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당대에는 함석헌이 세속적으로 다석보다 유명했다. 그가 입만 열면 "다석이 나의 스승"이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석을 알게 됐다. 오 교수는 캐나다와 한국에서 여러 번 함석헌을 만나 깊게 교류하면서 다석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오 교수는 다석을 만나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다고 책에 썼다.

-말년에 두 분 관계에 묘한 갈등과 결별이 생깁니다. 다석 제자인 박영호 선생이 쓴 <다석 전기>에 보면 함 선생의 여자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여자 문제는 흠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 세계 종교인 57명의 반열에 함 선생님을 올린 뜻이 궁금합니다.

“조금 곤란한 질문인데 나름대로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에 거론된 사람 중에 여자 문제와 관계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 겸 종교학자로 꼽히는 폴 틸리히도 여자 문제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실존철학의 대가 마르틴 하이데거, 인도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마하트마 간디도 여자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도 마찬가집니다.

함석헌의 스승으로 이름 높아진 다석

함 선생님의 문제를 알지만 그런 문제보다는 함 선생님의 심오한 사상, 실천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과(功過)가 있는데 저는 공을 보고 그 공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토에 사는 목사님이 나 보고 '폴 틸리히가 여자 문제가 있는데 왜 자꾸 인용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폴 틸리히의 깊은 통찰은 내가 종교를 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석이 오산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바꿔놓고,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 선생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고서 정작 본인은 나중에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함석헌 선생이 한때 따르던 무교회주의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다석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과 탈(脫)종교화 현상은 다른 건가요?

“다석은 미리 깨달은 거죠. 문자주의적 믿음이 현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거죠. 계몽주의 이전 시대에서는 목사나 신부, 종교 지도자들이 하는 말을 거의 그대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몽주의 시대가 지나가고, 현대 과학 생물학이나 심리학 같은 학문이 발달하고, 특히 인터넷 속에서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데, 2천, 3천년 전의 세계관과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교리를 강요하는 종교는 설득력이 있을 수 없죠. 지금 그런 걸 강조한다면 그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입니다. 더 이상 지탱하기가 힘들죠.
그런데 류영모 선생은 무교회주의자는 아니었어요. 함석헌 선생이 처음에는 김교신 등 무교회 사람들과 같이 <성서조선> 운동을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도 무교회주의에 처음에는 호응했지만 나중에는 결별합니다.

일본인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신학은 소위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대한 류영모 선생님의 해석은 완전히 달라요. 류영모 선생은 사상을 풀어갈 때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를 가지고 풀이합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서 세로로 선 것이 사람이고 가로로 누운 것은 땅, 위의 점은 하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이냐, 인간이 땅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상징하는 표시'라고 풀이합니다. 대속(代贖)신앙이 아니라 자속(自贖)신앙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인데 정통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이 땅에 자기 아들 예수를 보내서 예수가 죽음으로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다'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다석은 그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자기의 씨(신성)를 각 사람 속에 심어줬다고 해석합니다. 우리 속에는 전부 신성이 있고, 불교에서는 그걸 불성, 유교에서는 인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참나, 얼나 이런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하늘에서부터 주어진 씨라고 보는 것이죠.”

-미국에는 교회 신자들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며 예배를 드리면 스트레스가 줄고, 가깝게 지내는 교우도 생기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성경 말씀을 생각하며 나쁜 유혹에 덜 빠지고… 그런 착한 신앙도 기복신앙, 표층 종교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겁니까?

가나안 교인과 안나가 교인


“저는 교회의 공동체적 요소를 좋게 생각합니다. 서로 가깝게 지내면서 돕고, 우의를 다짐하는 것은 좋습니다. 제 형님도 미국 LA에 사는데 교우들이 모여서 매일 아침 골프 치러 가고…. 세상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은 교회 말고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형제나 일가친척도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지요.

그러나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갈등과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사 편과 장로 편, 오래된 신도와 새 신도 편 등으로 편을 갈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상당수 교인들이 교회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고 호소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교인들, 거꾸로 '안나가' 교인들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교인들이 오래 산다는 말이 정확한 통계에서 나온 말일까요. 교회에 안 나가는 북유럽 나라들의 평균 수명이 더 길 것 같은데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제가 LA 어느 목사님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목사 사모들의 경우 생명보험비가 더 높다고 하더군요. 스트레스가 아주 높기 때문이죠. 목사 사모라는 특수 위치 때문에 자기의 전공을 살리지도 못한 체 교회에 묶여 있어야 하고, 남편 목사가 여신도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신경 쓰이고, 그렇다고 불평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교회가 사교적이고 즐겁기 만한 모임이 아니고, 자기들의 이기적 '제나'를 추구하는 투쟁의 장소가 되기 쉽습니다. 이상적인 '얼나'를 찾는 장소로 적합한지 다시 생각해봐야죠.”

(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박하늘 인턴기자)

<오강남 교수 약력>
- 1941년 출생
- 1965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학사
- 196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석사
- 197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박사과정 수료
- 1976년 캐나다 맥마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Ph.D)
- 1980~2006년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
- 1986, 2011년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 1990~98년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 1991~96년 북미한국인종교학회 회장
- 저서 "도덕경"(1995, 개정판 2010), "장자"(1999년), "예수는 없다"(2001, 개정판 2017년)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2011, 개정판 2019) 등 다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④ 오강남 교수 <下>






내가 오 교수와 처음 만난 것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하던 2001년경이다. 오 교수는 그때 현암사에서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펴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개안(開眼)을 하는 느낌을 받고 동아닷컴에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을 읽은 오 교수가 서울에 왔을 때 신문사로 찾아와 처음 만나게 됐다. 그 뒤로 나는 종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그에게 전화나 메일로 자문(諮問)을 했다. <예수는 없다>는 2001년 5월 초판이 나온 이래 개정판까지 42쇄를 찍은 장기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면 정통 기독교인 중에는 오 교수의 안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기독교 계통의 어느 목사가 ‘하느님 보호해주심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고, 설사 감염되더라도 성령의 불로 깨끗이 낫게 되리라’고 장담했는데 그 사람도 코로나에 걸렸어요. 트럼프처럼요. 오 교수가 최근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교회’라는 글에서 ‘교회에 모여서 코로나를 낫게 해달라고 합심 기도를 하는 그 집회 때문에 코로나가 더 확산된다’고 지적했던데요. 하느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건가요?

“전광훈 목사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기도나 종교 행사와는 관계가 없고, 방역이 중요합니다. 마스크를 쓰느냐, 손을 잘 씻느냐,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막을 수 있는 거지, 기도한다고 안 걸리는 게 아닙니다. 코로나가 ‘저주냐, 축복이냐’ 하는데 저주도 아니고, 축복도 아닙니다.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저주도 되고 축복도 된다고 봅니다. 코로나를 기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모이면 점점 퍼지고 이건 저주가 돼요,

예수님은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고, 한두 사람이 모이는 곳에도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함께 모여 예배를 할 수 없다고 야단인데, 비대면으로 조용히 예배 드리고, 이런 기회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속의 얼나를 찾는다면 축복이겠지요. 내 속에서 우러나는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 혹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 얼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글에서 코로나 이후 소위 기복(祈福)신앙, 유대교의 율법으로부터 내려온 인과응보 사상이 힘을 잃을 것 같다고 했는데요.

“하느님이 착한 사람에게 상 주고 나쁜 사람에게 벌 준다면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죄를 지어 그렇게 됐고, 걸리지 않은 사람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는 게 되죠. 코로나 걸린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것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순수한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인간이 겪는 행복과 불운을 신의 상벌(賞罰)로 가르는 것은 오늘날 먹히지 않는 사상입니다. 그걸로 사람을 협박하면 안됩니다. 달라이 라마가 <종교를 넘어>라는 책에서 “인간이 잘해서 나중에 극락 간다, 못해서 지옥에 떨어진다, 이런 식의 협박이나 회유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 속에서 좋은 일을 하면 즐겁고 나쁜 일을 하면 스스로 고통이 되는 것을 감지하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티베트불교의 성지 포탈라궁 앞에서. [사진=오강남 제공]

-오 교수가 한국에서 신흥종교가 번성한 데는 정감록 비결의 영향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데요. 이제는 국립공원이 된 계룡산에 옛날엔 불교, 기독교 계통 신흥종교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도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풍수설이 전해지고 비결서에 새 왕조의 터전으로 지목되면서 신흥종교들이 모여들었다는 거지요. 왜 기독교계 신흥종교들까지 십승지지를 찾아갔을까요.

“한국의 신흥종교는 대체적으로 혼합종교적(syncretic) 특색을 가집니다. 이것저것 필요하다면 다 받아들이지요. 예를 들어 절에 삼신각이 들어와 있다든가, 기독교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다든가 하는 것은 한국 샤머니즘적 요소가 들어온 것이라 봅니다. 정화수 떠놓고 장독대 앞에서 빌던 치성의 연장이죠.”

-한국 교회가 일제시대, 6·25 전쟁을 겪으면서 급성장했고, 서울에는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교회들도 많은데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한국 교회는 복 받고 부자 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머리 둘 곳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고 거기서 예수님을 찾는 것은 모순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 기독교 상당수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황금을 섬기는 맘모니즘(mammonism)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 하면 대형교회를 떠올리기가 쉬운데, 내가 아는 몇몇 작은 교회의 목사님들은 참 존경스러워요. 교회를 나오는 사람이든 안 나오는 사람이든 아이들을 통학시켜주고, 어려움을 도와주지요. 상당수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제왕과 같죠. 천국에 가도 그보다 좋은 대접을 받긴 힘들 겁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다른 종교에 대해 대체로 배타적이죠. 왕왕 불상 훼손 행위를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빚는데요. 다석 사상은 기독교 유교 불교에다 노장 사상까지 들어가 있으니 정통 기독교 신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통 기독교인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사실이죠. 종교학을 창시했던 독일인 막스 뮐러가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한 말을 들려주고 싶군요. 여러 종교를 뒤섞고 혼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내 종교라도 어떤 위치에 있는 건지, 어떤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는 것인지, 서로 비교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스 큉은 '종교 간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해서 네 종교가 어떤 것인가, 내 종교가 어떤 것인가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타종교라는 말도 안 쓰고 이웃 종교라고 합니다. 이웃 종교가 서로 상생하고 도와주는 길벗으로서 살아가면 서로 좋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힘쓰게 됩니다.”

동서양 종합한 독창적 종교 사상

‘종교 없는 삶’의 저자 필립 주커먼(Phil Zuckerman)은 '오이즘(Aweism·경외주의)'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종교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한 눈으로 보는 삶의 태도다. 캐나다와 미국의 알래스카 주에서는 태평양에서 자란 연어들이 자신이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어 사냥꾼인 물개나 곰이 목을 지키는 위험한 여로다. 밴쿠버에 있는 오 교수의 집 옆으로도 태평양으로 통하는 개울이 있는데 10월이면 알을 낳기 위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을 만날 수 있다.

암컷들은 목숨을 걸고 수천km 떨어진 고향을 찾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러면 수컷들이 알을 부화시키고 따라 죽는다. 오 교수는 이것을 아하이즘(Ahaism)이라고 바꾸어 부른다. 봄에 파란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온다든가, 겨울에 앙상한 가지에서 꽃이 핀다든가 그런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대우주의 움직임이나 신비스러움을 발견할 때 ‘아하’하고 감탄하는 것을 ‘아하이즘’이라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깨달음을 얻었을 때도 ‘아하’ 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아우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기적인 것은 없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어느 쪽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오 교수는 종교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산 밑에서는 약간의 나무와 꽃들이 보이지만 올라갈수록 멀리 호수와 넓은 들판이 보인다. 그 때 ‘아하!’ 하게 된다. 새로운 발견이다. 종교는 어느 면에서 ‘아하! 경험의 연속’이다.
“옛날에는 깨달음을 얻었다든가 심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뭄에 콩 나듯 했어요. 왜냐면 그때는 98% 이상이 문맹이었어요. 심층종교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앉아서도 미국, 유럽 유명한 교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하이즘’ 혹은 심층에 접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심층종교의 민주화’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항아리에 담겨 있다 1600년만에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이집트의 고대어인 콥트어로 기록돼 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농부가 밭에서 발견한 항아리 속에서 도마복음이 출현했습니다. 오 교수님은 도마복음 해설서도 썼는데요. ‘오강남 복음’이라고 혹평하는 목사들도 있더라고요. 도마복음은 기독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4세기경 니케아 공의회에서 승자가 된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승리의 여세를 몰아 4복음서 외에는 모두 폐기처분 하라고 명령했는데, 나그함마디에 있던 사원에서는 나중에 다시 찾아보려고 그랬는지 항아리에 넣어서 땅에 묻었어요. 그러다가 1600여년이 지나 1945년에 발견되었는데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의 어록 114개만 기록되어 있어요. 행적에 관한 것은 없어요. 예수의 수난이라든가,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에 관해서도 없습니다.
도마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깨치라’고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은 ‘믿으라 믿으라 믿으라’ 그러잖아요? 그리고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도마는 믿지 못하는, 의심하는 도마(doubting Thomas)라고 나옵니다. 요한복음에 대비되는 도마복음은 믿음(pistis)이 아니라 깨달음(gnosis)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깨달아야만 거기에서 종교가 줄 수 있는 참된 청복((淸福)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도마복음의 특징입니다.

나의 ‘도마복음’ 풀이에 다석을 몇 번 인용했습니다. 도마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자기 땅이 아닌 땅에서 노는 아이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땅 주인이 와서 땅을 되돌려 달라고 하니 그 아이들은 땅 주인이 보는 데서 자기들의 옷을 벗고 땅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다석도 삶을 ‘놀이’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묶고 묶이는 큰 짐을 크고 넓은 ‘한데’에다 다 싣고 홀가분한 몸으로 놀며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당에는 이 몸까지도 벗어 버려야 한다. 다 벗어 버리고 홀가분한 몸이 되어 빈탕 한데로 날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마복음은 ‘홀로’를 강조하는데, 다석도 해혼하고 홀로 되심을 실행했다고 봅니다.

도마복음과 4복음서는 상당 부분 겹치지만 겹치는 부분도 의미를 달리합니다. 예를 들어 4복음서에서 양이 우리를 빠져나와 길 잃은 양이 되지 않습니까? 불쌍한 양이 되어서 예수님이 양을 안고 다시 우리로 들어온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도마복음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길 잃은 양이 아니라, 99마리의 양들과 달리 너무 특출하기 때문에 거기에 그대로 섞일 수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스스로 그 무리를 탈출해서 자기 나름의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용감한 양입니다. 그래서 양을 찾았을 때 예수님이 ‘나는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귀하게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도마복음은 용기를 가지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를 강조합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엘레인 페이젤스(Elaine Pagels) 교수는 도마복음 전문가인데, ‘도마복음이 만약 폐기 처분되지 않고 기독교 전통의 일부로 남아있었다면 지금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가 훨씬 쉬워졌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도마복음에서 하는 예수님 말씀이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제 책 제목을 ‘또 다른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문 마지막에 ‘도마복음이 기독교와 불교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99마리 이탈한 한 마리 양은 자유로운 영혼

-오 교수가 ‘교회를 지배하는 신학은 암흑시대라고도 하는 중세와 근대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면서 ‘교회를 개혁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신학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아까 말한 대로 무엇보다 신관(神觀)이 바뀌어야 하는 거예요. 하늘 위에 계셔서 낮고 천한 인간을 보시면서 잘한 사람은 칭찬하고 못한 사람은 벌주고 나중에 죽어서 잘한 사람은 천당 보내고, 못한 사람은 지옥 보내고, 이런 식의 신관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걸 가지고 교회를 유지하는 방식은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유럽 같은 데서는 안 되잖아요.
지금 젊은이들은 ‘나는 종교적이 아니다. 나는 영성적이다’하는 말을 씁니다. ‘전통적인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내 속 깊이의 영적인 영성에 주목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고 나를 찾겠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의 신관과 성경관 역사관이 통째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에 맞는 패러다임에 입각한 그런 기독교가 탄생해야지요. 그것이 제가 말한 심층종교적 요소를 받아들인 기독교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이 류영모 함석헌 선생이 지향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종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의 초상

-다석 류영모의 기독교관을 보면 톨스토이가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요.

“톨스토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다석은 독창적이라서 어느 한 사람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명상해서 발견한 것을 독창적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 괴테, 이런 사람들보다 어느 면에서 더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사람들은 서양에서 태어나 서양 사상만 가지고 생각했어요. 공자나 노자는 동양 사상만 가지고 생각했고요. 다석은 동양 서양 한국까지 다 알아서 종합적인 사유를 했고, 특별히 한국말을 가지고 자신의 독특한 신학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빈탕 한데’라든가, ‘가온 찍기’라든가.
특히 하느님을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계신다고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하느님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해요.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신이 절대적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없어요.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려니 그것도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노자의 경우는 ‘무’라고 하지만 류영모 선생은 둘을 합해서 ‘없이 계신 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는 불교의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과 비슷한데요. 한문보다는 얼마나 우리한테 착 들어맞는 말입니까.”

-다석 류영모의 종교 철학과 사상이 표층종교적인 신학을 개혁하는 데 빛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요?

“그럼요. 류영모 사상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자극 받아서 새로운 설명 방법이 나와야죠. 새로운 세대에 의미 있는 방법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해석해주는 겁니다. 함석헌 선생은 ‘껍데기를 붙들고 있는 정통 기독교는 역사의 골목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은 근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얼마 안 가서 근본주의는 지탱할 수 없을 겁니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그 전 10년 사이에 종교인구가 300만명이 줄어들었어요. 어느 목사가 한국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 1만개 정도는 없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넷 예배를 본다지만 교회에서 떨어져 있으면 헌금을 덜 하게 되니 종교는 앞으로 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는데 어쩌다 세계 각국의 종교를 비교연구하면서 때로는 개신교를 비판하는 길로 나가게 됐는지 궁금하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0리를 걸어서 경북 안동읍 교회에 갔습니다. 바로 위의 형님이 서울에 있는 교회학교를 다니다 방학 때 내려와 종교와 성경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관심이 커졌어요. 그래서 중학교를 교회학교로 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 2학년까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3학년 때 터는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종교에 대해서 뭔가 새롭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와중에 고등학교 때 루돌프 볼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라는 조그마한 책을 읽었습니다. 유동식 교수가 번역한 그 책을 읽으면서 종교를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보겠다는 마음에서 종교학과를 택했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분위기는 주로 서양 종교사상이나 종교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거기서 대학원을 마치고 캐나다 유학을 가서 보니 그 학교는 서양종교와 동양종교를 반반씩 가르치고, 동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서양종교를 부전공으로, 서양종교를 전공으로 하면 동양종교를 부전공으로 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으로 나갈 때 세계종교를 가르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그때 인도의 승려 용수(龍樹·150년경~250연경)의 중관론(中觀論)을 연구한 세계적인 학자 T. R. V. Murti 교수의 강의를 1년 들으면서 종교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노장사상과 선불교를 공부하고 화엄 철학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기독교 교적을 자진해서 정리하고 나니 종교에 대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독자가 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죠.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했다는 사람들도 생기죠.”

종교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인다

밴쿠버는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은 동네다. 겨울이 되면 낮에는 7도, 여름에는 낮에 더울 때가 25도고 30도를 넘어가는 일이 없다.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온다.
“화상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밖에 비가 오고 있습니다. 그 대신 4월부터 10월 초까지는 한국의 초가을 같은 청명한 날씨입니다. 단점을 찾자면 여기는 일자리가 별로 없고 집값이 비싸지요. 그런데 밴쿠버 교민들 중에 여기가 999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천(1000)당에서 한 끗 모자란다고….”
오 교수는 서재의 블라인드를 걷으며 마운드 베이커의 산자락을 보여주었지만 서재 밖의 원경(遠景)은 줌 화면에 잡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들 셋에 손자는 네 명. 자손에 모두 ♂만 있다. 며느리 둘이 모두 한국계인데 북미에서 태어나 오래 살다 보니 평소에도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셋째 아들은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여자 친구가 중국계 싱가포르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외할아버지가 한국계다. 두 남녀가 아마 한국계 DNA에 끌려서 가까워졌을 수도 있다.

내가 “50대 중반 무렵의 오 교수님을 처음 만난 것 같은데 지금 팔순에 접어들었죠”라고 묻자 “내년이면 80”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말해주시죠. 이 답변을 끝으로 국제 화상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쓴 책의 대부분은 제가 먼저 쓰겠다고 한 것은 거의 없어요. 어디서 부탁을 해서 쓰거나 연재를 한 것을 모아서 쓰거나 한 거죠. 지금도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요청이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책 쓰는데 바쳐야 할까요. 제가 쓴 책 중에 영어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여력이 있으면 그걸 번역하려고 생각 중이죠. 여기저기 강연 요청이 있는데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못 갔습니다. 올 10월에는 한국 종교 발전 포럼이라고 하는 모임에서 강연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때까지는 상황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골프도 열심히 치려고 합니다. 코로나 끝나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물 흐르듯이 사는 게 제 라이프 스타일입니다.”(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박하늘 인턴기자)

"그분은 제 소리를 냈던 사람입니다" ①-2 윤정현 신부 인터뷰

"그분은 제 소리를 냈던 사람입니다" - 아주경제


"그분은 제 소리를 냈던 사람입니다"
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입력 : 2021-01-13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① 윤정현 신부 <上>






윤정현 신부는 인터뷰에서 "다석은 동양철학과 기독교 사상을 회통했던 큰 스승"이라고 말했다. [사진=유수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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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위대한 종교 철학자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후반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지구는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근본주의 신앙으로 인한 전쟁과 살육이 그치지 않는다. 한국같은 다원주의 종교국가에서도 종교간 갈등이 심한 편이다. 세계의 한쪽에서는 탈(脫)종교 현상이 번지고, 다른 쪽에서는 근본주의 종교가 세계 평화를 깨트린다. 다석이 서구의 기독교 정신과 동양 전래의 유불선(儒佛仙) 사상을 회통(會通)해 풀어낸 다원주의 종교철학은 종교적 혼돈의 시대 21세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다석에게서 직접 배운 제자, 다석을 연구한 학자들을 찾아 큰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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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신부(대한성공회)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종교철학자 류영모 연구로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없이 계시는 하느님, 절대자에 대한 류영모의 이해’. 그런데 그보다 먼저 류영모 연구로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제1호 ‘류영모 박사’는 정통 기독교 재단 집안 출신이어서 비정통 기독교인을 연구해 세계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류영모 연구로는 두 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윤 신부의 이름이 더 빛이 나게 됐다.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연말 9인승 카니발을 타고 윤 신부가 사는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마을을 찾아갔다. 그는 2015년 2월 청주교회의 사제직을 내려놓고 고향인 전북 고창으로 왔다. 윤 신부가 태어난 마을은 그가 지금 거주하는 반암리에서 10km가량 떨어져 있다. 신라왕릉보다도 큰 마한의 봉덕리 고분군이 있는 마을이다. 인근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500여 기나 분포해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성공회 사제는 노후 복지가 가톨릭 사제만 못한 것 같다. 연금도 없고 거처도 제공되지 않는다. 자력으로 여생을 꾸려야 한다. 그는 봉덕리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왜 고인돌 마을로 가지 않았을까. 나는 처음에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요한복음 4장 44절)는 구절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집사람이 여성 쉼터를 하는데 전세 계약을 하고 2년 지나면 주민들이 싫어해 집주인이 재계약을 안 해줍니다. 동네 집값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10~20명이 거주하자면 큰 집이 필요하고 이사 다니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20년 동안 열댓 번 옮겼을 겁니다.”

천자문 거꾸로 외운 '3대 천재'로 소문

윤 신부의 아내 김미령 씨는 서울에서 성매매 여성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미혼모 여성의 자녀를 돌보는 일을 한다. 미혼모 가운데는 여고생들도 있다. 미혼모가 아이를 낳고 세상 속으로 숨거나 학교로 돌아가면 아이는 입양될 때까지 쉼터에서 돌본다. 출산율이 1.0 밑으로 내려간 나라에서 이런 아이들을 잘 돌봐서 훌륭하게 키워야 할 것이다. 아버지를 모르니 모두 새로운 성씨와 본관을 만들어준다. 성씨의 시조가 되는 아이들이다.

-신부로 사목을 하다가 영국 버밍엄 대학에 유학 가 다석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는데요. 왜 다석이었습니까?

“내가 성공회 사제라서 영국교회의 장학금을 받고 갔습니다. 영국 버밍엄에서 박사학위를 하자면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창조적인 걸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고, 영국의 사상이나 철학을 비평할 수 있으려면 몇 십 년 공부해야 하는데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요.
그런데 다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이 1996년도부터 스승에 대해 문화일보에 연재한 걸 책으로 펴냈습니다. 내가 신학교에서 접하지 못한 것이 가득했습니다. 영국에서 배우면서 창조적인 방법론을 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종교간 대화에 착안해 영국의 존 힉이라는 학자와 류영모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밖의 기독교인 다석 류영모

-다석은 전통적인 유불선 종교사상으로 기독교를 바라보고, 다시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동양의 유불선을 회통하여 다원주의 종교철학을 형성했는데요.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다석에게는 기독교와 유교와 불교, 노장철학 중에 어느 것이 먼저였습니까?

“그분의 삶 자체가 종교 다원주의의 토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은 불교적 바탕에 노장사상 같은 것들을 기본적으로 접하고 살았습니다. 류영모는 어렸을 때부터 천자문을 깨치고, 통감과 사서를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에 다석은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3대 천재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다석은 천자문을 거꾸로도 외웠습니다. 그 정도로 머리가 좋으신 분입니다. 동양 고전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1900년대 우리나라가 국운이 기울고 희망이 없을 때 ‘대한제국이 왜 멸망의 길로 가는가’ ‘대안은 무엇일까’하고 고민하다가 YMCA에서 강연을 듣고 기독교에 심취했습니다. 안창호 윤치호 서재필 선생같이 쟁쟁한 분들이 YMCA에서 강연을 했지요.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열다섯 살 때인 1905년에 기독교인이 됐습니다. 그해 종로 5가에 있는 연동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경신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기독교를 통해 일찍 서양문물을 접하게 된 겁니다.”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오강남은 저서 <예수는 없다>에서 한국에 온 선교사 대부분은 중국 일본에 간 선교사와 달리 미국 남부에서 온 근본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기술한다. 한국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성경을 일자일획 가감 없이 문자 그대로 믿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기독교 배타주의 문화를 근본주의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여왔다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은 미국과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만 서식하고 있을 뿐 서방 유럽 같은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라고 오 교수는 말했다.
다석은 오산학교에서 춘원이 빌려준 일본어판 톨스토이 전집을 탐독했다. 톨스토이는 4대 복음서를 간추려 ‘요약복음서’를 펴냈는데 동정녀로부터 예수가 탄생한 이야기나 예수의 부활을 빼버렸다. 류영모의 서가에는 톨스토이에 관한 책들이 가장 많았다. 박영호는 다석이 오산학교에서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비정통 신앙으로 전향했다고 ‘다석전기’에서 결론을 내린다.

-오 교수의 견해대로 유불선 문화에 배타적인 선교사들의 근본주의적 설교가 류영모의 사고에 점차 맞지 않았다고 봐야 하나요?

“기독교 선교사들이 편협한 사고에 젖어 있고 일부만 가르친다고 봤죠. 남의 얘기를 앵무새처럼 전달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상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사상을 완전히 소화해서 제소리를 내야 한다고 다석은 말했습니다. 다석은 ‘불경도 먹고, 유교 경전도 먹고, 모든 걸 먹는 거지’라며 자신의 위장은 그 어떤 것도 소화시킬 수 있는 철벽위장이어서 완전히 소화해 내 자신의 소리를 낸다고 했습니다. 다석 류영모 사상 중 중요한 부분 하나가 ‘제소리 내기’입니다.

다석, 오산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敎學相長

-오산학교에 가르치러 가서 배워온 셈이군요. 춘원 말고 다석에게 영향을 준 분이 또 있습니까?

“다석은 오산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이광수 여준 신채호 선생을 만났죠. 다석이 오산학교에서 기독교를 열심히 전도하니까 노장 사상에 밝은 여준이 ‘성경만 보지 말고 도덕경 천부경도 읽어보고 동양 고전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했지요. 여준 선생은 기독교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류영모 선생도 초기에는 그런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준 선생이 다석에게 다양한 책을 읽고 사고를 넓게 가지라고 권했습니다.”

-다석의 삶을 보면 목가적인 생활을 추구한다든가, 죽을 날을 정해놓고 가출을 한다든가, 톨스토이 따라 하기가 있었다고 하면 다석에 대한 결례가 될까요?

“톨스토이를 닮으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대목이 있습니다. 다석 사상에서 한 축은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을 받았고, 다른 축은 톨스토이, 그리고 헨리 소로 등 그 당시 지성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

-다석에게 영향을 준 간디 정신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간디의 평화사상이라든가, 다원적인 종교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로서 영국 교회가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간디도 영국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왜 교회에 나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영국인들이 가르치는 교회는 싫다. 하지만 예수나 성서는 좋아한다’고 답했습니다. 다석도 같은 입장이었죠. 서구 선교사들이 전해주는 교회는 싫지만 예수나 성서는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은 이슬람교의 호전성을 지적하며 “이슬람의 국경선은 피에 젖어 있다”는 말을 했다. 이슬람국가(IS)가 벌인 피의 살육전을 보더라도 헌팅턴의 지적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석의 종교다원주의가 종교간 화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개신교는 대부분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교파가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다석 사상을 이단 또는 비정통이라며 용납하지 않습니다. 다석은 자신이 정통 신앙주의자가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을 범신론(汎神論)이라고 말해도 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스스로는 범재신론(汎在神論)자라고 말했습니다. 범신론은 ‘나는 나무다‘ ’나는 신이다’라는 식으로 불교 신론(神論)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나무 안에 내가 있고, 내가 나무 안에 있다’ ‘나는 하느님 안에 있다’고 말하면 범재신론이라고 합니다. 범재신론은 ‘나는...이다’라는 범신론을 넘어설 수 있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단이라도 좋다. 나는 내 소리를 낼 뿐"이라고 다석은 말했습니다. 내가 깨닫고 느낀 사상을, 우주와 하나가 되어 내 소리를 낸다고 말했습니다. 생각하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고 다석이 말했지요.”

유태인들 선민사상을 한국 기독교 그대로 받아들여

-성공회 사제로서 교회를 이끌면서 다른 종교나 교파와 갈등을 겪기도 했을 텐데요.

“장례를 집전할 때 보면 온갖 종교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고인의 형제자매들 간에 기독교식으로 치러야 할지, 유교식으로 치러야 할지 논란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돌아가셨으면 하느님이 구원을 결정하실 일이지, 장례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서 지옥 갈 사람이 천당 가고, 천당 갈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성공회식을 고집하지 않고 유가족들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성공회식으로 하더라도 상여 메고 나가면서 동네 풍습을 따를 때도 있습니다. 매장할 때 성수를 뿌리고 흙을 덮기도 하고, 봉분할 때 찬송가도 부르고… 며느리가 기독교 신자고 시어머니가 불교신자일 경우 싸움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갈등 현장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석을 공부하면서 하느님은 종교 위에 계신 분이지, 종교 안에 계신 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라인홀드 니버가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을 썼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리스도는 문화 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문화 안에 또는 문화 아래 또는 어떤 철학과 사상, 이런 것에 갇힐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유태교 문화 속에서만 역사하는 분이 아니고, 우리 문화에서도, 중국 문화에서도 역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유태인들은 민족주의적 선민사상, 유대신앙 안에서만 하느님이 역사한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런 편협한 믿음을 한국 기독교가 받아들였습니다."

-다석이 톨스토이의 신앙에 가깝고 종교적 다원주의에 기우신 분인데… 사도신경이 아니라 산상수훈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했더군요.

“예수가 성경책을 쓴 것이 아니고 말씀만 전하셨습니다. 베드로, 마태오, 루가가 각기 흩어져서 ‘우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각각 자신의 공동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100년이 지나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가 사람인지 신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후대의 교부들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만들고 신자들에게 최소한의 이러한 기본 교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리학습을 위해 만든 것이 사도신경이고 교리며 신념체계입니다.”



윤 신부가 황호택 논설고문(왼쪽)과 고창 반암마을 인월재를 거닐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유수민 인턴기자]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은 사도신경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본래 말씀이고 사도신경은 이를 해석해서 교리로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념체계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아주 단순한 가르침입니다.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다 보니 철학, 사상이 붙고 교리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스 철학이 거기 첨부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 때에 신학대전이라는 교리 신학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산 위의 눈 한 뭉치가 굴러 내려오면서 커다란 눈덩이가 되면서 그 속에는 돌과 티끌, 온갖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단순한 진리에 잡다한 이야기와 교리, 신념체계가 반영된 것입니다.
다석은 교리적인 것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리적인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삶이 중요하지 교리가 중요한 건 아니죠. 게임기 안에 여러 프로그램을 넣으면 우리가 조종하는 대로 메트릭스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와 같이 신념, 교리 체계라는 종교 안에 신자들이 들어가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교리적인 사람이 됩니다. 제도 교회, 제도 신앙 안에 맴도는 것, 교회 안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체계 안에서 만족하는 것에 그치게 되지요. 그래서 제도종교는 현상과 신념 체계의 유지를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다석은 이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 말씀, 예수님 말씀을 삶으로 사는 것이죠. 동정녀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교리 생활에서는 그것이 중요하고 안 지키면 이단이라고 취급합니다. 옛날에는 이단으로 몰아 퇴출시키거나 화형시키고 했는데 종교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이죠.”

-정통 신앙에서는 동정녀 마리아에서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과 예수의 부활을 믿느냐 아니냐로 신자와 비신자를 가른다고 하는데, 그런 입장에서는 다석이나 톨스토이는 비정통인가요?

”그렇습니다. 정통주의의 교리 체계 즉 사도신경 신념체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이냐, 예수를 해석한 제도 교회의 가르침이냐의 차이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있고 불교가 따로 있는 것처럼. 예수님 하느님의 말씀이 있고 제도교회가 있는데 꼭 일치하지는 않는 거지요. 어떤 면에서는 제도교회의 재산 축적, 성범죄 등은 예수님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

-’산상수훈’의 핵심사상은 무엇이죠?

“하느님 나라죠. 하느님 나라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Kingdom of god)와 하늘나라(Kingdom of heaven). 하늘나라는 죽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하느님의 나라는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면 내 안에 이미 하느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면 이미 하느님 나라가 실현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그리스도교는 대개 하늘나라를 많이 가르칩니다.”

(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 박하늘 인턴기자)


<윤정현 신부 약력>

-1955년 출생
-1976년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고문을 받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6월 자격정지 1년 6월
-1982년 연세대 신학과 졸업
-1984년 성공회 사목신학연구원 졸업
-1986년 성공회 부제 서품 후 춘천교회 사목
-1987년 사제서품
-199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선교훈련원 간사,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파일 폭로 지원
-1993년 청원 묵방교회 관할사제
-1995년 서강대 대학원 입학
-1996년 영국유학
-2000년 정읍교회 관할사제
-2003년 영국 버밍험 대학에서 유영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
-2004년 대전주교좌성당 주임사제
-2004년 성공회대 신학전문대학 겸임교수
-2008년 22차 세계철학대회에서 “Non-Existent Existing God” 이라는 제목으로 다석 유영모의 신관(神觀) 발표.
-2010년 청주수동교회 관할사제
-2015년 신부 정년(65)을 채우지 않고 고창 반암마을로 귀촌해 수도 및 연구 활동



윤정현 신부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확인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youtu.be/kmeuBoY21UU


"나를 섬기면 종교된다" 다석이 경계
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입력 : 2021-01-20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② 윤정현 성공회 신부 <下>

윤 신부와 나는 1955년생 양띠 갑장이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교과서(국정)를 읽고 박종철 사건을 비롯해 동세대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이야기다. 나이를 알고 나니 또래집단(cohort) 의식이 생겼다. 윤 신부가 차를 따를 동안에 서울서 갖고 간 내 저서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을 내놓았다.
내가 “제가 3년 전에 쓴 책인데요. 박종철 탐사보도가 6월 항쟁의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는 관점에서 썼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6월항쟁이면 제가 사제 서품받았을 때인데…”라며 책을 들춰봤다. 나중에 보니 “없이 계시는 하나님” 박사학위 논문 첫머리의 ‘연구동기와 목적’ 주석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언급돼 있었다.
그는 대학입시에서 공과대학을 지원했으나 실패하고 재수 학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대화를 하던 중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을 했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중앙정보부에 고자질하는 바람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얽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을 산 전과 때문에 공대를 나와 가지고는 취직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연세대 신학과에 들어갔다.


독재정권 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윤정현 신부가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 책을 보고 있다. [사진=유수민 인턴기자]


춘천교회 부제로 일하면서는 강원대 한림대 학생들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춘천에는 군인 가족과 보수적인 이북 출신 주민이 많이 살았다. 누군가 교회 간판을 떼어가기도 했고 취객이 밤중에 교회에 들어와 “누가 힘이 센지 윤 신부 나와 한번 겨뤄보자”고 소리 지르는 일도 있었다. 1990년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현 NCCK)에 파송돼 선교훈련원 간사로 일했다. 그 무렵 윤석양 이병이 KNCC 사무실에서 보안사 민간인 사찰 문건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윤 신부는 기자회견을 마친 윤 이병을 경찰의 감시를 뚫고 밖으로 빼돌리는 일을 성공시켰다.
이런 삶의 이력을 알고 나서 박종철 책을 선물로 챙긴 선견지명(先見之明)에 잠시 흐뭇했다. 신부도 족보를 따지는지 그의 책꽂이에는 ‘파평윤(尹)씨 참의공파보(參議公派譜)’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

-하늘나라에 가면 몰라도 이 세상에선 먹는 것이 중요한데요. 하루에 몇끼 식사를 하십니까?

”저도 한때는 다석 선생을 닮기 위해 하루 한 끼를 먹었습니다. 다석 선생은 하루 한 끼를 저녁 무렵에 드셨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사목을 하다보니 신도 집에 초대받으면 불편했습니다. 초대받았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요. 여기서는 산에서 육체적 노동을 하다 배가 고프면 먹고, 고프지 않으면 안 먹습니다. 하루에 한 끼 먹을 때도 있고, 두 끼 먹을 때도 있습니다.

-하루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어야 건강하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저는 배꼽시계에 따라 먹습니다. 아침은 먹지 않습니다. 1983년 정도부터 안 먹었습니다.”
-옛날에 한국 사람들도 겨울에는 해가 짧고 식량이 부족하니까 1일 2식을 했습니다.
“서양도 1일 3식한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요. 중세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한끼도 했습니다. 아침에는 아주 간단하게 하고 저녁을 정찬으로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잉여농산물이 많으니까 잘 먹는 거지요. 서양에서도 중세 때는 수도원에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에 한 끼를 먹었다더군요. 그래서 배고픔을 잊게 하려고 3시간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에 아홉 번. 그 정도로 서구도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

-이 집에서 거주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계속 고영재(顧影齋)에 있다가 작년 봄부터 옮겨왔습니다. “
귀향 초기에 윤 신부는 반암골 산기슭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살았다. 쇠로 된 집은 여름엔 달구어진 깡통 같았고 겨울엔 냉장고로 변했다. 그래서 컨테이너 바깥 쪽으로 흙벽을 쌓고 지붕을 얹고 골방을 만들어 붙였다. 철제컨테이너와 흙벽의 복합건물이다. 식수는 계곡물을 끌어다 탱크에 받아 썼다.
고영재라는 현판은 청주의 운당 이쾌동 선생이 써준 글씨다. ‘고영’은 그림자를 돌아본다는 뜻이다. 책을 읽을 때 활자 뒤에 숨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차를 마시면서 사물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논한다는 의미다.



선석농원의 유산양들. 왼쪽이 윤정현 신부.[사진=유수민 인턴기자]

고영재 옆 선석농원에서는 개들을 사육하고 젖을 짜는 유(乳)산양을 몇 마리 기른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밭 두어 뙈기가 전부다. 반암골은 예부터 선인취와혈(仙人醉臥穴)이라고 불렸다. 선인들이 내려와 취해 누운 골짜기라는 뜻이다. 여기서 ‘선’을 따고, 그가 평생 연구하는 유영모의 아호인 다석(多夕)에서 ‘석’을 가져와 선석이라 지었다. 산양고기는 먹지 않고 새끼를 낳고 죽으면 그냥 묻어준다. 정이 들어서 먹을 수가 없다.
아내가 양육하던 성씨의 시조들이 하나 둘 오면서 추위를 피할 곳을 찾게 됐다. 고영재에서 1.5km 떨어진 반암 마을에 건설업자가 지은 집 한 채가 법적 분쟁에 휘말려 귀곡산장처럼 잡초가 우거진 채 11년째 비어 있었다. 부도가 나서 경매에 나온 것을 육촌이 덜컥 낙찰 받으니 집안싸움이 벌어졌다. 윤신부가 대출을 껴안고 사들여 수리하고 페인트칠 하니까 살 만해졌다.
이 집의 당호를 인월재(引月齋)라 지었다. 덕산으로 솟아오르는 달을 끌어들이는 집이다. 내가 찾아갔을 때 마당에서 바둑이(스피츠) 여덟 마리가 뛰어 놀았다. 무척 순한 종자다. 윤 신부가 한 마리 가져가라고 했지만 나는 집에서 고양이를 기른다. ‘달형제’라는 분이 쉼터의 어린이를 안고 있었다. 달형제는 매년 산티아고 순례길 300km를 맨발로 걷는 사람이다.

-인월재, 고영재… 한문 이름을 좋아하는군요. 다석 연구도 한문을 모르면 하기 어려웠겠지요. 언제 한문 공부를 했습니까?

“80년도에 광주 항쟁 때 계엄령으로 학교가 문을 다 닫았잖아요. 그 때 피신해있다가 집에 내려와 서당에서 공부했어요. 그 뒤로는 연세대 이가원(李家源) 교수 반에서 한문강의를 들었습니다. 학부 졸업 후에도 계속 혼자서 공부를 했지요.”

인간이자 사상가 예수를 후대인이 신격화

-고창에 영성공동체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요.

“여기서 한 6km 떨어져 있어요. 이길재 선생이 은퇴해 고창군 부안면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분이 선대로부터 받은 땅이 십 만평 있는데 4년 전부터 같이 재단법인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류영모 사상, 광주 동광원을 설립한 ‘맨발의 성인’ 이현필의 가난 정신, 동학혁명의 성지니까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이어받아 함께 농사도 짓고, 생활수도회와 같은 영성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을 했거든요. 재단법인을 설립하려면 기본자산이 20억 원이 있어야 한다는데 그 땅이 공시지가로 그렇게 안돼서 잠깐 보류하고 있는 거예요.”
반암리에는 동암 백남운의 생가가 보존돼 있다. 연희전문 교수였는데 월북해 북한에서 초대 교육상을 했고 최고인민회의(국회) 의장도 지냈다.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여기에 남아 있는 후손들은 박해를 받아 어렵게 살았다. 반암 마을에는 인촌 김성수 전 부통령의 할머니 묘와 제각(祭閣)도 있다. 윤 신부는 이곳이 정감록 비결에 나오는 십승지지(十勝之地)여서 묘가 많다고 말했다.

-다석이 훈민정음이나 한글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더군요. 그런데 한문을 번역한 순 우리말이 더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없이 계시는 하느님’을 쉽게 설명해주시죠.

”다석은 한글 가지고 놀이를 하셨습니다. 글자를 합성해서 그림문자 같은 걸 만드셨습니다. 여러 한글 자모음 조합을 통해 입체감 있게 강의안 한 장에 그려넣었지요. 그걸 가지고 두, 세 시간 강의를 하셨습니다. 어렵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이해가 됩니다.
다석은 아래아(ㆍ) 반치음(ㅿ) 옛이응(ㆁ) 여린히읗(ㆆ)이 없어진 걸 아쉬워했습니다. 우리가 옛한글 중에 쓰지 않는 4가지를 사용하면 세계 어느 나라 소리도 다 표현할 수 있는 문자입니다. 네모와 세모와 원 안에 한글 자모가 다 들어갑니다. 천지인 사상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가온찍기 한 사람이라고 해석합니다. 네모에 열 십자를 해서 가온을 찍습니다. 인간 예수가 하느님과 소통하는 가온찍기를 해서 말씀을 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간디도 그냥 간디인데 ‘마하트마’는 위대하다고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인간 예수인데 사람들이 존경한 나머지 예수를 높이 하느님 자리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예수가 된 것이죠. 그러한 그리스도를 류영모는 가온찍기라는 말로 다 표현합니다.
서양의 신론과 동양의 신론에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은 눈에 보이는 것에, 동양은 ‘무(無) 허(虛) 공(空)’에 관심이 큽니다. 도덕경이나 불교의 공사상 노장사상의 허, 무 사상은 비(非)존재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서양은 존재가 아닌 것은 그냥 물음표로 남깁니다. 다석 류영모에서는 유무(有無) 상통(相通)합니다. 하나의 존재에서 있음(有)과 없음(無)이 공존하고 그 자리에 절대자가 계시다고 한 것이죠. 그것이 동양적인 개념입니다. 하느님은 존재라는 개념에서 보이고 느껴져야 하는데 하느님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안 보입니다. 그럼 비존재인가? 무인가? 그건 아닙니다. 영적으로 계십니다. 유무 상통하기 때문에 있으면서도 없고, 없다고 하자니 영적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신의 개념을 유무상통으로 ‘없이 계신다’고 설명한 것이죠. 유와 무, 존재와 비존재의 사상을 통틀어서 설명해냈습니다.”

함석헌, 다석의 '씨알' 대신 옛글 쓴 속사정

-다석의 조어(造語) 가운데 씨알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씨알 사상의 핵심은 무엇이죠? 류영모와 함석헌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다석이 1959년 도덕경을 순 우리말로 완역했는데 백성 민(民)자를 그때 ‘씨알’로 번역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다석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씨알’이라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그때 다석은 함석헌 선생의 인기에 가려져 있는 분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 유신헌법과 억압정치 상황에서 함 선생이 권위주의 정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때 냈던 잡지가 ‘씨알의 소리’인데, 백성들의 소리, 스스로 외치는 소리라는 뜻이죠. 70년대 ‘씨알의 소리’를 낼 때는 류영모 선생과는 결별한 상태였습니다. 60년대 초반까지는 류영모 선생과 함석헌 선생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각별했습니다. 그즈음 함 선생의 여자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그 뒤로 다석은 함석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함 선생은 다석을 끝까지 모셨습니다. 다석이 내다보지도 않는데, 집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나의 해석인데 류영모 선생이 ‘씨알’을 쓰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함 선생은 ‘알'을 옛글 '아래아 알'로 쓴 것이죠.



씨알의 소리 통권 50호 표지

-그때 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다석을 잘 모르지 않았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류영모를 함석헌의 스승 류영모로 알았지요?

“류영모 선생은 제소리를 내라고 했고, 제소리를 낼 줄 알면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일종의 졸업을 시키신 것이죠. 그런데 졸업생 함석헌이 더 커버렸지요.”
언론인 이규행은 “다석이 이승을 떠났을 때 부음(訃音) 한줄 신문에 나지 않았다”며 매스컴의 허망함과 지식인의 맹점을 드러냈다고 자책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다석이 부음 기사에 실릴 만큼 세속적으로 유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함석헌은 유신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며 윤보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공동의장을 할 정도로 이름이 높았다.

‘마하트마 간디는 13살에 혼인해 37살에 금욕생활에 들어갔다. 류영모는 25살에 혼인해 51살에 금욕생활에 들어갔다. (박영호 저 ‘다석전기’).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다석의 해혼(解婚)과 금욕이 극단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1942년 가정생활을 하면서 종교생활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개 인도사람들을 보면 마흔이 됐을 때 출가를 합니다. 다석은 52살 때 정신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 가정생활을 중요시 않고, 정기를 태워서(바탈태우), 우리가 하느님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소통하는 에너지로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가정생활을 하지만 부부생활은 안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윤 신부는 인터뷰 중에 “다석을 존중하되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석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석을 성인으로 높일 뿐 아니라 신화화해서 세계 5대 성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분도 인간이고 사상가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도 남을 섬기면 우상숭배라고 하셨는데 후세 사람들이 예수님도 하느님 자리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천주교는 더 심해서 예수님을 낳은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자리까지 올렸습니다. 나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다석도 사람을 섬기면 우상숭배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외에는 섬기지 말라고 하셨죠. 다석 본인도 본인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상이든 체계화하면 종교가 되게 마련입니다. 다석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석 사상에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녹아있다고 말씀하시는데…동학이 백성을 최고의 가치에 두는 철학은 좋았지만 주술, 부적같은 것은 미신이라고 비판 받을 수 있지요.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의 복장(腹藏)에 있는 비기(祕記)를 손화중이 꺼내가서 군사가 많이 모여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선운사 도솔암이 미륵신앙의 중심지입니다. 메시아 사상처럼 미륵세계가 올 거라는 신앙이죠.”
손화중 장군의 삶을 성공회 신부의 설명으로 풀어본다. 고창 무장현에서 전봉준 장군이 접주인데, 손화중 장군은 접주를 거느리는 포주였다. 그래서 따르는 신도와 군사가 많았다. 세력도 크고 인품도 있고 공부를 많이 한 선비였다. 세상을 새롭게 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전봉준이 몇 번 찾아왔다. 처음에는 손화중이 상대를 안 하다가 전봉준이 계속 와서 설득하니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학운동을 처음 시작한 창의문 낭독에 손화중이 나간 것이다. 비결서를 가졌다고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따르고 신격화할 것이 아닌가. 비결서의 존재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대개 우리가 절이나 불상을 조성할 때 기록 같은 걸 넣는다. 그런데 검단선사가 도솔암을 만들고, 마애불을 조성하면서 복장에 불경이나 조성 경위를 적은 유물을 넣었을 것이다. 비기(祕記)가 전설로 내려온 사연이다.


손화중의 전설이 서려 있는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사진=황호택]

이 일대에는 전라관찰사 이서구의 일화가 많이 있다. 이서구가 전라관찰사로 와서 비결서가 있다고 하니 꺼내보려고 했다. 그런데 열어보다가 벼락이 떨어져 ‘전라관찰사 이서구가 본다’라는 대목만 읽고 덮었다. 여기에 손화중이 이서구가 보지 못한 비결서 내용을 다 보았다는 전설이 붙은 것이다. 아마 비결서를 갖고 있다는 말 때문에 농민군이 많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을 엿볼수 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총을 가졌는데 농민군은 부적을 품고 죽창으로 돌격하다가 실패했는데…?

”동학군도 총을 피하기 위해 큰 대나무 방패를 밀면서 가기도 하고 나름대로 전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식 총이 워낙 위력을 발휘하니까 겁나서 도망가다 서로 넘어지면서 죽은 경우도 많습니다.“

천부경도 배달민족 사상이 구전되다 기록된 것

-대종교의 천부경에 대해서 사학계가 위서(僞書)로 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천부경을 다석이 해석한 것에 큰 의미를 두어야 하나요?

”예수님의 말씀도 나중에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도 옛 어른들이 말로 ‘창세기에 어떻더라’는 이야기가 율법사들을 통해 구전(口傳)되다가 기원전 500년 경에 문자로 기록이 된 것 아닙니까. 그와 같이 천부경도 배달민족의 사상이었는데 나중에 내려오는 얘기들이 기록됐다고 봅니다. 그 기록이 역사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자료냐, 이런 것보다도 우리 민족의 사상,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구전으로 ‘단군은 이런 분’ 이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내려왔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사상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다석은 중국과 다른 우리 민족 고유 사상을 찾고 해석했습니다. “

인터뷰를 마치자 배꼽시계가 알람을 울렸다. 윤 신부의 안내로 심원 앞바다 ‘금단양만’이라는 식당에 가 고창 복분자주에 장어를 먹었다. 이제 자연산 장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 인공부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치어를 사와 사료를 먹여 키운다.
신부는 식당에서 장어를 손질하고 남은 부스러기 고기를 받아 다시 고영재로 왔다. 개들이 밥을 가져온 줄 알고 꼬리를 치며 달려왔다. 산양들도 내려왔다. 윤 신부는 바로 옆 국가지질공원으로 우리를 데려가 병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술병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병바위를 오르는 마삭덩굴과 담쟁이들은 암벽 타기에 지친듯 모두 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터뷰어 황호택 논설고문·정리 박하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