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2

알라딘: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존 파이어 레임디어John (Fire) Lame Deer

알라딘: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존 파이어 레임디어,리처드 얼도즈 (지은이),
원제 : Lame Deer, Seeker of Visions (1994년)

8.0 100자평(0)리뷰(2)

품절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 품절 확인일 : 2017-03-09

새상품 eBook 중고상품 (2)
판매알림 신청 출간알림 신청 6,300원


기본정보
488쪽

책소개

Yes24 서점 책소개

이 책은 수우족 사회 안팎에서 살아온 레임디어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 비범한 인물의 통찰에 기반한 이 책은 민족지적 역사서이고, 뛰어난 이야기꾼의 저작이며, 동시에 유머와 과정 없는 현실로 충만한 책이다. 책 속에서 우리는 멸종해가는 한 종족이 아니라 되살아난 인류의 존재 이유와 비전을 볼 수 있게 되며, 인어언의 문화와 정신을 알려주는 영적 고선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


수우족 인디언 주술사, 절름발이사슴의 자전적 구술 에세이. 기존의 인디언에 대한 통념을 깨트리며 인디언의 문화와 정신, 역사, 백인 사회와 맞닥뜨리며 겪은 이야기, 문명에 대한 비판 등을 담았다. 열여섯 살이 된 절름발이사슴이 성인의 이름을 얻는 이야기와 전쟁과 자본주의 경제의 유입, 개인과 부족의 붕괴, 부족민들의 문화적 응집력에 대해서 보여준다.

또한 인디언들이 영성과 일상이 하나인 상징과 이미지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동그라미의 철학에 대해 설명한다. 이밖에도 인디언의 성 문화와 가족 문화, 치유의 방법과 종류, 주술사의 일, 수우족의 일곱 가지 전통 의식 등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언덕 위에 홀로 서서
2. 뉴욕 박물관에 있는 저 총은 내 것
3. 배추잎의 세상
4. 술에 취해 감옥에 가다
5. 루즈벨트 머리 위에 앉아서
6. 동그라미와 네모
7. 올빼미와 나비에게 이야기하다
8. 담요 속의 두 사람
9. 주술의 좋고 나쁨에 대해
10. 할아버지의 숨결―땀목욕재계
11. 미지의 곳에서 온 작은 불빛들―유위피
12. 해를 보며 춤추다―태양춤
13. 나무를 해치지 마라―페요테 의식
14. 세상을 말아올리자―신령춤
15. 위와 아래, 앞과 뒤, 차가움과 뜨거움
16. 피가 돌로 변하다

끝맺는 말 : 인얀 와시춘, 신성한 돌을 가진 백인
용어해설
추천도서
접기


책속에서


우리 수우족은 내면에 우리를 통제하는 뭔가가, 거의 제2의 인물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어. 우리는 이것을 '나기nagi'라고 부르는데, 사람들이 혼이니 영이니 본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거야. 보거나 느끼거나 맛볼 수도 없는 그것이, 언덕 위에서의 그때, 정말 그때 딱 한 번, 그것이 내 안에 있음을 느꼈지. 그러자 봇물처럼 내 안으로 쏟아지는 권능이 느껴지더군.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권능이 나를 가득 채웠네. 그제서야 내가 '주술사, 위차사 와칸wicasa wakan'이 되리라는 걸 확실히 알겠더군. 다시 눈물이 앞을 가렸는데, 이번에는 행복에 겨워서였어. 
- 본문 77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존 파이어 레임디어 (John (Fire) Lame Deer) (지은이)

인디언 인권 운동가, 이야기꾼, 로데오 경기의 광대, 간판장이, 죄수 등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의 한 자취를 남겼다. 인디언의 전통에 따라 주술사의 비전을 보고 주술사로 살아갔으나, 인디언 사회 안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고 백인사회 안팎에서 여러 활동들을 했다.

최근작 :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 총 5종 (모두보기)

리처드 얼도즈 (Richard Erdoes) (지은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민족지 학자이다. 「타임」지, 「라이프」지, 「뉴욕타임스」지 등의 유명 잡지사에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겸 사진작가로 일했다. 20년 가까이 뉴욕과 인디언 보호구역의 집을 오가며 인디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어울렸다. 1960~1970년대에 부인과 인디언 민권운동에 관여했다. 지은 책인 <내 이름은 용감한 새>는 아메리칸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또한 그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던 AIM(아메리카 인디언운동) 관련 행진과 이벤트에 두루 참여했고, 2004년 현재 뉴멕시코의 산타페에 살고 있다.

최근작 :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 총 48종 (모두보기)

정도윤 (옮긴이)

1960년에 태어났다. 한국여성민우회,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주민생활협동조합 등 여러 사회 단체에서 활동했다. 2005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아메리카 인디언의 세계'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명상 HOW TO>,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만의 브랜드 만들기 10대에 시작하라>가 있다.

마이리뷰


원과 네모

"우리 사고방식대로 하면 인디언들의 상징은 둥근 원이야. 자연은 사물이 둥글기를 원하거든. 사람이나 짐승 몸에는 모서리가 없어. 우리에게 원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들, 담뱃대가 손에서 손으로 넘겨지는 동안 평화로 연결되는 친척과 친구들의 연대를 뜻하지. 각각의 티피가 나름의 자리에 앉은 캠프 형태도 둥글었어. 티피 자체도 사람들이 둘러앉게 되어 있는 둥근 모양이어서, 마을의 모든 가족들이 더 큰 원 안에서 원을 그리지. 그리고 그건 하나의 나라를 나타내는 수우족의 일곱 ‘모닥불 모임’(부족)이라는 그보다 더 큰 원의 일부였고, 그리고 한 나라는, 둥근 지구와 둥근 태양과 둥근 별들로 이루어진 그 자체로 둥글게 순환하는 우주의 일부일 뿐이고 말일세. 달과 지평선과 무지개도 시작도 끝도 없는 원 안의 원들이지.

이건 우리에게 아름다움인 동시에 타당함이고 상징인 동시에 현실이라네. 생명과 자연의 조화를 표현하는 거지. 우리의 원은 영원한 흐름을 뜻한다네. 이건 죽음에서 새로운 삶이 솟아나고, 생명이 죽음을 이기고 나온다는 뜻이지.

백인의 상징은 네모야. 백인들의 집도 그렇고,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는 벽이 있는 사무실 건물들도 그래. 낯선 사람들을 들이지 않는 문도, 달러도, 감옥도 모두 네모야. 가전제품들, 텔레비전 세트와 라디오와 세탁기와 컴퓨터와 자동차들도 모두 상자, 상자, 또 상자들이지. 이것들에는 모서리와 예리한 날이 있지. 정시(定時)라든가 약속시간에 딱 맞추기, 타임워치와 러시아워, 이런 게 내가 말하는 모서리야. 자네들은 이런 상자들에 갇힌 죄수가 되어가지."

묵향 2015-01-27 공감(1) 댓글(0)




그대로 부딪히다

도서관에 찾아보니 있길래 기쁜 마음으로 빌려 읽었다.
서정적인 표지 디자인, 서정적인 책 제목, 책 뒤에 '영적 메시지!'까지
이 책은 언뜻 봐서는 읽은 사람을 치유해줄 것 같은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독자의 상처를 보듬는게 아니라 상처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힐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읽힐 가치가 있다.


소수가 되어버렸다는 이유로 외부의 시선으로만 쓰여졌던 많은 책과 달리
생생한 개인사가 있고 한 민족의 정신이 흐르고 있어 붉은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이해하게 되었다.


Red Man과 Sioux 족은 각각 백인과 포니족이 이들을 경멸하여 불렀던 말이지만
저자는 개의치 않는다. 이들의 언어에 붉은 길이라는 뜻의 Canku Luta는 모든 것들과 함께 걷기를 열망하는 생명의 길을 뜻한다. 때문에 붉은 사람들이라는 말도 나쁜 의미로 쓰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한 상태로 책을 집어들었지만 다 읽은 한참 후까지도 담뱃대의 연기가 나를 계속해서 휘감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읽다가 속상해서 울게 된 책은 처음이다.

밤해 2017-10-08 공감(0) 댓글(0)

===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l******6 | 
2004-10-13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2208

미국대륙 사우스다코타주는 원래 인디언의 땅이었다. 기실 미대륙 전체가 인디언 땅이었지만... 사우스다코타주에서 조상대대로 인디언으로서 살아온 수우족 남성, 존 파이어 레임디어(John Fire lame deer-인디언이름 절름발이사슴)는 인디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젊은시절 방황하는 히피처럼 살았던, 지금은 부족의 주술사로서 지극히 인디언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어쩔수없는 인디언 남자인 그런 사람이다... 연휴동안 이 사람이 쓴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은것이 없다'는 책을 읽었다. 아니 아직 조금 남았다..^^ 

그는 책에서, 인디언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으로(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백인중심의 미국사회로 부터 침략을 받았는지 잘 묘사해놓고있다. 절대 과격하지도 격렬하지도 않지만 , 절름발이사슴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 온 일상이 그런 인디언사회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우기 그가 털어놓는 인디언사회의 자연,가족중심의 공동체관은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큰 몫을한다. 

그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내 관심을 끄는것 중의 하나는 '숫자 4'에 대한 인디언들의 생각이다. 숫자 4가 가장 천대받고 멸시받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아닌가??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4는 가장 영적이고 성스런 수라고, 4는 지구의 네 방위인 타루예 토파(Tatuye Topa)를 뜻하고, 그런 상징 중 하나가 우마네(Umane, 윗그림)라고.....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백인들은 네모세상에 갇혀서 자연과 조화할줄 모른다고. 네모로 된 아파트에서 네모로 된 텔레비젼을 보고 네모로 된 달러를 모으느라 네모로 된 자동차를 타고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고. 살아가는 모든것에 예리한 모서리가 있는 네모랑 함께한다고. 그래서 인디언들은 백인들을 네모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디언들의 상징은 둥근 원이라고 한다. 자연은 사물이 둥글기를 원하고 사람이나 짐승에는 원래 모서리가 없는것이라고. 둥근것은 평화와 조화와 동지애를 뜻한다. 모서리 없이 누군가를 언제든지 받아들이는 둥근원, 어느위치에 있어도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위치하는 평등을 나타내는 둥근원, 침략과는 거리가 먼 인디언사회 뿐만 아니라 평화로웠던 고대중국의 어느 시대에는 둥근것을 숭배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또는 유럽강국, 미국..이런 침략사를 가진 나라들의 유적에서 우린 둥근원의 유연함 보다는 네모의 모서리진 거대한 유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참으로 재미있지않나?? 고작 네모와 둥근원의 비교일 뿐이데.. 한낱 도형들을 한 사회의 세계관을 가치관을 엿볼수있으니... 근데 절름발이의 말에서 첨에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 부족이 그렇게 싫어하는 네모는 그들 부족이 그렇게 숭배하는 숫자 4와 연관되어 있지않냐고. 네개의 꼭지점과 모서리로 이루어진 네모... 하지만 금새 알수있으리라.. 단순한 네모와 숫자 4가 그려내는 우마네(Umane)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것을... 우마네에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다. 그 날카로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또 다른 손내밈, 또 다른 친절한 길이 나 있다... 자연과 사람을 향한 그 손내밈이 우마네에는 있다. 그래서 숫자 4를 상징하는 우마네는 네모라기 보다는 그냥 우마네이다. 여기에 인디언들이 우마네를 아니 숫자 4를 숭배하는 이유가 있다. 자연과 사람이 둥글다는것을 알고, 그 자연과 사람이 사는 이 지구가 4방위로 뻗어있음을 알고, 그 뻗어있음으로 지구는 다시 둥글어진다는것을 알고,,,, 이 모든것을 대대로 알고 지켜온 이들이 바로 그들 인디언들이다.. 숫자 4...!!!! 이제 나에겐 숫자 4는 그냥 숫자 4가 아니다..... 숫자 4가 좋아지려한다..... 그냥 그래지려한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2 댓글 0

Sung Deuk Oak [Public의 뜻]요즘 public thelogy라는 말을 많이 쓴다.

(5) Facebook

Sung Deuk Oak

[Public의 뜻]요즘 public thelogy라는 말을 많이 쓴다. 

100년 전에는 public health(보건, 공중보건)라는 말이 유행했다.
병원을 차려 놓고 찾아오는 환자 개인을 치료하던 방식에서, 병원에 오기 어려운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가정과 마을과 공동체의 건강을 향상시킨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농촌으로, 도시 빈민촌으로, 학교로, 공장으로, 가정으로, 의사와 간호원들이 들어가 위생 사업, 예방주사, 전염병 예방 교육,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모자 교육, 우유 공급, 탁아소 사업 등을 실시했다. (1928년 예루살렘 국제선교대회 후 농촌 사업 적극 추진)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직장을 둔 목사나 전도사가 아니라,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일반민을 위해서 밖으로 나가서 마을 속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들의 고통과 질병을 치유하는 목회/신학 개념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공중/공공 신학은 무엇이 다른가? 당장은 내 일로 인해 공부할 수 없으니, 미리 공부하신 분들이 댓글에 간단히 공부 입문과 과정을 지도처럼 그려주면 좋겠다. 
내가 이해하는 공적 신학의 출발은, 종교/기독교가 'politically correct'한 일반 시민의 공적 차원에서 설 자리와 발언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공적 신학의 이름으로 기독교 신학도 다른 학문이나 영역처럼 동등하게 하나의 영역을 차지하고, 고유의 목소리를 내고 대화하고 참여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는 공공 차원에서 신학의 목소리가 먹히는지, 안 먹힌다면 누구 책임인지 궁금하다. 예를 들면 신학자의 논문/책을 일반인이 읽는가? 기독교 신문을 일반인이 읽는가? 신학자의 공공 신학 유투브를 일반인이 보는가? (신학 강좌에 50명 시청, 고양이 동영상 하나에 5,000명 시청.) 여전히 내가 차려 놓은 밥상에 와서 먹으라는 식은 아닐까?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기독교와 사회/정치/경제/문화와의 대화/참여가 더 중요하다. 공적 신학이 학자들의 놀이터가 아니라면, 논문이나 책이 아니라, 어디서 발설되고 실천되어야 할까?  

100년 전 한국에서 공중 보건 사업에 기독교인 의사와 간호사들이 적극 참여했다. 특히 신생아, 유아, 어린이, 산모의 보건 사업의 대부분은 그들이 수행했다. 탁아소와 유치원도 기독교에서 먼저 시작했고 추진해 나갔다. 지금으로 치면 사회복지 사업을 "public health" 이름으로 실천했다. 

한국의 기독교인 의료진과 의료 사업이 병원 확장에 몰려 있다면, 이는 대형 교회 현상과 무엇이 다른가? 최신, 첨단, 편리, 규모, 브랜드의 이름으로 개교회 중심주의, 개병원 중심주의를 추진하다 보면 결국 사유화, 집단이기주의로 가고, 잠시 흥행하는 듯해도, 지속가능하지 않아 몰락한다. 그들에게 퍼블릭의 개념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지만, 교회와 병원은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의 십자가를 채플에 가두어 둔다고 하면 과언일까? 한국 사회가 병들어 있다면, 교회는 어디로 들어가야 할까? (예장 통합 총회는 브랜드 가치도 까먹고 있지만...)
#옥묵상

4 comments


Shin-sung Kong
평신도 운동 ,작은 교회 연합 운동이 필요해 보입니다...신세대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입니다...중대형 교회라도 소그룹 운동이 필요해 보이기도 하군요...젊은 새대들이 점점 개인주의화되니...자기에게 적합한 교회 ,적합한 신앙?? 를 찾아 나서는 것 같고...한국 교회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이대로 가면 서구처럼 문닫는 교회가 늘어날 것 입니다...이미 시작이 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Reply9 h
"Most relevant" is selected, so some replies may have been filtered out.

Author
Sung Deuk Oak
Shin-sung Kong 어려운 시절, 평신도가 나설 분야가 있겠지요.
===
공적 신학 위키백과

공적신학 (Public theology)은 일반 은총에 근거하여 기독교인들이 교회와 사회의 일반적인 관심에 대하여 참여와 대화를 추구하는 신학이다. 공공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독교 신학은 사회를 향해서 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더불어 대화한다.  이것은 공적으로 이해될수 있으며, 공적 토론과 비판적 질문을 갖는 방법으로 제시되어야 한다.[1]

주제의 발전
공적 신학을 처음으로 만든 학자는 시민 종교에 반대한 마르틴 마티(Martin Marty)이다.[2] 시민종교는 일반적으로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서 종교에 더 치우치지만, 공적 신학은 기독교인의 관점에 뿌리를 가지고 사회와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의 공헌에 더욱더 정체성을 둔다.[3]

데이비드 트레시(David Tracy)도 공적 신학에서 공적인것이 무엇인가에 질문을 던진다,[4] .[5]

비판
공적신학은 주제의 광범위성으로 인해 특정 문제에 대하여 전문적인 접근과 전문적인 방법에 대한 결여를 나타낸다고 한다.[5]

===
 Forrester 2004.
 Marty 1974.
 Stackhouse, Max L. (2004). “Civil Religion, Political Theology and Public Theology: What’s the Difference?”. 《Political Theology》 5 (3).
 Stackhouse 1998.
 Kim 2011.
===

Public theology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ump to navigationJump to search

Public theology is the Christian engagement and dialogue within the church and especially with the larger society. It seeks the welfare of the state and a fair society for all by engaging issues of common interest to build the common good. This is Christian theology that talks with society not just to society.[1] This is done by presenting the Christian position in a way that can be publicly understood and thereby open to public debate and critical enquiry.[2]

Key developments[edit]

The term public theology was first coined by Martin Marty to contrast against civil religion.[3] Civil religion looks more generally at religion in relation to the state, whereas public theology is rooted in a Christian standpoint and identity as it considers its contributions to the society and the state.[4][page needed]

David Tracy asked what the "public" in "public theology" meant. He identifies three publics that public theology should try to engage in dialogue with: the society, the academy and the church.[5] He suggests that, given these publics, the language and rationale used should be openly accessible by all and not couched in theologically elitist terms. Since Tracy identified these three publics, others have suggested the addition of other "publics" such as economics,[6] law,[7] the market, media, and other religious communities.[8]

Harold Breitenberg suggests that most literature on public theology falls into one of three classes.[9] Firstly, there are studies on key public theologians and how they understand the topic.[10] Secondly, there are discussions on the nature and the shape of public theology.[11] Lastly, there is "constructive public theology" which is the actual doing of public theology.[12] The first two aim at developing public theology as a field of study while the last one is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it.[13]

Some notable figures in this field are Dietrich BonhoefferWilliam TempleMartin Luther King Jr.Desmond TutuJürgen MoltmannRonald ThiemannDorothee SoelleJohn Courtney MurrayReinhold NiebuhrDuncan ForresterMax Stackhouse, and Sebastian C. H. Kim.

Common traits[edit]

While there is no authoritative definition or corpus of books on public theology, there are several common traits which are observable in varying degrees. Katie Day and Sebastian Kim note six common "marks" of public theology. Firstly, public theology is often incarnational. It is not confined to the church but meant to be relevant to people outside of it as well. It is meant to be realistic and concerned with all aspects of societal life. Secondly, there is often discussion over which public(s) to engage and the nature of the public sphere. Thirdly, it is interdisciplinary because it draws on other fields of study in order to be more relevant to society. Fourthly, public theology always involves dialogue and critique from both the church itself and society as well. Fifthly, it has a global perspective because many issues affect countries across borders, such as immigration, climate change, refugees, etc. Lastly, public theology is performed, not just printed in books. This field of theology is not theorized first then applied, but it is a theology that develops and evolves while being expressed in society.[14]

Compared with political theology[edit]

Public theology and political theology share many common points. They have overlapping concerns for social justice and Christian engagement in the public and political sphere.[15] They also share similar concerns that the Christian faith is more than individual piety. It has a role to play in building societal peace, justice, and the common good.[16]

However, they differ in many ways as well. Political theology tends to be more radical in its pursuit for societal transformation, sometimes compelled by a sense of crisis. Public theology, on the other hand, is more moderate. It seeks to bring change gradually through social analysis, public dialogue, and shaping the moral fabric of society. So political theology tends to be more revolutionary while public theology is more reformative.[17]

Political theology is directed more towards the government or the state, whereas public theology is more towards civil society.[18] This is because political theology is more concerned with a just political system whereas public theology is more concerned for a just society for everyone, open dialogue,[19] and the building a common ground.[20]

Criticism[edit]

A common critique of public theology is the overly broad range of issues it is concerned with. Because it seeks to engage in all issues that concern the society, public theology may find itself spread too thin across these issues. As a result, it may fail to engage the issues with sufficient depth and academic rigour because it lacks the necessary subject matter expertise. This overt broadness may also cause public theology to lack a focused approach and method because each issue may require a different methodology.[21]

Another critique public theology faces is the inherent difficulty in retaining its Christian distinctiveness while being publicly relevant.[22] Too much weight in either direction may cause it to be irrelevant to the public or bearing no distinct Christian witness.[23] The tension may be ideal in theory, but difficult to achieve in reality.[24]

See also[edit]

References[edit]

Footnotes[edit]

  1. ^ Day & Kim 2017, p. 14.
  2. ^ Forrester 2004, p. 6.
  3. ^ Marty 1974, p. 359.
  4. ^ Stackhouse 2004.
  5. ^ Tracy 1981, pp. 3–5.
  6. ^ Stackhouse 1998, p. 166.
  7. ^ Benne 1995Kim 2011, p. 19.
  8. ^ Kim 2011, pp. 10–14.
  9. ^ Breitenberg 2003, p. 63.
  10. ^ Breitenberg 2003, pp. 63–64.
  11. ^ Breitenberg 2003, p. 64.
  12. ^ Breitenberg 2003, pp. 64–65.
  13. ^ Breitenberg 2003, p. 65.
  14. ^ Day & Kim 2017, pp. 10–18.
  15. ^ Lee 2015, p. 57.
  16. ^ Lee 2015, p. 53.
  17. ^ Kim 2011, p. 22; Lee 2015, p. 54.
  18. ^ Bell 2015, p. 117.
  19. ^ Kim 2011, p. 23.
  20. ^ Kim 2011, p. 22.
  21. ^ Kim 2011, pp. 20–25.
  22. ^ Kim 2011, pp. 19, 25.
  23. ^ Kim 2011, p. 19.
  24. ^ Kim 2011, p. 25.

Bibliography[ed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