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7

〈오대산 노송〉 < 출판 < 금강신문 2020

〈오대산 노송〉 < 출판 < 뉴스 < 기사본문 - 금강신문

〈오대산 노송〉
기자명 이강식 기자
입력 2020.03.26


월정사 현해 스님 삶·수행 회고록
현해 스님/민족사/19,500원


1958년 평창 월정사에서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60년이 넘게 전법교화와 수행에 매진한 구순을 바라보는 노승이 있다.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과 조계종 종회의원을 역임했고, 2007년 원로의원으로 추대된 현해 스님이다.

현해 스님이 자신의 삶과 수행의 발자취를 기록한 회고록 〈오대산 노송〉을 펴냈다. 책 제목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자신이 마치 구부러진 오대산의 병든 노송(老松)과 같다.’는 스님의 말에서 따왔다.

이 책은 △기독교 집안에서 피어난 법연(法緣)의 꽃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하다 △만행과 운수 행각의 길 △동국대 종비생 1기, 희망의 꽃을 품다 △나의 스승 나의 은사 △만학도, 현해탄을 건너다 △회향, 수행자로 사는 법 △낙엽귀근(落葉歸根), 돌아갈 자리를 생각하며 등 8장으로 이뤄져 있다.


‘기독교 집안에서 피어난 법연(法緣)의 꽃’은 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로 △해방 이전 어려운 생활상과 가족 △학교 진학의 어려움과 공부에 대한 열망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품고 방황하는 청년기의 삶 등이 담겨 있다.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하다’에는 희찬 스님을 만나 출가자의 삶을 살게 된 이야기, ‘만행과 운수 행각의 길’에는 절도와 강도 사건 경험담과 인근 초등학교 교장과 빚은 마찰 등이 수록됐다.

‘동국대 종비생 1기, 희망의 꽃을 품다’에는 출가 후 제1기 종비생(宗費生)으로 동국대에 입학한 뒤 학업에 정진하는 모습, ‘나의 스승 나의 은사’에는 은사 희찬 스님을 비롯해 현해 스님 자신의 삶과 수행의 길잡이가 되었던 범룡·석주·청담·벽안 스님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만학도, 현해탄을 건너다’에는 일본 유학 생활 당시의 상황과 고민,
‘회향, 수행자로 사는 법’에는 10·27법난의 아픔 등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 수행자로서의 삶에 대한 깨달음과 가르침 등을 수록했다. 끝으로 ‘낙엽귀근(落葉歸根), 돌아갈 자리를 생각하며’에서는 불교계의 원로로서 한국불교의 나아갈 바를 조언하고 있다.

한국불교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5-문수 신앙 < 연재 - 불교신문 2004

한국불교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5-문수 신앙 < 연재 < 기획연재 < 기사본문 - 불교신문

한국불교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5-문수 신앙   
연재
입력 2004.02.13 


화엄경 근거… ‘오대산에 진신상주’ 믿어
사진설명: 문수보살의 진신이 상주한다는 오대산 상원사. 문수신앙의 성지답게 수많은 설화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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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시대 화엄종의 선사인 무착스님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위해 문수보살의 영지(靈地)인 중국 오대산 금강굴에서 용맹정진 했다. 하루는 양식이 떨어져 마을로 가서 탁발을 하고 오다가 한 노인을 만나 법거량을 했는데 노인의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라는 공안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인은 간곳없고 허공에서 게송 한 구절이 들려왔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口裏無瞋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心裏無瞋是珍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無染無垢是眞常)

무착선사는 문수보살을 직접 뵙고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더욱 정진하여 마침내 앙산(仰山) 선사의 법을 받아 깨치고 대자유인이 되었다. 어느 해 겨울, 무착스님이 동지팥죽을 쑤는데 김이 나는 죽 속에서 문수보살의 모습이 거룩하고 장엄하게 나타났다. 그러자 무착스님은 팥죽 젓던 주걱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문수보살은 “내가 바로 자네가 그리도 만나고자 했던 문수라네 문수” 라고 말했다. 무착스님은 “문수는 문수고 무착은 무착이다. 석가나 미륵이 나타날지라도 내 주걱 맛을 보여주겠다” 하니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그 유명한 문수동자게와 팥죽 주걱 맞은 문수보살에 얽힌 이야기다.


문수는 지혜상징… ‘부처님의 어머니’

조선 세조 때 문수동자 치료 설화 ‘유명’



문수보살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처럼 스님들의 수행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무착선사 앞에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듯 문수보살은 자장율사 앞에 남루한 차림의 거사로 화현했는데 자장은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문수보살에 얽힌 사연들은 관음이나 미타 지장 등 다른 대승의 보살들과는 내용이 약간 다르다. 이들이 주로 일반 서민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반면 
문수보살은 스님들의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문수신앙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지혜란 세속에서는 명석한 두뇌를 가리키지만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이루는 혜안을 말한다. 

지혜와 행원은 불교의 두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측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우측에는 행원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모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깨달음의 핵심적 내용인 지혜를 상징하다 보니 문수보살은 주로 수행자들의 공부를 경책하는 역할을 많이 맡는다.


자장율사가 우리나라 처음 소개

사진설명: 상원사 문수동자상.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인 문수는 산스크리트어로 만주슈리(Ma─ jushri)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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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는 뜻이다. 묘길상(妙吉祥)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 역시 지혜가 뛰어난 공덕을 지닌 보살이라는 의미다.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으며, 경권(經卷)을 들고있다.


문수보살이 타고 있는 사자는 짐승중에 가장 지혜롭다고 한다. 산 전체가 문수도량인 강원도 평창 오대산 중대를 사자암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혜의 말씀’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음(法音)이나 선종 조사들의 법문을 사자후(獅子吼)라고 한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이 앉는 좌석을 사자좌(獅子座)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토속적인 산악 신앙과 결합

문수보살은 석가모니를 포함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諸佛之母=毘盧遮那)며 모든 보살의 스승으로 불린다. 이는 지혜(반야바라밀)가 부처님을 이루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선종에서 제7불(佛) 즉 석가모니의 조사라고 하는데 이는 조사선의 법통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현세에는 석가불의 좌보처로 석가모니부처님을 도와 중생을 제도하고 미래에는 보현여래(普現如來)가 되어 문수정토인 보현불국정토를 주재하는 분으로 신앙되고 있다. 

문수신앙을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경전이 〈화엄경〉이다.

〈화엄경〉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동북방의 청량산에 문수보살이 계시면서 1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한다.” 이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는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이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중국 산시성(山西省) 청량산(淸凉山, 일명 五臺山)으로 알려져 있다.

오대산은 보현보살이 상주한다는 아미산(峨眉山),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영산으로 꼽힌다.

사진설명: 문수동자상을 모신 상원사 청량선원.신라 오대신앙은 중국에서 연유했다.

이 땅에 문수신앙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신라의 자장율사다.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화현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골사리, 가사, 발우 등을 얻으면서부터 강원도 오대산은 진성(眞聖)이 거주하는 곳으로 믿게 됐다.

문수보살이 오대산에 머문다는 믿음은 7, 8세기에 이르면 오류성중(五類聖衆)이라 하여 오만보살신앙으로 발전된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인 보천, 효명 두 태자는 오대산에서 수행하며 오대의 각 대마다 거주하는 오만보살에게 일일이 참배하였다고 한다.

동대 만월산(滿月山) 관음암에는 일만의 관음보살, 남대 기린산(麒麟山) 지장암에는 일만의 지장보살, 서대 장령산(長嶺山) 미타암에는 일만의 대세지보살, 북대 상왕산(相王山) 나한당에는 오백 나한, 중대 지로산(地爐山) 진여원에는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며 설법한다는 것이다.

문수신앙이 오대산 자체가 문수정토라는 오대산 신앙으로 발전한 것은 화엄이 밀교와 융합한 것으로 보인다.

문명대 교수는 “오대산 문수신앙은 구산선문 중 하나인 명주 굴산파의 창건주 범일 국사의 제자 낭공대사가 오대산에 머물면서 본격적으로 성행했다. 그는 당나라 유학때 오대산 대화엄사에서 징관의 새로운 화엄 밀교적 문수신앙 즉 문수정토신앙을 배웠고 이를 우리의 오대산에서 실천했다. 그 결과가 월정사를 중창하고 중대 등 오대신앙을 크게 진작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오대산 문수신앙은 조선 세조 때 다시 크게 일어난다. 문수의 감응을 받아 병이 완쾌된 세조는 중대 상원사를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현재 국보로 지정된 문수동자상을 조성하는 등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 이외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 많은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어 한국에서 문수신앙이 풍미했음을 알 수 있다.


신라말 오대산 문수신앙 본격화

사진설명: 북한산 문수사의 동굴법당.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문수신앙은 거의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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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문수신앙이 타력보다 자력신앙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병조 교수는 “문수신앙은 기복적 측면보다 이지적 현학적인 면이 강하다.
관음이나 미타 신앙에 비해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엔 약하다. 지금 보이는 문수신앙도 대부분 영험과 구복적이다”고 말했다. 법인스님(대흥사 수련원장)도 “문수보살의 가피력에는 관세음보살이나 미타불처럼 사지에서 구해주는 내용이 없다.

중생들의 보편적 염원이 없는 것이다. 반면 수행자의 지혜를 강조한다. 문수보살과 관련된 설화의 대부분이 스님의 수행과 관련된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문수신앙은 기복성이 강한 한국불교계가 앞으로 권장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병조 교수는 “문수신앙이 처음에 들어왔을 때 강조했던, 허망한 현실에 대한 깨우침, 이율배반적 현실에 대한 이해가 현재 한국불교계가 새롭게 조명해야할 신앙적 내용”이라고 말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문수도량으로는 오대산 외에 삼각산 문수암, 김포 문수암, 옥천 문수사, 서산 문수사, 고성 문수암, 울산 문수암, 김제 문수사, 익산 문수사, 고창 문수사, 춘천 청평사 등이 있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에 부처님의 좌측에 봉안하고 대적광전에서도 비로자나불 좌측에 앉는다. 특별히 문수신앙이 강한 사찰에는 문수보살상만을 모신 문수전을 따로 두기도 한다.



/ 문수는 왜 동자상인가

화엄경소에 나오는 동자형서 근거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보듯 문수보살은 보통 동자형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문명대 교수는 이에 대해 710년 중국어로 번역된 불설문수사리법보장다라니경(佛說文殊師利法寶藏陀羅尼經)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이 경에는 동북방 대진나(大振那=神州)에 있는 오정산(五頂山)에 문수사리동자(文殊師利童子)가 유행하여 거주하면서 설법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경을 기초로 한 징관의 화엄경소에서는 문수는 머리에 5불관(五佛之冠)을 썼는데 정수리에는 5방으로 상투를 나누었다고 한 말에서 상투 동자형이 나왔다고 한다.



/ 문수보살의 십대원

중생제도 위해 세운 10가지 원력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신앙의 대상으로 숭상받는 것은 다른 불보살처럼 중생을 제도하기위한 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문수보살십대원(十大願)이라고 한다.


①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고 갖가지 방편으로 불도에 들게 한다.

② 문수를 비방하고 미워하고 죽음을 주는 중생이라도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③ 문수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깨끗한 행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거나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④ 문수를 속이거나 업신여기거나 삼보(三寶)를 비방하며 교만한 자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⑤ 문수를 천대하고 방해하며 구하지 않는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⑥ 살생을 업으로 하는 자나 재물에 욕심이 많은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⑦ 모든 복덕을 부처님의 보리도에 회향하고 중생이 모두 복을 받게 하며, 모든 수행자에게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⑧ 육도(六途)의 중생과 함께 나서 중생을 교화하며 그들이 보리심을 내게 한다.

⑨ 삼보를 비방하고 악업을 일삼는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을 내어 위없는 도를 구하게 한다.

⑩ 자비희사(慈悲喜捨)와 허공같이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보리를 깨닫고 정각을 이루게 한다.



바로잡습니다
2005호 나한신앙 편에서 불영사 나한전을 북한 성불사 응진전으로 바로잡습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 2006호/ 2월17일자]

천상천하유아독존 - Google 검색

천상천하유아독존 - Google 검색



사전: Oxford Languages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쫀/


불교우주 간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는 말.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7보를 걷더니, 한 손을 하늘로 쳐들고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외친 말이었다고 함. [준]유아 독존.
===

유아독존

최근 수정 시각: 
오직 유
나 아
홀로 독
높을 존

1부처의 절대적인 위치를 상징하는 말
1.1. 탄생게의 해석
2. 자기만 최고인 양 자부하는 독선적 태도를 비유하는 말3우에키의 법칙에 등장하는 4성 신기4. 만화 제목
4.1. 줄거리4.2. 평가4.3. 등장인물
5유아독존(TV 프로그램)6. 한국 영화

1. 부처의 절대적인 위치를 상징하는 말[편집]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가 마야부인 옆구리에서 태어나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하늘과 땅을 가리키면서 외쳤다는 말.

더 자세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도 알려져있지만 이 또한 뒤 문장이 잘린 말이다. 전부 이어붙이면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고
삼계가 고통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평안케 하리라"
원래는 이런 문장이다.

이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은 '디가 니카야(Dīgha Nikāya)와 맛지마 니카야(Majjhima Nikāya)[1]'인데 이를 한역해서 일부가 장아함의 대본경으로 한역 되었고 대본경의 번역은 현재의 한문 구절의 모태가 된다. 이를 팔리어 원어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Aggo hamasmi lokassa,
Setto hamasmi lokassa,
Jetto hamasmi lokassa,
Ayamanthima jathi[2]
Natthidani punabbhavo’thi"

"세상의 우두머리는 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는 나.
세상의 가장 앞선 존재는 나.
이것은 나의 마지막 생이다.
더 이상의 환생은 없다."

위에서 말한 대본경, 즉 장아함경에는 “천상천하 유아위존 요도중생 생로병사(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대정장 T1, 4중)라고 나와있다. 이는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요컨대 나는 중생들을 생로병사에서 건질 것이다.’라는 뜻이다.[3]

이 탄생게는 부파별 이념 차이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상좌부 불교에서는 당시 아라한의 자격과 동시에, 이전 생에서의 끝없는 보살행을 통한, 누구보다도 뛰어난 공덕까지 충족한 자는 자신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선언이며, '더 이상의 환생이 없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아라한의 권위를 부처와 동일선상에 놓지 않는 대승 불교에서는 '중생을 육도윤회에서 건지는 자로서의 부처의 정체성 선언'으로 탄생게를 해석한다. 이어질 세부 설명은 대승 불교의 관점에 입각한 서술이다.

석가모니의 전생을 서술한 불경에서 석가모니는 자신의 전대의 부처에게 네가 다음의 부처가 되어 천하를 평안케 하리라는 수계를 받게 된다. 따라서 이 말은 석가모니가 천하에 던지는 일종의 선언으로도 볼 수 있지만, 불교의 기본 이념의 선언으로 폭넓게 해석한다.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직역할 경우에는 나 홀로 존귀하다는 뜻인데, 이는 진여, 불성 차원의 선언이다. 석가모니라는 개체적 인간으로서 홀로 존귀하다는 말이 아니며 또한 인간이라는 종족을 대표하여 존귀하다고 일컫는 것도 아니다. 현상세계 모든 것은 이미 불성의 현현으로서 이미 부처임을 전제로 하고 개체적 인간인 석가모니가 이러한 가르침을 대중에게 설파하여 고통 속에서 해방되도록 하겠다는 의미이다. 의역하자면 "남들은 고통에 허덕이는 와중에 자신만 편한(존귀한) 상태이므로 남들 또한 자신처럼 편해질 수 있도록 하겠다." 고 해석할 수 있을 듯.

그러나 평안케 한다는 것은 현상세계에서 어떠한 행위를 통해서 도달하는 개념이 아니라 이미 부처임을 모르는 무명을 벗어나게 하는 가르침을 말한다. 이러한 무명을 벗어나게 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바로 연기법이라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을 통해서 펼쳐진다.

곧, 이미 모두가 부처의 자격과 성질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으니 석가모니가 스승으로서 제시한 수행들을 통해 다들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고 불성을 얻게 되어 모두가 '나 홀로 존귀해진다', 곧 '깨달음을 얻은 자'가 된다는 뜻이다.

1.1. 탄생게의 해석[편집]

혹자는 ‘어떻게 아기가 옆구리로 나오느냐, 어떻게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느냐, 그리고 어떻게 말도 하느냐?’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종교에는 신화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곰이 삼칠일간 쑥과 마늘만 먹어서 사람이 됐다는 등의 신화들은 말 그대로 상징적인 것이며, 그것을 직역하여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우선 석가모니가 탄생 때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인도 브라만교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브라만교의 최고신 '브라만(Bráhman)'이 인간을 창조할 때 승려인 브라만 계급은 자신의 머리로 낳고,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은 자신의 옆구리로 낳고, 평민인 바이샤 계급은 자신의 배, 그리고 천민인 수드라 계급은 발로 낳았다고 한다. 베다 경전에서는 브라만을 입으로, 크샤트리아를 손 또는 팔로, 바이샤는 무릎 또는 허벅지로 낳았다고 한다.

즉 카필라 왕국의 왕자인 석가모니가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뜻은 그가 크샤트리아, 왕족으로 태어났음을 상징한다.

이러한 견해가 있는가 하면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이 중도(中道)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1473552

그리고 사방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은 것은 우주 만물의 윤회의 여섯 길인 '육도(六道)'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상징한다. 육도윤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도달하는 것이 열반이다. 즉 석가모니가 부처임을 상징하는 바이다.

오대산에서 기철학을 < 명경대 < 오피니언 강원도민일보 2010

오대산에서 기철학을 < 명경대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강원도민일보



오대산에서 기철학을
기자명 이광식
입력 2010.04.12






기생 황진이는 자신을 높이는 일을 좋아했다. ‘송도삼절(松都三絶)’이 그러하다. 30 년 면벽 수도한 지족선사를 파계시켜 놓고 황진이는 “나와 박연폭포와 서화담이 송도의 삼절이다”고 기염을 토한다. 이 말은 곧 화담 서경덕이 당대에 상당한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음을 드러낸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아버지 허엽이 계곡에 물이 빠진 뒤에 찾아가 보았더니 솥에는 이끼가 가득했으나 서화담은 태연히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한다.

화담 서경덕은 ‘기철학(氣哲學)’과 관련된 세 편의 글을 쓴다. 화담의 기철학은 스승도 없이 예의 지독한 가난과 절대 고독 속에서 터득한 것이기에 매우 독창적이다. 그 때까지 성리학은 ‘기(氣)’ 곧 ‘감각적 경험 세계’와 ‘이(理)’ 즉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라는 개념으로 이 세계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설명해 왔다. 주자도 그랬고, 화담 이후 이퇴계나 이율곡도 그랬듯이 성리학의 주류는 ‘이’를 중심에 놓고 사유한다.

하지만 화담은 ‘기’를 중심에 놓는다. 세상 모든 것이 ‘기’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만물이 이루어지기 전의 혼돈의 맑고 형체가 없는 태허(太虛)를 일컬어 만물이 이룩되기 전의 선천(先天)이라 한다. 선천의 이 맑고 비고 고요한 것이 기의 근원이다. 선천이 열리는 것이 이가 발휘된 때다.” 화담은 이렇게 기의 근원을 명쾌히 밝히고, 기에서 음양 두 개의 기가 나와 만물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기철학의 선배라 할 중국의 소강절이나 장횡거 등이 중국 철학사에서 이단시되었듯 화담도 후학들로부터 진정한 선비로서 존경받았지만, 그의 학문은 정상적으로 계승되지 못했다. 기철학은 김시습에게서 발견되고 최한기에서 일시 번성하다가 조선 말기 언더그라운드 철학자에게서 시대의 변혁과 함께 다시 분출되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오대산 일대를 기 논의 및 수행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계획이 추진 중이다. 
불교적 기는 물론 풍수적 기, 요가적 기 등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철학적 기 얘기도 해야 한다 생각하여 
한국적 기철학의 태두인 화담 서경덕 선생의 기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 본 것이다.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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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Kwak 저술2018 — 그동안 신라 오대산문수신앙 형성 시기와 구조 둘러싸고 많은 논의 ... 흥미로운 것은 오대산에서 행하는 예참 신앙 대상  의례 내용에도 두 . 록이 차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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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연구원, 오대산 국립공원과 기록유산 활용방안 모색
송고시간2021-09-07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율곡연구원은 오대산 관련 기록유산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오대산국립공원과 업무협약을 했다고 7일 밝혔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찾은 명산으로서 
  • 율곡 이이 선생의 '유청학산기'
  • 김창흡의 '오대산기' 등의 유산기(유람기)가 전해진다.

이들 유산기는 오대산의 옛 등산로 발굴의 기초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선인들의 산수 유람 문화를 복원하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율곡연구원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강원 도내 국학진흥사업 차원에서 이들 유산기와 관련 문화유적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정리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오대산을 자연과 인문이 융합된 힐링 공간으로 오대산을 새롭게 꾸며나가는 데 힘을 합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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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哲學(기철학)의 형성한 徐敬德(서경덕) 선생

청남 권영한 홈페이지입니다

氣哲學(기철학)의 형성한 徐敬德(서경덕) 선생


徐敬德(서경덕)선생은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하였다.
불교에도 홀로 깨달은 분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那般尊者(나반존자)이다.
흐르는 물, 날라 가는 구름, 변하는 萬象(만상) 등을 보며 혼자 깊은 산 속에서 우주만물의 이치를 다 깨친 분이라고 한다.
ㄱ와 마찬가지로 徐敬德(서경덕)선생도 혼자서 진리를 깨진분이라 한다.
徐敬德(서경덕)은 송도(지금의 개성시) 사람이었는데 조상 때부터 집안이 별로 변변치 못했다.
서경덕의 아버지는 원래 德望(덕망)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덕을 숨기고, 비록 가난한 살림살이 엇지만 마음을 항상 편안 하게 가졌기에 이웃 사람들이 모두 그를 공경했다.
서경덕의 어머니는 그를 낳기 전 공자의 사탕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10달 뒤에 태어난 아기가 바로 서경덕이었다고 한다.
서경덕은 태어 날 때부터 보통 아이와는 달리 매우 영특했다. 자라면서 스스로 글 읽는 것을 알았고 한번 본 것이면 죄다 외워버렸다.
어릴 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고, 또한 많은 것을 기억했다.
어느 날 서경덕은 「書經(서경)」을 읽고 있었다.
‘1년은 366일이 된다.’라는 내용에 대해 해석을 해놓은 구절이 있었는데 그것을 거듭 생각해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경덕은 경서에 통달했다고 하는 노인이 개성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다.
“1년은 366일이 된다. 이 구절을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서경덕이 말했다.
“여기에 적힌 해석은 비록 늙은 스승이나 나이 많은 선비라 하더라도 아는 사람이 적어 나 또한 배우지 못했다
네.”
노인이 말했다.
서경덕은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통달한선비가 없으니 우리 儒學(유학)의 도는 사라졌구나.”
서경덕이 탄식했다.
서경덕은 「서경」의 그 구절을 베껴서 벽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잠자고 밥 먹는
것도 잊고 깊이 파고 들어갔다.
드디어 보름 만에 비로소 깨닫게 되어 그 가지를 가르고 실마리를 풀려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이때 서경덕의 나이 17세였다.
“聖賢(성현)의 도의는 모두 책에 실려 있으니 다른 데서 배울 필요가 있겠는가?” 하면서 그 뒤로도 많은 고전을 읽어 그 속에 적힌 뜻을 모두 이해하고 또한 발전시켜 세상에 빛을 남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 진리는 바로 책 속에 있는 것이다.
독서를 많이 그리고 精讀(정독)하는데에 萬象(만상)의 본질과 통하는 길이 있는 것이다.


9/27/23, 12:32 AM 청남 권영한 홈페이지입니다

기철학에서 본 똥의 가치와 의미 - 학지사ㆍ교보문고 스콜라

기철학에서 본 똥의 가치와 의미 - 학지사ㆍ교보문고 스콜라

기철학에서 본 똥의 가치와 의미
The Value and Meaning of Poop in Ki Philosophy

김교빈(Kyobin Kim) 
한국종교교육학회 종교교육학연구 제67권
등재여부 : KCI등재
2021.12 65 - 80 (16 pages)
인문학 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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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목차
 
참고문헌
 
해당 권호 수록 논문
국문초록

기(氣)는 동양에서 수천 년 동안 자연과 사회, 물질과 정신을 아우르며 만물의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쓰여 왔다. 이 논문은 사이언스 월든의 ‘똥본위화폐’ 연구 프로젝트에서 똥의 순환과 가치 정립에 대한 인문학적 이론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이다. 특히 이 논문은 화담 서경덕의 기철학을 중심으로 똥의 가치와 의미를 논하고 있다. ‘똥본위화폐’ 프로젝트가 기철학에서 얻을 수 있는 사고는 첫째 순환적 사고이다. 특히 장자, 장횡거, 서화담은 만물의 변화를 기의 취산으로 설명하면서 모든 존재가 거대한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둘째로 기철학이 주는 시사점은 만물 평등의 관점이다. 장자는 모든 것을 상대화시킴으로써 만물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끌어냈다. 장횡거 또한 만물이 기로 이루어져 있고 기의 취산을 통해 순환 과정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만물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서경덕은 그런 사고를 확장하여 현실에서의 실천으로까지 나아갔다. 셋째로 기철학은 똥을 더럽다고 보는 인식의 전환을 가능케 하며 이를 바탕으로 만물일체론을 끌어낸다. 만물이 하나라는 장자와 장횡거의 생각, 그리고 기의 질서가 수의 질서로 환원되며 수의 질서는 소리의 질서로 환원된다고 보고 대자연의 하모니로 어우러지는 대화해(大和諧)의 세상을 꿈꾼 서경덕의 생각이 모두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똥본위화폐’ 프로젝트가 현대사회의 소득불균형과 인간 소외, 세대 갈등, 학점과 학위에 따른 교육 격차 등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는다면 이 같은 사고를 기반으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분리와 투쟁이 아니라 공감하고 소통하는 감통(感通)의 세계관으로 바꿔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영문초록

several thousand years ago in the East asia, ki has been used as a concept to explain the change in all things, encompassing nature and society, matter and spirit. This thesis is a study to prepare a humanistic theoretical basis for the circulation and value establishment of poop in Science Walden s ‘feces Standard Money’ research project. In particular, this thesis discusses the value and meaning of poop, focusing on the philosophy of Hwadam Seo Gyeong-deok. The first thought that the ‘feces Standard Money’ project can be obtained from the Ki philosophy is cyclical thinking. In particular, Zhuang-tzu, Jang-jae, and Seo Hwa-dam explained the change of all things as gathered and scattered, all beings could not escape from the great cycle. Second, the point of preview of Ki philosophy is the perspective of equality in all things. By relativizing everything, Zhuang-tzu drew on the idea that all things are equal. Jang-jae also developed the idea that all things are equal in that all things are made of qi and the cycle repeats the cycle through the extraction of qi. And Seo Kyung-duk expanded such thinking and moved on to practice in reality. Third, Ki philosophy enables a change in the perception that poop is dirty, and based on this, draws out the unity of all things. The idea of &#8203;&#8203;Zhuang-tzu and Jang-jae that all things are one, and the idea that the order of Qi is reduced to the order of numbers and the order of numbers is reduced to the order of sound, and is the story of Seo Kyung-deok, who dreamed of a world of dialogue and harmony in harmony with nature. All thoughts make such a transformation of perception possible. If the ‘feces Standard Money’ project aims to solve problems such as income inequality, human alienation, generational conflict, and educational gap according to grades and degrees in modern society, then based on this thinking, the separation of human to human and human to nature is It should be possible to change to a worldview of sympathy and communication, which is not a struggle, but a feeling of empathy and communication.

氣철학 확립한 화담 서경덕의 사상과 문학|동아일보

氣철학 확립한 화담 서경덕의 사상과 문학|동아일보

氣철학 확립한 화담 서경덕의 사상과 문학
김상운 기자
입력 2016-05-27

 
고전번역원 28일 학술대회조선 성리학계의 이단아 화담(花潭) 서경덕(1489∼1546)의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한국고전번역원(원장 이명학)은 ‘화담 서경덕의 사상과 문학’ 학술대회를 28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다. 화담은 독특한 기(氣) 철학과 자연법칙 연구로 조선시대 사상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최일범 성균관대 교수가 ‘화담 서경덕의 성리학과 역학사상’ 주제발표를 통해 화담의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철학적 의미를 고찰한다. 이어 전호근 경희대 교수가 화담의 격물(格物) 이론과 기 철학을 분석한다.


최유진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은 ‘후대 문학에 영향을 미친 화담의 시학적 코드’에서 화담에 대한 후대의 형상화와 시학적 의미를 다양한 차원에서 재조명한다. 권순긍 세명대 교수는 화담의 도술(道術) 일화가 당대에 어떤 함의를 갖고 있었는지 소개한다. 김형찬 고려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종합토론에는 김시천 인천대 교수와 김형술 서울대 교수, 장경남 숭실대 교수 등이 패널로 참여한다.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은 “화담은 독특한 사상체계를 완성했지만 그동안 상응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그의 사상이 학계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독창적인 기철학의 길을 연 거인_ 서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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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기철학의 길을 연 거인_ 서경덕
정정진 2017. 12. 24. 17:30





신분평등사상으로까지 연결된 독창적 기이론




이런 서경덕이었으니 조정에서 몇 차례 벼슬을 내렸다고 그가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으리라. 이런 생활 속에서 서경덕은 마침내 그의 학문적 사변과 철학적 사유를 정리해야 할 시기에 다다랐다. 쉰여섯 살에 들어 그의 병이 깊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원리기' 등 논설 네 편을 지었다.




알다시피 이와 기는 성리학의 기초로 우주나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는 원리이다. 중국의 주자가, 우주는 어떤 원리인 '이'와 그 작용인 '기'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설파한 뒤 여러 학자들이 그 본질을 규명해왔는바, 서경덕은 이것을 무엇이라고 해명했는지 간단히 설명하면 그 내용은 이러하다.




형체가 없는 태허(太虛 : 우주생성 이전의 상태)를 선천(先天)이라고 하니 그것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쥐면 비어 있고 잡으면 없으며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이 태허에는 곧 단 하나의 기가 있을 뿐인데 후천(後天)에는 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약동이 일어나며 동시에 개벽이 일어난다. 이 같은 동작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 그렇게 시키는가? 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역시 제 스스로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이'(理)의 시(時)라고 한다.




이런 논리는 확실히 주자의 설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는 또 촛불이 타서 없어지는 것 같지만 그 기는 우주 안에 그대로 있는 것과 같이 인간도 태어났다가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보이지 않는 속에서 우주 속에 그대로 있다고 했다(이것을 물질불변설이라고 부른다).




이런 그의 선, 후천설과 물질불변설 등을 두고 당시의 학자들, 곧 이황 같은 유학자들은 정통의 설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이에 그의 제자들은 서경덕의 학설이 주자의 이론과 다른 것은 중국의 주염계의 설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철저하게 독창적이요 스스로 깨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론과 학설은 원효와 함께 우리나라 사상사에 우뚝 서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형이상학에 몰두했다고 해서 현실문제를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정의 일을 논하기도 하고 잘못된 현실에 늘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경덕과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다툴 일이 있으면 관가에 가지 않고 그를 찾아왔을 만큼 그가 현실 또는 민중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지함은 서경덕의 철학을 토대로 해 지은 '토정비결'을 민중들에게 주었고, 허균은 그의 사상을 키워 현실개혁을 부르짖었다. 조선 후기에 와서 민중들은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했는데 이것은 유학자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그의 선, 후천사상과 '기' 속에 '이'가 내재해 있다는 설은 조선 후기의 신분평등사상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어쨌든 논설 네 편을 지어놓고 병이 더욱 깊어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 칠석날, 병석에 누웠던 그는 제자들에게 그를 화담에 옮겨달라고 했고, 화담의 물로 씻고 돌아오자 곧 임종을 알리는 호흡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제자가 "선생님, 지금 생각이 어떠십니까?" 하고 물으매 "살고 죽는 이치는 이미 안 지 오래다. 생각이 편안하다"라고 대답한 다음 곧바로 숨을 거두었다.




이야기 인물한국사 1_ 이이화

2023/09/26

徐敬徳 (李氏朝鮮) - Wikipedia

徐敬徳 (李氏朝鮮) - Wikipedia

徐敬徳 (李氏朝鮮)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徐敬徳
各種表記
ハングル서경덕
漢字徐敬德
発音:ソ・ギョンドク
日本語読み:じょ けいと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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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 敬徳(ソ・ギョンドク、じょ けいとく、서경덕、1489年2月17日 - 1546年7月7日)は、李氏朝鮮中期の儒学家である。本貫は唐城徐氏[1]南陽徐氏の分籍[2])。字は可久。号は花潭、復斎。妓生黄真伊朴淵瀑布とともに、「松都(松京)三絶」と並び称される。

経歴[編集]

開城に生まれ、寒微(下層階級)の出身であるが早くから苦学し、1531年、科挙生員試に応じて合格し、1540年、大提学の金安国によって「遺逸の士」として推挙されたが、生涯仕官せず、弟子を育成した。北宋張横渠邵康節の学説の影響を受け、南宋朱子学の理元論に反対し、朝鮮で初めて気一元論の唯物論(無神論)的で弁証法的な哲学を打ち立てた。

作品[編集]

  • 花潭集(화담집)
  • 原理気(원이기)
  • 理気説(이기설)
  • 太虚説(태허설)
  • 鬼神死生論(귀신사생론)

弟子[編集]

脚注[編集]

  1. ^ 서경덕(徐敬德)”. 韓国民族文化大百科事典2023年1月12日閲覧。
  2. ^ “唐城 徐氏 (당성 서씨)”. 부천족보전문도서관. オリジナルの2022年11月30日時点におけるアーカイブ。

参考文献[編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