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

알라딘: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알라딘: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현주 (지은이)삼인200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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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8,000원
양장본372쪽



[절판] 이현주의 동양 고전 읽기 세트 -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이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

책소개

1996년에 출간된 <장자 산책>을 다듬고 보완해 펴낸 개정판.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총 33편으로 이루어진 <장자> 중에서 내편만을 다루었다. 기독교와 불교 등의 종교를 넘나들며 <장자>가 다양한 종교.사상 등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를 살폈다.

장자와 예수, 석가뿐만 아니라 책은 노자, 공자, 간디, 아퀴나스, 소크라테스의 텍스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또한 지은이는 장자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인간 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며, 허위의식에 대한 저항, 평등 사상 등의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풍자와 비판, 역설과 우화로 이루어진 <장자>를 만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소요유(逍遙遊)
1. 붕이 남으로 날아감
2. 요가 천하를 넘겨주고자 함
3. 혜자와 장자의 대화

제2장 제물론(齊物論)
1. 하늘 소리 이야기
2. 몇 가지 문답 이야기
3. 나비 꿈

제3장 양생주(養生主)
1. 중정을 따름
2. 포정의 소 잡기
3. 공문헌과 우사의 문답
4. 노담의 죽음에 문상함

제4장 인간세(人間世)
1. 안회와 중니의 문답
2. 섭공과 중니의 문답
3. 안합과 거백옥의 문답
4. 장석과 역사의 문답
5. 남백자기와 큰 나무
6. 꼽추 지리소
7. 접여의 노래

제5장 덕충부(德充符)
1. 상계와 중니의 문답
2. 신도가와 자산의 대화
3. 중니와 숙산무지의 대화
4. 애공과 중니의 문답
5. 사람한테 본디 정이 없는가?

제6장 대종사(大宗師)
1. 진인론
2. 남백자규와 여우의 문답
3. 자사와 그의 벗들
4. 틀 밖에서 노니는 사람들
5. 맹손재가 초상을 치름
6. 의이자와 허유의 문답
7. 좌망에 들다
8. 자상의 명

제7장 응제왕(應帝王)
1. 설결과 포의자의 문답 외
2. 열자와 호자의 문답
3. 마음 쓰기를 거울같이
4. 혼돈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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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혜자가 다시 묻는다.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그 몸뚱이는 유지하고 있는가?

장자가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한다.

'도가 그에게 인간의 얼굴을 주었고 하늘이 그에게 인간의 꼴을 주었다!'

그런데 어찌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돌은 돌이니까 돌이요 꽃은 꽃이니까 꽃이다. 부서져서 흙으로 될 때까지 돌이요 썩어서 흙으로 될 때까지 꽃이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사람이요 죽어서 다른 몸으로 바뀔 때까지 사람이다. 다만 자신의 변덕스런 감정에 사로잡혀 제 몸에 상처를 입히지 말 일이다.

끝으로 장자는 말로써 말만 많고 되는 일 하나 없는 이 땅의 모든 혜자에게 아픈 말 한마디 던진다. '시방 자네는 자네 몸 바깥에 정신을 쏟아 정기를 고단하게 하고 그 결과 나무에 기대어 헛소리나 중얼거리다가 책상에 기대어 졸고 있으니, 하늘이 그대를 사람으로 지으셨거늘 어찌 궤변 따위나 늘어놓고 있단 말인가?' - 본문 251~252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현주 (지은이) 

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그리스도의 계시들』 등이 있다.
최근작 :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 (양장)>,<부모 되기, 사람 되기> … 총 269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씀 단상>,<바이러스에 걸린 교회>,<헌법 위의 악법>등 총 263종
대표분야 : 한국시 26위 (브랜드 지수 21,38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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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대포 한잔 걸치고 싶은 친구, 장자와의 산책...

다시 장자를 읽는다. 이현주 목사의 장자 산책을 옛날 책으로 읽을 때는 좀 짜증났더랬는데(너무 구판이어서) 이번 책은 산뜻하게 예쁘다. 요즘 책들이 쓸데없이 두껍고 종이 질이 좋으며 비싸다는 비판적 기사가 엊그제 난 적도 있지만, 이런 고전들은 좀 두툼한 종이로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고전이니까...

이번 읽기에서는 <장>별로 생각을 모아 가며 읽으려고 노력했다.

1장. 소요유. 소요한다는 말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빈둥거리며 느릿느릿 다닌다는 말이고, '놀 유游'자도 특정한 목적없이 즐기며 마음 편하게 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생 짧은 데 그리 아둥바둥 살 필요 있나, 젊어 노세... 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을 <옳음>에 얽매고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건 아닐세~하는 장자 영감의 눙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은 '이용 가치'가 아닌 '존재 가치'로 봐야 한다. 교육을 '인적 자원' 관리라고 보는 정부는 나쁜 정부다. 나를 버리고, 공을 버리고 이름을 버려라. 이런 말은 금강경에서도 숱하게 만난 말이 아닌가.
우리의 성모님, 어디에서 죽어가는 당신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 아, 이런 말들이 이아무개 님의 글로 읽는 고전의 맛이다. 무하유의 고향을 말하면서, 피폐해지는 인간 존재를 사랑하는 하나님, 성모님, 하눌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는 기쁨. 나는 행복하다.

2장. 양생주. 양생은 말 그대로, 웰빙이다. 그런데, 우린 너무 육체의 웰빙에 얽매인다. 텔레비전에 무슨 비타민 어쩌고 하는 것들은 몽땅 육신의 양생만을 추구한다. 물질의 양생은 결국 웰빙보다는 부유함을 추구하게 된다. 지나쳐도, 결핍되어도 병이 되는 것이 바로 비타민이다. 중도, 중정, 중용을 지키는 것, 그것이 양생이다. 웰빙은 결코 돈이 많아 '잘사는 rich' 경지가 아닌 것이다.
야생의 새는 아무리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도 새장에 갇히려 하지 않는다. 인간도 야생의 새가 되어 '육신의 웰빙', '물질의 웰빙'이란 감옥에 갇히지 말고 먼 하늘을 날아야 할 거다.

3장. 제물론. 온 세상이 잡다구레한 물질로 가득하다. 일 주일도 되기 전에 재활용되지 않는 재활용 쓰레기들은 가득 생산된다. 부끄럽다. 사물을 가지런히 하라... 세상을 가지런히 하라... 그 근본과 가지끝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물과 자신을 떼어 놓지 않을 수 있으련만...
자기를 잃는 일, 그것을 상아 喪我, 또는 좌망 坐忘이라 한다. 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지. 곧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내는 것.
근본을 알고 끝을 아는 사람은 '덕'이 뿌리요, '다스림'은 가지 끝임을 안다.
흐르는 물에 있으면서 젖지 않는 달의 경지, 빛을 옴기면서 빛에 물들지 않는 허공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초연한 참여를 읽는다. '物'에 젖지 않는 경지를 만난다. 모든 '물'은 저를 있게 한 <하나>를 모신다. 하나님, 한울님, 예수그리스도...

4. 인간세. 엊그제 한 수학자가 법관을 석궁으로 쏘아 죽이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법관이 대학측의 손을 두 번이나 들어줘서 한 수학자의 생을 망쳐놓았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법관을 수학자가 처벌해 버렸다. 마치 일본의 추리소설 줄거리 같다. 인간에게 '지식'과 '이름'은 흉기다.
우리의 교묘한 언술과 몸짓, 그 깊은 곳에 숨어있는 명예와 이익을 향한 탐심,을 백일하에 드러내어 마음을 닦고, 텅 비게 하기 위해 <장자는 유가를 비판>한다.
수학자처럼 석궁을 쏘고 싶은 일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독재자나 살인마, 사소하게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이들에게도 석궁의 욕망은 들끓지 않는가. 그렇지만, 장자는 툭 던지는 말로 마음의 팽팽한 줄을 툭, 끊는다. 물론 석궁은 발사되지 않겠지.
서로 해치고, 당하는 세상을 사는 법 : 거울의 마음, 배웅도 마중도 하지 앟으며, 응하되 간직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물을 이기면서 상하지 않는다. 아상을 버리고, 공명심을 버리라... 무아, 무공, 무명... 결국 마음을 다스시는(심재 心齋) 길. 뜻을 한 곳에 모으고,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감각에 얽매이지 말고 氣로 들어라.
세속을 떠날 것 아니고, 세속 한가운데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삶. 아멘, 소리가 나게 만드는 아무개님의 글. 연못의 더러움에 뿌리내리되, 오히려 아름다운 연못으로 피어야 하는 인간 세상.
사마귀는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호랑이 조련사는 상대에 맞는 수단을 쓰지 못했고, 마부는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다가 망신하고 몸을 버린다. 하, 살기 어렵다. 인간 세상은...
다른 누구에게 "쓸모"가 되려고 안달하지 말고, 하늘이 준 생존의 길을 좇는 참사람이 <신인의 나무>가 되어 오래 견딜 수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비정한 세상. 그 신인은 천수를 누려 가늘고 길게 삶을 다하는 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자재한 삶을 논한다. 지리소는 병신이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에 끌려나가 죽지도 않았고, 그의 열 식구를 너끈히 먹여 살렸다. 인간들아, 인간아, 글샘아, 누가 병신이냐?

5. 덕충부. 덕이 가득하면, 덕이 가득 차야 겉으로 드러난다. 덕은 껍데기에 있지 않다.
장자는 <공부>를 감각과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속의 굴레를 벗은 자유인으로 세속 한복판을 당당하고 의연하게 걷는 길을 찾는 것, 으로 본다.
무위당 선생님 꿈을 꾼 이아무개 씨. 곧장 들어가... 문자로는 안 돼... 문자에 빠지지 말어... 마음을 잡어... 마음을 항복시키라고...
못생겼는데, 왜 사람이 끓느냐... 애태타를 바라 보라.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남들을 제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꾀하지 않고, 깎아내리지 않고, 잃지 않고, 사고 팔지 않는 하늘처럼 사는 사람에겐 주변이 끓는다.

6. 대종사. 큰 꼭대기가 되는 스승님. 그를 지인, 신인, 성인이라 한다. 거울처럼, 하늘처럼... 물처럼...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도에 더 가까운 이가 마땅히 스승이어야 하거늘, 나로 하여금 바라건대 자네 뒤를 따르게 하라...(이 책은 가끔 이런 말들과 게송, 싯구들로 가슴을 따스하게 한다.)

7. 응제왕. 제왕에게 응답함. 어떤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인가. 다시 소요유를 반복한다. 무기, 무공, 무명...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그 이름, 하느님 아버지일 따름.
마지막의 혼돈의 죽음은 인간의 '함 爲'이 얼마나 작은지 본다.

장자를 읽는 일은, 장기판에서 움직이는 말을 <훈수두는 눈>으로 보는 일이요,
싸움판에서 흥분한 두 사람에게 <심판>을 서는 일이며,
야단치는 시에미와 당하는 며느리 사이에서 말리는 <시누>의 눈을 갖는 일이다.

얄밉게도 세상에서 조금 비스듬하게 서 있으면서도, 그 자리가 세상 바라보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란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너 죽을래?'하면서 쫓아오며 시비거는 사람에게 아큐정전의 '아큐'는 <정신적 승리법>으로 대응한다.
실컷 밟힌 후에 '난 똥이야, 넌 똥을 밟은 거야. 재수 없게도...'하는.

아큐는 어리석지만, 장자의 이야기도 시비에 맞대응하지 않고, <정신적 승리>를 바라본다.

장자더러 아큐라고 하면, 글쎄, 꿈속에서 나비였더랬는데, 이제 그 나비가 나냐, 아큐냐?하고 웃으려나?

장자같은 남자라면, 이런 허풍쟁이라면, 같이 대폿집에서 푸지게 막걸리 한잔 걸쳐야 제맛이다.

- 접기
글샘 2007-01-17 공감(4)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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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좋은 의미 일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명예라는 인간 탐욕의 한 방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옛 사람들 중이 백성의 피를 빨아 먹었던 자들이 임지를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비(碑)'를 세웠던 일들을 있었다. 백성을 착취한 자들이 이름까지 착취하는 탐욕이 나은 결과다.

 
좋은 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을 탓할 필요가 없지만 좋은 책을 내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가 있으니 '이 아무개'다. 그가 쓴 <이 아무개의 장자산책>(삼인 펴냄)을 손에 드는 순간 멈칫한다. '이 아무개?' 아무개라는 이름이 있나 의문이 들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 아무개는 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이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과 따끔하고도 넉넉한 말씀으로 많은 이들을 품어주는 이현주 목사임을 알게 된다.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1996년에 나온 <장자 산책>을 새로 다듬고 보완한 개정판이다. <장자>는 장주의 저술로 내편 7, 외편 15, 잡편 11편인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장자 사상의 정수이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내편>을 다루고 있다. 

 

사실 <장자> <도덕경> <사서오경>을 접할 때마다 지식 정보화 시대에 2500여 년 전 중국 철학가와 사상가들이 남긴 글들을 읽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할 것 같은 <장자>를 읽는 것은 시간이 낭비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젖은 이들에게 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연이 바람 타고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은 그 줄이 땅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줄이 풀어지거나 끊어지면 연은 곧장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장자의 생각이 수천 년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은 까닭은 그 뿌리가 대지에 든든히 박혀 있기 때문이요, 근본을 붙잡은 그의 생각을 울가 잃은다면 21세기 눈부신 컴퓨터 문명도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고 말 것이라고."(10쪽)

 

사실 <사서삼경>과는 달리 노자와 장자는 1명이 읽었다면 얼굴이 하나이고, 100명이면 100개, 100만명이면 100만개의 얼굴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얼굴로 다가온다. 우리는 여기서 <장자>라는 텍스트가 절대 진리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신의 삶의 정황에서 치열하게 벼려진 거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실용주의가 나은 병폐는 심각하다. 이익만 되면 무조건 좋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우리 시대다. 그러니 인간에 대한 존중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자본이 낳은 탐욕에 팔아버렸다. 이럴 때 2500여 년 전 <장자>를 통하여 오늘 우리 자신들이 빠져 버린 탐욕과 존엄성 훼손을 극복하는 일이 필요한 시대임을 분명하다.

 

이아무개 목사는 <장자>를 통하여 기독교와 불교 등을 오고간다. 장자가 어떻게 세상의 종교와 사상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장자와 기독교, 불교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텍스트에서는 서로가 다른 진리가 아니라 소통하고 있음을 말한다.

 

"'나'라고 하는 물건 하나 없애버리면 너 있는 자리가 곧 새 하늘 새 땅이요 네가 곧 곤이요 붕이요 남명이요 북명이요 9만 리 창공이요 회오리바람이라는 얘기다."(17쪽)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곤과 붕은 부처, 남명과 북명은 장자다. 이아무개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나’라는 관념에 예속된 사람과 그것을 벗어난 사람의 모습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우리는 공(功) 다툼 때문에, 자기 이름 내기에 바쁘다. 이런 때에 '나'를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부질 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길이다. 이아무개 목사는 이렇게 장자와 예수, 석가뿐만 아니라 노자, 공자, 간디, 아퀴나스, 소크라테스를 서로 불러모아 대화한다.

 

<공자> <맹자> <논어> <대학> <중용> <금강경> <산해경>, 조선의 선시, 수사(修士)의 글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진리와 인간 자신, 자연을 알기 위하여 끊임없이 내 놓았던 텍스트를 통하여 그들이 무엇을 뚫고 나아가려 했는지, 무엇이 같고, 다른 지를 <장자>를 통하여 말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시대는 죽은 시대다. 자연을 이해하지 않는 시대는 죽은 시대. 실용을 통한 이익 창출이 지배하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말하고, 학문을 말하고, 문학을 말하는 철학, 어문학, 인문학, 기초학문은 이미 대학에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이웃이 강도를 만나도, 도와주지 않는다.

 

자연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이익의 도구인 이용가치로 평가하면서 결국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파멸로 가고 있다고 이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미명 아래 힘을 통하여 지배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음을 말한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파멸을 향한 지구의 운명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연에서 '힘'만을 볼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보아야 한다. 예술과 종교가 새로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나무 한 그루를, 자르고 켜서 침대로 만들 재목으로만 볼 게 아니라 더불어 노닐며 생사를 함께 할 '이웃'으로, '어미'로 보아야 한다."(51쪽)

 


자신을 장사 지내는 것, 버림, 완전히 여읜 상태를 독일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 에크하르트(M. Eckhart, 1260~1328)는 '무심'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어디에도 연루되어 있지 않음'으로 '초탈'이라고 이 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로부터의 초탈이야 말로 사랑, 겸손, 자비보다 고귀한 최선, 최상의 덕임을 강조한다. 이것이 최상의 덕이지만 가지는 것에 매어 달리니 사랑과 겸손, 자비는 찾아 볼 수 없다.

 

초나라 때 미치광이 접여(接與)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시들어가는 덕을 어찌하겠느냐? 앞날은 기대할 수 없고 지난날은 돌이킬 수 없도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이 그것을 우리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자기 목숨 살아갈 따름이니 시방은 겨우 형벌이나 면하는 게 고작인 세상.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땅에 금 긋고 그 안에서 허둥대는 짓거리.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잘리우고 옻나무는 쓸 데가 있어서 베어지네. 사람이 저마다 쓸로 있음의 쓸모는 알면서 쓸모없음의 쓸모는 모르는구가."(200쪽)

 

모든 것이 썩어 무너진 세상이라는 말이다. 입신양명과 출세, 탐욕만을 위하여 나무를 베어내고, 자연을 버리고, 생명을 버리는 세상을 향한 장자의 일침이다. 가난하고, 비천한 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장자 사상의 핵심을 볼 수 있다.

 

이름이 나면 높아지고, 높아지만 탐욕이 생기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마는데 우리는 이를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 광우병을 보라, 대운하를 보라. 영어몰입교육을 보라. 파멸에 이르는 길이지만 그것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책 읽는 것조차 대학입시와 연관시키는 우리 시대에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분명 돈 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실용과 탐욕에 찌든 우리가 <장자>를 통하여 무심과 비움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땅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인간과 함께 만물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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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전자책] 틱낫한 기도의 힘

알라딘: [전자책] 틱낫한 기도의 힘
틱낫한 기도의 힘 
틱낫한 (지은이),이현주 (옮긴이)불광출판사2017-02-16 

전자책정가
9,100원
종이책 페이지수 208쪽

책소개

틱낫한 스님은 평소 기도와 관련해 가장 자주 들어온 질문 다섯 가지와 그에 대한 답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품곤 하는 기도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고 참된 기도란 무엇이며 기도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스님은 기도를 떠받치는 세 기둥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마음챙김(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깨어 있는 의식으로 온전히 알아차리기), 집중, 깨달음이다.

스님이 말하는 깨달음은 수행을 통해 이르게 되는 신비하고 고매한 경지를 일컫는 것이 아니고,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으므로 나와 하느님, 나와 부처님은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나는 물론이고 소나무, 달, 별에게도 그분들이 지닌 사랑과 마음챙김과 지혜가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스님이 말하는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마음챙김, 집중, 깨달음이 함께하는 기도란 무엇일까? 바로 일상을 살아가는 몸짓 하나하나에 마음챙김과 집중과 깨달음이 함께하는 것이 참된 기도이다.


목차
여는 글_왜 기도하는가?

1. 기도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과 답변
소년과 기도 ― 첫 번째 질문
무엇이 기도를 가능케 하나 ― 두 번째 질문
기도는 무엇을 이뤄 내는가 ― 세 번째 질문
나와 하느님
믿음과 기도 ― 네 번째 질문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 다섯 번째 질문
나를 비춰 보는 기도
기도로 타인을 바꿀 수 있을까
효과적인 기도의 두 가지 조건

2. 기도의 이유
건강과 성공에 관한 진실
수행자의 기도
함께 하는 기도의 힘

3. 기도하는 영혼에 대하여
하느님과 부처님은 둘이 아니다
세 가지 열쇠
하느님, 부처님과의 접속
몸, 마음이 하나 된 기도
곁에 있는 이에게 기도한다는 것
나는 부처님과 함께 걷는다
나무와 별과 달에 기도하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
주님의 기도

4. 기도는 어떻게 건강을 돕는가
마음과 몸은 이어져 있다
집단의식과 건강
집단의식으로 만드는 치유의 힘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법
모두의 건강을 위한 기도

5. 마음챙김과 기도
명상의 기적
마음챙김, 집중, 깨달음
마음챙김의 네 가지 대상
마음의 매듭 풀기
참된 행복

6.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명상 연습
연습 하나: 마음의 응어리 다스리기
연습 둘: 몸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하기
연습 셋: 몸에 자양분 주기
연습 넷: 자연에서 자양분 찾기
연습 다섯: 화해

부록_충만한 일상을 만드는 기도
행복 가꾸기
여래께 귀의합니다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하루의 기도

접기
책속에서
P. 28 진정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바뀌기를 원하는가, 원치 않는가?’
P. 35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부처님, 또는 그대가 섬기는 분의 상(像)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할 때 마음으로 그분을 그려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대 앞에 있는 상은, 구리로 만들어졌든 옥으로 만들어졌든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졌든, 하나의 상징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상은 그대 바깥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부처님, 또는 그대가 섬기는 분은 그대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닙니다. 그대와 그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연결성을 마음으로 그려 보아야 합니다.  접기
P. 45 우리가 사랑과 자비의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낼 때, 이를 상대방이 아느냐 모르느냐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 에너지가 있고 사랑하는 가슴이 있고 그것이 세상으로 보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우리 안에 있고 그것을 밖으로 전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밖으로 전하는 동안 우리는 자기 가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낍니다. 기도가 우리 안에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접기
P. 79~80 우리를 에워싼 가족과 친구들 속에는 우리에게 든든함과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만 해도 우리 몸에 더 많은 에너지를 불러올 수 있지요.
한번은 나에게 배우는 학생 가운데 하나가 매우 슬픈 얼굴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마침 여행을 떠날 참이었기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없더라도, 원한다면 내 방에 들어와 혼자 앉아 있어도 되네.”
내 방에 앉아 있는 것이 그에게는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나의 에너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소통도 기도의 한 형식이지요.  접기
P. 86 우리는 소나무, 달, 별에게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는 든든하고 달은 언제나 때맞춰 거기 있고 별은 우리를 위하여 항상 자유롭고 밝게 빛납니다. 소나무와 깊이 만날 수 있으면 한 마음, 하느님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만난다는 것이 그분이 자기 에너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면, 소나무 또한 우리에게 자기 에너지를 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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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틱낫한 (Thich Nhat Hanh)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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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선불교의 가장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이자 세계적인 교육자로 70년 가까이 ‘마음다함(mindfulness)’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각지를 순회하며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196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되었으나, 베트남 정부에 의해 귀국 금지 조치를 당한 뒤 1973년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1982년 보르도에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세우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2008년부터 교육 분야에 마음다함을 도입하기 위해 유럽,... 더보기
최근작 : <모든 발걸음마다 평화>,<틱낫한의 깨어 있는 마음 수행>,<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 총 1045종 (모두보기)
이현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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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그리스도의 계시들』 등이 있다.
최근작 :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 (양장)>,<부모 되기, 사람 되기> … 총 26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그대를 바꾸고
그대를 살리고
그대를 근원과 이어 주는
틱낫한 스님의 정성 가득한 기도 이야기

용기와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휴식과 회복이 이뤄지고
삶이 깊어지는
참된 기도의 세계로 안내한다

누구나 기도를 한다. 취직이 되기를, 아픈 아이가 무사히 낫기를, 하는 일이 잘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에게 간절히 빌든, 해와 달에 맹세하든, 자기 자신에게 굳게 다짐하든, 우리는 기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를 의심한다. 모든 기도가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걸, 때로는 기도의 내용과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틱낫한 스님은 모든 종교를 아울러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맞닥뜨리는 가장 절실한 다섯 가지 질문들에 답을 한다.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기도의 아이러니에서 벗어나 참된 기도로 들어갈 수 있는 보편적인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버티기도 힘든 구석으로 몰렸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자기를 추스르며 상황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야말로 그런 우리에게 진정한 휴식과 참된 지혜와 강한 의지를 선물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양분이 되어 세상과 마음이 좀 더 평화로워지기를 기원한다.

기도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과 답변

스님은 이 책에서 평소 기도와 관련해 가장 자주 들어온 질문 다섯 가지와 그에 대한 답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품곤 하는 기도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고 참된 기도란 무엇이며 기도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 난 후에는 기도와 하나 되는 삶을 살고 싶은 떨림이 느껴진다.
그럼 그 다섯 가지 질문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하나, 기도는 정말 이뤄지나요?
-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면, 기도는 이루어질 때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는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의 차원에서 보면, 진실한 기도는 어떤 식으로든 이뤄집니다.

둘, 기도를 가능케 하는 건 무엇인가요?
- 믿음, 자비, 사랑의 에너지가 없는 기도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 전화선을 통해 전화를 거는 것과 같습니다.

셋, 기도가 이뤄 내는 건 무엇인가요?
- 기도는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신앙을 통해 우리 몸과 마음에 새로운 무대를 열어 줍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므로 기도를 통해 마련된 새로운 무대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넷, 믿음이 약하면 기도에 효험이 없을까요?
- 기도가 만들어 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렇지, 믿음이 약하더라도 기도는 분명 효험이 있습니다. 기도에는 무언가를 향한 ‘사랑’이 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타인을 향한 사랑이든 세상을 향한 사랑이든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이든, 사랑은 무언가를 바꿔 놓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기도하는 자기 안에서는 분명 변화가 일어나지요. 물론 믿음이 강하면 변화는 더 클 것입니다.

다섯,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나요?
- 불교에서는 그 무엇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조상님이든 해든 달이든, 모든 것은 기도하는 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 안에서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바깥에 있는 누구에게 아울러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기도의 세 기둥

틱낫한 스님은 기도를 떠받치는 세 기둥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마음챙김(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깨어 있는 의식으로 온전히 알아차리기), 집중, 깨달음이다.
마음챙김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마음챙김은 우리 몸과 마음을 진정으로 현존케 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한곳으로 모이는 것이지요.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신앙이 있어도 기도가 불가능합니다. 그대가 여기 없는데 대체 누가 기도를 한단 말입니까?”
스님이 말하는 깨달음은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 다르다. 수행을 통해 이르게 되는 신비하고 고매한 경지를 일컫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으므로 나와 하느님, 나와 부처님은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나는 물론이고 소나무, 달, 별에게도 그분들이 지닌 사랑과 마음챙김과 지혜가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스님이 말하는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마음챙김, 집중, 깨달음이 함께하는 기도란 무엇일까?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에 마음챙김과 집중과 깨달음이 함께하는 것이 참된 기도이다. (여기서 기도와 명상은 서로 만난다.) 기도란 추상적인 관념에 대고 무언가를 빌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현실, 즉 하늘과 나무와 밥과 이웃의 얼굴에서 부처님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순간순간을 채워 나간다면 우리 삶은 기도와 하나가 될 것이다.

세수를 할 때
차를 마실 때
길을 걸을 때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대가 외톨이가 아님을 알면
그 순간순간들은 모두 성스러운 의식,
그대를 바꾸고
그대를 살리고
그대를 근원과 이어 주는
가장 참다운 기도가 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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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 우리가 바뀌기를 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바뀌는 것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낮이 안녕하기를 밤이 안녕하기를 낮과 밤 그 사이도 행복하기를우리는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그리고 일상생활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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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

인류세,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
인류세,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

[창비 주간 논평] "한반도 인류세의 문제는 평화의 문제"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  2019-08-22 08:46:23  |  2019-08-22 08:46:46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이제야 정신이 들었나 보다. 그동안 봐야지 벼르던 전시를 막 내리기 직전에 보았다. 'Dear Amazon: 인류세 2019'(일민미술관 2019.5.31~8.25)는 비서구권 중 인류세 논의가 가장 활발하다는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꾸려졌고 한국의 예술가와 환경운동가들도 참여했다. 세계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그 이름만 들어도 떠올리게 되는 생태 위기를 직접 묘사한 작품도 있지만 전시의 의도가 단순한 고발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보다는 인간의 반복된 행동이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세계 속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의 위치는 어디인지, 다양한 비인간 종들과 어떻게 공존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등을 생각해보라고 주문한다.

인류세라는 주제에 압도되어 전시장에 들어섰지만, 찬찬히 볼수록 소소한 재미도 있다. 브라질 하면 흔히 떠올리는 풍부한 천연자원, 즉 광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상 <기이한 광물이야기>(마베 베토니코 감독)는 광물의 발견과 채굴, 이용의 역사뿐만 아니라 광석이라는 물질 자체가 다양한 매체 속에서 어떻게 상상되고 재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크립토나이트라는 광석에 가까이 가면 힘이 빠지는 슈퍼맨의 고향 크립톤 행성은 자원개발로 황폐화되었다고 하면서도, 지구별 인간들은 20세기 중반부터 우주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지치지 않고 이어오는 중이다. 한편 강에서 갓 낚아 올린 물고기를 가만히 안고 다독거리며 예의를 다하는 원주민들을 담은 작품도 있었다.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에 빚지고 살 수밖에 없으되 그 희생을 기억하고자 하는 그들의 품위도 인상적이었지만, 사실 더 눈에 띈 것은 그 큰 물고기를 펄떡거리지 못하게 제어하고 있는 팔뚝의 힘이었다. 이 물고기를 꼭 잡아야 내가 산다는 비장함도, 잡힌 물고기를 대하는 고요한 의례의 시간도 TV 속 '도시어부'에게는 없는 것이다.

사실 전시의 개별 작품보다 흥미로운 건 한국 사회에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가 확산되어가는 방식과 속도일지 모른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는 것보다 인류세 담론 관련 행사가 증가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른 것 같다고 말한 학자도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여러 매체가 연이어 다루면서 인류세라는 용어가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인류세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자연환경에 미친 영향력과 자취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지질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2000년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약 1만 년 전쯤 빙하기가 끝나면서 시작된 홀로세(Holocene)가 끝나고, 현생 인류의 활동의 결과로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지구에 남긴 흔적들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은 농업이나 건설을 통해 엄청난 퇴적층을 유실시켰는데 이는 바다, 바람, 강 등 자연이 가진 침식력의 10배 이상이었다.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로 야기된 기후변화는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종(種)의 멸종을 가속화한다. 또한 전반적인 기온 상승으로 전염병과 산불이 증가하고,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올라가는 중이다. 해양의 산성화로 해양 생태계가 붕괴되는 한편 강물을 포함한 담수가 부족해지고 있다. 무엇 하나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류세라는 용어 자체는 현생 인류의 활동이 지구 상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시대라는 뜻이지만, 그것이 종말론적인 의미로 들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올여름 더위가 작년보다는 견딜 만했다고 하지만,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연근해에서 잡히는 어종부터 내륙에서 재배되는 작물에 이르기까지 이미 한반도에서도 기후 변화의 영향이 심각하다. 그뿐만 아니라 미세먼지와 방사능, 녹조로 가득 찬 강물, 미세플라스틱과 쓰레기 문제까지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할 수 없음을 알리는 신호는 이미 차고 넘친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4차산업혁명 시대'처럼 자의적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유행어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류세'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학계에서도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는 데는 이렇듯 먹고 입고 버리고 싸는 인간 일상의 모든 행위가 지구적 재앙에 기여한다는 실감에 힘입은 것일 터이다.

그런데 인류세 담론이 현 문명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점도 있다. 일단 인류세라는 위기의 시대를 만든 책임의 정도가 모든 인류에게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잘 지적하지 않는다. 자연을 자원 취급하면서 파헤쳐 이용하고 화석연료를 엄청난 규모로 소비하는 행위는 여전히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며, 더 많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이용하고 광물을 채취하기 위한 개발행위에 저항하는 세계 곳곳의 원주민들은 아직도 미발전 상태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무시된다. 1조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지만, 브라질 정부는 지금도 아마존 우림 지역에 새로운 개발 허가를 내주고 있고, 바로 지난 7월에는 원주민 지도자가 금광을 개발하려는 광부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세계 경제가 불안해서 세계 금 가격이 치솟는 중이라니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저항을 누르고 개발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은 거세지면 더 거세졌지 약화될 것 같지 않다.

북미 대륙에서도 동남아에서도 자원 채굴이나 개발을 강행하려는 세력들과 거기에 대한 저항 소식이 들려오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제주, 밀양, 성주 소성리, 4대강 사업으로 농사짓다가 쫓겨난 사람들까지, 한국 안에서도 주민을 밀어내고 상전벽해를 만들어내는 바람은 여전히 드세니까 말이다. 사실 막연하게 인류세를 성찰한다고 하면 근사하게 들리지만 내 집 앞, 내 고장의 개발 문제가 되면 이해관계가 얽혀서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 구체적인 상황 인식과 정치적인 해결책 모색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인류세 담론은 결국 한때 그럴듯했던 논의에 그치고 말 것이다. 사실 파고 들어가면 한반도 평화와 노동문제까지 안 걸리는 것이 없는 게 바로 환경 문제이기도 하다. 제주 강정을 들락거리는 핵잠수함의 문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확장되고 있는 군사시설의 문제를 보면 한반도에서 인류세의 문제는 평화의 문제이기도 하니 말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Anthropocene: The Human Epoch - Wikipedia

Anthropocene: The Human Epoch - Wikipedia

Anthropocene: The Human Ep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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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opocene: The Human Epoch
Anthropocene - The Human Epoch (2018) Film Poster.jpg
Directed byJennifer Baichwal
Nicholas de Pencier
Edward Burtynsky
Narrated byAlicia Vikander
CinematographyNicholas de Pencier
Release date
  • September 13, 2018 (TIFF)[1]
  • September 28, 2018
Running time
87 minutes
CountryCanada
LanguageEnglish
Box office$753,488[2][3]

Anthropocene: The Human Epoch is a 2018 Canadian documentary film made by Jennifer BaichwalNicholas de Pencier and Edward Burtynsky.[4] It explores the emerging concept of a geological epoch called the Anthropocene, defined by the impact of humanity on natural development.

Details[edit]

The third film in a series of collaborations between filmmakers Jennifer Baichwal and Nicholas de Pencier with photographer Edward Burtynsky, following Manufactured Landscapes and Watermark, the film explores the emerging concept of a geological epoch called the Anthropocene, defined by the impact of humanity on natural development.[5] It is part of the larger Anthropocene Project which includes museum shows that opened at the Art Gallery of Ontario and the National Gallery of Canada in September 2018[5] and the publication of two books, one centered on essays, and the other one on photographs. The film is narrated by Alicia Vikander.

Anthropocene: The Human Epoch premiered at the 2018 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IFF).[4]

Awards[edit]

In December 2018, the 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named the film to its annual year-end Canada's Top Ten list.[6]

In January 2019, it was announced as the winner of the Rogers Best Canadian Film Award at the Toronto Film Critics Association Awards 2018.[7] The filmmakers gave the $100,000 prize money to the runners-up and to TIFF's Share Her Journey initiative, which supports women in film.[4]

Also in January 2019, the film received the Vancouver Film Critics Circle award for Best Canadian Documentary Film.[8]

The film won two Canadian Screen Awards at the 7th Canadian Screen Awards in 2019, for Best Feature Length Documentary and Best Cinematography in a Documentary (de Pencier).[citation needed]

Reception[edit]

As of April 2021, the film holds an 89% approval rating on Rotten Tomatoes, based on 37 reviews, with an average rating of 8.1/10. The website's critics consensus reads, "Anthropocene: The Human Epoch offers a sobering -- and visually ravishing - look at the horrific ecological damage wrought by modern human civilization."[9] On Metacritic, the film has an average rating of 77/100, based on six reviews, indicating "generally favorable reviews."[10]

See also[edit]

References[edit]

External links[edit]

2110 인류세 시대의 종교- 지구종교론을 중심으로 허남진

 인류세 시대의 종교- 지구종교론을 중심으로

허남진(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Ⅰ. 들어가는 말

요즘 인류세(Anthropocene) 논의가 여러 학문분야에서 눈에 띄게 논의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즘, 신유물론은 대표적인 인류세 인문학의 흐름이다. 인류세는 지구시스템 과학자와 지질학자들이 인류의 활동이 지구 환경 변화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을 의미하기 위해 제안된 용어이다. 

지구 시스템 과학의 대표적인 연구결과가 바로 ‘인류세’이다. 이렇게 지구시스템 과학의 등장은 지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발시켰다. 지구 시스템 과학의 사고체계는 생태적 사고에서 지구적 사고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 이렇게 지구 시스템 과학은 지구가 인간의 미래를 논의할 때 고려해야 할 하나의 실체로 드러나게 하는 등 지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도록 이끌었다. 

이제 지구는 지구위기라는 상황과 대면하면서 학문적 성찰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인류세에 대한 여러 연구들의 공통된 견해는 ‘지구’에 대한 성찰의 촉구와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와의 관계 재 정립의 요구로 집약된다. 지구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인간을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 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하나의 연결된 세계로서 지구 시스템을 고려하여 인간 삶의 방식과 사회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세는 환경위기, 기후변화 등 부정적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인류세 논의에 등장하는 ‘지구역사(geohistory)’, ‘행성적 위기(planetary crisis)’,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재앙 (catastrophe)’ 같은 용어는 기존의 지구 환경 변화와 지속가능성 논의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력 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구 행성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지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롭게 지구와 인 간의 관계를 사유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인류세는 성찰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처럼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던 우리의 복합적 거주지와의 관계를 재구성한다는 의미에서는 긍정적 인 차원도 있다. ) 

인간중심주의적 습관의 결과가 지구를 전지구적 환경 위기로 몰고 가버린 현재 인류세의 시대에, 최 근 ‘지구(earth)’라는 수식어가 붙은 용어들이 학계에서 눈에 띄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 다. 생태학이 생물학적 연구에서 차츰 다양한 학문적 영역으로 확대된 것처럼, 지금까지 지구는 자연과학 중심으로 분석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성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통합적 지구학이 시작된 것이다.3) 

종교영역에서도 지구에 대한 성찰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구종교(Earth Religion)’, ‘지구신학(Theology of the Earth/ Theology for Earth)’이다. 본 발표는 지구종교론 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그 특징을 통해 인류세 시대 종교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인간의 조건과 지구소외

대지 혹은 지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일찍이 하이데거, 니체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니체는 이 원론적 자연관을 거부하면서 지구를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의 토대이며 생성의 법칙이 지배하는 장 소로 이해했다. ) 그러나 지구에 대한 절대 의존적인 관계는 점차 이루어진 상업주의, 산업화, 기술 화를 거쳐 전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하이데거에 의하면, 형이상학의 역사를 통 해 대지는 인간의 삶의 근거로부터 점차 인간을 위한 거대한 재료로 전락하게 되고, 지구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점차 부정되고 왜곡되며, 망각되어 온 것이다. ) 

데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지구’를 인문학의 범 주로 등장시킨 인물로 소개한다. ) 하이데거는 지구를 철학적 범주로 설정하면서 자신의 존재론과 연결시켜 지구를 성찰한다. 그에게 ‘지구(Erde)’는 흙과 지구 모두를 담고 있는 함축적 의미로서 생 명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다. ) 그는 지구를 “어딘가에 퇴적된 질료 덩어리 로서의 지층이라든가, 혹은 천체에 대한 천문학적 관념과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어 생 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이 거주하려는 시도의 근거였음을 강조한다. ) 그래서 세계는 지구로부터 떠날 수 없다. 세계와 지구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 다 는 것이다. 하이데거에게 ‘거주’란 인간이 지구 위에서 땅을 딛고 실제로 존재하는 양상을 의미한 다. 이를 지구, 하늘, 신(성스러운 것), 인간이라는 ‘사방’(das Geviert)개념을 통해 논의한다. 여기 서 지구는 “하천, 암석, 식물 그리고 동물을 돌보고 보호하면서 건립하며 떠받치고 있는 것, 즉 자 양분을 공급하며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으로 만물의 어머니로 사유되고 있다. ) 그는 사방은 유기 적 관계로 사방을 소중히 보살피는 것이 거주하는 것이라 말한다. 지구를 보살핀다는 것은 지구를 구원한다는 것이며, 이는 지구를 지배하지 않고 또한 지구를 복종케 만들지도 않는 것이다. ) 이처 럼 하이데거에게 지구는 본질적인 인간의 조건으로 사유되고 있다. 

하이데거의 인간의 조건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지구소외로 이어진다. 1957년 10월 4일, 인류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우주를 향해 발사하였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의 서론에서 “1957년 인간이 만 든 지구태생의 한 물체가 우주로 발사됐다”면서 ‘스푸트니크 1호’발사를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인 식했다. 그녀는 “기독교가 비록 지구를 눈물의 계곡이라 부르고 철학자들이 육체를 정신이나 영혼 의 감옥으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도 지구를 인간 육체의 감옥으로 생각한 적 도 없으며”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아버지인 신을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던 근대의 인간해방이 이제 모 든 피조물의 어머니인 지구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보았다. 아렌트에게 지구는 인간이 별다른 노력없 이 움직이고 숨 쉴 수 있는 거주지를 제공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 

아렌트는 인간과 지구 사이에 생긴 거리(distance)에서 지구소외를 포착한다. 이제 인간은 인공 위성을 통해 지구를 대상으로 떼어 내어 보는 시점이 가능해 졌다. 지금까지 일체화되었던 상태에 서 관점적으로, 심리적으로 거리가 생겼다는 점에서 소외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지구 에 묶여 있는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고 아르키메데스적 관점으로 지구 밖에서 지구에 묶여 있는 자연을 생각하고 다루게 된 것이다. ) 이를 아렌트는 “우리는 항상 자연을 지구 밖 우주의 한 점의 관점에서 다룬다. 아르키메데스가 서 있기를 희망했던 점에서 실제로 서지 못하고, 인간의 조 건 때문에 여전히 지구에 구속되어 있는 우리는 아르케메데스적 점에서 지구를 자유롭게 다루는 방 법을 발견했다” )고 말한다. 여기서 아렌트는 인간이 지구에 묶인 존재임에도 ‘지구소외’를 통해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파괴하고 언젠가는 지구 자체도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바로 지구 와 자연은 인간의 탐구․분석 대상이자 정복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다시 말해, 인간은 과학기술의 힘을 통해 어머니인 지구에서 벗어나 이제 지구의 지배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것이었다.15)

Ⅲ. ‘ 위기의 지구’ 와 ‘ 지구’ 에 대한 성찰

주지한 바와 같이 지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우주적 관점의 출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 주시대 개막과 더불어 지구의 위기에 대한 의식 역시 심화된다. 하이데거와 아렌트가 주장한 ‘인간 의 조건’이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1963년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 출간을 통해 인간이 만든 화학 물질인 DDT가 지구를 죽음의 행성으로 바꿀 수 있다고 경고했고, 1970년대 인류의 화석연료 소비 증가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져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자연스럽게 전 지구적 환경운동으로 이어졌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희의”는 ‘오직 하나뿐인 지구’를 슬로건으로 열린 최초의 환경회의였다. 

이어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 서 삶의 터전인 지구의 통합적이며 상호의존적인 성격에 기초한 ‘리우선언’이 발표되었고, 이 ‘리우 선언’은 초기에 ‘지구헌장(Earth Charter)’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유엔인간환경회의”가 ‘하나뿐인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경고한 회의였다면, 리우정상회의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실천적 방 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처럼 1990년대 무렵 지구 자체가 파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 1992년 급진적 생태운동 단체인 지구해방전선(Earth Liberation Front)이 설립된 것도 궤를 같이 한다. 

당시 미국의 전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Al Gore)는 위기의 지구에서 지구위기를 지 구와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한 세 가지 변화 즉 인구증가, 과학과 기술의 혁명, 환경과 인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사고방식 등으로 인해 발생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17) 이렇게 서구에서는 지구위기문 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흐름이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었다. 

지구 그리고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해 성찰한 대표적 인물은 토마스 베리이다. 대표적인 지구 신학자로 평가되고 이후 지구신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18) 그는 지금까지의 학문들은 모 두 인간이 지구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구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지구에 대한 재성찰을 주장했다. 지구의 꿈에서 지구와 생물 그리고 인간이라는 지구의 모든 구성원이 친밀한 지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면서 상호증진적인 인간과 지구의 관계의 확립을 촉구했다.19) 황혼의 사색에 서는 본격적인 지구에 대한 성찰을 시도했다. 인간은 지구시스템을 온전히 보존해야 하며, 지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지구에 대한 경외감을 발견할 것을 주장했다.20) 토마스 베리에게 지구시스템은 하이데거와 아렌트가 말했던 인간의 조건과 다름이 아니었다. 이렇게 그는 지구에 대한 성찰을 통 해 착취의 대상이 아닌 사귀어야 할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생태대(Ecozoic Era)’라 는 새로운 시대 개념을 제안하였다.21)

주지한 바와 같이, 토마스 베리는 지구위기를 지구에 대한 경외감의 상실에 찾았다. 토마스 베리에게 영향을 받은 래리 라스무쎈은 “내게 새로운 시대의 종교를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가 말하는 새로운 시대의 종교는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Earth-honoring Faith)’이다.22) 바로 이 지점에서 ‘지구종교’ 혹은 ‘지구신학’이 출발한다.

Ⅳ. 지구종교론의 양상

1. 시민종교로서 ‘ 테라폴리턴 지구 종교’ (terrapolitan earth religion)

행성(planetary)은 ‘cosmos’, ‘cosmopolitan’, ‘earth’, ‘world’ 등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며, 최근에는 가이아영성처럼 환경운동에서, 코스모폴리턴주의(cosmopolitanism)와 연관되어 테라폴리턴(terrapolitan)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23) 한 예로,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는 ‘행성’이 ‘글로브’를 대체하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글로벌의 주체가 아니라 행성적(planetary) 주체, 세계(worldly)의 존재가 아니라 행성적 피조물로 볼 것을 주장했다 ‘글로 브’(globe)라는 용어는 그 안에 있는 생명체들의 다양성을 단일화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반면, ‘행 성’(planet)은 개별적인 생명체 고유의 ‘다름’(alterity)과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행성’이 보다 적합한 용어라는 것이다. ) 그래서 최근에 서구에서 ‘지구화시대’보다 ‘행성시대(planetary age)’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화현상의 비판적 고찰, 인문과학연구39, 2020, 189-190쪽.

17) 앨 고어, 위기의 지구, 삶과 꿈, 1994, 2쪽.

18) Anne Marie Dalton, A Theology for the Earth: The Contributions of Thomas Berry and Bernard Lonergan, University of Ottawa Press, 1999.

19) 토마스 베리, 지구의 꿈, 맹영선 옮김, 대화문화아카데미, 2013, 16-17쪽.

20) 토마스 베리, 메리 엘블린 엮음, 황혼의 사색-성스러운 공동체인 지구에 대한 성찰, 박만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 155-162쪽.

21) 토마스 베리· 토마스 클락,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 김준우 옮김, 에코조익, 2006, 68쪽.

22) 래리 라스무쎈,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문명전환을 위한 종교윤리, 한성수 옮김, 생태문명연구소, 2017, 15-17쪽.

23) Christian Moraru. Reading for the Planet: Toward a Geomethodology,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15, p. 40


북미 종교학자 브론 테일러(Bron Taylor)는 현재 지구 종교성(Earth Religiosity)은 급진적인 환 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지구종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 다고 말한다. 테일러는 야생의 법(Wild Law) 저자 코막 컬리난(Cormac Cullinan)의 ‘지구이데올 로기(Earth ideology)’와 ‘지구민주주의(Earth democracy)’를 주장하는 생태여성학자 반다나 쉬바 (Vandana Shiva)의 ‘지구중심적 사고(Earth-centered thinking)’를 일종의 지구민족주의(earth nationalism)와 시민 지구종교(civic earth religion)로 보았다. 

테일러는 이러한 지구종교를 어두운 녹색 종교(dark green religion)로 개념화한다. ) 그가 지구 종교를 ‘어두운 녹색 종교’로 개념화한 이유는 지구중심적 사유가 어스 퍼스트(Earth First)와 지구 해방전선과 같이 인간예외주의(인간혐오)로 확장될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정치학자인 대니어 듀드니(Daniel Deudney)가 제안한 ‘테라폴티턴 지구 종교 (terrapolitan earth religion)’에 주목했다. ) 듀드니는 지구헌법(Earth constitution)과 지구 민족 주의(Earth nationalism) 그리고 가이아 지구종교(Gaian Earth religion)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 듀드니는 주요 환경문제의 출현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국가중심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 다고 지적하면서 테라폴리턴(terrapolitan) 주권을 제안한다. 지구촌의 정치적 연합의 중심적 기반 은 지구(earth/terra)이어야 하며, 지구촌(global village)의 새로운 구성에 적합한 정치적 연합은  지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테라폴리턴을 주장한다.. ) 왜냐 하면 지구는 모든 인간의 공 동의 집이라는 장소성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구민족주의(Earth nationalism)와 함 께 그 공동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시민종교로서 가이안 지구종교(Gaian Earth religion)제안 한 다. 듀드니의 가이안 지구종교는 토크빌의 주장에 따라, 공화주의 정치 질서에는 특정한 형태의 종 교가 필요하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칼 세이건이 우주시대 개막은 지구를 정치적 국경이 없는 하나의 통일된 행성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켰다고 말한 바와 같이  ), 그는 우 주에서 촬영한 지구의 정치적 메시지는 지구가 완전히 통합된 생명영역이며 모든 인간의 집이라는 경험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에서 지구민족주의와 지구애국주의의 가능성을 본 것이 다. 듀드니는 지구민족주의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전체 지구(whole Earth)와 지구본(globe)을 비교 한다. 즉, 지구본은 국민국가를 표현하는 인공적인 정치적 경계선이 있지만 전체지구에서는 이러한 국민국가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30)

테일러는 듀드니의 생태학적 상호의존성의 강조, 집으로서 지구와 친족으로서 인간이외의 존재에 대한 정서적 연결은 짙은 녹색 종교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파악한다. 특히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가 보장될 수 없다는 문제에 대해 비판한다. ) 

주지한 바와 같이, 듀드니의 가이아 지구종교는 테라폴리티언의 정체성의 원천으로서의 잠재적 역할에 있다. 그는 마키아벨리, 스튜어트 밀, 홉스 그리고 루소 등의 종교와 정치 관계에 대한 분석 의 공통점은 종교를 특정한 정치적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 래서 지구종교를 시민종교로서의 잠재적 역할과 지속가능한 공동 정체성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 또한 지구를 존중하는 행동의 동기를 부여시키는데 지구종교가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 보고 있 다.33) 

애드가 모랭(Edgar Morin)과 안느 브리지트 케른(Anne Brigitte Kren)은 지구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중심(Earth-Centered)적 관점에서 지구시민(citizens of the Earth)과 지구연방(Earth Federation)을 주장한다. 이들 여기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사건과 하나의 지구라는 단위를 강조 한다. 

그들은 지구에 태어난 생명은 지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생태학적 상호의존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이에 따라 지구라는 행성은 모든 인간존재들의 ‘공동의 집’, ‘모태(母胎)’ 나아가 ‘조국’이기 때문에 지구운명공동체를 이루게 된다고 논의한다. )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단 하나뿐인 지구’의 위기이다. 기술과학을 지구를 괴롭히는 원인으로 파악하면서, 이 같은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를 초월하는 지구 연합체가 구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는 지구시민권, 지구시민의식, 지구정치여론 그리고 지구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인류를 지구시민(citizens of the Earth)로 개념화하면서 정치는 인간의 운명뿐만 아니라 지구의 운명과 변화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지구정치학’을 주장한다. 지구정치학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의 우명과 변화까지 책임져야 하는 정치이다. 즉 인간정치, 지구적 책임정치, 다차원적이지만 전체주의적이지 않은 정치이다. 지구는 물리적, 생물학적, 인류정치학적 복합체이기 때문이다.37) 모 랭과 게른 역시 모든 인간존재와 국가를 연결하고 일치 시킬 수 있는 지구종교(Earthly religion)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연결하고 일치시키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의 어원에 착 안하여 ‘다시 연결짓다’는 종교의 본질에 접근한다. 따라서 그들이 제안하는 지구종교는 지구를 보 존하고 인간의 일체성을 완성시키며, 인간의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는 종교가 된다. ) 이것은 듀드 니의 시민종교로의 가이안 지구종교에 대한 요구와 일치한다.

 

2. 지구를 위한 종교(Religions for Earth)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지구화과정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인 지구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지구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그 역시 지구는 우 리가 서있는 땅, 농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를 수 있는 땅, 천국과 대비되는 지상 생활의 서식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면서 우리의 집을 의미한다. 몰트만은 지구에 대한 성찰을 위해 제임스 러브 록의 가이아론을 끌어들인다. 그는 가이아론은 지구를 신격화하려는 시도가 아닌 인간중심주의를 종식시키고 인류를 지구 체계 전체의 삶에 통합시키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지구를 생명체를 창조하고 다양한 형태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서식지를 만드는 유기체로 이해해야 한 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구, 자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을 지구의 피조 물로 인식한다. 그가 보기에 지구는 인간을 위한 환경이 아닌 오히려 생명을 낳고, 생명을 유지하 고, 생명에 필요한 조건을 만드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몰트만은 ‘세계종교(world religion)’에서 ‘지구종교(Earth religion)’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지구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계종교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지구종교가 되어야 하며, 인간을 전체로서 행성 지구 속에 통합 된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잊혀진 생태학적 지혜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재발견하고 지구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지 구종교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논한다. 따라서 원시적인 것으로 경시했던 자연종교를 인정하고 산 업화 이전의 지혜를 산업화 이후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40)

최근 기독교 신학에서는 전 지구적 파멸 위기에 직면하여 지구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구신학’에 논의가 활발하다. 지구를 위한 신학(Theology for Earth)은 1954년 조셉 시틀러 (Joseph Sittler)의 「A Theology For Earth」에서 처음 등장했다.  )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본격적 으로 지구신학이 논의되고 있다. 지구신학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구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다. 방법론적으로 모든 것은 상호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관계에서 시작한다. 또한 지구를 생명체와의 관계성에서 생명 의 장소(topos)와 거처(oikos)로, 하느님과의 관계성에서 하느님의 장소와 거처로, 마지막으로 인간 과의 관계성 속에서 인간의 장소와 거처로서 성찰한다.42)

대표적인 지구신학자는 생태여성신학자 셀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이다. 맥페이그는 신학자 의 과제는 기독교 전통의 중심 상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억압받고 있는 지구와 지구에 있는 모 든 피조물들 해방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구신학을 제창한다. 

새로운 창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지구 위에 있는 이방인 혹은 여행자가 아닌 땅에 속한 사람 즉 지구적 존재로 이해하며, 하느님을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의 진행과정에 현존하는 분으로 이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신학은 ‘지구를 구원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 

또한 그녀는 지구 위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즉 인간은 지 구의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생적 존재한다는 것이다. ) 이처럼 지구의 몸과 더불어 살아가는 몸들이 라는 은유를 통해 지구에 속해 있는 존재라는 인간관을 제시한다.45) 그래서 그에게 지구신학은 사 람들로 하여금 터전인 땅 위에 올바르고 합당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소 외받았던 억압받는 이웃들, 우리 모두를 지탱시켜 주는 지구, 그 밖의 피조물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 립하는 신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신학자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는 지구행성의 위기에 적합한 정치신학을 재규정하기 위해 “지구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을 주창한다. 켈러는 지금까지 동등한 존재로 인정되지 않았던 인간이외의 존재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재를 회복시 켜주는 정치를 신학적으로 성찰한다. 그 연장선에서 지금의 정치와 경제제도로는 지구적 생태곤경 을 해결할 수 없다는 신학적 비판 속에서 ‘지구정치신학’을 제창한다.46) 

켈러는 인간은 지구행성에서 생태적 관계 속에서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포함하는 모든 존재들과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지구행성과 분리될 수 없는 지구적 존재들(earthlings)임을 강조하면서 지구를 성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구는 그의 정치신학의 공간에 위치된다. 그에게 지구는 우리의 집합성의 영역을 비옥하게 하는 존재이다. 켈러는 예외주의를 비판하면서 지금까지 정치영역에서 배제된 서민이하(undercommons) 즉 정치적인 것 밑으로 떠밀어지고 자원이나 욕구, 서비스의 흐 릿한 배경으로 간주됐던 사람과 인간 이외의 존재들, 그리고 ‘지구’까지 ‘서민(commons)’으로 포함 시킨다.47) 이처럼 인간, 자연, 지구 모두를 포함한 지구 행성 전체로 공동체 의식이 확대되어야 함 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적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몸을 통해 물질세계와 소통하며, 그래서 몸이 속한 지구가 문제가 될 때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몸에 기반하여 작동하는 정신도 문제 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은 ‘지구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 of earth)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이다.48)

3. 지구를 모시는 종교49)

한국 개벽종교의 공통된 특징은 ‘천지’를 부모와 같은 존재로 받드는 ‘지구를 모시는 종교’라는 점에 있다. 해월 최시형은 천지를 부모와 같이 섬겨야 한다는 ‘천지부모론’을 제창했다. 물론 천지 를 부모처럼 인식하는 사유는 역전(易傳)의 ‘건칭부곤칭모(乾稱父坤稱母)’에서 확인 되듯이 고대 중국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잠재적 가능성은 있지만 천지부모를 공경해야한다는 실천적 윤리로 까지는 확장시키지는 않았다. 

해월의 천지부모론은 수운 최제우의 ‘천지은혜론’에 근거하고 있다. 수운은 동경대전 「축문」에 서 “천지가 덮고 실어주는 은혜를 느끼며, 일월이 비추어 주는 덕을 입는다”50)라고 하여 천지의 은 혜를 강조했다. 수운의 ‘천지은혜론’은 해월의 ‘천지부모론’으로 체계화된다. 해월에 의하면 천지(天地)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생존 조건이며, 만물은 천지라는 ‘포태’ 안에서 생장하는 자식과 같고, 그런 의미에서 천지는 부모와 마찬가지로 은혜롭고 공경해야 할 존재이다. ) 해월은 천지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인간의 조건으로 이해했고, 한걸음 나아가 천지를 부모처럼 섬기 라는 천지공경의 실천윤리까지 설파했다. 이러한 천지부모론은 자연스럽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 재가 동포 즉 ‘물오동포(物吾同胞)’가 된다.

45) 샐리 맥페이그, 풍성한 생명, 장윤재· 장양미 옮김, 이화여대출판부, 2008, 209쪽.

46) 박일준, 공생의 정치신학-캐서린 켈러의 ‘ (성공)보다 나은 실패(a Failing Better)를 위한 정치신학 , 한국기독교신학논총116, 2020, 329쪽.

47) Catherine Keller, Political Theology of the Earth: Our Planetary Emergency and the Struggle for a New Public,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8,  pp. 5-6. ; 박일준, 앞의 논문, 340-341 쪽.

48) 박일준, 앞의 논문, 347쪽.

49) “ 지구를 모시는 종교” 는 필자의 지구를 모시는 종교-동학과 원부교의 ‘ 천지론’ 을 중심으로(원불 교사상과 종교문화88, 2021, 155-183쪽)를 

50) “ 叩感天地盖載之恩, 荷蒙日月照臨之德.” (동경대전, 축문). 이 글에서 인용하는 동경대전의 원 문과 번역은 김용휘, 최제우의 철학(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2)을 참고하였다.

52) 동학의 천지부모론은 소태산 박중빈의 천지은 교리로 이어졌다. 소태산은 천지은‧부모은․동포은․ 법률은으로 구성되고 있는 사은(四恩)을 설명하면서 천지·부모를 ‘부모 항’에, 동포·법률을 ‘형제 항’ 에 넣고 있는데, 이는 소태산 역시 “천지를 부모로 간주한다”고 하는 해월의 천지부모사상을 공감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원불교에서 ‘천지’는 “그것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은혜로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고, 모든 은혜 중에서 가장 큰 은혜로 간주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천지의 은혜를 입고(피은被恩)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은혜에 보답할 윤리적 책임이 동반되는데, 그것이 바로 원불교에서 말하는 ‘천지보은(天地報恩)’이다. ) 특히 천지의 은혜를 저버리면 벌을 받고, 천지의 은혜에 보답하면 우대를 받는다고 하는 천지배은(天地背恩)과 천지보은(天地報恩)이 설파하고 있다. 여기서 천지배은은 최근 프란치스 코 교황이 제안한 ‘생태적 죄’의 요구와 매우 유사하다. 

 해월이 천지부모론과 천지공경을 제시한 것처럼, 소태산은 천지은과 천지보은을 말하고 있다. ) 

이상과 같이 동학과 원불교의 ‘천지’를 좁은 의미의 ‘지구’로 이해하면, 동학과 원불교는 ‘지구를 모 시는 종교’라고 명명할 수 있다. 

Ⅳ. 나오는 말

 차크라 바르티는 인류세의 위기를 경외감의 상실에서 찾고 있다. 새로운 정치사상의 전통을 재 구축함에 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와 우리와의 관계에 경외심의 요소를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인간과 지구 그리고 만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 요소를 경외심으 로 보고 있다. 이는 인류세 시대에 종교가 무엇을 모색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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