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만들어진 종교 - 메이지 초기 일본을 관통한 종교라는 물음 호시노 세이지

만들어진 종교 - 메이지 초기 일본을 관통한 종교라는 물음
호시노 세이지
(지은이)
,이예안,이한정 (옮긴이)
글항아리2020-08-21






















미리보기


408쪽
책소개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메이지 시기 일본, 서양의 학문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개념과 용어가 유입되고 생성되었다. ‘종교’ 또한 그중 하나다. 신도, 불교 등 일본 고유의 종교 전통은 이미 있어왔지만, 근대적 종교 개념이 구성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초기에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종교’가 채택되면서다. 특히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기존 종교 전통들은 스스로를 변증하기 위해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종교 개념 자체를 고찰해야 했다.

『만들어진 종교』는 이처럼 종교 개념의 정립 필요성이 촉발된 메이지 초기에서부터 종교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 메이지 후기를 대상으로 하여 그 역사성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해낸 연구서다. 자칫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쉬운 ‘종교’ 개념을 그 역사성에 주목하여 검토하면서,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종교’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어 나갔는지를 탐구한다.


목차


서론

제1장 종교 개념의 역사성이라는 관점
제1절 서론: 종교 개념을 역사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
제2절 종교 개념과 관련 연구
제3절 결론: 종교 개념을 다시 이해한다는 것

제1부 문명으로서의 종교

제2장 개화·종교·기독교
제1절 서론: ‘문명의 종교’를 다시 생각한다
제2절 제시된 기독교와 종교
제3절 수용된 기독교와 종교
제4절 결론: 동태로서의 제시와 수용

제3장 ‘이학’과 ‘종교’: 메이지 10년대의 학문과 종교의 위상
제1절 서론: 학문과 종교의 조화라는 주장
제2절 다카하시 고로와 『육학잡지』
제3절 다카하시 고로의 ‘종교’와 ‘이학’: 「종교와 이학의 관섭 및 그 긴요함을 논함」(1880)을 중심으로
제4절 결론: 학문과 종교의 조화와 그 귀결

제4장 불교를 연설하다: 메이지 10년대 중반의 ‘불교 연설’의 위상
제1절 서론: 왜 ‘불교’를 ‘연설’하는가
제2절 ‘불교 연설’의 위상? ‘연설’‘설교’‘불교 연설’
제3절 ‘불교 연설’에 보이는 불교·기독교
제4절 결론: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제2부 문명에서 종교로

제5장 고자키 히로미치의 기독교·종교 이해의 구성
제1절 서론: 고자키 히로미치의 『종교요론』과 『정교신론』
제2절 『종교요론』
제3절 『정교신론』
제4절 결론: 종교와 기타 종교들

제6장 나카니시 우시오의 종교론
제1절 서론: 불교변증론에서 바람직한 종교
제2절 메이지 중기까지의 개관
제3절 이노우에 엔료
제4절 나카니시 우시오
제5절 결론: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제7장 문명에서 종교로: 메이지 10~20년대에 걸친 우에무라 마사히사 종교론의 변천
제1절 서론: 기독교와 여타 종교의 단절과 연속
제2절 메이지 10년대 - 문명과 진화론
제3절 전환점 ? 서양 인식과 기독교 이해의 전환
제4절 메이지 20년대 - 종교라는 영역
제5절 결론: 문명에서 종교로

제3부 종교와 도덕의 재배치

제8장 도덕과 종교의 위상
제1절 서론: 도덕과 종교라는 문제
제2절 교육칙어와 우치무라 간조의 불경 사건 - 도덕과 종교 1
제3절 이노우에 데쓰지로 『교육과 종교의 충돌』을 둘러싸고 - 도덕과 종교 2
제4절 결론: 기독교와 국민 도덕의 재배치

제9장 나카니시 우시오 『교육과 종교의 충돌에 대한 단안』에 대해: 기독교 재해석과 바람직한 종교라는 관점에서
제1절 서론: 나카니시 우시오의 종교·일본·기독교
제2절 『교육과 종교의 충돌에 대한 단안』 집필 이전의 나카니시 우시오와 유니테리언
제3절 나카니시 우시오 『교육과 종교의 충돌에 대한 단안』
제4절 결론: 종교 배치의 이중성

제10장 『종교 및 문예』로 본 메이지 말기 기독교의 한 측면
제1절 서론: 『종교 및 문예』와 시대
제2절 우에무라 마사히사와 『종교 및 문예』
제3절 메이지 말기와 기독교
제4절 『종교 및 문예』
제5절 결론: 종교의 학문적 탐구의 행방

결론: 종교 개념과 종교의 영역을 둘러싸고

미주
참고문헌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종교 개념의 역사성은 이 책이 주안점을 두는 부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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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호시노 세이지 (星野 靖二)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73년생. 도쿄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연구과 문학박사를 받았다. 고쿠가쿠인대학國學院大學 일본문화연구소 조교, 하버드대학 라이샤워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쿠가쿠인대학 일본문화연구소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종교학, 근대종교사, 근대일본종교사로, 최근 연구로 「일본문화론 속 종교/무종교日本文化論の中の宗教/無宗教」(『지금 종교와 마주하다 2 감춰진 종교, 드러난 종교隠される宗教、顕れる宗教(シリーズ・いま宗教に向きあう・2)』, 2018), 「막부 말기 유신 시기의 기독교라는 ‘곤란’幕末維新期のキリスト教という「困難」」(『신과 부처의 막부 말기 유신-교착하는 종교 세계カミとホトケの幕末維新――交錯する宗教世界』, 2018), 「나카니시 우시오-‘신불교’의 창도자中西牛郎-「新仏教」の唱導者」(『일본불교와 서양세계日本仏教と西洋世界』, 2020)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만들어진 종교>

이예안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일본 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림대 한림과학원 HK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근대 서양의 정치사회적 개념과 사상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일본을 경유해 한국에 번역ㆍ수용된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 《사고를 열다: 분단된 세계 속에서》(번역, 2015), 《번역과 문화의 지평》(공저, 2015), 《근대번역과 동아시아》(공저, 2015), 《동아시아 예술담론의 계보》(공저, 2016), 《음빙실자유서》(공역, 2017), 《비교와 연동으로 본 19세기 동아시아》(공저, 2020)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유길준의 사상 세계>,<동아시아 예술담론의 계보> … 총 7종 (모두보기)

이한정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도쿄대학에서 근대일본문학을 전공하고 문학/문화 비교에 관해 공부했다. 일본 고전문학, 세계문학, 지역문화 등을 흡수해 새로운 문학 작품을 창조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상명대학교 글로벌지역학부에서 교육과 연구에 힘쓰고 있으며, 최근 관심사는 한일 간 문학작품 번역, 재일조선인의 자서전을 대상으로 한 언어 표현의 복잡성과 디아스포라의 자기존재성이다. 저서로는 『일본문학의 수용과 번역』,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열쇠』, 사카이 나오키의 『과거의 목소리』, 호시노 세이지의 『만들어진 종교』(공역)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일본문학의 수용과 번역>,<근대 동아시아 담론의 역설과 굴절>,<재일코리안 문학과 조국> … 총 1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메이지 시기 근대화‧서구화의 소용돌이 속 종교를 둘러싼 충돌과 논쟁,
그 가운데 구성된 근대 종교 개념의 역사성!
일본 기독교, 불교계 중심인물을 통해 고찰한 계보학적 연구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메이지 시기 일본, 서양의 학문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개념과 용어가 유입되고 생성되었다. ‘종교’ 또한 그중 하나다. 신도, 불교 등 일본 고유의 종교 전통은 이미 있어왔지만, 근대적 종교 개념이 구성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초기에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종교’가 채택되면서다. 특히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기존 종교 전통들은 스스로를 변증하기 위해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종교 개념 자체를 고찰해야 했다.『만들어진 종교』는 이처럼 종교 개념의 정립 필요성이 촉발된 메이지 초기에서부터 종교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 메이지 후기를 대상으로 하여 그 역사성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해낸 연구서다. 자칫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쉬운 ‘종교’ 개념을 그 역사성에 주목하여 검토하면서,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종교’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어 나갔는지를 탐구한다.

문명, 개화, 학문으로서의 기독교
메이지 시기 종교가 새롭게 제시되고 수용된 국면은 기독교와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다.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보편성, 진리 등에 대한 질문이 촉발되었고 종교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초기 선교사들은 서양의 선진 지식, 특히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 지식을 기독교 전도의 수단으로 삼았다. 과학적 법칙성과 자연의 질서를 제시하고 그것을 신의 존재와 연결 지어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성을 변증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종교를 문명, 개화, 학문과 결부시켜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일본 사회가 기독교를 선진문명이라고 하여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일본기독교회의 지도자적 인물인 우에무라 마사히사는 서양에서 온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독교를 수용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신문명으로서가 아니라 문명과 조화를 이루는, 올바른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강조했다. 다카하시 고로는 종교와 이학(학문)을 나란히 두고, 진리 탐구의 행위와 신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보편적 도덕률을 명확하게 한다고 보았다. 한편 메이지 전기의 계몽사상가인 나카무라 마사나오는 유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독교 재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자연신학에서 주장하는 자연의 질서를 유교의 리(理), 천(天) 등에 호응시키면서 기독교의 합리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때 신과 인간을 잇는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다소 소거된 형태로, 나카무라의 독자적인 기독교 이해가 구축되었다.

문명에서 종교로 ― 독자적 영역으로 발전해나가다
메이지 2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종교를 차차 문명이나 학문, 학술로부터 분리하여, 종교의 본질을 고찰하려는 논의가 일어났다. 고자키 히로미치는 J. H. 실리의 책 『길, 진리, 생명』을 번역해 소개하면서 문명과 종교, 종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교육자이기도 했던 실리는 물질적인 진보가 문명의 목적이 되는 것을 배척하고, 완전한 자유와 정의, 행복을 얻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종교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며, 종교가 문명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고자키 또한 도덕과의 관련에 초점을 맞추어 도덕을 주체적으로 행하게 하는 것으로서 종교를 이해했다. 특히 유교의 경우 정치적 군주인 왕이 권위의 원천이 되는데, 현실의 왕이 충분한 덕을 갖추고 있지 못할 때도 있다며 비판했다. 반면 기독교의 신은 초월자를 근원으로 삼고 있으며, 도덕의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도덕이 국가를 문명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나카니시 우시오는 불교도의 관점에서 이와 유사한 논의를 개진했다. 초월성과의 관련성만이 종교를 종교답게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그는 기독교보다 불교가 한층 더 고도의 종교라 주장하며 불교를 옹호했다. 이러한 불교 변증의 핵심은 불교가 자연교가 아닌 범신교이며, 기독교가 취하는 일신교 형태보다 범신교가 더 발전된 종교라는 논리였다. 이러한 나카니시의 주장은 근대적인 인간지와의 관련 속에서 종교를 파악했던 당대의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메이지 10년대에는 종교를 문명과 불가분한 것으로 이해했던 우에무라 마사히사 역시 종교와 문명을 분리하여 이해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서양 체험 및 자유주의적 기독교 이해의 일본 유입 등을 계기로 우에무라는 종교를 초월성과의 관계를 본질로 하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러면서 문명과 분리된 보편적 진리성을 주장하며, 종교를 희구하는 인간의 마음에 방점을 찍었다. 이처럼 초월성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논의가 기독교와 불교 모두에서 전개되면서 점차 종교의 영역이 명확해지고, 종교와 종교가 아닌 것의 구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도덕과 종교의 문제 ― 국체사상과의 충돌
초월성에 기반한 종교 이해는 메이지 20년대 중반~메이지 후기에 종교와 도덕의 관계에 재배치를 불러왔다. 여기서 도덕과 종교의 충돌이 극렬하게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우치무라 간조의 불경사건이다. 1890년 학생들을 천황의 충성스러운 신민으로서 교육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교육칙어가 배부되었는데, 천황의 서명이 있는 그 신서에 기독교도인 우치무라가 배례를 하지 않고 머리를 조금 숙이는 것에 그쳐 논란이 된 사건이다. 이에 기독교가 ‘일본의 국체 본성에 맞지 않는다’, ‘나라의 안녕질서를 방해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기독교도들은 여러 관점에서 반론을 펼쳤다. 우치무라의 행동이 불경하다는 비판부터, ‘외형의 예식’과 ‘종교적 예배’를 바르게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예식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까지 다양했다. 특히 우에무라 마사히사는 “진실로 천황의 뜻에 따른다면 문명적이지 못한 습속은 폐기되어야 한다”면서 기독교도의 양심과 천황에 대한 충성이 충돌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에 대한 사랑과 나라에 대한 사랑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애국이란 단순히 일본이라는 나라를 넘어 ‘인류의 개화진보’ ‘인성의 완성’ 등과 같은 보편적인 목적의 달성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봤다. 이처럼 우에무라는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가 아닌, 서양을 넘어서 보편적 진리를 가진 종교임을 역설하며, 국수주의가 성립되어 가는 시대적 흐름과 호응하고자 했다.
불교의 입장에서 활동하던 나카니시 우시오도 불경 사건에 의해 발단된 기독교 비판의 국면에서 국체주의를 넘어서지 않는 새로운 기독교를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유니테리언적 기독교 이해를 참조하며, 일본에 입각한 일본의 기독교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카니시의 이러한 비교종교학적 시도는 일본과 기독교, 일본과 종교라는 동시대적 과제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는 근대 일본에서 종교를 생각하는 데 시사적 역할을 했으며, 이전에는 조화 속에서 파악되던 종교와 도덕의 관계를 새롭게 보게 했다.

풍부한 사료를 통해 분석하는 종교가들의 ‘말’
일본 근대 역사 속에서 종교 개념이 새롭게 제시되고 그 틀을 잡아 나가는 과정을 살펴봄에 있어『만들어진 종교』는 종교가들의 말, 종교가들의 담론 작업에 집중한다. 당대에 활동했던 기독교와 불교의 지도자적인 인물, 예를 들어 우에무라 마사히사, 나카니시 우시오, 다카하시 고로 등이 종교를 둘러싼 논의의 장을 어떻게 구축해나갔는지 살핀다. 이들의 저작물뿐 아니라 그 시기 발행된 잡지, 연설 기록 등 1차 자료를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종교를 둘러싼 종교가들의 발화 및 유통의 과정을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일종의 미디어 연구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만들어진 종교』는 근대 사료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며 일본인 기독교도가 기독교를 지적‧반성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노력, 기독교와의 경합 속에서 스스로를 옹호하고 갱신하기 위한 불교계의 노력 등을 꼼꼼하게 분석해낸다. 종교 개념의 역사성을 추적하는 이 작업은 일본의 근대 종교 개념이 완성된 형태로 수입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문명, 도덕, 초월성의 문제를 둘러싼 종교가들의 적극적인 논쟁들 과정 속에서 구성된 결과임을 논증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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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호-‘종교자’의 언어에 드러난 ‘종교’ 개념 연구


호시노 세이지의 『만들어진 종교」가 번역, 출간되었다(이예안, 이한정 옮김, 글항아리, 2020). 이 책의 원제는 ==== 이고 부제는 '종교자의 언어와 근대'로, 저자가 2006년에 제출했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하여 2012년에 출간한 것이다.


'종교자'1)라는 용어를 처음 눈여겨보게 된 것은 작년 여름 박규태 선생님의 「초고령다사사회 일본에 있어 종교 의 새로운 지평: '임상종교사'를 중심으로」라는 특별강연에서 종교자 • (임상)종교사 • 스피리추얼케어사 등의 용어를 접하면서 였다.2)


호시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종교자들이 기본적으로 지식인이며 추상적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언어화하고 그것 을 특정 매체를 통해 공개했으나, 관학 아카데미즘의 종교학과는 다른 위치에서 정통적인 학문으로서의 권위를 배경으로 종교 를 말하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그는 종교학이 일본에서 제도적으로 확립된 메이지 30년대 이전에, 몇몇'종교자'들이 서양의 기 독교론과 그 비판론 및 동시대에 학문으로 발흥하던 비교종교학 등의 활동을 참조하여, 이를 자신들의 변증론을 위하여 재해석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왜 종교를 말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말했는지를 학문적 자리에서 종합, 분석 하여 그 의미 맥락을 부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구성을 보자면, '종교 개념의 역사성이라는 관점'이라는 제목을 가진 제1장에서 '종교' 개념에 관한 선행 연구와 자신의 연 구 관점을 제시하였고, 이어서 제1부(2-4장) • 제2부(5-7장) • 제3부(8-10장)는 대체로 시기 순으로 서술하였는데, 시간적인 변 화를 드러내기보다는~ 저자가 「후기」에서 말했듯이-대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문맥'을 제공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제1부에서는 메이지 초기부터 10년대의 중반까지 '종교'가 어떻게 일본 사회에 제시, 수용되었는가를 고찰하였다. 즉, 기독교가 문 명의 종교로 제시되었던 상황에서 '종교'와 '문명'은 불가분의 존재로 수용되었으며, 동시에 전통적 세계관을 통한 재해석이 이 루어졌던 상황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의 종교자들이 주로 기독교와 불교의 '변증'이라는 문맥에서 한층 추상도가 높은  '종교'를 '문명' • '학술' • '도리' • '도덕' 등의 사항과 결부하여 논의했던 양상을 서술하였다. 제2부도 기독교와 불교 측에서 이루 어진 변증의 국면에서 종교 개념이 형성되어갔던 과정을 다루는데, 다만 메이지 20년대를 전후하는 시기에는 '문명'이나 '학 술'에서 분리되어 '종교'의 독자적인 영역이 모색되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예컨대 당시의 지도자적 기독교도의 한 사람인 고자키 히로미치(1 내츄리,)는 종교란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며 도덕을 주체적으로 실천하게 한다고 여겼고, 새로운 형 태의 불교변증론을 제시했던 나카니시 우시오(77수(3)와 또 다른 지도자적 기독교도였던 우에무라 마사히사(자치>)는 모두 종교의 본질을 초월성과의 관계에 있다고 함으로써 종교의 독자성을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제3부는 메이지 20년대 중반부 터 후기까지를 포함하는 시기를 다루는데, 핵심적인 주제는 '종교'와 '도덕'의 관계 양상이다. 저자는 종교 개념의 본질을 초월성 에서 찾을 경우 종교가 도덕의 우위에 놓이지만, '우치무라 간조(치크) 불경사건'과 '교육과 종교의 충돌 문제'의 경우 국민 도덕적인 '도덕'에 기독교와 같은 '종교'는 필수적이 아니거나 심지어 불필요하다는 입장도 생겨났다고 하였다. 나카니시 우시오 의 경우, 종교의 독자성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일본과 관련된 가치가 더 상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면서, 저자는 일본에서 믿 는 종교는 일본 국체주의와 충돌해서는 안 된다는 이해가 대두되면서 기독교와 불교 모두 개혁이 요구되었던 맥락을 소개하였 다.


이 책의 서론에서 저자는 각 장의 내용을 간명하게 제시하였고,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이 책에 대한 대표적인 리뷰 및 그 안에서 지적되었던 비판점과 그에 대한 자신의 답변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의 평가를 덧붙일 필요는 없고,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생각을 몇 가지 적어보겠다. 첫째, 호시노 세이지가 근대 일본에 대해서 했던 작업을 근대 한국에 대해 서 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구도가 될까? 이 의문은 한국에서는 이런 작업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 고 있는데, 관련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기보다는, 호시노와 같이 '종교자'들의 언설에 근거하여 과연 어떤 계기에서 불 교나 유교 혹은 기독교가 아니라 '종교'라는 개념을 구사하게 되었는지, 또 그 대척점에는 어떤 개념군들이 어떻게 포진되어 있었 는지를 맥락화한 연구는 아직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료의 부재뿐 아니라 축적된 연구의 부족이라는 문제가 있으리라 생 각되는데, 이러한 미비점들을 어떻게 보완하고 극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사나 한국불교사의 19-20세기를 서술하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의 변화에 따라 자료도 변화, 확장되어야 할 것이고, 자료의 부재를 그저 부재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하는 자료들을 맥락화에 동원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할 것 이다. 둘째,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이지만, 19-20세기 한국의 종교문화 및 종교 이해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는 일차자료의 발 굴과 정리가 절실하다. 예컨대, 근대 일본의 학지(쇠) 체계를 구축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노우에 데쓰 지로(#노합 소테, 1856-1944)는 1891년부터 개설했던 '비교종교와 동양철학' 강좌에서 비교종교의 형식으로 세계의 종교들 을 검토하였고, 그 수업을 들은 도쿄제국대학의 제자들은 개별 종교의 전문가들로 성장하였는데, 놀랍게도 이들 대부분의 자료 가 전집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21세기에 들어서 제국대학 및 경성제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가하면서 관련 연구가 빠른 속도로 축적되고 있는데, 최근에 읽은 「종교민족학자 김효경의 학문훈련과 제국배경」이라는 논문3)을 통하여 식민지 시기 한국의 종교학 및 한국인 종교(학)연구자들에 대한 연구가 종교학계에서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통감하였다.


공부가 점차 두어 가지 주제로 수렴되면서 깊어져야 할 나이가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오히려 점점 더 분산되면서 잡다해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엉뚱하지만, 소풍 나온 세상살이라고 맘 편히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다.


1) '웃※®'라는 용어는 국어사전에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올라가 있고,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의 용례도 있었다. 일본어에서는 종교를 가진 사람을 웃※로 통칭하고, '웃※시'이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듯하며,


'웃※충’는 특정 종교의 성직자나 전도사 등 종교 종사자를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원서의 '‡화?'라는 용어를 번역서에서는


'웃짧충‘라고 하였으므로, 독자들은 이 점에 유의하여 읽어야 할 것이다.


2) 초종파적 입장에 선 종교자들을 교육하여 임상종교사를 양성해내는 일에 종교학자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이 런 현상은 다수의 성숙한 종교인들이 있기에 가능한 면도 있겠지만, 뭔지는 몰라도 일본에서 형성되어갔던 독특한 '종교' 이해라 는 토대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탈아(BG)를 꿈꾸며 아시아 속에서의 구화(없 16)를 추구하던 메이 지 시기, 일본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일본인들이 형성해나갔던 '종교' 이해, 나아가 일본 국제주의 하에 모든 종교들이 국가의 안 녕질서에 위배되지 않음이 우선시되는 분위기와 연결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③) 이는 『민속학연구」 제36호(2015. 6)에 실린 전경수의 논문이며, 『근대서지 제15호(2017.6)에는 「사진으로 보는 김효경 선생, 이라는 같은 저자의 글이 실려 있다.


[알라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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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지은이)소나무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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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3.83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252쪽

책소개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알라딘: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 - 동북아시아 사상의 전이와 재형성

알라딘: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동북아시아 사상의 전이와 재형성 
김정현,문준일,조성환,이와와키-리벨 도요미,유지아,김현주,가오지안후이 (지은이)
책세상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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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0원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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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정현 (지은이)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철학, 사회학, 종교학을 공부한 뒤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표준판 니체전집 한국어본(전 21권, 책세상)의 편집위원과 한국니체학회·범한철학회·대한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원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중앙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중관계연구원장, 동북아인문사회연구소장으로 HK+사업단의 책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 《니체의 사회 철학Nietzsches Sozialphilosophie》, 《니체의 몸 철학》,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철학과 마음의 치유》, 《소진 시대의 철학》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 알프레트 쉐프의 《프로이트와 현대철학》, 니체의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유고(1884년 가을-1885년 가을)》, 야스퍼스의 《기술 시대의 의사》, 살로메의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외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소진 시대의 철학>,<니체의 미학과 예술철학> … 총 24종 (모두보기)
문준일 (지은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혁명기 러시아문학으로 문학박사를 받았다. 귀국 후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서 학문적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초기 한러관계사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시베리아소수민족의 신화, 사할린 디아스포라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원광대학교 동북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붉은 광장의 아이스링크》(공저),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전함 팔라다》, 《사할린 한인사》(공역)가 있다.
최근작 :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 총 8종 (모두보기)
조성환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강대학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중국철학을 공부한 뒤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한국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강사,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의 전임 연구원,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책임 연구원을 거쳐 현재 원광대학교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 근대의 탄생》과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역서로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인류세의 철학》(공역) 등이 있다.
최근작 :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개벽의 사상사> … 총 18종 (모두보기)
이와와키-리벨 도요미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일본의 신슈대학교에서 비교철학,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비교철학을 전공했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종교학, 일본학을 공부한 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일본학과 및 법학부의 강사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 학교에서 일본학과 연구 조수를 역임했고, 현재 뷔르츠부르크·슈바인푸르트 응용과학대학(FHWS)의 강사로 가르치며 《철학잡지》 등에서 집필·출판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니체의 순례자 철학Nietzsches Philosophie des Wanderer》, 《언어: 번역의 세계 Sprache: Ubersetzung– Welt(en)》, 《제목없는 하이쿠Haiku ohne Titel 無題俳句》 등이 있고, 《보복의 연쇄: 권력의 해석학과 타자 이해報復の連鎖.権力の解釈学と他者理解》(공역), 《복수의 귀환Die Wiederkehr der Rache》 등의 철학 논문과 《작은 새가 도착하는 날 Der Tag, an dem das Vogelchen kam》와 같은 아동 문학을 일본어로 옮겼다. 논문으로는 《니체: 문화의 철학자?》에 실린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문화간 해석자로서 니체의 방랑자>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
유지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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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사학과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하고, 일본 릿교대학교에서 일본사를 공부한 뒤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북아시아 냉전과 아시아・태평양전쟁 후 일본의 전후 처리 과정 등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일본사학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쟁점 한국사: 현대편》(공저), 《GHQ시대 한일관계의 재조명》(공저), 《한일역사 갈등과 역사인식의 변용》(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아메야마 쇼이치의 《점령과 개혁》, 《아베의 일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가사하라 히데히코의 《상징천황제와 황위계승》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한국문제 관련 유엔문서 자료집 - 하>,<한국문제 관련 유엔문서 자료집 - 상> … 총 16종 (모두보기)
김현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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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의 정치외교학과와 동아시아학술원 동아시아학과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중국 칭화대학교 철학과에서 ‘선진정치사상에 대한 양계초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주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로 있다.
저역서로 《춘추전국시대의 고민》, 역서 《만국공법》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중국의 전통적 천하관에 입각한 양계초의 세계주의〉, 〈양계초와 중국 근대 헌정주의의 성립〉, 〈중국현대 문화개념의 탄생-양계초의 문화관을 중심으로〉 등 다수가 있다.
최근작 :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춘추전국시대의 고민> … 총 6종 (모두보기)
가오지안후이 (高建惠)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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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톈진사범대학교에서 세계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한국 경북대학교에서 중국어문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톈진외국어대학교 에서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초빙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 수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있다.
<중국현대문학에서의 니체 수용 연구: 현대성과 현대문학의 탄생에 중심으로>, <色彩词的文学性研究-沈从文小说为中心>, <双城记-沈从文《边城》与卡夫卡《城堡》的文本含混性对比研究>, <沈从文《边城》中的《圣经》原型研究>, <十五世纪中国与朝鲜的认识差异和沟通障碍>, <"越轨"的书写,文本的"断裂"-再论萧红及其文学世界>, <巴金《寒夜》与果戈里《外套》及卡夫卡《变形记》之比较研究>, <论周作人“为人生” 的文学观在翻译中的实践> 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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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

(李信)이신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 - 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 크리스챤하우스

(李信)이신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 - 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 크리스챤하우스



(李信)이신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 - 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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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李信)이신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 - 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소비자가 19,000원
쪽수 508p
제품 구성 낱권
출간일 2021-12-02
목차 또는 책소개 상세설명참조



‘돌’의 소리를 듣고 외쳤던 혁명가, 이신(李信)

이신(李信, 1927~ 1981)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는 목사이자 화가, 시인이었다. 아니,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사회와 신앙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했던 혁명가였다.
그는 돈과 직위와 건물과 도그마를 우상화하는 것을 멀리하고 본질을 추구하는 뛰어난 화가이자 목사였지만 한국 교회의 주류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 박사 출신이지만 낮은 삶을 살아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본질 신앙을 그림에 담아내며 평생 ‘한국적 그리스도교’ 꿈을 꾸었다.
본서는 이러한 故 이신(李信, 1927~1981) 목사의 신학, 시 그리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특별히 소천 40주기를 맞아서, 그의 자녀들과 정신적 후예들이 그가 남긴 신학적 그리고 예술적 유산를 기억하며 글을 썼다.
이신 목사는 산동네에서 정신지체아들을 모아 함께 그림을 그리고, 글을 모르는 부녀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괴산의 산골에 손수 돌을 주워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고, 새벽이면 냉수마찰을 한 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이신은 천재적인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였고 멋쟁이였다. 스스로 자처한 곤궁함 속에서 안빈낙도하며 살면서도 한국 기독교를 위해 큰 외침을 남겼다.
본서는 한국 교회사 이 같은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주류교회에 속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신 목사의 삶과 초현실적 신학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과 시(詩)를 통하여 내면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예술적 파토스와 구도적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예술신학을 향한 새로운 문을 열어 주고, 시는 노래가 된다.
본서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억압과 침략으로 늘 깨달음 없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된 한민족을 안타까워하고 ‘신앙마저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물질화하고 경직화해 창조적 상상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외쳤던 선각자의 삶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진정 코로나 국면의 시대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신앙을 넘어 한국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차례


책을 펴내며 / 이은선

1부 󰠃 이신 신학의 새 차원 — 묵시의식의 토착화
토착화, 기독교사회주의, 그리스도환원운동, 이들 통섭의 토대로서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 ― 한국 신학 광맥 다시 캐기 __ 이정배
참된 인류세(Anthro-pocene) 시대를 위한 이신(李信)의 영(靈)의 신학— N. 베르댜예프와 한국 신학(信學)과 인학(仁學)과의 대화 속에서 __ 이은선

2부 󰠃 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의 전개
묵시문학과 영지주의 ― 이신(李信)의 전위 묵시문학 현상 이해를 중심으로 __ 조재형
벤야민과 이신의 해방과 영성을 향한 신학적 구조 ― 이신과 벤야민의 초현실주의 신학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__ 최대광
동양 미학의 관점에서 본 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 ‘망(望, 網, 忘)의 신학’적 관점에서 __ 이명권

3부 󰠃 이신의 시와 신학
이신의 묵시 해석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 시를 중심으로 __ 김성리
이신의 내면세계 ― 그의 시(詩) 작품으로 본 예술적 파토스와 구도적 누미노제(Numinose) 지향(志向)의 고찰 __ 최자웅
짙은 그리움이 깊은 고요를 만나 ― 이신의 시(詩)가 노래(歌)가 되다 __ 이혁

4부 󰠃 이신의 그림과 예술 신학
한국 초현실주의 미술사에서의 이신 __ 심은록
‘하나’로 솟난 감흥의 신명 ― 이신(李信)의 ‘님’ 회화론 __ 김종길
“묵시적 초현실에 비친 자화상” ― 이신의 미술작품에 대한 묵상 __ 하태혁

참고문헌



저자소개

표지 그림 해제

저자 소개

김성리 문학박사,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김종길 미술평론가,
경기도미술관 DMZ아트프로젝트 전시예술감독
심은록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리좀-심은록 미술연구소 소장
이명권 코리안아쉬람 대표, 서울신학대학교 동양사상 강의
이은선 한국信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명예교수
이정배 현장아카데미 원장,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역임
이 혁 의성서문교회 목사, 시노래 작곡가
조재형 케이씨대학교 강사, 환원연구회 회장
최대광 공덕감리교회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
최자웅 시인, 신부, 종교사회학박사,
코리안 아쉬람 인문예술원장
하태혁 단해교회 담임목사, U.H.M.GALLERY 단해기념관 부관장

엮은이
<한국信연구소>
‘한국信연구소’는 2016년 강원도 횡성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근거를 두고 시작한 ‘현장(顯藏)아카데미’의 한국 신학 연구소이다. 동북아시아 사상적 전통인 聖 性 誠의 정신에 근거해서 ‘한국적 믿음의 통합학’(한국信學, Korean Feminist Integral Studies for Faith)을 지향하면서 2020년 7월에 개소하였다. 한국 토착화 신학의 전통에서 특히 목사이자 신학자,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이신(李信, 1927-1981)의 신학적, 예술적 유산을 중시하고, 그로부터 한국 종교사상 전통과 서구 기독교 문명과의 대화를 주로 한다. 여성주의적이고, 교육인문학적인 성찰과 실천을 중시하면서 ‘한국적 인지학’(Korean Anthroposophy) 등, 21세기 인류세 문명을 위한 대안의 길을 찾고자 한다



본문 속으로

우리는 그를 진정 한국 사상사에서 고유한 동서 통합의 묵시 사상가이고, 그 일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현실을 아파하며 거기서의 화해와 화평을 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했다. 그래서 ‘이신 40주기 준비위원회’라는 모임을 구성했고, 2020년 9월 24일(목) 20여 명의 위원이 처음으로 만나서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같이 모인 사람 중에는 신학자뿐 아니라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 이신의 옛 제자 목회자들이 있었고, 이후 여러 기회에 모임은 점점 커졌다.
_ “책을 펴내며” 중에서

그의 근원 의식은 형식(교리)과 제도를 거부했고 성령을 통해 주체(비서구)적 사유를 토발시켰다. 크고 작은 교회에서 목회했고 신학교에서 가르쳤으나 그는 선교사들에 종속된 그리스도 교단에서 늘 상 자발적 비주류였다. 이른 죽음 탓도 있겠지만 지금도 당시 이신의 족적은 상당 부분 가려졌고 저평가된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살아생전 환원운동의 근원성을 주체적으로 회복시키고자 했으며 자생적으로 시작된 환원운동의 본질과 가치를 동시대적 언어로 되살려내고자 애썼다. …

오히려 인간은 “소우주”이지 우주의 계층적 단계나 일부가 아니고, ‘전체’는 구체적인 인격의 자유와 영(spirit)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관념적 보편이나 자연 일반에서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통찰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보편적인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고, 또한 가장 구체적인 것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 다시 인간에 의해서 참된 지구 생명 공동체가 회복되고, 그래서 지구 생명체의 ‘마음’(心)으로서의 인간의 회심과 역할을 통해서 지구 생명 공동체가 함께 ‘정신화’(靈化)하고, ‘인격화’하며, 보다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주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희망하며 제안한다.
_ “1부 _ 이신 신학의 새 차원 — 묵시의식의 토착화” 중에서

그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란 하나 되는 따뜻한 삶이다. 자기를 드러내어 갈라진 그 현실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자고 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갈라지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 대한 왜곡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예수 안으로 들어가 모두가 하나되는, 이 따뜻한 삶의 자리가 바로 이신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다. 이것이 not yet 곧,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니 분열의 현실을 부정하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운동이 그의 슐리얼리즘 신학의 메시아니즘인 것이다.
_ “2부 _ 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의 전개” 중에서

이신은 이런 현상을 산문 <돌의 소리>에서 “현실적으로는 ‘돌’이 소리 지를 수 없는 것이지마는 그런 초현실로는 길가에 ‘돌’도 소리 지를 수 있는 것이고 또 응당 그렇게 의식구조를 어차피 돌이켜 놓은 것이니 ‘떳떳한 이름’이라고 생각해도 좋”은 것으로 설명한다. “돌이 소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절대의 것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 문제”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눈에 보이는 것만 탐색하는 역사의 시간에 있는 사람들은 초월의 시간이 지니는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_ “3부 _ 이신의 시와 신학” 중에서

이 현실주의 선언문은 이후 민중미술의 첫 불씨가 되었다. 이신은 “전위 묵시문학의 신학”의 서론에서 프로스트(Stanly Frost)의 말을 빌려 “묵시문학은 본질적으로 권위에 대한 일종의 저항문학”이라며, “그 사유 방식의 고유한 급진적인 성격 때문에 묵시문학에는 분명히 역동성이 있었다. 역동성을 나타낸 역사상의 구체적 사례들은 일부 학자들이 묵시문학적 공동체라고 기술하는 에세네(Essene) 공동체와 열심당(Zealots) 운동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인식은 그의 작품세계가 ‘저항’과 ‘역동성’을 가진 현실주의 미학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은연 중 제시한다.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 - 에큐메니안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 - 에큐메니안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한국교회 에큐메니즘의 전개와 李信 신학 1
이은선 명예교수(한국信연구소, 세종대) | 승인 2018.10.27



이 글은 원래 작년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이해서 그 전해 돌아가신 지 35주기가 되는 선친 이신(李信, 1927-1981) 목사님을 기리면서 펴낸 글을 근간으로 한다
(김성리 외, 『환상과 저항의 신학: 이신(李信)의 슐리얼리즘 연구』, 동연, 2016). 

이렇게 1년이 지나서 다시 여기에 가져와서 약간의 보완과 더불어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 때 성찰된 생각들이 또 다른 5백년을 향하고 있는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좀 더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물론 개인적인 선친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꺼려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번에 그분의 묘소를 일산기독묘지에서 충청도 괴산의 소수로 이장하면서 그의 생과 사상이 한국적 신학의 유산으로서 좀 더 보편적으로 해석되고, 다양하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다.

이 책이 나온 후 1년간의 변화를 생각해 보면 나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재직하던 대학을 조금 일찍 떠나서 한국여성신학자로서 ‘聖․性․誠의 여성통합학문’을 염두에 두면서 여러 궁리 끝에 <한국信연구소>라는 이름을 내세우게 되었다. 

여기서도 나는 ‘信’이라는 이름을 가져왔는데, 그것으로써 육신의 아버지 이신(李信)을 기리고 이어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오늘 우리 시대 인류 삶의 문제가 바로 이 ‘믿음’과 ‘신뢰’, ‘공감’과 ‘상상’, ‘환상’의 문제에 집약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보다 통합학문적인 탐구와 성찰을 통해서 우리 믿음의 가능성을 다시 찾아내는가 라는 점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것은 이제 오늘 우리의 ‘신학’(神學)은 ‘신학’(信學)의 물음이 되어야 한다는 표현으로서 어떻게 우리가 서로 간에 좀 더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으며, 깊이 공감하고, 또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고 환상하면서 보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의 물음을 묻고자 하는 의식이다. 나는 이신의 삶과 신학, 시와 그림이 바로 이와 유사한 생각 속에서 배태되었고, 그래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 문제의식과 탐구의 길이 결코 녹슬지 않았다고 본다.

▲ 이신 목사/신학박사(1927.12.25-1981.12.17)


오늘 한반도의 삶에서 남북의 통일과 평화가 절체절명의 관건이 되었다. 그 일에서 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우리 시대 최고 강국들의 각축이 심하다. 이미 이 한반도에서 그 각축이 일제식민지와 6.25전쟁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불러왔고, 잘못하면 다시 한 번 유사한 위기 앞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천주교는 로마의 교황을 찾아가고, 개신교는 미국 교회에게 SOS를 친다. 그런 노력의 한 편에서 남한의 한 정당은 정부가 9월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합의서를 의결한 것에 대해서 위헌소송을 제기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우리의 이러한 행보들이 앞으로 어떤 열매를 맺어낼 것인지 매우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런 모든 일을 염두에 두면서 이신의 신학을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싶었다. 물론 당시 그의 시대는 오늘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과는 많이 다르고, 그 시대적, 신학적 한계에 이어서 또한 나의 해석에도 치우친 면도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함께 공유하며 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 시작하는 말의 마무리로서 나는 지난 2011년 이신의 30주기를 기리는 말로 썼고, 지난 여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노회찬 의원을 생각하며 다시 패북에 올렸던 언어를 가져오고자 한다. 이 말의 원 출처는 스위스의 페스탈로치인데, 그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전후의 민중의 고통을 가장 근본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는 토대로서 바로 우리 인간성 안에 내재한 초월에 대한 깊은 믿음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것으로써 그는 당시 국가교회로부터 파면을 당했고, 모두로부터 배척과 비웃음을 받았지만 그는 그 믿음과 저항, 환상의 행보를 고독으로 맞서면서 나아갔다.
“나는 여기 그 이상을 원했던 한 인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순진과 무구의 기쁨이 놓여 있었고, 아주 소수의 죽을 운명의 인간만이 알고 있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친절을 위해서 만들어졌고, 사랑과 신뢰는 그의 본성이었으며, 가장 은밀한 내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세상의 작품이 아니었고 세상의 어느 구석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를 발견하고서 그의 죄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의 죄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를 쇠망치로 부숴버렸고, 마치 미장이가 쓸모없는 돌을 보통인 돌로 쓰려고 깨는 것과 같이 그렇게 깨버렸습니다. 그는 깨어지고 죽어가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가지고 있었고, 소수의 죽을 운명의 인간만이 알고 있는 한 목적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소용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또한 그 자신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바로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미주 1)


1. 이신의 ‘믿음’(信)에 대하여

이신에게 있어서 제일 소중했던 것은 ‘믿음’을 지키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이름을 부모님들이 지어준 이름(李萬修)에 더해서 ‘믿을’ 신(信) 자(字)의 이신(李信)으로 할 정도로 ‘믿음’을 사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한 말이 “신뢰의 그루터기”라는 말이었다고 생각하는데,(미주 2) 그는 왜 그렇게 ‘믿는다’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을까?

우리가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일제 강점기에 부산에서 상업학교를 마치고 은행에 취업했다가 그만두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했다. 믿음의 학인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믿음을 찾아 나선 그의 행보는 더 이어져서 6.25가 발발하고 고향 전라도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을 만나면서는 속해있던 감리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후일 1980년경 『기독교백과사전』을 위해서 쓴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의 전개」라는 역사서술에 보면, 그는 이러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도 한국 가톨릭교회의 시발과 마찬가지로 한국인 스스로의 선행된 자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그 서술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에서의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은 신앙에서 다양한 교파나 그 교파에서의 신조를 따르기 보다는 원래 초대 교회의 순수한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보고, 그것을 깨달은 소수자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본 식민지 시절의 혹독했던 상황에서 감리교회나 구세군에 속해있던 소수 목회자의 자각이 있었고, 그것이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과 연결되면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본격화되었다고 밝힌다.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는 일제 말기에 집단적으로 신사참배에 참여하는 것을 가까스로 면하고서 해방 이듬해에 이때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과 일치를 주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은 선언문(「기독(基督)의 교회 합동선언문」)을 발표했다고 한다(1946.8월).
“우리 기독의 교회는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창립하신 교회로 돌아와서 각각 분열된 기독교에서 신약 시대의 기독의 교회로 같이 돌아오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지(聖旨)를 순응하여 합동 통일 운동을 선언하노라. 신자는 말씀에 비추어 각각 교파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인데 각각 속한 단체의 헌법 규칙을 존중시하고 분열됨으로 다투고 있으니 성 바울이 기록한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것은 구구한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 다시 조선 교회의 실정을 살펴보면 우리 조선 각 교파가 악마 왜정 시대에 ‘일본 기독교 조선교단’(日本 基督敎 朝鮮敎團)이라는 명칭으로 합동 통일한 사실이 있었다. 그러면 악마에게 굴복하여 신사 참배의 합동 통일은 하면서도 주님 말씀인 성경의 교훈대로 각 교파 신도의 통일을 부인할 수 있을까? 만일 부인한다면 성경 말씀인 주님의 성지를 반역하는 일이다. 삼가 조심하라. 그런즉 합동 통일함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이 아니라 신약 시대의 교회로 돌아가자, 신약 시대의 교회를 찾으면 신약성경에서 찾자.”(미주 3)


여기서 분명히 서술된 대로 어떻게 이제 막 식민지 처지에서 벗어난 변방의 한 미약한 나라의 교회가 그것도 그 복음을 전해 받은 지도 얼마 안 되는 어려운 처지에서 교회 전체의 2천여 년 역사를 모두 뒤로 돌리는 일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들은 기독교 초대교회의 ‘원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창하게 되었으며, 신약성서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르쳐준 대로 다시 그 본래적 하나 됨과 교회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고 호소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일은 오늘 한국 개신교가 오랜 분열과 갈등을 뒤로 하고 다시 여러 형태의 에큐메니즘을 말하는 시점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오늘날 한국과 한국 교회가 크게 성장하여 더 이상 서구 교회나 교파나 교단 등에 좌우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개체 교회의 존재 가능성이 훨씬 커진 상황에서도 힘든 일인데, 이신은 이 일을 이루는데 온 힘을 쏟으면서 자신의 믿음의 일을 수행해 나갔다.

그래서 더욱 묻게 된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신약성서 히브리서의 유명한 언명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가 지시하는 대로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그의 의식으로는 과거의 어떤 ‘선험’이나 ‘원형’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지금 뚜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미래에 이루어질 어떤 일에 대한 확고한 상(像)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일의 성취를 위해서 애쓰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이렇게 지금/여기에 있으면서 과거와 미래, 이미 있음과 아직 아니의 공간을 통합하고, 아니 그보다 그 시공간 자체를 창조하는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인류 동서의 많은 성찰적 지성들은 이 믿음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 고유의 일이고, 마치 ‘언어’처럼 인간에게 고유하게 ‘선험적’으로 놓인 어떤 “선험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간 존재의 “신적 속성”을 지시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겠다.(미주 4) 그래서 이 믿음을 가리키는 동아시아의 언어인 ‘신’(信)도 ‘인간’(人)과 ‘언어’(言)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믿음의 일은 여느 보통의 인간사의 일과는 달리 현재를 떠나는 일이기 때문에 주로 현재에 몰두하는 일반 사람들로부터 잘 환영받지 못한다. 오히려 배척을 당하고, 미움을 받으며, 몰이해와 배타 속에서 소외를 겪는다. 이신은 인간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일이 ‘믿음’을 지니는 일이고, 그것이 인간 삶에서 그렇게 근본적인 일(“그루터기”)이기 때문에 거기서의 자유, “신앙적 주체성”을 찾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긴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많은 고통을 겪었고, 고독하고 빈한한 삶을 살았다.

그의 딸로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보니, 특히 오늘날과 같이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신앙생활의 유무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질적인 유물론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초자본주의 시대에 살다보니 사람들이 그 드러나는 것 이전 또는 너머에 있는 ‘진실’을 위해서, 아직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 어떤 ‘뜻’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 오늘의 물질주의와 자본주의 시대에는 그러한 믿음의 일을 위해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돌아올 물질적 이득과 소득을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더욱 깨닫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삶을 반추해 보면서 나 자신은 그러한 믿음을 거의 못 배운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생전에 그가 많이 좋아했고, 그래서 주저 두 권을 번역해내기까지 한 러시아의 사상가 N. 베르댜예프(1874-1948)에 따르면 오늘 우리 시대는 온통 부르주아지의 노예성에 사로잡혀 있는 시대이다. 그것은 ‘돈’과 ‘자아’에의 노예성인데, 여기서 인간은 세상에 깊이 뿌리를 박고 스스로 서 있는 이 세상에 만족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세계의 허영과 허무함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며, 경제적 발전의 무한을 인정하나, 그가 인정하려는 무한은 그가 인식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것일 따름이라고 지적한다.(미주 5) 이신은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의 깊이 없음과 불신, 자아에의 집중을 비판하면서 다시 인간 존재의 선험성과 초월성을 강조하며 그 세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냈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면서 나는 그가 어떻게 그러한 믿음에 이르게 되었을까를 묻는다.

인간 의식의 고양을 한껏 추구했던 20세기의 인지학자(人智學者)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는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인식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어린 시절에 너무 일찌감치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공부에 내몰린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오히려 더 물질에 집착하고, 믿음과 상상력이 떨어지고, 빈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고 지적하였다. 몸과 선한 의지로 세상에 튼실하게 발을 딛고 서기 전에 서둘러서 추상의 세계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갖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음으로 사셨던 아버지 이신은 어린 시절, 특히 그 어머니로부터 몸과 마음과 감정을 잘 배려 받았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해졌는가?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조금이고, 그 분은 원래 할아버지의 첫 부인이 낳은 아이들이 모두 죽자 속임수로 다시 결혼한 할아버지로 인해서 힘든 삶을 사셨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4남매의 양육을 위해 혼신을 다하시다가 6.25 전쟁의 와중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분이었고, 그 속에서 첫 자손으로 태어나신 아버지가 성인이 되어서 믿음의 전회를 감행했던 일들도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러한 질문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어쩌면 앞에서 언급한 인간 ‘언어’에 대한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믿음’이라는 것도 나라는 주체의 능동성보다는 그보다 먼저 내가 믿어지는 선험성과 수동성이 함께 하는 것이고, 이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이고, 강요당하면서도 자유로운 두 가지 속성, “서로 반대되는 두 성질의 통일성”이기 때문에 믿음이 “신적 속성”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여겼다.
“믿음은 우리에게 앞서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을 갖기 이전부터 이미 믿음의 대상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대상이 되었던 그 믿음을 통해서 어떤 대상을 믿을 수 있다.”(미주 6)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앞서 주어진 자유로 인해 자유로운 존재다.”(미주 7)


이신은 이 믿음으로 해방 직후의 극심한 혼란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택했고, 6.25전쟁의 와중에 어머니를 잃고 가족이 흩어지는 경험 속에서 가난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들어갔으며, 그 교회에서도 외국 선교사들과 성서해석과 성령 이해의 차이로 그나마 안정된 자리를 떠나야 했다. 40대의 늦은 나이에 어린 자식들과 부인을 두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일, 돌아와서도 여전히 안정과 안위대신에 산동네 무허가촌의 궁핍한 삶에 머물렀고, 나중에는 그 거처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지방의 산골로 내려가신 일. 이런 모든 일들이 그의 믿음의 선택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당시 미국 유학까지 한 박사였지만 주변에는 항상 가난한 민중과 학벌이 높지 않은 변방의 목회자들뿐이었다. 심지어는 병이 들어 위급한 상황이 되었지만 병원에 가는 대신 기도원으로 들어가셔서 그곳의 한 좁고 허름한 방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면서도 그는 ‘천은’(天恩)을 말하며 가족들에게 잘 지낼 것을 당부하고 기쁜 모습으로 가셨다.

어디에서 그런 믿음의 지속하는 힘이 나왔으며, 어디에 근거해서 그는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읽고, 쓰고, 선포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또 동료들을 모아 세상의 달라짐과 교회의 변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 모순된 상황이야말로 그의 믿음이 단순한 그의 의지가 아니고 ‘신의 의지’이고, 그 믿음이 ‘신적 기원’을 가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비록 오늘날의 우리는 이 기원을 갖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내 앞에 먼저 주어진 것에 대한 의식을 잘 하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자아의 주관으로 돌리고, 그래서 신도, 전통과 권위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 믿음이 하나의 ‘기적’(a miracle)처럼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치 한나 아렌트가 인간 삶을 어쩔 수 없이 ‘조건 지어진 존재’(the human condition)로 보지만 그 삶의 활동 중에서 인간에게 가장 고유한 것은 “행위”라고 하면서 그 행위는 “결과의 예측불가능성”과 “과정의 환원불가능성”, 그리고 “작자의 익명성”이라는 불행한 요소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사를 가득 채우는 “기적”이라고 본 것과 유사하다.

미주
(미주 1) J. H. Pestalozzi, Auswahl aus seinen Schriften, Bd.1, Hrg. von A.Bruelmeier, Bern/Stuttgart 1977, p.278-279.
(미주 2)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이은선․이경 엮음, 동연, 2011, 300쪽.
(미주 3) 같은 책, 346쪽.
(미주 4) 막스 피카르트, 『인간과 말』, 배수아 옮김, 봄날의 책, 2013, 17쪽.
(미주 5)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이신 옮김, 늘봄, 2015, 244쪽. 이 책은 원래 이신이 돌아가시기 2년 전인 1979년 가을에 번역 출간되었던 것을 2015년 필자에 의해서 다시 수정 보완되어서 출판사 늘봄에서 재간되었다.
(미주 6) 막스 피카르트, 같은 책, 33쪽.
(미주 7) 같은 책, 100쪽.


이은선 명예교수(한국信연구소,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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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음의 ‘고독’(性)에 대하여

믿음의 행위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과정을 다시 뒤로 돌릴 수 없으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과거나 미래와 관계하는 일이므로 현실에서 많은 장애와 어려움을 만난다. 그것은 시간과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 믿음의 삶에서 ‘가족’은 어떤 의미가 될까? 믿음 삶의 또 다른 근거일까 아니면 한없는 장애와 걸림돌일까? 우선은 믿음의 사람에게도 가족은 자신의 길을 가는데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를 주고, 이해와 힘을 주는 지지대와 기반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이해를 얻지 못하고 비난 받는다면 그 실망과 좌절은 가장 클 것이다.

아버지 이신의 경우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는 신학대학을 가기 위해서 아버지와 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고, 그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부모님을 통해서 혼인하게 된 아내와 자신의 생각을 깊이 나눌 수 없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두 분은 서로 무척 애틋해 하셨지만 자주 다투셨다. 사실 아버지 이신은 부인뿐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찬찬히 길을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이끄는 분이 아니었다. 자신 동생들과 자식들의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중요한 선택들을 주도하셨지만 갈등이 있었고, 반목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어서 가족을 꾸리고 나름의 뜻을 붙들고 살려다 보니 아버지 이신의 고통과 좌절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더 잘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믿는 자가 겪는 어려움 중에서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받는 괴로움이 제일 큰 것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면 믿는 자는 그래서 참으로 ‘고독한’ 자이고, 그런 면에서 고독을 가장 친한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것은 사실 믿는 자로 하여금 가장 강하게 ‘현재’에 함께 할 것을 요구하는 자이고, ‘일상’을 청하는 존재이므로 그 충돌을 잘 예상할 수 있다.


이신은 1970년대에 저술한 신학 논문「고독과 저항의 신학-키에르케고르와 본회퍼 신학의 비교 연구」에서 키에르케고르를 초월자 앞에서의 열정과 믿음의 삶을 위해서 “세상의 그 어떤 고독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뇌가 따르는” 삶을 산 자로서 소개하고 있다.(미주 1) 많이 회자되듯이 키에르케고르는 어느 날 인지하게 된 자신 가계(아버지) 내의 ‘죄’에 대한 첨예한 의식으로 깊이 사랑하던 약혼자와의 결혼도 포기하고, 자신의 이름을 숨기면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신앙의 의미와 기독자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에 몰두했다. 믿음을 지니고 산다는 일은 과거와 미래를 여기 지금에 가져와서 그 의미성을 현재적으로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이 신앙의 “동시성”으로 인해서 일반적인 합리성에 균열을 일으키고, 스캔들을 일으킨다. 이신은 두 사상가를 특히 이러한 ‘신앙의 동시성’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와 동시대에 사는 것처럼 그의 믿음과 다시 그에 대한 믿음을 우리 시대에 우리 각자의 신앙으로 재현하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 지독한 고독과 고통도 참아내야 하는 일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이란 그저 값싼 은총이 아니라 아주 값있는 것이고, “영원한 심각성”을 지니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기독교는 영적인 것이다. 영적이란 내면성이요 내면성은 주체적인 것이요 주체적인 것이란 근본적으로 열정적인 것이다. 그 최고 정점은 영원한 행복 속에 있는 무한한 인격적인 열정적 관심 그것이다.”(미주 2)
이렇게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을 위한 고독을 기독교의 정수로 이야기했지만 오늘날 이 고독을 따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어떻게든 거기서부터 벗어나고자 하고, 그것은 질병과 연약함으로, 그 반대로 유대와 친밀과 소속은 선과 강함으로 찬양된다. 하지만 오늘 우리 인류의 삶이 이제 전통적 의미에서의 생물학적 가족적 삶마저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유기체와 비유기체(로봇)의 구분도 점점 더 모호해지는 상황으로 들어가면서 인간적인 고유함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의 물음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면, 오히려 고독과 단독자로서의 삶을 새롭게 의미화해서 또 다른 차원의 생명적 삶을 탄생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오늘날 참된 믿음이 매우 드물어졌고, 그래서 무엇이든 지속하고 약속할 수 있는 힘이 실종된 상황에서 ‘고독’으로 단련되어 몰두할 수 있고, ‘익명’(anonymity)을 견뎌낼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해방된 정신과 영적 자유의 정신으로의 고양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이 고독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섰다면, 아니 그 고독이야말로 우리 정신의 더 높은 고양(신앙의 동시성)을 위해서 긴요하기까지 하다면,  키에르케고르나 이신의 믿음을 위한 고독의 메시지를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정신의 참된 자유와 영적 성장을 위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르침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믿는 자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는 ‘죽음’과 ‘영생’에 대한 이야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신은 1980년 6월부터 1981년 12월 세상을 뜰 때까지 순복음신학교를 통해서 관계 맺게 된 순복음 교회 청년 선교지 <카리스마>에 「카리스마적 신학」이라는 독특한 글을 연재하셨다. 오랜 동안 그가 생각해 왔고, 마침 그것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지만 충분히 펼치고 가지 못한 새로운 조직신학으로서의 “영(靈)의 신학”, “초현실주의 신학”에서 그는 삶과 죽음을 논한다. 거기서 그는 밝히기를, 사실 사람은 “생리적으로 종족적으로 혈통적으로”는 오히려 죽지 않고 영속적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생물학의 유전법칙에 의해서 그의 유전인자는 계속적으로 자손이나 종족 등을 통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참 죽음이란 바로 그의 “인격”이 죽는 것을 말하는데, 그에 따르면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로서 그것은 “생리적인 법칙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것은 유전적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아니요 그 근원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순전히 정신적인 영역이요 자유의 영역으로서 말하자면 영원한 곳에서 날아 들어옴이요 그 인간이 갖는 독특성이요 유일회적인 것”이라고 서술한다.(미주 3)

이신은 인류 문명의 과학적 성과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 과학으로 아직 들추어내지 못한 ‘인격’과 ‘영’과 ‘초현실’의 차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죽음 이해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물학적인 죽음은 이제 “생리적으로” 허구이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죽음인 인격의 죽음에 대해서 관심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임을 밝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의 믿음에 대한 강조와 고독을 받아들이는 입장, 몸은 불사하지만 오히려 인격의 죽음을 말하는 모든 이야기가 오늘 ‘인공지능’(AI)과 ‘초인간(transhuman)’을 말하는 시대에 더욱 의미 있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돋아나고 또 자라는 생리적인 것의 죽음이 아니라-어차피 이런 생리적인 것은 죽지 아니하는 것이고-그러한 인격의 무한한 가능성의 요소의 멸절滅絶이요 알기 쉽게는 역사적 시간적으로는 그 영원한 씨(種子)가 한 번도 싹터보지 못하고 무서운 혹한 때문에 고사枯死하는 것이요 생존경쟁의 싸움터에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무한한 위력을 가진 불발탄인 것인데 사실은 누구나 다 이런 인격의 영원성을 갖고 있는데도 생존경쟁의 하찮은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아깝게 사장死藏되어버리는 것이요 또 이어가는 이 역사의 휘몰아치는 추위 때문에 한 번도 인격의 아름다운 싹을 틔워보지 못한 채 시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미주 4)

앞의 아렌트도 오늘날 사람들이 “영원성”(eternity)에 대한 관심을 모두 잃어버리고 너나없이 모두가 자신의 생물학적 생명에만 관심하는 노동자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하였다.(미주 5) 또한 이와 유사한 근대 부르주아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베르댜예프에게서 확실하게 들을 수 있는데, 그에 따르면 부르주아는 자기를 초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초월은 그가 지상에 정착하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에게서의 신앙과 종교는 “항상 유한한 종교이며, 유한에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종교의 질은 그것이 이 세상의 조직에 헌신하는 봉사, 이 세상에서 그의 지위의 보존에 대한 봉사에 의해서 측정된다.”(미주 6) 베르댜예프는 이러한 부르주아 인간의 문제는 단순히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에 의하면, “부르주아는 피안적 세계의 존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종말과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도 없다. 그들은 종말과는 인연이 없는 무리들”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미주 7)


그런데 사실 서구 역사에서 우리는 이미 플라톤에게서 매우 유사한 관점의 이야기를 들었다. 즉 그가 이상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세 가지의 파도로서 그 중 그 하나를 ‘처자공유’를 통한 생물학적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일로 지적했다면, 베르댜예프나 이신의 삶과 죽음, 인격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유사한 흐름 속에 놓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신은 사람이 생리적으로 사는 것은 “다만 생식하고 번식하는 것으로 이어가는 삶”이라고 지적했는데, 베르댜예프는 그의 『인간의 운명』에서 이와 유사하게 ‘속’(屬, genus)을 통한 생명의 연속은 “임신을 통해 계속되는 삶을 알 뿐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일종의 성적(性的) 범신론”이라고 비판했다.(미주 8) 여기에 대해서 베르댜예프는 “인격”personality)이라는 개념을 한없이 고양시켜서 바로 그렇게 생리적으로 계속되는 세계의 삶에 대해서 인격은 “침노”해오며, “돌입”해 와서 그 세계를 “정복”하고 “초극”하는 또 다른 “우주”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그 인격이란 “우주의 일부가 아니고 오히려 우주가 인격의 일부이며 그 질”이고, “인격은 예외이지 법칙이 아니다.”라고 선포했다.(미주 9)

나는 이 이야기들에서 모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성가치 위주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흔적을 본다. 물론 베르댜예프 자신도 분명히 밝히기를 자신의 인격주의는 헤겔의 일원론보다는 칸트의 이원론에 더 가깝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19세기 이후의 서구 생철학이 세계 이해에 나름으로 기여했지만 그것은 “우주적이며 사회적인 과정 속에 인격을 해소시킨다”. 대신에 자신의 인격주의는 그에 비해서 그 안에 “모순과 역설”을 담지한 “종말론적 전망”이고, “신비”라는 것이다.(미주 10) 그는 분명한 어조로 “신적-인간성의 이 신비를 동일철학, 일원론, 내재론의 빛 아래서 이해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하며, “신-인성God-humanity에 관한 진리는 교의적 신조나 신학적 교리도 아니며 경험적 진리 곧, 정신적 체험의 표현이다”라고 언명한다.(미주 11)

이렇게 베르댜예프나 이신이 강조하는 믿음의 종말론적 성격과 인격적 신비의 의미를 나 자신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며, 특히 오늘날은 온갖 과학주의의 비등으로 정신이 철저히 객체화되고, 기계화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인격’과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특히 지금 이곳의 ‘몸’의 현실이 없으면 ‘힘없는’ 또는 ‘잔인한’ 관념일 뿐이며,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도 잘 불러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의 ‘딸’로서, 그리고 동아시아의 ‘여성’과 ‘엄마’로서 경험해왔기 때문에 순전히 그저 그들의 입장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미주 12) 아니 어쩌면 이신 자신도 이러한 인격과 자유와 자기초월에의 한없는 비상과 가치매김에도 불구하고 여기 이곳의 현재로부터 더 온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무척 괴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유학 시절에 고국에 남기고 간 병든 딸이 죽자 「딸 ‘은혜’(恩惠) 상(像)」이라는 시를 지으며 고통스러워했고, 그 이전에 6.25이후 모두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으며, 가족들의 생계와 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몸으로 고생하며 가족적 삶을 지켰다. 그 덕분에 우리는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그처럼 신학자가 되어서 그의 생각을 밝히고 이어가는 일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오늘 우리 시대가 눈에 보이는 것에만 몰두하고, 대신에 ‘믿는다’는 것이 아주 드물어지고 어떻게든 고통과 아픔은 피하려 하고, 그래서 ‘죽음’은 더욱 외면당하고 억눌려지는 상황에서 진정으로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영생’과 ‘부활’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관심을 촉구하고 대면하도록 초대한다. 이신은 인격성의 핵심인 자유는 “고난을 감내하고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며, “고뇌에 대한 능력이 없으면 인격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자신의 삶으로 전한다. 그의 믿음의 고독은 “출발”이라는 제목을 가진 다음의 시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나로서는 그것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

<출발>

운명을 전당잡고
풍진을 긁어모아 새로운 조형을
마련하려고 적막한 공지(空地)를 향해 출발하나
지평이 너무 낮고
하늘이 묵념만 반복하니
행려자의 가슴은
더욱 심연의 주변만 맴돈다.

길이 아무리 멀어도
자연이 전설을 고수하는 한
초속(超速)의 물체가
시간을 침식하는 논리는
심야의 기적 소리마냥
요란스럽게 굴러가고
증명이 불가능한
이 시대의 예언이
과학의 고독 때문에
오히려 찰나적 충동 속에서
질풍처럼 전달된다.

사색이 어떤 지점으로 고양되면
불투명한 풍토가
비극의 대안(對岸)을 환상적 토질로
변모케 하고
시대적 풍조 때문에
권력을 세낸 무리들이
몽롱한 달그림자 속에서
새로운 투쟁을 계획한다.

이때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는
새 풍토에의 출발이
마지막 기적 소리 때문에 결단을 내리고
정오의 태양을 쪼이며
빈손마저 뿌리치고
홀로 떠난다.
그러면 가로수의 그늘이
명상의 은거지를 마련한다.(1968/8/8)(미주 13)


미주
(미주 1)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193쪽.
(미주 2) Soeren Kierkegaard,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8, p.33,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190쪽 재인용.
(미주 3)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306쪽.
(미주 4) 같은 책, 309쪽.
(미주 5)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같은 책,
(미주 6)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252쪽.
(미주 7) 같은 책, 252쪽.
(미주 8) N. 베르쟈에프, 『인간의 운명』, 이신 옮김, 현대사상총서, 1984, 322쪽.
(미주 9)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노예냐 자유냐』, 이신 옮김, 28-30쪽.
(미주 10) 같은 책, 8-12쪽, 44쪽.
(미주 11) 같은 책, 58-59쪽.
(미주 12) 이은선, 「한국 페미니스트 그리스도론과 오늘의 기독교」, 『한국 생물生物여성영성의 신학』,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1, 97쪽 이하.
(미주 13) 이신 지음, 『李信 詩集 돌의 소리』, 이경 엮음, 동연, 2012, 33-34쪽.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 명예교수)  leeus@sejong.ac.kr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인류 종교의 미래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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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와 인류 종교의 미래

기자명 이은선 한국信연구소 대표
승인 2022.12.15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 22




지난 1년간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라는 제목 아래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진행해왔고, 이제 22회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오래전 서구 기독교 신학의 한복판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만난 동아시아 한국 유교의 보화들과 대화하면서 나름으로 이 대화가 인류 문명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 

지난 글들에서 본인은 동아시아 유교 기원과 전개에서 한국 유교가 단지 수동적이었거나 외래로부터 전해 받은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토대로서 역할을 했고, 특히 매우 고유하게 조선적 유교로 전개되어 왔음을 말했다. 또한, 유교 문명은 토착 지역의 오랜 무교(巫敎)나 도교(道敎)적 토양에서 함께 성장하면서 인도 문명으로부터 전해진 불교와 깊게 대화하며 신유교(新儒敎, Neo-Confucianism)로 전개된 것을 살폈다. 조선 유교는 특히 이 신유교의 확장이고, 그러므로 이 신유교와 더불어 서양 문명의 두 토대인 유대 히브리 정신과 그리스·로마 정신 위에서 성장한 서학(천주교)이나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대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종교 전통과 대화하는 것이 됨을 본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21세기 세계정세를 보면 미국과 중국이라고 하는 세계 두 헤게모니 사이의 각축이 치열하고, 그 둘의 관계 맺음에 따라서 인류 전체의 미래가 크게 좌우될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한반도 땅에서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이상의 모든 종교 전통들이 여전히 활발히 역동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도 이 땅에서의 유교와 기독교, 그중에서도 이제까지 본 연재가 주로 초기 서학(천주교)과의 만남에 집중했다면, 마무리로 현대 개신교와의 만남을 잠깐이라도 살펴보는 것이 인류 종교의 미래를 그리는 일에서 무익하지 않으리라 본다. 

1884년경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알렌과 스크랜턴 등의 서양 선교사들 입국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개신교는 유교와의 만남에서 주로 전격적인 개종(改宗)을 주장했다. 거기서 기독교 신앙은 주체가 되고 유교는 그 신앙의 보완자가 되어 최초의 개신교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정동감리교회 초대목사 탁사 최병헌(濯斯 崔炳憲, 1858-1927)의 『만종일련(萬宗一臠, 1922)』도 그랬지만, 칸트 『순수이성비판』을 번역해 냈고, 칼 바르트를 사사한 후 단군 이야기를 기독교 삼위일체 이야기와 견주기도 한 해천 윤성범(海天 尹聖範, 1916-1980)의 ‘誠의 신학’도 유사했다. 이어서 본인이 한국의 한 토착화 신학자로 보고자 하는 원초(原草) 박순경(1923-2020)의 ‘(민족)통일신학’도 히브리 유대 민족의 창세기 연원을 동이족 창세기에서 찾기도 하지만 마침내는 그 모든 역사가 히브리 기독교의 ‘하나님’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박순경,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2014; 이은선,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한국적 信學의 관점에서, 한민족통일신학연구소 엮음, 『원초 박순경의 삶과 통일신학 톺아보기』, 2022).



이런 가운데 일련의 개신교 사상가들은 훨씬 더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한국 유교 전통을 내면화하면서 나름의 고유한 신학과 종교의식을 펼쳤다. 요사이 더욱 찾아지고 있는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는 유불도 삼도(三道)뿐 아니라 대종교 『삼일신고(三一神誥)』나 『천부경(天符經)』 등의 언어를 깊이 체화해서 지금까지 어느 개신교 신학자도 넘지 못한 전통기독교 기독론의 배타주의를 나름으로 넘어섰다. 그는 유교 『중용(中庸)』의 중(中) 개념이나 『대학(大學)』의 민(民)을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지시하는 언어로 해석해서 그 그리스도성이 단지 2천 년 전 유대인 청년 예수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된 하늘적 ‘씨앗’과 ‘바탈’로 보았다(이정배, 『유영모의 귀일(歸一)신학』, 2020). 다석의 제자로서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은 스승보다 훨씬 더 탈종교적이고 보편의 언어로써 이 세상의 현실과 정치, 역사 속에서의 하늘 영(靈)의 활동과 ‘씨알’의 역동적 활동을 강조했다. 본인이 그래서 참된 한 “仁의 사도”라고 파악한 그는 염재신재(念在神在, 생각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라는 말을 좋아하는 스승 유영모처럼 온 우주의 “영화(靈化)”를 말하며, 씨알의 핵심을 사유하는 일(思,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보았다. 본인은 여기서 깊은 맹자적 전승을 보고, 또한 그가 민족 개조에서의 정치와 종교의 합작과 “혁명의 명(命)은 곧 하늘의 말씀이다”라면서 그 명을 공자의 천명(天命)과도 연결하는 일 등이 유교 맹자적 의(義) 의식과 잘 연결되는 것을 본다(이은선, “인(仁)의 사도 함석헌의 삶과 사상”,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2016).



그런데 사실 이들 모두에게 먼저 큰 영향을 준 사상가는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鎬, 1878-1938)였다. 보통 개신교 사상가로 알려졌지만, 그 삶과 사상에서의 유교적 뿌리와 전개는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그의 흥사단(興士團) 운동이 그것인데, 유교 중용(中庸)과 성(誠)의 점진(漸進)의 덕을 민족 독립과 자주뿐 아니라 인류 공동체 미래를 위해서 참된 영적 생활 공동체 운동으로 펼치고자 한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김교신(金敎臣, 1901-1945)의 ‘무교회’ 운동이 있다. 지난 편에 본 유교 개혁가 이병헌은 유교 종교화로서 공교회(孔敎會) 운동을 주창했지만, 김교신은 오히려 ‘무교회’ 신앙을 강조했다. 그는 신생 한국 개신교가 서구에서 만들어진 각종 교단과 교권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고서, 참 신앙이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교회에 속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스스로가 성서를 읽고 해석하면서 민족적 현실에 참여하며 “날마다 한 걸음(日步)”씩 나가는 구도 정신으로 파악했다. 유교 남성들이 당연시해왔던 호(號)를 붙이는 일도 일종의 특권 의식으로 보아 거부했는데, 그와 함석헌, 송두용 등이 함께 창간한 월간지 『성서조선』은 대쪽 같은 선비 정신과 독립 기독교 신앙이 함께 일구어낸 뛰어난 열매라고 생각한다(김정환, 『金敎臣, 그 삶과 믿음과 소망』, 1994).

1974년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언’으로 또 다른 한국 기독교의 독립 정신을 강조한 이신(李信, 1927-1981)은 무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갱신을 통해 그 뜻을 이루고자 했다. “신앙마저 남의 나라의 종교적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그는 서구 교회로부터 온 교단과 교권의 분열을 넘어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을’ 주창했다(이신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358쪽 이하). 
또한, 특히 신앙의 영적 역동성과 전위성을 강조했는데, 히브리 신구약 중간기 묵시문학에 나타난 하나님 신앙의 시대 전복적 의식과 전적 새로움에 대한 간구가 시대와 민족, 문화 등의 차이를 넘어서 새롭게 지속적으로 영(靈)의 ‘동시성’으로서 역동하는 것에 대한 큰 믿음(信)을 가지고 있었다. 그 믿음과 신뢰를 그는 인간 인식 연구에서 불모지와 다름없는 ‘상상력(imagination)’과 ‘환상(fantasy)’으로도 이해했는데, 예수의 하나님 의식, 키르케고르나 본회퍼의 고독과 저항의식, 한반도 최제우의 민중의식, 20세기 미래 전위파 예술 운동 등에서도 유사하게 재현되는 것을 보는 정도로 그의 하나님 영(성령)의 역동성에 대한 감각은 포괄적이고도 포함적이었다. 그리하여 본인은 그러한 이신의 사유가 16세기 조선 신유교 성리학의 창조에서 전위적인 역할을 한 퇴계의 천명(天命)이나 리도(理到) 의식과도 잘 통한다고 보고 그 둘의 사유를 우리 시대를 위한 참된 신학(信學)의 의미로 해석하고자 했다(이은선 외, 『李信의 묵시의식과 토착화의 새 차원-슐리얼리스트 믿음과 예술』, 2021, 129쪽 이하).

21세기 오늘은 지금까지 인류 문명이 소중히 가꾸어온 정신성(理)과 온갖 드러남의 다양성 속에 내재하는 초월적 인격성(命), 그리고 모두가 하나라는 지속하는 기반으로서의 공동체성(仁)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힘을 주어서 한 존재의 존엄이나 권리가 이미 그가 여기 지금 단순히 태어나 있다(natality/生理)라는 탄생성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사실 속에서만 찾는 일을 감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떤 종족이나 국가, 종교나 문화의 소속 여부에 따라 그것을 조건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오늘 우리는 이제 인류 보편 종교(religio catholica/眞敎)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이고, 본인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이러한 보편 종교(common religion)의 이상이 어느 경우보다도 한국 (신)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에서 잘 찾아질 수 있다고 보는 바이다. 예를 들어 ‘易·中·仁’ 이나 ‘聖·性·誠’ 등의 언어 쌍과의 대화인데, 이 언어들은 전통 기독교의 신론(神論)과 구원론, 교회론(성령론)을 훨씬 더 보편적이고 탈종교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더욱 포괄적이고 세속적으로 말해보면, 이미 동학의 최제우 선생도 밝힌 바 있는 ‘誠·敬·信’의 세 언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보기에 아직 깊이 천착 되지 못한 무의식의 영역이나 여전히 큰 보편 속에 통합되지 못한 우리 삶에서의 성차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물음이 남아있다. 미래의 보다 생명 살림적인 한국적 보편종교(天地生物之理/心)로서의 한국 신학(信學)을 위해 씨름해야 하는 주제라고 여기며 본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끝)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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