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4

알라딘: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구미정,김진호,이찬수,이충범

알라딘: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소득공제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구미정,김진호,이찬수,이충범 (지은이)자리(내일을 여는 책)2012-04-12













































8.5 100자평(2)리뷰(2)



책소개
제목 그대로 오늘의 한국 기독교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기독교 본연의 정신을 성서와 역사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모두 16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매 주제마다 민감하고, 논쟁이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16가지 주제들은 기독교 신자이든 안티 기독교의 입장에 선 사람이든 기독교의 실체적 진실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 그 자체를 넘어서는 무엇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행태는 기독교 본연의 정신과 관련 없이 반공의 뿌리 위에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 방식에 철저히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권력화된 기독교는 어느새 자본과 정치를 넘나들며 자신들만의 성새(城塞)를 단단히 구축하고 있다.

이를 넘어서는 과정은 결국 그 성새를 밑둥에서부터 부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업은 어떻게, 무엇을 통해 가능할까. 저자들은 기독교 본연의 정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왜곡된 뿌리를 걷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인바, 이 책은 그 작업을 위한 성서적 기반과 담론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차


추천사 교회의 정명正名, 사회의 정명正名
머리글 교회가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의 여러 이야기들, 그것으로 이웃과 대화하기

1장 유일신 _‘신상神像 없는 신앙’ 혹은 ‘반권력의 파토스’
2장 정통과 이단 _이단, 역사적 싸움에서 패배한 정통
3장 내세 _영혼의 구원에 대한 강렬한 열망
4장 구원 _죽음의 대속론을 넘어 부활의 속죄론으로
5장 창조 _비과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찰의 출발
6장 종말 _신체적 종말과 영원한 생명의 묵시적 이중나선
7장 성직 _목회는 본디 섬김이다
8장 성찬 _가장 낮은 이들에게 베푸는 평등의 밥상
9장 안식일 _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해방’의 날
10장 교회 _교회는 속죄의 목욕탕이 아니다
11장 사도신경 _배타성의 상징이 된 금관의 예수
12장 영과 육 웰빙 _시대의 ‘구원불평등’을 읽는 키워드
13장 결혼과 가정 _평등한 창조를 부정하는 순종론을 깨라
14장 교회와 여성 _원죄라는 편견이 만든 부정不淨의 여성관
15장 타종교와 이웃 _교회의 길이 아닌 그리스도의 길에 서라
16장 성전聖戰 _거룩한 전쟁, 성서는 이를 옹호하는가?



추천글
신자유주의 성전이 된 교회를 향한 단호한 질문
“극우독재의 ‘하면 된다’ 구호에 ‘믿으면 받는다’로 호응하면서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부흥을 한 한국 개신교 교회는 신자유주의, 즉 자본독재의 가장 강력한 정신적·물적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교회개혁’이라는 주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교회개혁은 교회임을 전제로 한 노력과 싸움이지만 그 교회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 교회들은 소박하게 말하면 교회를 가장한 상점들이며 제대로 말하면 신자유주의의 성전이자 회당들이다.”

- 김규항 (작가,《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성전화·권력화된 한국 기독교에 던지는 근원적 물음
점점 성전화·권력화·화석화되어 가는 한국 교회가 교회 본연의 정체성과 역할을 재인식하므로 이 시대를 사는 한국 기독교인 모두에게 기독교 신앙이 줄 수 있는 활력과 역동성을 되찾도록 하는 일은 현 한국 교회에 주어진 최대의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김진호 목사님을 비롯하여 이런 과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몇몇 의식 있는 분들이 엮어내는 이 책은 두 손 들어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나 일반 지성인들이 모두 읽고 한국 기독교 활성화를 위한 대화의 장이 더욱 활발해지기 바란다.”

- 오강남 (종교학자,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




저자 및 역자소개
구미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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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글 쓰고 강의하는 기독교 인문학자. 진지하고 심각한 신학 풍토 속 그녀의 이야기 신학은 자유롭고 경쾌한 놀이를 지향한다. 나아가 말과 글로 삶의 지혜를 나누는 창조적 놀이가 운동이 되어 교리와 교권, 현존 질서와 체제에 눌려있는 생명들이 하늘 숨을 쉬게 되기를 소망한다. <두 눈 그 너머에서 세상을 보다>(공저), <구약 성서, 마르지 않는 삶의 지혜>, <교회 밖 인문학 수업>, <두 글자로 신학하기>, <한 글자로 신학하기> 등 여러 책을 지었다.


최근작 : <그림으로 신학하기>,<십자가의 역사학>,<죽음준비교육 20강> … 총 25종 (모두보기)

김진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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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성서학 전공.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당대비평》주간 역임.
주요 저서로 『성서와 동성애』,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리부팅 바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예수의 독설』, 『반신학의 미소』,『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과의 낯선 여행』 등이 있다.

최근작 : <길 없는 길 위에서>,<인간 너머의 인간>,<바이러스에 걸린 교회> … 총 55종 (모두보기)

이찬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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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상과 문화, 동아시아의 종교와 평화 연구자.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와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의 사상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일본)코세이 가쿠린 객원교수, (일본)중앙학술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난잔대학 객원연구원, 성공회대 대우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일본정신』,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교토학파와 그리스도교』, 『다르지만 조화한다』, 『평화와 평화들』, 『사회는 왜 아픈가』... 더보기

최근작 : <메이지의 그늘>,<보훈과 교육>,<보훈, 평화로의 길> … 총 61종 (모두보기)

이충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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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신으로 연세대 철학과, 감신대 신학과를 마친 후 미 드류(Drew) 신학부에서 신학석사(M. Div.)를, 대학원에서 중세신비주의 연구로 박사(Ph.D.)를 마쳤다. 현재 협성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노래로 듣는 설교』, 『중세신비주의와 여성』, 『중세영성과 현대여성』 외 단독 및 공저 10여 권, 다수의 논문이 있다. 신학 연구와 함께 비영리 시민단체 (사)대토담 교육이사로 수생태 환경 및 한반도 고유종 물고기 보호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작 : <아시아 공동체와 평화>,<종교인의 연애>,<한류로 신학하기>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자본과 물신(物神)의 노예가 된 기독교를 정명(正名)하라!
13인의 기독교 연구자, 새로운 기독교 개혁의 촛불을 들다.

1990년대 초 개신교의 성장이 정체되고 교세가 감소하고 있다는 지표가 발표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위기론’은 교계에 점차 고조돼 왔다. 위기가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도 수가 줄고 있고, 문을 닫는 교회도 많다. 기독교를 ‘개독교’로, 목사를 ‘먹사’로, 평신도를 ‘병신도’로 비아냥거리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할 정도로 개신교의 사회적 평판은 매우 부정적이다. 심지어 기독교는 사라져야 한다며 기독교 타도를 외치는 ‘안티 기독교’ 사이트가 무수히 생겨나고 있다.

오늘의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키워드는 황금만능, 물신숭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말로 집약되는 공격적인 선교 행태와, 믿음은 곧 구원이라는 그릇된 대속(代贖)론이 배타성의 뿌리를 이루고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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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렵거나 변죽만 울리거나
rosaleon 2013-09-11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이단 정죄보다 교회내부의 암덩어리 도려내야

현재 개신교 예배당의 출입구에는 저마다 큼지막한 포스터가 하나씩은 붙어 있다. 이른바 '○○○ 이단의 출입을 금한다'는 게 그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걸 붙여 놓은 걸까? 교우들을 엉뚱한 교리로 현혹시킬 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빼내간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말로 그들이 기존의 교우들을 이리처럼 도둑질한다면 비난 받아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개신교 내부에서도 스스로 점검해야 할 몫이 있지 않을까? 그 동안 가르친 교회 교리가 교우들을 붙잡아두지 못한 이유 말이다. 그에 대한 진정성을 성찰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물론 이단은 정통 교리와 어긋난 경향성을 드러내며 활약한다. 다만 이단 규정은 교리적인 차원보다는 주도권 다툼에서 빚어진 현상이기도 하다. 그만큼 정통이든 이단이든 교회 역사는 권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구미정·김진호·이찬수 외 여럿이서 쓴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에는 그와 같은 '이단'이라든지, '성직'이라든지, '창조'라든지, '성전(聖戰)'이라든지, 기독교의 여러 가지 속살들을 드러내 준다. 물론 그것은 바른 치유책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단과 정통을 가르는 경계선은 대체 어떻게 그어진 것인가? 초기 기독교회의 공동체 의식은 애초부터 교리적 차원에서 비롯되지 않았다고 바우어는 주장한다. 교회의 공동체 의식은 공식 교리의 진술(이른바 정통은 교회에 의해 규정된다)이 아니라 동일한 주님을 예배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바우어에 따르면, 정통과 이단이라고 하는 분류체계는 각각의 사상이나 내적인 교리에 의해 도출된 것이 아니라 권력 집단의 정치적 판도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46쪽)



이는 제 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인 정용택이 이야기한 것이다. 그는 유세비우스(Eusbius)의 〈교회사〉와는 달리 독일의 발터 바우어(Walter Bauer)의 〈최초의 기독교에서의 정통과 이단〉이란 책에 초점을 맞춰 정통과 이단 간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그것이 곧 예수와 사도 시대의 초기기독교 세계에서 관용되었던 다양한 교리들이 로마교회의 정치권력 아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배척되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정용택은 지금의 한국교회와는 달리 초기 한국교회가 보여준 관용성에 눈뜨도록 종용한다. 이른바 초기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할 때는 '단일한 개신교 교리'를 목표로 한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비교적 원만하게 공존하던 192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더 큰 문제는 무엇일까? 기성교회가 제시한 메마른 교리와 답답한 의례에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이단종파로 규정한 집회에서는 신비주의와 은사주의와 열광적인 종말론 등으로 무장한 채 기존 교우들의 억압된 욕망을 분출시키기도 한다. 그만큼 기성교회는 막강한 권력과 딱딱한 교리로 교우들을 옥죄려고 했지 그들처럼 교우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데는 등한시했다는 견해다.



그것은 구미정이 바라 본 '성직'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 시대의 목회자가 정녕 제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권위를 계승하고 싶은 욕망이 하늘을 찌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루터의 '만인사제'로 인해 '영적 평등주의'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 권위'를 수호하려는 목회자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결국 목사가 자기 자신을 평신도와 구분지어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는 고질병에서 헤어나는 게 관건이렸다. 이렇게 보면, 목사의 직분을 '성직'으로 인정하지 않는 '뻣뻣한' 평신도를 곁에 둔 목사야말로 복 받은 사람인 셈이다. 그 평신도는 목사로 하여금 만인사제의 프로테스탄트 원리를 각성케 하는 고마운 스승이 될 테니 말이다."(133쪽)



이는 스물아홉에 요절한 젊은 시인 기형도의 〈우리 동네 목사님〉을 두고서 하는 이야기다. 오늘날의 목회가 교인 수를 늘리고 교회를 확장하는 걸 성공으로 생각하는 판에, 그 시인의 글에 등장하는 목사는 둘째 아이를 폐렴으로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복'을 기대했던 교인들조차도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는 마당이었고, 그 책임을 목사에게 묻는 형국이었다고 한다. 그 목사가 전능한 신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만큼 오늘날 교회는 목사도 그리고 교우들도 병이 들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목사들은 교인 수를 늘리고 예배당을 크게 짓는데 혈안이 돼 있고, 교우들은 교회부흥의 실패원인을 목사에게 돌리는 병폐에 빠져 있다. 교회가 부흥되면 목사를 신격화하지만, 부흥이 저조하거나 교인수가 감소하면 무능한 목사로 낙인찍는 게 보편화된 현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교회의 암 덩어리는 교회 바깥의 이단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교회 내부의 폐부와도 같은 권력욕과 딱딱한 교리들은 교우들을 더 병들게 하는 요인일 것이다. 그것들을 찢고 수술하지 않는 한 그 암덩어리는 더욱더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그 속살의 암덩어리들을 이야기하겠는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교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암덩어리들이 무엇인지 바르게 진단하고, 그것들을 수술하여, 보다 더 내실을 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13명의 신학자들은 그런 바람으로 각각의 꼭지를 맡아 이 책을 썼을 것이다.
- 접기
바보 2012-05-0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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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을 열다



김규항씨의 말대로 과연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볼지는 모른다. 하지만

단 몇 사람이라도 이 책을 보기만 한다면 그는 가만히 예전의 신앙을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제목 그대로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이야기가 교회와 나의 모습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신앙이란 것을 거의 교리 안에서 듣고 읽고 이해하고 살고자 했던 그리스도인들,

모든 교리가 성경과 하나님께서 직접 일러주시고 명령하신 것으로 믿고 따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은 인간이 만들어내고 자의적으로 해석해낸 교리의 맹목성을 역사적 교회사를 들려줌으로써 증명해준다.



읽고 나면 혹시 불편해질까, 선입견이 있었다. 왜냐면 현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나 혹평을 받는 존재들이기에

이 책 역시 혹평에 강도 높은 비웃음과 야유까지 얹지 않았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오히려 읽고 나니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이며 기독교가 나아갈 바가 어디인지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동안 아무도 보여주지 않던 기독교의 밀실을 시원하게 열어 보여주었고 비로소 복음의 핵심이

지금 이 순간 교회에서 사회에서 개인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알려주었기에 오히려 마음에 기쁨이 깃들었다.

깊은 사유와 기도와 말씀이, 예수님이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보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보기 원하시는 것을 보고 행하기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길이라고 믿는 성도들의

영성에 이 책이 더 거룩한 고민의 시계를 확보해주리라 생각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를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물론 그것이 세상적으로 볼 때 너무 미미하여 자괴감이 들지라도

현재의 이 혼탁한 교회의 어느 한 부분에 일정의 빚이 있는 우리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지 않을까.

그것이 세상에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기독교를 일으켜 나가는 날마다의 첫 걸음일 것이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의 보다 성숙하고 바람직한 성도와 한국교회의 깨어남을 염원하는 저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접기
강아지똥 2012-05-1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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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 웰빙시대의 잘죽기(Well Dying) - 불교평론 2005년 겨울호

불교평론 제25호 2005년 겨울호 총목차 < 총 목차 < 기사본문 - 불교평론

불교평론 제25호 2005년 겨울호 총목차
기자명 불교평론   입력 2008.12.21

[ 권두언 ]
황우석 사태를 보는 불교의 눈 / 조성택

[ 특 집 ] 웰빙시대의 잘죽기(Well Dying)
웰빙시대에 왜 웰 다잉을 말하는가 / 오진탁
붓다의 죽음 / 안양규
선사들의 열반과 죽음 / 김영욱
부활, 웰 다잉의 한 해석 / 이찬수
죽음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생각 / 강신표
근사체험(近死體驗)이란 무엇인가 / 최준식

===

"웰다잉으로 진정한 웰빙을" 박익순 기자
승인 2006.01.22 20:03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Print.html?idxno=230105


<불교평론> 겨울호 특집… 죽음의 문제 다각적으로 검토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린다. 남의 일 같기도 하고, 내게는 멀고도 먼 훗날의 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사람일이고 보면,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죽음을 대비할수록 삶은 더욱 윤택해진다는 것이 죽음의 문제를 연구하는 이들의 의견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불교계 대중학술지 <불교평론>는 2005년 겨울호의 특집 주제를 ‘웰빙 시대의 잘 죽기’로 정했다. 특집논문으로 안양규 동국대 교수의 ‘붓다의 죽음’, 김영욱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선사들의 죽음과 열반’, 이찬수 강남대 교수의 ‘부활, 웰다잉의 한 해석’,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의 ‘죽음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생각’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의 ‘근사체험이란 무엇인가’의 5편과 총괄논문격으로 오진탁 한림대 교수의 ‘웰빙 시대에 왜 웰다잉을 말하는가’ 등 6편이 수록됐다.


죽음준비는 삶의 교육

일찍이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한림대 오진탁 교수는 “웰빙의 참뜻은 웰다잉에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잘’ 살았다 해도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지 못했다면 잘살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죽음을 기피하고, 남의 문제로만 인식하다보니 잘 죽기 위한 체계적인 준비를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진탁 교수.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병실에서 차가운 의료기계에 둘러싸여 튜브를 몸에 꽂은 채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며 품위 있게 죽는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며 살기란 더더욱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 교수는 “암이나 자동차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을 들거나 노후를 위해 연금을 붓지만 정작 중요한 죽음준비는 남의 일인 양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역설적인 세태를 비판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죽음준비는 삶의 유한성을 자각케 해, 현재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면, 하찮은 활동과 사소한 관심거리로 소일하기보다는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자신에 물음을 던지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죽음준비는 제대로 살기 위한 삶의 교육”이다.



'불방일'로 죽음 맞은 붓다

그렇다면 삶의 진면목을 깨쳤을 붓다나 선사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안양규 교수와 김영욱 연구원의 논문이 해답을 준다.

안양규 교수는 <열반경>에 나타나는 붓다의 죽음을 살폈다. <열반경>에는 붓다가 열반에 들기 전 세상에서의 마지막 가르침과 입멸 과정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이에 따르면 붓다는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가르침을 남긴 후 열반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다. 열반경에서 붓다의 입멸 과정은 정각의 순간과도 같이 선정과 밀접히 연계된 것으로 그려진다. 즉 붓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있었던 것이다.





안양규 교수.




이러한 붓다의 모습에 대해 안 교수는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붓다의 태도는 한마디로 ‘깨어있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을 대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애통해하지만 붓다는 무상한 육신 너머에 있는 열반을 추구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영욱 연구원.




그렇다면 선사들의 죽음은 어떨까. 김영욱 연구원은 “선사들은 죽는 바로 그 순간을 삶의 한 형식으로 수용할 뿐 죽음에 대한 추상적 관념이나 그것을 극복하는 고답적 이야기는 늘어놓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음을 질곡이나 해방으로 여기지 않는 선사들은 “그것에서 자유롭기 위해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으며, 화두를 놓치지 않듯 죽음의 순간까지 학인을 가르치고 점검하는 등 본분사를 주고받는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부활과 열반

기독교에서는 웰다잉의 한 전형으로 부활을 꼽을 수 있다. 이찬수 교수는 부활을 통해 예수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갔다는 점을 들어 부활을 단순한 소생과는 구별했다. 이 교수는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뤄진 생명의 사건이 볼 수 있는 것”이라며 “부활은 역사적 인물 예수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듯 우리의 몸도 다시 살게 되리라는 희망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불교평론 겨울호.




이어 이 교수는 부활과 열반을 비교했다. 이 교수는 “인과의 고통스러운 순환 고리를 끊어버린 데서 오는 안식으로서의 열반과 영생을 향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상태로서의 부활은 공통된 면이 있다”고 밝혔다.

<불교평론>에 실린 강신표 교수와 최준식 교수의 논문은 각각 우리 문화 속에서의 죽음과 근사(近死)체험을 다뤘다. 강 교수는 세상을 떠난 후의 상례(喪禮)와 제례 전통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의 의미를 살폈고, 최 교수는 서양에서 조사·연구된 의 근사체험 사례를 제시하면서 근사체험의 진실성을 밝혔다.


박익순 기자 ufo@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