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5

알라딘: 검색결과 '김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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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 총 8개의 상품이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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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ook] 노자도덕경주 - 노자도덕경주 
  • 왕필 (지은이), 김시천 (옮긴이) | 전통문화연구회 | 2018년 8월
  • 15,000 (종이책 정가 대비 50% 할인), 마일리지 750원 (5% 적립)
  •  (3) | 8 MB | TTS 미지원 | 세일즈포인트 :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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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ook]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 
  • 김시천 (지은이) | 더퀘스트 | 2016년 4월
  • 11,200 (종이책 정가 대비 30% 할인), 마일리지 560원 (5% 적립)
  •  (12) | 20.02 MB | TTS 지원 | 세일즈포인트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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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노자의 눈으로 삶을 보다 강좌

김시천:노자의 눈으로 삶을 보다
https://artnstudy.com/n_lecture/?LessonIdx=scKim003

노자의 눈으로 삶을 보다
현대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고전 『노자』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노자』 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의 삶을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우주적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 강좌에서는 『노자』를 진리를 담고 있는 경전이나 체계적인 철학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세계를 전혀 낯선 세계로 보게끔 도와주는 하나의 ‘거울’로 이용하면서, 우리들의 삶이 왜 이런 것인지, 다른 방식의 삶은 가능한지를 따져볼 것이다.


다른 방식의 삶은 가능한가?

일명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동아시아의 고전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전통 사회에서 가장 많은 주석과 연구가 이루어진 책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듣는 ‘무위’(無為), ‘자연’(自然), ‘도덕’(道德) 등의 말은 지금도 여전히 쓰이지만 본래의 의미와 현대인이 쓰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이 강좌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것처럼 생각되는 동아시아의 고전 『노자』를 우리의 삶의 세계를 전혀 낯선 세계로 보게 도와주는 하나의 '거울'로 이용하면서, 우리의 삶이 왜 이런 것인지, 다른 방식의 삶은 가능한지를 따져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이 강좌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삶과 관련된 사랑과 에로스, 정치, 전쟁과 평화, 욕망과 만족, 영원과 불멸,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낯선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고 또한 다른 방식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출처: Huxisanxiaotu, via Wikimedia Commons)


우리는 어떤 사랑을 꿈꿀 수 있는가?


『노자』는 이 세계를 하나의 성적인 세계로 상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우리가 태어나듯이 이 세계의 모든 것 또한 하늘과 땅이라는 부모로부터 비롯된다. 이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하나의 가족이다. 그럼에도 『노자』는 공자의 인(仁)과 같은 사랑의 세계를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 것일까? 우리는 『노자』가 들려주는 우주적 사랑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자연 철학자들의 에로스와 비교하여 생각해 볼 것이다.


행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동아시아 사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금욕주의가 없다는 점이다. 유가와 도가는 이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전통 사상은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무한정 긍정하려는 현대 사회와 비슷한가? 그렇지 않다. 동아시아 전통은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또 죄악시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욕망은 만족의 기술을 통해 최적화된다고 본다. 『노자』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 자본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지혜로운 처방처럼 보인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쿨한 삶


우리는 오늘날 윤리적인 인간,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에 살면서 이를 개인적 삶의 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인간보다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인간을 더 높이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도덕적 사회를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비도덕적 인간을 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의 무관심의 윤리는 매우 현실적인 생각처럼 들린다. 무관심하지만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인간,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강좌에서는 『노자』라는 거울에 우리의 삶을 비춰가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따져볼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와 언어를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 누구나 『노자』를 이해할 수 있는 강좌가 될 것이다.


※ 해당 강좌는 2014년 5월 부천시립도서관 고전 강의를 촬영한 내용입니다.


제1강 우리에게 노자란 무엇인가?―『노자』라는 책과 ‘노자’중에서

제3강 『노자』의 행복한 도술(爲道)중에서

제4강 『노자』의 현대적 해석 - 에로스, 만족, 행복중에서
구플레이어고화질일반화질음성
  • 회 차
  • 제 목
  • 시 간
  • 보 기
  • 2교시 - 『노자』라는 책-2
  • 25분
  • 3교시 - 『노자』를 보는 역사 속의 다양한 시선-1
  • 22분
  • 4교시 - 『노자』를 보는 역사 속의 다양한 시선-2
  • 33분
  • 주요내용
  • 『노자』에 대한 물음
    하나이면서 여럿인 『노자』, '노자열전'
    노자의 성명, 자, 출생지 및 직위
    노자와 공자의 만남
    노자의 출관 설화와 『도덕경』 전수
    노자의 또 하나의 후보, 노래자
    노자의 장수와 그 이유
    노자의 또 다른 후보, 주의 태사 담
    노자 후손의 계보
    노자의 학문과 현황
    『노자』속의 인간들

김시천 (철학자, 상지대 교양학부 조교수)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논문 「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의과학연구소에서 한의학의 철학적 기초에 대해 강의했으며, 상지대, 숭실대, 충북대, 호서대,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해 왔다. 도가철학과 한의철학, 과학사상과 진화론 및 동아시아 고전의 현대적 해석을 주요 주제로 삼아, 대중과 소통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숭실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 저서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책세상, 2021)
『동양철학산책』(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21세기 청소년 인문학, 1』(공저, 단비, 2017)
『논어 학자들의 수다:사람을 읽다』(더퀘스트, 2016)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책세상, 2013)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공저, 휴머니스트, 2010)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 책세상, 2010)
『철학으로 과학하라』(웅진지식하우스, 2008)
『문화, 세상을 콜라주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08)
『전통 청바지』(공저, 웅진지식하우스, 2007)
『가치 청바지』(공저, 웅진지식하우스, 2007)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2006)
『기학의 모험 1』(공저, 들녘, 2004)
『철학에서 이야기로 - 우리 시대의 노장읽기』(책세상, 2004)
- 역서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마이클 샌델, 폴 담브로시오 지음, 공역, 와이즈베리, 2018)
『노자도덕경 주』(왕필 저, 전통문화연구회, 2017)
 
  • 번 호
  • 제 목
  • 작성자
우수실존을 넘어서는 실존앞에서...윤*선
시대를 읽고, 시대를 살아간다는 의미를 2500년전의 글을 통해서 통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효용성(기술)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사람이 살아가고, 타자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수김시천 선생님 감사합니다.곽*선
노자의 가르침.. 뭐든지 힘들이고, 뭐든지 열정적인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억지로 하고, 가짜로 하는 것들 투성이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느끼고 회의를 가졌던 저에게. 노자의 '억지로 하지 말라', 즉 '무위'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노자의 가르침을 '함이 없음'이라기 보다도, '억지로 함이 없음'이라 이해합니다. 하되, 억지로 하지 않는 것. 그 억지로라는 것의 의미를 앞으로 더욱 탐구하고, 삶의 실천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아직 과제로 남아있지만요.. 김시천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수노자를 통해 배우다!한*정

동양철학을 재미없다고 하는 분들~
그 깊이와 재미에 도달하지 못 해서예요..
김시천 선생님의 노자 강의를 들어보세요!
탐구하고 실천하는 자세로 배우는 노자 !!!
장자가 궁금해집니다..

2022/05/14

철학'이라는 이름 피자가 '부침개'는 아니잖아요 by 오수민

'철학'이라는 이름

피자가 '부침개'는 아니잖아요
by오수민Apr 04. 2019

초등학교 때였나, 교과서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가 소개되는 자리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예가 있었다. 바로 “피자는 이탈리아식 부침개”라는 비유. 나는 이 비유가 정말 너~무너무 싫었다. (어쩌면 “이탈리아식 빈대떡”이었을지도. 이건 더 싫어!!!) 둥그런 모양 빼고는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닮은 점이라곤 전혀 없는 두 음식을 마치 서로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인 것 마냥 엮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개념적으로 거부반응이 든 것이다.


Ⓒ홈퀴진 이윤정 님 (bit.ly/2JDtyDP)

그런데 철학에서도 피자를 “이탈리아식 부침개”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철학'이라는 이름 자체와 관련해서 말이다.

철학의 세부분야를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지역’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으로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분류다.

고대 그리스에 전통을 둔, 논리학, 인식론, 윤리학 등으로 대표되는 학문을 ‘철학’이라고 부르는 건 별 문제가 없다. 피자를 '피자'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공자에 뿌리를 둔 동양의 학문을 ‘동양 철학’이라고 부르는 건, 엄밀히 말해 딱 맞는 표현이 아니다. 마치 피자를 '부침개'라고 부르는 격이랄까. 대체 ‘철학’이라는 이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이를 알기 위해선 몇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격물궁리지학 vs 필로소피아

동양의 학문이라 하면 모름지기 ‘유학儒學’이다. 이것이 송명시대에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했는데 그 뼈대를 세우는 데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주자, 즉 주희朱熹인 까닭에 ‘주자학朱子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주자학이 동양의 학계를 주름잡고 있던 시기, 서양에서 새로운 학문이 들어왔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전파한 서양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가 바로 그것이었다. 바다 건너온 신문물이라니, 일단 이름은 원어 그대로 ‘페이루쑤페이야費祿蘇非亞’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이렇게 소리만 따서 부르다 보니 이름만 들어서는 당최 뭘 하는 학문인지 한방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이미 동양에 있던 학문 중 필로소피아와 가장 비슷해 보이는 학문을 골라 그 이름을 쓰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격물궁리格物窮理'의 학, 즉 격물궁리지학이다.

격물궁리는 주희가 외부 세계를 탐구할 방법으로 내세운 이론으로, 그에 따르면 외부 사물의 원리인 ‘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리’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물궁리학은 외부 세계가 아닌 마음에 집중하며, 마음속 ‘리’를 깨닫는 방법으로 경전을 공부할 것이 중요시된다.

격물궁리지학과 필로소피아 모두 궁극적으로는 이 세계를 알고자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오히려 서로 다른 점이 더 많다. 단적인 예로 서양의 필로소피아가 전통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탐구해왔던 것과는 달리, 동양의 유학은 현세를 잘 사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필로소피아는 '격물궁리지학'이라는 이름을 함께 쓰게 되었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며 변화가 일어났다. 서양의 자연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필로소피아로부터 '사이언스science'가 따로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니시 아마네가 '철학哲學' 그리고 '과학科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필로소피아를 '철학'으로, 사이언스를 '과학'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했다. (초기에는 '분명하게 밝힘을 바란다'는 뜻의 '희철학希哲學'이었으나 이후에 '희'자가 빠졌다) 이러한 신조어는 당시 동양에서도 객관적 지식을 탐구하는 자연과학의 인기가 높아지던 경향과, 일본이 동양에서 학문적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금세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니시 아마네

그리고 현재, 이 신조어들은 그것이 누군가가 번역어로서 발명해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존재감이 커졌다. 그리고 서양의 학문이 주류가 되면서 기존의 동양의 학문은 서양의 학문 체계로 편입되어 버렸다. 이제 격물궁리지학은 동양 ‘철학’에 속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양의 학파가 ‘철학’으로 분류되고, 그 ‘철학’의 기준이 서양 철학으로 세팅되어 있는 상황에서 철학 공부를 하다 보면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동양 철학이 학문적인 기준에 미달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에 “동양의 전통 학문이 서양의 학문보다 열등한 건가” 하는 고민으로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두 학문이 애초에 대등하게 치환될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피자를 '부침개'라고 부르면서 한국의 부침개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건 의미가 없다. 왜 이 부침개는 반죽을 따로 빚냐고, 부추가 안 들어가지 않았냐고 따지며 피자를 열등한 부침개라고 평가한다면 우스운 일일 것이다. 서양 철학을 기준으로 동양 철학을 논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피자집에 가서 부침개를 찾을 수 없듯, 동양 철학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대답과 동양 철학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서양 철학을 대할 때와 달라야 한다. 부침개만이 줄 수 있는 맛이 있고, 피자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처럼, 그래야 각각의 학문이 가진 맛과 매력을 보다 잘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