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1

알라딘: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알라딘: 왜 용서해야 하는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은이),원마루 (옮긴이)

포이에마2015-09-10원제 : Why Forgive?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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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1,000원

판매가

9,900원 (10%, 1,100원 할인)





8.9100자평(2)리뷰(9)

이 책 어때요?

272쪽

131*196mm

360g

ISBN : 979115809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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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용서'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책.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용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풀어낸다. 독자들을 위해 한국 사례를 특별히 추가했고, 소그룹으로 모여 용서를 향한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용서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부록으로 실었다.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



1. 원한이라는 암 덩어리

2. 기적을 믿으며

3. 증오의 악순환 끊기

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5. 용서와 정의

6. 자비를 베푸는 일

7. 화해가 불가능할 때

8. 일상 속의 용서

9. 결혼과 용서

10. 부모와 친구에 대한 용서

11. 하나님에 대한 원망

12. 자신에 대한 용서

13. 책임지기

14. 길고 힘겨운 여정

15. 파문 일으키기



나가는 말

부록: 용서 학교



접기





책속에서







P. 32 사람들은 고든의 진심을 오해했다. 조롱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든은 만약 테러범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딸이 가족들 곁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고, 복수심에 매여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용서는 개인의 삶을 넘어 훨씬 더 멀리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고든의 발언은... 더보기

P. 218~219 “몸이 마비된 채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난 20년간 아내를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새 청년이 된 코너와 캐치볼을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가끔은 이런 상황이 불만스럽고 힘들고 싫습니다.” 그런데도 왜 용서한 걸까? 스티븐은 이렇게 말한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더보기

P. 250~251 폭력의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키죠. 각 사람과 각 집단에 자기만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적’이 실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이 있다고 해도 이미 죽어버린 후인 경우가 많고요. 제가 매일 대면하는 진짜 적은 따로 있습니다. 매일 끌어안고... 더보기





추천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전 세계에 꼭 필요한 메시지다.

- 넬슨 만델라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용서는 비본성적인 행위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참으로 용서하기 어려운 순간에 감히 본성을 거스를 수 있을지 두렵다. 그럼에도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을 통해 용서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고귀한 선택임을 깨닫는다. 본성을 거슬러 고귀한 선택을 함으로써 인류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소년부 부장판사)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분단의 시대를 치유하는 길은 화해와 용서밖에 없다. 그 화해와 용서의 씨앗을 남과 북 어린이들의 여린 마음에 심어야 한다. 이 책은 한반도가 평화로운 미래로 가기를 기원하는 절절한 기도서다.

- 권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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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Johann Christoph Arnold) (지은이)





1920년 브루더호프를 공동 창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1883-1935)의 손자. 목사로서, 브루더호프의 장로로서 평화와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평생 헌신한 사람이었으며, 복음을 살아내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싸운 전사였다. 마틴 루터 킹, 마더 테레사 수녀, 세자르 차베스, 도로시 데이, 체 게바라, 특히 그의 아버지 하인리히 아놀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99년부터 전신마비 사고를 당한 뉴욕 경찰관 스티븐 맥도널드와 함께 ‘폭력의 고리 끊기’라는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학교와 단체, 기관에서 용서의 메시지를 전했다. 결혼생활, 부모 역할, 평화 문제를 실재 인물들의 경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동안 저자가 쓴 책은 20개 이상의 언어로 옮겨졌고 100만 명이 넘는 독자와 만났다. 대표 저서로 《왜 용서해야 하는가》, 《나이 드는 내가 좋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아이들의 정원》, 《평화주의자 예수》 등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과 비폭력을 추구하는 브루더호프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길 원하는 가족과 미혼자가 살고 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처럼 모든 것을 나누고 공동의 선을 위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자신의 시간과 능력과 힘을 보탠다. 더불어 살고, 더불어 일하고, 더불어 식탁을 나누며, 매일 함께 노래하고, 예배하고, 결정을 내리고, 기도하고, 축하한다. 공동체에서는 학력과 나이, 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똑같이 귀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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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성, 하나님, 결혼>,<희망이 보이는 자리: 지친 영혼이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인생 좌표>,<왜 용서해야 하는가> … 총 65종 (모두보기)



원마루 (옮긴이)



영국 남동부 로버츠브릿지에 있는 브루더호프공동체에서 아내와 함께 세 아들을 키우며 산다. 옮긴 책으로 《왜 용서해야 하는가》, 《나이 드는 내가 좋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숨어 있는 예수》, 《공동체 제자도》, 《바닥난 영혼》, 《아이들의 정원》이 있다.









최근작 :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용서만이 상실을 견디는 유일한 길이다!

‘폭력의 고리 끊기’라는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용서’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책이다. 촉망받는 축구선수였으나 무고하게 폭행을 당해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되어버린 글렌 필더부터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켈리, 공동체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저자의 아버지까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용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2010년에 미국에서 출간한 Why Forgive?에 한국 사례를 추가한 확대증보판.



[출판사 리뷰]

용서만이 상실을 견디는 유일한 길이다!

1995년 9월의 어느 아침, 저자는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다가 동네에 사는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유괴당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한다. 범인은 일주일 만에 잡혔다. 유괴범은 아이의 가족과 잘 아는 사이였다. 그는 아이를 집 근처 숲으로 유인해서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했다. 뉴스를 접한 대중은 분노했고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자기 손으로 직접 처리할 수 있게 그냥 풀어주라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가 과연 피해자 가족에게 위로가 될지는 의문이었다. 범인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붙잡혀 있던 저자는 몇 달 뒤 교도소에서 수갑을 푼 범인과 마주 앉았고, 저자는 그날의 만남이 자신에게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남겼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 책은 ‘폭력의 고리 끊기’라는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용서를 통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가 ‘용서’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책이다. 촉망받는 축구선수였으나 무고하게 폭행을 당해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되어버린 글렌 필더부터 어린 시절 갱단에 발을 디뎠다가 친구들에게 배신당한 하심 개럿, 인종차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자레드,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켈리, 공동체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저자의 아버지까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용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이번에 포이에마에서 번역.출간한 《왜 용서해야 하는가》는 2010년에 미국에서 출간한 Why Forgive?에 한국 사례를 추가한 확대증보판이다.



■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 책에는 크고 작은 사건으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상처는 가슴에 응어리를 만들게 마련이다.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큰 사건이 아니라도 사소한 다툼 속에 서운한 감정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가슴에 쓰디쓴 응어리가 생긴다. 그렇게 응어리진 마음은 우리로 삶을 비관하게 하고 결국에는 우리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원한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적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한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한은 결국 나를 파괴하기 일쑤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매일 마음을 다잡으며 용서를 향해 힘들게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뉴욕 시 경찰관으로 일하다 총을 맞고 전신이 마비된 스티븐 맥도널드가 용서를 택한 이유도 “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장 힘든 순간에 고통을 완화하고, 죄에 대한 응징과 인간적인 공평함에 관한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용서의 힘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타인을, 혹은 하나님을, 혹은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다.



■ 용서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용서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과연 이 세상에 용서가 쉬운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용서하고 그만 잊어버리라”고 쉽게 말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해본 사람은 잊는 것도 용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저자의 말대로 의지를 가지고 미워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해야만 용서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당부한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 낮고 좁아서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찾기도 어려워서 찾는 데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모두 용서의 문을 찾아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그 문 앞에 당도할지 모른다. 그때는 부디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당신뿐임을 기억하라.”(p.13) 저자의 당부대로 의지를 가지고 용서의 문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이 생겨나길,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온전히 오늘을 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길,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시작한 용서의 물결이 사회 전체에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포이에마에서 출간한 이번 책에는 독자들을 위해 한국 사례를 특별히 추가했고, 소그룹으로 모여 용서를 향한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용서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부록으로 실었다. ‘폭력의 고리 끊기’ 세미나에서 나온 질문을 서로 나누며 용서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길고 힘든 여정의 첫걸음을 떼어보자. 접기





8.9









용서, 그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들



1986년 7월 12일, 미국 뉴욕 시 경찰관 스티븐 맥도널드는 순찰을 돌기 위해 센트럴파크에 들어섰다가 수상해 보이는 십 대 무리와 마주쳤습니다.



경찰을 보고 달아나는 아이들을 쫓아가 잡았을 때, 한 아이가 (나중에 알고 보니 15세였다고 하더군요) 그의 뒤로 돌아가 그의 머리에 총을 쐈지요. 그가 쓰러지자 그 아이는 그의 목에 두 번째 총을 발사했고, 한 번 더 총을 쏘고 달아났습니다.



48시간 동안의 수술과 치료를 통해 의료진은 불가능한 일을 해냈습니다. 그를 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전과 같은 삶까지 돌려줄 수는 없었지요. 목을 관통한 총알이 척추를 건드려서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산소 호흡기가 없이는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정말 비참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지요.



그리고 몇 달 뒤, 스티븐은 아내와 함께 기자회견을 합니다.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와 그의 아내는 그 소년을 용서했다고 발표했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만약 복수심을 안고 살았다면, 영혼의 상처는 더 깊어졌을 것이고 주변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물론 힘들 때도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분노는 감정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거의 매일 그날을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용서한 걸 후회하지 않아'" 아...





기독교의 많은 덕목 중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선포할 정도이니 말할 것도 없지요. 그렇다면 사랑의 최고봉은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요.





이 책은 용서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하거나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조금 산만하기도 합니다.) 대신 용서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을 들려주지요. '용서의 사례'라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용서가 필요한 '악한 상황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에는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폭력부터 살인이나 폭행과 같은 범죄,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테러, 그리고 아우슈비츠나 르완다의 학살이나 미국의 인종차별 등과 같은 거대한 상황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지경이지요.





그런데, 그 안에 빛나는 별들이 있습니다. 아니, 별이라기 보다는 눈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겠네요. 원망하고 증오하고 복수하기를 꿈꾸는 대신에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지요. 그들의 노력은 때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가해자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허탈하게 끝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가해자를 변화시켜서 새사람이 되게 하고, 주변을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또다른 용서를 낳지요.





이 책은 결코 용서가 쉽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용서를 실천한 사람들도 용서가 단번에 되지는 않았다고, 용서했더라도 다시 복수심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그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용서는 죽을 때까지, 날마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싸움입니다! 아, 용서는 정말 어렵습니다.





또한 이 책은 용서에 대해 낭만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슬픔과 분노를 무시하거나 그 죄를 가볍게 보지 않지요.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진실을 밝히는 것, 잘못을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용서의 힘을 더 힘주어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장애물을 극복하게 하며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 모두를 치유하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 말입니다. 사실 우리를 본질적으로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것도 예수님의 용서 아닙니까!





아내가 이 책을 읽더니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어휴, 이 이야기들을 읽으니까 우리가 용서 어쩌구 말하기는 너무 부끄럽다." 정말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고민하고 상처받은 일들은 너무도 사소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밴댕이 소갈머리같은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ㅜㅜ





이 책은 독자들을 용서의 자리로 초청합니다. 낙심과 복수, 증오와 상처의 자리에서 희망과 관용, 사랑과 회복의 자리로 오라고 부릅니다. 과거에서 벗어나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고 권유합니다. 힘들지만 시작해보자고 말합니다.





뉴욕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못에 돌을 던지면, 그 돌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 파문에 퍼지고 퍼져 온 세상에 닿을 것입니다."





우리 손에 용서의 돌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돌을 던져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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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duck 2016-07-04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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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이어주는 책, <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읽고서



아버지는 술꾼이셨다. 하루도 술을 안드시면 안되시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오실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시지 않으시면 어김없이 찾아나서야했다. 길가에 앉아계신 날들이 다반사였다. 나는 왜 이런 가정에 태어났을까 싶기도 했다. 싫었다. 고3때는 남들 다들 고3이라고 집에서 배려해주는 것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술을 좀 덜 드시기만을 바랬다. 바람은 바람으로만 끝났다. 대학생이 되고, 주님 앞에서 내가 용서되었을 때에야 나는 아버지가 용서가 되었다. 아버지의 그 설음의 시간이 새로이 보였고, 육체 노동의 한계와 관계 속에서의 치임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형제 관계 속에서의 부침과 아버지 본인 스스로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사랑합니다!”라고 안아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용서했던 그 길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아버지 역시 용서했다. 나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한 것이 그저 한 번 고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희망을 써 내려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레미야의 말씀이 그때는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삼푸투는 술에 마약쟁이였습니다. 그는 하루도 술없이는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친구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님을 죽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르완다의 투치족이었던 삼푸투는 친구인 후투족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를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으로 인해 삶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 일로 9년 동안 정신이 나간 채 지냈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 클라디아가 장애가 있는 것으로 인해 급기야 아내와도 헤어졌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었지만 술과 마약으로 감옥을 오갔고, 그의 삶은 재앙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세라는 한 전도자를 만남으로 인해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하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빈센트를 용서함으로 인해 빈센트는 자기 죄를 뉘우쳤고 자신을 용서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아내와 자녀들도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 용서의 힘은 그의 가족 또한 다시 하나되게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당시을 용서한 게 아니야 당신을 용서한 건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이 삼푸투를 통해 당신을 용서했다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있어.”(243쪽)







용서는 우리를 세계로 연결시켜준다. 우리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옥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영혼”(38쪽)이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용서뿐이다.”(163쪽) “용서는 새롭게 출발하는 데 필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폭제다.”(70쪽) 이 책 곳곳에 펼쳐져 있는 용서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용서가 우리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 또한 복수하는 삶이 우리 삶에 얼마나 편만한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세계의 문제이며, 현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나의 한계와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세계와 화해하며 자신을 용서할 뿐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게 해주는 방법임을 힘주어 말한다. 폴 투르니에가 인격의학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회복하려 했듯이, 저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용서가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열쇠임을 전해준다. 저자의 세계 곳곳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나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13쪽) 또한 “용서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은 우리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결단으로 이끌어주는 징검다리들을 잔뜩 놓아두고 있다. 읽다보면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그러면서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읽다보면 언제 용서라는 은혜의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다. 그 선물을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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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감람나무 2015-09-2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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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자



몸과 마음이 힘든 날이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몇 달 동안 지속되면서 점점 심해져 손바닥만한 두드러기가 온 몸을 뒤덮었다. 아토피에 우유 알러지가 있는 아기에게 모유를 계속 먹여야했기에 약을 쓰지 못했다.



시매부님에게 폭언을 듣고 난 후부터 두드러기가 시작되었다. 남편과 시누이 언니가 사과를 요청했지만 잘못한게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시며 나를 많이 걱정해주셨다.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 잠을 잘 수 없는 날이면 분노가 함께 나를 덮었다. 그리고 가혹했던 비난의 말들이 계속 떠올랐다. 사과를 받고 싶었다. 사과를 받아야지만 이 지긋지긋한 두드러기가 나를 떠나갈 것 같았다.



아토피가 있는 아가도 잠을 잘 때면 간지러워 깰 때가 많았다. 어느날 밤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가 잘 잘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시누이 언니에게 상처를 떠올리기보다 진심을 믿기로 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고민은 계속됐다. ‘다음에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미루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문자를 보낸 이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 두드러기도 나지 않았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의 “왜 용서해야 하는가”, 이 책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분노로 차오른 내 마음이 내 몸까지 통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용서는 한번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어야하니까.



“그 사람들이 한 일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죠(p67)”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p219)”



“용서하는 힘을 계발하고 유지해야한다. 용서할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줄도 모른다.(p69)”







내 속에 자라는 끔찍한 마음을 직시하고, 예수님의 자리에서 죄를 심판하려는 오만함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용서하는 힘을 키우고 실천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용서하기 힘들 때는 이 책을 다시 펼쳐야겠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용서의 이야기들이 ‘함께 가자’고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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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건 2015-09-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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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여섯 살 때쯤의 일이다. 무언가 큰 실수를 하고선 혼이 날까 두려웠던 나머지 마치 내가 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엄마 앞에서 연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허술해서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이었지만 그 땐 정말 완벽하게 엄마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엄마는 내가 죄(?)를 자백할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결국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자수를 택한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에게 용서를 빌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따끔한 회초리질 뒤에 콧물 범벅인 나를 꼭 끌어안으며 내 잘못을 용서해주셨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최초로 ‘용서’라는 단어를 배우게 된 순간이었으리라. 엄마의 따뜻한 포옹을 통해 나는 ‘용서’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사랑이 앞서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란 받을 수도 또 베풀 수도 없다.







<왜 용서해야하는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용서’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쉽게 상처받는 허약한 사람들이나 용서를 이야기한다고 여기지 마라.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힘 있게 한다.”(61p) 저자는 용서는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던 상대방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순간, 비로소 그 용서의 과정 속에 특별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이정도 일쯤이야’라고 가볍게 여길만한 사건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뉴스나 신문에 등장할 법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들은 결코 쉽지 않았을 용서의 과정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이웃, 전혀 모르는 사람, 심지어 가족)뿐 아니라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 나간다.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분노는 만족을 원하고, 그것은 상습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죠.”(109p) 어린 시절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 뒤 습지에 무참히 버려두었던 한 남자를 끝내 용서한 크리스의 고백이다.



“원수를 친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사랑에만 이다. 미움에 미움으로 맞선다고 적을 없앨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적대감을 없애야 적이 사라진다. 미움의 본성은 파괴와 분리다. 그러나 사랑의 본성은 창조와 건설이다. 구원의 능력으로 사랑은 결국 변화를 이뤄낸다.”(69p)



사랑의 능력은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용서의 힘은 한 개인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이웃 그리고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파장을 일으킨다. 물론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는 바울의 가르침은 질투, 시기, 분노가 가득한 이 세대에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왜 용서해야하는가. 용서는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고,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이 모두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이야기한다. 용서는 여전히 어두운 과거에 머물며 분노와 증오의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있는 당신이 그 고통의 사슬을 끊고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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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또자 2015-09-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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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지 않은 단어, '용서'



술에 취한 소년의 운전으로 아들 마이클을 잃은 남자. 아버지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정의의 심판은 더디었다. 법정에서 운전자의 혐의를 밝히는 데만 일 년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가해자의 어머니는 법정 최고형을 요구했다며 비난조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그 소년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6개월의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 뒤 6년 동안 집중 관찰을 받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



아들을 잃은 남자는 이후로도 극심한 분노에 휩싸였다. 법으로 정의가 실현되었지만, 아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가해자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용서의 길을 택했다.



‘용서’. 어쩌면 TV에서도, 책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주기도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기독교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용서라는 말은 묵상하면 할수록 가벼운 단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용서의 현장, 즉 내게 해를 끼친 사람 앞에 있다면, 용서는 상상할 수 없을 무게로 다가온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브루더호프 목사인 요한 크리스토퍼 아놀드가 용서에 대해 썼다. 내게 해를 끼친 사람과 상황 속에서, 힘겹게 용서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십대 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아동 학대를 받아 온 여성, 인종차별을 겪어 온 아프리카계 미국인, 르완다 사태에서 친한 친구에게 부모님을 잃은 뮤지션,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받은 한국 소녀...







용서를 선택한 이들의 리스트이다. ‘정말 이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까?’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힘겹게 용서를 선택한 과정을 담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의 가정과 일터, 삶의 현장을 방문해 직접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했고, 때로는 강렬했다. 앞에 언급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자.







용서의 길은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가해자뿐 아니라 마이클을 용서해야 했고, 일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하나님을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용서해야 했습니다. 그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저 역시 술을 마신 상태로 마이클을 태우고 운전한 적이 많았으니까요. (94쪽)







그의 말처럼 책에 소개된 다른 사람들도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용서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질타를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용서를 선택한 이들은 삶의 큰 보석을 발견해 간다. 다시 아버지의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건의 ‘끝’은 결국 용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용서의 힘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고, 용서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94쪽)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십대 때, 크리스는 유괴범에게 머리에 총을 맞았다. 기적적으로 뇌는 다치지 않았지만, 한 쪽 눈이 실명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분노하고, 어떻게든 복수를 꿈꾸는 것이 당연할텐데, 크리스의 선택은 용서였다.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109쪽)



상처를 입고, 그럼에도 용서를 택한 사람들. 이들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이 책은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좋은 미담을 모아 적은 책이라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쭉 들으며, 질문 한 가지를 던질 수 있었다. ‘저 상황에 놓였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용서가 결국엔 내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내 앞의 가해자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신중히 묵상하고, 용서에 대해 이전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책은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송곳처럼 계속 마음을 찔러 온다. 사실, 내게 조그마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었다. 나는 용서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은 바로 다음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용서가 정말 어렵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작가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용서가 반드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 역시 연약하며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용서를 경험할 때에만 용서할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된다. (145쪽)



‘왜 용서해야 하는가?’ 독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 작가는 책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의 손에는 용서에 이르는 열쇠가 쥐어져 있다. 그 열쇠를 사용할지 안 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264쪽)



용서, 생각보다 사용이 쉽지 않은 열쇠. 그럼에도 이 책의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용서를 선택해 서서히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들의 가슴 먹먹한 목소리를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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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oad 2015-09-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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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불교언론-스님들에게 기본소득을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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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에게 기본소득을

유정길
승인 2019.11.



매월 50만원씩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면

만일 당신에게 매월 50만원의 돈이 통장이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2019년 1인 최저생계비는 102만4205원인데 50만원이라면 약 반에 해당되며 적은 액수가 아니다. 만일 가족 한사람들에게 각각 지불되기 때문에 5인 가족이면 250만원이다. 그렇게 되면 비루하게 아등바등하게 살지 않게 되고 하고 당당히 싶은 일을 하며 가족 중 누군가 직업을 잃는다 해도 크게 두렵지 않고 소비도 늘어나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벌수 있다는 ‘임금노동’ 중심의 생각을 하는 사람에겐 아무 일도 안한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누구도 일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행하는 나라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밀하게 당신은 아무 일도 안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연관되고 서로 의존적인 연기적 이치로 보면 결국 각자가 존재 그 자체로 보이지 않게 도우며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덕분에’ 누군가에게로 돈이 모인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사회는 가사노동이나 자원봉사, 친절과 배려 등 90%의 비지불노동이라는 바다위에 10%의 임금노동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개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점차 세계적인 추세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70%가 25만원 정도를 받고 있는 기초연금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최근 성남시의 청년기본소득(청년배당)이 24세 이상의 청년들에게 연 100만원을 경기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올해부터 해남은 1년에 60만원씩 전체 농가 1만4579가구가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아마도 매년 재원을 확보하여 액수도 늘어날 것이고 또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알래스카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1982년부터 매년 1인당 약 1500달러씩 4인가족에 6000달러를 지급해왔고, 핀란드는 기본소득 매월 71만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등도 유사한 정책을 펴고 있다. 돈은 벌고 있지만 기술개발로 줄어드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부의 재분배를 위해 농민, 청년, 장애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출가자가 증가와 종단민주주의에 기여할 승려기본소득
불교환경연대는 지난 2017년 3월 불교의 기본소득 실시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여기서 중앙승가대 유승무 교수는 ‘기초수행지원 보시금’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스님들에게 무조건 각각 50만원씩 연간 600만원을 지불하는 기본소득이 가능할 수 있다고 추진을 제안했다. 1만여 스님을 대상으로 할 경우 연간 600억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일종의 토지세나 지대처럼 걷는 400억원 규모의 사찰점유비와 직영사찰수입의 4분1로 180억원, 그리고 각 사찰마다 승보공양 복전함 같은 기초수행지원 보시함을 마련하고, 관광사찰입장료의 일부, 기타 출자가의 재보시 등을 합치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대략적인 추산으로 더욱 상세한 계산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지급되면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까? 우선 삼보정재의 교리적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권력지향적인 위계적 조직관행, 관료주의가 개혁되는 계기가 되며, 원융살림의 종단의 민주적 의사결정에 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스님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승단내의 불평등, 사유화, 세속화, 사사화 등의 온갖 부정적인 추세가 일소하여 승가의 공동체성과 화합에 기여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지나 소임자로 하여금 돈보다 수행지원 등에 집중하게 되어 승단의 과잉정치화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초발심의 자세로 수행에 전념하는 출가자가 늘어나게 되어 승단이 청정해지며, 승단의 경제적 안정화로 인해 출가자의 감소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기여하고, 행자시절 중도포기나 환계자를 줄이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다, 불교가 사회적 변화를 선도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점차 지급되는 액수는 늘어나게 되고 여기에 향후 국가가 지불하는 기본소득이 추가된다면 훨씬 더 안정적인 수행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기본소득의 특징은 무조건성이다. 누구에게 동일하게 지급되기 때문에 부자와 가난한자를 구분하는 행정비용이 전혀 지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체로 앞날의 불안감으로 인해 돈을 모아 쌓아 놓으려 하며 이를 위해 권력다툼을 하게 된다. 승려기본소득으로 승단이 더욱 청정하고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면 불교가 부흥하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도움이 될 것이다. ‘스님은 잘살기만 하면 먹을 것은 저절로 생긴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더욱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게 되니 복지도 이런 복지가 없는 것이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ecogil21@naver.com



[1511호 / 2019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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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2019-11-06 20:18:15
더보기땡중들한테 세금을 왜 줘 룸살롱 가려고?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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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던합의 2019-11-05 04:17:08
더보기저도 2년 전 유승무 교수의 기본소득 논의 기사를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불교환경연대 주최 였군요. 법보신문 의 이런 기사 좋습니다. 종단 합의까지 갈 길이 멀지만 시작이 빠르면 빠를수록 종단에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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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2019-11-04 15:16:11
더보기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앤드류 양도 18세 이상 전 국민 1000불 기본소득 공약 제시했더군요
4차산업혁명시대, 생존권 보장은 기본소득이 주류인샘이네요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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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2019-11-04 13:25:59
더보기스님들에게 매월 50만원이 종단에서 지급된다면 아마도 대단히 바뀔 것같습니다.
분쟁도 훨씬 덜해져 더욱 청정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종단에서 합의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같지만...답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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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10가지 이유 - 오마이뉴스 모바일



독일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10가지 이유 - 오마이뉴스 모바일




독일이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10가지 이유
[행복사회 유럽 27회] 농민끼리 협동하며 자치하는 슈바츠
정기석(tourmali)
등록 2015.10.26 



지금 우리 농촌 들판에는 난데없이 6차산업화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 농업의 돌파구가 열린다며 정부는 강변한다. 그러나 6차산업화의 현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보인다. 그곳에 농민은 없고 자본과 기업만 우뚝하다. 농업은 잘 안 보이고 공업과 서비스업만 무성하다.

그렇게 1차 농산물 재배는 없고 2차 농식품 제조와 3차 농촌관광과 유통 서비스만 있으니, 1곱하기 2곱하기 3을 해서 6차산업은 고사하고, 0곱하기 2곱하기 3을 하니 도로 0차 산업의 꼴이 된다. 2차와 3차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6차산업의 출발지점이자 바탕이 되어야 할 1차 산업이 비어있거나 모자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위장 6차산업'은 마치 공염불이나 신기루처럼 여겨진다.


정부의 느닷없는 6차산업 드라이브 정책에 6차의 의미와 의도를 잘 알 수 없는 농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입을 모아 불신과 우려의 목소리를 감추지 못 한다. "농촌의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제조·가공해 유통·판매·문화·체험·관광서비스와 연계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6차 산업에 대한 정의가 그저 막연하고 막막하다며 한숨을 쉰다.
무엇보다 '공동체농업과 농촌공동체' 방식을 '농정의 정도'로 알고 살아온 우리 농민들의 눈에는 왠지 옳고 바른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할 수 없는 남의 일처럼 들린다. 자본력과 기술력의 기업농을 내세운 6차산업화는 대다수의 소농, 가족농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다가온다.

참여하고 싶어도 대다수에게 문턱이 높은 정책은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름기지 올바른 정책이라면 자본이 모자라고 기술도 부족한 소농일지라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정부가 좋아하는 표현대로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가진 자만 독과점할 수밖에 없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고 어쩌면 특혜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6차산업화든 융복합산업이든 대농이나 기업농이 아니라 중소농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마을과 지역사회 공동체를 사업의 기반으로 해야 한다. 거기에 사업을 추진하고 지원할 농민이 주도하는 전문적이고 도덕적인 농업회의소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현실적 주장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미 선진 농업경영체의 최적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1500명 농민들의 협동연대 경영체 '슈베뷔쉬 할 생산자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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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명의 농민생산자들의 협동경영체,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Gemeinschaft) - ⓒ 정기석

'할'이라 불리는 슈베비쉬 할(schwabiseh Hal|)은 독일 바덴-비텐베르크주의 작은 목가적 도시다. 인구는 3만6천 명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독일의 중요한 경제 중심지 가운데 한 곳으로 평가된다 경제는 주로 무역, 서비스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할' 지역은 호엔로에(Hohenlohe) 마을의 유기농업만으로도 충분히 유명하다. 그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맛난 음식은 나라 안팎의 관광객들을 지속적으로 호객하고 있다. 그 중심에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Gemeinschaft)이 있다. 조합의 기술지도사로 일하는 나드하 레온하드씨는 조합이 이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조합의 설립 목적 자체부터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삼았어요. 농업의 규모화나 기업화가 아니었어요. 1980년대 멸종위기의 재래종 돼지를 할 지방의 특산돼지로 되살리면서 조합의 역사가 시작됐어요. 1986년 설립 당시 불과 8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1500명 가까운 조합원이 모였어요. 연간 1억200만 유로(약 1400억 원)의 매출도 올리고 있고요.

조합의 회장은 설립 이래 연임하며 조합의 경영을 책임져 오늘날의 성과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어떤 조직이든 지도자가 중요하죠. 그리고 거기에 조합원들이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는 힘이 결합되었죠. 또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지역에 기여하는 사업철학과 전략도 변치 않았어요. 전통돼지 한 품목이 성공하면서 지역 전체의 경기가 살아났죠. 조합은 지역의 관광업체와 협력해 지역관광산업을 촉진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요."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의 역사는 돼지육종협회에서 출발한다. 1988년에 생산자조합을 결성하고 1992년에는 상장된 주식회사도 따로 설립하며 성장을 거듭한다. 조합과 별도로 공장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를 굳이 따로 설립한 이유는, 생산자조합에서 고기를 수매해주면 세금문제가 원활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체 도축장, 소시지 가공장, 농민시장 등 1차 생산에서 2차 가공, 3차 직거래 유통에 이르는 이른바 6차산업화 과정을 내부 계열화했다. 이로써 지역 뿐 아니라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농식품을 판매하게 되면서 안정경영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역직판장 뿐 아니라 독일의 고급호텔, 유명레스토랑, 기업체 식자재, 루프트한자 기내식 등에서 최우량 식자재로 대우받고 있다.

4000종 로컬푸드 복합 직판장 '호헨로에 농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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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0종 이상의 로컬푸드를 직판하는 호헨로에 농민시장 - ⓒ 정기석

이같은 베비쉬 할 생산자조합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품질에서 나온다. 조합에 고용된 전문 기술지도사들이 수시로 생산자를 컨설팅하며 품질을 상향평준화시켰다. 유럽연합 최고 등급의 유기농 인증서 '외코테스트(Oekotest)'를 비롯해 Non-GMO 인증, 국제 표준규격, 독일농민협회(DLG) 골드라벨 인증 등 다양한 인증서가 조합 생산품의 품질과 진정성을 보증하고 있다.

심지어 원산지 스페인처럼 도토리만 먹여서 키운 이베리코 돼지로 하몽(Jamon, 염장 건조 생햄)을 생산하기도 한다. EU의 지역특산물로 인정받은 암컷 슈베비쉬 헬리쉬 슈바인종과 수컷인 피에트램종을 교배한 돼지도 특별하다. 소시지 내용물은 당연히 지역농산물을 원재료로 한다. 지역에서 생산하지 않는 양념류는 루마니아, 인도 등의 생산지에서 현장 기술지도를 해서 생산한 것만 공수해 사용한다. 유해 식품첨가물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과는 다른 지역이나 조합에서 흉내낼 수 없는 차별화된 생산·가공 전략, 그리고 개발기술이 있어서 가능하다. 우리의 농식품부에 해당하는 독일의 소비자·식량 및 농림부 장관이 우수 사례지로 방문할 정도로 공인받고 있다.

"농민시장은 2007년에 문을 열었어요. 총면적 950㎡의 농민시장에서는 4000여 종류의 로컬푸드를 직거래 판매하고 있어요. 직판장 외에도 레스토랑, 허브가든, 빵가게, 지역여행사, 어린이 놀이터, 태양광발전소 등 복합시설을 함께 운영합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듣다보면 이 조합의 역할은 사실상 한국의 지역농협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다만 독일에서는 농민 스스로의 힘으로 자치하고, 한국은 사실상 행정이 관치하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사업 성과의 수혜자가 독일에서는 농민에게 온전히 돌아가고, 한국에서는 농민은 소외되고 행정이나 농협이 차지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또 조합은 생산자에게 기술지도사를 통해 기술지도를 한다. 한국의 농업기술센터가 하는 일이다. 생산자는 기술지도 비용으로 연 550유로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그만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농민들은 생각한다. 모든 농민은 생산자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조합에서 가공·판매까지 책임지고 감당해주기 때문에 농민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 생산자가 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농민들이 주인으로 자치하는 슈바츠군 농업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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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들이 선거로 회장을 직선해 자치하는 슈바츠군 농업회의소 - ⓒ 정기석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쪽 35km 지점의 로츠홀트지역에는 농민들이 자치하는 슈바츠 군단위 농업회의소가 있다. 티롤주 농업회의소 산하 3개 지역, 9개 시군 단위 농업회의소 가운데 하나다. 오스트리아의 다른 농업회의소와 마찬가지로, 농민 기술 지도, 농업정책 지원 등 우리의 농업기술센터의 역할을 대신한다. 오히려 지자체 관할이 아니라 지자체보다 상위의 기관으로 대접받는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에는 우리의 농업기술센터 같은 기관은 굳이 필요없다.

농민은 모두 농업회의소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물론 연 40~100유로의 회비도 납부해야 한다. 업무와 책임은 어느 나라의 농정당국과 다를 바 없지만, 6년 임기의 회장은 정규 공무원이 아니라 농민들 손으로 직접 선출한 선출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오직 농민만 출마할 수 있다. 회의소의 직원은 명실공히 농업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다. 정년이 보장되는 준 공무원 신분이다. 농업회의소의 인건비 등 예산은 전액 정부에서 지원한다. 그러나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한국도 역시 농업회의소를 민관 거버넌스의 구체적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협치를 위한 전제조건인 행정의 태도 변화는 요원하다. 상근인력의 인건비 등 예산은 지원하지 않고 시범사업만 독촉하고 있다. 행정이 기존의 '갑'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슈바츠군의 사례를 따라할 필요가 있다. 관에서 먼저 목과 어깨의 힘을 빼지 않으면 농업회의소도, 민관거버넌스도 성공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가 이처럼 농민 자치기구인 농업회의소를 전면에 내세워 구현하려는 농정의 기조는 역시 '사람 사는 농촌'이다. '돈 버는 농업'이 아니다. 농업의 규모화나 현대화가 아니라 소농, 가족농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농촌은 온 국민의 휴양지, 농민은 온 국민의 별장지기"라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농업의 10가지 기능, 독일이 농업을 지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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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무트 트락슬러 슈바츠군 농업회의소장과 황석중 연수단지도교수 - ⓒ 정기석

헬무트 트락슬러 슈바츠군 농업회의소장은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에서 본 듯한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즐겨입는다. 그만큼 농촌의 전통문화, 그리고 농부로서의 자긍심이 대단한 것이리라. 농민 출신으로 농민들이 투표로 선출한 직선회장이다. 독일처럼 오스트리아도 농민이 농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있도록 지원하는 게 농정의 지상과제라고 강조한다.

"농가소득의 60%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농민이 소를 기르지 않으면 나무가 무성해져 아름다운 농촌문화경관이 사라지게 되잖아요. 농민이 농촌을 떠나거나 농사를 포기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농민의 경관 유지 기능을 인정해 축산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거죠."

오스트리아에서는 1ha 당 160유로, 고산지는 500유로로 차등지급한다. 경사지가 많은 산악지대로 갈수록 더 많이 지급한다. 그만큼 농업이나 주거여건이 열악해 농민들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산지대인 티롤지방은 1ha 당 800유로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황석중 연수단 지도교수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정부가 그토록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보호하는 이유가 농업의 10가지 기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도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10가지 기능 가운데 한 마디라도 틀린 말이 있다면 어디 한번 찾아보라. 나는 한 글자도 찾지 못했다.

하나,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둘, 농업은 우리 국민산업의 기반이 된다.
셋,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넷, 농업은 우리의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다섯, 농업은 마을과 농촌공간을 유지한다.
여섯,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일곱, 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어준다.
여덟, 농업은 값 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아홉,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 한다.
열,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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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가지 농업의 기능이 지켜지는 독일의 전형적인 '사람 사는 농촌' 풍경 - ⓒ 정기석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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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세상읽기]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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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세상읽기]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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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19.11.08.


아래로부터의 민생 요구는 분출하는데, 보수세력의 발목잡기 속 적폐청산은 갈수록 태산이다. 답답한 마음에 상상을 해본다. 내가 만일 촛불대통령이라면,

45년 전의 작고 가난한 나라 부탄처럼 더 이상 GDP(국민총생산)가 아닌 GNH(국민총행복)로 나라를 경영하겠다! 우리는 부탄보다 10배나 잘사니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오해 마시라, 나는 마을이장 너머의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첫째, 중립국 선언을 하고, 미국 트럼프가 요구하는 6조원 규모의 방위비를 거부한다. 약 3만명 미군을 집으로 보낸다. 이미 천문학적인 미군 주둔비와 국방비 등을 절약해 민생을 위한 농업, 교육, 복지, 평화통일 분야에 쓰겠다. 세계 중립국 동맹도 강화한다.

둘째, 대통령 욕도 모자라 ‘목’을 친다는 자, 거짓뉴스를 퍼뜨리는 세력, 촛불시민을 종북으로 몰아 계엄령을 공모한 자들을 척결한다. 촛불시민은 자유와 방종을 철저히 구분한다. 총선 땐 스웨덴처럼 정당에만 투표한다.


셋째,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인 식량주권을 위해 농민·농촌을 살리는 정책(예를 들면 농민기본소득)을 편다. 현재 23%에 불과한 곡물자급률 100% 목표를 세우고, 특히 유기농업, 자연농업, 대안농업을 장려한다. 밥상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넷째, 한쪽에서는 과로와 일중독, 다른 쪽에서는 실업과 고용불안이 공존하는 모순을 고치고자 일자리 나누기(하루 4시간)를 한다. 없앨 일과 필요한 일도 엄격히 구분한다. 소득감소에도 민초의 삶이 여유롭게 주거비, 양육비, 교육비, 의료비 등을 온 사회가 분담한다.

다섯째, 재벌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노동법, 환경법, 조세법 등을 철저히 적용한다. 위법, 탈법, 편법 사례 발견 시 ‘예외 없이’ 응당 조치를 하고 ‘3진 아웃제’를 실시, 경제와 사회의 건강성을 드높인다.

여섯째, 헌법 121조 ‘경자유전의 원칙’에 충실하게 농지 및 부동산 투기나 난개발, 자연훼손을 상시로 단속, 엄벌한다. 대신 공공의 땅을 싸게 임대해 주말농장·텃밭을 장려하고, 기후위기를 직시, 에너지 전환과 산·들·도로변 나무 심기를 지속한다.

일곱째, 학종과 정시 간 줄다리기게임에 빠진 대입을 획기적으로 바꾼다. 한국의 모든 대학을 K1~K100으로 재편, 공립화한다. 수능 70% 이상 학생은 합격하되, 소망·적성에 따라 5개 대학을 지원, 전자추첨으로 배정한다. 고졸 4년차와 대졸 초임을 같게 한다.

이 모두가 가능하려면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국정원, 공수처, 검경 등 이른바 공권력이 이 구상의 민주적 실현을 도와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촛불혁명 완성을 위해 위임된 것이니 민주주의의 수단일 뿐이다. ‘검찰개혁’ 역시 수사권이나 조직문화를 넘어 촛불혁명의 뜻대로 전 사회적 변화를 함께 이뤄야 마땅하다.

다른 하나는 대다수 민초의 뜻이 앞서 말한 ‘더불어 행복한 사회’로 모이는 것이다. 과연 우리 일반 시민들의 소망은 무엇인가? 만일 (50년 전 청년 전태일처럼) 나의 행복이 온 사회의 행복과 연결된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즉 사회 전체의 행복 속에서 비로소 내 행복도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의 행복’에 집착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야말로 우리가 없애려던 적폐 그 자체의 근본 토대 아닌가? 2016년 박근혜·최순실로 상징되는 국정농단 사태는 바로 그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의 행복’을 추구하던 이들이 재벌의 후원과 결합함으로써 발생한 일이었다. 돈과 권력이라는 이중의 중독! 천하무적 검찰과 다양한 스폰서의 결합, 권력중독에 빠진 국회의원과 자본의 유착 역시 같은 원리다. ‘조국 논란’ 당시 일부 건강한 분노의 바탕에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던 이가 ‘자기 가족 행복’을 위해 기득권을 십분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있었다.

이제 그 모든 기득권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그러려면 단지 대통령 교체나 선거 승리라는 권력 지향적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헌법에 나오듯 권력의 원천은 국민(민초) 자신이다. ‘피플 파워’가 중요하다. 파워는 단지 많이 모인다고 생기진 않는다. 이런 면에서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사람 수를 비교하는 건 그리 중요치 않다. 진정한 파워는 바로 그 사람들이 어떤 ‘가치’에 힘을 모으는지가 결정적이다. 자본의 가치가 아닌 인간의 가치, 파괴가 아닌 생명의 가치, 전쟁이 아닌 평화의 가치에 마음을 모으느냐, 이게 우리 미래를 좌우한다. 이런 가치 패러다임이 절박하다.

만일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어떤 가치로 나라를 경영할지, 각자 상상의 날개를 펴보자. 그리고 매주 토요일 동네 공원의 ‘자유발언대’에 올라 나름의 상상을 자유로이 말하는 운동을 펴자.

단, 폭언과 거짓, 비방은 절대 금지다!

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