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7

이런 텃밭도 있습니다... 돈도 벌고, 지역도 지키는 언니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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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 2화

이런 텃밭도 있습니다... 돈도 벌고, 지역도 지키는 언니들[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언니네텃밭 경북 상주 봉강공동체
21.02.19 20:05l최종 업데이트 21.02.22 16:47l
박진도(jd5285)



▲ 언니네텃밭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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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해서 행복하다."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행복하다."
"다른 사람과 함께해서 행복하다."

늘 행복한 모습의 박경숙(65)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서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언니네 텃밭을 통해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니 행복하다. 나이가 들었지만 무언가 생산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하다"라고 한다.

박경숙씨가 서울에서 상주시 공검면으로 귀농한 것은 5년 전이다. 논 600평, 밭 1200평, 닭 20마리를 키우는 소농이지만, 자신만의 월 소득을 100만 원 이상 올리고 있다. 채소를 키워 꾸러미에 넣고, 조청, 청국장 등을 생산해 지인에게 보내고, 언니네 텃밭 온라인 장터에서 팔기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생산과 직거래의 힘이다.

식량주권 지키는 언니네 텃밭


박경숙씨 행복의 중심에는 언니네 텃밭 '경북 상주 봉강공동체'가 있다. 봉강공동체는 지역재단이 개최하는 2013년 전국지역리더대회에서 지역리더 조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봉강공동체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 식량주권사업단 '언니네 텃밭'에 속해 있는 11개의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여성 농민이 역사와 생산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 위해, 농촌과 농업을 힘찬 생명력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1989년 창립한 전여농은 2009년에 토종 씨앗과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 언니네 텃밭을 통한 제철꾸러미 사업을 시작했다. 언니네 텃밭을 중심으로 전여농이 하고자 하는 일들은 매우 소중하다.

첫째, 식량주권을 실현하고자 한다.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민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언니네 텃밭은 여성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과, 토종씨앗 지키기, 전통음식 문화 보전 활동을 하고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을 확산하고자 한다. 소농의 상징인 텃밭 농사는 순환적인 생산방식, 생명과 생태를 존중하는 유기농업이다. 유기물이 축적되고, 지역의 자원이 순환하고, 자원을 보존하며 환경과 생태를 살릴 수 있는 농사가 텃밭 농사이다.

셋째, 공동체 지원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 CSA)을 실현한다. 언니네 텃밭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생태순환 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 생산공동체와 소비자들이 함께 짓는 농사이다. 소비자 회원은 생산자 공동체와 제철꾸러미로 연결되며, 생산지를 방문하고 일손 돕기, 생산자와의 만남 등 다양한 교류를 하며 농업의 미래를 열어 간다.

넷째, 지역 먹을거리 체계를 구축한다. 지역 먹을거리 체계는 곡물메이저를 비롯한 초국적 농식품 기업에 의해 장악된 세계 먹을거리 체계로부터 발생하는 먹을거리의 위험성, 환경파괴, 가족농의 해체, 지역공동체의 붕괴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먹을거리를 매개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봉강공동체의 다양한 활동


▲ 꾸러미 포장 작업을 하는 공동체 회원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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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결성된 봉강공동체는 전여농의 언니네 텃밭이 추구하는 가치를 활발하게 실천하는 조직이다. 현재 봉강공동체의 생산자 회원은 16명이며 제정이 대표, 황재순 사무장이 중심이 되어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다. 봉강공동체는 사무소와 작업장이 있는 상주시 외서면 봉강리의 여성 농민들이 중심이지만, 이웃 마을에도 회원이 있다.

봉강공동체가 하는 일은 다른 지역의 언니네 텃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은 제철꾸러미를 소비자 회원에게 보내는 일이다. 소비자 회원은 2009년에 31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300명으로 늘었다. 알음알음으로 소비자가 느는 데는 매스컴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소비자 회원은 매주 꾸러미를 받는 회원이 100명, 격주로 꾸러미를 받는 회원이 200명이다. 꾸러미는 기본적으로 8~9 품목(두부, 김치, 달걀, 간식 1가지, 채소 4~5가지)으로 구성된다. 꾸러미는 4인 가구 기준으로 꾸러미당 2만 6500원으로 매주 혹은 격주로 보내며, 1인 가구에는 2만 1500원의 꾸러미를 격주로 보낸다.

봉강공동체의 전체 매출은 지난해 2억 8천만 원으로 1인당 평균 1800만 원 수준인데, 연령에 따라 개인별 차이가 크다. 70~80대 회원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생산한 농산물을 대부분 꾸러미로 판매한다. 젊은 층은 다품종 소량생산품은 꾸러미로 내지만, 다양한 판매처를 활용한다. 꾸러미와 온라인 장터 외에 가톨릭농민회, 상주생각(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직매장), 목요여성 농민장터를 통해서도 판매한다. 이처럼 생산자 회원들은 다양한 직거래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취 가격에 농산물을 판매한다.

봉강공동체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는 토종 씨앗 지키기이다. 봉강공동체가 속해 있는 전여농은 2008년부터 토종 씨앗 지키기 네트워크 '씨드림'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현재 토종씨앗지키기 운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봉강공동체 회원들은 1인 세 가지 품종 이상의 토종 씨앗을 심고 가꾸고 보존한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5대 종자회사 가운데 네 곳이 외국기업에 팔려나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양고추의 주인은 다국적 종자회사인 몬산토이다. 무와 배추를 비롯한 토종 채소 종자의 50%, 양파·당근·토마토 종자는 80%가 인수 과정에서 해외로 넘어가게 되면서 다국적 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10대 다국적 종자 기업이 세계 종자시장의 75%를 과점하고 있다.

종자 종속은 우리의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요소의 하나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2012년에 종자산업 기반 구축을 위한 이른바 골든 시드 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를 시작했다. 여성 농민들이 정부보다 먼저 나서서 종자, 그것도 토종 종자의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으니 박수를 보낼 일이다.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언니네 텃밭' 봉강공동체는 소비자를 만나기 위해 2012년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상주시내에서 농민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장터를 거의 못 열었지만, 2019년에는 연중 28주나 개설했고 350여 명의 소비자가 농민장터를 찾아 하루 평균 12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이와 같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 토대가 되어 2017년 7월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이 창립됐다. 104명의 생산자 조합원으로 시작한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2018년 9월 직거래 매장인 '상주생각' 1호점을 개장했다. 현재 271명의 조합원이 '상주생각'을 통해 연간 1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제철 꾸러미와 토종 씨앗 지키기, 목요농민장터 이외에도 봉강공동체는 정신대 여성 쉼터, 비전향 여성 장기수,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연대사업도 하고 있다. 또한 창립 이래 12년째 한 주에 4개의 기부 꾸러미를 보내고 있는데, 상주 지역의 어려운 가정에도 매주 2개씩 꼬박꼬박 보낸다.

봉강공동체 회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4년 중국 상해로 같이 여행 간 것인데, 해외여행을 처음 가신 회원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여름 보너스로 회원들에게 30만 원씩 지급해 모두 기뻐했다고.

농업, 농촌, 농민과 사랑에 빠진 대학생


▲ 인터뷰 하는 김정열씨(오른쪽)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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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공동체의 결성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정열(55)씨의 역할이 컸다. 김정열씨는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1학년 시절에 충북 괴산군 감물면으로 농활을 간 것이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북 상주 외서면으로 귀농했다. 상주농민회(1990년 4월 23일 창립)가 농민회 간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같은 해 8월에 상주농민회의 부인들을 중심으로 상주한마음회(후에 상주여성농민회로 개칭)가 창립되어 초대 총무를 맡아 8년간 일했다. 이듬해 네 살 위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상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인 남주성씨는 고향이 경북 예천이다.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상주농민회에서 홍보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남주성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선하고 성실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하지만 김정열씨의 부모님은 이 결혼을 몹시 반대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열씨의 아버지는 강원도 삼척탄좌의 탄광부로 일하고 있었다. 3남 1녀의 장녀인 그녀가 대학을 나와 집안의 기둥이 되기를 바랐는데, 귀농한 것도 모자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내와 결혼을 한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부모님의 반대로 초대 상주농민회장의 부인인 문달림(83세, 봉강공동체 회원)씨가 신방 이불부터 신혼살림 일체를 장만해 주었다. 부부는 외서면에 중·고등학교가 없어 10년간 2남 1녀를 통학시키느라 고생했지만, 큰딸을 여고 교사로 잘 키워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부가 고향도 아닌 곳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보수성이 강한 경북 농촌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빨갱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그녀와 남편은 묵묵히 농사일과 농민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동네 사람으로 살아갔다. 20년 세월이 흘러 그녀는 이웃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14명의 생산자 회원으로 2009년 5월 언니네 텃밭(당시는 우리텃밭) 봉강공동체를 창립하고, 7월에 31명의 소비자 회원에게 꾸러미를 배송했다.


▲ 언니네텃밭 회원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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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씨는 2009~2014년 봉강공동체 사무장으로서 초기의 힘든 실무를 담당하는 한편, 2009~2011년에는 전여농 언니네 텃밭 경북 단장을, 2011~2014년에는 언니네 텃밭 전국단장 겸 전여농 식량주권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2017년부터 현재까지 봉강공동체 감사를 맡고 있다.

김정열씨는 이처럼 봉강공동체를 시작으로 전여농의 언니네 텃밭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심 역할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2015~2016년에는 전여농 사무총장으로서 여성농민운동을 이끌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전여농 국제연대위원으로서 국제농민운동조직인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 동남·동아시아 대표를 역임하면서 글로벌 여성 농민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오래된 미래, 봉강공동체


▲ 봉강공동체를 방문한 외국 여성 공무원들과 함께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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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1992년)는 전통문화와 생태적 가치를 지키며 내면의 풍요와 평화를 누리던 티베트의 라다크가 개발과 세계화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비통한 심정으로 그리고 있다. 헬레나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서구 산업문화가 자연과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권력과 자원을 갈수록 소수의 손아귀에 집중시키고 있음을 고발하고, "우리가 자연의 필요와 한계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다면 자연이 우리를 틀림없이 파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녀의 경고는 코로나19로 현실화됐다.

한편 헬레나는 세계화에 대항해 지역적 가치를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운동에 주목했다. 특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장거리에서 수송된 정체를 알 수 없는 식품보다는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하고 맛있고 더 영양이 풍부한 유기농산물을 사 먹자는 '로컬 푸드 운동'에 주목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농민 시장이 열리고, 생산자들은 매주 신선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농산물 상자'로 배달한다.

헬레나는 "인간적인 규모의 구조들이 땅과의 긴밀한 유대를 키우고, 활발하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키우며, 다른 한편으로 튼튼하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 건강한 가족 그리고 남성과 여성 간의 더 큰 균형을 유지하던" 라다크의 삶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봉강공동체에서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본다. 1970년대까지 농민들은 대략 1.0~1.5헥타르(ha)의 농지에서 가족끼리 가축을 기르고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해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이후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고 국제경쟁력이 농정의 주요 목표가 되면서 농업경영의 규모화·기계화·시설화·단작화(단일한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가 급속히 진전됐고, 농촌의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 균형은 급속히 붕괴했다. 생산주의 농정은 농촌의 생태환경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전체 농민의 1%도 되지 않는 경지 규모 10헥타르(ha) 이상의 농민만이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황당한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의 재생을 위해서는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농업과 농촌이 지닌 본래의 다원적 가치(경제적·사회문화적·생태적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 봉강공동체는 생태적 농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돌리고 자연계의 다양성을 살려내고자 한다. 세계화에 맞서 지역은 자기 필요(식량과 에너지 등)를 기본적으로 자립하는 지역화를 위해 노력한다. 마을에서는 화목보일러(나무를 연료로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키는 보일러)를 널리 사용한다. 공동체적 삶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선한 관계를 실현하고 동시에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추구한다.

봉강공동체의 언니들은 텃밭 농사를 통해 자기만의 통장을 갖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가정 내 지위가 향상되고 남편과 평등한 관계를 실현한다. 사회적 활동과 교육 등으로 자기 삶의 주체성을 높이고,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발언권을 확보해 간다. 화요일마다 모여 꾸러미 공동작업을 하고 민주적 회의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한다. 공동작업에는 회원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는데, 공동체 운영을 위해 꾸러미 판매액이 10만 원 미만인 회원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 10~50만 원은 판매액의 5%, 50만 원 이상의 꾸러미는 10%의 수수료를 낸다.

지속가능한 봉강공동체를 위하여


▲ 봉강공동체 창립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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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공동체의 활동을 통해서 농촌에서의 자립과 공동체 활성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봉강공동체를 위협하는 최대의 난제는 언니들의 나이가 점차 많아지는데 새로운 회원의 유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봉강공동체 언니네 텃밭 회원들의 연령 구성을 보면 80대 2명, 70대 3명, 60대 5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50대는 4명, 40대는 1명에 지나지 않는다. 창립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 언니네 텃밭은 할머니네 텃밭이 되었다. 80대와 70대 회원들은 최소한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곧 은퇴할 것이다.

봉강공동체의 존속을 위해서는 젊은 층의 귀농이 꼭 필요하다. 김정열씨는 최저임금만 보장된다면 봉강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농촌에서 자기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젊은이가 주변에 적지 않다고 한다. 봉강공동체는 젊은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고, 땅을 마련하기 위해 기금도 적립하고 있다.


▲ 청년들이 꾸러미 작업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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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한 가지 방법은 가공품을 다양화하는 것인데, 농산물 가공 허가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큰 걸림돌이다. 농민들의 숙원인 농가 가공을 전면적으로 자유화해야 한다. 텃밭에서 다품종 소량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을 다양화하고 소비자와 직거래한다면 봉강마을과 같이 농토가 적은 산골 마을도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정부가 준비된 농촌 공동체에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면 어떨까. 귀농할 젊은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연수, 지원을 전담할 기구도 필요하지 않을까. 봉강공동체가 마을을 넘어 면으로, 상주시로, 네트워크를 확장해 가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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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북 상주, #봉강 공동체

 

자립하려는 도시 청년들, 이 마을로 오세요 - 오마이뉴스

자립하려는 도시 청년들, 이 마을로 오세요 - 오마이뉴스
사회

대전충청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 1화

자립하려는 도시 청년들, 이 마을로 오세요[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제천시 덕산면 공동체 사람들
21.01.22 17:55l최종 업데이트 21.04.13 11:06l
박진도(jd5285)

▲ 덕산초등학교 농사체험
ⓒ 청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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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묻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지역에서 어떻게 지역을 유지할 것인가.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는데 노인을 누가 돌볼 것인가.
지방 세수는 감소하는데 복지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점점 줄어가는 농지, 농업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까.
산업기반이 약한 농촌지역에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이는 인구 2천여 명의 산골동네, 제천시 덕산면에서 지속가능한 농촌마을공동체를 꿈꾸며 만 16년째 행복한 생활을 하는 한석주 청년마을(농업회사법인) 대표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는 2018년에 재단법인 지역재단(http://www.krdf.or.kr/)의 '지역리더상'을 수상하였다. 오래전부터 그에게 리더 상을 주고 싶었는데 사양하였다. 별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어색하고 쑥스럽다고 하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 사전 서면 인터뷰에서 이른바 지역소멸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인구가 조금씩 줄고 있는데 과연 덕산면이 지속가능하겠는가".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지속가능하다. 그 근거가 궁금하다.

지속가능한 농촌의 조건


한석주 대표가 입시 위주의 교육에 한계를 느끼고 동덕여중 교사를 그만두고 서울 마포의 성미산학교, 경기도 성남의 이우학교 등 대안학교 교사를 거쳐, 덕산면의 간디학교 교사로 내려온 것은 2005년이다. 한석주 대표는 2007년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학교에서 마을로 나왔다".

사단법인 간디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공부방을 운영하고 이주여성을 위한 일자리 등을 제공하였다. 간디공동체는 360여 명의 후원을 받으며, 여성재단과 정부의 일자리 사업을 활용하여 한때 40명의 직원이 일하였다. 그러나 외부 자금에 의존한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사람과 자원의 지역 내 자립과 순환이 필요하였다.

2011년 한석주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의 문제는 도시처럼 세분해 전문분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육은 가정과 맞닿아 있고, 가정은 소득이 중요하며 가계소득은 지역경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역경제는 문화와 공동체와 관련이 깊었으며, 이것은 다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한 고리를 빼고서는 지역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육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분야를 함께 고민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사)농촌공동체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농촌공동체연구소는 그의 활동을 지원하는 200여 명의 지인이 후원하였다. 농촌공동체연구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을 설립하였다. 어떤 사회적 경제조직은 구상 단계에서 끝나고 말았고, 어떤 조직은 이런저런 이유로 없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회적 경제조직이 덕산면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다. 덕산면 공동체의 활동은 교육·문화·복지·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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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면 공동체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농촌의 필요조건
ⓒ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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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주 대표를 비롯해 덕산면 공동체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농촌지역의 필요조건으로 그림처럼 ① 주민의 삶의 질 향상 ② 사람의 선순환 ③ 자원의 선순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첫째 자긍심의 회복이다. 농촌에서의 삶은 도시에 비하면 소득이 적고 서비스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농촌의 삶이 도시와 비교해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많이 벌어서 많이 소비하기 위해 '죽기 살기식 경쟁'을 해야 하는 도시적 삶이야말로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물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다. 좋은 자연환경에서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는 농촌 마을 공동체가 복원된다면, 훨씬 행복할 수 있다. 농촌적 삶의 양식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 농촌의 주인이 될 것이다. 덕산면 공동체가 교육과 문화를 중시하는 이유이다.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뿐 아니라, 덕산초·중학교에서도 두레농장 등 농교육을 실시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평생학습을 위한 마을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밴드·디자인·영화·만화·목공·요리 등 25개의 각종 동아리는 농촌살이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둘째, 주민의 자치역량이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경제(일자리)뿐 아니라, 교육·의료·복지·문화·주거·생활환경·교통·쇼핑·식당·미용 등 개인서비스, 위락시설 등 생활서비스가 갖추어져야 한다. 농촌은 이러한 생활서비스 면에서 도시에 비해 현저하게 낙후되어 있다. 그 이유는 생활서비스가 공급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의 인구가 필요한데, 지금 농촌인구가 1970년대에 비해 1/3 혹은 1/4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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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면 공동체는 누리어울림 센터를 통해 다문화 가정을 비롯해 육아 문제를 해결하고,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
ⓒ 누리어울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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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동네인 덕산면 인구는 1970년 1만 2538명에서 2020년 2194명으로 1/6로 쪼그라들었다. 상업적 베이스에서 시장을 통한 생활서비스 공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는 최소한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농어촌서비스기준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 실적은 매우 저조하다. 국가에 의한 서비스 제공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덕산면 공동체는 이러한 문제를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을 통해서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다문화 가정을 비롯해 육아 문제를 해결하고,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 동네 목욕탕과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마을버스 운영을 제천시와 협의 중이다.

셋째, 지역 내 순환을 중시한다. 농촌 생활은 원래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농촌은 시장경제에 완전히 포섭되어 거의 모든 필요를 외부에 의존한다. 심지어 내가 생산한 농산물이 서울 가락동 시장에 올라갔다가 다시 지역으로 되돌아온다. 사람과 자원, 돈이 농촌에서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니 농촌이 유지될 수 없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은 우선 지역 내 소비를 통해 서로 나눈다. 먹거리 나눔협동조합 '파릇'은 귀촌자 30명이 생산한 유기농산물(가공 포함)을 무인 냉장고에 넣어두면 동네 사람들이 구입한다. 힐링푸드영농조합을 설립하여 지역농산물의 가공과 6차산업을 추구한다. '누리 마을 빵 카페'는 지역의 간디 졸업생을 고용하고, 지역 유기농산물을 사용한다. 전통시장협동조합을 통해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한다. 마을목공소를 이용하여 목조건물을 짓는다.

아래 그림은 덕산면 공동체 사람들의 비전과 지금까지의 활동을 하나의 그림으로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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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농촌정착 플랫폼
ⓒ 한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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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농촌정착에 온 마을이 힘쓴다

덕산면에서 지속가능한 농촌마을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가 가능한 이유는 다양한 사람·집단·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덕산면 공동체의 중심에는 간디학교를 중심으로 귀농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흔히 말하듯 도시생활에서의 패배를 뒤로 하고 귀농한 것이 아니다. 덕산에 귀농귀촌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직을 갖고 있다(자영업자·교사·교수·상담사·사회복지사·의사·간호사 등). 이들은 귀농을 통해 업을 농사로 하려는 야심찬 계획으로 덕산에 터를 잡았다.

도시에서의 화려하지만 경쟁에 찌든 삶이 아니라 농촌에서 올바른 먹거리·환경·교육·문화를 만들고,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을 꿈꾸며 간디학교가 있는 덕산으로 귀농귀촌을 선택하여 희망을 만드는, 자긍심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선택한 간디학교와 덕산면 공동체에 터를 잡은 많은 분들은 정말 훌륭한 생각, 아름다운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가까이 사는 이웃들을 배려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제천 간디학교는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에서 2002년 중학교 과정을 제천시 덕산면으로 분리 이전하면서 시작되었다. '간디청소년학교'로 시작하여 2005년 '제천간디학교'로 개명하고, 2006년 중고등 6년제 대안학교를 시작했다.

간디학교는 2004년 비영리법인단체 '간디공동체'를 설립하고(2007년 사단법인 간디공동체), 2007년에는 아동교육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누리꿈센터'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다문화 가정지원, 공동육아, 방과 후 학교 운영을 위한 '누리어울림센터'를 개관하였다.

누리어울림센터는 2013년 '간디교육문화센터'로, 2016년에는 '주민모임 마실'로 발전하였다. '마실'은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며 시골로 귀농·귀촌한 사람, 이주여성들과 지역주민들이 어울려 사는 주민모임이다. 이 곳에서 주민들은 동아리 모임을 조직하여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린이집 돌봄 서비스나 작은 도서관도 운영하며 마을 어린이들의 방과 후 공부방을 운영하여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기른다.

간디학교에는 현재 중1에서 고3까지 113명의 학생이 있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30명이다. 여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이주해온 가정을 포함해 약 40명이 덕산면 공동체 활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석주 대표는 2019년 농업회사법인 '청년마을'을 설립하여 청년 농촌정착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였다. 지금까지의 덕산면 공동체의 성과를 토대로 덕산면 나아가서 우리나라 농촌의 미래를 담당할 청년들의 농촌정착을 돕기 위한 것이다.

청년마을은 2019년부터 농식품부의 사회적 농업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사회적 농업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기반하여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치유, 사회적 재활, 교육, 고용 등)를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농업으로 정의한다. 청년마을은 사회적 약자인 청년(특히 도시의 청년)에게 대안적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이 농촌에 정착하여 농촌 재생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청년마을은 청년농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청년이 농촌에서 농사만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는 새로운 농촌 주민으로 정착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 청년들이 마을배움터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장인을 만나 기술을 연마하여 앞으로 자립할 기반을 마련해준다.

마을 배움터에서는 청년 2인 이상이 요청하면 그에 맞게 연간 24강좌(1년 4학기)를 개설한다. 공유지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여 현재 3천 평의 농지를 확보하여 사회적 농업의 실천 농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청년들에게는 자체 사업 수입, 정부의 '청년 일자리 사업'이나 '사회적 기업 일자리' 등을 활용하여 생활비를 지원하고, 5년 후에는 덕산면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과 연계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한다.

청년마을에는 현재 6명의 청년이 일하고 있는데, 4명은 정부 사업을 연계하여, 2명은 자체 수입으로 고용하고 있다. 청년마을이 과연 청년들의 농촌정착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지역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농촌적 삶에 대한 가치관이 불분명한 청년이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는 정부의 청년 창업농 정책보다는 훨씬 농촌정착 및 자립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덕산면은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제천간디학교를 설립하고 한석주 대표와 함께 농촌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양희창 선생은 "덕산면에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적어도 40명은 되는데, 이런 곳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한국 농촌은 희망이 없다"라며 자신감을 피력한다.

한석주 대표에게 정부가 무엇을 지원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전환의 힘은 우리의 삶에서 나오지 위로부터 오는 정책으로 사회가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실제적인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나 지자체는 표가 적다고 농촌에는 관심이 없다.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과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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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농부
ⓒ 청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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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없을까. 청년마을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청년창업농 정책으로 지원하면 어떨까. 농지 트러스트 등을 통해 사회적 농업을 실천할 수 있는 공유지를 더 확보할 수 있으면 어떨까.

덕산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내발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농촌에는 주민의 삶 질 향상과 지역개발이란 이름으로 많은 재원이 투자된다. 그렇지만 성공한 경우가 별로 없다. 농촌정책은 첫째, 현재 그곳에 사는 사람의 행복에 철저해야 한다. 둘째, 미래의 농촌을 짊어질 사람을 만들어가야 한다.

학교가 농촌을 살린다  

이번 덕산면 조사를 하면서 농촌학교를 통한 농촌 살리기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정부는 농촌학교의 학생들이 줄면 폐교를 한다. 덕산면에도 6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덕산초등학교 하나만 남았다. 덕산초등학교에는 60명의 초등학생이 있고, 덕산중학교에는 35명의 학생이 있다.

이에 반해 간디학교에는 113명의 중고등학생이 있다. 농촌학교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말이다. 간디학교는 덕산면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덕산면 공식 홈페이지에 간디학교는 아예 교육기관으로 소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비인가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비용을 학부모들이 부담한다. 기숙사비를 포함해서 월 90만 원이다. 적지 않은 부담이다. 교사들도 낮은 급여로 어려운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인가를 받으면 교육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교육부의 간섭을 받으면 지금의 교육과정을 유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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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간디학교
ⓒ 간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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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왜 하나의 교육과정만을 강요하는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부여하면 안 되는가. 고등학교까지는 거의 무상 교육이다. 그런데 정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교육의 의무를 방기하는가. 간디학교와 같은 대안학교를 인정하고 의무교육을 한다면, 농촌교육 문제는 상당히 해결되지 않을까.

농촌은 도시와는 다른 교육을 할 필요가 있고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농촌의 특성과 장점을 살린 다양한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고, 그것을 위한 교사를 양성한다면 농촌교육 문제를 상당히 해결하고 농촌 살리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덕산면에는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 복원과 발전을 위해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의 비전과 헌신적 실천이야말로 농촌재생은 물론 우리 사회의 전환에 소중한 씨앗이 될 것임을 믿는다. 이들의 실천이 지역의 재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성취해내는 데 함께 힘을 모아 나가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이런 농촌이라면 살고 싶겠죠? 어느 시골마을의 혁명 - 오마이뉴스

이런 농촌이라면 살고 싶겠죠? 어느 시골마을의 혁명 - 오마이뉴스:

지방이 위기다. 지방이 소멸된다고 한다. 역대 정부가 소리 높이 외친 '국가균형발전', '지역균형발전'은 레토릭에 불과했나. 혹세무민이었나. 아니면 국가정책이 없었으면 지방은 이미 폭망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하는가. 각 지자체가 인구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인구는 계속 줄고 있는데 모든 기초지자체의 장기발전계획은 인구 증가를 목표로 수립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기초지자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초지자체에서 언감생심 불가능한 목표다. 특히 농어촌 시군 지자체는 존립이 위태롭다.

얼마 전 전남 모 군청의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이 참여하는 '지방소멸대응 학습모임'에 초청받아 강연을 하였다. 나는 "그곳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한, 지방은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 지방이 소멸되면 대한민국이 소멸된다. 지방소멸이 아니라 행정의 통합으로 지자체가 소멸될 뿐이다"고 하였다.

'일촌일품운동'(1979년 시작)으로 '지방시대'를 연 히라마쓰 모리히코(平松守彦) 전 오이타현 지사(9선 후 은퇴)는 "인구의 과소화는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마음의 과소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오이타현의 절대 인구가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이타현에 살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각 지자체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각종 개발사업과 귀촌・귀농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가 줄면 예산과 행정기구가 축소되어 공무원들이 제일 큰 피해를 입는다. 중요한 것은 인구의 절대 수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싶은 사람의 수이다. 어떤 사람들이 농촌지역에 살고 싶어 하는가. 누가 미래 농촌지역의 주인이 될 것인가. 농촌지역에서 자신의 주체적・농촌적 삶을 영위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아야 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농촌에 들어와야 한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자치


참여정부 이후 이른바 상향식 농촌개발이 추진되어 왔다. '중앙정부·행정 주도'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욕구와 참여에 바탕을 둔 '지자체·주민 주도'의 지역개발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무늬만 '상향식'일 뿐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개발은 아니었다.

중앙정부가 농촌개발사업 메뉴를 제시하면 지자체는 컨설팅업체를 선정하여 형식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멋지게 예비계획을 수립한다. 중앙정부의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 지자체는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사업을 관리·감독한다. 보조금 확보를 위한 지방정부, 컨설팅업체, 지역유지 연합이 주도하고 주민들의 '민의'는 동원된다. 주민은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업들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농촌주민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농촌주민이 필요한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농촌에는 그런 주체 역량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늬만 상향식 개발을 계속할 수는 없다. 역량은 경험의 과정을 통해 학습되어지는 것(learning by doing)이다. 이미 주민 스스로 문제 해결 역량이 있음을 보이는 농촌지역이 적지 않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주민자치회(이하 주민자치회)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주도하여 마을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민자치회는 2020년 10월 주민총회를 통해 '죽곡면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자치계획의 수립 과정이 흥미롭다. 우선 2019년 12월 자치계획단을 구성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2020년 1월부터 지역조사에 착수하였다. 죽곡면 28개 마을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주민의견조사를 하여 죽곡면 마을 의제를 발굴하고, '주민자치'(5개 사업), '관광소득사업'(3개 사업), '환경보전'(2개 사업), '지역활성화'(5개 사업), '마을복지'(6개 사업) 등 5개 분야 21개 사업을 2021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5단계로 나누어 실시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21개 의제 가운데 주민투표 결과를 반영하여 2021년에는 죽곡 토란도란 마을축제(죽곡면은 토란의 주산지), 찾아가는 주민자치 프로그램, 죽곡마을 119, 죽곡문화 출간 등 4개 사업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

자치계획 수립과 시행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우선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전 주민이 주민자치회에 참여하고 있으나, 65세 이상이 주민의 43%를 차지한다. 정부의 보조금 사업에 길들여진 주민들은 관심이 없거나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뭘 줄 거냐고 물어본다. 의견조사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주민자치회의 생각이나 기본계획을 설명하고 이해를 넓혀 가며 참여를 유도하였다.

또한 기존의 각종 주민단체(청년회, 이장단 회의, 부녀회, 노인회, 의용소방대 등)의 이해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진정성 있게 일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이해와 참여가 높아지고, 이들 단체와의 의견 불일치도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자치계획 수립을 주도한 주민자치회 박진숙 자치분권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주민자치회는 주민 스스로가 자치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자치위원과 주민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고 변화시키는 것이 역할이다. 자치계획에 21개 의제를 다 넣을 필요는 없었고 현안 4-5개 사업만 주민투표를 통해서 결정하면 되었는데, 주민들에게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죽곡면 주민자치회가 하고 싶은 것

박 위원장은 "마을 교육력을 높이고 역량을 키워 관계 중심의 마을 생태계를 조성하고 싶다"고 한다. 조금 풀어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삶과 교육이 통할 수 있는 마을교육을, 어른들에게는 주민자치회와 연계하여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동아리 형태의 서로 배움 자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노래샘, 요리샘, 농사샘, 생태놀이샘, 예술인생샘, 국선도샘, 목공샘, 바느질샘, 영어샘, 수학샘 등 지역의 어른들이 마을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며 배움과 돌봄을 이어가는 죽곡함께마을학교는 온 마을이 서로 돌보며 성장하여 마을 교육자치를 실현하는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추구한다."

주민자치회는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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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빵요일" 행사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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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전체 주민이 주민자치회원으로 가입하고, 마을 어른뿐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주체가 되어 어른들과 함께 기획하고 참여한다. 토란작목반 농부가 죽곡초 어린이와 함께 토란농사를 지어 토란도란 마을축제에 기증하고, 찾아가는 주민자치프로그램도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하고, '오늘은 빵 요일'에는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빵을 만들고, '달려라 손 큰 부엌'에서는 동네의 손 맛 좋은 할매가 선생님이 되어 젊은 아짐과 아이들이 맛난 음식을 배우고 나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지혜를 나눔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고, 아이들은 지역과 마을살이를 배워간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2018년), <토란 밭에서 뭐가 자라게>(2020년)를 출간하고, <노래가 된 시 음반>(2019년을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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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동네 손맛 좋은 할매가 마을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젊은 아짐들과 아이들이 함께 배우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시간.
ⓒ 죽곡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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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의 생활상의 필요를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한다. 죽곡면은 28개 마을로 이뤄졌는데, 면의 면적이 넓고 고령인구가 절대 다수이고, 교통이 불편하여 면 소재지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면 소재지에서만 진행되는 자치프로그램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을을 찾아가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죽곡마을 119'는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독거노인을 위해, 28개 마을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매주 2개 권역을 순회하며, 생활상의 불편(전등 교체, TV 등 잔고장 해결, 차량이동 봉사, 시장 봐드리기 등)을 해소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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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곡마을 119"는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독거노인을 위해, 28개 마을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매주 2개 권역을 순회하며, 생활상의 불편(전등 교체, TV 등 잔 고장 해결, 차량이동 봉사, 시장봐드리기 등)을 해소해 주고 있다.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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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지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스스로 해결한다. 찾아가는 주민자치프로그램의 모든 강사는 지역민이다. 마을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의 모든 기관이 참여하여 죽곡마을교육협의회를 결성하였고, 최근에는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수지침 강사, 독립영화 감독, 전문 MC, 고등학교 교사, 도자기 공예가, 목공, 농민회장, 예술기획가, 어린이집 원장, 심리상담사, 미용실 원장, 지역아동센터 교사, 퇴직 음악 교사, 도서관 관장 등이다. 지역의 교육, 문화, 예술,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18명이 참여하여 주민자치회의 운영과 마을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에 조성된 100세대의 강빛 마을의 은퇴자들이 전문 역량을 보태고 있다.

넷째,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를 위해 지역의 생태환경보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 위원장의 말이다.

"지역의 생태와 환경, 먹거리, 다양한 문화체험과 교육문화 활동을 통해 농촌자원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알리고, 지역민의 자존감을 높이며,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교사, 장학사, 곡성군 미래교육재단이 함께해 '곡성학교생태텃밭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12강의 교육과정에 20명을 예상하였으나, 68명이 지원하여 현재 60명(교장, 교사, 어린이집 교사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교사양성과정과 함께 죽곡초와 한울고(공립대안고)에 학교생태텃밭정원을 조성하여 마을교사와 학교가 협력하여 시범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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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곡초 생태 텃밭 만들기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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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2천 명의 마을에는 반드시 자치역량이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이나 구상이 인구 2천 명이 안 되는 작은 동네가 감당하기 벅찰 듯해서 "그럴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박 위원장의 답이다.

"농촌에 일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일 할 사람'이 일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주민들에게 권한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기회를 주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역량을 키워가도록 해야 한다. 보조사업의 한계를 너무 많이 느끼고 있어서 자치력을 향상해 결국에는 교육자치가 되어야 하고 마을자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마을마다 다 알고 있다. 마을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활동가들이 있고, 그분들을 추동해내고 교육을 통해 조금 더 성장시키면 된다.

다만 믿음과 신뢰가 부족해서 그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다. 농산어촌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보면 곡성군뿐 아니라 전국에 그러한 활동가들이 있다. 특히 농촌지역은 더 심각하게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같이 인터뷰에 참여한 귀농 3년 차인 주민자치회 임춘성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판이 안 깔아져서 그렇지, 어느 농촌지역이나 반드시 일 할 사람이 있다. 내가 곡성군에서 하는 10회 주민자치활동가 양성과정을 들었는데, 다른 면에서 오신 분들을 보고 놀랐다. 곡성군에 이런 분들이 있구나. 이런 분들과 연대하면 다른 면에도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인구 1천에서 2천 정도의 동네에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5명만 있어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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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맨 왼쪽)와 인터뷰 중인 곡성군 죽곡면 주민자치회 박진숙 위원장(가운데)과 임춘성 사무국장(오른쪽)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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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에 거는 기대가 크다. 다만, 아직 그 성과를 말하기는 이르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 주민자치회는 곡성군 주민참여예산, 전남 교육청의 마을학교 예산, 전남도의 마을공동체 예산 등을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총액이 1억 150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매년 공모를 해서 예산을 따야 하는 사업이 많아 괴롭다. 이게 싫어서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자존심도 상한다.

더욱이 정부의 마을사업은 사업비를 주지만 인건비는 주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월급 받고 일하면서 마을활동가들에게는 알아서 열정으로 해결하라고 하라는 건 무슨 심보인가. 곡성군에 주민자치회가 죽곡면에 하나밖에 없고, 군의 관심이 부족한 것도 걸림돌이다.

"더 많은 주민자치회가 설립된다면 함께 노력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이나 자치단체장의 인식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주민자치회 설립이 법제화되면 좋겠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예산과 권한을 준다면 더 많은 일을 잘 할 수 있다."(박 위원장)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경험학습의 산물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주민자치를 위한 주민들의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다.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한 마을교육공동체 만들기는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작은 도서관 운동이다. 2004년 죽곡면 농민회 문예부는 지역의 문화 활동을 위해 4평짜리 죽곡농민도서관을 개설하였다. 당시 죽곡면 농민회는 전성기였다. 서울에 집회를 가면 버스 7-8대가 갈 정도였다. 그 힘으로 시작한 것이다. 2007년 작은도서관 사업에 공모하여 1억 3천만 원으로 지금의 도서관을 건립하였다. 지역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고 죽곡농민열린도서관으로 개명하였다.

초기에는 인문학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외지에서 청강생이 올 만큼 제법 유명세를 탔지만, 귀촌자 중심의 활동으로 마을 주민의 참여가 저조하였다. 2014년 도서관 운영위원을 농민회원 중심에서 지역단체장(면장, 노인회, 새마을지도자회, 청년회, 부녀회, 농민회)과 학교운영위원 및 학부모회 대표 등으로 개편하고, 학부모 독서회를 구성하고, 문화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마을 주민의 도서관으로 탈바꿈하였다.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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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는 도서관 활동을 중심으로 2017년부터 죽곡함께마을학교를 통해 마을의 교육생태계를 복원하는 공동체교육운동이다. 박 위원장의 말이다.

"학교의 힘만으로는 삶에 기반한 교육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마을의 힘을 빌려 교육을 혁신하려는 사람들과 교육의 힘으로 쇠락해가는 마을공동체를 키워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죽곡마을교육공동체를 꾸려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학생이고 선생이 되어, 주민이 원하고 마을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함께 공부하고 실천한다.

3단계는 2020년부터 주민자치회가 결성되어 주민자치와 마을교육이 결합하여 죽곡면 지역활성화 10년 로드맵을 시작한 것이다.

마을 사업이 잘 되는 곳에는 어디에나 훌륭한 리더가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박진숙 위원장이 그런 사람이다. 박 위원장은 전북 진안 출생으로 전주에서 여고와 대학을 나왔다. 광주에서 여성센터와 대안교육공동체에서 일하다가, 주체적인 배움과 삶을 추구하기 위해 남편과 세 자녀와 함께 2012년 죽곡면으로 귀농하였다.

귀농 후 50여 종의 토종생태농사를 하면서 2014년부터 죽곡열린농민도서관장을 맡아 마을교육공동체를 꾸리면서 죽곡면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을 거쳐 주민자치분과위원장과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곡성군 교육참여위원회 소위원장, 곡성군마을공동체네트워크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무원 출신의 남편은 농사를 지으며 마을 이장을 하고 있다.

박 위원장 외에도 죽곡면 주민자치회에는 손경수 회장을 비롯해 두 명의 부회장과 5명의 분과위원장 그리고 간사와 사무국장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18명으로 출범한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마을을 함께 이끌고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의 활동에도 죽곡면의 미래가 반드시 밝다고 할 수는 없다. 죽곡면 인구는 2005년 2249명에서 2021년 4월에 1924명으로 줄었다. 0세에서 8세의 어린이는 124명에 지나지 않는다. 죽곡면 유일의 초등학교인 죽곡초의 학생 수도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시작할 때 60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30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올해 귀농 등으로 초등학교 입학생이 11명이 늘어 전교생을 30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죽곡면의 사람들이 재미나게 살아가면 미래가 열릴 것이다."(임 국장)

주민자치와 농어촌주민 수당

죽곡면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하면 좋을 것인가.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각종 농촌개발사업이 죽곡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임 국장)
"죽곡면에는 다른 지역보다는 돈이 덜 들어왔고, 중심지 활성화 사업 같은 큰돈이 아직 안 들어와서 다행이다."(박 위원장)
"불행 중 다행이다."(임 국장)
"아무 준비 없이 돈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주민자치회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기획을 해서 각종 사업이 같이 묶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박 위원장)

지역 의정보고에 의하면 현재 죽곡면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조사업들의 예산이 대황강변 관광개발사업비 180억 원을 비롯해 400억 원에 달한다. 적지 않은 돈이다. 죽곡면 인구(1924명) 일인당 2000만 원이 넘고, 월 30만 원씩 모든 주민에게 직접 수당으로 나누어준다 해도, 6년 가까이 줄 수 있는 돈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어왔다는 이웃 석곡면의 실태는 어떨까.

"석곡면에는 많은 개발사업이 들어와 땅값이 오르고, 사업을 주도한 사람들은 땅을 팔아서 도시에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벌었다. 땅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여 사람들이 땅과 집을 내놓지 않아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다."(임 국장)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되어 개발사업을 추진하면 죽곡면의 미래가 열릴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지 않을까. 주민자치회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그 답은 교수님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도올 김용옥 선생과 대담하는 것을 들었는데, 기본소득 개념으로 농촌주민들에게 직접 현금으로 수당을 지불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임 국장)
"농촌에 농촌주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은 농촌지역이 너무 피폐해 개발에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는 직접 지원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박 위원장)

내가 구상한 농어촌주민(면지역)을 대상으로 한 '국토환경지역지킴이 수당'(농촌을 지키고 있는 만큼 농촌에 사는 사람에게 주는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설명했더니 100% 찬성이란다.



▲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 모인 아이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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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개발'은 틀린 말이다. 농촌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의 책무는 그곳에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외부 자본과 외부 사람들이 들어가 농촌을 파괴하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농촌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농촌에 투입하지만, 농촌주민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보조금 사업(도로 등 SOC 포함)은 지역 유지들과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에게 떡고물을 남기고, 도시인이 운영하는 각종 업체를 통해 돈이 도시로 되돌아간다. 지역에 남는 것은 주민 갈등과 운영비 먹는 하마인 각종 시설과 텅 빈 도로뿐이다.

농촌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될 때가 되었다. 그 방안은 농촌정책을 재정비하여 보조금 사업을 대폭 줄이는 대신에 첫째, 농어촌주민에게 국토환경지역지킴이 수당을 지급하고, 둘째, 농어촌주민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며, 셋째, 농어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농어촌주민이 직접 기획해서 집행하도록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다.

나도 같은 잘못을 했지만, 지금까지의 과오를 시인하고 발상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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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源 한국 성서신학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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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서신학의 현주소

나는 최근에 들어 세계굴지의 출판사들로부터 한국 성서해석학에 대한 글을 요청받고 있다. 최근 마감된 『옥스퍼드한국성서학핸드북』에는 성서신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러 번 거절했지만, 그 저서의 역사적 중요성과 편집자의 끊임없는 요청에 못 이겨, “도의 신학 입장에서 성경읽기”라는 제목으로 참여하였다.<1> 

얼마 전에는 세계 성서학계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학회인 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한 저술 프로젝트에 서구적이 아닌 한국인의 독특한 성서해석학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담당 편집자는 글을 요청하며 안병무의 민중 성서해석학조차도 불트만의 성서신학에 많이 의존했기에 한국적이라 보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그래서 몇몇 원로 성서학자들에게 연락해보았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심지어 한 중견 성서학자는 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성서학자는 그런 것을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편집자인 미국 한인2세 성서신학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듣기 민망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국 성서신학자들의] 실제 글들을 읽어보면 대부분의 각주와 출처는 전통적인 백인, 서양, 유럽 중심의 성경 연구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심지어] 일부 글에는 한국인이나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역사, 맥락, 문화, 공동체 및 전통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성서연구와 한국성서해석이 어떻게 발전 할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유럽 중심적 기반, 그러니까 서구의 자본주의와 식민지 프로젝트의 영속화를 돕는 것이 아닌, 한국의 역사, 개념, 체계, 전통들을 중시하고, 발전시키고, 즐기는 것으로서 말입니다. 그 질문이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한국 성서신학이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몰랐다. 오죽했으면, 조직신학자인 내게 성서해석에 관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을까? 현재 한국의 성서학과 신학의 민낯이 우리의 2세 신학자에 의해 들춰진 것 같아 창피했고, 또 서글펐다. 그나마 이러한 비판적 견해는 그가 1세가 아니고 2세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미국에서 신학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 시작부터 신학교육의 지배담론인 백인 중심적 서구신학으로부터 백인이 아닌 동양인 신학도로서 자기 신학의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규명이 요구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종교문화를 포함한 사회적 위치(social location)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자리매김 없이 세계 신학계에서 자기의 신학 담론을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학은 자기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분명한 인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20세기 기독교 신학의 가장 큰 깨달음이다. 자기 상황과 맥락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지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글로벌 신학의 정글에서 하나의 주체적 신학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도의 신학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잉태된 한국 및 동아시아 신학이다. 지금까지 생존했을 뿐 아니라, 이젠 어느 정도 자리매김도 한 것 같다. 이론신학 분야들에서 뿐만 아니라, 옥스퍼드핸드북과 세계 성서학회(SBL)에서 한국 성서신학에 관한 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방증이 아닌가 한다. 

(계속)
​주 1: Heup Young Kim, “Biblical Readings on a Theology of Dao”, The Oxford Handbook of the Bible in Kore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forthcoming). 이 글은 이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려둔다.
​(출처: 김흡영, '성서와 도의 신학'(도의 신학이란 03), 기독교사상 751(2021.07), 1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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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에 들어 세계굴지의 출판사들로부터 한국 성서해석학에 대한 글을 요청받고 있다. 최근 마감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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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도("도의 신학이란 03: 성서와 도의 신학" 기독교사상 7월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신약성서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르쳐 ‘로고스logos’라고 한 적이 없다. 대신 위에 인용한 요한복음 14장6절에서 유일하게 진리와 생명의 ‘길’, 곧 ‘호도스’(οδός)라고 했다. 코이네 희랍어 ‘호도스’는 길(도로), 삶의 지혜, 행동 방법, 생명의 총체적 방향성 등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유사한 여러 뜻을 동시에 품고 있는 도(道)와 잘 맞아떨어진다. 비록 요한복음 1장1절(“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에서 요한은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예수께서 자신을 호도스라고 밝힌 이 구절을 결코 생략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 ‘로고스’는 구약에 나오는 히브리어 ‘다바르’(דָּבָר)를 희랍어로 번역한 것으로 이해된다. 로고스와 다바르는 같이 ‘말하다’를 표현하지만 서로 강조하는 측면에 차이가 있다. 다바르는 행위의 실천에 방점을 두는데 반해, 로고스는 앎(지식, 생각, 이성)을 강조한다.<2>

여기서 이미 앎과 행위를 분리하는 로고스의 이원론적 문제점과 한계가 노출된다. 서구의 신학은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로고스를 신학의 근본 은유로 사용함으로써 교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담론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러한 로고스 신학의 결함과 구약의 다바르적 특성은 20세기에 결국 프랙시스 신학으로 표출되었다고 하겠다. 그 이전에도 이러한 이원론은 ‘믿음이냐 행위냐’ 하는 이원적 구원론으로 전개되고, 서구교회가 가톨릭과 개신교로 분리되는 역사를 초래했다. 그래서 스리랑카의 신학자 피에리스(Aloysius Pieris)는 신학을 로고스 모형, 다바르 모형, 그리고 호도스 모형으로 구분했다. 그에 따라 그리스도를 “현실을 해석하는 말씀, 역사를 변혁시키는 매개체, 그리고 모든 담론을 종결시키는 ‘길’”이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고, 그들을 한데 엮을 수 있는 통전적 모형을 찾고자 했다.<3>

​그러나 우리는 전호의 글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이들을 통전할 수 있는 ‘도’라는 탁월한 근본 은유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도’(道)는 머리 ‘수’(首)자와 움직일 ‘탁’(辶)자로 구성되어 앎과 행위의 일치, 곧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뜻을 그 문자에 담지하고 있다. 곧 도는 로고스(앎)와 다바르(행위)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도는 진리와 생명의 길(호도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그리스도론에서는 물론이고, 요한복음 서두에 나오는 ‘말씀’에 대해서도 희랍어 로고스나 히브리어 다바르보다도 성서적으로 더욱 적절한 용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최초의 한글 요한복음(1882)에서 존 로스(John Ross, 1842-1915)가 그 구절의 ‘로고스’를 ‘도’로 번역한 것은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이었다.
 
​더욱이 성서는 전체적으로 ‘구원의 도’를 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구원의 로고스’(지식) 또는 ‘구원의 역사’(구속사)라는 표현보다도 더 적절할 것이다. 구약의 잠언과 전도서와 같은 지혜문서들은 한마디로 ‘신앙적 삶의 도’(지혜)를 가르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명백하게 자신을 유일한 구원의 도(길, 호도스)라고 선포했다.(요14:6) 공관복음에서 예수의 설교는 분명히 ‘하늘나라(천국)의 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도행전은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인들을 예수의 ‘도’를 따르는 자로 표현하고 있다(행24:14). 그 외에도 우리말 성서에는 도를 사용하는 구절이 즐비하다: ‘주의 도’(행18:25, 19:9, 22:4; 시25:4, 51:13, 67:2, 77:13, 86:11, 119:3, 119:15, 119:37; 렘 32:23), ‘십자가의 도’(고전1:18), ‘하나님의 도’(마22:16, 막12:14, 눅20:21, 행18:26, 삼하22:31, 시18:30), ‘여호와의 도’(창18:19, 삿2:22, 삼하22:22, 대하17:6, 시18:21, 138:5; 잠10:29, 호14:9) 등이 그 예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도’의 시각에서 보는 입장은 성서를 한글로 번역한 초기부터 시작되었고, 도의 신학적 사유는 이미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발생할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 가톨릭의 성조라는 광암 이벽(1754-85)은 예수 그리스도를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교착점’이라고 보았다. 

-계속-
주:
2. David Allan Hubbard and Glenn W. Barker, eds.,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2), 9.
3. A. Pieris, Fire and Water: Basic Issues in Asian Buddhism and Christianity (Maryknoll, NY: Orbis, 1996), 138-146을 보라.
(출처: 김흡영, '성서와 도의 신학'(도의 신학이란 03), 기독교사상 751(2021.07), 1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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