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6

성인지도(聖人之道)

성인지도 ~~ - 좋은 글


 성인지도(聖人之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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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일송처사|
작성시간20.02.05|



◐ 성인지도(聖人之道) ◑

우리는 보통 성인(聖人)이라 하면 도무지 결점을 찾을수 없고 성직자나 수도자 처럼 금욕적인 삶을 통하여 성스럽게 살았던 사람을 떠올리게 되지요 그래서 보통 성인(聖人)이라 할때 성스러울 성(聖)자를 쓰는데 이는 인간이 도달할수 있는 최고의 경지(境地)를 말함이지요 음악(音樂)의 최고경지를 악성(樂聖)이라 하고 그림의 최고경지는 화성(畵聖)이라 하지요 시(詩)의 최고경지는 시성(詩聖)이 되고 서(書)의 최고경지는 서성(書聖)이라 하며 바둑의 최고경지는 기성(棋聖)이라 하지요 

 성(聖)자를 보면 참으로 뜻이 깊어요 
귀이(耳)와 입구(口) 그리고 책임질 임(壬)자를 쓰는데 
 이는 많이 듣고 말해야만 책임질수 있다는 뜻이지요 
또 이 삼요소가 맞아야 성스럽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성인(聖人)은 먼저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는데
이는 역사(歷史)의 소리와 진리(眞理)의 소리를 조용히 듣는것 이지요 

먼저 모두 듣고난 연후에 비로서 입을 열어 말을 해야 하지요 
 그래서 많이 듣고 말하는 가장 뛰어난 존재가 성인(聖人)인 것이지요 
듣는것이 먼저이고 말을 하는것은 나중의 일이지요 
 귀이(耳)자를 먼저쓰고 입구(口)자를 나중에 쓰는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지요 
 성(聖)자는 의미 심장 하지요 
이야기를 바로 듣고 깊이 이해하려면 많은 지혜(智慧)와 체험(體驗)과 사색(思索)이 필요하지요 
 지혜(智慧)와 체험(體驗)과 사색(思索)이 부족한 사람은 피상적(皮相的)으로 듣고 느낄 뿐이지요 귀가 있다고 다 들리는 것은 아니지요 
들을줄 아는 귀를 갖고 있어야 들리지요 

 문맹(文盲)이 글을 못 보고 색맹(色盲)이 빛깔을 분간하지 못하듯 
머리가 모자라면 깊은 소리를 듣지 못하지요 

 공자(孔子)는 60이 되어서야 비로서 이순(耳順)의 경지(境地)에 도달했다고 하지요 
 이순(耳順)이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지(境地) 이지요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이해할수 있는 경지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것을 관용(寬容하는 경지이지요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 
 무슨 말을 들어도 노여워 하지 말어야 하는대 아직도 귀에 거슬리게 들리는 것이 있으니 수양이 많이 부족한가봐요 
 아마도 공자님을 다시 배워야 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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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479년 73세로 사망하였는데 만년(晩年)에 자신(自身)의 일생(一生)을 회고(回顧)하면서 자신(自身)의 사상(思想)과 인격(人格)의 발달과정(發達課程)을 정리(整理)하여 말씀 하셨어요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 보면 다음과 같이 수록(收錄)되어 있지요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삼십이립(三十而立) 사십불혹(四十而不惑)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열다섯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살에 기초(基礎)가 확립(確立)되었으며 
마흔살에 미혹(迷惑)되지 않았고 
쉰살에 천명(天命)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예순살이 되어서 귀가 뚫려 한번 들으면 그 이치(理致)를 알았고 
일흔살에는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법도(法度)에 벗어나지 않았다 

 공자(孔子)의 이 말씀에서 나이별로 지칭(指稱)하는 용어(用語)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지학(志學) 또는 지우학(志于學)은 15세(十五歲)를 이르는데 열다섯 살이면 누구나 자신(自身)의 인생(人生) 방향(方向)을 스스로 결정(決定)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지요 

 이립(而立)은 30세(三十歲)를 이르는데 학문(學問)의 기초(基礎)가 도덕적(道德的)으로 확립(確立)되었다는 뜻이며 삼십(三十)을 삽(十十十)이라고 하며 세(世) 또한 여기서 나왔으니 서른살이면 밥벌이도 스스로 하고 혼인(婚姻)하여 자식(子息)도 낳아기를 나이로 사회적(社會的) 경제적(經濟的)으로도 부모(父母)로 부터 자립(自立)해야할 나이이다 이때 2세(二世)가 태어나면 비로서 한 세대(世代)가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불혹(不惑)은 40세(四十歲)를 이르는데 어떠한 유혹(誘惑)에도 넘어가지 않고 판단(判斷)에 혼란(混亂)을 일으키지 않을 만큼 학문(學問)이 확립(確立)되었음을 말하는 것이지요 

 지명(知命) 또는 지천명(知天命)은 50세(五十歲)를 이르는데 천명(天命)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順應) 할줄 알고 하늘이 만물(萬物)에 부여(附與)한 최선(最善)의 원리(原理)를 깨우쳤다는 뜻이지요 

 이순(耳順)은 60세(六十歲)를 이르는데 귀가 순(順)해 졌다는 것은 사사(私私)로운 감정(感情)에 얽매이지 않으며 모든 말을 객관적(客觀的)으로 듣고 이해(理解)할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卽) 소리가 귀에 들어오면 마음과 통(通)하기 때문에 거슬리는 바가 없고 아는것이 지극(至極)한 경지(境地)에 이르러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수 있으며 말을 들으면 그 미묘(微妙)한 점(點) 까지 모두 알게 된다는 뜻이지요 

 종심(從心) 또는 종심소욕(從心所欲)은 70세(七十歲)를 이르는데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하여도 어떠한 규율(規律)이나 법도(法度) 제도(制度) 원리(原理) 등(等)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라 하지요 

 즉(卽) 의식적(意識的)으로 하려하지 않고 그저 마음에 편(便)한 대로 자연(自然)스럽게 행동(行動)해도 그 모든것이 법도(法度)를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니 바로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성인지도(聖人之道)의 경지(境地)에 올랐다는 뜻이지요 

 여기에서 40세(四十歲) 불혹(不惑) 까지는 주관적(主觀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완성(完成)을 이룬것을 말하고 
50세(五十歲) 지명(知命) 이후(以後)로는 객관적(客觀的)이고 보편적(普遍的)인 하늘의 원리(原理) 곧 유교(儒敎) 최고(最高)의 덕목(德目)인 성인지도(聖人之道)로 나아가는 과정(課程)임을 말해주고 있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일송처사 *-






















알라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 한국적 페미니즘, 한국적 포스트모던 영성 이은선 2016

알라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 한국적 페미니즘, 한국적 포스트모던 영성 
이은선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16-01-31




Sales Point : 37

8.0 100자평(0)리뷰(1)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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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적 여성신학자, 기독교적 유교인'을 자임하는 저자가 페미니즘을 매개로 기독교와 유교의 대화를 시도하고, 타자의 거울로 자아를 재조명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독교, 다른 유교를 탐색한다. 이로써 기독교는 다시 한 번 개혁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주체성을 함양하며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며, 유교는 자기의 종교성을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다시 깊어지고 사람들의 영성과 창조성을 배양하는 데 이바지하게 되기를 지향하는 책이다.

저자는 궁극적인 초월에 관한 질문인 종교-형이상학적인 물음, 젠더 정치도 포함해서 우리 공동체 삶의 치리의 문제인 정치와 경제사회의 물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물음들이 도달하게 되는 문화와 교육, 사람의 성숙에 대한 물음을 모두 함께 어울러서 통합적으로 살펴본다. '유교적 굴레'에 구속되었다고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유교 여성들의 실제 삶과 생각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목차


제1부 | 다른 유교
1장 한국 유교의 종교적 성찰
2장 한류와 유교 전통 그리고 한국 여성의 살림영성
3장 21세기 여성 주체성과 유교 전통
4장 21세기 포스트모던 영성과 큰 배움(大學), 큰 공동체(大同社會)
5장 내가 믿는 이것, 한국 생물(生物) 여성정치와 교육의 근거


제2부 | 다른 기독교
1장 한국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의 영성과 기독교 영성의 미래
2장 인(仁)의 사도 함석헌의 삶과 사상
3장 왕양명의 양지(良知)와 함석헌의 씨알, 생물권 정치학 시대를 위한 존재 사건
4장 포스트휴먼 시대에서의 인간의 조건
5장 한국 교회와 여성, 그리고 인류 문명의 미래


책속에서


P. 51 유교 전통은 인간성(仁)이 가장 기초적으로 길러지는 곳을 가정이라고 보았고, 그중에서도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를 핵심으로 보았다. 물론 이러한 유교의 가족 중시 사상은 현실 속에서 많이 타락하였고,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성품과 특징이 바로 이러한 친밀한 가족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가족의 외적 형태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기본 정신을 보유하는 일은 여전히 긴요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유교 전통의 입후제도를 가부장주의 전통의 나쁜 악습으로 규정한다. 사실 최근까지 남성 혈통 중심의 가계를 유지하기 위한 남아 선호 사고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오늘날 호주제도도 폐지되고, 여아에 대한 차별이 거의 옛이야기가 된 상황에서 과거 입후제도의 시행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접기
P. 96 유교의 길은 일상의 삶에서 초월을 실현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불교나 도교, 또는 서구의 기독교처럼 일상과 속(俗)의 세계와 급진적으로 구분되는 성직자 그룹을 따로 두지 않는다. 또한 삶의 모든 일 속에서 도를 실천하려는 구도였으므로 배움(學)이 곧 종교적 추구가 되고, 정치의 일이 곧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길이다. 나는 유교영성이 이처럼 ‘학(學, 공부 또는 교육)’이나 ‘정치(사회생활 또는 직업)’ 등의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common) 일을 초월의 일로 보면서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그 안에 풍성한 영적인 추구와 실천적 수행의 차원을 담고 있기 때문에(minimal religion) 그것이 오늘날 서구 기독교 전통에서도 세속화와 다시 탈세속화 시대에 새로운 대안으로 찾고 있는 포스트모던적(postmodern) 영성, 세속주의적 종교(secular religion), 아니면 탈세속적 종교성(post-secular religiosity)과 크게 부합한다고 보았다. 접기
P. 144 나는 오늘날 인간에 대한 실천력 있는 신뢰(信)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긴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서의 신뢰의 근거는 ‘탄생했다’는 참으로 보편적인 ‘존재의 사실(sui generis)’에 기초해 있으므로 모두를 포괄할 수 있고, 실천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시대는 그렇게 다시 그러한 존재의 원리에 근거해서 인간의 성성(聖性)을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고 긴요하다. 만물을 싹틔우는 생명의 원리(仁)가 인간 자체이고(仁者人也, 仁也者人也), 이 세상이 살 만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 인간의 측은지심과 차마 못하는 마음(不忍之心)과 인간성이 어떤 종교나 정치의 구호를 넘어서 마지막 보루이며, 그래서 그것은 인간 마음의 네 가지 덕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만물의 생명원리가 됨을 말하는 것이다. 접기
P. 201 한국인의 심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맹자는 고대 성인왕(聖人王) 순 임금의 인격을 한마디로 ‘사기종인(舍己從人, 나를 버리고 타자와 함께 한다)’의 인격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선을 남과 함께하여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취하여서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셨다(『맹자』 「공손추 上」, 8)”고 한다.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은 그의 『성학집요(聖學輯要)』 「위정편(爲政篇)」에서 이러한 맹자의 선여인동(善與人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서 남이 선을 행하도록 도와주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없다고 한 것을 계속 언급하면서 인간 삶에서의 공적 영역과 공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 그 일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점과 그 버리는 일의 위대함을 밝혔다. 나는 이러한 유교 전통의 공적 자아의 일이 한국 여성들의 살림살이에 그대로 녹아 있으며, 그들의 모성과 가족을 위한 희생과 염려가 결코 공적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근본적인 공적 안녕의 토대가 됨을 말하고자 한다. 접기
P. 304 일반적으로 유교 전통의 입후 제도는 유교 가부장주의의 가장 나쁜 악습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가운데서도 유교 여성들이 이렇게 비록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입양해서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만큼, 아니 그보다 더 극진하게 모자관계를 이루어 냈다는 것은 그녀들의 극기복례의 예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드러내주는 스토리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오늘 우리 시대에는 그것을 새롭게 의미화할 수 있다고 보는데, 즉 오늘의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이제 누가 낳았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지속적으로 인간적인 돌봄과 배려의 관계가 이루어졌는가에 따라서 부모--자식과 가족관계가 이루어지는 상황이 되었다면(모성의 탈본질화), 유교 여성들에 의해서 행해졌던 이 실행을 새롭게 볼 수 있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외 입양을 보내고 미혼모나 가정을 잃은 많은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한 것을 알 수 있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은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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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통합학문(Korean Feminist Integral Studies for Faith) 연구가이다. 유교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대화를 통해서 인류세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한국적 신학(信學)과 인학(仁學)의 구성을 위해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라는 모토와 함께 종교와 정치(性), 교육 등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글쓰기를 한다. 한국여성신학회와 아렌트학회 회장을 엮임했고, 한국양명학회, 유교학회, 종교교육학회, 교육철학학회 등에서 활동했다. 현재 세종대 명예교수이고, 한국信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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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그때도, 지금도 그가 옳다>,<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 총 28종 (모두보기)


[그림 성인지도와 치세지도>에 의한 노자사상의 새로운 해석

<그림 성인지도와 치세지도>에 의한 노자사상의 새로운 해석

<그림 성인지도와 치세지도>에 의한 노자사상의 새로운 해석
Laoz's Thought, A New Interpretation by <Figure, the Tao of Saint & the Tao of Government>

사회사상과 문화

2010, vol., no.22, pp. 81-115 (35 pages)
발행기관 : 동양사회사상학회
김영주 /KIM YOUNG JOO 1   1초당대학교

초록 

필자는 노자사상을 천지지도·성인지도·치세지도로 나누어서 해석하려고 한다. 이에 앞 논문 「노자사상, <그림 천지지도>에 의한 새로운 해석」에서 <그림 천지지도>에 기대어 ‘현玄과 일一 그리고 무無와 유有’를 비롯한 다양한 내용들을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이 논문에서는 <그림 성인지도와 치세지도>에 기대어서, 치세지도에서 무無와 유有 그리고 무불위無不爲와 유위有爲의 개념적 관계를 살펴보았고, ‘성인지도로서 무위’와 ‘치세지도로서 무불위’의 개념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노자』에서 55개 장구의 성인지도 내용과 29개 장구의 치세지도 내용을 <그림 성인지도와 치세지도>로 그려 보여준다. 『노자』 11장과 40장의 내용으로 치세지도에서 무와 유의 개념을 논의함에 그 구체적인 개념을 현실 생활 속에서 ‘공공성과 개별성’으로 잡아냈으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3장과 80장의 내용과 관련지어서 ‘좁고 낮은 공공재’라는 ‘소박한 무’에 의한 성인의 無爲之事와 不言之敎 그리고 ‘좁고 낮은 개별재’라는 ‘소박한 유’에 의한 백성의 自化·自正·自富·自樸’을 말하였으며, 이에 발맞추어 무불위와 유위의 개념적 관계를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성인지도로서 무위와 치세지도로서 무불위의 관계를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무위와 무불위의 관계를 이해함에, 첫 번째 무위에서 가치개입에 관한 문제 그리고 두 번째 無爲而無不爲와 無不爲而無爲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았으며, 나아가서 無爲而無不爲에 깊이 관련된 박樸의 개념을, 28장의 復歸於樸·32장의 無名과 樸·37장의 無名之樸에 관련된 노자의 글과 왕필 주석에 기대어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이렇게 두 논문에 걸쳐서 노자사상을 <그림 천지지도>와 <그림 성인지도와 치세지도>에 기대어 천지지도 · 성인지도 · 치세지도로 나누어 새롭게 해석해 보았다. 

다음 논문에서는 천지지도 · 성인지도 · 치세지도를 서로 함께 관련지우고 총체적으로 정리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의미를 살펴보겠다. 

===

I discuss concretely and minutely Laoz's thought with the three new viewpoints, the Tao of Nature(天地之道)·the Tao of Saint(聖人之道)·the Tao of Government(治世之道). I devise an idea which draw two figures; <figure the Tao of Nature> and <figure the Tao of Saint & the Tao of Government>. At the proceeding my paper, I interpreted newly for Laoz's thought relying on <figure the Tao of Nature>. So I studied distinctly the various concepts of Laoz's Heyn玄·Il一·Mu無·Yu有 …… etc. And now this paper, I interpret newly for Laoz's thought by <figure the Tao of Saint & the Tao of Government>. So I study concretely and minutely conceptual relation at Mu無(NoBeing) & Yu有(Being) and Mubulwe無不爲(NotNoAction) & Yuwe有爲(BeingAction) in the Tao of Government, and study concretely and minutely conceptual relation between Muwe無爲(NoAction) as the Tao of Saint & Mubulwe無不爲 as the Tao of Government. The Publicity by various public establishments and places or public affairs & the Privatisity by various private establishments and places or private affairs, I interpret the Publicity for Laoz's Mu無 and interpret the Privatisity for Laoz's Yu有. Going one step forward, I interpret that Laoz insist "the Saint give people Muwe無爲 and Bulun不言(NoLanguage) as 'humble Mu無' called 'narrow and low Publicity' at small country living a minority race(小國寡民) as the Tao of Saint(聖人之道), and People are living at self-naturation(自化)·self-frankness(自正)·self-satisfaction(自富)·self-simplelife(自樸) as 'humble Yu有' called 'narrow and low Privatisity' by chapter 3 and chapter 80 representing the Tao of Government(治世之道). Based on this, I discuss concretely and minutely with differences of Mubulwe無不爲&Yuwe有爲 and conceptual relation between Muwe無爲 as the Tao of Saint & Mubulwe無不爲 as the Tao of Government. Following up with this, I discuss minutely a concept of 樸(simplelife); 復歸於樸 of chapter 28·無名 and 樸 of chapter 32·無名之樸 of chapter 37 relying on phrases of [Laoz] and Wang pil's annotation. Like this, I interpreted newly for Laoz's thought by two papers, relying on <figure the Tao of Nature> and <figure the Tao of Saint & the Tao of Government>. At my following next papers, I will interpret newly for Laoz's thought by totally relating and arranging the Tao of Nature(天地之道)·the Tao of Saint(聖人之道)·the Tao of Government(治世之道).

알라딘: 한국사회 정의 바로 세우기 2015 김일수,문병호,양명수,이한구,홍승용,이은선

알라딘: 한국사회 정의 바로 세우기


한국사회 정의 바로 세우기 
김일수,문병호,양명수,이한구,홍승용,이은선,주형일,김형기,김종엽,홍찬숙,홍준기,김진수 (지은이)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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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2,500원 
책소개
각 분야의 석학 12명이 정의하는 한국사회의 정의. 정치적 편향성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한국적 현실에 맞는 정의의 이론적 기초를 세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한국형 정의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정의에 대한 진지한 담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법정의, 경제정의, 사회정의, 교육정의, 언론정의 등을 논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정의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면서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논의해 나간다.


Taechang Kim - 가을 하늘이 너무나 맑아서 October’s Bright Blue Weather

Taechang Kim -

October’s Bright Blue Weather
by Helen Hunt Jackson


O SUNS and skies and clouds of June,
And flowers of June together,
Ye cannot rival for one hour

October’s bright blue weather;
When loud the bumble-bee makes haste,
Belated, thriftless vagrant,
And Golden-Rod is dying fast,
And lanes with grapes are fragrant;

When Gentians roll their fringes tight
To save them for the morning,
And chestnuts fall from satin burrs
Without a sound of warning;

When on the ground red apples lie
In piles like jewels shining,
And redder still on old stone walls
Are leaves of woodbine twining;

When all the lovely wayside things
Their white-winged seeds are sowing,
And in the fields, still green and fair,
Late aftermaths are growing;

When springs run low, and on the brooks,
In idle golden freighting,
Bright leaves sink noiseless in the hush
Of woods, for winter waiting;

When comrades seek sweet country haunts,
By twos and twos together,
And count like misers, hour by hour,
October’s bright blue weather.
O suns and skies and flowers of June,
Count all your boasts together,
Love loveth best of all the year
October’s bright blue weather.


알라딘: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 이은선2023

알라딘: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 
이은선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23-08-31




















정가
15,000원
Sales Point : 470 
240쪽

알라딘: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읽기, 이은선 2022

알라딘: [전자책]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읽기

[eBook] 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읽기 
이은선 (지은이)
모시는사람들
2022-08-20 




종이책의
미리보기
입니다.














전자책정가
8,400원
종이책 페이지수 : 216쪽

2023/10/15

조선의 힘이자 족쇄가 된 성리학… 경직된 사상의 비극 < 주간조선 2021

조선의 힘이자 족쇄가 된 성리학… 경직된 사상의 비극 < 문화/생활 < 기사본문 - 주간조선



[ 조정육의 그림 속 사람여행 ]
조선의 힘이자 족쇄가 된 성리학…
경직된 사상의 비극
기자명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입력 2021.01.02 
호수 2637

채용신. ‘주자초상(朱子肖像)’. 1914년. 비단에 색. 110.2×65㎝. 경상대도서관

2010년 8월, 중국 푸젠성(福建省)에 있는 무이산(武夷山) 계곡에 다녀왔다. 무이산은 송(宋)나라의 주희(朱熹·1130~1200)가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은거하며 강학과 저술에 전념했던 곳이다. 주희는 36봉과 37암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무이산을 휘도는 아홉 굽이의 계곡을 따라 배를 타며 유람했다. 유람의 결과 탄생한 작품이 그 유명한 ‘무이도가(武夷櫂歌)’다. ‘무이도가’는 아홉 계곡의 아름다움을 묘사했기 때문에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라고도 한다. 필자가 무이산을 찾아간 이유는 특별히 주희를 숭모해서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그려진 무이구곡도의 출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이구곡도를 그린 조선의 화가들은 마치 그들이 실제로 현장답사를 다녀온 것처럼 구곡의 명칭과 봉우리 이름을 세세하게 적어 넣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림 속의 산봉우리와 기암절벽들은 이곳이 신선들이 사는 선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환상을 직접 검증해봐야 했다. 무이구곡도는 단순히 특정한 장소를 그린 풍경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이구곡도 자체가 곧 주희를 상징했다. 주희를 이해하는 것은 곧 조선시대의 근본 바탕을 아는 것이다. 조선은 주희가 완성한 성리학이라는 사상적 토대를 기둥 삼아 세워진 나라였다. 또한 주희는 요-순-우-탕-문무-주공-공자-맹자로 이어지던 도통(道統)의 마지막 주자였다. 이것이 바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선호했던 중국 성현과 고사(高士)들을 살펴보는 글의 마지막 주인공으로 주희를 선택한 이유다.



조선시대를 지배한 주자의 가르침

주자(朱子)가 집대성한 성리학은 조선왕조의 통치 철학이자 이데올로기의 기반이었다. 그런 위대한 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는 왠지 민망하다. 그래서 ‘주희’라는 이름 대신 ‘주자’라고 높여 불렀다. ‘자(子)’는 ‘스승님’ 혹은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스승에 대한 호칭이다. ‘부자(夫子)’라고도 한다. 공자(孔子)를 ‘공구(孔丘)’라는 이름 대신으로, 맹자(孟子)를 ‘맹가(孟軻)’라는 이름 대신으로 부르는 것과 똑같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대신 공자, 맹자, 주자라고 하면 ‘공 선생님’ ‘맹 선생님’ ‘주 선생님’이 되니 그 자체가 곧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주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는 초상화의 제작이다. 주자의 초상화는 각종 서적의 삽도(揷圖)와 ‘역대군신도상’같은 성현도상첩에 포함되어 있다. 서원에 봉안된 예배용 초상화와 주자가 무이구곡을 유람하는 장면을 그린 ‘고사인물도(高士人物圖)’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초상화는 반신상과 전신상, 전신입상과 전신좌상 등 다양하다. 게다가 다른 성현들과는 다른 주자만을 위한 특이한 추숭 형식이 더해졌다. 그것이 바로 무이구곡도의 제작이었다. 이런 모든 작업이 다 ‘주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과 행적을 선양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채용신(蔡龍臣·1850~1941)이 1914년에 그린 ‘주자초상(朱子肖像)’은 대표적인 봉안용 초상화다. ‘주자초상’은 공수(拱手)자세를 취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전신궤좌상(全身跪坐像)이다. 주자는 머리에 복건(幅巾)을 쓰고 있고, 얼굴은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의 측면관을 하고 있으며 옥색 유복(儒服)을 입었다. 유복은 보통 흰색을 입는데 푸르스름한 옥색을 입은 모습이 특이하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는 ‘문공주자(文公朱子)’라고 적혀 있다. 문공은 주자가 받은 시호(諡號)다. 주자 용모의 특징은 우안팔분면의 측면관과 복건, 그리고 오른쪽 관자놀이에 있는 북두칠성 모양의 반점이 전형적이다. 채용신은 초상화를 제작할 때 거의 정면상을 고집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주자초상’은 측면관으로 그렸다. 이런 특징은 채용신이 그린 또 다른 주자상인 ‘회암주선생유상(晦菴朱先生遺像)’(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채용신이 ‘주자초상’을 그리면서 중국에서 들어온 서적과 성현도상첩 속 주자상의 특징을 매우 자세히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채용신이 그린 ‘주자초상’은 본지 2609호에 ‘공자의 패션 코드와 정치인들의 X개 싸움’이라는 글로 소개한 ‘공자초상’과 함께 제작되었다. 두 작품은 채용신이 그린 성현 초상화 중 드물게 연도가 밝혀진 사례들이다. 두 성현의 초상화는 2018년에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경남 진주의 도통사(道統祠)에 봉안되어 있던 초상화를 경상대도서관에 영구기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도통사에서는 사당의 중앙에 공자상을 봉안해 남쪽으로 향하게 했고, 동쪽에는 주자상을, 서쪽에는 안자상(安子像)을 배치했다. 공자상이 남면을 했다는 것은 그를 제왕과 동일하게 인정했다는 뜻이다. 제왕만이 남면을 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생전에 왕관을 쓴 적이 없는 소왕(素王)이었지만 사후에 계속 봉호를 받았고, 당나라 현종 때는 문선왕(文宣王)에 추증되었다. 이 말은 공자 옆에 시립한 주자와 안자의 직위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쪽에 배치한 안자상의 주인공은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아니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1243~1306)이다. 안향에게도 역시 ‘자’를 붙였다. 공자, 주자 못지않게 동방에 유학을 전해준 공이 크기 때문이라 여겨서였다. 이것이 문제였다. 도통사에 공자 옆에 주자와 안자의 초상화를 봉안한 것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도통사를 공격한 유림(儒林)들은 안향이 안회, 증자, 자사, 맹자보다 더 높은 것이냐고 따졌다. 통상 공자 옆에는 네 명의 제자가 시립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념을 깨고 무엇인가 새롭게 해석해보겠다는 시도는 그만큼 어려운 법이다. 채용신이 ‘주자초상’을 제작해 도통사에 봉안했던 1914년대 유림계의 상황이 그러했다.

안향은 호가 회헌(晦軒)인데 주자를 사모하여 지은 호이다. 주자는 유난히 ‘회(晦)’ 자를 아껴 자신의 자(字)와 호로 썼다. 주자의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고,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이다. ‘회’는 그믐을 뜻하니 어둡고 캄캄한 상태를 의미한다. 주자가 자신의 학문이 부족하다는 겸양의 의미로 사용한 글자라고 할 수 있다. 안향은 학문과 사상의 거인인 주자가 “아직도 나의 학문은 부족하여…”라는 자세를 견지했으니 감동받았을 것이다. 그가 주저없이 주자의 ‘회’를 차용해 자신의 호로 편입시킨 이유다. 안향은 1290년에 연경에서 귀국할 때 주자서(朱子書)와 함께 공자와 주자의 초상을 모사해왔다고 전한다.





김홍도. ‘무이귀도(武夷歸棹)’. 종이에 연한 색. 111.9×52.6㎝. 간송미술관



주자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루트

존경하는 ‘주 선생님’을 흠모하고 추종한 후학들은 스승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주자대전’ ‘주자어류’ 등 주자와 관련된 책을 간행했다. 정조의 시문과 산문을 엮은 ‘홍재전서’에는 주자 관련 서적의 간행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요즘 내가 주부자의 저서를 천명하여 집집마다 외워 익히고 사람마다 연구하게 하려 하는 것은 그것이 천리를 밝히고 인륜을 바로잡는 일에 준칙이 되기 때문이다. 이단과 간특한 학술이 따라서 배격을 당하는 것도 반드시 이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니, 말하자면 천리와 인륜의 큰 원칙을 강론하여 밝히는 문제 정도는 오히려 소소한 절차상의 한 부분에 속하는 것이다.”

강력한 왕권정치를 지향했던 정조는 주부자의 책을 간행하여 사람들을 교육하면 ‘천리가 밝혀지고 인륜이 바로잡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조의 말은 유선(諭善·왕세손을 가르치던 관직) 이성보(李城輔)가 상소하는 내용에 대한 답이었다. 이성보의 상소문에는 “우리 자양부자(紫陽夫子)는 수많은 현인의 업적을 집대성하고 천년 동안 끊긴 도통을 이어받아 내놓는 말들이 모두 하늘의 이치를 밝히고 성인의 도학을 여는 요체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 저서들이 여러 질로 흩어져 전체를 볼 수가 없으니 “전하께서 전질을 하나로 편집”해 주십사 하는 내용이었다. ‘자양부자’는 주희의 호다. 이성보의 상소와 정조의 대답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주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김홍도의 ‘무이귀도(武夷歸棹)’는 주자가 무이산 계곡을 유람하는 장면을 그린 고사인물화다. 필자를 무이산으로 향하게 만든 결정적인 작품이다. 높이 솟아오른 절벽 사이로 계곡 물살이 가파르다. 주자를 실은 배 한 척이 지그재그로 굽이치는 계곡물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두 명의 사공이 배가 부딪치지 않도록 장대로 절벽을 밀고 있다. 날카롭게 솟은 바위는 연잎 줄기처럼 생긴 하엽준(荷葉皴)을 써서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림은 주자가 계곡을 유람하는 모습이 주제이지만 그보다는 무이산 계곡의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둔 것 같다.

정조가 주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특별했듯이 정조의 뜻을 받든 김홍도도 무이계곡을 성심껏 그렸다. 김홍도는 1800년에 정조에게 진상할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 8폭 병풍을 제작했다. 그중 6폭이 현재 삼성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병풍을 본 정조는 김홍도가 “주자가 남긴 뜻을 깊이 얻었다”고 칭찬했다.

16세기부터 조선에서 그려진 무이구곡도는 세로가 긴 족자 형식과 가로가 긴 두루마리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족자 형식은 한 화면에 무이계곡 전체를 압축해서 넣은 식이다. 반면 두루마리 형식은 마치 배를 타고 구곡을 여행하듯 그림을 펼쳐가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러다가 김홍도가 살던 18세기에는 각 계곡을 독립된 장면으로 해 병풍으로 제작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문사들은 자신이 살던 곳에 구곡을 만들고 주자처럼 살기를 희망했다. 율곡의 ‘고산구곡’, 송시열의 ‘화양구곡’, 권상하의 ‘황강구곡’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주자를 흠모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주자와 같이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주자에 대한 흠모가 거의 종교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주자의 어떤 점이 조선시대 사람들을 그렇게 사로잡았을까.

안향이 들여온 주자학은 여말선초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당시에 고려는 권문세족의 횡포와 불교의 폐단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런 혼란기에 신진사대부들은 왕조를 교체하고 새 왕조를 뒷받침해줄 혁신적인 사상체계가 필요했다. 그때 안향이 전해준 성리학이 큰 역할을 했다. 성리학은 주자에 의해 집대성되었기 때문에 주자학이라고 한다. 또한 정주학(程朱學), 이학(理學), 도학(道學), 신유학(新儒學) 등으로도 부른다. 주희는 주렴계(周濂溪), 장횡거(張橫渠),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등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성리학은 ‘성명과 의리의 학문(性命義理之學)’의 준말이다. 주자는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에 우주만물의 생성과 운행을 ‘성리(性理), 의리(義理), 이기(理氣)’ 등의 형이상학적 체계로 해석하여 정리했다. 성리학자들은 불교의 출세간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사상과 도교의 은둔적인 경향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사상이 참된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송대 이전 당나라까지 중국의 사상계는 불교의 선종이 지배하다시피 했다. 남회근 선생은 ‘맹자와 공손추’에서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 역시 겉으로는 유가인 척하지만 내적인 수양은 선(禪) 아니면 도(道)를 수련한 ‘외유내선(外儒內禪)’이었다”고 평가했다. 성리학의 사유체계 자체도 선종과 도가에서 훔쳐오기까지 해 놓고서 오히려 양쪽을 욕한다고 비난했다.

아무튼 성리학에서는 우주의 본체를 이루는 ‘성리, 의리, 이기’를 개인의 수양과 사회 공동체의 윤리규범으로 접목시키는 데 성공했다. 성리학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는 개인의 수양이 어떻게 국가 통치에까지 연결될 수 있는가를 명쾌하게 제시해 놓았다. 그것이 바로 ‘명덕(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至於至善)’의 삼강령(三綱領)과,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팔조목(八條目)이다. 개인의 수양에서 시작된 ‘수신’이 ‘치국’을 넘어 ‘평천하’까지 할 수 있다는 사상체계는 가족 중심의 혈연공동체뿐만 아니라 국가라는 사회공동체 안에서도 대환영을 받았다. 혈연공동체에서 사회공동체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주례(周禮)’에서 강조한 예(禮)가 기반이 되었다.



주자성리학 고수한 조선왕조의 교훈

예가 무엇일까? 예는 단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정도의 개념이 아니다. 예의 사전적 의미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적절함’을 뜻하는 유교 개념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고대의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이 아니었다. 우홍(巫鴻)은 ‘순간과 영원’에서 “예의 체계는 차별적이고 계층화된 사회에 의지하고 있으며 또 그것을 보증해주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예는 왕과 경대부, 서인과 최하위층을 ‘구분하는 것’의 표현이었다. 귀한 자와 천한 자 사이의 등급과 지위를 구분하기 위해 의복도 차별을 두었고 앉는 자리도 구분을 했다. 이런 구분을 명확하게 지키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불법적이며 비도덕적이란 뜻으로 ‘비례(非禮)’하다거나 ‘무례(無禮)’하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예는 군신(君臣)·상하(上下)·장유(長幼)의 지위를 구분하고, 남녀·부자·형제 관계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속에서 소위 ‘질서’라고 부르는 체계가 성립이 되었으니 예야말로 고대 사회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는 작동요인이었다. 그 체계를 정립한 사상이 성리학이었다. 그러니 성리학이야말로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강고한 체계가 확립되고 지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가장 환영받을 만한 사상이었다.

몇 년 전에 대만(臺灣)에 간 적이 있었는데 타이베이(台北)의 룽산쓰(龍山寺)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룽산쓰는 불교, 도교, 유교의 신들을 함께 모시는 종합 사찰이다. 그중 ‘문창제군전(文昌帝君殿)’에 들어가 보니 ‘자양부자’가 함께 모셔져 있었다. 문창제군은 학문의 신으로 시험 합격을 발원하거나 위대한 문필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와서 비는 곳이다. 그런데 ‘자양부자’에게는 가족들 사이의 화목을 빈다고 적혀 있었다. ‘자양부자’에게 비는 사람들이 바라는 가족 간의 화목은 무엇일까? 그 화목은 누구 입장에서 바라는 소원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리학에서 강조한 윤리도덕은 ‘구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신분계급적인 사회질서와 가부장제적이고 종법적인 가족질서를 합리화하는 사상체계였고 명분론이었다. 그 사상체계가 조선왕조 500년을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이자 족쇄였다. 성리학은 단일한 사상으로 수 많은 학자를 배출시킨 반면 성리학의 체계에 반하는 다른 사상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했다. 그 결과 조선왕조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쇄국정책을 고수하다 무너지고 말았다. 경직된 사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사상은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후세에게 큰 가르침을 준 사상도 없지 않다. 역사는 수많은 사람이 전 생애를 살아내면서 남긴 사상과 가르침과 교훈으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그림 속의 역사 인물들을 마무리하면서 또다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내내 잊지 말아야 할 무거운 질문임에 틀림없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한 생을 잘 살아야겠다. 그동안 긴 글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