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

마음 공부에 관하여 Cutting Though Spiritual Materialism

알라딘: [전자책] 마음 공부에 관하여



[eBook] 마음 공부에 관하여 -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초걈 트룽파 (지은이),이현주 (옮긴이)불광출판사2021-04-15 
원제 : Cutting Though Spiritual Mat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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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14.37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296쪽, 약 19.7만자, 약 5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88974799168


책소개
마음 공부가 상품이 되는 시대이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사이비(가짜)는 있기 마련이어서, 가짜 영성 전문가와 수련 센터들이 도처에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에고(Ego)가 우리의 생각, 감정, 오감을 이용해 진정한 마음 공부의 길을 교묘하게 방해한다는 데 있다.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고 만족하거나, 스스로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돕는 수단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등, 에고는 너무나 간사해서 스스로를 속이며 잘못된 마음 수행의 길로 이끈다. 이 책은 에고가 만드는 함정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며 근본적인 마음 공부의 본질과 그 수행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모두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질문과 대답’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이들이 한 번은 가졌을 의심과 의문에 대한 답을 풀어준다.




목차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들어가며

영적 물질주의, 에고가 만들어낸 가짜 깨달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텅 빈 그릇이 되어라
나의 구루(Guru)는 ‘상황’이다
마음 공부를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들
깨달음의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에고이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기대로 가득 찬 수행의 어리석음
완전히 열리지 못한 마음 공부는 욕망의 윤회를 되풀이한다
본래 별것 없음을 알면 세상의 가짜들이 다 보인다
에고가 만들어지는 다섯 단계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벽을 받아들여야 한다
에고를 뛰어넘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애쓰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경지, 바라밀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하는 주문
제3의 자비, 무자비한 자비를 보라
에고를 변성시켜 마침내 열반과 하나 되다
초걈 트룽파에 대하여


접기


책속에서



P. 12 마음 수련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주 미묘한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그냥 순진하게 뛰어드는 어떤 게 아니에요. 일그러지고 뒤틀린 자기중심적 마음 공부로 빠지게 하는 곁길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몇 가지 수련 방법을 사용해 결국은 자기중심성을 키웠으면서도 스스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
P. 27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나’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철학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가르침과 하나가 되어 가르침 자체가 되기를 실제로 원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에고를 버리라고 하면 우리는 에고를 버리는 시늉을 합니다. 근사한 행동을 하고 적당한 몸짓은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조금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접기
P. 46 굴복과 열림의 몸짓은 굴복하는 대상과 연결되고 직접 통교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거칠고 조잡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우리의 본질에 대해 당황해하거나 난처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굴복하는 대상에게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굴복하는 행위에는 바깥의 힘에 대한 숭배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감을 받아 일하는 것, 그리하여 지식을 부어 담을 수 있는 텅 빈 그릇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접기
P. 57 나는 이곳 서양에서 구루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그냥 ‘영적 친구’라고 부르는 게 더 낫겠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가르침이란 두 마음의 평등한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고도로 진보된 존재와 비천하고 열등한 존재 사이의 주종 관계라기보다 평등한 상호 통교의 문제입니다.
P. 76 우리는 영성이란 매우 자극적이고 다채로운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이국적이고 색다른 종교 전통에서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보는 거지요. 또는 목소리의 톤을 바꾸고 식습관이나 다른 일반 행동거지를 바꾸는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 양태를 습관으로 만들려고 시도하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그것들은 우리의 천성이 되지 못합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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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초걈 트룽파 (Chogyam Trungpa)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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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지도자이자 예술가. 1940년 티베트에서 태어났으며, 서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불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동티베트 수르망 지역의 총독이었던 트룽파는 1959년, 중국 공산당을 피해 강제로 고국을 떠나야 했다. 300명의 티베트인들을 이끌고 떠났으나 열 달 만에 단 50명만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독한 고난과 두려움에 맞서야만 했던 때 트룽파는 여행 내내 강함과 용기에 기반을 둔 명상적 통찰에 의지했다.
그 뒤 인도의 영라마스쿨Young Lamas School에서 정신적인 지도자로 7년을 보낸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스코틀랜드에 삼예링 명상 센터를 설립했다. 1969년 교통사고로 큰 상처를 입은 뒤 그는 더욱 열린 마음과 용기를 갖게 되었으며, 법복을 벗고 일반인으로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이애나 피버스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서양인들에게 불교의 진리 ‘다르마dharma’를 전하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명상’으로 서양인들의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을 바로잡으려 했다. 시각 예술, 디자인, 시, 연극 등 서양의 문화 예술을 익혀 명상을 통한 ‘알아차림 수행’을 널리 알렸다. 불교 밖의 다른 종교에서도 지혜를 추구한 그는 종교를 초월한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미국 내 수백 개의 명상 센터와 서양 최초의 불교대학인 나로파 대학을 세웠으며, 불교와 명상에 대한 24권 이상의 책을 남겼다. 접기


최근작 : <마음 공부에 관하여>,<명상, 마음 그리고 심리학적 통찰>,<두려움을 넘어 미소 짓기까지> … 총 198종 (모두보기)

이현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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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그리스도의 계시들』 등이 있다.


최근작 :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 (양장)>,<부모 되기, 사람 되기> … 총 26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1970년 미국에서 2021년 대한민국으로
반세기를 넘어 전해진 마음 공부의 고전

1970년, 지난 100년간의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미국 땅에 동양의 낯선 스님 한 명이 찾아왔다. 티베트에서 온 초걈 트룽파(Ch?gyam Trungpa)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영적으로 매우 고양된 상태였다. 고성장에서 저성장 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물질주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정신적 기치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동양의 정신세계에서 더 깊은 삶의 의미와 전망을 찾고자 했다. 이런 시기에 미국에 정착한 초걈 트룽파는 불교의 가르침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성이란 무엇인지를 설파했다. 그는 깨달음마저 상품화하고 소비하려는 미국 사람들의 영적 물질주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명상을 통해 곧장 영성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 책은 1970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카르마 드종(Karma Dzong) 명상 센터에서 열린 초걈 트룽파의 강의를 묶은 것으로, 마음 공부와 영성에 관한 바른길을 찾는 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고전이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더욱 심해진 물질주의 세태와 영성이 유용한 돈벌이 수단 중 하나가 된 이 시대에 전하는 날 선 가르침이다.

영성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에고가 만들어내는 ‘나’라는 신화이다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이 책의 부제처럼, 우리는 영성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왜 그토록 영성이란 것이 성취하기 어려운 것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왜일까? 초걈 트룽파는 ‘에고(Ego)’가 거기에 이르는 길을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행이란 마음의 깨어 있는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연습이다. 깨어 있는 상태가 곧 ‘깨달음’, ‘영성’이며, 그것은 본래 우리 안에 있다는 게 불교의 관점이다. 단지 에고가 만들어내는 미망에 가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내면의 영성을 향한 우리의 눈길을 가리는 에고의 기술은 생각, 감정, 그리고 개념이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에고는 독립적이고 고정된 ‘나’라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생각하는 내가 ‘있고’, 감정을 느끼는 내가 ‘있고’, 세계를 인식하는 내가 ‘있다’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이렇게 에고는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리하고, 나 아닌 것 가운데 좋고 나쁜 것을 가려내 취사선택하게 함으로써 이분법적 태도로 삶을 바라보게 한다. 나와 동떨어진 깨달음과 영성, 세상이라는 관념 또한 이런 식으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나아가 에고는 진실을 보려는 우리의 마음 공부마저 도구로 삼아 우리를 거짓 영성에 빠져들게 한다. 저기 깨달음이 있고 네가 그것을 잡았다고,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너는 특별한 존재라고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에고가 꾸며내는 환상들을 물리치고 진짜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초걈 트룽파는 이 책에서 풍부한 일화와 예리한 비유로 그 답을 알려준다.

특별함이라는 환상,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

우리가 마음 공부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 중에 ‘특별함’에 대한 추구가 있다. 마음 공부를 통해 남들과는 다른,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깨달음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깨달음이나 영성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평범한 깨달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단번에 뒤집어버릴 초인적인 힘을 가진 깨달음을 상정하고 그것을 찾아 나선다. 특별한 깨달음이 생겨나면 뒤이어 그것을 얻기 위한 특별한 행위와 시도가 생겨난다. 세상과 떨어져 깊은 산중에 은거하거나, 엄격한 수행을 지속하거나, 특정한 종교적 도그마에 매달려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특별한 깨달음을 위해, 더 높은 의식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스스로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마음 공부하는 사람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하는 또 하나의 함정은 한번 찾아온 깨달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에서 비롯된다. 명상 수련 중에 깨달음을 맛본 사람은 그것을 특별한 체험으로 여겨 그 순간의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 놀라워라! 마침내 내가 해냈어”라며 자신의 경험을 값진 것으로 평가하고 영영 그것을 간직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움켜잡으려고 하는 순간, 깨달음은 현재에 살아 있는 생생한 체험이 아닌 과거의 기억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기기만의 게임이 시작된다. 더 이상 그것을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고 좋았던 시절, 추억으로 떠올리며 반복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참된 깨달음은 일상적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온전히 깨어 있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티베트 불교와 선불교의 가르침에서 ‘평범한 지혜’, ‘참된 평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마음 공부와 마음 수련이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과정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더 나은 것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일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지금 여기에 뿌리 내리지 않은 것으로 마음을 향할 때, 우리는 삶이 주는 영감(靈感)으로부터 멀어진다. 따라서 마음 공부는 언제나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깨달음과 마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최단 거리다.

무언가를 얻고야 말겠다는
에고의 기대를 비울 때 비로소 열리는 문

마음 공부 과정에서 스승의 존재는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다. 수많은 결길 가운데 바른길을 찾아가는 안목을 길러주고, 수련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헤쳐나갈 용기와 힘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스승을 우리는 구루(Guru)라고 부른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는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스승을 만나 그로부터 자신이 가진 모든 문제의 답을 얻게 되리라 기대한다. 스승을 나보다 높은 존재로 여겨 그의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그처럼 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스승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는 스승의 복제품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참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함께 영적인 길을 걷는 영적 친구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숨김없이 자신을 활짝 열고 서로를 마주할 때, 비로소 두 사람 사이에 통교(通交)가 이뤄지고 가르침의 전수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누군가 명성이 높다거나 많은 제자를 거느렸다고 해서 그를 구루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 그 사람과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스승을 향한 헛된 기대와 바람을 모조리 버리고,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로써 스승을 맞을 때 그가 가진 풍요로운 지혜가 우리의 본성과 연결되어 창조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또한 스승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무작정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검증해 봐야 한다. 스승의 영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기 삶에서 경험해야 한다. 그럴 때 가르침은 살아 있는 것이 된다. 깨달음과 영감이 그러하듯, 가르침 역시 우리 바깥에 있는 낯선 것이 아니다. 스승으로부터 이식받는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 아니다. 단순히 열린 자세로 서로의 본성에 직접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스승이란 활짝 열린 채 세상과 통교하는 자이기에 그런 스승과의 관계 맺음은 곧 곧 세상과 통교하는 일이 된다. 한 명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전체 우주가 우리의 구루로 확장되는 것이다.
개방과 열림은 무언가를 얻고야 말겠다는 에고의 기대를 비워내고 스스로 텅 빈 그릇이 되는 것, 그 빈 공간에서 삶의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그려지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 세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아우르며 그 모든 것에서 진실을 보려는 시도이다.

깨달음의 시작,
내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잘라라!

이 책의 원제는 ‘Cutting Through The Spiritual Materialism’이다. ‘Cutting’의 의미는 내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잘라내고 끊어내라는 것이다. 그러한 완전한 열림과 완벽한 포기에서 깨달음과 영성의 길은 시작된다. 에고가 표현하는 수많은 욕망, 마음 공부를 통해 초월적인 무엇인가를 얻으리라는 꿈과 희망을 전부 버려야만 갈 수 있다. 그런 삶은 어떤 것도 얽매지 않고 세계가 나를 관통해 흐르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불필요한 가치 평가와 판단 없이 세상과 물 흐르는 듯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자비와 사랑의 참 의미를 배우고, 그것을 삶에 녹여낼 수 있다.
진정한 자비와 사랑은 이편에 서서 저편과 맞서 싸우는 투쟁을 멈추는 일이다. 자비로운 사람은 애써 착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공연히 엄숙해지지도 않으며, 모든 때를 현재로 보며 살아간다.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행태의 게임들을 별것 아닌 시시한 말장난으로 본다. 에고의 요구와는 정반대인 이러한 태도가 에고 입장에서는 매우 폭력적이고 무자비해 보이지만,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하는 이유가 에고의 끝없는 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명상 수련의 목적이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누군가 명상을 통해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때, 그것은 현재와 주변 상황에 온전하게 깨어 있다는 말이다. 어느 것 하나 놓치거나 무시하는 일 없이 지금 이 순간을 꽉 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옹글게 사는 사람에게 일상은 흥미진진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선입견 없이 오롯이 현재를 살아가기에 매 순간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펼쳐진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일컬어 불교에서는 보살(菩薩)이라고 말한다. 보살은 용기 있게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들은 작은 돌멩이 하나에서 대지의 든든함을 보고, 꽃 한 송이에서 우주의 에너지를 느낀다. 자신의 본성, 자연, 인생의 모든 상황과 막힘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써 내일을 위한 씨앗을 심지 않는다. 언제나 지금을 산다. 보살처럼,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영성으로 들어서는 열쇠이자 우리가 찾는 영성, 깨달음의 전부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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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성의 길




티베트에 간 적이 있다. 네팔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는데 가는 과정 자체가 고행이다.

겨울에 갔었는데 눈이 엄청 왔다. 하지만 대륙 답게 하룻밤에 눈을 다 치웠다.

야크티를 마시며 고산병을 극복하며 티베트 수도 라싸에 도착했다. 영적인 도시. 하지만 중국의 지배로 뭔가 억압받는 느낌이었다.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인도에 망명 정부를 세운 이후, 티베트에서 더이상 승려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종교적 탄압. 너무나도 평화로운 사람들. 단지 지리학적 위치 때문에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슬픈 나라.




<마음 공부에 관하여>의 저자도 티베트 승려다. 초걈 트퉁파는 1940년 티베트 동부 카암 지방에서 태어났다.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을 때, 초걈 트퉁파는 인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달라이 라마부터 영적 지도자로 임명되어 영라마스쿨에서 젊은 라마승들을 가르쳤다. 1963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스코틀랜드에 삼예링 명상 센터를 설립했다. 1969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인생을 불교를 가르치는 일에 바치기로 한다. 법복을 벗어 던지고 일반인 신분으로 불교의 진리를 전하기 시작했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영적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참된 영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설파했다. 100개 이상 명상 센터를 설립, 샴발라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1974년 나로빠 연구소를 설립 불교대학으로 승인되었다.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1986년 캐나다에서 타계했다.




다양한 예시를 들며 불교 가르침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 공부란 단순히 구루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전수는 영적 친구와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상대하고 그들에게 곧장 가까이 가는 데서 이루어진다.(73쪽) 열린 길을 발견하기 위해, 먼저 자기 기만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위빠사나 명상원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위빠사나는 어떤 행동이 발생하게 되는 분위기를 함께 보는 것이라고 한다. 한 가지 상황을 좁은 폭에서 보면 좀 더 넓은 폭에서도 보게 된다. (203쪽)

책이 쉽지는 않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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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제비 2021-04-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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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불광출판사
초걈 트룽파 지음
이현주 옮김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마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선택했는데 책을 선택한 이유가 너무 웃기다. 스티븐 잡스가
삶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영혼의 책이라는 문구에 시선을 끌려서 두말도 않고 잡았다.
마음 공부라는 것이 남의 이름값으로 공부가 되는 것일까 하는 웃기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일단 시작했다면 미치는 게 좋다.

마음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볼수 있다. 어설프게 시작한 마음 공부는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든다.
읽으면서 이것이 맞나? 실제없는 가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를 믿는 것이 있다면 더욱더 쉽게
다가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고 있어서 인지 마음이 더 흔들흔들하다.
마음 공부가 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시작했다면 미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영 미치는 쪽으로 들어서기보다는 의심으로 마음을 채운다.
- 진정한 전수는 '두 마음의 만남'에서 이루어 지는거예요. 당신과 영적 친구가 피차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전수가 실현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만 전수가 이루어질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식
수술을 받는다든가 자신을 몽땅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은 철저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공부라 하면 힘들고 어렵고 딱딱한 호된 공부의 시간이 지나면 편안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상황이 올것 같지만
그러 상황에서 유머는 필요하다. 유머 감각이란 시도 때도 없이 경박하게 우스운 소리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 공부라는 것이 그러게 힘들고 버거운것이라면 어느 누구 하려고 하는 것인가 유머는 경박한것이아니라 삶의 윤활제
같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존재하는 것들이 본래 별것 아님을 알고 거기에 맞추어 일하면, 만사를 근엄하게 대하며 일마다 거창하게 흥정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웃기고 있는지가 당신 눈에 들어고기 시작할 것입니다.

티베트의 스님으로 존경받는 스님 초감 트롱파 태어난지 13개월 만에 환생한 스승으로 인정받았다는 한다.
믿는것은 자유 하지만 믿었다면 끝까지 간다. 여러곳에서 공부를 많이 하셨고 이 책은 1970년에 미국 카르마
드종 명상 센터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갔네, 갔네, 넘어갔네, 완벽하게 드러났네, 깨어나거라, 깨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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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팅이 2021-05-2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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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마음 공부와 영성에 관한 바른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고전'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공부를 하려고 한다. 욕심으로 뒤덮힌 나를 보며, 덕지덕지 붙어버린 욕망을 털어내버리려고 한다. 벼락거지가 되어 버린 현실에 불안하며, 나의 미래는 대체 어떻게 될까?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다가 이마저도 불행임을 깨닫고 마음공부를 하려 하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이 책은 1970년 가을부터 시작된 마음공부 강의를 묶어둔 것이다. 티베트 스님이자 존경받는 영적 지도가, 예술가로 알려진 초걈 투룽파 스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주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그는 17년간 세계 여러 곳을 오가며 강연을 펼쳤으며, 100개가 넘는 명상센터를 건립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그는 전 세계 불교의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도 불교의 진리를 전파하고 있다.


'영성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에고가 만들어내는 ‘나’라는 신화이다'


스님은 말한다 과연 우리가 그토록 많은 마음 공부를 함에도 왜 이다지 괴롭기만 한건지 말이다. 그것은 자아를 가리키는 '에고(Ego)'라는 것 때문이라 한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개념. 이 세 가지 때문에 '나'라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분법적인 사고가 생기고, 그에 따라 사리사욕이 생기게 된다. 그것이 곧 욕심으로 이어지고, 나를 괴롭게 한다. 그것을 물리치지 않고서 마음 공부나 영적 수행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밥 먹을 때는 밥을 먹고 잠잘 때는 잠을 잡니다.”


그는 말한다. 결국 우리가 찾는 참된 깨달음은 어떤 '특별함'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평범함'이라고 말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경험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찾는 그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나라는 '에고(Ego)'를 버리고 텅 비워내는 것, 그 위에서 다양하게 모든 것이 펼쳐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도 알겠지만 여전히 어렵다. 나는 일개 중생일 따름이고, 세상의 기준에 여전히 흔들린다. 내 주체가 없는 삶인 것 같아 자책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해보아야 겠다. 그가 말했듯, 내 일상에서부터 하나씩 찾아나가겠다. 좀 더 평화로워지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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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dugi 2021-04-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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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마음 공부에 관하여는 “위선과 자기기만으로 교묘하게 무장한 에고의 세계를 잘라내는 칼날 같은 지혜가 숨어 있다.”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티베트 스님이며 존경받는 명상가, 영적 지도자,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초걈 트퉁파가 전하는 마음공부는 1970년 가을에서 1971년 봄까지 콜로라도 볼더에서 계속된 강의 내용을 묶은 것입니다. 이강의에서는 먼저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영적 물질주의에 스스로 빠져들어 가는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자기기만의 여러 모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마음 수련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주 미묘한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그냥 순진하게 뛰어드는 어떤 게 아니에요. 일그러지고 뒤틀린 자기중심적 마음 공부로 빠지게 하는 곁길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몇 가지 수련 방법을 사용해 결국은 자기중심성을 키웠으면서도 스스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p12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나’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철학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가르침과 하나가 되어 가르침 자체가 되기를 실제로 원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에고를 버리라고 하면 우리는 에고를 버리는 시늉을 합니다. 근사한 행동을 하고 적당한 몸짓은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조금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p27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마음 수련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펜데믹이 장기화 되면서 흔들리는 나약한 마음을 독자 스스로가 수련하기에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불광출판사에서 지원해 주신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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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북 2021-04-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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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에 관하여




마음공부에 관하여



현대인들은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고 있다. 비단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만 그러할까?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금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상처보다 스스로에게 가하는 상처가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자동차운전은 서로에게 양보, 배려가 없으면 큰 흉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양보나 배려는 없고 오히려 보복운전이 날로 증가하니 세상이 갈수록 흉폭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마음의 병이 깊어 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불교를 통한 마음공부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초감 트룽파 티벳출신의 영적지도자의 [마음공부에 관하여]는 일상의 삶에서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전통 불교수련뿐만 아니라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해 전통과 현대문화를 두루 섭렵했다.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영적 수련 전파에 공을 들여 서양세계에 불교를 전한 중추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마음공부에 관하여]는 그가 1970년 미국 명상센터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혹자들은 1970년이면 지금과 시간적으로 너무나 먼 과거의 내용이 아닌가? 고도로 발전된 현대사회와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의 마음은 그때보다 더 많이 병들어 있는 지금 상황에 더 어울리는 글이 아닐까 여겨진다. 우리들이 안고 있는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병은 그 근원에서 풀어 내지 않는 한 더욱 깊어질 것임을 우리들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강의의 내용에도 있지만 강의 말미의 질의, 응답에 있다고 여겨진다. 물질적 풍요에 익숙해져 과연 마음공부가 필요할까? 의문을 가진 이들의 질문은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 그 근원을 유추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그 어느 시기보다 풍요로워졌을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마음은 깊이 병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는 요즈음 마음의 평안을 위해 읽어봄직하다.

알라딘: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알라딘: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현주 (지은이)삼인200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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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8,000원
양장본372쪽



[절판] 이현주의 동양 고전 읽기 세트 -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이아무개의 장자 산책, 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

책소개

1996년에 출간된 <장자 산책>을 다듬고 보완해 펴낸 개정판.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총 33편으로 이루어진 <장자> 중에서 내편만을 다루었다. 기독교와 불교 등의 종교를 넘나들며 <장자>가 다양한 종교.사상 등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를 살폈다.

장자와 예수, 석가뿐만 아니라 책은 노자, 공자, 간디, 아퀴나스, 소크라테스의 텍스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또한 지은이는 장자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인간 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며, 허위의식에 대한 저항, 평등 사상 등의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풍자와 비판, 역설과 우화로 이루어진 <장자>를 만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소요유(逍遙遊)
1. 붕이 남으로 날아감
2. 요가 천하를 넘겨주고자 함
3. 혜자와 장자의 대화

제2장 제물론(齊物論)
1. 하늘 소리 이야기
2. 몇 가지 문답 이야기
3. 나비 꿈

제3장 양생주(養生主)
1. 중정을 따름
2. 포정의 소 잡기
3. 공문헌과 우사의 문답
4. 노담의 죽음에 문상함

제4장 인간세(人間世)
1. 안회와 중니의 문답
2. 섭공과 중니의 문답
3. 안합과 거백옥의 문답
4. 장석과 역사의 문답
5. 남백자기와 큰 나무
6. 꼽추 지리소
7. 접여의 노래

제5장 덕충부(德充符)
1. 상계와 중니의 문답
2. 신도가와 자산의 대화
3. 중니와 숙산무지의 대화
4. 애공과 중니의 문답
5. 사람한테 본디 정이 없는가?

제6장 대종사(大宗師)
1. 진인론
2. 남백자규와 여우의 문답
3. 자사와 그의 벗들
4. 틀 밖에서 노니는 사람들
5. 맹손재가 초상을 치름
6. 의이자와 허유의 문답
7. 좌망에 들다
8. 자상의 명

제7장 응제왕(應帝王)
1. 설결과 포의자의 문답 외
2. 열자와 호자의 문답
3. 마음 쓰기를 거울같이
4. 혼돈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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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혜자가 다시 묻는다.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그 몸뚱이는 유지하고 있는가?

장자가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한다.

'도가 그에게 인간의 얼굴을 주었고 하늘이 그에게 인간의 꼴을 주었다!'

그런데 어찌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돌은 돌이니까 돌이요 꽃은 꽃이니까 꽃이다. 부서져서 흙으로 될 때까지 돌이요 썩어서 흙으로 될 때까지 꽃이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사람이요 죽어서 다른 몸으로 바뀔 때까지 사람이다. 다만 자신의 변덕스런 감정에 사로잡혀 제 몸에 상처를 입히지 말 일이다.

끝으로 장자는 말로써 말만 많고 되는 일 하나 없는 이 땅의 모든 혜자에게 아픈 말 한마디 던진다. '시방 자네는 자네 몸 바깥에 정신을 쏟아 정기를 고단하게 하고 그 결과 나무에 기대어 헛소리나 중얼거리다가 책상에 기대어 졸고 있으니, 하늘이 그대를 사람으로 지으셨거늘 어찌 궤변 따위나 늘어놓고 있단 말인가?' - 본문 251~252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현주 (지은이) 

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그리스도의 계시들』 등이 있다.
최근작 :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 (양장)>,<부모 되기, 사람 되기> … 총 269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씀 단상>,<바이러스에 걸린 교회>,<헌법 위의 악법>등 총 263종
대표분야 : 한국시 26위 (브랜드 지수 21,38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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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대포 한잔 걸치고 싶은 친구, 장자와의 산책...

다시 장자를 읽는다. 이현주 목사의 장자 산책을 옛날 책으로 읽을 때는 좀 짜증났더랬는데(너무 구판이어서) 이번 책은 산뜻하게 예쁘다. 요즘 책들이 쓸데없이 두껍고 종이 질이 좋으며 비싸다는 비판적 기사가 엊그제 난 적도 있지만, 이런 고전들은 좀 두툼한 종이로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고전이니까...

이번 읽기에서는 <장>별로 생각을 모아 가며 읽으려고 노력했다.

1장. 소요유. 소요한다는 말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빈둥거리며 느릿느릿 다닌다는 말이고, '놀 유游'자도 특정한 목적없이 즐기며 마음 편하게 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생 짧은 데 그리 아둥바둥 살 필요 있나, 젊어 노세... 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을 <옳음>에 얽매고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건 아닐세~하는 장자 영감의 눙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은 '이용 가치'가 아닌 '존재 가치'로 봐야 한다. 교육을 '인적 자원' 관리라고 보는 정부는 나쁜 정부다. 나를 버리고, 공을 버리고 이름을 버려라. 이런 말은 금강경에서도 숱하게 만난 말이 아닌가.
우리의 성모님, 어디에서 죽어가는 당신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 아, 이런 말들이 이아무개 님의 글로 읽는 고전의 맛이다. 무하유의 고향을 말하면서, 피폐해지는 인간 존재를 사랑하는 하나님, 성모님, 하눌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는 기쁨. 나는 행복하다.

2장. 양생주. 양생은 말 그대로, 웰빙이다. 그런데, 우린 너무 육체의 웰빙에 얽매인다. 텔레비전에 무슨 비타민 어쩌고 하는 것들은 몽땅 육신의 양생만을 추구한다. 물질의 양생은 결국 웰빙보다는 부유함을 추구하게 된다. 지나쳐도, 결핍되어도 병이 되는 것이 바로 비타민이다. 중도, 중정, 중용을 지키는 것, 그것이 양생이다. 웰빙은 결코 돈이 많아 '잘사는 rich' 경지가 아닌 것이다.
야생의 새는 아무리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도 새장에 갇히려 하지 않는다. 인간도 야생의 새가 되어 '육신의 웰빙', '물질의 웰빙'이란 감옥에 갇히지 말고 먼 하늘을 날아야 할 거다.

3장. 제물론. 온 세상이 잡다구레한 물질로 가득하다. 일 주일도 되기 전에 재활용되지 않는 재활용 쓰레기들은 가득 생산된다. 부끄럽다. 사물을 가지런히 하라... 세상을 가지런히 하라... 그 근본과 가지끝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물과 자신을 떼어 놓지 않을 수 있으련만...
자기를 잃는 일, 그것을 상아 喪我, 또는 좌망 坐忘이라 한다. 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지. 곧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내는 것.
근본을 알고 끝을 아는 사람은 '덕'이 뿌리요, '다스림'은 가지 끝임을 안다.
흐르는 물에 있으면서 젖지 않는 달의 경지, 빛을 옴기면서 빛에 물들지 않는 허공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초연한 참여를 읽는다. '物'에 젖지 않는 경지를 만난다. 모든 '물'은 저를 있게 한 <하나>를 모신다. 하나님, 한울님, 예수그리스도...

4. 인간세. 엊그제 한 수학자가 법관을 석궁으로 쏘아 죽이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법관이 대학측의 손을 두 번이나 들어줘서 한 수학자의 생을 망쳐놓았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법관을 수학자가 처벌해 버렸다. 마치 일본의 추리소설 줄거리 같다. 인간에게 '지식'과 '이름'은 흉기다.
우리의 교묘한 언술과 몸짓, 그 깊은 곳에 숨어있는 명예와 이익을 향한 탐심,을 백일하에 드러내어 마음을 닦고, 텅 비게 하기 위해 <장자는 유가를 비판>한다.
수학자처럼 석궁을 쏘고 싶은 일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독재자나 살인마, 사소하게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이들에게도 석궁의 욕망은 들끓지 않는가. 그렇지만, 장자는 툭 던지는 말로 마음의 팽팽한 줄을 툭, 끊는다. 물론 석궁은 발사되지 않겠지.
서로 해치고, 당하는 세상을 사는 법 : 거울의 마음, 배웅도 마중도 하지 앟으며, 응하되 간직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물을 이기면서 상하지 않는다. 아상을 버리고, 공명심을 버리라... 무아, 무공, 무명... 결국 마음을 다스시는(심재 心齋) 길. 뜻을 한 곳에 모으고,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감각에 얽매이지 말고 氣로 들어라.
세속을 떠날 것 아니고, 세속 한가운데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삶. 아멘, 소리가 나게 만드는 아무개님의 글. 연못의 더러움에 뿌리내리되, 오히려 아름다운 연못으로 피어야 하는 인간 세상.
사마귀는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호랑이 조련사는 상대에 맞는 수단을 쓰지 못했고, 마부는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다가 망신하고 몸을 버린다. 하, 살기 어렵다. 인간 세상은...
다른 누구에게 "쓸모"가 되려고 안달하지 말고, 하늘이 준 생존의 길을 좇는 참사람이 <신인의 나무>가 되어 오래 견딜 수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비정한 세상. 그 신인은 천수를 누려 가늘고 길게 삶을 다하는 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자재한 삶을 논한다. 지리소는 병신이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에 끌려나가 죽지도 않았고, 그의 열 식구를 너끈히 먹여 살렸다. 인간들아, 인간아, 글샘아, 누가 병신이냐?

5. 덕충부. 덕이 가득하면, 덕이 가득 차야 겉으로 드러난다. 덕은 껍데기에 있지 않다.
장자는 <공부>를 감각과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속의 굴레를 벗은 자유인으로 세속 한복판을 당당하고 의연하게 걷는 길을 찾는 것, 으로 본다.
무위당 선생님 꿈을 꾼 이아무개 씨. 곧장 들어가... 문자로는 안 돼... 문자에 빠지지 말어... 마음을 잡어... 마음을 항복시키라고...
못생겼는데, 왜 사람이 끓느냐... 애태타를 바라 보라.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남들을 제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꾀하지 않고, 깎아내리지 않고, 잃지 않고, 사고 팔지 않는 하늘처럼 사는 사람에겐 주변이 끓는다.

6. 대종사. 큰 꼭대기가 되는 스승님. 그를 지인, 신인, 성인이라 한다. 거울처럼, 하늘처럼... 물처럼...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도에 더 가까운 이가 마땅히 스승이어야 하거늘, 나로 하여금 바라건대 자네 뒤를 따르게 하라...(이 책은 가끔 이런 말들과 게송, 싯구들로 가슴을 따스하게 한다.)

7. 응제왕. 제왕에게 응답함. 어떤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인가. 다시 소요유를 반복한다. 무기, 무공, 무명...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그 이름, 하느님 아버지일 따름.
마지막의 혼돈의 죽음은 인간의 '함 爲'이 얼마나 작은지 본다.

장자를 읽는 일은, 장기판에서 움직이는 말을 <훈수두는 눈>으로 보는 일이요,
싸움판에서 흥분한 두 사람에게 <심판>을 서는 일이며,
야단치는 시에미와 당하는 며느리 사이에서 말리는 <시누>의 눈을 갖는 일이다.

얄밉게도 세상에서 조금 비스듬하게 서 있으면서도, 그 자리가 세상 바라보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란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너 죽을래?'하면서 쫓아오며 시비거는 사람에게 아큐정전의 '아큐'는 <정신적 승리법>으로 대응한다.
실컷 밟힌 후에 '난 똥이야, 넌 똥을 밟은 거야. 재수 없게도...'하는.

아큐는 어리석지만, 장자의 이야기도 시비에 맞대응하지 않고, <정신적 승리>를 바라본다.

장자더러 아큐라고 하면, 글쎄, 꿈속에서 나비였더랬는데, 이제 그 나비가 나냐, 아큐냐?하고 웃으려나?

장자같은 남자라면, 이런 허풍쟁이라면, 같이 대폿집에서 푸지게 막걸리 한잔 걸쳐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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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1-17 공감(4)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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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좋은 의미 일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명예라는 인간 탐욕의 한 방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옛 사람들 중이 백성의 피를 빨아 먹었던 자들이 임지를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비(碑)'를 세웠던 일들을 있었다. 백성을 착취한 자들이 이름까지 착취하는 탐욕이 나은 결과다.

 
좋은 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을 탓할 필요가 없지만 좋은 책을 내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가 있으니 '이 아무개'다. 그가 쓴 <이 아무개의 장자산책>(삼인 펴냄)을 손에 드는 순간 멈칫한다. '이 아무개?' 아무개라는 이름이 있나 의문이 들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 아무개는 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이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과 따끔하고도 넉넉한 말씀으로 많은 이들을 품어주는 이현주 목사임을 알게 된다.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1996년에 나온 <장자 산책>을 새로 다듬고 보완한 개정판이다. <장자>는 장주의 저술로 내편 7, 외편 15, 잡편 11편인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장자 사상의 정수이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내편>을 다루고 있다. 

 

사실 <장자> <도덕경> <사서오경>을 접할 때마다 지식 정보화 시대에 2500여 년 전 중국 철학가와 사상가들이 남긴 글들을 읽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할 것 같은 <장자>를 읽는 것은 시간이 낭비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젖은 이들에게 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연이 바람 타고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은 그 줄이 땅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줄이 풀어지거나 끊어지면 연은 곧장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장자의 생각이 수천 년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은 까닭은 그 뿌리가 대지에 든든히 박혀 있기 때문이요, 근본을 붙잡은 그의 생각을 울가 잃은다면 21세기 눈부신 컴퓨터 문명도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고 말 것이라고."(10쪽)

 

사실 <사서삼경>과는 달리 노자와 장자는 1명이 읽었다면 얼굴이 하나이고, 100명이면 100개, 100만명이면 100만개의 얼굴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얼굴로 다가온다. 우리는 여기서 <장자>라는 텍스트가 절대 진리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신의 삶의 정황에서 치열하게 벼려진 거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실용주의가 나은 병폐는 심각하다. 이익만 되면 무조건 좋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우리 시대다. 그러니 인간에 대한 존중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자본이 낳은 탐욕에 팔아버렸다. 이럴 때 2500여 년 전 <장자>를 통하여 오늘 우리 자신들이 빠져 버린 탐욕과 존엄성 훼손을 극복하는 일이 필요한 시대임을 분명하다.

 

이아무개 목사는 <장자>를 통하여 기독교와 불교 등을 오고간다. 장자가 어떻게 세상의 종교와 사상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장자와 기독교, 불교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텍스트에서는 서로가 다른 진리가 아니라 소통하고 있음을 말한다.

 

"'나'라고 하는 물건 하나 없애버리면 너 있는 자리가 곧 새 하늘 새 땅이요 네가 곧 곤이요 붕이요 남명이요 북명이요 9만 리 창공이요 회오리바람이라는 얘기다."(17쪽)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 곤과 붕은 부처, 남명과 북명은 장자다. 이아무개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나’라는 관념에 예속된 사람과 그것을 벗어난 사람의 모습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우리는 공(功) 다툼 때문에, 자기 이름 내기에 바쁘다. 이런 때에 '나'를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부질 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길이다. 이아무개 목사는 이렇게 장자와 예수, 석가뿐만 아니라 노자, 공자, 간디, 아퀴나스, 소크라테스를 서로 불러모아 대화한다.

 

<공자> <맹자> <논어> <대학> <중용> <금강경> <산해경>, 조선의 선시, 수사(修士)의 글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진리와 인간 자신, 자연을 알기 위하여 끊임없이 내 놓았던 텍스트를 통하여 그들이 무엇을 뚫고 나아가려 했는지, 무엇이 같고, 다른 지를 <장자>를 통하여 말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시대는 죽은 시대다. 자연을 이해하지 않는 시대는 죽은 시대. 실용을 통한 이익 창출이 지배하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말하고, 학문을 말하고, 문학을 말하는 철학, 어문학, 인문학, 기초학문은 이미 대학에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이웃이 강도를 만나도, 도와주지 않는다.

 

자연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이익의 도구인 이용가치로 평가하면서 결국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파멸로 가고 있다고 이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미명 아래 힘을 통하여 지배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음을 말한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파멸을 향한 지구의 운명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연에서 '힘'만을 볼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보아야 한다. 예술과 종교가 새로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나무 한 그루를, 자르고 켜서 침대로 만들 재목으로만 볼 게 아니라 더불어 노닐며 생사를 함께 할 '이웃'으로, '어미'로 보아야 한다."(51쪽)

 


자신을 장사 지내는 것, 버림, 완전히 여읜 상태를 독일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 에크하르트(M. Eckhart, 1260~1328)는 '무심'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어디에도 연루되어 있지 않음'으로 '초탈'이라고 이 아무개 목사는 말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로부터의 초탈이야 말로 사랑, 겸손, 자비보다 고귀한 최선, 최상의 덕임을 강조한다. 이것이 최상의 덕이지만 가지는 것에 매어 달리니 사랑과 겸손, 자비는 찾아 볼 수 없다.

 

초나라 때 미치광이 접여(接與)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시들어가는 덕을 어찌하겠느냐? 앞날은 기대할 수 없고 지난날은 돌이킬 수 없도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이 그것을 우리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자기 목숨 살아갈 따름이니 시방은 겨우 형벌이나 면하는 게 고작인 세상.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땅에 금 긋고 그 안에서 허둥대는 짓거리.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잘리우고 옻나무는 쓸 데가 있어서 베어지네. 사람이 저마다 쓸로 있음의 쓸모는 알면서 쓸모없음의 쓸모는 모르는구가."(200쪽)

 

모든 것이 썩어 무너진 세상이라는 말이다. 입신양명과 출세, 탐욕만을 위하여 나무를 베어내고, 자연을 버리고, 생명을 버리는 세상을 향한 장자의 일침이다. 가난하고, 비천한 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장자 사상의 핵심을 볼 수 있다.

 

이름이 나면 높아지고, 높아지만 탐욕이 생기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마는데 우리는 이를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 광우병을 보라, 대운하를 보라. 영어몰입교육을 보라. 파멸에 이르는 길이지만 그것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책 읽는 것조차 대학입시와 연관시키는 우리 시대에 <이 아무개의 장자 산책>은 분명 돈 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실용과 탐욕에 찌든 우리가 <장자>를 통하여 무심과 비움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땅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인간과 함께 만물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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