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2

한국 기독교 교파, 교단, 교리의 차이



질문 1) 기독교 교파간 교리의 차이 -1





기독교의 교파

기독교는 세계 2만여 개의 분파가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약 200~250개의 분파가 있다.

주요 교단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뉜다.

정교회 : 정통보편교회(Orthodox Catholic Church)라는 뜻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친교를 이루고 있는 교회들로 이루어진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 : (로마에 있는) 보편교회(Catholic Church)라는 뜻으로 로마 주교, 즉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지역 교회들로 이루어진 교회. 천주교라고도 한다.




개신교 : 1517년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여러 교파를 총칭한다.




루터교 :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신학을 추종하는 개신교의 한 교파. 영어로는 “Lutheran Church”이다.




장로교(개혁교회) : 울리히 츠빙글리와 장 칼뱅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시작된 개신교 교파이다. 종교개혁 시기에 등장했기 때문에,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도 한다.




침례교 : 1609년 존 스마이스에 의하여 시작된 개신교의 한 교파. 물에 잠기는 침례를 신약성서에 명시된 세례예식이라고 가르치며,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침례만이 옳은 세례라고 가르치고 시행하는 교파이다.




감리교 : 1729년 영국 성공회 사제 존 웨슬리 신부에 의하여 출발한 개신교 교파이다.




오순절 교회 : 20세기 초반 성령 운동을 통해 생긴 기독교 교파이며,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에서 성장하고 있다.




기타 :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퀘이커, 하나님의 성회, 여호와의 증인 등 각 교파들은 크고 작은 교리상의 차이점들을 보이는데, 그 정도가 심하여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되기 이전의 신앙고백들인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경 등의 내용과 차이가 있는 내용을 교리에 담고 있다면, 그 교파는 기독교내의 기존 교단에서 이단으로 간주된다. 각 교파 사이의 신자들의 실질적인 영성 및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찬례에 대한 견해의 차이 즉, 영성체 신학의 차이에서 초래되는 것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위키사전 편집한 내용]




http://cafe.daum.net/ccm2/MCH1/6?q=%B0%B3%BD%C5%B1%B3%20%B1%B3%C6%C4%B0%A3%20%B1%B3%B8%AE%C2%F7%C0%CC&re=1 참고



















기독교 교파와 교단에 관한 이해-2




기독교에 많은 교파가 있지만 이단이 아닌 이상 기독교로서의 공통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간이 되는 교리는 삼위일체론, 처녀잉태, 구속, 부활, 재림 등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교파들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예배의 형식이나, 성만찬에 대한 견해, 교권체제, 신조, 신학적 바탕 등에서 조금씩 다릅니다.




a) 장로교 (長老敎 Presbyterian)




칼뱅의 신학(神學)과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성립한 그리스도교의 개신교 교파.




장로란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감독(bishop)·장로(elder) 등과 같은 의미로, 장로교는 이러한 장로들에 의해 치리(治理)되는 교회를 말한다.

창시자는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칼뱅(Jean Calvin)으로, 그는 16세기 중엽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회제도를 확립하였다.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1559년에는 프랑스에서만 2,000여 교회가 장로제도를 채택하였고, 이어 네덜란드·스코틀랜드에서도 많은 장로교회가 생겨났다.




특히 스코틀랜드는 1560년 이후 장로교회를 국교회로 지정해 이후 잉글랜드와 미국으로 전파하는 데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660년 청교도혁명이 끝나고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뒤 잉글랜드에서는 세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세계 장로교의 규범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요리문답, 헌법·예배지침 등을 청교도혁명 기간에 마련했다는 점에서 장로교 역사상 중요한 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706년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노회가 조직되고, 1789년에는 최초의 장로교 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노예문제·신학·전도방법 등의 이견으로 여러 교단이 출현하였는데, 신학·교리 등에는 차이가 없었다.

18세기 이후 미국 장로교회는 아시아·아프리카 등 해외선교에 앞장서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함으로써 장로교의 세계화에 이바지하였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선교가 이루어지기 시작해, 1882년(고종 19) 《누가복음》《요한복음》이 번역 출간되고, 1907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1912년에 총회가 창설되었다.

세계적인 장로교 연합단체로는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이 있고, 세계 장로교 총 교인수는 약 5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b) 감리회 (監理會 Methodist Church)




1729년 영국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에 의하여 시작된 그리스도교 교파.




옥스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그리고 G.휘필드등의 대학생 그룹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들은 신성클럽(Holy Club)을 조직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데 규칙적이면서도 조직적으로 행동하여 메서디스트(Methodist:格式主義者)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성경 및 신학 연구 등에 힘쓰고, 빈민과 병자, 감옥의 죄수들의 전도에 힘썼다.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들이 모인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집회소에 참석하여 오후 8시 45분경 인도자가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의 로마서(書) 서문을 읽을 때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이 회심의 사건은 존 웨슬리의 생애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고, 감리회의 구원·신앙·성결의 교리를 설명해 주는 산 증거가 되었다.

원래 존 웨슬리는 고교회파(高敎會派)로서 영국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독자적인 운동을 하였는데, 영국교회에서는 그의 교회 내 설교를 금하였으므로 야외설교의 방법을 택하여 그 운동은 점차 확대되었다.




1744년 존 웨슬리는 메서디스트파 신자들을 런던에 모아놓고 전도사업 방침에 대하여 협의하였는데, 이것이 곧 감리회의 최초의 연회(年會)이다. 이때까지도 존 웨슬리는 영국교회와 분리하려는 뜻은 없었고 교회에 속한 채 전도하려 했지만, 1784년 런던 감독에게 미국으로 파견할 선교사를 안수하여 주도록 청하자 감독이 거절하므로 그 자신이 안수를 베풀어 T.코크 박사를 미국의 총감독으로 삼고

그 밖에도 몇 사람에게 안수를 주어 목사로 세우니 이때부터 감리교회는 실제적인 한 교파를 이루게 되었다.




감리회의 발전은 교구제도와 경건한 신앙을 고수하는 데 있었다.

존 웨슬리의 인격 ·조직력 ·지도력, 그리고 야외설교 ·평신도설교 등 꾸준한 복음활동 및 엄격하고 규율적인 생활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1791년 존 웨슬리가 서거하였을 때의 교세는 영국 전역에 확장, 잉글랜드를 본거지로 하였던 감리회 부흥운동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이르렀고 미국에서는 휘필드의 주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조직의 기본단위는 구역이며, 그것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교회로 조직된다.

구역들은 지역적으로 지방회를 조직, 감리사가 피차 협동하여 교회조직과 사업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지방회는 다시 더 큰 집단을 형성하여 연회를 조직하며, 연회는 감독이 관할한다. 그리고 최고기관인 총회가 있다.




감리회 교리는 사도신경 속에 제시된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앙에 근거한다.

감리회의 특색은 교리보다도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라 하겠다.

사랑에 의하여 구현되는 신앙과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며 이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신학적 이론을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감리회에는 모든 신도가 각기 행하지 않으면 안될 규율, 곧 규범이 있고, 25개조의 종교강령이 있으며, 이것은 감리회의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감리회 전도방법의 특색은 부흥설교를 통한 전도와 평신도를 통한 개인전도 및 심방전도이다.

감리회의 신앙과 교리는 존 웨슬리가 발표한 25개조의 종교강령과 그의 53개의 ‘표준설교’, 그리고 그가 지은 신약성서 주석에 잘 나타나 있다.







c) 침례교 (浸禮敎 Baptists)




자각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시행하는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특히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원리(聖書原理) ·침례 ·만인사제(萬人司祭), 각 교회의 독립,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을 강조한다.

영국의 청교도(퓨리턴)의 여러 파 가운데 하나로 생겨났으며, 창시자는 J.스미스(1554?∼1612)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교직자로 1608년 국교회의 압박을 피하여 동지들과 함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는데, 그 중 T.헬위스와 몇몇 동지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1612년 침례교회를 창설하였다.

아르미니우스파(派)의 입장을 취한 일반침례파와 칼뱅적 입장에 선 특수침례파의 구별이 있다.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크게 퍼져서, 현재 미국 최대의 교파를 이루고, 대소 27개의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는 1890년 캐나다의 M.위크 선교사가 입국하여 함남 원산(元山)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한 것을 효시로 하여, 1905년 제1회 총회를

가지면서 보급되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총회'와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총회'의 두 그룹이 있었다.




두 그룹은 1959년 '한국침례회연맹'으로 통합하였고, 1969년 재단법인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 유지재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침례교는 미국에서 카톨릭 다음으로 큰 교단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목사, 안수집사, 교사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침례교회는 독립적, 자율적인 면을 중요시 하여 총회나, 연회 등을 두지 않고 '친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d) 성결교 (聖潔敎 Holiness Church)




1901년(광무 5) 2월,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OMS) 소속 선교사인 C.E.카우만과

E.A.킬보른(한국명 吉寶倫)에 의해 세워진 프로테스탄트의 교파.




장로교·감리교와 함께 한국에서는 3대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하나이다.

감리교 목사인 이들 선교사는 일본의 도쿄[東京] 간다구[神田區]에 동양선교회 전도관을 세우고 일본인 목사

나카다[中田]의 후원 아래 동양일원의 선교를 시작하였다.

교육에 힘쓰라는 선교회 본부의 지시도 있었으므로 전도관 1층에 성서학원을 개설, 성경 ·신학 등을 가르쳤다.




한국인 유학생 김상준(金相濬) ·정빈(鄭斌) 등이 이 학원에서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자 1907년 염곡(鹽谷:현 무교동)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마련한 것이 한국성결교의 효시이다.

1911년 이명직(李明稙)·이명헌(李明憲) 등 5명이 동경성서학원을 마치고 귀국, 안수를 받고 장로사(長老師:순회목사)

가 되어 선교사들의 후원 아래 아현동 고개 위에 새로이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의 전신)을 열면서 본격적인 목회자 양성과 노

방전도(路傍傳道) 등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21년 9월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愈)·재림(再臨)의 사중교리를 내세운 ‘기독교동양선교회-

성결교회’가 탄생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문제로 수백 명의 성직자 ·신도들이 수난을 겪고, 교단이 강제 해체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 한국 교계를 휩쓴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문제를 둘러싸고 교단이 분열되기 시작, 현재는

두개 교파로 나뉘어져 있다.




* 교권체제: 총회-지역총회-지방회-개 교회




e) 루터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창립된 가장 오래된 기독 교회




16세기 카톨릭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의 신앙적, 신학적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루터의 대소교리 문담(1529),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1530), 슈말칼트 신앙개조(1580), 콘코드의 신조(1580)를 신조로 삼았습니다.

루터교는 이들 신조들 외에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안 신조를 고백합니다.




교리적 특징은

1) 이신득의 강조

2) 성찬은 은혜의 방도가 된다.

3) 세례에 의한 중생

4)유아세례는 정당하며 합당하다

5)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성에 부여된 것

6)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있지만 구원은 만민에게 보편적




한국에서 루터 교회는 문서선교를 통해 확산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학하고 들어온 지원상 목사를 중심으로 컨콜디아사를 통해 문서선교를 하고 방송(루터란 아워)을 통해 선교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루터교회는 그리 큰 교단은 아니지만 베델성서교육을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기독교 한국 루터회(http://www.lck.or.kr/)입니다.

오늘날 독일과 북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는 루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회중주의이며, 행정과 결의에 있어서는 대의정치를 추구합니다.







f) 성공회 (聖公會 The Anglican Domain)




영국의 국교회.




영국에서 출발한 성공회는 앵글리칸 처치, 성공회, 에피스코팔처치, 등으로도 불리웁니다.

1536년 로마감독의 교권을 폐지하고 1570년 교황 피오 5세가 영국왕 엘리자벳을 파문함으로써 로마교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신앙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발생하였고 교회의 신학은 개혁파에 가깝지만 교회 및 예배의식은 카톨릭에 가깝습니다.




영국에서는 영국 왕이 교회의 정점이고 국회가 교회법을 제정합니다.

그렇지만 켄터베리 대교구, 요크 대교구, 웨일스 대교구 로 나눠져 있으며 한국 성공회는 켄터베리 대교구에 속해 있습니다.

영국교회의 교리의 표준은 39신앙개조와 기도문입니다.

한국에 성공회가 전래 된 것은 1890년 코프감독에 의해서였습니다.




조직은 주교, 신부, 부제라고 일컷는 종신직 신품이 있습니다.

g) 구세군 (救世軍 Salvation Army)




그리스도교 교파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창설한 교파 구세군은 1858년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구세군(salvation army)이란 명칭은 1878.5에 정식으로 명명되었고 1880년 처음 사관학교를 세웠습니다.

구세군의 특징은 사회봉사에 있습니다.

구세군의 정치는 개인의 자유와 기회균등의 인정하에 군대 조직을 차용합니다.




세계의 모든 구세군은 한 대장 아래 통솔을 받습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는 사관 평신도는 병사라고 지칭합니다.

구세군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8년 10.8 명동에서 영국인 호가드 정령에 의해 옥외집회를 한데서 출발합니다.

구세군의 사회사업은 선교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남녀평등을 중요시 여겨 사관학교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입교토록 하고 있습니다.




h)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기하성), 순복음




프로테스탄트 오순절계(五旬節系)의 한 교파.




보통 순복음교회(純福音敎會)라고도 한다.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 삼위일체(三位一體)인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重生)·성령충만·신유(神癒)· 재림(再臨) 등을 주요교리로 삼고 있다.

1928년 개인 자격으로 M.C.럼시가 오순절적 신앙선교를 목적으로 내한하여 당시 구세군에 근무하던 청년 허홍(許弘)과 함께 정동(貞洞)에 선교본부를 둔 것이 이 교회의 효시가 된다.

1959년 미국의 아시아 선교부장 케참 목사가 내한하여 2만 달러를 투자, 신학교를 신축하고 서대문에 중앙회관을 설립하는 등전국복음화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순복음(Pure Gospel)' 운동의 주동이 되어 교회 명칭에도 순복음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 계열의 교회들은 성령운동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오순절파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학적 바탕은 뚜렷하게 어느 것이다 라고 할 수 없지만 대략 웨슬레안에 가깝습니니다.










질문 2) 개신교 교파간 교리차이







《 개신교 주요 교파의 차이점과 특징 》





현재 우리 나라에는 크게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성공회 등등 여러 교파가 있지만 그 교파 내에서도 다양한 교단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예컨대 장로교 내에서도 '기독교 장로회'(기장)와 '예수교 장로회'(예장)가 있고, 예수교 장로회 내에서도 통합, 합동, 개혁, 고신, 대신 등등 수많은 교단이 있습니다.




개신교에는 많은 교파가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교파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성공회를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교파에 대해서만 언급하겠습니다.




1. 장로교

장로교는 국내 개신교 중에서 가장 많은 성도와 가장 많은 교단을 가지고 있는 교파입니다.

장로교는 장로에 의해 치리되는 교회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로란 명칭상의 교회 장로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장로교는 신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감독, 목사, 장로를 같은 직책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장로를 가르치고(설교) 치리하는 장로와 치리만 하는 장로로 나누는데 전자는 목사이고, 후자가 교회 직제명인 장로입니다.

장로교는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장로나 안수집사, 권사 등의 교회 중직을 임명에 의해 세우지 않고 공동의회에서 세례교인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합니다.




심지어 장로교는 담임목사를 위임할 때도 먼저 공동의회에서 세례교인들의 위임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다른 장로교단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제가 속한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교단에는 공동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가 나와야 담임목사를 위임목사로 임직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목사를 청빙할 때도 먼저 제직회의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 그만큼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중시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장로교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교회정치를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교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도를 가지게 된 하나의 원인은 어쩌면 이러한 민주적 교회정치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2. 감리교

감리교는 영국의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인 존 웨슬리의 신앙과 신학을 바탕으로 형성된 교파로서 장로교와 동시에 우리 나라에 전래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신학적, 교리적 특징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그것은 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인에게 이루어지는 보편적 구원, ② 완전한 성화(聖化), ③ 교회 공동체를 통한 성도의 교제, ④ 그리스도인의 봉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감리교는 장로교와 달리 칼빈의 예정론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칼빈의 예정론은 구원 받을 사람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해 놓으셨다는 교리를 말합니다. 이처럼 감리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합니다.

그리고 감리교는 사회봉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장로교보다 사회 현실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보다 자유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띄고 있습니다.




감리교는 감독제의 교회 직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감독제는 감독이 다스리는 제도로서 그 체계가 계급적입니다. 교회사적인 의미로 감독제는 주교, 사제, 부제로 구성된 교회의 통치 체제를 의미합니다. 로마 가톨릭교와 성공회가 바로 이런 체제로 되어 있지요.




개신교에서는 일부 몇몇 교파만 감독제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감리교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감리교는 다른 개신교와는 달리 목회자 그룹이 계급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는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목사를 감독이라고 하며, 총회장을 감독회장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3. 침례교

침례교는 세례를 행할 때 물을 뿌리거나 부어서 하지 않고 전신을 물 속에 잠기게 해서 베풀기 때문에 침례교라는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침례교는 교리나 신학적인 면에서는 다른 개신교와 같지만 교회 조직이나 치리 형태에 있어서는 개체교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회중주의 성격이 강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로마 가톨릭교처럼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아니라 개교회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지방분권제'에 가깝다는 것이죠.




이것은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들은 이야기인데 침례교는 특징적인 신학노선이 없다고 할만큼 신학적인 바탕이 약하다고 합니다. 즉 일반적인 기독교 교리를 따르는 추세이고 침례교만의 신학적 토대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4. 성결교

성결교는 다른 교파에 비해 역사가 짧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장로교나 감리교는 미국에서 전래되었지만 성결교는 순수하게 한국인의 선교 활동으로 조직되었다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사에 의하면 한국 성결교는 1907년에 도쿄 성서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김상문·정빈이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결교는 선교단체에서 출발하여 한국인에 의한 포교를 통해 조직되었기 때문에 '국내 자생 교단'이라고도 합니다. 성결교는 그 명칭이 주는 의미처럼 개인의 성결과 성화사상을 중시합니다.




5. 순복음교회(오순절 교단)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대표로 하는 순복음교회의 정식 교단 명칭은 "기독교 대한하나님의 성회"입니다. 기독교 대한하나님의 성회는 19세기에 미국에서 형성된 근본주의적 개신교파인 "오순절교회"에 속한 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교회의 특성은 성령세례와 방언, 신유 등의 성령의 은사를 무척 강조합니다. 순복음교회도 이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성령 체험을 무척 중시합니다.




장로교나 감리교의 기독교 조직신학에서는 성령론을 그다지 비중 있게 취급하지 않지만 오순절교회는 성령론을 무척 비중 있게 다룹니다. 그래서 오순절 계열 신학교에서는 성령론에 대한 강의가 많다고 합니다.




6. 성공회

성공회는 "영국 국교회"라고 불려집니다. 왜냐하면 영국에서 로마 가톨릭교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교파의 형성을 위해 창설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공회도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산물로 생겨난 교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특징은 직제는 로마 가톨릭교를, 교리는 개신교를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교처럼 7대 성사를 인정하고 주교, 사제, 부제라는 성직을 두고 있으나 가톨릭교와는 달리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그냥 이해하기 쉽게 가톨리교와 개신교의 중간 쯤에 있는 교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성공회도 종교개혁의 산물로 생겨났기 때문에 굳이 분류를 한다면 구교(가톨릭교)보다는 신교에 두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외에도 개신교에는 그리스도의 교회, 구세군 등등 여러 교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에 이처럼 기독교가 여러 교파로 나뉘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파 통합을 이루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강행한다고 해도 많은 부작용과 혼란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교파 통합보다는 교파 간의 협력과 화합을 도모하는 교파 연합이 가장 현실적인 교회일치운동의 방법입니다.

기독교 내에 여러 교파가 있는 것은 뿌리는 하나이나 그 위에 수많은 가지가 있는 나무처럼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신앙 위에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교파가 생긴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현재 우리 나라 개신교의 교단수는 100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단 분열은 신학적·교리적 노선차, 지역 갈등, 교권 다툼 등이 주요 원인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처럼 교단이 나뉘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28에서 증거한 것처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교단 분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들의 신앙관과 신학적 관점이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 교단 내에서 서로 갈등하며 지내기보다는 자신의 신앙에 맞는 교단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는 교단 분열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교단이 분열될수록 성도가 더 많이 늘어났다는 거죠. 그래서 혹자는 만일 한국 개신교가 하나의 교단으로 이루어졌다면 복음의 확장과 교회 성장이 이만큼 크게 이루어지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http://cafe.daum.net/sachangchurch/YBVm/6?q=%B0%B3%BD%C5%B1%B3%20%B1%B3%C6%C4%B0%A3%20%B1%B3%B8%AE%C2%F7%C0%CC&re=1 계신교 교파 참고










3. 침례교 교파간 교리의 차이







침례교회의 특징 (장점과 단점)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기독교는 최초의 성립 이래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왔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 이전에 이미 서유럽에는 천주교가, 그리고 동유럽에는 동방정교회가 있어서 기독교 세력은 크게 양분되어 있었다. 루터의 교회개혁 후 기독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그리고 개신교로 나뉘어 졌다.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 비해서 다양한데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를 비롯해서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교, 구세군, 그리고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 이단을 포함한 개신교의 교파는 상당히 많다. 게다가 각 교파는 여러 교단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이 밖에도 여러 교파운동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무수히 존재했었고, 또한 현재에도 존재한다.




본 글에서는 침례교회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침례교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교단 조직이 타 교단에 비해 개 교회 중심적이면서도 교회의 운영이 민주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개신교 교파들 가운데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2. 침례교의 특징

침례교는 루터의 교회개혁 이후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이 출현한 교파이다. 많은 사람들은 침례교의 성향을 좌향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침례교는 신약의 본질적인 원리를 지키는 교회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원형적인 교회(Primitive Church)로서의 신약교회(New Testament Church)의 신앙을 전승하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침례교는 당시 교회개혁이 지향하였던 여러 가지 목표들을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밀고 나갔던 교파이기도 하다. 침례교는 루터가 유아세례와 성찬식을 가톨릭의 방식대로 계승했다는 점에서 그의 개혁이 불충분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침례교는 무엇보다도 침례나 주의 만찬과 같은 교회 내 예식이나 조직 면에서 성경에 가장 근접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침례교가 성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본 연구의 진행은 의식, 교리, 조직, 대사회적 면으로 나누어 타 교단의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1) 교회 의식: 침례

침례교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침례를 통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침례교의 첫 번째 특징은 침례의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교파들은 주로 물을 뿌리는 방법에 의해 세례를 주고 있는 것1)에 비해 침례교는 아예 물속에 담그는 방법을 통해 세례를 주고 있다. 침례교는 다른 교파들에 비해 이와 같이 세례를 주는 방법을 달리하고 그 방법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본래 세례라는 말 대신에 ‘뱁티스마(baptisma)’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원하였다. 캐나다인으로 우리나라에 온 침례교 최초의 선교사이며, 주한 외국선교사들로 구성된 성경번역위원회의 부회장으로 있던 말콤 C. 펜윅(Malcom C. Fenwick, 1863-1935)은 ‘baptism’을 세례 대신 ‘뱁티스마’로 번역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부회장직을 사퇴하고 성경을 혼자 번역할 정도였다. 그러나 침례교는 ‘뱁티스마’라는 용어가 일반에 생소할 것을 우려하여 ‘뱁티스마’라는 용어는 포기하되, 세례라는 용어 대신 침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2)




이와 같이 침례교는 침수침례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믿는 자들만이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신자의 침례’라고 부른다. 침례교에 의하면 신약교회는 믿는 자들만이 침례를 받았으며,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았다. 침례 때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은 장사 지냄을, 그리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믿지 않는 사람이 침례로 인해 몸이 물에 잠겼다면, 그것은 물에 젖지 않은 죄인이 물에 젖은 죄인으로 바뀐 사실 이외의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침례교는 모태교인을 인정하지 않으며,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자기의 믿음을 보여 줄 수 없음으로 유아세례는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좋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침례교는 침례가 곧 구원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침례교인에게 침례는 구원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 결코 아니다. 침례는 죄를 씻지 못한다. 따라서 죄를 씻기 위해 침례를 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침례교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침례를 못 받았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침례교는 침례를 상징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침례교인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침례교는 확실히 믿지 않고 철저히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 침례를 행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인위적인 기간이 지난 후가 아니라 확실히 믿고 있다는 증거만 있으면 침례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3)




2) 교회 의식: 주의 만찬

타 교단과 가톨릭이 말하는 성찬식에 대해 침례교는 ‘주의만찬‘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기독교 각 교파의 입장은 크게 화체설(transubstantiation), 공재설(consubstantiation), 그리고 상징설(symbolism)로 구분할 수 있다. 화체설은 로마 가톨릭의 입장으로 성찬식 때 사제에 의해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견해이다. 이 경우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기 때문에 성찬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거나 없는 사람이거나 간에 똑같이 작용한다고 믿어진다. 공재설은 루터와 칼빈의 입장으로 다시 구분된다. 루터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방법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가운데’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 입장에 의하면 역시 성찬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도 성찬을 받을 수 있다고 믿어진다. 이에 비해 칼빈은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에 임재한다고 믿고 성찬은 오직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만 작용한다고 믿었다. 화체설과 공재설은 비록 그리스도가 어떻게 임재하는지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한다는 점에서는 견해를 같이 한다. 상징설은 이와 달리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실제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는 견해이다. 침례교는 츠빙글리에서 비롯된 이 상징설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다른 교파들과 대비된다. 침례교는 침례가 교인권의 시작이라면, 성찬식은 교인권의 점검이라고 생각한다. 침례교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떡은 떡 그대로, 포도주는 포도주 그대로 남아 있다고 믿으며, 성찬을 이와 같이 은유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가 성경에 가장 가까운 견해라고 생각한다.




3) 교리

침례교는 교파신학이나 헌법 혹은 특별한 신조를 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침례교는 교리도 없고 신앙고백도 없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침례교 역시 하나의 교파로 존재하는 한 교리적인 측면의 특징이 없을 수 없다. 침례교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무한정의 권위를 부여하며 성경무오설을 지지한다. 침례교에 의하면 권위는 오직 살아있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며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신약성서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침례교 최초의 선교사였던 펜윅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한글 번역에 힘을 썼으며, 성경 읽기를 장려하였던 것이다.




침례교는 바이블에 대한 교단의 권위 있는 해석보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해석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펜윅은 신도들이 바이블의 어려운 구절에 부닥쳤을 때 남의 도움을 빌어 해석하기보다는 수차 그 구절을 읽으면 성령이 필요에 따라 알게 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침례교는 바이블에 무한정의 권위를 부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도 개개인이 누구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바이블을 해석할 수 있으며, 과학과 교육에 의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때에는 그에 따라 신앙을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아마도 이러한 입장은 침례교가 영적 개인주의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영혼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다른 어느 교파보다도 강조하여 모든 신자가 똑같이 제사장의 지위를 지닌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침례교에도 교파 나름의 신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침례교는 대체로 웨스트민스터문답서와 필라델피아신앙고백서를 지지하다가 1925년에 가서야 일반적으로 ‘뉴 햄프셔 신앙고백(New Hampshire Confession)’으로 알려져 있는 신앙고백을 채택하여 신앙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침례교는 1962년에 이르러 이 ‘뉴 햄프셔 신앙고백’을 수정, 보완하여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Baptist Faith and Message)’라는 신앙고백을 채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침례교는 이 신앙고백서가 최종적이라고 보지 않으며 오류가 전혀 없는 완벽한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만약 새로운 상황이 도래한다면 적절한 시기에 이 신앙고백서를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가 미국 남침례회라는 침례교의 대표적인 교단에서 채택된 신앙고백서라고 해서 이 신앙고백서를 모든 침례교 교단이 승인할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침례교의 다른 교단은 물론이고 미국 남침례회에 소속된 침례교 교회라고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서를 만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고백서는 어디까지나 바이블 해석에 도움이 되는 지침일 뿐 이것이 모든 침례교인의 신앙을 좌지우지할 권위를 지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서 침례교는 개신교의 다른 교파와 달리 신조가 신도들의 양심을 구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침례교는 신과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소통과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신과 올바른 관계를 수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침례교 내부에는 다양한 신앙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4) 조직

침례교는 원칙적으로 철저한 개교회주의를 지향한다. 비록 개교회가 모인 지방연합회, 그리고 지방연합회가 모인 총회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 3자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동의 관계이다. 따라서 침례교의 교단 조직은 한마디로 개교회주의에 입각한 협동적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침례교의 이러한 교단 조직은 로마 가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의 다른 교파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침례교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치권과 자결권을 가지는 침례교의 개교회는 감독제도나 장로제도와 대비되는 회중제도라는 조직 형태를 취한다. 감독제도는 감독이나 주교에 의해 치리되는 교회 형태로 로마 가톨릭, 영국 국교회, 프로테스탄트 감독교회, 연합 감리교회, 루터교의 일부가 채택하고 있다. 장로제도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는 당회가 교회를 치리하는 교회 형태를 말하는데 장로교가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교파이다. 감독제도와 장로제도가 모두 중앙집권적인 조직 형태라면 회중제도는 보다 민주적인 조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회중제도 아래에서는 교회의 모든 문제가 회중 자신에 의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 회중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교파는 회중교회,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고 침례교를 열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침례교는 중앙집권적 조직 형태가 아니라 회중제도라는 민주적인 조직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직자와 평신도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 비록 개교회 내에 목사와 집사라는 직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직분은 계급의 직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능의 직분으로 이해된다. 이런 조직 형태 내에서 신도 개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보다 민주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볼 때 침례교의 조직적인 측면에서의 특징은 한마디로 개교회의 자치와 회중의 권위를 강조한다는 점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 사회와의 관계

침례교는 대사회적 측면에서도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침례교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로마 가톨릭은 물론 여타 개신교 교파들과 대비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침례교는 회중의 권한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회중교회와 비슷한 측면을 지니고 있으나 침례교는 회중교회가 국가의 통제 아래 있으려는 것과 달리 국가가 교회에 대해 그 어떤 통제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교단유형론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형이라기보다는 섹트형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침례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비교적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였으며, 영국, 유럽, 미국 등지에서 주로 서민들이나 노동자 계급에 더 많은 호소력을 지니고 파고들었다. 그리고 개신교 교파 가운데 최초로 해외 선교를 시도한 케리(William Carey, 1761-1834)는 1793년부터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다른 교파들에 비해 일찍부터 해외 선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침례교가 섹트형에 가까운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면 침례교는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세례의 방법으로 침례를 행하며 성찬식을 상징적으로 이해한다는 점, 신도 개개인이 바이블을 해석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신조가 다른 교파들에 비해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 아울러 우리는 침례교가 개교회주의를 지향하며 회중의 권한을 강조한다는 점, 그리고 국가와 교회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었다.




3. 침례교회의 신앙

1) 성서의 권위

침례교인들은 또한 오직 성경만을 그들의 믿음과 행습의 유일한 권위로 믿었다. 에릭 올만(Eric Ohlmann)은 이러한 침례교인들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종교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어떠한 안내를 받기 위한 자료들을 성경뿐만 아니라 전통이나 이성, 그리고 경험으로부터 의도적으로 가져오려는 다른 기독교 단체들과는 달리, 침례교인들은 철저하고 단호하게 오직 성경만을 그들의 신앙과 행습의 유일한 권위로 삼았다.” 즉 장로교회는 존 칼빈의 성경에 대한 해석을 따르고, 감리교인들은 존 웨슬리의 성경이해를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신앙의 지표로 삼았다고 볼 수 있지만, 침례교회는 이러한 어떤 신학자의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고자 하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2) 교회론

가. 신약 성경을 모델로 하는 순수한 교회 추구

침례교인들은 신약교회를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교회로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의 체계와 직분을 성경에 있는 모범을 따라 조직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신약교회를 순수한 교회로 보고, 교회의 체계와 직분을 성경에 가르침에 근거하여 만들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침례교회의 입장이다. 침례교인들은 신약성경에서 교회 구조의 모범을 발견하였고, 사도적인 교회를 실현하려고 하였던 사람들이었다. 침례교인들은 성경의 권위를 교회체제에도 적용하였던 것이다.




나. 믿는 자 침례와 중생자 교회회원

침례교인들은 유아세례는 성서적인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여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은 신앙을 고백한 자에게만 침례를 베풀었던 것을 근거로 믿음을 고백한 신자에게만 침례를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신자의 침례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침례교인들은 침례를 중생 받음에 대한 외부적 표식으로 보았으며, 교회란 신자의 모임이므로 교회 회원은 오직 침례를 받은 중생자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침례교회는 교회의 구성원은 회원(member)뿐만 아니라 참여자(participants)도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다만 정식회원은 중생을 얻은 자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3) 가시적 교회와 교회 치리 강조

침례교회는 불가시적이고 우주적인 교회의 개념을 인정하지만, 주로 가시적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1644년의 “제 1차 런던 신앙고백서”는 “교회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에게 가시적인 것으로서, 부름 받아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말씀과 성령으로 복음에 대하여 가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침례 받고 주님과 하나 된 성도들의 모임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가시적 교회에 대한 강조는 또한 유아세례 반대에 대한 이론적 근거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4) 정교분리

침례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였고, 그것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재침례교인들과는 달리 침례교인들은 맹세하는 것, 성도가 관료 되는 것, 무력을 사용하는 것 등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국가에 충성하는 것을 강조하였고, 극단적인 평화주의를 채택하지 않았다. 즉 침례교회의 정교분리는 물리적인 분리가 아니라 영적인 분리였던 것이다. 신앙의 자유는 침례교인들은 모든 성도가 어떠한 인간적인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음을 보여준다.




5) 회중주의: 만인제사장 교리에 근거

침례교회는 만인제사장의 교리에 근거하여, 교회정치의 형태로 회중주의를 채택하였다. 침례교도들은 성직자를 계급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기능적인 사역으로 여겼다. 즉 목사와 집사, 그리고 평신도는 계급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일의 차이로 생각하였다.




6) 민주적인 체제와 개교회주의

침례교회는 회중주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교회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이고 평등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침례교회는 또한 개교회주의 즉, 지역 교회의 자치를 믿었다. 개 교회 자치의 전통은 민주주의 체제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7) 선교에 대한 강조

사실상 침례교회는 개신교회들 중에서 가장 선교를 강조한 교단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선교운동을 일으킨 윌리엄 캐리는 침례교 선교사였다). 침례교회는 선교에 열심 하는 교단으로 유명한데, 침례교회가 선교를 강조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앙 고백을 해야 한다는 침례교 자원주의 교회론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었다.




5. 마치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개신교의 한 교파인 침례교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침례교의 여러 특징과 신앙을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본 글이 침례교의 특징과 역사를 침례교 내부에서 완벽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 전통적으로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회는 유아세례를 인정한다. 이는 구약의 교회에서 시행 되던 예식인 할례와 유월절 만찬이 신약의 교회에서 세례와 성찬으로 대치되었다고 해석하는데 기인한다. 특히 할례나 세례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있는 공동체에 들어온다는 상징이 있다고 해석하며, 이미 공동체에 있던 가정에서 자녀가 출생하면 할례를 베푼다는 구약의 원리를 따라 신약의 교회에서도 언약 공동체 안에 있는 가정에 자녀가 출생하면 공동체 안에 있다는 의미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신교 특징상 구원의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2) 침례교의 경우 신자의 침례를 주장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침례요한이 회개 후 침례를 주장하였고, 예수도 제자를 삼은 뒤에 침례를 주라고 분부했다는 것에 기인한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zvbx&logNo=50000724467 참고

http://blog.daum.net/kiki2042/1702 참고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26021 참고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를 읽고 - 자료실 - 연찬문화연구소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를 읽고 - 자료실 - 연찬문화연구소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를 읽고
작성자 남곡|
작성시간19.07.15|
조회수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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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누구나 맞이하는 최대의 사건은 죽음이다. “죽은 다음에도 나라는 존재가 계속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심각한 질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 2원론을 받아들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즉 인간은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의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육체가 소멸하여도 영혼은 영속한다고 생각한다. 즉 ‘나’의 정체성은 유한한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영혼’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인간의 정신은 ‘영혼’의 작용으로 된다.

셸리 케이건은 미국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로 알려진 이 강의에서 자신이 일원론 즉 물리주의(physicalism)의 입장이라는 것을 명백히 한다.

즉 인간은 ‘다양한 p기능을 하는 육체’라는 것이다. 여기서 p란 person의 약자(略字)로서 인간의 특징인 고차원적인 정신적·정서적 작용을 의미한다.

그는 굳이 증명할 수 없는 ‘영혼’을 도입하지 않고도 1원론의 입장에서 충분히 죽음에 대해 설명할 수 있고, 죽음이 결코 나쁜 것이라거나 두려워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 특히 영생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탁월한 논리적 분석으로 설명하고 있다. 수학적 논리적 증명 방식을 익숙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수학이나 논리학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책을 읽어가는 것이 쉽지 않아서 중도에 그만 둘 가능성이 있는 책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독(精讀)을 하지 않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냥 넘어가는 여유를 가지면 책에 빠져 들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바로 그런 식의 속독(速讀)을 하는 사람이라 책을 다 보기는 했는데, 놓치거나 오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꽤 있을 것이다.

평소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나 영생에 대한 갈망들을 어떤 금기(禁忌)나 환상(幻想)에서도 벗어나 인간의 지성으로 분석하는 점이 서양학문의 뛰어난 점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는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는 분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데, 그것은 그 믿음에 대해 회의(懷疑)하라는 것보다는, 인간의 지성을 통과할 때 그 믿음이 보다 튼튼한 기반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사실 일원론이나 이원론의 어느 것이 옳은가하는 것은 아직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며 얼마든지 제3의 다른 관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와 다른 관점을 백안시하거나 적대하는 것은 옳은 입장이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지적 작업을 하는지 몇 가지 소개해 보려 한다.

 

1.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이원론자들 즉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물리주의자들이 어떤 결론도 이끌어 내지 못한, 그렇기 때문에 이원론의 관점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미스터리와 수수께끼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영혼을 가정해야만 설명할 수 있는 그런 ‘특성(feature)'이 있을까?

인간이 그저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 이를 초월한 존재라고 가정했을 때, 훨씬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특징들을 ‘특성F(F는 feature의 약자(略字))’라고 해보자.

무엇이 특성 F인가? 영혼을 가정해야만 설명할 수 있는 특성이 있을까?

그는 SF영화나 양자역학등 현대물리학을 통한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설명하고, 그리고 임사체험등 신비체험을 생물학적 물리학적 설명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 놓는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거나 최선의 설명을 제시하기 위해서 영혼의 존재를 반드시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펴본 바로는 어떤 주장도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 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

 

20년 전에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사람과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사람이 동일 인물인가?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내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20년 전의 머리 숱이 많고 허리가 곧고 구렛나루가 있는 사람과 20년 후의 대머리에 허리가 굽었고 구렛나루가 없는 사람은 동일 인물인가? 아닌가?

이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영혼관점 soul view; 정체성의 핵심은 동일한 영혼이다’과 ‘육체관점 body view; 정체성의 핵심은 동일한 몸을 갖는 것'을 비교 분석한다.

그리고 그는 육체적 관점을 지지하며, 육체 관점의 최고봉인 뇌 버전(육체의 동일성은 뇌의 동일성을 말한다는 것)을 추가한다. 그리고 물리주의자는 물론 이원론자도 뇌 버전에는 동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격관점 personality view;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은 인격적 동일성이다’을 소개하고, 이 인격관점이 물리주의와 완전히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일한 인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비물질적인 존재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인격은 끊임 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핵심을 동일한 인격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믿음과 욕망 등의 요소들을 특정한 조합의 형태 그대로 보존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동일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천천히 변화한다는 뜻이다. 중복 및 연속성의 패턴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지금 내가 열 살 무렵의 믿음 기억 욕망 등과 상당히 다르다고 하더라도 , 끊임 없이 진화하는 하나의 동일한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3.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고, 휴가를 즐기고, 음악을 들을 수는 있지만 함께 죽지는 못한다. “우리 모두 홀로 죽어야할 운명이다”

그는 이 주장도 틀렸다고 말한다.

이 말은 죽음에 대한 뭔가 심오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한 착각을 유발하지만, 이 말 속에는 어떠한 심오한 진리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점심 식사에 대해 생각해보자.

함께 먹더라도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내 점심을 먹을 수는 없다.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아마도 세상의 모든 일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 나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는 주장이 완벽한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죽음의 독특한 본질에 대한 어떤 심오한 통찰도 던져주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주장의 진정한 의미는 아마도 ‘외로움’이라는 심리적 현상일지 모른다.

임종의 순간에 드는 극심한 외로움을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현상인가하면 전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수 많은 죽음이 순간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조건을 추가할 수 있다.

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만 모든 사람들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며 죽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흄은 죽는 순간까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놓고 병상에 둘러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끝까지 그는 유쾌하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4. 죽음은 나쁜 것인가?

 

사람들은 죽음이 당연히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죽음은 ‘왜’ 나쁜 걸까? ‘어떻게’ 죽음은 우리에게 악이 될 수 있을까? 죽음이 정말로 나쁜 거라면, 반대로 ‘영생’은 좋은 걸까?

물리주의자에게는 죽음은 나쁜 것이 될 수 없다. 내 육체적 죽음은 인간으로서 내 존재의 끝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죽음이 내게 나쁜 일이 될 수 있는가? 죽음이 나쁜 것은 오직 ‘살아 있는’ 사람들한테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슬픔이다. 그러나 그것은 핵심을 비켜 가는 것이다. 죽음의 과정이 고통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도 죽음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다.

죽은 다음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존재’가 내게 나쁜 것이다. 그러나 비존재 때문에 죽음이 나쁜 것이라는 설명은 직접적인 대답이 아니다.

비존재가 나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들 가운데, ‘결핍’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나쁜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결핍돼 있는가? 구체적으로 말하면, 삶이 내게 선사하는 모든 ‘좋은 것’들이 결핍됐다. 즉 살아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삶의 좋은 모든 것들을 ‘박탈’해 버리기 때문이라는 ‘박탈 이론’이 아마 지금까지 나온 이론 가운데는 가장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박탈 이론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한다. 박탈이론으로 죽음이 나쁜 것이라는 설명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바람직한 접근방식이라고 본다.

살아 있을 때 삶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하나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 것이다. 이것 말고는 어떤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삶이 가져다 주는 선물’ 쪽으로 이행한다.

 

5.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삶에서 계속 좋은 것들을 얻고 있다면, 죽음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두운 미래만을 빼앗아 간다면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결국은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로 귀결된다.

그는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이론들과 실례들을 통해 분석 설명한다.

그리고 삶 자체는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그릇(container)'과 같은 것이라는 그릇 이론을 다각도로 소개한다.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그 내용물들의 가치를 모두 더해야 하는 것이다. 삶 그 자체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삶 자체가 가치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소개하면서 여러 가지 그릇 이론들을 분석한다.

내가 읽고 느낀 것으로는 그는 대체로 ‘영생의 끔찍함’(이것을 한 장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 소개는 생략) 때문에 인간의 죽을 운명은 좋은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삶이 나쁜 것으로 ‘전환’되기 한참 전에 죽음이 우리를 찾아온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 즉 ‘영생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과 ‘ 죽음은 항상 너무 일찍 찾아온다’는 생각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삶과 죽음에 관한 사실들을 바라보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가?”

그는 죽음이 결코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 오직 이성의 힘만으로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한다.

우리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감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분노도 아니다. 대신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뿐일 것이다.

하나 뿐인 삶, 그리고 죽음의 예측불가능성을 생각할 때, 모든 가치 있는 모든 목표들을 추구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테마에 직면한다.

그는 말한다.

 

“고백컨대 나는 불교에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삶이 고통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좋건 나쁘건 간에 나는 서양에서 태어 났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창세기(Genesis)>를 믿는 사회에서 자라났다. 그렇기에 삶을 고통으로 바라봄으로서 상실의 아픔을 최소화하려는 것은 내가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한 선택은 앞서 논의했던 다양한 낙관적 전략들 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적어도 한번은 신들처럼 살아봤으니’라는 횔덜린의 말에 동의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나는 책을 너무 빨리 보는 타입이지만, 그래서 아마 오해하거나 알아듣지 못한 부분이 많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탁월한 이성적 능력에 의한 긴 분석적 사유의 터널을 통과해 죽음은 결코 나쁜 것도 두려워하거나 분노해야할 것도 아니라는 결론과 만났다. 죽음을 직시 하면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사는데 집중하는 것이 죽음에 마주서는 가장 올바른 태도라는 것을 이성적 분석으로 들려준데 감사한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말을 빌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공자나 석가의 태도에 마음이 끌린다.(사실 불교에 대한 저자의 이해는 좀 단순하다고 보인다)

공자는 누군가 죽음에 대해 물어 봤을 때,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리오”라고 답변한다. 석가는 죽음, 영생 등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에게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그와 같은 논의보다 더 중요하고 현실적인 테마를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일원론이나 이원론의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것보다 ‘어떤 삶이 가장 가치 있는가?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선가의 화두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는 무분절을 통과한 분절의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현대과학도 이 세상 만물이 분리독립되어 있는 실재는 없고 하나의 큰 생명속에 통섭되는 일체라는 것을 밝히고 있지 않는가?)

‘나’라는 정체성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나는 나가 아니다’ 즉 나라는 존재가 결코 분리 독립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 바탕에서, 그 일체의 나타남인 ‘나’로 보이는 경지를 살아 있는 동안에 체득하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이 보다 우주적 차원으로 넓어진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인 것이다.

공자의 절사(絶四; 네가지 끊음; 毋意 毋必 毋固 毋我)도 이와 같은 무분절을 통과한 의식 세계로 보인다.

이것을 깨닫고 체득하는 것이 인생의 기쁨인 것이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

이 과정에서 죽음이나 영생 같은 테마들이 자연스럽게 보여오지 않을까?

 

저자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고 보지만, 가장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동양적 지혜와 결합하면 더욱 풍성한 삶이 될 것 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입장인지가 물어졌다.

이원론에 끌리는 일원론 같기도 하고, 그 반대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30대에 죽었다면 느끼지 못할 평화를 누리고 있다.

앞으로 언제 세상을 떠나야할지 예측 불가능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이 평화가 더 온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감히 서평은 할 수 없고 나의 독후감이라고 보아주기 바란다.

저자의 생각을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내 부족함이니 어쩌랴! ㅎㅎㅎ

DIY Self-Watering Pots and Mini Wicking Beds – Deep Green Permaculture

DIY Self-Watering Pots and Mini Wicking Beds – Deep Green Permaculture

DIY Self-Watering Pots and Mini Wicking Beds

self-watering pot

Self watering pots that wick water upwards from a water reservoir below have been around for decades. They’re commonly used for indoor plants, and they also have more specialized applications in the form of tiny wick watering pots used by African Violet growers. More recently, large DIY self-watering pots have been finding favour amongst tomato growers, and the latest self-watering trend to sweep the gardening world is that of wicking beds, self-watering pots scaled up to the size of a big raised garden bed.

The system of irrigation used in self-watering pots and wicking beds, where watering is carried out from below the soil and wicks upwards is called sub-irrigation.

In this article we’ll be looking at how to build a few different small scale sub-irrigation systems, from small self-watering pots to mini wicking beds.

1. An Introduction to Sub-Irrigation – How to Build a Wick Watering African Violet Flower Pot

This system is used because it provides constant moisture and avoids the wet-dry cycle which is damaging to African violets.

The design is very simple, and it only takes a few minutes to construct a water wicking African violet pot.

  1. Take any appropriate material that will wick water to use as your watering wick
    (you can use a piece of cord approximately 15-20cm (6-8”) long made of synthetic material (natural materials will rot) such as acrylic or nylon with an open weave to conduct water).
  2. Soak the wick thoroughly in water so it is saturated, then thread it through a hole at the bottom of a plastic plant pot, and leave a reasonable length winding around inside  the pot to distribute moisture evenly to the roots.
  3. Fill with potting medium and plant up with your moisture-loving plants such as an African violet.
    You will now have a planted pot with a ‘tail’.
  4. Water the plant well to evenly wet the potting medium and wick so it will all conduct water well by capillary action when you place the wick in the water reservoir.
  5. To construct the watering reservoir, take a clear plastic take-away food container, and make a hole in the lid.  You can make a second hole in the lid near one side if you wish so you can refill the container with water without lifting the pot off to do so.
  6. Fill the reservoir with water, sit the pot on top of it, and make sure the wick touches the bottom of the water container so it can access all the water inside.

Wick-Watering_thumb3

With self-watering pots the wicking system can be made even more efficient than the simple cord wick, and the containers can be scaled up in size to accommodate much larger plants. In the next section we’ll look at the design used in commercial self-watering containers, and how we can adapt their design to construct our own DIY large-scale self-watering pots.

2. Larger Scale Sub-Irrigation Theory – How Commercial Self-Watering Pots and Planters Work

Commercial self-watering pots and planters are available in a range of sizes from the smallest indoor plant pots to very large tubs and planters able to support large or numerous plants. These pots have a side opening or a tube where water is added to the reservoir, and they utilise a slotted barrier that separates the water from the potting medium. The barrier has hollow ‘feet’ that are also filled with the potting medium and these ‘feet’ sit in the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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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ever part of the design is that the ‘feet’ have holes or slots in the sides allowing water in, so the wet potting medium extending down into the ‘feet’ acts as a wick and carries the moisture up into the rest of the potting medium as high as the potting medium material will a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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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watering pot and its water reservoir, top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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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watering pot and its water reservoir, showing how they fit together. Note the slots in the  hollow ‘feet’ to allow water to wick up into the potting medium. There are also slots in the soil barrier (bottom of the pot) to allow water to drain into reservoir if watered from above.

Now that we’ve seen how commercial self-watering pots work, we can design and build our own to suit our requirements!

3. How to Build a DIY Large Self Watering Pot – Mini Wicking Bed System

Very large DIY self watering pots can be constructed from large plastic tanks cut in half or plastic containers with lids, as shown in the diagram below. These function as small wicking beds that you can grow quite a few plants in, and they have the additional benefit in that they’re fairly easily movable. Additionally, they can be modified very easily to grow a wider range of plants than the self-watering pot that you buy off the shelf.

If you’re into sustainable gardening, the great thing about these DIY self-watering pots is that you’ll make them mostly, if not completely, from recycled materials!

DIY Self-Watering Pot

The design is quite self-explanatory, we have two designs here, side by side:

  1. With the design on the left, a plastic tub with a lid holds the water. Holes are cut into the lid so plastic pots can fit into the holes (but can’t fall though!)The pots have holes cut into their bottom to fit two or more smaller pots that once again can fit into the holes (but can’t fall though!) It helps if these smaller pots have a lip to help hold them in place. These smaller pots act as the wicks and conduct water up into the pot. In place of these small pots you can also use the long, narrow mesh pots used in hydroponic systems.Make sure the lid is strong enough to hold the weight of the pots filled with potting mix and with plants in them. If required, you can use something under the post to hold them up, such as bricks or small pavers, or upturned terracotta pots. Plastic pots can be used but they need to be secured so they don’t move around.
  2. With the design on the right, a large container or plastic drum cut in half to hold water. A pot that is wider at the top than the water container fits in snugly  to seal the system, and uses smaller wicking pots identical to the system discussed above.

Both these designs have a water overflow outlet to prevent them flooding. You can simply cut or drill a hole on the side of the water container, or a make a hole and insert a small pipe if that’s more useful to direct the overflow water. Position the overflow outlet about 2.5cm (1”) below the tops of the small wicking pots, so the tops of the small wicking pots are always above the water.

These DIY large self-watering systems are used successfully by tomato growers and can be used for growing quite a variety of vegetables. Experiment and see what works best!

In case you’re wondering, the self-watering pot pictured at the beginning of the article growing celery is simply a plastic pot that fits snugly into a florist’s pot (what they use in florists shops to hold cut flowers, basically a pot without holes, or a bucket without a handle), with an offcut of 19mm polypipe irrigation tubing as a water inlet, and a single small pot underneath it all, which you can’t see, to wick the water upwards.

Modifying the Design for a More Versatile Pot

You can also modify the design of these larger DIY self-watering pots to grow a wider range of plants such as those that require a much wetter soil. Some plants that can grow in very wet soil are aquatic marginal plants and bog plants. This includes a lot of edible aquatic plants such as water chestnuts, water celery, water parsley, watercress, water spinach (kangkong), duck potatoes (arrowhead) and many others.

The modification is quite simple –  if don’t put in an overflow hole it will flood and stay wet, but look like a regular plant in a pot without any standing water that will attract mosquitoes.

To make the design more flexible, you can put a tap in the overflow so you can use it with the tap open for plants with regular water requirements and with the tap closed so it floods for water and bog plants.

If you’re into saving water, you can direct the water from the overflow pipe into garden beds, other pots, water filtration reed beds, wherever you like. The great thing about DIY projects is that you can get creative as you like!

In Summary…

In this article we’ve explored the theoretical aspects of sub-irrigation, explaining how it works, and the practical side of how it can be implemented, looking at how to build a few small to medium-sized sub-irrigation systems that are cheap, quick and easy to put together. These projects are a great way to start experimenting with sub-irrigation without investing too much money, time and effort.

If you’ve tried these and want to try something much bigger, then please have a look at our article on how to design and construction of full-size wicking b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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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In this article we’ve covered the theory of sub-irrigation, and…”

    Sub-irrigation is not a theory. Capillary action is a scientific fact. So-called “self-watering” as related to plants isn’t. Plants are sentient but immobile for starters. The U.S. is the only country that uses this term of horticultural and English language ignorance.

    Like

2021/06/21

天主实录 신의 기록-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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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록

天主实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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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중앙 국립 도서관 에 있는 "신의 기록"원고
" 신의 기록 "(1630 년 발행) 은 중국 의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Ruggieri 앞으로, Ricci 이후 에 베이징 에서 출판 된 명나라 Wanli 11 년 에 카톨릭 신학 저술에 의해 쓰여진 한자 중국어 번역자의 도움을 받아 전진 했습니다 . 이것은 서양인이 중국어로 쓴 최초의 기독교 신학 작품 입니다 .

이 책은 원래 한 서면 에 라틴어 로 루오 Mingjian 로 번역, 중국어 마테오 리치와 중국의 재능에 의해 , 그리고 출판 에 오칭 . 나중에 마테오 리치는 혼자서 네 권의 책을 공부했고,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많은 수정을했습니다.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중국 전통 유교를 분명히 받아 들였고 , 가톨릭 교회 는 융합 교리와 유교이다. "신의 기록" 은 16 세기부터 18 세기까지 중국, 일본 및 기타 지역에서 천주교 의 확산 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했습니다. 특히 그 내용은 유교 윤리의 개념에 적응하여 중국 문학 계급 이 비교적 쉽게 받아 들일 수있다 .

"신의 기록"은 또한 중국에 도입 된 첫 번째 주 시스템으로, 중국 전통 은 매월 3 일씩 상, 중, 하 10 일로 나뉘 거나, 달에는 2 일로 나뉩니다 . 기독교 는 한 달을 4 주로 나누고 매주 고정 된 종교 및 문화 생활을합니다. 이 책은 또한 유럽 의 천주교의 상황과 예수회의 부상을 설명하는 "예수회"를 소개합니다 . "신의 진짜 이론"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서구의 관습을 말하는데 설교자는 결혼을 의미하지 않으며 신이 서구에서 태어난 이유를 설명한다"입니다. 가톨릭 국가의 본질은 교황 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 "가장 영예로운 지위를 가지고 세계를 가르치는 것은 황제이며, 그는 세상에 지시를 내리는 데 하나님을 계승하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강조 사도 베드로 베드로 후 의 설립 교회 에서 바티칸 이 예수님과 영적인 연결뿐만 아니라 물리적 인 연결뿐만 아니라이 때문에, 교황이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Matteo Ricci가 가톨릭 교회 의 독특하고 우월하다고 생각 합니다.

참고 문헌 
송롱 페이 : "마테오 리치의"신의 진정한 의미 "와 유교의 통합과 곤경 " .
쉬광 타이 : "명나라 후기 서양"분류 이론 "의 중요 단어 소개 및 번역 : 마테오 리치의"신의 진정한 의미 "에서"밍 리 탄 "으로) .
Xu Guangtai : "마테오 리치의"신의 진정한 의미 "에서 Gewuqiang의 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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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실의》(天主實義) 또는 《천주실록》(天主實錄)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의를 변증한 기독교 변증서이며,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출간하였다.


목차
1 역사
2 내용
3 같이 보기
4 각주
역사
천주실의는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1584년 저술한 《천주실록》(天主實錄)의 개정판이며, 1593년이나 1594년에 저술했다고 추정한다. 당시 선교사 저서는 해당선교지 책임자의 검사를 거쳤기 때문에, 라틴어 요약본 형태로 1597년경 발리냐노와 일본선교 교구장 루이스 세르퀘이라(Luis Cerqueira)에게 제출했었다. 하지만 라틴어 요약본이 검열에 통과하기도 전에 이미 《천주실의》는 고급 독서 문화가 있던 명나라 말기 사대부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독교 하나님이 유교의 상제와 같다는 주장과 기독교의 인간 이해가 양명학과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국 지식인들의 관심으로 천주실의는 1594년 남창(南昌)에서 초판을 인쇄했으며, 1601년 베이징에서 《1601년 베이징판 천주실의》를 출간했다. 선교책임자에게 출간을 승인 받은 마테오리치는 1603년 베이징에서 증보판 《천주실의》를 출간했으며, 1605년이나 1606년 항주(抗州)에서 《항주판 천주실의》를 출간했다.

내용
천주실의 내용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이를 유지하시는 하느님'을 소개하며,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교의 상제(上帝)는 기독교의 하느님(天主)이라고 주장했다.[1]
유교의 기초적 교리를 인정.
하늘나라의 존재를 언급하고,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강조.
인간의 영혼이 신령스러움을 중국 고전들을 통해 입증.
하느님이 동물을 창조한 것은 인간이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임.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음.
성선설을 지지, 모든 행위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림.
천주교 사제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 《천주교해략》을 읽을 것을 권함.
같이 보기
마테오 리치
각주
 《기독교 사상》2005년 10월호-세계교회사에 나타난 선교인물(2):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한 마테오리치,김상근,대한기독교서회 p.250
분류: 중국의 책로마 가톨릭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