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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6

Namgok Lee 금산사. 박석 교수와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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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박석 교수와 다녀왔다.
운전하는 1시간 30분여, 서양철학의 엑기스를 들었다.
박석 교수는 국보급 천재다.
이 천재와 오늘 국보를 돌아보았다. ㅎㅎ
미륵불을 보면서 밝고 광활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2/01/13

이남곡 - 리링의 논어읽기 - 너무 가까이서 보는 것의 한 폐단을 보는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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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링의 글이다.
공자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눴다. ‘상지(上智)’가 한 쪽 끝이고, ‘하우(下愚)’가 다른 쪽 끝을 이룬다. ‘중인(中人)’이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다. 그의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는 “남들과 같다”고, 다시 말해 자신은 보통 사람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지(知)와 지(智)를 강조했는데, 이는 중인을 겨냥한 것이다. 중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주로 부귀한 이들과 빈천한 이들 사이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부유하고 귀한사람들도 아니고 배불리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와 그의 학생들은 주로 이런 사람들이었으며 당시 가장 책읽기를 좋아했던 이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공자는 독서를 한 사람이되, 그 독서는 벼슬을 하기 위함이었다. 일생의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낸 그는 처량하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는 왜 길을 걸어다녔던 것일까? 그것은 벼슬을 하기 위한 여행, 즉 옛사람들이 말하던 ‘환유(宦游)’였다.
그는 농사는 지어봤댔자 배를 주릴 수밖에 없는데 비해 독서야말로 나라의 녹을 먹을 수 있게 한다고 보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나라의 녹을 먹는 것이 농사를 짓는 것에 비해 더 실속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런 글들은 논어 속에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
내가 논어를 읽을 때 나에게 주로 보인 것과는 다르다. 아마도 나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의 진화에 눈이 많이 갔었고, 그것은 알지도 못하면서 공자를 수구반동의 원조로 비난 배격했던데 대한 반성적 태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리링의 글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실사구시적인 글로 보이지만, 한편 나에게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평가할 때 너무 가까이서 보는 것의 한 폐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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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時空을 포함) 보아야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러면서도 리링의 글은 나에게 양 극단 즉 배격과 찬탄을 넘어 공자를 만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글이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유학을 공부하지 않고, 내 나름으로 공자의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정신’에 눈이 먼저 갔던 것이 공자를 만나게 한 인연이었다는 것이 고맙다. 그것이 Namgok Lee
t9S82770fog22ch  · 
리링의 글이다.
공자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눴다. ‘상지(上智)’가 한 쪽 끝이고, ‘하우(下愚)’가 다른 쪽 끝을 이룬다. ‘중인(中人)’이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다. 그의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는 “남들과 같다”고, 다시 말해 자신은 보통 사람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지(知)와 지(智)를 강조했는데, 이는 중인을 겨냥한 것이다. 중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주로 부귀한 이들과 빈천한 이들 사이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부유하고 귀한사람들도 아니고 배불리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와 그의 학생들은 주로 이런 사람들이었으며 당시 가장 책읽기를 좋아했던 이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공자는 독서를 한 사람이되, 그 독서는 벼슬을 하기 위함이었다. 일생의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낸 그는 처량하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는 왜 길을 걸어다녔던 것일까? 그것은 벼슬을 하기 위한 여행, 즉 옛사람들이 말하던 ‘환유(宦游)’였다.
그는 농사는 지어봤댔자 배를 주릴 수밖에 없는데 비해 독서야말로 나라의 녹을 먹을 수 있게 한다고 보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나라의 녹을 먹는 것이 농사를 짓는 것에 비해 더 실속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런 글들은 논어 속에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내가 논어를 읽을 때 나에게 주로 보인 것과는 다르다. 아마도 나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의 진화에 눈이 많이 갔었고, 그것은 알지도 못하면서 공자를 수구반동의 원조로 비난 배격했던데 대한 반성적 태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리링의 글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실사구시적인 글로 보이지만, 한편 나에게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평가할 때 너무 가까이서 보는 것의 한 폐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멀리서(時空을 포함) 보아야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러면서도 리링의 글은 나에게 양 극단 즉 배격과 찬탄을 넘어 공자를 만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글이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유학을 공부하지 않고, 내 나름으로 공자의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정신’에 눈이 먼저 갔던 것이 공자를 만나게 한 인연이었다는 것이 고맙다. 그것이 장수 시절이었다.


만일 리링의 글을 먼저 읽었다면, 아마 논어를 더 이상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앗을 것 같다.
내 접근 방식이 유효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ㅎㅎ
‘제도와 사람’에 대해서도 양 방향의 구체적이고 치열한 접근을 통해 어떤 균형점 그것도 움직이는 균형점에 도달한다.
나는 젊어서 제도의 혁명을 추구했던 사람인데,  정신(사람)의 토대 없는 혁명의 실패를 통해서 ‘사람(정신)’의 중요성에 눈이 가게 되었다.
그런데 주로 정신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뒤늦게 제도(구조)에 눈이 많이 간다.
다른 경로를 거치지만, 변혁과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특히 지금처럼 인류 존속 자체가 고도의 과학기술문명 속에서 물어지는)에는 결국 ‘종합혁명(인간, 사회, 문명)’으로 귀결하게 될 것이다.
요즘 일각에서 이야기되는 ‘개벽’ 운동도 이런 경로를 거쳐 ‘종합혁명’에 이르는 길로 보편화되는 길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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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리링의 글을 먼저 읽었다면, 아마 논어를 더 이상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앗을 것 같다.
내 접근 방식이 유효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ㅎㅎ
‘제도와 사람’에 대해서도 양 방향의 구체적이고 치열한 접근을 통해 어떤 균형점 그것도 움직이는 균형점에 도달한다.
나는 젊어서 제도의 혁명을 추구했던 사람인데, 정신(사람)의 토대 없는 혁명의 실패를 통해서 ‘사람(정신)’의 중요성에 눈이 가게 되었다.
그런데 주로 정신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뒤늦게 제도(구조)에 눈이 많이 간다.
다른 경로를 거치지만, 변혁과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특히 지금처럼 인류 존속 자체가 고도의 과학기술문명 속에서 물어지는)에는 결국 ‘종합혁명(인간, 사회, 문명)’으로 귀결하게 될 것이다.
요즘 일각에서 이야기되는 ‘개벽’ 운동도 이런 경로를 거쳐 ‘종합혁명’에 이르는 길로 보편화되는 길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9You, 강길모 and 1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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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20419/45634361/1

사회주의자였던 내가, 공자의 ‘無知也’에 빠져 책까지 쓸 줄이야
입력 2012-04-19

■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펴낸 이남곡 씨《 “저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예순 살이 넘어 공자의 ‘논어’를 강의하고, 책을 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16일 전북 장수군 번암면의 깊은 산골마을. 벚꽃, 살구꽃, 개나리, 목련, 진달래가 순서도 없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휴)을 펴낸 이남곡 씨(67)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8년 전이다. 그의 집 뒤쪽 마당에는 장류사업을 하기 위해 그가 담가놓은 된장, 고추장 항아리가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었다. 》
     


16일 만난 전북 장수군 논실마을학교 이사장 이남곡 씨는 “기업인들이 공자와 같은 고전을 많이읽는다는데, 인간 중심의 가치를 내세우는 진보운동가들이야말로 논어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는 이 씨가 담가놓은 고추장 된장 항아리들이 보인다. 

장수=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저 앞에 보이는 게 대성산(大聖山)입니다. 큰 성인, 즉 공자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웃 ‘논곡(論谷) 마을’에서는 예전부터 사람들이 주경야독하면서 공자를 읽었다고 합니다. 제가 여기에 정착해서 논어를 강독하게 된 것도 인연인가 봅니다.”

이 씨는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상경해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교사운동을 하다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4년간 복역했다. 1980년대 정토회 법륜 스님의 요청으로 불교사회연구소장을 지내고, 무소유를 표방한 경기 화성 ‘야마기시(山岸) 실현지’ 공동체에서 8년을 살았다. 2004년 아내와 함께 전북 장수에 정착한 뒤론 이웃 주민들과 ‘논어’를 강독하고, 논실마을학교 이사장으로 시골사람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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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논어를 읽기 시작했나요.

“농촌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수, 전주, 익산 등지에서 귀농자들, 마을 주민들과 2년 동안 함께 읽으며 공부했죠. 처음엔 공자가 봉건제와 군주제, 가부장제의 옹호자라는 생각에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논어를 다시 읽으면서 왜 그동안 공자 사상의 탁월함, 특히 인간 지성에 대한 태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비판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논어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로 ‘무적무막(無適無莫·군자에겐 옳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는 것도 따로 없다)’과 ‘무지야(無知也·나는 모른다)’라는 구절을 꼽았다.


“배우기를 즐기는 모습, 이것이 공자가 가진 최대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호학(好學)’은 ‘나는 모른다’에서 출발해 ‘무엇이 진리인가’를 끊임없이 물어가는 과정입니다. 옳고 그름을 쉽게 단정하지 않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진리다’ ‘내 생각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통과 배움은 불가능합니다. 무지를 인정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 무엇이 진리인가를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는 첫 단계인 셈이죠.”

―공자와 다른 사상을 진보성 면에서 비교한다면….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공자에게 배우려는 것은 아집을 넘어 끝까지 진리를 탐구하려는 정신입니다. 반면 ‘완고한 이념체계’인 마르크스주의는 스스로 과학을 표방했지만 계급성과 당파성에 치우쳐 과학에서 멀어졌습니다. 이른바 ‘당의 무오류성’이란 말은 가장 완고한 종교임을 나타내죠. 북한에서는 개인숭배로 왜곡돼 마침내 3대 세습이라는 시대착오적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이 시대 가장 필요한 운동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공자가 내세운 ‘정명(正名)’을 현대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시대정신의 구현을 위한 종합철학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과거의 좌우, 진보-보수 개념의 고정된 시각으로는 지금의 시대적 요구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힘듭니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인문(人文) 운동’입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꾸준히 지속되는 인문운동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이남곡 씨의 인생 역정▼

경기고 - 서울대 법학과 나와 남민전 사건으로 4년 복역
불교사회연구소장 지내다 무소유 공동체서 8년 생활
아내와 전북 장수에 정착해 장류사업하며 인문학 강좌


장수=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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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서혜란 부부의 웰빙 이야기

기자명 육관응
입력 200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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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식품은 몸에 유익합니다"

장수 번암에서 된장·간장·고추장 생산
물과 풍부한 일조량이 장맛에 영향


▲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도모하는 야마가시즘을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각인하게 되었다는 이남곡(사진 왼쪽)·서혜란 부부는 발효식품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평화가 깃든 '좋은마을'. 장수군 번암면 멍덕골에 늦가을이 찾아 들었다. 산세 좋은 이곳에서 6년째 귀농생활을 하고 있는 이남곡(65)·서혜란(58)부부. 젊은 시절 사회 변혁과 농촌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이 멍덕골에 정착한 후 처음 시작한 일은 장류 사업이다. 소통, 상생, 나눔을 공존하는 야마기시즘 실현지의 8년간 생활이 장류사업을 하는 밑바탕이 됐다.

현재 좋은마을대표로 있는 이남곡 선생이 마을 제일 위쪽에 들어선 장류가공 공장의 지형적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한마디로 이곳이 발효조건이 좋다는 것이다. "저희들이 특별하게 한 것도 없는데 발효가 상당히 잘 돼요. 아마도 물이 좋고 좋은 원재료를 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풍부한 일조량도 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 선생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50여개의 항아리 중 된장과 간장이 담긴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특유의 구수한 향내가 풍겼다. 아마도 주변 자연환경과 장수지역에 나는 국산콩을 비롯 간수를 뺀 임자도 소금을 쓰는 요인도 있으리라.

"된장은 1년 묵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맛이 있다고 해요. 간장도 다른 집에 비해 적게 뺍니다. 그래야 맛에 차별이 생기죠." 지난해에는 11월에 수매한 40㎏ 콩 150가마를 전문공장으로 보내 메주를 위탁 생산하게 했지만 그 뒷일은 이들 부부가 마무리 짓는다. 콩 수매부터 장 담그기, 납품까지 1년 작업이다. 이를 통해 된장 항아리 75개와 간장 항아리 45개가 거의 동이 났을 정도다. 올해는 200가마를 준비하고 있다.

옆에서 남편 말을 귀담아 듣고 있던 서 씨도 한마디 거든다. 그녀는 실제 이곳 장류 가공공장의 대표다. 그의 말속에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움이 있다.

"장 담그기는 음력 1월 보름 전후가 가장 좋습니다. 장맛이 자연스럽게 우러납니다. 이 시기가 계절의 전환점입니다. 며칠 사이로 기후와 땅 기운이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그녀는 청국장 띄우는 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담양에서 구입한 대소쿠리에 짚을 넣고 옛날 전통방식으로 띄운다. 1번 생산량은 3가마 120㎏이다.

"본격적으로 청국장을 하다 보니 찾는 분들이 많아요. 청국장은 10월쯤 시작됩니다. 소쿠리에 이불을 씌워서 만들고 있어요. 1주일에 1번 정도 띄우는데 7∼8월을 피하고 있습니다. 한 여름 띄운 것은 쓴맛이 비칩니다."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고추장에 대해서는 이 선생이 설명했다. 보리·오미자·찹쌀·사과고추장 생산에 대해서다. 보리고추장의 경우 보리쌀을 쪄서 삭이고, 찹쌀고추장 역시 마찬가지란다. 오미자고추장의 경우 찹쌀과 오미자 엑기스를 주 원료로 하고 사과 고추장은 찹쌀고추장에 사과 시럽을 넣는 점을 덧붙였다. 이 모든 것에는 청국장 가루가 포함된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는 "고추장은 종합식품이다"는 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들어 놓으면 주문이 막 들어 옵니다. 1주일에 한번씩 두레생협연합과 한국여성 민우회생협에 택배로 보내죠. 최대한 항아리에 있게 하는 것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보리고추장은 단골이 많이 생겼습니다. 주문량에 따라 사업을 하다 보니 수요량이 늘어났어요."

그러나 이들 부부는 서로를 쳐다보고 웃음만 짓는다. 무리하게 판로를 늘리는 것은 지양하겠다는 뜻이다.

▲ 맛있게 숙성된 된장은 불티나게 팔린다.
마침 고추장을 항아리에 담고 있던 좋은 마을 귀농 5년차인 전용우(53)씨와 귀농 10년차인 최석민(50)씨도 웃음을 머금는다. 그만큼 이들 부부의 마음씀이 편안하다는 것일게다.

잠시 산천을 구경하던 서씨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등 장류사업에 대해 자신있게 말했다. 주위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기쁨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랜 세월동안 장류가 밥상에 계속 올라오는 것에 호감을 가졌다. 발효식품인 관계로 소비도 계속 될수 있다고 판단했다.

"장류사업을 하길 잘했어요, 푸대접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잖아요,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발효식품만으로도 소박한 밥상을 꾸밀 수 있습니다. 가짓수가 많지 않더라도 몸에 유익합니다. 선조들이 밥과 장류만 먹고 살았어도 건강을 유지하고 농사일을 했던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의 말은 집 거실에서 그대로 증명됐다.
점심공양으로 내어 놓은 김치, 찌개, 마늘장아찌 속에서도 자연스런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한마디로 보석밥상이었다.



육관응 yuk@wonnews.co.kr
http://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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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마을’대표 이남곡 서혜란 부부


승인 2008.11.22 12:01
호수 152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나란히 옥살이를 했던 이남곡.서혜란 부부. 당대 최고의 ‘엘리트 부부’로서 사회개혁과 농민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은 전북 장수의 ‘좋은 마을’에서 ‘둘도 없는 도반’이 되어 자연과 더불어 새로운 꿈을 지피고 있다.

“佛心 버팀목 삼아 행복한 세상 만들 겁니다”



사회 변혁 꿈꾸던 부부, 야마기시즘 실현위해 정진

전북 장수서 새삶…“생명 넘치는 행복공동체 꿈꿔”



때는 1979년 가을 서슬퍼런 유신시절. 6.25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연북지하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서 활동한 부부는, 생후 6개월 된 갓난 아들을 남겨두고 철창에 갇혔다. 하루아침에 아들과 며느리를 빼앗긴 어머니는 홀로 남은 손자를 업고 무작정 집 근처 사찰을 찾아갔다. 당시 천막법당에 부처님을 모셨던 부천 석왕사는 가난과 공포에 떨고 있는 한 할머니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이남곡(66) 서혜란(56) 부부의 삶은 여기서 출발한다.

“어머님은 전쟁통에 아버님과 시동생을 잃고 오로지 남은 자식들 먹여 키우기 위해 사셨어요. 그 옛날 제 남편이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하늘을 얻은 듯 좋았고, 서울대 법대 들어가서 사법고시 자격시험에 덜컥 붙었을 때 세상이 다 당신 것인 양 행복하셨대요. 그러면서 ‘그 뒤부터 삐그러졌다’고 말씀해요…”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아들의 삶이 언제부턴가 더디고 굽어지고 있음을 느낀 어머니의 ‘삐그러졌다’는 말뜻을 알 것도 같다.

남편을 만나서 고생을 자초한 건 부인도 마찬가지. 경남 거창의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나, 여성 엘리트계 산실과도 같은 이화여대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녀는, 공동체적 삶, 혁명을 넘어 개벽을 지향하는 남편의 꿈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잠시나마 남민전 활동을 했던 전력으로 남편과 나란히 형무소에 갇혔지만 그 역시 그녀에겐 후회와 고통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6개월만에 남편을 두고 저 혼자 석방됐지요.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기에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친정집 근처에 양품점을 차렸답니다. ‘여자는 공부 잘해도 소용없다’ ‘저 집 딸 봐라’ 동네사람들이 수군대도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내 삶은 내가 선택했기에 책임지고 또 짊어지고 살아야 하니까요.”

경기고에 합격한 1960년 봄. 처음 서울땅을 밟은 이남곡씨는 당시 4.19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 시절엔 4월1일이 입학식이었지요. 학교 들어간 지 얼마지 않아 4.19가 일어나는 바람에 유일하게 알고있던 길(광화문~안국동)이 막혀 그날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나요.” 4.19혁명은 그가 시대에 눈 뜬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훗날 대학에 가서도 사회적 부자유와 불평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마르크스의 사상에 심취한 인연이 됐다. 급기야 1964년 한일회담의 반대서열에 앞장서고 지하운동에 가담하기에 이르렀다.

남모르게 혁명을 꿈꿨던 그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이유 중 하나는 ‘불교’에 있었다. 당시 서울대 법대불교학생회에 가담해서 종교와 과학을 화두삼아 불교의 진정성을 탐구한 그다. 대학동기 중 출가한 휴암스님과의 인연도 작용했다.

그가 4년(1979~1983)이란 짧지 않은 복역생활을 끝내고 세상의 빛을 본 첫날, 휴암스님이 머물던 영천 은해사의 한 암자에서 사회구조와 더불어 인간의식 전환을 위한 ‘개벽’에 착안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정토회 법륜스님이 이끈 불교사연구소에서 새로운 인간과 사회, 새로운 문명을 고민하고 설계하기도 했다. “20세기가 낡은 집을 허무는 것을 주된 테마로 했다면 21세기는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이 핵심입니다. 억압과 착취, 빈곤의 긴 터널로부터 인류를 해방하는데 큰 획을 그은 지난날을 버팀목 삼아 이제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사회로 가야합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사회’로 가기 위해 그는 안간힘을 썼다. 대안은 농촌운동. 교사자격증을 따서 농촌지역 학교에서 신바람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반공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교사들을 계도했다. 농업근대화연구회, 푸른들신용협동조합 등 여러 농촌운동단체와 손을 맞잡고 농촌변화의 필요성을 외쳤다. 농촌사회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총체적인 사회변혁이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 즈음 무아집 무소유 일체의 이념으로 집약되는 ‘야마기시즘’을 만났다.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에 참여한 인연으로 8년여간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야마기시(山岸) 실현지’에서 새 삶을 꾸렸다. 소통의 방식(연찬)과 상생(무아집)과 나눔(무소유)이 공존하는 야마기시는 이들 부부와 더불어 두 아들과 고령의 어머니에게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당시 화성의 야마기시 실현지에 살 때, 석왕사 주지 영담스님께서 몸소 찾아주셨어요. 석왕사 유치원을 나온 두 아들은 청년이 다됐지만 어려웠던 시절에 만나셨던 스님과 어머님의 인연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고단했던 삶 속에서 절망과 아픔에 스러져갈 때, 스님께서 우리 가족에 베풀어주신 자비와 사랑은 잊을 수 없지요.”

서혜란씨는 한때 불치병에 걸려 생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었다. 이들 부부가 지난 2004년 화성을 떠나 전북 장수에 새 터를 닦아 둥지를 틀었던 이유도 그녀의 요양과 치유를 위한 방편이었다.

웬일인지 장수에 정착한지 얼마지 않아 병마는 기적처럼 사라졌다. 칠흑같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녀는 정성과 사랑, 감사를 오롯이 담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된장과 고추장, 간장과 장아찌 등 맛깔스런 음식을 빚어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마을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어를 ‘연찬’하고, 일상을 공유하고 내일의 흐름과 삶의 방향을 점검한다. 평생 한몸이 되어 울고 웃으며 새로운 꿈을 지피며 사는 이남곡 서혜란 부부. 이들과 같은 도반이 세상에 어디 또 있으랴.

이들 부부가 지향하는 공동체

품앗이가 아닌 ‘즐거운 노동’되게 해야



“의기투합해서 어렵게 만들어진 공동체가 왜 깨질까요? 단순해지려고 자연으로 돌아와 서로 내가 더 단순하다고 경쟁합니다. 누가 더 생태적인가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이남곡)” 지난 1996년 경기도 화성에서 첫 귀농생활을 한 이들 부부는 8년만에 전북 장수에 새 터를 마련했다.

공동체 이름은 ‘좋은 마을’. 현재 세 가구가 살고 있고 내년에 두 집이 더 늘어난다. “우리가 이 작은 골짜기에서 ‘작은 마을’을 만들어가려는 것은 세상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고 이웃마을과도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까, 힘과 지혜를 모아 검토하고 실천하는 장입니다.(이남곡)”

첫 조건은 서로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도록 선을 정하는 것. 적절한 간격이 서로를 존중하고 발전시키는 약이 된다는 설명이다. “독립된 단위세포가 모여야 원만한 생명력을 갖추는 법입니다. 공동체라고 해서 모든 울타리를 걷어내고 알게모르게 희생을 강요하면 생명력 있는 집단으로 승화시키기 어렵지 않을까요?(서혜란)”

마을 성원들이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물질이 보장되는 요건도 중요하다. 거래로서의 품앗이가 아닌, 자유노동에 준한 즐거운 노동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협동이 조화를 이루는 마을을 말한다. 이남곡씨는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이후에 도래하는 무소유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수=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불교신문 2479호/ 11월26일자]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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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5

Namgok Lee | Facebook 리링(李零)을 읽고 있다.

Namgok Lee | Facebook

Namgok Lee
1t9000a5l13chn1su70972i  · 
리링(李零)의 ‘논어, 세 번 찢다’는 서문부터 나 같은 사람에게는 주눅을 준다.
진짜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논어를 읽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절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혼잣말을 하며 ’오버‘하다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답을 찾아주어서는 안 된다. 공자가 무엇을 말했는지 듣지 않고, 말하지 않은 것도 그의 입을 빌려 우리를 대신해 말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나는 향을 피우고 혼잣말로 ‘오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입을 빌려 우리를 대신해서 말하게’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찔끔.
나는 공자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는채 오랫동안 비난 배격해 온 반동(反動)으로 약간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있다. 

‘역사적으로 공자를 떠받드는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정치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는 한나라 유자들이 취한 방법이었다.
둘째는 도통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는 송나라 유자들이 취한 방법이었다.
셋째는 유학을 종교로 삼는 것으로, 이는 근대 이후 기독교의 자극을 받아 형성된 구세(救世)설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는 모두 이데올로기로 공자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자를 해치는 짓이다. 나는 이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간다. 공자를 정치화하고 도덕화하고 종교화하는 것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우매하다 하겠다. 백성을 우매하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백성을 위해 우매해진다.‘
나는 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역사의 격변을 실제로 경험한 현대 중국의 학자가 공산당 정권 아래에서 어떻게 논어를 읽고 있는가하는 것을 아는 것은 나에게는 대단히 귀중한 경험이다.
아마도 학자가 아닌 내가 이 책을 읽다가 부딪치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지만, 특히 내가 논어에서 발견한 공자의 무지(無知)에 바탕을 둔 탐구와 인식 그리고 실사구시의 실천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나름의 판단으로 공자의 사상은 그 생존 당시의 정치체제에서 살려지기 힘든 것은 물론, 지금도 전체주의나 독재 체제에서는 살려질 수 없다고 보고 있는데, 현대 중국의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배격 또는 찬양 등을 거치며 공자가 평가되고 있는지 다소라도 그 편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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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4 m  · 
리링(李零)을 읽고 있다.
몇 곳을 옮긴다.

<공자는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17-25)고 했다. 원문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하지만 최근 사람들은 대단히 시끄럽게 떠들어대곤 한다. 공자가 성인인데 어찌 부녀자를 무시하여 위대한 여성과 덕이 부족한 소인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겠느냐, 설마 그에게 어머니가 없었겠느냐며 공자를 대신하여 서둘러 ‘여자(女子)’를 ‘여자(汝子)’로 읽고 ‘소인’을 어린 아이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 것이 바로 전형적인 예이다.>

나는 ‘공자의 변명’이라는 제호로 칼럼을 쓰고 있지만, 이런 식의 왜곡된 변호는 단호히 거부한다.
시대의 한계인 동시에 공자 자신의 명백한 한계라고 본다.

<공자의 일생은 매우 불행했다. 어릴 때도 그는 불행한 아이였으며,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을 때도 눈물로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중략)
공자를 연구한다면 이들 ‘성적도’를 봐두는 것이, 송(宋) 이후로 공자를 논하면서 그가 어떻게 신비화되었는지를 봐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략)
사마천의 붓 끝에 묘사된 공자가 아무래도 비교적 믿을 만한 것이다. 
때를 잘 못 만나고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 이것이야말로 공자의 참된 모습이다.>

공자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때를 잘 만났는가! ㅎㅎ

<공자가 사진을 남기지도 않았으니 진짜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만약 새로 조각을 한다고 하면 조각가의 상상에 맡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으므로 더욱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에 유자들은 마침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브랜트 식의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전부’란 다 있다는 뜻, 즉 마음대로 그린다는 뜻이고, ‘전무’란 아예 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느것이든 모두 당신의 ‘상상’에 맡긴다는 것이다. 
상상을 하면서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명령을 따르고 지휘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면 멍청이 아닌가?>

나는 공자가 태어난 취푸(曲阜)를 가본적도 없고, 별로 가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책에서 리링의 안내로 돌아보았다.
역사를 통해서 치권력이나 숭배자들에 의해 우상화나 신비화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흔적을 보느니, 논어를 통해 25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내 상상도 허(許)하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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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1t5000a5l13chn1su70972i  · 
쾌청.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한 번  써보고 싶은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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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7

Namgok Lee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도법 묻고 담정 답하다’를 일단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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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도법 묻고 담정 답하다’를 일단 다 읽었다.

나는 불교에 대한 이론이나 논리에 대해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나도 내 나름으로 ‘중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두 분의 대화를 통해서 ‘중도(中道)’ ‘중(中)’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특히 나라가 악성 편가름으로 정치적 혼돈이 계속되고, 문명을 둘러싸고 대전환이 요청되는  시점에서 현실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 책을 보게 된 것을 감사하며, 두 분의 대화  뒷 부분 가운데 내가 밑줄을 친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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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 담정의 말에 따르자면 언어 자체를 희론(戱論)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언어에는 언어 자체의 한계와 위험성이 있다고 말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언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고 말해야 할 점도 있다.
담정; 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포함하여 일체 희론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법; 응병여약(應病與藥)의 말씀은 희론이 아니다. 붓다의 말씀 자체를 몽땅 희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담정; 그렇지 않다. 부처님 말씀도 희론이다!  일체 희론을 벗겨 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만 방편교설의 진정한 의미를, 연기실상의 삶을 직시할 수 있다.


도법; 공도 왜곡되게 쓰면 희론이 된다고 하면 모를까 처음부터 희론인 공을 말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승의 언어에서는 도(道)를 말할 때 두 가지를 말한다.
첫 번째는 ‘도(道)는 말할 수 없다’이다.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 한다’이다.

도법;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중론>에서 언어로 된 모든 것이 희론이라면, <중론>도 이제론도 공론도 논파론도 다 희론이지 않는가?
담정; 그렇다. 당연하다.

도법; 적멸해야할 것이 희론이라면서 왜 소멸해야할 그 희론을 설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담정; 필요 때문에 그렇다. 14난(難)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담정; 경론을 손에서 놓을 만큼 강조하는 선(禪), 즉 ‘선의 과잉’은 오늘날 맞지 않다고 본다. 선의 위대한 조사들도 자기 시대에 맞는 불교를 했고, 그 선불교도 불교의 긴 역사와 전통의 일부일 뿐이다.
도법; 선의 과잉이나 왜곡에 대한 문제 의식은 공감한다.  하지만 조사들 때문이라고 보는 것에는 동의가 안된다.
담정; 조사들은 자신들이 살던 시대의 불교를 하신 분들이다.
당시는 99%가 글을 모르던 문맹의 시대다.
오늘날은 99% 이상이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다.
이 ‘문자 생활 시대’라는 변화는 기존의 불법을 담았던 ‘선’이라는 그릇을 다른 그릇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담정; 중요한 것은 (고려 지눌 스님등의 방법이) 부처님께서 쓰신 방법과 같았다는 점이다.
새로운 해석일지라도 기존의 것과 척지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동물희생제를 반대하시면서도 불에 대한 제사를 최고의 제사라고 하시며 제사 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것을 피하셨다. 
민중과 괴리되는 불교나 중앙과 대치되는 극단적 선택은 현실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현실은 중앙 다수파 옆에서 비슷하게 같이 가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꾸려나가는 기나긴 싸움이다.

담정; 우리나라에서 한문으로된 글을 제일 많이 쓴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고, 불교에 관한 문헌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원효 스님이다. 이런 원효 스님이 붓을 들고 민중 속으로 들어갔을까, 버리고 갔을까? 나는 붓을 꺾고 갔다고 본다.

도법; 붓을 들고 갔든 버리고 갔든 꺾고 갔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화쟁이 고통과 불행을 낳는 싸움을 해결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이론을 국가가 필요로 해서라 하더라도 정치권력과 같이 가는 것보다 민중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옳기도 하고 바람직하다는 판단으로 선택한 것으로 본다.

담정;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실천과 이론화 작업의 사이에서 이론화 작업을 포기하고 민중 속으로 갔다는 것이다.
도법; 학술불교를 접고 갔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원효 스님이 현장으로 가는 것이 이론을 버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담정; 그렇다면 다음은 ‘그럼 원효 스님은 민중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이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학술불교의 대표자이자 대내적으로는 민중불교의 대표자였다. 한 인물이 가지고 있는 그 역동성은 지금도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담정; 교학불교는 교학 불교대로, 실천불교는 실천불교대로 자기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도법; 교학과 실천은 일치되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중론>이 답을 내놓으면 바로 받아들이겠다.

담정; 이건 ‘탁!’해서 될 일이 아니다.
도법; 내 방식으로 하면 ‘탁!’해서 된다.
도법; 담정이 역경사로서 이론에 충실할 뿐 아니라 동시에 현실문제와 연결해 해답을 만들어내는 이론으로 진화하면 역경도 훨씬 좋은 결과를 내올 것이다.
담정; 나는 생각하는 것이 곧 실천하는 것이라며 불법의 정확한 의미를 옮기는 역경사의 삶에 만족한다. 땅을 파든, 경을 파든, 그렇게 파며 사는 삶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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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몇 대화를 옮겼다.
아마 읽으시면서 자신도 하고 싶은 말이 생기신 분에게는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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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론(戱論)... 그만 내려놓으세요
달과 손가락 2020. 7. 26. 

산스크리트어 prapañca의 한자어(漢字語)로 허구적인 관념(觀念)을 실재(實在)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마음 작용, 마음속으로 실재하지 않는 형상을 지어냄, 혹은 허망한 언어(言語) 무의미한 말, 헛소리, 관념을 가리켜 희론(戱論)이라 합니다.

그 말은 허위(虛僞), 망상(妄想)’과 같이 좋지 않은 뜻으로만 쓰입니다. 무언가 진상(眞相)을 꿰뚫지 못하고 언저리로만 얼쩡거리는, 알갱이를 꿰차지 못하고 모호하게 흩뜨리는 말이 희론입니다.
중심(中心)에 적중(適中)치 못하거나,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말들을 희론(戱論)으로 간주하며, 싯다르타는 가끔 그 말을 사용해 제자들을 경책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읽고 있는 글들이 얼마나 중심에 적중하고 있는지를 살피며 사는 것이 "깨어있음"입니다. 화살을 맞았다면 화살촉을 빼어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화살촉의 재질(材質)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계(五戒)의 하나에 불망언(不妄言)이 있습니다. 보통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가르치고는 있습니다만, 원래의 의미는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않는 말, 깨달음, 즉 “지금 여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검증(檢證) 역시도 불가능한 것으로 쓸데없이 타인의 시간을 뺏는 말들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슴에는 독화살이 꽂혀있으며, 머리 위는 불타고 있다고 선지식(善知識)들은 말합니다. 그런 상황에 깨달음 말고 신경 쓸 일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신의 관심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살피세요. 과연 당신의 말과 행동은 생명 에너지 자리, 깨달음을 향해가고 있는가 말입니다.
먹고 입는 것, 그리고 소유하는 것과 전생(前生)이나 다음 생(生)에 대한 말들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희론(戱論)이 되는 것입니다.

당장 깨달음을 향해 필요한 에너지(氣) 그리고 내가 누군지를 파악하는 일(見性)이 가장 시급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누구고 어떤 옷을 입고 있든 당신은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말이 귓등으로 들린다면 역시 당신은 수행자(修行者)가 아닙니다.
희론(戱論)에서 벗어나세요. 그것이 가슴에서 화살을 뽑고 불타는 머리 위를 식히는 일입니다.
그것이 지금 당신이 할 최선(最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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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을 잡는 그릇

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말의 얼굴 
2018. 4. 12. 11:53
https://arukda.tistory.com/entry/%EC%95%84%EB%A1%AC%EC%9D%84-%EC%9E%A1%EB%8A%94-%EA%B7%B8%EB%A6%87

전(筌), 고기잡는 그릇

오늘날 세존이 우리를 제법(諸法) 농담의 의론(議論)의 똥을 사랑하여 덜게 하실새
농담의 의론을 거꾸로 가려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똥이라고 했다.
『월인석보』의 구절이다. 세종의 말투이다. ‘농담의 의론(議論)’은 희론(戱論)을 번역한 것이다.
‘똥을 사랑하다’라고 한다. ‘사랑’은 물론 사유(思惟)이다. 똥을 사랑하고 똥을 덜라고 한다.
무릇 말씀이 있으면 다 노릇의 말씀이 되며
희론(戱論), 불교에서 참 자주 쓰는 말이다. 언해불전에서는 이 말을 ‘노릇의 말씀’이라고 새긴
다. 여기서 노릇은 놀이이다. 농담이라는 말, 말을 놀린다. 가지고 논다. 희론(戱論)은 목적과 의도
를 벗어난 논란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독화살의 비유’라는 게 있다. 독화살을 맞았다면 화살을 뽑
고 약을 쓰고, 어떤 조치라도 얼른 해야 한다. 당장 해야할 일은 제쳐 두고, 독이 어떠니 화살이 어
떠니 시시비비를 따진다면 그런 것이 희론이다. 이런 논란은 감정에 휘둘리고 지식과 이론에 집착
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언해불전의 ‘노릇의 말씀’은 웃자고 하는 농담, 그냥 말장난이 아니다. 그렇
다고 목적과 의도를 벗어난 논란 만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노릇의 말씀’은 말씀의 본질이다. 말의
얼굴이다. 말은 개념이나 논리, 나름의 규칙을 따라 노는 놀이이다. ‘노릇의 말씀’은 말하자면 불교
의 언어관이다. 소통의 철학이다. 개념이나 논리를 따라 가는 말씀, 이런 말씀을 따라 가다 보면 생
각이 뒤집히고 마음을 더럽힌다. 그래서 ‘노릇의 말씀’은 모두가 똥이라고 한다.
부혈기지속(夫血氣之屬)이 필유지(必有知)하고, 범유지자(凡有知者)가 필동체(必同體)하니
피와 기분(氣分)의 류(類)는 반드시 아롬이 있고, 무릇 아롬이 있는 것은 반드시 체(體)가
한가지이니
언해불전의 구절이지만, 이건 유교의 경전 『예기(禮記)』에서 빌어온 말이다. 혈기(血氣), 기
(氣)를 ‘기분’이라고 읽는다. 피와 기분을 가진 무리들, 언해불전은 이 구절을 불교의 중생(衆生)으
로 읽는다. 몸과 생명을 가졌다. 지(知)를 ‘아롬’이라고 새긴다. 피가 흐르고 기가 흐르는 중생들은
반드시 아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롬을 가졌다면 모두가 동체(同體), 한 몸이다. 이렇게 읽으면
유교도 불교도 다툴 것도 없다. 언해불전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까닭은 이 구절에 언해불전에서
하고 싶은 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몸이 한가지로 가졌다는 ‘아롬’이다. 아롬
은 ‘알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요즘에야 ‘앎’이라고 한다. ‘알다’라는 동사는 ‘모르다’와 짝을
이룬다. 언해불전은 이 말의 명사형을 ‘모롬’이라고 쓴다. ‘모롬과 아롬’의 짝이다.
구태여 아롬을 앞세우는 까닭은 ‘모롬’이 있기 때문이다. 언해불전은 뒤집힌 ‘아롬’을 다룬다.
뒤집힌 ‘아롬’이 ‘모롬’이다. 모롬과 아롬 사이에 말이 있다. 모롬을 다시 뒤집어 아롬으로 바꾸고
자 한다. 말은 모롬을 아롬으로 바꿔 주는 수단이다. 길이다. 언해불전은 ‘니라다’라는 동사를 쓴
다. ‘(말을) 이르다’의 옛말이다. 그리고 이 말의 명사형은 ‘니롬’이라고 한다. ‘니라다’의 짝은 ‘듣
다’이다. 이 말의 명사형은 ‘드롬’이다 .‘니롬과 드롬’의 짝이다. 니롬과 드롬의 길을 통하여 모롬이
아롬으로 바뀐다. 모롬을 아롬으로 바꾸는 말의 길이다. 이 두 개의 짝을 순서대로 맞춰보자면 ‘모
롬-니롬-드롬-아롬’이 된다. 언해불전의 말투가 이렇다.
이 두 개의 짝 , 요즘에는 쓰지 않는 옛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 짝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운이
맞는다. 입에 착착 붙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말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15세기 언해불전
에 담긴 우리말투이다. 이 말투에는 말을 하는 기술과 말을 듣는 기술이 담겨 있다. ‘니롬과 드
롬’의 짝이다. 그리고 이 짝은 ‘모롬과 아롬’의 짝을 향한다. 모르는 상태를 아는 상태로 바꾸어 가
는 방향이다. 이 두개의 짝, 내 입에 착착 붙는 말, 그래서 나는 이 짝 만큼은 그냥 쓰려고 한다. 오
래된 옛말이다. 요즘 문법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말로 바꾸어 보려고도 했다. 그러다 보니 말
도 길어지고 짝도 맞지를 않았다. 낯설고, 이상하더라도 그러려니 들어주길 바란다.
전(筌)은 고기 잡는 그릇이오, 제(蹄)는 토끼 그물이니 고기를 잡으면 전(筌)을 잊고, 토끼
를 잡으면 제(蹄)를 잊는다.
이건 『장자(莊子)』에서 따온 말이다. 고기 잡는 그릇, 전(筌)을 전(詮)으로 비겨 읽는다. 그리
고 ‘니라다’, 또는 ‘니롬’으로 새긴다. 니롬과 드롬, 말을 그릇과 그물에 비긴다. 모롬을 아롬으로
바꿔 주는 그릇이다. 니롬과 드롬의 그릇으로 아롬을 잡는다. 이게 말의 쓰임새이다. 아롬을 잡는
그릇, 아롬을 잡으면 잊으라고 한다. 고기 잡는 그릇, 쓰고 나면 창고든 어디든 던져 두면 된다. 그
런데 니롬과 드롬의 그릇, 던져 두기가 쉽지 않다. 고기를 잡은 뒤에도 오락 가락 놀린다. 그러다
보면 노릇의 말씀이 되고, 똥이 된다. 고기를 잡기는커녕, 나와 남을 함께 더럽힌다.

===
고작 다섯 손가락으로 세상을 헤아리려고 한다. 
희론(戱論)이다! 
박유하를 생각한다. 
===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patiensky&logNo=220283816561


문학과 철학 또는 사회 과학은 
결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는 것을. 
시는 하늘의 언어, p로 쓰는 것, 
소설은 그야말로 잡(雜)이고.., 
철학은? 사상은? 
학문의 엄니가 철학인 것은 
그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라는 
동어반복 이외에 답이 없다. 
파천 단상
희론(戱論)과 박유하
담정
2015. 2. 26. 8:52
 이웃추가
3 1 담정의 샨띠 통신
가라타니 고진을 옮겼을 때, 
박유하는 어떤 시각으로 고진을 보았을까? 
민족nation이 민족국가nation인 것을!
~~~
『중론』의 귀경게다.
무언가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緣起](이기에)
소멸함이 없고[不滅] 생겨남이 없고[不生]
그침이 없고[不斷] 항상함이 없고[不常]
오는 게 없고[不來] 가는 게 없고[不去]
다른 의미가 아니고[不異] 같은 의미가 아닌 것[不一]이니
희론(戱論)*이 적멸하여 적정(한 상태에 머물 수 있는) 가르침
정등각자의 말씀들의
진리, 그것에 경배하옵니다.**
* 희론(戱論, Skt. prapaňca Tib. spros pa)은 중관사상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참고할만한 산스끄리뜨어 어원 분석은 다음과 같다.
‘prapaňca(희론, 여러 갈래로 퍼진 사유와 언어, 진리에 어긋난 사유와 언어. … pra(앞으로)+√p
aňc(퍼지다, 다섯 손가락을 펴다. pra-√paňc(생각 등이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가다. 망상하다. 생
각을 표현하다.’ - 『쁘라산나빠다』, p. 38.
‘*√paňc는 다섯 손가락(paňca)을 연상한다. 그러므로 언어, 사유 및 논리와 같은 세간 관습에 의
하여 절대적 진리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허공을 움켜쥐려고 벌린 다섯 손가락의 부질없는 동작
에 비유된다.’ - 같은 책, p. 993(자세한 내용은 같은 책 [318(22-15)]번 게송 해제 참조,
어근 ‘빤쯔(√paňc)’는 ‘빠즈(√pac)’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기에는 ‘요리하다’는 뜻부터 ‘to ripen,
mature, bring to perfection or completion, to develop or change into’ 등의 긍정적인 뜻이 있
다.
** 산스끄리뜨어 원본이나 [청목소]의 용수보살의 귀경게가 아닌 티벳 게송을 직역으로 옮겼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왜 용수가 붓다에게 예경하는 지에 대한 이유인데, ‘열반적정’은 희론(戱論)
이 그친 상태[寂滅], 즉 적정(寂靜 = 평온)을 이끄는 그것이 바로 연기(緣起)라는 것이다. 그 내
용은 물론 8불중도이다. 연기 사상에 대한 강조는 명확하고 그 8불중도의 내용 또한 밝혀져 있
으나, 티벳 불교에서는 이 귀경게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 이후 월칭으로 대별되는 ‘쁘라상기까’
주석 방법에 따른 것이 한역 경전권과 갈리진, 커다란 두 가지 해석의 흐름을 나은 배경이 아닌
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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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담정의 샨띠 통신
*사진은 나까무라 하지메(中村 哲) 선생... 모든 불학자들의 큰 스승이셨던 분. 70년대 강의를
들었던 분에 따르자면, 강의는 잼병이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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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호흡하는불교, 월간불광
100호 특집II-이것이 불교 중흥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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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말 같지 않은 말을 희론(戱論)이라 하셨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말은 희론이라는 뜻이다. 남의
말을 되풀이하고 불경의 말씀을 인용한다고 그것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대중에 감동을 주지 않을
때 그 말은 희론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불교인은 이 희론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심과 감동이 따르
지 않은 불교지식, 불교학은 체온이 없는 말이나 글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가 다시 흥하고 사는 길은 부처
님의 말씀을 쉽고 평범하게 전하는 것이고 체험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이라는 외형적 틀에 묶여 있을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 움직이는 현실을 빨리, 정확하게 봐야
한다. 불법은 해인사 장경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시중(市中)에 있어야 한다. 책 속에서 불법을 구하는 자세
에서, 가슴 속에서 불법을 구하는 불교인이 되어야 불교가 다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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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론戱論, 산스크리트어 prapanca쁘라빤짜>
아미산 2017. 4. 13. 11:07 http://blog.daum.net/511-33/12369931


여기서 희戱는 진실이 모자란다는 뜻이고 론論은 사물에 대한 생각이 진리에 맞지 않는
언론을 말한다 따라서 희론이란 허망한 언어 무의미한 말 부질없는 말 헛소리에 가까운 쓸데
없는 말장난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희론戱論은 잘못되고 무의미한 말로서 다듬어지지 않은 생
각이며 진리에 어긋나고 그릇된 집착과 차별에서 비롯돼 사람들을 망상의 세계 속에 빠뜨리는
것이다
탐ㆍ진ㆍ치 삼독심에 오염된 마음작용이 희론이다
주객전도된 전도몽상 번뇌 망상이 희론이다
사실본래성품 그대로 자각 인식하지 못하고 알음알이로 사유하고 고집하는 것이 희론이다 희론은 나는 존재한다라는 자아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일상적 지각의 확산 즉 망상을
의미한다 세상사람 가운데는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정론正論보다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결론이 나지 않는 끝없는 쟁론만을 생산해내는 희론戱論에 빠져 허송세월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따라서 무익한 희론戱論을 일삼는다면 마음만 산란해진다 이러한 망상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모든 질병의 근원이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나타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수반하고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싸움 논쟁 언쟁 교만
중상 질투 인색을 수반한다


희론은 산스크리트어 쁘라빤짜prapanca의 한역인데 이는 어근 prapa 또는 prapac
- 상세히 설명하다 흩뜨리다에서 나온 명사형이다 원래는 현상 확장 다양화 상세한 설명
발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율배반적인 사유의 개념적 확장 등의 의미를 가졌다
이 말이 점차로 철학적 영역에서는 현상 환상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희곡에서는 어리석은
말을 뜻하게 된다 한역에서는 희론을 허위虛僞), 망상妄想과 같이 좋지 않은 뜻으로만 쓰
인다
이는 희론이 무언가 진상을 꿰뚫지 못하고 언저리로만 얼쩡거리는 알갱이를 꿰차지 못하고
모호하게 흩뜨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면서 말로만 떠드는 것


경전經典에 어떤 구절을 기억해 가지고 어떤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느니 해서 자기를 과시하
는 것이 희론이다 그래서 희론은 진정한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
용수龍樹는 <중론中論>에 희론戱論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용수는 희론을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 같은 것이라 했다 허구적인 관념을 실재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마음작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희론에는 어디까지나 전도된 인식이 전제된다 예컨대 우리가 나라는 표현을
할 때 마치 그 말에 따라 어떤 영속적인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과 같
〈중론송〉의 다음 게송을 대비시켜 생각해보면 그 의의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업과 번뇌가 소멸함으로써 해탈이 있다 업과 번뇌는 분별심에서 생기고 분별심은 희론에서
생기지만 희론은 공성空性에서 소멸한다185고 했다
이 말을 중국에서 희론적멸戱論寂滅이라 멋지게 한역했다 참된 궁극적 실재에서는 희론
이 절멸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용수는 공성空性은 연기와 같은 말인데 연기緣起는 세간의 무수한 속설로써는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연기는 바로 공성空性이라고 했다 그리고 희론은 생사윤
회의 원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하고 연기와 대극적對極的인 자리에 놓았다
그리하여 중도中道나 중관中觀은 바로 이런 망상희론을 없애고 세상을 똑바로 보는 방법
을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망상의 소멸 번뇌의 소멸이 바로 깨달음이고 해탈이라고 했다
부파불교 당시 무성했던 아비담마abhidhamma에는 희론이 너무 많았다 이를 공격하기
위해 등장한 대승불교였기에 용수는 <중론中論>에서 심도 있게 희론을 다룬 듯하다
허긴 침체한 우리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남방불교의 아비담마 중에도 이해하지
못할 허황된 희론이 많이 보인다 사몰심死沒心), 그리고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이니 존재지
속식存在持續識이니 결생심結生心이니 하는 바왕가찌따bhavanga citta 등은 언뜻 보기
엔 제법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깊이 사유해보면 완전히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 같은 소리다
때문에 오늘날 남방 상좌부불교 이론에 열광하는 범부들을 위해 마구 퍼다 옮기는 식의 행태는
곤란하다
희론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간화선看話禪이라는 기제에 맞서려는 듯한 아비담마가 오히려
희론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냉정히 검토해봐야 한다 숭고한 부처님 법을 다룸에는 조심스러워
야 하는데 얼마간의 알음알이로 신중하지 못하고 종횡무진 하는 일부 남방 아비담마 전공자들
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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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4

Namgok Lee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Namgok Lee | Facebook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를 읽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낼 것 같다.

불교의 여러 이론들이 생경하긴 해도, 읽으면서 내 나름의 생각도 떠오른다.
우선 차분히 읽어볼 겸, 페친 님들에게 이 책 소개도 할 겸, 두 분의 견해 차이가 비교적 잘 드러나는 부분을 내 생각은 빼고 그대로 옮겨본다.


====


담정; 다시 부처님 재세 시로 돌아가보자. 어떤 식으로 불교를 대하든 부처님처럼 불교의 가장 큰 목적은 자기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 스님처럼 사회적 실천 테제를 이 앞에 두고 불교를 상정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부처님 재세 시에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욕망의 불길을 끄는 것을 열반, 즉 ‘니르바나’라고 썼다. 그리고 이후에는 해탈을 뜻하는 ‘목샤’라는 단어도 자이나교에서 빌려 왔다. 나는 ‘니르바나’나 ‘목샤’라는 말의 그물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말의 그물에 묶여 있는 삶의 직접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 ‘고⸳ 고통⸳ 괴로움’이라는 나의 불편함을 먼저 보고 그것을 없애려 할 뿐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구체적으로 문제가 드러나지만 무언가 있어 뵈는 불교의 단어를 쓰는 순간 추상적인 것만 생각하게 된다.

도법; 나도 그 말을 하는 것이다.

담정; 그런데 왜 불교를 사회참여적 관점에서만 해석하는가?

내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 바로 공이다. 될 수 있으면 불법도 직접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주로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추상적인 언어를 쓰는 순간, 추상적인 반응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어떤 개념이든 그 사용 빈도수가 많아지면 개개인의 견해가 반영된다.
유명인일수록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처럼 개념도 마찬가지다. 이 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만큼 오해의 여지도 생겨난다. 

‘중도’라는 말도 ‘나의’ 중도와 ‘스님’의 중도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이 중도라는 ‘말’을 대하는 우리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론>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떤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극도의 추상적인 논쟁을 끌어오는 것이다.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세계는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경우로 가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 논쟁하기 어렵지만, 추상적인 개념⸳여래⸳열반 등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말의 그물이 보인다. 이 분석지로 불교적 개념도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의 직접성이 드러난다.

내 괴로움의 실체, 부처님의 말씀도 실체가 없는데 내 괴로움이 어찌 실체가 있겠는가? 고(苦)도 실체가 없는데, 나는 왜 고(苦)라 부르고, 그것은 또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렇게 하나 하나 뜯어보면 궁극적인 삶의 자세가 변하게 된다.

도법;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사회참여’ 관점에서 불교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은 동의하지 않는다. 삶이란 도심에 있든 산중에 있든 매우 사실적이다. 나는 매우 직접적이고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삶 자체와 연결해 불교를 다뤄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중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돌고 돌지 말고, 생물학적으로 앞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실상에 대한 무지와 착각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을 비유한 장님의 코끼리 이야기를 보자. 장님들이 각자 자신이 알고 믿는 코끼리만 진짜 코끼리라고 주장하면서 다툼이 생겼다. 다툼은 고통과 불행의 다른 이름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까? 붓다는 중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파악한 ‘중도’는 단도직입적으로 코끼리의 실물에 직면하는 것이다.
실물에 대면하는 순간 자기 정보만으로 판단했던 주장을 멈추게 된다.
실물에 대면하는 것이 중도이고, 중도에 의해 떨어져 나간 주장이 바로 양극단이다.
 
담정; 나는 그 비유가 중도를 설명하는데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코끼리의 실체를 알고 있는 ‘제3의 관찰자’로서 장님을 보기 때문이다.
===


이 ‘장님의 코끼리’는 우리의 직접지나 경험지, 즉 감각기관에 포착된 세속적인 지식을 가리킨다. 코끼리가 무언지 모르는 장님은 자신이 만진 것만을 코끼리라고 주장한다. 장님은 자신이 만져보고 인식한 것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출세간의 꿈을 꾸지 않은 채 언어를 통해 세상을 분석하고 알려는 자세를 비판하는 비유일 뿐, 중도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제 3의 관찰자, 즉 코끼리의 실체를 알고 있는 자는 일체지자, 즉 부처님이다. ‘일체지자가 보기에는 무명에 빠진 우리가 모두 장님이다’라는 생각을 먼저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스님처럼 ‘나는 전체를 보는 자’라는 견해를 세우고 중도를 실천한다고 주장하면, 불법을 오해한 아상만 생긴다.
적절할 때 적절한 비유를 해야지 중도를 주장하면서 이 비유를 가지고 오는 것은 옳지 않다
.

더 많이 옮기고 싶지만, 오늘은 체력이 여기까지. ㅎㅎ


Namgok Lee
89768phoillnh5fmuordm ·



카톡으로 온 벗님의 성탄과 새해 축하 인사에 답장을 쓰면서, 문득 성탄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사랑'이다.

옛부터 일가친척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금기처럼 되어 있던 것이 정치와 종교 이야기였다.
사이좋음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바라기로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도 서로 다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의식과 문화의 성숙이지만, 요근래 몇년은 특히 정치 이야기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역행하는 듯 하다.

한번 심하게 겪어서 반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가까이 사귄 오랜 벗들이 서로 멀어지고 심지어는 미워하는 상황을 만나면서 내가 웃으개 소리로 하는 말이 생겼다.
'대선은 짧고, 우리는 길다'

언젠가 웃으면서 옛 이야기로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것이다.
한국은 그런 나라가 될 것이다.
'사랑'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는 것이다.
사랑과 관용과 기쁨이 흐르는 성탄절을 보내기를 축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71박정미, 崔明淑 and 69 others


S
나단청

'대선은 짧고 우리는 길다' 명언이십니다!!

1
Namgok Lee

나단청 가끔 개그 감각이. ㅎㅎ


최영훈

인생도 짧고, 예술은 길다.
예술도 짧고, 타오는 길ㄷ


Namgok Lee

이제 동지(冬至)가 지났으니, 낮이 길어질 것이다.
동지의 지(至)는 끝에 이른다는 말이다.
끝에 이르러 바뀐다.
세상을 보며, ‘갈 데까지 가서 바뀐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요즘 인공지능과 기후위기의 동시적 존재를 보면서, 그 괴리와 모순 때문에 ‘바뀌기 전에 망(亡)’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나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꽤 과격한 실험들을 인생을 걸고 해 온 셈이다.
젊어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중년에는 무소유 사회 실험을 했다.

인간의 진화에 대한 신념과 이상을 가지고 해온 실험들이지만, 과격하다고 하는 것은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확증편향들을 검토하면서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 왔다고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나 가족에게 피해가 간 부분은 평생의 빚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감각과 판단 그리고 경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요즘 대변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절박함과 대의를 존중하면서도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신념’이나 ‘대의’나 ‘필요성’을 넘어 그 주체와 동력 그리고 방법에 대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실태는 ‘생산협동조합’조차 제대로 된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이른바 ‘마을’의 실태도 구체적으로 그 일을 해 본 사람이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두고 사변적 논쟁을 할 생각은 없다.

대변혁이나 대전환은 나에게는 평생의 화두다.
내가 보기에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주장이더라도, 진심으로 평화적으로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존중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해보기도 전에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을 가지고 단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부분은 기다려보면 된다.
실제로 성공적인 모델들이 만들어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울 것이다.
사실 나는 투 트랙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결사(結社)가 머리에 떠오를 때가 있다.
국가와 시장이라는 주류(主流)를 변화시키는 노력과 새로운 문명을 직접 창출하는 틈새를 확장하는 노력을 결합할 수 있는 상상 속의 총참모부를 그려보는 것이다.
무슨 신흥 종교나 과거와 같은 일사분란한 집중적인 조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을 견인하는 ‘무조직(無組織)의 조직’ 같은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보살(菩薩)을 종교나 정파를 떠난 일반 명사로 쓴다면, 그 결사는 진성(眞性) 보살(菩薩)의 결사일 것이다.
한국에서 50만 정도라면 한국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것이다.
아직도 이런 망상을 꾸고 있느냐. 어디선가 ‘할喝’ 소리가 들린다.
박정미, 崔明淑 and 7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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