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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함석헌의 시와 사상 - 오마이뉴스

함석헌의 시와 사상 - 오마이뉴스

문화

함석헌의 시와 사상
09.06.20 11:26l최종 업데이트 09.06.20 11:26l
김성수(wadans)



함석헌의 시와 사상
김성수 『함석헌평전』 저자

함석헌은 누구인가?



20세기 한국사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격동의 삶을 살다 간 여러 인물들의 모습이 보이지만 그 중에 함석헌(1901-1989)이라는 한 인물의 모습도 보인다. 그는 89년의 생애 중 약10년 정도의 교사생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삶을 '탈북자', '비정규직노동자', 심지어 '백수'에 가까운 생애를 살고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을 사회 범주적으로 이렇게 규정짓고 나면 아무래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자기수준만큼만 타인, 사물 혹은 예술을 이해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함석헌에 대해 이 사회의 원로 혹은 명사 중엔 그를 좀 더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예는 종교사상가, 평화주의자, 민주화운동가, 인권운동가 등이다. 함석헌이 전 생애를 통해 국가폭력과 독재 권력에 저항할 때에도 그는 비폭력원칙을 따르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함석헌은 '한국의 양심' 이나 '한국의 간디'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함석헌의 생애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평화주의자로서 그는 순진 하리 만치 비폭력무저항운동에 앞장선 인도의 간디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2세를 존경하였다. 1980년 대 20대 나이였던 내 방벽은 온통 함석헌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그런 내가 쌍문동 함석헌의 집을 방문하고 놀랐던 것은 80이 넘은 그의 방에는 언제나 간디와 킹목사의 사진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폭력무저항과 평화주의를 그의 삶에 한 원칙으로 너무도 중요시해서인지 군사정권시절의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로부터 '독설가'로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1979년과 1984년 함석헌은 한국인 최초로 서구 퀘이커들에 의해 노벨평화상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 하 그리고 해방 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하에서 국가폭력과 독재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기에 함석헌은 수감, 가택연금 등의 생활을 셀 수 없을 정도로 겪어야만 했다. 사회복지가 전무한 시절에 그래서 함석헌과 그의 가족들이 감내하고 걸었던 길은 그래서 '빈곤의 악순환'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도 함석헌은 시를 쓰고 출판까지 했다. 그러나 그가 소위 시인으로 '데뷔'를 한 것은 아주 늦은 편인데 그것은 함석헌의 나이 마흔 다섯인 1946년이다.



마흔 다섯에 데뷔한 시인



그럼 어쩌다가 그렇게 늦깎이 나이에 함석헌은 시를 쓰게 된 것일까? 그 사연은 아주 슬프고 참혹하다. 1945년 11월 23일 일어난 신의주학생의거 당시 함석헌은 인민위원회 문교부장이었다. 비록 그자신이 학생의거의 직접적인 주동자나 배후조종자는 아니었지만, 그 자신이 공산당원이 아니었고 민주진영의 기독교 측 이사였기에 그는 소련군정 이나 공산주의자들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공산주의자들의 시각엔 기독교인이란 곧 미국선교사들과 가까운, 친미파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함석헌은 신의주학생의거에 책임자로 공산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체포즉시 현장에서 옷이 찢어지고 정신을 잃도록 심한 몰매를 맞았다. 소련군의 총칼 앞에 죽음의 문 앞까지 간 함석헌은 곧 어두운 감방의 철장 안에 갇히게 된다. 동시에 소련군대는 함석헌의 집과 재산도 압수했다. 그러므로 서 함석헌의 노모와, 아내 그리고 일곱 명의 자녀들은 곧 절대빈곤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함석헌과 그의 가족은 삶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할 상황에 처해졌던 것이다.



신의주학생의거를 배후조종하거나 교사(敎唆)하였다는 죄목으로, 많은 애국지사와 민족진영의 간부 및 종교인들이 체포·구금되어 시베리아탄광으로 끌려가기도 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함석헌은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하여간 일제강점기 36년을 참고 견딘 후 조국이 해방되었는데 해방된 지 불과 석 달 만에 독립운동가, 애국자가 또 감옥에 들어가니 어찌 그의 슬픔과 기막힘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나라의 운명과 당장 눈앞의 생계가 막막한 노모와 처자들을 버려두고 비좁고 어두운 감옥 속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앞일을 생각하자니 그는 한숨과 분노,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을 것이다. 책도 볼 수 없고 글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당시의 열악한 옥중생활에 그래서 함석헌은 "눈물 사이사이에 나오는 생각을 간수병의 눈을 피해가며 부자유한 지필(紙筆)로 적자니 부득이 시가의 형식을 취하게 되었"고 그래서 "난 후 처음 시란 것을 쓴 것" 이 그가 늦은 나이에 시인으로 데뷔하게 된 경유이다.



이제 대책 없는 가장으로서의 외부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감옥에서 그는 어떻게든 절망감을 극복하고자 분투했을 것이다. "조국은 해방되었는데 난 왜 아직도 감옥에 있나? 조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라고 그는 수십 수백 번 자문했을 것이다. 이런 혼미한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키기 위해서 그는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교도관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는 직설적인 글보다는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시로서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이제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함석헌은 불가피하게 '시인'이 된 셈이다. 이런 혼돈과 절망감의 와중에서 시를 쓰기 시작해서 그런지 함석헌은 자신의 시를 놓고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 아닌 시다."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체험을 겪으면서 '등단'한 시인으로서의 그의 '감회'를 직접 들어보자.



"나는 시인이 아니다. 세상에 나와 마흔 다섯이 되도록 시라곤 써본 일이 없었다. 그것은 내 천분도 그렇겠고, 나 자신 삶에 참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 보다도 우리 역사가 그런 역사다. 한 사람의 다윗도 예레미야도 난 일이 없고, 단테도 밀턴도 난 일이 없다. 그 좋은 자연에 워즈워드 못 낳고, 그 도발적인 역사에 타고르가 못 났다. 이 사람들은 오직 눈 뽑히고, 머리 깎이고, 사슬지고, 맷돌을 가는 삼손이었다. 거기 나서, 가뜩이나 무딘 맘에다 줄을 골라주는 사람 하나 없이 젊은 날을 다 지냈으니 시가 나올 리가 없다....

그 내가 감히 씨를 쓰다니, 몰려서 된 일이지 자신 있어 한 것이 아니다....

독자여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 아닌 시다. 의사를 배우려다 그만두고, 미술을 뜻하다가 말고, 교육을 하려다가 교육자가 못되고, 농사를 하려다가 농부가 못되고, 역사를 연구했으면 하다가 역사책을 내던지고, 성경을 연구하자 하면서 성경을 들고만 있으면서, 집에선 아비 노릇을 못하고, 나가선 국민 노릇을 못하고, 학자도 못되고, 기술자도 못되고, 사상가도 못되고, 어부라면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시를 써서 시가 될 리가 없다. 이것은 시 아닌 시다. 시라 할 테면 하고 말 테면 말고, 그것은 내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맘에다 칼질을 했을 뿐이다. 그것을 님 앞에다 바칠 뿐이다."



시인으로서 그의 감회는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비참하다시피 한 한국역사 속에서 그는 시인의 되고픈 꿈과 여유조차 가져 볼 엄두를 못 냈던 것 같다. 어느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집중해서 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한 소용돌이 시대를 살았던 그에게 자신이 '시인' 인가 아닌가는 그래서 전혀 중요했던 것 같지 않다. 단지 그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보다 근본적인 존재인 절대자('님')와의 교감이었을 것이다.



하여간 시인으로서 '취임사'가 이렇게 '자포자기'식 한탄인데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우리가 살펴 볼 몇몇 함석헌의 시들은 절대자 앞에선 한 연약한 인간의 차분한 느낌과, 보편적 진리 혹은 삶에 담긴 어떤 소중한 가치들을 강렬하고도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함석헌의 시는 일독할 가치가 있다. 감옥에서 이렇게 간수병의 눈을 피해가며 쓴 그의 시들은 1953년 󰡔수평선 너머󰡕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당시 함석헌이 쓴 시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그 사상의 일면이나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 소개한 함석헌의 시



1990년 나는 영국 퀘이커연구소인 우드브룩 칼리지 (Woodbrooke College)에서 3개월간 공부하며 머무른 적 이 있다. 그 당시 우드부룩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사람들 중에는 영국뿐 아니라 유럽본토, 중미,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온 50여명의 퀘이커들이 있었다. 한 번은 영문학시간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읽고 급우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세계 각국에서 온 퀘이커들에게 함석헌의「산」이라는 시를 영어로 번역하여 낭송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산 The Mountain



나는 그대를 나무랐소이다 물어도 대답도 않는다 나무랐소이다.

그대겐 묵묵히 서 있음을 도리어 대답인 걸 나는 모르고 나무랐소이다

I blamed you When I asked you, you kept silent

Thus I blamed you But I realised your answer is `silence'



나는 그대를 비웃었소이다 끄들어도 꼼짝도 못한다 비웃었소이다

그대겐 죽은 듯이 앉았음이 도리어 표정인 걸 나는 모르고 비웃었소이다

I sneered at you When I touched you, you did not move

Thus I sneered at you But I realised your movement is `stillness'



나는 그대를 의심했소이다 무릎에 올라가도 안아도 안 준다 의심했소이다

그대겐 내버려둠이 도리어 감춰줌인걸 나는 모르고 의심했소이다

I doubted you When I sat on your lap, you did not embrace me

Thus I doubted you But I realised your embrace is `let me be'



크신 그대 높으신 그대 무거운 그대 은근한 그대

Most Great! Most High! Most Strong! Most Gentle!



나를 그대처럼 만드소서! 그대와 마주앉게 하소서! 그대 속에 눕게 하소서!

Let me be like you! Let me sit face to face with you! Let me find peace in you!



1980년대 함석헌이 생존할 당시 나는 그의 쌍문동집을 가끔 방문 한 적이 있다. 그때 거실 족자에 이「산」이라는 시가 걸려 있어서 자주 보던 터라 그런지 이 시구가 눈앞에 먼저 어른거린 것 같다. 영국 퀘이커연구소의 외국학생들에게 함석헌이 왜 옥중에서 이시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해방직후 정치․사회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했던 한반도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때 한 영국인이 불현듯 이렇게 이야기 했다. "불안정한 소용돌이처럼 급변하는 당시 상황 속에서 아마 함석헌은 불변하고 흔들림이 없는 절대자를 거대하게 우뚝 솟은 산의 모습으로 표현 한 것 같군요!"



그 영국인의 담담한 '논평'에 뒤통수를 심하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아, 그동안 별생각 없이 보았던 함석헌의「산」이라는 시가 그런 의미가 있을 수가 있구나!" 정말 함석헌이 그런 마음으로 이 시를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신에 가깝게 들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확고부동하고 거대한 산의 모습을 통해 함석헌은 절대자 하느님의 존재를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존재로 인식한 것 같다.



해방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좁고 어두운 감옥에 갇힌 채 낙담하고 있던 함석헌에게 절대자 하느님은 소련군과 인민군을 시원하게 물리치는 복수와 분노와 모습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오히려 묵묵하고 초연한,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산과 그 위에 펼쳐진 무한한 하늘을 우러러 보고, 함석헌은 복잡다단한 인간사의 문제로부터 초연해 있는 절대자를 느꼈을 것이다.



"당신은 왜 불의한 인민군, 소련군을 물리쳐 주시지 않으십니까?" 하고 그는 하느님을 나무라고, 비웃고, 원망하고 심지어 절대자의 존재여부를 한 때는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 순간 함석헌은 "그분께선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는 깨달음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절대자의 본성을 인간사에 대해 중립적이고 편파, 편견이 없는 존재로 느꼈을 것이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의 시와 사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다음으로 살펴볼 시는 너무도 유명한 그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 " 이다. 이 시는 더욱이 이번 용산참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도 가장 애송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연 이대통령의 '그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나만 일까? 여하간 대통령의 깊은 심중에 대한 궁금증은 일단 뒤로하고 이 시를 살펴보자. 어쩌면 이시는 함석헌의 대표시인 것 같다. 서울 대학로 혜화역 지하철역 근처에 함석헌의 시비가 있는데 그 시비에 바로 이 시가 새겨져 있다. 이시는 함석헌이 1947년 7월 20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47년 3월에 월남했으니 월남하고 막 남한사회에 정착을 시작하면서 북한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을 회고 하면서 쓰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내가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이 시에 대한 감동이 비 한국인, 특히 서구인들에게도 그대 로 전달되는지를 한번 시험해 보기위해 이 시를 아래와 같이 영어로 번역해 보았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Do you have this person in your life?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Before you leave for a long journey Without any worry

Can you ask this person To look after your family?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ven when you are cast out from the whole world And are in deepest sorrow

Do you have someone Who will welcome you warmly and freely?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In the dire moment when your vessel has sunk Is there someone

Who will give you their life belt and say "You must live before me"?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At the execution ground Is there someone

Who will exclaim for you "Let him live, even if you kill the rest of us!"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In the last moment of your life When you think of this person

Can you leave this world smiling broadly And feeling at peace?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ven if the entire world is against you When you think of this person

Can you stand alone for what you believe? Do you have this person in your life?



어떤가? 정말 감동스럽지 아니한가? 나의 영국인 아내도 영역된 이 시를 읽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참 아름답고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시"라며 그 감동을 토로했다. 이런 면에서 함석헌의 이시는 그가 1947년 쓴 시지만, 그로부터 62년이 지난 2009년 오늘, 우리와는 문화와 역사가 다른 한 영국여성의 가슴도 뭉클하게 만드는, 시공을 넘어선 보편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시라는 확신이 든다.



이 시의 다음구절을 다시 보자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은 1947년 2월 26일 노모와 처자를 소련군 치하의 북한에 남겨두고 홀로 남한을 향해 출발했다. 그 겨울이 다 끝나지도 않은 평안도의 추운새벽에 문간에 기대서 "내 생각 말고 어서 가거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처자식을 뒤에 두고 떠나서 영 돌아갈 수 없는 길인 줄도 모르고 월남하는 그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함석헌이 그 가족 일부와 남한에서 재회를 하게 된 것은 그 다음해인 1948년이니 이 시를 쓰고 있을 당시의 그는 북한에 남아있는 처자와 노모의 생사를 알 수 없고, 그 생생한 모습이 항상 눈앞에 어른거렸을 것이다.



자신이 떠나면서 그나마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그) 사람"을 가졌기에 또, '그 사람'의 후원과 도움으로 다음에 무사히 남한에서 가족들의 일부와 재회할 수 있었기에 함석헌은 북한에 남한 있는 자기 가족을 친 가족처럼 돌보아준 지금은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이 시를 썼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함석헌은 우리에게도 이야기 한다. 당신도 '그 사람'을 갖고 또 남을 위해 '그 사람'이 되라고.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해방 전까지 함석헌은 북한에서 4번이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렇게 감옥 문을 들락날락 하는 사이 "집과 나라 형편이 다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에게 어려웠던 일은 감옥에 있을 때만이 아니라 석방되어서였다. 생계가 막막한 상태에서 그는 그저 농사꾼으로 자처하고 동네 농사꾼들과 가까운 벗이 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동네 농사꾼들을 그를 벗으로 알아주려 하지 않았다. 함석헌은 "지식의 죄가 그렇게 큰 줄은 그때까지 몰랐다." 고 탄식하기까지 한다.



늘 마을손님이 끊이지 않았던 한의사였던 돌아가신 부친의 사랑방을 이웃에게 개방했지만 요주의 인물에다가 '전과자'인 그의 집을 "누구하나 오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는 석방이 되었지만 찾아오는 벗 하나 없는 동네에서 마음이 한없이 외로웠다. "사랑을 하고 싶은데 사랑이 받아지지 않은 사람의 외로움"을 그는 절절히 느꼈다. 그래서 그런 함석헌에게는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이 꼭 절대로 필요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돌아가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던 남강선생이 될 수도 있었고 그를 한 없이 아껴주던 최초의 스승 숙부 함일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하고 싶은데 사랑이 받아지지 않은 사람의 외로움"을 지닌 그였기에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이 그토록 그리웠을 것이다.



스승은 제자에 의해 역사의 위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이 없이는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이 서양사에 남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사도바울이 없이는 예수의 훌륭한 인격이 기독교문명에 자리매김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승 남강 이승훈도 그래서 일제강점하의 어두운 시절이지만 제자 함석헌을 두고 가서 그래도 편안히 눈을 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래 시 구절을 보면 든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남강이 함석헌에게 끼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남강을 통해 함석헌은 젊은 시절부터 "공(公)을 위하는 마음"과 "조선독립의 중요성"을 배웠다. 1930년 5월 9일 남강이 임종한 후 함석헌은 그를 회상하며 자신의 심정을 "하나 남은 촛불이 꺼진 뒤의 적막함"에 비유하며 『성서조선』에 이렇게 썼다. "이때껏 저만큼 광휘있게, 저만큼 뜨겁게, 저만큼 기운차게 저만큼 참되게 산 이를 보지 못했다."



남강의 죽음은 함석헌에게 마치 "외로운 촛불의 꺼져 버림"과 같았다. 젊은 시절 남강에게서 받은 절대적 영향 때문인지 그의 노후인 1984년 11월 함석헌은 남강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말년에는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서울 원효로 집을 남강문화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아마도 남강은 1930년 5월 9일 아침 음울한 조국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젊은 제자 함석헌을 생각하며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래서 그런 무조건적인 애정과 신뢰를 보여준 스승 남강을 생각하며 함석헌은 위 시구를 쓰지 않았을까?



아래 시구는 함석헌이 북한 소련군정 하에서 고당 조만식의 삶을 생각하고 썼다는 확신이 든다.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북한이 일제의 손아귀 에서 해방되었을 때, 북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과 인물들은 기독교계 민족주의자들이었고, 이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 지도자는 고당 조만식이었다. 그런 연유로 해방 직후 고당은 북한의 정치 중심지인 평양에서 평남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는데, 함석헌은 "해방 후 이북엔 정치적 인물은 조만식 단 하나였다."고 말할 정도다. 당시 북한에서 고당은 이렇게 압도적인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소련의 붉은 군대가 평양에 입성하자마자 돌변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소련의 후원과 지지를 받은 공산주의 세력이 기독교 세력을 제치고 무력으로 북한사회의 전반적 주도권을 장악해나갔다. 그럼에도 소련군정은 "원활한 국정의 운영을 위하여" 민족주의 세력의 협조가 절실하였다. 고당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던 소련 군정은 고당에게 새로 수립될 정부의 대통령직을 제안하며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결정한 신탁통치를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고당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신탁통치 문제로 당시 북쪽에서 김일성 다음 가는 세력가이자 고당의 제자 최용건이 19번이나 그를 설득하러 왔다. 고당의 협조를 얻기 위하여 소련군정은 때로는 그를 공격하고 달래고 설명하고 공갈을 해도 고당은 가만 앉아 듣기만 했다. 그리고 그의 최후의 대답은 언제나 가만히 '아니!'였다. '아니'라고 하는 것이 옳은 줄 분명히 알았다 하더라도, 당시 하늘을 찌르는 막강한 권력인 소련군정의 총칼 앞에 '아니'라고 하면 칼이 목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문제인데, 그런데도 고당은 그저 조용히 '아니'라고 했다. 소련군정에 순순히 협조하면 그의 나머지 생애는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권력이 탄탄하게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길"을 고당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아니'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다.



함석헌은 그래서 "이보다 더 무서운 영웅이 어디 있나......그 '아니' 한 마디를 생각할 때 그것은 벼락보다 무서운 한 마디다.....그 조그만 몸속에 그렇게 큰 것이 있었던가!" 라며 고당에 대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런 고당의 모습을 떠올리며 함석헌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라고 이시를 온 몸으로 썼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나 소련군정에 대해 비협조적인 인사들은 혹독한 '죄 값'을 치루 게 된다. 결국 고당뿐 아니라, 함석헌자신을 포함한, 북한의 기독교지도자들은 1940년 말에 이르러 소련의 지지를 받은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철저히 숙청, 제거되었던 것이다.



백아절현(伯牙絶絃)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 높은 백아(伯牙)라는 이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켤 때 그 연주소리를 누구보다 잘 감상해 주고 이해해주는 친구로 종자기(鐘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시도하면 옆에서 귀를 기율이고 있던 종자기의 입에서는 탄성이 연발했다.



"아, 멋지다. 하늘 높이 우뚝 솟는 그 느낌은 마치 태산(泰山)같다!"

"응, 훌륭해.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황하(黃河)같다!"



백아와 종자기는 바늘과 실처럼 그토록 마음이 잘 통하는 연주자였고 청취자였으며 창작자였고 비평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사하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과 실의에 빠진 나머지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함석헌과 김교신의 사이도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 같았다. 둘은 1901년 같은 해에 태어났고 한 결 같이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과 씨알(민초)들을 위해서 생애를 바친 신앙의 동지였지만 정통 교회로부터는 마치 이단처럼 냉랭한 취급을 받았다.



둘은 또한 동경(東京)고등사범학교 동기동창으로 1920년대 일본에 유학하면서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찌무라 간죠의 무교회 성서연구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귀국 후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둘은 일제강점하의 실의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애국심과 독립정신 그리고 기독교정신을 고취시켰다. 1934년 동기성서연구회에서 있던 일이다. 함석헌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라는 제목으로 강의하였는데 김교신은 그 강의를 들으면서 "빛이 이 반도를 비춘 지 반세기에 비로소 반도의 진상을 드러냈도다!"하며, 마치 종자기가 백아의 거문고 연주를 듣고 탄성을 뿜어대듯 감탄해 마지않았다.



1940년 계우회사건으로 함석헌이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가 수감된 후 석 달 만인 1940년 11월 그의 부친 함형택은 운명했다. 자기가 옥중에 있어서 아버님의 임종을 지킬 수 없을 때, 상주노릇을 대신 해준 이가 친구 김교신이었다. 1942년 『성서조선』 3월호의 김교신의 글 「조와(弔蛙)」가 개구리의 소생을 통해 조선 민족의 소생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관계자가 전원 검속되고, 관련 간행물이 일체 압수․소각 처분을 받았을 때 함석헌과 김교신을 비롯한 관련자 18명 모두가 1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또한 김교신의 장녀 결혼은 함석헌이, 함석헌의 장남 결혼은 김교신이 서로 주례를 맡았다. 둘은 문자 그대로 '동고동락'을 한 사이다.



둘의 사이가 이렇게 가까웠는데도 함석헌은 김교신에게 큰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연유는 그가 김교신의 '죽음'에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 일 것이다. '성서조선' 사건 후 1년간의 옥살이 끝에 1943년 4월 함석헌은 출옥되었다. 그 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아예 똥통을 지면서 농사꾼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중 1944년 7월, 석방된 지 1년이 조금 넘어서 친구 김교신이 함석헌을 찾아왔다. 김교신은 그에게 흥남질소비료공장에 함께 취직해서 노동자들을 계몽시키고 그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일하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이때 함석헌은 자신의 약함과 어떤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았다. 감옥생활 때문에 그는 부친의 임종을 못 보았고, 늙은 모친과 처 그리고 2남 5녀의 자식들은 여전히 거친 생활고와 빛 더미에 허덕이고 있었다. 함석헌은 무능한 가장으로서, 또 노모의 장남이자 쓰러져가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에 대해 큰 책임감을 새삼스레 느꼈던 것 같다. 아니면 끝이 안 보이는 계속되는 생활고에 용기를 잃었기 때문일까? 함석헌은 김교신에게 "흥남에 갈 맘이 없다." 라고 대답하며 친구의 "우정 어린 권유"를 거절했다.



김교신은 그래서 친구 함석헌을 뒤로하고 홀로 흥남비료공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교신은 한국인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복지시설개선을 위해서 힘쓰는 한편,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의 교육에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0개월 후인 1945년 4월, 해방을 겨우 4개월 앞두고, 겹친 과로와 장티푸스에 걸려서 김교신은 세상을 떠났다. 함석헌은 이제 가장 친한 친구마저 잃은 것이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보낸 친구였던 탓인지 8월 15일 해방의 소식이 들려 왔을 때, 함석헌이 가장 "먼저 염두에 떠오른 것이 '김교신이 있었으면'하는 생각"이었다. 고인 김교신에 대한 함석헌의 인물평을 보자. "김교신의 김교신 된 소이는 허위, 불의라고 생각하는 데 대하여는 용서를 않는 데 있다. 그는 인생을 참 살자 했고 나라를 참 사랑하자 했으며, 인생을 참으로 사는 것이 가장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요, 신앙에 사는 인생이 참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의 말이요, 글이요 그렇게 살자 노력한 것이 그의 생애다."



모든 이상적인 친구사이에서 그렇듯 김교신은 함석헌에게 신앙동지이자 스승이었던 것 같다. 당시, 해방의 감격을 차마 못보고 죽은 김교신의 집을 터벅터벅 찾아가며 함석헌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를 썼다. 아래 살펴 볼 시는 위의 함석헌의 시에 감동을 받은 아내가 영역했다.



돌아간 김교신 형 집을 찾고 A Visit to the Home of the Late Kim Kyo-Shin



문 앞에 흐르는 물 의구(依舊)히 흘러 있고

울 뒤에 맑은 송풍(松風) 제대로 맑았구나

봄볕은 서창(書窓)을 비쳐 님의 얼굴 보는 듯

The stream in front of the house flows by unchanged

And a gentle breeze still passes through the pine trees

The spring sunshine falls on the library windows and I fancy that I can see his face



이 시내 마시면서 이 바람 쏘이면서

흐리운 이 세상을 맑히자 애쓰던 맘

그 마음 어디 찾으랴 북한산만 높았네.

He loved walking beside this stream, feeling the wind on his cheeks

He put his soul into trying to make this muddy world clean

Bukhan Mountain still towers above, but where can I again find such a heart?



시냇물 흘러가고 솔바람 불어가고

산사(山寺)의 저문 종이 울리어 가는 저녁

다녀간 님을 그리며 나는 어딜 가려노

The stream flows on, the wind in the pine trees continues to blow

It is evening and in the mountains a temple bell tolls

I miss my friend so much. Where shall I go from here?



김교신에 대한 함석헌의 간절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사람은 가고 역사는 흘러도 위대한 인간의 정신은 남는다. 비록 주류 한국교회로부터는 마치 이단자 취급을 받았지만 김교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남다른 애국심은 순수함과 양심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문 앞에 흐르는 물 의구(依舊)히 흘러 있고 울 뒤에 맑은 송풍(松風) 제대로 맑았구나

봄볕은 서창(書窓)을 비쳐 님의 얼굴 보는 듯"



함석헌에게 김교신은 변하지 않는 상록수 같은 존재이자 더러운 세상을 깨끗이 씻는 맑은 물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함석헌의 이 시 구절은 신약성경의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는 구절을 우리에게 연상시킨다. 김교신은 1937년 봄 혼자 힘으로 서재를 지었다. 서재를 지으면서 김교신은 "신기한 것과 감사한 것과 찬송하고픔을 억제할 수 없었다." 고 고백했던 만큼, 봄날에 김교신이 직접 지은 서재의 창문으로 비추는 따스한 햇볕은 함석헌에게 김교신의 얼굴을 강하게 연상시켰을 것이다.



"이 시내 마시면소 이 바람 쏘이면서 흐리운 이 세상을 맑히자 애쓰던 맘

그 마음 어디 찾으랴 북한산만 높았네."



함석헌과 김교신이 살았던 시절은 조국이 앞날이 막막한 시절이었다. 식민지 지식인들이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김교신은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언제 올지 모르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기 몸을 잊고 전심전력을 다 했다. 그 결과로 그는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운명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를 잃은 비애감, 그리고 그런 맑디맑은 김교신의 마음을 그리워하며 북한산을 쳐다보는 함석헌은 그날따라 유난히 북한산이 무한히도 높아보였을 것이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강철 같은 사람보다는 몇 번을 넘어져도 비애를 딛고 계속해서 다시 일어나는 함석헌의 오뚝이 같은 모습이 연약한 내게도 끊임없는 위로가 된다.



"시냇물 흘러가고 솔바람 불어가고 산사(山寺)의 저문 종이 울리어 가는 저녁

다녀간 님을 그리며 나는 어딜 가려노."



신앙동지 김교신이 죽었어도 시냇물은 어제와 다름없이 흐르고 솔바람도 지난날과 다름없이 불어온다. 이런 무심한 자연 때문인지 한 순간 함석헌은 '방황'과 '방랑'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 펼쳐진 함석헌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그런 잠깐의 '일탈'과 '방황'의 순간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자신의 고난을 승화시켜 나갔는지 안다.



민족, 가족 그리고 나



어떤 이들은 함석헌이 가족사에 무관심했다고 비난한다. 불의를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올바른 꿈을 실현하며 돈도 많이 벌고 그래서 가족의 삶도 정신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워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그러나 현실은 그러기가 너무 어렵다. 불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대에 올바름만을 추구하는 의인들이 경제적으로 잘 먹고 잘살기는 아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함석헌이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조선의 독립, 조국의 민주화, 언론의 자유 등을 실현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동안 그는 그와 가족들에게 좀 더 다급하게 필요한 요구들, 이를 테면, 재테크, 주식투자, 부동산투기 등을 통한 가계소득 올리기 등을 게을리 했다. 그리고 그 '게으름' 탓으로 그는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대책 없는 가장"이라는 질타와 비난을 많이 받아왔다. 이러한 수없는 함석헌에 대한 질타와 비난을 떠올리면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럼 의인과 그의 가족이 불의가 하늘을 찌르는 난세에도 호의호식해야 된다는 것인가?



함석헌을 포함 한국 현대사에서 올바름을 추구한 인물들의 공통점을 보면 김구, 고당, 남강, 김교신, 장준하, 계훈제 같은 분들이 나라와 씨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만큼, 그분들의 가족들은 관심대상에서 철저히 외면되어 너무나 고난에 찬 삶을 살았다. 나라의 긴박한 현실이 그분들이 두 가지 토끼. 즉 자아실현과 가족의 물질적 평안함, 을 함께 실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난세를 살았던 함석헌의 경우도 그의 가족사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 함석창(咸錫昌)은 일본 구주대학(九州大學) 영문과를 졸업한 당시에 보기 드문 지식인이었으나, 형과는 달리 오하라(大原)라고 창씨를 하고 일본에 협력하며 후에 일본 점령하의 만주안동성의 부성장까지 역임하였다.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자녀의 앞날을 위해, 일제강점기 80%의 조선인이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제국주의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협조하였다. 반면에 함석헌이 선택한 길은 누구에게나 강요하기엔 너무 고되고, 전적인 가족의 희생을 요구하는 험난한 길이었다. 그러나 함석헌은 기꺼이 그 길을 택했고, 그래서 그런 함석헌과 그의 가족은 일제로부터 톡톡한 '죄 값'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아래 시는 아마 그런 그의 마음의 갈등, 고민을 표현 한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역은 아내와 공동으로 했다.



나라 My Country and Me



나라일 걱정인데 나란 생각 겹쳐놓으니

I feel crushed by my own cares and by concern for my country



나란히 선 두 나라 나갈 길 나눴구나!

Two parts standing side by side yet their course divided



두 나래 탁탁 쳐 날아 하늘나라 솟을까!

May we row with two oars beating in time may we soar up to Heaven together!



불의에 시대를 살면서도 자아실현도 하고 물질적 풍부함도 함께 누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1962년부터 1990년까지 약 27년간 백인들에 의해 감옥생활을 하면서 남아프리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의 희망이 되어왔던 넬슨 만델라(1918- )는 모든 인간은 인생에 있어서 두 가지 의무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가족이나 부모에 대한 의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국이나 인류공동체에 대한의무가 그것이다.



안정된 사회나 정의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각개인은 각자의 능력과 성향에 따라 이러한 두 가지 의무를 적절히 수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권이 묵살당하고 독재와 거짓이 판을 치는 나라나 사회에서는, 인간은 이러한 두 가지 의무를 제대로 정직하게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부정부패와 불의가 난무하는 사회에서는 정직하게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는 개인은 권력에 의해 소외되어가거나 처벌받기 일쑤다.



독재자나 사기꾼이 언론조작이나 술수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사회에서, 조국이나 인류공동체 대해 올바른 의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개인은 불가피하게 가족이나 가정에 대한 의무를 수행할 소중한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고 자기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빼앗긴 삶을 강요받게 된다. 함석헌 뿐 아니라, 독일의 나치정권 아래서 디트리히 본훼퍼 (1906-1945) 신학자나,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의 경우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넬슨 만델라 등의 경우와 같이, 처음에 함석헌은 가족의 안녕을 등지고 민족의 안녕을 위해 일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당시 명문 평양고보를 다니면서 함석헌은 공(公)을 위한 정신, 조국애 등 그의 "어릴 적 경건함을 상실해가기 시작했다"고 고백하기 까지 않았나! 그러나 결국 삼일운동을 몸소 겪고 남강, 고당선생 등으로부터의 영향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나 가족의 안녕보다는 민족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전념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20세기 한반도 즉, 불의와 독재가 판치는 상황에서, 씨알의 존엄성, 자유, 올바른 길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곧 그에게 한 부모의 자식으로서,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 한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할 귀중한 기회를 가차 없이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 본 시는 그런 함석헌의 갈등과 고민을 표현 한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함석헌의 시 몇 편을 살펴보았다. 함석헌의 시는 동과 서, 한국인과 비한국인을 넘어서 보편적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잔잔한 감동은 세계인들과 공유 할 수 있는 인간이 추구할 궁극적 가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의 명저 중의 하나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도 함석헌은 과학적인 분석가의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시인의 열정과 가슴으로 썼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자신도 그의 역사책을 역사 연구서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의 기도와 믿음의 행동이었다고 표현한다. 결국 어느 하늘아래서나 인간이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열정과 감동의 힘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 열정과 감동을 주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시인이 곧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시인이 곧 함석헌이다!




덧붙이는 글 | "신생" 시전문계간지 2009년 여름호 게재

2021/05/08

알라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알라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은이),김찬호 (옮긴이)
글항아리2012-03-26
원제 :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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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국 고등교육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왕성한 저술과 다양한 강연으로 각계각층의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미국 시민들의 멘토로 추앙받고 있는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저작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그간 인간미 넘치는 사회를 위한 내면의 노력과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저자가 이번에 준비한 테마는 정치, 마음 그리고 민주주의다.

특히 이번 책은 『돈의 인문학』(문학과지성사, 2011) 『생애의 발견』(인물과사상사, 2009) 『사회를 보는 논리』(문학과지성사, 2001) 등을 통해 일상의 다양한 현장을 관찰하면서, 학문적 개념과 이론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김찬호 교수는 동료들과 함께 파커 파머가 주관하는 ‘용기와 회복 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파머와의 인연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파머는 이 책이 처음 구상되는 단계에서 썼던 에세이를 김찬호 교수와 공유했고,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서신을 교환하며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처한 정치 상황을 돌아보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마음 깊은 교류의 시간을 거치면서 본 책의 국내 출간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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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에 대한 찬사 7

한국어판 서문 15

역자 서문 19

서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31

제1장 민주주의의 생태계 45
다양성, 긴장 그리고 민주주의 | 진실, 고통 그리고 희망 | 존 울만 이야기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

제2장 저절로 시민이 된 사람의 고백 71
시민성과 공공선 | 정치에서의 신념과 의심 | 깨어져 희망으로 열린 마음 | 이야기 뒤에 있는 이야기 | 미국에서의 토크빌 | 다섯 가지 마음의 습관 | 손을 잡고 오르기

제3장 정치의 마음 99
마음과 현실 정치 | 어느 농부의 마음 | 비통함의 힘 | 두 종류의 비통함 | 마음의 병을 진단하다 |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자아

제4장 민주주의의 베틀 127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으려면 | 끝없는 논쟁 | 끝없는 도전 | 싸움 아니면 도주를 넘어서 | 민주주의와 자기 초월

제5장 낯선 자들과 함께하는 삶 155
낯선 사람은 사절 | 공적인 삶의 의미 | 공적인 삶의 장소와 목적 | 민주주의에서의 공적인 권력 | 공적인 삶의 쇠퇴 | 공적인 삶을 위한 공간의 회복 | 이웃의 약속 | 공공의 삶을 상상하기

제6장 교실과 종교 공동체 195
교실과 종교 공동체의 공통점 | 공교육과 내면 탐구 |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 감춰진 커리큘럼 | 종교 공동체와 마음의 습관 | 이곳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 권력과 저녁식사 파티 | 의사결정과 상담 | 환대의 신학

제7장 근원적 민주주의를 위한 안전한 공간 239
미디어가 현실을 규정할 때 |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뉴스 | 고독에서 신뢰의 서클로 | 서클의 힘 | 신뢰에서 정치적인 힘으로 | 공적인 서사의 절차 | 사이버 공간과 근원적 민주주의

제8장 쓰이지 않은 마음의 역사 275
신화 그리고 마음의 이야기 | 미국의 국가 신화 | 이미지와 현실이 충돌할 때 | 운동 그리고 마음의 역사 | 내적 해방에서 외적 변형으로 | 비극적 간극 속에서 희망을 갖고 행동하라

감사의 글 303

주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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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정치란 권력을 사용하여 삶에 질서를 함께 부여하는 행위로서, 심층적으론 하나의 인간적인 기획이다.
정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핵심 요소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동안이라도 한 걸음 나서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작고 비영웅적인 행동들이 불쏘시개로 쌓여나가다가 어떤 놀라운 상황에서 격렬한 변화로 점화될 수 있다.(p. 64.) - 바스티안
국경 너머의 타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우리(나를 포함한 하나의 우리)가 서로를 이방인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분노와 절망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우리의 차이가 우리가 가장 가치 있게 여겨온 자산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어찌하여 잊어버리게 되었는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는 선언은 어디로 갔는가?... 더보기 - 감나무
“활력있는 공적인 삶은 민주주의의 열쇠다, 공적 영역에서 우리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함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159쪽) - 밥헬퍼


추천글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우아한 축가다. 이는 단지 투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우리를 갈라놓는 모든 것을 넘어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한 더 포괄적인 개념의 민주주의다.
- 피터 블록 (『풍부한 공동체: 가족과 이웃의 권력을 일깨우기』의 공저자) 
1965년 ‘피의 일요일’에 우리는 앨라배마 주 셀마에 위치한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서 폭행을 당했다. 며칠 뒤 우리는 몽고메리를 향해 끊임없이 행진했다. 우리가 그 다리를 건너려고 출발한 것은 인종차별로 인한 분열을 막는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파커 파머는 우리에게 종용한다. 우리가 민권운동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 다리를 함께 건널 때까지 “계속 걷고, 계속 이야기하라”고.
- 존 루이스 (미美 하원의원, 마틴 루서 킹 비폭력 평화상과 자유의 대통령 메달 수상자) 
이 책은 이 순간을 위해 탄생했다. 현명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실용적이기도 한 이 책에서는 모두의 위엄과 자유를 토대로 새로운 정치를 꿈꾼다.
-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환경운동가) 
마음의 습관에 대한 파커 파머의 명료한 응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로 시작하여, 우리의 민주주의를 거의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마비시켜버린 분열을 돌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선언을 제시한다. - 빌 쇼어 (우리의 힘을 나누자 재단의 설립자) 
이 책을 덮으면서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은 것이 당신에게 달려 있는가를 새삼 알게 될 것이다.
- 다이애나 채프먼 월시 (웰즐리 대학 명예 총장) 
이 책은 우리의 삶을 다 함께 새로 빚어내는 데 필요한 안내서다. 마음을 그리고 우리의 자아와 민주주의의 핵심을 재발견하는 것 말이다.
- 크리스타 티펫 (저널리스트, 미국 공공 미디어의 라디오 진행자) 
파커 파머는 민주주의의 열망과 인간의 영혼을 존중하는 정치를 대변하고 있다.
- 로이 카프 (미美 하원의원) 
파머는 민주적 과정의 긴장들을 창조적이고 조심스럽게 끌어안는 정치적 대화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갈망을 아름답게 풀어냈다.
- 캐리 뉴커머 (사회운동가) 
당신의 정치적인 신념에 관계없이 이 책은 우리가 서로를 만나 경청하고 존중하는 데 필요한 약이다. 이는 한 장인이 완성해낸 걸작이자 어두운 모든 장소에 빛을 비추는 원천들을 드러내는 수작이다.
- 마크 네포 (『일깨움의 책』 『마음이 볼 수 있는 한』의 저자) 
정치를 외면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초대장 -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국장)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2년 03월 24일 '200자 읽기'
조선일보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2년 03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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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파커 J. 파머 (Parker J. Palmer) (지은이) 

미국 고등교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왕성한 저술과 다양한 강연으로 미국 각계각층의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시민들의 멘토로 추앙받는 사회운동가. 작가이자 교사, 활동가로서 그의 가르침은 교육, 의료, 종교, 법률, 자선 사업, 정치, 사회 변혁 등에서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다. UC 버클리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워싱턴 DC에서 5년 동안 공동체 조직가로 활동했으며 성인 학습자와 구도자를 위한 ‘퀘이커 삶-배움 공동체’에서 10년간 일했다. 저서로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역설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등이 있으며 ‘용기와 회복 센터’의 창립자다.

www.couragerenewal.org 접기
최근작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일.창조.돌봄의 영성>,<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총 73종 (모두보기)


김찬호 (옮긴이) 

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는 문화인류학, 사회학, 교육학 등을 강의하며, 대학 바깥에서는 부모교육, 노년의 삶, 교사의 정체성, 마을만들기 등 다양한 주제로 인문학적 글쓰기와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 《모멸감》 《눌변》 《유머니즘》 《생애의 발견》 《돈의 인문학》 등을 썼다.
최근작 : <생애。전환。학교>,<나는 오늘도 교사이고 싶다>,<유머니즘> … 총 4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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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당신은,오늘날 정치 문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는가?
정치는 여전히 권력을 잡기 위한 야바위 노름뿐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치에서 마음은 늘 중요한 동력이었다!
·링컨 대통령의 재임 시절, 오바마 대통령 당선 과정에 드러난 마음과 정치의 관계는 무엇인가
·택시기사, 공무원, 의사 등 다양한 시민과의 만남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와 미래를 말하다
·미국의 건국 신화, 9·11테러, 2011년 애리조나 투손 총격 사건까지 미국 정치사를 재조명하다
·한국의 사회학자와 미국의 사회운동가가 깊은 교류 속에 만들어낸 정치 에세이

이 책은 어떻게 출간되었는가

미국 고등교육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왕성한 저술과 다양한 강연으로 미국 각계각층의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미국 시민들의 멘토로 추앙받고 있는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저작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그간 인간미 넘치는 사회를 위한 내면의 노력과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해온 저자가 이번에 준비한 테마는 정치, 마음 그리고 민주주의다(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 2011이다).
특히 이번 책은 『돈의 인문학』(문학과지성사, 2011) 『생애의 발견』(인물과사상사, 2009) 『사회를 보는 논리』(문학과지성사, 2001) 등을 통해 일상의 다양한 현장을 관찰하면서, 학문적 개념과 이론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김찬호 교수는 동료들과 함께 파커 파머가 주관하는 ‘용기와 회복 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파머와의 인연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파머는 이 책이 처음 구상되는 단계에서 썼던 에세이를 김찬호 교수와 공유했고,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서신을 교환하며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처한 정치 상황을 돌아보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마음 깊은 교류의 시간을 거치면서 본 책의 국내 출간이 이뤄졌다.

책 소개

우리 사회는 왜 이 모양인가!
정치적 비통함으로 다가온 사건들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중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저자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백인 대학원생인 자신에게 “여러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었다면 아버지, 배우, 교사, 작가 그리고 뭐든 수입이 되는 일들이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시민은 그 목록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시민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를 그때서야 진중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2001년 9월 11일. 예순 살이 넘은 저자는 나이가 들어 찾아오는 상실감에 낙심하면서, 사회운동가인 자신에게 미국 문화와 21세기의 삶을 읽어낼 능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슬퍼한다. 그 순간 9·11테러는 저자에게 엄청난 충격임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할 중요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난민이 되었다는 표현으로 미국 정치의 혼돈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정부의 언사에 휩쓸려 아무런 관련 없는 한 나라와의 전쟁을 찬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 저널에서 인용한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 중 50퍼센트가 “정부는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법원의 허가 없이 전화나 이메일을 모니터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고 답할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향해 정치인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매국노라고 서슴지 않고 비난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매카시의 공산주의 마녀 사냥, 민권운동에 대한 반대, 1960년대의 각종 정치적 암살,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2000년 조지 부시와 엘 고어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벌어진 와해 등 미국의 혼돈과 분열을 야기했던 역사적 사건을 떠올린다.
그리고 2011년 1월 8일. 이날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지 거의 50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애리조나 주 투손의 한 슈퍼마켓 바깥에서 어떤 사람이 총을 쏴 6명을 죽이고, 14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들은 애리조나의 제8선거구에서 뽑힌 하원의원 가브리엘 기퍼즈가 후원하는 “당신의 동네에서 의회를”이란 행사에 참석 중이었다. 사망자 가운데는 학교에서 학생 자치위원으로 선출되어 민주주의에 대해 더 배우고자 그 행사에 왔던 9살 크리스티나 테일러 그린이 있었다. 저자는 아주 어린 나이에 참여하는 시민이 되는 길을 잘 가고 있던 한 어린이의 죽음에서 현실 정치가 자아내는 연민의 실패, 공감과 존중의 결여를 발견하고선, 케네디 대통령이 죽었을 때 느꼈던 정치적 비통함을 다시 경험했다고 진술한다.

이 시대의 정치는 ‘분노의 정치’를 넘어선 ‘비통한 자들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미국 현대사를 수놓은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해온 저자의 연륜 속에서 솟아난 오늘날 정치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안은 이러하다.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의 정치다. 이 표현은 정치학의 분석 용어나 정치적 조직화의 전략적인 수사학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적 온전함의 언어에서 그 표현이 나온다. 오로지 마음만이 이해할 수 있고 마음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정치에도 그러한 측면이 있는데 우리 모두가 의지하는 일상생활을 잘 다듬어가려는 핵심적이고 영원한 인간적인 노력이 그것이다. 이것은 링컨이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향해 상한 마음을 개방해나갈 때 실행했던 정치다.”(38쪽)

오늘날 비통한 자들의 정치가 발현되어야 할 이유를 저자는 근대성에서 비롯된 마음의 상태에서 찾는다. “무심한 상대주의, 정신을 좀먹는 냉소주의, 전통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멸,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분노로 비롯된 정치적 앙심을 경계한다. 이른바 ‘분노의 정치’라고 부르는 데서 오는 ‘적의 악마화’는 오늘날 정치와 민주주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분노는 비통함이 걸치고 있는 가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라고 지적하면서 비통한 자들의 정치는 자신의 신념을 적에게 돌처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링컨 대통령의 우울증 극복기에서 발견한 정치적 긴장감을 끌어안는다는 것의 중요성

이 책에서 저자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정치적 긴장감을 끌어안는 행위다. 파머가 미국의 정치적 혼돈과 훼손된 민주주의의 가치로 우울증을 겪고 있을 때 만난 책 한 권이 있었는데, 바로 조슈아 솅크가 쓴 『링컨의 멜랑콜리』였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우울증 기행을 면밀하게 파헤친 이 책에서, 저자는 링컨이 자신에게 찾아온 우울함의 어두운 내면과 현실 그리고 보다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줄곧 씨름해온 과정을 인상적으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링컨의 사례를 비유로 들며, 오늘날 정치 문제를 둘러싼 현실과 당위 사이에서 정치는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 것인가, 혹은 스스로의 삶을 개선할 기회인가라는 순간의 선택 그 자체를 회피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분석한다. 그러나 파머는 사람들을 꾸짖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정치와 시민의 관계 속에서 발견한 것은 정치가 상처에 대해 무관심하며, 이로 인해 정치에 낙담한 사람들은 점점 정치 세계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자신감을 상실하고, 내 요구를 담은 정치적 발언을 시도하면 다른 사람의 언어 공격에 의해 더 나쁜 일에 시달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는 비통한 자들이 모여 만든 공적 서사가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파머는 우리의 일상에서 무척 간단하지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정치적 갈등을 둘러싼 이야기하기의 공간 창조’를 제안한다. 이 공간은 정치 문제에서 이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마음 그 자체의 가능성이자, 그 마음을 실현시킬 물리적 장소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파머의 제안이 흔한 자기계발식 치유법이 강조하는 자기 책임의 측면과 다른 것은 당면한 정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와 협력이 개입된 공공적 프로그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역사적 성공 사례를 테네시 주에 위치한 ‘하이랜더 연구와 교육 센터’의 흔들의자 모임에서 찾았다. 과거 ‘하이랜더 민족학교’라 불렸던 이곳은 인종차별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상황과 비폭력적 사회 변화를 위한 이론, 전략, 전술을 연구하던 장소였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마틴 루서 킹과 로자 파크스는 바로 이 흔들의자 모임 출신이었으며, 파머는 이들이 추구했던 이야기하기의 노력을 조명하며, 사람들이 정치 문제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행위를 안일하고 낭만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을 경계한다.
저자는 이와 유사한 사례로 2008년 오바마 캠프의 선거 전략에 나타난 ‘공적 서사’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오바마 캠프의 리더십 계발 프로그램의 일환인 이것은 하버드대 교수이자 커뮤니티 조직가 마셜 간츠가 만들었다.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건 단순한 이익 추구가 아니라 가치의 실현이라는 점이다. 간츠는 이 가치 실현의 절차를 ‘공적인 서사’라고 불렀다. 공화당, 민주당의 양당 구도 속에서 양산되는 실망스러운 정치 행태, 갈수록 커가는 소수 세력의 부富 독점 등으로 인해 깊어가는 분열 구도 속에서 사람들은 “나 혼자만 그렇게 무기력하고, 고립되어 있고,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것”인가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공적 서사 프로그램은 이런 어려운 시간을 기회로 삼아 나의 아픔을 정치적 행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함께 이야기하기의 과정을 마련한다. 저자는 물론 책에서 오바마 캠프의 이 프로그램이 오바마가 당선될 수 있던 제1의 요소라고 과신하지 않는다. 다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민주주의를 사실상 포기했고 투표도 거의 하지 않던 젊은이들과 유색인종들이 투표장으로 향했던 지점은 서로가 이야기함으로써 만들어가는 공공적 희망의 모색에 기반을 두었던 것임을 강변한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
그 계보를 잇는 새로운 정치적 삶을 향한 신미국 기행의 시작

이 책의 장점은 미국 현대사의 굴곡을 몸소 체험한 저자의 시각과 미국 전역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시민들의 일상에서 관찰했던 풍부한 경험담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긴박한 시사 동향은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라는 흔한 말은 비단 우리만의 경험은 아니며 거리의 심층 관찰자로 불리는 파커 파머의 경험담에서도 접할 수 있는 대목이다(제5장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참고). 파커 파머는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와 미래를 진단하며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희망을 품는 장면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두었다. 이런 과정은 마치 1831년~1832년, 유럽 국가의 구태의연한 정치 체제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차원을 모색하던 토크빌이 미국을 여행하던 순간을 연상케 한다. 파머는 이 책에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나온 ‘마음의 습관’이라는 개념에 착안해 오늘날 상처받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마음의 습관을 제안한다. 아울러 오늘날 미국 사회와 견주어 미국의 건국 신화에 숨겨진 허상을 비판하면서도, 그 신화의 근본정신에 깔려 있는 건국자와 민중의 열망에 대해 찬사하는 파머의 양가적 시선은 1970~1980년대 미국을 여행하며 그 현대성에 대한 냉소와 찬사를 동시에 표출했던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를 떠올리게도 한다.

파커 파머가 한국 사회에 건네는 제언
숨 가쁜 속도로 휘몰아치는 정치 뉴스에 저항하라!
다른 의견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선물이다!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기억해줄 것을 간청합니다. 첫째, 이른바 정치 뉴스를 숨 가쁜 속도로 광범위하게 보여줌으로써 결국 우리의 무력감을 자아내는 대중매체에 우리가 저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담고 있는 두 번째 간청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국민은 많은 쟁점에서 언제나 이견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동의하지 않을 자유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선물 가운데 하나이자, 그 위대한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16, 17쪽)

파머는 미국 사회 내 정치, 경제, 교육, 언론, 종교 등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면서도 특히 7장 「근원적 민주주의를 위한 안전한 공간」에서 오늘날 대세가 되어버린 인터넷과 SNS가 정치와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저술 과정을 공개하면서 페이스북을 통한 정치적 견해의 동의와 마찰이라는 긴장감을 주목하고, 디지털 민주주의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웹 기반 정치 담화가 갖는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디지털 미디어 덕분에 많은 사람이 정치적 견해와 정보의 생산자가 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보탬이 되지만, 스스로 정보의 소비자로서 읽은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다른 자료들과 비교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디지털 미디어는 민주주의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견해는 한국 사회에서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가 정치에 개입하는 가능성을 주목하기 시작한 시선에 견주어 참고할 만하다.
아울러 그는 ‘다른 의견’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특히 6장 「교실과 종교 공동체」에서는 교회 목회자를 비롯해 종교 지도자라는 권위 안에서 수직적으로 행해지는 인생의 아픔에 대한 고백 문화를 예리하게 비판한다. 파머는 교육자이자 종교 연구가로서 삶의 아픔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개되는 교회라는 공간에서 종교 지도자의 권위에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심하게 고찰한다. 이러한 과정과 더불어 취업 중심의 교실 내 학습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인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 필요한 주체적, 비판적 사유가 깃든 커리큘럼이 사라질까 우려한다. 이렇듯 자신의 일터를 포함하는 다양한 일상생활의 장소들은 파머가 강조하는 이견이 접촉하는 정치적 긴장감을 끌어안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
파커 파머는 이 지점을 통해 사람들이 오늘날 정치 세계를 개선하고자 가져야 할 마음의 습관으로 ‘뻔뻔스러움’과 ‘겸손함’을 제안한다. 여기서 “뻔뻔스러움이란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한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겸손함이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두 마음의 습관을 통해 우리는 원하는 민주주의의 비전을 지금 당장 이룰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냉소주의와 이상주의라는 극한된 두 가치관 속에서 계속 유혹을 받을 것이다. 파머는 이럴수록 ‘효율적’이라는 말과 거리를 두자고 제안한다.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민주주의는 끝없는 실험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정치제도, 지역사회와 결사체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지니는 강점과 약점 속에서 쉬지 않고 이뤄지는 실험이다. 그 성과는 결코 당연시될 수 없다.
우리가 그 실험실을 폭파시켜버리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실험은 끝없이 진행된다.”(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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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내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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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그들이 고통을 겪을 때 우리 민주주의의 성실성도 고통을 겪는다.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관여>


˝ 세월호 참사여파로 인한 소비위축이 올해 전체 경제 성장률의 발목을 잡을것으로 예상한다.˝

˝ 세월호가 살아나는 경기에 영향을 크게 줘서는 안되는데, 2분기 경제 성장률이 얼마나 떨어질지 걱정이다.˝

아이들이 바닷속에 있고, 온 나라가 정신적 공황에 빠져있을 때 정부와 경제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비통한 사람들의 눈물이 대한민국에 흘러 넘치고 있을 때 정치는 그들을 외면했다.

고통받는 타인을 향해 마음이 열릴 때 폭력대신 생명력을 불러 일으키고, 민주주의의 인프라는 지속할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가 고민하고 바라봐야 할 시점.

민주주의를 염려하고 절망해 본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나와같다면 2018-05-04 공감 (2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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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이 나라에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없었다. 오직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와 지식인들을 위한 정치, 비통한 자들을 만드는 정치만 있었다. 그리고 4년 전 오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시끄럽다, 그만하라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함께 울었다. 더 이상 비통한 자들을 만드는 정치는 없어져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뀌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파커 J. 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는 방안으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를 제시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란 쉽게 말해 '마음을 다친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한 정치'다. 정치적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통합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비통함'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기 어렵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큰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생계의 위협을 받을 때, 불합리한 차별이나 편견에 부딪힐 때, 사람은 누구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과 아픔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끼고 도와주고 싶은 감정이 드는 것도 '인간이라면' 당연하다. 



문제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할 연민이나 동정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몰인정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그 예를 '너무 많이' 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잃거나 무관심한 이유로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를 든다. 모든 것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소비주의는, 세월호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목숨보다 사고 처리에 드는 세금이나 유족들에게 주어지는 보험금에 주목한 당시 일부 언론의 행태에 잘 드러난다. 또한 당시 정부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유가족을 정부에 반항하는 반동분자 취급한 것은 희생양 만들기의 전형적인 예다.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자연히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거나 정치 혐오에 빠진다. 인간관계와 시민 공동체는 금세 무너진다. 



자아와 세계의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그때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의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는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그것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 앉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57쪽) 



저자는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결국 화해와 통합이며, 화해와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가장 많이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결코 '그들'과 화해하거나 통합할 마음이 없지만, 그들과 화해하고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통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만약 그들이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다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고 위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4주기인 오늘. 어떤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치 이용은 할 만큼 하지 않았나'라는 사설을 실었고, 어떤 정당은 추도식에 참석하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을 날은 아직 요원하다.

키치 2018-04-16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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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기대없이 펼쳤다가 몇페이지를 채 넘기지않아 오랫동안 내가 읽고싶어했던 그런 종류의 책임을 알게됐다. 매일같이 처참한 뉴스들을 받아내며 일상이 휘청거리는 지금같은때, 우리에게 필요한건 결국 단련된 마음이다. 깊은 민주주의를 공부한 느낌. 우리나라에서도 시와 유머의 정치가 피어나길..

마니아 읽고 싶어요 (57) 읽고 있어요 (25) 읽었어요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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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기대없이 펼쳤다가 몇페이지를 채 넘기지않아 오랫동안 내가 읽고싶어했던 그런 종류의 책임을 알게됐다. 매일같이 처참한 뉴스들을 받아내며 일상이 휘청거리는 지금같은때, 우리에게 필요한건 결국 단련된 마음이다. 깊은 민주주의를 공부한 느낌. 우리나라에서도 시와 유머의 정치가 피어나길..  구매
농담같은오늘 2017-01-20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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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번역이 이상하여 보는내내 힘들더군요, 저만 그런건지 의견 들어보고 싶습니다.  구매
cyh_lse 2018-04-02 공감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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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로 흘러가기 시작할때 가장먼저 차단되는 장소는 공적인 삶이 영위되는 곳들이다. ...p156..
동료 시민들이(ㅎㅎㅎ) 이책을 많이들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공감가는 내용도 많고,배울점도 많습니다.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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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재산책 2018-04-19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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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독서동아리 토론도서라 구입. 작금의 개인주의와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지를 한번이라도 고민해보았다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구매
드림모노로그 2014-07-08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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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같이 혁명을 통해 급진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것인지 고심한 저자의 고뇌가 느껴진다. 파편화된 개개인을 다시금 아울러서 공동체를 구성하는데 중점을 둔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매우 설득력있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구매
책수집가 2016-03-29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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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민주주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한 사람들은 길거리에 모일 수 없습니다. 결사적인 삶은 권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공적인 삶이 영위되는 곳은 차단됩니다. 진짜 목소리를 내는 시위는 불법으로 선언되고 강제로 종식되며, 그들이 쫓겨난 무대는 엉터리 정치 집회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구성원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색을 사용하라고 명령하는 흑백사회를 거부하고, 총천연색 사회를 만들고자 한 사람들은 언제나 어느곳에서나 존재했습니다. 우리 땅에서 일어났었던 6월 항쟁 역시 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항쟁의 순간, 비통해하는 사람들 속에 분명히 민주주의는 존재했고,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민주화 운동이 만들어낸 87년 체제로 인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수준에서 제도화되었지만, 그것이 권위주의적 유산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은, 또한 영구한 민주주의 사회임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무엇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처하면서 민주주의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름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북한과 다를 바 없습니다. 피터 버거의 말처럼, 모든 상대주의에는 절대의 재래를 기다리는 광신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불편합니다. 사람들 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도록 의도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낯선 자와 만나고,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립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이 허물어지는것을 지켜봐야 합니다. 남들 눈에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긴장관계는 분명한 스트레스의 일종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긴장을 버티지 못하고,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 권위자의 말을 맹신하고, 복종함으로서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유명 인사들, 정치인들과 관리들은 사람들이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타자에 대한 두려음을 조장하고, 절대적 가치를 외치며 자신의 부와 권력을 획득합니다.


의심이 없는 한 민주주의도 없다. 절대적인 진리가 모든 형태의 전제정치의 핵심인 것처럼. 제도적 저항, 다당제, 대안 세력, 민주정치 체제의 핵심에 의심이 없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의심이 최종적이고 절대적으로 침묵한다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종말에 이를 것이다. 더 이상 논쟁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민주주의가 뭐가 필요한가? -《의심에 대한 옹호》p.170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피터 린더트는 독재적 방식은 일시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많은 부작용을 낳으며, 민주주의는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긴장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특별함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모든것을 진두지휘하며 명료하게 계획하는 것보다, 국회의원끼리 대립하고, 정부부처간에 견제하는 긴장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발전이야말로 아마르티아 센이 말한 진정한 발전, 자유로서의 발전입니다.

달리지 않는 자전거는 옆으로 넘어지는 것처럼, 민주주의 역시 계속 행동함으로서 유지됩니다. 민주주의는 헌법이 있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단순히 선출직 공무원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것만으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선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마음은 자아의 핵심이며, 근원적인 앎의 방식들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가장 핵심적 층위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긴장과 불확실성을 끌어안음으로서 민주주의적 행동을 습관으로 발현하는 시민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비통함을 느낄 수 있고, 정치로서의 민주주의를 이끌거나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면 우리는 그것을 전진하고 대항하는 체스 게임, 권력을 잡기 위한 야바위 노름, 서로 비난만 해대는 두더지 잡기 게임으로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다. - p.41

민주주의적 마음의 습관을 지닌 시민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교실, 직장 또는 다른 자발적 결사체를 통해 교육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성인이 된 이후에 다양한 단체를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 갈등과 불확실성을 교육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는 부모의 권위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학생은 선생의 권위에 의견을 내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른들이 구성한 사소한 문제 이외의 사안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 능력이 없는 듯 취급됩니다. 대학생들은 충실한 정보로 가득 찬 민주적 가치에 관한 과목을 수강할 수는 있지만, 교사가 그 정보를 받아쓰게 하고 학생들이 그것을 달달 외워 시험에 적도록 한다면, 그들은 민주적인 가치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재의 추종자로 살아남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성장시킨 교육은 우리를 사회의 배우가 아니라 관객의 일원으로 취급하며, 그 결과 어른이 되어서도 정치를 그저 관람할 뿐입니다.

손을 들어 질문하는것조차 꺼리는 사회에서, 갈등관계를 유발해 차이를 토론하고, 유머를 활용하고, 갈등을 타협할 수 있는 시민을 만들어내는 것을 바랄 수 없습니다. 낯선 자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얻지 못한다면, 언제까지고 타자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행동해야 합니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광장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여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사회적 연대감을 높이고, 공공적 책임을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적 행동이며, 민주주의의 회복입니다. 국가의 펀더멘털은 단순히 엄청난 양의 금괴나 외환보유량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을 쌓고 계속해서 신제품을 생산하더라도, 그것은 확실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파커 J. 파머는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국가의 자산은, 정부의 의견에 반발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 갈등을 벌이며, 불공정과 우둔함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시민에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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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선 2016-03-04 공감(2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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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울음 소리가 그치는 날까지 

오랜 세월 이 나라에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없었다. 오직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와 지식인들을 위한 정치, 비통한 자들을 만드는 정치만 있었다. 그리고 4년 전 오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시끄럽다, 그만하라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함께 울었다. 더 이상 비통한 자들을 만드는 정치는 없어져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뀌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파커 J. 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는 방안으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를 제시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란 쉽게 말해 '마음을 다친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한 정치'다. 정치적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통합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비통함'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기 어렵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큰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생계의 위협을 받을 때, 불합리한 차별이나 편견에 부딪힐 때, 사람은 누구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과 아픔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끼고 도와주고 싶은 감정이 드는 것도 '인간이라면' 당연하다. 



문제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할 연민이나 동정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몰인정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그 예를 '너무 많이' 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잃거나 무관심한 이유로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를 든다. 모든 것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소비주의는, 세월호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목숨보다 사고 처리에 드는 세금이나 유족들에게 주어지는 보험금에 주목한 당시 일부 언론의 행태에 잘 드러난다. 또한 당시 정부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유가족을 정부에 반항하는 반동분자 취급한 것은 희생양 만들기의 전형적인 예다.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자연히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거나 정치 혐오에 빠진다. 인간관계와 시민 공동체는 금세 무너진다. 



자아와 세계의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그때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의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는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그것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 앉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57쪽) 



저자는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결국 화해와 통합이며, 화해와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가장 많이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결코 '그들'과 화해하거나 통합할 마음이 없지만, 그들과 화해하고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통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만약 그들이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다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고 위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4주기인 오늘. 어떤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치 이용은 할 만큼 하지 않았나'라는 사설을 실었고, 어떤 정당은 추도식에 참석하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을 날은 아직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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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2018-04-16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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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봄은 어디메쯤 오고 있는 것인가

 2012년 레지스탕스였던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에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무관심이며 이 무관심의 표현 자체는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 분노하라' 한 단어가 그토록 강렬한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었다.   분노의 표출은 참여로만 증명될 수 있다고 하였던가. 그때 그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비장한 결의를 다지며 주먹을 불끈쥐고는 했으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감동은 시간의 썰물에 휩쓸려가 버렸다. 정치란 것이 그런 것 같다. 울분이 쌓이다가도 먹고 사는 일에 잠시 잊고 살아도 괜찮다는 변명을 하게 되는 것.

 

작년 고인이 되신 노장 스테판 에셀보다는 젊은 편에 속하지만, 지혜와 연륜이 바탕이 된 정치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미국 현대사를 수놓았던 굵직한 사건들을 온 몸으로 겪었던 사회운동가이자 교육학자인 파머의 아홉번째 책으로 행간에 뿌려져 있는 '민주주의'의 통찰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할만큼 강렬하다.  

 

이 시대의 정치는 ‘분노의 정치’를 넘어선 ‘비통한 자들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스테판 에셀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분노하라’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파커J.파머는 ‘비통하라’라는 주문을 한다. 이 비통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 the brokenhearted [직역을 하자면 마음이 부서진 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의 정치다. 이 표현은 정치학의 분석 용어나 정치적 조직화의 전략적인 수사학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적 온전함의 언어에서 그 표현이 나온다. 오로지 마음만이 이해할 수 있고 마음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마음이 부서진 자, 저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분노' 의 단계를 넘어서 현 민주주의가 잃어가고 있는 '공화'라는 개념의 민주주의의 회복이 바로 이 '비통'이라는 마음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위협당하고 있는 개인성과 공동체성, 그리고 합리성과 덕성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핵심개념이다.  '무한경쟁의 논리'를 표방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자본의 비호아래 빈부 간의 극심한 격차를 가져왔다.  민주주의는 긴장을 끌어안기 위한 제도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표방하고 있는 '소비주의'와 민주주의의 거짓 치료제 역할을 하고 있는 '희생양만들기'를 경계하라한다. 이 두가지를 경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의 역동을 다룰 줄 아는 건강한 자아를 지니라고 한다. 이러한  건강한 자아를 지닐 수 있는 근원은 우리 사회를 '비통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주어진다. 

 

 저자가 건강한 자아를 위해 권하는 다섯 가지 습관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이 안에서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2, 우리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3, 우리는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4, 우리는 개인적인 견해와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5, 우리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민주주의가 지닌 기본이념을 향한 노력은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다. 조용한 논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모순과 갈등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길이 바로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파머는 이 지점을 통해 사람들이 오늘날 정치 세계를 개선하고자 가져야 할 마음의 습관으로 ‘뻔뻔스러움’과 ‘겸손함’을 제안한다.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한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 뻔뻔스러움이고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겸손함이다. 이 '뻔뻔스러움'과 '겸손함'은 '찢어진 민주주의의 직물을 다시 짜기 위한' 마음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참 뜻은 바로 이렇게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는 공화주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무심한 상대주의, 정신을 좀먹는 냉소주의, 전통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멸,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배척과 따돌림을 불사하지 않는 극단주의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의 정치문화에서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비통함의 틈새에서 발견하는 희망이란 , 비록 작을지라도 그 작은 힘이 역사의 물레방아를 돌리는 힘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세상의 중심에는 쓰이지 않는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쓰이지 않는 역사는 작은 냇물이 모여서 만드는 강물처럼 유구하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자연의 위대한 원리처럼, 사회의 가장 낮고 그늘진 곳, 빼앗기고 궁핍한 곳, 내팽개쳐지고 억눌리고 무시된 곳에 소생과 부활의 봄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도정일 교수의 말은 그래서 더 둔중한 울림으로 남는다. 우리의 봄은 어디메쯤 오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으로써가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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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4-09-11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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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간극'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으로써가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견보다는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본문 3장 ‘정치의 마음’에서


연일 통합진보당 사태가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통상적 의미에서 진보의 가치는 정치적 도덕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편에서 세상의 프레임을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조정해나가는 데 있다. 따라서 반칙을 일삼는 개인 혹은 집단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우리 사회의 굳어진 속물적 통념을 깨뜨리고, 부정과 비리를 비판하고 고발할 때 진보세력은 존재 의미를 획득한다. 거기에 더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진보세력의 활동을 장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인 바람 내지는 믿음이 있다. 한국 정치사가 보여준 구태를 벗어던지기 희망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것은 바로 이러한 상식적 수준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산산조각 냈기 때문이다. 독점적 세력의 권력 장악이라든가 선거조작과 그에 대한 진상조사를 저지하려는 폭력행사 등은 우리가 그간 질리도록 경험한 천박한 불의함 아니던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이러한 정치적 사태에 ‘비통함을 느끼는(heartbroken)’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준다. 일종의 정치학적 멘토라고 하면 적당할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정치학이 사회적 구조와 작동원리를 설명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목표에 도달할 이론적인 방법을 제시한다면 이 책은 그와는 정반대에서 시작한다. 바로 인간의 마음(가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언뜻 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 2009)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홍중이 80년대 한국을 경험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논의를 시작한다면, 이 책은 9․11테러 사건 이후 벌어진 미국의 패권적 정치에 대한 통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두 책 모두 정치가 야기한 대중의 우울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무엇이 우리를 비통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이 책은 ‘완전한 민주주의’라는 목표달성에서 그 해법을 찾기보다는 그것을 이뤄가려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풀어간다.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한 평화라든가 민주주의는 환상이며 오히려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의 긴장과 저항을 어떻게 풀어가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정치적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비폭력주의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정치행위의 과정이자 목표라고도 할 수 있는 비폭력주의는 어찌 보면 가장 지독한 방법론이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다른 입장을 가진 정치세력과의 투쟁에서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맞설 수 있어야 하나 그것은 방어적 폭력마저 허용하지 않기에 집요하고 무섭다. 비폭력주의가 근본주의적 종교의 색채를 띠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민주주의를 향한 싸움에서의 일상적 집요함을 요구한다고 하겠는데,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그러하기에 민주주의가 위대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항시적으로 “비극적 간극”(298쪽)을 견뎌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 책에 따르면 희망은 유토피아 속에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비참함을 찢고 일어서는 순간에 발생하는 것이 희망 같다. 마찬가지로 정치가든 시민이든 참담한 정치적 현실을 딛고 다시 공동선을 향해 움직이려 할 때 우울한 무력감은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무한하게 반복되는 비극을 상수로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희망 역시 여전히, 상수가 아닐까.
2012. 5. 3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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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2014-04-29 공감(7) 댓글(0)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민주주의를 위한 기초 체력 기르기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강행되고 있고, 대선 때의 공약 중 지켜진 것은 거의 없다. 시위나 서명 운동에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내어 봐도 국정에는 전혀 반영되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무엇을 한다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민주주의가 힘을 잃어가는 지금의 상황 앞에서 우리는 비통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저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이 시대의 정치가 ‘비통한 자들의 정치’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이 우리를 비통하게 하는 것처럼, 민주주의 정신은 쇠퇴하고 국민들이나 정치인들이나 사사로운 이익에 골몰하는 미국의 정치 상황은 파머를 비통하게 한다. 지금의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현실과 가능성 사이에는 절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 비극적 간극 앞에서 우리는 ‘비통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비통한 자가 될 때, 우리 자신과 세상의 고통을 끌어안으면서 마음을 열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비통함으로 인해 열린 마음들 안에서 병든 민주주의를 치유할 잠재력을 발견한다. 저자는 병든 민주주의를 치유하기 위해 민주주의에서의 마음의 역할로 눈을 돌린 것이다.

마음은 정치와는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저자는 민주주의에서의 마음의 역할에 주목했을까?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서로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긴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치가 유대인이라는 희생양을 통해 독일 사회 안의 긴장을 종식시켰던 것처럼 강제로 긴장을 종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긴장을 종식시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긴장을 끌어안기 위한 제도이다. 민주주의는 긴장을 끌어안고 그 안에서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며,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간다. 그렇기에 비통함으로 인해 열린 마음으로,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는 마음의 습관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재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마음의 습관은 개인의 내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만의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오라고 이야기한다. 거리나 지역 공동체 같은 공적인 영역으로 나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을 넘어 타인과 만나고 대화할 때 우리는 다양성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 교실이나 종교 공동체처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공동체에서도 마음의 습관을 기를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에서는 교사나 종교 지도자 같은 전문가나 지도자에게 의사결정을 맡기고 의존하기 쉽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느리더라도,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긴장들을 견뎌내면서 합의를 추진한다면, 생각지 못한 훌륭한 해결책과 깊은 연대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에 따르는 긴장을 끌어안고 내면적 성찰을 공동체에서 공유할 때, 그 성찰은 더 심화되고 힘을 얻어 사회 변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습관들을 통해 이루어낸 정치적 실천이 ‘비통한 자들의 정치’인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마음의 습관’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들에 비해 작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정치 문제가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며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될 때 우리가 위축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가까이에 있는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의 습관’이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 체력을 회복하려 할 때, ‘마음의 습관’은 좋은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마음의 습관’이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될 때, 우리는 저자가 인용했던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다.

정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핵심 요소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동안이라도 한 걸음 나서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작고 비영웅적인 행동들이 불쏘시개로 쌓여나가다가 어떤 놀라운 상황에서 격렬한 변화로 점화될 수 있다.(p. 64.)

정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핵심 요소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동안이라도 한 걸음 나서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작고 비영웅적인 행동들이 불쏘시개로 쌓여나가다가 어떤 놀라운 상황에서 격렬한 변화로 점화될 수 있다.(p.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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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함석헌저작집 17)(반양장)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함석헌저작집 17)(반양장) - 교보문고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
함석헌저작집 17 | 반양장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9년 03월 1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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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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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교양총서 > 인문교양총서일반


웅혼한 역사의 외침,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을 읽는다!
"인류역사는 정신을 향한, 정신에 의한 성장의 역사다."

『함석헌 저작집』제17권《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 동서고금의 사상을 넘나들며 사람의 도리와 생명의 본질을 설파한 함석헌. 그의 사상과 글은 과거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삶의 비전 혹은 정신적 지표를 제시한다. 험난한 20세기 역사의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며 가슴에서 토해낸 '민족자서전'이기 때문이다.

함석헌이 말하는 사상은 거의 대부분 혁명적인 거대 담론들이다. 민중과 씨알, 민중사관 및 고난사관, 비폭력 평화주의, 국가(지상)주의 및 민족(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세계주의(globalism)로의 이행, 개혁과 혁명, 종교적 가치관, 새 종교와 새 인류의 대망(待望), 개인주의를 넘어선 전체주의(holism), 상생론적 같이살기운동의 전개 등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사상을 통해 민중과 더불어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들의 무지를 사랑으로 깨우친 씨알 스승의 역할을 자처했다. 불안하고 위기감을 느끼는 시기마다 무지와 물욕에서 우리의 정신과 양심을 찾게 한다. 이러한 함석헌 사상의 주제를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 제1부는 1936년 5월부터 1938년 3월까지 『성서조선』(제88~110호)에 연재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를 실었고, 제2부는 역사ㆍ민족을 주제로 다룬 에세이를 모았다.

▶ CP 추천 | 이런 점이 좋습니다!
함석헌은 역사와 사회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늘 서서 사유하고 실천한 공인으로, 지공무사의 정신으로 평생을 살아간 선비입니다. 역사가로서의 함석헌, 언론인으로서의 함석헌, 사상가로서의 함석헌의 모습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시리즈 시리즈 자세히 보기
함석헌저작집 세트
함석헌저작집 세트(일반판)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간디자서전
바가바드 기타
예언자 사람의 아들 예수 날마다 한 생각
퀘이커 300년
함석헌과의 대화
씨알의 옛글풀이
수평선 너머
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두려워 말고 외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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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함석헌
저자 : 함석헌
작가 정보 관심작가 등록
사회/시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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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역사와 민족|책을 펴내며

1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

신앙의 계단에서 본 역사의 뜻|머리말

-창시시대
생명의 역사를 준비하다
우주의 창조
생명의 창조
인류의 출현까지
인류의 진화
인간의 특질

-성장기
인류의 혼이 성장하다
신석기시대
지리와 인종의 분포
요람 안의 여러 문명
종교와 정신생활
무력국가


2새 역사로의 도약
기독교 교리에서 본 세계관
민족, 하나의 인격적 존재
새 역사로의 도약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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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사람은 우주적 산물이요, 우주를 대표하는 자요, 우주에 향하여 도전하는 자기 때문에 인사는 인사만으로 달아서 알려지는 것이 아니요, 우주적 대국을 보는 큰 눈을 가지고 우주와의 산 관련에 있어서 달아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저의 존재에는 우주적 이유가 있고, 저의 하는 일에는 우주적 뜻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역사를 정당히 이해하려면 우주사적인 관점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


출판사 서평

웅혼한 역사의 외침,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을 읽는다
서거 20주기 및 탄생 108주년에 새로운 편집으로 간행된 ‘함석헌저작집’ 전30권 !

불안과 위기의 이 시대에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양심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이념에 사로잡히고,
무지와 물욕에 빠져 있는 우리의 잠든 혼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동서고금의 사상을 넘나들며 사람의 도리와 생명의 본질을 설파하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과 글은 오늘 우리들에게 삶의 비전이자 정신적 지표입니다. 선생의 저작은 상아탑 연구실이나 책상머리에서 쓴 것이 아니고 험난한 20세기 역사의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며 가슴에서 토해낸 ‘민족자서전’입니다. 정치와 언론, 교육과 종교의 혁명을 강조하며 다양한 삶(생명)의 원리와 실천론이 아우러집니다. 함석헌은 역사와 사회가 십자가를 이루는 교차점에 늘 서서 사유하고 실천한 공인으로, 지공무사의 정신으로 평생을 살아간 선비입니다. 민중들과 더불어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들의 무지를 사랑으로 깨우친 씨들의 스승이었습니다. 불안과 위기의 이 시대에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양심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이념에 사로잡히고, 무지와 물욕에 빠져 있는 우리의 잠든 혼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서거 20주기 및 탄생 108주년에 즈음하여 펴내는 ‘함석헌저작집’(전30권)은 1988년 전20권으로 간행된 ‘함석헌전집’을 토대로 그 이후 새로 찾아낸 72편의 시와 수십 편의 강연, 편지, 에세이를 수록하여, 오늘의 독자 감각에 맞게 새로운 디자인으로 편집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말씀과 글에는 마치 악곡의 변주곡처럼 거듭 반복되는 몇 가지 일관된 주제가 있습니다. 민중과 씨, 민중사관 및 고난사관, 비폭력 평화주의, 국가(지상)주의 및 민족(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세계주의(globalism)로의 이행. 개혁과 혁명, 사회진화론, 종교적 가치관, 새 종교와 새 인류의 대망(待望). 개인주의를 넘어선 전체주의(holism), 상생론적 같이살기운동의 전개 등이 그것인데, 모두 혁명적인 거대 담론들입니다. 개인사와 민족사를 넘어선 인류 전체의 보편사 차원의 문제와 씨름하는 독창적 독자적인 담론들입니다. 이 주제들을 유의하면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과 글을 읽는다면 우리는 큰 깨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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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문답에서 책을 두권 추천하셨는데, 저도 읽은 한 권의 <뜻으로 본 한국사>이고, 또 한권은 읽지 않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사>였었지요. 이 두번째 책을 추천하시는 이유를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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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h
    • Edited
  • Sejin Pak
     창조신앙, 아가페 진리와 진화론을 종합하여 세계사를 풀어가는데 깊고 창의적인 성찰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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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함석헌전집 40권
씨알 함석헌 전집 40권
작성자 바보새 20-07-15 23:02 조회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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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함석헌 전집 40권 The Collected Works of Ham Sok Hon




기존에 '信天翁咸錫憲文集' 42권을 재편집,수정,교정하여 씨알 함석헌 전집 40권 으로 새로공개합니다.
완성도가 信天翁咸錫憲文集 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계속하여 한권씩 완성이 되는대로 공개하겠습니다.



씨알 함석헌전집 1권 뜻으로 본 한국역사
씨알 함석헌전집 2권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 조선역사
씨알 함석헌전집 3권 먼저 그 의를 구하라
씨알 함석헌전집 4권 말씀.말
씨알 함석헌전집 5권 무엇이 참 문제냐
씨알 함석헌전집 6권 수평선 너머1
씨알 함석헌전집 7권 수평선 너머2
씨알 함석헌전집 8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사상계1)
씨알 함석헌전집 9권 꿈틀거리는 백성이라야 산다(사상계2)
씨알 함석헌전집 10권 새시대의전망
씨알 함석헌전집 11권 생활철학
씨알 함석헌전집 12권 3천만 앞에 부르짖는다
씨알 함석헌전집 13권 세계의 한길 위에서
씨알 함석헌전집 14권 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1
씨알 함석헌전집 15권 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2
씨알 함석헌전집 16권 고난의 의미(성서강의1)
씨알 함석헌전집 17권 영혼의 양식(성서강의2)
씨알 함석헌전집 18권 요한복음 1 (성서강의3)
씨알 함석헌전집 19권 요한복음 2 (성서강의4)
씨알 함석헌전집 20권 요한복음 3 (성서강의5)
씨알 함석헌전집 21권 오산 뜰의 현자 (인물론)
씨알 함석헌전집 22권 민족통일의 구상 (대담1)
씨알 함석헌전집 23권 씨알의 의미와 민중운동(대담2)
씨알 함석헌전집 24권 싸우는 평화주의자(대담3)
씨알 함석헌전집 25권 끝나지 않은 강연1
씨알 함석헌전집 26권 끝나지 않은 강연2
씨알 함석헌전집 27권 한민족과 평화 (부산모임, 기독교 사상)
씨알 함석헌전집 28권 믿음의 내면화 (종교친우회)
씨알 함석헌전집 29권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1
씨알 함석헌전집 30권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2
씨알 함석헌전집 31권 씨알의소리 1
씨알 함석헌전집 32권 씨알의소리 2
씨알 함석헌전집 33권 씨알의소리 3
씨알 함석헌전집 34권 하늘 땅에 바른숨 있어1
씨알 함석헌전집 35권 하늘 땅에 바른숨 있어2
씨알 함석헌전집 36권 퀘이커 300년
씨알 함석헌전집 37권 간디자서전
씨알 함석헌전집 38권 날마다 한생각, 인물간디
씨알 함석헌전집 39권 예언자 사람의 아들
씨알 함석헌전집 40권 바가바드키타

2021/04/19

[한국의 사상가][함석헌] 함석헌의 예수 이해 (1)(2)(3)

(2) Facebook






[한국의 사상가][함석헌] 함석헌의 예수 이해 (1)

- 함석헌을 공부하는데 그를 퀘이커로 이해하기 보다, 그렇게 하지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이대 신약전공 박경미 교수의 글 덕분이다. 45쪽의 이 글을 읽는데 몇일이 걸렸다. 이해하는데 몇번 읽어야 했다. 앞으로도 몇번은 더 읽어야 하겠다. 덕분에 기독교인이 아닌 나의 성경 공부에도 도움이 되었다. 박경미 교수에 대하여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녀가 쓰거나 번역한 책들을 모두 찾아 보게 되었다.
- 그런데 함석헌에 관한 책이나 글이 많은데 불구하고, 박경미 교수가 함석헌 연구는 “아직 불모의 상태”라고 말하는데는 놀랐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는 더 공부를 해 보아야 알겠지만 나에게는 흥미진진하다.

박경미:
“함석헌의 글들은 마치 광산에서 막 채굴해 낸 원광석과도 같다. 그것을 제련하고 연마해서 아름다운 금강석으로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은 후학들의 몫일 것이다.”


- 왜 후학들의 몫이라고 할까? 나도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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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상가][함석헌] 함석헌의 예수 이해 (2)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10156225288827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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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상가][함석헌] 함석헌의 예수 이해 (3) - 속죄론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10156225494437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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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상가][함석헌] 함석헌의 예수 이해 (2)

- 기독교에서의 예수 이해의 두가지 방식:
(1) 위로 부터의 그리스도론 -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강조
(2) 밑으로 부터의 그리스도론 - 역사적 인간예수에서 출발.
- 물론 신성과 인성 두면이 있으나 강조나 출발점이 다름.
- 이렇게 구분하면, 함석헌의 예수론은 위로 부터의 론. 그러나 전통적 이해와는 다름.
- 우선 예수 자신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고, 성령경험에서 부터 말하는데 ...
- 함석헌에 의하면 그 이해가 전통론적 이원론적 시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이고, 자연이고, 생명같은 것 ...
- 박경미에 의하면 에크하르트의 신 이해, 인간이해와 일맥상통한다고.
-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

세진: 결국 퀘이커의 신성-인성 이해와 비슷한 곳에 도달했다. 예수는 인간이다. 인간은 신성. 그러므로 (?) 예수도 신성. 예수는 이걸 알고 있었다 (?).
















[한국의 사상가][함석헌] 함석헌의 예수 이해 (3) - 속죄론
- "나"없이 예수가 다 해주려니 하는 거지 근성의 "무력한 믿음"은 필요없다.
- 개인의 구원에 머믈러서는 않되고.."세계 전체, 우주전체"의 구원을 생각해야 된다.
- "함석헌은 하나님을 우주 속에 흐르는 내적 관련성, 우주의 정신적 의미로 본다." ... "하나님은 우주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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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 동양 사상에서 보는 신론이 들어간 것이 바로 동양적 기독교, 한국적 기독교가 된 것 같은데... 한국교회에선 이단이 되는 소리이다. "우주의 마음"! 나같은 사람에게는 좋다.
- 박영미는 "이러한 발언이 가능했던 것은 동양적인 수덕전통과 그 근거에 있는 천인 합일, 천리관이 그의 동양적 종교문화적 전통안에 내재해 있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썼다.
- 그런데 "수덕 전통"의 수덕이란 말을 모르겠어서 백과사전에 찾아보아도 나오질 않는다. 한글사전에 찾아보니, 다섯 가지가 나온다. 어떤 의미일까? 4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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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2 (水德)
[명사] 오행 가운데 물에 상응하는 왕자의 덕.
수덕1 (手德)
[명사] [같은 말] 손속(노름할 때에, 힘들이지 아니하여도 손대는 대로 잘 맞아 나오는 운수).
수덕3 (修德)
[명사] 덕을 닦음.
수덕4 (酬德)
[명사] 은덕에 보답함.
수덕5 (樹德)
[명사] 덕을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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