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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8

‘신불(神佛) 애니미즘’과 트랜스휴머니즘 가미(神)와 호토케(佛)의 유희✽ 박규태

5. 박규태.pdf
‘신불(神佛) 애니미즘’과 트랜스휴머니즘
가미(神)와 호토케(佛)의 유희✽
박규태
박규태(朴奎泰)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도쿄대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양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일본 신사(神社)의 역사와 신앙』, 
『포스트-옴 시대 일본사회의 향방과 ‘스피리추얼리티’』, 
『라프카디오 헌의 일본론』, 
『일본정신의 풍경』,
『상대와 절대로서의 일본』,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애니메이션으로 읽는 일본』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 『일본문화사』, 『황금가지』, 『국화와 칼』, 『신도, 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일본 신도사』 등이 있다.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08-362-B00006).

1. 들어가는 말

<휴머니티플러스>(H+, 세계트랜스휴머니스트협회의 전신)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이하 TH)을 “생명의 증진을 위한 원리와 가치에 입각하여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의해 현재의 인간 형식과 한계를 넘어서서 지적 삶의 진화를 유지하고 촉진시키고자 하는 일군의 삶의 철학”1으로 규정한다. 이처럼 인 간향상(human enhancement)을 위한 창발적인 테크놀로지를 옹호하는 문화 적· 지적 운동으로서의 TH는 테크놀로지를 적용하는 방법과 선택 과정에 서 윤리적 문제를 수반하는데, 그 적용의 맥락과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만큼 여러 상이한 유형이 존재한다. 
가령 기본적으로 모든 사회경제적 계층의 인간을 적용 대상으로 삼아 성공과 행복의 한층 더 큰 차원으로 인간이 고양될 것이라는 윤리적 비전에 입각한 ‘민주적(democratic) TH’, 발전과 향상을 시민적 권리이자 자유로 보 는 점에서는 민주적 TH와 유사하지만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좀 더 강조하
고 정부 차원의 규제에는 단호하게 거부하는 ‘자유주의적(libertarian) TH’, 인류와 테크놀로지 발전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에서 인간 진화와 발 전의 총체적인 업그레이드에 대한 실용적 접근을 강조하는 ‘엑스트로피주 의(extropianism) TH’,2 테크놀로지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 즉 초지성 을 가진 기계가 가까운 미래에 만들어질 것이며, 그것이 인류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는 확신에 입각한 ‘특이점주의(singularitarianism) TH’, 약물과 유전 자공학의 진화를 통해 인간 심리 상태가 향상될 것이라 주장하면서 고통, 걱정, 스트레스 등의 인간 경험은 궁극적으로 없어질 것으로 보는 ‘쾌락주 의적(hedonistic) TH’, 가장 일반적인 유형의 TH로 인간 조건을 업그레이드

1 < 휴머니티플러스> 홈페이지 http://humanityplus.org/.
2 여 기서 ‘엑스트로피’란 ‘엔트로피’의 반의어로 주조된 용어며, <엑스트로피 연구소>의 설립자 막스 모 어(Max More)에 의해 “유기체 시스템의 지성, 기능적 질서, 활력, 에너지, 생명, 경험, 발전과 성장의 능력 및 추동력 등의 상태와 정도”를 나타내는 말로 규정한다. 요컨대 무질서를 강화시키는 엔트로피 에 반해 엑스트로피는 질서를 강화시키는 에너지를 가리키는 듯싶다. 신상규,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아카넷, 2014, 114~116쪽.
 
함으로써 죽음이 정복될 것이라고 보는 등 노화와 죽음의 문제에 초점을 맞 추는 ‘생존주의자(survivalist) TH’, 인간을 특정 도시나 국가가 아닌 세계시 민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입각하여 내셔널리즘적· 지리적· 애국주의적 충성 대신 하나의 종으로서의 전체적인 통합성을 강조하고 그런 인간 종족의 진 화를 위해 테크놀로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계주의적
(cosmopolitan) TH’, 인류가 다음 단계의 집합적 사유로 진화할 수 있는 유일 한 길은 세계에 대해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나아가 우리가 학습하고 창조해 낸 것들을 깊이 재성찰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는 ‘우주진화론(cosmism) TH’, 반자본주의적· 반국가적 입장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무정부주의 적 민주주의 체제를 촉진시킬 것이며 그 결과 정부나 국가가 불필요해질 것 이라고 믿는 ‘무정부주의적(anarcho) TH’, 그리고 현존하는 여러 종교와 TH 가 양립 가능하다고 보는 ‘종교적(religious) TH’ 등을 들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이와 같은 TH의 다양한 유형 가운데 특히 ‘종교적 TH’ 와 관련하여 종교와 TH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흔히 애미니즘적이라고 일 컬어지는 일본 신도(神道)와 불교 및 각각의 가미(神)와 호토케(佛) 관념이 일본의 TH적 테크놀로지 문화의 중요한 밑그림이라는 점을 규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하에서는 먼저 TH와 종교의 양립 가능성을 주장하는 다 양한 담론을 간략히 계보화한 후, 네오-애니미즘에서 테크노-애니미즘에 이르는 사유의 흐름을 일본의 사례에 적용시켜 그것을 ‘신불-애니미즘’이 라 명명할 것이다. 이어서 그런 신불-애니미즘과 관련하여 가미와 호토케 의 개념사를 살펴본 후 유희성, 트랜스-스피리추얼리티(trans-spirituality), 하 이브리드(hybrid), 모노노아와레(物哀)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종교와 TH적 일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2. 트랜스휴머니즘과 종교
인간향상이라든가 ‘묵시론적 인공지능’(apocalyptic AI)이라는 TH의 이상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전술한 <휴머니티플러스>를 비롯하여 <엑스토
피아 연구소>, <윤리와 창발적 테크놀로지 연구소>(Institute for Ethics and Emerging Technologies), <우주 엔지니어 단체>(Order of Cosmic Engineers)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단체들을 통해 막스 모어(Max More), 제임스 휴즈(James Hughes),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한스 모라벡(Hans Moravec), 레이 커즈와 일(Ray Kurzweil) 같은 대표적인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이념이 21세기에 널 리 확장되어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철학 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TH에는 종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신념체계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삶의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 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물론 <몰몬교 트랜스휴머니스트협회>라든가 <기독 교 트랜스휴머니스트협회>처럼 종교인들이 구성한 TH 조직뿐만 아니라 
‘트랜스종교’(transreligion)를 표방하는 <테라셈(Terasem) 운동> 같은 TH적인 
종교시스템도 있지만, 대부분의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기도라든가 종교의 례를 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티로시-사무엘슨(H. Tirosh-Samuelson)은 다양한 유형의 TH를 각각 상이한 방식으로 종교와 초월의 문제에 접근하는 “세속적 신앙”(a secular faith) 이라고 규정한다. 전술한 <휴머니티플러스>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확실히 TH는 세속적이고 무신론적이다. 하지만 레이너(D. Rayner) 에 따르면 “무신론은 제4의 아브라함 종교”와 다름이 없다. 즉 무신론도 유 대교, 기독교, 이슬람에 이어 서구 유일신 전통에서 비롯된 하나의 종교라 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자면 세속적이고 무신론적인 TH를 종교와 연관시켜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이와 달리 종교를 전(前)트랜스휴머니즘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종교는 TH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TH를 낳고 키우는 토양 혹은 씨앗이라는 것 이다. 역으로 TH를 전(前)종교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양자를 파트너 관계로 보는 견해 또한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인 간향상에 있어 TH와 종교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TH도 종교도 인간 을 더 높은 단계로 고양시키며 인간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변형시킨다는 TH의 목표는 대부분의 종교가 내세우는 목표와 공통된다. 사실상 종교의 목표도 인간의 변형에 있기 때문 이다. 양자는 다만 그 목표에 이르는 통로가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신적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TH는 과학을 통 해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TH와 종교의 파트너 관계는 양자의 유사성에 입각할 때 한층 더 강고 해질 수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종말론, 신정론(theodicy), 구원론 등과 관련하여 종종 양자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첫째, 레이 커즈와일은 테크놀로지적 특이점9이 가까워졌다고 주장한다.  
커즈와일을 비롯하여 버너 빈지(Vernor Vinge) 같은 특이점주의자(Singularitarian) 들은 초인공지능의 출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초인공지능의 출현은 그 로 인해 인류가 대파국을 맞게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급 격한 테크놀로지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특이점은 역사적 시간 개념을 벗어 난 전혀 새로운 단계로의 전이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종교적 종말론의 속성을 가진다.
cordiaabchao.wordpress.com/2014/08/14/paganroots/) 참조. 
 
둘째, 광의로서의 신정론을 ‘악과 고통의 문제’를 묻는 물음이라고 규정
할 수 있다면, 인간 한계에서 비롯되는 질병, 노화, 죽음 등의 악과 고통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테크놀로지를 통한 인간향상을 추구하는 TH 의 문제의식 또한 신정론과 동일한 물음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이와 같은 TH적 신정론은 전통적인 기독교적 신정론 혹은 홀로코스트 이후 인간의  책임을 묻는 ‘인정론’(anthropodicy)을 훨씬 넘어서서 인간이 신이 될 것을 주 장하기도 한다. TH는 인간 발전에 있어 결정적인 단계다. TH적 신정론의 본질은 악과 고통의 존재를 신에 의해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악 을 없애느냐 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서서 신이 되는 것은 인간의 의무다. 그래야만 악의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크 워커(Mark Walker)는 이런 관점을 ‘네오-이레니우스적 신정론’ (Neo-Irenaean Theodicy)이라고 부른다.  

셋째, 홉킨스(P. Hopkins)는 종교도 TH도 동물성을 초월하려는 시도에 
있어서는 닮은꼴이라고 말한다.  양자 모두 ‘초월’이라는 구원론적 모티브 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우식은 트랜스휴먼이 호모 사피엔
스로부터 호모 트란센덴탈리스(homo transcendentalis), 즉 ‘초월적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 호모 트란센덴탈리스는 명백히 호모 사이엔티피쿠스
(homo scientificus, 과학적 인간)와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 종교적 인간)
를 포함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종교와 TH의 유사성을 인정하는 지점에서부터 종교로서의 TH 를 주장하는 다양한 담론이 논의되어왔다. 가령 과학적 종교, 대체종교, 신 종교, 테크노-종교, 데이터-종교, 최후의 종교, 신영지주의, ‘참된 가짜’ 종 교로서의 TH 담론들이 그것이다. 먼저 드 가리스(H. De Garis)는 과학자들 의 종교를 ‘우주진화론주의’(cosmism)라고 부르면서, 이런 과학적 종교의 일 차 목적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들에게는 인공지능이 일 종의 종교인 것이다. 또한 사이보그주의자들의 목적은 그들 자신이 인공지 능신이 되는 데에 있다.14 이들은 로봇공학이 인간에게 신적인 힘과 권능을 부여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불멸이라든가 사자의 부활 등과 같이 고래 로부터 오랫동안 종교가 목표로 삼아온 것들을 테크놀로지가 이룰 수 있으 리라고 믿는다.
한편 종교의 대안을 추구하는 대체종교로서의 뉴에이지 운동이나 스피
리추얼리티 운동도 TH와 그 목표가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낡은 종교 대신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우주적 내러티브를 요청” 하는 TH 또한 일종의 대체종교로 볼 수 있다. 아마라신감(A. Amarasingam)은 여기서 더 나 아가 TH로 대변되는 미래학을 전통종교에 도전하는 하나의 신종교운동으 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묵시론적 인공지능’이라는 TH의 어젠다가 이미 우리의 공공생활과 현대의 종교적 다원주의 안에 들어와 있으며 현대 윤리학의 한 요소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 

유대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도 신종교로서의 TH를 시 사한다. 그는 『호모 데우스』(Home Deus)에서 “새로운 종교는 실험실에서 탄 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신과는 별 관계가 없고 기술과 관계있는 용감한” 이 신종교를 하라리는 ‘테크노-종교’(techno-religion, 기술종교)라 명명한다. 테 크노-종교는 사후에 천상의 존재들을 통한 것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행복, 평화, 번영, 심지어 영생까지도 주겠다고 약 속한다. 그는 이런 테크노-종교의 두 유형으로 테크노-휴머니즘(techno-
humanism, 기술 인본주의)과 데이터-종교(data-religion, 데이터교)를 제시한다. 이 중 21세기의 테크노-휴머니즘은 유전공학, 나노기술, 뇌와 컴퓨터를 연결

14  Hugo de Garis, “The Artilect War,” Issues 98, March, 2012, pp.15~16.
하는 인터페이스의 도움으로 전혀 다른 초인간 모델인 ‘호모 데우스’(homo deus), 즉 훨씬 우수한 인간 모델로서의 신적 인간[神人]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7 이에 비해 데이터-종교에 있어 우주는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 루어져 있고, 그런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만물인터넷’(Internet-of-AllThings)이라 불리는 “신과 같은” 데이터 처리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 면 ‘스피리추얼한 인터넷’ 이 마치 편재하는 신처럼 모든 것을 통제할 것 이고 인간은 전적으로 그 만물인터넷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19 이와 같은 테크노-종교는 종교의 최종적인 진화단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하
여 브루얼(D. Bruere)은 하라리와 유사한 어조로, TH를 영지(靈知, Gnosis), 즉 ‘참된 지식’에 의한 구원을 추구했던 고대 영지주의(Gnosticism)와 유사성을 보여주는 ‘최후의 종교’ 로 이해한다.  
한편 모라벡은 『마음의 아이들』 에서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나 로봇에 다운로드하거나 업로드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아가 그는 지구의 모든 과거 거주자들의 부활과 마음 이식이 가능해지는 미래를 묘사하기도 한다. 종교학자 이창익에 따르면 “이런 모라벡의 상상력은 종교적 상상력과 무척 닮아 있다. 가령 마음 이식을 통해 하나의 영혼이 동시에 여러 개의 신체를 소유할 수 있고 연속해서 다른 신체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환생이나 윤회의 기계적 실현을 가리킨다. 그는 영혼의 부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는 기계라는 미래의 신체에 다운로드되는 과거의 영혼(마음)으로 이해된 다. 이것은 종교적 세계의 기계적 실현이자 종교가 사라진 세계다. 이리하 여 그는 신체에서 해방된 ‘우리의 마음이 낳은 아이들’이 거주하는 현세적 내세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22

17  유 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481~483쪽.

이와 같은 모라벡의 발상 또한 “육체에서 해방된 마음 혹은 영혼”이라는 
영지주의적 주제의 각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영지주의는 불완전하고 악 한 신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창조된 이 세상은 참된 세상이 아니라고 보았
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 몸에 대한 TH의 관점이, 몸이란 영혼을 가두어놓은 사악한 함정이나 감옥일 뿐이라고 보는 ‘신영지주의’로 간주되기도 한다.  종교학자 데이비드 치데스터(D. Chidester)는 『참된 가짜』에서 종교를 “초 인간적인 것 및 하위인간적인 것과 관련시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절 충하고 극복하려는 것”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참된 가짜’란 종교가 일련의 사기적인 관행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종교적 효과를 야기한다는 것, 가령 초월의 감각을 제공하거나 인간 행동에 대한 의미를 확장시킨다거나 혹은 공동체를 확립시켜주는 역할을 해왔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게라시(R.M. 
Geraci)에 따르면 TH의 묵시론적 인공지능의 특징적 요소들은 이와 같은 ‘참된 가짜’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TH는 미래에 초인간적인 상 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믿음으로써, 치데스터가 정의하는 종교, 즉 인 간이라는 의미의 극복과 관련된 신념과 실천을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 
이런 ‘참된 가짜’의 개념을 하라리는 ‘공유된 허구’ 혹은 ‘상상의 질서’라 고 바꿔 말한다. 하라리에 따르면 “21세기에 역사학과 생물학의 경계가 흐 려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우리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념(ideology)이라는 허구(fiction)들이 유전자 가닥들을 고쳐 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21세기에 허구는 소행성
22  이 창익, 「인간이 된 기계와 기계가 된 신」, 『종교문화비평』 31, 2017, 223~224쪽.
과 자연선택을 훨씬 능가하는, 지구상의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그러 므로 우리가 미래를 이해하고 싶다면, 게놈을 해석하고 통계수치를 처리하 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허구들도 해독해 야 한다.”26 여기서 ‘허구’란 사회적 조화를 위해 공유된 어떤 것을 가리키 고, ‘이념’이란 주로 종교와 과학에 관련된 어떤 것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하라리는 “근대 과학은 확실히 게임의 룰을 바꾸었지만, 그 렇다고 신화를 사실로 대체한 것은 아니다. 신화는 계속 인류를 지배하고 있고, 과학은 그런 신화를 더 강화할 뿐”27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TH로 대 변되는 과학, 그리고 신화로 대변되는 종교는 이데올로기적 허구이며,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종교’인 휴머니즘28은 이와 같은 자기기만의 능 력, 즉 우리의 공유된 허구들에 광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능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분히 포스트 휴머니즘을(따라서 TH도) 이런 휴머니즘의 한 변형체로 보는 듯한 하라리는 “당대의 기술적 현실들을 알지 못하는 종교는 요청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필자의 윤문) 이라 하여 종교와 TH가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임을 시사한다. “종교와 기술은 서로를 밀고,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에게서 멀리 벗어날 수 없”29 기 때문이다.
세속적 신앙 혹은 무신론적 종교로서의 TH, 종교의 파트너로서의 TH, 
종말론· 신정론· 구원론 등에 있어 종교와 TH의 유사성, 과학적 종교, 대체 종교, 신종교, 테크노-종교, 데이터-종교, 최후의 종교, 신영지주의, ‘참된 가짜’ 종교로서의 TH를 말하는 이상의 관점들은 각각 상이한 맥락을 가지 면서도 공통적으로 종교와 TH가 양립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리하 여 이창익은 인간의 영혼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트랜스휴머니스트적 기획이 란 일종의 종교 이야기라고 천명한다. “종교는 인간이 스스로를 지우고자 

26 유 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203, 215~216쪽. 
27 유 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249~250쪽. 
28 유 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307쪽.
29 유 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372쪽. 

하는 이야기, 심지어 욕망과 시간과 영혼까지도 지우고자 하는 이야기, 식 물이나 동물 심지어 광물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며, “인간이 인 간이기를 멈추고 인간 아닌 것, 인간 너머의 것이 된다는 것은 바로 종교적 사유의 전형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0 

3. 애 니미즘의 일본지(日本誌):  
네오-애니미즘, 테크노-애니미즘, 신불-애니미즘 

1) 네오-애니미즘

이처럼 인간, 동물, 식물, 광물 등의 경계가 삼투압적인 종교적 사유를 대표 하는 것으로 애니미즘을 들 수 있다. 20세기 초 타일러(E.B. Tylor)가 주장한 ‘만물에 내재하는 정령 혹은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라든가 ‘최소한의 종교 정의’를 가리키는 ‘애니미즘’이라는 용어는 학계에서는 오래 전에 폐기 되었으나 대중적으로는 매우 강력하게 살아남았고, 근래에 들어 생태학이나 인류학의 네오-애니미즘 논쟁 및 종교학 등에서 ‘새로운 사유를 열어줄 수 있는 개념’으로서 학문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새로운 사유’와 관 련하여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론적 인식론’(relational epistemology)에 특 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애니미즘은 몸-마음의 서구적 이분법을 넘어 상 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31  이에 따라 애니미즘이라는 용어는 오늘날 타일러의 어법이 아닌 오지브
와(Ojibwa) 담론에 따른 어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류학자 어빙 할로웰(I. Hallowell)은 아메리카 원주민 오지브와 족의 연구를 통해 ‘퍼슨’(person)이라 는 용어를 인간만이 아닌 모든 종에 포괄적으로 사용할 것을 주장하면서, 
‘인간과는 다른 퍼슨들’(other-than-human persons)이라는 말을 주조하여 인간

30 이 창익, 「인간이 된 기계와 기계가 된 신」, 220쪽.
31 대 표적으로 데스콜라(Philippe Descola), 비베이로스 드 카스트로(E. Viveiros de Castro), 버드-데이 빗(Nurit Bird-David), 호른보르크(A. Hornborg) 등의 주장을 들 수 있다. 

도 그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활물(animate beings)임을 주장한다. 이때 퍼슨 이란 가령 ‘사람 퍼슨’과 ‘사람이 아닌 퍼슨’,32 ‘선더버드 퍼슨’과 ‘선더버드 가 아닌 퍼슨’, ‘바위 퍼슨’과 ‘바위가 아닌 퍼슨’ 등과 같이, 사람 외에도 새 라든가 바위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할로웰은 인간에게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어떤 것을 퍼슨으로 만드는 것이 인간과의 유사 성에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할로웰은 퍼슨을 인간적 속성이나 행위에만 관련된 것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아닌 것’을 포함하는 범주, 즉 ‘인간’보다 훨씬 더 크고 포괄적인 범주다.  

종교학자 그레이엄 하비(G. Harvey)는 이런 퍼슨이라는 말을 모든 종 사
이의 유사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인간을 비롯하여 각 종들 간의 차이는 이런 유사성 안에서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 세계의 관계론적 속성에 주목하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퍼슨들은 그들이 특별한 방식으로 다른 퍼슨들과 관계할 때 비로소 퍼슨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
다. 따라서 오지브와 담론에서 애니미즘은 구성원 대부분이 ‘인간과는 다른 퍼슨들’의 공동체 안에서 잘 살고자 하는 시도를 지칭한다. 그것은 다양한 관계론적 존재론과 인식론을 가리킨다.  하비는 애니미즘을 “세계가 퍼슨 들의 공동체이며 그 가운데 일부만이 인간이라고 이해하는 세계관에 주어 진 꼬리표” 라고 재정의한다. 이때 인간은 퍼슨들로 구성된 애니미즘적 세 계의 일부가 되며, 사람이 아닌 것들도 퍼슨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다시 말 해 퍼슨이라는 범주는 자의식을 가진 개인의 내적 속성, 즉 신념, 합리성, 주체성 등과 같은 인간의 내면성의 관점에서 인격성(personhood)을 파악하는 서구적인 이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하비는 이와 같은 네오-애니미즘적 관점에 입각하여 종교에 대해서도 

32   오지브와 족은 죽은 조상의 영을 ‘사람이 아닌 퍼슨’으로 지칭한다. Irving Hallowell, “Ojibwa Ontology, Behavior, and World View,” T.S. Smith, The Island of the Anishinaabeg, University of Idaho Press, 1995, p.4.

“상관적이고 물질적이며 참여적인 세계 안에서 함께 거주하는 퍼슨들 사이 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교섭(negotiation)” 나아가 “그렇게 상관적으로 실재하 는 세계 안에서의 에티켓 체계(etiquette system)”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종교 는 다양한 ‘퍼슨’들로 구성된 종들 사이의 에티켓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이다. 여기서 에티켓이란 사람들의 행위규범이나 의식(ritual), 혹은 인간보 다 더 큰 세계(‘퍼슨’들의 세계: 필자)에 있어 인간의 삶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 치는 퍼슨들 간의 관계성과 관련된 하나의 공적(公的)인 교섭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찌 보면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가 말하는 ‘다도의 종교’37라 든가 ‘가타(型)의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는 일본이야말로 이런 ‘에티켓으로 서의 종교’가 잘 발달된 사례일지도 모른다. 17세기 말 일본을 여행한 독일 인 외과의사 캠퍼(Engelbert Kaempfer)는 그의 『일본지』에서 일본을 “세계 어 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예의바르고 정중하며 호기심에 가득 찬 나 라” 로 묘사하고 있다. 그를 감탄케 한 것은 몸에 붙은 예의범절이 일본사 회 전체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캠퍼는 “비천한 시골촌 부에서 고귀한 계층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행위 작법은 제국 전체를 시민 적 교제(civility)와 에티켓(good manners)의 학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뛰어나 다” 고 격찬한 것이다. 

2) 테크노-애니미즘

카스퍼 젠슨(C. Jensen)과 앤더스 블록(A. Blok), 앤 앨리슨(A. Alison)은 이런 ‘에 티켓의 학교’로서의 일본에 네오-애니미즘을 적용시킨 것을 ‘테크노-애니미
즘’(techno-animism)이라고 부른다. 가령 젠슨과 블록은 인간이 아닌 것들, 즉 
앞서 언급한 퍼슨들의 세계와 맺는 관계의 운반체로서 신도(神道)를 지목한 다. 신도는 복잡하고 근대화된 고도의 테크노-과학적인 일본 안에 “살아 있 는 애니미즘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젠슨과 블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일본의 테크놀로지 문화에 관한 논의에서는 자주 신도적인 것이 일본 고래의 영적 신앙과 우주론적 상상력의 애니미즘적 층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언급되곤 한다. 그때 일본은 신도적인 것이 스며들어 있는 ‘테크노-애니미즘’의 나라로 묘사될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인간, 동물, 영적 존재, 기계적 존재 간의 경계를 
단호하게 해체하는 다형적 도착성(polymorphous perversity)을 엿볼 수 있다. 신도
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내재적· 감성적· 매혹적인 힘들을 해석하는 데에 흥 미로운 소재를 제공한다. 그럼으로써 신도적 테크노-애니미즘은 과학, 정치, 생 태학, 우주가 서로 얽혀 있는 현대 상황에 관한 한층 더 폭넓은 사고를 불러일
으킨다.  

위 인용문은 네오-애니미즘이 그렇듯이 테크노-애니미즘 또한 새로운 
지적 영역을 열어주리라는 기대를 표출하고 있다. 실제로 신도를 논하는 많 은 일본인은 신도의 특징으로 무엇보다 자연과의 애니미즘적인 친화력을 꼽곤 한다. 이때 ‘자연’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 에서는 “자연을 아끼자”(自然にやさしい)라는 표어가 늘 회자되는데, 이때의 자연은 네이처(nature)의 번역어다. 원래 근대 일본인은 네이처를 두 가지 단 어로 번역했다. ‘덴넨’(天然)과 ‘시젠’(自然)이 그것이다. 이 중 덴넨이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시젠은 이념화된 자연을 가리킨다. 오늘날 일본인이 자 연(시젠)을 말할 때 그 실질적인 내용은 종종 덴넨을 인공적으로 바꾼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가령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하며 덴넨에 인위를 가하여 바꾸는 것이 일본 정원술의 특징이다.42 그러니까 일본인이 생각하는 자연 혹은 애니미즘이란 애초부터 인공성과 쉽게 결합될 수 있는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일본을 “테크노-애니미즘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문화인류학

자 앤 앨리슨은 『세기의 괴물들』에서 각종 장난감과 캐릭터 상품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일본적 테크노-애니미즘의 특징을 제시하면서, 일본의 사회생 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애니미즘적 무의식’(animist unconscious)에 주목한 다. 그런 애니미즘적 무의식으로 인해 일본 문화에는 첨단 테크놀로지와 스 피리추얼한 것들이 쉽사리 뒤섞여 공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앨리슨은 이 와 같은 애니미즘적 감각을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 혹은 자연과 테크 놀로지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획 짓지 않는 일본의 민속전통, 신도, 불교적 관념과 연관시켜 이해한다. 가령 앨리슨은 전후 일본의 대중문화에 지속적 으로 나타나는 테크노-애니미즘의 출발점으로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만화 『철완 아톰』(1963)을 들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과 비슷한 마음이나 영 혼을 가지고 있는 로봇 소년을 상정하고 있는데, 이런 일본 대중문화는 “모 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고, 바위에서 개미에 이르기까지 우주만물에 스피 리추얼리티가 스며들어 있다”는 일본의 애니미즘적 종교 전통에 의해 고취 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테크노-애니미즘은 근본적으로 일본이라는 몸에 딱 맞는 옷 같
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때의 테크노-애니미즘이란 “상품소비주의의 물질적 실천 안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하나의 스타일로서, 현대 테크놀로지와 상품 에 영혼과 생명을 부여하고 뉴에이지적 관행을 통해 문화적 전통을 되살리 는 것” 을 가리킨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관련 캐릭 터 상품들이 세계 각지로 수출되었다. ‘파워레인저’, ‘도라에몽’, ‘울트라맨’, ‘드래곤볼’, ‘세일러문’, ‘마징가Z’, ‘건담’, ‘다마고치’, ‘포켓몬스터’, ‘헬로우 키티’ 등을 비롯한 각종 캐릭터 상품, 특히 로봇이나 사이보그 캐릭터를 조 형화한 피규어 상품 등을 들 수 있다. 앨리슨은 이런 상품들에 대해 발터 벤 야민의 개념을 빌려 ‘마법의 상품’(enchanted commodities)이라고 명명한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포켓몬스터’나 ‘세일러문’ 같은 장난감 캐릭터들은 마치 생명이 부여되어 살아 있는(animated) 것 같은 명확한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장난감 피규어들에게 생명과 행위주체로서의 속성을 불 어넣는다든지, 로봇과 동물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해체된 그런 세계 안 에 함께 위치시키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한편 종교와 미디어의 관계에 천착해온 스테프 어퍼스(S. Aupers)는 「기 계의 복수: 근대성, 디지털 테크놀로지, 애니미즘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테 크노-애니미즘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앨리슨이 ‘마법의 상품’ 을 테크노-애니미즘의 일본적 구현물로 이해한 것에 비해, 어퍼스는 막스 베버가 말한 탈마법화(disenchantment)를 뒤집은 재(再)마법화(re-enchantment) 의 관점에서 테크노-애니미즘과 TH의 관계 일반을 언급한다. 이때 어퍼스 는 특히 인터넷 전문 저널 『와이어드』(Wired)에 주목한다. 이 저널의 기고자 중에는 스스로를 포스트모던 시대의 애니미즘주의자라고 여기면서 테크 노-샤먼이라든가 테크노-마녀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퍼스는 이런 컴퓨터 전문가들을 ‘테크노-애니미즘주의자’로 보면서, 그 사회학적 배경으로 재마법화의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즉 근대 후기의 인간 들은 스스로가 일종의 시뮬레이트된 인공적인 ‘마법의 정원’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 신비로 경험된 것은 자연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인간 이 만든 테크놀로지적 환경이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의 영역 안 에 테크노-애니미즘적인 관념과 정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고대적 형식의 종교인 테크노-애니미즘의 출현은 합리화의 가속화 과정이 낳은 직접적이고도 예상치 못한 결과, 혹은 ‘비합리적인’ 부대효과라 할 수 있다. 합리화의 과정이 종교의 소멸이 아닌 재마법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즉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한편으로 테크놀로지 자체의 신비화 혹은 마법화 (주술화)를 수반했다는 말이다.46 그러니까 물질적 환경에 대한 애니미즘적 관점과 인공지능 및 인공생명 공학 분야의 테크놀로지 발전 사이에 유비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사 실 이런 테크노-애니미즘은 앞서 젠슨과 블록, 앨리슨이 밝혔듯이 일본에 서 매우 뚜렷한 형태로 확인된다. 가령 TH라는 주제에 천착한 대표적 작품 인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와 그 속편 인 <이노센스>(2004)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오로지 ‘고스트’(인간의 마음, 의식, 기억, 감정, 영혼)만 남겨놓고 인간의 몸 전체가 기계 와 인공두뇌로 대체된 사이보그를 비롯하여 안드로이드 로봇이나 인형들의 세계를 무대로 전개된다. 인간만이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보여주는 작품 속 세계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지극히 애매해진 테크노-애니미즘적 특징 을 잘 구현하고 있다. 네오-애니미즘의 연장선상에 있는 테크노-애니미즘 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과 기계 간 불연속의 해체’47에 있는데, <공각기동 대>와 <이노센스>는 바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애매해진 세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48

<공각기동대>의 여전사 사이보그 구사나기는 테크놀로지의 확장 앞에 서 끊임없이 아이덴티티의 위기를 느끼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반문 하며 고뇌한다. 그 결과 구사나기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해커 인형사와의 융 합을 선택한다. 이는 테크놀로지를 통한 한층 더 진화된 상태로의 궁극적인 상승을 암시한다. 경계 해체의 표상인 ‘인간과 기계의 융합’이라는 이와 같 은 TH적 상승은 단지 테크놀로지의 급격한 발전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오래된 욕망에서 비롯된 

46 Stef Aupers, “The Revenge of the Machines,” p.200, pp.216~218.
47 매 즐리시(Bruce Mazlish)에 따르면 인간과 기계의 불연속은 인류에게 있어 ‘네 번째 불연속’에 해당 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와 지상의 불연속을 제거했다면, 다윈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불연속적 구 분을 해체했다. 한편 프로이트는 유아적인 본성과 문명화된 성품 혹은 병든 정신과 건강한 정신의 연속성을 입증했다. 이에 비해 TH은 인간과 기계의 불연속을 해체했다는 것이다. 신상규, 『호모 사 피엔스의 미래』, 50쪽.
48 오 시이 감독의 작품에 나타난 경계전이적 상상력에 관해서는 Park Kyutae, “A Study on Mamoru 
Oshii: Identity and Border in Japanese Animation,” 『일본사상』 15, 2008, 121~129쪽 참조.
것이기도 하다. 서수정에 따르면, “사이보그는 전지전능함을 향한 인간 의 지의 집결점이며 스스로 신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의 실험장”49과 다름 없다.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는 인간의 자기 확장 가능성을 테크놀로지 에서 찾고 있는데, 이는 인간향상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TH의 목표와 정 확히 일치한다. 오시이는 <공각기동대>와 관련된 한 인터뷰에서 “이데올로 기도 종교도 인간을 변혁시킬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가능성은 테크놀 로지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녀(구사나기와 인 형사가 융합한 의체: 필자)는 그런 의미에서 테크놀로지가 탄생시킨 새로운 인 간이며, 새로운 시대의 이브라 할 수 있다. 단, 그 소녀가 신의 모습일지 악 마의 모습일지는 단정 지을 수 없다”50고 말한다. 여기서 ‘새로운 인간’이란 바로 TH가 지향하는 ‘포스트휴먼’51을 연상케 한다. 이는 테크놀로지와의 융합이란 인류가 자신의 진화를 완성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포용해야 할 어 떤 것이며, 포스트휴먼이야말로 다음 단계의 참된 인간성이 될 수밖에 없다 는 오시이의 비전을 시사한다.  이와 더불어 오시이는 위에 인용된 인터뷰 의 말미에서 엿볼 수 있듯이 TH와 포스트휴먼 혹은 테크노-애니미즘의 위 험성에 대해서도 열린 물음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3) 신불(神佛)-애니미즘

이 대목에서 테크놀로지와 애니미즘을 결합시킨 신조어 테크노-애니미즘 의 구체적인 일본적 맥락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오-애니미즘 담론

49 서 수정, 「애니메이션에 나타난 ‘현대 사이보그’ 특성: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를 중심으로」, 『한 국콘텐츠학회논문지』 7(4), 2007, 152쪽.
50 오 시이 마모루 인터뷰, “지금도 답을 찾고 있다.” 안영순,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에 나타난 오시 이 마모루의 존재 인식」, 『순천향 인문학논총』 15, 2005, 169쪽 각주 21. 
51 트 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이 한층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존재로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다고 예언 하면서 이렇게 변형된 인간을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등장하기 이전에 애니미즘이라는 말은 서구의 인류학 담론에서 거의 폐 기된 용어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오직 일본에서만은 애니미즘이라는 개 념이 일본 문화의 독특성을 설명하거나 일본사회의 모델을 구축하는 수단 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다.”53 이런 경향과 관련하여 2001년 창간된 본격적인 종교비평 저널 『현대종교』는 간행사에서 “일본인의 종교성의 근저에 있는 애니미즘은 종교인가? 일본에서는 ‘종교’의 미래에 큰 희망을 걸지 않는 사 람들이라 할지라도 ‘종교적인 것’이라든가 ‘애니미즘’에는 많은 희망을 걸 기도 한다”54고 적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일본에서는 다양한 영역에 걸쳐 애니미즘 복권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일본판 뉴에이지인 ‘정신세 계’와 그 흐름을 이어받은 ‘신영성운동’55 및 이른바 ‘영성적 지식인’이라 불 리는 일군의 지식인들, 또는 일본인론 및 일본교론 논자들에 의해 애니미즘 의 다양한 버전이 재생산되어왔다. 근래에는 “기독교와 서양문화를 배경으 로 하는 ‘스피리추얼리티’라는 말과 애니미즘적 색채가 농후한 일본 문화를 연상시키는 ‘이노치’(命)라는 말이 때로는 교차하거나 때로는 중첩되면서 흥륭”56하고 있다.

먼저 대표적인 영성적 지식인들에 의한 애니미즘 담론에 대해 생각해보 자.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에 따르면, 일본 종교의 뿌리는 조몬인들의 수렵 채집문화에 기반을 둔 애니미즘적 고신도(古神道)에 있다. ‘애니미즘’이라든 가 그것에 토대를 둔 ‘일본적 영성’ 혹은 ‘애니미즘적 영성’에 입각한 우메 하라 일본학은 ‘나무와 숲의 종교’인 일본의 신도 및 불교 사상에 내장된 생 명사상과 일본적 영성이 인류에 침투할 때 비로소 인류가 살아남을 가능성 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한다.57 다시 말해 애니미즘적인 ‘숲의 사상’이 세계
53 J . Clammer, “Shinto dreams: Difference and the Alternative Politics of Nature,” Japan and Its Others: Globalization, Difference and the Critique of Modernity, Rosanna, Vic.: Pacific Press, 2001, p.217.
54 国際宗教硏究所 編, 『現代宗教 2001』, 東京堂出版, 2001, 6쪽. 
55 ‘정신세계’와 ‘신영성운동’에 대해서는 박규태, 『포스트-옴 시대 일본사회의 향방과 ‘스피리추얼리 티’』, 특히 37~52쪽 참조.
56 島薗進 , 『スピリチュアリティの興隆』, 岩波書店, 2007, 40쪽. 
57 梅原猛, 『〈森の思想〉が人類を救う』, 小学館, 1991, 특히 232~237쪽.
를 구원할 수 있으며, 그런 애니미즘적 고신도야말로 미래 인류의 종교라는 것이다. 야마오리 데쓰오(山折哲雄)도 이와 유사한 어조로 자연을 대하는 일 본인의 독특한 애니미즘적 감각과 심정이 일본인의 종교관의 모태를 형성 했다고 말한다. 그에게 애니미즘이란 ‘인간과 신 사이의 열려진 경계’ 또는 ‘자연과의 조화’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일본 종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간주된다. 그는 이런 애니미즘적 감각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일본이야말로 현 대사회의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더 나아 가 신도적 영성을 강조하는 가마타 도지(鎌田東二)는 『덴카와 만다라: 초종교 에의 수로』58에서 애니미즘, 샤머니즘, 다신교가 잘 보존되어 있는 나라 현 소재 덴카와(天河) 신사가 ‘신성한 자연의 정적’을 경험하게 해준다면서 그런 자연 경험이 바로 ‘영성’으로 지칭되는 ‘초종교’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종교학자 나카자와 신이치(中沢新一)는 정토진종의 창시자 신
란(親鸞)을 조몬과 불교를 접합한 인물로 높이 평가한다. 즉 정토진종에서 조몬적 애니미즘의 성격을 띤 ‘증여의 사고’를 보는 나카자와는, 신란의 절 대타력 사상은 순수증여자로서의 아미타불이 아낌없이 베푸는 무한한 자비 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버리게(無私)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나카자와는 일본 불교를 “애니미즘적 사고와 불교의 철학적 이치가 융합하여 마침내 일본인이 납득할 만한 종교로 거듭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해는 ‘창조적인 애니미즘’이라든가 ‘불교의 조몬적 요소 에 대한 발굴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나카자와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 이라 할 수 있다.59 한편 민속학자 고마쓰 가즈히코(小松和彦)에 따르면 일본 의 요괴는 애니미즘적 색채를 잘 보여준다. 고마쓰는 일본 요괴현상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배경으로 고래의 애니미즘 신앙을 들고 있다. 산, 강, 나무, 물, 바위 등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는데, 그 영이 인간에게 잘못된 생각이나 악의를 품고 재앙을 일으킬 때 그것은 모두 요괴가 된다는 
58 鎌田東二 · 津村喬 編, 『天河曼陀羅: 超宗教への水路』, 春秋社, 1994.
59 가 와이 하야오· 나카자와 신이치, 『불교가 좋다』, 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2004, 83쪽, 133~135쪽.
것이다. 나아가 이런 애니미즘적 관념은 일본에서 자연물을 가공하여 만들 어낸 기물이나 도구에까지 확장된다. 즉 기물이나 도구에도 영혼과 정령이 깃들어 있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에게 재앙을 불러일으 킬 수도 있다고 여겼고 그런 관념이 요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쓰쿠모가 미’라는 요괴가 바로 그것이다.60 고마쓰는 이와 같이 애니미즘이 투영된 요 괴 연구를 통해 일본 문화의 심층을 엿보고자 한다.

이들과 더불어 일본의 애니미즘 담론을 대표하는 인물로 문화인류학자 
이와타 게이지(岩田慶治)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가미와 신(神): 애니미 즘 우주의 여행』(1984)과 『애니미즘시대』(1993)에서 애니미즘적 가미(神) 체 험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종교이며 모든 종교의 뿌리가 되는 초종교로서, 그것은 곧 본래의 자신과 만나는 체험이라고 주장한다. 이와타에 따르면 애 니미즘은 미발달된 초기의 종교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우주적 감 각’이며, 따라서 애니미즘 연구는 인간과 우주(자연)의 관계를 재구성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그리하여 이와타는 종래 부정적으로 평가받아온 애니미 즘의 중요한 의미를 재발견하고 재평가함으로써 애니미즘의 복권을 기도하 는 이른바 ‘신애니미즘’을 주창한다.61
위에서 소개한 애니미즘의 복권을 주장하는 영성적 지식인들의 담론은 크게 보면 이른바 ‘일본인론’(=일본문화론)이라는 일본 특유의 지적 장르에 속 해 있다.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島園進)는 일본인론을 ‘일본교론’의 관점 에서 파악한 바 있는데,62 1990년대 전반에 절정을 이룬 일본교론 및 일본인 론은 외국의 세계종교를 비판하고 ‘일본교’,63 신도, 애니미즘을 칭송함으로 써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 특징 중 하나인 일본 중심주의와 신국 내셔널리즘은 자연을 신성시하는 애니미즘적인 신도적 감 수성, 조상신을 비롯하여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오래된 풍습, 유한한 인륜적 
60 고 마쓰 가즈히코, 「일본의 요괴관에 대하여」, 『현대일본의 요괴문화론』, 제이앤씨, 2014, 4~6쪽. 
61 岩田慶治 , 『カミと神』, 講談社学術文庫, 1989, 46쪽.
62 島薗進 , 『ポストモダンの新宗教』, 東京堂出版, 2001, 138~170쪽 참조.
63 ‘ 일본교’에 관해서는 박규태, 「‘일본교’와 ‘스피리추얼리티’」, 『일본비평』 5, 2011 참조.
조직을 절대시하는 일본인의 사유방식 등이 만들어낸 복합적인 주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영성적 지식인들과 일본인론자들의 애니미즘 담론에 이어 2011년 3 · 11동일본대지진 이후의 탈원전운동에서는 종교단체와 우익, 좌 익을 가릴 것 없이 “이노치를 지켜라”는 주장이 자주 등장했다. 일본어 ‘이 노치’(命)는 일반적인 ‘생명’ 개념에서 더 나아가 대자연의 작용 자체를 가 리키는 말로, 불교의 『법화경』 사상과 불성(佛性) 사상 및 전술한 애니미즘 재평가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이쇼 시대의 ‘생명주의’까지 거 슬러 올라가는 이노치 관념에서 인간은 이노치에 의해 ‘살려지고’ 자연과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동시에 양자가 서로 연대하면서 이노치를 구성한다. 또한 이노치 관념은 우주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고 그 근원적 생명이 인간의 본성이라 주장하며 신인합일(神人合一)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일본 신종교 교단들의 이른바 ‘생명주의적 구제관’64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 밖에 환경사상 분야에서도 1980년대 이래 심층생태학과 일본 애니미즘을 융합시킨 생명주의를 말하고 있다. 이와 같 은 다양한 애니미즘적 생명주의가 3 · 11동일본대지진 이후 종교인들에 의 한 반원전운동의 근거로 기능하고 있다.65 
이와타의 사례를 제외하면 이와 같은 애니미즘 복권의 움직임이 네오애니미즘이나 테크노-애니미즘을 직접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본이 애 니미즘의 풍부한 유산을 찾아볼 수 있는 나라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 유산 들은 특히 신도 및 불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글에서는 이를 ‘신불(神佛)-애니미즘’이라 지칭하고자 한다.66 이와 관련

64 対馬路人他 , 「新宗教における生命主義的救済観」, 『思想』 665, 1979 참조.
65 堀江宗正 , 「脫/反原発運動のスピリチュアリティ」, 『現代宗教 2013』, 東京堂出版, 2013, 81~83쪽.
66 일 본에는 신불(神佛, 신부츠)이라는 일상용어가 있다. 그것은 신도의 가미(神)와 불교의 호토케(佛) 를 병렬시킨 단순한 합성어가 아니다. 일본인에게 신과 불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일본인에게 신불이란 가미이기도 하고 호토케이기도 한, 혹은 가미도 아니고 호토케도 아닌 제3의 새로운 신관 념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일본인의 특이한 종교적 상상력이 주조해낸 새로운 신관념 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박규태, 「신불분리의 종교사적 일고찰: 신불의 타자론」, 『아세아연구』 46(4), 
2003, 93~94쪽.

하여 종교인류학자 사사키 고칸(佐々木宏幹)은 『가미(神)와 호토케(佛)와 일본 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고사기』· 『일본서기』· 『풍토기』 등을 보면 일본인은 인간을 비롯하여 산, 강, 풀, 나무, 새, 짐승, 벌레, 물고기와 심지어 인공물까지도 가미로 숭배했음을 알 수 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가 가미를 ‘무엇이든 심상치 않고 뛰어난 힘(德)을 가진 외경스러운 존재’로 규정한 것은 그 좋은 사례다. 팔백만신으로 표상되는 다신교적 신도의 기초에는 모든 존재에서 생명과 신성을 인정하는 애 니미즘이 깔려 있다. 일본 TV 등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인령, 동물령, 생령에 의 한 뒤탈(祟り)과 빙의 등의 사례는 실로 현대 애니미즘 문화 그 자체라 할 수 있
다. 또한 대도시에서 행해지는 바늘공양이나 시계공양이라든가 대형 여객기에 대한 신도적 정화의례 등에서 우리는 도구와 기계 등에 대해서도 인격과 유사 한 성격을 인정하는 애니미즘적 심정을 확인할 수 있다.67
모든 존재에서 생명과 신성을 인정하는 일본인들의 이런 애니미즘적 감
각을 카슬리스(T.P. Kasulis)는 “내재적 연결(immanent connectedness)의 경험을 초래하는 신도의 능력”이라고 불렀다.68 여기서 ‘내재적 연결’이란 네오-애 니미즘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관계론적 인식론’과 상통하는 개념 으로 보인다.69 그리하여 클램머(J. Clammer)는 신도를 “애니미즘의 세련화된 형태”70로 이해하기도 한다. 일찍이 미나카타 구마구스(南方熊楠)라든가 야 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의 민속학은 신도적인 심층생태학적 감각, 즉 숲이 나 신사 같은 특정 장소에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이 공존한다는 신성한 공간
67 佐 々木宏幹, 『神と仏と日本人』, 吉川弘文館, 1996, 2~3쪽.
68 トーマス · カス─リス, 衣笠正晃 訳, 『神道』, ちくま学芸文庫, 2014, 272쪽.
69 신 도는 가미라는 영적 존재들이 과도하게 차고 넘치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 그 세계는 인간과 인간 이 아닌 세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자의 경계는 애매하고 상호 가변적이다. 젠슨과 블록은 자연과 문화를 대립시키는 서구 모더니즘의 이원론과는 달리, 신도적 세계관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연속
성 혹은 그 경계의 해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Casper B. Jensen & Anders Blok, 
“Techno-animism in Japan,” pp.97, 104. 70 J . Clammer, “Shinto dreams,” p.238.
감각에 주목한 바 있다. 사실 일본의 애니미즘 담론은 대부분 신도와 결부 되어 있다. 이때 신도는 일본 민속종교의 광범위하고 다면적인 토대로 간주 되곤 한다.  이에 비해 한때 승려였던 제임스 휴즈 교수가 주도하는 도덕 적 향상을 위한 <사이보그붓다 프로젝트> 는 TH와 불교의 유사성을 주장 한다. 뒤에서 상술하겠지만, 일본 불교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과 무생물 등 모든 존재 안에 궁극자로서의 불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기계와 인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TH에 근접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어쨌든 사사키의 지적대로 우리는 일본 문화에서 이와 같은 신불-애니 미즘의 풍부한 유산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미야자키 하야오 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라든가 <이웃집 토토로>는 각각 원시신도적 숲과 ‘수호신사의 숲’을 무대로 애니미즘적 기호를 재창출하고 있으며,73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아마테라스 신화를 묘사한 신도 기도문(노리토)의 주제곡이라든가 스사노오 신화에 나오는 구사나기의 각색 등 전체적으로 신도적 모티브와 분위기를 배경에 깔고 있다. 한편 창(F.T. Chang)과 하르트 (L.A. Hart)는 죽은 실험용 동물들을 공양하는 일본 과학자들의 관습에 주목 하면서 그것이 일본 불교와 신도의 관행이라는 점을 지적한다.74 젠슨과 블 록 또한 신도적 관계주의의 표출은 나무든 동물이든 로봇이든 초첨단 장난
감이든 오직 사물적 현현(thingly manifestation)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동물공양이 그 전형적인 사례라고 보았다.  이밖에 신사나 사원에서 배포하는 다양한 유형의 주술적 부적(오마모리 
혹은 오후다)에 대한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집착도 신불-애미니즘의 문화현 상을 잘 보여준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자동차나 버스에 ‘교통안전’이라고 적힌 부적이 부착되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대학 실험실의 전 자현미경에 부적을 붙여 놓았다거나 로켓에 부적을 붙여 쏘아 올렸다는 이 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애니미즘과 마찬가지로 주술 또한 관계론적 세 계관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도 및 불교의 부적문화가 첨단 기술문명 과 공존하는 일본은 신불-애니미즘의 풍부한 보고라 아니할 수 없다. 

4. 가미와 호토케의 유희

종교가 과학이론 형성에 강력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여기는 게라시에 따르 면,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의 목표 및 그 관행의 차이는 각 나라의 종교적 환 경과 관계가 있다. 가령 미국은 영적 신체 안에서 구원을 희구하는 우주적 목적과 종말론적 천년왕국을 소망하는 기독교적 환경에 의해 연구자들은 인간형 로봇(humonoid)보다는 인공지능을 더 선호한다. 인공지능의 발달 안 에서 우주적 의미를 찾고, 가상적인 비생물학적 신체 안에서 인간 정신의 구 원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게라시는 ‘묵시론적 인공지능’을 언급하면서 그 지도적 선구자로 한스 모라벡과 레이 커즈와일을 들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인공지능보다 인간형 로봇을 더 선호한다. 게라시는 
이런 일본적 경향의 배경으로 인간에 대한 불교와 신도의 긍정적이고 낙관 적인 관점을 들고 있다. 신도와 불교가 일본 로봇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 다는 것이다. 가령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는 로봇이 언젠가 붓다 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은 한편으로는 세계가 가미라는 신성한 실재들로 가득 차 있다는 신도적 세계관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성화(聖化)된 로봇의 현존을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여 즐긴다. 로봇이 제의적 성화와 종교적 초 월의 주체로서 자연세계의 근원적인 성성(聖性)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때 불 교와 신도는 자연세계 및 그 안에 사는 인간뿐만 아니라 로봇까지도 축복하 여 우주적 구원사에 참여시키고자 한다. 가령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 지만 해도 새로 출시된 로봇에 제의를 수행하기 위해 많은 공장에서 신도 사제들이 채용되었다. 지금은 이런 애니미즘적 관행이 거의 사라졌지만, 로 봇공학 자체는 여전히 성성(聖性)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76 미국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공지능을, 그리고 일본은 신도와 불교의 
영향으로 인간형 로봇을 더 선호한다는 게라시의 주장은 시사적이다. 하지 만 일본인이 인간형 로봇을 선호하는 이유로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 을 들고 있는 그의 주장은 다소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신불-애니미즘의 관 점에서 볼 때, 인간보다는 호토케와 가미 혹은 인신(人神)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이 인간형 로봇에 대한 선호도를 촉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적 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미와 호토케의 개념을 면 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1) 가미와 호토케의 개념
‘치’(靈), ‘미’(神), ‘다마’(靈) 등의 고대 일본어는 애니미즘에 입각한 조몬인들 의 소박한 신 관념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들이 과연 가미라는 관념으로 승 화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신화가 체계화되고 신명(神名)이 정비되어 문헌 에 기록된 단계에서 이미 외래사상의 영향이 보이므로, 그 이전 시대 신 관 념의 원형을 찾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가미’라는 말은 한국 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매우 유력한데, 아이누어에서 온 것이라는 설도 있 다.77 요컨대 가미는 원래 수입품이었다.78 이런 가미의 특징 중 이 글과 관
76 Robert  M. Geraci, “Spiritual Robots: Religion and Our Scientific View of the Natural World,” Theology and Science 4(3), 2006, pp.229~230, 235~237. 한편 일본 정부는 2015년 9월 <인공지능· 사 물인터넷(IoT)· 빅데이터에 의한 신산업 사회혁명> 프로젝트를 출범하는 등 근래 인공지능 연구에 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77 고 대 일본어 치, 미, 다마의 용례로 미즈치(水靈), 오로치(山靈), 이카즈치(雷, 嚴靈), 구노치(木靈), 누 즈치(野靈), 시오쓰치(潮靈), 가구쓰치(火靈), 쓰키요미(月神), 야마쓰미(山神), 와다쓰미(海神), 고다 마(木靈), 이키스다마(生靈) 등이 있다. 源了圓, 「日本における「神」観念の比較文化論的考察」, 関晃 · 源了圓 編, 『神観念の比較文化論的研究』, 講談社, 1981, 7~11쪽.
78 가 미의 어원에 대한 기존의 관점으로, 가가미(鏡)에서 온 말, 가시코미(畏)의 약어, 가미의 ‘미’는 ‘히’
(태양)에서 온 말, 가미(上)의 뜻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마지막 설이 에도시대부터 널리 지지되어왔
련하여 특히 주목할 것은 애니미즘적 측면, 신인동형론적 속성, 변신의 유 연성 등 세 가지다. 
첫째, 가미의 정의와 관련하여 오늘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국학자 모
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지지한다. 
대저 가미란 고전 등에 보이는 천지의 여러 신들을 비롯하여, 그 신들을 모신 신사의 미타마(御靈)를 말한다. 또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조수초목이나 바다 와 산 및 그 밖에 무엇이든 심상치 않고 뛰어난 기운(德)이 있으며 두렵고 외경 스러운 것들을 가미라고 한다. [뛰어나다는 것은 존귀하고 선하거나 공훈이 뛰어나다는 것뿐만 아니라, 악한 것이나 기이한 것이라 해도 매우 뛰어나며 두렵고 외경스러우면 가미라 하 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신이라 할 때 먼저 입에 올리기조차 황공하옵신 천황은 대대로 모두 가미임은 말할 나위 없다. 천황은 원신(遠神)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범인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며 존귀하고 황공하옵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신인(神人) 이 줄곧 있어왔다. 또한 천하에 거리낌이 없는 존재라기보다는 일국(一國) 일리(一里) 일가(一
家)에 매여 있다 해도 각자의 신분에 상응하는 신인도 있다. 그런데 신대(神代)의 신들도 대개는 그 신대의 사람들이었다. … 나아가 바위, 뿌리, 나무 그루터기, 풀과 이파리 등도 모두 가미가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와 산 등도 가미라고 부른 경우가 많다. 이는 그 미타마가 가미라는 뜻이 아니라, 직접 바다나 산 그 자체를 가리켜 가미라 한 것이다. 이것들도 모두 두렵고 외경스
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저 가미란 이처럼 다종다양하여 귀한 가미와 천한 가미 가 있는가 하면 강한 가미와 약한 가미, 선한 가미와 악한 가미도 있다. 이 가미 들은 마음도 행위도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가미란 대개 한 가지로 정해서 말하
기 어려운 존재다.(『古事記傳』 3)79
다. 하지만 오노에 따르면 이런 어원설은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 나라시대의 일본어는 지금은 없어졌 지만 발음상의 구별이 있었다. 이 점은 언어학자 하시모토 신키치(橋本進吉) 등에 의한 만엽가나 연 구에서 밝혀진 것으로 학계에서 이미 승인된 설이다. 나라시대에는 ‘미’의 음이 두 개 있었다. mi의 음과 mï가 그것인데, 가미(神)의 ‘미’는 이 중 후자(mï)에 해당한다. 그런데 기존 어원설에서의 ‘미’ 는 모두 전자(mi)에 속하므로, 가미의 어원을 일본어 내부에서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大野晋, 『一語の辞典 神』, 三省堂, 1997, 6~7쪽.
79 『本居宣長全集』 9, 筑摩書房, 1968, 125~126쪽.
일본적 본질과 독특성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노리나가의 가미 정의는 신 도적 애니미즘을 반영하고 있다. 거기서 가미란 신사에 모신 천신이나 조상 신만이 아니라, 인간· 동물· 새· 식물· 산· 바위· 바다· 호수 특히 폭포 같은 자연의 장엄한 현현 등을 포함한다. 나아가 천황은 ‘먼 가미’(遠神)로서 인간 이거나 인간이었던 가미다. 이에 비해 모든 지역과 마을 혹은 가정에서 모 시는 조상신은 ‘가까운 가미’라 할 수 있다. 한편 천둥은 ‘울리는 가미’(雷, 가 미나리)이고 고다마(木靈)는 나무의 가미다. 이처럼 가미는 신격화된 인간뿐 만 아니라 인간 아닌 것들도 다수 포괄한다. 이처럼 노리나가의 가미 정의 는 크게 애니미즘이라는 범주 안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둘째, 가미는 처음부터 신인동형론적인 개념이었다. 가미의 이름 밑에 
남녀의 구별이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접미어를 붙여 인간임을 시사하 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어법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가령 이자나기의 ‘기’, 스사노오의 ‘오’, 오호토노지의 ‘지’, 오호다라시히코의 ‘히코’ 등은 남 자를, 이자나미의 ‘미’, 오호히루메의 ‘메’, 오호토노베의 ‘베’, 오키나가다라 시히메의 ‘히메’ 등은 여자를 나타내는 접미어다. 또한 아메노미나카누시의 ‘누시’(主)라든가 오호나무치의 ‘무치’(貴) 등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 는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어의 사례다.80 여기서 특히 ‘신인’(神人)이라는 표 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서기』에는 “천지가 혼성(混成)할 때 처음에 가미(神人)가 있었다. 우
 
마시아시카비히코지노미코토라 한다”든가 “갈대싹이 처음으로 진흙 속에 생겨나는가 싶더니 곧 가미(人)로 변했다. 구니도코타치노미코토라 한다”(밑 줄은 필자)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가미(神人, 人)란 “사람 같은 인간적인 신” 을 가리킨다.81 한편 신도신화에 나오는 가미들이 실제로는 인간이었다고 보는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에 따르면,82 가미를 나타내는 ‘미코토’(尊)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존칭이다. 즉 미코토는 인
80 大野晋 , 『一語の辞典 神』, 20~21쪽.
81 『日本書紀』 上, 日本古典文学大系, 岩波書店, 1967, 78쪽 각주 1.
82 津田左右吉 , 『日本古典の硏究』 上, 『津田左右吉全集』 1, 岩波書店, 1963, 666쪽.
간으로서의 신인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에 앞서 『일본서기』는 하늘과 땅이 생성된 후 “가미(神聖)가 그 안에서 나타났다”83고 적고 있다. 이는 신인동형 론적 가미 관념의 성립과 더불어 ‘신성’이라는 성격이 가미 관념에 부착되 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에게 정1위라든가 종3위 등과 같이 신위를 수여한 신도의 신계(神階)제도는 오늘날의 신 관념에서 보자면 놀랄 만한 것이지만, 위와 같은 신인동형론적 가미 관념에 의거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83
셋째, 신도는 마치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인형’처럼 시대가 변하면 재 빨리 전 시대의 의상을 벗어던지고 다음 시대의 새로운 사상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가령 상대(上代)의 고신도는 한반도와 중국에서 전래한 사상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라(奈良)시대 초엽 신도는 고대통일국가를 형성하 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의상을 입고 나타났다. 헤이안(平安)시대가 되면 불교 가 깊이 침투하면서 신도는 이제 불교의 옷으로 갈아입었고, 가마쿠라(鎌倉) 시대에는 천태계의 본지수적(本地垂迹)신도와 진언계의 양부(兩部)신도가 되 었다. 무로마치(室町)시대에는 삼교(유교, 불교, 노장)일치의 옷으로 갈아입고 반(反)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을 주창하는 요시다(吉田)신도가 되었다. 도쿠가 와(徳川)시대에는 불교의 옷을 벗고 유교의 옷으로 갈아입어 하야시 라잔(林羅山)의 리당심지(理當心地)신도라든가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의 스이카 (垂加)신도 등과 같은 유가(儒家)신도가 되었다. 그 후 국학이 발흥하자 이번 에는 유교의 옷을 벗고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고학(古學)신도가 되었 다. 나아가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의 고도(古道)신도는 기독교의 옷을 껴 입었다. 심지어 막부 말기에는 신도가 기독교와 습합하여 와타나베 이카리 마로(渡辺重石丸)의 신기(神基)습합신도가 되었다. 이어서 메이지(明治)시대에 는 가족국가 이데올로기가 대두하면서 국가신도(신사신도)가 출현했으며, 패 전 후에는 이 국가신도의 의상을 벗어버리고 서구 민주주의의 의상을 걸치 게 된다. 이런 신도의 특질은 그대로 가미의 변신성과 겹쳐진다. 즉 『고사기』에 
83 『日本書紀』 上, 76쪽.
있어 황실과 일부 유력씨족의 우지가미(씨신: 氏神)은 조상신이 되었다. 신불 습합신도에서는 가미가 불보살의 수적이 되었고, 신유습합신도에서는 리 (理)나 태극 그 자체 혹은 리가 순수한 기를 타고 나타난 것을 가미라고 했 다. 신도와 국학이 습합하면서 가미는 황실과 국민의 조상신이 되었고, 신 기습합신도에서는 데우스 같은 창조신이자 주재신 혹은 사후 심판을 관장 하는 신이 되었으며, 국가신도에서는 황실 및 국민의 조상신이 됨과 아울러 충신, 의사, 전몰자가 신격화되기도 했다. 한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라 해도 제신이 종종 바뀌며, 기도자나 제사자조차 그 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경우는 제신이 누구든 상관없을 정도다.84 
한편 일본에서는 붓다(Buddha)를 호토케라고 한다. 인도의 붓다는 중국 후한시대에 ‘부도’(浮圖=浮屠)85로 음역되었는데, 이 ‘부도’를 일본에서는 현재 
‘후토’ 혹은 ‘호도’라 읽는다. 여기서 ‘도’(圖, 屠)는 중국 한대의 고음에서는 닥 (dag)이라 하여 모음 a의 음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부도는 붓다를 직 역한 음역으로 불타(佛陀)와 동음이었다. 그러다가 부도를 간략하게 적어 ‘불’(佛)이라는 글자를 쓰게 되었다. 일본어 호토케의 ‘호토’는 본래 의미상 붓다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불’이라는 글자의 음(but)을 빌린 것이었다. 한편 ‘케’는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나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던 접미어 ‘카’ 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일본에서 호토케는 처음에는 ‘깨달음 을 얻은 각자’(붓다)를 나타내기보다는 ‘호토의 상(像)’이라든가 ‘호토의 도 (圖)’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와 같은 호토케의 중요한 개념적 특성으로 무엇보다 가미와의 불가분한 관계성과 애니미즘적 속성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일본서기』에는 552년 처음으로 불상과 경전이 들어왔을 때 긴메 이(欽明) 천황이 “서번(西蕃)이 모시는 불상의 면모가 찬란한 게 이제껏 본 적 이 없다. 숭경해야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고 나온다. 여기서 호토케는 ‘번 신’(蕃神), 즉 외국의 신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비다쓰(敏達) 천황기 14년조
84 石田一良 , 「日本上代の神観念」, 関晃 · 源了圓 編, 『神観念の比較文化論的研究』, 講談社, 1981, 87~89쪽.
85 부 처나 고승 사후에 그 유골을 안치하여 세운 둥근 돌 또는 그 부처나 승려를 가리키는 말.
에는 “불신(佛神)의 마음에 뒤탈이 있다”고 나온다. 『일본서기』에서 호토케 를 ‘불신’이라고 한 것은 이 기사가 유일하지만, 『원흥사연기병류기자재장』 (元興寺緣起竝流記資材帳)에는 ‘타국신’(他國神)이라는 표현 외에 “불신은 두려 운 존재다”라든가 “불신을 모신다”와 같이 ‘불신’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는 전래 당시에 호토케가 가미의 일종으로 관념되었으며, 나라시대 중엽 까지도 그런 인식이 확실하게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헤이안시대 중엽부터 이른바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이 확립되 면서 가미와 호토케의 관계에 역전이 일어난다. 여기서 ‘본지수적’이란 특 정한 가미와 특정한 불보살이 결부되어 가미는 호토케의 수적(垂迹=변형, 화
신)이고 호토케는 가미의 본지(本地=원형, 본체)라 하여 신불관계를 이론화한 관념체계를 가리킨다. 피안의 절대적 존재인 부처가 일본의 중생을 구제하 기 위해 임시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 것이 바로 가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까 호토케가 오리지널이고 가미는 카피(아바타)인 셈이므로, 거기에는 가미 가 호토케의 일종이라는 관념이 내포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본지수적설의 형성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서 호토케 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호토케에게 꽃을 바친 다”, “호토케를 예배한다”, “호토케를 그린다”, “호토케를 받는다”, “호토케에 게 말한다” 등에서처럼 호토케를 ‘불상’이나 ‘불도’(佛圖)의 뜻으로 사용한 용 례다. 다른 하나는 “호토케를 마음에 담는다”, “호토케에게 기도한다”, “호토 케에게 이별의 인사를 한다” 등에서처럼 호토케를 부처(佛)의 의미로 사용한 용례인데, 이는 가미의 용법과 거의 구별이 어렵다. 실제로 ‘가미호토케’라든 가 ‘호토케가미’라는 표현도 많이 나온다.86 호토케가 가미의 일종이든 역으 로 가미가 호토케의 일종이든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로 관념되었던 것이다. 
둘째, 그런 만큼 가미와 마찬가지로 호토케 또한 애니미즘적 속성을 지 녔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호토케의 애니미즘적 속성은 헤이안 시대 진언밀교의 ‘즉신성불론’(卽身成佛論) 및 천태밀교의 ‘천태본각론’(天台
86 大野晉 , 『一語の辞典: 神』, 24~28, 42쪽.
本覺論)과 ‘초목국토성불론’(草木國土成佛論)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밀교는 궁극 적 실재를 감각적 존재로 이해했다. 따라서 우리의 신체, 언어, 사유에 의한 행위의 순수화를 통해 궁극적 실재와 일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통상 불 교에서는 삼겁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수행을 거듭해야만 성불할 수 있다 고 말한다. 이에 반해 진언종의 창시자 구카이(空海)는 신(身), 구(口), 의(意) 라는 삼밀의 종교적 실천에 의해 “몸 그대로 성불한다”는 뜻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구카이와 함께 즉신성불을 주장한 천태종의 창시자 사이초(最澄)는 “호
토케와 범부가 하나”(佛凡一體)라는 사상에 입각한 천태본각론을 내세웠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으면 십만 법계의 제불과 일체의 보살도 모두 내 몸 안 에 있다. 내 몸을 떠나 그 바깥에서 별개의 부처를 추구하는 것은 내 몸이 곧 진여(眞如)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나아가 “초목, 기와, 조약돌, 산하, 대지, 대해, 허공 등 모두가 진여이므로 부처 아닌 것이 없다”고 하여 이른 바 “초목과 국토가 모두 성불한다”(草木國土悉皆成佛)는 사상이 형성되었다. 이런 초목국토성불 사상은 중국 천태종의 성불관에는 보이지 않으며, 오히 려 초목도 말을 한다는 신도의 애니미즘적 자연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
작된다.87 
이상에서 살펴본 가미와 호토케의 개념사는 기계에 대한 일본인들의 TH적 친화성을 신도 및 불교의 관점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이 글의 의도와 관련하여 세 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첫째, 가미와 호토케 개념은 애니 미즘적 속성을 공유한다. 둘째, 가미와 호토케는 구별되기는 하지만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 1859년 일본에 온 헵번(J. Hepburn, 1815~1911)이 『화영· 영 화어림집성』(和英 · 英和語林集成. 1886년 제3판)에서 “God: 신도에서는 가미(神), 불교에서는 호토케”라고 적었던 것도 바로 동전의 양면 같은 양자의 관계에 
87  源了圓 , 「日本における「神」観念の比較文化論的考察」, 30~31쪽. 우메하라 다케시도 사이초의 천태본각 론과 산천초목성불론에 대해 조몬시대 이래 애니미즘적 신도신앙이 일본 불교를 애니미즘화했다고 해석한다. 梅原猛, 『〈森の思想〉が人類を救う』, 82~84쪽.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88 
끝으로, 무엇보다 가미와 호토케 개념은 인간과 신의 경계가 상호가역
적이며 삼투압적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신도에서는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고 설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모두 호토케가 된다고 여긴 다. 그래서 흔히 사자를 호토케라고 부른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사람이 가 미나 호토케가 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민속학의 관점에 의하면, 사자(死者)의 영은 유족들의 공양을 받음으로써 서서히 날뛰는 성격 을 상실하고 이윽고 조령(祖靈)이 되거나 마침내 가미가 되어 사람들을 수호 한다고 믿는다. 가미나 호토케가 되는 것은 사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 행을 쌓은 사람이나 신령이 빙의한 사람을 일본에서는 ‘생신’(生神, 이키가미) 이라든가 ‘생불’(生佛, 이키보토케)이라고 부르면서 숭경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본에서는 천리교(天理敎) 교조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나 금광교 (金光敎) 교조 아카자와 분지(赤沢文治)처럼 신이 빙의한 샤먼이 생신으로 존 숭되어 신도계 및 불교계 신종교 교단의 교조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생신이나 생불은 사자(死者)가 호토케로 변신하듯이 생자(生者)가 가미나 호 토케가 된 경우다. 이는 신불과 사람이 본래 연쇄되어 있고 특정 조건이 충 족되면 사람이 쉽게 신불로 이행하며, 역으로 신불도 사람으로 화신(빙의)할 수 있다는 관념을 잘 보여준다.89
2) 유희하는 가미와 호토케 혹은 가미와 호토케를 유희하기 재클렌(A. Jackelén)에 따르면 서구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호모 리투르기쿠스’
(Homo liturgicus, 제의적 인간)가 아니라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다. 그런데 이 호모 파베르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적 인간)에 의해 완성 되지 않는 한, 아직 비극적 존재다.  이에 비해 마쓰리(祭)의 제국 일본의 이 상적 인간상은 아마도 ‘호모 리투르기쿠스’와 ‘호모 루덴스’가 만나는 접점 
88 大野晉 , 『一語の辞典: 神』, 84~85쪽.
89 佐 々木宏幹, 『神と仏と日本人』, 5~7쪽.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서구인들이 윤리적 유일신관에 입각하여 절대적 으로 선한 신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신정론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악과 고통 의 문제에 대처해왔다고 한다면, 에도(江戸)시대에 대지진으로 무너진 폐허 의 도시에서 유희적인 나마즈에(鯰繪)91를 만들어 판매하고 소비했던 일본 인들은 애니미즘적 신불과 함께 즐기는 놀이에 참여하는 쪽을 더 선호하는 듯싶다. 
일본의 로봇문화가 이런 ‘호모 루덴스’로서의 일본인을 보여주는 장면 은 자못 흥미롭다. 일본에서는 로봇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미국인들의 일 반적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대체로 인간과 로봇 이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인간형 로봇의 인기 가 매우 높은데, 이는 직접적으로 데즈카 오사무92의 만화 『철완 아톰』으로 부터 받은 영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문화적 배경으로 역시 신불-애니 미즘의 세계관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게라시는 신도식 복장을 한 로봇 사제가 의식을 거행하는 요코하마의 사례를 들면서, 로봇에게 성성을 부여하는 일본인의 경향이 신도와 불교적 관념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영적 로봇’(spiritual robot)이라고 부른다.93 일본인들은 로봇들이 인간의 일거리를 빼앗는다거나 창조자 인간을 전복시킬지 모른다는 테크놀 로지적 종말론주의(technological armageddonism)에 대한 두려움 없이 로봇공학 의 미래를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94 심지어 로봇들이 “지성적이고 비이기 적인 성자가 될 수 있다” 거나 혹은 “당연히 로봇도 영혼을 가진다”96고 여기기까지 한다.

91 에 도시대 일본인들은 땅 밑의 거대한 메기(나마즈)가 지진을 일으킨다고 여겼다. 나마즈에와 일본인 의 유희성에 관해서는 박규태, 「가시마신앙과 신사: 무신에서 지진의 수호신으로」, 『종교문화비평』 
5, 2004, 270~277쪽 참조.
92 데 즈카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TH적 문제의식의 선구적 모티브들을 많이 보여준다.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소년 로봇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철완 아톰> 외에도, <불새>(1954~1988, 총 17
편)는 슈퍼컴퓨터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 지배 및 인류 멸망이라는 종말론적인 특이점 모티브라든가 복제동물과 복제인간의 모티브 또는 불사(不死)의 모티브 등 현저한 TH적 모티브들을 보여주는 장 면들로 가득 차 있다.
93 Robert M. Geraci, “Spiritual robots,” p.237.
94 Robert M. Geraci, “Spiritual robots,” pp.239~240. 
와카야마현 히다카가와정(日高川町) 소재 니우(丹生)신사에서는 매년 10
월 10일경에 ‘웃음의 마쓰리’(笑い祭)를 거행한다. 이때 어릿광대로 분장한 ‘스즈후리’(鈴振り)가 방울을 울리면서 “웃어라, 웃어라” 하고 외치면서 가마 행렬을 선도한다. 그런데 2008년부터 이 스즈후리 역에 웃음로봇이 등장하 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니우신사 근방은 전통적인 인형극인 분라쿠(文楽)로 유명한 지역인 만큼 분라쿠 인형의 몸짓을 모델로 삼아 제작된 이 로봇은 일본인의 유희정신과 신도의 결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한편 도요타의 트럼펫 로봇이라든가 바이올린 로봇, 세계 최초의 2족 보행 로봇인 혼다의 아시모(Asimo), 소니의 엔터테인먼트 로봇 크리오(Qrio) 및 세계 최초의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 미쓰비시의 가정용 로봇 와카마 루(Wakamaru), 산업종합기술연구소(AIST)의 여성형 로봇 미임(Miim), 소프트 뱅크의 가정용 로봇 페퍼(Pepper) 등 유희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로봇들이 특히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다. 일본 가요에 맞춰 춤추는 크리오라든가 노래 도 부르고 패션쇼도 하는 미임, 그리고 2015년 하우스텐보스에 개장된 세 계 최초의 로봇호텔인 ‘헨나 호텔’에서 모든 서비스를 담당하는 로봇들은 일본인에게 참된 ‘로봇 퍼슨’(robot person)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하다. 인간형 로봇에 대한 이와 같은 일본인의 열광적인 관심과 더불어 일본사회 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일본 각지에서는 특히 1990년대 후반의 제2차 로봇 붐 이래 정부와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지 원을 받는 다양한 로봇 프로젝트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는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메카물 <신세기 에반 게리온>을 필두로 하여 제2차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났다. 일본의 로봇 붐과 애니메이션 붐의 시기가 거의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로봇에 대한 일본인의 상상력은 주로 애니메이션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아 배양 되어왔기 때문이다. 제2차 애니메이션 붐을 전후한 흐름과 관련하여 소머
(E. Somer)는 <철완 아톰>(1963), <건담>(1979), <아키라>(1988), <패트레이버> 
(1989),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공각기동대>(1995), <이노센스>(2004) 등 의 로봇 메카물을 중심으로 ‘인간의 로봇화’, ‘로봇의 인간화’, ‘로봇을 통한 인간의 인간화’라는 세 범주를 제시하면서 그것들의 공통점으로 인간과 로 봇의 애매한 경계 감각을 들고 있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경계가 고정되어버린 곳에서 막을 내리며, 불투명
하게 열려 있는 ‘버려진’ 경계의 틈새에서 꽃피기 마련인 것이 유희일지도 모른다. 일본인의 유희정신은 버려진 인형이라든가 바늘, 가위, 인쇄 판목 등의 용도 폐기된 물건들을 공양하여 성화하는 불교 승려들의 관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 쓸모없는 사물들도 인간과 생명을 공유하며, 따라서 그 사물들에 대한 공양이 우주적 붓다와의 평화로운 합일을 촉진시킬 것이라 고 여기기 때문이다.98
불교와 테크놀로지의 통합을 지향하는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인 상적인 방식으로 현대 로봇공학에 대한 불교적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1970 년에 <자재(自在)연구소>를 설립하여 로봇산업에 있어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해 불교적 원리를 활용하고자 했다. 가령 이 연구소의 멤버들은 불교 경 전을 암송하거나 명상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로봇을 디자인하거나 창안해
냈다. 마사히로는 『로봇 안의 불성』(영문판)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바위, 나무, 강, 산, 개와 곰, 곤충과 박테리아 안에도 불성이 있다. 또한 나와 내 동료들 이 만드는 기계와 로봇 안에도 불성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불성, 즉 ‘호토케의 본성’(buddha-nature)은 애니미즘적 가미와 동일한 이미지 로 묘사되고 있다. 기계와 로봇에도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한 것은 “지각이 있는 것과 지각이 없는 것” 안에 현존하는 것이 불성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 이 불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마사히로에게 불성은 실로 “모든 것을 작동케 하는 원리 혹은 법칙”과 다름 없다.  이처럼 로봇의 불 성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로 이해하는 마사히로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인간은 붓다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고 붓다에 의해 의지를 수여받았다. 그리하 여 인간은 그 의지를 붓다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진실로 우 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붓다의 마음과 일치한다. 제어하는 것과 제어 받는 것은 모두 불성의 현현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기계를 조작한다고 생각해서
는 안 된다. 사실은 불성이 불성을 조작하는 것이다.   
마사히로는 “불성이 불성을 조작하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상호호혜 성’(reciprocality)이라고 부른다. 연기설이나 화엄사상에서 말하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사사무애설(事事無碍說)을 떠올리게 하는 이 상호호혜성은 비단 불 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인간과 기계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전체적인 인과 적 상호연관성과 관련된 이런 감각은 신불-애니미즘의 중핵적인 스피리추 얼리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유희하는 가미와 호토케 혹은 가미와 호토케를 유희하는 일본인의 스피리추얼리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내장 까지 서로 얽혀 있는 그 스피리추얼리티는 유희가 또 다른 유희를 낳는 풍 경 속에서 태어나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스 스로를 계몽주의적 휴머니즘 전통의 일부로 간주하면서도 TH가 스피리추 얼리티를 배제해야 한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가령 제임스 휴즈는 TH의 기 획이 여러 종교의 종말론· 신정론· 구원론과 양립 가능하며, 거기서 새로운 
TH적 스피리추얼리티, 즉 ‘트랜스-스피리추얼리티’(trans-spirituality)가 탄생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의 경우 그런 트랜스-스피리추얼리티는 신불애니미즘과 테크놀로지의 양립을 통해 배태되어온 것이다. 

5. 나오는 말: 하이브리드와 모노노아와레

TH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라는 양날의 칼을 내포하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엘론 머스크(Elon Musk) 등은 TH의 위험성을 강한 어조로 경고한 다. 그렇다면 유희적이고 관계론적인 신불의 애니미즘은 이런 위험성으로 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 물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하이브리드’와 ‘모노노아와레’다.  
TH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히 죽지 않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포스트휴먼을 창조하여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데에 있다. 이 포스트 휴먼을 일본의 맥락에서 바꾸어 말하자면 신인(神人, god-man) 혹은 가미나 호토케와 일정 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앞에서 이런 가미와 호토케가 일본의 TH적 테크놀로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지를 네오-애니미즘으로부터 테크노-애니미즘을 거쳐 신불-애니미즘에 이르는 회로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때의 애니미즘은 모두 관계론적 인식론 뿐만 아니라 혼성성, 즉 하이브리드의 출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타일러류의 애니미즘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가령 일본종교사의 가미와 호토케의 특이한 융합은 신불이라는 하이브 리드를 낳았는데, 실은 가미와 호토케 자체가 원래 일종의 하이브리드였다 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가미와 호토케는 인간도 아니고 비인간도 아니며, 혹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비인간이기도 한 것, 인간 비슷한 어떤 존 재이기 때문이다. 신불-애니미즘은 인간과 자연이 가미나 호토케 혹은 신 불이라는 하이브리드와 접합되는 풍경을 연출한다. 거기서는 인간도 하나 의 하이브리드가 된다. 나아가 멘젤(P. Menzel)과 달뤼시오(F. D’Aluisio)는 초 지성을 가진 로봇과 인간이 합쳐진 하이브리드를 ‘로보 사피엔스’라고 이름 붙였다.102 마찬가지로 전술한 테크노-애니미즘이라든가 테크노-종교 혹은 
102  Peter Menzel & Faith D’Aluisio, Robo Sapiens 참조.

트랜스-스피리추얼리티는 인간의 마음이 기계와 접목된 곳에서 생겨난 하 이브리드를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호른보르크(A. Hornborg)에 따르면 네오-애니미즘은 “모든 존재는 살아 있는 주체들로 지각, 소통, 그리고 행위주체(agency)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대안적 인식을 제시한다.  또한 젠슨과 블록은 일본의 테크노-애 니미즘적 혼성성에서 엿볼 수 있는 미학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에 주목할 것 을 제안한다.104 그뿐만 아니라 앨리슨은 현대일본의 유희상품의 중심에 로 봇 등의 메카물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그것을 ‘미학적 테크노-애니미즘’
(aesthetic techno-animism)이라고 부른다.105 이런 관점들은 로봇이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 하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그런 가능성은 노리나가가 “사물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고 해석한 모노 노아와레의 미학을 연상시킨다. 흔히 가장 일본적인 미의식이라고 일컬어 지는 모노노아와레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내재된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삼투압적으로 교섭하는 ‘관계론적 공감의 능력’과 ‘감성적 인식론’에 기초 하고 있다.106 이와 관련하여 이케가미 에이코(池上英子)는 『미와 예절의 유 대』107에서 모노노아와레적 미야비(雅)의 미의식으로 충만했던 고대 궁정의 영향으로 중세에 이르러 미적 의례가 정치생활로 고양되었고, 렌가(連歌), 다도, 꽃꽂이, 조루리, 정원, 하이쿠 등의 다양한 ‘에티켓’ 영역에서 일상생 활 속에 미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결사 네트워크가 널리 확산되면서 ‘미학적 일본’(aesthetic Japan)이라는 관념이 형성되었음을, 그리 고 그것이 근대 이래 ‘일본적 미’(Japanese the beautiful)라는 이데올로기로 고 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규명해냈다. 
마음은 우주를 채우기 위해 성장한다. 그런 마음이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어설 때 마음은 바로 신이 된다. 신은 하나의 세계 영혼 또는 세계 영혼들의 집합체 이고 인간은 이런 신의 현재적 발전 상태가 드러나는 현장이다. 신이 성장하면 인간도 성장한다. 한편 인공지능은 모든 사물에 마음을 장착하는 과정, 또는 마 음이 모든 사물에 스며드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인공 마음’ 이라는 연결끈을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연결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모든 존재하는 사물에 남김없이 마음이 스며드는 것을 지향할 것이 다. 거기서 마음은 더 이상 인간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신
적 마음일 것이다.108   
다소 시적인 위 인용문에서의 ‘신’을 가미와 호토케로 대체한다면, 그것 은 기계에까지 확장된 하이브리드, 즉 미학적 일본에 있어 신불의 모노노아 와레를 대변하는 문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적 미’라 는 이데올로기가 심화되면서 내셔널리스트들에 의해 이용되었다고 말하는 이케가미의 지적은 모노노아와레의 미학을 체계화한 노리나가 국학이 오늘 날까지도 일본 내셔널리즘의 핵심부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 을 일깨워준다. 거기에는 신불-애니미즘의 정치성, 애니미즘과 국가신도의 관계, 신도 내셔널리즘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TH와 일본 종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글이 미처 다루지 못한 이런 문제들 은 차후의 과제로 남기고, 여기서는 다만 내셔널리즘이 하이브리드라는 이 름하에 희석되거나 모노노아와레가 일본이라는 경계 안에서만 통용되는 한, TH적 일본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부연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108  이 창익, 「인간이 된 기계와 기계가 된 신」, 241~242쪽.
 
‘신불(神佛) 애니미즘’과 트랜스휴머니즘: 가미(神)와 호토케(佛)의 유희 | 박규태 박규태, 『포스트-옴 시대 일본사회의 향방과 ‘스피리추얼리티’: 옴사건· 일본교· 네오-내셔널리즘』, 한양대학교출판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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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과 인간향상의 생명정치학 | 신상규

투고일자: 2017. 6. 12 | 심사완료일자: 2017. 6. 26 | 게재확정일자: 2017. 8. 8

인간향상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현재 인간향상 논쟁의 중심 전선은 트랜스휴머니스 트와 생명보수주의자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논쟁의 초점은 인간향상을 금지할 어떤 원칙적 이유 가 있느냐의 문제다. 이 은 논쟁의 초점을 바꾸고 생명정치적 요소들을 더욱 진지하게 고려할 필 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향상 논쟁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향상기술의 추구나 금지보다 사회 적 정의와 인간적 가치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향상기술의 발전과 적용을 어떻게 민주적인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이 은 인간향상 논쟁이 자유주의적 트랜스휴 머니스트와 기술진보주의자 사이의 논쟁으로 재설정될 필요가 있으며, 그 결과 사회적 정의나 불 평등의 문제가 좀 더 적절히 고려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기술진보주의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자율성 개념의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고 이에 입각하여 자율성과 사회적 공정성의 관계를 재평가한다. 주제어: 트랜스휴머니즘, 생명정치학, 자율성, 사회적 정의 

‘신불(神佛) 애니미즘’과 트랜스휴머니즘: 가미(神)와 호토케(佛)의 유희 | 박규태
투고일자: 2017. 6. 15 | 심사완료일자: 2017. 6. 28 | 게재확정일자: 2017. 8. 8

이 의 목적은 트랜스휴머니즘의 다양한 유형 가운데 특히 ‘종교적 트랜스휴머니즘’과 관련하여 트랜스휴머니즘과 종교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흔히 애미니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 신도와 불 교 및 각각의 가미(神)와 호토케(佛) 관념이 트랜스휴머니즘적인 일본 테크놀로지 문화의 중요한 밑그림이라는 점을 규명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이 은 트랜스휴머니즘과 종교의 양립 가능성 을 주장하는 다양한 담론을 간략히 계보화한 후, 네오-애니미즘에서 테크노-애니미즘에 이르는 사 유의 흐름을 일본의 사례에 적용시켜 그것을 ‘신불-애니미즘’이라 명명한다. 이어서 그러한 신불애니미즘과 관련하여 가미와 호토케의 개념사를 살펴본 후 유희성, 트랜스-스피리추얼리티, 하이 브리드, 모노노아와레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종교와 테크놀로지적 일본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 자 한다. 주제어: 트랜스휴머니즘, 종교, 네오-애니미즘, 테크노-애니미즘, 신불-애니미즘, 가미, 호토케 일본 SF소설 속 ‘포스트휴먼’적 상상력의 현재 | 신하경
투고일자: 2017. 6. 26 | 심사완료일자: 2017. 7. 4 | 게재확정일자: 2017. 8. 8
현재 일본의 SF소설은 정보통신기술, 신경과학, 인지과학, 컴퓨터-신경 네트워킹, 유전공학 등 제 반 과학의 발달을 소설 세계의 설정으로 도입하면서, 그러한 과학기술들이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 을 예측하고 재현한다. 그 결과로 인간의 ‘자유’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지’란 무엇인 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감정’이란 무엇인가 등의 문제가 제기되며, 이러한 문제제기들이 ‘포스트 휴먼’적 상상력을 구성하고 있다. ‘포스트휴먼’의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인 것이며, 그에 대한 탐구의 과정은 과학기술의 개별적 속성에 따라 ‘기술적’인 특성을 가진다.
구체적으로, 이토 케이카쿠는 『학살기관』과 『하모니』를 통해 주로 정보통신기술과 뇌과학의 
발달이 야기하는 포스트휴먼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정보통신기술은 ‘예측 가능한 인간’이라는 인간 관을 바탕으로 구성되며, 따라서 인간 개개인의 독자적 개성은 부정되고, 예측 가능한 사고와 행동
324   일본비평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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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humanism and the Biopolitics of Human Enhancement | SHIN Sangkyu Several criticisms have been raised against human enhancement. A central dividing line in current human enhancement debate has been drawn between transhumanists and bioconservatives. The main focus of the debate has been whether there is any principled reason to ban human enhancement. In this paper, I claim that we need to change the focus of debate by considering biopolitical factors more seriously. The more important question in human enhancement debate should be how can we regulate and control developments and applications of human enhancement technologies in a democratic way for the purpose of promoting social equality and human values, rather than the current focus on whether we should pursue or ban enhancement technologies. Thus, I propose that human enhancement debate needs to be reconfigured between libertarian transhumanists and techno-progressives, so that the problems of social justice and inequality get their more deserving considerations. And by taking the side of techno-progressives, I will discern two senses within the concept of autonomy and reevaluate the relation between autonomy and social justice. t,FZXPSETtranshumanism, biopolitics, autonomy, social justice
“Shinbutsu-animism” and Transhumanism: The Game of Kami and Hotoke  
| PARK Kyu Tae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closely examine how had the Japanese concepts of Kami(神) and Hotoke(佛), which have originated from Shinto and Buddhism respectively and are often said to be animistic, influenced greatly on the culture of Japanese technology. Thus, I pay special attention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ranshumanism and religion, which are deeply associated with “religious transhumanism” among the various types of transhumanism. In so doing, I will present the notion of “shinbutsu(神佛)-animism” by applying the stream of thinking from neo-animism to techno-animism to the case of technological Japan after taking into careful considerations for diverse discourses related to the compatibility of transhumanism and religion. Furthermore, those concepts of Kami and Hotoke will be analyzed from the perspective of “shinbutsu-animism.” Finally, I will reconsider how technological Japan is related to religion by focusing on several keywords such as game-mind, trans-spirituality, hybrid, and mono-no-aware. 
t,FZXPSETtranshumanism, religion, neo-animism, techno-animism, shinbutsu-animism, kami, hotoke
Posthuman Imagination in Japanese Science Fiction | SHIN Ha-kyoung 
Science fictions in Japan introduce the development of various sciences, such as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neuroscience, cognitive science, computer-neural networking, 
328   일본비평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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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옴시대 일본 사회의 향방과 스피리추얼리티 - 옴 사건 일본교 네오-네셔널리즘 
 | 한양학술총서 1  
박규태한양대학교출판부2015-08-25


기본정보
520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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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제1장 현대 일본 사회의 종교 지형 : 종교붐·‘정신세계·’ 신영성운동·신신종교
제2장 [옴 진리교]사건과 ‘내 안의 옴 진리교’
제3장 ‘옴 문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IQ84』
제4장 프레·스피리추얼리티 : 일본적 영성
제5장 스피리추얼리티란 무엇인가
제6장 영성적 지식인과 스피리추얼리티
제7장 스피리추얼리티 담론과 종교 담론
제8장 대중문화와 스피리추얼리티
제9장 일본교와 스피리추얼리티 : 모든 일본인은 일본교도이다?!
제10장 네오·내셔널리즘과 신신종교 : 보수 우경화 현상의 종교적 밑그림
제11장 [행복의 과학]과 네오?내셔널리즘
제12장 희망의 스피리추얼리티 : 종교·탈원전·공공성

맺음말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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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규태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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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일본 재발견?: 일본인의 성지를 걷다』, 『일본정신분석』(2018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및 2019 종교문화비평학회 학술상 수상작), 『일본 신사(神社)의 역사와 신앙』(2018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 『포스트?-?옴 시대 일본 사회의 향방과 ‘스피리추얼리티’?: 옴 사건·일본교·네오?-?내셔널리즘』(2016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일본 정신의 풍경』, 『상대와 절대로서의 일본』,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노케히메까지』, 『일본의 신사』,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일본』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 『일본문화사』, 『국화와 칼』, 『황금가지』, 『세계종교사상사 3』, 『일본 신도사』, 『신도, 일본 태생의 종교 시스템』, 『현대 일본 종교문화의 이해』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현대 일본의 순례 문화>,<일본 재발견>,<일본정신분석> … 총 43종 (모두보기)

2021/05/31

도교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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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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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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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시
노자(논란 있음)
성도
시작 시기
기원전 6세기(논란 있음)

1. 개요2. 역사
2.1. 도교의 기원
2.1.1오두미도(五斗米道) 이전
2.1.1.1. 원시 종교2.1.1.2. 신선방술(神仙方術)
2.1.2. 도가 사상2.1.3. 무축도(巫祝道)와 황로도(黃老道)
2.2오두미도(五斗米道)와 태평도(太平道)2.3. 도교의 변천사
2.3.1위진남북조시대2.3.2. 수당 시대2.3.3. 도교의 부흥과 전진도의 등장2.3.4. 근세 도교의 쇠퇴기와 근현대의 도교
3. 도교의 핵심 사상
3.1. 도가와의 차이?3.2. 민간 도교의 모습
4. 도장(道藏)5. 분파6. 한국의 도교7. 일본의 도교8. 기타9. 도교의 신10. 매체11. 같이보기

1. 개요[편집]

 / Taoism

도교(道敎)는 중국의 민속 종교다. 중국 본토는 물론 한국일본동남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도가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학자들 간에도 견해가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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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에 있는 도관(道觀)[1] 청양궁(靑羊宮)의 모습.# 도관 외에도 묘(廟)라 하여 우리나라의 마을 입구의 서낭당[2]이나 일본의 지장보살처럼 일반인들이 간단한 참배와 기도를 올리는 시설도 있다.

종교로서의 도교는 종교로서의 유교와 함께 우리에겐 약간 생소한 개념이지만[3] 국외에서는 확실히 종교로 파악한다.

종교로서의 도교는 삼국지로 유명한 장각의 태평도(太平道)와 장릉의 오두미도(五斗米道)[4]를 시초로 하여 남북조시대에 구겸지가 지금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실제 자신들을 도교라 지칭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이며 당나라 시대에는 국가에서 장려하는 종교로서 힘이 세지기도 했다. 현대 도교는 크게 전진교(全眞敎)와 정일교(正一敎) 등이 있다.

중국 이외에도 베트남과 화교의 세가 매우 강한 지역에서는 이 종교의 사원을 볼 수 있다. 특히 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 많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상할 만큼 기세를 못 펴는 종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재래의 토착 제천신앙/신선 사상과, 이미 토착신앙과 융화를 이루던 불교에 흡수되었고, 일본에서는 음양도와 슈겐도 형성에 일부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도교 자체가 특별히 독립교단으로 출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불교와 민간신앙에는 의외로 꽤 많은 도교적 요소들이 녹아 있다.

1990년대 말~2000년도에 들어서는 도교 자체를 중국만의 민간 신앙보다는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의 자연주의 사상/토착, 민간신앙과 문화의 교류 측면으로 연구하는 관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문화교류사의 발전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5]

2. 역사[편집]

2.1. 도교의 기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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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관 내부의 모습.#
도교의 시작은 간단하지 않다. 흔히 노자(태상노군)가 창시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고, 기본적으로 원래 구성되어 있던 샤머니즘의 토양 위에 도가 사상의 몇몇 내용이 덧붙여져 도교가 발생하고 이후 도가 사상을 지속적으로 흡수해 발전하고, 추가로 유교와 불교의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형태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보통 도교의 시작을 오두미도(五斗米道)로 보므로, 오두미도 이전과 오두미도까지를 도교의 기원으로 설명하고 오두미도 이후는 도교의 변천사로 설명한다.

2.1.1. 오두미도(五斗米道) 이전[편집]

도교의 기원은 크게 중국의 원시 토착 종교와 신선방술(神仙方術), 도가사상의 세 가지로 나뉜다.
2.1.1.1. 원시 종교[편집]
고대의 사람들은 자연 현상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상상력을 이용해 나름대로 자연 현상을 설명해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애니미즘샤머니즘토테미즘과 같은 원시 종교들이 생겨났다. 이 중 도교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원시 종교 형태는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다.

고대 사람들은 자연 현상의 원인을 '자연 그 자체에 깃든 신비한 힘'으로 생각하고, 자연에는 정령 혹은 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했으며 영력이 강한 사람이 자연의 이런 신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사람들은 팔신제(八神祭) 혹은 강산제(江山祭) 등의 숭배 의식을 치르고 도신(跳神; 굿), 점복(占卜), 금기(禁忌), 조험(兆驗; 재앙이나 큰 사건의 징조를 알아채는 것), 참위(讖緯; 예언), 부주(符呪; 부적과 주문)와 같은 무속문화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원시 종교의 무속 문화는 민간신앙에 머무르다가 오두미도의 성립으로 도교에 흡수되어 부록파(符籙派)를 형성했다. 특히 원시 종교에서 비롯된 도교의 부록파의 내용은 민간에서 크게 유행하여 민간도교의 중심 흐름을 이루기도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도교 부록파의 우리나라 판 베스트셀러(?)는 정감록이다.
2.1.1.2. 신선방술(神仙方術)[편집]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이미 중국에는 신선방술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신선방술을 연구하는 것을 방선도(方仙道)라고 하고 방선도를 익히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방사(方士)라고 불렀다.

이들의 목표는 불로장생을 위해 신선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선도의 목표는 도교가 형성될 때 도교의 핵심 내용으로 자리잡았다. 또 이런 본능에 충실한(?) 목표 덕분에 도교가 민간에서 크게 유행할 수 있었고 상류층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목표가 오래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늙지도 않으면서 편안하게 오래 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듯. 어쩌면 민간의 백성들에게는 오래사는 것만큼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방선도의 방사들은 크게 두 계파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심선파(尋仙派)와 수선파(修仙派)다.

심선파는 "심산유곡에 숨어있는 신선을 찾아가서 신선이 되게 해달라고 하고 영약도 전수받자!"는 파벌로, 삼신산 같은 신선들이 모여사는 가상의 장소를 상상해낸 것도그렇게 진시황을 포함한 여러 제왕들을 낚아서 울궈먹은 것도 이들이며 이들은 태산화산형산항산숭산의 오악(五岳)과 같은 명승지와 심산유곡에는 신선들이 살고 있어 이들을 찾아 불로장생약과 신선술을 전수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수선파는 명산대처에 은거한 뒤 스스로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방파이다. 이들은 연구를 통해 도교의 신선이론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심산유곡에 들어가 각종 광물과 약초 등을 이용해 몸을 깨끗이 하여 신선으로 만들어주는 불로장생약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의 신선이 되는 수련법이나 불로장생약 제조법은 이후 중의학(中醫學)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들의 연구는 이후에 여러 사상적 보완을 거쳐 외단을 제조하거나 내단을 수련하는 방법에 영향을 끼쳐 도교의 단정파(丹鼎派)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심선파와 견주면 여러모로 생산적인 편이었지만, 시대상의 한계를 이기지 못했는지 수은을 불로불사의 약으로 여기고 장기간 복용하다가 단명하기도 했다.

신선방술을 연구하는 방선도의 방사들은 이후 장생불로(長生不老), 육신성선(肉身成仙;육신을 신선으로 만든다)와 같은 도교적 생명관의 기초를 마련하고 도교의 수련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외단(外丹)과 내단(內丹)' 개념의 형성[6]과 발전에 결정적인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 당시의 선술은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이나, 마왕퇴한묘의 백서(비단에 적힌 글)에 그려진 도인법 그림 등으로 그 흔적을 알 수 있다.

여담으로 이런 방선도 측의 이론을 보면 중국 본토보다 삼신산, 봉래산 등 한반도와 만주, 발해만 일대를 포함한 동북방 일대가 성지로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방선가들의 주 출신/활동지역이 이쪽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의 방선도는 동북방 지역 사머니즘과의 유사성이 짙으며, <태평경>같은 경우 <열선전>에 따르면 조사(祖師)인 백화(淸和)를 요동인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후계자인 간길(干吉)[7], 궁숭(富崇)등도 이민족 문화가 강한 발해만 연안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행적으로도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대충 감잡았겠지만, 당시 방선가들은 지금으로 치면 의사 겸 무당들이었다.[8] 한마디로 '위치닥터(Witch doctor, 주의呪醫)'. 이때에는 신선이란 존재도 방사의 선행과 기도에 응감해 선약을 전해주는 신적인 성격이 짙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신종교 중 특히 증산계가 종교의 성격적/교리/교단적인 측면에서 유사성이 강해 종교학계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2.1.2. 도가 사상[편집]

도가 사상은 도교의 교리와도 연결되는 도교의 핵심 사상이며, 도교의 발전과 함께 도교의 개념과 사상은 계속해서 신선의 수련법에 영향을 끼쳤다. 애초에 도교가 도교라고 불리는 이유도, 도교가 도가 사상의 세계관이라든가 핵심 사상을 받아들이고 함께 발전해나갔기 때문이다.(물론 도교의 발전 = 도가 사상의 발전이라는 공식은 약간 무리가 있다.) 이 덕분인지, 노자(老子)는 도교의 최고 3신인 도덕천존 혹은 영보천존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가끔 원시천존 그 자체로도 여겨진다. 또 장자열자문자항상자 등 도가 철학자들은 도교의 신선 혹은 조사(祖師)로 받들어진다.[9]
도가 사상의 핵심 개념인 (道)는 일단 도교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녔으며, 도를 얻으면, 즉 득도하면 신선이 된다. 또 도교의 이론 체계와 신앙은 도가 사상을 통해서 정립되었다.

2.1.3. 무축도(巫祝道)와 황로도(黃老道)[편집]

무축도는 원시 종교의 무속 문화가 체계적으로 정립된 것이다.
황로도는 황로학파와 방선도가 결합한 것인데, 황로학파란 당시 각 학파의 여러 인물들이 모여 자유롭게 학문을 토론하던 직하학궁稷下學宮에서 생겨난 학파로, 황제(黃帝)의 황과 노자(老子)의 노를 딴 것이다. 도가의 사상에 유가와 묵가의 적극적인 사회, 정치참여 정신을 흡수하여 도가의 소극적인 은퇴사상을 극복한 학파였다. 황로학파는 도가 사상의 원칙에 따른 정치술을 주장하였으나 한 무제 때 유학 위주 정치체제에 밀려 정치적인 영향력을 상실하고 방선도와 영합하게 되어 노자와 황제를 신격화하는 종교인 황로도가 되었다.
그리고, 동한 순제 때에 오두미도의 창시자인 장도릉(張道陵)이 오두미도(=천사도)를 창시하고, 영제 때 우길의 진전을 물려받은 장각이 태평도를 창시하면서 본격적으로 도교가 성립하게 되었다.

2.2. 오두미도(五斗米道)와 태평도(太平道)[편집]

도교의 시작은 보통 오두미도로 보고 도교의 창시자는 오두미도의 창시자인 장도릉으로 보는데, 태평도가 있음에도 주로 오두미도만을 도교의 근원으로 보는 이유는, 태평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의 군웅들에게 썰리고 썰려서 사라지고 결국에는 천사도(=오두미도)로 흡수되었다.

태평도는 장각이 태평경(太平經)을 얻어 창시했다. 태평경은 도덕경을 계승하여 '도를 천하의 어머니로 삼고, 도는 만물을 낳는다'는 사상과 함께 불로장생의 방술과 신선이 될 수 있는 신선술 그리고 무격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었다. 장각은 태평도를 창시하면서 태평경에 언급된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를 태현양사(太賢良師)라 칭하였으며 제자나 신도들을 받아들일 때 먼저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여 사죄하게 하였고, 부적을 내리고 주문을 외우면서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의식을 행했다. 이렇게 교화를 시작한지 십 수년 만에 수십만 명이 가담하여 조직을 종교와 군사의 합일 조직인 36방(方)으로 만들고 방마다 거수(渠帥)라는 통속자를 두었다. 그 뒤 장각은 교도들을 이끌고 반란하여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으나 10개월 만에 진압되어[10] 남아있는 사람들은 천사도(=오두미도)에 가담했다.

오두미도는 '천사도(天師道)'라고 불리웠는데, 태상노군[11]이 장도릉을 삼천법사정일진인(三天法師正一眞人)으로 봉했다고 하여 그를 장천사[12]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오두미도라고 불린 이유는 입교할 때 신도들에게 쌀 다섯 되를 받았기 때문이다.

천사도, 즉 오두미도의 교조는 노자, 주요 경전은 도덕경이며, 장도릉은 특별히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를 지어 교리를 정하였다. 노자상이주에서 장도릉은 도는 하나(一)이고 "하나의 형체가 흩어지면 기가 되고, 형체가 모이면 태상노군이 된다."라고 하여 노자를 '도道의 화신'으로 규정하였다. 또 도서(道書) 24편을 저술하여 천사도의 심오한 뜻과 교도들의 행동강령을 가르쳤다.

교구를 24개 치(治)로 나누고 제주(祭主)를 두었는데, 제주는 한 구역을 책임지는 수장으로 신도의 교화와 제사 등을 주관하는 법사(法師)의 역할을 했다. 또 그는 정실(靜室)을 설치하여 신도가 재계하고 기도하며 회개하는 장소로 삼았다.

천사도의 1대 교주 장도릉은 122세(!) 되던 해에 교의 최고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천사의 직위를 아들 장형에게 넘겨주고, 더불어 역대 천사는 그의 적손들에게 전승토록 했다. 그리고 그의 손자가 바로 그 삼국지의 장로다. 이후 천사도는 용호산을 본산으로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었지만, 중국에 공산당이 들어선 이후에는 대만으로 이주하여 거기서 명맥을 잇는다.

2.3. 도교의 변천사[편집]

천사도 이후로 도교는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했는데, 도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꾸준히 이론을 보완, 발전시켜왔고 유교와 불교의 삼교가 서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경쟁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도교의 변천사를 여기에 모두 적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도교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로 인한 도교의 변화의 흐름만을 간략하게 적도록 한다.

2.3.1. 위진남북조시대[편집]

천사도 이후 도교가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해나가는 시기다.

위촉오 삼국시대에 오나라에는 갈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태극갈선옹(太極葛仙翁)이라고 불렀다. 그는 천태산(天台山)에서의 다년간의 수련을 통해 득도한 후 상청(上淸), 삼동(三洞), 영보(靈寶) 등의 경전을 전수하였는데, 이후 증손자 갈소보가 영보파(靈寶派)를 창립하였다. 이 세 경전은 이후 여러 후인들에 의해 발전되어 도교의 중요한 맥을 이루었다.

동진 때에 있었던 도교 역사상 첫 번째 여도사이자 여학자인 위화존은 명문가 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신선술에 관심을 두게 되어 천사도에 가입했다. 위화존은 도교의 양생이론을 깊게 연구하여 삼단전(三丹田), 팔경(八景), 이십사진(二十四眞) 등 양생이론을 만들었고, 수련 경험을 글로 남겼다. 또 팔색은서, 태상보문, 태동진경, 황정, 치정제귀법등의 경전을 수집, 연구 끝에 일련의 완성된 교리와 교의를 갖추었는데, 후에 모산파[13]는 위화존의 이론을 기초로 삼고 위화존을 자신들의 시조로 받들었다. 위화존 덕분에 도교의 양생술과 여러 수련법은 의학과 함께 체계적으로 정립되었고, 각 교파의 조사들이 변형하여 다양한 양생법이 세상에 나왔다.

동진 때의 저명한 도학자인 갈홍은 연단과 의학에 정통했다. 그는 종조부 갈현의 호인 갈선옹을 따라 소선옹小仙翁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스승인 정은에게 연단비술(煉丹秘術)과 갈현의 비법을 남김없이 전수받았다. 그는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14] 나부산에 들어가 득도를 하고 연단과 저술 활동을 하였는데, 특이하게도 갈홍은 신선방술과 유가의 삼강오륜을 결합하여 충효와 인을 근간으로 삼아야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그때까지 전해오던 도교의 신선이론과 수련방술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는데 특히 연단의 이론과 방법 및 연단의 제조방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거두어 수나라당나라시기의 연단술 발전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대표 저술로 포박자가 있는데, 그의 포박자 내편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도교이론과 방술을 집대성하여 도교의 신선학이론체계를 세우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남북조 시기에는 장로가 죽고 난 후 천사도가 크고 작은 반란에 연관되어 지배층의 견제를 받자 천사도 조직은 뿔뿔이 흩어져 수많은 교들이 난립하였다. 하지만 이 때 육수정구겸지도홍경으로 대표되는 도교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중구난방이던 도교의 이론 체계를 재정비하고 도교를 다시 진작시켰다. 사상과 관념, 각종 의범을 제대로 갖추고 미신 등의 사상을 개선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 과정에서 천사도가 '북천사도(北天使道)'와 '남천사도(南天使道)'로 나누어지기도 하였다.

남북조 시기에 도교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종교로서의 의례 등이 명확히 갖추어지고 신선 이론의 체계적인 정립이 이루어지면서 서서히 마음수련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교에서 이러한 마음의 수련의 비중은 이후 점점 확대되어 전진교나 무당파에 이르러는 외단을 도외시하고 내단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육수정은 남북조 유성 시대의 저명한 도사이자 남천사도의 창립자인데, 어려서 유학을 배웠으나 도교의 장생술을 보고 속세를 등지고 도가 높은 스승을 찾아 신선이 되고자 했다. 그는 여산에서 수도하며 제자들을 거두어 포교활동을 했으며, 천사도를 진작시키기 위해 도교 경전의 목록을 삼동경서(三洞經書)로 총괄하여 정리했다. 그는 도교의 제도와 복식, 계율과 의식을 정비하고 등을 정비하고 '유불도의 삼교합일'을 주장했다. 그는 재초, 즉 몸의 정갈함을 위해 목욕과 금주를 하며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음식을 피하고 마음의 정갈함을 위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속세에 얽매이거나 불결한 생각을 하지 않는 ‘재’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초’를 중시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러한 예배, 송경, 사신의 삼법으로 마음과 행동을 정결히 하면 득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육수정 덕에 도교의 위세가 크게 넓어졌는데, 그가 개혁한 교단을 ‘남천사도’라고 부른다.
구겸지는 어렸을 때부터 천사도를 신봉하였다가 숭산에서 수도한 뒤 위나라의 수도로 가 태무제로 하여금 도교를 위나라의 국교로 삼게 하고 도교를 개혁하였다. 그는 먼저 이전에 있었던 부조리한 법도와 쌀로 세금을 받던 제도를 없애고 신도들에게 계율을 준수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수련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도교 신선의 계보를 정리[15]하였고 도교를 개혁하여 사회 각 계층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종교로 바꾸었다.[16] 이렇게 구겸지가 개혁한 교단을 '북천사도' 혹은 신천사도(新天使道)라고 한다.

도홍경은 모산종의 창시자이다. 그는 유불도 삼교의 이론에 정통하였고 불교와 도교의 수련을 모두 실천하며 불교와 도교의 융합을 도모하고, 모산에서 외단과 상청파의 양생술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도홍경은 무엇보다 양생을 위해 마음과 몸의 수련을 함께 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가 창시한 모산종이 상청파의 중심세력이기에 후일 상청파를 모산파라고도 불렀다.

그 외에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백가도이가도삼황파누관파상청파영보파 등이 주요 도파로 꼽힌다.

2.3.2. 수당 시대[편집]

이 때에는 도교가 크게 흥성하여 이론적으로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 특히 수나라 이후 당나라 초기까지 연단술, 즉 외단 제조에 대한 이론이 엄청나게 발전했고 덩달아 중국의 화학 기술 수준도 급성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발전한 외단 제조술의 결과인 단약은 수은을 주 재료로 하여 만든 극약이어서 불로장생하겠답시고 단약을 먹어댄 제왕 및 도사들은 불로장생은 커녕 정상적인 수명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도사 소현랑은 외단이 아닌 몸 안의 내단을 키워야 한다는 내단론을 주장하였다.

당나라 때의 도사 소현랑은 스스로를 청하자라고 불렀는데 태역太易과 단도丹道를 발명하여 ‘보장론(寶藏論)’이라 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영지靈芝(=영약=외단=불로장생약)를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는데 구하지 못할 수가 없다고 하자 “영지는 너의 몸 가운데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외부에서 불로장생약을 찾기보다 수련을 통하여 스스로 내단內丹을 만들 것을 주장하였다. 이로부터 도교의 내단 수련법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는 육체와 마음을 동시에 수련하는 성명쌍수性命雙修의 수련법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내단수련의 핵심이 됨과 동시에 도교의 수련법을 신체를 단련하는 연형煉形에서 정신을 단련하는 연심煉心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남북조 시대부터 수당시대까지 도교와 불교는 종교적 주도권을 얻으려 격렬한 논쟁을 벌였는데, 이는 서로에게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를 입히는 한편,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상대의 이론을 공격하고자 연구를 거듭하게 하였다. 결국 오랫동안 이어진 논쟁은 불교와 도교 양측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결과적으로 도교와 불교의 이론 및 체계를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또한 이 때의 논쟁으로 인해 불교와 도교의 사상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17]

결국 당나라 때 도교는 불교의 이론과 사상들을 대거 흡수하고 도사 소현랑의 내단도內丹道를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하였는데, 이로 인해 당나라 때는 손사막, 장만복, 이전, 오균, 두광정, 팽효, 담초 등의 뛰어난 도교 사상가들이 출현하였으며 이들에 의해 내단이 도교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부상하고 내단의 수련법이 크게 발전하였다. 더구나 노자의 이름이 이이(李耳)인 것을 들어 노자를 당나라 황족의 시조로 받들었다. 666년 당고종이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라는 존호를 올렸고, 그후 당나라 황제들이 존호를 추가하거나 바꾸다가 754년 당현종이 '대성조고상대도금궐현원천황대제(大聖祖高上大道金闕玄元天皇大帝)'라는 거창하기 그지없는 존호로 바꾸었다.

2.3.3. 도교의 부흥과 전진도의 등장[편집]

수당 시대 이후 송, 원 대에는 도교가 크게 부흥하였고 내단론이 계속해서 발전하여 도교의 주류 이론으로 완전히 자리잡아 발전을 거듭했다.

송나라 대에는 흥억불 정책으로 인해 모산파와 화산파, 천사도가 크게 흥하였고 당시의 유명한 도사 진단은 전통적인 도가 학설을 중심으로 유가와 불가의 사상을 두루 융합하여 체계적인 내단 이론을 만들었으며, 특히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도가의 문화에 유가의 사상을 흡수하였다. 또한, 남송 대에 왕중양은 전진도(全眞道)를 창시하였다.

전진도는 유불도의 삼교합일을 주장하고 '도덕경', '반야심경', '효경'을 필수 경전으로 삼았는데, 처차식과 부귀공명을 버리고 육식이나 비린 것을 먹지 않으면서 내단을 연단하여 고통스러운 유한한 세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진도는 이전의 도교에서 주장한 육신의 불사를 부정하고 단지 양신(陽神)만이 불사한다고 주장하여 부록[18]을 사용하지 않고 내단의 수련만을 중시하였다. 이후 명나라 대에 이르러 전진도는 쇠락하였다가 청나라 대에 잠깐 중흥하였다.

금나라 초 북방에서 소포진이 창시한 태일교는 부록을 중시하고 기도를 통해 병을 고치고자 했으며, 정명도는 특이하게도 도교의 정명, 불교의 대승, 유가의 충서 등 삼교의 세 가르침은 길은 다르지만 결국엔 한 곳으로 귀착된다 하여 충효를 실천하고 마음을 맑게 비우면 신과 통하지 않아도 득도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원나라 때 숭도 정책은 사라지지 않아 용호파, 각조파, 모산파의 삼산부록파[19]와 전진도, 태일교, 진대도가 일어났으며 여러 유파들이 있었으나 결국 수 많은 부록파들과 천사도를 합하여 만들어진 '정일도'와 '전진도'로 나누어 흡수되어 천하가 양대 도파로 정리되었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 내단 이론도 또한 양호한 발전을 이루었다.

명 대에는 명 태조 주원장부터 도교를 숭상하였으며, 랍탑도인 장삼봉이 무당산에 무당파를 창립하였다. 장삼봉은 전진의 도사였다가 종남산에서 내단을 만드는 비결을 얻고 무당산에서 수련하였다. 그는 청정한 마음으로 내단을 수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무武'를 강조했다. 그래서 장삼풍은 무당권법을 창안했으며 육합신권을 수련하여 내가권법(內家拳法)이라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수 많은 도교의 이론과 내단 수련법을 무술에 접목한 것이었다. 이후 무당내가권은 크게 발전하여 형의권팔괘장태극권이 만들어지고 이후 수 많은 무술과 유파가 발생하여 그 유명한 중국권법이 형성되었다카더라.

사실은 장삼봉은 시대별로 같은 이름이 여럿 나오는 불분명한 인물이며, 장삼봉과 무당산은 명나라대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에서 띄워준 케이스다. 또한 중국무술 운운은 완벽한 후대의 날조다. 소림권이 달마에게 유래했다는둥 XX 전통무술은 고구려/화랑이 익히던 호국무술이라는둥, 기원을 과거로 잡을수록 권위가 선다는 착각에서 비롯한 것. 실제 태극권은 명말 진왕정, 형의권은 명말 희제가, 팔괘장은 청나라말 동해천을 시조로 한다. 내가삼권은 근대에 탄생한만큼 각자 계보를 정확히 밝히고 있으며,[20] 무당산 쪽에서 멋대로 장삼봉 이름을 팔아 사기치는 것이다.전격 대륙의 상술 그런데 실제로 현재 중공에서는 무당산이나 소림사를 무술학원화 하여, 외화벌이에 이용하고 있다. 관광수입과 양성된 무술가들의 무술쇼로.

그러나 명나라는 공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유교를 나라의 근본 이념으로 삼는 나라였기에 비록 황족의 후원이 있기는 했으나 국가운영의 중심사상은 도교가 아닌 유교에 두고 있었고, 불교와 도교를 반반씩 중심 사상으로 잡던 당송 시대와 달리 도교의 힘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때부터 국가 중심의 관방도교는 점차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반대로 민간신앙에서는 송, 원 시기부터 점차 대두되기 시작한 민간도교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옥황상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신들이 하부에 위치하는 도교의 신화세계도 이 시기를 거치며 완성되었다.

2.3.4. 근세 도교의 쇠퇴기와 근현대의 도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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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도 같이 섬기는 도관도 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청나라는 원래 자신들이 주로 믿던 불교(특히 티베트 불교)를 숭상하고 도교를 억제하였다. 청 초에는 한인들을 달래기 위하여 정일도를 비호하고 교주를 정일진인으로 임명하여 2품으로 삼았으나, 결국에는 숭불억도 정책으로 인해 천사라는 이름이 진인으로 격하되고 품계도 2품에서 5품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포교를 금지하니 결국 도교는 쇠락하게 되었다. 다만, 그래도 도교의 성직자인 도사한테는 변발을 강요하지 않고, 기존의 상투머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특권을 부여하였다.[21]

명청 시기를 거치면서 도교는 국가 제초의례 중심의 관방도교는 완전히 사라졌다. 민간신앙적이고 주술적 기복 중심의 민간도교가 중심을 차지하고, 여기에 개인의 양생을 추구하는 수행도교 일부만이 남게 되었다.(단전 호흡기체조 등으로 유명하다)

근현대에 들어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국민당의 내전으로 도교의 역사에도 한 차례 폭풍이 불어닥친다. 대륙을 차지하고 내전에서 승리한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 이념에 기초해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문화대혁명이라는 광풍까지 일으켰는데 증언에 따르면 도교성지였던 노자 강경대(老子講經台)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도사들은 승려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수가 강제 환속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고 많은 도관과 절이 문을 닫았다. 가까스로 연명한 사람들은 타이완이나 동남아 화교 거주지역으로 도망치거나 깊은 산 속으로 아주 꼭꼭 숨어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였고, 때문에 지금도 타이완이나 화교 거주지 등 해당 지역들은 현재 이때 도망친 사람들을 통해 도교를 계승하였기에 민간 신앙이 발달하였다.

이후 공산당이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 발전/지원 정책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문화대혁명 시기 사라진 도관들을 재건하고 도피했던 도사들이 돌아오는 등 숨통이 어느 정도 트였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공산당)가 종교의 통제와 관리를 하는 나라이기에 중국의 도교는 학술적인 부분이나 양생학과 관련된 기 수련, 그리고 위에 나온 대로 중국 당국의 돈벌이를 위한 무술쇼만이 발전하였다. 이는 도교 뿐만 아니라 불교도 마찬가지로, 소림사 항목에도 나오듯 공산당원이 주지를 맡고 사원이 무술학원으로 전락해 버린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 도교의 모습은 이 분야에 무지한 서양 다큐멘터리나 무협지 등을 통해 마치 그것이 원형인 것처럼 상품화되어 퍼지고 있다.

대만/동남아로 도망친 쪽도 그다지 상황이 좋지는 않다. 그 이전 명청 시절부터 이미 원시 도교 시절의 무축적/기복신앙적 성격이 다시 대두된 민간 도교 시대다 보니 자체적인 교단/교리/경전이 있다고는 하지만.[22] 대부분 우리나라의 무당이나 무속 신앙과 섞인 불교 모습과 하등 크게 차이나지 않고,[23] 사람들의 시선도 그다지 좋지 않아 한국인들이 무당보다 스님이나 사제를 더 수준 높게 생각하는 것처럼[24] 이 지역에서도 비슷한 취급이다. 특히 동남아는 동남아시아 자체가 상좌부 불교가 발달한 지역이다 보니 도교도 화교 거주지 중심으로 퍼져있다.

3. 도교의 핵심 사상[편집]

도교의 목적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불로장생)'에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속세에서의 불로장생은 언제나 실패하였기에 인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인 선인이 되어 그것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좀 어렵지만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도교는 현세의 삶이나 생을 염두에 두지 않는 기독교이슬람 등의 종교들과는 달리 사람을 중시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한줄요약: 살아서 잘되자[25]중인귀생(重人貴生)의 생명관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하는 성명쌍수[26]의 수련 체계를 통해 역수반원[27]의 성선成仙이론을 확립하였다. 신선은 득도(得道), 도통(道通)하여 영원불멸한 도와 하나가 된 사람으로, 수련을 통해 정기신(精氣神)의 셋을 기신(氣神)의 둘로 되고 기신을 신(神) 하나가 되게 한다. 그리고 그 신이 도가 되어 결국에는 영원불멸의 도와 하나 된 상태이기 때문에 불사의 육체를 지니고 장생불사할 수 있는 것이다.

도교에서는 인간의 몸은 '소우주'이며 우주가 인간의 몸에 들어있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신들이 인간의 몸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도교에서는 태양의 신은 오른쪽 눈에, 달의 신은 왼쪽 눈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신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정결하지 않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사람의 몸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신들이 인간의 몸을 빠져나가면 사람이 죽게 된다고 한다. 특히, 어떤 신들은 사람이 먹는 음식들의 정精을 받아먹고 사람의 수명을 깎아내리려 한다. 따라서 사람은 정의 공급원인 곡기를 끊어 나쁜 신들을 잠재우고 마침내 기(氣)만을 호흡하다가 마침내는 기를 한 번 호흡하고는 내보내지 않고 그대로 몸에 담아 몸을 보함으로써 몸을 정갈히 해야 한다. 이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잡념을 지우고 무념무상에 빠져들어 마음을 정갈히 함과 동시에 내관(內觀), 즉 자신의 내부를 고요히 관찰하여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들과 우주를 보아야 하고 나아가 그 우주를 이루고 작동시키는 현묘한 질서인 도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 도를 알게 됨으로써 도道와 하나 되고 우주(宇宙)와 하나 되어 영원불멸한 우주와 같이 사람도 영원불멸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도가 현실로 드러났을 때 생겨나는 덕과 지혜를 밖으로 내보이지 않는 것인데, 자연의 삼라만상에 도가 있음에도 도의 현실화된 모습인 덕과 지혜를 내보인다는 것은 도가 도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행동[28]이요, 따라서 그것은 도를 알지 못하는 자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자와 장자가 도를 아는 것은 쉬워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도를 알고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여 물과 같아지는 경지에 이르러야(상선약수) 비로소 '득도했다'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교 성선成仙 수련 방법의 초점은 도교 초기의 천사도부터 당 초까지는 그 방법으로 도인술(道人術 : 일종의 체조 등을 통한 양생법), 선단(仙丹 : 불로장생하는 약,)[29]과 같은 '양생법'을 이용하였는데 썩어서 필멸하는 음식인 곡식이 아닌 영원불멸하는 것인 금속, 그 중에서도 정제된 수은[30]으로 만드는 외단 즉 단약을 섭취하고 곡기를 끊는 육체적인 방법을 통해 영원불멸하고 순수한 육체를 우선적으로 얻는 명命(육체)의 수련에 맞추어졌었다. 부가적으로 마음의 수련과 윤리의식 고취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양생법, 특히 선단을 이용한 불로장생술로는 신선이 되기 힘들어보였다.죽어서 승천하기는 쉬운 방법들이다.

그리하여 유교/불교와의 끊임없는 교류는 도교의 신선 수련 방법의 초점을 순수한 육체를 우선적으로 갖추는 수련 방식보다 곡기를 점차 끊어 내고 기를 호흡하고 명상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탁하고 음陰한 기운을 남김없이 털어내어 양신陽神을 이루어 도를 얻고 영원불멸한 존재가 되는 마음의 수련 방식으로 옮겨놓았다. 결국 이후 내단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으며 도사 왕중양은 신선이 되면 육체를 버리고 양신陽神 이 빠져나와 불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무튼 전진도 이후에는 아예 내단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니까 전기의 도교는 언젠가 썩는 곡식으로 만들어진 몸은 썩어서 죽게 되니까 썩지 않는 금속을 먹자!(육체수련 중심, 외단론 중심)이었던 것이고, 후기의 도교는 수련을 통해 우주와 합일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자!(심성수련 중심, 내단론 중심)으로 방향이 바뀐 것이다.

이러한 후기 도교의 경향으로 인해 민간 도교가 아닌 수련 도교에서는 여러 부적술과 제사 의식 또한 단순히 술법으로 이득을 취하기보다는 신을 만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비우고 '좌망'(坐忘 ; 앉은 채로 자신을 잊음)할 수 없을 때에 할 수 없이 몸 안에 있는 신을 바깥으로 불러 만나보고자 하는 것이요, 이름난 명산을 유람하는 것도 그 곳에 살고 있을 신을 만나 보고 가르침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3.1. 도가와의 차이?[편집]

도가와 도교는 엄밀히 따지면 전혀 별개의 개념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도가는 노자 같은 사상가에 의해 나타난 철학사상의 하나지만, 도교는 장각장릉 같은 교주에 의해 확립된 종교들을 출발점으로 본다. 도교가 종교로서 발전하면서 도가사상 등을 끌어들였지만 사상적 지향점은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가와 도교는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되는 개념도 아닐 수 있다. 우선 도가=철학, 도교=종교로 보는 관점부터가 문제가 있다. 과연 철학과 종교가 그렇게 엄밀히 구분되는 개념인가? 그것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당장의 불교만 보더라도 불교 교리를 철학이라고 말하고, 그 외의 불교 의례를 종교라고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도교 역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철학/종교의 이분법에 따라 사고하는 결과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덤으로 도교가 그리 많이 연구되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노자/장자의 사상은 애초에 서로 지향점이 다르고[31], 노/장이라는 범주를 억지로 묶어 만든 "도가 철학"의 지향점 역시 신비주의적 수양론이나 영생, 불멸에 대한 의지와는 전혀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노자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한 사람들 중에는 물론 도교 사상에 빠진 신비주의자들도 있지만, 그 이전에 법가로 흔히 분류되는 한비자도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한비자는 노자의 텍스트 내에 나타난 통치술에 대한 비유를 상당히 정확히 꿰뚫어보았으며,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통치에는 무위(無爲)의 도(道)를 따르는 술책으로 민(民)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노자 주해서를 통해 지적했다.[32][33] 즉, 노자의 사상은 외형적으로나 종교적인 사상으로 보이지, 이러한 외형적 비유를 통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 지배 체제를 제안한 엄연한 정치철학이다.

그리고 장자의 경우 일단 노자와도 다른 노선을 걷는데, 장자는 노자가 말하는 도(道)와 같은 초월적, 형이상학적 관념의 존재 자체를 거부했으며, 또한 이러한 관념에 따르는 국가나 기타 지배 체제 자체를 혐오했다. "어리석은 자(愚者)들이 꿈(夢)을 꾸면서 군왕이시어!(君乎), 종놈아!(牧乎)라고 외치는데, 정말로 고루하다!(固在)"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어리석은 꿈이라 지적한 것이 지배자-피지배자가 구분되는 국가 체제라는 것이 명백해지며, 호접지몽 등을 통해 그가 그토록 깨어나라고 강조한 꿈 역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국가 체제를 피해 도교적으로 혼자 영생을 누리거나 산 속에 은거하는 길을 택했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도교에서 말하는 "양생"이 어쩌고 하는 신비주의적 목적 역시 국가가 내세우는 통치 이념과 다름없는 헛소리라는 것을 장자 본인이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도교 수행자처럼 혼자 영생을 누리겠다는 목적으로 산 속에서 70년을 신선처럼 산 노인이 하루 아침에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는 우화가 괜히 장자에 수록된 것이 아니다. 장자의 수양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물(物)과 통(通)하라는 이야기는 국가이념 등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세상의 모든 개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이야기지, 절대 자연 속에 틀어박혀서 신선놀음을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물론 전 문단의 의견 역시 특정한 경향의 의견에 불과할 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34] 자세한 것은 스스로 공부해 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2000년대 기준으로 도가와 도교를 분리해 놓고 보자는 주장은 주로 일본 학계쪽에서 보는 시각이다. 반면 중국 학계에서는 도가와 도교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쪽에 속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도교 문화 - 행복으로 가는 길" 도록에 수록된 논문 참조.[35]

3.2. 민간 도교의 모습[편집]

도교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도교 수련자는 다음과 같은 생활지침을 제시받았다.
1. 벽곡수행을 하면서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버리고 고기도 삼가며 최대한 소식하고[36]
2. 각종 무술과 단전호흡을 비롯한 여러가지 수련방법으로 몸을 꾸준히 단련하며
3. 심산유곡 같이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통해서 자기 안의 여러 신들[37]을 만나고 도를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이라면 몰라도 옛날의 평범한 백성들이 이것을 다 지킬 수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도교는 민간인들에게 신선이 되기 위한 방법을 따로 마련해 주었다.

도교에서 죽은 사람의 혼은 명부로 가서 재판을 받은 뒤 지옥에서 벌 받을지, 천상계로 가 장생불사의 몸이 될지, 다시 환생할지 결정되는데, 선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도 말한다. 다만, 선행을 아무리 많이 해도 악행을 한 번 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고... 다행히도 악행을 많이 했어도 도교의 제의를 통해 속죄하고 용서를 구하면 벌이 감해질 수 있다고도 한다. 보통 사람이 중간에 악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선행을 1200번 연달아 하면 죽어서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도 신선의 중간급인 지선(地仙)의 경우. 천선(天仙)은 1만 2천 번을 연달아 해야 한다

그 외에 민간 도교는 민간인들이 직접 원하는 기복성이 발달하여, 도교 부록파의 부록술과 여러 의식이 그 뜻이 조금씩 변형되어 복을 부르고 화를 몰아내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점복과 참위(=예언) 등으로 민중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으로 불교 등과 섞여 신비주의적 성격을 지닌 민중 반체제 운동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사실 부록파 자체가 민간신앙에서 유래하였기에 변형이라기보다는 원래 형태로 돌아갔다는 표현이 더 맞지만.

4. 도장(道藏)[편집]

도교에도 불교의 대장경에 해당하는 집성된 경전이 있는데, 이를 도장(道藏)이라 한다. 대표적으로는 명나라 시기인 1445년과 1607년에 정통도장(正統道藏)과 속도장(續道藏)이 간행되었으며, 청나라 가경제 시기엔 도장집요(道藏輯要)가 간행되기도 하였다.

5. 분파[편집]

6. 한국의 도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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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영향을 받은 신종교인 동학의 성지 경주 용담정.#
한국의 도교에 대해서는 크게 자생설과 도입설, 중도설이 있다.

자생설은 중국의 도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한국의 자체적으로 독립 교단화된 도교가 존재했다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도교서적인 해동이적이나 청학집[38]에서 약간 등장하며, 일제시기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서는 아예 이 주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다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헌들이 대부분 국내 문헌 위주의 주장인데다, 문헌 기록 해석에서 지나친 자의주의적 관점을 가진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도입설은 중국의 도교 교단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한국에 도교가 퍼졌다는 주장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조선조 해동전도록에서 나타나는 주장이다. 그러나 원시도교의 성립기에 이민족 신앙의 영향을 배제하고, 중국 중심주의적인 해석이 강하다는 비판이 있다. 원시도교의 문헌인 태평경이나 포박자에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중국 주변 이민족의 샤머니즘 신앙이 도교 형성에 영향을 주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고, 종교학적으로도 원시도교(방선도)는 이민족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이 도교사를 언급할 때는 아직 완전한 종교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면서 방선도 부분을 빼버리거나 대충 넘어가고 태평도와 오두미교부터 도교로 보는 경우가 많다

중도설은 현재 사학계/종교학계의 일반적인 주장으로, 단군신화나 한국 토착신앙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역사기록 등을 토대로 우리나라에 자생적으로 존재하는 무속신앙/신선신앙/제천의식 등의 원시도교와 유사한 토착신앙이 존재했고, 이러한 신앙을 기반으로 중국에서 도입된 도교가 융합하여 현재 한국의 민간신앙/신종교의 근간이 되었다고 보는 주장이다. 현재까지 나온 설 중 가장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뒷받침이 잘되어있는 설이라고 볼 수 있다.

문헌으로 가장 오래된 한국의 도교 유입 기록은 기원후 624년 고구려 영류왕 때로, 고구려의 요청으로 당나라에서 도사와 천존상을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보장왕 때 연개소문에 의해 기존 고구려 왕실/귀족층과 결합한 상태이던 불교계를 억압하기 위해 당나라에서 도교를 받아들이고 장려하였으며, 이러한 행보가 당시 고구려 내의 분열을 오히려 부채질하여 고구려 멸망에 부분적으로 관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도교적인 신들과 신수들의 모습, 별자리 신앙, 문헌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제천의식을 기반으로 그 이전부터 한국에 원시도교적인 토속신앙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도교 문화 특별전에서는 한사군 시절의 도교(특히 외단도교)와 관련된 약재/의례용품류의 유물을 전시한 바 있다.

백제의 경우 도덕경의 구절을 언급한 막고해의 발언 기록이나 도교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산수무늬 벽돌과 금동대향로 등 조형물, 도교의 토지신(토백)이 등장하는 무령왕 매지석을 통해 어느 정도 도교 문화가 유입되었다는 추정은 있으나 고구려처럼 직접적으로 교단화된 도교가 유입되었다는 기록이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다만 일본에 불교 문화를 전하면서 주금사나 도교의 술법인 기문둔갑에 대한 책들을 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에서는 신라사선(四仙)에 대한 기록이나 화랑들을 신선에 비유한 기록, 최치원의 난랑비서문 등을 통해 고구려 못지않게 도교가 활발하게 도입되었으며, 동시에 풍류도로 대표되는 토착신앙과의 융합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이미 중심 종교로서 우세한 자리를 잡고 있었고, 불교와 토착 신앙과의 융합도 강해 후발주자였던 데다 토착신앙과 유사하고,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이미 중국에서 도교와 상호 영향이 시작되어 공통분모가 많이 생긴 상황에서 도교가 고유의 색을 가진 채로 깊이 파고들 만한 여지는 없었다. 자연히 도교는 독립된 교단이 아니라 불교/토착신앙과 융합하는 형태로 한국 문화의 한 구성원이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 내려와 현재 우리나라 불교와 무속 신앙에서는 중국 도교적인 성격을 가진 요소를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중 한 예를 들자면 불자들이 애독하는 경전 중 하나인 <북두칠성연명경>[39]을 보면 불경이라고는 하지만 칠성신에게 비는 것은 토착신앙/도교적인 요소며,[40] 경전에서 석가모니가 아니라 중국 도교의 신인 태상노군[41]이 주연으로 언급된다.[42]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해동이적에서도 '원래 불교와 도교[43]는 주문을 읽고 부적을 쓰는 데서[44] 유사점이 많은데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섞여 어느 게 불교고 어느 게 도교인지 알 수 없다'는 기록이나, 남궁두에 대한 기록에서 남궁두의 스승이 스님이면서 신선술을 연마한 도사로 기록된 점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로 들면서 송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본격적으로 중국의 도교가 유입된다. 하지만 이때도 기존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불교와 토속신앙과 충돌보다는 동화되는 형태를 보였고, 도교는 왕실과 지배층 중심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면서 기존 한국의 종교들과 서로 공존하는 형태로 유지된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도교는 수련도교가 아닌 제초도교로서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이나 종교의 교리 연구보다는 도교식의 초제(재초)를 통해 국가와 왕실의 복을 빌고 재액을 물리치는데 집중된 철저한 기복신앙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도교의 신선 수련이 발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유학을 중시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유학을 중시하면서 불교와 도교, 토속신앙의 의례를 음사로 규정하고 유교적인 윤리주의와 유교적인 제례를 중시하게 되었다. 물론 이때도 기복신앙적인 제초도교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나 국가의례에서 도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에 비해 쇠퇴하였고, 나중에는 마니산의 참성단 초제 정도만이 남게 된다. 이때부터 도/불 융합적인 민간신앙의 발달과 몇몇 지방 양반가에서 가풍으로 내단수련과 선행을 중시하는 이른바 내단파가 등장하면서 국내에서의 도교의 수행이론 역시 정리되는 모습을 보인다. 현재 국내의 여러 단학 수련단체에서 중요시하는 용호비결이나 개운조사파에서 중시하는 선불가진수어록등의 서적이 모두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책들이다.

여기서 도교의 이해에 있어서는 민간신앙과 내단파의 관점이 조금 차이를 보였다. 민간신앙에서는 도교/불교/민간신앙이 뒤섞이면서 민간신앙에서 도교의 수경신[45] 행사를 비롯한 몇몇 도교의례의 도입과 더불어 도교적인 신의 위격/호칭이 사용되었고, 이는 이후 정감록을 비롯한 도참서 및 구세주를 자처하는 민간 반란 세력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내단파에서는 종교적인 부분보다는[46] 유교/도교의 사이에서 심성을 닦고 선행을 중시하며, 삼교의 어느 극단에 치우침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중도주의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인다.[47]

이후 조선 후기를 거쳐 근세로 들어오면서 민족의식의 발달과 유교의 경직화, 신분제도의 붕괴 등을 거치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졌고, 이 때 들어서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교단화된 도교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특성상 중국처럼 순수한 도교 교단을 갖추기보다는 유불선 삼교와 토착신앙이 섞인 성격을 하고 있었으며, 이 때를 전후하여 등장한 도교 혹은 도교적 요소가 다분한 민족종교 교단들로는 동학남학[48]정역파증산교의 교단들이 있다. 특히 동학과 강증산계열은 도교의 신인 상제(上帝)에 대한 언급(동경대전에 상제라는 표현이 나온다.*)과 더불어 다양한 도교계 신령들[49]과 원시/민간도교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는 의례와 이 과정에서 믿음을 강조하는 모습, 선계(仙界), 신선, 무위이화(無爲而化) 등의 다양한 도교적 관념과 표현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 신종교의 사상은 중국 도교의 사상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독자적인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50]

7. 일본의 도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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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현존하는 도관의 모습.#

일본에 처음 도교가 전래된 것은 백제를 통해서였다. 위덕왕 24년(577)에 백제에서 일본으로 불교와 관련된 사람들을 파견하였는데, 이 중에 주금사(呪禁師)[51]가 있고, 무왕 3년(602)년에는 승려 관륵이 일본에 여러 책을 전했는데, 그 중에 도교와 관련된 역서(曆書), 둔갑(遁甲), 방술(方術)에 대한 책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일본에 도교가 전해지면서 일본서기에 상세(常世)신앙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신선들이 사는 세계로 이곳에 사는 상세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가난이 해결되고 젊어진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으나 중앙 정부의 통제로 교단화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본격적으로 일본에 도교가 흥하게 된 시기는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부터였다. 이 시기 일본은 중국에 직접적으로 유학승/견당사를 파견하면서 중국이 제초도교가 들어와 점을 치고 개인의 구복을 비는 방기주술이 크게 발달하였고, 일본의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지나치게 미신적인 경향을 띄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비노 마키비(吉備眞備)처럼 도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많은 도교서적을 수입한 자들도 있었으며, 이는 헤이안 시대에 들어 화려한 귀족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외래문화를 토착화시키면서 그 유명한 음양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반면에 백성들은 귀족들의 착취를 당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구원을 꿈꾸었고, 도교의 은둔적이고 기복적인 성격은 민중들에게도 잘 맞아 민중들과 민간신앙에도 파고들었다. 중앙정부의 관청인 음양료에 속하지 않은 음양사들인 외법사들 역시 많이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일본 도교는 하나의 독립된 종교 교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교의 주술 위주로 일본에 들어와 귀족층을 중심으로 후원을 받아 성장하였고, 또 그런 집단들이 주류로 인정받는 상황이었다. 외법사들의 경우 통제의 대상이었고, 민간신앙에 흡수된 도교는 일본에 들어올 때부터 기복적인 주술 위주로 들어와 독자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수준은 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종교적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밀교가 발달하면서, 타 종교와의 융합에 있어 한국만큼 널널하지 않았다.

때문에 귀족 중심적이던 헤이안 시대가 몰락하고 막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일본 도교계는 된서리를 맞는다.[52] 항상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무사계급들에게 있어 도교의 신선사상이나 불로장생 사상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53] 오히려 이들에게는 생사를 초탈한다는 사상을 가진 불교가 더 구미에 맞았고, 당시 일본의 종교계에서도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도교보다는 당연히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컸다. 당연히 도교는 귀족들의 몰락과 더불어 주류 무대에서 밀려나고, 궁중의 음양사는 민간에서 떠돌이 주술사로 일하는 박사로 변하였다.[54]

이후 일본의 도교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간신앙(신토슈겐도)과 불교에 흡수되어 독자적인 교단을 이루지는 못한다. 에도시대에 들어서 중국 도교의 경전들과 더불어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민간 도교가 전래되나, 이 역시 독립된 교단의 형태를 이루지는 못했다. 일본에서 도교는 민간 신앙과 불교의 일부로 대부분 흡수되었다.

8. 기타[편집]

도교 교세는 쇠퇴하는 중이다.[55] 교리도 경전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아직 원시 종교에 가까운데다 구 영국령인 홍콩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유럽의 영향으로 신비주의가 대세라 20대 및 30대 청년층과 청소년층이 그리스도교인이 되거나 무종교/무신론으로 전향했다. 중화권은 기독교가 한국과 달리 쫓겨나서 아시아에서 가장 무신론 비중이 높으며 유,불,선 3교가 오늘날 한국의 고사처럼 역사에 기록된것이 아직 많이들 남아있어서 홍콩의 소방서는 관우상을 갖다 놓는다. 무신(武神)으로서 경찰이나 소방관 등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생각해서이다.

화상이 하는 가게는 어디나 1월1일에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고사를 지낸다. 물론 젊은 층으로 오면 세속주의가 대세라 미신이라고 여긴다. 기껏해야 대만에서만 선전하지만, 이 동네도 도사들이 많이 세속화하여 일본 정토종계 승려들이나 신토의 아르바이트 무녀들처럼 평소에는 일반인으로 살다 초제 요구가 들어오거나 하면 그럴 때만 도사복을 입고 도교의례를 하는 등 수도자로서의 도사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알바 도사 중국 본토에서도 대형 도관들을 소림사처럼 무술공연자 양성 학교로 쓰고 공산당 휘하 조직에서 도관들을 관리하는 등 영 상황이 좋지 않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는 더러 서원 혹은 향교가 국내 각지에 지나치게 많은 현상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중화권 각지에 산재하는 다양한(관운장마조 등) 도교 사원 및 3자균형(三者均衡)의 모습을 동경하기도 한다.

베트남도 도교의 영향이 적지 않아 응우옌짜이응우옌빈키엠 등이 그 영향을 받았다.

그외에도 도교를 배타적 요소가 전혀 없는 종교라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새로운 대안이 도교라고 인식하는 부류도 있다.

선단을 만드는 기술인 연단술은 아직도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하는 사람이 있다.

도교에서는 신(神)의 대우가 좋지 않은데, 도교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신들은 아직 득도를 못해서 수련 중이다. 물론 이들은 도에 대해 평범한 인간보다 엄청 많은 것을 깨달았으며 신통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인간을 도와줄 수도 있고 인간의 스승이 되어 도에 대해 가르쳐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신들도 도를 얻지는 못했기에 인간을 득도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물론 득도를 한 사람도 도가 사상에 의하면 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해줄 수 없긴 하다.) 물론 도교의 모든 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원시천존 같은 고매한 존재들은 이미 그 경지를 훨씬 넘어선 존재들이다. 다만 그만큼 일반인들과의 거리감도 커서 역사적으로도 도사님들을 숭배했고, 민간도교에도 열중이다.

따라서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도사는 마음을 정갈히 하고 부적이나 제사를 통해 신들을 초청해 득도하는 방법을 묻기도 하지만, 결국 나중에 가면 좌망이나 내관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이라는 스승'을 뛰어넘어 우주 전체를 관조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도를 깨우쳐 우주의 질서와 법연을 확고히 하여야한다. 참고로 도교의 사원은 도관(道觀), 남자 수도자는 도사(道師)나 건도(乾道), 여자 수도자는 여관(女冠)이나 곤도(坤道)라 한다. 당나라의 양귀비도 한때 여관이었다.

현재 중국 도교 종파 중 하나인 화산파 남천문의 장문인은 한국인이다. 곽종인이라는 여성분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절밥처럼 도교 역시 도교 요리라는 고유의 요리법이 있다. 도교의 사상과 목적을 살려 도교 역시 음양과 오행사상을 기반으로 차가운 음식과 뜨거운 음식의 공존과 조합을 만들었다.

9. 도교의 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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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선도(八仙圖)는 도교의 깊은 이치를 체득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종리권(鍾離權)·여동빈(呂洞賓)·장과로(張果老)·한상자(韓湘子)·이철괴(李鐵拐)·조국구(曹國舅)·남채화(藍采和)·하선고(何仙姑) 등 여덟 신선을 각기 독특한 모습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하는 중국의 다신적 종교인 도교의 사원에는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이 여덟 명의 신선들을 모시는 팔선궁(八仙宮)을 따로 마련해 놓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아마도 이들은 남녀노소, 빈천부귀를 대표하고 있는 데다가 그 출신 성분들이 걸인, 도사, 관리, 황제의 친척, 시인 등 각양각색이기에 도교에서 받드는 다른 신선들보다도 인간적으로 훨씬 더 가깝고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10. 매체[편집]

오덕계에서는 의외로 도교의 인기가 높다. 다만 도교 단독이라기보다는 불교, 밀교, 음양도, 신도 (심지어 힌두교까지) 등의 동양 판타지의 일부로 많이 활용되는 형편.

11. 같이보기[편집]

[1] 도교의 사원. 보통 '00관'이라고 쓰지만, 궁관(宮觀)이라고도 부르며 이때는 궁(宮)자를 붙여 '00궁'이라고도 한다.[2] 사실 서낭당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성지(城池)신앙에서 생겨난 성황당(城隍堂)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 있고. 실제로 성황당이라는 표현과 혼용된다. 산왕(산신)을 모시는 곳이라는 뜻인 산왕당(山王堂)이 변했다는 설도 있고, 서낭당의 다른 이름인 천왕당에 근거해 천신 신앙에 기초해 생겼다는 설, 유라시아 지역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적석단에 기초한 민간신앙설, 절충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서낭당 관련 네이버캐스트 링크.[3] 태극기의 도안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한국인의 조상들 중에 도사가 많았거나 혹은 한국 자체가 도사들이 세웠던 나라가 아닌가 생각하며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참고로 실화다.(...) 밑의 본문 내용을 쭉 보면 알겠지만, 한국과 도교는 의외로 밀접한 관련이 있긴 하다. 물론 태극기의 형성은 도교와는 직접 관련은 없다.[4] 학술적으로는 천사교(天師敎)라 불린다.[5] 물론 중국에서는 아직 자국주의적 관념으로 도교 문화를 연구하는 경향이 짙다. 사실상 중국의 도교학 논문에서는 교류 분야는 찾아보기 힘들고, 찾는다 해도 전래/교류보다는 전파를 위주로 보고 있다.[6] 내단의 경우 방선도의 영향에 대해 말하기는 애매한데, 당나라 때 도사 소현랑이 나타나기 전까지 도교는 내단보다 외단을 중요시하였으며, 수련법도 외단(그나마 외단이라는 용어도 소현랑이 내단론을 주장한 뒤에야 외단/내단으로 구분되면서 생겼다.)에 주목하되 마음의 수련도 병행하는 정도이다. 물론 그 전부터 마음의 수련을 중시하는 경향이 점점 대세를 타긴 하지만...[7] 삼국지에 등장하는, 바로 그 우길이다![8] 열선전을 비롯한 도교의 주요 도사들을 다룬 기록을 보면 초기의 도사들일수록 우리가 '도사'라고 하면 떠올리는 모습이 아니라 약사나 의사, 무당 등의 모습이었다.[9] 하지만 노자와 비교하면 넘사벽으로 취급이 낮다. 그나마 장자가 남화노선(南華老仙,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 불리고 저서가 남화진경(南華眞經, 남화경 혹은 장자남화경)이라는 이름으로 도장경에 포함된 정도.[10] 물론 황건적의 난이 불과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진압된 것은 사실이나, 이를 '삼국지의 군웅들에게 썰리고 썰리다 탈탈 털렸다' 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일단 황건적의 난 자체는 1년만에 진압되었지만 한나라는 결국 황건적의 난으로 인해 촉발된 국가 멸망 테크를 수습하지 못하고 4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 즉, 황건적의 1년은 400년간 이어져 온 거대 제국에 치명타를 입힌 1년이었다. 그리고 중국사 전체로 시야를 넓혀 보면, 장각을 중심으로 한 태평도의 반란은 <종교로 결합된 향촌 세력(농민) 반란>의 효시였다는 점 역시 생각해야 한다. 장각은 '종교적 비전을 매개체로 삼아 농민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면 거대 제국이라도 멸망에 몰아넣을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후한말 황건적의 난 이후 청말 백련교도의 난에 이르기까지 이 사례에 영향을 받은 무수한 농민의 난들이 대부분 중국 통일 왕조들을 괴롭혔고, 그 중 상당수를 무너트렸으며 몇몇 통일 왕조는 이런 농민 반란을 기반으로 성립했던 것. 여기에 태평도의 잔당들이 유입된 오두미도(=천사도)가 이후 중국에서 종교로서 도교의 기반이 된 점까지 생각하면 (삼국지연의의 전근대적, 영웅주의 사관에 기반한 관점과는 달리) 장각과 태평도가 역사에 남긴 흔적은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정권을 장악하여 결국 선양의 형태로 제위를 찬탈하려 시도한 > 이나 <일시적으로 일부 영토를 지배했으나 결국 통일왕조에 흡수당한 세력들>보다 더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은 셈.[11] 도교에서 노자를 신격화하여 부르는 명칭이다.[12] 여기서 '천사'라는 이름은 천사도의 교주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 계속해서 내려온다.[13] 상청파(上淸派)[14] 처음부터 뜻이 없었던 건 아니었고 동진 성립 과정에 여러 강남 호족들과 함께 가병을 이끌고 분전했지만 당시 사실상 동진의 통치를 도맡고 있던 왕도가 서진출신 관료와 사대부만을 중용하자 이에 절망하고 이후로 도교 수련에 힘썼다. 그의 대표작 포박자도 순수한 도교 관련 서적은 아니며 절반 정도는 시국 비판의 내용이다.[15] 도교의 많은 신들의 이름은 거의 이 때 정해졌다고 보면 된다. 세세한 스펙이나 모습 등은 크게 바뀌기도 했지만.[16] 이전에는 기복신앙과 여러 자연신을 숭배하는 부록파 위주인 민간도교와 불로장생약을 만들고 신선이 되고자 하는 수련도교 간에 간극이 꽤 있었다.[17] 이전부터 갈홍육수정구겸지도홍경 등에 의해 도교는 계속해서 유, 불, 도 삼교의 이론을 조화시키고 불교와 유교의 이론을 꾸준히 흡수해왔다.(물론 음양오행론을 흡수한 신유학이나 도가사상을 받아들인 선불교처럼 반대도 존재했다.) 이는 이후에 유불도 삼교 중 불교는 지나치게 탈속적이고 유교는 지나치게 세속적이니, 그 중간에서 양자의 이점을 두루 갖춘 도교가 가장 뛰어나다는 도교중정론이 출현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18] 부록파에서 사용하는, 부적이나 신기(神器).[19] 三山符籙派, 모산파를 보면 알겠지만 도교의 부록파를 계승하여 그 쪽 계열로 가장 융성하던 세 교파다.[20] 내가삼권의 정식 계승자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함부로 무당산 운운하다간 고소크리 당한다.[21] 사실 청나라의 이러한 도교 억제는 도사에게 변발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변발을 하지 않는 한족의 수를 최대한 줄이려 한 정책일 수도 있다. 도교가 계속 번성하면 도사의 수도 늘어날 텐데, 그런 상황에서 도사에게 변발을 강요하지 않으면 변발을 하지 않을 특권을 누리는 한족들도 늘어날 테니 말이다. 반면 불교의 승려는 국가와 민족을 막론하고 모두 삭발을 하므로 승려의 삭발은 한족의 전통이 아니라서 만주족의 입장에선 굳이 금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22] 사실 도교의 교리/경전 자체가 후대로 갈수록 불교의 영향이 확실하게 두드러진다. 물론 불교 역시 기복신앙적 면에서는 아주 충실하게 도교를 벤치마킹하지만...결론은 장삼이사[23] 중국 본토의 도교와 비교해 도교 사원의 규모도 비교적 작은 데가 많고, 도사들도 도교 사제로서의 일을 전담하기보다는 평소에는 일반인이다 도사로서 일할 때만 도사복을 입고 초제를 지내는 식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도사인지 일반인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 세속화된 일본 진언종 계열의 승려들과 비슷하다.[24] 중국에서 씌어진 책인 <도교문화 15강>의 초반부에 중국인들이 도교를 상대적으로 천시하고 무협지로 인한 잘못된 도교 관념으로 인한 폐해를 비판하며, 동시에 중국 내에서조차 불교학이 도교학보다 더 연구가 활발한 상을 탄식하고 있다. 하지만 도교가 가장 융성했던 당송 시대조차 도교는 불교에 밀려 콩라인이었는데 뭘 새삼스레(...). 사실 도 계통의 종교가 불교보다 천대를 받는 건 일본도 예외가 아닌데, 창작물에서와 달리 현실의 일본인들은 신토 성직자인 신관과 무녀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25] 이 자세만큼은 도가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덕경, 장자 텍스트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세트로 묶이는 열자, 양주의 발언 등에도 국가의 대의명분에 휘둘리지 말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쉽다.[26] 性命雙修 :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갈고닦음[27] 逆修返源 ; 수련함으로써 근본으로 거슬러 돌아감 도에서 만물이 나왔으므로 만물에서 도로 돌아가는 것을 뜻함[28] 이게 바로 그 유명한 道可道 非常道[29] 다만 현대적 관점으로 볼 때 온갖 중금속 덩어리인 경우가 많아 도리어 명을 단축시키기도 했다. 당나라 때까지 천자들도 단약 먹고 여럿 죽어나가서 결국 유교,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송대 이후로는 단약 섭취를 제외한 다른 수행법들이 부각된다.[30] 수은이 다른 금속을 감싸서 녹여버리는 도금 공정, 상온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수은의 특징 등등을 보고 옛 중국인들은 수은이 신선의 현묘한 특징을 닮은 금속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썩어 없어지는 곡식 대신 신선의 성질을 닮은 금속을 먹으면 신선을 닮아 불로장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간이 허하면 간을 먹고 정력이 허하면 해구신을 먹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인 셈이다.이 사고방식 때문에 진시황 시절부터 당송변혁기까지 수은 중독으로 죽어나간 금단술사들이 불쌍하다[31] 쉽게 말해 노자와 장자의 사유 차이는 형이상학vs실존주의국가주의vs아나키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지경이다.[32] 만약 노자의 "소국과민" 이나 "병기불상지기" 등의 문장에 혹해서 "노자가 평화롭고 자연주의적인 소규모 공동체, 국가 없는 사회를 꿈꿨구나"라고 생각하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어찌보면 당신도 노자의 통치술에 낚인거다. 노자의 통치술은 민중이 이렇게 생각하게끔 통치자가 도에 따르는 교묘한 술수를 써서 백성의 복종을 받아내야 한다고 역설하기 때문이다.[33] 단 이는 한비자의 견해이지 본래 뜻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덕경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아나키즘부터 전체주의까지 극단적으로 나뉜다.[34] 도가철학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신비주의적인 도교에 결코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애초에 아나키스트 중에 반종교적 정서를 지닌 사람들도 있지만 영성(Sprituality)이라는 화두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요즈음의 반종교적 정서들에 좌파들이 경계심을 가지는 추세인지라...[35] 요새 중국철학이나 불교철학 전공자들 사이에는 동양의 신비주의 전통을 아예 무시하며, 동양철학의 실용적, 정치철학적 모습만을 크게 강조하기도 하고, 과학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형이상학적, 오컬트적 서양철학 및 종교를 까는 경향도 많이 보인다. 허나 이에 대해 과학주의와 옥시덴탈리즘이 묘하게 혼합된 방어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또 과학주의 맹신자들에게는 동서양 철학 자체가 쓰잘데기 없는 소리로 취급되기도 하며, 불교의 과학성을 열렬히 주장하는 의견은 유사과학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신비주의를 까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면 좋지 않다.[36] 자극적인 음식. 특히 오신채와 고기를 멀리하는 것은 불교의 영향이 크다. 실제로 오신채와 고기를 금하는 것을 강조하는 모습은 불교 전래 한참 후에 등장한다.[37] 약 3만 6천 위가 있다고 한다.[38] 단, 청학집의 경우 환인과 헌원의 스승이 둘 다 중국 서방의 공동산의 선인 광성자라고 기록하고 있다.[39] 고려 시대부터 유입된 '불설북두칠성연명경'을 주로 사용했는데, 1534년(중종 29년)에 안동 광흥사에서 불공용으로 발행한 북두칠성공양문(北斗七星供養文)에는 칠성청, 불설북두칠성연명경, 칠성하강일, 칠성부(민속에서도 사용하는 부적으로 당나라 때 바라문승이 번역한 불설북두칠성연명경에 수록되어 있는 부적) 등이 수록되어 있다.(성수신앙의 일환으로서 북두칠성의 신앙적 화현 양상) 링크되어 있는 논문 파일 자료에서는 북두칠설공양문에 수록된 것이 그냥 일반 북두칠성연명경이라고 되어 있는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직접 북두칠성공양문의 원문을 보면 "불설" 북두칠성연명경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도 북두칠성공양문에 수록된 것이 불설북두칠성연명경이라고 제대로 나왔다.[40] 북두칠성숭배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도 발견되는 유서 깊은 토속신앙이지만, 현재의 칠성신앙은 도교적인 요소의 영향이 강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은 중국과 달리 칠성신을 인간에게 생명과 복을 주는 긍정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이 강하며, 반대로 중국에서 칠성신은 무서운 죽음의 신이다.[41] 노자[42] 사실 이 북두칠성연명경 자체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책이며, 노자가 등장하는 점에서 도교의 칠성숭배가 유입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당장 한국 사찰에서 칠성단 예불시 언급되는 존재인 태을신이나 자미대제는 모두 도교의 신이고, 치성광여래는 북극성 신앙과 불교가 혼합된 존재다.[43] 여기서의 도교는 중국식 도교가 아니라 한국의 토착신앙과 결합해 한국화된 도교/도교로 이해된 토속신앙을 말한다. 해동이적이란 책 자체가 중국과는 다른 한국 고유의 신선들의 선맥을 정리한 책인데, 등장 인물들 중 고대의 선인들은 단군해모수 등 초자연적인 권능을 발휘했다고 전해지는 제정일치 시대의 군장들인 경우가 많다.[44] 엄밀히 말하면 부적을 쓰는 것 자체가 토속신앙의 영향이다.[45] 경신일에 삼시충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자신이 기생하는 인간의 죄를 일러바쳐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동안 잠을 자지 않는 것[46] 종교적인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신에 대한 저술이나, 천제를 지낸 유적도 남아있다.[47] 대표적인 내단파 인물인 김시습의 경우 중국 내단도교의 불로장생 사상에 대해 장수에 대한 집착을 비판했고, 정렴이나 권극중 등 다른 내단파의 인물들도 정도나 방향의 차이는 있지만 중도주의를 추구한다.[48] 다른 이름은 오방불교로 이름은 불교라고는 하지만, 교단의 성격을 보면 도교와 불교, 주역학이 뒤섞인 형태다.[49] 동학에서는 한울님 외에 다른 신에 대해 특별히 다루지 않으나, 증산계의 경우 엄청난 수의 도교계 신령들이 등장한다. 관우, 28수, 28장, 칠성신 등이 모두 도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신격들이다.[50] 참조문헌:<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정재서 저.[51] 주문을 읽어 주술로 병을 고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무당 겸 의사(위치닥터)를 말한다.[52] 비슷한 예로 한국의 밀교계가 있다. 한국의 밀교는 비록 순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라 후기/고려시대 동안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였으나 이후 조선 건국으로 대차게 타격을 입는다. 이후 조선시대에 불교 의례집에 밀교적인 요소가 많이 발견되기는 하나 민간신앙/도교적 요소가 혼합된 현세구복적 잡밀 수준이다.[53] 전국시대에 기독교가 들어왔지만 기독교는 에도막부의 탄압도 겹쳐서 일본에선 널리 퍼지진 못했다.[54] 박사란 활줄을 두드리며 주문을 읽어 재액을 물리치는 일본 주술사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무당도 지역에 따라 박사(博士)라 하나 호칭의 유래와 관련해서 일본의 박사와 관련은 없다. 원래 박사는 옛날부터 전문 지식인에게 주는 벼슬이름이었으니, 나라에 상관없이 존칭으로 붙였다고 보는 게 옳다.[55] 중화권 제외[56] 財神. 재물과 복을 가져다주는 신이다.[57] 토지의 신.[58] 메뚜기 떼의 신이다. 중국은 메뚜기 재해가 워낙 대륙 스케일이다 보니 이런 신도 있다.[59] 불교의 비사문천을 도교식으로 받아들였다.[60] 관세음보살을 도교에서 부르는 이름. 낭랑은 여신을 말한다.[61] 사후에 '신선이 되었다'라고 추앙받은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