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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1

윤회 - 위키백과, 삼사라(Samsāra: "계속된 흐름 · Continuous flow")

윤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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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輪廻, 산스크리트어संसार)는 다르마 계통 종교들의 주요 교리로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그 깨달음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이 세상으로 재탄생한다는 내용의 교리이다. 이 세상에서 겪는 삶의 경험이 자신의 발전에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상태 또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이 세상으로의 윤회가 끝난다.
힌두교 · 자이나교 · 불교 · 시크교 등 주로 인도계 종교들에서 윤회를 믿으며 중요한 교의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서양의 경우, 고대 이집트 종교 · 피타고라스 학파 · 영지주의 · 헤르메스주의 등에서 윤회를 믿었거나 믿고 있다.
힌두교와 불교에 따르면,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인과응보 또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법칙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과법칙을 부정하게 되면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해야 하는 근거가 무너진다고 본다.[1][2] 힌두교의 윤회의 교의에 따르면, 탄생은 영혼이 육체 · 감각 기관 · 마음과 연결되는 것으로, 따라서 탄생은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맺는 것이며, 그리고 죽음은 완전한 소멸 또는 파괴가 아니라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것.[2] 힌두교에서는 이러한 윤회의 교의를 부정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카르마에 따라 정당한 과보를 받아 자신의 삶의 모습을 벌어들이게 된다는 도덕적 법칙을 부정 또는 무시하는 것이라고 본다.[2] 또한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였던 여러 위대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무의미한 헛된 일로 치부하는 것이라고 본다.[2]

각 종교별 윤회[편집]

힌두교[편집]

힌두교의 교리에 의하면 해탈에 도달하지 못한 자들은 우주 안에서 끊임없이 낳고 죽기를 반복하며 윤회한다. 인간이라 하더라도 다음 생애에는 짐승으로 태어 나기도 하며 신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수없이 많은 윤회의 과정에서 사람은 한 인생을 살면서 쌓은 카르마에 의해 다음 생애가 결정된다. 다르마에 따른 삶을 살다 죽으면 다음 생애에는 보다 존귀한 카스트 출신으로 태어나지만 다르마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 다음 생애에는 더 비천한 카스트 출신으로 태어나게 된다.

자이나교[편집]

불교[편집]

불교에 따르면, 부처의 지위("열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삶은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돌아가며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
윤회(輪廻)는 산스크리트어 삼사라(Samsāra: "계속된 흐름 · Continuous flow")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윤회전생(輪廻轉生) 또는 생사유전(生死流轉)이라고도 한다.[3] 마치 수레바퀴가 회전하여 멎지 않는 것처럼 중생이 번뇌와 (業)으로 인하여 "길 잃은 세계"(미계 · 迷界), 즉 3계(三界: 욕계 · 색계 · 무색계6도(六道: 지옥도 · 아귀도 · 축생도 · 수라도 · 인간도 · 천신도)에 다시 태어나고 죽는 것이 끝없는 것을 말한다.[3] 이 괴로운 존재에서 벗어나는 경지가 열반(涅槃)이다.[3] 윤회 사상은 인도 사상의 현저한 특색이었으며, 불교 역시 이 사상을 가졌다.[3] 윤회를 반복하는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있는 모습"(Bhava · 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삼계 중 이 세상인 욕계에 태어난 중생(衆生 · Sattva)은 여기에서 한 일(業)에 따라서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 · 인간 · 천신의 여섯 가지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를 취하여 저곳에서 돌아 넘어가게 된다. 이들 중 뒤의 세 가지 삶은 좋은 업을 이룬 이들이 돌아가는 길("삼선도 · 三善道")라 부르며, 앞의 세 가지 삶은 나쁜 업을 이룬 이들이 지나가야 할 길("삼악도 · 三惡道")라 부른다. 또한 깨달음을 성취해 감에 따라, 욕계를 벗어나 삼계(三界)의 다른 두 계인 색계 또는 무색계에 이르게 되며, 부처의 지위("열반")에 도달하면 삼계 속에 윤회하는 일이 그치게 된다.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삼계육도(三界六道)는 우주가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삼계(三界)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에서 욕계는 다시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천신의 육도(六道)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직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들이 끊임없이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태어나고를 무한히 반복하는 곳이다.

영지주의[편집]

많은 영지주의자들이 정통파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윤회를 믿었다. 정통파 기독교의 교부로 알렉산드리아파를 대표하였던 오리겐에 따르면, 유력한 영지주의 분파 중의 하나였던 바실리데스파의 창시자인 바실리데스는 사람이 구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죽었을 때 받는 유일한 은 이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4] 또한 오리겐은, 바실리데스가 가르친 윤회의 교의로 인해, 악한 행위를 하면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 "유익한 두려움"이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고 불만을 제기하였다.[4]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

업 - 위키백과, 카르마 인과(因果)의 연쇄관계

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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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業, 산스크리트어कर्म 카르마)는 인도계 종교에서의 인과율 개념이다. 원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인과(因果)의 연쇄관계에 놓이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거기에는 과거 · 현재 · 미래와 같이 잠재적으로 지속하는 일종의 브라만교 사회에서는 어떤 특정의 카스트에 태어난다는 것도 그에 상응하는 전생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업 사상은 광범위하게 인도 제종교의 전체 속에 들어 있어서 불교 및 자이나교에서도 특색있는 업설(業說)을 전개하였으나, 인도사상의 정통(正統)인 브라만교나 힌두교에서 가장 강조되었다. 
초월적인 힘이 감득(感得)되어 있으며 흔히 시간(時間: Kala) · 천명(天命: Daiva) · 천성(天性: Svalhava) 등의 말로 표현되고 있다.

각 종교별 윤회[편집]

힌두교[편집]

힌두교에서 카르마는 그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따른 것으로 '윤회'를 낳는다. 이러한 잠재적 세력으로서의 카르마는 현재와 미래의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모든 카르마는 미래의 카르마의 씨앗이 되어 행위의 결과에 따른 그 열매로서의 결실은 기쁨과 슬픔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카르마는 도덕적 세계의 행위와 반작용의 법칙, 즉 뿌린대로 거두는 업의 법칙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인간이 이 카르마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인간은 이 카르마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스스로 자기의 의식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에 참 자아인 아트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에게 복종하고 선한 카르마를 낳고 나쁜 카르마를 소멸시킴으로써 카르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일단 깨달음의 해탈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카르마는 형성되지 않는다.[1] 그러므로 《마하바라타》에서는 "업은 어떤 사람도 피할 수가 없으며 그림자가 형체에 따라다니듯이 업은 서 있는 자의 곁에 서 있고 가는 자의 뒤를 따라가며, 행위하는 자에게 작용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인과관계에 입각한 행위론은 당연히 선업선과(善業善果) · 악업악과(惡業惡果)와 같은 윤리적인 인과의 법칙을 낳게 하였다.

불교[편집]

자이나교[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