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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9

2016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

“청주는 인문·사상철학·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
야마모토 교시, 변영호씨의 기고
2016-07-13 동양일보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특강, 대담, 좌담, 토론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양포럼은 이번 회에서 일본 지식인들의 글을 소개한다. 야마모토 교시 일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과 재일교포 2세인 변영호 츠루문과대학 문학부 비교문화학과 교수가 청주를 방문하고 느낀 소감을 보내왔다. <편집자>


▲ 야마모토 교시미래공창신문사 발행인

청주 원로들의 이야기 속엔 일제강점기 한이…
- 동서양과 동아시아의 접점 도시 청주 -
청주 시내에 있는 김태창 선생의 자택은 대로변에 가깝다. 자택을 나와서 인도에 서 있자 곧장 택시가 잡혔다. 택시 문을 열자마자 CD로부터 힘찬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김태창 선생이 “야~ 활기있네요!”라고 말문을 열자,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토대 교수가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 아닌가요? 그립네요!”라고 맞장구쳤다. 이에 택시기사가 고조된 한국말로 “제가 열렬한 팬입니다”라고 응수하였다. 차안에서 일본인 록가수를 화제로 활기찬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이승우 선생과 유성종 전 총장이 기다리고 있는 한정식집에 도착했다.
때는 2015년 12월 6일 저녁. 당시에 한·일정부 사이에는 종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막판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베신조’는 그 무렵 한국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일본인이었다. 역사인식을 후퇴시킨 수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이렇게 한·일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시기에 일본인 가수의 노래를 불특정 손님에게 들려주는 한없는 밝음과 교정(交情). 이 인상은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인 청주의 현재와 밝은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고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수도 서울이 한국의 정치적 중심지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온 청주는 동서양의 인문적·사상철학적·범종교적 교류의 접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청주에는 5개의 대학이 있다. 청주대학의 유학생은 중국에서 온 학생이 40%,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한다. 청주공항은 오카야마(岡山)공항과 연결되어 있고, 올해 안으로 칸사이(關西)국제공항으로 가는 직행편이 생길 계획이라고 들었다. 충청북도는 한국에서 유일한 내륙 도시로, 경기도를 비롯한 5개도와 인접하고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천연수가 나오며 눈부시게 융성한 도시로 인기가 높다.
전날까지 경상북도 안동에서 열린 ‘이퇴계 한중일국제학술대회’를 마치고, 카마다 교수와 나는 청주의 김태창 선생 자택에 초대받았다. 청주에서는 김태창 선생의 선배이자 친우(親友)인 두 분의 원로로부터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유창한 일본어로 귀중한 역사적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미래공창신문’에서는 그 내용을 27호(2016년 2월 29일자)에서 일부 보도했고 다음호에서 상세한 내용을 소개했다.
두 원로는 식민지시대 말기에 초등학교와 청주시내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한국바둑문화연구회 회장과 전 꽃동네대 총장이다. 두 분 다 80대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하다. 이승우 선생은 고급관료 출신으로 군수, 시장 등을 역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불편부당을 신조로 삼는 청렴결백의 선비이다. 지일파로 뉴스는 NHK를 듣고 일본 문화에도 아주 밝은 분이다. 일본과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바둑 기보를 비교하여 역사를 분석하고, 장계석이 왜 모택동에게 졌는지를 해설한 저서는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승우 선생의 1년 후배인 유성종 전 총장은 한국교육평가원장 출신으로 문교행정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여러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는데 무엇보다도 우정과 신의가 두터운 철인(哲人)이다. 동양평화를 향한 염원은 남다르고, 타협 없는 언론과 행동에는 국사(國士)의 기풍이 있다. 2000년에는 세계인쇄출판박람회의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기억력이 발군인 이승우 선생이 전쟁말기의 소년시대를 회상했다. 부친은 금융조합(현재 농업협동조합)의 간부였는데, 생활이 어려워서 가족들의 식사는 아침에는 죽을 먹고, 점심은 거른 뒤, 저녁에도 죽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은 명문 청주중학교에 다니는 이승우 소년에게만큼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게 했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청주 제2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같은 또래의 일본인이 이씨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알 까닭도 없었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에서는 모든 한국인을 송죽매(松竹梅)로 등급을 정하고 배급 등 여러 면에서 차등을 두었다. 송에 해당하는 이씨 가정보다도 등급이 더 낮았던 유성종 소년의 가족에게 배급된 것은 만주로부터 비료로 우송되어 온 시커멓게 썩은 두부찌꺼기였다. 쌀겨를 먹으면서 겨울을 지냈다. 보리가 익는 봄까지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이 시기의 비참함을 ‘보릿고개’라고 한다. 조상의 제사를 중시하는 유씨 집안에서는 과혹한 공출로부터 제사용 쌀을 보호하기 위해서 변소 옆에 작은 단지를 파묻고 그 속에 숨겼다. 언어말살교육은 가혹함을 더했다. 한국말을 쓴 것이 알려지면 교사는 아이들의 손등을 매로 때렸다. “지금 생각해도 한기가 서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유성종 소년이 시골집에 돌아오자, 처음보는 남자가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구죠?”라고 묻자, “너의 매형이다.” “어떻게 된 거죠?”라고 묻자, “누나가 나이가 차서 시집을 보내지 않으면 정신대에 끌려간다. 그래서 이웃 마을의 청년과 물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시켰다.” 당시에 한국인 중에서 종군위안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승우 선생은 말한다. 남자는 ‘노동동원’으로, 독신여성은 ‘정신대’로 징용되었다. 정신대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는데, 가는 곳은 알 수 없었다.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 중에 ‘라파울전기’라는 체험담을 그린 문고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위안부에 대해서 두 군데 나오는데, 가건물에 매춘부가 있는데 조선여성은 ‘센핑’, 오키나와 여성은 ‘나와핑’이라는 멸칭으로 각각 불렸다고 합니다.”
유성종 전 총장이 6학년이었을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임종시에 “일본은 패한다. 사람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고서 오래갈 까닭이 없다.”는 말을 남기셨다고 한다.
김태창 선생이 두 사람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두 분과 동년배인 일본인은 한국인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요?
이승우 선생은 “진짜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한국인과 일본인은 생활세계가 완전히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은 ‘사쿠라’라는 특권계급으로, 먹는 것은 풍부하였다. 하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든가 ‘(천황 앞에서는) 일시동인(一視同仁)’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신들과 한국인을 기만하고 있었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은 한국인의 궁핍함을 몰랐고, 그 자손인 우리도 지금까지 알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전후(戰後)에 후지와라 테이는 전쟁 말기에 만주에서 어린애 3명을 데리고 1년이나 걸려서 일본에 돌아온다는 내용의 소설 ‘떨어지는 별은 살아 있다’를 썼다. 북한을 경유한 장대한 귀국기록으로, 식민지의 고충을 체험한 민중이 일본인에 대한 보복을 억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볶은 콩을 씹으면서 연명하는 일본인을 동정하고, 스쳐 지나가면서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법이다.
나는 만주국의 국무원(國務院) 총무장관을 지낸 키시 노부스케(岸伸介)가 귀향의 고통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한국과 일본의 서민이 맛본 전쟁의 비참함을 아베 수상은 할아버지로부터 얼마나 배웠을까? 만주에서 민중을 통치하는 입장에 있었던 키시씨에게 애당초 전쟁의 비참함에 허덕이는 서민과 동고(同苦)·공고(共苦)하는 체험이 있었을까?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일본인은 일본군국주의가 한반도나 중국인들에게 끼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진실을 아직 잘 모른다. 전후 70년을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망언정치가가 잘난 체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이 진정한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중 차원에서 서로 진실을 얘기하고, 먼저 민(民)과 민(民) 사이에서 해원상화(解寃和解)를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한다.

2015년 12월 7일. 우리는 청주시내에서 스포츠사회학자인 전 충북대학교 체육과 이종각 교수와 경제사회학자인 전 청주대학 장준호 부총장과 함께 점심을 했다. 당시 한국의 TV에서는 연일 불법노동운동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절 안으로 도망친 시민운동 리더의 체포강행 여부를 둘러싼 열띤 토론이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이라면 경찰이 불교사원으로 들어가서 즉각 체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교회나 절이나 대학은 일종의 아질(성역)이 되어 있다.
“나라는 법에 의해 다스려진다. 법은 스포츠의 룰과 마찬가지인데, 한국은 선진국으로서 법을 지키는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고 이종각 교수는 열정적으로 말한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는 격차해소법안에 저항하는 정규노동자쪽 리더이다. 연수입이 7000만~1억원에 달하는 노동귀족이라는 사실도 시민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반면에 장준호 전 부총장은 “체포는 조금 더 기다려야한다”는 신중론 쪽이다. 군정에서 민정으로 민중의 힘과 단결에 의해 민주주의를 획득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위로부터의 ‘통치’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자치’의 상반성은 민주주의의 근간과 관련된다. 지금의 한국은 일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언론의 힘이 강하다. ‘노동조합’은 한국사회의 활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체제에 불리한 뉴스진행자가 연이어 퇴직을 강요 당하고 있고, 국립대학의 인문계 교원에 대한 예산상의 압박이 논란이 되고 있으며, 언론은 두드러지게 빈약해지고 있다. 기자는 한국의 뜨거운 언론풍경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날 밤에는 한민족철학연구의 권위자인 충북대학교 김용환 교수와 재회하여 시내에 있는 백화점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백화점은 널찍하고 활기찼다. 주위에는 주차장과 도로를 끼고 고층아파트가 즐비했고, 생활과 쇼핑이 효율적으로 일체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김 교수는 예수가 불교를 배웠다고 전해지는 인도의 헤미스사원 등을 답사하고, 그 체험을 1980년대에 책으로 정리해서 출판한 적이 있다. 예수가 13세 때에 ‘동방박사’를 방문하여 페르시아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증거가 되는 문헌을 러시아 언론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icolas Notovitch)가 발견하여 바티칸궁전에 가지고 온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바티칸의 반응은 “기지(旣知)의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말한다. “예수는 더 나아가서 동쪽의 북인도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병을 고치는 성인이 나타나서, 그 이름을 ‘이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가 누구인지 문헌과 현지조사를 통해 조사해보면 예수를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지간에 예수가 30이 될 때까지 17년간의 공백기간의 행적은 지금도 수수께끼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세주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 지는 가톨릭의 교리와도 미묘하게 연결된다.
김 교수는 “예수는 처음부터 구세주로 하늘에서 내려왔다기 보다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성’이나 ‘우주생명’을 각성하고 그리스도로서의 사명을 자각하여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요?”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십계와 불교의 십계의 공통점 등을 생각하면, 두 세계 종교 간의 대화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12월 8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김태창 선생이 “최한기의 활동운화(活動運化)를 실제로 관찰해 봐요”라며, 탁자 위에 유리로 된 커피포트를 준비했다. 포트에 물을 붓고 볶은 현미, 메밀가루, 말린 우엉, 볶은 콩가루, 아마란스를 넣고 스위치를 켜자, 처음에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재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정물(靜物)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양상이 돌변했다. 재료가 빙빙 돌면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운(運)’에 해당한다. 정반대로 회전하는 ‘전(轉)’이고, 정신(魂)의 기능으로 말하면 전개(全開)상태가 된 것이다. 한층 열을 가하자 용기 속은 혼돈스럽게 뒤섞이고, 모든 입자가 근원적 생명력을 한껏 들끓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열탕은 옅은 황색으로 변했다. 각 소재가 속에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던 영양소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탕질(湯質)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것은 각 재료의 개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활동운(活動運)’에 이어서 새로운 영양엑기스가 탄생한(化)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활명연대(活命連帶)에 의한 개신(開新), 미래의 공동창발(共 創發=未來共創)은 바로 이것이라고 실제 관찰을 통해서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기자가 지금까지 야규 마코토(柳生眞) 박사의 논문을 읽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최한기의 ‘활동운화’의 과정을 시각을 통해서 깨닫게 해준 것이다. 이날 밤에는 충북대학교 강형기 교수와 제자들의 회식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 충북대학으로 유학 와서 비영리민간단체가 지방정부 차원의 국제교류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는 네모토 마사츠구(根本眞嗣) 박사도 강 교수의 제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한국에는 226개의 마을에서 만드는 조합회가 있다. 그 고문단장인 강형기 교수는 지방자치의 일인자로, ‘향부론(鄕富論)’(1990년)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태창 선생이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25년 전에,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사회인을 대상으로 행정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강교수는 말한다. “당시에 김태창 선생님은 구름 위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1991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정보공개조례를 도입한 도시는 청주다. 조례화를 추진한 것은 강형기 교수가 교실에서 가르친 제자이다. 그리고 2년 뒤에는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의 3분의 2 이상이 정보공개조례를 만들었다. 이것에 기초하여 1996년에는 정부가 정보공개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률은 정보공개의 대상을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재판소, 국회, 특수법인, 지방자치단체에까지도 확대시키고 있다.
한편 일본은 1996년에 행정정보공개부회가 정보공개법안 요강안의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내용은 한국의 공개법보다도 뒤져 있을뿐만 아니라 아직 법안의 제출조차 되어 있지 않다. 주민투표법이나 외국인투표법의 제정 등 강 교수의 활동은 역동적이고 실적을 동반하고 있다.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강 교수의 친구인 피아니스트가 2개월 전에 오키나와의 쟈마미마을과 토카시키마을에 갔는데, 94세의 할머니가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누구한테 배우셨어요?”라고 묻자, “한국에서 끌려온 7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대단히 아름다웠는데, 매일같이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위안부의 이름도 끌려온 경위도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고 한다. 진실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12월 9일에는 이종각·장준호 두 분도 청주공항까지 배웅해 주셨고, 청주에 체재하는 김태창 선생과 잠시 이별을 하고, 카마다 교수와 나는 인천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돌아왔다.


▲ 변영호츠루문과대학 비교문화학과 교수

변영호 邊英浩
츠루문과대학 문학부 비교문화학과 교수
나 자신에게 묻는 것, 한국 고유의 것은 무엇인가
- 한국철학 발신지 청주에 동양일보가 있음을 -
일본에서 교토포럼이 인연이 된 이래로 줄곧 알고 지내온 김태창 선생이 최근에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로 돌아오셔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래공창신문’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사장으로부터 청주에서 열리는 1회 ‘동양포럼: 동양적 생명관의 재조명’(동양일보 주최. 2016년 5월 3일)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김태창 선생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자세한 내용도 모른 채 무작정 청주를 방문하게 됐다.
나는 재일교포 2세로 한국유학사상을 연구하고 있고, 때때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서울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지낸 적이 있지만, 사실 충청북도도, 청주도 첫 방문이었다. 청주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는 서원(西原)이라는 지명으로 불렸으며, 율곡 이이가 지방수령으로 부임하여 ‘서원향약’을 실시한 장소라는 인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인구가 90만명이나 되는 지방의 중핵문화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도착 후에 김태창 선생, 전 세이카(精華)대학의 츠치다 다카시 교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사장님, 조성환 박사와 함께 동양일보사를 방문했다. 그러자 먼저 와계신 유성종 전 꽃동네대 총장이 마중 나와 주셨다. 유 총장과는 안동에서 뵌 적이 있는데, 이퇴계의 ‘경사상’을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데 청주 출신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후에 청주에 체재중인 우리를 배려해 주신 점에 대해서도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방 안에는 조철호 회장이 기다리고 계셨다. 조 회장님의 말씀으로부터 지적이고 성실한 인품과 시인으로서의 정열을 곧바로 느낄 수 있어서, 존경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나에게 있어 이 방문이 주최측에 대한 형식적인 경의 표현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의외의 기쁨이었다. 조 회장의 말씀은 흥미로웠다. 기나긴 기자생활 속에서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신문을 창업하겠다는 뜻을 품게 된 이야기, ‘동양일보’를 창업했을 때 도와주기로 한 친구들의 회사에 정부가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바람에 자신의 자금만으로 창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꺼내셨다.
나아가서 청주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위치하고, 삼국시대의 중심지이기도 한 점, 지역에 뿌리를 두면서 장차 동양시대가 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동양일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IMF위기가 한창일 때에 부도난 이야기였다. 처음에 ‘동양일보’는 소규모의 자금으로 창업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인쇄공정을 컴퓨터화하여 한국의 신문출판문화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노동조합도 없는 규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대형 신문사가 노조의 반대로 사원들을 해고시키지 못해서 할 수 없었던 일을 역으로 실현시킨 것이다.
그러나 IMF때에는 이것이 역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컴퓨터 관련기계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IMF때에 한국통화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동양일보의 비용이 급상승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가 조철호 회장의 매력이다. 동양일보 1면에 “부도를 냈지만 신문은 앞으로도 계속 낸다”는 광고를 냈고, 그것을 읽은 뜻있는 시민들이 기부를 해줘 최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조 회장의 인격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때 300명 이상의 사원이 있었는데 단 한 사람도 해고시키지 않고, 대신 사원들로부터 희망자를 받아서 자진 퇴사하게 하여 100명 남짓의 규모로 재편성했다는 것이다. 이 위기상황에서 해고자를 한 사람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의 신념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인품 때문에 ‘철학하는 사람이 산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김태창 선생과 곧바로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인문학이 축소·소멸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조 회장과 같은 분이 철학과 인문학을 지탱해 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조 회장은 시인이기도 한데, 동양일보를 방문한 날 저녁에 트럼펫 연주자와 시인들을 초대하여 낭송회를 열고, 직접 지은 ‘청주의 여성들은’이라는 청주 여성의 높은 품격을 찬양하는 작품까지 들려 주셨다.
다음날에 있었던 1회 ‘동양포럼: 동양적 생명관의 재조명’은 일원적인 일본적 생명관, 이원적인 중국적 생명관, 그리고 삼원적인 한국적 생명관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10월 1~3일에 대규모로 개최될 동양포럼의 준비모임과 같은 성격으로, 이후의 포럼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지금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데, 항상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고유의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이다. 그런데 한국학자들을 만나면 대개는 서양이나 중국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을 알고 싶어서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까지 서양이나 중국, 또는 일본에 대해 배울 생각은 없다”고 항상 불만이 쌓여있었다. 그런 때에 김태창 선생을 만났는데, 선생 역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더 나아가서 이 문제에 대해 뛰어난 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조철호 회장도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김태창 선생과 의기투합해서 ‘동양일보’를 걸고 지원할 것을 약속해준 것이다.
나는 김태창 선생이 산수(傘壽)를 지나서 고향에서 커다란 지원자들과 지우(知遇)를 얻은 것이 대단히 기뻤고, 이것이 앞으로 형태를 갖추어 나갈 가능성을 느꼈다.
나도 여기에 대해서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고, 나아가서 청주가 장차 동양의 중심지로 문화교류와 한국철학의 발신지가 되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그 청주의 중심에 ‘동양일보’가 있음을 알게 해준 여행이었다.

2023/04/26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0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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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4.26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9월 7일 토요일

나는 문재인과 그의 정치적 동지들이 그토록 목을 매는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남북통일이라는 구실로, 무조건 아부하는 태도가 역겨운데, 북한 쪽의 오만과 대응이 반감을 증폭시킨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당시에는 6.25남침이라고 불렀다.─ 때 피난을 못가서, 반년 정도 북한 지배하의 생활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아도 입만 열면 이데올로기 타령을 하고, 과격한 선전 선동에 신물이 나는 나날이었다. 지금 TV 화면을 통해서 보는 오늘의 북한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은 자주 동서남북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고, 교수・ 학자들이나 관료들과 공공철학의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다언무실(多言無實=말은 많은데 내용이 없다)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소감이다. 자기주장만 장황한 반면 남의 말을 경청하려는 자세가 미흡하다. 러시아는 과거의 문학이나 예술이나 철학에는 깊은 관심을 가졌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현재의 러시아에는 몇 번을 가보았으나, 전연 호감을 가질 수 없었다. 문재인 정권과는 국제 감각이 아주 다른 것 같다.



9월 8일 일요일

나는 문재인 정권이 언제나 어디서나 소리 높여 강조하는 공명・공정・정의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 가치를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수용할 수 없다. 문재인이 주장하는 바를 잘 살펴보면 정의를 전적으로 공권력=국가권력의 행사를 통하여 실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의독재=정의가치 실현을 위한 독재에 지나지 않는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은 정의는 개개인의 자유(自由)와 자성(自省)과 자제(自制)가 그 기본전제가 될 때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적 사태발전 때문에 개개인의 자유와 자성과 자제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게 될 때에 한해서, 국민적 합의에 의하여 제정된 법적 절차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처하여야 하는 것이다.

공권력의 행사는 집권세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행사되면 사권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공권력은 자의적인 인치(人治)의 위험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철저하게 법치(法治)의 원칙을 충실하게 준수하여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는 이러한 의미의 법치감각이 희박한 것 같다.



9월 9일 월요일

조동삼 교수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이원오의 ‘황혼(黃昏)-3’이라는 시(詩)가 마음에 든다.



늙어가는 길...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이 마음과 같이 않고

方向感覺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不安한 마음에

멍하니 窓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好奇心과 希望이 있었고

젊어서는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切實하고

애틋한 親舊가 그리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보면

或是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老慾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所望하면서

黃昏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丹楓처럼

해돋이보다 아름답다는 해넘이처럼

그렇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9월 10일 화요일

외국에 와 있는데도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보통사람의 상식적 판단과 너무나 어긋나기 때문에, 국내외의 조롱과 비아양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 나라사랑이 입은 상처가 심하게 아리다.

온갖 비리와 부정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을, 절대적 다수의 반대를 묵살하고 법무장권에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국민이 극심하게 분노하고 있다. 대한민국 ‘法務部’가 무법자의 장관임명으로 말미암아 ‘法無部’로 전락되고 말았다는 데에 대한 분격이다.

법질서 위반자를 법질서에 따라 심판대에 세우는 일은 검찰총장의 몫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겪게 되는 비상사태가 발생되었다. 현역 법무장관이 현역 검찰총장과 정면충돌을 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에게는 조국과 절대로 갈라질 수 없는 아주 특수한 공동이해관계가 있는 것 같다.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능력과 책임수행 여부가 우리 모두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9월 11일 수요일

일본인의 한국 인식은 원래 별로 좋지 않다. 배용준・최지우 주연의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한때 일본 여성들의 뜨거운 열중물입으로 한일관계와 대 한국인식을 상당한 정도까지 개선시켰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천황이 종군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이 있을 후에, 급격히 냉각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비우호적 대일 태도 때문에 긴장관계가 계속되다가, 미국의 끈질긴 종용에 의해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국가가 기본양해가 이루어져 약간의 호전을 보이는가 싶었는데, 문재인 정권의 극단적인 반일감정 외교로 인해서 더 이상의 우호국이 아닌 적대국 관계가 되고 말았다.

한국을 비아냥하고 비판・ 매도・ 악담・ 냉소・ 무시・ 경멸하는 책자도 많이 나왔고, 잡지나 주간지의 기사도 넘쳐난다. 염한・ 반한을 쓴 것이면 무조건 잘 팔린다는 출판사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근의 염한론의 홍수는 비정상적이다.



9월 12일 목요일

오전 11시 30분, 우메다 3번가 17층의 우메노마라는 일식식당에서, 후지가미 회장, 우에모토씨, 야마모토 사장과 함께 점심을 하면서 담소하였다. 우선 토비오카 켄씨를 만나게 되어 대단히 기뻤다는 데에 대하여, 나도 그분에게는 도움을 많이 받았고 배운 바도 많았던 잊을 수 없는 일본인의 한 사람이라고 호응했다.

코마쓰시와 코마니 회사의 협력 사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국제도시 코마쓰 10년 계획이 양쪽의 합의에 의해서 공동추진하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노년철학과 제론토피아 구상도 포함하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말도 있었다.

야마모토 사장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미래공창신문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데 공감을 나누었다.

노년철학 대화모임을 확장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들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구체적인 협조방안을 강구해 보겠다는 말도 있었다.



9월 13일 금요일

일본에 있는 동안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매일 아침에 신선한 여러 종류의 야채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고, 소금버터식빵, 치즈, 소시지, 그리고 밀크 티가 모두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맛이 있다. 양질의 마도 갈아먹는데, 모든 것이 선도가 높고 가격이 저렴하다. 한국보다 싸다.

점심에는 연어, 고등어, 가자미, 도미가 맛있게 구어 포장된 것도 그냥 사다 먹으면 되는데, 내 입맛에 딱 맞는다. 시금치나 무나, 특히 양배추와 두부를 넣어서 만든 된장국이 구미를 돋운다. 낫또와 일본간장의 배합, 거기에 약간의 와사비를 섰으면 그야말로 진미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모즈크라는 해산물이 있는데, 그것도 나는 좋아한다.

저녁에는 가볍게 소화 잘되는 것을 먹는데, 우메보시나, 쓰케모노류를 발효보리를 섞은 밥과 함께 먹는다. 식사 때마다 식후에 아마자케(甘酒)와 요캉(羊羹)을 먹는데, 한국의 감주나 식혜 그리고 양갱과는 아주 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는 일본 것이 더 맛있다.

그러나 나는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에서 살 수 있는 것을 먹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것을 먹는다.



9월 14일 토요일

오사카의 우리 집은 작은 아파트지만 살기에 편안하고, 여러 모로 편리해서 좋다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전차역이 걸어서 2분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고, 온갖 생활필수품을 고르게 갖춘 슈퍼마켓이 여러 곳에 있으며, 다양한 전문분야의 병원이나 진료소, 약국 그리고 나이 들면 때때로 찾게 되는 정골원, 지압과 안마와 침구의 시술소 등등이 모두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특히 내게는 그 어느 것보다 꼭 있어야 되는 크고 작은 서점들이 가까이 있어서 아주 좋다. 그때그때의 신간서적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에서 점검할 수 있고, 더 깊고 넓은 정보, 지식, 지혜를 위해서는 전차 타고 15분 정도를 가면 규모가 크고 구색도 충실한 대형서점이 여러 개가 있어서, 한 바퀴를 돌아보고 오는 것도 힘은 들지만 내게 있어서는 더 없이 행복한 일과가 된다.

세계에 여러 나라들의 여러 도시를 다녀보았지만, 언제나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예외 없이 서점이었다. 서점이 없는 도시는 내게는 사막처럼 느껴진다. 좋은 서점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었다.



9월 15일 일요일

오사카의 우리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조촐한 행복은 아침 일찍─계절마다 다르지만, 요즘은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 일어나 세수, 세면, 세족, 세심을 마치고, 왕복 1km의 오솔길을 걷는 것이다. 한쪽에는 넉넉한 흐름이 심신을 정화시켜주는 강이 있고, 또 한쪽에는 곳에 따라 키 작은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혼과 영을 미화시켜주는 강변의 소로다. 길은 더 멀리까지 펼쳐 있지만 내 체력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500미터를 돌아온다. 아침걷기를 하는 동안에 하루를 시작하는 몸과 마음과 얼을 정리하는 귀중한 1시간이다.

젊은 남녀, 중년의 남녀, 그리고 노년의 남녀가 한결같이 편안한 표정으로 산책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더러는 인사말을 나누고, 더러는 말없이 목례를 나누고, 더러는 그냥 조용히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모두가 이른 아침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청신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고 심・신・혼을 말끔히 정화시키는 것 같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기쁨이 불특정다수 타자들의 기쁨과 어우러지는 묘미를 충분히 음미하는 철학의 오솔길이 바로 가까이 있어서 오사카의 우리 집이 좋다.



9월 16일 월요일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상관없이 새벽 3시 전후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올리브유로 입안 청소를 하고─25분간─, 양치를 하고 온수(+레몬즙) 두 컵을 마신다. 1시간 후에 계피+생강+코코아+레몬+오리고당차. 또 1시간 뒤에 프로바이오틱스 한 알. 세수, 세면, 세심을 통하여 심・신・혼을 세척한다. 평균 3회 배변과 배뇨.

말끔히 비워진 몸과 마음과 얼에 새날의 새 공기를 한껏 채우고, 낡고 상한 공기를 남김없이 밖으로 내보내는 나 나름의 호흡조절운동을 한다. 험한 날이면 방안에서, 그러나 웬만한 날씨면 되도록 밖에 나가서 바깥공기를 호흡하도록 한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와 공기의 질 좋다, 보통이다, 나쁘다는 둥의 기상정보를 일일이 확인해야하기 때문에 대단히 번거롭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걱정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하루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오늘 오후 7시 50분발 제주항공 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는 한국 나름의 삶을 통해서 노년철학 대화를 계속한다. 한국에서 찾는 행복은 일본에서 찾는 행복과 같을 수는 없지 않는가?



9월 17일 화요일

다시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새벽 2시 40분 잠에서 깨었다. 이것은 오늘의 아침을 나열한 것이지만 보통 매일 나의 아침은 이런 루틴으로 시작된다.

깊은 심호흡으로 하루 시작─내장 깊숙한 곳까지 새 공기가 들어가서 묵은 공기를 밀어내고 내장 안팎의 공기순환을 열 번 반복한 다음, 스트레칭─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시에 움직이고 밤새 굳어진 것을 연화시키며 허리를 좌우로 흔들고 팔다리를 위로 펼쳐 올렸다 내렸다 열 번씩 되풀이했다.

그러고 나서 기상!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로 입안을 청소, 소금으로 양치, 곧바로 섭씨 60도의 온수+레몬즙 두컵, 내장상태에따라 3~4회 배변과 배뇨, 몸안과 마음속을 말끔히 비우고 씻어내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계피가루+생강+코코아가루+레몬즙+올리고당을 섞어 만든 계피차 한컵을 마시고 40분 정도의 신문, 유튜브, TV, 프로바이오틱스 한알

오전 6시 오늘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상태가 좋고 맑은 날씨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집밖으로 나가 1 km정도의 아침산책 후, 샤워하거나 세수, 세면, 세족을 끝내고 세심(마음을 씻음)

오전 7시 요쿠르트+견과류+사과 반쪽

오전 7시 30분 기주떡 한조각+야채+식혜 한컵

85세의 내게 있어서 하루의 시작은 다소 복잡하고 주의 깊은 매일 진행되는 루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병원신세 안지고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현재의 노년기 문제인 배변과 배뇨의 이중 장애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한 양생실천이고 천천히 좋아지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이렇게 해서 커다란 부작용 없이 노년철학대화활동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소박한 일상의 행복이며, 이런 삶을 오늘 이 순간까지 이어오게 된 것에 그저 감사 할 따름이다.


2023/04/17

Taechang Kim 朝鮮人の日本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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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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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hang Kim

日本人の朝鮮観の基本を"蔑視"と見立てた著者がたどり着いた朝鮮人の日本観
は一言ですので、"嫌い"であると見て
"朝鮮人民が日本を嫌う一番大きな原因は、いうまでもなく、秀吉軍の侵略と、明治期の朝鮮侵略過程とその完成という、二度にわたる侵略と、その思想的根源の温存である (vi-viiぺーじ)と言ってますが
ふぉう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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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 Ha Lee

현재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도 상이하고 역사교육조차도 왜곡되고 있습니다. 한일간 역사의식 공유는 그 다음이라고 봅니다. 이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와도 직결되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느냐와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Dong Ha Lee

현재, 일본은 한국을 '멸시'하는 극우가 있을 것이고 나머지는 '경계' 또는 일부 '호감'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아직도 '혐오'가 다수이고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는 소수라고 봅니다.
두 나라 공히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양국 감정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좋은 일본문화는 받아들이자"고 개방하고, 노무현 정부도 이를 이어갔으나, 문재인 정부때는 '혐오' 감정이 증가한 것은 좌파 정권의 아이러니? 위안부와 신사참배를 둘러싼 전 아베 정권과의 충돌때문인지? 하여간 정치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朝鮮人の日本観―歴史認識の共有は可能か 単行本 – 2002/9/1
琴 秉洞 (著, 原名)
すべての形式と版を表示

280ページ
2002/9/1

内容(「BOOK」データベースより)
足利時代から戦前の朝鮮植民地期までの朝鮮人の代表的な日本観を通覧した初めての書。
内容(「MARC」データベースより)
過去において、朝鮮人は日本をどうとらえていたのか? 足利時代から戦前の朝鮮植民地期までの朝鮮人の代表的な日本観を通覧する。86年自由国民社刊「朝鮮人の日本人観 総解説」をもとに新たに書き下ろしを加えた書。

著者略歴 (「BOOK著者紹介情報」より)
琴/秉洞
本籍、朝鮮慶尚北道聞慶郡。1927年福岡県生れ。
元朝鮮大学校図書館副館長(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です)
===



日本人の朝鮮観 単行本 – 2006/9/27
琴 秉洞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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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略歴 (「BOOK著者紹介情報」より)
琴/秉洞
本籍、朝鮮慶尚北道聞慶郡。1927年、福岡生まれ。元朝鮮大学校講師、元朝鮮大学校図書館副館長(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です)


登録情報
出版社 ‏ : ‎ 明石書店 (2006/9/27)
発売日 ‏ : ‎ 2006/9/27
言語 ‏ : ‎ 日本語
単行本 ‏ : ‎ 303ページ
カスタマーレビュー
5つ星のうち5.0
5/5


上位レビュー、対象国: 日本


渡辺 誠一

5つ星のうち5.0 日本人に共有されるべき2016年2月17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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歴史の真実、歴史は常に現在から再審されている
吉田松陰、永井荷風の項は真実を描写し、日本人に共有されるべき一稿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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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8

이택환 목사 - 그리스도인 우리도 과거에 이미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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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목사 at 그소망교회, Studied 신학 at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Studied 사회학 at 고려대학교
그리스도인의 부활이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과거에 이미 부활했다. 아니 역사상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유일한데 어떻게 우리가 부활했다는 건가? 더구나 우리는 죽지도 않았는데 부활은 무슨 부활? 그런데 바울은 골 3:3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죽었고...”, 여기서 '죽었다'가 과거시제다(정확히는 아오리스트). NIV 영어성경에도 ‘you died’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장례식도 치른 적이 없는데 언제 죽었다는 걸까? 골 2:1에서 바울은 “너희가 세례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다”고 했다. 단지 죽은 게 아니라 장사되어 이미 땅에 묻혔다는 것이다(buried)’. 세례 함부로 받을 게 아니다. 세례는 내가 죽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세례받아 죽었다는 우리는 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가? 바울은 골 3:1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 우리가 세례받을 때 죽어서 땅에 묻혔지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것이다. 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살고 있다(“You have been raised with the Messiah”- NIV, 현재완료).

물론 여기서 우리의 죽음과 부활은 모두 상징이다. 즉, 앞으로 우리가 죽을 것도 실제이고 마지막 때 부활할 것도 실제이지만, 우리는 지금 미래의 부활의 삶을 상징적으로 살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미래의 실제적 부활보다 현재의 상징적 부활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바울도 우리가 장차 마지막 때 부활 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보다, 지금 어떻게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늘 초점을 맞춘다. 이는 우리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완성될 것을 믿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나라가 이미 현실 속에 이루어진 줄로 믿고(상징) 오늘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실제로 부활한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 부활한 것처럼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예수님처럼 벽을 뚫고 지나가라는 게 아니다. 바울은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한다(골 3:1a). 위의 것? 그런데 2절에는 ‘땅의 것’이 나온다. 그러면 ‘땅의 것’은 또 무엇인가? 바울은 골로새서 3장 5절부터 4장 6절에 걸쳐, ‘위의 것’과 ‘땅의 것’의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다. 가령, ‘위의 것’은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사랑, 평강, 말씀, 감사, 찬양 등이고(12-17), ‘땅의 것’은 우상숭배로 대표되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등이다(5).
그러나 무엇이 위의 것이고 무엇이 땅의 것인지 구분하는 목록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그것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때로는 ‘땅의 것’인 ‘거짓말’이 ‘위의 것’이 될 수도 있다.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의 은신처를 묻는 나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땅의 것'이라고 해야 할까? 또 나치처럼 불의한 권력에 분노하지 않고 '감사'한다면 그 감사는 오히려 '땅의 것'이 되지 않겠나? 따라서 위의 것과 땅의 것의 문자적 목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위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골 3:1b).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저 높고 높은 하늘 위 어딘가에 하나님 보좌가 있고, 바로 그 옆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나라를 받아, 당신이 친히 그 나라를 통치하신다는 그림 언어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왜 위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대, 즉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 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위의 것을 찾아야지, 땅의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 나라는 우리가 죽은 뒤에나 들어가는 저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받고 예수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써 이미 그 나라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미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우리의 몰골이 왜 이 모양일까? 아직은 모든 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골 3:3). 즉 세례를 통해 과거의 우리가 죽었고, 새로운 부활의 새 생명의 몸을 상징적으로 입기는 했지만, 그 실체는 아직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작은 씨앗 안에 큰 나무가 감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도 겨자씨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다. 작은 씨앗의 형태만 보고 우리가 큰 나무의 실체를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다(그러나 다들 부활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감추어진 비밀의 실체가 드러나는 때는 언제일까? 우리 생명이신 예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 그때 우리가 지금 상징으로 입고 있었던 우리의 부활의 몸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골 3:4). 그날을 바라보며 현재를 고난을 이겨내는 우리는, “나중에 그때가 되면...”이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이전 시대에 속한 땅의 것이 아닌 새 시대,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이 땅에 하나님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부활의 새로운 창조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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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 Ju Kim and 7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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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하
    부활의 몸을 산다는 말씀이 놀랍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공동체로 살고 공적으로 사는 게 부활을 사는 삶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성익
    목사님, 성경에서 말하는 삶과 죽음은 영이 죽어있는 채로 그대로 있는가, 아니면 영이 다시 살아났는가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 윤대일
    목사님 좋은 설교 잘읽고 갑니다 ㅎ 요즘 교회를 나가지 않는데 좋은설교 접하게되어 즐겁내요ㅎ
    • 이택환
      윤대일 언젠가 교회에 다시 나가실 수 있기를, 그리고 항상 신앙 잃어버리지 않으시기를 기도합니다.
  • 허재협
    좋은 설교말씀 감사합니다.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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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 Facebook  위안부 검색

윤미향을 돈독 오른 운동가 취급하는 인간이나 이용수 할머니를 돈독 오른 노욕자 취급하는 인간이나 다 똑같다.
윤미향의 문제는 돈독보다는 부실한 회계의 문제다.
그러나 부실한 회계가 아무리 열악한 시민단체의 관행이라 해도 돈독 문제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어느 단체나 부실한 회계가 누적되면 돈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용수 할머니를 돈독 오른 노욕자 취급하는 것은 나가도 한참 나갔다.
만약 그런 시각을 매일 성경말씀 깨나 연구한다는 목사가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그딴 성경연구 하지 않는 게 낫다. 성경을 연구할수록 현실을 통찰하지 못하는 몽상가가 될 바에야 그가 하는 성경연구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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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21, 사순절 두 번째 주일
“저 여우에게 이르되”(눅 13:31-33)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라는 헤롯의 요구/협박을 거절하고,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 사역을 계속하셨다. 그 사역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이다(13:32).

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오늘날에도 교회가 “귀신 쫓아내고 병 고치는 사역”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먼저 오늘날에는 귀신들린 사람이 거의 없다. <정신병인가 귀신들림인가?>의 저자, 정신과 전문의 김진 선생에 의하면, 귀신들림 현상은 대부분 ‘정신병’이다.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귀신들림을 인정하지만, 이제껏 수천 명의 환자를 진찰해 오는 동안, 그런 환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교회가 문자적으로 병 고치는 일을 하겠다? 그러려면 교회가 병원과 싸워야 한다. 싸워도 이길 수 없다. 병 고치는 것은 교회가 아닌 병원이 전문이다.

그러면 교회가 할 하나님 나라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함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이다. 쫓아낼 귀신도 없고, 병은 병원에서 고쳐야한다고 하더니, 다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라? 그렇다. 사실 세상에 귀신이 없는 게 아니다. 당장 가정에 폭력이 난무하는 것이 증거다. 최근 한 신학자가 자신의 중학생 딸을 때려죽이고, 1년간 집에 방치한 사건을 비롯하여, 부모 폭력에 의한 자녀 사망사건이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이미 우리 가정이 귀신 놀이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 사역은 우리 가정에서 그런 귀신들을 쫓아내고 그로 인해 생긴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정에 사랑과 평강이 가득하게 하는 일이다.
교회는 어떤가? 주변에 벌써 몇 년 째, 매 주일마다 성도들이 서로 싸우면서 예배하는 교회가 두어 곳 있다. 모두 버젓한 건물이 있고, 교인도 한 때 1000명에 달했던 곳이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가 왜 이렇게 갈라져서 이웃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을까? 예수님 시대에는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었다. 요즘은 교회가 그러하다. 재정이 불투명한 교회, 비자금이 있는 교회, 직분을 매매하는 교회, 목회자 범죄도 표절, 횡령, 도박, 성매매, 칼부림 등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교회마저 귀신의 광기가 각축을 벌이는 곳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 사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런 귀신들을 쫓아내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요즘 한반도에는 전에 없는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국민 절대 다수가 굶주리는데, 핵 개발에만 몰두해 온 북한, 그렇다고 우리까지 이제 북한과 대화는 물론 모든 관계를 끊는다며, 멀쩡한 개성공단을 철수해서 자산을 다 북에 몰수당하고, 싸드가 필요하다는 사람들, 그러나 자기 지역에는 두기 싫다는 사람들, 미국과 일본과 중국은 한반도가 마치 자기 땅인 양 맘대로 간섭한다.
그 와중에 위안부 문제는 이상한 방식으로 이미 최종해결이 되었다니, 제정신이 있는지, 모두 귀신에 홀린 것 같다. 무너진 공교육, 높은 청년 실업률, 노인 자살률, 위태한 가계부채, 이 모든 것 뒤에는 자본주의 귀신이 도사리고 있어서 돈이면 무엇이나 가능하다고 사람들을 계속 세뇌한다. 하나님 나라 사역은 이 모든 21세기 귀신들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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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난 비록 박근혜일지라도 임기 중 남북평화를 다진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랬다.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랬다.
요즘 황아무개, 나뭐시기를 비롯한 그 당 관계자들을 보면, 문재인의 파멸을 위해서라면, 북한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쏴대도 좋고, 심지어 일본이 독도를 가져가도 좋다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가 잘되기보다, 차라리 경제가 파탄 나서라도 오직 문재인이 망하기만 바라는 자들 같다. 내 생각이 큰 착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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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

“민주주의 국가는 대다수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통치자를 가진다.” 일전에 내가 한 말이다. 알고 보니 토크빌이 오래 전에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당시 그가 대다수 국민의 수준에 맞기 때문이었다.
장신대 김철홍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하나님이 한국을 버리지 않으신 증거로 여겨 안도했단다. 김삼환 목사는 2014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 통일을 위해 세워주신 하나님의 일꾼 고레스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서경석 목사는 링크된 싸이트에 나오듯이 탄핵을 반대한다).
당시 최소한 과반 이상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이 이랬었다. 그들 대부분은 희한하게도 사드, 국정교과서, 한일 위안부 협상, 개성공단 폐쇄 등에 대해 패키지로 찬성의 입장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눈높이가 같기 때문이다.
어제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었다. 대다수 국민이 그를 대통령 자리에 계속 앉히기를 거부한 뜻이 반영된 것이다. 난 국민의 수준이 4년 전보다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 수준 그대로인 사람들이 있다. 국회의원 중에도 최소한 56명이 있다. 목사, 장로 등 기독교인 중에도 여전히 많을 것이다.
이제 기독교도 좀 수준을 높이자. 상식을 갖추자.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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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아도, 아직 길이 멀다
야당이 아무리 필리버스터를 해도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테러방지법 찬성이다. 지난 해 11월 27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테러방지법 필요 64.8% vs 불필요 22.6%로 나타났다. 기독교인만 대상으로 하면 틀림없이 찬성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비단 테러방지법만 그런 게 아니다. 개성공단 폐쇄, 한반도 사드 배치, 한일 위안부 협상, 국사교화서 국정화 등, 일련의 국가 현안들에 대해 늘 찬성이 반대보다 더 높다. 이 또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찬성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 모든 일에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근거가 있다. 아니, 국민들이 원한다는데! 게다가 사람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특히 목사, 장로들)이 더 원한다는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며!, 근데 모든 조사에서 더 많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심지어 하나님도 원하시는 것을), 왜 야당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이들이 자꾸 발목 잡느냐고!
우리는 대통령을 이해해 드려야 한다(그의 짜증스런 반응을 충분히 공감해 드려야 한다). 요즘 캐나다 총리가 훌륭하다고들 하는데, 캐나다의 모든 것은 캐나다 국민이 만든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만든다. 지도자 또한 나라마다 국민 다수가 좋다고 선택한 사람이 된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한 그러하다. 우리나라도 국민이 원하는 데로 가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저항임을 안다. 또 저항하지 않으면 현 체제가 더욱 확고해지리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주변(페북 등)에 모든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왜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가? 쉽게 분노할지 모른다. 그러나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 혹은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문제다. 일부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일부는 오직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므로 몇 자 덧붙인다)
민주주의가 잘 되려면 국민이 스스로 건전한 판단을 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런 판단보다 늘 해오던 대로 과거의 것을 답습하거나 누군가의 대리판단을 추종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망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이 특히 더 그런 면이 있다. 요즘 기독교는 여러 모로 악성종양스러워 보인다. 그러니 한기총 같은 기독교 단체에게 누가 빛과 소금 역할을 기대하겠는가? 오히려 항암 방사선 치료가 필요하다.
보수교계, 테러방지법 환영...시민단체들은 '반대'
VERITAS.KR
보수교계, 테러방지법 환영...시민단체들은 '반대'
보수교계가 정부가 추진하는 테러방지법에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이하 한기총)는 22일 "국회는 테러방지법을 즉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기총은 테러방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앞서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최우선적으로 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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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어디 청소년뿐이겠는가? 청장년, 노년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디 이슬람, 낙태, 동성애, 혼전 성관계, 종북, 술/담배뿐이겠는가?
진화적 창조론(혹 유신진화론),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칼 바르트 자유주의를 따르는 행위,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톰 라이트 행위구원론을 추종하는 행위 등,

이 모든 것이 한국 교회를 말아먹는 사탄의 놀음이요,
한국 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드는 마귀의 장난이렸다!
- 그러니까 한국교회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법하다. 한마디로 뭣이 중헌지를 모르는 것이다.
 


1. 한 청소년 캠프 단체의 홍보 문구를 보고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다.
"이슬람, 낙태, 동성애, 혼전 성관계, 북한의 위협,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등의 죄와 마귀의 세력을 이겨야 한다."
2. 실제로 많은 기독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만나본 결과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음란', '우상숭배', '동성애'. '주초', 마귀의 세력은 '종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죄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선동은 많은 청소년을 우경화 시키고 있다. 저들의 우경화 운동은 트랙터로 모내기하는 수준이라면 하나님 나라 운동은 낫으로 모내기하는 수준이다.
3. 정작 성경에 이슬람, 낙태, 동성애 북한의 위협과 관련된 구절이 몇 구절이나 될까? 정말 대한민국의 위기가 이슬람, 동성애, 북한의 위협인가?
4.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슬람 낙태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소득 불균형, 혐오, 기회 불평등, 가계부채, 청년 실업, 인권, 위안부 보상문제, 세월호 진실규명 방해, 정치권 부정부패 등의 이유다.
5. 청소년들이 살아갈 사회의 죄와 마귀의 세력은 자본주의와 자유지상주로 점철되는 헬조선이다. 자신의 성공과 지위, 재산을 지킬 수만있다면 약자를 짓밟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진정 청소년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다.
6. 많은 기독 청년들이 헬조선에서는 무기력하고 교회에서만 강자가 되는 이유는 어릴적 자리 잡은 죄와 마귀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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