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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불교근본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교근본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흙속의연꽃

2015. 10. 20.

불교근본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한국불교에서 이상한 풍조가 있다. 그것은 불교와 과학을 접목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대승경전의 정수라 불리우는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공즉시색’을 양자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을 탐독하였다. 현대물리학자 프리쵸프 카프라 교수가 지은 이 책은 이제 고전이 되었다. 70년대 말에 출간 되어 80년대 많이 익혔던 책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검증되어 스테디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여러 번 읽었다.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던 시절 서양의 종교가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현대물리학이 동양사상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에 관심이 컸다. 더구나 이어지는 카프라 교수의 저서에서는 미래에는 동양사상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 예언하였다. 이에 크게 고무 되기도 하였다.

더 이상 현대과학과 동양사상의 접목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부처님의 원음을 접하였기 때문이다. 빠알리니까야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 원음을 접하다 보니 색즉시공공즉시색이 양자역학과 유사하다는 공의 가르침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괴로움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불교와 과학의 접목

과학과 불교를 접목하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 있다. 주로 학자들이다. 그것도 과학에 기반을 둔 자연과학자들이다. 그래서일까 불교방송사이트에 가 보면 수 많은 강연을 볼 수 있다.

이미 종영 된 것이지만 사이트에 보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불교와 과학의 만남, 초끈이론과 화엄사상 박문호특강 <137억년 우주의 진화> 등 이 있다. 심지어 어느 원로의원 스님은 ‘힉스’발견에 대하여 “그 힉스라는 소립자는 그냥 공이 아니고 이 공은 다른 에너지를 만난다든지 하면은 물질화 되는 공이에요. 이런 공은 여태 이야기 안했어요. 불교말고는 안했어요. 그래서 소위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화 될 수 있는 그런 요소가 있는 이것을 우리 불교에서는 자성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현대물리학하고 거기 언젠가는 발견이 되겠지요.” (고우스님, 백년의 가르침 성철스님 백일법문<법사 고우스님>, 제2회 1.불교의 본질-깨달음의 종교2, 불교TV 2013-02-25) 라고 말한 바 있다. 더구나 원로스님은 힉스발견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하면서 반야심경에 표현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가르침을 증명해 줄 것이라 기대하였다. 과연 과학불교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 줄까?

등따습고 배부른 자의 환망공상

불교를 과학과 접목하려는 시도는 요새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포항공대 수학과 강병균 교수는 ‘진화연기론’을 들고 나왔다. 부처님의 연기법에 대하여 진화론적 관점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회의’ 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 작성된 환망공상에 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적으로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자연과학과 인문과학)과 다른 사상과 남의 종교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깊이 사유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광신과 근본주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자기 종교만 옳다거나 경전의 말은 한 구절도 빠짐없이 문자 그대로 모두 옳다는 망상에 걸리지 않으며, 이미 걸렸다면 깨어날 수 있다. 거룩한 모습을 한 종교인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의 마음은, 사실상, 황량한 바람이 마른 땅을 훑으며 모래를 퍼 올려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환망공상의 사막이다. 인간은 누구나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건너간, 악령이 들끓는, 고비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지밀(至密)한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당사자도 모른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위대한 이유이다.

(족외혼: 정신적 유전자의 혼합,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70. 불교닷컴 2015-10-19)

한마디로 등따습고 배부른 자의 환망공상이라 볼 수 있다.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근본주의라는 말이다. 이 근본주의에 대하여 광신이라는 수식을 하였다. 그렇다면 광신적 근본주의는 어느 종교를 지칭하는 것일까? 주어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종교가 해당 될 수 있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명확하다. 그것은 초기불교주의자들을 말한다.

뭐? 광신적 근본주의자라고?

초기불교주의자들은 철저하게 경전을 기반으로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 다른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경전위주이다. 그런데 강교수 마치 초기불교 하는 사람들에게 근본주의 딱지를 붙이는 것 같다. 그것도 광신적 근본주의라 한다.

근본주의는 나쁜 것일까? 타종교의 근본주의를 보면 악한 것임에 틀림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 근본주의 특징은 ‘독선적 교리’와 ‘배타적 구원관’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수 많은 정복전쟁을 통하여 칼에 의하여 전파 하였다.

근본주의 또는 원리주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는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근본주의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유일신교에나 적용되는 말이다. 그럼에도 강병균 교수는 마치 불교에도 근본주의자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것도 광신적이라 한다.

강교수가 말하는 불교근본주의자들은 어떤 것일까? 이는 “경전의 말은 한 구절도 빠짐없이 문자 그대로 모두 옳다는 망상”이라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불교근본주의자들은 경전을 맹신한다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이 바이블의 한구절 한구절이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초기경전 한구절 한구절을 믿는 것이 나쁜 것일까?

경전을 믿고 따르는자 들은 기본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경전, 특히 빠알리니까야에 실려 있는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모두 불교근본주의자들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근본주의자들은 위험한 것일까? 강교수 말대로 “자기 종교만 옳다거나 경전의 말은 한 구절도 빠짐없이 문자 그대로 모두 옳다”라고 하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이슬람이나 기독교와 같은 근본주의자들은 비판의 대상이다. 이는 독선적 교리와 배타적 구원관에 따른다. 그러다 보니 지난 역사가 증명하듯이 수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다. 그렇다면 불교근본주의자들도 유일신교 근본주의자들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할까? 아쉽게도 강교수는 동일시 하는 것 같다.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열렬한 불교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왜 그런가? 불교근본주의자가 되면 이 세상에 전쟁이 일어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처님의 가르침이 평화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으로 전쟁을 벌였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전도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으면 당했지 칼로서 또는 폭력으로 개종 시킨 적이 없다. 왜 그런가? 경전을 보면 알 수 있다.

불교는 평화의 종교이다. 그 어디에도 독선적 교리와 배타적 구원관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병균 교수는 어떤 근거로 ‘광신과 근본주의의 위험’이라거나 ‘자기 종교만 옳다거나’라는 말을 하였을까? 더구나 “어떤 이들은 전 세대가 뱉어낸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의 환망공상을 공부하느라 평생을 허비한다.” 라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 환망공상이라 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능욕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강병균 교수는 빠알리니까야를 읽어 보기나 하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왜 필요한가? 이에 대하여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하다(2015-06-020’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어느 법우님이 “연꽃님 글을 애독하고 있지만 가끔은 경전의 도그마에 빠져있는 것같기도 합니다. 경전은 100% 옳지는 않습니다.”라는 글을 보내 왔기 때문이다.

조성택교수 말하기를

한글로 번역된 빠알리니까야를 보면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또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뺄 수도 없다. 그럼에도 경전적 도그마에 빠졌다느니 경전을 맹신한다는 자들의 말을 이해 할 수 없다. 과연 한 번 읽어 보기나 하고 하는 말인지 의문이다. 그럼에더 “전 세대가 뱉어낸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의 환망공상을 공부하느라 평생을 허비한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등따습고 배부른 자의 환망공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회의론자들은 의심으로 경전에 대하여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과학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선별해서 읽을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경전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 후대에 조작된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불교철학자라 말하는 조성택 교수도 그런 케이스이다.

불교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불교학자 조성택 교수는 경전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빠알리니까야에 대하여 그렇다. 조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그럼, 현존하는 엄청난 분량의 불교 경전은 언제 만들어진 것들인가? 현존하는 대부분의 경전들은 초기불교 경전이든 대승경전이든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후 5세기 사이에 편찬된 것들이다.”라 하였다. 심지어 “편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기억들은 ‘단편적’이거나, 다른 기억들과 ‘불일치’ ‘상충’되는 것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일관된 내러티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단편적 이야기를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하거나, 때로는 ‘삭제’ 혹은 ‘창작’하는 등 소위 ‘편집 재량권’(editorial discretion)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피 했을 것이다.”라 하여다. 일부는 동의할 수 있지만 모두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전의 전통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종교창시자들은 일반적으로 글을 남기지 않는다. 말을 하면 제자들이 기억하였다가 전하는 방식이다. 8만 4천 법문이라는 방대한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구전 된 것이다. 그러다 후대에 문자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후대에 편집되었다느니 조작 되었다느니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는 것은 가르침을 대하는 바른 태도가 아닐 것이다.

존재론에 기반을 둔 과학불교

대체로 학자들은 경전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전에 의지 하는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로 몰아 세우고 경전을 광신한다고 폄하한다. 한마디로 그들의 눈에는 초기불교주의자들은 광신적 불교근본주의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21세기 과학문명의 시대에 과학의 눈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른바 과학불교를 말한다.

과학불교를 말하는 자들은 불교를 과학적으로 재해석한다. 과학적 지식으로 불교를 까발려 새로운 불교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진화연기론 같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과학불교는 ‘존재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과학 자체가 물질을 기반을 둔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존재론이 아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세상의 근원이 되는 존재의 근원이나 궁극적 실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부처님은 오온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십이처와 십팔계의 가르침을 말하였다. 이렇게 철저하게 인간의 물질과 정신에 대하여 분석적으로 관찰한 것이다. 그러나 강교수류의 과학주의자들은 우주를 도입하고 식물이나 광물을 끌어 드린다. 또 지렁이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강교수의 환공망상 시리즈는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부처님은 인간의 물질-정신현상 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말룽끼야뿟따가 우주에 대하여 물어 보았을 때 침묵한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물질에 기반을 두고 존재론에 기반을 둔 과학으로 불교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인식의 지평을 열어야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진 오온에 대한 탐구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는 다른 아닌 인식론이다. 오온을 탐구하여 현상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무아’로 귀결된다. 이는 인식의 확장이다.

불교는 인식론이다. 왜 인식론인가? 그것은 가르침을 접하면 인식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접하기 전에는 오로지 자신의 세계밖에 몰랐지만 가르침을 접함에 따라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이는 사성제의 진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한국불자중에 사성제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 본다. 그것은 초기경전을 접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이 생노병사 등 여덟 가지 괴로움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 부처님이“이것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이다.”라고 하였을 때, 누군가 “아니요,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부처님이 괴로움의 진리를 말하였을 때 누구나 진리로서 받아 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후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해서 진리의 수레 바퀴는 콘단냐의 깨달음이후 지금까지 굴러 왔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요약 되어 있는 것이 ‘초전법륜경(S56.11)’이다.

반야심경 대신 초전법륜경을

초전법륜경을 법회시간에 독송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대승불교의 정수 반야심경 을 초기불교의 정수 초전법륜경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것은 초전법륜경에 실려 있는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한 가르침이 방대한 빠알리니까야를 압축적으로 표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을 대승경전의 정수라 한 것은 대승경전 전체를 압축적으로 잘 표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초전법륜경은 초기경전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초전법륜경을 늘 수지독송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강교수는 “어떤 이들은 전 세대가 뱉어낸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의 환망공상을 공부하느라 평생을 허비한다.” 라 하였다. 과연 초기경전을 읽어나 보고 한 소리인지 의문이다.

백인백색의 불교

초기불교경전 즉, 빠알리니까야는 부처님의 원음이다. 그럼에도 후대에 편집되고 조작된 것이라 하여 불신하는 회의주의자들이 있다. 특히 좀 배웠다는 학자들이 그렇다. 스님들과 함께 불교의 기득권 세력이라 볼 수 있는 학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폄훼하고 능멸하는 것이다.

강교수는 “자기 종교만 옳다거나 경전의 말은 한 구절도 빠짐없이 문자 그대로 모두 옳다는 망상”라 하였다. 강교수 말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망상일까?

한국불자들은 불교근본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경전을 믿지 못하고 경전을 무시하고 경전을 부정하다 보니 백인백색이 되었기 때문이다. 백인에게 백가지 불교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불교는 스님 수 만큼이나 불교가 있고, 학자 수 만큼이나 불교가 있다.

어떤 스님의 법문을 들어 보면 힌두교 교리를 듣는 것 같다. 또 어떤 스님은 부처님이라는 말 대신 하나님이라는 말로 치환하면 교회에서 목사들이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한국불교는 복홥화 되었다고 한다. 우스개 소리로 한국불교힌두종 또는 한국불교기독종이라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경전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전을 무시하고 자기이야기만 하다 보니 백인백색의 불교가 되었다.

불교근본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불교에서는 자기이야기 하는 사람을 인정해 준다. 경전에 근거해서 말하는 사람을 덜 깨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소식 했다는 사람들의 법문을 들어 보며 모두 자기이야기이다. 거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보이지 않는다. 경전에 근거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매우 다양한 불교가 등장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강병균교수의 진화연기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왜 불교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불교가 평화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바이블을 맹신하는 기독교근본주의자는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평화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가 불교근본주의자가 되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 불교근본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자들은 경전에 의존해야

불자들은 경전에 의존해야 한다. 아무리 깨쳤다 해도 경전에 쓰여 있는 가르침을 능가할 수 없다.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다.

경전에 의지하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진다. 그런 초기경전은 방대하다. 그렇다고 다 읽을 필요가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초전법륜경에서와 같이 사성제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발자국안에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포섭된다. 마찬가지로 사성제는 팔만사천 법문을 모두 포괄한다. 그래서 맛지마니까야에서 사리뿟따존자는 “벗들이여, 움직이는 생물의 발자취는 어떠한 것이든 모두 코끼리의 발자취에 포섭되고 그 크기에서 그들 가운데 최상이듯, 벗들이여, 이와 같이 착하고 건전한 원리라면 어떠한 것이든 모두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포섭됩니다. 네 가지는 어떠한 것입니까?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입니다.” (M28)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성제 하나만 이해해도 팔만사천 법문을 아는 것과 다름 없다. 그럼에도 강교수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의 환망공상을 공부하느라 평생을 허비한다.”라 하였다. 대체 사성제를 알고나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리고 경전을 읽어나 보고나 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다.

초기경전을 멀리함에 따라

불교근본주의자들은 철저하게 경전에 의존한다. 그런 경전에는 평화의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불교근본주의자가 된다고 하여 이슬람원리주의자나 기독교근본주의자를 연상케 하는 “광신과 근본주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는 표현은 무지의 극치이다. 경전을 읽어 보지 않는 자의 환공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백인백색의 불교가 된 것에는 경전을 무시해서 발생한 것이다. 경전을 폄하하고 무시하다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힌두교인지 기독교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다. 부처님이 한번도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기도가 성행하는가 하면 돈으로 매수 하는 듯한 천도제가 유행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부스님들의 막행막식은 도를 넘었다. 스님들이 재산을 소유하고 은처하는 등 온갖 범계행위가 만연 되어 있다. 이렇게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그것은 경전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가르침을 망상으로 여기는 한 한국불교는 진화연기론 같은 혼란으로 빠질 것이다. 경전을 멀리 하였기 때문이다. 초기불교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담마위자야(Dhammavijaya)

불교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불교가 평화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소까 대왕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고대인도에서 전륜성왕이라 불리는 아소까대왕이 있다. 아소까대왕은 깔링가전투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목격한 후 전쟁을 포기하였다. 그 대신 담마에 의한 정복을 추진하였다. 그것이 담마위자야(Dhammavijaya)이다. 왜 담마에 의한 정복인가?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만이 진정으로 평화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아소까대왕은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고자 하였다. 불국토로 만들기 위한 동기는 첫째로 온 세상을 전쟁 없는 극락세계로 만들기 위함이었고, 둘째로 전쟁에 의한 정복이 아닌 담마에 의한 정복을 이루기 위함이었고, 셋째로 이웃나라와 서로 평화롭게 살기 위함이었고, 넷째로 세상의 평화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동기로 담마위자야 즉,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을 추진하였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행복을 위하여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의 수레바퀴가 지금까지 굴러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대 인도에서 코끼리부대, 기마부대, 전차부대, 보병부대 이렇게 막강한 사군을 거느린 군대가 진격해 들어 갈 때 성문을 열어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이것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의 거룩한 진리이다.”“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이다.”“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이다.”라 하여 네 가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렸을 때 이를 부정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법의 수레바퀴가 굴러 왔다. 그래서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은 가능하다.







Dhammacakka


우리는 왜 담마의 정복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불교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세상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이다. 다음과 같은 아소까비문으로 알 수 있다.

“담마에 의한 정복을
가장 훌륭한 정복이라고 생각한다.
담마에 의한 정복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행복을 가져온다”(아소까 바위 칙령13)


2015-10-2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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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이쁜하마2015.10.20 10:44

불교를 과학적 시각에서 본 것은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적어도 큰스님의 입에서 불교의 과학적 분석이 거론되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달라이라마 같은 경우도 불교를 최신과학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연구하는데 아주 호의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티벳스님들의 명상상태를 심리학 뇌과학의 입장에서 연구하는 논문이 적지 않게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나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에서는 윤회의 과학적 근거로서 서구에서 환생했다고 자처하는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 등을 거론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불교에서의 윤회의 근거가 니까야 경전 도처에 존재하고 주석서에서는 아주 많이 거론되는데 굳이 서구의 환생스토리를 성철스님께서 얘기하신 것은 좀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큰스님 조차도 초기불교 니까야 경전을 잘 모르고 계셨다는 반증이 아닐까 해서 그렇습니다.

아뭏든 불교를 과학의 토대에 올려놓고 해부하고 분석하는 것은 저 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교학적 지식이나 수행의 경험이 있지 않은 범부가 오로지 자신의 과학적 견해와 타이틀 만을 믿고서 가타부타 하는 것은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에 때를 묻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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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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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015.10.20 11:17

왜 부처님 원음말씀이 들어있는 근본불교경전들이 있는데.. 어려운 한자로된 대승경전류로 불교를 말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읽으면 너무나 쉬운 초기근본경전들이 있는데 근본경전을 무시하고 뭐를 하자는 건지.

금강경의 공사상 중생구제(제도) 또한 12연기, 사성제 팔정도 수행정신에 다 녹아있다 생각되며 사성제 팔정도 수행과정속에 실현되는 문제이지 근본을 무시하고 중생구제를 대승의 전유물인양 인식하며 부처님 원음말씀을 소승이라 폄해하는 한 한국불교는 더욱더 부처님 가르침에서 멀어지고 천도제나 지내면서 복을 비는 종교로 떨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말씀 너무나 감사합니다.답글
수정/삭제

자유평화지혜2015.10.20 12:09


가장 오해받고 잘못 쓰이는 말이 근본주의입니다.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불교든
종교의 근본인 진리와 선,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경전에 매여 어떻게 광신자가 될수 있나요?
오히려 모든 종교는 진리와 선, 조건없는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늘 되돌아가야 합니다.

가장 오해하고 잘못 생각하기 쉬운 대상은
경전이 아니라 자기견해입니다.

경전이 수많은 사람의 검증을 거친 일종의 집단고백이라면
자기견해는 검증을 거치지 않고 무지와 편견에의한
독단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종교의 근본을 항시 생각하고
경전의 가르침을 분명히 알고
수행과 실천을 통해 정진하는 가운데
올바른 자기견해를 정립해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른 종교관일것입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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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2015.10.20 16:04 신고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입니다.()()()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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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티2015.10.20 17:06 신고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사성제 하나만 진리로 받아들여도

부처님의 8만 4천법문을 모두 인정할 수 있습니다.

육도윤회,천신 등의 개념도

사성제 논리로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당연한 논리입니다.

다만 후대 주석가들이 법구경을 설한 인연과 같은

설화이야기는 표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사성제의 틀에서 벗어난 가르침은 없습니다


즉 사성제만 인정하면 되는데

대부분의 한국 불자들은

'공'사상을 불교의 핵심교리로 보기 때문에

윤회도 공덕도 부정하고, 단멸론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는게 아닌가 합니다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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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ksha2015.10.21 09:42 신고

사두__()__사두__()__사두__()__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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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10:38

비밀댓글입니다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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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2015.10.21 16:05


가보세요. ~ http://cafe.naver.com/jetavana/702

초전법륜경 독송용 파일과 mp3파일의 첨부파일들을 다운 받을 수가 있습니다.

초전법륜경은 니까야 경장 속에 들어 있는 경입니다.

지금 이 사이트에서 초전법륜경으로 검색을 하시면 관련 글들을 읽으실 수가 있으며

네이버 검색으로도 초전법륜경 단독으로 출간된 책들이 몇 권 있는 것을 찾을 수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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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바다2015.10.30 06:40 신고

질문하나
연기와 무아인데
고정되지도 영원하지도 않는 무아 어떻게 윤회가 성립됩니까?
궁금합니다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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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06:41

비밀댓글입니다답글

===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댓글 5  진흙속의연꽃

2015. 6. 2.
http://blog.daum.net/bolee591/16156400
--
근본주의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하다

주로 경전에 근거한 글쓰기를 하다보면 흔히 듣는 말 중의 하나가 경전을 맹신한다는 비판이다. 어느 법우님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주셨다.

“연꽃님 글을 애독하고 있지만 가끔은 경전의 도그마에 빠져있는 것같기도 합니다. 경전은 100% 옳지는 않습니다.”

경전의 도그마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충고의 글이다. 더구나 빠알리 니까야가 100%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을 녹음해 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빠알리 니까야를 100% 확신하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빠알리 니까야에 표현된 단어하나, 문구 하나, 문장 하나에 집착하는 것에 대하여 경전적 도그마에 빠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적은 학자들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다. 2011년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 선언, 소위 21세기 아쇼카선언의 초안을 주도 하였던 고려대 조성택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럼, 현존하는 엄청난 분량의 불교 경전은 언제 만들어진 것들인가? 현존하는 대부분의 경전들은 초기불교 경전이든 대승경전이든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후 5세기 사이에 편찬된 것들이다.

편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기억들은 ‘단편적’이거나, 다른 기억들과 ‘불일치’ ‘상충’되는 것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일관된 내러티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단편적 이야기를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하거나, 때로는 ‘삭제’ 혹은 ‘창작’하는 등 소위 ‘편집 재량권’(editorial discretion)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피 했을 것이다."

 

(최초 경전 편찬은 문자의 영향, 조성택교수, 법보신문,2009-09-30) 

 대체로 학자들은 경전 전승과정에 의문을 표현한다. 학자로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나 경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교수는 21세기에 맞는 대승경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깟사빠존자는 “담마 아닌 것이 득세 하기 전에 담마를 함께 외웁시다.”라고 하여 결집을 주도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는 대중들이 합송하여 오늘날 볼 수 있는 빠알리 니까야가 성립한 것이다. 이는 명백히 담마 아닌 것이 섞여 들어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로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문자로 보전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전승과정에서 편집이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빠알리 니까야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이 니까야 저 니까야에 부처님의 말씀이 종횡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담마 아닌 것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짜여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빠알리 니까야 실려 있는 부처님 말씀은 부처님 열반후에 500명의 아라한이 합송한 것으로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부터 이미 제자들에게 암송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빠알리 니까야에 남아 있는 ‘사띠’의 뜻이라 볼 수 있는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한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녹음기도 없었고 필기구도 없었기 때문에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이를 되새겨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수행방법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45년 동안  부처님 재세시 제자들은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되새기고 사유하는 일이 일상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좋은 예가 숫따니빠따의 제4장(Aṭṭhaka Vagga)과 5장(Pārāyana Vagga)을 주석한 닛데사(Niddesa)를 들 수 있다.

닛데사는 부처님의 상수제자이자 법의 사령관이라 불리우는 사리뿟따 존자가 주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부처님 재세시 폭 넓게 암송 되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따라서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이전에 이미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되새기고 사유하고 암송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후대에 편집되거나 조작 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늘날 한국에서 불자들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되돌아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불교가 근본 가르침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알리 니꺄야 원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단어 하나, 구문 하나, 문장 하나에 이르기 까지 원문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여기에 다른 해석이 달라 붙으면 안된다. 이런 태도에 대하여 경전적 도그마라고 해도 상관 없다. 왜냐하면 경전에 의존하면 할수록 부처님의 원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원음을 멀리 함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되어 왔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볼 수 있는 각종 비불교적 행위나 사상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서 멀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불교근본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들이지만, 불교근본주의자들은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충실하기 때문에 가장 평화로운 자들이 될 수 있다.

오늘날 빠알리 니까야가 번역되어 많이 읽혀지고 있는 시대에 니까야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별적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빠알리 니까야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전승과정에서 다른 사상이 혼입 되었다든가, 편집자의 생각이 실렸다든가 하여 100% 부처님의 원음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특히 자신의 깜냥으로는 받아 들일 수 없는 초월적 존재나 신비한 내용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회의론자들의 말대로라면 니까야에서 이것 저것 다 빼고 나면 수행과 관련된 몇 개의 경만 남는다. 또 회의론자들이 늘 하는 말이 “부처님은 현세의 가르침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였지 내세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 윤회와 업에 대하여 서슴없이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 내는 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유물론적 단멸론자들이다.


회의론자들의 특징은 경전을 신뢰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전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경전적 근거 없이 남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모두가 빠알리 니까야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적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2015-06-01

진흙속의연꽃


좋아요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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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海山 김 승규
2015.06.02 13:34 신고
깊은 성찰의 글에 공감합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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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평화지혜
2015.06.02 15:23
[세존]

수행생들이여,
세상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경, 응송, 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전생담, 미증유법, 교리문답같은 가르침을 두루 배우지만,

그 가르침을 배워서 그 가르침에 관해 지혜로써 그 의미를 규명하지 않고
가르침에 관해 지혜로써 그 의미를 규명하지 않아서 성찰을 얻지못하고
남을 비난하기 위하여 가르침을 두루배우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가르침을 두루 배우므로
그 참다운 의미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가르침은 자신들에게 오랜 세월 불이익과 고통이 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생들이여 가르침에 대하여 잘 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세존]

수행생들이여,
세상에 어떤 훌륭한 사람들은
경, 응송, 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전생담, 미증유법, 교리문답같은 가르침을 두루 배워,

그 가르침을 배워서 그 가르침에 관해 지혜로써 그 의미를 잘 규명하고
가르침에 관해 지혜로써 그 의미를 규명하여 성찰을 얻고
남을 비난하기 위하여 가르침을 배우지 않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가르침을 배우지 않으므로
그 참다운 의미를 경험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가르침은 자신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생들이여 가르침에 대하여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M 1-3 뱀에 대한 비유의 경


오늘도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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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a-soo
2015.06.03 00:59 신고

1700 여년전 중국을 거쳐 이땅에 들어온 붓다의 가르침이 이제 비로소 지난 일이십년 동안 전해진 붓다의 가르침과 "같다 할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니까야를 읽어 나가면 나갈수록 매우 다르다 .. 극명하게 다르다 라는 사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도저히 한사람의 가르침이라 할수 있을런지 회의하게 합니다

백가지 이야기중에 매우 중요한 핵심이 열가지이고 아흔가지가 주변이라 할때

그 주변 아흔 가지가 같을 뿐 중요한 핵심 열가지가 다르다면 그것을 같은 것이라 할수 있을런지 의문입니다

그 둘이 다 맞든 또는 둘다 틀리든 아니면 어느 하나가 맞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근본 교의상의 차이점이 있는 두 가르침이 둘다 맞든 둘다 틀릴수는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논점 ..혹은 종교적 교의..가르침의 핵심에서 빈번하게 180도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에 경악하였습니다

저의 이러한 개인적 소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으시거나 혹은 강하게 비난하실 분들이 꽤나 있으실줄 압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1700년전 전래되어 현재에 다다른 붓다의 가르침과 이십년전부터 전래된 붓다의 가르침 그 둘을 병립하고 병존할 방법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 둘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가르침에 회색은 있을 수 없으니 그 둘을 임의로 섞어 놓아서도 않되는 것이며 이것도 불완전하고 저것도 불완전하니 그런 시시비비랑은 말고 그냥 좋게 묻어 가자는 말들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20년간 읽어 왔던 중국을 통하여 전래되어 온 붓다의 교설이 담긴 책들을 송두리채 뒤로 미루고 이제 당도한 일이십년 상간의 붓다의 교설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일로 매진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입니다

늘 연꽃님의 친절한 가르침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늘 경안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김종랑
2015.06.14 19:36 신고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내에서만 방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방편이 너무 난무를 하면은 부처님의 기본 사상과 배치가될 위험성이 큽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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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ksha
2015.10.21 17:36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답글

2020/11/18

알라딘: 법구경 Dhammapada 《법구경》 전문 완역본! 오(吳)나라의 유기난(維祇難) 번역 박일봉 편저

알라딘: 법구경



법구경 - 개정판 세상을 움직이는 책 25
박일봉 (엮은이)육문사201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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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25,000원
판매가
22,500원 (10%, 2,500원 할인)


책소개
법구존자가 엮은 것으로, 오나라의 유기난이 번역한 것이다. 법구존자는 파사사대논사의 한 사람으로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300년 뒤에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며, 대덕법구라는 인물이다. <법구경>에는 남전과 북전의 두 종류가 있다. 남전은 파리어로 번역된 법구경으로 26품 422송으로 되어 있으며, 북전은 범어를 번역한 것으로 39품 752송으로 되어 있다.

이 법구경을 번역한 유기난은 천축의 중이다. 그의 전기에 의하면 삼장에 밝고, 특히 아함경에 밝아 뒤에 서역으로부터 중국에 와서 위나라 문제 황무 3년에 입률염과 법구경을 번역했다. 제1 무상품으로부터 제39 길상품에 이르는 것을 모두 번역한 것으로 간단하기는 하지만 불교 전체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실제로 인간생활의 여러 분야에 걸쳐 다 포함되어 있다. <논어>나 <채근담>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처세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말씀이다.


목차


序文 ……………………………………………………………… 4
제1 무상품(無常品) …………………………………………… 8
제2 교학품(敎學品) …………………………………………… 23
제3 다문품(多聞品) …………………………………………… 44
제4 독신품(篤信品) …………………………………………… 58
제5 계신품(誡愼品) …………………………………………… 70
제6 유념품(愉念品) ………………………………………… 81
제7 자인품(慈仁品) ………………………………………… 90
제8 언어품(言語品) ………………………………………… 102
제9 쌍요품(雙要品) ………………………………………… 111
제10 방일품(放逸品) ………………………………………… 126
제11 심의품(心意品) ………………………………………… 140
제12 화향품(華香品) ………………………………………… 148
제13 우암품(愚闇品) ………………………………………… 159
제14 명철품(明哲品) ………………………………………… 173
제15 나한품(羅漢品) ………………………………………… 184
제16 술천품(述千品) ………………………………………… 192
제17 악행품(惡行品) ………………………………………… 202
제18 도장품(刀杖品) ………………………………………… 217
제19 노모품(老耗品) ………………………………………… 227 더보기

제20 애신품(愛身品) ………………………………………… 237
제21 세속품(世俗品) ………………………………………… 246
제22 술불품(述佛品) ………………………………………… 256
제23 안녕품(安寧品) ………………………………………… 271
제24 호희품(好喜品) ………………………………………… 280
제25 분노품(忿怒品) ………………………………………… 288
제26 진구품(塵垢品) ………………………………………… 306
제27 봉지품(奉持品) ………………………………………… 320
제28 도행품(道行品) ………………………………………… 331
제29 광연품(廣衍品) ………………………………………… 350
제30 지옥품(地獄品) ………………………………………… 360
제31 상유품(象喩品) ………………………………………… 373
제32 애욕품(愛欲品) ………………………………………… 386
제33 이양품(利養品) ………………………………………… 410
제34 사문품(沙門品) ………………………………………… 424
제35 범지품(梵志品) ………………………………………… 445
제36 이원품(泥洹品) ………………………………………… 470
제37 생사품(生死品) ………………………………………… 493
제38 도리품(道利品) ………………………………………… 506
제39 길상품(吉祥品) …………………………………………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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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일봉 (엮은이)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학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고려대학교, 육군사관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역서로는 <논어>, <맹자>, <대학.중용>, <사서입문>, <채근담>, <명심보감>, <손자병법>, <소학>, <노자 도덕경>, <법구경> 등이 있다.


최근작 : <법구경>,<고사성어>,<법구경> … 총 8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바른 행로를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
인간의 미망과 깨달음, 죄악과 미덕, 깨달음의 열반(涅槃)을 가르쳐 주는
불교 경전 중 가장 많이 읽혀 온 《법구경》 전문 완역본!

부처님을 처음 배우고 따르는 사람들이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
혼탁한 세상에 처세를 어떻게 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가르쳐 주는 부처님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혜와 깊고 후한 대자비(大慈悲)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법구경(法句經)》은 법구존자(法救尊者)가 엮은 것으로, 오(吳)나라의 유기난(維祇難)이 번역한 것이다. 법구존자는 파사사대논사(婆娑四大論師)의 한 사람으로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300년 뒤에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며, 대덕법구(大德法救)라는 인물이다.

《법구경》에는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의 두 종류가 있다. 

남전은 파리어로 번역된 법구경으로 26품(品) 422송(頌)으로 되어 있으며, 
북전은 범어(梵語)를 번역한 것으로 39품(品) 752송(頌)으로 되어 있다.

이 법구경을 번역한 유기난은 천축(天竺)의 중〔僧〕이다. 그의 전기에 의하면 삼장(三藏)에 밝고, 특히 아함경(阿含經)에 밝아 뒤에 서역(西域)으로부터 중국에 와서 위(魏)나라 문제(文帝) 황무(黃武) 3년에 입률염(笠律炎)과 법구경을 번역했다.
이 법구경은 제1 무상품(無常品)으로부터 제39 길상품(吉祥品)에 이르는 것을 모두 번역한 것으로 간단하기는 하지만 불교 전체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실제로 인간생활의 여러 분야에 걸쳐 다 포함되어 있다.
《법구경(法句經)》은 《논어(論語)》나 《채근담(菜根譚)》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처세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말씀이다.
처음에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려는 사람에게 이 《법구경》이야말로, 불교를 배우는데 경시할 수 없는 것으로 국제적인 불교의 경전으로 널리 읽힌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더러움으로 썩어버린 인간계의 욕정을 없애서 깨끗한 생활을 하고, 올바른 인생의 종국이 깨달음의 열반이라는 부처님의 높고 큰 이상을 보여 준다. 사람은 반드시 죽지만, 불법(佛法)은 인생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밖에도 널리 전해지는 《화엄경(華嚴經)》 · 《반야경(般若經)》 · 《법화경(法華經)》 · 《열반경(涅槃經)》 등 8만 4천 가지 불경이 있지만, 이 《법구경》은 주로 《아함경(阿含經)》에서 중요한 부분을 정리한 것으로 매우 알기 쉽다.

序文

《법구경(法句經)》은 《논어(論語)》나 《채근담(菜根譚)》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처세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말씀이다.
《법구경》은 법구존자(法救尊者)가 엮은 것으로 吳나라의 유기난(維祇難)이 번역한 것이다. 법구존자는 파사사대논사(婆娑四大論師)의 한 사람으로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300년 뒤에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며, 대덕법구(大德法救)라는 인물이다.
《법구경》에는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의 두 종류가 있다. 남전은 파리어로 번역된 법구경으로 26品 422송(頌)으로 되어 있으며, 북전은 범어(梵語)를 번역한 것으로 39品 752송(頌)으로 되어 있다.

이 법구경을 번역한 유기난은 천축(天竺)의 중〔僧〕이다. 그의 전기에 의하면, 삼장(三藏)에 밝고, 특히 아함경(阿含經)에 밝아, 뒤에 서역(西域)으로부터 중국에 와서 위(魏)나라 문제(文帝) 황무(黃武) 3년에 입률염(笠律炎)과 법구경을 번역했다.

이 법구경은 제1 무상품(無常品)으로부터 제39 길상품(吉祥品)에 이르는 것을 모두 번역한 것으로, 간단하기는 하지만 불교 전체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실제로 인간생활의 여러 분야에 걸쳐 다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미망과 깨달음, 죄악과 미덕, 깨달음의 열반(涅槃)을 이해할 수 있으며, 자유방임주의시대에 사는 현대에 마음과 몸을 조이는 생각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특히 음욕을 굳게 경계하는 일 등은 고마운 교훈이다. 더러움으로 썩어버린 인간계의 욕정을 없애서 깨끗한 생활을 하고, 올바른 인생의 종국이 깨달음의 열반이란 것을 보여 주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교의 높은 큰 이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불교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법구경이야말로 불교를 배우는데 있어서도 경시할 수 없는 것으로, 전혀 국제적인 불교의 경전으로써 널리 읽혀도 좋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이밖에도 널리 전하여지는 화엄경(華嚴經) · 반야경(般若經) · 법화경(法華經) · 열반경(涅槃經) 등 8만 4천 가지 불경이 있거니와, 대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한 번이나 두 번 읽어 가지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법구경은 주로 아함경(阿含經)에서 중요한 부분을 정리한 것으로 매우 알기 쉽다.
부처님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혜와 깊고 후한 대자비(大慈悲)를 알게 되면, 우리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천박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눈앞에 나타난 현상에만 사로잡혀 미혹됨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어 가거니와, 불법(佛法)은 인생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가르쳐 주고 있다. 접기

Dhammapada - Wikipedia

Dhammapada - Wikipedia

Dhammap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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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hammapada (PāliSinhalaධම්මපදයPrakrit languagesधम्मपद Dhammapada;[1] traditional Chinese法句經simplified Chinese法句经pinyinfǎjù jīngJapaneseダンマパダKorean법구경/담마 파다beobgugyeong VietnameseKinh Pháp CúBurmeseဓမ္မပဒ) is a collection of sayings of the Buddha in verse form and one of the most widely read and best known Buddhist scriptures.[2] The original version of the Dhammapada is in the Khuddaka Nikaya, a division of the Pali Canon of Theravada Buddhism.

The Buddhist scholar and commentator Buddhaghosa explains that each saying recorded in the collection was made on a different occasion in response to a unique situation that had arisen in the life of the Buddha and his monastic community. His translation of the commentary, the Dhammapada Atthakatha, presents the details of these events and is a rich source of legend for the life and times of the Buddha.[3]

Etymology[edit]

The title, "Dhammapada," is a compound term composed of dhamma and pada, each word having a number of denotations and connotations. Generally, dhamma can refer to the Buddha's "doctrine" or an "eternal truth" or "righteousness" or all "phenomena";[4] and, at its root, pada means "foot" and thus by extension, especially in this context, means either "path" or "verse" (cf. "prosodic foot") or both,[5] English translations of this text's title have used various combinations of these and related words.[6][7]

History[edit]

According to tradition, the Dhammapada's verses were spoken by the Buddha on various occasions.[8] "By distilling the complex models, theories, rhetorical style and sheer volume of the Buddha's teachings into concise, crystalline verses, the Dhammapada makes the Buddhist way of life available to anyone...In fact, it is possible that the very source of the Dhammapada in the third century B.C.E. is traceable to the need of the early Buddhist communities in India to laicize the ascetic impetus of the Buddha's original words."[9] The text is part of the Khuddaka Nikaya of the Sutta Pitaka, although over half of the verses exist in other parts of the Pali Canon.[10] A 4th or 5th century CE commentary attributed to Buddhaghosa includes 305 stories which give context to the verses.

Although the Pāli edition is the best-known, a number of other versions are known:[11]

Comparing the Pali Dhammapada, the Gandhari Dharmapada and the Udanavarga, Brough (2001) identifies that the texts have in common 330 to 340 verses, 16 chapter headings and an underlying structure. He suggests that the three texts have a "common ancestor" but underlines that there is no evidence that any one of these three texts might have been the "primitive Dharmapada" from which the other two evolved.[20]

The Dhammapada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popular pieces of Theravada literature.[2] A critical edition of the Dhammapada was produced by Danish scholar Viggo Fausbøll in 1855, becoming the first Pali text to receive this kind of examination by the European academic community.[21]

Organization[edit]

The Pali Dhammapada contains 423 verses in 26 chapters (listed below in Pali and English).[22][23][24]

Sr. No.Chapter Title in PaliChapter Title TransliterationChapter Title in English
I.यमकवग्गोYamaka-vaggoThe Twin-Verses (see excerpt below)
II.अप्पमादवग्गोAppamāda-vaggoOn Earnestness
III.चित्तवग्गोCitta-vaggoThought
IV.पुफ्फवग्गोPuppha-vaggoFlowers
V.बालवग्गोBāla-vaggoThe Fool
VI.पण्डितवग्गोPaṇḍita-vaggoThe Wise Man
VII.अरहन्तवग्गोArahanta-vaggoThe Venerable
VIII.सहस्सवग्गोSahassa-vaggoThe Thousands
IX.पापवग्गोPāpa-vaggoEvil
X.दण्डवग्गोDaṇḍa-vaggoPunishment (see excerpt below)
XI.जरावग्गोJarā-vaggoOld Age
XII.अत्तवग्गोAtta-vaggoSelf
XIII.लोकवग्गोLoka-vaggoThe World
XIV.बुद्धवग्गोBuddha-vaggoThe Buddha — The Awakened (see excerpt below)
XV.सुखवग्गोSukha-vaggoHappiness
XVI.पियवग्गोPiya-vaggoPleasure
XVII.कोधवग्गोKodha-vaggoAnger
XVIII.मलवग्गोMala-vaggoImpurity
XIX.धम्मट्ठवग्गोDhammaṭṭha-vaggoThe Just
XX.मग्गवग्गोMagga-vaggoThe Way (see excerpt below)
XXI.पकिण्णकवग्गोPakiṇṇaka-vaggoMiscellaneous
XXII.निरयवग्गोNiraya-vaggoThe Downward Course
XXIII.नागवग्गोNāga-vaggoThe Elephant
XXIV.तण्हावग्गोTaṇhā-vaggoThirst (see excerpt below)
XXV.भिख्खुवग्गोBhikkhu-vaggoThe Mendicant
XXVI.ब्राह्मणवग्गोBrāhmaṇa-vaggoThe Brāhmana

Excerpts[edit]

The following English translations are from Müller (1881). The Pali text is from the Sri Lanka Tripitaka Project (SLTP) edition.[23]

Ch. I. Twin Verses (Yamaka-vaggo)[edit]

1.All that we are is the result of what we have thought: it is founded on our thoughts, it is made up of our thoughts. If a man speaks or acts with an evil thought, pain follows him, as the wheel follows the foot of the ox that draws the carriage.Manopubbagamā dhammā manoseṭṭhā manomayā
Manasā ce paduṭṭhena bhāsati vā karoti vā
Tato na dukkhamanveti cakka'va vahato pada.
2.All that we are is the result of what we have thought: it is founded on our thoughts, it is made up of our thoughts. If a man speaks or acts with a pure thought, happiness follows him, like a shadow that never leaves him.Manopubbagamā dhammā manoseṭṭhā manomayā
Manasā ce pasannena bhāsati vā karoti vā
Tato na sukhamanveti chāyā'va anapāyinī.
5.For hatred does not cease by hatred at any time: hatred ceases by love, this is an eternal rule.Na hi verena verāni sammantīdha kudācana
Averena ca sammanti esa dhammo sanantano.

Ch. V. Balavagga[edit]

70.Even though, month after month, the fool (living in austerity) takes his food sparingly with the tip of a grass blade, he is not worth even one-sixteenth part of those who have comprehended the Truth (i.e., the ariyas).[25]

Ch. X. Punishment (Daṇḍa-vaggo)[edit]

131.He who seeks his own happiness by hurting or killing beings, never finds happiness and will not escape from his sufferings .Sukhakāmāni bhūtāni yodaṇḍena vihisati
Attano sukhamesāno pecca so na labhate sukha.
132.He who seeks his own happiness not by hurting or killing beings but by purifying oneself; will find happiness and ends all sufferings.Sukhakāmāni bhūtāni yodaḍena na hisati
Attano sukhamesāno pecca so labhate sukha.
133.Do not speak harshly to anyone; those who are spoken to will answer you in the same way. Indeed, Angry speech is painful and retaliation may overtake you.Mā'voca pharusa kañci vuttā paivadeyyu ta
Dukkhā hi sārambhakathā paṭidaṇḍā phuseyyu ta.

Ch. XII: Self (Atta-vaggo)[edit]

157.If a man hold himself dear, let him watch himself carefully; during one at least out of the three watches a wise man should be watchful.
158.Let each man direct himself first to what is proper, then let him teach others; thus a wise man will not suffer.
159.If a man make himself as he teaches others to be, then, being himself well subdued, he may subdue (others); one's own self is indeed difficult to subdue.
160.One is one's own refuge, what other refuge can there be?? With self well subdued, a man finds a refuge such as few can find.
161.The evil done by oneself, self-begotten, self-bred, crushes the foolish, as a diamond breaks a precious stone.
162.He whose wickedness is very great brings himself down to that state where his enemy wishes him to be, as a creeper does with the tree which it surrounds.
163.Bad deeds, and deeds hurtful to ourselves, are easy to do; what is beneficial and good, that is very difficult to do.
164.The foolish man who scorns the rule of the venerable (Arahat), of the elect (Ariya), of the virtuous, and follows false doctrine, he bears fruit to his own destruction, like the fruits of the Katthaka reed.
165.By oneself the evil is done, by oneself one suffers; by oneself evil is left undone, by oneself one is purified. Purity and impurity belong to oneself, no one can purify another.
166.Let no one forget his own duty for the sake of another's, however great; let a man, after he has discerned his own duty, be always attentive to his duty.

Ch. XIII: World[edit]

167.Rouse yourself, be diligent, in Dhamma faring well. Who dwells in Dhamma’s happy in this birth and the next.

Ch. XIV: The Buddha (The Awakened) (Buddha-vaggo)[edit]

183.Not to commit any sin, to do good, and governance of one's mind, that is the teaching of (all) the Awakened.Sabbapāpassa akaraṇaṃ kusalassa upasampadā
Sacittapariyodapanaṃ etaṃ buddhāna sāsana.

Ch. XX: The Way (Magga-vaggo)[edit]

276.You yourself must make an effort. The Tathagatas (Buddhas) are only preachers. The thoughtful who enter the way are freed from the bondage of Mara.Tumhehi kiccaṃ ātappaṃ akkhātāro tathāgatā
Paṭipannā pamokkhanti jhāyino mārabandhanā.
277.'All created things perish,' he who knows and sees this becomes passive in pain; this is the way that leads to purity.Sabbe sakhārā aniccā'ti yadā paññāya passati
Atha nibbindati dukkhe esa maggo visuddhiyā.
278.'All created things are griefs and pains,' he who knows and sees this becomes passive in pain; this is the way that leads to purity.Sabbe sakhārā dukkhā'ti yadā paññāya passati
Atha nibbindati dukkhe esa maggo visuddhiyā.
279.'All forms are unreal,' he who knows and sees this becomes passive in pain; this is the way that leads to purity.Sabbe dhammā anattā'ti yadā paññāya passati
Atha nibbindati dukkhe esa maggo visuddhiyā.

Ch. XXIV: Thirst (Tahā-vaggo)[edit]

343.Men, driven on by thirst, run about like a snared hare; let therefore the mendicant drive out thirst, by striving after passionlessness for himself.Tasiāya purakkhatā pajā parisappanti saso'va bādhito
Tasmā tasiṇaṃ vinodaye bhikkhu ākakhī virāgamattano.
350.If a man delights in quieting doubts, and, always reflecting, dwells on what is not delightful (the impurity of the body, &c.), he certainly will remove, nay, he will cut the fetter of Mara.Vitakkupasame ca yo rato asubha bhāvayati sadā sato
Esa kho vyantikāhiti esa checchati mārabandhana.

English translations[edit]

Musical settings[edit]

Notes[edit]

  1. ^ See, e.g., the Gāndhārī Dharmapada (GDhp), verses 301, 302, in: Brough (1962/2001), p. 166; and, Ānandajoti (2007), ch. 4, "Pupphavagga" (retrieved 25 November 2008 from "Ancient Buddhist Texts" at http://www.ancient-buddhist-texts.net/Buddhist-Texts/C3-Comparative-Dhammapada/CD-04-Puppha.htm).
  2. Jump up to:a b See, for instance, Buswell (2003): "rank[s] among the best known Buddhist texts" (p. 11); and, "one of the most popular texts with Buddhist monks and laypersons" (p. 627). Harvey (2007), p. 322, writes: "Its popularity is reflected in the many times it has been translated into Western languages"; Brough (2001), p. xvii, writes: "The collection of Pali ethical verses entitled "Dhammapada" is one of the most widely known of early Buddhist texts."
  3. ^ This commentary is translated into English as Buddhist Legends by E W Burlingame.
  4. ^ See, e.g., Rhys Davids & Stede (1921-25), pp. 335-39, entry "Dhamma," retrieved 25 November 2008 from "U. Chicago" at http://dsal.uchicago.edu/cgi-bin/philologic/getobject.pl?c.1:1:2654.pali[permanent dead link].
  5. ^ See, e.g., Rhys Davids & Stede (1921-25), p. 408, entry "Pada," retrieved 25 November 2008 from "U. Chicago" at http://dsal.uchicago.edu/cgi-bin/philologic/getobject.pl?c.2:1:1516.pali[permanent dead link].
  6. ^ See, for instance, C.A.F Rhys David's "Verses on Dhamma," Kalupahana's "The Path of Righteousness," Norman's "The Word of the Doctrine," Woodward's "The Buddha's Path of Virtue," and other titles identified below at "English translations".
  7. ^ See also Fronsdal (2005), pp. xiii-xiv. Fronsdal, p. xiv, further comments: "... If we translate the title based on how the term dhammapada is used in the verses [see Dhp verses 44, 45, 102], it should probably be translated 'Sayings of the Dharma,' 'Verses of the Dharma,' or 'Teachings of the Dharma.' However, if we construe pada as 'path,' as in verse 21 ..., the title could be 'The Path of the Dharma.' Ultimately, as many translators clearly concur, it may be best not to translate the title at all."
  8. ^ Pertinent episodes allegedly involving the historic Buddha are found in the commentary (Buddharakkhita & Bodhi, 1985, p. 4). In addition, a number of the Dhammapada's verses are identical with text from other parts of the Pali tipitaka that are directly attributed to the Buddha in the latter texts. For instance, Dhammapada verses 3, 5, 6, 328-330 can also be found in MN 128 (Ñāamoli & Bodhi, 2001, pp. 1009-1010, 1339 n. 1187).
  9. ^ Wallis (2004), p. xi.
  10. ^ Geiger (2004), p. 19, para. 11.2 writes:

    More than half the verses may be found also in other canonical texts. The compiler of the [Dhammapada] however certainly did not depend solely on these canonical texts but also made use of the great mass of pithy sayings which formed a vast floating literature in India.

    In a similar vein, Hinüber (2000), p. 45, para. 90 remarks: "The contents of the [Dhammapada] are mainly gnomic verses, many of which have hardly any relation to Buddhism."
  11. ^ Buddhist Studies Review, 6, 2, 1989, page 153, reprinted in Norman, Collected Papers, volume VI, 1996, Pali Text Society, Bristol, page 156
  12. ^ Brough (2001), pp. 44–45, summarizes his findings and inferences as:
    "... We can with reasonable confidence say that the Gāndhārī text did not belong to the schools responsible for the Pali Dhammapada, the Udānavarga, and the Mahāvastu; and unless we are prepared to dispute the attribution of any of these, this excludes the Sarvāstivādins and the Lokottaravāda-Mahāsānghikas, as well as the Theravādins (and probably, in company with the last, the Mahīśāsakas). Among possible claimants, the Dharmaguptakas and Kāśyapīyas must be considered as eligible, but still other possibilities cannot be ruled out."
  13. ^ Brough (2001). The original manuscript is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in the first or second century CE.
  14. ^ See, e.g., Cone (1989).
  15. ^ Journal of the Pali Text Society, volume XXIII, pages 113f
  16. ^ Brough (2001), pp. 38-41, indicates that the Udanavarga is of Sarvastivadin origin.
  17. ^ Hinüber (2000), p. 45, para. 89, notes:
    More than half of [the Dhammapada verses] have parallels in corresponding collections in other Buddhist schools, frequently also in non-Buddhist texts. The interrelation of these different versions has been obscured by constant contamination in the course of the text transmission. This is particularly true in case of one of the Buddhist Sanskrit parallels. The Udānavarga originally was a text corres[p]onding to the Pāli Udāna.... By adding verses from the Dhp [Dhammapada] it was transformed into a Dhp parallel in course of time, which is a rare event in the evolution of Buddhist literature.
  18. ^ Rockhill, William Woodville (trans.): Udānavarga : a collection of verses from the Buddhist canon compiled by Dharmatrāta being the Northern Buddhist version of Dhammapada / transl. from the Tibetan of the Bkah-hgyur, with notes and extracts from the commentary of Pradjnāvarman. London: Trübner 1883 PDF (9.1 MB)
  19. ^ Ānandajoti (2007), "Introduction," "Sahassavagga" and "Bhikkhuvagga."
  20. ^ Brough (2001), pp. 23–30. After considering the hypothesis that these texts might lack a "common ancestor," Brough (2001), p. 27, conjectures:
    On the evidence of the texts themselves it is much more likely that the schools, in some manner or other, had inherited from the period before the schisms which separated them, a definite tradition of a Dharmapada-text which ought to be included in the canon, however fluctuating the contents of this text might have been, and however imprecise the concept even of a 'canon' at such an early period. The differing developments and rearrangements of the inherited material would have proceeded along similar lines to those which, in the Brahmanical schools, produced divergent but related collections of texts in the different Yajur-vedatraditions.
    He then continues:
    ... [When] only the common material [is] considered, a comparison of the Pali Dhammapada, the Gandhari text, and the Udanavarga, has produced no evidence whatsoever that any one of these has any superior claim to represent a 'primitive Dharmapada' more faithfully than the others. Since the contrary appears to have been assumed from time to time, it is desirable to say with emphasis that the Pali text is not the primitive Dharmapada. The assumption that it was would make its relationship to the other texts altogether incomprehensible.
  21. ^ v. Hinüber, Oskar (2006). "Dhammapada". In Buswell, Jr., Robert E. (ed.). Macmillan Encyclopedia of Buddhism. USA: Macmillan Reference USA. pp. 216–17. ISBN 0-02-865910-4.
  22. ^ English chapter titles based on Müller (1881).
  23. Jump up to:a b Pali retrieved 2008-03-28 from "Bodhgaya News" (formerly, La Trobe U.) starting at http://www.bodhgayanews.net/tipitaka.php?title=&record=7150 Archived 2011-07-19 at the Wayback Machine, and from "MettaNet - Lanka" at https://web.archive.org/web/20130720003936/http://www.metta.lk/tipitaka/2Sutta-Pitaka/5Khuddaka-Nikaya/02Dhammapada/index.html.
  24. ^ Brough (2001) orders the chapters of the Gandhari Dharmapada as follows: I. Brāhmaṇa; II. Bhikṣu; III. Tṛṣṇā; IV. Pāpa; V. Arhant; VI. Mārga; VII. Apramāda; VIII. Citta; IX. Bāla; X. Jarā; XI. Sukha; XII. Sthavira; XIII. Yamaka; XIV. Paṇḍita; XV. Bahuśruta; XVI. Prakīrṇaka (?); XVII. Krodha; XVIII. Pruṣpa; XIX. Sahasra; XX. Śīla (?); XXI. Kṛtya (?); XXII. Nāga, or Aśva (?); XXIII. - XVI. [Lost]. [Parenthesized question marks are part of Brough's titles.] Cone (1989) orders the chapters of the Patna Dharmapada as follows: 1. Jama; 2. Apramāda; 3. Brāhmaṇa; 4. Bhikṣu; 5. Attha; 6. Śoka; 7. Kalyāṇī; 8. Puṣpa; 9. Tahna; 10. Mala; 11. Bāla; 12. Daṇḍa; 13. Śaraṇa; 14. Khānti; 15. Āsava; 16. Vācā; 17. Ātta; 18. Dadantī; 19. Citta; 20. Māgga; 21. Sahasra; [22. Uraga].
  25. ^ "The Dhammapada: Verses and Stories"www.tipitaka.net. Retrieved 2020-03-05.
  26. ^ Trainor, Kevin (1997). Relics, Ritual, and Representation in Buddhism: Rematerializing the Sri Lankan Theravada Tradition - Volume 10 of Cambridge Studies in Religious TraditionsCambridge University Press. p. 6. ISBN 9780521582803.

Sources[edit]

External links[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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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ammap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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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s[edit]
by Max Müller (1881) from Wikisource
by Sarvepalli Radhakrishnan (1950) Reprint,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by Harischandra Kaviratna (1980)
by Buddharakkhita (1985) (pdf has intro by Bhikkhu Bodhi)
by John Richards (1993)
by Thomas Byrom (1993)
by Eknath Easwaran (1996)
by Thanissaro (1997)
by Gil Fronsdal – Reading by Chapter from The Dhammapada: A New Translation of the Buddhist Classic with Annotations – 2006
by Bhikkhu Varado and Samanera Bodhesako (2008)
Detailed word-by-word translation of the Dhammapada, including explanation of grammar
Multilingual edition of Dhammapada in the Bibliotheca Polyglotta
Parallel Reading (paragraph granularity) of The Buddha's Path of Wisdom-- Dhammapada (Dhp.)
Voice recordings[edit]
Readings (mp3) from the Dhammapada, translated and read by Gil Fronsdal
The Dhammapada public domain audiobook at LibriV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