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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公共哲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試論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 - earticle

‘公共哲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試論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 - earticle



‘公共哲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試論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
A Critical Essay on Prof. Lee Myeong-Han's Misunderstanding of Public Philosophy
‘공공철학’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시론 - 중앙대학 이명한 교수의 비판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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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한국윤리교육학회 바로가기
간행물윤리교육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통권제25집 (2011.08)바로가기
페이지pp.31-48
저자야규 마코토
언어한국어(KOR)
URLhttps://www.earticle.net/Article/A152888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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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영어
This paper is a preliminary attempt to critically respond to the ungrounded critique of
Kyoto Forum-promoting public philosophy in professor Lee Myeong-Han's paper titled
"the Reflective Consideration for the Dissemination of Public Philosophy in Korea now" in
Yangmyeonghak, No.28 (April 2011) published by Korea Yangmyeonghak Society. I would
like to summarize three points of my paper. The first point deals with the main currents
of thoughts and ideas underlying Kyoto Forum public philosophy movements. The second
point is concerned with clarifying Director Kim Tae-Changs philosophysing activities.
Then third point refers to clarifying prof. Lee Myong-Han's misunderstanding and/or
distortions of public philosophy promoted through Kyoto Forum for the past twenty years
in Japan and abroad.

한국어본 논문은『양명학』제28호(2011년 4월)에 실린 이명한 교수의「공공철학과 공공철학 보급에 대한 반성적 고찰」과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을 계기로 해서 공공철학의 내용과 지향에 대한 열린 대화의 장을 펼쳐보고 싶은 것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공(公)과 사(私)에 대한 공공철학의 견해를 밝히고 그것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시정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공공철학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입장과 관점을 변호ㆍ계몽ㆍ보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적, 민족, 정치적 신조 등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ㆍ토론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열어나가는 철학 활동이고, 그것은 자기와 타자의 진솔하고 활발한 소통ㆍ상통ㆍ통달을 이루고자 하는 철학적 운동이며, 그것을 통해서 한일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대화와 상호이해 및 화해와 공복(共福)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가진 현재진행형의 철학적 영위이다.

목차

국문초록
I. 서론
II. 공공철학은 한 개인이나 조직이 만들고 보급하는 철학이 아니다
1. 공공철학과 사철학(私哲學)
2. 공공철학 교토포럼에서 요시다 쇼인을 비판의 도마에 올리다
III. 공공철학은 오래되고 새로운 철학운동이다
1. “보고 생각하는” 철학과 “듣고 얘기하는” 철학
2. 시민들이 토론하고 소통하여 세계를 밝히는 철학으로서의 공공철학
IV. 공ㆍ사ㆍ공공의 3차원
1. 3차원 상관연동의 철학
2. 대화와 공동을 통해 새로운 차원을 열다
V.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public private public philosophy Activities with and together New Developments and New frontier(Gaisin) Multi-dimensional thinking in threeperspectives(Samwonsago). 公共 哲學 對話 共働 開新 三元思考

저자야규 마코토 [ Yagyu Makoto | 日本大阪公共哲學共働硏究所特任硏究員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1김태창 편저, 조성환 번역,『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서울: 동방의 빛, 2010. 12)
2남상호 지음,『육경과 공자인학』(서울: 예문서원, 2003)
3야자키 카츠히코 지음, 정지욱 번역,『한 일본 기업인이 실천하는 실심실학』(서울: 동방의 빛, 2010. 12)
4金泰昌,『共福の思想地球時代の‘フランシスコ的革命’を求めて』(グローバル文化研究所・GEC出版, 1992)
5金泰昌편저,『ともに公共哲学する 日本での対話・共働・開新』(東京大学出版会, 2010)
6金泰昌편저,『公共哲学を語りあう 中国との対話・共働・開新』(東京大学出版会, 2010)
7公共哲学共同研究会レポート(金泰昌책임편집: 將來世代總合硏究所)
8『比較思想史的文脈からみた公私問題 ―第一回公共哲学共同研究会―』(1998. 4. 25~27)
9『学際的公私論の基本論点 ―第二回公共哲学共同研究会―』(1998. 6. 13~15)
10『各国別公私問題の現状と課題 ―米・仏・英・露・独・イスラエル・パレスチナにおける観察と体験―』(1998. 10. 17~19)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윤리교육학회 [The Korean Ethics Education Association]
  • 설립연도
    2000
  • 분야
    사회과학>교육학
  • 소개
    본 학회는 윤리, 도덕 교과교육학과 교과내용학의 연구발전에 기여하려는 목적하에 설립되어 전국대학교의 윤리, 도덕교육 관련교수들과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현장교사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 순수 학술단체이다. 이러한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연구, 학술회의 및 워크??, 학술교류, 출판활동에 주력하여 본 학회가 운영됨으로써 전국대학과 초중등학교에 있는 회원들의 학구열을 고취시키고 일선학교의 윤리교육분야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한국의 윤리, 도덕교육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윤리교육연구 [Journal of Ethics Education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738-0545
  • eISSN
    2733-8983
  • 수록기간
    2000~2023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70 DDC 370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윤리교육연구 제25집

EBS 기획특강 : 왜 공공철학인가? / 김태창

EBS 기획특강 : 왜 공공철학인가? / 김태창

21세기, 공공철학을 지향하며 김태창왜 공공철학인가?

강의 내용
원광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인문학>에서는 철학자 김태창님의 강의가 진행된다
===

글로벌인문학 공개강좌

WKU GLOBAL HUMANITIES 원광대학교 글로벌인문학 공개강좌 - 인문학적 소양과 글로벌 통찰 능력을 기른다

강좌소개

매학기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를 설정해 국내.외 석학을 비롯한 저명교수와 최고 전문가 등을 초빙하는 특강 형식으로 진행되며, 특히 일반시민들에게도 개방하여 대학의 지식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본교에서는 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강과 분반토론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특강은 강좌책임교수가 각 주제영역의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전문가 등을 모시고 진행하며, 분반토론은 분반교수들이 특강의 내용에 대한 예습과 복습뿐만 아니라, 글쓰기 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서평작성 요령 등의 내용으로 진행합니다. 이 강좌는 하버드대학의 교양강좌 운영방식을 참조해 국내 대학에서 처음 시도하는 강좌입니다.

이 강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사회와 세계에 대한 포괄적 성찰, 공유가능한 인류 문명의 자산에 대한 사유체험, 과거와 미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성찰적 전망,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력과 표현능력, 지구촌의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소통능력, 지구촌에서 인류애(humanitas)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능력 등을 계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이를 위해 매 학기 새로운 하나의 대(大) 주제가 설정되고 그 아래 여러 가지 하부주제들이 다루어지며, 그 주제는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문학, 예술, 문화, 종교, 문명, 자연과학, 인간본성, 동서정신세계의 비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강좌특성

매 학기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 설정- 학제간 통섭적 주제와 인문학적 ‘큰 물음’을 다룸

  •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최고 전문가 초빙해 특강형식의 강좌운영
  • 국내 최초의 하버드식 강좌운영: 특강+분반토론
  • 대형강의와 분반형태의 소형강의 동시 운영
  • 강좌책임교수와 분반교수가 공동 운영
  • 강의에서 특강 내용의 이론적 배경정리 및 토론, 글쓰기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등 다룸

글로벌인문학
교과목 소개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개설
– 지방대학 특성화사업(CK-1)지원(2017 ~ 2018년), 대학혁신지원사업 지원(2019 ~ 2021년 현재)
원광대에서는 2012년 1학기부터 대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인문학>이라는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특강과 분반토론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특강은 강좌책임교수가 각 주제영역의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전문가 등을 모시고 진행하며, 분반토론은 분반교수들이 특강의 내용에 대한 예습과 복습뿐만 아니라, 글쓰기 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서평작성 요령 등의 내용으로 진행합니다. 이 강좌는 하버드대학의 교양강좌 운영방식을 참조해 국내 대학에서 처음 시도하는 강좌입니다.
사업목적이 강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사회와 세계에 대한 포괄적 성찰, 공유가능한 인류 문명의 자산에 대한 사유체험, 과거와 미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성찰적 전망,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논리력과 표현능력, 지구촌의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소통능력, 지구촌에서 인류애(humanitas)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능력 등을 계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이를 위해 매 학기 새로운 하나의 대(大) 주제가 설정되고 그 아래 여러 가지 하부주제들이 다루어지며, 그 주제는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문학, 예술, 문화, 종교, 문명, 자연과학, 인간본성, 동서정신세계의 비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강좌특성

매 학기 새롭고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 설정- 학제간 통섭적 주제와 인문학적 ‘큰 물음’을 다룸
– 국내외 석학, 저명교수, 최고 전문가 초빙해 특강형식의 강좌운영– 국내 최초의 하버드식 강좌운영: 특강+분반토론

– 대형강의와 분반형태의 소형강의 동시 운영

– 강좌책임교수와 분반교수가 공동 운영

– 강의에서 특강 내용의 이론적 배경정리 및 토론, 글쓰기연습, 비판적 사고훈련 등 다룸

2021학년도 2학기 글로벌인문학 KOCW 강좌보기
교수진 소개



담당교수 : 남유선 교수님 이메일 : nys@wku.ac.kr
학력 : 원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사
독일 퀼른(Koeln)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독일어 석사
독일 퀼른(Koeln)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독일어 박사
현재 : 인문대학 유럽문화학부



분반교수 : 이 영 교수님 이메일 : quellely0014@naver.com
학력 : 원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독어교육 석사
충남대학교 박사과정수료


분반교수 : 한인철 교수님 이메일 : in-chul2790@hanmail.net
학력 :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원광대 문예창작학 석사
원광대 문예창작학 박사 과정


분반교수 : 신현선 교수님 이메일 : kokesi77@naver.com
학력 : 전북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일어교육전공 석사
전북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박사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4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2020-06-21     동양일보


[동양일보]10월 9일 수요일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70대 후반까지도 완벽주의자였다. 무슨 일이나 그때 그곳에서 완벽을 기하지 않으면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 자신이 완벽주의자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실감한 것은 70대 후반의 일이었다.

며칠 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간호사의 한마디가 뜻하지 않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간호사는 내게 병의 완쾌가 더딘 것은 나 자신의 완벽주의적인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사람은 그 정도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낼 수 있고, 그 정도면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인 편집이 나 자신을 병고에서 해방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간호사는 일본에서는 아주 유명한 간호전문가였다.

그런 일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80대가 되면서 나 자신도 놀랍게 느낄 정도로 완벽주의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최선주의자로—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완벽을 기하려는 집념을 버리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는 자세─ 바뀌었다.

행복은 완벽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데서 찾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벽을 기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하면 언제나 불만이고 불평과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납득하게 되면 만족의 극대화가(maximization of satisfaction) 아닌 행복의 최적화를(optimization of happiness) 체득하게 된다는 것을 늦게나마 80대가 되어서야 체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월 10일 목요일

청년철학의 출발점은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Amo, ergo sum. I love, therefore I am) 중년철학은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Consumo, ergo sum. I spend, therefore I am)’ 요약된다. 그러나 노년철학은 ‘나는 비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Vacuo, ergo sum. I empty, therefore I am)’.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철학적 고뇌‧ 사유‧ 상상‧ 언설의 핵심내용이다. 사랑에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이 난다. 삶의 원동력이 거기서 나오고 삶의 보람이 거기서 느껴지고 삶의 지향이 거기서 세워지기 때문이다.

중년에 접어들면,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는,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에서 사는 맛을 알 수 있고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사는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부자이건 아니건 일상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돈을 버는 일이나 아니면 돈을 쓰는 데서 보내진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 얼마나 비울 수 있는가가, 노년다운 삶의 기본이 된다. 청년이나 중년이 채우는—사랑의 욕구를 채우거나 돈의 소유와 소비로 채우거나— 삶이었다면 노년은 모든 것을 비우고 청년이나 중년의 채움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다시 채우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텅 빈 내면 깊숙이 우주생명의 숨결과 원력(願力=지구사회와 인류문명의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새롭게 열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힘)을 가득 채우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개체생명이 완전히 비워질 때 비로소 우주생명이 충만하게 되어 아주 다른 새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월 11일 금요일

청년철학이나 중년철학은 중심과 방향은 다른 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기반, 터전장소가 의식이라는(意識─consciousness)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기본이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는데서 삶의 기쁨을 얻거나 열심히 돈을 벌어서 마음껏 쓰는 가운데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년철학이나 중년철학은 모두 의식 중심의 철학이다.

그러나 노년철학은 기반, 터전, 장소가 의식에서 생명으로 이동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의식보다 깊고 넓은, 그래서 의식조차도 거기서 생겨나오는, 생명을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자각하는 것, 자기 삶의 참모습에 눈이 뜨이는 것이다. 남의 삶을 보고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깨닫고 얼을 통해서 보다 큰 생명에 이어져 있고 그것에 의해서 내 삶이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몸과 마음과 넋으로 이루어진 나 자신의 개인적인 삶 =개체생명을 비어가는 한편 나의 삶을 지탱해온 우주적 근원적 생명력이 빈자리를 채워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 순응해가는 것이 노년철학의 첫 번째 의미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겪어가면서 청소년세대와 중장년세대와 함께 서로 행복해지는 길을 열어가는 일이 노년철학의 두 번째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철학은 노년의, 노년을 위한, 노년에 의한 철학이 아니다. 노년철학은 3세대가—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 함께 살면서 서로가 힘을 보태고 지혜를 모으고 능력을 발휘해서 화해와 상생과 공복=함께 행복해하는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철학이다.



10월 12일 토요일

친구와 만나기 위해 시내로 나가려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중년의 여성운전기사가 내가 과거에 대학교수였다는 것을 안다면서,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해온 것들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음 질문들을 했다.

1) 왜 살아야 하는 거지요?

2) 무엇이 있으면=가지면 행복하게 될 수 있나요?

3) 행복은 나 자신 밖에서 찾아지는 게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찾아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그런가요?

요즘에 들어서 상당히 유식한 운전기사들이 운전하는 택시를 종종 타게 된다. 그때마다 나누는 대화는 아주 유익하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놓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1)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행복이란 무엇이 있다거나 가지고 있다는 조건에 따르는 결과가 아니라 나의 삶이 삶답게 가꾸어지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각이요 각성이다.

3) 행복은 나의 밖이나 나의 안에서보다는 나와 너 사이에 나타나는 일=현상=사건이다. 나만의 행복은 불충분 할 수밖에 없고 자기와 타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일—그러니까 공복(共福)—때 충분하고 온전하고 충만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만의=나 홀로의 행복이 무시‧ 소외‧ 희생되는 데서는 어떤 행복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이렇게 내 의견을 나눴다. 말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저의 작은 성의를 담은 수업료라고 여기시고 택시 요금은 안 받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떠나갔다. 일순 훈훈한 행복이 저만치 가고 있는 운전기사와 나 사이에 출현했다.



10월 13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 C대학의 L교수와 전화로 이야기를 하던 중 요즘 행복에 관한 책들을—주로 한국에서 출판된 한국어 서적들─ 읽었는데 서양학자들의 행복론 또는 행복학설의 번역‧ 소개‧ 인용뿐이고, 막상 저자 자신의 생활체험이나 심사숙고에서 나온 견해나 소신이 들어있지 않아서, 매우 아쉽고 허전했다는 그의 소감을 토로했다.

나의 노철 개벽일기도 읽고 있으며, 특히 어제 쓴 부분을 읽고서 자기가 마침 생각해 온 문제와 동시성(Synchronicity=우연히 같은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현상‧ 사실‧ 상황)을 느꼈다고도 했다.

나도 일본에서 공공철학대화운동을 주관하고 있을 때부터, 행복에 관해서 여러 나라에서 출판된 여러 권의 전문서와 교양서를 읽어보았고, 또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행복학 전문가들과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나 나름대로의 현시점에서 나 자신이 깨달은 바를 최소한의 명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고, 언젠가는 자세한 내용으로 펼쳐보려 한다는 나의 의중을 이야기했다.

1) 행복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지성적 행복이해, 감성적 행복이해, 영성적(또는 근원생명력적)행복이해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깨닫는 행복, 느끼는 행복, 통하는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2) 행복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 그 차체라는 것이다. 가령, 재산이나 명성이나 지위처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존재의 차원에서─깨닫거나 깨우치거나 눈뜨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요 자각이요 기통(氣通=막혔던 생기=생명에너지가 확 뚫려서 거침없이 통하게 되는 현상)이다.

3) 행복이란 자기 밖 먼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안의 깊숙한 곳에서 근원적 생명에너지가 제대로 작동할 때 생성되며 그것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감동적이고 감사할 일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4) 그러나 거기서 끝나면 개인 속에 갇혀있는 불완전한, 온전치 못한, 부족한 행복이다. 자기 속에 일어나는 기적 같은 생명의 충만, 충일, 충전이 타자 속에서도 일어나서 자기와 타자사이에 공명(共鳴=함께 울리다), 공진(共振=함께 진동하다), 상통할(相通=서로 거침없이 통하다) 때, 비로소 자타간 공복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온전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0월 14일 월요일

오랜만에 C대학의 K교수를 만났다. 여러 가지 지내온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장수개벽일기를 읽었다면서 솔직한 감정표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나 자신이 감정노출을 극력 자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이 담겨있지 않으면 공감의 통로가 막혀버릴 수 있어서 삭막한 글이 되기 쉽다고도 했다. 역시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D대학의 K교수와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함께 해온 노년철학에 인간적 온기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시(詩) 문학적 감성을 더함으로써 인문학적 품격을 갖춘 노년철학으로 잘 다듬어서 한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도 공유했다.

우리가 함께 추구해온 노년철학은 3세대–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간 상화, 상생, 공복을 실현시킬 수 있는 좋은 사회건설을 지향하는 철학대화운동이다.

그 운동에너지의 원천은 동양포럼참가자들의 지성과 감성과 영성의 교향악적(Symphonic) 화합(和合), 융합, 조화에 있다. 정연한 논리가 있고 따듯한 감동이 있고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이 어우러지는 가운데서 공감에너지가 적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철학은 논리가 바로선 언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마음 깊숙한 내면에 와 닿는 시가 있으면 더 좋다. 그러나 거기서 한발 전진 할 수가 있다면 지역간, 남녀간, 세대간, 상호존중, 상호화합, 상호격려를 깊고 넓은 차원에서 성취할 수 있는 영성의 역동이 더해지게 되면 좋겠다. 시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했다.



10월 16일 수요일

정오(정확하게는 12시 15분)에 유성종 선생, 김용환 교수와 만나 점심을 함께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김용환 교수의 큰아들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축하하는 뜻을 전했고,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국가공무원으로 특채되어 매우 흐뭇한 것 같았다.

그 젊은이는 오늘의 우리나라에서 일반시민들의 역할기대를 저버리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법기술자가 되지 말고, 참다운 법률가가—판사이든 검사이든 변호사이든 국가공무원이든—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했다. 그런 뜻을 담고 인문학적 교양을 강조하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책이니까.

그리고 유성종 선생과 나는 2019년 12월 31일부로 동양포럼의 운영위원장과 주간의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한다는 우리의 의중을 밝혔다.

우선 김용환 교수가 운영위원장과 주간 중 어느 쪽을 계승해 주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주간 쪽을 맡고 싶다고 해서 그러면 운영위원장은 유성종 선생이 권유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확답을 단시일 내에 받기로 하고, 두 분이 힘을 합쳐서 잘 키워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했다.

유성종 선생과 나는 4년간 정말 최선을 다했고, 어느 정도 새 길을 열어놓기는 했으나 앞으로 연부역강한(年富力强=나이가 넉넉하고 힘이 강하다) 김 교수의 활동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30년간 외국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국내에 학맥이(學脈) 다 끊어져 버렸고,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모시는 데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그 점 스스로 인정한다.

그래서 김 교수가 우리나라 실정을 잘 감안해서 좋은 인선을 하고 좋은 성과를 내서, 노년철학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기를 당부했다.

나 자신은 더 자유로운 입장에서 일본과 한국을 아우르는 쪽으로 노년철학대화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 정권주체들이 극단적인 반일태도를 취하고 국민에게도 직간접적으로 ‘반일은 애국이고 친일은 매국’이라는 식으로 마구 몰고 가는 가운데서, 한일철학대화를 계속한다는 것이 김 교수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그 몫을 담당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설명도 했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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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6.07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10월 2일 수요일

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둘째 날 오전 회의는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사 사장의 ‘노년철학과 미래공창’이라는 발제강연이 있었고 토비오카 켄 박사의 진지한 질의가 계기가 되어 활발한 대화가 전개되었다.

질의의 요지는 ‘미래공창이라는 구호는 대단히 설득적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공창이냐’는 것이었다.

야마모토 사장의 소상한 응답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불교의 인과론적 교리에 관련되는 언설이 나와서 김용환 충북대학 교수가 불교의 기본은 인과론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의 미래공창하려는 의지와 행위와 염원이 무의미한 도로가 되지 않겠느냐는 문제 제기다.

야마모토 사장도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고집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열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들의 사고와 행위·이론과 실천·판단과 상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결집·축적·진화되어야 그런 과정을 통해서 보다 바람직한=좋은 미래가 열리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좋은 원인을 마련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善因善果, 惡因惡果)이라는 점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물리학에서도 고전물리학에서 강조되었던 인과론적 물리를 수정해서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의 여지를 인정하고 확률론(確率論)적 물리관을 제시하고 있다. 결정론적 사고와 자유의지론을 적절하게 융합시키려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요는 물질-물체-무기물의 세계에서는 모든 현상·변화·발전이 철저하게 인과법칙적으로 현현하지만 인간세계는 다소의 자유의지의 발휘· 작동· 작위를 통해서 인과론의 세계 속에서도 비인과의 지평· 차원· 세계를 형성· 건립·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래공창적 사유· 판단· 행위· 실천· 책임 등의 문제 설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글표현으로는 ‘함께 미래를 여는 일’이라는 말을 쓰기로 하고 일본에서는‘미래공창(未來共創)’이라는 말을 쓰기로 함으로써 서로 다른 어감(한국에서는 공창이 여성멸시적인 공창(公娼)이라는 말을 연상시킨다는 일부 참석자들의 의견을 존중했음)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국제회의는 그래서 여러 가지로 고려·배려·심려해야 할 일이 많다.



10월 3일 목요일

제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셋째 날의 오전회의는 하라다 켄이찌(原田憲一) 지성관대학 전 학장의 ‘비교문명이란 무엇인가?’와 김용환 충북대학 교수의 ‘노년철학과 문명의 대전환’, 그리고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선생의 ‘노년철학과 신문명론–교육과제’ 등을 주제로 하는 발제가 있었다.

김용환 교수만이 시간 조절을 잘해서 대화를 전개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분은 하고 싶은 말이 나무 많아서였겠지만 대화 시간을 남겨주지 않았다.

김용환 교수의 발제에 나오는 봉사라는 말의 내용에 대해서 황진수 교수가 어제의 자신의 발제 내용과 관련시켜서 자원봉사에 대한 법령은 있으나, 시행령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지원체계가 불충분한 점을 지적했다.

거기에 대해서 김용환 교수는 노년의 보수를 기대하지 않는 자원봉사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보수를 받고 하는 일과는 근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이 두 분의 논의를 흥미 있게 듣고 노년학과 노년철학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노년학은 노년문제를 대상 인식적으로 접근하고 노년을 지원하는 제도설정에 중점이 주어진다면, 노년철학은 노년을 사는 사람들의 자각의 문제와 청소년이나 중장년이 노년을 어떻게 보느냐는 타자인식을 함께 아우름으로써 보다 나은 3세대(청소년세대·중장년세대·노숙년세대) 사이의 상화· 상생· 공복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둔다는 데서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회의에서는 김영미 시인의 ‘로마와 경주의 비교에서 보는 노년의 의미’라는 발제에서 세월이 흘러 낡았어도 오히려 더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고령자 인간의 모습을 시적 상상력을 살려서 그려보여 주었다.

원혜영 충북대학교 강사는 ‘성차(gender)와 나이듦(aging)’이라는 발제를 통해서 스피박과 보부아르의 문헌을 살피는 가원데서 여성철학과 노년철학의 상관연동성을 밝혀보려 했다.

그리고 전체토론으로 들어갔는데 주로 11월에 있을 일본 시즈어까(靜岡)현 주최의 국제회의에 대한 준비로 하라다 켄이찌 비교문명학회 회장의 취지 설명을 듣고 질의문답이 있은 후에 내가 한국 측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참고사항을 유념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시즈오까현에서는 ‘노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장수’라는 말로 통일하고 있기 때문에 장수철학이라는 말로 통일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시즈오까현에서는 무병장수 또는 건강장수를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 동양포럼에서는 행복장수를 장수철학의 기본으로 삼고,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은 행복수명과의 상관연동에서 성찰한다는 점을 의식해 달라는 말을 함으로써, 3일간의 국제회의를 마감했다.

정상혁 보은군수와 관계 직원 여러분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10월 4일 금요일

어제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린/열리는 날’이라는 뜻의 개천절이었다. 서울에서는 한국역사상=단군 이래 최다인수가 참가한 조국규탄, 문재인 퇴진 대규모 시민궐기가 있었고 그것이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 알았다.

속리산 숲마을에서 있었던 노년철학 6회 국제회의(2019년 10월 1~3일)를 보은군과 공동주최하고 나 자신이 주관해서 끝까지 충실하게 성공적으로 끝맺기 위해서 전력투구하느라 그쪽에 관심을 둘 새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정치상황이 더없이 어렵고 국민은 극단적 대립, 분열, 갈등으로 더없이 아파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조이며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나의 정치적 신념으로 삼고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정치사상이나 체제원리로서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 자신은 그런 사상에 공명하지도 않고 그런 체제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를 구태여 말한다면 친북좌파정권보다는 한미일 안보체제 속에서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을 공고히 하고, 열린 국제관계 속에서 자유무역을 통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직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과 자세정립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건전한 법치가 공평하게 시행되는데 있어서 최고책임자인 법무부장관은 다른 것은 몰라도 투철한 준법정신이 몸에 배어있기를 기대한다.



10월 5일 토요일

오늘은 심신이 몹시 피로하고 위와 장의 상태가 아주 나쁘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철저하게 휴식을 취하는 쪽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3일간 계속되는 학술회의를 연달아 주관, 주재하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긴장했고 육체적으로 무리를 해서 그 폐해가 고스란히 쌓여 몸이 반발을 하고 마음이 심한 불평을 표시하는 것 같다.

젊을 때는 하루 밤 자고 나면 거뜬했는데 80대 중반의 노년에 이르고 보니 확실히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약화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의사들로부터 나의 회복탄력성이 나이에 비해서 아주 좋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피로감이 말끔하게 씻기질 않는다. 그저 가만히 쉬어야겠다. 특히 머리를 쉬게 해야 할 것 같다. 평안히 잘 자야지.

Good night! Have a good sleep!



10월 6일 일요일

어제부터 장상태가 좋지 않다. 아프고 쓰리다. 배변을 몇 번씩 하고나서도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병원에 갈 수 도 없고 집에서 푹 쉬면서 나를 찾아준 이 불편함의 메시지를 헤아려 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청소년기와 중장년기를 거치면서 노숙년기의 중반(80대에서 90대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이르게 된 지금까지 장 때문에 골치를 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특히 80대에 들어서면서 나의 사고와 판단과 행위가 뇌에서 보다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니다. 뇌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장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 같다.

일본의 한 웹진 ‘생명과학정보실’의 대표이사이자 편집자이자 기자인 나가누마 타카노리(長沼敬憲)가 쓴 ‘장뇌력’이라는 책에 의하면 100세시대를 살아낼 힘은 뇌가 아닌 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장뇌력을 갈고닦아 본디의 생명력을 회복하자고 외치고 있다. 그는 “뇌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장이 이끄는 대로 느끼며 살자”고도 한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요즘에 와서 나날이 체감하는 것은 장의 상태가 좋으면 뇌작용도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발생학적으로 뇌보다 훨씬 오래전에 장이 생겨났고 생명작용의 중추적인 역할을 뇌보다 장이 훨씬 더 오래 담당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뇌를 발달시킨 덕에 고도의 지성을 갖추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뇌가 주인행세하기 시작한 탓에 목숨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작동하고 있는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장을 모체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데에 나는 동감이다.



10월 7일 월요일

새벽 3시 20분, 마침 트로이 윌슨 오건(Troy Wilson Organ)의 ‘Philosophy and the Self: East and West(Selinsgrove: Susquehanna University Press:1987)’를 읽다가 젊은 때는 시를 쓰는 시기이고 나이든 때는 철학하는 시기라는 언급이 있어서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쇼펜하우(Arthur Schopen-hauer·독일의 염세철학자, 1788~1860)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그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를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청춘—시: 노년—철학이라는 대비에 직접 연결되는 것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젊은 때 / 나이든 때

의지보다 지성 / 지성보다 의지

행복의 시기 / 불행의 시기

세상사를 멀리서 봄 / 세상사를 가까이서 봄

만족을 모르는 행복추구 / 불행할까봐 두려움

시간이 늦게 간다는 느낌 /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

죽음은 안 보인다 / 죽음이 가깝다

인생은 길다는 느낌 / 인생은 짧다는 느낌

계획을 많이 세움 / 추억 속에서 삶

소유욕은 적다 / 소유욕이 더하다

주위에 과민 / 주위에 둔감

세상사 외면에 관심 / 세상사 내면에 관심

지력이 왕성 / 지력이 쇠퇴

자기인식 부족 / 자기인식이 시작됨

지식을 축적 / 지식을 반성

불안의 시기 /휴식의 시기

좋은 일을 위해 분투 / 체념

환상 /환멸



글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쇼펜하우어의 나이든 때의 모습과 특징에 공감 할 수 없는 면이 많다. 거의 내 견해와는 맞지 않는다. 그의 철학이 대체로 염세적인 경향이 있는데, 노년관도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젊어서는 시를 쓰고 나이 들어서는 철학한다는 말은 마음에 든다. 내 경우에는 젊어서는 (사회)과학을 했고 나이 들어서는 철학(공공철학과 노년철학)을 하게 되었지만 시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았으니까. 역시 나이 들어 철학하는 삶이 제격인 것 같다.



10월 8일 화요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나이 들어가면서 생각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다가 마침내 죽어가게 되어 있는데, 나 자신이 가장 나다운 때가 언제일까? 생각할 때일까, 느낄 때일까, 괴로울 때일까, 아니면 즐거울 때일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의 경우에는, 그것도 85년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체험‧ 경험‧ 증험‧ 효험해본 바로는 내가 아플 때, 아주 심하게 아플 때,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겪어야하는, 견디어 내야하는 바로 그때,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의식이 한계상황에서 나 자신이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각은 다른 사람과 교류‧ 교환‧ 공유할 수 있다. 즐거움이나 기쁨은 함께 나눌 수 있고 서로 통할 수도 있다. 함께 나누고 서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즐거움과 기쁨이 크고 넉넉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픔은 홀로 겪어야하고, 견디어 내야하고, 이겨내야 한다. 불교는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그리고 죽는 것은 네 가지 괴로움(四苦)이라고 규정하고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또 괴로움과 아픔을 합쳐서 고통(苦痛)이라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 자신은 괴로움도 남과 함께 나누고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이나 기쁨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 어느 것과도 다른 것이 아픔이다. 아플 때, 심히 아플 때, 나는 가장 깊은 뜻에서 ‘나’ 일 수 있다. 그래서 감히 나는 단언한다.

‘나는 아프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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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4.26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9월 7일 토요일

나는 문재인과 그의 정치적 동지들이 그토록 목을 매는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남북통일이라는 구실로, 무조건 아부하는 태도가 역겨운데, 북한 쪽의 오만과 대응이 반감을 증폭시킨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당시에는 6.25남침이라고 불렀다.─ 때 피난을 못가서, 반년 정도 북한 지배하의 생활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아도 입만 열면 이데올로기 타령을 하고, 과격한 선전 선동에 신물이 나는 나날이었다. 지금 TV 화면을 통해서 보는 오늘의 북한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은 자주 동서남북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고, 교수・ 학자들이나 관료들과 공공철학의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다언무실(多言無實=말은 많은데 내용이 없다)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소감이다. 자기주장만 장황한 반면 남의 말을 경청하려는 자세가 미흡하다. 러시아는 과거의 문학이나 예술이나 철학에는 깊은 관심을 가졌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현재의 러시아에는 몇 번을 가보았으나, 전연 호감을 가질 수 없었다. 문재인 정권과는 국제 감각이 아주 다른 것 같다.



9월 8일 일요일

나는 문재인 정권이 언제나 어디서나 소리 높여 강조하는 공명・공정・정의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 가치를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수용할 수 없다. 문재인이 주장하는 바를 잘 살펴보면 정의를 전적으로 공권력=국가권력의 행사를 통하여 실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의독재=정의가치 실현을 위한 독재에 지나지 않는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은 정의는 개개인의 자유(自由)와 자성(自省)과 자제(自制)가 그 기본전제가 될 때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적 사태발전 때문에 개개인의 자유와 자성과 자제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게 될 때에 한해서, 국민적 합의에 의하여 제정된 법적 절차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처하여야 하는 것이다.

공권력의 행사는 집권세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행사되면 사권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공권력은 자의적인 인치(人治)의 위험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철저하게 법치(法治)의 원칙을 충실하게 준수하여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는 이러한 의미의 법치감각이 희박한 것 같다.



9월 9일 월요일

조동삼 교수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이원오의 ‘황혼(黃昏)-3’이라는 시(詩)가 마음에 든다.



늙어가는 길...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이 마음과 같이 않고

方向感覺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不安한 마음에

멍하니 窓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好奇心과 希望이 있었고

젊어서는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切實하고

애틋한 親舊가 그리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보면

或是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老慾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所望하면서

黃昏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丹楓처럼

해돋이보다 아름답다는 해넘이처럼

그렇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9월 10일 화요일

외국에 와 있는데도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보통사람의 상식적 판단과 너무나 어긋나기 때문에, 국내외의 조롱과 비아양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 나라사랑이 입은 상처가 심하게 아리다.

온갖 비리와 부정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을, 절대적 다수의 반대를 묵살하고 법무장권에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국민이 극심하게 분노하고 있다. 대한민국 ‘法務部’가 무법자의 장관임명으로 말미암아 ‘法無部’로 전락되고 말았다는 데에 대한 분격이다.

법질서 위반자를 법질서에 따라 심판대에 세우는 일은 검찰총장의 몫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겪게 되는 비상사태가 발생되었다. 현역 법무장관이 현역 검찰총장과 정면충돌을 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에게는 조국과 절대로 갈라질 수 없는 아주 특수한 공동이해관계가 있는 것 같다.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능력과 책임수행 여부가 우리 모두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9월 11일 수요일

일본인의 한국 인식은 원래 별로 좋지 않다. 배용준・최지우 주연의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한때 일본 여성들의 뜨거운 열중물입으로 한일관계와 대 한국인식을 상당한 정도까지 개선시켰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천황이 종군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이 있을 후에, 급격히 냉각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비우호적 대일 태도 때문에 긴장관계가 계속되다가, 미국의 끈질긴 종용에 의해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국가가 기본양해가 이루어져 약간의 호전을 보이는가 싶었는데, 문재인 정권의 극단적인 반일감정 외교로 인해서 더 이상의 우호국이 아닌 적대국 관계가 되고 말았다.

한국을 비아냥하고 비판・ 매도・ 악담・ 냉소・ 무시・ 경멸하는 책자도 많이 나왔고, 잡지나 주간지의 기사도 넘쳐난다. 염한・ 반한을 쓴 것이면 무조건 잘 팔린다는 출판사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근의 염한론의 홍수는 비정상적이다.



9월 12일 목요일

오전 11시 30분, 우메다 3번가 17층의 우메노마라는 일식식당에서, 후지가미 회장, 우에모토씨, 야마모토 사장과 함께 점심을 하면서 담소하였다. 우선 토비오카 켄씨를 만나게 되어 대단히 기뻤다는 데에 대하여, 나도 그분에게는 도움을 많이 받았고 배운 바도 많았던 잊을 수 없는 일본인의 한 사람이라고 호응했다.

코마쓰시와 코마니 회사의 협력 사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국제도시 코마쓰 10년 계획이 양쪽의 합의에 의해서 공동추진하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노년철학과 제론토피아 구상도 포함하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말도 있었다.

야마모토 사장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미래공창신문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데 공감을 나누었다.

노년철학 대화모임을 확장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들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구체적인 협조방안을 강구해 보겠다는 말도 있었다.



9월 13일 금요일

일본에 있는 동안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매일 아침에 신선한 여러 종류의 야채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고, 소금버터식빵, 치즈, 소시지, 그리고 밀크 티가 모두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맛이 있다. 양질의 마도 갈아먹는데, 모든 것이 선도가 높고 가격이 저렴하다. 한국보다 싸다.

점심에는 연어, 고등어, 가자미, 도미가 맛있게 구어 포장된 것도 그냥 사다 먹으면 되는데, 내 입맛에 딱 맞는다. 시금치나 무나, 특히 양배추와 두부를 넣어서 만든 된장국이 구미를 돋운다. 낫또와 일본간장의 배합, 거기에 약간의 와사비를 섰으면 그야말로 진미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모즈크라는 해산물이 있는데, 그것도 나는 좋아한다.

저녁에는 가볍게 소화 잘되는 것을 먹는데, 우메보시나, 쓰케모노류를 발효보리를 섞은 밥과 함께 먹는다. 식사 때마다 식후에 아마자케(甘酒)와 요캉(羊羹)을 먹는데, 한국의 감주나 식혜 그리고 양갱과는 아주 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는 일본 것이 더 맛있다.

그러나 나는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에서 살 수 있는 것을 먹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것을 먹는다.



9월 14일 토요일

오사카의 우리 집은 작은 아파트지만 살기에 편안하고, 여러 모로 편리해서 좋다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전차역이 걸어서 2분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고, 온갖 생활필수품을 고르게 갖춘 슈퍼마켓이 여러 곳에 있으며, 다양한 전문분야의 병원이나 진료소, 약국 그리고 나이 들면 때때로 찾게 되는 정골원, 지압과 안마와 침구의 시술소 등등이 모두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특히 내게는 그 어느 것보다 꼭 있어야 되는 크고 작은 서점들이 가까이 있어서 아주 좋다. 그때그때의 신간서적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에서 점검할 수 있고, 더 깊고 넓은 정보, 지식, 지혜를 위해서는 전차 타고 15분 정도를 가면 규모가 크고 구색도 충실한 대형서점이 여러 개가 있어서, 한 바퀴를 돌아보고 오는 것도 힘은 들지만 내게 있어서는 더 없이 행복한 일과가 된다.

세계에 여러 나라들의 여러 도시를 다녀보았지만, 언제나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예외 없이 서점이었다. 서점이 없는 도시는 내게는 사막처럼 느껴진다. 좋은 서점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었다.



9월 15일 일요일

오사카의 우리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조촐한 행복은 아침 일찍─계절마다 다르지만, 요즘은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 일어나 세수, 세면, 세족, 세심을 마치고, 왕복 1km의 오솔길을 걷는 것이다. 한쪽에는 넉넉한 흐름이 심신을 정화시켜주는 강이 있고, 또 한쪽에는 곳에 따라 키 작은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혼과 영을 미화시켜주는 강변의 소로다. 길은 더 멀리까지 펼쳐 있지만 내 체력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500미터를 돌아온다. 아침걷기를 하는 동안에 하루를 시작하는 몸과 마음과 얼을 정리하는 귀중한 1시간이다.

젊은 남녀, 중년의 남녀, 그리고 노년의 남녀가 한결같이 편안한 표정으로 산책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더러는 인사말을 나누고, 더러는 말없이 목례를 나누고, 더러는 그냥 조용히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모두가 이른 아침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청신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고 심・신・혼을 말끔히 정화시키는 것 같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기쁨이 불특정다수 타자들의 기쁨과 어우러지는 묘미를 충분히 음미하는 철학의 오솔길이 바로 가까이 있어서 오사카의 우리 집이 좋다.



9월 16일 월요일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상관없이 새벽 3시 전후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올리브유로 입안 청소를 하고─25분간─, 양치를 하고 온수(+레몬즙) 두 컵을 마신다. 1시간 후에 계피+생강+코코아+레몬+오리고당차. 또 1시간 뒤에 프로바이오틱스 한 알. 세수, 세면, 세심을 통하여 심・신・혼을 세척한다. 평균 3회 배변과 배뇨.

말끔히 비워진 몸과 마음과 얼에 새날의 새 공기를 한껏 채우고, 낡고 상한 공기를 남김없이 밖으로 내보내는 나 나름의 호흡조절운동을 한다. 험한 날이면 방안에서, 그러나 웬만한 날씨면 되도록 밖에 나가서 바깥공기를 호흡하도록 한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와 공기의 질 좋다, 보통이다, 나쁘다는 둥의 기상정보를 일일이 확인해야하기 때문에 대단히 번거롭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걱정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하루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오늘 오후 7시 50분발 제주항공 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는 한국 나름의 삶을 통해서 노년철학 대화를 계속한다. 한국에서 찾는 행복은 일본에서 찾는 행복과 같을 수는 없지 않는가?



9월 17일 화요일

다시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새벽 2시 40분 잠에서 깨었다. 이것은 오늘의 아침을 나열한 것이지만 보통 매일 나의 아침은 이런 루틴으로 시작된다.

깊은 심호흡으로 하루 시작─내장 깊숙한 곳까지 새 공기가 들어가서 묵은 공기를 밀어내고 내장 안팎의 공기순환을 열 번 반복한 다음, 스트레칭─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시에 움직이고 밤새 굳어진 것을 연화시키며 허리를 좌우로 흔들고 팔다리를 위로 펼쳐 올렸다 내렸다 열 번씩 되풀이했다.

그러고 나서 기상!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로 입안을 청소, 소금으로 양치, 곧바로 섭씨 60도의 온수+레몬즙 두컵, 내장상태에따라 3~4회 배변과 배뇨, 몸안과 마음속을 말끔히 비우고 씻어내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계피가루+생강+코코아가루+레몬즙+올리고당을 섞어 만든 계피차 한컵을 마시고 40분 정도의 신문, 유튜브, TV, 프로바이오틱스 한알

오전 6시 오늘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상태가 좋고 맑은 날씨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집밖으로 나가 1 km정도의 아침산책 후, 샤워하거나 세수, 세면, 세족을 끝내고 세심(마음을 씻음)

오전 7시 요쿠르트+견과류+사과 반쪽

오전 7시 30분 기주떡 한조각+야채+식혜 한컵

85세의 내게 있어서 하루의 시작은 다소 복잡하고 주의 깊은 매일 진행되는 루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병원신세 안지고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현재의 노년기 문제인 배변과 배뇨의 이중 장애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한 양생실천이고 천천히 좋아지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이렇게 해서 커다란 부작용 없이 노년철학대화활동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소박한 일상의 행복이며, 이런 삶을 오늘 이 순간까지 이어오게 된 것에 그저 감사 할 따름이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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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3.22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8월 18일 일요일

어떤 독자가 8월 17일에 올렸던 글 속에 나오는 ‘활명연대(活命連帶)’라는 말의 뜻이 대강 짐작은 되지만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세 종류의 국어사전을 뒤져 보았으나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아서 직접 물어보기 위해 내게 전화를 했다.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가 생각해 온 바를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활명(活命)’이라는 말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조어(造語)이기 때문에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철학대화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아니고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낯선 어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철학운동에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말이 필요하고 그래서 기왕에 있는 말을 새롭게 뜻풀이 하던가 아니면 아예 새로운 말을 말들 수밖에 없다.

활명이라는 말의 뜻은 기왕에 태어난 목숨 = 생명은 어떤 조건, 상태, 현상이 건간에 태어났다는 사실자체를 축복하고 감사하고 존중하고 온전하게 다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던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사상, 견해 등에 전면으로 대치되는 관점, 입장, 주장이다. 개인에 대해서도 그렇고 국가에 대해서도 그렇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극단화, 절대화, 독선화 되지 않도록 신중한 균형감각을 상실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은 노년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어린아이의 출산율이 감소하는 저출산, 저성장, 초고령사회화라는 전대미문의 대변혁을 겪으면서 새로운 생명관‧ 생사관‧ 인간관의 재조명‧ 재조정‧ 재정립이 시급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와 같은 시대의 요청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30년 전부터 앞서서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대책을 간구했던 경험과 대책과 성패가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일철학대화의 효용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일간 시민주도의 활명연대를 통해서 슬기롭고 구체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공동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더 없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활명”이란 중명(重命=주어진 목숨을 중히 여기다)이고, 존명(尊命=주어진 목숨을 존중한다)이고, 귀명(貴命=주어진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이고, 전명(全命=주어진 목숨을 끝까지 다한다)이다. 이것은 생명철학적 지상명령인 동시에 노년철학적 대전제이며, 3세대의—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 상화‧ 상생‧ 공복 실현을 위한 공통최우선과제이다. 관심을 가져준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한다.



8월 19일 월요일

오늘에서야 옆구리 아픔이 실감될 만큼 경감되었다. 나이듦에 따르는 자연스런 증후이며 또 다른 형태의 아픔이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 올 것이다. 기피하거나 제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될 수 있는 데까지 친숙해지고 아픔을 통해서 무통 평안할 때 소홀히 여겼던 일들을 다시금 꼼꼼하게 되새겨 보는 기회로 선용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특히 아픔이 심해져서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밤중에, 그리고 새벽녘에 몇 번이고 머리에 떠오르고 가슴에서 체감되고 뼈를 통해 팔다리로 내려가는 진지한 자문자답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부터 얼마나 더 나이 들어갈지 알 수는 없으나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까? 나는 과연 어떤 나이듦을 바라는가? 아름답게 그리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것? 아니면 슬기롭고 점잖게 나이 들어가는 것? 그것도 아니면 건강하고 풍요로운 나이듦?

내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몸이 몹시 아픈데도 마음은 나이듦의 갖가지 모습을 계속 그려간다.

나이 들어도 낡지 않고 시들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삶.

나이 들어도 싱싱하고 펄펄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삶.

나이 들수록 더 멋스럽고 더 점잖고 더 깔끔한 삶.

죽는 순간까지 설렘을 잃지 않는 나이듦.



8월 20일 화요일

HY야, 80대 중반까지 살아온 내가 심정적으로 가장 깊은 공감을 느끼는 시 한수를 고른다면 누가 쓴 어느 시라고 말하겠느냐고 물었었지?

그때는 내 옆에 앉아있던 기성시인이 어떻게 느낄까가 마음에 걸려서 즉답을 못했었지. 그리고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어서 잊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에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진솔한 물음에 진솔하게 대답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져서 자백할까.

85세의 내게 가장 진한 감동을 주고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시는 놀랍게도 27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의 “서시(序詩)”인데 노경(老境)의 심심(深心)을 그만큼 나이 들어보지도 못한 젊은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도 영롱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이것은 그의 한없이 맑고 깨끗한 시심(詩心)‧ 시혼(詩魂)‧ 시영(詩靈)이 어우러져서 출산한 생명의 절규였을 거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 中>



젊은 한때 나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를 “별을 헤이는 마음”으로 고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를 바꾸어서 “ 하나하나의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로 고쳐서 그것을 내 삶의 지표를 세웠었지.

중장년기에는 주로 일본에서 일본인 벗들과 공공철학대화운동에 몰입열중하고 있었을 때 어쩌다 마음이 허전한 밤이면 정말 뜻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맥주라도 마시면서 되는 이야기, 안 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본 땅에서 한국인인 내가 철학대화운동을 해가는 데서 예상 밖의 온갖 왜곡, 오해, 중상, 모략, 폄하에 부딪히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잎새에 이는 바람(소리)에도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나는 괴로워했다”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심상풍경(心像風景)이었어.

그러나 이제 나도 명실이 함께 노숙년기에 접어들었어. 내게 주어진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나도 이윽고 그들과 하나가 될 테니까. “그리고” 지금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남은 나에게 주어진 길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표표하게— 걸어가야겠다.”는 윤동주 시인과 나 자신의 상호영통(相互靈通)을 이루게 해주는 시이기 때문에 “서시”는 내게 더없이 귀한 거야.



8월 21일 수요일

오전 10시 이스터항공 ZE 7201편으로 청주 출발, 11시 30분 오사카 도착, 일본 생활 시작.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일본을 좋아하는데, 왜 문재인정권은 일본을 미워하는가? 반일이 곧 매국이요 따라서 친일은 매국이라고 강변하는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영락없이 매국노가 되는데, 나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나는 문재인정권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강변하건 간에 지일이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내 생각에 따라 한일철학대화를 끈질기게 계속해 왔고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특히 노년철학을 정립하고 의미 있게 노년을 맞이하고, 노년에 이르러야 비로소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삶의 맛과 멋과 보람을 젊으신네들과 공감하고 싶다. 그리고 나이듦이야말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늙으신네들이 자각하고 본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야마모토교시 사장과 내일 11시 30분, 기노구니야서점 앞 관장에서 만나기로 약속.



8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30분, 기노구니야서점 앞에서 야마모토 교시 사장을 만나, 늘 같이 가던 중화식당에 가서 25일부터 열리는 미래공창신문사 주최 제1회 노년철학 국제회의의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을 협의했다.



1) 한국 측 참가자에게는 숙식비 외에 균일하게 항공료 3만 엔+참가비 3만 엔을 합하여 6만 엔을 지급한다.

2) 김석철 군의 참가는 1일간 예정에서 3일간 참석으로 변경한다.

3) 유성종 선생이 희망한 정통적인 오뎅 석식은 마땅한 데가 없어서 포기한다.

4) 논문집은 일반인에게는 무료 배포한다.

25일 행사장에 갈 때, 교토 다이마루백화점 일구에서, 야마모토 사장과 11시에 만나, 한국 측 참가자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중식을 같이 하고 행사장으로 가기로 약속하다.



8월 23일 금요일

오전 10시, 안마를 받음. 온몸에 안 앞은 데가 없다. 그동안 여러모로 무리가 쌓인 것 같다.

모처럼 이발하러 갔더니 정감 있는 인사로 반긴다. 일본사람들의 손님 관리는 정말 철저하고 섬세하다.

오후 3시에, 안과에서 눈 상태 검진, 이상 없음. 안구피로증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 받음. 안약을 받아 귀가하다.

森次郞 지은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한 진화의학 입문(人生を生き抜くための進化医学入門)’ (포리쉬워크Polish Work: 2016)을 완독. 진화의학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강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하여, 인류 진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그런 문제들이 존재하는 이유의 본질을 알게 해준다.

진화의학의 특징은 한마디로 ‘시간’이라는 좌표축을 더해서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이다. 요컨대 삶이란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다름 아닌 나이듦을 뜻한다.

그리고 노화나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병=질병이 아니라 생명의 정상적인 생리현상일 뿐만 아니라 생명진화에 필수불가결의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진화의 과정의 한토막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이나 노화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나 인생 그 자체도 진화의학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8월 24일 토요일

26일부터 시작되는 미래공창신문사 주최 제1회 노년철학국제회의에 임하는 나 자신의 노년철학을 생사관과 의철학에 관련시켜서 정리 요약하면 다음 6개의 라틴어 문장으로 명제화 할 수 있다.

1) Nascor, ergo morior.(I was born, therefore I die.)

2) Vivo, ergo senesco.(I live, therefore I age.)

3) Senesco, ergo sapio.(I age, therefore I awake.)

3-1. Senesco, ergo deleo.(I age, therefore I pain.)

3-2. Deleo, ergo sapio.(I pain, therefore I awake.)

4) Mors est initium novum.(Death is a new begining.)



이것을 다시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라틴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한문으로 바꾸어 놓으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出生則入死.

2) 生存則加齡.

3) 加齡則質醒.

3-1. 加齡則感痛.

3-2. 感通則質醒.

4) 死終則新始.



마지막으로 우리말로 요약한다.

1) 나는 태어났으므로 죽는다.

2) 나는 살아 있으므로 나이 든다.

3) 나는 나이듦으로 깨닫는다.

3-1. 나는 나이듦으로 아프다.

3-2. 나는 아픔으로 깨닫는다.

4) 죽는다는 것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8월 25일(일요일) 21:10

칸사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오래간만에 미야모토 히사오 교수를 만났다. 그동안에 여기저기서 일본어로 타자론이나 아우슈비츠에 관해서 말했던 것을 일본어와 프랑스어로 재정리하고 그것을 프랑스어와 일본어로 출판하는 수고가 많았다는 것 같다. 내용에 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표현상의 차이를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김용환 교수가 ‘장수시대 장수윤리’라는 책을 충북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했다. 동양일보에서 매월 두 번씩 열고 있는 공개강좌에서 강연하고, 앞으로 강연할 예정인 ‘장수윤리론’을 책으로 정리해 놓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하다.

하라다 켄이찌 회장이 안내하여준 순일본적 식당에서, 유성종 선생, 진교훈 교수, 야마모토 교시 사장, 하라다 회장, 나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담소하였다.

유성종 선생이 일본의 진짜 오뎅을 맞보고 싶다고 해서 유명한 오뎅집에 갔었는데, 손님이 초만원이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칸사이 세미나 하우스에 돌아와 보니, 키타지마 기신 교수와 오오하시 켄지 선생, 시바타 구미코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내일부터 시작한 학술회의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말을 하고서, 쉬도록 했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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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1.12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8월 12일 월요일

잠견자박(蠶絹自縛:누에가 자기가 만든 고치안에 갇혀서 밖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말이 생각난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조 최초의 나라인 북위(北魏)의 고승 담란(曇鸞, 476-542)의 ‘논주(論註)’라는 책 속에 나오는 말인데 자기 스스로 만든 프레임에 갇혀서 외부세계의 들어야 할 말을 들을 수 없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 무이인(無耳人:귀가 없는 사람)이 되고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없거나 보려 하지 않는 무안인(無眼人:눈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는 변태인간의 경우를 지칭한다.

사인(私人)의 경우에는 사정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오로지 자기 소신에 따라 자기만의 세계안에 칩거하여 곁눈질을 하지 않는 고고(孤高)한 삶을 견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인(公人), 그것도 한 국가의 최고위 공직자의 경우에는 용납될 수 없다. 다양한 가치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룰 수 있는 자유로운 국민의 삶을 각자의 자주성, 독립성, 차이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그것을 국가 전체의 안전보장과 경제발전과 행복추구를 가능케하는 종합예술적 기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고위 공직자와 그를 보좌하는 핵심공인들에게는 잠견자박은 본인의 정치윤리적 책무이행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탁된 국민전체의 주권을 훼손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전체를 자기들이 빠져있는 누에고치안에 가두려는 처사는 언어도단(言語道斷: 매우 심하거나 매우 나쁘거나 하여 어이가 없어 말로써 나타낼수가 없는 일)이다.

국민을 반일애국이라는 틀에다 묶으려는 것은 반시대적 잠견자박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8월 13일 화요일

어떤 한국인 여성학자의 학문적인 업적을 높게 평가하고 되도록 널리 알리고 싶어서 조그마한 국제회의에 모시고 의견을 피력하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했었다.

20여명의 국내외학자들이 노년철학에 관해서 자유롭고 활발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런데 마침 내가 사회를 보던 세션에서 그분이 나에게 노년기의 사고와 인식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몇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질문은 가짜뉴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과 어긋나는 뉴스라고 대답했다. 평범한 상식인의 입장을 피력했던 것이다.

그분은 “주로 누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다시 질문했다. 나는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이야기하자면 여당도 야당도 그리고 심지어 청와대도 각자의 이해타산으로 가짜 뉴스를 열심히 생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잠시후 둘째 질문을 했다. Me Too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지나치게 남성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들이 여러모로 고생이 심했고 억울한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진정으로 여남평등이 실현되는 쪽으로 사회발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겪어야할 발달과제로써 필요하고 중요한 뜻이 있다고. 그러나 작금의 사태진전을 주의 깊게 보아오면서 과장과 왜곡과 날조의 위험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며 나의 솔직한 감회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질문은 “촛불집회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라고 던졌다.

나는 학자사이의 진지한 의견교환이라는 입장에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수많은 사람들–특히 젊은 남녀들–이 촛불을 들고 정치적 소신을 공개적으로 표시, 주장, 관철하려는 집단행위는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의 발동이기 때문에 그 뜻을 소중하게 존중한다.

그러나 동시에 태극기집회도 열리고 촛불집회와는 다른 정치적 소신을 표출, 주장, 관철하겠다는 집단행동을 공개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참가자수가 더 많으냐라는 측면을 고려하면서도 똑같은 기본권의 발동이라는 점에서 차별해서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와 같은 질(質)의 응답형식의 대화가 있고 나서 얼마후에 어느 지방신문에 게재된 그분의 글 가운데 이날 함께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요약해놨다.

그리고 나에 대해 몇 마디가 적혀있었다. 그 내용은 내가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을 해서 그런지 한국인식이 잘 되어 있지 않고 한국을 폄하하는 보수적이 노인이고 자기는 언제까지나 보수화되지 않고 늘 진보적이 인식과 입장을 지니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글쎄, 나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생각했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80대의 중반을 살아가는 나로써는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이고 보수와 진보의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게 살아오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그리고 학문적인 입장에서 했던 이야기를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이 참 유감이었다.



8월 14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타케나카 히데토시(竹中英俊 전도쿄대학출판회 상무이사, 편집국장)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쿄토포럼이 내가 자진해서 그만둔 후 4년 동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말부터 도쿄대학의 나까지마다카히로(中島隆博 중국철학과 프랑스철학을 아우르는 비교철학분야의 제1인자)교수를 내 후임으로 영입해서 세계철학대화를 본격시동하게 되었고 지난달에 그 첫째모임을 가졌었다는 최신 소식을 전해주었다.

한해 네 번정도 소인수로 수준높은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고 나중에 그 성과를 정리해서 책으로 엮어서 출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우선 쿄토포럼이 제대로 방향설정을 하게 되어 안심할 수 있고 더구나 내 다음 쿄토포럼의 학술활동을 주관할 사람이 다름 아닌 나까지마다카히로교수라면 그의 인간적 품성이나 학문적 능력을 잘 알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크고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뜻도 전해달라고 말했다.

나 자신은 국가와 개인, 시민사회와 기업, 지역간, 남녀간, 문화간, 종교간 등등 소위 일국내 공공성(Intranational Publicness)을 중요과제로 삼았었고 거기서 생겨나는 갈등구조의 해소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 사이를 넘어서는–between&beyond-공공(公共)의 지평을 열어가는데 심열을 기울였다.

일본에서 여러나라 사람들과 함께 시민주도의 철학대화운동을 통하여 성취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여러가지 이유와 조건과 사정 때문에 전 세계적인 스케일의 공공철학을 구상할 수 있는데 까지는 가지 못했었는데 이제 학문적이고 실천적인 기반이 만들어졌으니 전 세계적인 스케일의 공공철학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단계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걸맞은 유능한 사람이 참여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며 쿄토포럼의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이루지 못했던 과제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이 세대간의 공공성의 문제다. 나까지마교수가 공공성의 새로운 차원을 공간적확충–국가에서 세계로–에서 찾으려는데 대비해서 나 자신은 한국을 중심으로 청소년세대와 중장년 세대와 노숙년 세대의 상화(相和), 상생(相生), 공복(共福)을 공동구축하는 철학을 새롭게 엶으로써 공공성의 세대계승생생 (generativity)에 재도전해보려는 것이다.

일본에서 나까지마 교수가 그리고 한국에서 내가 언제나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면서 발전하는 공공(하는)철학을 한층 더 심화, 고양, 확충 할 수 있게되어 기쁘다.

한일간 관계가 정치적 차원에서는 전후최악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일본에도 많이 있지만 연구하는 시민, 철학하는 시민, 대화하는 시민이 주축이되어 보다나은 미래를 함께 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의 이런 심경을 타케나카히데토시 씨에게 토로했고 뜻을 같이하는 철학대화의 벗들에게도 꼭 전해달라는 말로 반가운 전화한담을 아쉽게 끝냈다.



8월 15일 목요일

오늘은 74번째로 맞이하는 광복절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정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고 대한민국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곧 8월 15일이라는 것이 광복절의 국어사전적의미이다. 그리고 광복은 과거에 잃었던 국권을 도로 찾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동아새국어사전 제1판 두산동아).

일본어 사전에는 어떻게 뜻풀이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일본어 사전인 정성판일본국어대사전에는 우선 광복을 1.부흥하는 것, 영광으로 돌아가는 것. 2.일본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지칭한다.로 뜻매김 되어 있고 광복절에 대해서는 (조선어 Kwangbokchol) 대한민국의 축일의 하나, 8월 15일. 일본의 식민지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경축하는 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해방기념일이라고 해설되어있다.

한일양국간의 광복적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독립기념관에서 거행된 74회 광복절 기념 행사에 즈음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를 주의 깊게 듣고 나서 느끼는 솔직한 소감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고와 인식과 입장이 아직도 해방 전의 독립운동적 발상에 머물고 있고 너무나 과거에 얽매여 있어서 한국과 일본과 세계의 미래구축에 한국적 기여를 구상하고 그것을 관계당사국과 더불어 전향적으로 협력해나간다는 포부와 도량이 전혀 들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거에만 매달리고 과거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로부터는, 미래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 21세기의 한국이 대웅, 대결, 대처해야 할 발달 과제가 너무나 많은 이 때에 우리나라의 최고위 공직자의 역사인식과 미래전망이 너무나 빈약하고 비현실적이어서 한사람의 관심있는 시민으로써 자못 걱정스런 염려를 금할수 없다.

정치적으로 해방되고 법적으로 자주독립국가로써의 기틀을 갖추었고 경제적으로도 기적적인 성장발전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영혼이 아직도 충분히 탈식민지화, 탈영토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그의 국정운영이 자못 불안하다.



8월 16일 금요일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고 하는데 1945년의 시점에서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일제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는 자유회복기념일이다.

그러나 해방되고 자유를 찾았다고는 해도 거의 무정부상태였다. 내기억으로는 감격과 불안이 혼재하는 혼돈의 시기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48년의 시점에 이르러 되찾은 국권이 정돈되고 나라의 기틀–국민, 영토, 주권+국제적 승인–을 제대로 갖춘 반공자유민주주의헌법에 기반을 둔 국가건설을 국내외에 선포하게 됨으로서 건국기념일이라는 뜻이 보태어졌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자유를 되찾고 나라가 세워지고 가꾸어지는 가운데도 이성과 감성과 의지의 측면에서 서서히 주권국가의 구성원으로써의 긍지와 명예와 책임의 성장, 성숙이 정치발전과 경제성장과 문화창달을 균형잡고 조화롭게 꽃피워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의식을 2016년 8월 15일의 시점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 탈영토화를 자성, 자인, 자각하는 계기로 삼자는 뜻을 담고 한일양국의 관심공유자들 사이의 진솔한 대화의 광장을 마련했었다.

동양일보가 기획하고 동양포럼이 주관하는 국내외회의를 몇 차례 개최했고 거기서 나누어진 대화내용을 여러번에 걸쳐서 동양일보에 게재함으로써 널리 일반시민들에게 공개한 바가 있다.

나는 사람이나 나라나 나이 드는 존재–시간적 존재(時存)–라고 생각한다. 나이듦이란 기본적으로 나이에 따른 의식과 무의식과 전의식의 변화, 성장, 성숙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8월 15일의 의미도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뜻이 새로워지고 그렇게 새로워진 뜻이 새로운 인간과 국가와 세계의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데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도량과 포부를 길러 갈 수 있는 계기로서 뚜렷하게 뜻매김 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2019년 8월 15일 뜻풀이는 한일노년철학 대화를 통해서 생명개벽을 상호자각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활명연대성(活命連帶性=Global Web of Mutual Enlivening and Conviviality)을 함께 진솔하게 심사숙고해보고 필요한 실천활동을 시작해 보는 계기로 삼는데서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일본 쿄토에서 제5회 한일노년철학포럼을 일본의 미래공창신문사주최, 동양포럼협찬으로 개최(8월 26~28일)하게 된 것이다. 활명연대라는 개념은 2015년부터 다양한 장소와 기회에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새시대의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방향으로 설정하고 한일양국의 관심공유자들과 논의 해 왔던 핵심과제의 하나였으나 2019년 8월 15일을 시점으로 보다 깊은 의미탐구와 시민주도의 연대활동으로 이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8월 17일 토요일

8월 15일에는 적어도 광복절과 건국절이라는 두개의 뜻풀이가 필요한데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집권 엘리트들은 한사코 건국절이라는 뜻을 거부, 부정, 말살하려 한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관한 반출생주의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래서 될수있는대로 빨리 철저하게 존재의 흔적을 없애고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국가–반(反)대한민국적인 국가상–를 세우려고 역사와 체제와 이념을 완전히 바꾸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탄생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 거기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반출생주의자들에게 항거하고 그들이 기획하는 새로운 국가건설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거부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친출생주의 라는 입장을 준수한다.

대한민국의 탄생을 민족의 위대한 축복으로 생각하고 그동안의 곤란(困難)극복과 성장발전을 예찬한다. 그래서 광복절이라는 의미이상으로 건국절이라는 의의를 기리고 값지게 기억하려한다.

이것은 오늘의 한국사회를, 그리고 한국인을 철저하게 이분화시키고 타협불가능한 극한 대립, 갈등, 분열을 촉발시키고 있다. 특히 세대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국가의 출생자체가 민족불행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Hell Korea가 당연한 현실인식일 수밖에 없겠지. 해방 후의 혼돈기를 몸으로 체험했고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나같은 노년기의 인간에게는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의 탄생은 커다란 기쁨이고 희망이고 긍지였는데….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9.10.27 
[동양일보]노철개벽 일기(老哲開闢 日記)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 2



6月25日 23:12

일본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먼저 놓고 죽음과 삶의 문제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30년이나 일본에서 살고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중심으로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들의 견해도 그랬고 또 많은 책들을 읽는 가운데서도 대체로 같은 성향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죽음-삶-죽음 또는 무-존재-무 라는 이미지다. 그래서 사생관(死生觀) 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내가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거나 아니면 써 놓은 글이나 책들을 살펴볼 때 압도적으로 삶-죽음-삶 또는 존재-무-존재라는 사고방식이 일본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강한 것 같다. 죽음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존속한다는 생각이 있다.. 기독교인은 영생이라는 신념으로, 그리고 뚜렷한 종교가 없는 사람도 윤회전생 - 반드시 불교에 귀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 과 같은 것을 믿는 것 같다. 내가 직접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본 일본인의사는 허무에서 나와서 다시 허무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의 삶이며 그것이 깨끗하고 산뜻한 사생관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 나의 견해를 알고 싶다고 해서 나는 우주적 근원적 생명력 – 개체적 근원적 생명력 – 우주적 근원적 생명력이라는 생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은 사람이 죽으면 허무 속으로 사라져 없어진다 – 무가 된다 - 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주생명이 나라는 한 몸과 마음과 얼에 들어와 그것들을 살려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하다가 어느 기한이 지나면 몸과 마음과 얼이 유기적 상관연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서 마침내 개체생명은 끝을 내고 본래의 우주생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다만 사람에 따라서 우주적 근원적 생명력을 인격화해서 하느님, 하나님, 하늘님이라고 말하기도하고 원기, 지기, 생기라고 호칭하기도 한다고.

요즘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도 허무이고 죽은 다음에도 허무라고는 생각치 않고 태어나기 전이다 죽은 후에 우주생명이 여전히 변함없이 존재하는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이 태어나서 얼마동아 살아 있다가 다시 왔던 곳 - 생명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슬플 것도 기쁠 것도 없는 극히 자연스런 일인데 다만 사람에게는 인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태어남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라고.

일본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가까이에서 살고 여러모로 닮은 데가 많은데 삶과 죽음 - 아니 일본식으로는 죽음과 삶 - 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생각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마 일본사람들은 오랫동안 무사들이 지배했고 무사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과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늘 죽음에 대한 각오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영향이 일반적인 사회의식의 심층에 침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6月25日 23:23

continued from the previous post....

한편 대표적 한국인은 선비였고 그들에게는 주어진 삶을 어떻게 값지고 귀하게 갈고 닦아서 바람직한 사람됨 - 인격형성 - 을 이루느냐에 온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먼저 생명의 본원으로 돌아가신 선조들이나 앞으로 태어날 후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의 모습이요 뜻이요 가치라는 의식이 강했고 그런 의식이 일반 민중속에도 침투 된 것이 아닌가 싶다.



6月26日 17:50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서 소위 노년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에 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뚜렷한 추세는 "건강한 노년"으로 수렴되고 있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는 "무병장수"가 있다. 극히 상식적인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 - 노년세대 뿐만 아니라 청년 세대나 중장년 세대까지도 -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유일한 노년상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건강한 노년이 따분하고 지루하고 허무하고 지겹고 서러운 나날을 보내느라 힘겨워하고 있다는 데 있다. 쉽게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려서 병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거나 경제적 빈곤 때문에 일상의 생활 자체가 여유롭지 못한 가난한 노년의 고통과 비애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어두운 측면이다.

바람직한 노년상은 건강, 무병, 재산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반드시 보람과 뜻과 기쁨과 설레임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행복한 노년"이다. 그래야 다른 모든 조건들 - 좋은 조건은 물론 나쁜 조건까지 - 이 긍정적 상승 작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 젊을 때에는 불운과 불행과 역경을 이겨내서 삶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의지와 여유와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나이듦에 따라 그런 것들이 약해지고 작아지고 희미해진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나이 듦과 거기에 따른 불편, 고통, 비애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나름대로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느냐는 개개인의 마음가짐과 뜻세움과 행복 찾음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건강한 노년, 무병한 노년, 풍요로운 노년 - 다 바람직한 노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에 보태서, 아니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행복한 노년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떨까? 행복하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주관적인 체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중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인 접근이나 연구만으로는 부족하고 진지하게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6月28日 9:06

오랫동안 장수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재난으로 여기는 풍조가 거세다. 오래 살면 욕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삶 자체가 기적이요, 축복이요, 따라서 그저 감사, 감동, 감격할 일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내가 반드시 태어나서 85년씩이나 살게 되어야 했다는 이유나 근거나 가치가 없잖은가?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일찍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중병을 앓은 적도 있고 전쟁을 겪기도 했고 6.25 전쟁 때는 피난 가는 길에서 북한인민군에게 체포당하기도 했으며 그때마다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남았다.

아픈 때도 있었고 괴로운 때, 슬픈 때, 답답한 때도 있었다. 기쁜 때, 즐거운 때, 가슴이 벅찬 때도 있었다. 오랜 삶을 통해서 체험, 체면, 체득한 바가 너무나 많고 귀하기 때문에 그저 무조건 고마울 뿐이다. 이 값진 삶의 기회가 이렇게도 풍성하게 주어졌다는 데서 하늘의 특별한 배려를 체감 할 수밖에 없다.

오랜 삶은 커다란 축복이기도 하지만 엄중한 명령이기도 하다. 도덕을 지상명령으로 본 철학자도 있었지만 나는 삶이 지상명령이라고 생각한다. 도덕도 삶이 있고나서 비로소 성립 가능한 것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는 데카르트의 말에 100% 공감 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나이 들어간다. 고로 나는 깨닫는다.” 라고.

젊어서는 열심히 배우고 새로운 것에 대한 지식이 늘어난다. 그러나 오래 살다 보면 몸과 마음과 얼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나이 듦을 통해서만 감득 할 수 있는 것을 선취할 수는 없다. 태어날 때가 있고 자랄 때가 있고 무르익을 때가 있는 데 품질이 좋다고 해서 무리하게 때를 앞당기면 설익거나 일찍 고사하고 만다.

삶이란 탄생과 사망사이에서 몸과 마음과 얼이 부르는 노래다. 속삭이는 이야기다. 읊조리는 시다. 우열을 따질 수 없이 저마다 유일무이한 삶의 참과 착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다. 오랜 삶은 살아온 만큼의 내용이 담긴 것이 될 테니까.



6月29日 22:40

장수(長壽)는 제3의 개벽이다. 우선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때부터 새로운 하늘과 땅과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인간탄생이 제 1의 개벽이다. 인간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법정연령이 되면 개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교육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고 学과 習과 思와 行의 과정에 들어간다. 여기서 하늘과 땅과 사람이 새로운 자리매김과 뜻매김이 이루어진다. 제2의 개벽이다.. 그리고 오래 살다보면 아주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됨을 실감하게 된다. 제3의 개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벽이란 새로 열린다, 또는 새로 연다는 뜻이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인 동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또는 그런 변화를 일으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혼란, 혼돈, 혼잡을 수반하게 된다는 뜻도 된다. 개벽은 개신이요 새밝힘이다. 장수는 아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몸과 마음과 얼이 근본적으로 재조정되는 것이다 큰 변화가 일어나고 또 일으켜지게 된다. 물론 아픔과 괴로움과 쓰라림을 겪게 된다. 몸과 마음과 얼이 질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 아픔이요 괴로움이며 쓰라림이다.



6月30日 9:36

청소년 시기는 주로 선배세대의 "가르침"에 따라 배우고 익히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이름을 알고 거기에 나타나는 모습과 뜻을 점진적으로 깨닫게 되어 세상이 새롭게 열리는 시기다. 이것이 제 1의 개벽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活学開闢 - 배움을 살려서 세상을 여는 - 시기다. 배우고 익힌 바를 잘 응용함으로써 하늘과 땅과 사람을 나름대로 새롭게 살리는 것이다. 중장년 시기는 체험, 체득, 체인된 앎 - 識-을 활용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새롭게 뜻매김,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것이 제 2의 개벽이요, 活識開闢이다. 장수는 식(識)이 열어놓은 것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가는 시기다. 이것이 제3의 개벽이요, 오랜 삶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게 된 근원적 생명력이 내면의 세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하늘과 땅과 사람의 근본적 변혁을 이루어 가는 活壽開闢 이다. 그래서 장수는 제3의 개벽이라고 하는 것이다.



7月1日 8:54

오늘의 한국사회는 노년을 폄하하는 폄노의 사회이며 노년을 업신여기는 모노의 사회이며 노년을 죽이는 시노의 사회이다. 그것은 오늘에 이르는 오랫동안 많은 노년들이 인색한 노년이었고 완고한 노년이었고 시들고 쇄약하고 민망한 노년이어서 그저 짐만 되고 괴롭히고 짜증나게 하는 노년이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나 중장년세대를 탓하고 섭섭해 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모두가 경축할 노년이 되고 어디서나 덕이 되는 노년이 되고 삶이 저주스럽기보다는 축복임을 느끼게 하는 노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그래서 노년이 특히 유념해야할 점은 속 좁은 노년이 되지 말고 보기 추한 노년이 되지 않으며 고루한 노년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혐오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근대화초기에는 노년세대와 청년세대사이에 대립, 갈등, 분쟁을 원동력으로 삼아 구시대의 사회의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했다. 그래서 근대화, 산업화, 공업화, 도시화, 합리화, 경제중심화, 황금 만능화를 강화 발전시켜오는 동안에 백인청년남성중심의 가치관, 세계관, 인간관이 압도적인 인식과 실천의 판단기준이 되고 그것이 점차적으로 여성과 아동과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파급, 공유되는 가운데서도 노년만은 차별, 소외, 방치되어왔다. 노년이 청년을 지배하고 청년이 노년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인간적 미덕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허울 좋은 도덕적 명분일 뿐 실상을 캐보면 철저하게 차별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고 골치 아픈 문제로 처리되었다는 것이 여러 방면에서 확증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긴급한 과제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노년을 사회경제적 부담이 아니라 활용가치가 높은 고품질의 자원, 자산, 동력으로 전환 시킬 수 있는 지혜, 안목, 도량을 기르고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숙년 세대의 년공 - 나이듦에 따른 내공 - 의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슬기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기풍이 조성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중요하다.



7月2日 0:10

나는 어렸을 때의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나하고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젊어서도 삶이 즐거웠다는 말이 안 나온다. 내게 있어 인생은 늘 힘들고 버거웠다. 뜻밖의 행운이나 굴러들어온 복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순조롭게 되거나 힘 안들이고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반드시 거기에 맞는 노력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은 것이다. 한마디로 힘겹게 살아왔다. 그래서

건강도 재산도 명예도 크게 이룬 것이 없어 아주 평범한 삶을 이어왔을 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너무나 의외의 사건이다. 어쩌다보니 여든다섯이 되도록 살아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나는 지난날의 어느 시기 - 청소년기나 중장년기 - 보다 신체적, 정신적, 영성적 건강이 좋고 현재의

생활에 충실하고 밝은 미래에 대해서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삶이 활기차게 된다.

조금 더 소상하게 이야기하면 50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일본사람들과의 협력을 중심으로 세계를 다니면서 장래세대의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해서 현재세대가 무엇을 어떻게 할 필요가 있는가를 함께 생각하고 실천과제를 설정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실행에 옮기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60대에 들어서면서 공(公)과 사(私)와 공공(公共)의 문제에 대한 문제관심을 공유하는 일본사람들 - 학자, 언론인, 종교인, 시민운동가, 경영인 등등 - 과 함께 공공철학대화운동을 전개하고 그 결과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서 미래세대에 대한 현재세대의 세대계승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자는 뜻에서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개최, 운영, 확장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는 동안에 80세에 이르렀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 사람이 칠십까지 사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 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틀림없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값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여러모로 궁리한 끝에 나이 듦의 의미와 가치와 사회적 기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청소년세대와 중장년세대와 함께 뜻과 힘과 열을 다해서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장수의 보람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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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老哲開闢 日記)/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2019.10.1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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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老哲開闢 日記)/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9.10.13


김태창(金泰昌, 동양포럼주간)



6月18日 9:33

일찍 일어나도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운동부족이 쌓여갈 뿐이다. 오늘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아주 나쁘니까 될수록 외출을 삼가라는 보도가 있다. 방안에만 갇혀 있으면서 장활동을 추진하는 몇 가지 조치를 취해보고 있지만 모두 새벽 걷기만큼 효과적이지 못하다. 오래 살면서 겪게 되는 나만의 병고는 배변장애와 배뇨장애다. 한두 가지 탈나는 데가 없는 노년은 없다고들 하지만, 그리고 다른 데가 아픈 것도 괴롭겠지만, 배설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당해보지 않으면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6月20日 9:55

나이 들면 무엇보다도 가족이나 친지 또는 남에게 노년의 추태를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씀이 절실하게 된다. 특히 몸이나 마음에 병이 생겨 여러모로 폐해를 끼치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병들고 자기관리가 어렵게 되기 전에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기본조건인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건강을 잘 유지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우선 매일 삼식부터 신경 쓰게 된다.

지난 2년 동안 일본과 한국에서 보고 듣고 실험해본 결과 현재의 상태에서 가능한 식단을 정리해 본다. 아침은 대체로 오전 4시 전후에 기상하면 즉시 소금물로 양치하고 나서 바로 온수(+레몬즙) 한 컵은 천천히 마신다. 한 시간 후에 계피, 생강, 코코아, 레몬, 올리고당차 한 컵을 마신다. 그리고 30분 후에 유산균 한 알. 다시 30분 후에 잡곡식빵 반 개 + 치즈 + 생강꿀홍차 한잔. 여기까지는 장 기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일양국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른 식단이다. 점심은 만나는 사람이나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서 비교적 자유롭게 좋아하는 것으로 식사하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주력한다. 과식과 편식을 극력 피한다. 저녁은 아주 가볍고 소화 잘 되는 음식을 오후 5시에서 5:30 사이에 마치고 위를 완전히 비우고 나서 8시에서 9시 사이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원칙적으로 삼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리고 매 식사30분전과 식사 후 1시간에서 2시간 사이에 온수 한 컵을 마신다. 하루에 30분정도 걷기를 계속 해왔다. 이렇게 해오는 가운데 배변장애와 배뇨장애가 조금씩 천천히 개선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워낙 오랫동안 잘못된 식사와 운동부족으로 말미암은 신체적 적폐청산이 인내와 신중을 요하는 긴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또 단단히 각오한 바이기 때문에 노년기의 인생공부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젊을 때 소홀히 겼던 삶의 깊은 뜻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귀한 체험을 겪게도 된 것을 감사하는 나날이다.



6月20日 18:29

일일 삼식을 간편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챙기는 일은 현명한 몸돌보기의 기본이다. 그러나 몸돌보기는 마음 닦기와 함께 꾸준히 이어질 때만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이 들고 나서야 뒤늦게 몸으로 체험하게 된 깨달음이다. 식사를 끝내고나서 걷는다.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가 나쁘지 않는 날은 집밖에서, 그리고 공기의 질이 나쁘니까 외출을 삼가하라는 일기예보가 있을 때는 할 수 없이 집안에서 - 다행히 2층집이라 아랫층에서 윗층으로 그리고 윗층에서 아랫층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반성하고 판단하고 상상하고 계획한다. 30분에서 60분사이의 생각하는 걷기를 끝내고 나면 나이든 몸이라 노곤해서 잠시 동안 무념무상의 휴식을 취하게 된다. 그렇게 하려 해서가 아니라 제절로 살며시 눈을 감고 앉은 채로 졸게 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10분에서 30분정도 지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상쾌해서 자연히 책을 읽고 싶게 된다. 삼시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일 오전 오후의 일정한 시간 - 평균 오전 2시간 오후3시간- 독서에 몰두한다. 잡념 없이 정신을 집중해서. 그러고 나서는 머리를 완전히 비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채우기만 하지 비우지 않으면 -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뼈져리게 체감했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계속 실행하고 있다. 이것은 열심히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섭취하되 그것에 구애, 구속,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 - 영혼의 탈식민지화, 탈영토화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경지 - 라 거기서만 가능한 삶의 지혜를 체득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는 정보나 지식을 획득해서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목적달성을 이루는 일 보다 수양과 양생을 통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자기와 이웃과 나라와 누리열기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바람이요 보람이기 때문이다.



6月21日 22:33

젊어서는 채우는 맛이 더 없는 쾌락이었으나 나이 들어서는 비우는 맛이 더 없는 지락(至樂)인 것을 절감한다. 채우기만 하고 비우지 못하는 것은 아프고 괴롭고 아주 불편한 병고다. 신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배설장애라고도 하고 변비라고도 한다. 배뇨장애라고도 한다.

그런데 신체적 변비는 극심한 괴로움 때문에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서 완화, 치유, 회복하게 되지만 정신적 변비는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에 방치하기 쉽고 그래서 그것이 고질이 되어, 마침내 근원적 생명력을 고갈시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히 치명적이다.



젊어서는 눈을 부릅뜨고 밖의 빛을 찾아 헤매지만 나이 들어서는 눈을 지긋이 감고 안의 빛을 찾아 삶의 깊은 맛을 즐긴다. 밖으로부터의 빛이 밝혀주는 것은 밖으로 펼쳐진 세계이고 안으로부터의 빛이 밝혀주는 것은 내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밖의 세상을 알고 그것을 자기 뜻에 따라 바꾸어 보려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안의 세계를 깨닫고 그것과 하나 되는 것을 바라고 원한다. 태어난다는 것은 밖으로 나와서 그것을 자기에 맞게 바꾸어 나가는 젊은 시절을 살다가 나이 들어 마침내 죽게 될 때는 거기서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그것과 하나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밖으로 나가는 것과 안으로 돌아오는 것의 반복이요 언젠가 안으로 돌아와서 다시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어지게 되면 그것이 다름 아닌 죽음이다. 당사자가 아닌 남들이 보면 밖으로 나와서 늘 보고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이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기 때문에 그가 돌아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6月23日 10:01

여러 해 전에 내가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강연을 했을 때 어느 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옛 성인이신 공자께서 앎을 쌓은 사람은 물을 즐기는데 덕을 쌓은 사람은 산을 즐기고, 앎을 더해가는 사람은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덕을 더해가는 사람은 고요하고 평안한 곳에 머물며, 앎을 이룬 사람은 삶을 즐기는데 덕을 이룬 사람은 삶을 오래 누린다고 말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어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때의 내 나이가 70대 후반이었다고 추정되는데, 공자가 70대에 이르면 자기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해도 결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게 된다고 말했는데 비슷한 나이를 먹었는데도 아직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끝에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찾고 또 찾는 사람 - 知者 도 仁者도 아닌 探者- 이라고 여기고 물도 산도 아닌 바람을 즐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도 그렇다고 고요하고 조용한 곳에 머무는 것도 아닌 자유로운 노닒 – 動도 아니고도 静도 아닌 遊 - 을 이어갈 뿐이며 그래서 주어진 삶을 즐기는 것도 장수를 누리는 것도 아닌 언제나 한결같이 삶의 새로운 차원, 지평, 경계를 열어갈 따름이라고.

다른 학생이 질문을 계속했다. 찾고 또 찾는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찾느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삶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시도 정지 될 수 없는 새밝 - 개신 - 개벽의 나사선운동과정(Spiral Movement)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다 나은 삶을, 보다 뜻있고, 보다 아름다운 삶을 찾고 또 찾는 것이다. 삶이란 살아있고 살아가는 동안 최종적인 결론이 없다. 삶이 계속되는 동안 늘 낯선 미지의 전개에 새롭게 대면, 대응, 대결하면서 때로는 불안과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경험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체감, 체험, 체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삶이란 물음만 있고 정해진 정답이 없는 기한부과정이다. 그저 끝까지 나름대로의 잠정적인 가설적 관점과 입장을 세울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젊어서는 젊음의 관점과 입장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바가 있는데 나들어서는 나이 듦의 관점과 입장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다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젊어서는 앎이 더해가는 과정이었다면 나이들어서는 깨달음이 깊어지는 나날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그랬더니 또 다른 학생이 물어왔다. 앎과 깨달음은 어떻게 다르냐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앎이란 나의 밖에 있으면서 내게 맞서 있는 것들 – 사람이든 물건이든 사건이든 – 을 파악하고 인식하고 정리하는 일이지만 깨달음이란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의 몸과 마음과 얼을 갈고 닦는 일이며 거기서 삶의 참뜻을 체감 – 체험 – 체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나 자신의 경우에는 젊은 시절에는 앎에 치중했는데 나이 들어서는 깨달음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게 되었다고.



6月23日 22:06

젊었을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나이 들어 보니까 소위 노인이나 노년 또는 고령자에 관한 논의나 주장이나 정책이나 시책이 온통 중장년 - 40/50/60대 - 의 관점과 입장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이기 때문에 노년 - 70/80/90대 - 의 체감, 체험, 체인과 어긋나고 부딪히고 빗나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요, 거기에 문제가 있다. 말하자면 중장년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노년에게 강요하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병리적 부적응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에 노숙년의 독자적인 삶의 뜻과 보람과 바램이 여지없이 무시당하고 마는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생기는 고통과 비애와 낙담과 실망에 대해서 무감각, 무관심, 무반응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얼마동안 살다가 죽게 되어 있다. 살아있는 동안도 청소년기와 중장년기와 노년기를 겪게 된다. 어느 시기가 다른 시기보다 더 중요하지도 않고 어느 시기가 다른 시기에 비해서 그 가치와 의미가 덜하지도 않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백인 남성 중장년 세대 중심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이 다른 세대를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20세기말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21세기의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인종 간, 남녀 간, 세대 간의 상호존중, 상호화해, 상호행복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발전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사회의 실상은 인종 간, 남녀 간 그리고 특히 세대 간의 갈등, 대립, 분열이 너무나 심해서 내부붕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6月24日 22:50

요즘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사회적 가치는 생산성과 효율성과 자립성이다. 그래서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고 타자의존적 일 수밖에 없는 노년세대가 경시, 홀시, 무시당하게 된 것이다. 일부 노년층의 사람들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처럼 청소년세대나 중장년 세대가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다고 칼로 나무 자르듯이 단언할 수만은 없다. 근대화-산업화-공업화-합리화-경제중심화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가치의식이 편향되고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개개인의 의식이나 성향이 발휘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협소해져서 그렇게 된 것뿐이다.

그런 사회적인 인식과 추세에 따라서 나이 들어도 생산적이고 효율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사회심리적 압력이 아주 강하게 일상의 생활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산성, 효율성, 자립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 - 사회경제적 약자들 - 에게는 잔인한 현대사회의 실상이다. 이것은 나이 들어 병약해진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사회 (The good society) 가 반드시 생산성과 효율성과 자립성이 고도로 실현된 사회만일까? 그것은 젊고 건강하고 풍요가 갖추어진 사람들만이 삶을 즐길 수 있는 사회일 뿐이다. 다양한 원인과 조건 때문에 그런 상황에 이르지 못하고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젊고 나이 들고를 막론하고 -미래가 없는 지옥일 뿐이다. 일부의 운 좋고 혜택을 누리는 소수에게는 천국일지 몰라도.

모두가 함께 고루 잘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닐까? 그러나 그런 사회는 정부가 권력의 힘을 빌려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지시, 명령, 강제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개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간섭이나 억압 없이 펼쳐지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적정한 수준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원이 베풀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갖추어져 있는 사회가 최소한의 기본조건이 아닐까? 쓸데없이 귀중한 자원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력이 너무 간섭적, 개입적, 통제적이지 않아야 된다. 될수록 작은 정부가 좋다.

나이든 사람도 숨 쉬고 살자. 많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들에게 희망이 실감될 수 있고 절망과 비관 속에서 매일을 억지로 살아가는 많은 나이든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치고 서로 돕고 잘 어울리는 가운데서 보다 좋은 사회 - 참으로 좋은 사회 - 를 만들어 는데 언제까지나 수동적으로만 대처하지 말고 우리 나이든 세대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어쩔 수 없이 죽게 될 날이 멀지 않다면 얼마 남지 않은, 그러나 귀중한 나날을 다음세대가 우리 세대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남은 생명의 불꽃을 태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노인철학의 출발점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충북 청주 출생 △청주중·고 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전 장래세대종합연구소장 △공공철학공동연구소장 △교토포럼 주재 △저서 ‘공공철학(동경대 출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