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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알라딘: 근대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

알라딘: 근대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


근대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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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학과 그 이후의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근대한국 개벽종교가 한국사회의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상, 종교, 정치사회, 문화, 교육의 전 부문에서 개벽운동을 추동해 간 역사적 과정을 ‘공공하다’라는 측면에서 재조명하기 위하여 공공성의 의미, 종교와 공공성의 관계, 그리고 한국 신종교-개벽종교의 공공성의 특징을 논구하는 책이다.


목차


제1부 한국 사회와 종교적 공공성

종교적 ‘공공성(公共性)’의 개념과 의미 / 염승준
한국적 공공성 탐구 / 야규 마코토
한국 사회 공공성의 붕괴와 종교적 공공성의 가능성 / 하승우
1920·1930년대 한국 ‘신종교’의 기본지형과 동향 및 특징 / 김민영
근대 한국 종교에서의 ‘민족’과 ‘민중’ / 김석근

제2부 한국 신종교의 공공성

동학이 그린 공공세계 / 조성환
증산사상과 공공성 / 허남진
원불교의 종교성과 공공성 / 원영상
대종교의 종교성과 공공성 / 김봉곤
동학의 공공성 실천과 그 현대적 모색 / 박맹수



책속에서


P. 35서양의 종교가 전통적 이원론의 입장에서 신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고 뒤늦게 17, 18세기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과 인간의 직접적 관계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과 달리, 동양의 종교는 그보다 훨씬 앞서 인간 마음 안에서 형이상학적인 초월성을 자각하였다. 신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강조해 온 서양 종교와 달리 신과 인간의 동일... 더보기
P. 55한국 신종교를 특징짓는 것은 후천개벽사상이다. 이것은 종말사상이나 서양 근대적 혁명사상과 달리 사회의 변혁·혁신과 개개인의 새로운 인간관의 각성·수행이 수반된다. 개벽사상의 논리는 각 종교마다 각양각색이지만 인간 존중 사상, 생태·환경 사상, 공동체론, 그리고 타종교에 대해 개방적이고 종교 간 대화·소통·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사상은 현대사회에서 공공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접기
P. 78특히 지금 시대의 문제는 각기 개별적인 존재로 분리되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개체들을 주체로 묶을 방법이다. 즉 공(公)의 반대말이 사(私, private)라면, 공(共)의 반대말은 개(個, individual)이다. 그런 전환에서 종교의 역할이 있다. 인격적인 결합체인 공(共)과 비인격적 결합체인 공(公)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개인이 서로 연대하고 사유화된 것을 공유로 다시 점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그런 노력의 결과가 구조를 바꿔야 한다. 종교는 그런 ‘묶음’의 역할을 맡을 수 있고, 근대 한국종교의 묶음은 ‘평등’과 ‘자치’라는 한국 사회 공공성에서 실종된 고리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접기
P. 104(조선 총독부의 요청에 따라 1930년대의 한국 신종교 현황을 조사한) 무라야마는 ‘유사종교’를 새로운 종교사상운동의 하나로 보았다. 즉 그는 한국 신종교의 ‘후천개벽사상, 지상천국사상, 기적과 구세주사상, 사회운동’이라는 측면과 함께 ‘동학운동(실제로는 동학당 표기), 일진회, 3.1독립운동(실제로는 3.1소요운동 표기), 성도(聖都)운동, 기타 혹세(惑世)운동’ 등과 연계시켜 파악하였다. 접기
P. 137~138[근대화 시기에 우리 민족의] ‘우리’ 인식과 독자적인 정치체제성은 강력한 서구 문명의 도래와 더불어 도전과 위험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서구)의 문명이 ‘표준’으로 여겨졌고, 식민지, 반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같은 표준에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근대 국민국가로 업그레이드해서 근대 국제 시스템 내에서 다른 국가들에 의해서, 특히 서구 국가들에 의해서 독자적인 행위자로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비서구사회 내셔널리즘의 공통된 과제였다. 한국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었으며, 어쩌면 그 같은 과정을 가장 혹독하게 겪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는 했지만 밀려오는 서구 문명 앞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으며, 그런 시도는 특히 ‘종교’ 영역에서 다채롭게 그려졌다. 우리가 주목했던 종교들(동학, 증산교, 원불교, 대종교)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라 하겠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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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원불교 사상을 바르고 넓고 깊게 연구함으로써 원불교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74년 7월 4일 설립되었다. 또한 단순히 사상에 대한 연구보다 좀 더 심층적이며 구체적인 원불교학 수립과 사관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작 : <근현대 한국종교의 생태공공성과 지구학적 해석>,<근대 한국종교, 세계와 만나다>,<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읽다> … 총 1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근대한국 개벽종교, 서구에 대한 ‘대항’이나 ‘대안’ 아닌
서구의 근대를 안고, 치유하며 넘어서는, ‘근대 이후’이다

1. 대전환의 시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상황을 두고, “세계가 성공하지 못했던 대전환의 길”이 전개되고 있으며, “우리가 성공해 낸다면 세계사적인 변화가 우리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넘어, 종전선언과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구축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역학구도, 그리고 미일중러로 대표되는 세계 모든 나라의 정치적 역학관계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만의 역량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일중러 모두 자국 내의 정치상황과 국제적인 역학관계로 인하여 남북이 주도하며 전개되는 한반도 상황에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도 중요한 변수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 세계의 운명이 ‘대전환’을 시작하여, 새로운 문명의 단계로 진전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은 150여 년 전 창도(創道)된 동학과 그 이후의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한국근대 개벽종교’들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2. 대전환과 개벽운동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는 시천주(侍天主), 보국안민(輔國安民), 유무상자(有無相資) 등의 사상과 실천으로 대전환에 직면한 민중들을 각성시켰고, 동학농민혁명과 천도교에 의한 3.1운동 등을 통해 개벽세상에의 전망이 빛을 잃지 않도록 계승하여 왔다.
강증산의 증산교는 동학농민혁명을 겪으며 선천시대 내내 쌓이고 쌓인 원한을 풀어내지 않고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전망 아래 ‘천지공사’를 통해, 그리고 민중을 옭아매는 기제로 작동하는 ‘시스템’과의 결별을 통해 민중 세상으로의 길을 열어나갔다.
대종교는 국권 상실로 절망에 처한 한반도의 민중들에게 우리 민족이 수천 년의 역사적 연원을 가진 천손민족(天孫民族)임을 주지시키는 한편 수전병행(修戰竝行)의 가르침으로서 희망의 끈을 잃지 않도록 하면서 민족독립운동의 핵심적인 사상과 동력을 제공하였다.
원불교는 이러한 모든 개벽적 전망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로 귀납하여, 식민지로부터의 이탈은 물론 물질 중심 문명의 극한점에서 정신 중심 문명으로의 도약을 통한 참 문명 건설에 매진하는 개벽운동의 새 전범을 구축하였다.

3. 한국근대 개벽종교와 공공성 구축

세계사적인 지평에서 ‘근대화’라는 역사 발전 단계를 거치는 동안 전개된 한국근대 개벽종교들의 이러한 운동은 단지 ‘좁은 의미의 보국안민(輔國安民)’이 지향하는 바, 한국사회나 한(韓)민족만의 해방과 개벽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 시기에 한민족의 종교적인 천재(天才), 사상적인 선구자들은 전 지구촌 차원으로 확장된 서구근대문명에 도사린 한계를 직관적으로 체득하고, 문명사적으로 도약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혹은 이미 시작되었음을 깨달았고, 이를 선포했다.
지난 150년 동안의 한국사회의 끊임없는 민족운동의 저변에는 바로 이러한 깨달음에서부터 비롯된, 포기하거나 절망할 수 없는 정의롭고 선한나라,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로의 전진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2017년 버전이 바로 ‘촛불혁명’이었다.
촛불혁명은 그 자체가 완성이나 종국이 아니라, 바로 그로부터 탄생된 문재인 정부를 매개로 하여, 바로 지금 우리가 눈앞에 보고 있는 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그리고 전 세계적 차원의 신시대로의 도약으로 귀결되고 있다.

4. 지체된 근대/산업/민주/선진화와 대전환

한국사회의 최근 움직임들을 ‘대전환’이나 ‘개벽’이라는 패러다임(창)으로 진단하고 전망하는 것은 아전인수인가?
나아가 이것이 ‘교단종교’로서의 동학(천도교)이나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차원의 공공하기의 결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종교편향적’인가?
통일민족국가의 건설 내지 주변강대국으로부터 자주적인 민족국가의 건설운동 즉 한반도 운전자론이나, 최근의 ‘미투운동’이라는 사회적 인권의식의 ‘정상화’ 운동은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달성한 기초적인 것을 추구하는 철지난 숙제하기에 불과한가?
한국/한반도 차원에서 지체(遲滯)된 근대/산업/민주/선진화를 달성하는 것이 한국/한반도 지평을 넘어 세계사적인 의의/성과로 확장/확산된다는 것은 근거가 있는 전망인가?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한국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근대한국의 개벽종교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지금 여기를 넘어 ‘내일’ 그리고 ‘그곳(세계 각국 각 곳)’에서도 유효하고 유의미한 답이 될 수 있는가? [최근 일본의 아베 퇴진 시민운동의 일각에서 ‘촛불혁명’을 배우자는 담론이 일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전망이다. 일찍이 한반도의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을 거쳐 인도의 독립운동에까지 그 영향을 끼친 바 있다.]

5. 촛불혁명 이후의 개벽운동 - 공공하기

2016-2017의 촛불혁명이 동학 이래의 개벽운동의 결실이라면, 촛불혁명 이후의 개벽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가? 이 책은 ‘공공하기’가 그 해답이라는 암시를 준다.
‘개벽종교’라는 집합명사 속에 담기는 종교들의 교리와 역사, 철학과 제도, 사상과 운동을 ‘공공하기’라는 패러다임으로 재조명하고, 우리나라는 물론 그리고 인류사회가 직면한 과제에 대한 해답을 그 속에서 찾아보려는 작업은 앞으로 6년 동안 “종교와 공공성 총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 저자 소개
염승준 / 원광대학교 조교수
야규 마코토(柳生 眞) / 원광대학교 연구교수
조성환 / 원광대학교 책임연구원
김석근 /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김민영 / 군산대학교 교수
하승우 /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박맹수 / 원광대학교 교수
원영상 / 원광대학교 연구교수
김봉곤 / 원광대학교 연구교수
허남진 / 원광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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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오오츠키 「일본적 영성」을 통해 # 265 | Man in the Mirror | 아세가 준

스즈키 오오츠키 「일본적 영성」을 통해 # 265 | Man in the Mirror | 아세가 준

수국
2021.9.4
스즈키 오오츠키 '일본적 영성'을 통해 #265
통합 이론 윌버 컴즈 의 격자 켄 윌버 반사 저널 불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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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오오츠키의 '일본적 영성'을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스즈키 오오츠키가 전하고 싶었던 생각은 무엇인가, 그 생각에 빠지게 되면, 윌버와 마찬가지로 영성(스피리츄어리티)을 되찾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야마토혼이라고 하는 그 근원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영성을에 ​​각성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적 영성은 뭔가 하면 무분별지.

이곳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이며, 대졸과 교류가 깊었던 니시다 기타로의 「선의 연구」와 같은 이야기로 생각한다.

그것도 처음이었고, 양자 모두 선이나 불교 개념을 배우면서 서양 철학을 배우고 그들이 어떻게 통합할지 주제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졸은 이 무분별지를 선이나 정토진종에 의해 언어화되어 민주화되었다고 하는데, 엄밀하게는 이것이 선이나 정토진종이 태어난 것은 아니다.

확실히, 정토 신종이나 선이 태어난 가마쿠라 불교는 일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었지만, 원래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 머물고 있는 것.

그것이 일본적 영성으로서는 가마쿠라 불교라고 하는 역사를 활용하고 있는 것만으로, 일본을 떠나면, 미국적 영성, 중국적 영성, 인도적 영성, 아프리카적 영성 여러가지 있어, 어느 종교도 그 토지나 민족에 맞춘 것이 되어 있는 것만으로, 근본의 무분별지라는 비이원의 세계는 공통된 진리로서 있다.

원래 우리에게 있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대졸도 이해하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은, 우선 일본적 영성이 있는 것을 주체에 두고, 그 위에 불교를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불교가 밖에서 와서 일본에 심어져 수백년이나 천년 이상이나 지나 일본적 풍토화해 더 이상 외국 도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일본 민족 속에 일본적 영성이 존재하고 있어, 그 영성이 우연히 불교적인 것에 체착하고, 자신 중에서, 그 본래구 유저를 현현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 여기에 일본적 영성의 주체성을 인식해 둘 필요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물

무분별한 지혜
대지성이란?
막망상이란?
윌버 정리
무분별한 지혜
다시 한번, 무분별 지치란 무엇인가. 분별은 개념이나 언어를 사용하여 사물을 이해하는 것.

사물은 언어나 개념이라는 어떤 종류의 단절된, 기호화된 정보에 한정되어 버린다.

눈앞에 있는 사과를 사과라고 명칭함으로써 다른 사과와 같은 사과가 된다.

이런 분별이 아닌, 세계의 전체를 포착해,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무분별 지치.

니시다 기타로의 말로 말하면, 주객 합일의 실존 그 자체에 접해 가는, 순수 체험을 하라고 하는 말에 해당한다.

우리가 사고를 사용하기 전의 그 순간, 직감으로서 잡고 있는 것이 해당된다.

그러므로 무분별이란 말을 바꾸면 직감으로 세계를 그대로 잡는 것.

영성, 영성이라는 말에 현대 사회에서는 혐오감을 안고 있는 말이지만, 그 인지는 앵무새 진리교와 강원 계지에 의한 부정적인 인상에 의해 오염되어 있어 본래 스즈키 오오츠키, 니시다 기타로를 비롯해 선의 세계에서도 소중히 여겨져 온 영성이 잃고 있다.

현대사회의 사람을 보고 법을 설한다면 영성이나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한다면 '직감'이라는 말이 좋을 것이다.

대지성이란?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니시다 기타로에게 조금 전해져 버린 적도 있어, 다시 스즈키 오오츠키의 「일본적 영성」으로 되돌리고 싶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대지성입니다.

생명은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뿌리는 아무래도 대지로 내려야 한다. 대지에 관계 없는 생명은, 진정한 의미로 살아 있지 않다.

 
영성의 안쪽의 원은, 실로 대지의 좌석에 있다

대지는 자신의 존재의 바닥이라고 한다.

여기서 대지가 나온다는 것이 기쁘다. 우리는 대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막망상이란?
막망상은, 망상(≒집착) 하는 것인가.

무분별하게 연결되는 개념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고 그 몸 그대로 상대방 가운데로 뛰어든다는 것이 일본 정신의 밝은 곳이지만, 영성의 영역에서도 또 이것이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영성은 실로 이 밝은 것을 가장 근원적으로 일으킨 곳에 나타나는 것이다. 밝은 마음, 청결한 마음이 의식의 표면으로 움직이지 않고 그 가장 깊은 곳에 침잠해 가고, 거기서 무의식적으로 무분별하게 허망상에 움직일 때, 일본적 영성이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

일본적 영성의 특질은 그 막망상의 곳에 나타나기 때문에 일본적 생활의 면에도 언제나 그것이 읽혀진다. 이것을 보통은 선사상의 침투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일본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적 영성이 선형태로 운위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실제로는 항상 뇌가 일하고 있어 어렵다, 사고를 하지 않고는 어렵다. 여기도 어떤 종류의 훈련이 필요하다.

전형적인 예는 마음 가득한 명상의 실천이된다.

이전 저널에서 쓴 과학과 종교의 그루브를 메우는 신경신학으로 쓴 것처럼 뇌과학적으로도 뇌의 작용이 다르다. 실천의 선물이다.

윌버 정리
다시 한번 이렇게 되면 켄 윌버의 메타인지는 무섭다.

즉 동양 사상이나 철학을 의식 ​​상태의 이야기로 하면서 서양에서 전개된 심리학을 의식 ​​단계로 삼는다. 윌버컴즈의 격자가 완성된다.

게다가 일시적인 변성의식이 항상적인 것으로 변하는 제3층의 세계에도 동양적인 세계를 가져온다.

또, 의식의 스펙트럼도 에서, 동양적인 세계를 가장 근저로 가져오는 정리는, 재차 잘 생긴 정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적 영성이라는 일본에 근차한 표현으로 잃어버린 영성을 말해 나가고 싶다.

2021년 9월 4일의 일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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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호모엠파티쿠스인 이유 : 신은미 김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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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호모엠파티쿠스인 이유
RecycledStardust
2019. 1. 7.

인간이 호모엠파티쿠스인 이유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호모엠파티쿠스는 ‘공감적 인간’을 의미한다.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인간 본성의 특징을 ‘공감하는 종(種)’으로 이해한다. 호모엠파티쿠스는 인간 의식의 변화와 인류문명의 우주적 공감을 예견한다. 호...
www.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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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oured Universe
4/30/23,

https://m.blog.naver.com/kiyukk/221435965598 2/5


샤먼은 태고시대부터 동·식물과 함께 뭇 생명과 공감함으로 자연과 공생하는 원리를 터득해 온 자다. 샤먼은 고대 접신술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의 영
혼과 소통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공감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또한 천체의 움직임과 우주의 근원적 이치를 체득해 순환적 삶의 지혜를 추구한다. 샤먼
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수용하고 치유하는 ‘상처받은 치유자’다. 고통의 공감과 공명 의식을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 존재다.
인간의 공감 능력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원초적인 무의식의 본능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G. 융(Carl G. Jung)은 인간의 근원적인 마음에는 고태적인 형
태의 심층인 ‘집단무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집단무의식은 오랜 기간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축적돼온 ‘신화적 마음’이다. 집단 무의식은 인류의 시초부
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달된 인류 공동체의 ‘원형적 심성’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종교적 유전자가 존재한다. 이는 영적 본능으로 무의식의 창조적 능력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이념과 가치를 초월해서 태초의
시간과 순환의 근원적 원인을 추구하는 신비적 마음을 지닌다. 원초적 공감을 회복하는 것은 이처럼 내면의 ‘숨겨진 신성’을 만나는 과정이다. 신성을
만나고, 신성이 돼가는 영적 여정은 개인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은 인간을 부분적인 삶에서 전체의 삶으로 변화시킨다.
무의식의 세계를 공감의 전체성으로 확장시킨 샤머니즘의 정신은 호모엠파티쿠스의 영성적 뿌리가 된다. 샤머니즘의 영성이란 인간 의식과 무의식의
변형을 다양한 문화적 상징으로 연결함으로 개인의 영적 각성을 고양시키고, 의식변형을 통한 사회변혁을 승화시키는 인간 고유의 내면적 심혼(心魂)
과 영기(靈氣)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개인 수행의 지평을 확대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 변혁을 가능케 하는 미래지향적 시민의식의 바탕이 된다.
호모엠파티쿠스는 개인적 수행을 통한 인격적 성화와 사회적 차원으로의 승화 기제를 융합함으로써 현대사회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증오, 대립, 갈
등의 문명을 화해, 치유, 통합의 문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공감적 인간의 원형을 제시한다.
네오샤머니즘: 내면의 신성화
한국의 샤머니즘은 고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대마다 불교, 유교, 기독교 등의 종교적 외피를 입고 습합돼 왔다. 변천과정에서도 샤머
니즘의 역할과 기능은 각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예를 들면, 고대시대(신석기-삼국시대)의 샤머니즘은 정치, 사회, 개인을 포괄하는 공적 문화였으
나, 중세시대(통일신라-조선중기)의 샤머니즘은 사회, 개인의 범주로 축소돼 기능했다. 근대·현대시대(조선중기-현대)의 샤머니즘은 주로 개인의 길흉
화복에 초점을 맞추는 기복신앙으로 변화해 왔다. 현재 남아있는 샤머니즘은 지극히 축소된 형태로 점복문화와 강신무(降神巫)의 무업이 전수되고 있
을 뿐이다.
네오샤머니즘은 고전샤머니즘과 공통의 종교적 유산을 공유하면서 현대인의 진화된 종교문화적 세계관과 인간의 다양한 의식변형의 경험을 적극적
으로 수용하는 영성운동이다. 네오샤머니즘은 기존의 고전 샤머니즘으로 분류되는 샤먼적 종교경험과 무술(巫術)의 전통을 응용하고 다양한 종교문화
적 요소들을 융합시킨다. 고등 종교의 조직적인 구조가 아니라, 각각의 다양한 영성경험들을 토대로 유연한 영성협의체를 자발적으로 구성한다. 네오
샤머니즘은 마음 치유, 트라우마 극복, 영적 수행의 대중적 필요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는 종교적 교리나 사회적 통념보다는 만물과의 공감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통해 온전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생태적 영성이다.
네오샤머니즘의 사상적 흐름은 과거 고등종교로부터 소외되었던 샤머니즘, 영성주의, 동양철학, 연금술, 신화 등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네오
샤머니즘은 종교 창시자 혹은 교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학과 의례보다는, 수행자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회합과 자율적 의례를 강조한다. 공동체
의 운영은 샤먼적 의식과 경험을 지닌 수행자를 중심으로, 자발적 참여에 따라 응집과 해산을 취하는 ‘영적 협의체’ 형식을 가진다. 이런 과정에서 다
양한 경험들이 새롭게 연결되면서 ‘영적 하이브리디티(Hybridity)’와 종교적 ‘절충주의(Eclecticism)’ 현상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즉, 네오샤머니즘은
특정 종교에 속해있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신성함을 복원시키는 수행적 영성운동이다.
네오샤머니즘은 인간 의식변형을 통한 고차원적 인식의 지평을 강조한다. 고전샤머니즘이 ‘신내림’ 현상과 같은 강신무의 전통을 강조한다면, 네오샤
머니즘은 인간 내면세계의 탐색과 성찰을 통한 성스러움의 경험을 강조한다. 신학자 루돌프 옷토는 인간 내면의 성스러운 마음을 ‘누미노제(Numinos
e)’로 표현한다. 누미노제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성스러움의 감정과 공감의 마음이다. 이는 인간의 신화적 마음인 집단무의식에
서부터 출현한 거대한 영적 울림이다. 성스러움의 감정은 일상의 희로애락의 감정과는 구별된다. 누미노제는 우주만물의 원초적 공감을 상호 연결시
키는 본질적인 신비의 감정을 의미한다.
네오샤머니즘은 고대시대부터 내려온 내면의 성스러움을 찾아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킨다. 네오샤머니즘은
샤먼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정한 샤먼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샤먼은 두 가지 의식체계를 지닌다. 하나는 ‘의식의 일상의식’이고, 다른 하
나는 ‘의식의 통합의식’이다. 통합의식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의미한다. 융은 인간이 의식 에너지로만 인생을 산다면, 삶의 극히 일부만 사는 것이
라고 지적한다. 융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다’라고 고백한다.
사실 인간은 이성, 논리, 의식 외에도 감정, 직관, 무의식의 심리적 기제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무의식의 소외와 억압은 마음의 그림자를 창
출한다. 심리적 그림자는 내 안의 악과 어둠을 타자에게 투사하면서 기생하는 특징이 있다. 타인을 향한 과도한 공격성과 증오는 궁극적으로 내 안의
병든 무의식의 투사일 수 있다. 이런 투사도 자신의 마음의 일부인데 그것을 모르고 밖에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무의식의 그림자는 소수집단이나
개성강한 개인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인종, 성(性), 종교 등에 대한 극단적 혐오현상은 집단적 투사의 결과다. 고대종교에서는 동물을 ‘속죄
양’의 제물로 바침으로 집단적 그림자의 투사를 종교의례로 전향시켜왔다.
집단적 투사는 개인과 사회의 선입견과 편견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공포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무의식의 병든 마음에는 성스러움의 누미노제가 결
코 출현할 수 없다. 마음의 통합의식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의 승화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영성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진정한 누
미노제의 경험은 개인을 ‘성인다운 성품’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고통 받는 이웃과 세상을 향한 봉사와 연민의 감정을 성숙시킨다고 강조한다. 이런
자아변형의 진위여부는 자연스럽게 ‘이웃에 의해’ 알아차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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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내면수행이 부재된 샤먼적 누미노제는 신성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자아팽창(Self-inflation)’의 영적 도취에 빠져 스스로를 ‘영웅적 착각’에 빠지
게 한다. 이는 샤먼적 인물 뿐 아니라 역사상 다양한 종교집단의 타락한 종교지도자와 정치인, 시민운동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자아절대화의
병적 현상이다. 누미노제의 진정성은 개인적 수행이 뒷받침되는 초월적 겸애와 이타적 사랑이 수반돼 맺어지는 사회정치적 열매여야 한다. 이는 누미
노제의 내면적 개인 수행이 외면적 사회적 수행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 원리이기도 하다. 누미노제의 매혹성은 개인적 누미노제의 경험이 사회정치적
공공성과 결별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우주적 미소를 보내는 신성한 유혹인 것이다.
네오샤머니즘은 현대인의 공허감과 소외감을 영적 위기로 진단하며 누미노제의 자아 초월적 경험을 통한 영성의 진보가 일상의 삶 속에서 지속될 것
을 강조한다. 원초적 공감의 회복은 호모엠파티쿠스가 추구하는 치유의 시작이고 과정이며, 또한 완성이다. 존재의 근원과 의식·무의식의 변형을 통한
궁극의 존재 체험은 삶의 고통을 신성화할 수 있는 영성세계를 열어주는 치유의 의식변형이다.

호모엠파티쿠스와 ‘공공 영성’

네오샤머니즘의 원초적 공감은 ‘공공영성’으로 이어진다. 김태창에 의하면 공공영성의 ‘공공’ 개념은 공공철학(Public philosophy)의 번역어가 아니라
‘매개’와 ‘연결’을 의미하는 용어다. 그는 ‘공’과 ‘사’ 사이에 ‘공공’을 매개로 연결해야 한다고 본다. 이때, 연결과 매개는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성을 요구
하기에 ‘공공한다’라는 동사형으로 표현된다. 김태창의 공공 개념은 구체적인 실천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삶과 제도 사이의 연결과 매개를 통한 세계의
활성화를 추구한다.
네오샤머니즘의 의식변형과 영적 각성은 궁극적으로 운둔적인 자아소외의 체험이 아니라, 자아, 타자, 공동체의 연결과 공감 확대로 귀결된다. 네오샤
머니즘의 자아치유 개념처럼 인간의 영성적 주체성의 회복은 새로운 인간 주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회구조적 문제와 관련해서 네오샤머니즘
은 인간의 영성적 유산이 문명의 기계적인 성격 때문에 상실돼 버린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의식변형을 통한 영적 각성은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영적 지성과 야수적 감정을 모두 수용하며 존재의 비극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네오샤머니즘은 비극성이 없는 인간과 이상사회의 존립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성을 승화시켜 자연과 우주만물의 모든 존재와 공감하는 호모엠파티쿠스의 원형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인간형이 사회적 변혁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확산 기제가 마련돼야 한다.
인류의 미래는 현재 살고 있는 어떤 인간 집단의 투쟁에 달려 있기보다는 그들 개개인의 책무에 달려있다. 인류의 미래는 급진적인 집단적 변화보다
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깨달음과 실천을 통해 지속 가능한 문명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네오샤머니즘에서 강조하는 개인성이란 분절적 개인이
아닌 ‘공화(空化)적 개인’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적 영위를 위한 사회적 변화와 변혁의 첫 시작은 바로 인간의 자기 비움을 통한 초극적 상태임을 의미
한다. 이를 위해 인간은 지속적으로 자아변혁을 시도해야만 하는 영적 각성의 주체자로서 호모엠파티쿠스의 개별성을 지닌다.
궁극적으로 호모엠파티쿠스의 존재론적인 힘은 인위적 학습이 아니라, 주체적 경험에 기인한 의식변형의 주체적 확장에 있다. 네오샤머니즘의 시작이
개인영성과 생태영성의 공감과 연대를 통한 생명운동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개인의 영적각성과 영성 경험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공공영성으로 확대
될 수밖에 없다. 공감의 공공영성은 인간을 속박하고 타인을 억압하는 자기중심성을 억제하는 관용과 ‘거중(居中)의 미덕’을 배양한다. 또한 공감의 공
공영성은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타인의 경험을 내재화하고 주체의 확장을 통해 타인을 수용하고 타인의 고통에 참예(參預)하는 치유의 윤리적 덕성을
가지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내면의 무한성을 신성으로 승화시켜가는 ‘신성화(神性化)’의 과정을 경험한다. 이는 상호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공감의 그물
망으로 인간, 사회, 자연의 관계를 유기적인 통합사회로 완성해 나간다. 호모엠파티쿠스의 공공영성은 ‘마음의 정화-누미노제의 출현-공감의 연결-세
계의 신성화’라는 영적 각성의 단계를 거쳐 발전해간다. 인간은 공생의 필연성에 따라 ‘공유된 가치’를 인지하게 되고, 개인성과 공공성이 만나게 되는
지점을 함께 발견함으로써 공감의 과정 자체가 인간 사회의 치유와 통합의 시작이 될 수 있게 한다.

‘페르헤지아’(Parrhesia): 진실의 공수

공수란 신이 샤먼을 통해 내리는 신성한 메시지다. 내면의 신성이 부활한 호모엠파티쿠스는 오직 진실만 내리는 공수를 전한다. 네오샤머니즘은 개인
의 신성화 없이 사회의 신성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네오샤머니즘은 신성의 주체화와 인식 에너지의 재구성을 통해 자아의 영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
를 동시에 추구한다. 사회적 통합의 근본에는 인간의 내면적 통합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오늘날 개혁과 진보를 부르짖는 많은 이들의 혁명적 구호
속에는 성스러움이 결여돼 있다.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해 정의에 대한 독점의식과 근거 없는 특권의식, 자아 팽창의 콤플렉스에 사로
잡혀 있다. 불안한 인격성으로 사회개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거기에는 연민의 공감과 감동의 신비로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진정한 샤먼은 누구인가? 그는 더 이상 영적 능력을 부여받은 소수의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 일상의 삶을 오직 진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수많은 ‘상처받은 치유자’들이다. 호모엠파티쿠스는 인간이 신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신성한 공감을 회복하는 네오샤먼이 되는
것이다. 사회변혁으로 연결되는 영성 체험은 더 이상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이나 축신 행위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우주
사이의 영적 통일성을 회복해 좀 더 숭고한 영성 세계로의 전이와 고양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호모엠파티쿠스의 네오샤머니즘 영성은 문명의 과정에서 상실한 원초적 공감을 회복해 자아와 타자, 동식물, 우주만물의 모든 존재들과 소통하며 공
감하는 유기적인 통합의 공수를 전하는 존재다. 진정한 공수란 신과 인간이 영적 공감을 나눈 통합주체로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비판해 말하는 ‘페르
헤지아’의 의례인 것이다. 이는 단순히 거짓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위험 앞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신성한 공수의 윤리다.
호모엠파티쿠스는 종래의 신을 믿고 의지하는 호모렐리기우스에서 진화해 신과 동등한 관계에서 상호 공감하고 소통하는 신인간의 공명상태를 추구
한다. 또한 공감할 수 없는 신적 개념들을 소멸시키고, 신과 인간 사이의 신성의 공감대를 재창조한다. 신과 인간은 공동의 창조자다. 호모엠파티쿠스
의 치유란 고통을 제거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통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서 고통이 전제된 근원적 깨달음을 얻는 ‘통각’(痛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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覺)의 영성을 의미한다. 호모엠파티쿠스는 개인의 영적 수행을 통한 원초적 공감의 회복은 무한한 우주의 사랑 에너지를 빛의 인식으로 확산하며 생과
생을 통합시키려는 도덕적 요구를 수용한다.
이는 라인홀드 니버의 표현처럼 진정한 자아는 내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전념해야 하며, 스스로 다른 자아들과의 통합을 위해 그들과 조화를 이뤄야
만 한다. 인격의 조화는 ‘완벽함’이 아니라, ‘원만함’이다. 호모엠파티쿠스의 네오샤머니즘 영성은 누미노제의 복원, 원만한 인격성, 공감적 연대를 통해
개인과 사회 속에 구현될 수 있는 주체적 각성을 강조한다. 고통의 해석학으로 통각의 치유와 비판, 과정적 통합을 수용하고, 상호적 공명 관계를 통해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페르헤지아’의 공공영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당신 내면의 신’께 인사드립니다

누미노제의 감정은 개별적인 신비성과 주술성으로만 기능할 수 없다. 인간은 직관적 공감을 통해 신과 인간이 궁극적으로 합일되는 원초적 공감을 회
복함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 새롭게 개입하는 성스러움의 역사성을 구현해야 한다. 원초적 공감의 회복이란 문명화 이전의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문명화된 현재의 삶 안에서 원초적 영성을 회복하는 관계적 공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감의 누미노제는 한 개인이 어떤 신비적 경험을 했는가의 경중보다, 얼마만큼 개인이 우주적인 신성의 세계로 변화하고 승화했는가에 관한 자기 수
양적 ‘무위(無爲)의 공감’을 강조한다. 이는 개인의 에고가 신비로운 전율과 성스러움의 감정 속에 스며들어 동거하는 ‘케노시스(kenosis)의 공감’이기
도 하다. 자기 비움의 공감은 삶의 억압적인 가치들을 전도시키는 사회개혁정신과 신성한 인연을 맺는다.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신비주의는 저항이
다’라고 말한다. 공감의 누미노제는 저항정신을 내포하고 있고, 저항정신은 누미노제의 신비성에 기초하고 있다.
개인의 영성이 체험되고, 깊어지고, 승화되면, 그 깨달음의 절정은 개별적 자아추구를 넘어,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세계의 지속적 창조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지배문화의 폭력을 제어하고 생명의 힘을 복원시켜 내적인 저항과 사회적 저항을 연결시키는 누미노제의 전일성을 의미한다. 누미노제의
전일성은 개인의 직접적인 참여방식 외에도 영향력 있는 이들에 대해 더 깊은 영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비폭력적 저항을 포함한다. 각각의 수행
자는 ‘정치적 신비가’로서 신성한 저항에 참예하는 성례전의 삶에 동참해야 하는 성스러운 책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새로운 공감적 인간상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때, 갈등과 감정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가 진정한 화해와 치유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향해 진실한 ‘나마스테’를 고백할 수 있다. ‘당신의 내면의 신께 인사합니다.’


글·신은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수피즘: 신의 유혹』(2016)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수행과 마음치유 워크숍 <누미노제>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혜강 최한기, 주자학의 공허함과 비현실성을 극복하고 조선유학을 일신하다 - 대학지성 In&Out

혜강 최한기, 주자학의 공허함과 비현실성을 극복하고 조선유학을 일신하다 - 대학지성 In&Out



혜강 최한기, 주자학의 공허함과 비현실성을 극복하고 조선유학을 일신하다
김용헌 한양대·철학
승인 2021.01.03 

■ 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최한기의 기학과 실학의 철학』 (김용헌 지음, 예문서원, 560쪽, 2020.11)


독서와 저술

내가 혜강 최한기(1803~1877)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였다. 아마 1학년이나 2학년쯤이었을 텐데, 당시 최한기는 그 사상사적 위치가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가교자’, 한마디로 조선 후기가 배출한 위대한 사상가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정작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몰락 양반층의 학자로서 1,0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으나 그 책들 대부분이 소실되고 일부만 남아있다는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1,000여 권이나 되는 책을 썼다는 것이 충격적이었고, 그 책들이 대부분 소실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특히 몰락 양반층이라는 불운한 삶의 배경과 겹치면서 그 안타까움이 배가되었고, 배가된 안타까움은 그 까까머리 학생에게 언젠가 최한기를 연구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했다.

사실 최한기가 1,000권의 책을 썼다는 것은 다소 과장되었고 그 권이라는 단위도 오늘날과는 의미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그가 엄청난 독서광이었고 수많은 책을 쓴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좋은 책이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고 구입했고, 그런 까닭에 형편이 어려워져 노년에는 도성 안의 큰 집을 팔고 도성 밖으로 나가 샛집을 얻어 사는 처지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쓴 책들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릴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누군가 그에게 책 사는 데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걱정하자, 최한기는 “만약 책 속의 사람이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천 리 길일지라도 반드시 그를 찾아갈 것”이라면서, “지금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를 만날 수 있으니, 비록 책을 사는 데 비용이 많이 들지만 먹을 것을 싸 들고 멀리 찾아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역시 그의 책 사랑은 남달랐다.


그가 읽었던 책에는 『해국도지』·『영환지략』·『전체신론』·『서의약론』·『담천』 등 당시 중국에서 간행된 각종 과학기술서 내지 세계지리서가 망라되어 있다. 그는 이 책들을 통해 서구의 천문학·수학·의학·물리학·광학·전자기학과 같은 과학적 지식은 물론 세계 지리·역사·정치제도 등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3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할 수 있었다. 주요 저술로는 『기측체의』(1836)·『지구전요』(1857)·『기학』(1857)·『인정』(1860)·『신기천험』(1866)·『성기운화』(1867)·『승순사무』(1868) 등이 있다.

주자학에서 기학으로

최한기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동서 문명이 교류하는 시대로 파악하고, 서구의 과학 기술과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역설했다. 그의 철학적 문제의식은 그러한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제대로 대처하자는 것에서 출발한다. 변화된 세계정세 속에서는 옛것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무엇인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최한기는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학문을 구상했다. 기의 존재론에서 출발하는 그의 새로운 학문, 즉 기학은 기존의 학문이 초래한 문제를 고치는 것이 목적이었다.

최한기의 기학은 객관 존재[氣]-인식-승순(承順)-사무(事務)라는 4단계의 논리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기로 이루어져 있다. 기는 인간의 의식과 관계없이 인간의 마음 바깥에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운동변화 하는 객관 존재이다. 둘째, 기 및 기로 형성된 존재들은 유형의 존재이고, 따라서 경험 가능한 존재이다. 경험 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이 감각과 추론을 통해 그 운동변화의 법칙을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그의 철학에서 참된 인식은 객관 존재와 일치하는 인식이다. 셋째, 인간은 객관 존재의 운동변화 법칙에 승순해야 한다. 최한기 철학에서 선善은 바로 객관 법칙에 순응하는 실천이다. 넷째, 승순의 목적은 사무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의 승순은 사무와 결합되면서 객관 법칙에의 순응이라는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 객관 대상의 적극적인 활용과 이용을 함축하는 개념으로 거듭났다.


요컨대 최한기는 기의 존재론과 경험주의 인식론을 두 축으로 한 기학을 확립했다. 이는 당시 조선 사상계의 주류인 주자학과 일정한 선을 긋는 단절의 의미가 있다. 그는 주자학을 심학으로 규정하고 인간의 마음에만 매몰된 학문이라고 비판했다. 최한기 철학에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주자학처럼 마음속에 있는 도덕적 본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연·인간·사회를 포괄하는 객관 세계의 법칙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실천을 할 것인가 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흔히 경험주의로 규정되는 최한기의 인식론은 과학적 지식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넘어 그의 동서소통론과 세계평화론의 인식론적 토대이기도 하다.

최한기가 제시한 철학 이론이 그 시대의 시대적 요구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충족시켰는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의 기학이 그 시대의 문제를 탈주자학적 관점에서 해결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인 것만큼은 분명하고, 따라서 그것을 실학의 철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더욱이 그 성찰이 서구의 것이면 무조건 좋다는 식의 맹목적인 서구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제3의 근대화 모델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근대로 가는 길은 단일하지 않으며 더더욱 근대화가 서구화와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찰은 조선후기 실학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 홍대용이 인물균등론을 기반으로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탈중심주의적 사고를 전개한 것, 정약용이 천을 도덕적 감시자로 설정하고 이에 기초해 도덕적 실천과 제도 개혁을 역설한 것, 최한기가 기학과 경험주의 인식론에 근거해 대동의 세계평화론을 제시한 것 등은 그들이 먹고사는 것[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순간도 도덕적 가치와 그 가치의 실현[道]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를 한마디로 도기병진론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실학자들의 철학도 마찬가지이지만, 최한기의 기학 역시 서구 열강의 자본주의적 본질, 더 나아가 제국주의적 특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고, 그 결과 그 논의가 치밀한 현실 분석과 이에 기초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결여한 채 다분히 선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국가 이기주의에 따른 갈등과 분쟁이 증폭되고 있고, 특히 패권 경쟁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의 망령들이 인류의 공존을 위협하고 있는 작금의 세계정세를 감안하면, 전 세계의 평화로운 공존을 지향했던 최한기 기학의 평화와 공존의 문제의식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김용헌 한양대·철학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안동대학교 국학부를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2010), 『야은 길재, 불사이군의 충절』(2015), 『혜강 최한기』(편저, 2005)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탈근대적 주체의 모색과 유가사상」, 「퇴계학파의 여헌 장현광 비판에 관한 연구」, 「16세기 조선의 정치권력의 지형과 퇴계 이황의 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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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최한기의 기학과 실학의 철학  | 한국철학총서 45
김용헌 (지은이)예문서원2021-06-11




































전자책 미리 읽기

전자책정가
25,200원
종이책
39,900원 (+1,200원)

책소개


한국철학총서 45권.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을 이어주는 가교자’로 널리 알려진 조선의 철학자 혜강 최한기의 학문과 철학을 조선 후기 실학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19세기 조선이 배출한 위대한 사상가 최한기는 1,000여 권에 이르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고 전한다. 그는 주자학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나 실학의 철학적 의미를 완성함으로써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주로 최한기의 철학적 문제의식과 학문관의 변화, 서양 과학기술 수용 양상, 사유의 변화, 철학이론의 특성 등을 살피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 아래 논의된 최한기의 철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귀결된다. 기의 존재론과 경험주의 인식론, 실증과 실용의 실학적 학문관,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과 기학적 변용, 마음으로부터 객관세계로의 전환, 도道로부터 기器로의 전환 등이다. 모두 주자학의 공허함과 비현실성을 극복하고 조선유학을 일신시킨 기학의 새로운 면모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최한기의 삶과 그의 시대
제2장 실증과 실용의 실학적 학문관
제3장 주자학 비판과 기학의 형성
제4장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과 기학적 변용
제5장 인식론의 전환과 객관 인식의 방법론
제6장 탈주자학적 사유의 전개와 세계평화론
결론: 조선 후기 실학과 최한기의 철학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속에서


첫문장
최한기崔漢綺(1803~1877)는 19세기가 시작될 무렵인 1803년에 개성에서 태어나 주로 서울에서 독서와 저술로 활동을 하다가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재야 학자이다.




저자 및 역자소개
김용헌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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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안동대학교 국학부를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 『야은 길재: 불사이군의 충절』, 『주자학에서 실학으로: 조선후기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과 주자학적 사유의 균열』, 『혜강 최한기』(편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율곡 이이의 동북아 인식과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 「16세기 조선의 정치권력의 지형과 퇴계 이황의 철학」, 「수암 권상하 문하의 심성 논쟁과 호학의 형성」 등이 있다.

최근작 : <최한기의 기학과 실학의 철학>,<주자학에서 실학으로>,<야은 길재, 불사이군의 충절> … 총 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을 이어주는 가교자’로 널리 알려진 조선의 철학자 혜강 최한기의 학문과 철학을 조선 후기 실학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19세기 조선이 배출한 위대한 사상가 최한기는 1,000여 권에 이르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고 전한다. 그는 주자학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나 실학의 철학적 의미를 완성함으로써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만 해도 20여 종에 달하는 최한기의 저서들은 철학·경학·경세학·역사와 같은 전통학문은 물론이고 천문학·과학·수학·농학·기계학·의학·지리학 등 흔히 잡학으로 분류되었던 분야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게다가 그 저술의 내용들은 잡다한 지식을 나열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소개하는 수준이 아니라 확고한 철학적 토대 위에, 즉 ‘운화기運化氣’라는 존재론과 ‘추측推測’이라는 인식론의 토대 위에 일관되게 구축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철학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탈주학적 사유의 정점이라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그 철학과 학문을 최한기는 스스로 기학氣學이라고 불렀다.
최한기 이전에도 리 대신 기를 주목한 철학자들은 없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송대의 장재가 그랬고 명대의 나흠순이 그랬다. 조선에도 이미 서경덕이나 임성주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논한 기는 주자학적 리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리를 대신하는 형이상학적 기였다. 반면 최한기의 기는 달랐다. 최한기가 말한 기는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대기와도 같이 근대과학적 개념에 근접한 실체로서의 기였다. 이러한 기학에 의해 공허한 사변적 세계 대신 경험 가능한 물질세계가 철학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최한기의 철학적 문제의식과 학문관의 변화, 서양 과학기술 수용 양상, 사유의 변화, 철학이론의 특성 등을 살피고 있다. 이러한 주제 아래 논의된 최한기의 철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귀결된다. 기의 존재론과 경험주의 인식론, 실증과 실용의 실학적 학문관,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과 기학적 변용, 마음으로부터 객관세계로의 전환, 도道로부터 기器로의 전환 등이다. 모두 주자학의 공허함과 비현실성을 극복하고 조선유학을 일신시킨 기학의 새로운 면모이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