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3

일본의 불교 | 와타나베 쇼코 1995

일본의 불교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 | 와타나베 쇼코 | 알라딘



일본의 불교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
와타나베 쇼코 (지은이)소화1995-05-01




목차


1. 일본불교를 세운 사람들
2. 일본불교의 실태
3. 여러갈래의 흐름



저자 및 역자소개
와타나베 쇼코 (渡? 照宏)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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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 동경대학교 문학부 인도철학과에서 인도철학 및 불교를 전공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독일에 4년 동안 유학했다. 귀국 후 동양대학 문학부 교수와 불교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힌두어와 팔리어에 능통했으며, 불교와 인도 사상 전반에 걸친 연구에 불후의 업적을 남기고 1977년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불타 석가모니> 외에 <불교사의 전개> <불교의 자취>, <불교>, <경 이야기>, <법화경 강화>, <유마경 강화>, <석존을 따르는 여성들> 등이 있다. 타고르 시집 <기탄잘리>와 <자타카>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접기

최근작 : <불타 석가모니>,<경이야기>,<불타 석가모니> … 총 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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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1

"한국 불교와 일본 불교와의 왕래의 역사를 너무 소홀이 다룬 것이 <일본의 불교>의 큰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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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

2024.02.18

한국불교와는 다른 일본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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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9

깊고 넓은 불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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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8

일본 불교 분야 입문서&비판서. 나온지 오래된 책이지만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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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1

[나눔강좌] 9강 – 더불어살기 스스로살기 생태공동체 산안마을 | 녹색연합

[나눔강좌] 9강 – 더불어살기 스스로살기 생태공동체 산안마을 | 녹색연합

[나눔강좌] 9강 – 더불어살기 스스로살기 생태공동체 산안마을

2008.08.18| 행사/교육/공지




산안마을은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리에 있는 농촌마을로서 정식명칭은 ‘야마기시즘사회 경향 실현지’이다. ‘산안’이란 이름은 야마기시 공동체의 정신적 기반이다.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의 야마기시(山岸)에서 온듯하다. 1965년 일군의 사람들이 야마기시즘을 처음 소개한 이래 1984년부터 지금까지 화성에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24년째 이어오고 있다.’경향’이란 이름은 ‘경기도 향남면’의 머리글자를 딴것이라 한다. 야마기시즘은 자연과 인위, 즉 天 地 人 의 조화를 도모하여, 풍부한 물자와 건강과 친애의 정으로 가득 찬,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인류에 가져오는 것을 목적으로 1950년대에 일본에서 시작된 하나의 사회개혁이념이자 운동이다. 이러한 상생의 야마기시즘이 지향하는 사회를 야마기시즘사회라고 하는데 실현지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야마기시회분들은 ‘공동체’라는 표현을 피하고 대신 ‘일체(一體)사회’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그 까닭은 공동체는 개체의 모임이며 개체가 독립성을 유지한 채 협동과 조정을 통해 그들 사이의 공통관심사나 목적의 달성을 추구하는 조직이나 단체라고 한다면, 야마기시즘에서는 개인과 사회와 우주는 연속적인 것이며 전체로서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무아집’,’무소유’의 철학으로 8세대 32명(성인 18명, 아이 14명)이 한 가족처럼 일체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오래된미래>나 스콧니어링, 헬렌니어링의 책들을 읽으며 ‘지속가능한 삶’ ‘조화로운 삶’ ‘스스로 사는 삶’ 을 꿈꿔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이 신자유주의의 큰 물결 속에 도시의 파편화된 개인의 삶속에선 그 이상을 실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너무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결코 멈추어지지 않는 소유욕(늘상 ‘광고’들은 외쳐대지 않은가 소유한 것들이 당신임을 드러낸다고, 그러므로 소유하라! MUST HAVE…), 이기심, 무한경쟁, 늘 바쁘게 뛰어다녀도 행복은 저 멀리 도망쳐버리고, 불안은 늘 우리 곁을 따라다닌다.



우리일행을 맞아주신 최창호님께서 이런 야마기시즘의 ‘무아집’ ‘무소유’의 철학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마을곳곳을 안내해주셨다. 꽃과 풀들 나무들이 어우러진 마을길을 따라 첫 번째 가본 양계장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더운 여름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닭들은 그들이 가진 본연의 당당함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위풍당당’ 바로 그것이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스템, 세상 모든 것을 ‘상품’으로 치환하는 자본주의의 생리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닭의 모습이었다. 야마기시식 양계에서 사고의 초점이 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닭이다. 그 닭이 일생을 통해서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닭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야 그 닭이 낳은 달걀을 먹는 우리도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상의 모든 삶은 연결되어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알면서도 상품과 이윤의 논리로 생명의 대량생산과 소비를 도덕적 회의 없이 저지르고 있다. 참가자 17명은 산안마을에서 두번의 식사를 했는데 마을에서 달걀을 아낌없이 제공해주셔서 삶은 계란, 계란말이를 너무 맛있게 먹었고 너무도 쫄깃하고 맛있는 토종닭백숙을 네 마리나 뚝딱 해치우는 먹성을 발휘했다.





야마기시의 ‘나, 모두가 함께 번영한다’는 상생의 정신은 두 번째 둘러본 채소밭에서도 적용되고 있었다.’天 地 人 의 조화’ 自然과 人爲의 조화’ ‘일체순환’이라는 자연관위에 동식물-인간 일체의 ‘순환농법’으로 짓는다. 당연히 유기농법이며 단순 유기농법을 뛰어 넘는 개념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공명, 공존공활을 지향하며 ‘자연과의 일체’라는 ‘종합 유기적 일체농업’을 추구한다. 그곳을 지키시는 채소아저씨의 넉넉하고도 맑으며 깊은 우물 같은 모습은 그 땅과 농작물을 대하시는 그분의 철학을 드러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음날 우리 모두는 가위를 들고 고구마 밭, 파밭의 잡초제거에 2시간여쯤 힘을 모았는데 짧은 노동 뒤의 껍질째 먹는 감자의 맛이라니 단순히 먹는 음식 이상의 기쁨을 함께 먹었다.





산안마을 같은 일체 생활 공동체인 경우 더욱 더 효과적으로 녹색의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주민들의 작업복은 매우 낡아 보였는데, 의류는 완전히 폐기될 때까지 외출복-평상복-작업복-기름 닦는 걸레 등의 사이클을 거친다. 비닐 등 폐기물의 재활용도도 대단히 높고, 식생활에서도 쌀뜨물은 모아 1차로 식기세척에 이용한 다음 다시 수거하여 돼지 먹이로 준다. 모든 것이 순환 재생되므로 전부가 자원이다. 채소찌꺼기나 콩비지등도 토끼사료나 닭 먹이 혹은 유기질비료로 이용된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씩 종이와 비닐, 페트병 등을 분리수거하고 매일 음식찌꺼기를 내놓는다. 그것이 진정으로 순환 재생되기를 빌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마을주민과 ‘씨앗나눔’참가자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한분한분 모두 평온하고 여유 있고 행복해보였다. 그 빛나는 성취에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다. 특히 이 공동체의 놀라운 점은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나 ‘연찬학교’ ‘어린이, 청소년 낙원촌 개최’등을 통해 외부세계에 자신을 개방하며 매우 적극적으로 외부세계와 교류한다는 점이다. 즉 자신의 순수성을 잘 지켜나가면서도 열려있는 공동체로서 외부와 적극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이러한 개방성은 삶의 총체적인 모순들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대안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행복이 소유와 개발과 성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신자유주의시대, 자본주의의 극단으로 치닫는 이 세계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성찰적 인식이 필요하며, 그 대안의 삶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만 우리의 미래가 담보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정신적 물질적 진보를 향한 변혁의 가능성, 그 단초를 나는 ‘야마기시즘 실현지’인 산안마을에서 보았다. 우리를 자상하게 안내해주시고 배려해주신 최창호님을 비롯한 마을 분 모두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 글 : 9강 참가자 홍순영

40년동안 무소유? 전쟁같고 천국같은 기적의 공동체

40년동안 무소유? 전쟁같고 천국같은 기적의 공동체
레드 기획1511호
40년동안 무소유? 전쟁같고 천국같은 기적의 공동체
‘야마기시즘’ 한국 실현지 화성 산안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옳다’는 생각을 소유하지 않는 데 집중”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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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4-05-06



산안마을의 젊은 세대, 김한결(왼쪽 셋째)씨와 이경묵(넷째)씨가 마을을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사람들은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다. 머리에 새하얗게 서리가 내린 50~60대 어른들이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늙었네!”


2024년 4월20일, 경기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 산안마을에서 ‘야마기시즘 실현지’ 설립 40돌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38년 만에 다시 만난 사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18년을 살았고 누군가는 9년, 7년 또는 아주 잠시 거쳐갔다. 강화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들썩했고 근처 양계장 닭들은 꼬꼬댁 홰를 치며 난리법석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쌀쌀했다. 따뜻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으니 대가족 잔치가 따로 없었다.



2024년 4월20일 밤 10시를 넘겨 연찬회가 끝났다. 사람들이 “야마기시!”라고 외치며 웃고 있다. 이유진 기자


강화, 제주… 전국에서 모여들어 떠들썩


페미니스트 과학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세계를 간파했다. 비인간, 유기체,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연결돼 살아가는 ‘실뜨기의 세계’를 말했다. 그것은 다정한 세계라기보다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길 수밖에 없는 냉혹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론물리학 박사이자 해러웨이 연구자인 최유미씨는 비인간 타자들과 연결되는 해러웨이의 사상(‘심포이에시스’)을 ‘공-산’이라 번역했다. 함께 만드는 공동체.


야마기시즘 실현지라고 하면 이런 ‘공-산’, 실뜨기의 세계가 떠오른다. ‘무소유·공용·일체’라는 사상 아래 진실하고 행복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야마기시즘의 정신이다.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1950년대 일본의 농촌운동가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가 제창한 ‘야마기시즘’을 현실에 구현한 공동체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타이, 브라질 등에 실현지가 있다. 한국의 화성 실현지는 올해로 설립 40년이 됐다. 한국어 표현으로 이 공동체는 ‘산안마을’(야마기시, 山岸)이라 일컫는다. 현재 구성원과 체험자를 포함해 16명이 살아간다.


‘무소유’ 마을이 생겨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의구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성직자도 자기 재산이 있고, 무소유를 부르짖는 스님들도 제 밥그릇이 있거늘 어떻게 사유재산 일체를 버리고 필요에 따라 물건이나 공간을 공유하는 삶이 가능한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고 공동체 일정에 나의 삶을 따르며 나이와 무관하게 서로 ‘씨’라고 부르면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연찬’(硏鑽·연구해 뚫는다는 뜻)을 매일 하는 생활이 가능한가?



2021년 완공한 산안마을 공동체 주택. 각 세대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르다. 이유진 기자




마을에 도착하자 뾰족지붕을 한 세련된 주거동이 보였다. 유럽의 영성 공동체나 피정 센터 같은 단정함과 우아한 아름다움이 엿보였다. 2021년 완공된 8채의 공동체 주택 중 1동은 마을 공동 사랑방으로 쓰는 커뮤니티 센터이고 나머지 집은 각 세대원이 산다. 마을 사람들은 무소유 원칙에 따라 가전제품, 부엌이나 거실 같은 생활공간, 자동차를 공유한다. 예전엔 옷가지도 공유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마을 사람 김한결(37)씨는 “요즘은 ‘물질적 무소유’에 집중하기보다 각자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소유하지 않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전과 달리 종교생활을 하거나 개인적인 물건을 구입하거나, 개인적인 시간도 보냅니다. 우리는 사이좋은 즐거운 생활이 목표고, 소유하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기보다 그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내놓고 검토하는 게 더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모든 구성원이 한 건물에서 살았기에 그들이 키우는 닭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산다는 얘기도 들었다. 각 세대를 가로지르는 판자벽 하나 정도 있을 뿐이어서 옆방에서 하는 이야기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젊은 세대는 변화해야 한다고 느꼈고, 아이들을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하기로 했다. 새 공동체 주택은 법인 소유 건물이며 세법상으로는 사원용 주택이다.



경제활동의 중심은 양계다. 총 21개 동 계사 가운데 16개 동에서 4만 마리 닭이 하루 2만5천 개의 알을 낳는다. 생협 매장, 택배 판매, 그리고 화성시 소매점에서 달걀이 소비자와 만난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계사 안에는 불쾌한 냄새가 거의 없었다. 산안마을 3세대인 이경묵(34)씨는 “산업적으로는 양계가 매력적이다. 물류도 잘돼 있고, 일도 더 잘할 수 있다. 생계와 삶을 한 공동체에서 한다는 것이 어렵고 스위스 사람인 아내도 공동체 바깥에서 취업할 예정이지만 (공동체에서 함께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산안마을의 큰아빠’로 불리는 윤성열씨와 특강 참석자가 마을 어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유진 기자




산안마을 형성은 한국 농업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한때 이 공동체는 ‘한국의 키부츠’로 일컬어졌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농촌운동에 투신한 이건우(1932~2001)가 협업농장을 만들려고 고향인 화성군으로 내려왔다. 1961년 봄 조한규(1935~ ), 김병규(1938~1985)가 결합해 화남협업농장을 설립했다. 부농의 아들이었던 김병규는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다가 농촌운동에 뛰어들었다. 대농가에서 자라난 조한규는 청년 농부로 일찌감치 화성지역 농업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세 사람은 결혼 뒤 협업이 와해될 것을 우려해 각자의 여동생과 부부가 되어 합동결혼식을 올렸을 정도로 강고한 ‘동지’였다. 조한규의 동생으로 김병규와 결혼한 조정희(86)씨는 아직까지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조씨는 “(앞으로도 공동체에) 지속적인 이어짐이 있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1961년 일본 가스가야마에 자연농법을 실시하는 무소유 공동체가 처음 생겼다. 윤세식, 조한규 등은 1965년 ‘선진지 견학’차 일본 산안회 농장을 방문했는데 한국 정부도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비자를 연장해가며 공동체 정신과 양계법을 배운 뒤 1965년 12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1월부터 야마기시즘의 이론과 정신을 전수하는 ‘특강’을 시작했고 전국 농촌운동가에게 야마기시즘을 소개했다. 무소유의 삶, 자연친화적 순환농법,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평등한 연찬회를 통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야마기시즘의 핵심 활동이다. 농업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스님, 명상가 등도 야마기시 특강을 받았다.


2000년 7월 연찬회. 처음 자기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은 연찬회가 무르익으면서 점점 의견을 수렴해 간다. 이남곡(맨 왼쪽), 김현주(왼쪽 둘째)씨의 모습이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실현지의 큰아빠’로 불리는 윤성열(81)씨는 만 22살 때 2회 특강에 참여했다. 그는 일본 야마기시즘 실현지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1세대 중 한 명인 윤세식씨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귀국 직후 암 투병으로 병상에 눕자 윤성열씨는 공동체에 투신한다. 그는 “종달새가 먼 하늘에서 나를 불러들이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1984년, 6가구가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에 정착했다.


“지금 이 바닥에 깔린 콘크리트 하나하나 우리 손으로 다졌어요. 그때는 무소유, 공용, 일체사회 실현의 꿈이 있었죠. 재산도 없고, 못 먹고 살면 깡통을 차고 빌어먹더라도 헤어지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어요. 철저하게 서로 마음을 모으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사이가 좋아야 마음도 몸도 합해졌을 때 전진할 수 있어요.”(윤성열)


2000년 초 마을 입구에 서 있던 간판. 한겨레 자료사진


공유·순환농법·민주적 의사결정이 핵심


야마기시 미요조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사회의 모습을 상생의 원리에서 찾았고 이를 닭 사육에도 적용했다. 그가 기른 닭은 1940년대 일본의 극심한 홍수 피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의 방법을 이어받은 산안마을 농장의 닭들은 넓은 평사식 계사에서 자란다. 바닥은 풀, 볏짚, 왕겨, 톱밥, 흙, 굴 껍데기 등이 미생물에 발효돼 악취가 없다. 계사는 햇볕이 잘 들고 공기 순환이 원활하다. 동물복지 기준으로도 바닥 면적 1㎡당 닭을 9마리까지 키울 수 있지만, 이곳에선 1㎡당 4.4마리가 생활한다. 태양, 공기, 흙, 물이 상호작용하며 상호 번영한다는 대원칙의 야마기시즘 농법으로 만든 유정란은 좋은 품질로 유명하다. 40년 동안 닭들은 한 번도 조류독감(AI)에 걸리지 않았다.





야마기시즘 실현지 ‘산안마을’ 양계장의 닭들. 1㎡ 공간에 평균 4.4마리가 살아간다. 이유진 기자




2021년 공동체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12월23일 산안마을에서 1.8㎞ 떨어진 산란계 농가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행정당국은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발생농가 인근 3㎞ 이내 농가 닭들도 예방적 살처분을 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산안마을 닭들은 음성이었다. 예방적 살처분은 구태의 방역 관습일 뿐, 운송수단이 발달한 21세기엔 주변 농장만 더 위험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명령에 거부했고 두 달을 버텼다. 화성시청, 세종시, 청와대, 국회로 다니면서 이 명령이 왜 비과학적인지 설명했다. 30대 마을 사람 4명이 밤낮으로 외국 자료를 뒤져서 공부했다.


김현주(61)씨는 “대립투쟁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마을의 원칙이었고, 대립을 접는 방식도 우리에게 맞게 하자고 결정했다”고 했다. 야마기시적 삶의 태도는 대립보다 호혜와 평등에 바탕을 뒀다. “거듭 연찬을 열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건강한 상태’로 싸울 수 있는 마지노선을 기다렸다가 명령 거부를 접었죠.”


2021년 2월19일, 결국 산안마을은 방역 당국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받아들였다. 3만7천 마리가 인도적 안락사 형식으로 질소가스를 이용해 살처분됐다. 130만 개의 달걀도 폐기됐다. 2년여에 걸쳐 완비해둔 자체 방역시스템은 쓸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김씨는 “공동체의 가장 큰 위기였지만 전국에서 진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았다. 시민단체, 동물단체, 시민 등. 연대 서명을 해준 이는 셀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3㎞ 농가 예방적 살처분 거리는 500m로 줄었다. 지금처럼 생산량을 회복하고 거래처를 확보하는 데 꼬박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21년 2월 산안마을 살처분 당시 모습. 산안마을 제공


변화 실험기… 세대 재생산이 숙제


야마기시즘 실현지에서는 특별강습연찬회(특강)가 열린다. 7박8일 동안 공동체에서 합숙하며 자기 자신과 사회, 자연의 이치를 깨닫도록 이끈다. 일생 동안 딱 한 번만 참가할 수 있다. ‘나의 판단이 절대적인 것인가’ ‘‘정말의 나’는 어떨까’ 등을 숙고하며 상대의 말을 듣고 검토하는 법을 익히는데, 특강을 받은 뒤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30년 화두를 잡았는데 이번에 깨쳤다”는 스님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1990년대 사회주의국가들의 몰락 이후 대안을 찾아 온 사람이 다수였다. 당시 공동체를 대표하는 문장은 ‘누더기와 맹물로 거저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오라’였고, 이 말에 감동받은 사람이 적잖았다. 자기 재산을 털어 넣어 식구가 되는 ‘참획’을 거친 사람들이 2000년대 초 50~60명으로 최대였다. 이후 점점 불편한 생활환경,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같은 문제로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산안마을에서 태어나 자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사는 김한결씨가 계사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지금은 성인 7쌍의 부부와 그 가족, 어린이 2명 등이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산안마을은 유기농 농업, 생협운동의 효시이자 상징이 됐고 화성시 안에서도 인정받는 농민 공동체가 됐다. 김현주씨는 “이제는 이름이 야마기시즘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젊은 사람들이 살 수 있고 함께 모여서 생각을 나누는 ‘연찬’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말했다. 무소유, 무아집,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지향만은 놓칠 수 없어 야마기시즘 영농법인 정관에 ‘무소유’라는 개념이 실현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의 실현지에 가서 생활하고 짝을 찾기도 한다. 김현주씨의 며느리 국적은 스위스이고 딸은 일본 가스가야마 실현지에 두 달 동안 가 있다. 세대가 바뀌면서 공동체도 실험기에 들어갔다. 사회와 공동체 사이의 공고한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볼 수도 있고, “지금이 변화의 골든 타임”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세대 재생산이다.


1세대 김병규-조정희씨의 딸로 거의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김현주씨는 “그동안 스펙터클해서 재미있었다. 온 세계가 나한테 왔다 간 느낌”이라고 했다. “운동성과 현실을 조화해낸다는 게 심리적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개인이 중시되는 흐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며 웃었다.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오랫동안 수배를 받고 1년간 수감 생활했던 ‘철의 전사’ 김현주씨는 요즘 정원을 가꾼다.


“기후위기, 환경위기가 있는데 꽃나무 심는 게 가장 손쉽고 급진적인 일 같아요. 중요한 건 유연한 사고, 그리고 연찬이에요.”
유토피아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


2024년 4월20일 오후 7시부터 시작한 연찬회.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유진 기자




저녁이 되자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연찬’이 열렸다. 사람들이 커다란 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야마기시즘 삶의 태도가 바로 이 의례에서 비롯한다. 연찬이란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실천한다는 뜻을 담았다. 이날 연찬의 주제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였다.


“저는 1986년 12월 고3 때 특강 받은 사람입니다.” “희망에, 이상사회에 대한 꿈, 이게 그때의 나였어요. 지금은 여기 있네요.” “38년간 여기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지금도 실현지를 생각하면 스마일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주부로서 정말 유기농 생산인지 확인하러 왔다가 특강을 받았어요.” “참획을 하고 내 옷장, 내 옷만 보이더니 어느 순간 이 안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실현지의 가치와 이념을 좇아 이곳으로 왔노라 밝혔다. 김현주씨의 아들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경묵씨는 “어렸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뜨거웠던 이상사회의 열망과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외형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그때 뿌린 씨앗은 지금도 남아 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 자리에 함께한 수십 명의 사람들 누구 하나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한마디씩 보탰다.


연찬회 주제를 붙이고 있다. 이날의 주제는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였다. 이유진 기자




강화에서 야마기시즘 실현지의 또 다른 실천을 도모하며 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는 유상용(60)씨는 “부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1992년 28살의 나이에 찾아가 2009년까지 17년을 살았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살아 있고, 여전히 지속된다. 고갱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문운동가인 연찬문화연구소 이남곡(80) 소장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어려운 세상이다. 나라 안팎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그럴수록 유토피아를 가슴에 품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여든인 지금 나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혁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세대 청년 농부 김한결씨는 말했다. “여기에서 태어나고 대부분의 삶이 여기서 본 세상입니다. 앞으로도 잘해나가고 싶습니다.”


김현주씨는 “(이 공동체에서) 너무 많은 일을 겪어 다시는 태어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크게 웃었다. 무소유, 평화, 평등 공동체의 40년은 전쟁터 같기도, 천국 같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산안마을에서 생산한 유정란. 산안마을 누리집




야마기시즘 실현지 표지판. 양계를 주로 하는 마을의 상징인 닭과 병아리가 그려져 있다. 이유진 기자




윤성열(맨 왼쪽)씨는 만 22살 때 2회 특강에 참여했다. 그는 일본 야마기시즘 실현지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1세대 중 한 명인 윤세식씨의 아들이다. 야마기시 실현지의 씨앗을 뿌린 조한규의 동생으로, 김병규와 결혼한 조정희(가운데), 김병규-조정희 부부의 딸 김현주씨. 이유진 기자

사유재산 금지한 이 마을, 어떻게 안 망했을까 - 오마이뉴스

사유재산 금지한 이 마을, 어떻게 안 망했을까 - 오마이뉴스

연재노준희의 조화로운 삶을 찾아서 | 6화
20.08.29 16:12ㅣ최종 업데이트 20.10.19 15:22
사유재산 금지한 이 마을, 어떻게 안 망했을까
36년간 무소유 실천해온 영농조합법인 '산안마을'
노준희(dooaium)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는 1984년부터 형성된 '산안마을'이 있다. 양계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공동체다. 공동주택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 공동농장에서 개인이 노동해 번 수익은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동의 소유로 되어 누구든 함께 쓸 수 있는 사회공동체이다.

처음 이 공동체를 시작할 땐 6가구가 돈을 모아 땅을 사서 양계장을 짓고 집도 짓고 했다. 하지만 누가 돈을 많이 냈고 적게 냈냐를 따지지 않고 무소유(無所有), 공용(共用), 공활(共活)의 원리에 동의하며 지금까지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이 공동체는 2대, 3대까지 이어지며 근 40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달라지는 세상에 발맞추어 추구하는 가치 논의도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그 꿈의 공동체 생활을 실천해 냈을까. 또 어떤 힘으로 그 결속을 유지하고 있을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개인의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게 자본주의 현실이 아니던가. 솟아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마을을 찾아갔다.

자연과 조회를 이루며 사는 야마기시즘 공동체


▲산안마을 공동숙소 현재 주민들이 지내는 공동숙소. 공동식당과 공동세탁실 등이 있고 생활은 각자 방에서 한다. 이 숙소는 많이 오래되어 곧 새 숙소로 이동할 예정이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이 마을을 이해하려면 먼저 야마기시즘(Yamagishism)을 알아야 한다. 야마기시즘은 1901년 일본 시가현에서 태어난 농민 야마기시 미요조가 주창한 공동체주의 운동이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일체 속의 일원으로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기조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원리를 무소유, 공동 사용, 공동생활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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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일본에서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기조로 하는 사회활동체 '행복회야마기시회'가 발족해 각지에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는 1965년 일본 가스야마 세계중앙실현지에서 연수를 받은 것이 시초가 됐다.

이때 연수받은 6명 중 윤세식씨와 조한규씨가 1966년 화성시 고목천에서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암만 무소유라고 해도 먹고 살기는 해야 하는데 경제활동 자체를 할 줄 몰랐다. 일단 돈이 없었다.

그런데 윤세식씨의 아들 윤성열씨가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에 참여했다가 '아! 이런 걸 하려고 하는구나'라고 깨닫고, 아버지가 타계한 후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24세 청년 시절 김병규씨와 두 번째로 실현지 조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실패. 이번엔 무소유 일체의 생활을 하기 위한 기술이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실패를 통해 부족한 게 무언지 알게 되자 정리가 됐고 3가지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야마기시즘을 실현하려는 사람만 모여야 한다. 두 번째는 무소유 생활을 할 사람이 아닌 사람은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는 들어오려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여기에 다 털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성열씨가 정한 목표는 지금도 마을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한다.

현재 위치로 옮겨 온 1984년, 드디어 총 6가구가 모여 산안마을을 꾸렸다. 이후 김병규씨는 타계했지만 그 가족은 지금까지 쭉 함께 살고 있으니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원하는 마을을 이룬 셈이다.

윤성열씨가 받은 특별강습연찬회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최초 산안마을을 꾸린 6가구 중 한 명이 김상보씨다. 그는 현재도 이 마을에 거주하며 야마기시즘 실현지 영농조합법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일체 속의 일원으로 조화를 이루며 무소유, 공동 사용, 공동생활이 정말 가능하다면 한번 실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었는데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 자금과 약간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시작했지요. 재산을 다 털어 넣을 만큼 해보고 싶었어요."

'종란양계방식'으로 생명력 가득한 유정란 생산

함께 사는 마을살이를 시작한 산안마을은 마을의 경제를 책임질 산업으로 '야마기시식 양계법'을 선택했다. 닭에게 싱싱한 청초를 먹이고 닭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사육방식으로 키운다는 것이 핵심이다.

자연계에는 태양, 공기, 흙과 물에 생존하는 모든 동식물의 순환작용이 반복하며 상호번영하고 있다. 야마기시식 양계법은 야마기시즘 원리에 따라 농경과 축산,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밀접한 관계를 맺은 '동식물 인간 일체'의 순환농법을 지향하는 야마기시즘 농법 중 하나이다.

사실 산안마을은 동물복지 유정란 생산 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산안마을이 생산한 달걀은 경기도 내 두레생협 등 친환경농산물 매장에서 판매하고 주문 직거래 등으로도 유통한다. 지난해 12월엔 산안마을이 생산한 유정란이 HACCP 통합인증을 획득했으며 그에 앞서 2012년에는 농장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을 취득해 안정된 고품질의 유정란을 생산 중이다.


▲계사 1 산안마을 닭이 지내는 계사. 멀리 보이는 초원이 닭들에게 먹일 풀을 키우는 초지다. 산안마을은 이 초지의 풀을 베어 풀김치를 만들고 닭들에게 먹인다. 그렇게 먹인 풀은 닭의 배설물로 나오고 다시 초지에 거름으로 쓰인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계사2 계사 지붕 모양을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있다. 저 구조는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구조로 닭들을 더욱 건강한 상태로 지내게 해준다. 풀김치를 먹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닭이라서 그런지 계사 주변에도 그리 심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김상보 대표는 산안마을의 특별한 양계방식을 말해주었다.

"산안마을은 동물복지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닭을 사육하는 환경이 친환경 동물복지였어요. 닭이 자라는 환경 자체를 건강하게 해주는 데 주력하죠. 우리가 키우는 닭에게는 들판의 풀을 발효시킨 풀김치를 사료와 섞어 먹여요. 자연의 양기를 먹고 자란 풀은 닭에게 아주 좋은 영양분이 되고 생명력을 전달해주지요. 이 먹이를 먹은 닭의 똥은 다시 들판의 거름이 되어 풀을 잘 자라게 해요. 이렇게 닭의 먹거리 순환은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순환농법인 거죠."

보통 케이지 사육으로 20만 수 이상 키울 공간이지만 산안마을은 5만 수를 적정 사육 개체 수로 정했다. 햇빛이 잘 드는 천장, 바람이 잘 통하는 계사 구조, 닭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한 사육장 안에서 닭이 식구로 아는 최대 마릿수는 120마리 이내이고 이 안에 수탉은 7마리가 적당해요. 우리는 병아리를 부화해 데려올 때도 부리를 자르지 않아요. 상대방을 쪼는 것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욕구불만일 때 공격하는 건데 자기가 평화롭게 안정되면 남 안 괴롭혀요. 또 유기농 현미를 먹여서 소화력을 길러줘요.

이렇게 키운 닭을 해부해보면 일반 닭의 내장에 비해 아주 길고 단단해요. 사육방식이 건강하잖아요? 몇 년 전 조류독감이 유행했을 때 인근 8km까지 번져서 걱정이 많았어요. 다행히 화성시가 우리 친환경 양계방법을 인정해줘서 우리만 폐사처리를 하지 않았지요. 우리 닭들은 단 한 마리도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어요. 단 달걀도 외부에 방출하지 말라고 해서 팔지도 못하고 40만여 개의 달걀을 깨트려야 했어요."


▲풀김치 별로 색달라 보일 것 없는 풀김치다. 그런데 풀을 발효한 풀김치를 먹은 닭은 더 건강하다. 김상보 대표는 실제로 풀김치를 먹은 닭은 몇 년 전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도 전혀 감염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산안마을 사람들은 마을살이의 경제력을 해결해주는 이 닭의 세계에서 조화가 무엇인지 배우고 있었다. 닭을 키우면서, 타인과 한솥밥을 먹고 살면서 서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깨쳐가고 있었다.

"닭의 세계에서는 같이 먹고 알 적게 낳는다고 나무라는 닭이 없어요. 알 잘 낳는 닭 쫓아가려고 무리하게 먹지도 않아요. 닭의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이 배울 점이 많아요. 차별은 사람이 관념적으로 지은 거더라고요. 원래 자연에선 그런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단지 조화만 있을 뿐.

닭들이 행복한 환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기, 물, 햇빛, 사료 그리고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이 키우냐에 따라 달라져요. 조화롭게 지내면 자연, 식물, 곤충, 동물 사람 다 평화롭게 살 수 있어요. 대부분 사람이 가로막지요."

체험 프로그램 '낙원촌', 함께해본 사람만 느끼는 특별함

김상보 대표의 양계 이야기를 들으며 산안마을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산안마을을 만족스럽게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들을 더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더 깊이 오래 공유해보지 않으면 알기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김 대표는 "이 마을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며 "특별강습연찬회에 참여해보면 더 이해하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강습연찬회는 일상생활을 떠나서 참가자 전원이 침식을 함께하며, 누구나가 같은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무엇이든 가볍게 서로 내놓고 진짜가 무엇인지 깨달아 가는 합숙 프로그램이다. 기숙사 비슷한 공간에서 자고 공동식사, 공공세탁실 사용 등 늘 함께 하는 게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아야 마음 편하게 같이 살 수 있는데, 그러려면 이론이든 실제든 먼저 익혀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있기 마련.

연찬회는 모두의 중지(衆知)를 모아서 쉽고 간단하게 펼쳐가는 지적인 토론방식으로 이뤄진다. 야마기시즘이 무엇인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특성상 18세 이상 평생에 한 번만 체험 가능하다.


▲낙원촌 참가자 단체 사진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낙원촌 프로그램. 현재 코로나19로 쉬고 있지만 방학마다 신청 접수가 금방 마감될 정도로 인기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 산안마을관련사진보기
또 어린이·청소년 대상 '낙원촌' 프로그램도 있다. 요즘 아이들이 주로 혼자 크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이 차가 많은 아이들과 지내는 경험을 해보기 쉽지 않다. 낙원촌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아이들이 같이 먹고 자고, 같이 놀고, 동물과 농작물과 숲을 접하면서 조화로운 삶을 몸으로 익히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이 안에서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기른다. 식사 준비, 밥 먹기, 설거지, 청소, 씻기, 세탁, 자기 물건 정리, 일기 쓰기 등 항상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귀찮기 쉬운 일들을 신나게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경험한다. 동물복지가 되어 있는 양계장 체험을 통해 나 외의 생물에 존중을 느끼고 땅 위에서 햇빛과 물을 먹고 자란 농산물을 수확하고 그 농산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사회성인 양보와 이해, 공감 등을 즐겁게 체험하는 것이다.

이 낙원촌을 경험한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 스태프로 다시 참여할 만큼 호응이 좋아서 평소에도 빨리 접수 마감이 되곤 했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쉬고 있다.

"우리 사는 방식으로 사회가 바뀌길"

사회는 진영과 상관없이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인 자본주의 경제가 확고해지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개인에게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개인의 소유 없이 공동 소유로 같이 먹고 같이 살겠다는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곳에 오겠다고 해도 다 이 공동체 생활에 적응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꿈꾸는 것이니까 뭔가 다르겠지 하고 들어왔다가도 일반사회에 대한 미련이 생기면 이곳에 머물기 어려워 떠난다.

산안마을은 누구나 공평한 사회를 추구한다. 일반사회에서 개인 중심 생활을 해왔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소유 공동체 생활을 하는 건 이상이 아닌 실제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이상을 그리고 들어온다면 현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매우 다른 세계가 될 수 있다. 기자 또한 산안마을 사람들처럼 살 자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무소유 공동체 생활을 지속하는 이 마을이 꿈의 마을로 비치는 것이다.


▲김상보 대표 현재 산안마을 야마기시즘 실현지 영농조합법인 대표이다. 1984년 6가구가 모여 산안마을을 처음 만들었을 때 함께 들어와 지금까지 자식과 손주 세대와 함께 살고 있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우리는 가구를 구분하지 않아요. 모두 한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돈지갑이 하나예요. 누가 벌든 쓰고 싶은 사람이 쓸 수 있는 만큼 의논해가며 자유롭게 사용하고 기록해요. 지갑이 하나라는 게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실제로 해보면 제안과 조정이라는 제도를 두기도 하며 쓸 비용을 기록하고 남으면 다시 넣고 영수증 첨부하고 그렇게 사용하니까 큰 문제가 없어요.

근데 무소유 공동체이지만 현행법은 무소유를 인정 안 해요. 그래서 농어촌특별법에 따라 우리 마을을 영농조합법인 화성시 제1호로 설립했어요. 법인은 법인대로 철저하게 결산하죠. 많이 벌었다고 많이 쓰거나 적게 벌었다고 적게 쓰거나 하게 하지 않아요. 장애인도 같이 살 수 있잖아요. 먹고 자고 아무 부담 없이 살 수 있어야 행복하죠."

한때 세상에 마을이 알려지자 이 마을에 들어와 살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추구하는 가치가 농업과 자신이 맞지 않아 떠나고 지금은 2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지내고 있다.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지만 처음 이 마을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꾸준히 사는 것 같았다.

김상보 대표의 아들 김한결씨와 이경묵씨도 이 마을에서 2대째로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그들은 최근 교육과 일반사회를 경험한, 창립자 세대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여기서 결혼해 아이도 낳아 키우는 김한결씨는 마을이 달라지는 점과 달라질 점을 말해주었다.

"공동숙소가 오래돼서 지금 숙소 건너편에 새 공동숙소를 짓고 닭들의 환경도 좋게 새 계사도 지을 예정이에요. 새 숙소가 완공되면 이전보다 좀 더 사적인 공간이 확보될 수 있어요. 지금도 잘 지내고 있지만 새 건물에선 우리 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옆 방에 전달되는 일이 줄어들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느슨해지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경묵씨는 마을의 장점이 어떻게 발달했는지 말해주었다.

"돈도 분배 안 하고 역할도 필요에 따라 유동적이고 일반사회처럼 끊어내지 않아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가 많다고 생각해요. 구성원 숫자는 몇 안 되는데 굉장히 많은 활동이 가능하죠. 손 많이 가는 양계장을 하면서 누군가 일이 있으면 서로 봐주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요.

갈등 해결 방식도 최근 성숙해졌어요. 생각, 감정, 표현 등을 상대방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고 화가 나도 상대방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으려고 애를 써요. 이런 것들이 좀 더 잘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면서 지역활동과 환경활동에 더 탄력을 받았지요."

실제로 마을 인근에서 지난해 재활용공장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주민들은 많은 걸 느꼈다. 김한결씨는 "쓰레기는 다 우리 인간이 만든 거고 그 안에 내 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 최고로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인데 미래를 생각해서 깨끗한 환경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대안을 찾아봤다"며 "달걀 포장 스티로폼 택배를 지난해부터 종이 재질로 케이스를 만들어 플라스틱을 최대한 쓰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묵씨는 사회변혁을 꿈꾸는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마을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도 열심이지만 제가 가장 크게 드는 마음은 우리 마을처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거예요. 이 공동체가 사회의 대안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마을처럼 사는 게 사회운동이었으면 좋겠어요."

산안마을 2세대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고 웃음이 넘쳤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또한 건전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산안마을이 지속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이 이곳에 사는 날까지는 산안마을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산안마을#야마기시즘 실현지#화성 동물복지 유정란#풀김치#무소유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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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산안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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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기자수정 2005-10-28 22:50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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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열심히 살면 된다고요? 나눌줄 모르는 삶은 죽은 삶이죠” 사경 헤맨 끝에 새 인생 정창덕 ‘사랑의 울타리’ 원장

“‘남에게 피해 안주고 내 삶 내가 열심히 살면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며, 나눌 줄 모르는 삶이야말로, 죽은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창덕 사랑의 울타리 원장은 아내와 어린 두 아들과 가족, 동료, 제자들을 비롯해 이름마저 밝히지 않은 채 선뜻 피를 기증한 수많은 이들의 헌신으로 백혈병을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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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삶을 깨어나게 한 것은 그동안 성공에 급급해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던 동생이었다. 그는 뒤늦게야 동생이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동생은 그런 처지에 있으면서도, 방 한칸을 얻어 병든 채 길에서 쓰러진 이름 모를 할머니를 돌보았고, 무정한 형의 병실을 1년반 동안 지켰다.

그가 여섯 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죽고 싶다며 울 때 동생은 “비록 잠시 몸이 아프긴 하지만 형이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인 줄 아느냐”고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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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장은 어려서 워낙 가난해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서울에 상경해 병따개공장에서 1년 동안 죽도록 일해 학비를 번 뒤 다시 고향인 전북 임실로 내려가 중학교에 진학했고, 대학도 진학하지 못한 채 취업해 뒤늦게 유학길에 올랐다.

정 원장은 최근 쓴 〈플라타너스의 희망〉(호미 펴냄)에서 “한을 풀기 위해 출세하려고 가족과 은인들까지 모른체하고, 아픈 사람을 위해 헌혈 한번 한 적이 없으니,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지금도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지 모르겠다”며, “다른 사람의 헌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백혈병이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귀중한 깨달음을 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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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교수일과 쉼터 원장 등 많은 일을 함께 하느라 바쁘게 지내면서도 노숙자 할아버지와 부자와 같은 정을 나누는 그는 “새 인생을 맛보고 있다”고 행복해했다. 조현 기자 (한겨레신문 2002년 5월 23일자) [인터뷰] 거저축제 준비해 온 주민 김현주씨아직은 실험 단계지만 `나누는 삶' 늘고있어 희망 "하루만이라도 '무소유'의 삶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돈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마음이 필요한 축제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작지만 소중한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2년간 중단됐던 `거저의 축제'를 지역단체들과 함께 다시 준비해온 산안마을 주민 김현주(38)씨는 "내심 걱정도 많이 했는데 축제 참가자들이 '풀어놓음'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힘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무소유를 삶의 철학으로 지키며 사는 산안마을은 86년 이래 해마다 동네 바깥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를 열어왔다. 처음엔 300명, 500명씩 찾아오던 사람들은 어느 해부터인가 1천명을 넘어서더니, 98년엔 2500명으로 불어났다.

"그때엔 풀어놓지 않고 공짜만 챙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함께 거저의 풍성함을 즐기자는 애초 뜻이 퇴색해버렸죠."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고심 끝에 99년부터 축제를 마을 안 행사로만 열기로 하면서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거저 축제는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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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다시 축제를 되살리자는 얘기들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지난해 방사선 멸균업체가 화성시 향남면 제약단지에 입주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주민의 방사선대책위원회 활동이 벌어지고 오산.화성 환경운동연합이 꾸려지면서, 지역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거저의 축제'를 부활시키는 데 지역 환경운동연합이 발벗고 나섰다.

산안마을은 무소유의 마음에 따라 자신들이 열어온 거저 축제를 선뜻 내놓고 주최자의 하나로 참가하기로 했다. 축제조차 풀어놓자는 산안마을 사람들의 뜻이다.

"아직은 실험적입니다. '풀어놓음의 즐거움'을 알고 축제를 풍성하게 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함께 나누는 삶에 눈을 뜨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건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5일 초록산 축제 때엔 환경운동연합이 애쓴 덕에 쓰레기가 두 포대만 나온 것도 좋은 징조다.

이날 초록산 축제장에서 '풀어놓는 가게'(사진)를 운영한 김씨는 사람들이 가게에 풀어놓은 옷가지, 구두, 장난감, 책,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과자와 음식 등을 보며 "모두 사람들이 풀어놓은 마음들"이라며 흐뭇해했다.산안마을은 26.27일 마을 주민과 야마기시 회원들만이 참여하는 마을 안 거저 축제를 열 예정이다. 화성/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신문 2001년 05월 11일)

3년만에 다시 열린 초록산 '거저 축제' 욕심만 빼고 다 거저 가져가세요 "이건 얼마예요?" "거저 가져가는 거예요." "그냥.그냥요?" "오늘은 돈이 필요없어요. '거저 축제'니까요."

지난 5일 큰길에서 한참이나 들어선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초록산 삼림욕장 공터에서 열린 `거저의 축제'에는 어른과 어린이 1천여명이 참여해 색다른 하루 체험을 했다. 초록산 중턱에는 '돈이 필요없는 행복한 마을' '풀어놓음으로써 풍성함을 맛본다' 등 글귀들이 이곳저곳에서 나부꼈다.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고 풀어놓는다면 풍요로움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무소유'의 사상을 담은 것들이다. 이날 축제는 '무소유 공동체'로 알려진 산안(야마기시) 마을이 1986년부터 해마다 열어오다가 최근에 중단했던 것을 오산.화성환경운동연합이 주관해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축제장 들머리에 자리잡은 '풀어놓는 가게'에는 "뭐 이런 일도 다 있나"라는 표정의 사람들이 몰려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거저'에 무언가 어색함을 벗지 못한 얼굴들이다.

아들 준호(11)와 혜인(8)이 손을 잡고 가족나들이를 왔다가 우연히 행사장에 들른 김경애(37)씨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면서 기뻐하고, 받으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오산에서 온 윤진순(38)씨는 "이 축제를 잘 몰라 풀어놓을 걸 가져오지 못했다"며 즉석에서 목에 두르고 있던 액세서리를 풀어놓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얕은 산 중턱 잔치마당엔 산안 마을 사람들이 연 '풀어놓는 가게' 그리고 삶은달걀.붕어빵 가게, 지역 임마누엘교회가 마련한 김밥과 주먹밥 가게, 대각사 청년회의 떡볶이 좌판, 벌안풍물굿패의 인절미 방 등 난장에다 널뛰기, 떡치기, 물로켓 쏘기 등 행사들이 어른과 어린이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가짐이나 막힘이 없으니 모두가 가져온 음식을 나누고 자신이 지닌 재주를 나누었다.

"펑!"

한참 달궈진 뻥튀기 기계가 오전 11시쯤 드디어 뻥튀기를 터뜨렸다. 아이들이 먼저 달려들고, 어른들이 뒤따라와 따끈하게 튀겨진 튀밥 맛을 보느라 북적였다. 뻥튀기 아저씨로 나선 산안 마을 주민 황형섭(43)씨는 "골고루 나눠 가져가시라"며 연방 싱글벙글하며 튀밥 나눠주기에 바빴다. 그는 "무소유의 흥겨움을 하루 잠깐이라도 느껴보는 것만으로 세상이 조금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붕어빵 기계는 산안 마을에 사는 일본인 청년 사토시(26)가 잡았다. 이날 가장 큰 인기는 바로 붕어빵이 누렸다. 그러다보니 전날 밀가루 9kg을 들여 준비한 반죽통은 오후 2시쯤 벌써 바닥을 박박 긁어대야 했다. 사토시는 일본 야마기시 마을에서 출판 일도 하고 소 키우는 일도 하다가 한국의 정감에 이끌려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다.

무소유에는 아이들이 제일 신났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고 배우며 크는 아이들은 공짜축제가 마냥 제 세상이다. 떡볶이 먹느라 입가가 새빨개진 권오건(12.오산 운암초등6)군은 "어린이날이라 어른들이 공짜로 먹을 걸 막 주는걸요"라며 입이 벌어졌고, 백승남(11.오산 원동초등5)군은 "세상에 이렇게 돈이라는 게 없다면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사람도 없어지나요?"라며 이날 체험을 신기해했다.

머쓱해진 건 축제날이라 해서 몰려들어 곳곳에 자리를 잡은 노점상들이었다. 한 아이스크림 노점상은 "돈이 필요없는 축제라는 얘기를 잘 모르고 왔는데, 돈 받고 물건 파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모임을 준비한 이들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공짜'만 챙긴 건 아니었다. 처음엔 공짜물건이라고 싹쓸이하지 않을까, 공짜족들의 북새통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날 많은 사람들은 대가 없는 '무소유'의 축제를 신선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들 내것 챙기기 바쁜 세상에 사심없이 거저 나눠주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주는 것 같다."(한상업.44) "이렇게 사는 세상 사람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다음번엔 나도 참여하고 싶다."(이정의.39)

86년 이래 98년까지 해마다 `거저의 축제'를 열어온 산안 마을의 주민 윤성렬(58)씨는 "이처럼 거저 축제가 대중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소유'의 삶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신문 2001년 05월 11일)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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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마을 40년,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소개하다 < 대학신문 2024

산안마을 40년,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소개하다 < 보도 < 취재 < 사회 < 기사본문 - 대학신문

산안마을 40년,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소개하다
기자명 조안나 기자
입력 2024.05.12 10:07


취재 | 산안마을의 야마기시즘이 우리에게 주는 통찰은

지난달 20일, 무소유를 실천하는 독특한 공동체로 이름을 알린 산안마을이 40주년을 맞이했다. 끊임없는 탐욕과 경쟁으로 점철된 현대사회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던 공동체는 어떻게 4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을까. 지난 6일(월) 산안마을을 방문한 기자는 10년째 산안마을의 정식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부부 권은선 씨(38)와 김한결 씨(36)를 만나 야마기시즘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살펴봤다.


▲ 산안마을의 공용 공간에 걸린 문패.
▲ 김한결 씨(왼쪽)와 권은선 씨(오른쪽).




무소유와 연찬의 공간, 산안마을 찾다

야마기시즘은 일본의 농민 야마기시 미요조가 1950년대 주창한 사회 운동으로,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무소유·공용·일체의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산안마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야마기시즘을 실천하는 마을이다. 김한결 씨는 산안마을에 대해 “변화하려 노력하는 개인들이 모여 ‘인류의 마지막 혁명’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공동체로, 이를 위해 무소유, 공용, 일체를 비롯한 야마기시즘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산안마을이 실천하고자 하는 야마기시즘의 핵심 가치는 무소유다. 이에 대해 권은선 씨는 “모든 대상을 소유가 아닌 ‘빌림’의 관점에서 이해하며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한결 씨는 “소유에 수반되는 집착은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도 드러나며, 이는 자신의 잣대를 타인에게 무조건 강요하고 편견을 갖도록 한다”라고 덧붙였다. 산안마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 나가며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다. 권 씨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활동은 산안마을의 구성원들이 분업해 맡고, 그 외에는 양계장을 공동 운영해 생활을 유지한다”라며 “양계장으로 벌어들인 수입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소유의 관점에서 생활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을 사용하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

산안마을은 이런 ‘무소유’를 필두로 하는 야마가시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연찬을 진행한다. 연찬은 ‘깊이 꿰뚫어 생각해 봄’이라는 뜻으로, 개인과 관계된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검토하는 사고 활동을 뜻한다. 권은선 씨는 “연찬은 스스로를 검토하면서, 자기 내면에 있는 대상에 대해 최대한 꾸밈없이 솔직해지는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산안마을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연찬회’를 열어 개인을 넘어 공동체 차원에서도 연찬을 실천하고 있다. 공동체에 대해 솔직하게 검토하기 위해 열리는 연찬회에서 구성원들은 나이나 역할과 상관없이 동등한 지위에서 소통한다. 권 씨는 “소통 방법으로서 연찬은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솔직해지고, 본질에 닿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행위다”라고 설명했다.




산안마을을 이끄는 공동체 속 개별성

처음부터 산안마을이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운영됐던 것은 아니다. 김한결 씨는 “사회 운동의 성격이 강하던 초창기에는 산안마을의 구성원이 약 50명 정도까지 팽창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라고 회상했다. 무소유를 중심으로 하는 산안마을의 구성원이 급격히 비대해지자 구성원들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고, 단기간에 마을을 나가는 구성원이 많아져 공동체가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김 씨는 “이때 산안마을은 개인적, 공동체적 연찬을 거듭하며 공동체 속 구성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적정의 인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현재의 산안마을에는 총 7가구가 살고 있으며, 그중 산안마을의 운영을 생업으로 삼고 야마기시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정식멤버 13명이 산안마을에서 야마기시즘의 정신을 주도하고 있다.

산안마을에서 야마기시즘의 실천은 개인의 개별성을 발견하는 데에 있어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산안마을 밖에서의 삶이 더 익숙했던 권은선 씨는 산안마을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삶과는 현저히 다른 산안마을에서 보낸 10년에 대해 그는 “초반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 생각의 관성을 직시하느라 힘들었지만, 혼자서 또는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연찬을 통해 더 유연하고 깊이 있게 나 자신과 주변을 사고할 수 있게 됐다. 권 씨는 또한 “이전에는 외부 사회의 잣대에 따라 내 성격과 생각을 취약하고 부족하다고 여겼다면, 이곳에서는 그런 내 모습들이 오히려 공동체 내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구성원들과 함께 연찬할 수 있었다”라며 산안마을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더욱 존중받을 수 있었음을 짚었다.




세상의 변주에 적응하는 열린 공동체

산안마을은 야마기시즘이라는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공동체 속 모든 개인이 공동체의 대의에 가려지지 않도록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열린 공동체를 지향한다. 권은선 씨는 “야마기시즘은 자신을 계속 점검하는 연찬을 요구하기에, 이를 실천하는 산안마을은 항상 겸손한 태도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우려는 개방적인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한결 씨는 “산안마을에서는 공동체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개개인의 고민과 생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짚었다.

이를 바탕으로 산안마을은 야마기시즘을 유연하게 해석하며 지속 가능한 야마기시즘 실현지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공동체 내부에서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무소유에 대한 이해를 확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한결 씨는 “과거에는 소유로부터 의식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분리되기 위해 의식주를 모두 공유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소유에 관해 새롭게 이해한 이후, 산안마을은 기존에 함께 사용하던 주거 시설과 옷가지들을 개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소유로 인한 집착은 경계해야 하지만, 오래된 사용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애착에 대해서는 존중하고 긍정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권은선 씨는 “언제든지 다시 연찬을 통해 변할 수 있다”라며, “공동체의 운영은 전적으로 그를 구성한 멤버들의 생각과 합의에 달려있다”라고 공동체의 지속적인 변화 가능성을 짚었다.

권은선 씨는 “산안마을이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져 있음에도 하나의 공동체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각기 다른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며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오해와 갈등이 가득한 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열린 공동체를 지속하며 살아가는 산안마을의 풍경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박선영 사진부장

leena1208@snu.ac.kr
조안나 기자 anna0913@snu.ac.kr

야마기시 공동체(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 )

야마기시 공동체(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 ), .. : 네이버블로그

야마기시 공동체(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 ), 유상용

“공동체 내의 무소유 실험, 세상으로 넓히고 싶다”
- 18년 보금자리 ‘산안마을’ 나온 유상용(농학 82) 회원을 만나다 -
임은경(농학95,선구자취재기자)

인터넷에서 '산안농장' 또는 '산안마을'을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물이 뜬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산안농장은 항생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고급 유정란 생산지로 입소문이 퍼진 곳이다. 이곳의 닭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서 '알 낳는 기계'로 혹사당하는 대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음껏 모이를 먹고 건강한 계란을 낳는다. 가격은 일반 계란보다 2~3배 비싸지만, 한번 먹어본 이들은 십 년, 이십 년, 평생 고객이 될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하지만 이 마을이 주목을 받는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마을 전체가 한 가족이 되어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독특한 생활 방식이 그것이다. 마을의 정식 명칭은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 일본인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1901~61)가 제창한 ‘무소유 공용 일체 사회’라는 이념을 실천하며 살
아가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산안마을의 남다른 삶의 방식은 각종 매체를 통해서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다. ‘모든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쓰일 뿐’이라는 생각 하에 각자 가진 것을 풀어 내놓아 모두 함께 사용
하는 마을. 때문에 ‘내 소유물’은 없지만 오히려 쓸 수 있는 물건은 더 풍성해지는 곳. 분업?협동을 통해 공동 생산한 계란을 팔아 마을을 함께 꾸려가고, 마을 내에서는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외
부로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공동 지갑에서 필요한 만큼 꺼내다 쓰는 곳. 그런데 많은 이들이 동경하고, 가서 살아보고 싶어 하는 이 ‘유토피아’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온 사람이 있다.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 동안 산안마을 주민이었던 유상용(농학 82) 회원. 그가 지난해 6월 가족과 함께 산안마을을 나온 것은 그곳의 이념을 세상에 더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
었다.
“산안마을에서의 삶은 행복했어요. 괴로운 고비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것이 싫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그곳이 내 자리였으니까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은 어느 정도 따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즐거운 일들도 많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람의 행복에 관한 가장 이상적인 것을 함께 했으니까요.”
한국에 야마기시즘이 소개된 것은 60년대 후반이고, 실제로 산안마을이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50여 곳에 퍼져있는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들은 종교에 근거하지 않은 공동체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야마기시즘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대척점에 서 있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할수록 성공한 것이라 여기는 물질 만능주의 세상. 그러나 야마기시즘은 욕심껏 움켜쥔 그 손을 놓고 무소유의 자유를 누리라고 가르친다.
“야마기시즘의 근본 사상은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 '일체'라고 보는 것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냥 생각해봐도, 내가 먹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고, 배설물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잖아요. 생태순환적인 사고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외부에서는 산안마을 사람들이 단지 생계 수단으로 닭을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양계는 야마기시가 사회 운동의 중
요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닭과 사람이 하나로 이어져서 닭에게도 행복한 양계를, 동시에 인간도 행복사회로 가는 길을 실현해보자는 것이었
죠.”
서양의 근대사회는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져있다고 유상용 회원은 말했다. 자연이건 작은 동식물이건 함부로 대하면 언젠가는 그 해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소유라는 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관념일 뿐입니다. 물건도, 식량도, 지구 자체도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일 뿐이죠. 야마기시즘에서는 무엇에건 소유가 있고, 분리되어 있고, 내 것 아니면 못 쓴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봅

==

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렇게 마음먹는 순간에 외로워지잖아요. 자본주의가 생산력이 발달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고통을 전제로 하고 있죠. 경쟁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것이 ‘너를 이겨야 하는’ 투쟁적인 경쟁이라서 문제인 것입니다.”
이 같은 생각을 세상에 가르친 야마기시는 일본이 한창 전쟁을 치르고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던 1901년에 태어났
다. 어린 시절 어느 마을 축제에 갔다가 복숭아를 먹고 무심코 씨를 던졌는데, 그 씨가 지나가던 어른에게 맞은
사건이 그에게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그 어른이 너무나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어린 야마기시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사람은 왜 화가 날까 하는 의문은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열아홉 살 때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인적 없는 오두막에 들어가 홀로 지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진리는 하나이며, 진리를 펼쳐가는 데는 구체적인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사랑, 석가모니의 자비……, 그동안 인류에게 주어진 가르침들은 모두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뿐이다. 하지만 야마기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에 도달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산안마을과 같은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 때문에 야마기시즘은 종교가 아니라 사회 운동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종교적으로 수련을 하는 대신, 야마기시는 연찬(硏鑽)이라는 방법을 택했어요. 연찬은 야마기시회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생각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토론을 하기보다 생각을 모아가는 것인데요, 연찬에서는 듣기가 가장 우선시되죠. 나랑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생각을 물끄러미 또는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가 얘기를 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예'하고 받아들여 보는 거죠. 그것을 ‘영위(영점에 위치한다)’라고 표현하는데요. 영어로는 제로 베이스(Zero base)가 되겠네요.”
내 생각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제로가 아니다. 내 생각이 있더라도 일단 내려놓고, 나랑 생각이 다른 상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 그 생각을 가져다놓고 정말은 무엇인가를 탐구해가는 과정이 연찬이다. 야마기시는 이것을 '자기를 풀어놓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를 위해 몇 가지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이다.
7박 8일간, 일 년에 네 차례 정도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외부인이 참여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7박 8일을 꼬박 함께 생활하면서, 끊임없는 연찬을 통해 모든 것을 단정하고 고정하는 관념을 깨고 ‘정말의
것’(진짜)을 서로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눈앞에 있는 컵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컵과 정말 같은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요.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눈에 비친 상이지 그것의 실체가 아니지요. 사람은 무엇을 보면 그것을 고정하려는 속성이 있어요. 내가 눈을 문지르면 사물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흔들리는 것뿐이잖아요. 자신의 생각이 곧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데서 벗어나면, 내 생각도 틀릴 수 있고 상대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것
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대화를 할 때 내 생각이 옳다고 단정하고 출발하지 않게 되지요. 틀릴 수 있으니까 좀 더 개선하고 나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요.”
연찬회에서는 '화', 마음의 자유, 소유, 참된 행복 등의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후반부로 가면 ‘진실 사
회’(야마기시가 명명한 것, 진리가 실제로 현현되는 사회)를 어떻게 전개해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한다. 이밖에 보름짜리 프로그램인 ‘연찬학교’도 있다. 회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신청자가 많아 인기가 좋은 프로그램들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누가 배워가서 다른 데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산안농장에서만 하도록 했기 때문에
널리 확산되기엔 한계가 있었다. 유상용 회원의 고민이 시작된 것도 이 같은 문제와 맞물린다. 산안마을의 울타리 안에서만 실현되는 이상사회는 답답했다. 야마기시즘은 ‘무고정 전진’이라고 하는데, 어느 지점에서는 자꾸 고정되는 것이 보였다. 더구나 그즈음 새로운 청년 세대가 들어오지 않아 공동체가 노쇠하고 축소되어가는 것도 문제였다.
“산안농장과 연계되어서 다음 세대를 배출할 수 있는 청년 센터를 만들자고 건의를 했지요. 그런데 지금 실현지의 형태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일 년 이상 논의(연찬)를 했는데, 결국 생각의 다름이 해소가 안 되더군요. 그분들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산안마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저는 본질을 지키면서도 더 유연
한 방식의 조직 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결국 '해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단독으로 나왔습니다. 앞으로 저의 활동을 통해 성과들이 나오면 다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연찬을 통해서도 생각이 접근되지 않은 부분은 안타깝지요.”
내가 가던 길이 애초의 생각과 다르거나, 다소 옳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현재의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
고 새 길을 찾아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고,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상용 회원이 살아온 삶은 언제나 많지 않은 사람들이 가는 그 길이었다.
“대학 때는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저도 학생 운동을 했지요. 몇몇 선배들과 함께 농대에 처음 탈춤반을 결성했는데 제가 1세대에요. 제적당하고, 군대에 갔다 오니까 89년이었는데 6월 항쟁을 겪은 후여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있더군요. 민주화 운동 전력이 있는 학생들을 복학시켜주었고, 저도 졸업을 했어요. 그때 함께 운동했던 선후배들은 운동의 다양성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이전에는 정치 민주화가 최우선 과제였지만, 이제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사회 만들기
==
다들 노동 운동, 농민 운동, 문화 운동 등으로 흩어지고, 취직을 해서 직장을 가지기도 하고……. 각자 자기의 자
리에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할을 찾아 떠났어요.
저는 농업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농업 문제에서 진로를 찾으려는 생각에서 농대 내 동아리 우리농업연구회(농연)를 찾아가 ‘바른농업연구회’라는
소모임 활동도 했지요. 투쟁보다는 사이좋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고, 사이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곧 사회운동이었으면 좋겠다고 생
각했어요. 간디가 했던 것처럼, 사회 문제에 대해 투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레 한살림, 카톨릭의 생명공동체 운동이나 도농 직거래 운동에 관심이 갔어요. 유기농, 자연농을 하는 공동체를 하면서 도시와 직거래를 통해 도시 사람들이 농장에 와서 견학도 할 수 있는 그
런 모델을 구상했지요. 그즈음 나온 한살림 선언(1989.10.)의 영향도 컸어요.”
유상용 회원이 애초에 가졌던 구상은 한국의 전통 사상을 바탕으로 수행과 삶과 운동이 하나로 통일된 공동체였
다. 당시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원불교. 원불교는 신앙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실천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공부와 사회가 둘이 아니라는 원불교의 이념은 매력적이었다. 졸업 후에 원불교 내에서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모임을 가졌다. 그중에는 원불교 교무도 있었다. 뜻을 같이 하는 3 세대 십여 명이 지리산 문수리에 들어갔다. 구례 토지면 버스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산속이라서 기계를 쓸 수가 없어요. 소로 쟁기 갈아서 쌀농사를 지었죠.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몰라.(웃음) 죽염 사업도 하고, 나물 채취하고, 고로쇠 물도
받아다 팔고 그랬어요. 장차는 한봉을 해볼까 하는 계획도 있었죠. 그렇게 열심히 몇 달을 했는데, 막상 같이 살면서 각자 바라는 점들을 꺼내놓고 이야기해보니까 너무 다른 거예
요. 처음에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내놓고 보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더군요. 사람의 생각을 모으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규모는 작고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데 꿈이 너무 종합적이니까 따라가지 못한 것도 있었고요.”
2월에 시작한 지리산 공동체는 그해 7월에 끝이 났다. 실패의 순간 느낀 절망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원불교 사상과 공동체의 실천 방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동체를 시작하자 교단에서 교무들의 참가를
막아 나서기도 했다.
“절벽에 다다른 느낌? 그때 처음으로 길이 보이지 않더군요. 한 달 정도는 종교도 없는데 기도를 했어요.”
그렇다고 뜻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유상용 회원의 ‘길 찾기’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라즈니쉬의 제자들 모임에서 시인 류시화 씨도 만나고, 해외의 공동체로 눈을 돌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찾은 것이 '성스러운 빛의 전령사'라는 이름의 에미서리(emissaries) 공동체였다. 미국 콜로라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에미서리는 유상용 회원이 그때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이미 실현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를 결정적으로 매료시킨 것은 '진리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이 곳 하늘이다.'라는 한 문장이었다. 혈혈단신 혼자였지만, 망설이지 않고 떠났다.
“90년 8월에 갔다가 92년 2월에 돌아왔어요. 거기서의 삶도 좋았고, 앞으로 얼마든지 계속 교류할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곳은 야마기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에미서리에 있는 동안 한국에 잠깐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조카를 데리고 어린이 캠프에 참석하러 산안마을에 갔
다가 받은 깊은 인상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에미서리 공동체와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처음에 그에게 에미서리를 소개했던 한국인 캐나다 교포가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에미서리 공동체를 시작해, 가끔
서로 연락이 오간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찾은 산안마을에서 유상용 회원이 바라던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앞서
얘기한 대로다. 하지만 공동체도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흐름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
각이다.
“일본 야마기시 실현지에서도 지난 2000년에 저랑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독립한 사람들이 있어요.
50명 정도가 나와서 혼슈 미에현의 스즈카라는 작은 도시에 정착을 했지요. 조직에 집착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저와 같아요. 그분들도 나와서 처음에는 공동체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2008년에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KNI(켄산(‘연찬’의 일본식 발음) 네트워크 인터내셔널)'가 정식
으로 출범했지요.”
스즈카는 새 길을 찾아 나선 유상용 회원의 중요한 교류 대상이다. 다음 달에도 벌써 방문 계획이 잡혀 있고, 강화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세대의 자녀들이 곧 스즈카로 가서 교
류 활동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사업은 스스로 길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위해 유상용 회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단은 역시 ‘연찬’이다. 그는 이것이 보수와 진보,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대립하고 다투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
다고 생각한다.

“산안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했던 무소유 실험을 저는 좀 더 세상으로 넓히고 싶어요. 한 달에 한번 정도 지역 사람들이나 지인들, 관심 있는 분들과 연찬회를 열 생각이에요. 주제는 여러 가지를 다룰 수 있겠죠. 이곳 강화 지역에 농대 선배도 있고, 제가 동아리 탈반 활동할 때 만났던 친구도 있고, 기존에 시민운동을 했던
분들도 있어요. 요청이 있으면 다른 단체에 가서 연찬 진행을 할 수도 있겠죠. 연찬의 사고방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도 하고요.”
그의 구상은 이미 하나씩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강화에서 ‘마리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밝은마을’ 관계자들과의 연찬회가
있었다. 스즈카 사람들도 와서 함께 한 자리였다. 이번 1월에는 ‘한살림’ 전주?익산 시민운동가들과 강화지역 활동가들이 모여 ‘시민운동 간의 소통 및 소통 가
능한 사회 만들기’를 주제로 4박5일간 연찬회를 열었다.
이번 연찬회는 “무엇이든 주제가 있으면 다 같이 제로 베이스에서 함께 생각해보는 연찬적 사고방식을 연습해본
것”이라고 유상용 회원은 말했다. 우리 사회는 진보든 보수든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얕다. 상대를 적으로만 생각하고, 쉽게 선을 그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사실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에 적으로
보일 뿐이다. 상대는 이렇다고 단정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좀 더 상대의 말을 들어보고 탐구해보고, 질적으로 서로 성숙해질 필
요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연찬회에서 나왔다. 연찬은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거리도 가능할 수 있도록 좁혀준다. 연찬회에서는 이밖에도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보수의 기득권 문제만이 아니라 진보의 기득권 문제는 없는가? 또 내 안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은 없
는가? 많은 것을 돌아본 시간이었다.

“이번 연찬회에는 충북에 계시는 한살림 조희부 선생님하고 전에 산안마을에 같이 살았던 전북 장수의 이남곡 선
생님도 참석하셨어요. 이남곡 선생님은 남민전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셨던 분이죠. 그 연세에 그 정도 유연성을 가진 분들은 한국 사회에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이 선생님은 이전부터 진보? 보수를 넘어 다 같이 함께 연찬해가자는 뜻이 있으셨어요. 연찬을 야마기시즘의 독점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할 수 있도록 보편화하자는 것이죠.”
유상용 회원은 삼 년 전만 해도 강화도에 아무 연고가 없었다. 야마기시즘을 세상으로 넓히기 위해 적당한 곳에 청년 센터 같은 것을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 그는 자연
과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삼 년 전에 강화를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강화도는 삼국시대만 해도 두 개의 작은 섬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후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바다를 메워 간척을 해서 지금의 섬이 된 것이다. 생각해볼수록 강화는 특별한 곳이었다. 외침이 있으면 왕실은 이곳으로 피난을 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에 맞서 항전하면서 39년간이나 수도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바다로 나가는 관문인 동시에 외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전략적 요지. 단군이 마니산에서 천제를 올린 것은 그만큼 이곳이 평범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니산에서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도 매해 천제가 올려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화만한 곳이 없더군요. 인천공항도 멀지 않고요. 그때는 아시아 지역 청년들이 와서 교류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국제적인 청년 센터를 구상했었으니까요. 산안마을 다른 분들과 제 생각이 달라서 결국 무산됐지만.”
그는 지난해 6월부터 강화도의 한 펜션을 구입해 운영하고 있다.
18년간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이제 ‘소유’의 세상에 나와 펜션 사장님이 된 것이다. 산안마을에서 지원해준 돈으로는 부족해 빚도 내고 어렵사리 시작하게 됐다. 일반인들에게 대여도 하지만,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필요한 활동의 베이스캠프로 쓸 생각이다. 작년 12월에는 해외 각지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국제 워크캠프 기구'의 자원봉사자 캠프가 1박2일 동안 이곳
에서 열렸다.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100일간 열린 평화 순례 ‘워크 나인’도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출발했다. 일본의 평화운동가 마사키 다카시씨가 주도하고 한국의 도법스님 등이 참가해 100일 동안 한국 땅 구석구석을 누
빈 ‘워크 나인’은 많은 언론과 시민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워크 나인이라는 이름은 ‘걷다’라는 뜻의 ‘walk’와 일본 평화헌법 9조의 ‘9’를 합성해 만든 것이다.
“참가자들이 저희 집에서 길게는 4박5일간 준비모임을 가졌어요. 첫날 마니산 등반이 첫 일정이었지요. 부천, 서울, 동해안, 부산을 거쳐서 남해안을 돌아 올라와서 임진각에서 마쳤어요. 도중에 한국의 아픔이 있는 곳곳을 들렀어요. 나눔의 집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한다거나, 광주 민주화 묘소를 참배하는 활동을 했지요. 한일간 고대사에 대해 공부도 하고. 지금의 현대 문명은 서양이 일으켰지만 편리함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
죠. 그 해결책은 서양 문명이 아니라 동양의 사상적 전통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마사키씨의 생각이에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우선 일본, 한국, 중국이 동아시아 문명을 회복하고, 그것을 통해서 세계에 메시지를 보내자는 것이죠. 모든 것을 분리된 것으로 보는 서양 문명에 반해, 사물을 일체라고 보고,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눈이 동아시
아 전통에 있어요. 서양만 바라보지 말고 여기서부터 다툼 없는 평화, 아시아발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던지자는 운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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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카 지역과도 더 활발한 교류를 할 생각이다. 머지않아 강화도 출신의 대학생 4명이 보름 일정으로 스즈카로 떠난다. 강화도에서 '콩 세알'이라는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동문, 목사님 등 강화 지역에서 시민운동
을 했던 세대의 자녀들이다. 대안학교를 나왔는데도 대안사회가 없어 기존 사회로 편입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던 청년들이 스스로 그런 사
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서 보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부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우연히 나왔다. 유상용 회원 자신도 다음 달부터 스즈카에서 하는 새로운 방식의 연찬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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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꿀꾸는 것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보다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즐겁게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어요.
관심 있는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함께 대화도 하고, 기회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야마기시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계속 의문을 던지고 죽을 때까지 끝없는 실험을 거듭했다 고 한다.
부부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일부러 아내를 화나게 만드는 등 실험을 계속했는데, 나중에는 부인이 화가 치밀어 그의 머 리에 뜨거운 물을 끼얹은 적이 있었을 정도라고, 살아생전에 '나를 위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농장 한쪽에 비석도 없는 작은 무덤으로만 남았다는 야마기시.
가슴 속 질문에 답하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피하지 않는 유상용 회원의 모습이 어떤지 그를 맡았다.
펜션 우리꽃자리: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삼흥리 888-8
www.cochari.com
Tel. 032-937-3912
대중교통:
지하철 신촌역 7번 출구로 나가 직진 200m 지점에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10-15분 간격 운행, 강화 터미널에서 펜션 근처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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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문의 길]무소유 일체를 꿈꾸다 - 주간경향

[유성문의 길]무소유 일체를 꿈꾸다 - 주간경향

무소유 일체를 꿈꾸다


입력 2007.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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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 마을 사람들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아 즐거운 마을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끊임없이 비하하고 좌절할 뿐이면서도, 한편으로 자기와는 다른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동경을 품는 것은 분명 모순적 태도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자기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유토피아의 본뜻은 ‘그 어디에도 없는’이다)을 버릴 수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공동체운동이 여럿 있지만, 아예 ‘돈이 필요 없는… 마을’이라니, 이번 설에도 조카에게 뜯길 세뱃돈조차 없어 고민하는 사람과, 가진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는 사람 사이에 잠시 희비가 교차한다.


‘살인의 추억’이 스며 있는 화성의 낮은 구릉들을 지나 향남면 구문천리에 닿으면, 멀리 남양만이 바라보이는 언덕 아래, 바로 ‘돈이 필요 없는… 마을’이 나온다. 5만여 평의 부지 위에 대형 계사(닭장)와 공동숙소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 출입구에는 잔설보다 더 하얀 조류독감 방제용 분말이 잔뜩 깔려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마을에도 디스토피아의 현실은 어김없는 공포로 엄습한다. 산안(山岸)마을. 시적으로 풀어내자면 ‘산에 언덕에’라는 제법 그럴싸한 이름이지만, 알고 보면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 1901~1961)란 일본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 뿐이며, 그의 실천적 사상을 실현하는 ‘야마기시즘사회 경향(京鄕, 경기도 향남의 약자이기도 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며 찾아가고자 하는 모두의 고향을 말하기도 한다)실현지’가 바로 이곳 산안마을(031-353-3920)이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돕는 야마기시 농법




야마기시는 누구인가. 어린시절 자기가 무심코 던진 물건에 머리를 맞은 한 어른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 ‘사람은 왜 화가 나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그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심취하는 일면 ‘화를 내지 않는’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때는 대립과 분열, 전쟁과 모순의 시대였고, 그는 공안경찰을 피해 한 농가의 양계장에 숨어들었다가 닭들의 세상에서 공동체의 새로운 이상모델을 발견한다. 다행히 닭들은 사람을 상대로는 어려웠던 공동체실험의 훌륭한 대상이 되어 주었고, 그때부터 양계는 야마기시 농법의 근본이 되었다.


야마기시 농법을 이해하려면 산안마을 농장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산안마을 양계장에서 닭들은 사람보다 ‘먼저’ 행복하다. 이곳 닭들은 ‘케이지’라 불리는 계단식 닭장의 압살적 구조에서 자라는 닭들과는 달리 널찍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활한다(농사로 치면 ‘석 섬 거둘 논에서 두 섬 키우는’ 원리). 계사는 가장 양호한 채광과 통풍이 가능하게 설계되었고, 바닥에는 미리 발효시킨 계분을 깔아 새로운 분뇨가 거기 섞이면 같이 발효되어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잘 발효된 분뇨는 유기농 재배지로 옮겨져 최상의 거름이 되고, 그 작물 중 일부는 다시 닭들의 모이로 돌아온다. 알을 낳는 암탉 사이사이 수탉이 섞여 있어 건강한 유정란 생산을 돕는 한편, 암컷들만 생활할 때 생길 수 있는 사회적 역작용(예를 들면, 일부 암컷의 수컷화에 따른 질서의 교란)을 방지한다. 병아리들의 모이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가능하면 모든 모이는 몸집만을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장을 튼튼히 하는 것들이다(다시 농사법으로 말하면 ‘뿌리에 비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비료 쪽으로 뿌리가 자라도록 유도하는’ 원리). 이 모든 것이 닭들이 그렇게 ‘원한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래서 산안마을 양계장의 모토는 ‘닭들이 행복할 때까지’다. 여기서 사람은 단지 닭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만 대신한다.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자유로운 사회


야마기시 농법의 핵심은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실현이 바로 유축순환농법이다. ‘야마기시스트’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무소유 공동체(그들은 ‘일체’라 한다)를 추구한다. 산안마을에서는 공동노동을 통한 수입은 있지만 소유는 없다. 공동소유도 아니고 분배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벌기만 할 뿐 쓰지는 않는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소비는 불가피하므로 쓰기는 하되, ‘한 지갑’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꺼내다 쓴다. 그리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때 자유로울 수 있고, 그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무소유는 차라리 쉬울 수 있다. 왜, 단지 소유하지 않으면 되니까. 그러나 소비에 이르면 필요의 정도에 따라 차별이 생길 수 있으므로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그 문제의 해결책으로 사람의 자율성에 대한 신뢰를 든다. 그러나 솔직히 나 같은 속인은 그 말을 믿기 어렵다.


다만 이해의 관점에서 보자면, 무소유의 본질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끊임없이 소비지향을 제어할 때만 가능한 것이고, 역으로 소비지향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할 것이다. 얼핏 이해하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힘들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외부세계와 단절한 채 지내지도 않는다. 그들 스스로도 불변의 원칙이란 있을 수 없고, 더 나은 해답을 찾아 부단하게 탐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연찬(硏鑽, 문제의 본질을 찾아가는 토론과 강습)’을 통한 ‘무고정전진(無固定前進)’이다.



고향은 아직도 그리운 공동체인가


현재 산안마을의 가족 수는 8세대(그들은 그냥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32명(성인 18명, 아이 14명). 1965년 일군의 사람들이 이 땅에 야마기시즘을 처음 소개한 이래, 초기 실패기를 거쳐 마침내 1984년 ‘맹물과 누더기’의 정신으로 화성에 정착, 한때 50명이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진해소’와 교류이동(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50여 곳에 야마기시즘 실현지가 있고, 그들은 서로 교류하며 때로는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이동 정착하기도 한다)으로 현재의 구성원을 유지하고 있다. 전직 회사원, 교사, 사회운동가, 농부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구성원들은 양계부, 채소부, 가공부, 공급부, 생활부, 학육부 등으로 나뉘어 일을 하고, ‘한 솥, 한 지갑’을 쓰는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산안마을에는 유독 미인이 많다. 소유의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아름다워지는 것인가. 소유는 미인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무소유는 미인이 ‘되게’ 한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이여. 북새통이 되어버린 길바닥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차 안에 갇혀 있다면, 핑계 김에 잠시 생각에 잠겨보라. 지금 당신이 찾아가고 있는 곳이 진정 그리운 고향인가. 거기 ‘내 것, 네 것’ 없이 살아가던 이웃이 있고, 사랑으로 보듬어줄 가족이 있는 그런 곳인가.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패거리로 나뉘어 갈가리 찢어진 아픈 상처를 치유해 줄 자연이 있는 고향마을인가. 혹여 어떤 부채의식이나 도피의식으로 마음 무거운 곳은 아닌지. 그 물음에 대답할 때, 비로소 막힌 길을 뚫고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유성문 객원기자 rotack@lycos.com>

무소유 산안마을의 실험은 성공할까?

무소유 산안마을의 실험은 성공할까?

무소유 산안마을의 실험은 성공할까?
홍용덕기자수정 2019-10-19 11:23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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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산안마을에 AI 예방적 살처분 전격 보류
주민들 “관행적 살처분은 예방책 아니다” 반발

29일 경기도의 예방적 살처분에 항의해 무소유 마을로 알려진 화성시 향남읍 산안마을 주민들이 농장 입구에서 관행적인 예방적 살처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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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할 때마다 획일적으로 반복되는 예방적 살처분은 효과적인 대책일까? ‘무소유 마을’로 알려진 경기도 화성시 산안마을이 주변 농가의 AI 발생으로 살처분 지역에 포함됐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일단 살처분이 보류됐다. 이례적인 산안마을의 ‘실험’이 주목된다.

29일 오후 2시 경기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 산안마을 마을회관에서 김성식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장 등 경기도와 화성시 관계자들이 긴급히 모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포천에 이어 화성·평택으로 확산 중인 조류 인플루엔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3만여마리의 산란계 농장인 산안마을은 최근 화성시 전체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한 조류인플루엔자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 19일 팔탄읍 한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뒤 이뤄진 조사였다. 그러나 27일 산안마을에서 800여m 떨어진 평택시 청북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진되자 예방적 살처분 대상 지역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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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는 평택의 확진 농장 주변 500m 이내 4개 산란계 농장 43만마리를 살처분한데 이어, 이날 확진 농장에서 3㎞ 안에 있는 화성의 농장들에 대해서도 예방적 살처분에 나섰다. 산안마을도 대상이 된 4곳 중 1곳이었다. 김 과장은 “현재 조류인플루엔자는 잠정적으로 설치류 등 야생동물에 의한 확산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고, 설치류의 행동 반경이 3㎞로여서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산안마을 윤성열 전 대표는 “이곳에서 키운 닭들은 34년째 질병에 걸린 적도 없고, 공장식이 아니라 3만여평에 풀어서 키우는 방사식이다. 닭의 내장 길이가 일반 닭보다 1.5배 더 길어 면역력도 강하다.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리지도 않은 방사 닭들을 살처분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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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는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자 △계란 유통 금지 △병아리 입출입 금지 △폐사 닭에 대한 검사 후 처리 등 조건으로 이날 산안마을 닭들에 대한 살처분을 하지 않았다. 나머지 3곳 농장만 농장주들의 동의 아래 조처하기로 했다.

산안마을 외에도 예방적 살처분을 놓고 정부와 농민 간에 대립한 경우는 있었다. 지난해 3월 전북 익산시에서는 참사랑 동물복지농장주가 대규모 예방적 살처분에 반발해 살처분을 거부하고 현재 재판 중이다. 신윤식 구문천리 이장은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속에서도 산안마을에서 닭들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다면 앞으로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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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