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1

협동조합과 괴산지역 공동체운동 | 김소남 2023

협동조합과 괴산지역 공동체운동 | 김소남 | 알라딘


협동조합과 괴산지역 공동체운동
김소남 (지은이)한살림(도서출판)2023







































미리보기




책소개
괴산지역 협동조합과 공동체운동을 다룬 이 책은 1960년대 충북지역 신협운동의 흐름 속에서 괴산가축사양조합·충북육우개발협회·충북농촌개발회를 통해 민간 주도의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 농민운동 등의 전개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1980년대 한살림운동의 참여를 통해 충북지역에서 생명운동으로의 전환과 한국생협운동의 활성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1990년대 괴산미생물연구회에 이어 흙살림연구모임·흙살림연구소를 꾸리고 학계와 현장농민, 그리고 한살림과의 연계 속에서 ‘유기농업기술운동’을 확산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목차


책을 펴내며
괴산지역 협동조합운동사 연표
화보
여는 글

1부 - 괴산지역 사회운동의 전통과 협동조합운동의 개시
1장 - 일제하~1950년대 괴산지역 사회운동
1) 일제하 괴산지역 사회운동과 소수협동조합
2) 해방 후~1950년대 괴산지역 사회운동과 한국전쟁
2장 - 1960년대 메리놀외방선교회의 신협운동
1) 메리놀외방선교회와 농촌개발운동
2) 충북지구평의회의 설치와 신협운동

2부 - 괴산가축사양협동조합의 창립과 신협운동
1장 장제남 신부와 괴산가축사양협동조합
2장 목장 설립과 축산사업
3장 가축신협 설립과 운영

3부 - 충북육우개발협회의 출범과 부락개발운동
1장 괴산지역 새마을운동과 관제협동조합
2장 충북육우개발협회의 출범과 부락개발10개년계획
1) 충북육우개발협회 출범
2) 부락개발10개년계획과 세베모
3장 농민교육원의 설립과 부락개발운동
1) 농민교육원과 교육사업
2) 자금 지원과 순회 상담
3) 부락개발사업
4) 농촌의료사업

4부 - 충북육우개발협회의 농촌신협운동
1장 농촌신협의 설립과 운영
2장 농촌신협의 축산반과 구판사업
3장 농촌신협과 가톨릭농민회운동

5부 - 충북농촌개발회의 협동조합운동과 생명운동
1장 충북농촌개발회와 괴산지역협의회
1) 충북농촌개발회
2) 괴산지역협의회와 지역개발센터
2장 충북농촌개발회의 협동조합운동과 자주농민회운동
1) 농촌신협의 설립과 면 단위 합병
2) 괴산소비조합과 음성소비조합
3) 축산협동반의 설립과 운영
4) 가톨릭농민회운동와 자주농민회운동
3장 눈비산공동체의 창설과 지역공동체운동
4장 괴산미생물연구회와 흙살림운동

맺는 글
참고문헌
구술사료
인명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35 1970년대 후반 돈 딜츠·김현식·조희부 등이 네덜란드 세베모 외원자금에 기반한 부락개발10개년계획을 수립하고 괴산·음성지역의 20여 개 농촌부락에서 농민 주도의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 가농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민간 주도 협동운동의 모델로 떠오른 지역이었다.
P. 47 일제하 사회경제적 현실과 사회운동에 기반해 괴산지역에서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이 전개됐다. 1920년대 초 괴산지역에 관제 금융협동조합 3개소가 운영되는 상황에서 조선인에 의해 설립된 괴산식산조합이 운영자금 2만원으로 저리로 자금을 대여해줬다. 괴산지역에 본격적으로 민간 주도 협동조합이 설립된 것은 1927년 8월 괴산청년회가 혁신총회를 개최하면서 방향 전환을 전개하고 신간회 괴산지부가 결성되면서 양 단체에 의해 민중의 생존권수호운동이 추진되면서 나타났다. 접기
P. 100 1970년대 후반 충북육우개발협회는 농민교육원에서 충북육우개발협회 관할 농촌지역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육우 사육기술을 훈련시켜 나갔다. 또한 기초개발교육, 종합개발교육, 농민지도자교육, 기초개발교육, 일반개발교육, 신협지도자교육, 신협실무자교육, 신협회계교육 등 제반 교육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괴산·음성지역에서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갔다. 접기
P. 134 1970년대 후반 충북육우개발협회의 부락개발10개년계획은 농민교육원을 통한 교육사업 추진과 농촌신협 설립·운영을 중심으로 한 부락개발사업 전개, 충북육우개발협회 본부를 괴산에서 음성지역으로 옮기는 등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의 지역적 확대, 관할 목장의 중앙목장으로의 통합, 괴산 감물개발센터와 음성 중동개발센터의 설치·운용 등으로 정리돼 갔다. 접기
P. 230 충북육우개발협회 관할 농촌부락 공동구매사업과 구판장 운영은 대체적으로 축산반 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지는 못했다. 각 농촌부락마다 일시적 공동구매사업 추진과 부락 단위 구판장 운영 규모가 작으면서 판매원을 두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1980년 8월 농촌신협 대표자들이 모여 협의회 조직 창설에 대한 모임을 갖고 구판매사업을 위한 지역협의회 창립준비회의를 개최8.6했다. 이를 통해 12월 23일 창립총회를 통해 괴산지역협의회가 출범했다. 접기
P. 241 1970년대 후반 충북육우개발협회 관할 농촌신협의 임직원 및 조합원이 창립한 가농 분회의 활동은 유신체제하 농촌신협이 금융기관으로서의 성격과 운영에 한정되지 않고 농협 민주화운동과 농민권익실현운동 등 일정한 사회운동성을 지니며 전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유신체제하 박정희 정권 주도의 새마을운동과 관제 협동조합 활동이 전개되는 속에서 이들 농촌신협이 중심이 되어 민간 주도의 농촌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접기
P. 342 1980~90년대 초 충북농촌개발회가 관할하는 괴산·음성지역의 농민운동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원주지역의 생명운동에 기반한 한살림운동이 소개되고 확산되면서 가농 조직을 중심으로 생명공동체운동으로 전환되어 갔던 다른 지역과 달리 괴산·음성지역에서 괴산군·음성군농민회를 중심으로 한 자주적 농민대중 조직을 핵심적으로 이끈 인사들이 한살림운동과 흙살림운동으로 전환해 나갔다는 점이었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소남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68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단국대 사학과에서 87년 6월항쟁을 거치며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게 됐다. 경희대 사학과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1950년대 임시토지수득세법의 실시와 농가경제의 변화」를, 연세대 사학과에서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 주도 협동조합운동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으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는 「1970년대 원주지역의 부락개발운동 연구」, 「1970~80년대 원주그룹의 생명운동 연구」, 「1980년대 한일 민간 협동조합운동 교류 연구」, 「1960~1970년대 증평협업농장의 설립과 운영과정 연구」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사회의 협동조합운동과 생명운동, 이에 기반한 지역공동체운동·유기농업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접기

최근작 : <협동조합과 괴산지역 공동체운동>,<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괴산지역 민간 주도의
부락개발·협동조합·농민운동을 넘어
생명살림운동으로의 전환과 공동체운동의 미래

괴산지역 협동조합과 공동체운동을 다룬 이 책은 1960년대 충북지역 신협운동의 흐름 속에서 괴산가축사양조합·충북육우개발협회·충북농촌개발회를 통해 민간 주도의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 농민운동 등의 전개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1980년대 한살림운동의 참여를 통해 충북지역에서 생명운동으로의 전환과 한국생협운동의 활성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1990년대 괴산미생물연구회에 이어 흙살림연구모임·흙살림연구소를 꾸리고 학계와 현장농민, 그리고 한살림과의 연계 속에서 ‘유기농업기술운동’을 확산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눈비산마을을 중심으로 한 괴산지역 연구 10여 년의 결과물인 이 책은 1960년대 충북지역 신협운동의 흐름 속에서 괴산가축사양협동조합·충북육우개발협회·충북농촌개발회를 통해 민간 주도의 부락개발운동과 협동조합운동, 농민운동 등의 전개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1980년대 한살림운동의 참여를 통해 충북지역에서 생명운동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사적 의미를 지녔다. 또한 1990년대 괴산미생물연구회에 이어 흙살림연구모임·흙살림연구소를 꾸리고 학계와 현장 농민의 연계 속에서 ‘유기농업기술운동’을 전개하여 한국 생협운동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접기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 김소남 2017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 김소남 | 알라딘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 원주지역의 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김소남 (지은이)소명출판2017-






















미리보기




책소개
1960~80년대까지 원주지역에서 전개된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 성격과 의미를 연구한 책. 현재 한국사회에서 생협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운동이 활발하게 전개, 확장되고 있지만 앞선 세대가 일찍이 한국형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해 왔던 소중한 시도와 역사적 경험들을 되돌아보는 일이 적었다.

저자는 한국형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지나온 역사를 먼저 살필 것을 제안하며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원주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저자는 원주그룹의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이 현재 한국사회와 앞으로 다가올 '통일한국'에서 국가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 등 양극단의 사회와 체제를 넘어서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제1부 원주 지역사회의 전통과 협동조합운동의 개시

제1장 원주의 지역사회와 사회운동
1. 일제하~한국전쟁기 원주지역의 사회운동
2. 1950~60년대 초 장일순의 활동과 사상
3. 1950년대 말~60년대 전반 신협운동과 협동조합교도봉사회

제2장 원주그룹의 형성과 협동조합운동의 개시
1.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천주교 원주교구의 창설
2. 제1차 원주그룹의 형성과 신협운동의 개시

제2부 수해복구사업과 부락개발운동

제1장 새마을운동과 제2차 원주그룹
1. 박정희정권의 농촌부흥정책과 새마을운동
2. 남한강 대홍수와 재해대책사업위원회
3. 제2차 원주그룹과 협동조합론
4.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협동조합교육과 주도층 형성

제2장 농촌지역의 수해복구사업과 부락개발운동
1. 남한강유역수해복구사업
2. 한우지원사업
3. 원주원성수해복구사업
4. 농촌새마을운동과 부락개발운동

제3부 농촌과 광산지역의 신협운동

제1장 농촌지역의 신협운동과 구판사업
1. 농촌신협의 설립과 활동
2. 농촌신협의 부대사업과 구판사업

제2장 1970년대 광산지역의 장기구호사업과 신협운동
1. 장기구호사업
2. 광산신협의 설립과 활동
3. 광산소비조합협의회의 창립과 광산소비조합의 육성
4. 광산지역의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운동

제4부 생명운동으로의 전환과 소비조합운동

제1장 유신체제의 해체와 생명운동의 전개
1. 유신체제의 해체와 제5공화국의 출범
2. 사회개발위원회의 출범과 원주그룹의 동요
3. 원주그룹의 생명운동으로의 전환과 협동조합론
4. 1980년대 협동조합교육의 추진과 특징

제2장 농촌지역의 소비조합운동
1. 농촌소비조합협의회의 창립과 활동
2. 농촌소비조합육성사업의 추진과 농촌소비조합의 발전
3. 한국소협중앙회의 창립과 농촌소비조합의 독립

제3장 광산지역의 소비조합운동
1. 신협 광산지구협의회의 구성과 활동
2. 한국노총 협동사업부와 광산소비조합의 발전
3. 광산소비조합의 독립 추진과 좌절
4. 광산지역의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운동

제4장 유기농업운동과 한살림운동
1. 유기농업운동과 일본생협 연수
2. 원주소비조합의 창립과 운영
3. 한살림농산의 설립과 한살림운동

결론
참고문헌
부록
접기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7년 7월 28일자 '출판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김소남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68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단국대 사학과에서 87년 6월항쟁을 거치며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게 됐다. 경희대 사학과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1950년대 임시토지수득세법의 실시와 농가경제의 변화」를, 연세대 사학과에서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 주도 협동조합운동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으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는 「1970년대 원주지역의 부락개발운동 연구」, 「1970~80년대 원주그룹의 생명운동 연구」, 「1980년대 한일 민간 협동조합운동 교류 연구」, 「1960~1970년대 증평협업농장의 설립과 운영과정 연구」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사회의 협동조합운동과 생명운동, 이에 기반한 지역공동체운동·유기농업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접기

최근작 : <협동조합과 괴산지역 공동체운동>,<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소명출판
도서 모두보기
신간알림 신청

최근작 : <지뢰밭은 나의 안식처>,<구술의 증언, 문자의 증명>,<다시 읽는 백석 시>등 총 1,736종
대표분야 : 역사 21위 (브랜드 지수 100,72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뿌리, 원주지역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 원주지역의 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원주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1919년 3.1운동의 흐름 속에서 배태된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이 원주지역에서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의 만남 이후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인 신협운동으로, ‘부락개발운동’이 한국적 생명운동인 ‘한살림운동’으로 나아간 과정과 의미를 풍부한 사료와 당시 지역주민의 구술자료를 통해 생생하고 밀도 깊게 밝혀내고 있다.

원주지역의 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 원주지역의 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에서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생협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확장되고 있지만, 앞선 세대가 일찍이 한국형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해 왔던 소중한 시도와 역사적 경험들을 되돌아보는 일이 적은 점에 주목하고, 한국형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지나온 역사를 먼저 살필 것을 제안한다.

특히,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이 태동한 원주지역에서는 민(民) 주도의 자발적·자주적인 조직의 결성과 협동조합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 체제를 너머서는 중도파지향의 원주그룹 활동상을 재조명한다. 원주 그룹의 협동조합운동은 자치운동조차 탄압되었던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민간 주도로 ‘협동’과 ‘호혜’, ‘지역자치’ 등에 기반해 전개되었으며 원주그룹의 사상적 지향은 해방공간에서 평화공존을 모색한 여운형과 조봉암의 평화사상과 맞닿아 있음을 살핀다. 이어 원주지역에서 전개된 제반 협동운동과 반독재투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 추이를 탐색하고, 중도파 세력이 노선전환의 과정을 거쳐 원주지역에서 생명운동 그룹으로 태동하고 성장하는 양상을 고찰한다.

저자는 원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생명협동운동’이 한국사회 내에서 새로운 대안적 사회운동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현재 생명공동체운동, 생명평화운동, 생명살림운동 등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생명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사상적·운동적 기반이었음을 밝혀내고 있다. 또한 생명의 세계관에 입각한 ‘호혜’와 ‘연대’, ‘협동’과 ‘살림’, ‘공존’과 ‘평화’의 지향 속에서 국가주의의 틀을 넘어 동아시아와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평화적·생명적 질서’를 마련해 나갈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일정하게 제시했음을 보여주었다.

현재 한국사회는 중요한 전환의 분기점에 서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 공히 관 주도의 근대화·산업화를 질주하는 가운데 한반도에서 ‘반생명적 질서’가 강화되어 왔다. 분단시대 남북 간 대립이 극심하게 전개되는 양상 속에서 평화사상에 기반한 남북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질서 구축 등의 현실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저자는 원주그룹의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이 현재 한국사회와 앞으로 다가올 ‘통일한국’에서 국가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 등 양극단의 사회와 체제를 넘어서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안한다. 접기

공동체를 넘어 무소유 마을로 한국농정신문 2014

공동체를 넘어 무소유 마을로 < 기획 < 기사본문 - 한국농정신문

공동체를 넘어 무소유 마을로
대안적 삶을 찾아서 화성의 산안마을

현재위치기획 입력 2013.07.07  
수정 2014.03.03  
기자명최용탁 소설가 

몇 해 전에 서울대학교 대입 논술고사에 한 마을이 소개된 적 있다. 꽤 긴 지문을 인용하면 이렇다.

<1953년 일본의 야마기시 미요즈가 제창한 공동체 운동을 야마기시즘이라고 부른다. 야마기시즘이 꿈꾸는 공동체는 한마디로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마을’이다. 1958년 일본에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처음 탄생한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스위스, 브라질,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세계 각국에 40여 개가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환경 친화적 농법으로 먹거리를 생산한다. 우리나라에는 1984년에 최초로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생겼다. 이 마을의 홈페이지에는 “모든 생활과 경영을 일체 생활, 일체 경영, 일체 사회로서 해 나가고 있습니다. 양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함께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양계장이나 공동체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태만을 본 오해이고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 목적은 급료나 분배가 없는 일체 생활 속에서 사이좋게 즐겁게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저희 자신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밝고 평화로운 사회로 바뀌기를 염원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마을은 무엇보다 무소유(無所有)를 삶의 근본 가치로 삼고 있다. 무소유는 공동소유와 다르다. 이들은 마을의 재산도 주민들의 공동소유물로 보지 않을 정도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태양과 공기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도 그러해야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할 뿐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마을 공동체의 무소유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마을은 돈이 필요 없는 사회이며, 필요한 물건은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다른 야마기시즘 공동체가 물건을 필요로 할 때에도 물론 무료로 공급해준다.>


▲ 산안마을 사람들은 연찬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이용, 이웃과 소통한다.이 지문을 읽고 학생들이 어떤 내용의 답을 썼는지 궁금하지만, 그것까지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마을은 언제라도 찾아가 볼 수 있는 화성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자격 있는 자들의 공동체 : 박정희 정부 시기 증평협업농장을 통해 본 ‘협업’의 구성 - 논문 | DBpia

자격 있는 자들의 공동체 : 박정희 정부 시기 증평협업농장을 통해 본 ‘협업’의 구성 - 논문 | DBpia


자격 있는 자들의 공동체 : 박정희 정부 시기 증평협업농장을 통해 본 ‘협업’의 구성Community of the Qualified : Construction of “Cooperation” in Jeungpyeong Cooperative Farm in the Park Chung-hee Era

논문 기본 정보저자정보
김민지저널정보역사학연구소역사연구역사연구 제55호
발행연도2026.1수록면293 - 330 (38page)DOI10.31552/jh.2026.01.55.293접기
오류 신고하기



이용52피인용0추천 자료 보기
검색목차
논문보기AI뷰어보기

초록·키워드
이 글은 안동준 자료를 통해 1960-70년대 증평협업농장의 운영을 살펴보며, 박정희 정부 시기 협업농장의 ‘협업’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하고자 한다. 1960년대 협업농은 박정희 정부가 영세 자작농 체제의 낮은 생산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협업 방식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고, 이러한 공백은 협업을 위해 개인의 자질이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협업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68년에 시작된 안동준의 증평협업농장 구상은 그가 이상적으로 여긴 이스라엘과 일본이라는 모델, 1960년대 박정희 정부와 충청북도의 협업농업 정책이 충북 증평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증평협업농장은 설립 초기에는 이스라엘 키부츠를 모델로 한 “반공자유의 이상적 농공협업”이라는 안동준의 구상으로 출발했으나, 이후 건국대학교의 농업문제 종합연구소의 제안을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운영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1970년대에는 정부나 행정기관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비교적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창출하면서 구성원의 안정과 복지 확대를 이루었고,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을 단순히 설립 초기의 모순과 긴장이 한 방향으로 해소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증평협업농장의 변화는 새마을운동과의 연결 속에서 협업이 보여주는 다양한 변형 양상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examines the Jeungpyeong Cooperative Farm during 1960s–1970s, questioning the historical construction of “cooperation” under the Park Chung-hee regime. Although introduced to solve low peasant productivity, the policy lacked a structural design within a capitalist framework, creating an “ideological vacuum.” This gap allowed contradictory claims to coexist and shifted the burden of systemic success onto the individual qualities of farmers.
Ahn Dong-jun’s 1968 vision for the farm emerged as an intersection of personal ideals—modeled after the Israeli Kibbutz and Japanese Yamagishism—and the state’s “strategic village” strategy. While initially envisioned with an orientation toward an “anti-communist” community, the farm’s structure was later reorganized into a management-focused “democratic” framework through the intervention of the Institute of Agricultural Problems at Konkuk University.
This transformation was not a simple resolution of early tensions but a complex evolution linked to the Saemaul Undong. Ultimately, the farm’s history reveals how cooperation was reconstructed through the interplay of state ideology, rational management, and an exclusive logic of membership.
접기
#새마을운동#안동준#증평협업농장#키부츠#협업농#Saemaul Undong#Ahn Dong-jun#Jeungpyeong Cooperative Farm

안동준,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 1966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 도서 요약 평론 - Google Gemini

안동준,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  요약 평론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은 2천 년 동안 영토 없이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 민족이 1948년 독립을 선포하고, 척박한 사막과 중동의 적대적 안보 환경 속에서 정치·경제·군사·과학기술 강국으로 성장한 과정을 조명한 저작이다. 저자 안동준은 좁은 국토와 빈약한 천연자원,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생존을 넘어 세계적인 혁신 국가로 발돋움한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 민족적 정체성, 공동체 의식, 그리고 첨단 기술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한국과 유사한 지정학적 조건과 인적 자원 중심의 발전 경로를 지닌 국가라는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성공 방정식과 생존 전략이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를 체계적으로 전달한다.

<핵심 내용 요약>

  1. 역사적 유랑과 시오니즘의 결실 유대 민족의 역사는 디아스포라와 박해,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 수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종교와 문화적 유대감을 잃지 않았으며, 19세기 후반 시오니즘 운동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밸푸어 선언과 국제연합(UN)의 분할 결의안을 거쳐 1948년 다비드 벤구리온이 국가 수립을 공식 선포했다. 건국 직후 터진 제1차 중동전쟁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전면전과 테러 위협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국가의 물리적 기반을 다졌다.

  2.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꾼 개척 정신과 키부츠 이스라엘 국토의 절반 이상은 네게브 사막이다. 물과 농경지가 극도로 부족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집단 농업 공동체인 '키부츠'와 협동조합 형태의 '모샤브'를 발전시켰다. 이 공동체들은 단순한 농업 단위를 넘어 국경 방어의 최전선이자 국가 건설의 사회적 토대가 되었다. 더불어 수자원 재활용 시스템과 컴퓨터 제어 기반의 점적관수(Drip Irrigation) 농법을 개발하여 사막을 농경지로 전환하고, 농업 기술을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전환시켰다.

  3. 탈무드식 교육과 후츠파 정신 이스라엘 경쟁력의 핵심 동력은 교육과 문화적 태도에 있다. 유대인의 전통 학습 방식인 '하브루타(질문과 논쟁)'는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문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낸다. 여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격식을 파괴하며 당당하게 도전하는 '후츠파(Chutzpah) 정신'이 결합하여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 체계를 형성했다. 이는 군대와 대학, 기업 전반에 수평적 소통 구조를 정착시키는 근간이 되었다.

  4. 군사 안보와 첨단 기술의 융합 (실리콘 와디) 의무 복무를 바탕으로 한 방위군(IDF)은 단순한 군사 조직에 머무르지 않고 혁신 창업의 사관학교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엘리트 정보·기술 부대인 탈피오트(Talpiot)나 8200부대 출신 장교와 병사들은 전역 후 사이버 보안, 인공지능, 통신, 방산 분야의 스타트업을 설립하며 창업 생태계를 주도한다.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형성된 '실리콘 와디(Silicon Wadi)'는 글로벌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흡수하며 나스닥 상장 기업 수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5. 글로벌 유대인 디아스포라 네트워크 본토 거주민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포진한 유대인 네트워크는 이스라엘의 든든한 외교적·금융적 후방 기지 역할을 한다. 이들은 미국 정계와 월스트리트, 학계 및 미디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가 위기 때마다 외교적 지지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국가 생존을 뒷받침했다.

<비판적 평론: 신화화된 혁신과 지정학적 구조의 명암>

<1. 책의 의의와 통찰력> 이 책은 자원 빈국이 인적 자원과 기술 혁신, 그리고 확고한 국가 전략을 통해 어떻게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명확한 모델을 제시한다.

  • 인재 육성과 창업 생태계의 유기적 결합 조명: 단순한 경제 성과 나열을 넘어,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안전망과 군대-대학-기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설득력 있게 분석했다.

  • 위기를 혁신 기회로 치환한 생존 전략 제시: 지정학적 고립과 자원 결핍을 기술 개발의 촉매제로 전환한 과정은 비슷한 대외 환경을 가진 국가들에게 실질적인 정책적 벤치마킹 사례를 제공한다.

<2. 한계와 다각적 고찰> 반면, 이스라엘의 성공을 지나치게 영웅 서사나 '기적'이라는 틀로만 포장한 점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팔레스타인 갈등과 인권 문제의 축소: 이스라엘의 건국과 번영 이면에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강제 이주(나크바)와 영구적인 점령지 갈등, 인권 침해라는 구조적 모순이 공존한다. 안보적 성과에 집중하느라 중동 평화의 근본적 난제와 국제법적 논쟁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 내부 사회의 심각한 분열상 간과: 현대 이스라엘은 세속주의 유대인과 극우 정통파(하레디), 아랍계 시민 간의 극심한 경제적·사회적 격차 및 가치관 충돌로 내홍을 겪고 있다. 단일한 결속력으로 묘사된 공동체 의식이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분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현실적 맥락이 보완되어야 한다.

  • 특수성의 일반화 위험: 막대한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와 글로벌 유대인 자본의 지원이라는 특수한 외교적 이점을 감안하지 않고 순수하게 민족성이나 제도적 우수성만으로 성공을 설명하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일 수 있다.

<종합 평가>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은 벼랑 끝에 선 국가가 국가적 단합과 인적 자본, 기술적 집념을 통해 번영을 일궈낸 과정을 명쾌하게 정리한 수작이다. 다만 '기적'이라는 수사 이면에 존재하는 가혹한 중동의 현실, 점령지의 모순, 내부 사회의 다층적 갈등을 함께 읽어낼 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명암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

안동준,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교학사, 1966) 요약 평론

안동준의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은 오늘날 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 1960년대 한국의 한 정치인이 이스라엘에서 무엇을 발견했고 그것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이식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시대 문헌으로 읽는 편이 더 중요하다. 이 책의 핵심어는 사실 ‘이스라엘’보다 <근대화·농촌·협업·개척·국가건설>이다.

안동준은 1965년 5월 7일부터 18일까지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정치인·관료·전문가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 등을 살폈지만 특히 농업과 농촌개발에 관심을 기울였다. 안동준은 귀국 뒤 경향신문에 이스라엘 농업을 소개하고, 이듬해인 1966년 12월 현지 경험과 수집 자료를 바탕으로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을 출간했다.

1. 왜 이스라엘이 ‘기적의 나라’였는가

책 제목의 ‘기적’은 종교적 기적이라기보다 국가건설의 기적을 뜻한다. 당시 한국인의 눈에 이스라엘과 한국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할 만했다. 두 나라 모두 식민지 또는 외세 지배의 경험, 전쟁, 분단 또는 적대국가에 둘러싸인 안보환경, 부족한 자원, 농업사회의 근대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1948년에 건국한 작은 이스라엘은 불과 10여 년 만에 농업을 현대화하고 사막을 개간하며 이민자를 흡수하고 강력한 군대와 국가조직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안동준에게 이스라엘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한국이 배워야 할 압축 근대화의 모델>이었다.

이 점에서 책에는 1960년대 박정희 시대의 전형적인 발전주의적 시선이 흐르고 있다.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인간의 조직·교육·과학기술·협동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자연환경이 한국보다 훨씬 척박한데도 높은 농업 생산성을 이룩했다면 한국 농촌의 후진성도 토지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인간의 문제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2. 책의 중심은 키부츠보다 오히려 ‘협업’이다

안동준이 가장 주목한 것은 키부츠(kibbutz)와 모샤브(moshav)였다.

키부츠는 토지와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노동·소득·소비를 공동화한 집단적 공동체였으며, 모샤브는 가족 단위 생활과 농업경영을 유지하면서 구매·판매·농기계 이용 등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형태였다. 당시 자료를 보면 안동준이 관찰한 이스라엘에서는 이미 수백 개의 키부츠와 모샤브가 운영되고 있었으며, 특히 모샤브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동준이 이를 단순한 ‘사회주의 농장’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개인의 책임과 공동체의 협동을 결합하는 제3의 길로 보았다.

이것이 안동준의 독특한 위치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반공적인 정치인이었지만 농촌 문제에서는 공동소유, 협업, 공동판매, 공동구매, 공동교육, 공동생활 같은 상당히 급진적인 제도에 관심을 가졌다. 즉,

<공산주의는 거부하면서 공동체주의는 받아들이려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이념적 선택보다 ‘어떻게 하면 가난한 농민들이 협동하여 잘살 수 있는가’였다.

3. 이스라엘에서 한국 농촌으로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저자가 책만 쓰고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동준은 1968년 이후 충북 증평에서 <증평협업농장>, 또는 <증평협업이상촌>을 실제로 추진했다. 연구에 따르면 당시 충북에는 정부 주도로 많은 협업농장이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반면 안동준의 증평 실험은 이스라엘의 키부츠·모샤브뿐 아니라 그가 직접 관찰했던 일본 야마기시즘의 영향을 함께 받았다.

그래서 안동준의 사상적 궤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이스라엘 → 키부츠·모샤브 → 일본 야마기시즘 → 증평협업농장 → 조한규 → 한국의 공동체·생명농업 운동>

이 연결을 보면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은 단순한 해외견문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에서 공동체 농업을 실제로 실험하게 만든 일종의 ‘실천적 사상서’였다.

특히 흥미로운 인물이 조한규이다. 안동준은 야마기시즘적 공동체 실험 과정에서 조한규를 끌어들였고, 이는 이후 한국의 자연농업과 공동체운동 계보와도 연결된다. 따라서 안동준은 정치사에서만 보면 공화당 국회의원이지만, 공동체운동사에서 보면 거의 잊힌 연결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4. ‘국가건설’과 ‘인간건설’

안동준이 이스라엘에서 감명받은 것은 농법이나 관개기술만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사례에서 그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공동체’를 보았다. 공동노동, 공동교육, 청년훈련, 생산과 생활의 결합은 농촌의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인 동시에 새로운 국민을 만드는 장치였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농촌개발 사고와 정확히 맞닿는다.

가난의 원인을 토지제도·소작관계·시장구조 같은 구조 문제에서만 찾기보다 근면·협동·자립·교육이라는 인간의 태도에서 찾는다. 훗날 새마을운동의 ‘근면·자조·협동’과 상당히 비슷한 사고방식이다.

그러므로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에는 근대화론의 매력과 한계가 동시에 들어 있다. 공동체의 자발적 협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공동체가 국가의 개발전략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권력의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어진다.

실제로 후대 연구는 증평협업농장이 처음에는 이스라엘 키부츠를 모델로 삼은 ‘반공자유의 이상적 농공협업’을 지향했으며, 정부의 협업농업정책과 지역 행정, 농민선발, 경영합리화 등이 복잡하게 결합되었다고 평가한다.

5. 1966년의 ‘이스라엘’과 오늘 우리가 보는 이스라엘

여기에서 이 책을 오늘 다시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역사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안동준이 본 것은 <1965년의 이스라엘>이다. 1967년 6일전쟁 이전이다. 따라서 그가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은 아직 서안지구·동예루살렘·가자·골란고원 등을 1967년 전쟁을 통해 점령하기 이전이었다. 1967년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이 지역들을 장악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점령 문제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1965년의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전쟁 과정에서는 대규모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주와 추방이 발생했고, 이미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존재했다. 오늘날 유엔은 이를 팔레스타인인들이 ‘Nakba(나크바, 대재앙)’라고 부르는 대규모 실향과 재산 상실의 역사로 설명한다.

따라서 현대 독자는 안동준이 감탄한 ‘사막의 개척’, ‘새로운 농촌건설’, ‘국가건설’이라는 서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의 땅이 ‘개척된 땅’으로 보인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그 땅에는 원래 누가 살고 있었는가?>

이 질문이 1960년대 한국의 발전주의적 이스라엘 담론에서는 매우 약했다.

안동준을 지금의 기준으로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당시 한국인이 세계를 바라보던 인식틀을 이해하는 것이다. 가난과 전쟁을 갓 경험한 한국인에게 이스라엘은 무엇보다 ‘고난을 이겨낸 작은 민족국가’로 보였다. 팔레스타인인의 경험은 그 프레임 밖에 놓여 있었다.

6. 흥미로운 동시대의 반응

이 책이 당시 어느 정도 주목받았다는 흥미로운 흔적도 있다. 1968년 한국YWCA 잡지에는 신학자 김재준이 ‘내가 권하고 싶은 책’으로 안동준의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을 소개했다.

이는 중요하다.

안동준의 이스라엘 관심이 단순히 박정희 정부의 관료·농정 전문가에게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키부츠가 ‘사회주의적 집단농장’이라기보다는 성서의 땅에서 공동체·노동·평등·개척정신을 실현하는 새로운 사회실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7. 평론 —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이스라엘 소개서’가 아니다

오늘 이 책을 읽으며 이스라엘의 현실을 배우려고 한다면 상당히 낡은 책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 자료로 읽으면 오히려 대단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 속에는 1960년대 한국 지식인과 정치인의 꿈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촌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개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넘어선 협업사회의 가능성, 과학적 농업, 교육받은 농민, 공동체적 삶, 자립하는 국가, 외부 원조에 의존하지 않는 국민이라는 이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안동준은 박정희식 국가주도 근대화와도 조금 다르다.

그는 위에서 지시하고 농민이 따르는 발전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자체가 생산·소비·교육·복지를 함께 운영하는 <생활공동체>를 꿈꾸었다. 이것이 그를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일본 야마기시즘으로, 다시 증평협업농장으로 움직이게 했다.

다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긴장이 있었다.

<국가가 원하는 협동>과 <주민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공동체>는 같은 것이 아니다.

키부츠의 협동, 야마기시의 공동체, 새마을운동의 협동은 겉으로는 모두 ‘협동’을 말하지만 권력·소유·자발성·의사결정이라는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체제일 수 있다. 증평협업농장의 역사가 흥미로운 것도 바로 이 긴장 때문이다.

결론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은 지금 보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책이다.

하나는 1960년대 한국이 바라본 <눈부신 이스라엘>이다. 척박한 환경을 인간의 협동과 과학기술로 바꾸고,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조직하며, 농업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 ‘기적’의 서사 밖에 놓여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사이다.

따라서 오늘의 독법은 안동준을 단순히 ‘이스라엘을 이상화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렇게 읽는 것이 생산적이다.

<왜 1960년대 한국인은 이스라엘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는가?>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이스라엘에 관한 책인 동시에 한국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 농촌을 어떤 공동체로 다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 책이다.

제가 보기에는 그래서 안동준의 <기적의 나라 이스라엘>은 앞서 살펴본 야마기시 미요조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빠진 연결고리’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안동준 → 키부츠 → 야마기시즘 → 조한규 → 산안마을>을 단순한 영향관계가 아니라, <국가주도 근대화에서 자발적 생명공동체로 ‘협동’ 개념이 어떻게 변형되었는가>라는 관점에서 추적해보는 것이 특히 흥미롭다.


==


===

한국의 야마기시즘 정착의 역사

영성 종교 철학 의식 - 야마기시 미요조

한국의 야마기시즘 정착의 역사를 정리해주세요. 관련 문헌을 소개해주세요.
===

세진님, 요청하신 한국 내 야마기시즘(Yamagishism) 운동의 정착 역사와 주요 관련 문헌에 대한 정리입니다.

<한국 야마기시즘 정착의 역사와 전개>

<1. 도입기: 유기농업 및 기독교 농민운동과의 접목 (1970년대~1980년대 초)>

한국에 야마기시즘이 처음 소개된 배경에는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한 농촌 황폐화와 화학농법의 확산에 문제의식을 느낀 농민운동가들의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선구자들의 도일과 특강 이수>: 1970년대 중후반, 정농회(正農會)를 비롯한 기독교계 유기농업 운동가들과 농촌 지도자들이 일본 야마기시즘 실현지(실험마을)를 견학하고 <특강>(특별강습연구회)을 이수했다. 이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배제하고 닭의 자연 습성을 존중하는 야마기시식 자연 양계 및 순환농법에 주목했다.

  • <농업 기술 중심의 수용>: 초기에는 사상적·공동체적 측면보다는 기술적 대안으로서의 자연양계법 보급이 주를 이루었다.

<2. 확장기: 사상적 수용과 한국 특별강습연구회의 시작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

농법 도입에 이어 야마기시즘의 핵심 철학인 '무소유', '자타일체(自他一體)', '의심과 분노가 없는 사회'라는 사상적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이식되기 시작했다.

  • <한국 최초의 특강 개최 (1984년)>: 1984년 경기도 안성에서 일본 야마기시즘 안내자들을 초청하여 제1회 한국 특별강습연구회가 열렸다. 이후 교사, 농민, 종교인, 학생 등 다양한 지식인과 시민들이 특강에 참가하면서 지지층이 형성되었다.

  • <실현지 태동과 추진체 결성>: 특강 수료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에도 완전한 공동체 마을을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야마기시즘 실현지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3. 정착 및 번영기: 화성 실현지 건립과 무소유 공동체 실험 (1990년대)>

1990년대는 한국 야마기시즘이 물리적 거점을 마련하고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전성기였다.

  • <산안(山岸)마을(화성 실현지) 건립 (1992년)>: 1992년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현 화성시 남양읍)에 한국 최초이자 대표적인 실현지인 <산안마을>이 정식으로 개원했다. 참가자들은 사유재산을 공동체에 일체 귀속시키고, 공동 노동, 공동 식사, 공동 육아를 실천하며 화폐가 필요 없는 무소유 생활을 영위했다.

  • <유기농 유정란 생산과 자립>: 산안마을은 닭을 방사하여 키우는 유기농 유정란과 친환경 채소를 생산해 한살림, 생협 등 유기농 유통망과 연계하며 경제적 자립 기반을 공고히 다졌다.

  • <대안교육 및 생태공동체 모델 부상>: 1990년대 후반 생태주의와 대안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안마을의 공동 육아와 자연주의적 삶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공동체 성공 모델로 언론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4. 전환 및 쇠퇴기: 사회적 논쟁과 축소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들어 일본 본부의 인권 침해 소송과 사유재산 반환 분쟁이 알려지고, 한국 내부에서도 세대교체와 운영 방식을 둘러싼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 <일본 본부의 갈등과 여파>: 일본 실현지에서 일어난 탈퇴자들의 재산 반환 소송과 아동 교육 통제 논란이 한국에도 전해지면서, 초기와 같은 폭발적인 확장세는 멈추었다.

  • <내적 안정화와 규모 축소>: 대규모 확장보다는 기존 거점인 화성 산안마을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친환경 양계 사업과 자율적 공동체 생활을 지속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