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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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라키비움-
동학천도교철학용어사전: 함께]
1. 함께라는것은 '나'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의 존재를 확장시키는 진리의 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것은 백지장을 '함께 듦'으로써, 그것을 구기거나 찢지 않고도 들 수 있게 하는 진리의 길이다. 홀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함께'함으로써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의 일을 '내'가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 일을 그가 '해 준' 것이다. 무거운 물건도 '함께 들면' 들어 옮길 수 있다. 나의 육체적,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며 나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게 해 주는 일이다. 나의 '존재'를 확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함께'에 있어서,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한계의 극복과 존재의 확장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2. 공부도 함께 해야 하는 이치도, 홀로 공부하는 것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진리의 길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홀로 공부하는 것의 한계는 진도가 더디다거나, 모르는 것은 모르고 아는 것은 아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편벽되이 알고, 외곬수로 알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공부함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안전하게 자리 잡게 하는 일이다. 수양이다.
그러나 좀더 깊은 의미, 높은 의미에서 '함께 공부함'의 의미는 내가 '앞만'을 바라보는 동안, 그는 내 '등 뒤'와 '머리 위'를 바라보고, 그 바라봄의 자리에서 나에게 말을 건넨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내가 보지 못하는 내 눈을 바라보아 주며, 그 눈에 비친 것을 나에게 알려 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함께'의 두 번째 의미이다.
3. 함께의 세 번째 의미는 '함께 살다'와 '함께 하다'라는 말,
그 자체의 메타포적 의미이다.
'함께 죽다' '함께 망하다'라는 말도 문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함께 살다' '함께 하다' '함께 놀다' '함께 걷다' '함께 웃다' '함께 울다(共鳴)' '함께 싸우다(同志)' '함께(한가지로) 섬기다(同事)'가 ‘함께'의 본 뜻에 부합(符合)하는 용법이다(그냥 내 생각이다).
부합이란, 부절여합(符節如合)이니, 영부(靈符)처럼 한울님의 뜻이 깃들어 있기까지 하다.
또 부합은 계합(契合)이니, 함께란 서로의 약속이 깃든 말이다.
약속이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그 신뢰를 더욱 도탑게 하며, 그 신뢰를 살리고 길러내는 일이니, 함께의 의미가 도한 그러하다.
4. 동학의 핵심 가르침 가운데 동귀일체(同歸一體)라는 것도 바로 ‘함께 돌아간다’고 말한다.
함께 가는 길, 함께 걷는 길,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싸우고,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사는 일이 곧 동귀일체다. 동귀일체에서 함께는 존재론이 된다. 함께의 존재론은 다음에 계속.
Comments
Taechang Kim
이제 서로 깊이 통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생명감각에 와 닿기 시작해서 흐뭇합니다. 저 자신의 경우에는 "함께 함" 이란 相学互覚共進의 과정을 공감 공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저 보다 훨씬 잘 뜻밝힘해주셔서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함께 종교하기" 도 공통각성의 공유로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저 자신은 이 곳 일본에서 동학(과 천도교)을 일본인(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종교하기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길열기를 쌓아서 어느 정도의 성과가 정리되면 <함께 공공하는 사상-철학-종교로서의 동학-천도교" 라는 책을 우선 일본어로 펴낼 수 있도록 터고르기-터닦기-터세우기를 계속해 왔습니다.
기왕에 나와 있는 동학 천도교 관련 책들은 홀로 정당함을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인상을 갖게 하는데 비해서 좀 더 함께 새 지평을 열어가는 동학-천도교의 이미지개선이 필요할 것같다는 체감이 있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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