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8

'뭣이 중헌지' 몰라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 복음과상황



'뭣이 중헌지' 몰라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 복음과상황



'뭣이 중헌지' 몰라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독자서평〕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 손봉호 지음 / CUP 펴냄


[0호] 2018년 05월 08일 (화) 10:59:21 노해일 @




한국 기독교, 뭣이 중헌디? 누군가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영화를 스포츠, 섹스와 더불어 대중을 현혹하고 세뇌하는 미디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나 영화 중 몇몇은 ‘바보를 만드는 상자’이거나 대중을 현혹시키는 대상치고는 꽤나 그럴듯하고 머리나 가슴에 오래 잔향을 남기곤 한다. 2016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의 중순 개봉한 한국영화 〈곡성〉이 그러한 잔향을 남겼던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배우 곽도원이 분한 전종구뿐 아니라 영화를 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라는 일갈은 꽤나 서늘한 잔향을 남겨주었다.

▲ 부제는 '지금은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에서 저자 손봉호는 이와 같은 서늘한 잔향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러나 어쩌면, 앞으로 서술할 것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듣고 생각해봐야 할 가까이 두어야 할 잔향이다. 저자는 본 책에서 요즘 과학적 사고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롱을 받고 있고, 과학 기술이 주도하는 현대 문명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고 현재의 흐름을 진단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은 이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어야 했다고 꼼꼼하게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지적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자유주의 신학은 너무 빨리 과학적 사고에 아첨해 버렸고, 보수신학은 너무 강하게 과학적 사고와 담을 쌓았다. 결국 정치, 경제, 기술, 학문 들이 공공영역을 주도하고, 기독교와 기독교 신학은 거기서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기독교가 우리 삶의 주변으로 밀려나버렸음을 말한다.

삶의 주변으로 물러난 기독교는 오직 영혼의 구원과 개인적 경건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공공영역에 대한 관심은 내팽개치고 말았다. 저자는 이런 치우침 때문에 기도와 전도에 열정을 쏟는 그리스도인조차 정치계나 기업계에 들어가면 불신자와 같이 행동한다고 현재 기독교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물론 기독교는 성화를 말하고 거룩을 강조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성화와 경건, 거룩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 것이다. 그것이 개인에만 머무는 이상, 기독교는 여전히 주변에 머물러 있는 ‘쩌리’로서의 위치를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건은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거룩함과 진리를 품고 있는 기독교만이 사회적 차원의 경건을 이룰 수 있고 또한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가 놓쳤으며, 반드시 다시 붙잡아야 할 ‘중헌 것’ 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그 기도의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 ‘하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모든 뜻, 즉 하나님의 뜻인 우리의 거룩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 믿는 자들이 다시 ‘중헌 것’을 잡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라도 우리는 사회적 경건을 회복해야 한다. 다시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시 여호와 앞에 바로서야 한다. 중심을 회복하고 거룩을, 경건을 사회적 측면에서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가 잡아야 할 ‘중헌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