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1

(8) Namgok Lee - 크릴의 공자 Ⅲ 유교(儒敎) 제12장 전설(傳說)의 발전①



(8) Namgok Lee - 크릴의 공자 Ⅲ 유교(儒敎) 제12장 전설(傳說)의 발전① (이 장에서는 공자 사후 공자가...

Namgok Lee
3 hrs · 0621

크릴의 공자
Ⅲ 유교(儒敎) 제12장 전설(傳說)의 발전①

(이 장에서는 공자 사후 공자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공자를 비난하거나 공자를 옹호하는 숱한 왜곡들에 대해 논하고 있다)

* 묵자(墨子)는 공자가 사망한 직후에 태어나 묵학(墨學)이라는 철학을 창시하였으며, 묵가(墨家)라는 견고하게 조직된 집단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묵자는 유가로서 학문을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유가와 절연하고 독자적인 학파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묵자> 비유(非儒)편은 유가 전체를 비난하면서 공자를 통렬히 비난하고 있는데, 훨씬 후에 쓰여져 원전에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묵자가 공자 개인을 언급한 예가 거의 없으며, 공자를 기술한 것은 단 하나 뿐인데 거기에는 공자가 바보로 취급되어 있다.

묵자는 자기가 누구보다도 세상의 악을 고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으며, 공자와 달리 다른 사람에게 자유로운 선택이나 판단의 여지를 허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가르침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가르침을 버리고 스스로 생각하려는 것은 추수를 포기하고 낟알을 줍는 것과 같다”

묵자는 빈곤, 무질서 및 전쟁을 비롯한 이 세상의 죄악을 엄격한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묵자는 자신이 진심으로 믿고 있는 귀신의 존재를 유가가 부정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天災)가 천(天)의 응징이며 폭정의 표시라는 묵자의 생각은 소위 한 대(漢代) 정통유교 속에 거의 동일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묵자가 직접 유교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묵학도, 또 결국은 유교도 공자의 합리적인 철학보다 훨씬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세속적인 미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자는 사유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였지만, 진리의 고정된 척도는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는 책임을 맡겼고 그것도 각자의 자유에 일임하였다.
그러나 지적(知的) 자유에는 정신적 노고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인간은 대체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제자 가운데 공자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따라서 공자의 시체가 식자마자 제자들이 아늑한 지적 안식처를 세우고 그 안에서 성전(聖典) 및,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성인의 권위를 찾기 시작한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런 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리 추구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 온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무오류의 권위에 대한 추종’ 등은 지금도 강하게 존재한다.
아마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스스로 독재에 대한 끌림이 일어날 소지는 여전히 있다.
우리 현실에서 비록 이전투구로 보이는 현상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진정한 진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긍정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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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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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Jun · · 크릴의 공자 Ⅲ 유교(儒敎) 제11장 유(儒) * 중국 역사에서 공자가 죽은 뒤 3세기 동안의 시기만큼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정신적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시대도 없을 것이다. 그 기간은 가장 격심한 변화의 시대였으며, 거의 모든 것이 과거의 속박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적 신분의 급속한 부침(浮沈), 교통망의 발달과 여행의 성행, 화폐와 상업 발전,…
19김재형, Sungsoo Kim and 1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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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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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Jun · · …대중의식의 성숙이 아닐까? 공자 시대에 군주의 의식을 강제할 수 없었던 것 이상으로 대중의식의 성숙을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제도의 확립과 대중 의식의 성숙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두 바퀴이다. *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절대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재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절을 지나왔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106박정미, songsoonhyun and 10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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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Jun · · 크릴의 공자 Ⅱ공자 제10장 改革家 ③ *공자가 주장한 개혁이 과연 ‘민주적’이었다고 말해도 좋은지, 또 만일 그렇다면 어느 정도 ‘민주적’이었느냐는 문제를 고찰할 단계가 되었다. 만약 공자가 주장한 것과 오늘날 민주정치라는 것은 동일한 것도 아니고 동일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22박길수, 김재형 and 2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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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Jun · · 크릴의 공자 Ⅱ공자 제10장 개혁가 ② * 공자는 당시의 정치를 철저히 개혁하려고 하였지만, 그것이 완료된 뒤에는 관리들이 정당한 상급자에게 합당한 복종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인정하였다. “군주는 군주, 신하는 신하,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이 정치구상의 약점은 명백하다. 권력을 장악한 것은 군주이고, 그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36박정미, 박정희 and 3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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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Jun · · 크릴의 공자 Ⅱ공자 제10장 개혁가(改革家)① * 요•순•우 등에 관한 설화는 대부분 공자 이후에 형성되었으며, 이 설화적인 제왕들은 점차로 모든 유가덕목의 원형 그 자체가 되었다. 공자는 요•순•우로부터 어떤 시사를 얻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며, 실제로 그들이 공자의 사상으로 윤색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 군주는 아무도 믿어서는…
21박정미, 신영숙 and 1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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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Jun · · 크릴의 공자 Ⅱ공자 제9장 철인(哲人) * 어떤 중국 학자는 당시 중국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를 저지시키고 과거를 부활시키려는 것이 공자 필생의 희망이었기 때문에(이 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공자는 반동가일 뿐 아니라 실제로 ‘반혁명분자’라고 주장한다. 자료를 조사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공자가 한편으로는 고대 유산을 실제로 자주 언급하였고 공자…
32김재형, 신영숙 and 3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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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Jun · · 크릴의 공자 Ⅱ공자 8장 학인(學人) * 공자가 저술한 것으로 추측된 각종 책들은 모두 검토한 결과, 공자가 시경, 서경, 춘추, 역경 등 어떤 책도 저술하였거나 편찬하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 캉유웨이(康有爲)는 극단적으로 공자 이전부터 보존되어온 중국의 모든 문헌을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주장한다. 강유웨이 자신은 19세기 말 중국이…
33You, Sunghwan Jo, 김재형 and 3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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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Jun · · 크릴의 공자. Ⅱ제 7장 교사(敎師)에서. * 공자 사후 1세기 후의 묵자, “내 말은 충분한 지침이 될 것이다.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마치 추수를 포기하고 낱알을 주워 모으는 것 같으며, 자기 말로 내 말을 논박하는 것은 마치 달걀을 바위에 던지는 격이다. 천하의 달걀을 모두 던져도 바위를 훼손하지 못할 것이다.” BC 300년 경 유가(儒家)의 순자,…
38박정미, 이정희 and 3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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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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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May · · 크릴의 ‘공자’ 읽기가 늦어지고 있다.(이렇게 옮기면서 자세히 읽게 된다 ㅎㅎ) Ⅰ.배경(背景). 제3장 <공자 시대와 중국>의 끝 부분이다. 

공자(의 사상)가 출현한 배경에 대한 서술이다. “(전략) 이러한 사회 내부의 질병은 스스로 항독소(抗毒素)를 낳았다. 귀족의 아들들은 모두 영지와 관직을 받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귀족 가문의 남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이 불가능한…
35박정미, Jae Hyoung Lee and 3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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