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람북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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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변명 - 기독교와 유대교, 메시아를 둘러싼 왜곡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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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쪽
149*219mm
580g
ISBN : 9791196438838
책소개
지난 2,000년간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기독교의 탄생을 면밀하게 추적한 문제작. 성경의 문헌비평적 방식을 통해 어떻게 신약과 기독교 교리가 성립되었는지를 밝혀가며, 메시아 예수가 신이 되는 과정을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유대교의 진경인 히브리 성경이 왜곡되고 편집되는지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기독교는 히브리 성경과 연속성이 아니라 단절이며, 유대민족의 영원한 약속을 철 지난 약속(구약)으로 치부하며 전혀 성격이 다른 종교로 태동한다. 저자의 주장은 기독교인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지만, 현재 기독교의 폐단과 관련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저자의 치밀한 분석과 흥미진진한 전개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바라보는 넓고 깊은 시야를 제공한다.
목차
머리말: 메시아 개론
1장 유대교와 기독교는 어떻게 다른가?
1. 사탄
2. 인간
3. 유일신
4. 내세
중간말: 메시아 변천사
2장 왜 유대교는 예수를 거부하는가?
1. 예수를 거부하는 첫 번째 이유
2. 예수를 거부하는 두 번째 이유
1) 기독교가 주장하는 메시아 예언 구절의 특징
2) 기독교가 주장하는 대표적 메시아 예언 구절 분석
책속에서
첫문장
2016년 말 대한민국을 흔든 국정농단 사태는 지금 우리에게 사탄을 표현하는 아주 효과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P. 16~17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예수라는 청년이, 오래전 십자가에서 처형된 갈릴리 출신의 청년이 메시아라는 소리였다. 그가 유대민족이 그토록 기다렸던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말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메시아를 죽인 당사자가 로마가 아니라 유대민족이라는 것이다. 메시아를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던 유대민족이 그를 못 알아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였다고 했다. 정작 가장 기이하고도 놀라운 말은 그다음이었다. 유대민족도 알아보지 못한 메시아의 정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방인, 그것도 로마제국이라는 것이다. 접기
P. 60 그렇기에 에덴동산에서 추방조차 비극이 아니라 독립된 인간이 딛는 ‘자유를 향한 첫 발걸 음’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런 유대교의 해석에 따르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타락해 죄로 오염된 유전자를 가진 게 아니라, 오히려 독립함으로써 주체적 유전자를 갖게 되었다.
P. 341 궤변과 왜곡으로 가득 찬 신약성경이 기독교의 ‘경전’으로 지난 2,000년을 버텨온 것은 한마디로 기적이다. 히브리 성경과 수많은 지점에서 철저하게 모순됨에도, 신약성경이 아직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기적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박사가 수만, 아니 수십만 명이 넘는데도, 아직까지 히브리 성경과 신약성경을 함께 묶어서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적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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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옥성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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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주 노터데임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7년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시작으로 『갑각류 크리스천』 시리즈, 『아버지, 옥한흠』 『진영, 아빠는 유학중』 『진리해부』 『야고보를 찾아서』, 장편소설 『서초교회 잔혹사』 『낯선 하루』 등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특허 솔루션 전문 기업인 위즈도메인에서 10년간 미주 지사장을 그리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국제제자훈련원 출판본부장을 역임했다. 2018년 현재 도서출판 은보와 테리토스 대표를 맡고 있다.
사랑의교회를 개척하고 교회 갱신을 위한 초석을 만들었던 한국 개신교의 거목인 옥한흠 목사의 장남으로 태생적으로 기독교에 해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통해 비판과 성찰이 사라진 한국교회에 일침을 가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저자는 이제, 질문과 상식이 사라진 한국교회를 깨울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접기
최근작 : <신의 변명>,<야고보를 찾아서>,<진리해부> … 총 24종(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구약은 없다, 영원한 약속만 있을 뿐
같은 ‘유일신’을 전혀 다르게 믿는 두 종교 이야기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옥한흠 목사의 장남인 저자는 오랜 기간 성경을 연구하며,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문제를 언급한 글을 써온 소장 신학자이다. 그는 성경 연구를 통하여 신약성경의 모순을 발견하였고, 이 책 『신의 변명』을 통해 구약으로 대표되는 유대교와 신약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차이를 밝히고자 하였다.
기독교에서 쓰는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인 오리지널 성경과 예수 탄생 이후에 만들어진 신약성경,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기독교는 ‘새로운 약속’인 신약성경과 대비하기 위해서 오리지널 성경을 오래된 약속인 ‘구약성경’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유대교에서 성경은 오직 하나, 기독교가 구약성경이라고 부르는 ‘히브리 성경’뿐이며, 히브리 성경은 오래된 과거의 약속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이다.
저자는 신약을 구약의 연속이 아닌 단절로 보며, 기독교와 유대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듯하지만, 전혀 다른 종교라고 한다. 신약이 성립하면서 구약에 대한 오역과 의도적 왜곡이 발생하고, 그런 과정에서 같은 신을 섬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혀 다른 신을 섬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전혀 다른 신관과 인간관을 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탄, 구원, 죄, 의로움, 유일신, 율법, 내세 그리고 메시아까지, 모든 주제에 걸쳐 유대교와 기독교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히브리 성경에서 사탄은 단순히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천사의 역할, 직책을 묘사하는 단어일 뿐인데, 신약에서는 ‘감히’ 신인 예수를 시험하려는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로 탈바꿈한다. 또한 기독교 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예수의 대속은 에덴동산에서 시작한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그리고 원죄가 여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교는 에덴동산에서 비극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성장과 독립을 읽어낸다. 기독교의 에덴동산 교리를 따라가면, 노동과 출산은 죄의 대가가 되고 만다. 하지만 유대교의 해석에 따르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타락해 죄로 오염된 유전자를 가진 게 아니라, 오히려 독립함으로써 주체적 유전자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 전혀 다른 인간관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유대교에서 구원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로부터 구원이 아니다. 기독교의 구원이 영적 의미라면, 유대교에서 구원은 언제나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구원이다. 그 위기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위기일 수도 있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기독교가 내세 지향적이었다면 유대교는 현세 지향적이다. 저자는 이처럼 유대교와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이 전혀 같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메시아 문제는 비슷한 듯 서로 다른 두 종교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계기가 된다.
예수는 어떻게 메시아가 그리고 신이 되었나?
저자는 문헌비평의 방법으로 신약성경에 드러나는 히브리 성경의 왜곡된 인용을 확인하면서, 신약의 저자들이 예수를 신으로 메시아로 만들어갔던 과정을 추적한다. 한마디로 신약이 어떠한 오류와 왜곡의 과정에서 정립되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데서 시작한다. 기독교 도그마의 논리적 구조를 따르면, 아담에서 생겨난 ‘원죄’ 때문에 인간에게 천국의 문은 닫혀 있다. 하늘에 계신 성자가 인간의 몸을 받아 세상에 내려오신다. 그는 십자가로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 기독교라는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그리스어 번역이다. 유대인에게 메시아는 미래에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게 해줄 해방자다. 언제나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에게 예수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예수는 메시아가 되어야만 했다. 저자가 보기에, 신약성경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게 하려고 히브리 성경을 살짝살짝 조작하고 왜곡해서 만들어진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메시아 조작기’ 또는 ‘메시아 조작의 추적기’인 셈이다.
기독교는 어떻게 2,000년간 서구사회를 지배하였나?
히브리 성경에서는 메시아가 오면 다섯 가지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이 모든 것이 영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하지만, 유대교가 보기에는 하나도 이뤄진 것이 없으며 메시아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유대교는 신으로서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에게 죽었고, 부활했고 언젠가 다시 온다는 그런 메시아는 없기 때문이다. 또 예수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세 단어,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은 히브리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로마 시대 다른 종교와 경쟁하려면 기독교의 신은 아주 매혹적이어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예수의 조상이 다윗이어야 했던 족보, 나사렛을 떠나 머나먼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탄생 이야기, 처녀 수태 등 상당 부분을 끼워 맞추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구약의 수많은 이야기가 마치 예수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식으로 엮다 보니 다소 어거지가 된 부분도 언급한다.
유대교에는 이원론적 요소가 전혀 없었으나, 기독교는 저자가 말한 ‘실질적 이원론’을 받아들이며, 유대교의 유일신론에 그리스의 다신론을 교묘하게 섞었다. 여기에서 당연히 내적 모순이 생기며, 기독교 교리가 가진 수많은 모순의 근본 원인이 된다. 하지만 애초에 기독교가 그런 이원론을 채택하지 않았더라면, 이원론에 익숙한 로마제국의 종교가 될 수 없었다. 나아가서 지난 2,000년간 서구사회를 지배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의 종교가 된 기독교, 반유대주의의 탄생
메시아가 육신을 입은 하나님 자신, 예수였다면 왜 하나님은 그 중요한 사실을 당사자인 유대민족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메시아를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던 유대민족이 예수를 못 알아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였다고 했다. 게다가 유대민족이 알아보지 못한 메시아를 로마제국이 알아본 것을 역설적이라고 한다.
유대교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는 율법에 대한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저자가 보기에 유대교 율법에 대한 부정에는 바울도 한몫한다. 유대인은 형식적으로, 겉으로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저자는 복음서 속 바리새인에 대한 왜곡된 묘사가 무려 2,000년 가까이 지속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독교에서는 구약성경(히브리 성경)을 오래된 약속이라 하며 신약을 만드는데, 저자가 보기에 “굴러온 기독교가 박힌 유대교를 몰아내는 형국”이다.
저자는 히브리 성경이 왜곡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반유대주의를 거론하기도 한다. 사실 예수는 로마 당국에 의해 반란죄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처형받았음에도 ‘예수를 죽인 유대인’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졌다. 신약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의 다소 호의적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빌라도는 너무 극악무도해 로마에서도 꺼리던 인물이다. 기독교에서 만연했던 반유대주의적 정서는 루터에 의해서도 증폭되었고, 훗날 나치는 루터의 주장을 더욱 악랄하게 정치적으로도 악용한다. 이로 인해 20세기의 비극인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지고 말았다.
기독교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믿음의 문제에서 삶의 문제로, 내세의 문제에서 현세의 문제로
유대교에서 핵심적인 메시지가 기독교에서 와서는 상당 부분 거세되고 만다. 저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관과 인간관을 비교하면서, 기독교가 가진 폐단과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기독교 성경 왜곡의 역사를 밝힌 책이면서, 기독교 비판서의 성격적인 측면도 있다.
기독교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현실에서 답을 찾는 대신 미래로, 천국으로 미룬다. 이로 인해 현실적 모순에 눈감거나 심지어 은폐하기도 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아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라는 ‘비참한 인간관’은 인간의 가능성을 애초에 무력화했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인간적 한계의 책임을 사탄에게 돌리며, 오로지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식으로 회피한다. 하지만 이는 히브리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관에 위배된다. 히브리 성경에서 인간은 사탄에게 없는 자유의지를 가졌으며 자신이 저지른 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존재이며, 뼛속까지 부패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 스스로 보기에도 ‘좋을 정도로’ 아주 잘 만들어진, 창조주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위대한 존재다.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면 기독교는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한 듯 보인다. 많은 부분이 왜곡과 조작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분명 이런 주장은 많은 기독교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허구이든 사실이든 간에 그 이야기가 가리키는 사건의 핵심을 이해하고, 그 진실로써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은 글자 그대로 즉, 축자적 믿음을 갖고 살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저자가 비판하는 기독교의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고민하는 지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이라든가 내세 중심의 교리 등은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저자의 논지가 기독교의 기본 전제를 공격하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성경을 더욱 풍성하게 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기독교인 개인의 신앙 차원에 매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기독교를 바라보는 더 넓은 시선과 통찰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종교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 열린 마음으로 종교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접기
북플 book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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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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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요?
달걀과 닭은 생김새가 너무 다르다,
그래서 닭이 달걀에서 나왔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하는 책.
구약의 재해석이라든지 신약의 새로 드러남이라든지는 개뿔,
오직 흰자와 노른자가 진리라고 하는 책.
흰자와 노른자로 닭날개와 닭발의 운동역학을 규정하려는 책.
달걀로 닭 치는 책.
ggongdolee 2018-11-29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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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한국의 그리스도교에 일침을 가하는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공감하는 대목이 원죄론이다. 초등학교 때 첫영성체 교리 첫 시간에 가톨릭 교리의 구원 여정을 설명할 때도 원죄 교리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원죄론이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있지 않고, 아우구스티누스 때부터라는 이야기는 훗날 신학을 전공한 지인에게서 들었다. 원죄론을 비교적 충실하게 받아들였던 시절에 의문이 하나 있었다. 만약 하느님이 자신의 아들을 대속의 희생양으로 삼아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켰다면, 유다야말로 배신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부름꾼 아닌가.
책을 쭉 읽어가다 저자가 아리우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사실 지금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는 아타나시우스의 승리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수많은 그리스도교의 지류가 자잘한 교리적 차이가 있음에도, <니케아 신경>은 공유한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아리우스의 입장에 더욱 공감이 간다. 하느님 보기에 너무도 사랑스러웠던 한 인간, 그가 결국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 오히려 그렇게 이해할 때 예수가 우리에게 더욱 가깝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예수를 신으로 고백할 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데, 아리우스의 입장에 선다면 그럴 여지가 생긴다. 심정적 아리우스주의랄까.
저자는 구약, 철 지난 약속이 아니라 영원한 약속이라 한다. 그래서 굳이 구약이 아니라 히브리 성경이라는 표현을 쓴다. 히브리 성경이 구약으로 재구성됨으써, 유대교에서 이야기하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소멸되어버린다. 에덴 동산 이야기가 갖고 있는 인간 성장의 메시지, 유대교의 현세 중심성, 사탄보다 훨씬 위대한 인간, 나약하지 않고 스스로 책이질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 등. 사실 이러한 대목은 그리스도교가 쇄신되면서 제기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굳건한 신앙이 반드시 도그마에 대한 충실함일 필요는 없다. 조금만 서양사를 들여다봐도 12월 25일이 예수가 탄생한 날이 아니라, 조로아스터의 분파인 미트라교의 축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에 대한 축자적 믿음이 지구 나이 6,000년이라는 코메디를 낳는다. 도그마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 결핍은 성경에 대한 축자적 믿음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도그마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천의무봉의 편집 과정을 거쳐 고도로 숙성된다.
저자의 기본적 논지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스며 있다. 이제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는 어쩌면 재편집과 재숙성의 과정에 직면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 그렇게 읽힌다.
- 접기
Pablo 2018-11-29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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