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6
민속원 - 【신간안내】 『조선의 귀신』 무라야마 지준 지음
(11) 민속원 - 【신간안내】 『조선의 귀신』(한국근대 민속·인류학 번역총서 14) 무라야마 지준 지음 / 노성환...
민속원
21 May at 10:39 ·
【신간안내】
『조선의 귀신』(한국근대 민속·인류학 번역총서 14)
무라야마 지준 지음 / 노성환 옮김, 크라운변형판, 양장, 540쪽.
조선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신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순서일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다.
인간의 사상에 있어서 근기根基를 이루며 생활의 지침으로서 결정되는 정신작용의 3유체三流體인 지知·정情·의意라는 세 가지 작용 중 감정의 작용이 중심을 이룬다는 것은 심리학계에 있어서는 정설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감정 작용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신앙현상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생활을 이해할 경우 신앙현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봄으로써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분류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향과 생활이상生活理想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현상은 인간의 사상에 근기를 이루고 있는 만큼 일반성이 결여된 개인적인 것이므로 만인이 공통으로 동일한 신앙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란 개인적인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즉, 공동적 작위作爲로 말미암아 생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화를 개인적 성질의 신앙현상으로부터 접근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신앙의 현상이 얼마나 그 사상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또 그 사상으로부터 출발한 생활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해 신앙현상이 개인적이며 사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사회 전체의 사상과 문화를 생각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를 이해하고 민족사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 민족의 공통적인 신앙현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같은 공통된 신앙현상이 다름 아닌 민간신앙이다.
【약력 및 주요 저술】
무라야마 지준은 1891년 일본 니이가타현新潟県 가리와군刈羽郡 출신으로,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일련종日蓮宗 묘광사妙廣寺에 들어가, 그곳의 주지 무라야마 지젠村山智全의 양자가 되어, 그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 제1고를 거쳐 동경제국대학에 입학하여, 1919년 7월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사회학 전공)했다. 졸업논문은 「일본 국민성의 발달」이었다.
졸업하던 그 해 조선총독부의 촉탁이 되어, 조선으로 부임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조선에서 그는 처음에는 사회제도, 조선인의 사상 등을 조사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물이 1924년에 낸 조선의 독립사상 및 운동(조사자료 제10집)이었다. 그 후 의식주를 포함한 서민생활, 귀신과 풍수에 관련된 민속종교, 전통적인 놀이 등을 기록한 조사 자료를 많이 남겼다. 그의 주요 업적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朝鮮의 服装 3, 朝鮮総督府, 1927年
朝鮮人의 思想과 性格 調査資料 第二十輯, 朝鮮総督府, 1927年
朝鮮의 習俗 4, 朝鮮総督府, 1928年
朝鮮의 鬼神 調査資料第二十五輯, 朝鮮総督府, 1929年
朝鮮의 風水 調査資料第三十一輯, 朝鮮総督府, 1931年
朝鮮의 巫覡 調査資料第三十六輯, 朝鮮総督府, 1932年
朝鮮의 占卜과 預言 調査資料第三十七輯, 朝鮮総督府, 1933年
朝鮮의 類似宗教 調査資料第四十二輯, 朝鮮総督府, 1935年
部落祭 調査資料第四十四輯, 朝鮮総督府, 1937年
釈奠․祈雨․安宅 調査資料第四十五輯, 朝鮮総督府, 1938年
朝鮮의 郷土娯楽 調査資料第四十七輯, 朝鮮総督府, 1941年
朝鮮場市의 研究(미완의 작품) 国書刊行会, 1999年
이상과 같은 목록에서 보듯이 조선인의 민속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정열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남긴 저서들은 훗날 한국 민속학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없다. 특히 그 중 조선의 귀신, 조선의 풍수, 조선의 무격, 조선의 점복과 예언이 출판 되었을 때는 조선인 민속학자 손진태孫晋泰가 서평을 썼을 정도로 국내외의 민속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총독부의 관리(중추원편집과, 조사과, 서무부 조사과, 총독관방의 총무과, 문서과)생활을 하면서, 경성법학전문학교, 사립불교학교, 경성공립상업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조선이란 잡지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이와 같이 조선의 연구와 교육을 활발하게 벌였던 그가 1941년 돌연 일본으로 귀국하여 조선총독부의 지소支所와 같은 성격의 조선장학회에 근무하다가, 은사이자 양부養父인 무라야마 지젠이 1945년 사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묘광사의 주지가 된다. 그로부터 13년 후 동경으로 거처를 옮기나, 본인이 바라던 조선관계의 학술활동은 거의 없었으며, 1968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 자세한 내용은 민속원 홈페이지 (http://www.minsokwon.com/)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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