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1

알라딘: 루미 시집 정제희 (옮긴이)시공사2019

알라딘: 루미 시집

루미 시집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지은이),
정제희 (옮긴이)
시공사  2019-01-28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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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문학 주간 8위, 고전 top100 5주|
Sales Point : 3,130

9.4 100자평(1)리뷰(6)
이 책 어때요?

전자책8,400원

180쪽
책소개
13세기 페르시아의 대표 시인 루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작품 <마스나비>가 시공사에서 <루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종교인으로 추앙받는 루미를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페르시아어의 코란', '신비주의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6권 분량의 <마스나비> 중 1권을 발췌 번역한 <루미 시집>은 총 75편으로 된 산문시로 신, 고독, 사랑, 삶을 노래한다. <루미 시집>의 추천사를 쓴 김민정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루미의 글은 언제나 사랑의 경전으로 귀결된다. 먼 나라 페르시아에서 무려 800여 년 전에 태어난 시인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신이 분노하고 다툼을 한대도 나에게는 하프의 선율보다 아름다우며", "사랑에 침몰하여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지만 당신 안에 침몰하는 것이라면 더욱 깊이 침몰하겠다"는 루미. "초원에 내리는 비처럼 당신을 대신하여 울겠다"는 루미는 결국 모든 것의 해답은 사랑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루미가 울부짖는 '당신'은 그가 그토록 하나가 되고 싶어 했던 신일 수도 있고, 평생의 스승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타브리즈 샴스일 수도 있으며, 가족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루미 시집> 속에 누구를 대입해서 읽어도 아름다운 서정시가 되는 것이 이 시집의 가장 큰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책속에서

사랑은 비밀의 별을 관측하는 것.
이 사랑이 어디에서 오든 마지막에 우리는 그것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든 사랑을 설명해보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수줍어집니다. 어떤 달변가의 설명보다도 더 정확하게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침묵입니다.
사랑을 쓰려 하면 우리는 성급해지고 사랑을 쓰는 연필마저 스스로 ... 더보기 - Palaiologos
생각을 멈추어라. 생각은 야생동물과 같다. 생각은 사람의 마음을 사냥한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마음을 고치는 최고의 치료제이다. 상처는 긁으면 더 아프고 흉이 진다. 생각을 멈추는 것은 명백히 치료의 첫 순서이니 생각을 멈추고, 다만 자신의 영혼의 힘을 응시하라. - celine


추천글

800년도 더 된 옛날 사람 루미에게서 내가 찾은 위로는 매번 같았는데, 그러니까 ‘나’의 ‘오늘’ ‘여기’ ‘있음’으로 요약을 해볼 수도 있을 듯싶다. 기뻐도 되고 슬퍼도 되고 사랑해도 되고 이별해도 된다는 그 ‘자체’의 ‘주체’로 ‘나’의 ‘방향’을 거침없이 따르라는 것. 그때 나의 자율은 나에게 얼마나 크나큰 자유를 가져다주는가. 예서 끊임없이 부풀었다 터지는 힘이 ‘사랑’이리라.
- 김민정 (시인)




저자 및 역자소개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Mevlana Jelaluddin Rumi)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3세기 신비주의자이자 시인.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발키’라고도 불리며 ‘루미’가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1207년 9월 30일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인 발흐에서 태어난 루미는 당시 ‘학자들의 술탄’이라 불렸던 신학자 아버지와 지역 지도자의 딸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무굴 제국의 침략을 피해 현재 터키인 아나톨리아로 이주했다. 이후 그들은 코니아에 정착했고 ‘루미’는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저명한 학자이자 신비주의자로 평가받던 루미는 37세가 되던 해에 평생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샴스를 만나 인생 최대... 더보기


최근작 : <루미의 사랑의 시>,<루미 시집>,<루미의 우화 모음집> … 총 5종 (모두보기)

정제희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란어를, 테헤란대학교에서 정치외교를 공부했다. 현재 이란어 전문 통번역 센터인 ‘이란아토즈’의 대표로 이란어 통번역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테헤란 나이트》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왜 안돼요?》가 있으며 계간지 《ASIA》에 이란 문학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한국-이란 시의 만남’에서 양국의 시를 번역했다.


최근작 :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왜 안돼요?>,<테헤란 나이트>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책소개

“내가 신에게서 찾고자 했던 것을
오늘 한 사람 속에서 만나네”

상실과 이별 속에서도 오직 사랑의 영광만이!
페르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마스나비》
국내 유일 원어 번역판


상실과 이별 속에서도 오직 사랑의 영광만이!
우주적 시인 루미가 황홀경 속에서 써내려간 사랑의 시
13세기 페르시아의 대표 시인 루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작품 《마스나비》가 시공사에서 《루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종교인으로 추앙받는 루미를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페르시아어의 코란’, ‘신비주의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6권 분량의 《마스나비》 중 1권을 발췌 번역한 《루미 시집》은 총 75편으로 된 산문시로 신, 고독, 사랑, 삶을 노래한다. 《루미 시집》의 추천사를 쓴 김민정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루미의 글은 언제나 사랑의 경전으로 귀결된다. 먼 나라 페르시아에서 무려 800여 년 전에 태어난 시인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신이 분노하고 다툼을 한대도 나에게는 하프의 선율보다 아름다우며”, “사랑에 침몰하여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지만 당신 안에 침몰하는 것이라면 더욱 깊이 침몰하겠다”는 루미. “초원에 내리는 비처럼 당신을 대신하여 울겠다”는 루미는 결국 모든 것의 해답은 사랑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루미가 울부짖는 ‘당신’은 그가 그토록 하나가 되고 싶어 했던 신일 수도 있고, 평생의 스승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타브리즈 샴스일 수도 있으며, 가족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루미 시집》 속에 누구를 대입해서 읽어도 아름다운 서정시가 되는 것이 이 시집의 가장 큰 묘미라고 할 수 있다.

펼쳐 읽는 순간 영혼의 키를 자라게 할 이 책!
지금, 여기, 우리가 읽어야 할 인생의 지침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여기에서 루미의 시를 읽어야 하는가? 잠들지 않는 도시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며 가짜 자아를 쉼 없이 내보여야 하는 지금, 세상은 우리에게 고독과 외로움이 당연하다 부추기지만 루미는 고독과 외로움이 21세기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외로움과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사랑일 것이다.

800년도 더 된 옛날 사람 루미에게서 내가 찾은 위로는 매번 같았는데, 그러니까 ‘나’의 ‘오늘’ ‘여기’ ‘있음’으로 요약을 해볼 수도 있을 듯싶다. 기뻐도 되고 슬퍼도 되고 사랑해도 되고 이별해도 된다는 그 ‘자체’의 ‘주체’로 ‘나’의 ‘방향’을 거침없이 따르라는 것. 그때 나의 자율은 나에게 얼마나 크나큰 자유를 가져다주는가. 예서 끊임없이 부풀었다 터지는 힘이 ‘사랑’이리라. _김민정(시인)

때묻지 않은 루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 신과 인간에 대한 외침은 어느 화려한 수식어보다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상실과 이별, 고독 안에서 역설적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만이 결국 ‘나’의 방향을 찾는 길이라는 루미의 글이야말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읽어야 할 아름답고 위대한 고전이라 하겠다.

아름다운 언어가 선사하는 시 읽기의 즐거움

국내 유일 원어 번역판

루미의 시는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울림을 준다.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지혜를 발견하는 행위는 독자들에게 시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의 시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어쩌면 한 번 읽어서는 그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루미는 삶의 모든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담았지만, 그 안에 담긴 함축적 의미를 깨닫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여러 번 오래 반복해서 읽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체화시켰을 때 비로소 그가 말하고자 했던 참된 지혜와 가르침, 사랑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독자들이 루미의 글을 읽으며 그 안에서 존재의 답을 찾는다. 《루미 시집》에 소개된 시는 곧 ‘루미’ 그 자체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슬람 문학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영역본을 가지고 있으며, 젊은 예술가들이 꼽은 위대한 성인 루미의 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역자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란어 전문 통번역 플랫폼을 운영하는 이란어 전공자 정제희 역자가 번역을 맡았고, 기존 출간되었던 중역본들과 다르게 이란어를 그대로 번역하여 가능한 한 원문의 느낌과 뜻을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루미의 혼이 담긴 글을 원어로 느끼고자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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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9.4


800년전에도 어느때보다 뛰어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시들. 다만 띠지의 저 빨간 글씨는 시를 촌스럽게 하는 듯.
ugha 2021-01-1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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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루미 시집

루미의 대표적인 저작 <마스나비> 1권을 발췌, 번역한 책이다. 사랑을 노래하는 시와 교훈을 주는 우화들이 섞여있는 책이다.
루미가 시에서 노래하는, 사랑하는 이는 그의 스승이었던 샴스 타브리즈 일 수도 있고, 그가 하나가 되길 바랐던 “그의 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그의 시는 800년 가까운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고요한 정적 속에 있는 것 같은 감동을 준다. 그가 시에서 노래하는 “사랑”은 단순히 스승이나 신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루미는 이 시집에서 이별,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을 노래하면서도 사랑에 대한 긍정을 표현하는걸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을 하지 않았더라면 슬퍼하지 않았겠지만, 사랑을 했기에 느꼈던 행복에 대해서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사랑했던 이는 떠나갔지만, 사랑했던 이의 존재는 가슴에 지워지지 않고 영원토록 함께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별을 하는 것에 슬퍼할지 망정, 그것 때문에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우리의 생활상이 달라져도,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우리의 근본적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한, 루미의 시집은 계속 읽힐 것이고 우리에게 계속 감동을 줄 것이다.
사랑은 비밀의 별을 관측하는 것.
이 사랑이 어디에서 오든 마지막에 우리는 그것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든 사랑을 설명해보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수줍어집니다. 어떤 달변가의 설명보다도 더 정확하게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침묵입니다.
사랑을 쓰려 하면 우리는 성급해지고 사랑을 쓰는 연필마저 스스로 부서질 것입니다.
사랑을 설명할 때 이성은 낮잠에 빠진 나귀와 같이 무력해집니다.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그 자체입니다.
태양은 태양이기에 떠오르는 것, 이유는 반드시 자신 안에 존재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와도 같지 않기에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사랑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Palaiologos 2020-02-2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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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시집

신성한 자의 행동을 평가하지 말라.
배와 배는 똑같이 적는다고 같은 단어가 아니다.
두 벌이 같은 곳에서 같은 풀과 물을 먹어도 이 사슴은 배설물을, 저 사슴은 순수한 사향을 만든다.
두 갈대가 같은 물을 먹어도 이 갈대는 텅 비어 있고, 저 갈다는 설탕으로 가득 찬다.
물 사이에 만 가지의 유사점이 있어도 그 차이는 한평생 인생만큼 크다.
이것이 먹으면 오물이 되고 저것이 먹으면 신의 은혜가 된다.
이것이 먹으면 질투를 낳고 저것이 먹으면 신의 지혜를 낳는다.
이 땅은 비옥하고, 저 땅은 황폐하다.
이 사람은 무결한 천사이고 저 사람은 들짐승과 악마이다.
영혼의 미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둘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30-)

내가 나의 문제들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찌 목마른 자에게 물을 내어줄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잘못되어 고통스럽다면 인내하라. 인내는 기쁨으로 가는 문의 열쇠이다.

생각을 멈추어라.생각은 야생동물과 같다. 생각은 사람의 마음을 사냥한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마음을 고치는 최고의 치료제이다. 상처는 긁으면 더 아프고 흉이 진다. 생각을 멈추는 것은 명백히 치료의 첫 순서이니 생각을 멈추고, 다만 자신의 영혼의 힘을 응시하라.(-150-)


산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삶의 종착지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인지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그 죽음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그 안에서 고통과 슬픔을 잉태하곤 한다. 철저히 인간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으며, 남의 죽음을 가로채는 것에 대해서 철저하게 응징하고 싶어한다. 인간만이 느끼는 무형의 가치들이 이 책에서 느껴지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깊이 그 삶의 언저리에 다가가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루미 시집이다. 이 시집은 그의 전집 중 하나이며, 유명한 시< 마스나비>라는 책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특별히 잘 알려지지 않는 시인이며, 그의 시에는 철학이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선택할 때 그것에 대한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깊은 성찰에 다가갈 수 있으며, 우리가 하는 수많은 삶의 잔상에 다가갈 수 있다. 살아가면서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가지는 처절한 응징, 내가 쏟아냄으로서, 말과 행동이 결국에는 나 자신에게 돌아오며, 인간은 그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언어를 차용해 쓰면서, 그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곤 한다. 아픔의 연속적인 기울임,기다림과 인내가 인간의 삶에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삶에 대한 아름다운 자세이며,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를 보호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무형의 가치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내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살아가면서 방향을 잃고 넘어질 때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의 시 <마스나비>를 씀으로서 자신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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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9-07-1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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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시집

이 책은 13세기 아랍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루미의 시집입니다. 루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받는 <마스나비>의 전 6권 중 1권을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역자는 2만 6천여 구에 달하는 시구 중에서 총 73편의 시를 엄선하여 산문시 형식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스나비>는 루미가 극도의 황홀경 속에서 쏟아낸 것을 그의 제자가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안에는 삶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수피주의자였으며, 위대한 구도자였던 루미의 순수하고 영감어린 시를 읽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한층 정화시켜 줍니다. 삶과 죽음, 신과 인간에 관한 그의 통찰은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이슬람 문학의 정수를 이루는 루미의 시를 세련되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원역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김환영의 종교 이야기(17)(마지막 회)] ‘세계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

월간중앙



[김환영의 종교 이야기(17)(마지막 회)] ‘세계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
“우리 무덤을 지상이 아닌 사람의 가슴속에서 찾아라”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가수 마돈나 등 수많은 예술·문화인들 영감의 원천…미국·유럽 등과 달리 국내에선 큰 주목 받지 못해





▎루미는 세계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터키 부자(Buca)에 있는 루미의 조형물.

세상에 ‘나’ 아닌 것은 없다. 우주는 ‘거대한 나’다. 종교, 특히 종교 중에서도 신비주의는 ‘작은 나’를 망각하고, 상실하고, 멸살하지 않고서는 ‘큰 나’를 발견할 수 없다고 설파한다.

왜 그럴까. 신(神)을 믿는 신비주의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전개된다. 이미 뭔가로 가득 찬 것은 다른 게 들어올 수 없다. 나의 내면이 온갖 욕망에 집착하는 ‘나’로 가득 차 있으면 ‘신’이 들어올 수 없다. ‘나’를 잊고 ‘나’를 비워야 신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신을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종교는 ‘체계화된 신비’다. 미스터리다. 신비주의가 생성되지 않은 종교는 없다. 신비주의는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신비주의가 정통으로 인정받기 전에는 주류로부터 외면당한다. 어쩌면 신비주의 때문에 일부 비(非)신앙인에게 종교가 ‘거대한 거짓말’의 체계로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종교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종교는 ‘벌레보다 못한 인간’이 세상의 ‘궁극적인 원인’이나 ‘절대자’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종교는 또 살인자라도 깨달음을 얻어 ‘신(神)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신비주의(神祕主義, mysticism)를 이렇게 정의한다. “우주를 움직이는 신비스러운 힘의 감지자인 신이나 존재의 궁극 원인과의 합일은 합리적 추론이나 정해진 교리 및 의식의 실천을 통해서는 이뤄질 수 없고 초이성적 명상이나 비의(祕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종교나 사상.” 이 정의에 따른다면 신비주의는 스스로를 본류로부터 격리시키는 성향이 있다. 신비주의의 성공 여부는 보편성 확보 여부에 있다.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수백만 권 읽혀





▎루미의 대표작 [마스나위]의 1461년 판본.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비주의자는 누구일까? 손을 꼽을 때 잘랄 앗 딘 알 루미(1207년께~1273년)를 빠트릴 수 없다. 영성가 디팍 초프라, 가수 마돈나를 비롯한 문화·예술가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유네스코는 2007년을 ‘루미의 해’로 선포했다. 루미는 세계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이다. 이란이 포함된 페르시아어 사용권의 7000~8000만 명의 사람이 그를 ‘우리들의 스승(Mowlana)’이라고 부른다. 그의 주저(主著)인 <마스나위>는 ‘페르시아어 <꾸란>’으로 평가된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기원전 550~330년)의 후예 중 하나인 화레즘 제국(1077~1231)에 있는 발흐에서 태어났다. 루미의 신비주의 배경은 수니파 이슬람이다.

루미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 탈레반 정권은 음악을 금지했다. 세계의 선지자급 종교 지도자들 중에도 음악이나 춤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갈대 피리(reed flute)를 좋아한 루미는 음악과 춤을 신에게 다가가는 수단으로 삼았다.

특히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빙글빙글 돌면서 추는 춤(whirling dance)’은 루미의 제자들이 창시한 마울라위야 교단의 트레이드마크다. 터키의 세계적인 관광자원이다. 한때 터키 정부는 신비주의를 통제하려고 했지만, 터키의 이슬람 신비주의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루미는 엑스터시 상태에서 시를 썼다. 그가 황홀경에 도달하는 수단은 피리 소리, 북 소리, 대장간에서 망치질 하는 소리, 물레방앗간의 물 흐르는 소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루미의 연가(戀歌)가 미풍(微風) 수준으로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루미 열풍은 미국 출판계에서 미풍·돌풍을 넘어 ‘붙박이 태풍’ 수준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수백만 권이 팔렸다. 스테디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과 이슬람은 더욱 껄끄러운 관계가 됐다. 어떻게 ‘케케묵은’ 13세기 이슬람 시인이 최고의 아마존·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등극한 것일까.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이슬람 연시(戀詩)의 새로움 선사





▎러시아정교회 성당. 구르지예프는 정교회의 신비주의 전통,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과 동양의 종교 철학을 융합한 체계를 선보였다.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작용한 요인들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하는 게 가능하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루미는 탁월한 ‘사랑의 시인’이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게 ‘사랑해요’라는 그 말 한마디다.

하지만 좋은 말도 세 번 이상 들으면 질리는 게 인간 본성이다. 사랑에도 뭔가 신선한 게 필요하다. 이슬람, 그중에서도 수피즘(Sufism)을 배경으로 하는 루미는 미국인들에게 이슬람 연시(戀詩)의 새로움을 선사했다. 대중적인 보편성도 있다. 루미는 신학·철학·천문학·법학 등의 분야에 달통한 학자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는 일상 생활 속에서 사랑과 신앙을 끄집어낸다. 유머도 있지만, 깊이도 있다.

루미가 신봉한 수피즘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유교와 천도교와 마찬가지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추구하는 한 종교적 경향이다. 수피즘은 ‘아슬아슬’하게 이슬람의 사상적·종교적 영역을 넓혔다.

모든 종교에는 정통과 비정통, 다수파와 소수파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 정통·다수파가 보기엔 비정통·소수파는 ‘이단’이다. 억압하려고 한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 죽이려고 한다. 오늘날 수피즘 교단은 100여 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슬람의 역사에서도 ‘초기 이슬람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수피즘은 발생 초기부터 경계의 대상이었다. 순교자도 나왔다. 루미보다 300여 년 전에 태어난 수피의 성자 만수르 알 할라즈(858~922)는 이단으로 몰려 922년 바그다드에서 처참하게 죽었다. 트랜스 상태에서 “내가 진리다”라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만수르 알 할라즈의 사상을 일부 수용한 루미는 살아남았다. 시대가 바뀌었고 워낙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피즘에 대한 박해는 주기적으로 재연되고 있다.

이슬람은 유대교·그리스도교와 더불어 대표적인 일신교다. 세 종교는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 이 3대 일신교는 굉장히 다르게 보이면서도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구원의 종교다’라는 말도 있지만, 사도 바울은 신망애(信望愛) 삼덕(三德) 중에 사랑이 최고라고 했다. 그리스도교는 적어도 사랑이 아주 중요한 종교다.

유대교에도 사랑의 전통이 있다. 대표적인 문헌은 <아가(雅歌)>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하는 <아가>는 이렇다. “구약 성경의 한 편. 여덟 장으로 된 문답체의 노래로, 남녀 간의 아름다운 연애를 찬양한 노래다. 저자는 솔로몬으로 추측되기도 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19금 수준의 노골적인 낯뜨거운 내용도 많이 나온다.

성경 <아가(雅歌)>의 ‘이슬람 버전’





▎수피즘 전통에 따라 세마 춤을 추는 사람들.

루미의 연시는 <아가>의 이슬람 버전이다. 루미는 이슬람 또한 사랑의 종교라는 것을 논증한다. 루미는 페르시아의 연시 전통을 이슬람 신앙과 결합했다. 유대교·그리스도교 배경의 독자들은 루미를 통해 이슬람 또한 사랑을 중시하는 종교라는 일체감, 호감을 체험한다. 루미가 파악해낸 인간의 영혼은 신으로부터 분리돼 있다. 루미가 쓴 시의 주제는 견우직녀처럼 애달프게 결합을 꿈꾸는 인간과 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가 아닌, ‘리버럴 아메리카(Liberal America)’는 다원주의·다문화주의를 표방한다. 다원주의·다문화주의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이슬람주의(Islamism)와 이슬람(Islam)을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이슬람과 관계된 것은 모든 게 나쁘다고 하는 것은 다원주의·다문화주의의 에토스(ethos)와 맞지 않는다. 루미는 이슬람에도 인류 보편의 선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루미는 포스트모던 시대, 탈종교(post-religion)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성 심리와 찰떡궁합이다. 포스트모던 시대 사람들은 제도화된 종교나 인격적인 신을 믿는 것은 꺼리지만,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갈망이 있다. 루미는 그러한 갈망에 단비 같은 존재다. 선불교와 마찬가지로 루미는 미국·유럽 사회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교과 무신론 사이에서 영적인 ‘제3의 길’을 놓는다.

이러한 모든 것을 배경으로, 미국 출판업계의 마케팅이 먹혔다. 루미를 일종의 ‘시원적 휴머니스트(proto-humanist)’로 포장했다. 사실 루미는 수피즘 교단 중 하나를 창시한 인물이지만, 수니파 이슬람에 속한다. 그의 시에는 무함마드를 존경하고 알라를 찬양하는 내용도 많이 등장한다.

루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꾸란>의 종이다. 나는 신께서 선택하신 무함마드의 길에 놓인 먼지에 불과하다.” 미국 출판계는 무슬림 루미의 시에서 ‘껄끄러운 부분을 제거한(sanitized)’ 후에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루미를 상품화했다.

귀인을 만나면 우리 인생이 바뀐다. 루미에게 샴스앗 딘이 귀인이었다. 1244년에 만났다. 샴스 앗 딘은 까다롭고 어떤 때는 잔인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루미가 만난 최고의 스승이었다. 루미는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샴스 앗 딘은 루미에게 뻔한 미래로부터 도망가라고 설득했다. 루미는 이미 24세 때부터 웬만큼 사회적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가 보장된 종교지도자였다. 그런 그에게 ‘책을 읽지 말라’고 가르쳤다. 언어와 논리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음악과 시와 춤으로 신에게 다가가라고 일러줬다.

“논리 대신 음악과 시로 신에게 다가가라”





▎기독교·유대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인 이스라엘 파트리아크 동굴(이브라힘 모스크).

루미를 둘러싼 주요 논란 중 하나는 그가 샴스 앗딘과 호모에로틱(homoerotic)한 관계였느냐 아니였느냐다. 이 문제에 대해 펄쩍 뛰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모른다’는 식으로 봉합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논란은 사실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의 산물이기도 하다. 당시 이슬람 사회는 남자들 간의 우정을 매우 중시하는 사회였다. 13세기 아나톨리아를 21세기의 시각으로 보면 이상한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1248년 샴스 앗 딘이 사라졌다. 둘의 사이를 질투한 루미의 아들이 그를 암살했다는 게 정설이다. 샴스 앗 딘을 향한 그리움과 상실감은 루미를 시인으로 만들어줬다.

루미는 관용의 사상가다. 무식한 사람, 유식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어울리고 대화했다. 그리스도교인과 유대인들과도 친교를 맺었다. 루미의 장례식에는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루미가 살았던 시대의 이슬람 세계는 ‘잘나갔다’. 이슬람권과 그리스도교권은 스승-제자 관계였다. 어떤 문명이나 공통체, 조직·국가·종교가 ‘잘나갈 때’는 포용력이나 개방성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밀리기 시작할 때’부터는 편협하게 되고 폐쇄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21세기에 우리가 목도하는 이슬람주의의 폭력성·편협성은 어쩌면 이슬람권의 피포위심리(siege mentality) 때문이다.

루미는 다섯 살 때 천사들을 봤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슬람 지도자였다. 루미가 6세였던 1218년께 그의 식구들은 고향을 떠나 4000㎞에 달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몽골의 침입(1215~1220)을 피해서다. 실크로드를 따라 바그다드·다마스쿠스·메카 등지를 거쳐 셀주크 투르크 왕조가 다스리는 코니아에 정착했다.

오늘날의 터키에 있는 코니아는 셀주크 투르크 왕조의 수도였다. 루미의 어원은 로마다. 루미는 ‘로마인’이라는 뜻이다. 그의 식구들이 정착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이슬람 입장에서는 옛 로마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루미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째 부인과 2남, 둘째 부인과 1남1녀를 뒀다. 그의 대표작은 2만6000구로 된 6권이 대서사시 <마스나위>다. 그의 묘소는 오늘날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묘비명은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무덤을 지상에서가 아니라 사람의 가슴속에서 찾아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루미의 우화 모음집> <루미평전: 나는 바람 그대는 불> <나는 다른 대륙에서 온 작은 새: 잘랄 앗 딘 루미 우화잠언집> 등 루미 관련 서적이 몇 권 출간됐다. 아직은 큰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아쉽다.

[박스기사] “인내의 칼로 분노의 목을 베었노라” - 페르시아어 사용권 8000만 인구의 스승 루미 가라사대

● 하늘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하늘은 그토록 청명하지 않을 것이다. 태양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 어떤 빛도 내지 않을 것이다. 강물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강물은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다. 산과 땅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이다.
● 여러분이 할 일은 사랑을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사랑에 반대해 쌓은 장벽을 여러분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이 여러분의 행동까지 아름답게 만들도록 내버려둬라.
● 나는 인내의 칼로 분노의 목을 베었다.
● 아름다움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 때야 온 세상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상실감으로 슬퍼하지 말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 우리를 낳게 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우리의 어머니다.
● 거짓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만, 진리는 우리에게 즐거운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
● 당신이 우울한 이유는 당신이 건방지기 때문이요, 당신이 남을 칭찬하길 꺼리기 때문이다.
● 당신이 모든 재물의 가치를 하나하나 알면서도 정작 당신 영혼의 가치를 모른다면, 당신은 바보다.
● 사랑은 쓴 것을 달콤하게, 구리를 황금으로, 쓰레기를 와인으로, 모든 고통을 명약으로 만들어준다.

※ 김환영 - 중앙일보 논설위원. 외교부 명예 정책자문위원. 단국대 인재 아카데미(초빙교수), 한경대 영어과(겸임교수), 서강대 국제대학원(연구교수)에서 강의했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이슬람 입문에서 수피즘까지 연구한다 < 신학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이슬람 입문에서 수피즘까지 연구한다 < 신학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이슬람 입문에서 수피즘까지 연구한다
이슬람연구소, '이슬람 강좌' 개최…문상철 전재옥 최바울 등 강의
기자명 주재일  승인 2005.03.08 00:30 


한국이슬람연구소(소장 전재옥)가 이슬람을 연구하는 학자와 선교사를 강사로 초청해 3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한국이슬람연구소에서 '이슬람 강좌'를 개최한다.

첫 시간은 박성은 목사(천안대 기독교학과 박사과정)가 이슬람에 대한 기초 정보를 제공하고, 3월 26일에는 김아영 박사(한국이슬람연구소 부소장)가 '이슬람의 예수 이해'를 주제로 강연한다.

4월에는 △2일-팔레스타인 문화 이해(송경숙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9일-이슬람과 대화하기(이장호 아세아연합신대 선교학과 교수) △16일-무슬림 여성(조희선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23·30일-이슬람권 선교의 실제Ⅰ·Ⅱ(최바울 인터콥 본부장·이만석 이란 선교사)를 주제로 세미나를 한다.

5월 첫째 주를 쉬고 14일에 문상철 원장(한국선교원)이 수피즘(Sufism·이슬람 신비주의)을 강의하고, 마지막 날인 21에는 전재옥 소장이 '이슬람권 선교사역과 영성'을 주제로 강의한다.

한국이슬람연구소는 "이스람 전문가의 강의는 이슬람을 히해하고 무슬림을 이웃으로 만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며 "선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가 열리는 날 같은 장소에서 오후 3시에 아랍어 강좌가 열린다.

문의 : 031-946-7580, Fax)031-942-6901
회비 : 10만 원(교재비와 식비 포함)
장소 : 한국이슬람연구소(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산남리 22-10)

수피즘, 마음에 드는 이슬람교입니다 - 오마이뉴스

수피즘, 마음에 드는 이슬람교입니다 - 오마이뉴스

수피즘, 마음에 드는 이슬람교입니다[이란 여행기 16] 사피에딘의 묘, 아르다빌
09.04.02 12:14l최종 업데이트 09.04.02 12:14l
김은주(cshchn2004)

공감16 


▲ 사피에딘의 기도방인 굉장히 작은 방을 찾아내 그 방을 좋아했던 작은 애.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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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국가 이란을 찾은 건 이슬람교라는 종교에 끌려서가 아니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난 볼거리라고는 모스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교국가를 가면서 정작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참 무지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사람이 이슬람교를 제대로 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은 간혹 뉴스에서 메카를 순례하기 위해 모여드는 무슬림의 광신적인 모습이나 보면서, 아니면 테러와 관련한 무슨 무장단체 정도의 뉴스로 이슬람교를 접하는 게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뉴스에서는 분명 편파적인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티벳인들도 라싸 순례를 평생의 업으로 삼으며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로 갑니다. 그들에 대해 우리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인 민족이라고 하면서 좋게 보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메카에 모여든 무슬림에 대해서는 이렇게 고운 시선으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방송보도에 있다고 봅니다. 방송에서 메카에 모여든 이슬람교도에 관한 보도를 할 때는 꼭 그들이 거기 모여서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감정을 많이 넣어서 보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교 하면, 광신적인 테러리스트로 생각하게 만들었지요.

흔히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하는데 이는 텔레비전이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보처럼 방송보도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고, 그래서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유별나게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 사피에딘의 묘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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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란 여행 나흘째 아르다빌에 있는 사피에딘의 묘를 찾아 이란의 수피주의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참 뜻밖이었습니다. 이슬람교에 이런 종파도 있구나, 하고 적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갖고 있던 이슬람교에 대한 생각도 이 수피즘이라는 종파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수피즘은 흔히 신비주의 이슬람교라고도 합니다. 신과 인간의 이원체계를 뭉그러뜨리고 신과 인간의 완전한 합일된 체험을 가장 중요시하지요. 수피즘의 창시자는 메블리나 루미라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인데 그가 죽기 전에 한 말, "나는 신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디서도 찾지 못하였는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그분이 거기에 계셨다"에서 알 수 있듯이 수피즘은 내면에 이미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 하에 수행을 통해 신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내 마음이 부처'라는 불교의 메시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깊게 들어갔을 때는 모든 종교가 하는 말이 다 유사하지 않을까요.



▲ 사피에딘의 묘에 있던 그릇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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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즘을 처음 경험하게 한 장본인인 사피에딘의 묘를 찾은 날은 여행 4일째입니다. 이 날은 함께 여행 간 일행들과 함께 봉고버스를 대절해서 대전 찍고 광주 돌고 식의 패키지 스타일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를 태우러 온 봉고버스 기사는 28살짜리 총각인데 얌전해 보이는 인상이었습니다. 얌전하다는 표현보다는 순진해 보인다는 게 어울리겠군요. 그런데 그는 자신보다 더 부끄럼을 타는 21살짜리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얌전한 두 청년이 운전하는 봉고버스를 타고 아르다빌 시내에 있는 수피즘 성자 사피에딘의 묘로 향했습니다. 묘로 간다고 해서 우리나라 왕릉처럼 거대한 무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이란에서 어느 지역을 가든 꼭 들리는 곳이 모스크인데 모스크를 연상시키는 화려하면서도 규모가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 사피에딘의 묘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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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에딘의 묘에는 모스크처럼 돔이 있고, 첨탑이 있고, 안마당이 있으며, 성자 사피에딘의 관이 안치돼있고, 생전에 봤던 책이며, 그릇이며 이런 게 전시 돼 있는 꽤 넓은 방이 있었습니다.

입장료 300원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안마당에는 아직 눈이 덜 녹았고, 바닥은 살얼음이 살짝 얼어서 좀 미끄러웠습니다. 우리 집 애들은 눈을 뭉쳐서 서로 던지기도 하고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즐겼는데 스케이트장 같다고 좋아했습니다.

안마당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더니 히잡을 쓴 퉁퉁한 아줌마가 앉아서 표를 받고 있었습니다. 작은 책상을 앞에 놓고 표를 받는 아줌마의 표정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말이 통한다면 사피에딘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자세한 설명을 들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넓은 방 안으로 들어가니까 좀 어둑어둑한 구석에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관리인인 듯 했습니다. 전시물을 손으로 만진다거나 훼손되는 걸 감시하는 모양입니다. 2500년 된 유적지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사르가데가 길가에 그냥 방치된 모양으로 서있는 걸 감안하면 우리가 오늘 찾은 이곳이 엄청난 대접을 받고 있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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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피에딘의 묘 안마당에는 눈이 조금 남아 있었다. 안마당에 남은 눈으로 놀이를 찾아내 즐긴 큰 애.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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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건물 안에 묘가 있었습니다. 대리석관 안에 시신이 들어있는 모양입니다. 그 대리석이 바로 묘인 것입니다. 하페즈의 무덤에 갔을 때도 관이 덩그러니 밖에 나와 있고 거기서 사람들이 관을 껴안기도 하고 입을 맞추고 하는 걸 봤는데 여기 사피에딘의 묘도 사디나 하페즈의 묘처럼 관이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 말고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관에 손을 얹고 예를 표하는 걸 보고 나도 그렇게 했는데 차가운 대리석 촉감에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작은 애는 이 건물에서 마음에 드는 장소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성자가 기도했던 기도실인데 굉장히 작은 방이었습니다. 눕는 건 불가능하고 오직 앉아서 명상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방이었는데 작은 애는 그 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나도 사실 그 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방에서라면 명상이 잘 될 것 같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조명이 어두워서 그런지 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상한 평화와 고요가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관 안에 누워있는 성자 사피에딘이 이룩한 평화가 공간에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피에딘의 묘에는 그릇들도 많았습니다. 웬 성자가 그릇은 이렇게 많이 갖고 있나 했더니 사피에딘 가문이 사파비 왕조의 조상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명문가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릇도 많았을 것입니다.

사피에딘의 묘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종교성향이 강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난 이곳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바람일지는 모르지만 한순간 마음을 흔들리게 했던 그 평화로운 느낌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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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사상 분류에는 다음과 같은 세부 분류가 존재한다.

  1. 이슬람의 사상〔槪說〕
  2. 이슬람세계의 성립
  3. 마호메트
  4. 코란
  5. 이슬람 정통사상
  6.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
  7. 이슬람 철학사상의 계보
  8. 알 킨디
  9. 알 파라비
  10. 이븐 시나
  11. 알 가잘리
  12. 서방 이슬람의 사상가
  13. 이븐 루시드
  14. 현대 이슬람 사상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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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통사상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
Islam 正統思想 이슬람 교도의 9할 이상을 점하는 대중을 순나파(순니)라고 부르고 있다. 순나라는 것은 고인(古人)이 보여준 생활의 규범이라는 뜻으로서 이슬람에서는 특히 마호메트의 언행을 의미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성전(聖傳)(하디스)에 의하여 후세에 전달되었으며, 하디스를 연구하는 전문가를 무핫다신이라고 한다. 성전은 마호메트의 사후(死後)에 여러 가지로 종교상의 의견이나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각기 자기에게 편리하게 창작되었기 때문에, 성전 학자(聖傳學者)는 각 성전의 경로(이스나드)를 음미하여 진위(眞僞)를 결정하는 일에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수십 만의 성전 중에서 유래가 정확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선별되었다. 그 선별(選別)이 일단 안정을 보인 것은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전반에 걸쳐서이다. 이 안정된 순나(規範)를 좇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른바 정통파라고 하는 것이 형성되었다.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점에서 견해도 달리 하는 것은 분파로 나누어졌으며, 혹은 이단으로도 되었다. <코란>과 하디스는 이슬람교의 근본이기는 하지만 <코란> 중에서도 여러 가지 의의(疑義)가 생겼으며, 또 <코란>에도, 하디스간에도 상호모순되는 조항이 약간 있다. '알라는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코란>은 알라가 창조한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과거로부터 존재한 것인가(創造·非創造說)', '인간은 신(神)이 미리 정한 운명의 궤도 외에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인가(宿命說)', 아니면 '의지의 자유가 어느정도 허용되고 있는 것일까',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사상상(思想上)의 파벌이 생겼다. 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8세기 초경부터 성대하게 된 무타질라파(派)일 것이다. 이 파는 선행(先行)한 카다르파(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파)의 이론에 그리스합리주의을 가미하여 그들의 이론강화를 꾀했으며, 나아가 <코란>에 대해서는 차조설을 취하였고, 알라에 대해서는 육체설(肉體說)을 부정하고 있다. 정통파는 <코란>의 비창조설,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는 숙명설을 취하였으나, 아바스조(朝) 초기, 특히 알 마문과 알 무타심 시대(9세기 전반)에는 무타질라파가 대세력을 얻었다. 그리하여 <코란> 비창조설(非創造說)을 고집하는 아하마드 이븐 한발(780∼855) 등이 2년간이나 투옥당할 정도였다. 이후 말 아슈아리(873∼935) 등이 나타나 무타질라파의 이론을 역용하여 정통파의 주장을 그러한 공격에 감내할 수 있도록 보강하였다. 정통파 중에서도 성법(聖法)(샤리아)의 운용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학파(學派)를 낳았다. 이슬람의 법원(法源)은 <코란>·하디스·키야스(類推)·이주마(교도의 합의)등이나 그것들에 대하는 비중의 차(差)를 두고 지금은 네 개의 학파로 나뉘어져 있다. 그밖에 다른 제학파는 거의 망하였다. 가장 합리주의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아브 하나피(699 ?/80∼767 ?)가 일으킨 하나피파이며, 가장 전통을 고집하고 우익적이라고 일러지는 것이 아하마드 이븐 한발의 한발파(派)이고, 중용적(中庸的)인 것이 말리크 이브 아나스(715/12∼795)에 주창된 말리크파와 알 샤피(767∼820)의 샤피파이다. 네 개의 법원(法源) 중 이주마는 이슬람 교도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라마(아리무의 복수로서 이슬람 학자의 뜻)의 공론(公論)이 그것을 대표한다. 이주마의 권위는 <코란>이나 순나보다도 숭고하다고까지 생각되었으며, 따라서 우라마는 이슬람 사회의 중심 세력을 이루면서 금일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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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
Islam 神秘主義(Sufism) 수피즘(타사우프)는 이슬람 그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말과, 그리스도교나 그리스·이란·인도 등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있으며, 그 쌍방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그리스도교의 금욕 고행의 수도승을 의미한다고 생각되는 말이 <코란>중에 보이고 있으므로, 그 영향이 일찍부터 있었다고 하는 경향도 있다. 금욕주의의 독신가(篤信家)로서 우선 역사에 기록된 사람은 바스라의 하산 알바스리(728 사망)와 여성으로는 라비아 알 아다위야(801 사망)등이 있다. 이들은 다함께 수피즘의 선구자로 인정되고 있다. 후자는 처음에 사막에서 정진생활(精進生活)을 하고 있었으나, 후에 바스라에 거주하며 여러 가지의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슬람의 고행자를 수피(값싼 양모직의 寬衣를 입었기 때문이라 한다.)라고 부르게 된 것은 8세기 중엽부터이다. 그들은 대접이나 사발 등을 가지고 탁발(托鉢) 여행을 계속하면서 불교도(佛敎徒)의 염불에 비유할 만한 데이클을 부르며 걸어다녔던 것이다. 수피즘의 이론을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은 9세기의 알 무하시비(857 사망)라고 한다. 그의 제자에 아츠·쥬나이드(910 사망)라고 하는 영걸이 나왔다. 또 알 하라쥬(922 사망)는 수피의 대사(大師)들 중에서 가장 걸출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바그다드에서 형을 받아 죽었다. 그는 이란의 농촌에서 출생했으며 쥬나이드의 제자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나는 진리(眞理) 이다"라고 하는 그 말은 알라와 융합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수피즘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여 이름이 높다. 또한 에스파냐의 이븐 아라비(1240 사망)라든가 이집트의 이븐 알 파리드(1235 사망) 등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요컨대 수피즘에서는 명상(瞑想)·망아(忘我) 등의 수양에 의하여 오로지 알라를 사랑함으로써 마침내 그것과 융합한다고 하는 법열(法悅)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욕(無欲)·무사(無私)의 생활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나중에는 많은 승단(僧團)을 만들어 속세(俗世)를 떠난 생활을 보내는 것이 보통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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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철학사상의 계보 알 킨디→
Islam 哲學思想-系譜 다른 제 종교도와 접촉한 결과 그 자극으로 말미암아 이슬람 교도는 신앙상의 일, 인간의 행위, 자유의지, 숙명(宿命), 알라와 사람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들에 대한 사상에 따라 여러 파가 대립 논쟁하게 되었다. 이 논쟁에 있어서 자설(自說)을 수호하고 상대를 논파(論破)하기 위하여 그리스·이란·인도 등의 학문이 섭취되었는데, 특히 그리스 철학의 도입은 특필할 만한 것이었다. 9세기의 바스라의 사람인 아불 푸다일 등이 그 선구이며 안 낫자무는 그 제자이다. 당시는 그리스 철학을 배우는 사람이 적고, 그런 사람은 다하루(永遠)의 무리라 불리어졌다. 낫자무는 <코란>과 순수일신(純粹一神)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하여 이들 다하루의 무리들을 맹렬하게 공격하였지만, 그로 해서 자신도 그리스 철학을 배우게 되어 이것을 무기로 삼았던 것이다. 10세기 초에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알 무안마르, 바스라파의 앗 쥬바이(916 사망)와 그의 아들 아부 하심(933 사망) 등은 모두 그리스 철학을 무기로 삼아 자설(自說)을 지키려고 한 이슬람의 신학자들이다. 이와 같은 이슬람학(學)과 그리스 철학과의, 이른바 절충주의자들과는 달리 그리스 철학의 도(道)에 더욱 깊이 들어간 사람들을 아라비아어화(語化)한 그리스어(語)로 파이라스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스 철학을 와전(訛傳)하여 파루사파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의 사람들은 이슬람의 지식계급 사이에서는 특수한 것으로 간주되어 냉대된 나머지 박해를 당하거나 살해되기까지 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슬람을 배반한 사람들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 철학을 통하여 알라의 가르침의 진의(眞意)를 탐구하려던 진지한 무슬림(이슬람 교도)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그들은 종교와 철학과의 조화라고 하는 문제에 목숨을 걸고 매달렸던 사람들이었다. 이슬람의 철학자들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웠다고 일컬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신(新)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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