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7

이 불편한 곳에 젊은 사람들이 왜... 장곡면의 비밀 - 오마이뉴스

이 불편한 곳에 젊은 사람들이 왜... 장곡면의 비밀 - 오마이뉴스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 4화

이 불편한 곳에 젊은 사람들이 왜... 장곡면의 비밀[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 법인
21.04.18 12:41l최종 업데이트 21.04.18 12:49l
박진도(jd5285)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도시의 동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사람 중 46만 645명이 농촌(읍면)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귀농·귀촌 인구는 2017년 51만 명을 정점으로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귀촌인은 44만 4464명인 반면에 농사 목적으로 귀농한 사람은 1만 6181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자체는 인구 감소에 대응하여 귀농·귀촌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지만 인구감소를 막지 못하고 있다. 귀촌자의 상당수는 직업, 주거 및 생활환경의 편리성, 자연환경이 양호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로, 순수 농촌지역보다는 도시 주변 농촌 지역으로 이주한다.

반면에 귀농인은 농업 여건이 좋은 전통적 농업 지역에 위치한 시·군을 상대적으로 선호한다. 귀농인 1만 6181명 가운데 90%인 1만 4584명이 비수도권으로 귀농하였다.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신음하는 농업 지역으로서는 소중한 존재이다.


▲ 초보 농부와 프로 농부의 만남 행사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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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자 가운데는 언론 등에서 홍보하는 억대 농부를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은 규모의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1인 귀농 가구의 비중 72.4%, 가구주의 평균 연령 55세, 작물 재배 가구의 평균 재배면적 0.37ha"(<2019 귀농어·귀촌인 통계> 통계청)라는 수치에서 보듯 귀농자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업에만 종사하는 전업 귀농인은 약 70%이고, 30%는 다른 직업을 함께 갖고 있다. 귀농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은 농촌에 정착하지 못하고 도시로 되돌아간다. 귀농 가구 수 자체도 2017년 1만 2630호에서 2019년 1만 1442호로 줄었고, 귀농 가구의 평균 가구원 수도 1.55명에서 1.42명으로 감소했다.

귀농을 통해 인구 감소를 억제하고 농촌 마을의 활력을 찾을 방법이 없을까. 개인이 단신으로 귀농해서 정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지역공동체가 귀농인을 품어야 하고, 귀농인이 지역에 녹아들어야 한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은 귀농·귀촌 1번지로 널리 알려졌다. 홍동면은 문당리를 비롯해 친환경 유기농 쌀 재배 면적이 전국 1위이고, 다양한 주민자치조직들이 발달해 있다. 갓골어린이집을 비롯해 홍동중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등 교육여건도 좋다. 주민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홍동밝맑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화 활동이 활발하고, 동네 마실방(뜰)과 카페에서 동네 주민들이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다. 의료협동조합 '우리동네의원'이 운영되어 주민들은 저렴하면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 홍동밝맑도서관 내부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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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생협 주요 활동 안내서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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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장곡면의 생활 여건

홍동면에 이웃한 장곡면에도 10여 년 전부터 귀농인이 늘기 시작했다. 장곡면은 인구 3천 명의 전형적인 순수 농촌 마을이다. 장곡면 소재지를 둘러보았다. 홍동면과는 달리 약국·병원·어린이집·편의점·목욕탕·빵집·커피숍·세탁소·문방구·식당 등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생활편의시설이 전무하다.

기껏해야 치킨집과 식당 한 곳, 다방, 미장원 등이 눈에 띄고, 저녁 6시면 문을 닫는 농협 하나로마트가 그나마 고마운 존재다. 여가를 즐길 문화 공간이나 체육 공간을 찾는 건 사치다. 중학교는 2000년대 초에 문 닫았고, 전교생 40~45명의 초등학교 1개가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필요한 생활물자와 서비스를 광천읍이나 홍성읍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홍성군 중심지 홍성읍까지는 버스로 1시간 거리이고, 홍성읍까지 가서 소주 한잔하고 기분을 내고 싶어도 대리운전비가 3만 원이니 엄두를 낼 수 없다.

아, 이런 불편한 곳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까닭이 궁금하다.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이 비밀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 먼저 귀농자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는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이하 홍성 유기농)을 찾았다.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은 2011년 지역재단의 지역리더 조직부문 대상을 받았다.


▲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 건물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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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유기농의 뿌리는 2000년 장곡면 대현리에서 결성한 오리농법 유기농 쌀 작목반, 2002년 풀무 생협 내에 조직한 유기 축산 한우 작목반이다.

왜 생소한 유기 축산을 시작했을까. 이를 주도한 정상진 전 홍성 유기농 대표의 말이다.

"유기농업을 하면서 항생제 등 수의약품으로 오염된 축산 분뇨로는 유기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안정적인 유기농업을 위해 경축순환농업(농업인이 가축분뇨를 사용해 작물을 기르고 볏짚 등 작물의 부산물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는 농업)이 필요했다."

이들 작목반이 바탕이 되어 2005년 생산자 20명이 모여 장곡면에서 홍성 유기농을 창립하였다. 홍성 유기농은 자연순환농업을 실천하며 지역농업공동체를 지향하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 조직이다.

홍성 유기농은 과거에는 축산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지금은 친환경 채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축산은 무항생제 소와 돼지를 도축하여 소분 포장을 해서 판매하였으나 2020년 초에 중단하였다.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렵고, 선호 부위는 잘 나가지만 비선호 부위는 헐값에 팔아야 했다.

귀농자의 든든한 후원자

홍성 유기농은 주로 친환경 채소와 벼를 취급한다. 또 두부 및 콩나물을 만들어 학교급식에 공급하고, 무항생제 돈육으로 만든 소시지를 온라인 몰과 두레 생협에 판매한다. 자회사인 포어스(For Us)는 조합원들의 유기농 쌀을 원료로 하는 우리 쌀 카레, 우리 쌀 부침가루와 녹차, 초코라테, 유기농 바질 가루 등 분말 가공품을 생산한다.

홍성 유기농 조합원 104명 가운데 53명이 최근 15년 사이에 귀농한 사람들이다. 104명 조합원 가운데 60대 이상은 24%에 지나지 않고, 40대와 50대(61%)가 주축이다. 우리나라 농업 경영주의 평균 연령이 65.6세(2015년 기준)인 현실에 비추어 보면 홍성 유기농은 젊다. 귀농 조합원 대부분은 배우자와 자녀를 포함해 4~5인 가족을 이루어 인구 증가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렇듯 귀농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장곡면에서는 빈집과 농지를 구하기 어렵다.

홍성 유기농은 지역 출신의 정상진 전 대표가 15년간 조직을 이끌었으나, 2020년 총회에서 귀농자인 조대성씨로 대표가 바뀌었다. 조 대표의 이력이 재미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그가 2010년 귀농한 것은 생태적 대안적 삶을 위해서였다. 지금 조 대표는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비닐하우스 400평에서 아욱을 재배하고 있다.


▲ 홍동밝맑도서관에서 필자(오른쪽)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홍성 유기농의 정상진(왼쪽) 전 대표와 조대성(가운데) 대표.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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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를 비롯해 귀농 조합원의 대부분은 비싼 임차료를 지불하고 하우스용 농지를 빌리고 있다. 유기농을 위해서는 장기 계약을 해야 하는데 지주들이 원하지 않아 이게 쉽지 않다.

조 대표가 작성한 귀농자 조합원 20명 현황에 따르면 대부분 노지 혹은 하우스에서 채소를 기른다. 농사 규모는 노지냐 하우스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규모 농가는 없다. 하우스의 경우 1~4동(1동은 200평, 2동이 가장 많다), 노지의 경우 적게는 900평 많게는 5500평 농사다. 홍성 유기농 납품액도 1500만 원~4800만 원으로 '억대 농부'는 없다. 이는 납품액 1천만 원 이상인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통계로 조합원의 대부분은 훨씬 영세하다.

홍성 유기농은 채소가 매출의 82%를 차지하는데 취급 품목이 파·쌈채류·표고·양배추·대파·딸기·당근·감자 등 101개에 이르고 50여 품목이 친환경 인증을 받고 있다. 홍성 유기농은 이처럼 매우 다양한 품목을 소량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운영상 어려움이 있지만, 규모가 영세한 조합원도 쉽게 조합 사업을 이용할 수 있다. 귀농 초기 경영 규모가 영세하여 생산물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귀농자에게 홍성 유기농은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에서 신선 채소를 포장하는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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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유기농도 경영상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총매출은 2005년 6800만 원에서 2007년 16억 5천3백만 원, 2011년 31억 원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으나 최근에는 성장세가 둔화해 34~38억 원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직원 20명의 인건비와 농가 생산비가 상승했지만 판매 가격은 그만큼 인상되지 않았고 3~4년 전부터 가공 사업을 시작하여 초기 투자 비용과 마케팅 비용 등이 들어가 몇 년간 적자 경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출자금의 결손도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2020년 축산 부문의 정리로 소폭 흑자가 나서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가공 사업이 정상화 되면 흑자 경영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오해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은 잘못된 소비자 인식과 인증 제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도화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초기에 소비자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안전한 농산물'로 슬로건을 정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발목을 잡고 있다.

친환경농업의 본질은 환경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드는 것인데 이런 공익성보다 친환경 농산물의 안전성에 소비자들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의든 타의든 친환경 농산물에서 잔류 농약이 소량이라도 검출되면, 오염된 자연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이해 없이 가차 없이 인증이 취소되고, 언론은 '속았다'고 비난하고, 그 결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게 된다.

유기농업이 발전된 유럽이나 미국에서 친환경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정상진 전 대표의 말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여론조사하면 우리나라와 정반대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먹는다'는 사람보다는 '환경을 위해서 먹는다'는 소비자들이 많거든요. 또 미국에서 진행한 농약 검출 검사에서 관행 농산물은 전체 수확량 중 75%에서 농약이 나왔고, 유기농산물에서는 25%에서 농약이 나왔대요. 이 결과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그렇기 때문에 친환경농산물을 소비해야 한다. 이 같은 소비가 오염되는 환경을 지켜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져요."


▲ 홍성 유기농의 가공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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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유기농의 조대성 대표는 2018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그가 재배하는 상추에서 허용기준치의 1/700의 농약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이유로 유기농 인증을 취소당했다. 그의 상추하우스는 2년 전까지 관행 농법으로 딸기를 재배하던 땅이다. 조 대표는 유기농법으로 농사지어 토질을 개선하고 잔류 농약을 제거했다.

그 결과 2년이 지난 시점에 잔류 허용 기준치의 1/700까지 낮추었는데 땅을 살리기 위한 갖은 고생의 대가가 인증 취소라니.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이래서는 친환경 유기농업이 발전할 수 없다.

장곡면의 사회적 네트워크

홍성 유기농은 장곡면의 다양한 사회 조직과 연대하여 귀농자들이 정착하여 생활할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홍동면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1958년 설립 이후 '위대한 평민'을 교육이념으로 해 지역의 일꾼을 키우고 있다. 2001년 전공부를 설립하여 학생들이 농고 졸업 후 2년간 유기농업을 공부하지만 실제 농사 짓기는 쉽지 않다.

2012년 전공부 교사 정민철 박사가 졸업생 조대성(현 홍성 유기농 대표) 등과 홍성 유기농의 '채담이 농장 하우스' 1동(200평)을 빌려 '젊은협업농장'을 시작하였다. 젊은협업농장은 농사일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실습농장이다.

길게는 2~3년 같이 일하면서 독립해 가는 형태로 운영되는데 짧게는 몇 개월씩 실습하기도 하고 학생들의 농사 체험도 돕는다. 지난 9년간 젊은협업농장을 거쳐 간(3개월 이상) 사람은 대략 50여 명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12명이 독립해서 유기농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 홍성 유기농은 홍성군의 지역발전투자협약의 지원을 받아 유기농·친환경 생산자 조직화 사업에서 초보 유기농을 위한 멘토링 역할을 담당한다.

젊은협업농장을 모델로 장곡면 내에 '행복농장'이 설립되었다. 행복농장은 2018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의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5년간 매년 6천만 원을 받아 지적장애인, 특수학급 및 대안학교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행복농장은 농업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돌봄·교육·고용 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농업의 거점 농장으로 선정되어 3년간 2억 원을 받아 경인·충남·대전권의 사회적 농장을 지원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장곡면에 있는 "또래오래". 동네 주민들이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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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이 최근(2021년 2월) 홍동면에서 장곡면으로 이전해왔다.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는 뜻의 일소공도 마을학회가 홍동면과 장곡면 주민 그리고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창립된 것은 2017년이고, 그 이듬해에는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일소공도 협동조합은 충남연구원과 협력하여 총 7회에 걸쳐 주민, 공무원, 연구자 등 연인원 530여 명이 참여하는 공동학습회를 진행했고, 핵심 리더 및 그룹 인터뷰, 주제별 간담회, 종합토론회를 거쳐 '장곡면 2030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일소공도 연구소는 장곡면 발전을 위해서는 1. 농업 소득 증대 2. 환경 및 경관 보존 3. 의료복지(노인 돌봄) 4. 청년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정리하고 이 우선순위에 따라 세부 과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지역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장곡면 인구는 1966년 1만 4천 명에서 2020년 2915명으로 줄었다. 귀농·귀촌하는 사람이 는다 해도 지난해 전체 인구는 70명 줄었다. 장곡면이 2030 발전계획에 따라 지속가능한 농촌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기본적으로 마을 주민의 자치역량에 달렸지만,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귀농·귀촌하는지도 중요하다.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이다.

젊은협업농장의 정민철 박사는 장곡면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정부는 농업정책을 대농이 아니라 중소 유기농 육성으로 전환해 이들을 응원해야 한다.


▲ 13차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 조합원 총회(2018년)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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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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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홍성, #장곡면, #유기농

내 직업은 농촌기획자, 농부들 돈 벌게 돕고 있죠 - 오마이뉴스

내 직업은 농촌기획자, 농부들 돈 벌게 돕고 있죠 - 오마이뉴스





사회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 3화

내 직업은 농촌기획자, 농부들 돈 벌게 돕고 있죠[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농촌과 도시 연결하는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
21.03.28 11:16l최종 업데이트 21.03.28 11:16l
이창한(leech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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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없이 농사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판매 걱정 없이 내 철학대로 농사지어보고 싶다."

박종범 대표는 이런 농부들의 고민을 도시민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2014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농사펀드'를 창업했다. 자본금 1천만 원과 임팩트 투자사 소풍(sopoong)에서 시드 투자를 받은 금액으로 출발했다. 사업 초기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사회적기업진흥원)과 'H-온드림 펠로우'(현대자동차그룹) 등에 선정되어 사업화 자금을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농사펀드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농부들에게 선투자하는 모델이다. 농부는 안정적인 생산 여건을 제공받고, 소비자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정한 가격으로 공급받는 '공동생산자' 관계를 만드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가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 농촌 관련 일을 했던 전 직장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작은 규모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농사짓는 농부들, 돈 되는 농사보다 사람과 환경에 이로운 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만나게 되면서다. 그동안 자신이 농촌을 대상화했다는 반성을 하면서 농부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자신을 '농촌기획자'라고 소개하는 사람


▲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 인터뷰에 응하는 박종범 대표. 손에 들고 있는 그림 카드는 농사펀드와 (주)88후드라는 작가 집단과 공동으로 만든 그림달력 굿즈
ⓒ 이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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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지역재단의 리더상을 수상한 박종범 대표는 자신을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농촌기획자'라고 소개한다.


"농촌 분야는 '기획자'라는 일자리 분류가 없습니다. 농촌과 도시 중간쯤에 무언가 일을 하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저는 뭔가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스스로 농촌기획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농촌이야말로 많은 기획자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박종범 대표는 주력 업무인 농사펀드 온라인 플랫폼 사업 이외에 농촌과 관련한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16년 4월부터 8개월 동안 '가업을 잇는 청년 농부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청년 농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청년 농부가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가업을 잇는 청년 농부 발굴 프로젝트는 케이크라우드(K-CROWD)와 농사펀드가 주최하고 네이버가 후원하는 프로젝트다. 자연 친화적인 농법과 가공법을 활용하고, 농법의 혁신, 토종을 지키려는 노력 등 농사의 의미와 새로운 방식까지 고민하는 청년 농부들을 발굴하여 지원하는 사업이다.

당시 전국 110명의 청년 농부가 지원하여 최종 12명의 청년 농부가 선정되었다. 이들 청년 농부들에게는 네이버 디자인팀과 함께 생산물과 가공품에 대한 브랜드 디자인 전반의 작업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농사펀드와 해피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판로를 지원하였다. 아쉽게도 후원사의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 이후 청년 농부에 대한 다양한 캠페인과 지원 사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뿌리밥상'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먹을거리 뒤에 가려진 농업·농촌, 환경 등에 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농가와 영농조합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브랜드 컨설팅 및 디자인 지원 활동과 외부 협력사업 등도 추진했다. 외부 협력사업은 주로 농업·농촌 활성화와 연관된 사업들이다.

대표적인 외부 협력사업은 2017년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지역재단에서 2016년 5월부터 2018년 말까지 위탁운영)과 함께 진행한 '지역 상생 청년 에디터 육성사업'이다. 이 사업의 목적은 중소가족농이 생산한 농산물 판로를 지원하는 청년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서울시 뉴딜일자리 사업을 활용하여 10명의 청년을 선정하고 총 8강으로 구성된 교육을 이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판로 문제 해결이 필요한 농가를 발굴하여 자료조사와 취재를 한 후 온라인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고 온·오프라인 홍보마케팅을 기획·진행하도록 했다(☞ 지역상생에디터 '서로이음').

이 사업을 통해 2017년 6월부터 2018년 말까지 총 30여 명의 농부(생산조직)와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이 소개되어 판로를 지원받았다. 농부들은 생산자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판로 확보를 통해 경제적인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또한, 평소에 농업·농촌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청년들은 농부들을 직접 만나 목소리를 듣고 농사에 대한 이들의 철학과 삶의 태도를 배우고 인식을 넓힐 수 있었다.


▲ 농사펀드 농활사진 농사펀드는 정기적으로 농촌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이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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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펀드는 올해 3월부터 충남 당진시와 6개월간 지역 상생 청년 에디터 육성사업 시범사업으로 '로컬에디터' 사업을 진행한다. 5명의 청년을 선발하여 농사펀드는 농부를 취재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코칭을 담당하고, 당진시는 청년들이 지낼 공간과 프로그램 참여비 월 50만 원 중 일부를 지원(농식품부 시범사업비 중 30만 원, 농사펀드 10만 원, 당진시 순성면 올미마을 10만 원)한다.

청년들은 사업 기간 당진시에 살면서 한 달 중 10일은 에디터 업무를 하고, 5일은 지역교류와 교육, 나머지 6일은 자율활동(청년들이 희망하는 경우 지역 농가,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등을 연결하여 일을 제공)을 하며 지내게 된다. 이 사업은 운영이 쉽지 않고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지만, 지역에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서 뛰어든 사업이다.

농부 1명과 소비자 200명 이상이 관계 맺기


▲ 박종범 대표와 농부와의 만남 박종범 대표가 농사펀드와 연계된 농부를 만나 인터뷰 하기 전 사진을 찍고 있다.
ⓒ 이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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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농사펀드는 프로젝트를 줄이고 농사펀드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한정된 인원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20년 농사펀드 매출 규모는 6억 원(농사펀드 매출 4억 원, 기업의 사회적 공헌 활동 기획사업 2억 원)으로 2017년 말 기준 8억 원(농사펀드 매출 5.8억 원, 용역사업 2.2억 원)보다 2억 원 정도 줄었다. 농사펀드의 수익모델은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 가격의 10%를 수수료로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소홀할 경우 경영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현재 직원은 박종범 대표를 포함하여 2명(2019년에는 10명)이 종사하고 있다. 인원은 줄었지만 현재 농사펀드와 함께하는 농부 수와 소비자 수는 각각 600명, 2만 6000명으로 2017년 400명, 1만 6500명과 비교해 농부 200명, 소비자 9500명이 늘었다.

농사펀드와 관련 있는 농부들은 주로 중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가족농들이 중심이다. 친환경 농업을 하고 있거나 그 방향으로 점차 전환하고 있는 농부들이다. 이들은 산지 수집상이나 공판장을 통한 판매보다는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통해 좀 더 나은 가격을 보장받고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농부들이다.

농사펀드의 목표는 이러한 농부들이 영농자금을 확보하도록 돕는 것이다. 농사펀드를 통한 예약판매로 짧게는 수확 2~3개월 전, 길게는 7~8개월 전에 영농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산지 유통인과 1대1 계약이 아닌 다수의 소비자 대 농부로 N대1 계약을 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계약 파기나 유통인의 잠적으로 인한 손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농부들의 이야기가 잘 정리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자 관점에서 상품을 기획하고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지원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농부들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파악하고 평가를 들을 수 있어 자신을 지지하는 소비자를 확보하게 된다.

박종범 대표는 농부들이 빚 걱정 없이 자신의 철학대로 농사짓기 위해서는 농부 1인당 200명 이상의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사펀드의 경험에 의하면 소비자 1인당 객단가(일정 기간 평균 매입액)는 3만 7000원이며, 1.7회 비중으로 재구매한다. 그중 20%는 연간 15만 원 정도를 소비한다.

농부 1인당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 규모의 직거래 금액을 위해서는 200명 이상의 소비자가 필요하다. 농사펀드는 올해 100명의 농부들을 엄선해서 1인당 사전예약 구매액 1천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이를 통해 농부들이 걱정 없이 농사짓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에는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박종범 대표의 마음도 녹아 있다. 대기업이 점점 농업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생산자인 농부의 이름이 없어지고 이들이 대기업의 농업노동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부와 소비자 "당신 덕분입니다"


▲ 농사펀드 뿌리밥상 포스터 2017년 농사펀드가 주최한 뿌리밥상 포스터
ⓒ 이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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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농업 진출로 농·축산물의 수직계열화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스마트팜 정책을 기회 삼아 정보통신업계의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농업 성장을 위한 자본 유치'라는 정부의 명분과 기업의 '농산업 세계시장진출'을 통한 수익창출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부들이 자기 땅을 잃지 않고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작은 규모의 생산자 공동체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생산자, 소비자 모두의 인식전환과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농지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최근 불거진 공기업 직원들의 땅 투기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도,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제 농지는 '농부의 것'이라는 관점(경자유전의 원칙, 농지농용의 원칙)에서 재정비해야 하는 사회적 한계점에 도달했다.

생산자는 농업이 지닌 다원적 가치를 인식하고 자기 일에 더욱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농사를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정부와 소비자가 그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비자는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위해서라도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부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소비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 농사펀드와 (주)88후드가 공동으로 진행한 "농부와 일러스트" 굿즈 그림달력
ⓒ 이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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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펀드의 비전은 농부와 소비자가 먹을거리를 매개로 서로에게 "덕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농부는 소비자가 본인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계속 농사지을 수 있도록 조력해 주는 사람이니 "덕분입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소비자는 농부가 존재함으로써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고 살 수 있으니 "덕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농부와 소비자가 서로 "덕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공동생산자로서 건강한 관계가 성립된다.

좋은 농부들을 많이 만난 것이 농사펀드를 창업한 이유였던 박종범 대표는 풍요롭지 않아도 노력한 만큼 인정받는 행복을 농부로부터 배웠다. 사람들이 농촌에서 행복을 배울 기회를 제공할 다양한 농촌기획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창한은 지역재단 기획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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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텃밭도 있습니다... 돈도 벌고, 지역도 지키는 언니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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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 2화

이런 텃밭도 있습니다... 돈도 벌고, 지역도 지키는 언니들[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언니네텃밭 경북 상주 봉강공동체
21.02.19 20:05l최종 업데이트 21.02.22 16:47l
박진도(jd5285)



▲ 언니네텃밭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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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해서 행복하다."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행복하다."
"다른 사람과 함께해서 행복하다."

늘 행복한 모습의 박경숙(65)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서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언니네 텃밭을 통해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니 행복하다. 나이가 들었지만 무언가 생산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하다"라고 한다.

박경숙씨가 서울에서 상주시 공검면으로 귀농한 것은 5년 전이다. 논 600평, 밭 1200평, 닭 20마리를 키우는 소농이지만, 자신만의 월 소득을 100만 원 이상 올리고 있다. 채소를 키워 꾸러미에 넣고, 조청, 청국장 등을 생산해 지인에게 보내고, 언니네 텃밭 온라인 장터에서 팔기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생산과 직거래의 힘이다.

식량주권 지키는 언니네 텃밭


박경숙씨 행복의 중심에는 언니네 텃밭 '경북 상주 봉강공동체'가 있다. 봉강공동체는 지역재단이 개최하는 2013년 전국지역리더대회에서 지역리더 조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봉강공동체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 식량주권사업단 '언니네 텃밭'에 속해 있는 11개의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여성 농민이 역사와 생산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 위해, 농촌과 농업을 힘찬 생명력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1989년 창립한 전여농은 2009년에 토종 씨앗과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 언니네 텃밭을 통한 제철꾸러미 사업을 시작했다. 언니네 텃밭을 중심으로 전여농이 하고자 하는 일들은 매우 소중하다.

첫째, 식량주권을 실현하고자 한다.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민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언니네 텃밭은 여성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과, 토종씨앗 지키기, 전통음식 문화 보전 활동을 하고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을 확산하고자 한다. 소농의 상징인 텃밭 농사는 순환적인 생산방식, 생명과 생태를 존중하는 유기농업이다. 유기물이 축적되고, 지역의 자원이 순환하고, 자원을 보존하며 환경과 생태를 살릴 수 있는 농사가 텃밭 농사이다.

셋째, 공동체 지원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 CSA)을 실현한다. 언니네 텃밭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생태순환 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 생산공동체와 소비자들이 함께 짓는 농사이다. 소비자 회원은 생산자 공동체와 제철꾸러미로 연결되며, 생산지를 방문하고 일손 돕기, 생산자와의 만남 등 다양한 교류를 하며 농업의 미래를 열어 간다.

넷째, 지역 먹을거리 체계를 구축한다. 지역 먹을거리 체계는 곡물메이저를 비롯한 초국적 농식품 기업에 의해 장악된 세계 먹을거리 체계로부터 발생하는 먹을거리의 위험성, 환경파괴, 가족농의 해체, 지역공동체의 붕괴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먹을거리를 매개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봉강공동체의 다양한 활동


▲ 꾸러미 포장 작업을 하는 공동체 회원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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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결성된 봉강공동체는 전여농의 언니네 텃밭이 추구하는 가치를 활발하게 실천하는 조직이다. 현재 봉강공동체의 생산자 회원은 16명이며 제정이 대표, 황재순 사무장이 중심이 되어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다. 봉강공동체는 사무소와 작업장이 있는 상주시 외서면 봉강리의 여성 농민들이 중심이지만, 이웃 마을에도 회원이 있다.

봉강공동체가 하는 일은 다른 지역의 언니네 텃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은 제철꾸러미를 소비자 회원에게 보내는 일이다. 소비자 회원은 2009년에 31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300명으로 늘었다. 알음알음으로 소비자가 느는 데는 매스컴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소비자 회원은 매주 꾸러미를 받는 회원이 100명, 격주로 꾸러미를 받는 회원이 200명이다. 꾸러미는 기본적으로 8~9 품목(두부, 김치, 달걀, 간식 1가지, 채소 4~5가지)으로 구성된다. 꾸러미는 4인 가구 기준으로 꾸러미당 2만 6500원으로 매주 혹은 격주로 보내며, 1인 가구에는 2만 1500원의 꾸러미를 격주로 보낸다.

봉강공동체의 전체 매출은 지난해 2억 8천만 원으로 1인당 평균 1800만 원 수준인데, 연령에 따라 개인별 차이가 크다. 70~80대 회원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생산한 농산물을 대부분 꾸러미로 판매한다. 젊은 층은 다품종 소량생산품은 꾸러미로 내지만, 다양한 판매처를 활용한다. 꾸러미와 온라인 장터 외에 가톨릭농민회, 상주생각(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직매장), 목요여성 농민장터를 통해서도 판매한다. 이처럼 생산자 회원들은 다양한 직거래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취 가격에 농산물을 판매한다.

봉강공동체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는 토종 씨앗 지키기이다. 봉강공동체가 속해 있는 전여농은 2008년부터 토종 씨앗 지키기 네트워크 '씨드림'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현재 토종씨앗지키기 운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봉강공동체 회원들은 1인 세 가지 품종 이상의 토종 씨앗을 심고 가꾸고 보존한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5대 종자회사 가운데 네 곳이 외국기업에 팔려나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양고추의 주인은 다국적 종자회사인 몬산토이다. 무와 배추를 비롯한 토종 채소 종자의 50%, 양파·당근·토마토 종자는 80%가 인수 과정에서 해외로 넘어가게 되면서 다국적 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10대 다국적 종자 기업이 세계 종자시장의 75%를 과점하고 있다.

종자 종속은 우리의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요소의 하나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2012년에 종자산업 기반 구축을 위한 이른바 골든 시드 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를 시작했다. 여성 농민들이 정부보다 먼저 나서서 종자, 그것도 토종 종자의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으니 박수를 보낼 일이다.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언니네 텃밭' 봉강공동체는 소비자를 만나기 위해 2012년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상주시내에서 농민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장터를 거의 못 열었지만, 2019년에는 연중 28주나 개설했고 350여 명의 소비자가 농민장터를 찾아 하루 평균 12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이와 같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 토대가 되어 2017년 7월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이 창립됐다. 104명의 생산자 조합원으로 시작한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2018년 9월 직거래 매장인 '상주생각' 1호점을 개장했다. 현재 271명의 조합원이 '상주생각'을 통해 연간 1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제철 꾸러미와 토종 씨앗 지키기, 목요농민장터 이외에도 봉강공동체는 정신대 여성 쉼터, 비전향 여성 장기수,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연대사업도 하고 있다. 또한 창립 이래 12년째 한 주에 4개의 기부 꾸러미를 보내고 있는데, 상주 지역의 어려운 가정에도 매주 2개씩 꼬박꼬박 보낸다.

봉강공동체 회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4년 중국 상해로 같이 여행 간 것인데, 해외여행을 처음 가신 회원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여름 보너스로 회원들에게 30만 원씩 지급해 모두 기뻐했다고.

농업, 농촌, 농민과 사랑에 빠진 대학생


▲ 인터뷰 하는 김정열씨(오른쪽)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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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공동체의 결성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정열(55)씨의 역할이 컸다. 김정열씨는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1학년 시절에 충북 괴산군 감물면으로 농활을 간 것이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북 상주 외서면으로 귀농했다. 상주농민회(1990년 4월 23일 창립)가 농민회 간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같은 해 8월에 상주농민회의 부인들을 중심으로 상주한마음회(후에 상주여성농민회로 개칭)가 창립되어 초대 총무를 맡아 8년간 일했다. 이듬해 네 살 위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상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인 남주성씨는 고향이 경북 예천이다.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상주농민회에서 홍보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남주성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선하고 성실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하지만 김정열씨의 부모님은 이 결혼을 몹시 반대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열씨의 아버지는 강원도 삼척탄좌의 탄광부로 일하고 있었다. 3남 1녀의 장녀인 그녀가 대학을 나와 집안의 기둥이 되기를 바랐는데, 귀농한 것도 모자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내와 결혼을 한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부모님의 반대로 초대 상주농민회장의 부인인 문달림(83세, 봉강공동체 회원)씨가 신방 이불부터 신혼살림 일체를 장만해 주었다. 부부는 외서면에 중·고등학교가 없어 10년간 2남 1녀를 통학시키느라 고생했지만, 큰딸을 여고 교사로 잘 키워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부가 고향도 아닌 곳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보수성이 강한 경북 농촌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빨갱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그녀와 남편은 묵묵히 농사일과 농민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동네 사람으로 살아갔다. 20년 세월이 흘러 그녀는 이웃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14명의 생산자 회원으로 2009년 5월 언니네 텃밭(당시는 우리텃밭) 봉강공동체를 창립하고, 7월에 31명의 소비자 회원에게 꾸러미를 배송했다.


▲ 언니네텃밭 회원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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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씨는 2009~2014년 봉강공동체 사무장으로서 초기의 힘든 실무를 담당하는 한편, 2009~2011년에는 전여농 언니네 텃밭 경북 단장을, 2011~2014년에는 언니네 텃밭 전국단장 겸 전여농 식량주권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2017년부터 현재까지 봉강공동체 감사를 맡고 있다.

김정열씨는 이처럼 봉강공동체를 시작으로 전여농의 언니네 텃밭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심 역할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2015~2016년에는 전여농 사무총장으로서 여성농민운동을 이끌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전여농 국제연대위원으로서 국제농민운동조직인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 동남·동아시아 대표를 역임하면서 글로벌 여성 농민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오래된 미래, 봉강공동체


▲ 봉강공동체를 방문한 외국 여성 공무원들과 함께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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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1992년)는 전통문화와 생태적 가치를 지키며 내면의 풍요와 평화를 누리던 티베트의 라다크가 개발과 세계화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비통한 심정으로 그리고 있다. 헬레나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서구 산업문화가 자연과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권력과 자원을 갈수록 소수의 손아귀에 집중시키고 있음을 고발하고, "우리가 자연의 필요와 한계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다면 자연이 우리를 틀림없이 파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녀의 경고는 코로나19로 현실화됐다.

한편 헬레나는 세계화에 대항해 지역적 가치를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운동에 주목했다. 특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장거리에서 수송된 정체를 알 수 없는 식품보다는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하고 맛있고 더 영양이 풍부한 유기농산물을 사 먹자는 '로컬 푸드 운동'에 주목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농민 시장이 열리고, 생산자들은 매주 신선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농산물 상자'로 배달한다.

헬레나는 "인간적인 규모의 구조들이 땅과의 긴밀한 유대를 키우고, 활발하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키우며, 다른 한편으로 튼튼하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 건강한 가족 그리고 남성과 여성 간의 더 큰 균형을 유지하던" 라다크의 삶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봉강공동체에서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본다. 1970년대까지 농민들은 대략 1.0~1.5헥타르(ha)의 농지에서 가족끼리 가축을 기르고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해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이후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고 국제경쟁력이 농정의 주요 목표가 되면서 농업경영의 규모화·기계화·시설화·단작화(단일한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가 급속히 진전됐고, 농촌의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 균형은 급속히 붕괴했다. 생산주의 농정은 농촌의 생태환경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전체 농민의 1%도 되지 않는 경지 규모 10헥타르(ha) 이상의 농민만이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황당한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의 재생을 위해서는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농업과 농촌이 지닌 본래의 다원적 가치(경제적·사회문화적·생태적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 봉강공동체는 생태적 농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돌리고 자연계의 다양성을 살려내고자 한다. 세계화에 맞서 지역은 자기 필요(식량과 에너지 등)를 기본적으로 자립하는 지역화를 위해 노력한다. 마을에서는 화목보일러(나무를 연료로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키는 보일러)를 널리 사용한다. 공동체적 삶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선한 관계를 실현하고 동시에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추구한다.

봉강공동체의 언니들은 텃밭 농사를 통해 자기만의 통장을 갖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가정 내 지위가 향상되고 남편과 평등한 관계를 실현한다. 사회적 활동과 교육 등으로 자기 삶의 주체성을 높이고,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발언권을 확보해 간다. 화요일마다 모여 꾸러미 공동작업을 하고 민주적 회의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한다. 공동작업에는 회원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는데, 공동체 운영을 위해 꾸러미 판매액이 10만 원 미만인 회원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 10~50만 원은 판매액의 5%, 50만 원 이상의 꾸러미는 10%의 수수료를 낸다.

지속가능한 봉강공동체를 위하여


▲ 봉강공동체 창립 당시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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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공동체의 활동을 통해서 농촌에서의 자립과 공동체 활성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봉강공동체를 위협하는 최대의 난제는 언니들의 나이가 점차 많아지는데 새로운 회원의 유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봉강공동체 언니네 텃밭 회원들의 연령 구성을 보면 80대 2명, 70대 3명, 60대 5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50대는 4명, 40대는 1명에 지나지 않는다. 창립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 언니네 텃밭은 할머니네 텃밭이 되었다. 80대와 70대 회원들은 최소한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곧 은퇴할 것이다.

봉강공동체의 존속을 위해서는 젊은 층의 귀농이 꼭 필요하다. 김정열씨는 최저임금만 보장된다면 봉강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농촌에서 자기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젊은이가 주변에 적지 않다고 한다. 봉강공동체는 젊은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고, 땅을 마련하기 위해 기금도 적립하고 있다.


▲ 청년들이 꾸러미 작업을 돕고 있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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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한 가지 방법은 가공품을 다양화하는 것인데, 농산물 가공 허가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큰 걸림돌이다. 농민들의 숙원인 농가 가공을 전면적으로 자유화해야 한다. 텃밭에서 다품종 소량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을 다양화하고 소비자와 직거래한다면 봉강마을과 같이 농토가 적은 산골 마을도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정부가 준비된 농촌 공동체에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면 어떨까. 귀농할 젊은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연수, 지원을 전담할 기구도 필요하지 않을까. 봉강공동체가 마을을 넘어 면으로, 상주시로, 네트워크를 확장해 가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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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하려는 도시 청년들, 이 마을로 오세요 - 오마이뉴스

자립하려는 도시 청년들, 이 마을로 오세요 - 오마이뉴스
사회

대전충청



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 1화

자립하려는 도시 청년들, 이 마을로 오세요[지역을 바꾸는 사람들] 제천시 덕산면 공동체 사람들
21.01.22 17:55l최종 업데이트 21.04.13 11:06l
박진도(jd5285)

▲ 덕산초등학교 농사체험
ⓒ 청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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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묻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지역에서 어떻게 지역을 유지할 것인가.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는데 노인을 누가 돌볼 것인가.
지방 세수는 감소하는데 복지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점점 줄어가는 농지, 농업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까.
산업기반이 약한 농촌지역에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이는 인구 2천여 명의 산골동네, 제천시 덕산면에서 지속가능한 농촌마을공동체를 꿈꾸며 만 16년째 행복한 생활을 하는 한석주 청년마을(농업회사법인) 대표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는 2018년에 재단법인 지역재단(http://www.krdf.or.kr/)의 '지역리더상'을 수상하였다. 오래전부터 그에게 리더 상을 주고 싶었는데 사양하였다. 별로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어색하고 쑥스럽다고 하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 사전 서면 인터뷰에서 이른바 지역소멸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인구가 조금씩 줄고 있는데 과연 덕산면이 지속가능하겠는가".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지속가능하다. 그 근거가 궁금하다.

지속가능한 농촌의 조건


한석주 대표가 입시 위주의 교육에 한계를 느끼고 동덕여중 교사를 그만두고 서울 마포의 성미산학교, 경기도 성남의 이우학교 등 대안학교 교사를 거쳐, 덕산면의 간디학교 교사로 내려온 것은 2005년이다. 한석주 대표는 2007년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학교에서 마을로 나왔다".

사단법인 간디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공부방을 운영하고 이주여성을 위한 일자리 등을 제공하였다. 간디공동체는 360여 명의 후원을 받으며, 여성재단과 정부의 일자리 사업을 활용하여 한때 40명의 직원이 일하였다. 그러나 외부 자금에 의존한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사람과 자원의 지역 내 자립과 순환이 필요하였다.

2011년 한석주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의 문제는 도시처럼 세분해 전문분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육은 가정과 맞닿아 있고, 가정은 소득이 중요하며 가계소득은 지역경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역경제는 문화와 공동체와 관련이 깊었으며, 이것은 다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한 고리를 빼고서는 지역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육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분야를 함께 고민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사)농촌공동체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농촌공동체연구소는 그의 활동을 지원하는 200여 명의 지인이 후원하였다. 농촌공동체연구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을 설립하였다. 어떤 사회적 경제조직은 구상 단계에서 끝나고 말았고, 어떤 조직은 이런저런 이유로 없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회적 경제조직이 덕산면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다. 덕산면 공동체의 활동은 교육·문화·복지·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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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면 공동체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농촌의 필요조건
ⓒ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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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주 대표를 비롯해 덕산면 공동체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농촌지역의 필요조건으로 그림처럼 ① 주민의 삶의 질 향상 ② 사람의 선순환 ③ 자원의 선순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첫째 자긍심의 회복이다. 농촌에서의 삶은 도시에 비하면 소득이 적고 서비스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농촌의 삶이 도시와 비교해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많이 벌어서 많이 소비하기 위해 '죽기 살기식 경쟁'을 해야 하는 도시적 삶이야말로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물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다. 좋은 자연환경에서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는 농촌 마을 공동체가 복원된다면, 훨씬 행복할 수 있다. 농촌적 삶의 양식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 농촌의 주인이 될 것이다. 덕산면 공동체가 교육과 문화를 중시하는 이유이다.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뿐 아니라, 덕산초·중학교에서도 두레농장 등 농교육을 실시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평생학습을 위한 마을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밴드·디자인·영화·만화·목공·요리 등 25개의 각종 동아리는 농촌살이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둘째, 주민의 자치역량이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경제(일자리)뿐 아니라, 교육·의료·복지·문화·주거·생활환경·교통·쇼핑·식당·미용 등 개인서비스, 위락시설 등 생활서비스가 갖추어져야 한다. 농촌은 이러한 생활서비스 면에서 도시에 비해 현저하게 낙후되어 있다. 그 이유는 생활서비스가 공급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의 인구가 필요한데, 지금 농촌인구가 1970년대에 비해 1/3 혹은 1/4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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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면 공동체는 누리어울림 센터를 통해 다문화 가정을 비롯해 육아 문제를 해결하고,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
ⓒ 누리어울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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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동네인 덕산면 인구는 1970년 1만 2538명에서 2020년 2194명으로 1/6로 쪼그라들었다. 상업적 베이스에서 시장을 통한 생활서비스 공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는 최소한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농어촌서비스기준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 실적은 매우 저조하다. 국가에 의한 서비스 제공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덕산면 공동체는 이러한 문제를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을 통해서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다문화 가정을 비롯해 육아 문제를 해결하고,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 동네 목욕탕과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마을버스 운영을 제천시와 협의 중이다.

셋째, 지역 내 순환을 중시한다. 농촌 생활은 원래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농촌은 시장경제에 완전히 포섭되어 거의 모든 필요를 외부에 의존한다. 심지어 내가 생산한 농산물이 서울 가락동 시장에 올라갔다가 다시 지역으로 되돌아온다. 사람과 자원, 돈이 농촌에서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니 농촌이 유지될 수 없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은 우선 지역 내 소비를 통해 서로 나눈다. 먹거리 나눔협동조합 '파릇'은 귀촌자 30명이 생산한 유기농산물(가공 포함)을 무인 냉장고에 넣어두면 동네 사람들이 구입한다. 힐링푸드영농조합을 설립하여 지역농산물의 가공과 6차산업을 추구한다. '누리 마을 빵 카페'는 지역의 간디 졸업생을 고용하고, 지역 유기농산물을 사용한다. 전통시장협동조합을 통해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한다. 마을목공소를 이용하여 목조건물을 짓는다.

아래 그림은 덕산면 공동체 사람들의 비전과 지금까지의 활동을 하나의 그림으로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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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농촌정착 플랫폼
ⓒ 한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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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농촌정착에 온 마을이 힘쓴다

덕산면에서 지속가능한 농촌마을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가 가능한 이유는 다양한 사람·집단·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덕산면 공동체의 중심에는 간디학교를 중심으로 귀농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흔히 말하듯 도시생활에서의 패배를 뒤로 하고 귀농한 것이 아니다. 덕산에 귀농귀촌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직을 갖고 있다(자영업자·교사·교수·상담사·사회복지사·의사·간호사 등). 이들은 귀농을 통해 업을 농사로 하려는 야심찬 계획으로 덕산에 터를 잡았다.

도시에서의 화려하지만 경쟁에 찌든 삶이 아니라 농촌에서 올바른 먹거리·환경·교육·문화를 만들고,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을 꿈꾸며 간디학교가 있는 덕산으로 귀농귀촌을 선택하여 희망을 만드는, 자긍심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선택한 간디학교와 덕산면 공동체에 터를 잡은 많은 분들은 정말 훌륭한 생각, 아름다운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가까이 사는 이웃들을 배려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제천 간디학교는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에서 2002년 중학교 과정을 제천시 덕산면으로 분리 이전하면서 시작되었다. '간디청소년학교'로 시작하여 2005년 '제천간디학교'로 개명하고, 2006년 중고등 6년제 대안학교를 시작했다.

간디학교는 2004년 비영리법인단체 '간디공동체'를 설립하고(2007년 사단법인 간디공동체), 2007년에는 아동교육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누리꿈센터'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다문화 가정지원, 공동육아, 방과 후 학교 운영을 위한 '누리어울림센터'를 개관하였다.

누리어울림센터는 2013년 '간디교육문화센터'로, 2016년에는 '주민모임 마실'로 발전하였다. '마실'은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며 시골로 귀농·귀촌한 사람, 이주여성들과 지역주민들이 어울려 사는 주민모임이다. 이 곳에서 주민들은 동아리 모임을 조직하여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린이집 돌봄 서비스나 작은 도서관도 운영하며 마을 어린이들의 방과 후 공부방을 운영하여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기른다.

간디학교에는 현재 중1에서 고3까지 113명의 학생이 있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30명이다. 여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이주해온 가정을 포함해 약 40명이 덕산면 공동체 활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석주 대표는 2019년 농업회사법인 '청년마을'을 설립하여 청년 농촌정착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였다. 지금까지의 덕산면 공동체의 성과를 토대로 덕산면 나아가서 우리나라 농촌의 미래를 담당할 청년들의 농촌정착을 돕기 위한 것이다.

청년마을은 2019년부터 농식품부의 사회적 농업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사회적 농업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기반하여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치유, 사회적 재활, 교육, 고용 등)를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농업으로 정의한다. 청년마을은 사회적 약자인 청년(특히 도시의 청년)에게 대안적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이 농촌에 정착하여 농촌 재생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청년마을은 청년농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청년이 농촌에서 농사만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는 새로운 농촌 주민으로 정착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 청년들이 마을배움터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장인을 만나 기술을 연마하여 앞으로 자립할 기반을 마련해준다.

마을 배움터에서는 청년 2인 이상이 요청하면 그에 맞게 연간 24강좌(1년 4학기)를 개설한다. 공유지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여 현재 3천 평의 농지를 확보하여 사회적 농업의 실천 농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청년들에게는 자체 사업 수입, 정부의 '청년 일자리 사업'이나 '사회적 기업 일자리' 등을 활용하여 생활비를 지원하고, 5년 후에는 덕산면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과 연계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한다.

청년마을에는 현재 6명의 청년이 일하고 있는데, 4명은 정부 사업을 연계하여, 2명은 자체 수입으로 고용하고 있다. 청년마을이 과연 청년들의 농촌정착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지역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농촌적 삶에 대한 가치관이 불분명한 청년이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는 정부의 청년 창업농 정책보다는 훨씬 농촌정착 및 자립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덕산면은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제천간디학교를 설립하고 한석주 대표와 함께 농촌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양희창 선생은 "덕산면에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적어도 40명은 되는데, 이런 곳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한국 농촌은 희망이 없다"라며 자신감을 피력한다.

한석주 대표에게 정부가 무엇을 지원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전환의 힘은 우리의 삶에서 나오지 위로부터 오는 정책으로 사회가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실제적인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나 지자체는 표가 적다고 농촌에는 관심이 없다.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과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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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농부
ⓒ 청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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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없을까. 청년마을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청년창업농 정책으로 지원하면 어떨까. 농지 트러스트 등을 통해 사회적 농업을 실천할 수 있는 공유지를 더 확보할 수 있으면 어떨까.

덕산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내발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농촌에는 주민의 삶 질 향상과 지역개발이란 이름으로 많은 재원이 투자된다. 그렇지만 성공한 경우가 별로 없다. 농촌정책은 첫째, 현재 그곳에 사는 사람의 행복에 철저해야 한다. 둘째, 미래의 농촌을 짊어질 사람을 만들어가야 한다.

학교가 농촌을 살린다  

이번 덕산면 조사를 하면서 농촌학교를 통한 농촌 살리기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정부는 농촌학교의 학생들이 줄면 폐교를 한다. 덕산면에도 6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덕산초등학교 하나만 남았다. 덕산초등학교에는 60명의 초등학생이 있고, 덕산중학교에는 35명의 학생이 있다.

이에 반해 간디학교에는 113명의 중고등학생이 있다. 농촌학교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말이다. 간디학교는 덕산면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덕산면 공식 홈페이지에 간디학교는 아예 교육기관으로 소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비인가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비용을 학부모들이 부담한다. 기숙사비를 포함해서 월 90만 원이다. 적지 않은 부담이다. 교사들도 낮은 급여로 어려운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인가를 받으면 교육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교육부의 간섭을 받으면 지금의 교육과정을 유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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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간디학교
ⓒ 간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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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왜 하나의 교육과정만을 강요하는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부여하면 안 되는가. 고등학교까지는 거의 무상 교육이다. 그런데 정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교육의 의무를 방기하는가. 간디학교와 같은 대안학교를 인정하고 의무교육을 한다면, 농촌교육 문제는 상당히 해결되지 않을까.

농촌은 도시와는 다른 교육을 할 필요가 있고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농촌의 특성과 장점을 살린 다양한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고, 그것을 위한 교사를 양성한다면 농촌교육 문제를 상당히 해결하고 농촌 살리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덕산면에는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 복원과 발전을 위해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의 비전과 헌신적 실천이야말로 농촌재생은 물론 우리 사회의 전환에 소중한 씨앗이 될 것임을 믿는다. 이들의 실천이 지역의 재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성취해내는 데 함께 힘을 모아 나가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이런 농촌이라면 살고 싶겠죠? 어느 시골마을의 혁명 - 오마이뉴스

이런 농촌이라면 살고 싶겠죠? 어느 시골마을의 혁명 - 오마이뉴스:

지방이 위기다. 지방이 소멸된다고 한다. 역대 정부가 소리 높이 외친 '국가균형발전', '지역균형발전'은 레토릭에 불과했나. 혹세무민이었나. 아니면 국가정책이 없었으면 지방은 이미 폭망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하는가. 각 지자체가 인구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인구는 계속 줄고 있는데 모든 기초지자체의 장기발전계획은 인구 증가를 목표로 수립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기초지자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초지자체에서 언감생심 불가능한 목표다. 특히 농어촌 시군 지자체는 존립이 위태롭다.

얼마 전 전남 모 군청의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이 참여하는 '지방소멸대응 학습모임'에 초청받아 강연을 하였다. 나는 "그곳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한, 지방은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 지방이 소멸되면 대한민국이 소멸된다. 지방소멸이 아니라 행정의 통합으로 지자체가 소멸될 뿐이다"고 하였다.

'일촌일품운동'(1979년 시작)으로 '지방시대'를 연 히라마쓰 모리히코(平松守彦) 전 오이타현 지사(9선 후 은퇴)는 "인구의 과소화는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마음의 과소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오이타현의 절대 인구가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이타현에 살고 싶은 사람이 줄어드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각 지자체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각종 개발사업과 귀촌・귀농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가 줄면 예산과 행정기구가 축소되어 공무원들이 제일 큰 피해를 입는다. 중요한 것은 인구의 절대 수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싶은 사람의 수이다. 어떤 사람들이 농촌지역에 살고 싶어 하는가. 누가 미래 농촌지역의 주인이 될 것인가. 농촌지역에서 자신의 주체적・농촌적 삶을 영위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아야 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농촌에 들어와야 한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자치


참여정부 이후 이른바 상향식 농촌개발이 추진되어 왔다. '중앙정부·행정 주도'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욕구와 참여에 바탕을 둔 '지자체·주민 주도'의 지역개발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무늬만 '상향식'일 뿐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개발은 아니었다.

중앙정부가 농촌개발사업 메뉴를 제시하면 지자체는 컨설팅업체를 선정하여 형식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멋지게 예비계획을 수립한다. 중앙정부의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 지자체는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사업을 관리·감독한다. 보조금 확보를 위한 지방정부, 컨설팅업체, 지역유지 연합이 주도하고 주민들의 '민의'는 동원된다. 주민은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업들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농촌주민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농촌주민이 필요한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농촌에는 그런 주체 역량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늬만 상향식 개발을 계속할 수는 없다. 역량은 경험의 과정을 통해 학습되어지는 것(learning by doing)이다. 이미 주민 스스로 문제 해결 역량이 있음을 보이는 농촌지역이 적지 않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주민자치회(이하 주민자치회)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주도하여 마을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민자치회는 2020년 10월 주민총회를 통해 '죽곡면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자치계획의 수립 과정이 흥미롭다. 우선 2019년 12월 자치계획단을 구성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2020년 1월부터 지역조사에 착수하였다. 죽곡면 28개 마을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주민의견조사를 하여 죽곡면 마을 의제를 발굴하고, '주민자치'(5개 사업), '관광소득사업'(3개 사업), '환경보전'(2개 사업), '지역활성화'(5개 사업), '마을복지'(6개 사업) 등 5개 분야 21개 사업을 2021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5단계로 나누어 실시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21개 의제 가운데 주민투표 결과를 반영하여 2021년에는 죽곡 토란도란 마을축제(죽곡면은 토란의 주산지), 찾아가는 주민자치 프로그램, 죽곡마을 119, 죽곡문화 출간 등 4개 사업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

자치계획 수립과 시행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우선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전 주민이 주민자치회에 참여하고 있으나, 65세 이상이 주민의 43%를 차지한다. 정부의 보조금 사업에 길들여진 주민들은 관심이 없거나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뭘 줄 거냐고 물어본다. 의견조사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주민자치회의 생각이나 기본계획을 설명하고 이해를 넓혀 가며 참여를 유도하였다.

또한 기존의 각종 주민단체(청년회, 이장단 회의, 부녀회, 노인회, 의용소방대 등)의 이해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진정성 있게 일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이해와 참여가 높아지고, 이들 단체와의 의견 불일치도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자치계획 수립을 주도한 주민자치회 박진숙 자치분권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주민자치회는 주민 스스로가 자치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자치위원과 주민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고 변화시키는 것이 역할이다. 자치계획에 21개 의제를 다 넣을 필요는 없었고 현안 4-5개 사업만 주민투표를 통해서 결정하면 되었는데, 주민들에게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죽곡면 주민자치회가 하고 싶은 것

박 위원장은 "마을 교육력을 높이고 역량을 키워 관계 중심의 마을 생태계를 조성하고 싶다"고 한다. 조금 풀어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삶과 교육이 통할 수 있는 마을교육을, 어른들에게는 주민자치회와 연계하여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동아리 형태의 서로 배움 자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노래샘, 요리샘, 농사샘, 생태놀이샘, 예술인생샘, 국선도샘, 목공샘, 바느질샘, 영어샘, 수학샘 등 지역의 어른들이 마을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며 배움과 돌봄을 이어가는 죽곡함께마을학교는 온 마을이 서로 돌보며 성장하여 마을 교육자치를 실현하는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추구한다."

주민자치회는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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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빵요일" 행사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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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전체 주민이 주민자치회원으로 가입하고, 마을 어른뿐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주체가 되어 어른들과 함께 기획하고 참여한다. 토란작목반 농부가 죽곡초 어린이와 함께 토란농사를 지어 토란도란 마을축제에 기증하고, 찾아가는 주민자치프로그램도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하고, '오늘은 빵 요일'에는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빵을 만들고, '달려라 손 큰 부엌'에서는 동네의 손 맛 좋은 할매가 선생님이 되어 젊은 아짐과 아이들이 맛난 음식을 배우고 나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지혜를 나눔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고, 아이들은 지역과 마을살이를 배워간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2018년), <토란 밭에서 뭐가 자라게>(2020년)를 출간하고, <노래가 된 시 음반>(2019년을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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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동네 손맛 좋은 할매가 마을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젊은 아짐들과 아이들이 함께 배우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시간.
ⓒ 죽곡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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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의 생활상의 필요를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한다. 죽곡면은 28개 마을로 이뤄졌는데, 면의 면적이 넓고 고령인구가 절대 다수이고, 교통이 불편하여 면 소재지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면 소재지에서만 진행되는 자치프로그램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을을 찾아가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죽곡마을 119'는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독거노인을 위해, 28개 마을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매주 2개 권역을 순회하며, 생활상의 불편(전등 교체, TV 등 잔고장 해결, 차량이동 봉사, 시장 봐드리기 등)을 해소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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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곡마을 119"는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독거노인을 위해, 28개 마을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매주 2개 권역을 순회하며, 생활상의 불편(전등 교체, TV 등 잔 고장 해결, 차량이동 봉사, 시장봐드리기 등)을 해소해 주고 있다.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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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지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스스로 해결한다. 찾아가는 주민자치프로그램의 모든 강사는 지역민이다. 마을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의 모든 기관이 참여하여 죽곡마을교육협의회를 결성하였고, 최근에는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수지침 강사, 독립영화 감독, 전문 MC, 고등학교 교사, 도자기 공예가, 목공, 농민회장, 예술기획가, 어린이집 원장, 심리상담사, 미용실 원장, 지역아동센터 교사, 퇴직 음악 교사, 도서관 관장 등이다. 지역의 교육, 문화, 예술,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18명이 참여하여 주민자치회의 운영과 마을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에 조성된 100세대의 강빛 마을의 은퇴자들이 전문 역량을 보태고 있다.

넷째,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를 위해 지역의 생태환경보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 위원장의 말이다.

"지역의 생태와 환경, 먹거리, 다양한 문화체험과 교육문화 활동을 통해 농촌자원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알리고, 지역민의 자존감을 높이며,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교사, 장학사, 곡성군 미래교육재단이 함께해 '곡성학교생태텃밭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12강의 교육과정에 20명을 예상하였으나, 68명이 지원하여 현재 60명(교장, 교사, 어린이집 교사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교사양성과정과 함께 죽곡초와 한울고(공립대안고)에 학교생태텃밭정원을 조성하여 마을교사와 학교가 협력하여 시범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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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곡초 생태 텃밭 만들기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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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2천 명의 마을에는 반드시 자치역량이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이나 구상이 인구 2천 명이 안 되는 작은 동네가 감당하기 벅찰 듯해서 "그럴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박 위원장의 답이다.

"농촌에 일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일 할 사람'이 일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주민들에게 권한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기회를 주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역량을 키워가도록 해야 한다. 보조사업의 한계를 너무 많이 느끼고 있어서 자치력을 향상해 결국에는 교육자치가 되어야 하고 마을자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마을마다 다 알고 있다. 마을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활동가들이 있고, 그분들을 추동해내고 교육을 통해 조금 더 성장시키면 된다.

다만 믿음과 신뢰가 부족해서 그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다. 농산어촌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보면 곡성군뿐 아니라 전국에 그러한 활동가들이 있다. 특히 농촌지역은 더 심각하게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같이 인터뷰에 참여한 귀농 3년 차인 주민자치회 임춘성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판이 안 깔아져서 그렇지, 어느 농촌지역이나 반드시 일 할 사람이 있다. 내가 곡성군에서 하는 10회 주민자치활동가 양성과정을 들었는데, 다른 면에서 오신 분들을 보고 놀랐다. 곡성군에 이런 분들이 있구나. 이런 분들과 연대하면 다른 면에도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인구 1천에서 2천 정도의 동네에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5명만 있어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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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맨 왼쪽)와 인터뷰 중인 곡성군 죽곡면 주민자치회 박진숙 위원장(가운데)과 임춘성 사무국장(오른쪽)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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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에 거는 기대가 크다. 다만, 아직 그 성과를 말하기는 이르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활동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 주민자치회는 곡성군 주민참여예산, 전남 교육청의 마을학교 예산, 전남도의 마을공동체 예산 등을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총액이 1억 150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매년 공모를 해서 예산을 따야 하는 사업이 많아 괴롭다. 이게 싫어서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자존심도 상한다.

더욱이 정부의 마을사업은 사업비를 주지만 인건비는 주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월급 받고 일하면서 마을활동가들에게는 알아서 열정으로 해결하라고 하라는 건 무슨 심보인가. 곡성군에 주민자치회가 죽곡면에 하나밖에 없고, 군의 관심이 부족한 것도 걸림돌이다.

"더 많은 주민자치회가 설립된다면 함께 노력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이나 자치단체장의 인식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주민자치회 설립이 법제화되면 좋겠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예산과 권한을 준다면 더 많은 일을 잘 할 수 있다."(박 위원장)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경험학습의 산물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주민자치를 위한 주민들의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다.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한 마을교육공동체 만들기는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작은 도서관 운동이다. 2004년 죽곡면 농민회 문예부는 지역의 문화 활동을 위해 4평짜리 죽곡농민도서관을 개설하였다. 당시 죽곡면 농민회는 전성기였다. 서울에 집회를 가면 버스 7-8대가 갈 정도였다. 그 힘으로 시작한 것이다. 2007년 작은도서관 사업에 공모하여 1억 3천만 원으로 지금의 도서관을 건립하였다. 지역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고 죽곡농민열린도서관으로 개명하였다.

초기에는 인문학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외지에서 청강생이 올 만큼 제법 유명세를 탔지만, 귀촌자 중심의 활동으로 마을 주민의 참여가 저조하였다. 2014년 도서관 운영위원을 농민회원 중심에서 지역단체장(면장, 노인회, 새마을지도자회, 청년회, 부녀회, 농민회)과 학교운영위원 및 학부모회 대표 등으로 개편하고, 학부모 독서회를 구성하고, 문화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마을 주민의 도서관으로 탈바꿈하였다.



▲ 죽곡농민열린도서관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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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는 도서관 활동을 중심으로 2017년부터 죽곡함께마을학교를 통해 마을의 교육생태계를 복원하는 공동체교육운동이다. 박 위원장의 말이다.

"학교의 힘만으로는 삶에 기반한 교육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마을의 힘을 빌려 교육을 혁신하려는 사람들과 교육의 힘으로 쇠락해가는 마을공동체를 키워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죽곡마을교육공동체를 꾸려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학생이고 선생이 되어, 주민이 원하고 마을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함께 공부하고 실천한다.

3단계는 2020년부터 주민자치회가 결성되어 주민자치와 마을교육이 결합하여 죽곡면 지역활성화 10년 로드맵을 시작한 것이다.

마을 사업이 잘 되는 곳에는 어디에나 훌륭한 리더가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 박진숙 위원장이 그런 사람이다. 박 위원장은 전북 진안 출생으로 전주에서 여고와 대학을 나왔다. 광주에서 여성센터와 대안교육공동체에서 일하다가, 주체적인 배움과 삶을 추구하기 위해 남편과 세 자녀와 함께 2012년 죽곡면으로 귀농하였다.

귀농 후 50여 종의 토종생태농사를 하면서 2014년부터 죽곡열린농민도서관장을 맡아 마을교육공동체를 꾸리면서 죽곡면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을 거쳐 주민자치분과위원장과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곡성군 교육참여위원회 소위원장, 곡성군마을공동체네트워크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무원 출신의 남편은 농사를 지으며 마을 이장을 하고 있다.

박 위원장 외에도 죽곡면 주민자치회에는 손경수 회장을 비롯해 두 명의 부회장과 5명의 분과위원장 그리고 간사와 사무국장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18명으로 출범한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마을을 함께 이끌고 있다.

죽곡면 주민자치회의의 활동에도 죽곡면의 미래가 반드시 밝다고 할 수는 없다. 죽곡면 인구는 2005년 2249명에서 2021년 4월에 1924명으로 줄었다. 0세에서 8세의 어린이는 124명에 지나지 않는다. 죽곡면 유일의 초등학교인 죽곡초의 학생 수도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시작할 때 60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30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올해 귀농 등으로 초등학교 입학생이 11명이 늘어 전교생을 30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죽곡면의 사람들이 재미나게 살아가면 미래가 열릴 것이다."(임 국장)

주민자치와 농어촌주민 수당

죽곡면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하면 좋을 것인가.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각종 농촌개발사업이 죽곡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임 국장)
"죽곡면에는 다른 지역보다는 돈이 덜 들어왔고, 중심지 활성화 사업 같은 큰돈이 아직 안 들어와서 다행이다."(박 위원장)
"불행 중 다행이다."(임 국장)
"아무 준비 없이 돈이 들어오는 것보다는 주민자치회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기획을 해서 각종 사업이 같이 묶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박 위원장)

지역 의정보고에 의하면 현재 죽곡면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조사업들의 예산이 대황강변 관광개발사업비 180억 원을 비롯해 400억 원에 달한다. 적지 않은 돈이다. 죽곡면 인구(1924명) 일인당 2000만 원이 넘고, 월 30만 원씩 모든 주민에게 직접 수당으로 나누어준다 해도, 6년 가까이 줄 수 있는 돈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어왔다는 이웃 석곡면의 실태는 어떨까.

"석곡면에는 많은 개발사업이 들어와 땅값이 오르고, 사업을 주도한 사람들은 땅을 팔아서 도시에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벌었다. 땅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여 사람들이 땅과 집을 내놓지 않아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다."(임 국장)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되어 개발사업을 추진하면 죽곡면의 미래가 열릴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지 않을까. 주민자치회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그 답은 교수님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도올 김용옥 선생과 대담하는 것을 들었는데, 기본소득 개념으로 농촌주민들에게 직접 현금으로 수당을 지불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임 국장)
"농촌에 농촌주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은 농촌지역이 너무 피폐해 개발에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는 직접 지원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박 위원장)

내가 구상한 농어촌주민(면지역)을 대상으로 한 '국토환경지역지킴이 수당'(농촌을 지키고 있는 만큼 농촌에 사는 사람에게 주는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설명했더니 100% 찬성이란다.



▲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 모인 아이들
ⓒ 지역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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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개발'은 틀린 말이다. 농촌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의 책무는 그곳에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외부 자본과 외부 사람들이 들어가 농촌을 파괴하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농촌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농촌에 투입하지만, 농촌주민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보조금 사업(도로 등 SOC 포함)은 지역 유지들과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에게 떡고물을 남기고, 도시인이 운영하는 각종 업체를 통해 돈이 도시로 되돌아간다. 지역에 남는 것은 주민 갈등과 운영비 먹는 하마인 각종 시설과 텅 빈 도로뿐이다.

농촌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될 때가 되었다. 그 방안은 농촌정책을 재정비하여 보조금 사업을 대폭 줄이는 대신에 첫째, 농어촌주민에게 국토환경지역지킴이 수당을 지급하고, 둘째, 농어촌주민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확충하며, 셋째, 농어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농어촌주민이 직접 기획해서 집행하도록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다.

나도 같은 잘못을 했지만, 지금까지의 과오를 시인하고 발상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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