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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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키 카츠히코 | 활학 서원 일본어 학교 이사장 理事長:矢崎 勝彦

이사장 : 야자키 카츠히코 | 활학 서원 일본어 학교




활학 서원 일본어 학교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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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유학생을 위한 일본어학교



이사장: 야자키 카츠히코
교육이념

이사장: 야자키 카츠히코
원장 : 김태창
전무이사:蔡龍日

  •   나는 1989년 11월 3일 문화의 날에 교토에서 학식자의 대화·공진·개신의 장소인 “교토 포럼”을 창설하고, 또 1992년 리오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지구 정상 회담 92-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 회의·UNCED”에의 참가의 경험으로부터 미국에서 “장래 세대 국제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 1993년 9월 15일, 꿈과 뜻을 가지고 일본에 온 외국인 유학생 여러 형에게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깊이 배울 기회와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고야산에서의 제1회 장래 세대 유학생 포럼 을 시작으로 이후 21회에 걸쳐 일본의 역사문화의 소연의 땅을 찾아 유학생 여러 형제와 철저하게 대화·교류를 거듭해 왔습니다. 

  • 유학이란, 유학생 여러 형제에게 있어서는, 주체적 능동적인 자립 인생으로 성장해 가는 「제2의 인생」인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이번에는 어느 한 명의 유학생의 사적인 유학 체험 가치를 보다 고차화하고, 공공적인 체험 가치로서, 세대간에 계승해, 생생하게 해 나가기 위해서, 지속적 발전적인 「적선형 호순환 유학 「시스템 구축과 실천」의 사업이념에 공명하여 일본어학교 「활학서원」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  저는 활학서원이 교토라는 1200년의 역사 문화학부의 중추의 땅으로, 유학생 여러 형제에게는, 일본어의 배움의 장소 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만남의 장소, 일본의 문화·역사를 접하는 장소 그리고 진정한 일본의 장점을 알고, 객관적으로 일본을 이해하는 「공공 체험의 장소」가 되어, 한사람 한사람의 꿈과 뜻을 실현하는 제2의 고향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본교를 기점으로 切琋琢磨해, 장래, 모국으로 귀국 후, 모국과 일본과의 우호 공동 발전에 공헌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로필

 야자키 카츠히코(야자키 카츠히코)
 
 1942년생

 주식회사 페리시모 http://www.felissimo.co.jp/  명예회장

 교토 포럼 http://kyotoforum.jp/kyotoforum/activity/publication/  사무국장


경력
1965년 주식회사 하이센스(카탈로그 판매) 설립. 전무 이사 취임.
1980년 대표이사 사장 취임.
        5년간 100만명의 고정고객 수를 목표로 한다. 매월 한 번 일본 전국의 현청
        소재지를 순회하는 '컬쳐 캐러밴'을 전개해 4년 11개월 만에
        100만 명의 목표를 달성한다.
1987년 대표이사회장 취임.
1989년 히로시마, 예슈 충해 소림굴 도장에서 참선. 거사호도연.
        11월 교토대학 명예 교수 시미즈 료씨, 선사 가이노우에 노조미 씨와 함께
        교토 포럼을 창설. 사무국장으로 취임
        (현재 멤버는 과학자, 철학자, 교육자, 산업인, 종교가, 학식 경험자 등 1800명) 12월 사명을 펠리시모로 변경

        .
1992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에서의 지구 정상 회담(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 회의 UNCED)에 UNCED 공식 신문 공동 발행인으로서 참가한다.
        UNCED 공식 일간신문 「어스 서밋 타임즈」의 공동 발행,
        UNCED 공식 북 「지구 에식스」의 일본어판 발행, 어스 서밋 공식
        포스터 캠페인, 공식 뉴스레터의 발간 등의 지원 활동을 한다.
1993년~ 세계 27개소에서 「장래 세대 국제 학식자 포럼」을 개시.
       「장래 세대 유학생 포럼」을 일본 각지를 순회해, 외국으로부터의
        유학생과 함께 21회 개최.
1998년~ 공공 철학 공동 연구회(현·공공 철학 교토 포럼)를 개시.
        공과 나의 2원론적 대립의 차원을 지양해, 공, 나, 모두에 의해 고차원의
        공공 세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공공 철학을 토의.
        90회(09년 6월 현재)에 걸쳐 개최.

  (2001년 11월 상기 연구회의 내용의 일부가 시리즈 「공공 철학」 제1기 전 10권으로서 도쿄 대학 출판회에서 출판. 이어서 「공공 철학의 실천에 맞추고」를 출판. 2004년

7 월 “공공 철학” 제2기 전 5권, 2006년 7월에 제3기 전 5권을 출판.2009년 6월 인민 출판사로부터 “공공 철학” 제1기 전 10권 중국어 번역판 간행

.

저서:
   「페리시모 행복 사회학」 1990년    「
   지구 환경    지상    포럼    」공공 철학 10 21세기 공공 철학의 지평」(2002년 도쿄 대학 출판회) 소수

===
院長:金 泰昌
教育理念
理事長:矢崎 勝彦
院長:金 泰昌
専務理事:蔡 龍日
 私は若いときに留学体験し、留学してよかった、留学という体験があったからこそ、今日の私があると感じています。それは天からいただいたこの上なき幸せな瞬間でもあったと思います。
 留学とは、様々な拘束のある自国から脱出し、本当の意味での自由な大きい世界へと、若き志を無限に羽ばたかせるチャンスです。若いときは未完成ですから、その完成を目指して自分を高め、強め、深めるきっかけとして自分の周りや自分の中に無かったものと出会える素晴らしいチャンスです。
 留学生の皆さんには、言語を学ぶということの大事さ、すばらしさを実感してもらいます。ひとつの言語を学ぶということはひとつの世界を切り開くということです。自国と外国という二つの世界に生きるわけですから、その人の能力や人生の幅がより広くなるのです。また、身に付けた言語は多様な世界で自分を生かすための、道具にもなり、武器にもなり、徳性にもなり、人間力にもなります。
 留学生活の中では、気に合わないこと、不快を感じることが多くあるかもしれません。そんなときに強い志さえあれば、ネガティブなものをポジティブに変えて生きる勇気を持ち、自分を変え、よりよい方向に向かって発展し続けることができます。ですから、自分が抱いた志が成り立つまでは故郷へ帰らない、というくらいの志をもって留学生活を送り、逆境を乗り越え広い世界へ開かれることをこころより望みます。
 留学生のみなさんが明るい気持ちを持って生活し、日本に来たことを良かったと思えるように、職員一同、サポートして参ります。


■プロフィール
金泰昌(KIM TAECHANG)

・1934年韓国生まれ
・現職:公共哲学共働研究 http://kyotoforum.jp/kyotoforum/activity/publication/  所長
・専門分野:公共哲学、政治・社会哲学・比較文明・文化論、将来世代研究
・韓国延世大学政治外交学科卒、同大学院政治学博士
・駐韓米国経済協調所(United States Operation Mission/Korea)企画補佐官(1969-1970)
・国立忠北大学教授、同社会科学大学長、国際関係研究所長、統一問題研究所長、行政大学院長(1970 - 1990)
・日本 東京大学客員研究員(1990- 1992)、
・日本 京都 国際日本文化研究センター客員研究員(1992-1993)
・日本 北九州大学客員教授(1993 - 1994)、
・日本 九州女子大学教授、同文学部長(1994-1995)

中国社会科学院客員教授、ベトナムホーチミン市社会科学院客員研究員、
タイ マヒドル大学アセアン公共保健大学院客員研究教授、香港大学都市計画
環境管理センター客員教授、米国ヒューストン大学大学院未来研究課程客員教授、
英国オックスフォード ブルックス大学客員教授、 カナダトロント大学OISE変化
行為研究センター客員研究員、日本 大阪国際大学国際問題研究所客員研究員
オーストラリア シドニー経営大学院客員教授

アルゼンチン、オーストリア、オーストラリア、ベルギー、ブラジル、ブルネイ、 
チリ、中国、ドミニカ共和国、エジプト、フィンランド、フランス、ドイツ、
インドネシア、アイルランド、イスラエル、イタリア、ケニア、マレーシア、マルタ、
ノルウエー、パキスタン、フィリピン、ポーランド、ロシア、シンガポール、
南アフリカ、スペイン、スリランカ、スウエーデン、台湾、タイ、トルコ、英国、
ウクライナ、米国等講演

主著:
  • 「マルクスの史的唯物論批判」(韓国語版 1980)
  • 「人間・世界そして神」(韓国語版 1985)
  • 「政治哲学的思考の軌跡とその周辺に集められた思考の断片」(韓国語版 1989)
  • 「現代政治哲学:探索と展望」(韓国語版 1989)
  • 『共福の思想』(日本語版 1992)
  • 「二十一世紀への知性的対応」(韓国語版 1993)
  • 『いまなぜ将来世代なのか?』(将来世代総合研究所 1994)
  • Thinking About Future Generations,  将来世代総合研究所: 1994
  • Creating A New History for Future Generations, 将来世代総合研究所: 1995 
  • Self and Future Generations, Cambridge: White Horse, 1999
  • The 13th Labor: Improving Science Education, Amsterdam : Gordon & Breach Publishers, 1999
  • Co-creating a Public Philosophy for Future Generations, London & New York: Adamantine, 1999
  • The Generative Society Caring for Future Generations: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s, 2004
  • シリーズ『公共哲学』(全20巻) 佐々木毅氏他との共編(東京大学出版会 2001-2006)
  • シリーズ『物語り論』(全三巻)共編(東京大学出版会 2007)
  • 『公共哲学を語りあう』(東京大学出版会 2010)
  • 『ともに公共哲学する』(東京大学出版会 2010)
  • シリーズ『公共する人間』全5巻 (東京大学出版会 2010-2011)
  • 『おのずからとみずからのあわい』(東京大学出版会 2010)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박규태 /Park Kyutae 2014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Focusing on Kim Taechang


비교일본학

2014, vol.31, pp. 37-79 (43 pages)

UCI : G704-SER000001507.2014.31..012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연구분야 :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일본문학 > 일본문화학
박규태 /Park Kyutae 1


1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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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천년대 초입을 전후로 하여 일본에 일기 시작한 공공철학 붐의 문화론적 의의를 고찰하는 글이다. 이때 본고는 특히 998년 4월 사사키 다케시(佐々木毅) 전 동경대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대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김태창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교토포럼>을 통해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경영, 건강, 의료, 세대간 관계, 자기론, 매스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대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동아시아발 공공철학과 관련하여 학제간 토론을 주도해 오면서, 그 세 가지 이념형적 목표로 활사개공(活私開公), 공사공매(公私共媒),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주창하고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대해 일본문화론으로서의 공공철학, 한류로서의 공공철학, 동아시아 담론으로서의 공공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이 “무한의 저쪽에서 일치하는 평행선의 사유”를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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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철학,
김태창,
활사개공,
일본문화론,
한류,
동아시아 담론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박규태**

2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 행된 연구임(NRF󰠏2012󰠏2012S1A5B8A03034081)

** 한양 학교 교수5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Key words :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26)

들어가는 말 : 김태창은 누구인가

  <주간 동양경제>라는 일본의 표적인 경제전문지에서 2003년 신년특 집호 특별기획의 일환으로 위기에 처하는 23명의 현자의 지혜라는 주제하에 한 한국인을 인터뷰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김태창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일본의 개혁방법에 관한 청사진 가운데 일본이 포스트 경제 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국가전체보다는 개개인이 정신적/문화적으 로 풍요로워져야 한다는 것, 요컨 키워드는 민의 힘을 살리는 활사개’(活私開公)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공창’(幸福共創)이 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김태창, 2012_11b:15󰠏16) 여기서 말하는 활사개공이나 행 복공창이란 무슨 의미인가? 한일 지식인들이 타자와의 사이()를 연 인(大人)”(모리오카 마사요시, 2013_12:4), “공자가 말하는 인 유학자 (大人儒)”(야마모토 쿄시, 2013:5), “끊임없이 화하는 철학자”(오가와 하루히사, 2013_11:2), “탁월한 지식경 인”(최재목, 2013_12:13) 등으로 극찬해 마지않는 김태창이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극찬은 일본에서 가장 한국에 정통한 철학자로 말해지는 오구라 키조의 다음 수사에서 하 나의 정점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악보가 없는 강렬한 생명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생명을 짓밟으려고 하는 모든 행위와 사상에 한 생명적인 항이다. 한국과 일 본의 틈새에 이와 같은 철학적 생명 그 자체가 활화산의 분화구처럼 분 출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 한 사건이다. 그의 강의를 들은 일본 인은 전율과 함께 까칠까칠한 위화감, 그리고 소리치고 싶은 듯한 고양을 느낀다. 그는 일본이라는 이국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일본어로 일본인들과 무수한 화를 거듭하고, 한국을 정신적 토 로 삼으면서도 일본인과 함께 새로운 철학을 구축하고자 하는 견실한 노력을 20년 이상이나 계속해왔다. 과연 누가 지금까지 이런 일을 이루어냈을까? 식민지 지배를 당한 나라의 인간이 그것을 가한 나라의 인간과 철학 화를 계속하고, 그것을 공공철 학이라는 개념으로 가꾸어낸다고 하는 활동을 그 누가 해낼 수 있었을?”(오구라 키조, 2013:10󰠏12. 필자의 윤문)

  다수의 문저서[1])와 일본어로 간행된 20여권의 공공철학 시리즈물[2])을 포함하는 놀랄만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현 교토 소재 <장래세 총합연구 소> 소장, 오사카 소재 <공공철학 공동연구소> 소장, <수복서원> 원장 등을 겸임하고 있는 김태창은 19984월 사사키 다케시(木毅) 전 동경 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3)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장본 인에 다름 아니다.4) 사실상 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통해 종래의 멸사봉공(滅私奉公)적 공공성뿐만 아니라 멸공봉사(滅公奉私)적 미이즘 (meism)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그 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는 일본 에서 공공철학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침투5)하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슬람, 인도, 일본에서의 공사에 관한 사상사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사회학적, 경제학 적, 정치학적 관점에서 공사 역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2(2004) 5권 및  3(2006) 5권에서는 자치/법률/도시/리더십/문화와 예술/종교/지식인/조직과 경

/의료와 건강/세 간 관계 등으로부터 생각하는 공공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밖에도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 비판󰡕(1980),인간  세계 그리고 신󰡕(1985),정치철 학적 사고의 궤적과 그 주변에 모아진 사고의 단편󰡕(1989),현 정치철학: 탐색과

전망󰡕(1989),21세기에의 지성적 응󰡕(1993),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2010),(일 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2012) 등 다 수의 국내저술이 있다.

3)   <장래세 총합연구소>의 모태인 <장래세 국제재단> 이사장이자 <교토포럼> 사무 국장. <장래세 국제재단>19926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지구정 상회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국제연합회의>가 개최된 다음 달인 19927월에 미국 에서 설립되었다. 이 재단의 전신이 바로 1989113(문화의 날, 이전의 메이지 절)에 교토에서 발족한 <교토포럼>이다. 이 제1회 교토포럼에서 향후 1990년부터 2 개월에 한 번씩 학제간 화를 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졌으며 그 추진자로서 김태창이 동참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92년 김태창은 <장래세 총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 하게 된다.

4)   김태창은 이 두 사람과의 기적과도 같은 만남을 통해 <공공철학 교토포럼>이 가능 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가 일본에 와서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들과 함께 이룰 수 있 었던 가장 귀중한 농사다고 토로한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244󰠏45)  

5)   현재 일본을 표하는 사전에서 공공철학시민적 연 감이나 공감 그리고 비판 적인 상호토론에 기초하여 공공성의 부활을 지향하고 학제적인 관점에 서서 사람들 에게 사회적 활동에 한 참가나 공헌을 촉구하고자 하는 실천적 학문”(󰡔廣辭苑󰡕 6 )으로 정의되어 나온다.


1934년 청주의 이른바 ‘다문화가정’6)에서 출생한 김태창은 “나는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그 후 한국인이 된 인간이다. 유소년기는 일본어라는 국어 상용이 의무화된 생활환경 속에서 자라나 일본문화를 알고 일본역 사를 배웠다. (중략) 나는 일본인임을 의심한다든지 분명한 위화감을 가 지는 일은 없었다.”(金泰昌, 2002b:199)고 식민지 소년의 아이덴티티를 술회한다


6)   그가 말하는 ‘다문화가정’이란 반일적 성향이 강한 주자학자 던 할아버지와 친서구 적인 독실한 기독교신자 던 어머니, 그리고 일본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던 아버지로 구성된 가정을 가리킨다. 이들은 각자 개성이 강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김태창은 이 세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것이 어릴 때의 가장 큰 바람이었 으며, 그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사이’와 ‘상생’과 ‘공복’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김태창 편저, 2010:99)


해방 뒤 연세 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어, 독일어, 불어 등을 가르치면서 학원 과정을 마쳤다(정치학박사). 젊었 을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던 그는 결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라 국제관계철학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충족될 수 없었 던 김태창의 학문적 열정은 그로 하여금 국, 독일, 프랑스, 북유럽, 스 칸디나비아 반도, 동유럽 등 5년에 걸쳐 56개국을 돌며 인간학적 체험을 추구하는 방랑자로 만들었다.7) 


7)   이 당시 그는 의식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했다그것은 과거에 일본이 한 국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침략한 것에 한 반동에서. “한국의 지식인의 한 사람 으로서 일본을 무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일본에 이기기 위 해서는 일본보다 더 나라를 발전시켜서수준 높은 학문을 닦고 일본 학자보다 뛰어 난 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에 새겼다.(야마모토 쿄시, 2013:3) 8) 김태창의 생애에 관해서는 주로 (泰昌, 2002b) 및 (김태창 편저, 2010:98󰠏99) 참조.


귀국 후에는 충북 사회과학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학생운동이 한창인 학내에서 제자들로부터는 체제옹 호적이라고 비난받고 국가권력으로부터는 체제비판적이라는 의심을 받아 한때 체포 감금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1990년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일본으로 간다. 더 이상 방황할 여유도 없고 여력도 없어서 앞으로는 일본에서 중국과 한국 을 왕래하면서 친구들과 힘을 합쳐 어떤 모델이라도 제시하고 싶다는 생 각을 하면서, 국경을 초월하여 시민들끼리 만들 수 있는 좋은 사회를 꿈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8)   본고의 목적은 이와 같은 김태창이 주창한 공공철학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그리고 그의 비전이 일본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 지를 되물으면서 현 일본사회에 있어 그의 공공철학 담론이 가지는 의 의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물론 일본의 공공철학 또는 공공성 담론은 비 단 김태창이 주도해온 <공공철학 교토포럼>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이 와 전혀 무관하게 일본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공공철학 담론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3]) 이하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주로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 <공공철학 교토포럼> : 왜 일본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4])19984월에 발족한 이래 현재까지 약 17 년 이상 거의 매달 한번 꼴로 개최되었는데, 매회 3일에 걸쳐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한 주제당 발표 20분에 토론 40분이 주어지고 종합토론에 있어 철저한 화 위주의 형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이 포럼에서는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 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 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 건강, 의료, 세 간 관계, 자기론, 매스 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 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공공의 관점에서 학제간 토 론이 이루어져왔으며, 전술했듯이 그 내용의 3분의 1정도가 동경 학출 판회를 통해 <시리즈 공공철학> 20권으로 나왔으며, 기타 <시리즈 이 야기론> 3권 및 관련 단행본들로 계속 출간되고 있다.

  1회 포럼의 논의는 공과 사의 사상사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기조 는 공공은 공에 친 성이 있고 사의 반 에 위치한다는 것이었다. 이 는 하나의 전략적 접근이었을 것이다. 당시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의 일 본에는 공공이라는 이름하에 관료사회의 특징인 공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조가 있었다. 이와 함께 전전, 메이지, 에도시 로의 회귀를 꿈꾸는 향 수가 사회 전반에 걸쳐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의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김태창은 활사 개공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에 편향된 일본인들의 정신 풍토에 변화를 일으키고 의 긍정적인 측면을 점차 부각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를 살아있는 개개인의 원초적인 행복의지로 재해석하고 그 것이야말로 제도적 지배가치에 우선하는 참된 인간적 가치의 자연적 기 반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는데, 이는 마치 공천하국가(公天下國家)로서 의 일본을 송두리째 탈구축하려는 듯한 야심찬 기획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공적 성향이 강한 제도권 학자들의 반발과 적개심을 사기도 해서 충돌과 불화가 적지 않았지만, 김태창은 역사상 이 일원적으로 민을 짓눌러온 일본에서 공공민과 함께 하는 공공으로 의미변용하 기 위해 공공철학을 동아시아삼국의 범위에서 확실하게 구축한다는 전략

을 선택하게 된다.(야마모토 쿄시, 2013:4󰠏5)

  김태창은 이와 같은 포럼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연구자들을 네 세 로 구분하고 있다

  1. 예컨 제1세 의 미국 및 유럽 전문가들, 미조구치 유조를 비롯한 제2세 의 중국사상/철학/문화 전문가들
  2. 다나카 쇼조(1 841󰠏1913)민중적인 공공성 담론을 개발한 3세 의 일본사상/철학/문 화 전문가들,[5]) 
  3. 그리고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주자학 연구, 야규 마코 토(柳生眞)의 최한기 연구, 가타오카 류(片岡龍)의 한일비교연구 등 현재 공공철학 담론을 주도하는 제4세 의 한일 비교사상/철학/문화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거론되고 있다.(김태창, 2013_7:8󰠏9)

  이 가운데 특히 철학, 윤리학, 역사학, 사상사, 정치학, 경제학, 법학, 과학론, 공공정책론 등 다양한 학문적 입장에서 21세기에 알맞는 공공성 을 추구한 제1회 포럼에 즈음하여 김태창이 밝힌 취지에 주목해 보자. 그는 이때 반성적 작업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공공철학의 기본 과제를 인간과 국가의 관계를 고찰함에 있어 중간적인 매개 역의 활성 화, 건전화, 성숙화에서 찾으면서 특히 구체적인 생활세계의 공공성과 국가를 넘어선 공공성의 지평이 결합된 글로컬한 공공성의 창출을 제 안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에 있어 공사 관계의 규명 및 서구 공사관 계와의 비교를 통한 재구축의 작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김태창에 의하 면,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는 공사 담론은 의 문제에 편중되어 예컨 종래의 을 부활시키는 것이 문제해결책이라는 발상에 기울어져 있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포럼은 철저히 화정신에 입각한 의미생성적 화공간12)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金泰昌, 2001a:ⅳ󰠏ⅺ)    이처럼 포럼 초창기부터 공공철학을 화로서의 철학으로 규정했던 김태창의 인식론적 태도는 그의 서구 경험에서부터 배양되었다. 그는 특 히 노르웨이에서 자기와 타자 사이에있어 립/갈등/분쟁하는 당사자 쌍방의 주장/요구/의도에 귀를 기울여 성실하게 경청하는 태도에 입각한 재조명/재평가/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