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7

地中有山 | 개벽의 외출 - 동학, 세계와 만나다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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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세이外개벽의 외출 - 동학, 세계와 만나다
혼돈나라추천 0조회 14820.01.24 19:18댓글 0
조성환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1. 서양과의 조우

지난 2019년 9월 30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019 한국생태문명회의생태문명을 향한 전환철학부터 정책까지가 열렸다한국의 생태문명을 주제로 한 이 국제회의는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한다2017년에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시에서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이래로, 2018년에는 경기도 파주시에서 생태문명 국제 컨퍼런스 2018: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환으로 이어졌이 야심찬 포럼을 기획한 인물은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과정사상연구소 연구원이었던 한윤정(1967~) 박사다지금은 한국생태문명 프로젝트 디렉터라는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윤정 디렉터는 1991년부터 2016년까지 경향신문 사회부·경제부·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을 역임하였고, 2018년에는 화이트헤드철학자인 죤 캅 교수의 생태신학철학을 번역하기도 하였다(󰡔지구를 구하는 열 가지 생각󰡕지구와 사람).

작년에 열린 세 번째 생태문명회의에는 영광스럽게 필자도 발표자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첫날 첫 섹션의 주제는 생태문명의 철학이었는데내가 준비한 내용은 해월 최시형의 생태철학이었다이 섹션의 발표자와 발표주제는 다음과 같다.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이재돈 신부가톨릭대 겸임교수
생태문명고등교육아름다움의 생태학」 제이 맥다니엘 미국 헨드릭스대 교수·철학
개벽파의 생명사상과 탈근대적 함의」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녹색국가론미완의 꿈여전히 유효한 질문」 정규호 한살림연합 정책기획본부장

이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발표는 이재돈 교수의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였다이 발표에서 이재돈 교수는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1914~2009)의 생태철학을 소개하셨는데나에게는 그것이 미국의 개벽사상처럼 보였다그가 제시한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나 종들의 연합’(The United Species) 개념은 나의 발표주제였던 최시형(1827~1898)의 천지부모-만물동포” 사상이나 󰡔천도교회월보󰡕(1911)에 실린 정계완의 천인공화(天人共和)’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서 토마스 베리와 최시형은비록 1세기라는 시간차와 미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차는 있지만, ‘생태철학’ 또는 생태신학이라는 주제로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돈 교수의 발표에 이어서제이 맥다니엘 교수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발표를 하였고이어서 나는 최시형의 생태철학을 동학사상사의 흐름에서 소개하는 발표를 하였다마지막으로 한살림연합의 정규호 본부장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살려 구체적인 생태정책을 제안하였다각 발표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 정도였고통역은 동시통역으로 이루어졌다나는 발표는 한국어로 하였지만 미국인 학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PPT는 영문으로 작성하였다가령 이천식천(以天食天)’은 “Heaven eats Heaven”과 같이 -.

1섹션의 발표가 모두 끝나고 청중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다그러나 누구 하나 동학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토마스 베리나 화이트헤드와 같은 미국철학아니면 구체적인 생태정책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그러다가 뜻밖에도 발표자였던 제이 맥다니엘 교수가 청중의 질문에 답변하는 도중에 나를 쳐다보면서 동학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저는 동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런 부분은 동학과 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실은 저도 동학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아까 동학에 대한 발표가 대단히 흥미로웠는데가능하면 조성환 박사님으로부터 동학을 배우고 싶습니다.”

맥다니엘 교수의 코멘트가 끝나자 비로소 플로어에서도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어느 정도는 예견되어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내가 발표에 앞서 한국철학을 하는 조성환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 이미 객석에서는 낯선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것은 난생 처음 접하는 미지의 것을 대하는 어색함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나로서는 미국의 화이트헤디언이 동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한국인조차 무관심한 동학을 미국의 철학과 교수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내가 깨달은 사실은 동학이 현대 서양철학과도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생태신학과 같은 주제라면 해월철학은 화이트헤드철학이나 토마스 베리 철학과도 충분히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2. 일본으로 가다

영미철학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일본이었다한국생태문명회의가 있고 나서 두 달 뒤인 11월 23일과 24난생 처음으로 일본의 대학에서 동학을 얘기할 기회를 얻었다그것도 오로지 동학사상만을 말하는 자리였다강연자도 원광대학의 박맹수 총장과 나단 두 명뿐이었다심포지움 제목은 현대에 되살리는 한국사상”(現代かす韓国思想). 일본에서 동학사상만으로 이런 자리가 마련되는 것은 아마도 교토포럼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교토포럼이 전문 학자들만 참석하는 학술토론의 장이었다면 이번 심포지움은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공개 강연의 형식을 띠었다이런 보기 드문 자리를 기획해 주신 분은 원광대학교와 오랫동안 학술교류를 하고 있고 동학사상에도 조예가 깊은 토착적 근대론의 주창자 기타지마 기신(北島義信. 1944~) 교수이다기타지마 선생은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대화에서 요즘과 같이 한일관계가 안 좋은 시기일수록 시민 차원의 교류는 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기획 의도를 피력한 적이 있다
  
심포지움 장소는 일본의 한복판인 동경에 위치한 명문 동양대학(東洋大學)이었다동양대학은 만학의 기초는 철학에 있다는 건학이념을 내걸고 있는 종합대학으로, 13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인 숭산 박길진(1915~1986) 선생이 유학한 대학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그래서인지 양자 사이의 유사점도 눈에 띄었다동양대학 창립자인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 1858~1919)는 동경의 나카노구(中野区)에 철학당(哲學堂공원을 짓고 소크라테스칸트공자석가를 모신 사성당(四聖堂)을 세웠는데원광대학교 교정에도 소크라테스공자석가예수를 모신 사성상(四聖像)이 있다동양대학에 칸트가 들어 있는 반면에 원광대학에는 예수가 세워져 있는 것은 철학과 종교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중시하느냐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인다뿐만 아니라 동양대학의 교육이념 중의 하나인 지덕겸전(知德兼全)’은 원광대학의 건학이념인 지덕겸수(德兼修)’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이러한 점들은 박길진 총장이 원광대학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이노우에 엔료와 동양대학으로부터 일정 정도 영감을 받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리라

강연장에 들어가자 대형 강의실에 100여명 가까운 청중들이 모였다박맹수 총장의 통역자로 온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야규 마코토 교수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80명 이상은 모인 것 같다고 한다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박맹수 총장과 14년 동안 한일시민동학기행을 이끌어 온 90세의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를 비롯한 기행에 참여한 일본시민들이었다그 중에는 재작년부터 동학기행에 참여한 아사히신문의 죠마루 요이치 기자의 모습도 보였다뿐만 아니라 김태창 선생과 같이 한일을 오가며 노년철학을 정립하고 있는 미래공창신문의 야마모토 교시 대표와세다대학에서 같이 유학한 민애선 박사멀리 토호쿠대학에서까지 와준 최다울 군 등오랜 지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느낌이었다그 외에도 기타지마 기신 선생이 몸담고 있는 지역문화학회 소속 학자들과 동양대학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심포지움은 기타지마 기신 교수의 진행 하에박맹수 총장과 내가 전봉준과 최시형의 생명평화사상에 대해서 각각 얘기하고이어서 청중들의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개인적으로는 재작년부터 동학을 주제로 시민강좌를 여러 번 해본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다만 대상이 일본인으로 바뀌어서 일본어로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긴장은 두 배로 증폭되었다아니 그보다는 동학사상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동학의 정수를 요령 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던 것 같다다행히 밤을 새워가며 만든 일본어 PPT’ 덕분에 전달력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강연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갔더니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이 계셨다. “덕분에 그동안 잘 이해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풀렸다며 고맙다는 말을 해주셨다강연장에 돌아오니 외교관을 지냈다는 어느 원로께서도 아주 이해하기 쉬웠다며 칭찬을 해주셨다뿐만 아니라 심포지움이 다 끝나자 어느 시민이 다가와서 동학연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귀한 정보를 제공해 주셨다
      
동양대학 심포지움이 끝난 다음날박맹수 총장은 한국으로 귀국했고 나는 다음 강연을 위해 기타지마 기신 교수최다울 군과 함께 욧카이치로 향했다기타지마 기신 교수가 자신의 거주지인 토미다(富田)에서 시민강좌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이번 제목은 동학의 생명사상과 현대였다청중은 10여명 정도에 불과했지만이번에는 또 다른 부담이 가중되었다기타지마 기신 교수를 비롯하여 동양대학 심포지움에 참석한 분들이 4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그중에는 최다울 군을 비롯하여 지역문화학회 회원인 나카오(中屋교수 부부도 있었다뿐만 아니라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같이 생활한 적이 있는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의 역자인 오니시 히데나오 박사님(1943~), 교토포럼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노년철학의 권유󰡕의 저자 오오하시 켄지 교수님그리고 재일교포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욧카이치대학에서 서양경제학을 가르치는 이수이(李修二교수님도 계셨다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수들인 셈이다

그래서 나의 부담은 동양대학 때보다 배로 가중되었다전날 얘기를 그대로 반복하자니 이미 들었던 사람이 반이나 되고그렇다고 그것을 생략하자니 처음 듣는 사람도 반이나 되기 때문이다다행히 강연 시간이 동양대학의 두 배인 1시간 반이 주어졌다그래서 심화된 내용을 배로 추가하였다최시형의 법설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넣은 것이다그러기 위해서 이번에도 밤을 새워야 했고한국에서 짊어지고 온 몸살감기는 완쾌되기는커녕 더 악화되기만 하였다.

강연이 끝나자 이번에는 정말 전문적인 질문과 코멘트들이 쏟아졌다유학과 동학의 관계최시형 사상과 초기 맑시즘과의 유사성최시형 사상과 이슬람 사상과의 유사점 등등동양대학 심포지엄에서는 주체사상과 동학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이 어려웠는데이번에도 거의 답변을 하지 못했다동아시아사상과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 이외에는 - . 향후의 과제로 남았지만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해 준 것이기도 하였다한국생태문명회의에 이어서 동학과 세계철학과의 대화가능성을 또 한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번의 동학 기획은 기타지마 기신 교수와 원광대학교가 7년 간에 걸쳐 학술교류를 축적해 온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 축적이 있었기에 한국사상을그것도 동학사상을 일본에서 말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이다노자 식으로 말하면 한일학술교류의 ()’을 7년간 닦았더니 그것이 마침내 ()’으로 드러난 것이다개인적으로는 동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지 어언 10년의 세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로 기록될 것이다동학에 대한 이토록 뜨거운 반응은 한국에서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3. 북경에서의 대화

일본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채 안 된 12월 14나는 다시 북경으로 떠났다이번에는 중국학자들과 대화하는 자리이다주제는 중국의 향촌건설과 한국의 동학사상.” 󰡔백년의 급진󰡕의 저자이자 중국 향촌건설운동의 리더인 원테쥔(溫鐵軍, 1951~) 교수가 2018년에 원광대학교를 방문한 것에 대해 화답하는 형식으로 기획된 일종의 한중생태포럼이다당시에 원교수는 공주에서 있었던 한일시민동학기행에 참여하고다음날 원광대학교에서 강연을 하였다그 때 강연에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의 근대화가 서양의 영향으로 된 줄만 알았는데어제 동학기행을 다녀오고 나서 그 바탕에 동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대가다운 말이었다잠깐 동학전적지를 둘러본 것이 다인데 저런 통찰을 갖다니물론 이번 초청의 기획자인 이병한 선생과 통역자인 김유익 선생이 친절하게 배경설명을 해 준 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되지만 -.

이번에 참가한 우리측 학자는 포럼의 제안자이자 기획자이기도 한 개벽학당의 이병한 당장을 비롯하여 원광대학교 박맹수 총장, PaTI의 안상수 교수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의 정혜정 교수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의 김재익 연구원그리고 나이렇게 여섯명이었다중국측 참가자는 원테쥔 교수를 비롯하여 원테쥔 선생과 함께 원광대학교를 방문했던 짱란잉 교수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의 쑨거(孫歌교수그리고 중국의 향촌운동을 연구하는 국내학자들과 해외에서 온 중국학 연구자들이다이 외에도 영국 슈마허칼리지의 창립자이자 Resurgence & Ecology의 편집자이기도 한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의 저자 사티쉬 쿠마르(Satish Kumar) 선생도 특별히 강연자로 참석하였다.

기조강연을 맡은 원테쥔 선생은 뜻밖에도 탈서구중심주의를 화두로 꺼냈다내가 개벽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이것 때문이었는데중국에서도 이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동시에 왜 원테쥔 선생 쪽에서 동학에 관심을 표명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리게 되었다동학은 자생적 근대화 운동임과 동시에 한살림으로 계승된 생태철학인데이 두 요소야말로 원테쥔 선생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측 발표는 기조강연을 맡은 박맹수 총장이 동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와 한살림운동에 동참한 경험을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되었다이어서 개별발표가 시작되었는데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이었다나는 지난번 동경에서와 같이 전날 밤 늦게까지 중국어로 PPT를 만들었다양은 많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입력하는 중국어 자판이라서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다내가 발표한 주제는 최시형의 생태공화주의였다해월의 천지부모-만물동포” 사상을 포럼의 전체 주제에 맞게 생태공화라는 개념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이어서 정혜정 교수님은 󰡔개벽󰡕지의 중국 특파원을 역임한 천도교인 이동곡에 대해서 발표하였고김재익 연구원은 장일순의 한살림철학과 운동을 소개하였다이병한 박사는 동학에서 개벽학당에 이르는 동학 150년사를 동학 1.0에서 동학 4.0으로 정리하였고마지막으로 PaTI의 안상수 선생님은 자신이 디자인한 생명평화문양의 의미와 천도교의 궁을장에 담긴 디자인적 의의를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이번 포럼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국에서 온 사티쉬 쿠마르 선생의 발표였다쿠마르 선생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영성은 흔히 생각하듯이 신비적이거나 관념적인 어떤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땅을 경작하고 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체험되는 것입니다.” 중국측 발표자들에게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다한국에서도 영성이란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이렇게 체화된 언어는 처음이었다순간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싶었다쿠마르 선생이 죤 캅 교수와 더불어 중국의 향촌건설운동의 고문을 맡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운동이나 정책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어도 영성은 바깥에서 빌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마치 전통시대에 중국 유교의 부족함을 인도의 불교로 채웠듯이 말이다.

우리 쪽 발표에 대한 중국학자들의 반응은 약간 의외였다동학의 사상적 개성을 찾으려하기보다는 중국적인 천인합일이나 유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15분 안에 중국적인 천인합일과 해월의 천인상의(天人相依)나 천인상여(天人相與)와의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미국학자들이나 일본학자들이 보여준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아마 정부에서 후원하는 공적인 자리여서 더더욱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중국학자들 입에서 단 한 번도 평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우리측 발표자들이 하나같이 동학을 생명평화와 결부지은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이 차이는 동학 이래로 한국이 걸어온 길이 동아시아 안에서도 특수한 길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리라생각해 보면 홍콩문제나 티벳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평화를 말하는 것은 자칫 자기모순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향후의 과제

세 차례에 걸쳐 미국일본중국학자들과 동학을 매개로 교류하는 체험을 하고서 느낀 점은 앞으로의 동학연구는 동학사상과 세계철학과의 대화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는 것이다남미에 가면 해방신학으로 동학과 대화하고미국에 가면 생태신학이나 생태철학으로 동학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동학을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작업은 이미 1974년에 윤노빈이 󰡔신생철학󰡕에서 시도한 적이 있다일본과의 대화는 고마쓰 히로시박맹수오니시 히데나오 등이 다나카 쇼조와 전봉준최제우를 비교하는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다맑시즘이나 주체사상모택동사상과의 접점을 찾는 작업도 필요하다인간과 만물의 존재론적 평등성을 주장하는 서양의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은 최시형의 만물시천주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9년 개벽학 원년에는 개벽학을 한국근대사나 세계근대사에 자리매김하는 작업에 중점을 두었다개벽학 1년부터는 개벽학과 세계사상 사이의 접점을 찾아서 서로 대화를 모색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마지막으로 이런 과제를 자각하게 해 주신 한윤정 디렉터기타지마 기신 교수이병한 당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출전: 개벽신문》 91호.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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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벽파선언>을 읽고(5) 
    by소걸음Sep 04. 2019
    [편집실 주] 이 글은 '개벽학당'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개벽파 선언'을 읽은 소감을 발표한 글입니다. <개벽신문> 제88호(2019.9)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비움 (유채운)
     
     개벽학당 1학기 종강식에서 소감 발표하는 비움..

    대학공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다.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과제에는 학사경고를 받지 않을 정도로만 시간을 들였다. 대신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거나 꽹과리를 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학교는 교육권 문제로 진통을 앓았다. 시간제강사를 자르고 학과 체제가 학부 체제로 편입되어 가는 동안, 강의의 수는 축소되고 교육의 질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유서 깊은 정치학과가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폐지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학생들이 짊어지게 될 터였다. 
    보다 못한 학생들은 교육권 보장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나는 깊이 관여하지 않고 멀찍이 서서 지켜보았다. 가끔 단체행동이나 문화제를 할 때, 군중의 한사람으로서 머릿수를 보태주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역할을 다했다고 믿는다. 
    학교는 임박한 전환의 시대를 살아갈 지혜를 알려주기는커녕, 지지부진한 갈등을 일으켜 학생들의 진을 뺐다. 그렇다고 학교 수업이 유익한 것도 아니었다. 1학년을 위한 전공과 교양 수업들에서 지적인 자극을 얻을 수는 없었다. 사회학은 한국사회가 지닌 구조적 문제와 원인을 밝히는 데 유용했지만, 비평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개벽학당의 몸공부-훌라댄스 : "공부는 춤을 추고~"

    지루한 학교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매주 수요일 부암동에서 하는 <개벽학당> 덕분이었다. 개벽학당의 공부와 수양이 없었다면 대학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진즉에 뛰쳐나왔을 것이다. 인류세, 초지능, 호모데우스. 개신유학, 원불교, 한살림, 천도교. 학습과 수양. 수신제가치국평천하. 

    3월 초부터 6월 말까지 4개월간, 개벽학당에서는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다급한 문제들을 촘촘히 들여다봤다. 우리는 인류세를 살고 있다. 인간은 전대미문의 힘과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집합적 의지에 의해 만물과 지구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한편, 초지능의 부상을 목격하고 있다. 벽청들과 함께 읽은 <<라이프 3.0>>에 따르면, 머신러닝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보다 훨씬 똑똑한,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여겨지던 자유의지와 자율적인 선택능력까지 지닌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인류는 거대한 전환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 
     
    우리가 구태여 ‘개벽’을 들여다 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거대한 전환 앞에 망연히 서있는 인류의 출로를 궁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성난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신유학, 원불교, 한살림, 천도교. 최제우가 1860년대에 개창한 동학, 그러니까 개벽에는 자본주의, 산업혁명, 서세동점의 세기가 산출한 기후변화와 지구문명의 위기, 인류세로의 진입과 머신러닝의 부상이라는 대전환을 돌파할 논리들이 담겨있었다. 
      
     개벽학당의 몸수련-몸과 마음(정신) 공부의 병행

    향.아.설.위. 

    이 네 글자를 발음할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였다. 최시형은 신위의 방향을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로 돌려버렸다. 최시형이 신위의 방향을 우리에게 돌린 이유는, 우리 모두가 신성한 우주와 하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늘이니 너도 하늘이다. 나이와 신분과 딱딱한 관념은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 맞절을 주고받자.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개벽은 맑스를 경유하지 않고도 만인과 만물의 평등을 떠올렸다. 개벽의 품안에서는 군자와 소인, 문명과 야만,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친척과 남남 등의 전통적인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상하관계와 친소관계를 규정하는 차등의 예를 벗어던지고, 상호가 존엄하고 평등한 관계임을 선언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개벽은 백성이 행복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가진 경세론이기도 했다. 일제의 침략이 태동하던 구한말의 보국안민은 자주독립운동으로서 발현되었다. 쉽게 말해서 조선의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하지만 단순히 조선의 평화와 부국강병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신조선’을 건설하는 것에서 한 발 짝 더 나아가 치국-평천하, 즉 세계의 평화까지 염두에 두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상천국’을 현세에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지난 4개월 간, 개인의 변화를 시작으로 국가론을 거쳐 평화로운 세계 체제의 건설까지 구상했던 개벽을 탐구하며 때때로 아찔함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개벽을 또 다른 책상물림과 탁상공론으로 흘려보내지 말자. 
    무언가를 한다는 말에는 의지가 개입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힘써서 선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다’는 말은 어떤 당위를 위해서 구태여 일을 진행한다는 뜻이 된다. 반면 ‘산다’는 말은 의식하지 않아도, 힘써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을 뜻한다. 어떤 가치가 한 번 내면화 되면, 이후에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삶은 그 가치에 따라 운행한다. 우리가 해야 할 건 개벽을 ‘사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하늘님을 자각하고, 나와 함께 전환의 시기를 견뎌낼 이웃과 동지들을 정성껏 돌보자. 부디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무사히 건너가자. 

    후천개벽의 후천개벽을 열어젖히자. 
    후천개벽의 후천개벽 시대에서는 동서의 결합이 긴요해질 것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20권 정도의 책을 대학 기숙사에 가져갔다. 그 중에서 우선 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 쓴 <<앙띠 오이디푸스>>,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 김상준 교수님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를 함께 읽고 있다. 우선 나부터 동과 서, 고와 금을 가리지 않는 미더운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앞서 사회학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학이 시사하는 바는 유효하다. 1000년간 저 광활한 대륙을 통치했던 유교의 경험과 현실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사회학의 경험이 만나야 한다. 후천개벽의 후천개벽의 시대에서는 지성을 단련하는 것에만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유려한 자유형으로 물살을 가르고, 나무를 깎아 손수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내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한 끼 든든한 밥상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옹이가 박힌 투박한 손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개벽을 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 우리, 개벽을 살자.

    <개벽파선언 구매 예약 - 9일 이후 받아보게 됨>

    개벽파선언 by 조성환 / 이병한
    ‘개화파 / 척사파’로 대별하여 이해해 온 한국 근대화 흐름에 ‘개벽파’라고 하는 제3의 길과 사상과 운동이 있었음을 주목한 책이다.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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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하는, 평화하는, 개벽하는, 청년
    -<개벽파 선언>을 읽고 (4) | [편집실 주] 이 글은 '개벽학당'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개벽파 선언'을 읽은 소감을 발표한 글입니다. <개벽신문> 제88호(2019.9)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아띠 (황지은) 개벽학당 개강을 앞두고 여시재로 답사가던 날, 로샤(이병한 선생님)의 뒤를 좇아 헉헉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새별(조성환 선생님)과는 서먹서먹하고 수줍던 사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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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하늘철학 탁사 최병헌의 ‘같은 하늘’론

    한국인의 하늘철학



    한국인의 하늘철학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9)

    by소걸음Jul 08. 2019

    [이 글은 <개벽신문>제85호(2019.6.15),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9)에 게재된 글입니다.]



    조성환 /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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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사 최병헌의 ‘같은 하늘’론



    구한말에 한국 신학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받는 탁사 최병헌(1858~1927)은 1903년에 쓴 <기서(奇書)>라는 글에서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다”는 유명한 ‘종교론’을 피력하였다.



    서양의 기계만을 취하고 ‘종교’는 높일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하는데 이는 (종교를) 이단으로 여겨서 참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라의 형세를 개탄하는 자들이 매양 서양의 기계의 이로움을 말하면서 교도(종교)가 미풍이 아니라고 배척하며, 외국이 강하다고만 하고 부유하고 풍요롭게 된 ‘근원’은 살피지 않는 것이 참으로 한탄할 일이다. 대개 ‘대도(大道) ’는 방국[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진리는 중외에 통용 가능한 것이다.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고, 천하(세계)로 보면 모두가 일가(一家)이며, 사해가 형제라 할 수 있다. 상제를 공경하고 인민을 아낀 점에 이른다면 어느 누가 마땅한 ‘윤리’라고 하지 않겠는가! [<<황성신문>>, 1903.12.22.] 1



    최병헌은 서양의 부국강병의 ‘근원’을 과학이 아닌 ‘종교’에서 찾고, 그것을 ‘참 진리’라고 하였으며, 그 내용은 결국 “세계가 일가이고 사해가 형제”인 일종의 ‘세계윤리’라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은 최병헌보다 한 세대 위인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서양의 힘은 과학에 있고, 그 근원은 물리학이다”라며,2 이른바 ‘실학론’을 내놓은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최병헌의 입장에서는 서양의 과학(물리학)이 아닌 종교(기독교)야말로 실학이다.



    최병헌이 ‘하늘’을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만약에 후쿠자와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면 ‘하늘’이 아닌

    ‘리’를 언급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물리(物理)야말로 진리(眞理)이다”와 같은 식으로. 반면에 최병헌에게 ‘하늘’은, ‘물리’와 같은 과학 체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히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지평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후쿠자와가 말하는 실학(實學)의 바탕에 있는 천학(天學)의 영역이다. 그것을 최병헌은 ‘종교’이자 ‘윤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최병헌에게는 과학보다는 종교와 윤리가, 달리 말하면 종교와 윤리를 탐구하는 ‘천학’이 상위에 놓인다. 후쿠자와가 천학에 대한 과학의 우위를 말했다면, 동시대의 최병헌은 천학에 대한 과학의 우위를 말하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나타난 이러한 서양 인식의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나타난 궁극적 관심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후쿠자와가 서양 과학의 우위를 기준으로 동서의 우열을 짓는다면, 최병헌은 하늘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동서의 같음을 말한다. 이 ‘하늘’ 아래에는 문명과 야만의 화이관도, 혈연 간의 구별도, 인종 간의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한 존재이다. 이러한 대도론, 세계주의, 사해동포사상은 최병헌 뿐만 아니라 개벽종교의 공통적인 세계관이자 인간관이었다.



    예를 들어 동학의 해월 최시형은 “만물은 하늘과 땅의 자식이다”는 천지부모론을 제창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인간평등, 인물(人物)평등, 만물공경 사상의 존재론적 원리가 되고 있다. 이후의 원불교에서도 “세계의 모든 종교의 근본되는 원리는 본래 하나”3라는 진리론, 종교론과 더불어, “세계는 곧 온 인류를 한 단위로 한 큰 집”4이라는 세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천도교에서도 “이에 따른 세계주의의 필요가 생기게 된다. 세계를 한 집안(一家)으로 하고, 각 민족이 공통으로 공존공영의 생활을 도모한다”5고 말하고 있다.



    최병헌과 같은 하늘론, 즉 “동서의 하늘이 같다”는 인식의 원형은 1860년에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학과 서학은 모두 같은 천도이다”『( 동경대전』)는 말이 그것이다. 최제우는 당시의 서학, 즉 천주교를 ‘서양의 개벽’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동방(한국)의 개벽으로 동학을 제창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삼일독립운동 때 천도교와 기독교가 합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제우의 천도론은, 최병헌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중심으로 동학과 서학을 회통시킨다는 점에서 일종의 회통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제우의 천도회통론은 이후에 이능화로 가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하늘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백교회통론(1912)으로 이어진다.



    한밝 변찬린의 ‘다른 하늘’론



    한편 최병헌이 세상을 뜨고 얼마 안 있어 세상에 나온 한밝 변찬린(1934~1985)은 흥미롭게도 ‘다른 하늘’론을 말하고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하늘은 ‘마음의 열림’과 ‘자각의 차원’을 의미한다. 인간의 마음이 개명(開明)되는 정도에 따라 그 개천(開天)하는 하늘도 각각 다르다. (…) 모든 종교는 마음의 개명에 비례하여 하늘을 개천하였다. 인간의 마음을 닦는 정도에 따라 개천되는 하늘이 다르며, 하늘의 열림에 따라 응감되는 신들도 다른 것이다.

    불교와 유교와 도교와 기독교가 개천한 하늘이 같은 하늘인 듯하면서 그 차원이 차이가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다신(多神)이 존재하는 하늘과 유일신이 존재하는 하늘이 같은 차원일 수 없다. 우리는 이 날까지 하늘이라면 다 같은 하늘로 동일시하는 하늘관에서 탈피하여 하늘의 실상을 깨달아야 한다." 6



    여기에서 변찬린은 모든 종교는 (새로운) 하늘을 여는 개천(開天)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마음이 열리는 정도에 따라 열리는 하늘[자각]의 차원도 다르다”는 점에서는 각각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최병헌의 ‘같은 하늘론’(同天論)에 대해서 ‘다른 하늘론’(異天論)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변찬린은 종래의 한국인의 하늘관이 ‘같은 하늘’에 치우쳤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개벽종교에서도 ‘같은 하늘’을 강조하였는데, ‘한울’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그러나 개벽종교에서 말하는 하늘과 변찬린이 말하는 하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개벽종교에서는, 가령 동학이나 원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한울’은 우주론이나 존재론적인 성격이 강하다. 전통적인 개념으로 말하면 천지(天地)에 해당한다. 천지 아래에서는 만물이 하나라는 것이 ‘한울’ 개념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한울’에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만물일체사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변찬린이 말하는 하늘은 마음의 자각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세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즉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인식한 세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찬린의 하늘은 다분히 인식론적이고 철학적이다.



    마치 “이 세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장자적인 입장을 연상시킨다.7 이처럼 변찬린의 ‘하늘’ 개념은 종교 간의 같음보다는 다름을 지적하면서, 그 다름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변찬린의 하늘은, 종교 간의 같음을 강조하는 개벽종교의 ‘한울’ 개념이나 최병헌의 ‘하늘’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병헌과 변찬린의 하늘론은 오늘날과 같이 한편으로는 원자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최병헌의 하늘론은 원자화된 파편들을 묶어주는 힘이 있고, 변찬린의 하늘론은 획일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벽의 하늘’은 이 두 하늘을 아우르는 양행(兩行)의 하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물이 존재론적으로 하나라는 ‘한울’의 우주론과 각자가 보는 세계가 다르다는 차이의 인식론을 동시에 겸하는 현명(玄明)의 하늘이 곧 개벽의 하늘이다.



     <주석>

    1 이혜경, <천하에서 국가로>에서 재인용, <<근대 전환 공간의 인문학, 문화의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발표문, 2019년 6월 13일, 숭실대학교.

    2 사사키 슌스케, 가타오카 류, <일본과 한국에서의 ‘실학’의 근대화>>,  <<한국종교>> 43, 2018 참조.

    3 <<정전>>, 제1 총서편, 제2장 교법의 총설.

    4 <<정산종사법어>> 제1부 세전(世典), 제7장 세계(世界), 1. 세계에 대하여.

    5 김병제, 이돈화,  <<천도교의 정치이념>>, 제2부 <당지>, 모시는사람들, 2015, 107쪽.

    6 변찬린, <성경의 원리>, 332쪽; 이호재, <한국종교사상가 한밝 변찬린>, 문사철, 2017, 246쪽에서 재인용.

    7 Brook Ziporyn, Zhuangzi: The Essential Writings: With Selections from Traditional Commentaries, Hackett , 2009 서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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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ghwan Jo 죽은 신을 섬기지 말고 산 사람을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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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혁명기념사업추진단”과 “서울동학-최보따리인문포럼”그리고

    동학 전문가 그룹과 함께 떠나는

    동학유적지 역사 여행(경주, 울산지역)을 시작합니다. 일명“동학기행”

    저희 ‘동학혁명기념사업추진단’과 ‘서울동학-최보따리인문포럼’은

    ‘동학사상’과 ‘동학혁명’을 계승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실천의 발걸음으로 ‘동학유적지’ 역사여행을 시작하려 합니다.

    2019년 “동학기행”입니다.

    본 여행은 “동학의 창명에서 수운의 순도까지” 라는 테마로 3차에 걸쳐 진행됩니다.

    1차는 울산, 경주 일원(6월).

    2차는 남원 은적암 및 전라지역 동학 혁명지 일대(9월).

    3차는 문경새재 및 대구 관덕정 일대(10월)를 탐방합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의 행적을 따라갑니다.

    동학 최고의 전문가 윤석산 교수의 현장강의와 함께 진행됩니다.

    현장강의를 통해 동학 탄생의 배경과 그 사상의 핵심이 참가자분들께 깊이 전달되기를 기대합니다.

    ‘사람이 한울’인 사회를 실천하며 만유를 공경하는 ‘동학’을 가슴에 담고자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1. 답사의 중점 사항

    동학 발상지에서 듣는

    동학전문가 윤석산 교수의 현장강의

    2. 답사 지역

    동학의 발상지인 경주와 울산 일원의

    동학유적지와 경주 일원 신라 유적지

    3. 일시

    2019년 6월 29일 ~ 6월 30일 (1박 2일)  전 일정 무료

    ※ 구체적 일정은 별첨 참조

    4. 참가방법: 구글 리포트 제출

        ( 6월 20일까지 접수-선착순) 

    동학기행- ‘동학혁명기념사업추진단' 주관

    DOCS.GOOGLE.COM

    동학기행- ‘동학혁명기념사업추진단' 주관

    동학명기념사업추진단과 함께하는 ‘제1차 동학기행’ 참가 지원 “동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