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1

[페친][메노나이트] 한국 메노나이트의 기원과 사토시 타카히 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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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메노나이트] 한국 메노나이트의 기원과 사토시 타카히 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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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토시 상은 한국 출생 일본국적인으로 혹카이도에서 농장을 하며 사는 분이다. 일본이름으로 한글로 글을 쓰니, 미리 그 배경 설명부터 좀 해놓는다. 내가 사토시 상을 알게 된 것은 메노나이트 종파와, 한국 메노나이트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일본 메노나이트인 줄 알고 페친신청을 하고 난 후였다.
- 내가 메노나이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우선 메노나이트가 퀘이커 처럼 평화교회라는 것이었고, 또 미국 퀘이커 처럼 북한에서 지원사업을 해 왔다는 것인데서 시작했으나, 또 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는 퀘이커보다 메노나이트가 더 숫자도 많고, 활동도 많은 것을 알게되어, 그 이유를 이해하려는 데 있었다. 그 이유의 현재적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메노나이트가 한국서 어떻게 시작했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사토시 상이나 한국 메노나이트의 현재와 어떻게 관계되었는가를 짧게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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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퀘이커는 거의 함석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이기도 하나, 물론 실제로는 미국 퀘이커가 한국에 "선교'활동을 하러 온 것이 함석헌과의 만남의 시작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메노나이트도 한국에 선교를 하러 온 것이 한국 메노나이트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퀘이커의 경우에는 함석헌 같은 큰 인물이 한국에서의 퀘이커 사상의 전달자 역활을 하게 되었으나, 그 외로는 그 전수의 매체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메노나이트의 경우에는 퀘이커보다 10년이나 먼저인 1950년대에 메노나이트가 한국에 새운 고아들을 위한 직업훈련학교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이 직업훈련학교는 약 5-6년간 계속하고, 메노나이트 선교단은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당시에 이 학교를 통하여 지나간 아이들이 그 후로 한국 메노나이트의 제 1세대가 된 것같다. 그리고 그 자식들 중에 카나다나, 미국의 메노나이트 대학을 가게 된 사람들이 제 2세대가 된 것이다. 한국 퀘이커의 경우에는 이런 매체가 없었던 것이 한국 퀘이커가 자라지 않은 이유인 것 같다.
- 사토시 상 (47년생) 은 이 메노나이트 직업훈련학교 출신이었던 것이다. 이 직업훈련학교의 출신들은 모두 이 학교의 "은혜"를 잊지 않고 뭔가를 통해 갚으려고 하는 것 같다. 우선은 자신이 메노나이트가 되는 것이고, 또 메노나이트로서 사회에 공헌하려는 것이다. 사토시상의 경우에는 농업기술 전문가가 되어 일본에 오게 되고, 나중에는 정착하여 혹카이도에서 농장을 사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는데,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만, 그 농장안에 메노나이트 교회와 학교를 새우는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짧은 줄거리이다.
- 언제인가 더 긴 이야기로 쓰게되기를 바란다.







Satoshi Takahi
onSpstreodm40cf 20a ir4h79c85fhi0cy37a1u10Jc092i2nc32h5ucc2a ·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며 좋겠다. 요즈음 날씨는 많이도 추운것이 우사안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다. 누구인가가 길가에 버려둔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목장안에서 함께 지낸지가 몇년이 지났다. 요즈음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송아지 등에 올라 가만히 앉아 있다. 아마 서로가 얼굴을 익혔는지 아니며 야 고양이야 내 등에 올라와 봐 아마 따뜻할것야. 그러면 무겁고 귀챦을텐데 괜챦을까라고 물어보는 고양이 에게 너 얼마나 무거운데 그런말 하니 나야 아무렇치도 않아 우선 추우니까 잠깐이라도 올라와서 앉았다 가 라고 이야기 하는것 같다. 그래 우리네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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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toshi Takahi
    예. 고맙습니다. 미국메노나이트는 한국에서 1951-1970년까지 약 20년간 구호, 봉사, 교육, 농촌개몽등 한국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문없이 많은 봉사를 하여 왔습니다.
  • Cha Mikyung Seraphina
    맞습니다. 전쟁 당시 구호활동을 펼친 후 퀘이커는 군산, 전주 등지에서 의료활동을 전개하였고, 메노나이트는 대구 경산을 중심으로 사무소가 꾸려졌죠, 케이커 그룹 중 미국 AFSC가 1981년 방미를 시작으로 남한, 북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메노나이트는 베트남전 구호활동을 위해 한국을 떠날 때 한국보다 더 어려운 베트남. 이후 북한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죠.
    • Sejin Pak
      Seraphina Cha 퀘이커의 초기 의료활동에 대한 기록을 어데서 읽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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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 Mikyung Seraphina
      Sejin Pak 제가 내일 중 메신저로 전해드릴게요. 참 웰링톤 퀘이커하우스에서 일주일 머무르는데 호주 퀘이커 분들 몇분이 묵으셨어요 첫 방북 사업 글 읽고 반가웠습니다.
  • Yoshiko Hatano
    メノナイト?聞いたことがありません?にほんでは何と言いま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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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성수
    유니테리언도 한국 구호 사업을 하고 철수 했지요.
  • Cha Mikyung Seraphina
    메신저 안 되서 여기다 써요. 군산도립의료원 역사사료 참조하세요

한국 첫 '퀘이커' 탄생했던 '군산 도립의원'

한국 첫 '퀘이커' 탄생했던 '군산 도립의원'



한국 첫 '퀘이커' 탄생했던 '군산 도립의원'
수탈의 도시 군산의 '현대 의료사 100년' (4)
조종안(chongani)
등록|2011.03.03 17:50수정|2011.03.03 17:50
 


▲ 파괴된 건물을 복구한 군산 도립의원 본관(1954년). 한 때는 군산의 명물이었습니다. ⓒ 군산도립의원

군산 도립의원은 해방(1945년)과 함께 한국인 운영체제로 바뀐다. 그해 11월 쌍천 이영춘 박사는 전북 군정청 지사(정일사)와 보건후생국장(노윤모)의 간청으로 원장을 겸임한다. 이 박사는 6개월에 걸쳐 병원 업무를 수습하고 원산 출신 이상기 의사에게 원장직을 인계한다.

일제강점기(1922년)에 완공된 병원 건물은 한국전쟁(1950년) 때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된다. 당시 영국인 의사 '잉글 라이트'(Ingle Wright) 박사를 포함한 미·영 '퀘이커(Quaker)'들은 난민들을 위한 의료 봉사를 하면서 건물 복구공사에도 참여한다.





▲ 난민들 의료와 건물 복구사업에도 참여했던 퀘이커 봉사단들. 가족이 모두 참여한 퀘이커도 있었다고 합니다. ⓒ 이영춘박사기념사업회



▲ 미·영 퀘이커 봉사단과 한국인 봉사자들 기념사진. ⓒ 이영춘박사기념사업회
퀘이커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시기는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던 1953년. 당시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으로 이루어진 퀘이커 소속 봉사단이 군산 도립의원에서 구제활동을 하면서 한국에서 첫 퀘이커가 탄생한다. 주인공은 대한 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이윤구(전 인제대총장) 박사.

한국인 최초로 퀘이커가 된 이 박사는 자신이 쓴 경험담에서 "1956년 여름이었어요. 그때는 군산 도립병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봉사자들과 한국인 의사, 간호사들이 주말에 교대로 대천 해수욕장에 가서 지친 몸을 쉬는 제도가 있었어요"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장로교 신자였던 바보새 함석헌(1901-1989)도 1961년 1월부터 퀘이커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다. 함석헌은 훗날 <나는 어떻게 퀘이커가 됐나>라는 글에서 일요모임 회원이었던 이윤구 박사를 통해 퀘이커를 알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6·25 직후 우리나라 복구 사업을 하는데 퀘이커교에서 영·미 합작으로 수십 명의 사람을 보내왔었지요. 그들이 군산에서 파괴된 도립병원 복구공사를 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참가해서 처음으로 퀘이커를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들의 신앙에 참 감동했어요. 그들로 인해서 나는 퀘이커리즘에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함석헌 평전> 142쪽)




▲ 도내 대학에 의예과가 없던 시절 개정 간호학교 학생들이 실습하는 모습.(50년대 외국인이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됩니다) ⓒ 김성겸
'가천 길재단' 이길여 회장은 자신의 저서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에서 군산 도립의원에서의 수련의 시절(1957-1958)을 회상했다. 이회장은 군산이 고향이고 외국인 의료진이 파견 나와 있는 병원이어서 수련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퀘이커 봉사단 소속 영국인 의사 '골든'이 폐렴환자의 입과 코에서 흐르는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모습을 보는 순간 하얀 가운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면서 그때 충격을 받고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퀘이커봉사단은 1958년 여름에 본국으로 돌아간다.

한때는 월명공원과 함께 명소가 되기도

군산 도립의원은 한때 외지인들도 즐겨 찾던 명소였다. 나무가 숲처럼 우거진 정원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은 정신을 맑게 해주었고, 잘 가꾸어진 넓은 잔디는 환자는 물론 간호사와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휴식 공간이 되어주었다.




▲ 군산 도립의원 정문에서 월명공원 가는 길. 높은 가시철망이 눈길을 끕니다. (1965년 2월 촬영) ⓒ 조종안
병원 정문에서 왼쪽 길로 조금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군산부사 건물과 군산신사가 있던 자리가 나오는데 숲이 우거져 새벽 산책길로 사랑을 받았다. 긴 돌담을 끼고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으며 미팅을 즐기던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추억의 기념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좋았다.

특히 붉은색 벽돌로 쌓은 대리석 2층 본관 건물은 시내에서 고층 건물을 보기 어려웠던 60-70년대 상춘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50년대 자유당 시절 대통령이 방문했던 병원이라는 소문은 시골 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선장 가는 길목이었던 병원 인근에는 시영 테니스코트와 해망굴, 흥천사, 등나무 숲,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어서 봄이면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외지 사람들이 환자 병문안을 관광 겸해서 올 정도였다.

어떻게 운영했는지 해마다 적자 못 면해




▲ 군산 도립의원 산부인과 과장이었던 황선주 박사 ⓒ 조종안1961년 전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산 도립의원 수련의를 거쳐 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했던 황선주(76) 박사를 만났다. 황 박사는 1972년 시내 개복동에 개원해서 진료에 임하다 7년 전부터 쉬고 있다고 말했다.

- 고향이 전남으로 아는데, 군산으로 오시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뭐시냐, 나는 처음에 여수로 갈라고 했지라. 그런데 존경하는 과장님이 군산으로 가라는 거라. 누구 말이라고 거역하겠어, 멋모르고 오게 됐지. 전북대학교가 의대 개설을 앞두고 있을 때여서 군산에는 서울 세브란스(연세대 의대)하고 전남의대 출신 의사가 많았어요.

- 당시 병원 분위기는 어땠는지요?
극빈자들은 무료로 치료해주었지. 그들을 위한 병동이 따로 있었는데 귀신 나올 것처럼 음침했지라. 꼭 거지 촌 같았어요. 일반 환자들도 잡목이나, 석유난로에 밥을 해먹응께 굉장히 불편했어요. 그래도 그때는 나도 잘 나가고, 군산도 잘 나갔어요. 바다에 고기가 펄떡펄떡 뛰어댕기고 대단했죠. 그려서 그냥 주저앉았지라. 지금까지.(웃음)

황 박사는 병원 바로 앞에 병원 원장과 서무과장 사택이 있었고, 입원실을 칸칸이 막아서 살림도 할 수 있도록 과장(의사)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주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충청도 등 외지에서도 환자가 많이 왔는데, 어떻게 운영했는지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콜레라 확산으로 곤욕 치르기도

1969년 가을에는 콜레라 확산으로 환자 1백 6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하느라 곤욕을 치른다. 일본선적 '긴세이 마루'호 선원(시마사키 씨지에)이 심한 설사와 탈수 증상으로 6일간 입원치료를 받고 출항한 후 군산시와 옥구군 미면 일대까지 콜레라가 번졌던 것.

환자 대부분이 가난한 부두 노무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당시 정부는 콜레라 방역 특별대책본부를 설치했고, 국방부는 군산, 옥구 지역에 휴가나 외출을 일절 금지시켰다. 특히 군산항에 입항한 해군 함정은 군인들의 육지 상륙을 막을 정도로 악몽의 상황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1970년에는 지역주민의 보건향상을 위해 간호보조원 양성소를 개설하여 전문 간호인력을 배출하기 시작했으며, 1972년에는 혈액원을 설치하여 군산 지역의 응급환자에게 부족한 혈액을 공급하면서 질 높은 진료에 일익을 담당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병원 약국에서 근무했다는 김성겸(60세) 현 군산의료원 기획팀장에게 1969년 11월 콜레라 사태와 70년대 의료상항을 들어보았다.

"콜레라 사태가 나던 69년은 제가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근무할 때인데요. 입원실이 부족해서 병원 복도에 야전침대를 깔고 환자를 받았습니다. 환자를 돌보던 저도 감염되어 죽을 뻔했어요. 60-70년대만 해도 의료시설이 빈약했고, 입원실 환경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거든요. 그 속에서도 77년 익산역 폭발사고 때는 절반이 넘는 환자를 수용했습니다.

80년대 초까지는 입원실이 어른 허리높이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어서 환자 가족이 불을 지펴서 밥을 해먹었지요. 청구목제나 한국합판에서 나오는 잡목을 병원 매점에서 팔았어요. 새끼줄로 묶은 잡목 한 단에 20원-30원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을 땔 때는 연기가 자욱해서 수술환자 '뜨레싱'을 다니지 못할 정도였어요. 다 지나간 옛날 얘깁니다."

1977년 11월11일 익산역 폭발사고로 부상당한 가수 하춘화가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기자들과 사인을 요구하는 팬들의 성화로 의사들이 진료를 못할 정도였다는 김 팀장 설명은 당시만 해도 전주·익산의 종합병원들보다 규모가 컸음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방공사 '군산의료원'으로 새 출발

군산 도립의원은 지역주민의 인지도가 향상되면서 병실 등 부대시설이 부족할 정도로 환자가 늘어난다. 1981년 11월에는 100병상의 인가를 얻어 본관 신축공사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2년 뒤인 1983년 7월1일 지방공사 전라북도 '군산의료원'으로 전환된다.




▲ 군산시 지곡동에 자리한 ‘군산의료원’ ⓒ 조종안


지방공사로 바뀐 군산의료원은 1988년 5월20일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1995년까지 병동을 세 차례 중축한다. 1996년 1월 정밀안전진단 결과 신축 권유로 신축이전 계획을 수립하고, 1997년 8월 14일 지금의 자리(지곡동 146번지 45필지)를 병원 부지로 결정한다.

1997년 5월1일 진료과 20개에서 21개 과로 증설한 군산의료원은 1998년 11월 원광대학교 병원으로 위·수탁을 계약 체결하고, 2002년 4월 한방병원 개원과 함께 신축병원 건물(400병상)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23/01/30

알라딘: [전자책] 이시형 박사의 둔하게 삽시다

알라딘: [전자책] 이시형 박사의 둔하게 삽시다

[eBook] 이시형 박사의 둔하게 삽시다 
이시형 (지은이),이영미 (그림)한국경제신문201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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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 Point : 97 
 8.8 100자평(4)리뷰(34)

책소개

무엇이든지 풍족한 과잉의 시대, 우리는 행복한가? 출판사상 최초의 논픽션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우리 사회에 '배짱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시형 박사가 과민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

물질적, 경제적으로 넘치는 삶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불행하기만 하다. 
자꾸 화가 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이상하게 변하는 세상은 내가 어찌하지 못하더라도 내 마음의 행복과 평안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다. 탁월한 통찰력과 독창적인 인생론으로 지난 30여 년간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이시형 박사가 과민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으로 '둔하게 살자'고 권한다.


목차

프롤로그_ 둔하게 살자니?

part1 우리가 과민해진 이유

chapter1 어쩌다 과민해진 걸까
넉넉하진 않지만 행복했던 시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왜 화가 날까?

chapter2 과민증후군이란 무엇인가
만나자 마자 기분이 나쁘다
감정보다 앞선 사고: 감정기억
이유 없이 미운 사람: 전이
어이없는 꾸중: 가시 수집가
도대체 뇌에서 무슨 일이?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르다
돌아서서 심호흡을 세 번
화를 내서 득 보는 일은 없다
과민증후군 진행과정_ 똑같은 상황, 다른 반응

chapter3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성이 마비되는 사람: 전두 연합야의 문제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 편도체의 과열
상처에 민감한 사람: 마음까지 편해지는 둔감력

part2 무엇이 과민하게 만드나

chapter4 끊임없는 무한경쟁
왜 나만 갖고 그래!: 열등감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 경쟁 강박증
강한 척하는 약한 마음: 자존심 과잉
세상에 믿을 사람 어디 있어: 불신과 의심증

chapter5 불확실의 시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증
온종일 건강 생각뿐: 건강 염려증
분노는 나의 힘: 만성 분노 증후군

chapter6 과민한 집착, 재기불능
나도 피곤, 남도 피곤: 완벽주의
하지 않으면 안 돼: Must병
모두가 나만 쳐다봐: 외형 과민증

chapter7 넘치는 스트레스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빨리빨리 하다가 빨리 간다: 조급증

part3 감동의 시대를 살아라

chapter8 평상심을 유지해주는 세로토닌
세로토닌적 삶
웃기도, 울기도 하는 감정 역치

chapter9 민감증후군을 예방하자
애정의 눈으로 보라
작은 일에서 찾는 즐거움
경청력을 높여라
베풀고 나누는 사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위기에도 혼자 조용히
큰 존재가 되어라
그만하면 됐다
설렘이 있는 인생
감사하며 살아라
감동을 느껴라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라

에필로그_ 둔해져야 한다

접기


책속에서

나는 이제 좀 둔하게 살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과민 상태에 다다랐습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이미 위험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렇게 과민해서야 마음 놓고 살 수 없습니다. 24시간 긴장상태에 있는 사회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사람들을 과민하게 만들게 되었을까요? 가해자, 피해자 모두가 과민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것을 통칭 ‘과민증후군’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과민증후군’은 정신과적 진단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사회, 한국인의 사회적 정신병리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 같습니다.


_‘프롤로그 둔하게 살자니?’ 중에서

화가 나면 못 참고 폭발해버리는 사람이 있다. 누가 봐도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 전쟁이나 난 것처럼 흥분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성을 낸다고 해서 폭발성 성격explosive character이라는 진단이 붙는다. 결론적으로 화를 내서 득 보는 일은 없다. 왜 화날 일이 없겠는가?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자. 이는 전두 연합야 관리를 잘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화 다스리기는 결국 전두 연합야가 관리하며, 화가 난 감정의 발원지인 편도체는 내 의지대로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_‘화를 내서 득 보는 일은 없다’ 중에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자면 여간 노력해서는 안 된다. 행여 싫어하지나 않을까 계속 상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이 있으면 그만 안달이 난다.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바짝 긴장해야 한다. 전형적인 과민증후군이다. 이런 사람의 해결책은 목적의식을 갖는 일에서 시작된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사노라면 줏대 없이 흔들리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 일로 매진만 한다면 남들이 뭐라 하든지 왜 신경이 쓰이겠는가.

_‘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증’ 중에서

즐거운 인생이라고들 말끝마다 떠들지만 즐겁게 산다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태생적으로 즐거움에 상당히 인색하다. 인간의 기본 감정 여섯 개 중에서 단 한 개만이 즐거움과 기쁨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다섯 개는 모두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따라서 즐거움은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즐거운 공상을 하든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든 아니면 당장 즐거워질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 한다. 작은 일이라도 좋다. 작은 즐거움이 생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_‘작은 일에서 찾는 즐거움’ 중에서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해왔을 때 즉석에서 승낙한 건 이 책이 처음이다. ‘그래 그거야.’요즘 내 머리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안개가 순간 걷히는 것 같았다. “둔하게 삽시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그 한마디에 응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회정신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대로 있어선 안 되는데 하고 속만 끓였을 뿐 얽인 실타래가 풀릴 열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정확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제목만으로 순간 내 머리에 섬광이 번뜩이는 느낌이었다. 그간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온갖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가고 있었다. 워낙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라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이다.
_‘에필로그 둔해져야 한다’ 중에서  접기
그러나 내 방법은 정반대이다. 나는 자신이 없다.˝ ‘밀릴지도.
모른다. 실수할지도 모른다고 솔직히 자신부터 인정한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를 사람들 앞에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
˝저는 신입사원입니다. 중요한 분들 앞에서 설명을 드린다는 게무척 긴장이 됩니다. 혹시 실수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더보기 - poohhoney



저자 및 역자소개
이시형 (지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 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서울의대(외래)·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 더보기
최근작 : <이시형의 신인류가 몰려온다>,<이시형 박사가 추천하는 면역증진 다이어트 키친>,<통합의료> … 총 146종 (모두보기)
이영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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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 바람과 물빛과 오소소 일어나는 작은 솜털까지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화가. 잊지 말자. 오늘이라는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내가 나답게 사는 일은 지금 그림을 그리는 일… 내 그림의 이야기는 오늘이 지나는 기억에 남았다. 건강한 삶은 긍정적이고 조금은 ‘둔한’ 생각에서부터 생겨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으며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거침없었으면 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욱하는 세상, 둔하게 삽시다!”
이시형 박사가 알려주는 과민한 시대에 행복하게 사는 법

무엇이든지 풍족한 과잉의 시대,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출판사상 최초의 논픽션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우리 사회에‘배짱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시형 박사가 과민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 물질적, 경제적으로 넘치는 삶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불행하기만 하다. 자꾸 화가 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이상하게 변하는 세상은 내가 어찌하지 못하더라도 내 마음의 행복과 평안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다. 탁월한 통찰력과 독창적인 인생론으로 지난 30여 년간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이시형 박사가 과민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으로‘둔하게 살자’고 권한다.

- 우리 시대의 멘토 이시형 박사가 전하는‘과민 증후군 시대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법’
- 정신의학계의 권위자가 지나치게 과민한 이 시대에 던지는 새로운 메시지,‘과민 증후군’
- 물질적 풍요 속에서 참 행복의 의미를 잃고 점점 외로워지고 과민해지는 현대인들을 위한 행복법

도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과민해졌을까?
만족을 모르는 우리가 놓친 행복에 대한 이야기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삶을 사노라면 당연히 예민하고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자꾸만 화가 나고, 주변은 어이없는 일들로 싸움이 벌어지고, 심지어 ‘묻지 마 살인’까지 일어난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과민하게 된 걸까? 이시형 박사는《둔하게 삽시다》에서 우리 사회가 현대인들을 과민하게 만들었고, 우리의 마음이 ‘과민증후군’에 빠져 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심하게 욱하고 난 후 후회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학교에서는 친구에게, 직장에서는 후배에게, 집에서는 엄마에게, 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까칠한 말투와 태도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내 마음속이 비비 꼬였나보다 생각도 해보고 반성도 해보지만 그때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경험한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로 나 자산이 평가되기도 하고, 이렇게 시작된 경쟁은 끝이 없다. 실패에 대해서는 얼마나 경직된 생각을 가지고 있나, 한번 쓰러지면 재기는 불가능하다. 넘치는 스트레스는 또 어떤가. 사방이 온통 스트레스 요인이다. 내 마음이, 내 머리가 제대로일 수가 없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는 우리 머리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며 욱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잘 산다는 의미를 재정의해야 할 때
덜 상처받고 덜 불행해지는 방법, 둔해야 행복해진다!

예민한 우리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첫째, 왜 자꾸 화가 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화가 날 때 내 마음속,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둘째,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 예전에 싫은 선배에게 가졌던 감정이 현재의 직장 상사에서 옮겨와 관계를 망쳐버리는‘전이轉移, transference’의 양상을 띠고 있는지, 실수를 모아두었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 가시 수집가thorn collector 스타일인지 등 내 감정이 과민해지는 특별한 지점은 없는지 알아두어야 한다. 셋째, 내가 어떤 환경에 특히 민감한지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떤 환경, 어떤 상황이 올지 예측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무한경쟁, 불확실, 재기불능, 스트레스 등 과민증후군을 만드는 대표적인 시대상황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대응법을 배워야 한다. 넷째, 둔하게 살면 과민증후군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은 병이 난 뒤 치료하는‘치병의 시대’를 지나 병이 나지 않게 하는‘예방의 시대’로 가고 있다. 둔하게 살면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둔하게 살면 건강해질 수 있다. 둔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 이제 둔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명백해졌다.
우리는 이제 정말 잘 산다는 의미를 새로 정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화가 날 수는 있지만 화를 내는 것과 또 그 방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짜증과 화가 늘었다면 둔하게 살아보자! 과민한 이 시대에 진정 행복하게 사는 법은 여유 있게 좀 느슨하게, 적당히 귀는 막고, 눈은 가리고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며 둔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느긋하고 편안해진다. 웬만한 일에도 신경 건들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여유가 생긴다. 이것만이 과민상태의 사회를 살아가는 해결책이요, 슬기가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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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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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이후 책값의 거품이 빠진다고들 하더니 오히려 거품이 더 생기는듯 하다. 양장본도 아니며 큰 글씨에 그림도 별로 없는 300쪽에도 못 미치는 내용이 들어있는 이 책의 정가가 14000원이라니...  구매
미리내 2015-04-28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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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꼭 필요했던 책~!! 요즘 같은 시대에 정말 둔하게 살고싶다~!!!

읽고나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시형 박사님 감사합니다!!!!!  구매
오늘도 맑음 2015-05-25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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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선생님의 반가운 새책!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 스트레스로 늘 예민한 우리들이 한번 읽어보면 참 좋을 책입니다.  구매
행운아대박펑 2015-05-04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이시형 박사의 둔하게 삽시다/한국경제신문]민감하게 분노하는 이들을 위한 행복 처방전...

한국에서 모르면 간첩인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이 이시형 박사일 것이다. 책으로, TV로, 강연으로 많이 알려진 국민 의사니까.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인 이시형 박사의 이야기엔 언제나 힘과 자신감이 넘친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위로와 치유를 얻는 것 같다. 예전에 배짱으로 살자던 그가 어느 순간엔 느리게 살자 더니, 이젠 둔하게 살자고 한다.

요즘 같이 LTE급 세상에 둔하게 살자니, 말이 되진 않지만, 오죽 하면 그런 말을 할까 싶기도 하다. 빠르게 살다 보면 겉으로는 남의 감정에 무신경해진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다친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다. 과민한 세상, 과만증후군을 앓는 시대, 화가 만연한 세상, 분노조절에 실패하는 사회, 행복지수가 하위권인 나라에 살기에 둔감하려해도 민감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화는 인간의 고등 감정이 상할 때, 즉 명예, 자존심, 배신감 등 정신적 위협을 당할 때 신피질의 전두분야에서 일어나는 고급 감정이다.(29쪽)

긴장 속에 사는 매일이기에, 분노조절을 못하고 화를 낼 때가 있다. 화는 내면 낼수록 커짐을 알기에, 화를 내는 순간 아차 싶을 때가 많다. 화를 내는 순간 증폭되는 이유는 뇌 속의 공격성 호르몬인 노르아드레날린의 증가와 활성화 때문이라고 한다. 화를 낼수록, 폭언을 할수록 강도가 세지고 제어하기 힘든 이유엔 화나 분노의 증폭하는 속성 때문이라고 한다. 화는 자신은 물론 남을 해치는 속성이 있기에 화를 다스리고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감정보다 앞선 감정기억 때문에 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화는 조건반사작용처럼 순간적으로 긴급하게 일어난다. 전두엽과 상의할 시간이 없는 편도체 순간적 반응이다. 뇌신경은 과민한 상태에 있을 때, 별 것 아닌 일에도 비상사태인 양 과민반응 한다. 과민증후군의 배경에는 부정적인 사고, 비합리적 사고가 깔려 있고 이런 사고가 편도체를 자극해 분노를 일으킨다. 결국 분노나 화는 이전에 저장된 감정기억이 일으키는 반응이다.

화를 통해 이성이 마비되는 경우는 인간다울 수 있는 최고의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 연합야의 작동에 문제를 가져온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은 위험신호에 반응하는 편도체의 과열을 가져온다.

화나 분노를 일으키는 요소들을 보자. 무한경쟁의 시대이기에 열등감과 경쟁 강박증, 자존심 과잉, 불신, 불안증, 만성 분노 증후군, 완벽주의 외형과민형, 스트레스, 조급증 등이 과민반응을 불러온다.

저자가 말하는 분노조절방법을 보자.

목표지향적인 사회에 스트레스를 피하려면 감동으로 살아야 한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세로토닌이 샘솟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애정의 눈으로 작은 즐거움을 누린다면 민감증후군에서 벗어날 것이다. 베풀고 나누고 경청하고 배려하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니 화가 날 때는 말을 해야겠지만 일단 심호흡 세 번을 하면서 열을 가라앉히라고 한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상에 화를 내서 이득을 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처에 민감하다면 둔해지는 것도 마음을 편하게 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니 평상심이든, 평정심이든, 무신경이든, 둔해지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물론 직업적으로 민감해야할 사람, 업무적으로 민감해야 할 순간은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요할 땐 화를 내야하고 예민해야 할 순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화 표출은 흉기가 되고 폭행으로 이어져 더 큰 화를 부르기도 화나 분노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될 수 있다면, 평정심을 갖고 화와 분노, 민감성 등을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시형 박사의 민감해서 분노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행복 처방전을 보니, 민감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에 공감 프로젝트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배려하고 공감하며 살면 분노할 일도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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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5-05-07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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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박사의 둔하게 삽시다.

 

과잉의 시대,

불행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깨달음이 담긴 책입니다.

이 책에도 적혀있듯이 '둔하게 삽시다'라는 어감이 어쩌면,

 바쁜 현대인들에게 그저 허황된 이야기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둔하게'라는 말이 필요이상으로 긴장된 신경들을 조금 느슨하게 내려놓고 올바르게,

그야말로 '잘'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

담긴 책입니다. 2015년도 어느새 6월이 코앞에 있는 지금

1월의 시작과 함께 무수한 계획들이 실천 혹은 실천되지 못하며

누군가에게 쫓기듯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제 상황에 대한 시선도

오로지 제가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으로 멈춰버릴 수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긴장속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점을 새삼스레 알게되었고,

어쩌면 이것이 긴장인지도 모르는,

이렇게 긴장을 하고 살아도 모자르다라는 생각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넣어둔 채로 시간을 보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만날 독자분들도 삶의 긴장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라는 인생의 큰 지향점을 수정할 수도 있구요.

 

나는 이제 좀 둔하게 살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과민 상태에 다다랐습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이미 위험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렇게 과민해서야 마음 놓고 살 수 없습니다.

4시간 긴장상태에 있는 사회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사람들을 과민하게 만들게 되었을까요? 가해자, 피해자 모두가 과민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것을 통칭 '과민증후군'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과민증후군'은 정신과적 진단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사회, 한국인의 사회적 정신병리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책 중에서>

 

상처에 민감하지 않은 둔감력,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항상 날카롭게 살아있다면 그 화살의 끝은 남이 아닌

자기에게 놓여있다는 사실을 잊은채로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만큼,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큰 호흡을 한번 들이쉬고 내쉬게 해주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위로도 받을 수 있었구요.

책의 구성적인 측면에서보자면,

책의 장을 나누는 부분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파스텔톤으로 되어있어서 좋았습니다.

책의 중간 중간 짧지만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놓여있어서

따로 발췌하여 잘 보이는 곳에 문구를 옮겨놓고 싶기도 했습니다.

자칫 나도 모르게 필요이상의 긴장이 24시간을 지배해버릴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추상적인 관점에서만의 둔감력이 아닌 과학적 접근으로 왜 과잉의 삶을 조금 내려놓아야하는지 설명되어있고,

세로토닌적 삶이 어떠한 것이고 그러한 점들이

 어떻게 나에게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한 독서였다고 생각합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5월의 계절, 지금 딱 읽기 좋은 책인것 같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의 과민증후군의 대한 이야기,

<둔하게 삽시다>의 서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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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2015-05-25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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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하다는 말은 억울하다

      『둔하게 삽시다』           이시형 / 한국경제신문


‘둔하다’는 말은 억울하다.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있기 때문이다. 미련하다, 아둔하다, 굼뜨다, 무신경하다, 어리석다, 바보 같다..등등에 이어 곰탱이라는 별명까지 붙는다. 그럼 반대로 살면 행복할까? 예민하고, 민감하고, 예리하고, 날쌔고, 날카롭고, 재빠르게..똑소리 나게 살면 행복 만점일까?

 

 

거문고 줄을 포함해서 현악기 줄은 너무 팽팽해도 안 좋고, 너무 느슨해도 안 좋다. 소리가 안 나든, 줄이 끊어지든 둘 중 하나다. 둔하게 산다고 정신줄 까지 놓고 그냥 되는 데로 살자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눈의 힘을 빼고, 목근육도 풀어주고, 좀 긴장을 늦추고 살자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이시형 박사는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이다. “노이로제 때문에 정신건강과를 찾는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과민증후군 환자들입니다. 물론 이들과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연결 지어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과민증후군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정신적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뇌신경이 과민한 상태에선 별것 아닌 일에도 마치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과잉 반응을 하게 된다. 소위 ‘뚜껑’이 열린다. 얼마 전 외신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중국의 한 음식점에서 남성 종업원이 여성 고객의 머리위에서부터 뜨거운 물을 한 대야 쏟아 부으면서 동시에 머리를 뒤로 낚아채 넘어뜨린 후 폭행을 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면서 참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제 정신이 아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업원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니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는 것이다. 여성 고객이 물을 달라고 하는 요청하는 상황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물을 달라고 하니 아예 뜨거운 물을 쏟아 부었다는 이야긴데.. 그 여성 고객은 온몸에 심각한 화상과 상해를 입었다고 한다. 참..안타까운 스토리다.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는 데는 반드시 불쾌한 사고(思考)가 선행한다. 그리고 그 사고는 대체로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에 따라 감정 역시 비합리적으로 된다. 이를 합리적인 생각을 하도록 바꾸는 일, 이걸 합리적 정서 치료(RET, Rational Emotive Therapy)라 부른다. 성(화)을 촉발하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합리적으로 바꾼다면 감정 역시 합리적으로 순화된다. 성내거나 고함을 치거나 다투는 행동도 사라진다.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이를 ‘합리적 정서 행동 요법’이라 불렀다.”

 

 

돌아서서 심호흡 세 번

 

당연한 이야기지만, 화를 내는 것보다 화를 갈아 앉히는 것이 더 힘들다. 화가 나는 것, 화를 내는 것 모두 뇌 속의 공격성 호르몬 노르아드레날린의 증가 및 활성화로 이뤄진다. “한 번 화를 내면 속성상 증폭되어 나중에 전혀 제어가 되지 않는 상황으로 빠지게 되는데, 이는 주로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증감으로 인한 결과이다. 즉 노르아드레날린의 폭증과 세로토닌의 급감 때문이다.(....) 화가 날 때는 응급처치로서 돌아서서 심호흡을 세 번 하면 한결 나아진다. 그렇게 함으로서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여 당장의 화를 얼마간 조절해보자는 뇌과학적 처치다.”

 

 

 

세로토닌적 삶

 

아마도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세로토닌’이 아닐까 싶다. 세로토닌은 뇌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이며 평화, 쾌적, 행복 호르몬의 대표 주자이다. 세로토닌은 뇌가 (갈 데까지 가보자는)극단으로 가지 않게 잘 조절하여 평상심을 유지해주는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조절 호르몬이라는 애칭을 갖게 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권유하는 세로토닌적 삶을 마음에 담는다.

 

- 합리적인 절충, 조절과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 외적 성장보다 내적 성숙을 중시한다.

-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교양과 자긍심을 키운다.

- 기본과 원칙을 지킨다.

-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다른 생각을 존중한다.

- 역사, 철학, 문학 관련 책을 통해 고전의 지혜를 배운다.

- 변화와 창의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 목표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 환경 우선의 자연친화적 삶과 정품(正品)을 지향한다.

-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룬다.

- 명분보다 실용과 협업을 중시한다.

- 재충전을 위한 자기와의 시간을 갖는다(음악, 여행, 공연, 명상, 낙조, 산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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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6-03-18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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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하게 삽시다]-덜 상처받고 덜 불행해지는 방법, 둔해야 행복해진다 새창으로 보기
30년 전 <베짱으로 삽시다>가 출간되면서 출판사상 최초의 논픽션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한편, 우리 사회에 '배짱 신드롬'을 일으키는 등 공전의 대히트를 친 이시형 박사가 30년이 지난 지금은 <<둔하게 삽시다>>를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뉴스를 들여다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폭행,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자신의 화를 조절하지 못해 쳐다본다는 이유로, 엄마한테 야단맞아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사람을 폭행하고 흉기로 찌르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과민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둔하고 굼뜨면 밥 빌어먹기조차 힘든 세상에 사람들은 예민하고, 민감하게 행동해야 이 야박한 세상에서 밥벌이라도 할 수 있으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으리라. 한국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이제는 더이상 베짱만 권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둔하게 사는 방법'을 권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에 저자는 우리 사회가 과민증을 앓는 이유, 과민증을 겪는 사람들의 정신분석, 뇌과학적 설명은 물론 해결법과 대책까지 제시해보고자 한다.


저는 한국사회가 우리를 과민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구조에서는 과민할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워 살지 않으면 자칫 낙오자로 전락하고 만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사람들을 과민하게 만들게 되었을까요? 가해자, 피해자 모두가 괴만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것을 통칭 '과민증후군'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경쟁이 심화되고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과민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드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건 명백합니다. "둔하게 삽시다." 정신과 의사로서 이제 이 이야기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Prologue 中)

 

별 것 아닌 일에 신경을 곤두세워 핏대를 올리고, 아무 이유 없이 길가는 사람을 흉기로 찌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이른바, '분노의 시대', '분노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확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일상의 작은 일에까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자칫 큰 봉변을 당하기 쉬운 탓에 당연히 예민하고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민감 상태가 심해지면 과민 상태가 되고 만다. 세계 제일의 자살률, 800만의 중독 환자, 공격성과 폭력성, 폭발적 성격, 우울, 불안 공황 장애, 수면 장애, 섭식 장애 등 끝이 없는 이 모든 발병률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무한, 과열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둔하게 살자'고 외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산업사회 건설에 전념했을 때는 오직 한 가지, 잘 살아보자는 가치관이면 충분했지만, 가치관이나 이념, 사상도 매우 다양해진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말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 정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여유 있게, 조금 느슨하고 부드럽게, 손해도 보며 조금 둔하게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발전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도 생각해야 한다. WLB, 즉 일과 삶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물적, 외적, 경제적 성장만으로는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야말로 내적, 정신적, 영적 성숙의 시대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 19p)

 

그렇다면 과민증후군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과민증후군은 전두 연합야가 과민해서 상식적인 해석이나 판단을 못하고 부정적인, 파괴적인 해석을 하는게 문제인데, 뇌시경이 과민한 상태에선 별것 아닌 일에도 마치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과잉 반응을 하게 된다. 과민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즉각 화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극과 감정 사이에 끼어 있는 부정적인 사고를 찾아내 이를 교정해야한다. 화는 물론이고 감정은 내 의지대로 조절이 안되기 때문에 그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케 한 생각을 바꾸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과민증후군의 배경에는 대체로 이런 부정적, 비합리적 사고가 깔려 있다. 이 녀석이 편도체에 불을 지른다. 즉각 기분 나쁜 감정이 촉발, 짜증이 나다가 점점 격화되어 분노, 격노 반응까지 확대되면 살인이라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진다. 이게 과민증후군의 최악의 경우이자 종착역이다. (본문 39p)

 

일본의 의사이자 작가인 와타나베 준이치 박사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살려면 좀 둔해져야 한다며 둔감력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둔해야 교감신경 흥분 대신 부교감신경 우위로 되어 마음이 편안하고 혈액 순환이 잘된다고 한다. 작은 일에까지 관여하면 작은 데까지 신경을 쓰는 소인배가 되는데, 긴 인생 여정에서 실수하고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럴 때 좀 둔한 사람이 큰 상처를 받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기에 둔하다는 건 큰 장점일 수도 있다는 것.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급변하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되며, 신경을 곤두세워 주위의 흐름과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순간도 경계의 눈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이렇기에 우리는 극도의 신경과민 상태가 계속되고 결국은 꼼짝 없이 과민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신경과로를 잘 해소하고 치유해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이 처한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 하느냐에 따라 과민증후군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과민증후군을 만드는 대표적인 시대상황을 끊임없는 무한경쟁, 부확실의 시대, 과민한 집착과 재기불능, 넘치는 스트레스 등 네 영역으로 나누고 그런 시대상황에 특히 취약한 과민증후군의 증례 및 대책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 이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예방책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과민증후군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르아드레날린의 폭주를 막아야 하고 동시에 우리 마음이 쾌적하고 평화로워야 하며 행복해야 한다. 단순한 예방차원이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감동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건 적정량의 노르아드레날린의 흥분과 긴장, 그리고 쾌적, 평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의 합작으로 이루어진다. 감동의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세로토닌이다. (본문 190p)

 

'잘 살아보자'는 염원과 배짱, 이 둘이 함께 폭발하여 전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인데도 더 올라가야 한다는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그야말로 진격의 직진이다. '배만 부르다면……'했던 가난의 시대에서 벗어난 지 오래인데도 우리는 아직 만족할 줄 모르고 있다. 정상에 올라섰으니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발아래 경치를 내려다보며 도시락도 나누어 먹고 정담을 나누며 힘들게 오른 보람을 만끽해야 할 시점이지만, 강박적인 경쟁의식은 스스로를 편하게 놓아두지 않고 있으며 더 잘 살아야겠다는 욕심으로 계속 오르기만 한다. 이제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둔하게 사는 법'에 귀기울여야 할 때이다. 이 과민한 세상에서 저자가 알려주는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찾아 둔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일 게다.

 

가끔은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화를 낸 것은 아니었을까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나 역시도 그런 상대에게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이 온통 스트레스 요인 속에서 살면서 내 마음과 의지가 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증례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조금은 덜 예민하고, 조금은 덜 완벽을 추구하면서 지금보다 좀 둔하게 살아가보련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무한경쟁, 부확실의 시대, 과민한 집착과 재기불능, 넘치는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증후군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알아감으로써 둔하게 살면서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은 아닐런지. 이에 이 책을 적극 추천해본다. 강추!

 

우리는 이제 정말 산다는 의미를 새로 정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화가 날 수 있지만 화를 내는 것과 또 그 방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짜증과 화가 늘었다면 둔하게 살아보자! 과민한 이 시대에 진정 행복하게 사는 법은 여유 있게 좀 느슨하게, 적당히 귀는 막고, 눈은 가리고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며 둔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느긋하고 편안해진다. 웬만한 일에도 신경 건들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여유가 생긴다. 이것만이 과민상태의 사회를 살아가는 해결책이요, 슬기가 될 것이다. (책 소개 中)

 

(이미지출처: '둔하게 삽시다'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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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세상 2015-09-0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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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하게 삽시다> 단순하지만 깊이있는 깨달음 새창으로 보기
 

'둔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별로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몇 가지만 살펴보면,

(사람이나 그 움직임이 ) 느리고 무겁다.

(감각이나 감정따위가 ) 날카롭지 않고 몹시 무디다 .

(사람이나 그 머리가 ) 나쁘거나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적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니 감정을 다루었을 것이니 예민하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하면서 살라는 의미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펼쳐 들 즈음에 너무도 힘든 일을 겪게 되었다. 가까운 친척의 일에 얽혀서 나와는 무관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남편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사람이기에 그 사람에 대한 혐오감과 배신감까지도 느낄 정도였다. 너무도 화가 나서 화를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펼쳐 든 이 책은 나에게 화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여러 날 동안 가슴의 한 복판을 차지하고 있던 화가 서서히 사라졌다. 

아직도 그 일은 시작 단계가 끝났을 뿐이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과민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처럼 여유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과민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살다 보면 마주치게 되고, 때로는 피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가 가득한 '분노의 시대', '분노의 사회'에 내던져진 존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둔하게 산다'는 것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단순하지만 깊있는 깨달음을 주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좋은 것... 우린 아직 만족할 줄 모른다." (p. 27)

화에도 단계가 있다. 짜증, 화, 분노, 격노.

영어로 화는 Anger 인데 이 단어에서 위험인 Danger이 파생된다. 화가 지나치면 위험하다는 의미일까?

화를 푸는 슬기와 화를 다루는 자세를 이 책을 통해서 배운다.

<둔하게 삽시다>는 우리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감정이나 증상을 다룬다.

실패 or 실수, 과민 증후군, 열등감, 경쟁 강박증, 자존심 과잉, 불신과 의심증, 조급증, 만성 분노 증후군, 완벽주의, Must 병, 외형과민증, 건강 염려증 등....

이런 증상들을 정신분석의 시각, 뇌과학적 고찰로 풀이하기에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 화가 날 때는 응급처치로서 돌아서서 심호흡을 세 번 하면 한결 나아진다. 그렇게함으로써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여 당장의 화를 얼마간 조절해보자는 과학적 처치다." (p. 57)

" 선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살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다." (p. 135)

현대인들은 건강에 관심이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생긴 증상이 건강 염려증이다. 유기농, 무공해을 철저하게 따져서 식자재를 선택하기도 하고 몸에서 나타나는 작은 증상에도 병원으로 달려간다.

Must 병은 '하지 않으면 안 돼!', '꼭 해야 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으로 너무 큰 부담으로 뇌를 구속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증상인데, 잘 생각해 보자. 과연 그럴까?

우리는 작은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바로 세로토닌적 삶을 말하는데, 평소에 나는 작은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산책길에 하얗게 핀 찔레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행복해진다. 어릴 날의 추억을 그리워하면서 행복해진다.

좋은 책 한 권을 읽고 책 속의 글들을 가슴 속에 담아두면서 행복해진다.

그런데, 왜 나에게 주변 인물이 이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놓았는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화를 풀면서 한동안 무기력해지고 멍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책 속에 담긴 세로토닌이 분비될 수 있는 손쉬운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한다. 바로 이런 방법이 우리를 행복해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 하늘을 바라보다.

* 저작활동을 하자.

* 무작정 걸어보자.

* 천천히 심호흡을 하자.

* 계단을 올라보자.

세로토닌은 뇌간에서 분비되기 때문에 껌을 씹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한다.

베풀고 나누는 사람, 감사하며 사는 사람.

그런데 베풀어 주는 것에 익숙해 진 사람은 그것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래, 내가 참자!! 그러나 부당한 요구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자!!

며칠 사이에 내게 찾아 왔던 상황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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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5-05-1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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