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2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마음’ - 전문가들과의 대화](9) 마루야마 겐지·소설가 - 경향신문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마음’ - 전문가들과의 대화](9) 마루야마 겐지·소설가 - 경향신문



배계급 위해 움직이는 국가를 대부분 ‘내 나라’로 착각
ㆍ집단에 눌려 잃어버린 ‘개인’ 되찾아주는 게 나의 문학
마루야마 겐지가 일본 나가노현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1968년 고향으로 돌아가 문단과 거리를 둔 채 집필과 정원 관리에 몰두해왔다.
마루야마 겐지가 일본 나가노현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1968년 고향으로 돌아가 문단과 거리를 둔 채 집필과 정원 관리에 몰두해왔다.
우리는 개인의 결정이 모여 전체의 입장을 정하는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동안 개인이 품어오는 희망의 무게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가벼워졌으며, 불안에 흔들려 왔다. 나의 선택이 나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지 그 의심의 부피 역시 커져버렸다.
광복 70주년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공익캠페인에서는 국가를 위하는 마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국가를 추구하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서구를 중심으로 세계는 불평등이 도를 넘고 있으니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한국 역시 불평등의 가속화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버리고 있다.
역사, 문명의 진보는 순응하지 않는 개인의 결정에 의해 진전되어 왔다. 그렇지 않았으면 바뀌어지지 않았을 왕정이었고 정교일치였으며 봉건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전체를 ‘나’의 뜻으로 진전시키고 있는지?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휘청이는 개인의 마음을 살펴보기로 했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에게 그 현상을 물었다. 그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조직, 사회, 국가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실려 부표처럼 떠다니는 개인의 선택에 끓어오르는 안타까움을 토했다.
마루야마 겐지와의 대담은 지난달 6일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도쿄에서 기차로 3시간 반 걸려 도착한 나가노현 시나노오오마치(信濃大町)역으로 그는 직접 마중을 나왔다. 트럭을 몰고 위아래 블랙진을 걸쳐 입은 풍모는 소설가라기보다는 시류에 안주하는 해무 같은 나른함을 거둬내려는 로커의 이미지였다.
▲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잘못됐다”고 제동 거는 국민
국가가 추상적 대상이라지만
결국 인간, 한국에선 ‘자본가’
▲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서
왜 도쿄에는 짓지 않나?
돈이 말라 있는 시골 사람들
국가가 나눠주는 ‘사탕’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는 것
▲ 작가들이 독자를 위로한다는 건
일시적 안심을 주는 값싼 위로
‘마음 연못’에 작은 돌 던져
조그만 파문이라도 낼 수 있다면
문학으로서 충분히 성공한 것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
그게 뭔지 꾸준히 자문해야…
내가 지키고 바라봐야 할 한가지
‘권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
안희경(이하 안) = 선생님의 작품에는 여러 유형의 인물이 나옵니다. 애달픈 이들이 주인공이고 가족, 생계, 이웃의 손가락질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하는 이들이 그 주변을 에워쌉니다.
마루야마 겐지(이하 마루야마) = 제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세상에서 가장 약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에요. 대부분 주인공은 실재하는 인물입니다. <천일의 유리>는 스티븐 호킹과 같은 병을 앓는 소년이 천일 동안 겪는 이야기인데, 그 소년도 실존 인물이지요. 그 약한 위치에서 사람들을 바라봄으로써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립니다. 인간은 의외로 타인을 주시하지 않아요. 특히나 도시에 사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 습관에 빠지죠. 하지만 이런 시골에 살다보면 인구가 적으니 자연스레 눈길이 사람을 쫓아요. 저 길에 어느 할머니가 혼자 지나가면 ‘저 할머니는 어디로 뭘 하러 가나’, 병을 지닌 소년이 비틀비틀 걸어오면 ‘가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에 빠지죠. 인간의 부조리, 불합리한 입장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 하는 이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 감동을 그려내는 게 문학이 추구하는 최대의 목적이 아닐까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가치가 내게 있는가’라는 물음에 빠지게 되는 인물들을 통해서, 그래도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 그쪽을 향하는 것이 문학이겠죠.
안 = 소설 문장 한 줄 한 줄이 시각적으로 그려지며 전체가 하나의 시처럼 밀도가 높습니다. 그러면서도 사회구조의 모순을 갈고리로 찍어 올리듯 꿰고요.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는 근대의 고기잡이법에 휘둘리고 있는 사나이들(어부)은 모두, 빚을 갚기 위해서 …(<물의 가족> 중)’와 같은 표현에는 왜 보통 사람들이 현대의 편리 속에서 계속 고통에 빠지는지 새겨져 있죠. 우리는 가난하거나 실패하면 ‘스스로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라고 위로하고, 다시 경쟁 속으로 들어갈 명분을 찾는데요. 구조의 부조리를 꺼내드는 시선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마루야마 = 그걸 설명하려면 제 성장 과정을 이야기해야 해요. 소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 특수학급이라고 해서 몸이 약한 아이나 정신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은 학급에 들어가게 됐어요. 저는 건강한데 배정받았습니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어요. 운동회 때 ‘유희’라고 학생들끼리 손 잡고 춤추는 시간이 있는데 바보같이 느껴져 집에 가버린 적이 있죠. 열 살짜리가 학교 말을 듣지 않은 거예요. 또 전쟁이 끝나고 황실 왕족이 죽었을 때 도쿄를 향해 머리를 숙이라고 했어요. 그 사람이 대체 누구냐 물으니 선생님께서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설명해 줬는데, 저는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곤 또 집에 가버렸죠(웃음). 결국 정신적으로 이상한 아이로 찍혀서 특수학급에 간 겁니다. 우리 학급 학생들은 모두 결핵을 앓거나 정신장애를 갖고 있었고, 담임선생님이 제가 건강하니까 급우들을 보살피는 의무를 줬습니다. 겨울에 석탄난로를 때잖아요. 당시 일본은 가난했어요. 석탄을 하루에 한 자루만 줬습니다. 금방 타버리죠. 그러면 선생님이 저를 불러요. 가서 훔쳐오라고(웃음). 석탄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요. 우리 급우들은 감기만 걸려도 목숨이 위태로우니까요. 그분에게 많은 걸 배웠습니다. 다른 반 학생들이 우리 친구를 괴롭히면 제가 막 때려줬어요. 선생님은 또 모른 척했고요. 얼마 후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약한 존재를 감싸는 습관이 생겼나봐요. 내 몫은 잊더라도 다른 이에게 뭔가 주려는 습관 말이에요.
안 = 지금도 학교에서는 왕따와 폭력이 이어집니다. 빈부 차이가 확연한 구도시와 신도시 사이에 있는 학교들에는 또 다른 질서가 있기도 하죠. 가난과 결핍에 대한 분노가 오히려 만만해 보이는 약자에게 집단으로 향하는 질서 말이에요. 열등감과 자기 과시는 하나의 뿌리라고 하잖아요. 아이들도 약하면 밟힐까봐 폭력적인 자기 방어를 합니다. 인간의 본성, 어떻다고 여기세요?
마루야마 = 인간은 정말 비열해요. 인간은 동물로 태어납니다. 인간으로 죽을 수 있을지는 각자의 노력에 달렸고요. 대부분 동물로 태어나서 동물로 죽죠.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교양을 갖춰야 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데 취직하기 위해 머리에 지식을 쑤셔 넣는 일은 교양이 아니에요. 그 예를 관동대지진에서 볼 수 있어요. 그때 일본 정부는 대중의 분노가 국가로 향하면 난감하니까 다른 곳으로 돌렸죠. 조선인들을 제물로 던져줬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쳐들어 올 거라고 소문냈어요. 도쿄 사람들은 ‘조선인이 오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했고, 대학 교수들도 나섰습니다. 그때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외쳤던 이는 생선가게 주인이었습니다. 대학 교수와 생선장수, 둘 중 누가 더 교양인일까요?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요즘 인간이 되기 위한 지식, 인간이 되기 위한 교양은 사라졌어요. 국가가 교양과 지식을 강요하죠. 국가의 편의에 부합하는 지식, 국가의 편의에 부합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교양입니다.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이거 잘못된 거 아닌가’라고 제동 거는 국민입니다. 그러고는 값싼 급여를 받아도, 해고당해도 불평하지 않는 노동자, 전쟁을 할 테니 목숨을 내놓으라 해도 ‘네’ 하는 순응형 국민을 양민이라고 합니다. 식자들은 국가를 추상적인 대상이라고 하는데요. 아닙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결국은 인간들이에요. 저 사람과 저 사람과 저 사람이 국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습니다. 국가는 지배계급을 위해 움직입니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그 어떤 국가라도 지배계급 외의 국민은 부수적인 존재, 노예죠. 그런 국가를 대부분의 국민은 자신의 나라라고 착각하고 있죠. 또 국가가 착각하게 만들고요.
안 = 국가가 명확하게 보인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국가는 누굴까요? 경찰? 공무원?
마루야마 = 자본가죠. 한국에서 보자면 재벌이죠. 정치가들도 자본가들에게 당하고 있을 뿐이에요. 일본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그래요.
안 = 현대를 움직이는 힘이네요. 이미 돈의 흐름, 돈의 주인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를 움켜쥐고 있으니 우리나라 상표, 우리나라 은행이라고 자긍심 경쟁을 하는 것도 부질없어 보입니다.
마루야마 = 물론이죠. 그 자본에 반하는 사람은 국적불문, 순식간에 말살될 수 있어요. 실제로 죽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말살됩니다. 지배계급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대의명분을 내세우죠. 국가를 없애면 무질서한 세계, 범죄 왕국이 될 거라고 협박합니다.
안 = 그래도 국가가 치안을 유지해주고 세금을 거둬 기간산업을 보완하잖아요. 그런 질서가 있으니 직장도 생기고, 장사도 하고, 또 농부들은 지원금도 받고 그러지 않습니까?
마루야마 = 그것은 국민의 분노를 피하려는 최소한의 사탕(이익) 나누기예요. 몽땅 빼앗으면 폭동이 일어나니까요. 원자력발전소가 그 예죠. 꼭 시골에 지으려 합니다. 도쿄 같은 도시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시골은 욕망과 감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죠. 말하자면 나라가 돈 주면 무슨 일이든 순응하는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돈이 말라 있으니 넘어갈 수밖에요. ‘원자력발전소를 하면 지역에 이러한 점이 좋습니다’ ‘이런 것도 만들어 주겠습니다’라고 사탕을 줘요. 거기에 어용학자가 와서 안전하다고 보증하죠. 그렇게 안전한 것을 세우는데 국가가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쓰겠습니까? 안전하다면 도쿄에 세워도 되잖아요. 시골 사람들도 눈치는 채지만 눈앞에 놓인 현금에 마음을 내주게 됩니다. 후쿠시마 사태로 방사능 오염이 발생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요.
장편소설 &lt;물의 가족&gt;을 비롯해 많은 작품이 국내에 번역돼 한국 독자들과 친숙한 마루야마 겐지는 “세상을 조망하고 그 모순을 드러내는 곳까지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것”을 작가의 사명으로 들었다.사진 크게보기
장편소설 <물의 가족>을 비롯해 많은 작품이 국내에 번역돼 한국 독자들과 친숙한 마루야마 겐지는 “세상을 조망하고 그 모순을 드러내는 곳까지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것”을 작가의 사명으로 들었다.
안 = 다들 결정을 내릴 때는 각자의 의지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일이 터지면 국가나 조직, 아니면 동료의 생각에 휘둘렸구나라며 배신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죠. 택시를 탈 때마다 당혹스러운 경우는 기사님들이 극단적인 정치 선동을 할 때입니다. 다들 개인적으로는 명민한데,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세상을 편가르는 단순한 사고는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요?
마루야마 = 인간은 세뇌당하기 쉬워요. 특히 국가, 학자, 유명인의 말은 비판없이 받아들이죠. 방송에서 끊임없이 같은 말을 하면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침해당합니다. 일본어에 고코로구미(心組·마음가짐)라고 있어요. 스스로가 마음을 단단히 가지는 것.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이래도 괜찮은가’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진짜인가’ ‘국가가 말하는 것이 옳은 걸까’라고 질문하고 자기 답을 찾는 것을 ‘고코로구미를 단단히 한다’라고 하죠. 안 그러면 순식간에 당해요.
안 = 그러려면 전체 판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마루야마 = (질문을 자르며) 판이 아니에요. 한 점을 봐야 해요. 제가 오프로드 바이크를 타는데, 절벽으로 치달을 때 빠져나오는 법을 알려줄게요. 급커브를 틀어야 살아요. 아마추어는 무서우니까 이곳 저곳 둘러보며 상황을 잽니다. 하지만 프로는 출구 한 점만을 응시하죠. 전체를 본다고 두리번거리면 시선이 애매해져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칩니다. 한 점이 왜 중요한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장 중요한 한 점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그 지점이 우리 마음을 단단히 다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지식인 중에 외국 신문, 일본 신문 이 잡듯 읽는 이들이 있어요. 뭔가 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겠죠. 그런데 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몰라요. 우리는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잘못하는 것이 서재에 들어가 아무도 안 만나고 골똘히 ‘인생은 이렇다’ ‘인간은 저렇다’ 답을 내리는데, 그 과정에서 답은 왜곡됩니다. 풀 한 포기, 작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우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살아요. 아까 생선장수 이야기했죠? 아침부터 밤까지 생선만 팔았을 거예요. 신문도, 철학서도 안 읽고. 그래도 ‘조선인이 침략해 온다는 소리는 거짓이다’라고 단칼에 답을 내렸잖아요. 전체를 보는 것은 그런 것이에요. 전체를 보고 싶다면 전체를 보지 마라. 한 점을 봐라!
안 = 그 생선장수는 사람을 깊게 만남으로써 오히려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읽어냈다는 거죠?
마루야마 = 국가가 흘려보낸 데마고그에 휩쓸리지 않았던 거예요.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으로 사귄 겁니다.
안 = 한 점, 어디에 찍어야 할까요?
마루야마 =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이것만은 지키겠다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고 ‘이것을 양보하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하는 것,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을 확보해야죠. 그것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겁니다.
안 = 선생님의 한 점은 어디인가요?
마루야마 = 권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 그뿐입니다.
안 = 어떤 권력이죠?
마루야마 = 국가권력이죠. 그리고 국가가 초래하는 권위, 또 문학상 제도. 이 모두를 거부합니다. 소설가라는 존재는 그늘에서 자라는 식물이에요. 음지식물은 빛을 너무 많이 쪼이면 사그라집니다. 이때의 빛은 명예, 돈이고요. 그럼 음지식물은 단번에 말라요. 소설가 중에는 갑자기 책이 잘 팔리고, 또 여러 상을 받자마자 엉망이 된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안 = 그래도 어차피 우리는 서로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잖습니까?
마루야마 =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에요. 하지만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개인을 잃어버리고 있어요. 회사, 국가와 같은 집단 속에 편입되어 자신을 잊고 개인을 버려요.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죠. ‘나’라는 개인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을 되찾기 위한 문학이 바로 저의 문학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을 다시금 묻도록요. (잠시 침묵) 대개의 독자들은 스스로를 잊기 위해 소설을 읽습니다.
안 = 작가들은 독자를 위로할 수 있어 행복하고, 존재 의의를 느낀다고 말합니다. 저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요.
마루야마 = 매우 값싼 위로죠. 진정한 위로가 될 리 없어요. 일시적인 안심일 뿐이잖아요. 위로와 일시적인 안심은 전혀 다릅니다. 작가는 독자를 현실 그 자체 속으로 쑥 들이밀어야 해요.
안 = 현실은 버겁잖아요.
마루야마 = 그러니까 힘들 때 술 마시는 것처럼 문학에 손댑니다. 문학이 술 정도의 가치라는 거죠. 진보도 무엇도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술을 많이 마신 것처럼 너덜너덜해지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지 알 수 없게 돼요. 문학이 그래도 되는 건지….
안 = 선생님의 소설에는 어망 속의 물방울이 자신을 비추고 세상을 비추고, 또 그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을 비추는 양식이 있습니다. 소설이 그렇게 나와 세상 그리고 타인과의 연계를 비춰주는 매개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요?
마루야마 = 오래전에 사르트르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정치 참여 문학이 유행할 때였죠. 사르트르는 ‘죽어가는 어린아이 앞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세상에 물었습니다. 작가로서 고백하자면 그 순간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작가의 자만이죠. 그래도 문학은 마음이라는 연못에 작은 돌을 던져주는 작업입니다. 조그만 파문일지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이라 생각해요. 그것이 작가의 역할이죠.
안 = 작가가 아니라도 각자의 공간에서 누구나 파문을 낼 수 있다면 다양하고 생명력 있는 사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살이에서 겁을 집어 먹어서인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한국어 표현이 떠오르네요.
마루야마 = 일본에서는 ‘튀어나온 말뚝은 맞는다’라고 합니다. 남과 다른 행동을 하면 비난을 받죠. 개인으로 돌아와 나 자신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사회적으로 말살당하는 분위기예요.
안 = 그런데도 왜 내 멋대로 살라 하세요(웃음).
마루야마 = 그래도 한번 해 봅시다. 내 인생 사는데 왜 남을 신경 써야 합니까?
안 = 그럼, 밥벌이하기 어렵잖아요.
마루야마 = 그래요. 밥이야 먹고 살아야죠. 그렇다고 영혼까지 팔면 서럽잖아요. 누군가가 내 가장 중요한 부분까지 흔들려고 한다면, 힘이 세건 돈이 많건 부모건 으랏차 밀쳐내야죠. 인간은 본능과 욕망의 노예로 태어나요. 지성, 이성은 원래 가지고 있지 않죠. 동물이야 못된 꾀 같은 걸 부릴 줄 모르니 인간처럼 야비한 짓은 안 합니다. 일은 남한테 시키고 이득은 가로채는 그런 짓 말이에요. 인간은 참 어중간한 만듦새로 나왔어요. 그게 인간의 비극입니다. 인간의 뇌를 설명하자면 세 개의 층으로 말할 수 있어요. 동족도 먹어치우는 파충류의 뇌, 거기에 제멋대로인 원숭이 뇌를 덧쓰고, 그 위에 매우 높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뇌가 놓였습니다. 그러니 그 세 개의 층이 조화를 못 찾죠. 대부분이 가장 위의 뇌는 쓰지 않고 가장 밑의 뇌와 두 번째의 원숭이의 뇌만을 쓰며 평생을 살아갑니다. 왜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지능적인 뇌가 인간에게만 주어졌는지는 생물학적으로 여전히 수수께끼예요.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 가장 위의 뇌를 최대한 쓰며 산다는 겁니다. 인간답다는 표현에는 두 측면이 있어요. 인간은 약하니까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인간답다고 하는 사람과, 아니다, 인간은 약하지만 강하게 뚫고 나가야 인간다운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죠. 제 생각은 이래요. 진정한 인간다움은 동물로서의 삶을 멈추고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뇌를 한껏 쓰는 데 있습니다. 또 하나, 약자인 척하지 않는 것!
안 = 이성을 키우는 방법은요?
마루야마 = 자신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밖에 없어요. 책으로도, 누군가에게 물어서도 배울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소유하고 있는지. 타인의 앞에서 의식하는 자신이 아닌, 혼자가 되었을 때 ‘이것이 나구나’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그로부터 이성은 길러집니다.
그와의 대화는 기차 시간에 맞춰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조바심 나는 상황에서 한 가지 덧질문을 했다. “작품도 강렬하고 에세이에서도 모질 정도로 단언하는 말을 휘두르셨어요. 한국 독자들 가운데 선생은 만개했다 봉오리째 떨어지는 동백처럼 황혼이 오기 전 느닷없이 세상을 저버릴 거라 여겼던 이들이 있습니다. 선생의 늙은 몸이 당혹스럽다고 해요.”
선생의 얼굴에 등고선 같은 주름이 물결쳤다. 웃음을 물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너덜너덜해져서 죽을 거예요. 이 세상을 살아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글 쓰다가 아니면 정원 손질하다 털썩 쓰러져 죽고 싶습니다.”
끝까지 맹렬히 살겠다는 선생의 기개다. 숲속 같은 그 집 마당에는 씨앗에서 나와 재목이 된 나무들과 그 둥치를 감고 오르는 음지 덩굴들로 싱싱한 기운이 가득했다. 땅에 붙을 듯 고개 숙였지만, 보라 물망초의 빛깔도 완숙하고.
■ 마루야마 겐지
▲ 66년 첫 작품으로
일 아쿠타가와상 수상
귀향 후 집필에 전념
마루야마 겐지(70)는 소설가로 일본 나가노현 시나노오오마치에 산다. 1963년 도쿄의 무역회사에서 일할 때 부인을 만났으며, 1966년 회사가 부도에 처하자 생계 대책으로 소설 <여름의 흐름>을 썼다. 그 첫 작품으로 ‘문학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1968년 <정오이다>에서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려낸 후 본인도 귀향했다. 이후 문단과 선을 긋고 집필과 정원 관리에 전념한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천일의 유리> <물의 가족> <천년 동안에>, 소설집 <어두운 여울의 빛남> <달에 울다> 등이 있다. 그리고 에세이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소설가의 각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등을 펴냈다.
마중 나온 마루야마 겐지와 그의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가 먼저 신경숙 작가의 표절 시비에 대해 말을 꺼냈다. 자신의 소설도 거론됐으니 입장을 밝혀달라면서 한국과 일본의 언론이 취재를 왔다고 한다. 한국 언론은 거절했고 일본 언론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일본 문단을 지적하며 작가들이 아름다운 문장, 이야기의 구조 등 너무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작가의 길은 세상을 조망하고 그 모순을 드러내는 곳까지 스스로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정신이다. 50여년 충실히 작가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서 사상가의 면모가 번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212156105#csidxb84159c73ea20daaef4c52d1a0678c5 

Transforming polarized politics in the Minnesota state legislature

Transforming polarized politics  in the Minnesota state legislature

A Convergent Facilitation case study

Center for Efficient Collaboration

Collaborative leadership
Issue Date  August 2015

When statehouse adversaries began working together with a facilitator from the Center for Efficient Collaboration, a gridlocked political debate gave way to a remarkable shared win.
The Minnesota Child Custody Dialogue Group transcended deeply entrenched positions and a history of personal mistrust to resolve an issue that had seemed intractable for years. The one new factor was Convergent Facilitation, the CEC’s three-step framework for group decision-making.
·       First the dialogue group translated their differing views into deeper principles that all agreed on.
·       Then those principles inspired new proposals.
·       Finally, they used their newfound mutual understanding to craft a collaborative solution.
Like abortion and gay marriage, child custody is often a battleground in the culture wars of our time. Mutual accusations are rife in this territory, not only between couples in court but also in legislative debates across the U.S. The pressure of high “divorce rates intersects with passionate arguments about, the treatment of fathers, the handling of domestic abuse, and men’s and women’s evolving roles and rights.
          I wouldn’t have believed it was possible but we achieved more claims collaboratively than we were able to do as adversaries   ~ Rep. Tim Mahoney
In Minnesota, these struggles have gone on for more than a decade. Eventually, some weary opponents just avoided each.” other. Brian Ulrich, a divorced father and activist with the
          Center for Parental Responsibility, remembers spotting an opposing legislator through an opening elevator door at the capitol. “The legislator turned around and took the stairs instead of getting on the elevator with us,” he recalls. When Brian’s group was invited to join their adversaries for collaborative dialogues, he says he laughed. “I thought, you’re just wasting your time,” he explains.
“We were so entirely opposed. I had seen the lobbying. I had seen the emotions of the presentations at the committee hearings, the unpleasant glances, the unwillingness to sit down and talk before that. It was just a recipe for failure.”
Other stakeholders shared his pessimism. Rep. Tim Mahoney later told a House committee: “I really had no interest nor any belief that it would actually do anything. One of my opening statements was that I didn’t trust anybody in the room.”
Yet at their very first meeting in early 2013, advocates from all sides uncovered a wide swath of common ground. They used Convergent Facilitation, an approach developed at the Center for Efficient Collaboration to support collaborative decision-making even in conflict-prone settings. Guided by facilitator Miki Kashtan, the group drafted criteria for child custody reform that all could agree on.
Over the next two years they built on this foundation, eventually co-authoring legislation that the Minnesota Lawyer called “a complete overhaul of the custody and parenting time factors in Minnesota.” In May 2015 their package of bills, supported by each constituency involved, passed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121-0 and the Senate 61-3.
 “The trust that this process built has been quite amazing to me,” says Rep. Tim Mahoney. “I wouldn’t have believed it was possible, but we achieved more collaboratively than we were able to do as adversaries.”
Road to consensus
The persistent battle around child custody had reached a head in 2012. “Shared parenting” advocates proposed a bill that would have judges presume a nearly equal split of parenting time, absent something serious like domestic abuse. The change would particularly help fathers, who ordinarily don’t get the largest share of parenting time.

Timeline of Minnesota child custody dialogues
May 2012: Governor Mark Dayton vetoes proposed child custody legislation, calling on opposing groups to work together.
November 2012: Judge Bruce Peterson convenes a dialogue group facilitated by the Center for Efficient Collaboration’s Miki Kashtan.
January 2013–May 2014: Phase 1. The group produces a set of 26 shared principles. Subcommittees operationalize the principles, leading to unanimous passage of preliminary legislation.
June 2014–May 2015: Phase 2. The group dramatically revises
“best interest of the child” laws and finds a solution to its core conflict over when and how to keep both parents in their children’s lives.
A second legislative package passes nearly unanimously, and the governor signs it within days.
June 2015 onward: Phase 3. Former opponents continue working together to educate lawyers and judges, ensuring their legislation is implemented in line with their intentions.

Opponents argued that the rule was too broad for complex family conflicts, and the Minnesota Senate lowered the default split to 35/65. But when the compromise bill passed, the governor declined to sign the legislation, citing compelling arguments on both sides and calling on the factions to break their impasse.
It was a former family court judge, Bruce Peterson, who first convened a meeting with a prospective facilitator. A few years before, Bruce had watched the state tackle child custody by creating a task force. “There was a very nice report, but it didn’t produce any resolution,” he says. “I was very distressed about all the energy that was poured into this issue year after year. I thought the veto was an opportunity to do something more productive.”
Bruce invited legislators representing both parties and opposing positions, lawyers, judges, domestic violence workers, and parent activists, among others. In the initial phone calls, facilitator Miki Kashtan recalls,
“We were going back and forth and round and round … with people being, at best, lukewarm about the prospect of sitting in a meeting for a day with other on some stakeholders. The tension, and the mistrust that gave rise to it, were high.”
Finally a lawyer threw down the gauntlet. “There’s a philosophical difference here, and there’s no point in dialogue,” he stated flatly. “Some of us think that a presumption of joint custody is just not a wise thing to do, and that’s all there is to it.” This was an opening for one of the central tools of Convergent Facilitation: identifying the “non- controversial essence” behind a contentious claim. Miki describes probing for the principle underlying the lawyer’s position – he wished for each family to be handled according to its specific circumstances.
When his opponents also affirmed this principle, the unexpected glimpse of a shared purpose carried the group into face-to-face talks. They spent one day converting their arguments into shared principles that ranged from reducing familial conflict to developing evidence-based solutions. After some feedback and tinkering, their diverse constituents all endorsed the principles. The dialogue group now had a common set of benchmarks for the laws they would be writing.
Convergent Facilitation step 1: Translate each argument into a “noncontroversial essence” and collect these as decision-making criteria.
Early success
Finding agreement on common aspirations transformed the atmosphere in the group. “We started with deeply entrenched views and distrust, and ended up with friendships and understanding,” says Rep. Carolyn Laine. Many participants became actively interested in finding solutions that truly attended to everyone’s needs and hopes.
The next step was for subcommittees to put the principles into practice. One committee developed legislation that passed unopposed in mid-2014. “The legislative changes were not earth-shattering, but they were confidence-builders,” says Mike Dittberner, an attorney representing the American Academy of Matrimonial Lawyers. “I knew the process was working when I was part of this small group with perhaps the most avid advocates of equal parenting time” – the policy the Academy had been fighting – “and we started coming up with baby steps that we could agree on.” When some constituencies challenged one provision of the proposed legislation, the group stuck to its commitment to only go as far as they could go together, and submitted a smaller package.
Whenever the larger group convened, Mike noticed that Miki’s facilitation kept them moving forward.
          She wouldn’t allow somebody to go off tangent, and if they were reacting negatively she’d try to probe why,” he says. “She’s trying to get that person to come up with a solution rather than leaving a problem out there festering. And she’s not just working with that person – she’s causing everybody else to be more solution-oriented.” Brian Ulrich says these moments seemed downright magical. “I don’t know what kind of pixie dust she threw in the room,” he says. “At times where it appeared we were heading into a nose dive, her process allowed us to pull out of it and reach even greater heights than before.”
When talks did get rough, the group’s shared principles served as an anchor. “We had the most common ground when we would center on the benefits to kids. And we had the principles to come back to and point to,” says Brian.
Convergent Facilitation step 2: Develop new  proposals that aim to satisfy the shared criteria.
Converging on a solution
Buoyed by progress, the group invited state custody evaluators and family therapists into the dialogues. They set their sights on broader issues like child support and the legal definition of a child’s best interest, as well as non-legislative goals like improving access to family mediators.
But they had yet to resolve the stickiest problem, the one that caused legislative breakdown in 2012. Brian recalls, “Despite the trust and the goodwill that clearly existed by that point, in December 2014 I thought it might all still collapse, because we still hadn’t gotten to the core issue of parenting time.” More parenting time was what Brian’s group had come to the table for. But the first round of legislation sidestepped it, instructing judges not to presume either joint custody or sole custody. Opponents still did not want to predetermine family court rulings.
Nonetheless, some opponents now began advocating for legislative language to address the concerns of people like Brian. While revising the list of factors used by judges and custody evaluators to determine the “best interest of the child,” the group reached a breakthrough. At the suggestion of a participant who had always resisted 50/50 parenting-time prescriptions, they added a new factor: “The benefit to the child in maximizing time with both parents and the detriment to the child in limiting time with either parent.”
“That is probably the only language that we all could have found good agreement on,” says Brian. “And ironically, someone who stood so adamantly opposed to our thinking was the one who put it out there.”
Mike Dittberner explains, “Part of the reason the group was able to reach consensus is because that type of problem-solving was really facilitated by Miki. It occurred as a result of a cooperative group effort, -thinking and problem-solving right there on the spot.” Judge Bruce Peterson says this kind of cooperation was the.” most memorable part of the process: “It was so apparent ,  to me when people became solvers rather than position-staters
Convergent Facilitation step 3: Problem-solve until the group reaches an agreement that  everyone can wholeheartedly support.
 Ripple effects
The revised best interest factors form the heart of the legislation that passed nearly unanimously in 2015. They aim to move courts from a parent- centered to a child-centered view: for example, the former first factor,
“The wishes of the parents,” is replaced with “a child’s physical, emotional, cultural, spiritual, and other needs.”
The Minnesota Lawyer commented that the new law “is catching up with the last 40 years worth of social science, in focusing on child development, conflict resolution, and the importance of both parents in the life of a child.”

When do we reach consensus?
For the Minnesota dialogue group, consensus came to mean more than agreeing on specific proposals. At the outset of Phase 2 in mid-2014, they established this defi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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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oup will reach consensus on an issue when it agrees upon a single proposal and each member can honestly say:
•        I believe that other members understand what is important to me and my constituency.
•        I believe I understand what is important to other members and their constituencies.
•        I believe the process as a whole has allowed for all needs and concerns to surface and be included in the development of this proposal.
•        Whether or not I prefer this decision, I support it because it attends to more needs and concerns than any other proposal we explored, and because I trust the process that brought us to this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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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 Niemi, a family mediator, says the legislation will change how she thinks about her cases. “I’ve never been able to truly understand the old best interest factors,” she says. “Every time I had to apply them I would go, ‘What does that really mean?’ Now it’s much clearer that we’re looking at what’s best for the children. And absent something pretty severe, I think we need to make sure that both parents are substantially in the children’s lives.”
This clarity is possible even though the dialogue group never went in the direction of a legal presumption about parenting time. The beauty of the group’s solution is that it does not focus on how much parenting time will actually be awarded – that’s left to the family court system to decide. Instead, the new law focuses on helping the courts work with each case to maximize the possible benefit to a child of a relationship with each parent, as circumstances allow.
I went in thinking it was going to be a disaster and came out with hope.”
~ Brian Ulrich, parent advocate
Dialogue participants are continuing work on goals beyond the statehouse. Brian Ulrich heads a subcommittee on “cultural change,” tasked with educating lawyers and judges about the new law. He says the relationships built through the process support ongoing collaboration across the former political divide: “Miki’s process not only makes it possible to find solutions – the doors have been opened wide enough, and we’ve even developed enough friendship, to allow us to accomplish these other items together.”
The legislators involved see potential to tackle other divisive debates with a more collaborative approach.
“We discovered that if we take an issue we’re fighting over and dig deeper, we find a way to say things that can work for everyone,” says Rep. Peggy Scott.
Advice to others
Warring groups who want dialogue-based solutions should seek out a patient, focused facilitator, advises Mike Dittberner: “Somebody who puts in the effort to make people feel heard, and who has an outlook towards problem solving. Often what that means, at least at first, is allowing people to vent a little bit, where they are able to voice their frustrations with each other but do it in a way that’s civil. You want a facilitator who has mastered that.”
Brian Ulrich says the one thing he would tell other frustrated groups is “the importance of trying this process in scenarios that look otherwise hopeless to solve.”
“I know there are other very emotionally charged issues out there,” he adds, “but this one had plenty of emotion and demonstrated that it’s possible. I went in thinking it was going to be a disaster and came out with hope.”

 In summary, Convergent Facilitation brought four key practices to this group that moved them from “impossible” to “milestone achievement”:
•        Searching for the noncontroversial principles underlying people’s preferred solutions instead of arguing with positions.
•        Pragmatically seeking language that integrates without ever trying to convince anyone.
Participants could maintain their opinions and still achieve a breakthrough legislative package.
•        Moving beyond “sides” to look out for each other’s interests. More than once, people pointed out that a proposal they themselves favored would not address the concerns of another party.

•        Overall commitment to a solution that works for everyone, and nothing less.

2016/09/20

<AV問題>語り始めた業界人(2)「清く正しくは間違い」 (毎日新聞) - Yahoo!ニュース

<AV問題>語り始めた業界人(2)「清く正しくは間違い」 (毎日新聞) - Yahoo!ニュース



<AV問題>語り始めた業界人(2)「清く正しくは間違い」

毎日新聞 9月17日(土)9時1分配信
 ◇現役監督の市原克也さん、規制強化を懸念

 アダルトビデオ(AV)への出演強要を巡る問題は、現場を取り仕切る監督たちの姿勢にも影響を与えている。女優の“素”に迫る「ドキュメント・フェイク」と呼ばれる手法が採りづらくなったと語るのは現役監督の市原克也さん(55)。出演強要は「考えられない」と非難しつつも、それが社会問題として大きく取り上げられ、業界全体に厳しい目が向けられている現状については、「食中毒を出す店があるために、他の店も全て不衛生だと思われているようなもの」と指摘した。また、「AVを『清く正しいもの』にしていこうという方向は、間違っているのでは」と述べ、取り締まりの強化や自主規制の動きを警戒する。【AV問題取材班】

【動画】現役AV女優の香西咲さん「私はこうして洗脳された」

 ◇「ドキュメント・フェイク」が撮りにくい

 --AVへの出演強要被害があると聞いて、どう思った?

 市原監督 ちょっと考えられない。第一、僕らはやる気のない人間を現場に入れるということがない。「やる気のない女をどうやって撮っているのか?」と聞いてみたい。無理やりやらせようとしても、やっぱりセックスできないから。事故も起こるしね。

 --強要問題が話題になった後、撮影に影響が出ていますか?

 市原監督 男優として出演する「ザ・面接」シリーズは、面接者の女優をメーカーのオフィスに招き、その性行為を見た周りの女性たち(エキストラ)も興奮していくという設定。「業界がやっていることをクリアにしよう」という動きがありますが、あまり言われるとそういう「ドキュメント・フェイク」が作りにくくなる。

 --そういった女優の「リアルな反応」を追求する作品は危険視される可能性がある?

 市原監督 あるある。あれがすごく嫌やねん。「ドキュメント・フェイク」とは言ってもセックスを超えることはしませんし、女優は「セックスOK」なんだから撮影はその枠内にある。熱いお湯に入るわけでもないし、公衆の前で裸になるわけでもない。だから、後はギャラの問題ですよね。

 --人権団体などはそういった「意に沿わない撮影」も問題視します。

 市原監督 女優によっては「事前に言われない方がいい」という人もいる。撮影の朝に会って「これからセックスするけど、こうやってこうやるからな」って言います? 幼稚園の運動会じゃないんだから。多少分からなかった方がいい。

 ◇「ニーズ」があれば、被害が生まれる

 --女優が「NG事項」としている過激な内容を現場で強いるようなことはない?

 市原監督 それはできないと思う。僕が監督している「中出しシリーズ」もムチャクチャやっているけど、台本があって、テストにテストを重ねて、そういうドキュメントに見えるようにやるわけです。ただ、事務所的に「現場で女優がいいと言えばOK」という話はあるかもしれない。これは(女優の言動の)解釈の仕方になるので、結構難しい。

 --「もっと過激なものを見たい」というユーザーの志向も影響?

 市原監督 あるだろうね。メーカーがどんなニーズに応えるかというのは難しい問題で、監督それぞれの方向性もある。「女優のつらい顔が撮りたい」というなら、その方法で合っているよ。でも僕は「ええセックスが撮りたい」という立場だから、同じ方向を向いていない。「リアルに嫌がるものを見たい」というニーズがあれば、こうなる(強要被害が生まれる)だろうね。

 ◇「食中毒出す店」が悪い

 --最近の女優の傾向は?

 市原監督 若い子は全体的に変わってきた。AVに抵抗がなく「ドンと来い」「やったるで」という感じ。「人がええ気持ちでセックスしてるなら、私もやるわ」みたいな。参加型というか、悪く言えば恥じらいがない。「見られてもかまへん。知るかそんなもん」と楽しんで帰っていく。

 --AV出演で「一線を越えてしまう」「転落する」などとは思っていない?

 市原監督 そういうのは年に何人かしかいない。一つ一つの絡み(性行為)が意味を持つから、僕らはその方がありがたいんだけど……。最近は「手作りの老舗の味」みたいなものがなくなって、インスタントラーメンみたいにセックスが軽くなっている。

 --そういう傾向の中でも、強要被害が報告されていることをどう思う?

 市原監督 やっぱり、そういうグループがあるんだろうね。(強要する事務所などは)「食中毒ばっかり出す焼き肉屋」という印象がある。腐りかけの肉や生肉を出して、食中毒をぎょうさん出す店ですよ。全然(食中毒を)出さへん店もあるのに……。

 --「焼き肉業界全体に食中毒が広がっている」と思われるのは心外?

 市原監督 そう。「違う、そこだけや!」って言いたい。でも、ちょっと可愛いやつを無理やり脱がせて、やめないように「罰金取るで」というスタイルは、ビジネスとしては分かる。もう嫌になるくらい古典的。「そんなやつ、まだおったんかい」って。いるならいなくなってほしい。こんな大問題になって、えらい迷惑やわ。

 ◇業界内の「最大公約数」で折り合いを

 --スカウトや事務所が女性をだまし、出演料を搾取するケースもあると聞く。

 市原監督 「オレオレ詐欺」をやるような世代がマネジャーやスカウトをやれば、自然とそうなるのでは。「お前も稼げるんだから、いいじゃないか」みたいな考え方。そう思えば、時代的なものかもしれないね。僕は(手法が)古いという印象を持ったけど、やっぱり新しい社会の事情があるのかな。

 --「ピンハネ」の実態とは?

 市原監督 例えば、メーカーが事務所に払う出演料が15万円とする。ある事務所は女優に5万円しか渡さないかもしれない。ある事務所は10万円渡すかもしれない。それはマネジャーが自由に決められるんです。同じ現場に別の事務所の女優が複数いた場合、みんな手取りが違う可能性もあります。でも暗黙のルールで、僕ら(監督)はあいつらのシノギに関して何も言わない。どんなに悪辣(あくらつ)なことをしていてもアンタッチャブル。言いだすとケンカになる。彼らも僕らが何を撮るか、作品のことは一切言わない。

 --元女優の川奈まり子さんが出演者の支援団体「AVAN」を設立し、そのように断絶している業界構造を変えようとしています。メーカーと事務所、出演者が情報共有していくことは可能でしょうか?

 市原監督 川奈さんには賛成しているし、AVANにも参加しようと思っています。でも、「いったいどこまでやるのか」という程度の問題がある。「ゴミ一つ落ちていないきれいな世界を作ろう」と思ったら、まとまらないですよ。皆が望むことの「最大公約数」をいかに見つけられるか。理想と現実の折り合いを付けなきゃいけない。

 ◇AVは「善なるもの」ではない

 --人権団体は法整備を求め、「本番の性交渉を禁止すべきだ」とまで言っています。

 市原監督 人権団体の要請書など読む気もないし、討論しようとも思わない。「よその焼き肉屋で食中毒を出して、うちの店でなんか考えなあかんのか」とも思うし、現時点では自分の問題として考えられない。そもそもAVは「国に守ってもらおう」なんて考えるようなものじゃない。やくざが「殺されそうです」って警察に行きますか? AVは善悪で言えば善ではないもの。「清く正しいもの」にしていこうという方向は間違っていると思う。

 --テレビのバラエティー番組に出てCDを出し、「清く正しい」アイドルタレントのように扱われるAV女優も増えた。「タレントになるステップ」として業界入りする人をどう思う?

 市原監督 AVしか勝負する方法がないなら、やるべきでしょうね。競馬と一緒でそこに100円かけたいか、1万円かけたいかの問題。「かける」と言うならしょうがないけど、外れても文句言わないでほしい。「自分は運が悪い」と思ったらこんな所に来ちゃダメ。“勝負気配”が大事なのはギャンブラーと一緒です。「運がいい」と思ったら、タレントでも何でも夢をかけてみればいいんじゃないでしょうか。

 ■市原克也(いちはら・かつや)1961年、兵庫県生まれ。上智大国文科を卒業後、国立能楽堂の三役養成試験に合格してシテの手伝いをしていたが、挫折して能の世界を離れる。成人向け雑誌編集部でのアルバイトを機に27歳でAV男優としてデビュー。独特の関西弁で女優を責め立てるキャラクターが注目され、その後、監督としても活躍。93年から続く代々木忠監督の長寿シリーズ「ザ・面接」では面接隊長として男優陣を率いる。無類のギャンブル好きとしても知られ、競馬雑誌に連載も持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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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olitics of life itself : biomedicine, power, and subjectivity in the twenty-first century / Nikolas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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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venting our selves : psychology, power, and personhood / Nikolas Rose.; 1996 Inventing our selves : psychology, power, and personhood / Nikolas Rose.; 1996 Inventing our selves : psychology, power, and personhood / Nikolas Rose.; 1996 Inventing our selves : psychology, power, and personhood / Nikolas Rose.; 1996 Material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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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psychiatry / edited by Peter Miller and Nikolas Ros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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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 liberalism, neo-liberalism, and rationalities of government / edited by Andrew Barry, Thomas Osborne, Nikolas Ros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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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 liberalism, neo-liberalism, and rationalities of government / edited by Andrew Barry, Thomas Osborne, Nikolas Rose.; 1996
Andrew Barry 1960-; Thomas Osborne 1964-; Nikolas S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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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uro : the new brain sciences and the management of the mind / Nikolas Rose and Joelle M. Abi-Rached.; 2013 Neuro : the new brain sciences and the management of the mind / Nikolas Rose and Joelle M. Abi-Rached.; 2013 Neuro : the new brain sciences and the management of the mind / Nikolas Rose and Joelle M. Abi-Rached.; 2013 Neuro : the new brain sciences and the management of the mind / Nikolas Rose and Joelle M. Abi-Rached.;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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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 : the new brain sciences and the management of the mind / Nikolas Rose and Joelle M. Abi-Rached.; 2013
Nikolas S. Rose author. Joelle M. Abi-Rached 1979-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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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estions of cultural identity / edited by Stuart Hall and Paul du Gay.; 1996 -----
Questions of cultural identity / edited by Stuart Hall and Paul du Gay.; 1996
Stuart Hall; Paul Du G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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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uture of social theory / Nicholas Gane.; c2004 The future of social theory / Nicholas Gane.; c2004 The future of social theory / Nicholas Gane.; c2004 The future of social theory / Nicholas Gane.; c2004 Material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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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자체의 정치] 사회학자 니컬라스 로즈

관점이 있는 뉴스 - 프레시안



마르크스를 버렸다! 푸코를 따랐다! 생명을 말하다!

강양구 기자(정리)

2012.11.02 19:10:00



[생명 자체의 정치] 사회학자 니컬라스 로즈





최근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꿰뚫는 열쇳말은 '생명'이다.



일찌감치 21세기를 '생명과학의 시대'로 명명하고 인간 유전체(게놈) 프로젝트 등을 통해서 '생명의 비밀'에 파헤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자연과학이 생명을 되뇌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과학기술의 변화에도 꿈쩍 않던 인문·사회과학이 생명에 주목하는 일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변화의 맨 앞에 서 있는 지식인이 바로 영국의 사회학자 니컬라스 로즈(영국 런던대학교 킹스 칼리지 교수)다. 로즈는 2000년대부터 새로운 생명과학과 그 결과로 나타난 의료의 변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해왔다. 그는 이런 지적 실험의 중간성과를 2006년 <생명 자체의 정치(The Politics of Life Itself)>로 펴내고, 분과 학문을 넘나드는 학제 간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곧 출간될 <생명 자체의 정치>는 현대 생명과학이 낳은 삶의 변화를 분자화(molecularization), 최적화(optimization), 주체화(subjectification), 전문성(expertise), 생명경제(bioeconomy), 이렇게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그것이 가지는 함의를 과학과 의료 현장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서 설명한다.



니컬러스 로즈는 푸코 철학에 대한 영어권의 대표적인 해석자로 꼽힐 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서도 주목을 받는 이른바 '통치성(Governmentality)' 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6년간 편집장을 맡았던 <경제와 사회(Economy and Society)>를 통해서 푸코의 통치성 연구를 조명하고 발전시키며 영국의 이른바 '통치성 학파'를 이끌었다.



<프레시안>은 국민대학교 '생명공학의 새로운 정치와 윤리' 연구팀(책임 교수 : 김환석)이 개최한 국제 워크숍(21세기 생명 정치와 생명 윤리)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니컬라스 로즈를 만나 마르크스, 알튀세르, 푸코 그리고 생명과학으로 이어진 지적 여정을 들었다. 인터뷰는 김환석 국민대학교 교수(사회학)가 맡았다.





▲ 니컬라스 로즈 영국 런던 대학교 킹스 칼리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생물학에서 심리학으로



김환석 : 한국에서 선생님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1970년대 후반에 고안한 통치성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발전시킨 영국 통치성 학파의 좌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명성에 비해서 정작 구체적인 연구 성과는 제한적으로만 소개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개인사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요. (웃음)



더구나 선생님은 2000년대 들어서는 현대 생명과학과 의료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는 이 새로운 지적 실험의 성과를 정리해 <The Politics of Life Itself(생명 자체의 정치)>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마침 이 책은 국내에서도 조만간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1980년대부터 유럽, 미국에 득세한 신자유주의를 연구하던 미셸 푸코의 계승자가 생명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설명하려면, 아무래도 선생님의 지적 배경을 소개하는 게 순서일 듯합니다. 먼저 가족 관계부터 살펴볼까요? (웃음) 형이 저명한 과학자죠? 생물학자이자 뇌 과학자로 유명한 스티븐 로즈 영국 개방 대학 교수 말입니다.



로즈 : 맞습니다. 형이 한국에서도 유명한가요? (웃음)



김환석 : 한국에서도 1980년대부터 국가나 자본이 주도하는 현대 과학기술을 비판적으로 보려는 사회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회 운동에 참여해온 이들이 참고했던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스티븐 로즈 교수가 주도한 '급진 과학 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의 지향은 잡지 <Science for the People(민중을 위한 과학)>의 제호에 잘 드러나 있지요.



아, 일반 대중에게 스티븐 로즈 교수는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한울 펴냄)의 저자로도 유명합니다.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와 <통섭>, <사회생물학>의 에드워드 윌슨 등을 강하게 비판한 책으로 유명하지요. 스티븐 로즈 교수는 최근에는 뇌 과학의 최전선에서 뇌 과학의 오용을 비판하는 작업도 수행하고 있더군요.



로즈 : 형(1938년생)은 저(1947년생)보다 아홉 살 많아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고 아주 젊은 나이에 영국 개방 대학의 첫 번째 생물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지적했듯이 사회운동가 정체성이 아주 강했지요. 앞으로 또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저는 형과 비교하면 사회 운동에 훨씬 소극적이었습니다.



김환석 : 선생님이 대학 학부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것도 형의 영향을 받았습니까?



로즈 : 아주 없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렸을 때, 형의 실험실에서 실험을 돕기도 했으니까요. 아무튼 형을 따라서 1965년에 서섹스 대학교의 생물학과를 진학했습니다. 당시 그 대학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물학자 존 메이너드 스미스가 가르쳤어요. 초파리의 유전학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서섹스 대학교는 새롭게 설립된 대학으로서 1960년대 후반 유럽의 급진적인 분위기가 감싸던 곳이었어요. '초파리 연구가 세상을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지' 이런 회의가 들더군요. 이후에 동물 행동학으로 관심을 옮겼지만 잘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관심을 바꿔서 생물학과 심리학을 복수 전공하다, 아예 심리학으로 관심을 옮겼습니다.



김환석 : 학생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까?



로즈 : 베트남 전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정책) 반대 운동에 참여했어요. 하지만 형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웃음)



마르크스에서 푸코로



로즈 : 어린이를 가르치고 싶어서 교사로 훈련을 받았어요. 어린이 교육을 바꾸는 일이 사회를 바꾸는 길의 하나로 생각했지요. 1년간 환경 부적응 아동을 위한 학교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관심 속에서 어떻게 어린이에게 '비정상 아동', '부적응 아동' 딱지를 붙이는지를 놓고 연구를 진행했고, 그 주제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아동 학대 예방 단체에서 3년간 일했지요. 그러다 런던 대학교(Institute of Education)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저는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를 따르는 마르크스주의자였어요. 그래서 이데올로기와 또 그것을 극복하는 문화 투쟁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서도 그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김환석 : 그 즈음에 <Ideology & Consciousness>를 창간했지요?



로즈 : 네, 작은 학술 잡지였어요. 알튀세르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잡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잡지 동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알튀세르와 같은 접근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푸코의 글을 번역해서 읽기 시작했어요. '통치성'에 대한 푸코 에세이의 첫 영어 번역이 실린 것도 이 학술지입니다.



김환석 : 어떤 이유로 알튀세르와 같은 접근에 거리를 두게 된 건가요?



로즈 : 박사 학위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관심은 알튀세르처럼 이데올로기 비판에 있었어요. 그런데 안토니오 그람시에서 알튀세르에 이르는 이데올로기 개념으로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없었어요. 예를 들어, 학교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심리학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감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런 질문에 이데올로기는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이데올로기는 항상 진실(truth)에 대비되는 거짓(false) 혹은 오류(error)에 집중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진실 대신 거짓을 믿는가? 그런 오류에 기반을 둔 그런 허위의식이 어떻게 확산되는가? 환영 밑의 진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하지만 푸코를 읽으면서 이런 진실/거짓의 구분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사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왜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나? 무엇이 이것을 진실로 만들었나? 이것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권력은 무엇인가? 이것을 진실이라고 말했을 때 그 효과는 무엇인가?



'오류의 문제'에서 '진실의 문제'로 관심이 바뀐 거예요. 그리고 이런 관심의 이동은 1984년 박사 학위 논문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이 논문은 영국에서 심리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추적한 것입니다. 이듬해에 <The Psychological Complex>(1985년)로 출간됩니다. 이 책에 관심을 보인 이들은 거의 없었지만요. (웃음)



당시만 하더라도 푸코의 이론이나 방법을 이론적으로 검토하거나 철학적으로 논의하는 연구는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활용한 연구는 영어권에서는 전무했어요. 이 책은 그것을 시도한 영국 최초의 연구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을 시작으로 푸코의 이론과 방법을 적용한 여러 경험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합니다.



김환석 : 박사 학위 논문의 내용을 좀 더 소개하면요?



로즈 : 방금 '진실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얘기했잖아요? 영국과 같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권위(authority)의 획득은 국가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얘기할 때 권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심리학이 그 하나의 예였어요. 심리학자는 인간에 대한 진실을 얘기한다고 믿어짐으로써 막강한 권위를 지니게 됩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그렇듯이) 이들에게 '권력의 하수인'이나 혹은 '자본의 하수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이들이 권력이나 자본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거짓 주장을 꾸며내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접근은 한계가 있어요. 왜냐하면, 이들은 바보도 아니고 꾸미지도 않아요.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진실이며 고결하고 과학이라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리학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실이라고 믿게끔 하는 전제가 무엇인지 따져 묻는 게 필요합니다. 박사 학위 논문이 영국 심리학의 탄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1980년대는 계속해서 심리학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고 <Inventing Ourselves>, <Governing the Soul> 등의 책들을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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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석 : 그러니까 1970년대 후반에 마르크스에서 푸코로 문제의식이 바뀌고 나서 계속 그걸 심화해 온 셈이군요.



로즈 : 맞아요. 마르크스에서 푸코로의 관심 변화가 현실에의 개입 의지가 약해졌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1970년대나 1980년대나 저나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동료들은 여전히 기존 사회 권력을 비판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아주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비판의 도구로서 마르크스나 알튀세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뿐이에요.



이점을 강조하고 싶군요. 지금도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글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글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19세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진실의 저장고'가 아니에요. 그들이 자신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확인하고, 우리의 시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요.



푸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푸코의 이론이나 방법이 당대의 자유주의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푸코를 그대로 되뇌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창조적으로 활용할지가 중요합니다. 물론 당분간 사람들은 저를 '푸코디언(Foucauldian)'이라고 부를 테지만요. (웃음)



김환석 : 마르크스에서 푸코로의 이동은 '거대 이론'에 대한 회의 탓도 있지 않나요?



로즈 : 맞아요. 거대 이론은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거대 이론은 종종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자신의 틀에 맞춰서 설명하고 심지어 예측까지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런 설명과 예측에서 우리가 무슨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예를 들어, 지구화를 둘러싼 거대 이론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이렇게 물어봅시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지구화요!" "그럼,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났나요?" "지구화요!"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신자유주의요!" "그럼,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났나요?" "당연히 신자유주의 때문이지요!" 이런 동어반복이 도대체 세상을 이해하는데 어떤 유의미한 통찰을 줄지 저는 의문이에요.



이제 어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따져 묻다 보면 작은 사건들이 다른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고 결합되며, 그 연결과 결합이 더 큰 규모의 변동을 어떻게 가능하게 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앤서니 기든스, 울리히 벡과 같은 동료의 연구가 흥미롭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들의 작업이 과연 세상을 이해하는 적절한 설명을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유럽을 넘어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될 수 있었을까요? "지구화!" 이렇게 답하고 나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그 구성 요소를 살피면 이 질문에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구성 요소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삶과 밀착된 것이기 때문에 현실 개입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거대 이론의 설명 방식보다 푸코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아요.



김환석 :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거대 이론을 여전히 따르는 입장에서 보면, 선생님의 입장은 피상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입니다. (웃음)



로즈 : 맞아요. 저는 피상적인 사상가입니다. (웃음) 이것은 앞에서 이데올로기 비판을 회의하게 된 것과도 맞닿아 있지요. 마르크스주의는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그 심층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숨겨진' 법칙이 표면의 사건을 가능하게 한다는 발상이지요.



반면에 푸코는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들 자체에 주목하자고 강조합니다. 심층에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고 가정하지 말고,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서 새로운 변화를 야기하는지를 보는 게 세상을 이해하는 좀 더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이었죠. 저 역시 그런 푸코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통치성에서 생명과학으로



김환석 : 푸코를 수용해서 기존의 사회과학을 혁신하려는 시도가 바로 통치성 연구입니다. 선생님은 1989년에 'History of the Present(현재의 역사)'라는 공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로즈 : 당시 저와 동료를 사로잡고 있었던 문제는 당시 영국과 같은 자본주의 복지 국가에서 정치권력이 어떻게 자기를 정당화하면서 스스로를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당시는 전통적인 복지 국가와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정치권력(신자유주의)이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과제는 시급한 일이었어요.



'현재의 역사'는 바로 이런 질문에 답해보려는 연구자들의 공부 모임이었습니다. 푸코의 이론이나 철학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푸코의 접근을 취해서) 구체적인 경험 연구를 진행하던 영국 곳곳의 연구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런던에 모였습니다. 나중에는 외국 연구자도 참여해서 모임이 좀 더 국제적이 되었어요. 그 때부터 'History of the Present network'라고 불렀지요.



"현재의 역사"는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사용한 표현입니다. 푸코는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과거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바로 '현재'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면서 이 표현을 사용했지요. 우리도 똑같은 문제의식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김환석 : 통치성 연구를 통해서 선생님이 강조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습니까?



로즈 : 한 사회의 권력관계가 유지되는 방식이 바로 푸코가 얘기한 통치성입니다. 저는 1980년대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정치권력의 통치성에 '자유'가 핵심적인 요소임을 포착했습니다. 흔히 자유는 자동적으로 '해방'과 연결됩니다. 특히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은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모두 자유에 열광하던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영국과 같은 자유주의 복지 사회에서 자유는 정치권력이 통치를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그 사회 구성원이 자유의 이름으로 관리되고 지배받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저는 푸코가 던졌던 방식과 비슷한 질문을 자유를 상대로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예를 들자면 이런 질문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자유라고 부르는가? 그런 자유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자유롭다고 여기고 살아가는가? 우리가 자유롭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는 없는가? 그렇게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롭다고 믿게끔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렇게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롭다고 믿게끔 하는 과정에서 지식 특히 전문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



마치 앞에서 '거짓의 문제'나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로 관심을 전환했던 것처럼, 이제는 '지배의 문제'나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로 관심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통치성 개념을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식에 당시만 하더라도 반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어요. (웃음)



즉각 이런 반문이 따랐죠. "그럼 너는 영국에 사는 우리가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냐?" 이런 반응은 제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그런 당신은 왜 그렇게 자유에 집착하는가?" 혹은 "당신이 그렇게 충분히 자유롭다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것이었지요.



(로즈는 1980년대 이후 영국의 대처 정부와 같은 정치권력이 득세한 시대를 흔히 통용되는 '신자유주의' 대신 '선진 자유주의(advanced liberal)'라고 부른다. 이런 선진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스스로의 삶을 관리하는 '자유로운 개인'의 등장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로즈의 문제의식을 적용해 보자.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한다. 자기 계발에 나서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자신이 몸값을 높이지 못하거나 '혁신'에 성공하지 못한 탓이라면 스스로를 탓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나 기업(자본)은 강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가 역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로즈의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책으로는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돌베개 펴냄),

한병철의 <피로 사회>(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가 있다.)

(☞관련 기사 : 노무현 이명박 낳은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나?, 아프면 청춘, 견디면 직딩, '피로 사회'의 맨얼굴은?)



김환석 : '현재의 역사' 네트워크는 여전합니까?



로즈 : 통치성 연구의 역사를 간략히 언급할 필요가 있겠군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10여 년간 통치성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특히 런던정경대학(LSE) 교수 피터 밀러와 공동 작업을 진행했어요.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활용해 정치권력 일반에 대해서 분석을 시도한 논문('Political Power beyond the State')은 널리 알려졌어요.



통치성 개념은 구체적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강력하고 유용한 개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특히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젊은 연구자에게는 더욱더 그렇지요. 이런 이유 때문인지, '현재의 역사'의 멤버 혹은 다른 연구자에 의해서 통치성에 대한 수많은 논문이 생산되었고 그것이 제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Economy and Society>에 발표되었어요.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저나 밀러 모두 통치성 연구에 상당히 지치게 됩니다. 우리가 보기에 통치성 연구가 점차 반복적이고 창의성을 잃어가기 시작했어요. 통치성 개념은 이것에 대한 통치, 저것에 대한 통치 이런 식으로 무엇이든 유사하게 분석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1990년대 후반에는 통치성에 대해서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Powers of Freedom>(1999년)을 출간한 이후에는 더 이상 통치성 연구를 진행하기 않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현재의 역사' 네트워크에서도 더 이상 역할을 하지 않고 있고요. 현재로서는 '현재의 역사' 네트워크는 해체된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죽음의 생명 정치'에서 '삶의 생명 정치'로



김환석 : 선생님께서 새롭게 선택한 분야가 바로 생명과학과 그것에 기반을 둔 생의료(biomedicine)입니다. 2006년에는 <The Politics of Life Itself(생명 자체의 정치)>를 펴냈고요.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도 국민대학교 '생명공학의 새로운 정치와 윤리' 연구팀에서 주최한 워크숍 때문이고요.



로즈 : 화제를 바꾸기 전에 통치성 연구를 놓고서 한 가지만 덧붙일게요. 저는 많은 학자들이 한 사회의 정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국가'에만 치중하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국가는 정치권력의 유일한 장소가 아니에요. 오히려 국가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권력의 효과로서 파악해야 합니다.



즉 국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여러 권력의 양상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가 인간에 대한 진실을 말한다고 여겨져 온 심리학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시작해 정치권력의 성격을 해명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은 한 가지 예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국가를 정치권력의 유일한 혹은 최종적인 장소라고 보는 견해가 대세입니다.



아무튼 이런 불만 속에서 저는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이런 관심의 변화는 극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저로서는 자연스러운 관심 변화입니다. 통치성 연구에 지칠 무렵, 다시 아주 구체적인 경험 연구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다시 사회 곳곳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권력에 관심을 가지고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저는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정신 의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던 당시에는 정신 병원(타비스톡 연구소)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고, 친구 중에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푸코를 접할 무렵 읽은 논문 '광기와 문명'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정신 의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정신 의학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더군요. 생물학적 정신 의학, 유전학적 정신 의학, 뇌 과학 등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물학적 사유 방식의 대두는 정신 의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범죄학 등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어요. '야,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주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생물학적 사유 방식을 이해하려면 생명과학 분야에서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저는 런던 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 재직 중이었는데, '현재의 역사'와 비슷한 연구자 네트워크인 BIOS(The Study of Bioscience, Biomedicine, Biotechnology and Society)를 만들었어요.



김환석 : 이 새로운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생명 정치(biopolitics)'입니다. 이 개념 역시 푸코가 1970년대 후반에 고안했습니다. 사실 이 푸코의 생명 정치는 조르조 아감벤 등과 같은 이탈리아 철학자들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주목했지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같은 책은 한국에서도 유명합니다.



로즈 : 현대 생명과학과 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푸코의 생명 정치 개념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감벤을 비롯해서) 이 개념에 주목한 이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존재했던 생명 정치에만 관심을 기울였어요. "추방" "절멸" "배제" "강제" "우생학" "수용소" 같은 단언들을 특징으로 하는 '죽음의 생명 정치'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치는 생명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생명 정치'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모든 사람을 위한 건강"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의학이 담당하는 영역은 이제 질병 치료에서 건강관리로 바뀌었어요. 개인들은 건강을 관리하고, 생명을 연장하려고 합니다. 이런 욕망은 새로운 생명과학, 의료 기술 그리고 경제 활동을 자극하고 있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욕망은 새로운 주체화의 과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여러 질환의 환자들이 결집해 정부, 기업, 과학자 공동체, 사회를 향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을 경험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질환에 대한 투자, 자원, 연구, 치료법을 요구하지요. 저는 이런 새로운 주체화 과정을 (능동적인) '생물학적 시민권'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이런 생명/삶을 둘러싼 여러 관계가 비약적인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그런 생명/삶을 둘러싼 권력 관계의 효과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거예요.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이들이 이런 삶의 생명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푸코가 말했듯이, 이제는 생명 그 자체가 정치의 주제가 될 테니까요.



김환석 : 그런 문제의식에는 적극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과 같은 입장은 자칫하면 현대 생명과학과 의료의 변화를 은연중에 긍정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로즈 : 기존의 인문·사회과학은 생명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려는 방식에 대단히 비판적이었습니다. 방금 지적한 대로 생명과학과 의료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었죠. 그래서인지 많은 인문·사회과학자는 생명과학과 의료의 변화를 놓고서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곤 했습니다.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생명과학과 그것의 결과로 나타난 의료의 변화에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우려가 과연 현실의 구체적인 내용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에요. 혹시 20세기 초반 나치 독일이 우생학을 내세우면서 벌어졌던 참극의 기억을 현대 생명과학에 그대로 덧씌우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의심을 하는 겁니다.



저는 이런 식의 대응이야말로 지금 진행 중인 변화를 그냥 방치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생명과학과 그것을 이용한 의료 기술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또 그런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후에야 비로소 그것의 의미를 놓고서 진지하고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할 겁니다.



김환석 :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까 잠깐 능동적인 생물학적 시민권을 언급했습니다. 혹시 선생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바로 그런 부분에서 포착한 건가요?



로즈 : 사실 자신의 건강 상태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하면서 전문가의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그런 개인만 모여 사는 미래는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런데 자칫하면 그런 미래가 도래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들이 연대해서 공통의 목소리를 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둘러싼 권력 관계를 바꾸는 일이야말로 멋진 일 아닐까요? 이것이야말로 제가 지향하는 새로운 삶의 생명 정치입니다.


2016/09/19

"김일성, '속과 겉 다른 중국'"

"김일성, '속과 겉 다른 중국'"



"김일성, '속과 겉 다른 중국'"…북중관계 내막 분석서 출간

 
 
기사입력 2016.09.01 오후 12:28
최종수정 2016.09.01 오후 12:30
[베이징=연합뉴스 자료사진] 1954년 10월 1일 열병식을 함께 지켜보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오른쪽 둘째)과 마오쩌둥 전 중국 주석(오른쪽). 2015.8.26 << 경화시보 캡쳐 >>

中 북한전문가 선즈화 교수 출간…"마오쩌둥, 북한에 종속국 대하는 자세였다"

"김일성, 남한 무력통일 승인받으려 했으나 마오쩌둥 '사전차단'"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북한과 중국 지도부는 한국전쟁 이후 '혈맹'이라는 외피의 이면에 서로 강한 불신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분석한 북·중 관계 전문가 선즈화(沈志華) 중국 화둥사범대 교수의 저서가 조만간 나온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선 교수가 이런 내용을 담은 책 '최후의 천조(天朝) 마오쩌둥·김일성시대의 중국과 북한'을 일본출판사 이와나미쇼텐에서 출간한다고 1일 보도했다.

이 책은 선 교수가 중국과 구소련의 옛 문서와 증언 등 미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북·중 관계를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천조는 제후들을 거느리는 천자가 다스리는 조정이라는 뜻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책에는 1956년 11월 30일 마오쩌둥 주석이 베이징(北京)의 중국 수뇌부 거처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당시 중국 주재 소련대사와 마주 앉아 북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묘한' 말을 던졌다.

마오쩌둥이 "김일성은 '너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너지는 (사회주의 진영에서) 이탈하려다가 실패했지만, 김일성은 성공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너지는 1956년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反) 소련 혁명의 주역으로, 무력 진압에 나선 소련군에 체포돼 반역 및 국가전복 혐의로 재판을 받고 같은 해 6월 극비리에 처형된 너지 임레 전 총리를 말한다. 마오쩌둥의 이 발언은 김일성이 너지처럼 비극적인 운명을 맞을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어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56년 8월에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친(親) 중국·소련 세력인 연안파와 소련파를 대거 제거하는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을 단행한 것을 계기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크게 약화한 상황에서 마오쩌둥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오쩌둥의 '문제성' 발언은 중소 분쟁의 파고가 높아지던 1960년 당시 소련의 니키타 후르시초프 서기장이 자국 주재 북한 대사에게 옮김으로써 김일성의 귀에 들어갔다.

주소련 북한 대사 보고에 따르면 자신이 마오쩌둥으로부터 비판받는다는 걸 알았던 김일성은 "이건 농담이야"라고 혼잣말을 한 뒤 "중국의 지도자는 얼굴을 마주하고 말하는 것과 뒤에서 하는 게 너무 다르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아울러 책에는 마오쩌둥이 1956년 중국을 찾은 북한 고위 관료를 접견한 자리에선 김일성이 중국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북한 내부 연안파 숙청을 거론하면서 "당신들 당 내부에 공포 분위기가 퍼져 있다"고 언급한 대목도 나온다. 그 자리에서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한국전쟁과 관련해 "이 전쟁은 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고 주의하라고 했던 적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마오쩌둥이 사망하기 전해인 1975년 4월 18일 김일성과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마지막 회담을 했을 당시 발언도 주목된다. 

그 자리에서 마오쩌둥은 "나는 정치 이야기는 이제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김일성의 '의중'을 미리 파악한 선수 치기였다는 것이 선 교수의 설명이다. 

당시 국제정세를 볼 때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 공산의 승리가 굳어지고 미국의 패색이 짙어지던 가운데 호찌민 함락을 앞뒀고 캄보디아는 공산화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김일성이 회담에서 "그들(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와 같다"면서 남한 무력통일의 속내를 내보이려 하자 마오쩌둥이 사전에 이를 사전 차단했다는 것이다.

선 교수는 김일성이 무력통일에 대한 중국의 승낙을 얻고 지원을 요청하려 했으나 마오쩌둥이 그 의도를 알고 발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실제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남한 무력통일을 명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사료로 볼 때 중국 방문 전에 조선노동당 내에서 그와 관련해 발언했다고 소개했다. 

선 교수는 김일성-마오쩌둥 마지막 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핵 개발을 진척시키는 등 독자노선을 걸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아시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책 제목의 '천조(天朝)'와 관련, "과거 중국의 대북 자세는 양보와 인내였으며 마오쩌둥은 '북한은 내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북한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려 했다"면서 "그런 태도는 중앙 왕조가 주변 종속국을 대하는 자세와 같은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종속국과 경계선이 없는 중앙 왕조의 개념은 세계혁명론 개념과도 일치한다고 전제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국가개념의 소멸을 말했다"면서 "자신을 세계 혁명의 우두머리로 인식한 마오쩌둥으로선 북한은 분신과도 같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 교수는 '특수한' 북중관계는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만든 것이라며 이들 사이에 외교는 없고 내교(內交)만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그런 북중관계는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시대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한국전쟁에서 공통의 이익을 갖고 미국과 대립했을 때는 (관계가) 좋았겠지만, 중국이 구소련과 대립하고 미중관계를 호전시키려 하자 문제가 생겼다"고 부연했다. 

선 교수는 "한중 국교관계 수립 시기를 지나 이제 특수성은 없어지고 있다"면서, 최근 "북중관계가 변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지만 중국이 과거의 사고방식을 갖고 대처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마오쩌둥은 대북 관계의 모순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밖으로 내보이진 않았다"며 "적에게 유리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선 교수의 저서는 아직 중국에선 출판 허가가 나지 않았다.

jsk@yna.co.kr

회복적 사법정의 세미나에 다녀왔어요 :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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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사법정의 세미나에 다녀왔어요|사랑방(자유로운글)
전체공개2010.11.09. 09:03
오상열목사님의 소개로 11월 6일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창립 9주년 기념예배 및 회복적사법정의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아나뱁티스트는 루터교에 의해 거의 500년간 이단시하였으나 올해 이단이 아님을 선포하고 화해하는 행사를 가졌답니다.

회복적사법정의의 개념에 대해서는 지난 번 회보에 간략히 소개해드렸었죠.
폭력과 같이 사법적 조치가 필요한 사건이지만 사전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예요.
직권중재가 아니라 쌍방간의 만남을 통해 인간이 만나고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가는 과정을 돕는거예요.

실제 학교폭력피해자 어머니가 나와서 경험을 얘기하는데 참 감동이었습니다.
이 분은 아들이 중3인데 친구간 다툼으로 장이 터졌었대요. 그런데 막상 피해를 입고보니 사면초가에 자기 편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가해자가 된 느낌, 캄캄하고 막막하고 억울하고....심지어 자신이 미친년같더랍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아무런 댓가없이 몇시간이고 말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악마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대요. 그리고 조정의 자리에서 가해자인 아이의 눈을 보니 자기 아이와 마찬가지로 너무 맑고 착했답니다.
미웠던 것은 부모의 태도, 사회의 냉대...그런 것들이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악마가 되어있었다는것을 발견하고 많이 울었다는군요. 조정의 과정은 자신을 차분하고 이성적이게 만드는 과정이었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일이었다는 고백을 하면서 그로인해 하나님을 발견하게도 되었답니다.

또 하나의 감동은 2006년부터 시작된 이 작업이 언제 한국사회에 받아들여질까 싶었는데 올해 '소년사건화해권고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사법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된 것이예요.

우습다고 해야할까 난감한 일은 이 운동을 하고 있는 분의 걱정은 전문가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게 제도화될까봐 우려하고 있어요. 술집주인, 건설업자등 마구잡이로 위원이 되면 당사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인간의 얼굴을 발견하고 치유되는 과정이 없이 강제로 조정안을 받아들이도록 할까 하는 것이예요.
이런 전문가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관심있는 분들은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싸이트를 참조해 보세요.http://www.peacewomen.or.kr/

KAC는 역삼역에 케넥서스라는 영어학원을 운영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에 반하여 평화를 가르치는 영어학원? 이죠.  하얀 벽에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좁은 공간, 얼마 전 이사하고 인테리어를 교인들이 다 했답니다. 예사 감각이 아닙니다.


벽화 아까 말씀드렸죠?


한쪽 벽에 얼마 전 팔레스타인 방문하고 오신 분들이 찍은 사진을 전시했어요. 유대인들이 얼마나 팔레스타인사람들의 일상을 구질구질하게 괴롭혀서 살기 어렵게 만드는지 생생하게 보여지더군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이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한답니다. 평화로운 지역이건만 끊임없이 위협적인 문자, 방송을 통해 팔 사람들이 당신들을 언제 해칠지 모른다는 경고를 계속 보내와서 계속 긴장하게 하더랍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한국전쟁시부터 한국과 함께 해 왔습니다.


이 여성이 피해자 -가해자 조정모임에 실제 참여했던 분입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부르기만 하면 기꺼이 달려와 주신답니다. 간략한 소개는 위에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남자분은 이재영간사님인데 한국에서의 회복적 사법정의의 길을 열어나가고 있는 분이죠. 


멀리 미국, 캐나다에서도 축하하러 왔습니다. 오상열목사님이 잠시 머무르셨던 집 주인이신 목사님이 어디 계신지요? 서양사람 얼굴 구분하기 어려워서리..... 암튼 이 분은 캐나다 아나뱁티스트가 운영하는 대학에 한국학생들이 하나도 없다고 학생들 보내기를 권유하셨는데 저도 욕심이 나더군요.


제일 왼쪽의 머리 하야신 분은 '회복적 정의의 성서적 근거'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간음하고 잡힌 여인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대하셨는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 기대하시는게 아닐까? 알면서 그 뜻에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당위로는 못 하는 것이니 듣고 듣다보면 어느 새 제가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겠지' 라며 위로하고 왔습니다.


<소년사건화해권고위원회>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조금 시행되다 부작용으로 제도가 표류할까봐
최소한 위원들만이라도 교육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재영간사님의 나직한 목소리가 절규로 들렸습니다.
전문가들이 많이 만들어지기 바라고 그런 점에서 여울의 뛰어난 인재들이 관심 갖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