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9

왕양명의 생명철학 - 충남대학교 | KOCW 공개 강의

왕양명의 생명철학 - 충남대학교 | KOCW 공개 강의



왕양명의 생명철학
충남대학교
김세정



주제분류인문과학 >인문과학기타 >철학
강의학기2013년 2학기조회수3,888
평점2/5.0 (1)강의계획서
이 강좌는 왕양명의 철학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차시별 강의

1. 오리엔테이션 학습 과정 소개
2. 생명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생명 위기 원인을 진단한다.
3. 왕양명의 생애와 학문 왕양명의 생애와 학문 과정을 알아본다.
4. 유기체적 세계: 천지만물과 인간이 한몸 천지만물일체설에 대해 알아본다.
5. 마음의 창조적 역동적 생명 원리 심즉리에 대해 알아본다.
6. 인간 양지의 유기적 생명성 양지에 관해 알아본다.
7. 양지의 일원적 체계와 생명 창출 양지의 일원적 특성에 관해 알아본다.
8. 양지 실현과 '앎과 실천의 합일' 지행합일에 관해 알아본다.
9. 양지 실현과 '참 즐거움'의 경계 치양지설에 관해 알아본다.
10. 생명철학과 참된 자아 실현의 교육론 양명의 교육론에 대해 알아본다.
11. 인간과 자연, 그 하나 됨의 생명철학 양명의 환경윤리에 대해 알아본다.


왕양명의 생명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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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학 >인문과학기타 >철학
  • 강의학기
    2013년 2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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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좌는 왕양명의 철학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차시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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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문서오리엔테이션학습 과정 소개URL
    2.문서생명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생명 위기 원인을 진단한다.URL
    3.문서왕양명의 생애와 학문왕양명의 생애와 학문 과정을 알아본다.URL
    4.문서유기체적 세계: 천지만물과 인간이 한몸천지만물일체설에 대해 알아본다.URL
    5.문서마음의 창조적 역동적 생명 원리심즉리에 대해 알아본다.URL
    6.문서인간 양지의 유기적 생명성양지에 관해 알아본다.URL
    7.문서양지의 일원적 체계와 생명 창출양지의 일원적 특성에 관해 알아본다.URL
    8.문서양지 실현과 '앎과 실천의 합일'지행합일에 관해 알아본다.URL
    9.문서양지 실현과 '참 즐거움'의 경계치양지설에 관해 알아본다.URL
    10.문서생명철학과 참된 자아 실현의 교육론양명의 교육론에 대해 알아본다.URL
    11.문서인간과 자연, 그 하나 됨의 생명철학양명의 환경윤리에 대해 알아본다.URL



    양명학의 정신과 그 발전 한국연구재단 정인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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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명학의 정신과 그 발전
    한국연구재단
    정인재




    주제분류인문과학 >인문과학기타 >인문학
    등록일자2012.03.29조회수7,940

    유학을 현대화시키기 위하여 박은식은 양명학에서 그 길을 찾았으며 정인보는 주자학이 지배 이념이 된 조선시대를 허위와 가식의 역사로 규정하고 양명학의 양지에 입각한 실심을 강조하였다. 이 강의는 앞의 두 양명학자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주자학과 다른 양명학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자학은 세계를 정태적 분석적인 눈으로 보는데 비하여 
    양명학은 역동적 합일적인 견지에서 본다. 

    주자학은 도덕의 주체를 본성[성즉리]으로 보는데 반하여 
    양명학은 본심[심즉리]으로 파악한다. 이것이 바로 양지이다. 

    주자학은 양지를 천리를 잘 알 수 있는 지각정도로 간주하는데 비해 
    양명학은 양지를 선천적인 도덕원리인 천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양지는 타인의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느끼는 생명이 감통하는 도덕적 주체이다. 

    그것은 타인을 대상화하여 지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대상화 하는 순간 주객이 나누어지고 간격이 생긴다. 
    여기서 이기심이 발동하여 타인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간주하게 된다. 

    양명학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이기심을 현실생활에서 극복하여 도덕적 주체인 양지를 실현하는 치양지 공부를 중시한다. 
    치양지는 지행합일의 다른 표현이다. 

    행위하는 역동적인 현실속에서 양지가 실현되는 것이 바로 지행합일이요 치양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음의 본체인 양지가 현실의 공부를 통하여 드러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양명은 사구교를 통하여 자기의 철학을 요약하였다. 양명후학은 본체와 공부의 문제에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하여 다양한 견해를 제출하였다. 조선시대 양명학을 공부한 하곡 정제두는 중국과 다른 양지체용론을 제출하여 실심실학을 창조하였고 그것이 하곡학파로 250여년간 이어져 정인보에까지 이르렀다.

    양심에 대한 왕양명(王陽明)의 이해 – 양지설(良知說) 대순진리회

    양심에 대한 왕양명(王陽明)의 이해 – 양지설(良知說)   대순진리회

    • 225호 > 양심에 대한 왕양명(王陽明)의 이해 – 양지설(良知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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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심에 대한 왕양명(王陽明)의 이해 – 양지설(良知說)



      연구위원 박병만


        대순사상에서는 인간 본성의 본질을 양심이라 규정하였다. 이는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私心)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이다. 원래 인성(人性)의 본질(本質)은 양심인데”01라는 말 속에 잘 드러난다. 하늘이 부여한(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인간 본래의 마음으로서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 본연의 성질이 양심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양심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이라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양심은 우리의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도덕적 문제의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양심에 대한 탐구는 인간이란 존재의 이해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더욱이 도전님의 “우리도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올바른 사람, 즉 완전한 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도인이 되면 원래의 천성과 본성으로 돌아가 인간의 양심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욕심도 사심도 없으며 유리알 같이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라 할 것입니다.”02라는 말씀을 되새겨 보면 그 중요성을 일깨우게 된다. 곧, 양심을 회복하는 일은 수도의 궁극적 목적인 도통을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양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충분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양심(良心)이란 말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맹자』다. 맹자는 인간은 본래 인의(仁義)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며 이것을 양심이라 했다.03 여기에서 ‘양(良)’은 ‘본래적이다’와 ‘선(善)하다’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곧, 본래적이고 선한 마음이라는 의미다. 맹자는 이 양심의 기능적 측면으로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을 말한다.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양능이다. 생각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 그것이 양지이다. 어린아이라도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가 없으며, 커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름이 없다.04




      인간은 후천적인 학습을 통하지 않고도 선을 지향하는 본래적인 앎과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양지·양능이라는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의 본래적 정감인 취선(就善: 선으로 나아감)의 가능성이 사람마다 그 본성에 강한 힘으로 내재한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취선을 가능하게 해주는 추동력(推動力)이 바로 이 양지다. 사람은 부모를 보면 누구나 저절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것은 선천적이며 생각해보지 않아도 곧바로 발현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이것이 곧 양지의 힘이라는 것이다.
      맹자에게 있어 단지 도덕적 인식능력으로서의 양지 개념을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왕양명(1472~1529)05이다. 양명은 “무릇 선·악의 기미와 참·거짓의 분별이라는 것을 내 마음의 양지를 버리고 또 어디에서 체험하고 살필 수 있겠는가?”06라고 말한다. 양명이 말하는 양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양심의 다른 용어로 양심이 갖는 지각(知覺)의 기능을 부각한 용어다.07 이 양지는 양명학의 핵심 개념으로 이에 대한 양명의 통찰을 ‘양지설(良知說)’이라 한다. 그의 말년인 56세에 이 설이 완성되는데, 양명의 사상체계 정수라 할 수 있다. 양지설은 유학전통 안에서 오늘날까지도 양심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학설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가 양심이란 존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양지는 우리 마음의 본래 모습이고, 양지의 본래 모습은 인(仁)
      양명학의 핵심 명제는 ‘심즉리(心卽理)’다. 이 ‘심(心)’은 맹자가 말한 ‘본심(本心: 인간 본래의 마음)’과 같은 의미인데, 양명은 때때로 ‘마음의 본체(心之本體; 心之體)’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것은 어떠한 감성적 욕망도 찾을 수 없는 인간 본래의 순수한 마음이다. 그리고 ‘리’는 ‘천리(天理)’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심 = 천리 = 마음의 본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천’은 일반적으로 절대성과 보편성을 가지는 개념이므로 ‘천리’는 반드시 그리고 누구나 실천해야 할 도덕적 차원의 이치(예: 仁·義·禮·智·孝·忠·弟 등등)를 말한다. 따라서 ‘심즉리’란 우리의 본심 속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실천해야 할 도덕적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양명은 양지가 바로 이 마음의 본체라고 말한다.08 본체란 ‘본래의(또는, 참다운) 모습’이라는 뜻이므로 양지는 우리 마음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는 후천적 학습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이미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대로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는 『중용』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는 명제에 바탕하고 있다. 양명은 여기에 대해 “하늘이 사람에게 명함은 곧 명(命)이니, 바로 본성이다.”09라고 하였고, “무릇 마음의 본체는 본성이고, 본성의 근원은 하늘이다.”10라고 하였다. 마음의 본체가 곧 인간의 본성이며, 이 본성은 하늘의 명(天命)에서 비롯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본체인 양지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천명에 의해 내재하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양지가 이처럼 우리 마음의 본래적인 모습이라면 이 양지의 정체는 또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양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개 양지는 천리(天理)가 저절로 명확하게 지각되고 드러나는 것으로 다만 진성측달[眞誠惻怛: 진실하고 (타인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곧 그의 본체이다. 그러므로 이 양지의 진성측달을 극진히 하여 부모를 섬김이 곧 효이고, 이 양지의 진성측달을 극진히 하여 형을 따름이 곧 제(弟: 공손함)이다.11




      양명은 진성측달이 양지의 본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진성측달의 마음을 극진히 한다는 것은 곧 양지를 온전하게 발현한다는 의미다. 양지가 온전하게 발현됨은 바로 ‘심즉리’의 리가 온전하게 구현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부모를 섬김이 진정한 효라는 것이다. 양명은 이러한 논리 위에서 효와 제(弟)를 말하였다. 결국, 효·제를 비롯한 모든 도덕적 행위는 반드시 진성측달을 극진히 함으로써 그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진성측달은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양명식 표현으로 인(仁)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양지의 본 모습은 인(仁)이라는 것이다.



      양지는 도덕 실천의 주체이며 도덕적 판단의 준칙(準則)
      한편, 마음은 어떠한 도덕적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배우지 않고도 그 구체적 도리를 자연히 알 수 있다고 양명은 말한다.





      앎(양지)은 마음의 본체이며, 마음은 자연히 알 수 있다. 아버지를 뵈면 자연히 효도할 줄 알고 형을 보면 자연히 공손할 줄 알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자연히 측은해할 줄 아니, 이것이 바로 양지다.12




      이는 마음에 양지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뵈면 자연히 효도할 줄 알고, 형을 보면 자연히 공경할 줄 알게 된다. 우리가 어떠한 도덕적 사태를 마주하면 그 순간 저절로 도덕적 실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양지는 이처럼 도덕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인 것이다. 양명은 양지를 우리 마음의 본래 모습으로서 도덕 실천의 주체로 파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양지는 어떻게 이처럼 그 도리를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양지의 허령명각(虛靈明覺: 텅 비어 있으나 영명하여 명확하게 지각함)한 특성 때문이다. 양명은 마음의 허령명각이 곧 본연의 양지라고 말한다.13 이 영명한 지각능력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어떠한 도덕적 사태를 맞이하여 저절로 그에 합당한 도리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각능력은 어떠한 일의 시비와 선악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대한 양명의 말을 살펴보자.





      그대의 한 점 양지가 그대 스스로의 준칙이다. 그대의 생각이 일어나는 곳에서 그것은 옳은 것을 옳은 것으로 알고 그른 것을 그른 것으로 아니, 더욱 조금이라도 속일 수 없다. 그대가 다만 양지를 속이려 하지 않고 참되고 솔직하게 그것에 의지하여 행하여 간다면, 선은 곧 보존되고 악은 곧 제거될 것이다.14

      여기에서 양명은 우리가 스스로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양지가 그 기준이 되는 준칙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생각이 일어나는 그 순간 양지는 이 생각의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안다는 것이다. 곧, 직각적(直覺的: 보거나 듣는 즉시 깨닫는)인 도덕적 직관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양지를 속임이 없이 양지의 판단에 의지하여 행동해 나가면 이것이 곧 선을 보존하고 악을 제거하는 길이 된다. 이것을 정밀하게 하는 것이 양명이 말하는 수양법이다. 이는 항상 도덕적 판단의 준칙이 되는 양지가 온전하게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며, 이를 ‘치양지(致良知)’라 한다.


      양지는 모든 사람에게 실재
      이러한 양지는 단지 도덕성이 훌륭한 몇몇 사람에게 국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으로 가지고 있음을 피력한다. 이는 양지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실체(實體: 현실에 존재하는 물체)라는 뜻이다. 양명의 말을 들어보자.

      양지가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은 성인(聖人)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가 없고 천하와 고금(古今)의 사람이 똑같다. 세상의 군자가 오직 그 양지를 실현하는 데 힘쓴다면, 저절로 능히 옳고 그름(是非)을 공통으로 하고 좋고 싫음(好惡)을 똑같이 한다.15

      이러한 주장은 양명이 오랜 기간 자신의 내면에 대한 면밀하고 깊은 성찰을 통해 얻은 확고한 신념이다.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사람 사람마다 모두 이 양지가 실재하고 있음을 확신한 것이다. 양지는 이처럼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는 실체이기 때문에 양지를 실현(致良知)하고자 노력한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누구나 옳고 그름의 도덕적 판별과 좋고 싫음의 도덕 정감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양지에 대한 이상의 진술들은 왕양명 자신의 내면에 대한 통찰과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그 진술의 논리성이 부족하고 특히 양지가 인간 보편의 실체라는 주장은 매우 선언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이는 양심이란 존재의 특성 때문이다. 일단, 양심은 형체가 없으므로 시각적으로 관찰이 불가능하다. 나의 양심은 타인이 지각할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 느끼고 체험할 수밖에 없는 세계이다. 양심에 대한 각자 각자의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그 존재의 보편성을 확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그 체험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양명과 같이 자신의 내면에 항상 깨어있는 양심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어떻게 양심의 실재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앞에서 언급한 도전님의 말씀처럼 양심은 인간 본래의 천성으로 티끌만 한 사욕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다. 이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삶으로 인간 도덕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윤리도덕을 숭상하는 우리 수도인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무자기(無自欺)가 수도의 근본이지 않은가. 양심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일이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라 한다면, 우리에게 이 양심은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인간 보편의 양심은 우리 자신에게 무언(無言)의 목소리로 도덕적 삶을 촉구하고 있다.

    왕양명의 생명철학 김세정 2019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왕양명의 생명철학
    김세정
    판형 : 신국판
    페이지 : 763
    출판일자 : 2019-10-31
    정가 : 38,000원
    ======

    책소개

    대학원 시절 "천지만물과 인간은 본래 한 몸이다"라는 왕양명의 외침에 이끌려 양명학을 통해 현대의 \'생명 위기\' 문제를 풀어보려는 저자가 그간의 연구 성과를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생명 위기\'의 해법을 양명학의 핵심 개념인 \'양지(良知)\'에서 찾는다. 

    왕양명이 말하는 인간의 마음 즉, 양지는 \'인간이 천지만물과 감응하는 주체\'이자 \'천지만물의 생명 손상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통각의 주체\'이며, 

    생명 위기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나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자연세계의 생명 손상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양지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양지\'에 관한 이와 같은 생명철학적 정의를 바탕으로 
    1장에서는 현대 문명의 생명 위기의 원인과 다양한 대응 방안들을 살펴보고, 
    이 책이 지향하는 양명학 연구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다루었다. 
    2장에서는 왕양명의 역동적이며 실천적인 삶의 전 과정과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생명철학의 수립 과정을 추적하였으며, 
    3장에서는 \'천지만물일체설(天地萬物一體)\'을 중심으로 \'천지만물과 인간이 하나인 세계\', \'유기체적 대동사회\', \'천지만물의 중추적 인간\' 등 왕양명 생명철학의 세계관과 사회관, 인간관을 총체적으로 조망하였다. 

    각론에 해당하는 4장에서 8장까지는 \'심즉리설(心卽理說)\',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 \'양지설(良知說)\', \'치양지설(致良知說)\', \'친민설(親民說)\' 등 왕양명의 주요한 학설들을 중심으로 양명학을 생명철학의 입장에서 새롭게 정립해 보았다. 

    마지막 9장에서부터 12장까지는 \'왕양명의 생명철학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생명과 관련하여 현대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왕양명 생명철학의 역할 가능성과 의의를 모색해 보았다. 

    「2006년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본도서는 이번 개정판에는 필자의 새로운 글 「제4차 산업혁명시대 돌봄과 공생의 양명학」과 1960년대부터 2019년까지 지난 60년간 한국에서 간행된 저서, 번역서, 학위논문 및 각종 논문집과 학술잡지에 게재된 왕양명의 생애와 사상 전반과 관련된 연구 성과를 목록화한 「국내 왕양명 연구 문헌 목록」을 <부록>으로 새롭게 수록하였다.


    동서양 심성론의 측면에서 본 왕양명의 양지(良知)의 자족성(自足性)에 대한 고찰 황진수 2019

    동서양 심성론의 측면에서 본 왕양명의 양지(良知)의 자족성(自足性)에 대한 고찰

    황진수

    Published in Studies in Confucianism 1 May 2019

    정인재. 하곡(霞谷) 정제두의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 : 네이버 블로그

    정인재. 하곡(霞谷) 정제두의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 : 네이버 블로그

    정인재. 하곡(霞谷) 정제두의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
    존재는 생명의 강물
    2020. 9. 29. 9:05
    이웃추가
    하곡(霞谷) 정제두의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
    [생명에 대한 다양한 문제지평과 담론을 공유하기 위해서 『생명과 더불어 철학하기』(우리사상연구소 편, 철학과현실사, 2000, 300-315)에 실린 #정인재_교수(서강대 철
    학과)의 글 <하곡 정제두의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을 몇 번에 나누어 올린다.]
    양명학자 #하곡_정제두
    #하곡_정제두(鄭齊斗, 1649-1736)의 ‘ #생명사상’에 대하여 주제를 접한 ‘우리사상연구소’의 요청에 응하여 하곡의 ‘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그의 철학은 생명사상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리(生理), #생기(生氣), #생도(生道)등 많은 주제를 #생명의_문제 에 할애하여 논의하고 있
    다. 그것은 주자(朱子)가 말한 ‘물리(物理)’를 염두에 두고 이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주자학 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던 당시 사회에서 #양명학(陽明學)적인 사유를 하고 있
    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으며, 또한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스승이나. 친구들은 양명학의 연구를 그만두라고 권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곡은 그러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의 길을 걸어갔다. 그것은 양명학적인 사유가 주자학보다 생명의 근원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다고 본 것이 그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
    이다.
    ‘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문제를 놓고 주자(朱子)와 양명(陽明)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한 것도, 전자(前者)가 ‘ #물(物)’을 외(外)적인 대상으로, ‘ #지(知)’를 인식주관으로 보
    아 사물(物)에서 원리(理)를 끝까지 캐물어 감으로써(窮理) 외계 사물에 대한 지식을 넓힌다(致知)는 인식론(認識論)에 가까운 이론을 전개하였다면, 후자(後者)는 ‘물
    (物)’을 ‘ #사(事)’로 보고 지(知)는 #양지(良知)로 해석하였다. 양지(良知)는 경험적인 지식(見聞知)과 차원을 달리하는 #도덕적_원리(moral principle; 天理)인 동시에 #
    직관(intuition)에 해당하는 #지혜(wisdom)인 것이다. 하곡은 주자(朱子)와 양명(陽明)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정인재 교수
    “주자(朱子)는 마음(心)을 몸(體)의 주재(主宰)로 삼고, 본성(性)을 도덕원리(理)로 삼았다. 그리고 원리(理)가 사물마다 내재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물마다 각기 당연(當
    然)한 법칙이 있으니 모두 그 당연한 법칙을 남김없이 발휘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求盡). 이 까닭에 마음(心)에서는 그 참됨(誠)과 경건(敬)함을 모조리 다 발휘하고 사물
    (事物)에서는 그 원리(理)를 끝까지 캐묻기 때문에 그 마음(心)을 간직하여 만물의 원리(理)를 궁구(窮究)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만사(萬事)의 법칙에 응(應)한다. 그러므
    로 그 당연한 원리(理)를 궁구하는 것이 지식(知)이 되고, 그 당연(當然)한 법칙을 준수하는 것이 도덕행위(行)가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왕씨(왕양명)는 마음(心)을 도덕원
    리(理1)로 삼았는데0 , 이것이 바로 양지(良知)이다. 마음(心)의 양지가 본체(體)가 된다. 대체로 사물(事物)의 작용(作用)은 용(用)이 되는데 사물의 원리(理)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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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9/23, 3:33 PM 정인재. 하곡(霞谷) 정제두의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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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리는 모두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 마음에는 저절로 양지가 있으며 알지 못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욕(私欲)에 빠졌기 때문에 어둡고 어리석은 것이 생긴
    다. 양지를 실현하고(致), 그 본성을 회복하여 마음의 원리를 궁구하고 心의 원리를 다 발휘하면, 그 오륜(五倫)에서, 심성(心性)에서, 사물(事物)에서, 천리(天理) 아닌 것
    이 없다. 이 까닭에 體와 用은 있어도 안과 밖(內外)도 없고, 정(精)과 조(粗)도 없다. 그러므로 명덕(明德)과 친민(親民)은 하나이고, 나뉘지 않고, 지(知)와 행(行)은 합일
    (合一)된다. 知는 行의 시작이요 行은 知가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道)는 하나일 뿐이고, 참(誠)일 뿐이다. 둘로 되지도 않고, 갈라지지도 않는다. 내 몸(吾身)으로부터
    사물(事物)에 이르기까지 또 천하(天下) 만물(萬物)에 이르기까지 단지 하나로 관통(貫通)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천지를 일체(一體)로 삼고, 천하(天下)를 일가(一家)로
    삼는다. 비록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 다스려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악(禮樂)과 형정(刑政)은 성인이 되는 공부(工)에 관여함이 없다. 진실로 원리(理)에 부합되고 마
    음(心)에 합당하다면, 비록 옛 성인(聖人)이 아니더라도 작위(作爲)할 수 있으니, 다만 성심(誠心)으로 사실(實)에 힘쓸 뿐이라고 하였다.”[『霞谷集』Ⅱ, <存言>下.]
    이 글은 주자의 ‘ #격물치지설’과 왕양명의 ‘ #치양지설(致良知說)’의 의미를 뚜렷이 잘 설명하고 있다. 주자(朱子)와 왕양명(王陽明)은 성인(聖人)이 되는 목표(目標)는 같
    으나, 그 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주자(朱子)는 내적으로 ‘ #존덕성(尊德性)’과 외적으로 ‘ #도문학(道問學)’을 주장하여, 전자(前者)의 공부를 위하여 ‘ #거경(居敬)’을, 후자
    (後者)를 위하여 ‘ #즉물궁리(卽物窮理)’를 강조하였다. 주자(朱子)에 의하면, 마음은 여러 가지 원리를 갖추고 모든 일(萬事)에 대응하는 것(心具衆理而應萬事)이지만,
    마음 자체가 원리는 되지 못하고, 본성이 원리이므로 마음과 본성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따라서 안으로는 마음속에 있는 본성(性)을 잘 간직하는 정정과 공경(誠敬) 공
    부를, 밖으로는 사물마다(事事物物) 내재(內在)한 원리(理)를 끝까지 캐묻는 것이다. 주자(朱子)는 이와 같이 안, 밖을 나누어서 공부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왕양명은 이와 달리 우선 주자(朱子)의 외적인 ‘즉물궁리(卽物窮理)’의 방법을 비판하고, ‘ #심즉리(心卽理)’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외의 구분은 사라졌다. #마
    음(心)의 본체인 양지(良知)가 바로 #천리(天理)라는 것이며, 이 양지(良知)가 사물(事物)에 작용하여 도덕원리가 실현되는 것을 양지라고 생각하였다(致吾心之良知之天
    里於事事物物, 則事事物物皆得其理矣). ‘양지(良知)’는 어디까지나 마음의 본체(體)이며 이것이 사물에 작용되어 드러난 것이 원리(理)라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벗어
    나 내외(內外) 따로 외물(外物)에 일정한 이치(定理)가 있다고 주장한 주자(朱子)를 비판하고, “심외무리(心外無理)”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적_욕심(私欲)에 빠지게 되면 양지가 자기의 도덕 원리를 사물에 실현(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양지를 실현시키는 공부를 하여 양지가 본래 가지고 있
    는 영명(靈明)한 본성을 회복시킨다. 그렇게 하여 마음의 천리인 본성, 즉 양지를 모조리 다 드러낸다. 그렇게 되면 오륜(五倫), 사물(事物)에 드러난 것은 천리(天理)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예컨대, 부자(父子) 관계에서 드러나는 효(孝), 군신(君臣) 관계에서 드러나는 충(忠) 등이 모두 도덕 원리(天理)가 되는 것이다. 양명(陽明)에 의하면 이 순
    수한 천리(天理)의 마음을 어버이 섬기는데(事父) 발휘하면 이것이 바로 효가 되고, 군주 섬기는데 발휘하면 바로 충이 되며, 친구 사귀는데(交友) 발휘하면 바로 믿음(信)
    이 되고, 백성 다스리는데(治民) 발휘하면 인(仁)이 된다는 것이다.[<傳習錄>上.]
    주자학에서는 #명덕(明德)과 #친민(親民)이 안팎(內, 外)으로 나누어지고, #지식(知)과 #행동(行)이 앞, 뒤(先, 後)로 분리된다. 그러나 양명(陽明)에서는 #밝은_덕(明
    德)과 #백성_사랑(親民)이 하나의 공부이고, 지행(知行)은 합일(合一)된다. 양명(陽明)은 정명도(程明道)의 성인설(聖人說)을 바탕으로 천지(天地)를 한몸(一體)으로 삼
    는 생명사상을 전개하였다. 대인(大人)의 마음은 어린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孺子入井)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생기는데, 그것은 그 인(仁)이 그 어린이
    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나 짐승이 슬피 울부짖거나 벌벌 떠는 것을 보면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새나 짐승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목(草木)이 꺾인 것을 보고, 딱한 마음(憫恤之心)이 생기는데 그것은 그 인(仁)이 초목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한 몸이 된 인(仁)은 바로 천명(天命)의 본성에 뿌리
    를 두고 있으며 자연(自然)스럽게 영소(靈昭)하여 어둡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명덕(明德)이라 한다. 그런데 소인(小人)의 마음은 너와 나를 나누고, 사욕(私欲)
    에 가리어 이해(利害)가 서로 공격하고 분노가 서로 격발(激發)하며, 심지어 골육(骨肉)도 서로 해치게 되니 한 몸이 된 인(仁)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진실로 사욕의 가리
    움을 없애버리면, 소인(小人)의 마음도 그 한 몸이 된 인(仁)이 대인(大人)과 같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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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음앓이] 하는 사람들의 공간
    10/29/23, 3:33 PM 정인재. 하곡(霞谷) 정제두의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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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곡 정제두의 묘
    하곡(霞谷)은 이러한 만물을 한 몸으로 생각하는 생명사상을 계승하여, 그의 < #양지생리설(良知生理說)>을 전개하였다. 하곡은 생리설(生理說)의 입장에서 이렇게 말한
    다.
    “대학(大學), 중용(中庸), 공자(孔子), 맹자(孟子)의 말씀은, 그 뜻을 고찰 탐구(考究)해 보면 물리(物理)를 끝까지 캐물어 그것을 미루어 준칙(準則)으로 삼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 卽物하여 그 理를 끝까지 캐묻는다면 도덕 생명 상(德性 上)의 이체(理體)를 보지 못한다. .... 학문(學問)하는 일(工)은 그 실체(實體)를 따라서 공들이는(着
    工) 것이다. 반드시 사리(事理)에 나아가 배우라고 한 말이 한 마디라도 있었던 적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무슨 이유로 유독 대학 가운데 단지 하나의 ‘물(物)’ 字가 있는 것
    만 꼭 쥐고 모든 경전의 가르침(訓)을 덮어버릴 수 있겠는가?”[<存言>下.]
    또한 하곡은, “주자(朱子)의 ‘물리(物理)’를 끝까지 캐물어 따지는(窮究) 즉물궁리(卽物窮理)의 ‘격물치지설’을 비판하고, 덕성의 이체(理體), 즉 도덕생명의 원리인 “ #생리
    (生理)”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는 “물리(物理)”는 오늘날 우리가 배운 'Physical principle'(물리)가 아니라, 명물도수(名物度數) 즉
    문물 제도 및 외물(外物)을 광범위하게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물에서 원리를 구하는 ‘즉물궁리’는 원시 유학(대학, 중용, 공자, 맹자)에는 없는 말이라고 하였다. 하곡은
    “주자(朱子)의 ‘즉물설’은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의 원리(理)를 각각의 사물(物)에 있다고 하였으므로 본령(本領)이 없는데, 양지학은 그 소이연(所以然)과 소당
    연(所當然)의 원리(理)를 사물(物)이 각기 가지고 있는 것은 그 근원(根源)이 모두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存言>中.]
    이것은 주자(朱子)가 ‘ #원리(理)’를 “ #그렇게_된_까닭(所以然之故)”로서의 존재 이유와 “ #마땅히_그래야_하는_법칙(所當然之則)”으로서의 도덕 원칙의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원리를 또한 이성(reason)과 대비하여, 전자는 ‘ #도구적_이성’을 후자는 ‘ #도덕적_이성’을 각각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주자(朱子)의 즉물설은 원
    리(理)가 사물에 고정되어 있다고 하였으며(天下之物 莫不有理), 그가 말하는 마음은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외물에 대한 인식능력(知)을 갖지 않음이 없다(人心之靈
    莫不有理)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주자(朱子)가 말한 마음을 #인식심(認識心)이라고, 양명(陽明)이 말한 마음을 #도덕심(道德心)이라고 구별하기도 하였다.[牟
    宗三, 『心體與性體』] 양명학은 존재이유와 도덕원칙이 모두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에 본원(本源)이 있는 샘물과 같이 “쉬지 않고 생겨나고 생겨난다(生生不息)”는 것이다.
    그것은 사물의 이치가 내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하여 주자(朱子)처럼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이원적 대립관계로 보지 않고, 마음의 본체인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親民)과 같으며,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 모든 사물(天下萬物)이 한 몸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긔림: 정인재 교수, 김교빈의 <하곡 정제두>, 정제두의 묘
    (2020.09.29.)

    양지(良知) - sillok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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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良知)

    주요 정보
    대표표제 양지
    한글표제 양지
    한자표제 良知

    관련어 
    양능(良能), 양지론(良知論), 치양지(致良知), 격물치지(格物致知), 왕양명(王陽明), 육구연(陸九淵),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 사상마련(事上磨鍊)

    분야 문화/인문학/유학
    유형 개념용어
    집필자 김봉곤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1개설
    2내용 및 특징
    3참고문헌
    4관계망


    개설

    양지(良知)는 숙고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아는 작용이다. 이 말은 맹자가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양능이고 생각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양지이다. 두세 살 난 아이도 자기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가 없으며, 커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자가 없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지, 양능의 양(良)은 본래부터 그러한 선험적인 것으로서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두세 살 된 어린아이가 가르치지 않아도 부모를 사랑할 줄 알고 아우가 형을 공경할 줄 아는 것이 양지, 양능인 것이다. 

    이에 남송의 육구연(陸九淵)은 "만물이 모두 나에게 완비되어 있으니 반성하고 정성을 다하면 이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고 말했고, 명대의 왕양명(王陽明)은 양지와 양능의 도덕적 자발성에 근거하여 양명학을 완성했다. 

    왕양명은 사람이 양지를 전면적으로 발휘하여 마음을 다스리고 도덕을 바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치양지(致良知)라고 하는데, 
    양지에 따르는 한 그 행동은 선이 되며, 양지에 근거하는 행동은 외적인 규범에 속박되지 않는다. 

    마음은 선악을 넘어 있지만, 뜻에서 선악이 발생하므로 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양지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왕양명은 양지를 기르는 방법론으로 욕심을 근본에서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는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과 구체적인 사물이나 상황 위에서 마음을 단련한다는 사상마련(事上磨鍊)의 길을 제시하였다. 
    이후 왕양명의 치양지설은 
    • 누구나 양지를 갖고 태어나므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 양지를 가리고 있는 선악을 제거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뉘게 된다.

    조선조에서 양명학을 공격한 것은 주로 전자의 입장에 대한 것이다. 조선조에서도 양지가 본래부터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개념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양명학에서 말하는 양지는 사물에 대하여 깊이 있는 탐구를 하는 격물이 필요가 없다고 점 때문에 이단으로 배척되었다.


    내용 및 특징

    양지라는 말은 본래부터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미 세종대에 여진족이 짐승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양지가 있으니, 교화를 베풀면 귀순할 수 있다고 하여(『세종실록』 9년 9월 29일), 양지 개념이 조선초기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중종대에 성균관 대사성유숭조가 양지·양능은 자연의 천성이니, 어린애가 장성하기까지 애경(愛敬)을 가르치지 않아도 느낌에 따라 응하고 저절로 발동하는 것이라고(『중종실록』 6년 3월 12일) 하였고, 

    홍문관 부제학유진동(柳辰仝)은 오륜은 천성의 고유한 바인 양지로 인하여 새롭게 정하였다고 하였다(『중종실록』 38년 5월 4일).

    학문으로서 양명학은 왕양명 생존시에 이미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박상(朴祥)이나 김세필(金世弼) 등이 왕양명이 치양지설을 제창하였을 때 곧바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양명학에 대해서 이황이 불교적이라고 배척한 이후, 유희춘, 유성룡, 박세채, 한원진 등이 배척하였다. 

    그러나 남언경, 장유, 최명길 등은 양명학을 수용하였으며, 정재두에 의해 양명학파가 수립되었다. 이광사, 이충익, 이건창, 박은식, 정인보 등이 양명학을 발전시켰다.

    양지의 개념은 선비들뿐만 아니라 왕도 자주 사용하였다

    선조는 시비(是非)를 구별하는 마음은 사람의 양지인데 잘 모른다고 하였던 좌상김귀영이나 이이와 박순을 논핵하였던 삼사가 시비가 분명하지 못하다고 하였고(『선조실록』 16년 7월 16일) (『선조실록』 16년 8월 18일), 성균관 유생 이정우에게는 학문에 힘쓰고 자신을 살펴 양지를 확충해 나가면 시비가 자연히 가슴속에 훤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선조실록』 16년 8월 10일).

    그러나 양명학에서 말하는 치양지의 양지에 대해서는 이황이 양명학을 비판한 이후, 그의 문인 유성룡은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선조가 경연에서 양지에 대해 묻자 유성룡은 양지만을 믿고 글을 읽지 않으면 매사를 두루 알 수 없다고 하며(『선조실록』 27년 7월 17일), 
    양지만 강조하면 격물 공부에 대해 소홀히 할 수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후 숙종대에 권상유는 왕수인이 육상산의 뒤를 이어 양지·양능이 널리 퍼져갔다고 비판하였고(『경종수정실록』 4년 4월 24일), 
    영조 때에는 사헌부에서 육구연(陸九淵)의 돈오설(頓悟說)과 왕양명의 양지론(良知論)은 성리학과 배치되는 것인데, 좨주(祭酒)정제두(鄭齊斗)가 정주학을 배반하고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설을 답습하였다고 비판하였다(『정조실록』 2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