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6

Philo Kalia - *동광원 평산 심중식 원장님의 안내로 동광원을 둘러 보았다.

(3) Philo Kalia - *그립던 동광원 평산 심중식 원장님의 안내로 동광원을 둘러 보았다. 나는 동광원을 당시... | Facebook 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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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던 동광원
평산 심중식 원장님의 안내로 동광원을 둘러 보았다.
나는 동광원을 당시 글을 쓰기 위해 공부했던 정경옥 교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후 동광원을 마음에 그리기만 하다가 이번 가나안 종교 순례 여정에서 마침내 동광원을 가게 된 것이다.
정경옥 교수는 1930년대 감리교 신학교 교수였다. 감리교신학교에 부임한 지 5년만인 1937년 3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교수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진도로 내려갔다. 그는 후에 교수직을 포기하고 낙향한 이유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 타성과 타협의 생활 습관에서 오는 ‘영적 위기’ 때문임을 밝혔다.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5, 6년 동안에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봄이 되면 봄 과정을, 가을이 되면 가을 과정을, 그리고 겨울이 되면 겨울 과정을 해마다 같은 노트에 같은 방법으로 기계를 틀어놓은 것 같은 강의를 반복하는 동안에 해마다 말은 자라나 생명은 죽어서 스스로 독서도 하지 않고 연구도 끊이고 생활에 반성이 없으며 창작력이 진하였다. 날마다 사는 것이 외부에 있어서 광대(廣大)하고 내면에 있어서 외축(畏縮)하는 생활이었다. 나의 영은 나날이 황폐의 여정을 밟고 있었다. 기도를 하여도 마음속에 솟아 나오는 기도가 아니었고 노래를 불러도 혼이 들어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이것이 끊임없이 괴로웠다. 누가 무어라고 말하는 이는 없으나 나로서는 쓴 잔을 마시는 것 같이 괴로웠다. 내 몸이 세상에 알려지고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나는 더욱 괴로웠던 것이다.”(정경옥, “위기 ․ 흙 ․ 나”, <새사람> 7집, 1937.7, 11~12쪽.)
정경옥은 진도에 내려온 직후 화순 땅에 ‘도인’(道人) 칭호를 받던 수도자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만났다. 예수처럼 살았던 ‘도암의 성자’ 이세종(李世鍾)을 만난 것이다. 정경옥은 진도로 내려 온지 얼마 안 되어 이세종에 대한 소문을 듣고 화순까지 가서 그를 만난 것으로 보이며 그때 만난 이야기를 <새사람>에 “숨은 성자를 찾어”란 제목으로 발표하였다.(정경옥, “조선의 성자: 숨은 성자를 찾어”, <새사람> 7집, 1937.7, 30~37쪽.)
이세종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교회사에 어느 정도 상식을 지닌 사람이면 한국의 대표적 개신교 수도공동체인 동광원을 창설한 ‘맨발의 성자’ 이현필(李賢弼) 정도는 안다.(엄두섭, 『맨발의 성자 이현필 전』,) 그 이현필이 “도무지 따라 할 수 없었던” 스승이라 불렀던 인물이 바로 이세종이다.
이세종은 ‘득도’한 후 이름 대신 ‘이공’(李空)으로 불려지길 윈했다. 그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남의 집 머슴으로 살다가 결혼한 후 악착같이 재산을 모아 동네 부자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자식이 없어 아들을 얻기 위해 산당을 세우고 정성을 드리던 중 성경을 구해 읽고 ‘참 도’를 발견한 후 정성 드리던 것을 폐하고 산당에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독수도(獨修道)에 들어갔고, 깨닫는 대로 말씀을 실천에 옮겼다.
이세종을 바라보는 정경옥의 경이로운 눈빛은 다음과 같았다.
“공[이세종]은 감각의 세계를 벗어나 영의 사람이 되고 말었다. 그는 동네 뒷산 깊은 암자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고 진리를 명상하는데 몰두하였다. 교회의 전통이나 교파의 신조나 제도의 구속(拘束)을 벗어나 그의 적나라한 영은 하느님의 말씀과 직면할 수가 있었든 것이다. 그는 어느 유명한 학자에게서 계통이 있는 사상의 체계를 전수한 것도 아니오 어떤 성경학자의 주석이나 비판을 참고한 것도 아니다. 그는 성경을 손에 들고 자기의 독특한 해석을 나리우고 성경을 통하여 자기의 독특한 영감을 받았다. 공이 성경을 연구하고 진리를 명상하는 동안 그 자기를 잊어버리고 시절이 바꾸이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철을 따라 옷을 바꾸어 입고 때를 좇아 음식 먹는 것을 잊었다.” <새사람>, 1937.7, 34쪽.)
정경옥은 이세종을 만나면서 도전과 희망을 읽었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일과 사람에게 시달리고, 터무니없는 모함과 비난을 받으며 마음도 많이 상했지만, 모든 것을 훌훌 털고 고향에 내려 와 흙과 친하게 지내면서 마음을 어느 정도 다스린 후, 화순 땅 천태산 골짜기에서 ‘도를 닦는 예수꾼’ 이세종을 만나면서 자신이 당한 시련과 아픔, 고독과 눈물이 오히려 참 신앙의 길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진도로 돌아와 원서 대신 이세종식으로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예수를 재발견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그는 이러케 살았다』이다. 그가 성경에서 발견한 예수도 한 없이 외로운, ‘고독의 성자’였다.
“한 제자는 그를 밀고하였고 한 제자는 그를 모른다고 하였으며 또 다른 제자들은 예수께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실 동안 잠을 자다가 예수께서 잡혀 가시는 것을 보고 사면에 흩어져 다라났다. 그러나 예수는 자기의 제자들이 다 어디로 가고 자기 혼자 남아 있다는 것이 외롭다는 것보다 사랑을 주어도 받을 이 없다는 것을 외로워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세상에서 친구가 없다.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고독의 사람이요 눈물의 사람이다. 선견을 갖인 사람은 군중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세상은 사랑을 받으려고는 하나 사랑하려고는 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주기만 하면 말없이 떠나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될지언정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은 되지 말라. 세상 사람의 친구가 되기는 할지언정 세상이 너를 친구 삼으리라고 기대하지는 말라. 성도의 운명은 고독과 눈물이었나니 우리도 그 고독, 그 눈물을 맛보아야 한다.”(정경옥, 『그는 이렇게 살았다』, 131~132쪽.)
-(이덕주 교수의 ‘동광원’에 관한 글을 참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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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ônatas Kim
    동광원에 다녀 오셨군요. 신대원 시절 절친인 동기 목사님과 둘이 동광원에 가서 이현필 선생의 제자분하고 담소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이제는 소천하셨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 손미옥
    진정한 영적 지도자를 찾기 힘든 요즘 참 귀하고 그리운 분들이네요!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을 그리며...
    2
  • 김원
    저는 벽제에 있는 동광원에 자주 갑니다.
    2
  • 유용현
    훌륭하신 분을 소개받게 되어 감사합니다. 계속 관심을 갖고 그분의 글을 찾아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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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 Kalia replied
     
    1 reply
  • 차흥도
    남원인가요?
  • 이규원
    오래 전 이현필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고 그리운 분이 되었는데 기억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Jongsoo Lim
    배웁니다. 공부합니다.
  • 이준협
    오래 전에 방문했던 기억이 소중합니다.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
    • Philo Kalia
      이준협 네, 꼭 가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다녀왔습니다. 영적 인문지리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 이기동
    감명깊은 곳, 존경할 분들입니다.

알라딘:한국 교회 형성사 - 한국 개신교의 여명, 그 첫 이야기 조지 히버 존스 ,옥성득 (옮긴이)

알라딘: 한국 교회 형성사


한국 교회 형성사 - 한국 개신교의 여명, 그 첫 이야기 
조지 히버 존스 (지은이),옥성득 (옮긴이)홍성사2013-11-18

440쪽


책소개
100여 년 전 격동의 한반도에서 활동했던 선교사 존스가 귀국 후 선교 행정가, 역사가, 강사로서 당시를 회상하며 다양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개신교 여명기의 발자취. 1884-1916년 무렵 한국의 사회상과 개신교 교회사를 담아 1917년에 썼다.

토착 교회의 형성에 초점을 둔 ‘선교사관’의 입장에서 개신교의 한국 전래사를 신학적 언어로 서술했으며, 선교 현장에서 경험한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1세대 선교사의 견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독교와 한국 토착 종교의 접촉점을 다룬 5장은 이 책의 핵심이며, 그의 예리한 안목과 탁월한 분석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편역자 옥성득 UCLA 교수(한국교회사)는 미출간 상태로 보관된 존스의 원고를 번역하며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고 꼼꼼히 주석을 달았으며, 참고 사진도 곁들였다. 우리말 번역문 뒤에 영문 원문도 수록했다.



목차


발간사_ 김흥규/ 서문_ 옥성득
1. 한국 선교의 시작
2. 한국인
3. 한국의 지리
4. 한국의 종교 생활 (1) 유교 (2) 불교 (3) 무교
5. 기독교와 한국 토착 종교의 접촉점
(1) 하나님 (2) 인간의 도덕적 책임 (3) 예배 (4) 기도 (5) 영혼불멸
6. 선구적 선교사들
7. 장애물의 극복
8. 한국 토착 교회의 형성
존스의 연보/ 주/ 찾아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조지 히버 존스 (George Heber Jones)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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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감리회의 개척 선교사. 1888년 5월 한국에 와서 20년간 서울과 인천, 강화 지역에서 활동했으며, 1892년 제물포 선교 관리 책임자로 부임하여 내리교회의 제2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1893년 제물포에서 신학반을 열어 한국 목회자 교육을 시작했으며, 첫 한글 찬송가 《찬미가》(1892), 첫 잡지 《Korean Repository》, 첫 신학 잡지 《신학월보》(1900?1909) 등을 편집, 발행했다.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 역사와 종교, 문화, 풍속에 두루 정통한 학자로서 많은 한국학 자료들을 저술하여 해외에 소개했다.
1909년 귀국하여 보스턴대학교와 디포우대학교에서 선교학과 비교종교학을 가르쳤고, 한국 교회와 종교, 역사, 문화에 대한 저술 활동을 했다. 뉴욕 북감리회 선교부 총무로 임명된 후에도 한국 선교를 직·간접적으로 계속 지원했으며, 한국 선교 25주년 기금 모금 운동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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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한국 교회 형성사> … 총 10종 (모두보기)

옥성득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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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한국기독교학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에서 신학 수업을 이어 나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신학교(신학석사)와 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신학박사)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현재는 UCLA에서 한국 근대사와 한국 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성서공회사』(전 3권),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교회사』,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한국 기독교 형성사』(제37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대상) 등이 있고, 편역서로는 『언더우드 자료집』(전 5권), 『대한성서공회사 자료집』(전 3권), 『목판화로 대조한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생애』, 『마포삼열 자료집』(전 4권)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신데카메론>,<쇠퇴하는 한국교회와 한 역사가의 일기> … 총 1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 개신교 초기 역사 전반에 대한 최초의 통사(通史)

100여 년 전 격동의 한반도에서 활동했던 선교사 조지 히버 존스(George Heber Jones, 1867~1919)가 귀국 후 선교 행정가, 역사가, 강사로서 당시를 회상하며 다양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한국 개신교 여명기의 발자취. 1884-1916년 무렵 한국의 사회상과 개신교 교회사를 담아 1916년에 썼고, 이듬해 수정, 보완했다.
토착 교회의 형성에 초점을 둔 ‘선교사관’의 입장에서 개신교의 한국 전래사를 신학적 언어로 서술했으며, 선교 현장에서 경험한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1세대 선교사의 견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 개신교의 첫 통사로 알려진 백낙준(白樂濬, 1895∼1985)의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1973년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한국개신교사, 1832∼1910》로 번역 출간)보다 10년 앞서 쓴 것이지만, 저자의 사망으로 출간되지 못했다가 96년이 지난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다.
편역자 옥성득 UCLA 교수(한국교회사)는 미출간 상태로 보관된 존스의 원고를 번역하며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고 꼼꼼히 주석을 달았으며, 참고 사진도 곁들였다. 우리말 번역문 뒤에 영문 원문도 수록했다.
존스는 ‘선교사관’의 입장에서 개신교의 한국 ‘전래사’를 신학적 언어로 서술했지만 그의 선교사관은 ‘토착 교회의 형성’에 초점을 둔 선교사관이었다. 이 책은 신학교 강의를 바탕으로 미국의 일반 평신도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큰 그림을 보여 주면서 문학적인 이야기체로 쓴 것이어서, 쉽게 읽히며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된다.
존스는 이 책의 제목을 ‘The Rise of the Church in Korea’라고 하여, 떠오르는 교회가 한국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부정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기독교가 이 땅에 소개되었을 때 환영받은 이유와 한국 사회를 변혁시킨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재발견하게 된다.

토착 종교와 기독교, 그 접촉점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이 책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세 장은 배경사지만 자칫 무미건조하게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나가는 존스의 문장력이 돋보인다.
1장에서는 한국에서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역사적 배경을 개관한다. 특히 1866년 평양에서 있었던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이후 전개된 개신교 선교와의 인과관계가 잘 설명되어 있다.
2장 한국인론과 3장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은 지금도 중요한 논쟁의 주제인데, 1910년 이후 초기 식민지 상황에 대한 존스의 평가는 당시 선교사계를 대변하는 공식적인 견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의 종교(유교, 불교, 샤머니즘)를 다룬 4장에 이어 5장에서는 기독교와 이들 전통 종교 간의 접촉점을 논하는 비교종교학, 곧 타종교에 대한 초기 한국 개신교의 메시지가 주제다. 내한(來韓) 선교사 가운데 일찍부터 한국 샤머니즘을 깊이 연구한 존스는 당시 종교학계와 선교학계의 이론을 수용하여 그것을 정령숭배/애니미즘/자연숭배로 정의하고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데 공헌했다.
5장은 이 책의 핵심 부분이며, 다른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존스는 한국 종교와 기독교의 접촉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곧 신론에서 하나님, 유교와 불교가 가르치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 제사와 굿 등의 종교 의식에서 드러나는 신 공경과 숭배, 보편적인 기도, 그리고 영혼불멸과 제사 등의 접촉점을 통해 타종교가 기독교를 통해 더 완전하게 될 수 있다고 전도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선교가 성공했다고 본다. 유(儒), 불(佛), 무(巫) 세 종교는 한국인의 조상과 당대인의 삶 속에 녹아 있다. 이 종교들을 아는 것은 한국인을 아는 첫 걸음이었고, 그 접촉점을 완성해 가면서 기독교를 발전시켜 토착적인 한국 개신교를 형성했다는 것이 존스의 주장이다.
6장은 한국 선교의 기초를 놓은 선구적 선교사 편으로, 이 장에서는 1884~1886년에 내한한 알렌, 언더우드, 헤론 등 첫 선교사 집단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평양과 북한 지역을 개척한 홀, 마페트, 노블 등을 다루었다. 영국계로서는 호주장로회의 데이비스, 성공회의 코르프, 터너, 트롤로프 주교, 캐나다의 게일, 하디, 맥켄지를 언급한다. 정부의 육영공원 교사로 활동한 벙커, 헐버트, 길모어 등의 교육 선교와 YMCA, 구세군의 사역을 설명하고, 초기 활동에서 간과할 수 없는 연합 사업인 성경 번역과 문서 사역을 강조했다. 선교사와 외국인을 위한 유니언교회도 거론했다.
7장에서는 초기 선교사들이 여러 장애물과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다루었다. 선교의 자유 문제에서 시작하여, 거주지 매입과 정착 문제, 반외국인 감정과 반기독교 정서, 전통 종교와 기독교 교리의 괴리, 한국어를 익히는 문제, 한글의 재발견, 한국인의 이해, 음식 문화의 차이, 한국의 역사, 철학, 과학, 종교, 법과 관습 이해 등을 차례로 설명했다. 한국과 한국인 연구에 대한 결과 《Korean Repository》와 《Korea Review》같은 잡지가 발간되고 ‘한국학’ 연구가 시작된 것은 선교사들의 공헌이다.
8장에서는 ‘토착적인 한국 교회의 형성’ 과정을 다루었다. 존스는 1884~1916년을 3기로 나누어 선교사 중심의 제1기 서울 개척기(1884~1894), 제2기 지방 개척기(1894~1906), 제3기 토착교회 형성기(1907~1916)로 구분한다. 이것은 존스가 초대 교회사를 서술하면서 선교 확장사와 토착교회 형성사 관점을 종합했음을 보여준다.
제1기 부분에서는 서울에서 감리교와 장로교의 초기 역사를 상세히 기록했다. 특히 1886년 10월 9일 첫 공중예배를 드린 벧엘 예배당(정동제일교회의 전신)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 정보를 알려 준다. 곧 벧엘 예배당은 작은 초가집이었으며, 정동에서 남쪽 방향으로 정동 선교사 구역과 일본인 거주지인 진고개의 중간 지점(상동교회 부근)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초기 신자 가운데 발생한 이른바 ‘쌀 신자’ 문제에 대해 존스는 그 수가 과장되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은 신실한 신자들이었다고 증언한다.(한국에서 쌀 신자가 극소수였다는 것은 여러 선교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최병헌과 김창식의 개종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존스의 목격담으로서 중요하다.
제2기와 제3기는 상술되어 있지 않은데, 이 부분을 완성하지 못하고 원고를 마감한 듯하다.
존스는 토착적인 한국 교회의 형성사를 쓰면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한국 민족의 밝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믿었고, 그 미래가 토착적인 한국 교회에 달려 있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물에 잠겨 사라질 뻔했던 최초의 한국 개신교 통사

그동안 이 원고는 존스의 다른 자료와 출판물들과 함께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유니언신학교의 버크도서관 고문서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편역자 옥성득 교수는 이 원고와 다른 존스 자료를 1999년 박사논문 자료 수집 과정에서 복사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옥 교수는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유니언신학교에서 이 책의 출간을 허락받았지만 존스의 원고가 실종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2004년 5월에 도서관 건물 화장실에서 한 어린아이가 크게 틀어 놓은 수돗물로 아래층 도서관 서고에 홍수가 나면서 이 원고를 포함한 많은 자료가 물에 잠겨 버렸으며, 자료가 제대로 복원될지 불확실해진 것이다.
옥 교수는 10년 전에 복사해둔 자료들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파일을 보냈으며, 이 책의 출판을 서두르게 되었다. 홍수 이전에 복사한 학자로서의 책임의식과 함께, 원고 완성 100주년(2017)이 되기 전에 책으로 출판하여 한국 교회와 한국 학계에 알려야겠다는 부채 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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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 옥성득,김건우,오동일,홍이표

알라딘: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 | 근대한국학 대중 총서 5
옥성득,김건우,오동일,홍이표 (지은이),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 (엮은이)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2022-03-21





244쪽

책소개
동아시아에서 근대와 기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근대는 기독교의 모습을 하고 전파되었으며, 기독교 역시 근대의 종교로서 전파되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때로는 민중과 밀착한 종교의 모습으로 등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쨌건 기독교는 동아시아 전통과의 대척점에서 서구 문명의 대표로 자리하였고, 격동의 근대화를 겪으며 동아시아 각국에서 다른 모습으로 토착화했다. 한국 기독교, 중국 기독교, 일본 기독교가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간 것이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자유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공산주의의 대척점이자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축으로 자리하는 한편, 중국에서는 비기독교 운동을 거쳐 삼자교회로 대표되는 애국적 기독교로 자리하였고, 일본에서는 제국주의적 모습을 띠는가 하면 그 대척점으로의 모습도 가졌다.

이처럼 각국이 기독교를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시 각국을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이 책은 이처럼 동아시아의 근대와 기독교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근대로서의 기독교’와 ‘기독교적 근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발간사

근대성과 한국 개신교 _ 옥성득

기독교(들)과 한국 근대의 구상 _ 김건우

중국의 근대화와 기독교 _ 오동일

일본 근대 사회의 형성과 기독교 _ 홍이표


책속에서


식민성은 제국과 식민지 양자에게 영향을 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근대 종교는 식민지 근대성을 공유했다. 한국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서 한국 개신교는 친일 식민성과 항일 반식민성을 동시에 지니는 양면성을 가졌다. 근대성과 한국 개신교
한국에서 기독교와의 접촉면, 곧 근대와의 접촉면은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을 통해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좌익이 대한민국 건설에서 배제되었음을 전제한다면, 기독교는 전후 한국 사회를 디자인한 이념의 ‘거의 모든’ 기반이었다. 기독교(들)와 한국 근대의 구상
청일 갑오 전쟁에 패배한 후, 중국에서는 내우외환이 더해지면서 변법과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요청이 더해졌다. 그러나 서양 언어와 서양 경험이 없었던 그들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을 서양 선교사들의 번역과 신문에 의존할 밖에 없었다. 『만국공보』는 다시 한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중국의 근대화와 기독교
근대 일본 종교 사상사의 연원을 추적해 가다 보면, 의외로 무력(조총)의 확보라는 ‘물적(부국강병) 토대’와 일신교적 완성으로서의 근대 천황제를 탄생시킨 ‘정신적(종교 사상) 토대’라는 두 측면 모두에서 기독교가 중요한 자극제, 촉매제 역할을 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일본 근대 사회의 형성과 기독교



저자 및 역자소개
옥성득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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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한국기독교학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에서 신학 수업을 이어 나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신학교(신학석사)와 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신학박사)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현재는 UCLA에서 한국 근대사와 한국 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성서공회사』(전 3권),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교회사』,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한국 기독교 형성사』(제37회 한국기독... 더보기

최근작 :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신데카메론>,<쇠퇴하는 한국교회와 한 역사가의 일기> … 총 18종 (모두보기)

김건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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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전대학교 문학역사학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문학을 한국학이라는 더 넓은 지평에서 바라보면서, 해방 후 지성사와 문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사상계와 1950년대 문학』, 『혁명과 웃음』(공저), 『대한민국 설계자들』 등이 있다.


최근작 :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마을 6호>,<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총 6종 (모두보기)

오동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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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편벽한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나, 중국의 최고 학부인 칭화대학교(淸華大學校)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생으로서 천안문 사태를 경험하고 인생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중, 예수를 믿고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신학 공부에 대한 꿈도 갖게 되어 인생의 큰 전환을 경험했다. 대학교 졸업 후 중국 유명 대학교 공대에서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총신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 학위(M. Div.)와 신학석사 학위(Th. M., 성경해석학)를 취득하고, 연세대학교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 학위(Ph. D.)를 취득했다. 저자는 중국... 더보기

최근작 :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중국 한어신학 연구> … 총 2종 (모두보기)

홍이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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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서 신학과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동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를,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문학석사(M.L.)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교토대 박사과정(사상문화학 전공)을 수료하였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학박사(Ph.D.) 학위를 받은 뒤, 메이지가쿠인대학 그리스도교연구소 협력연구원, 교토대학 강사 등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감리교 선교사로 도일한 후, 가가와 목사의 고향이자 첫 활동의 무대였던 일본기독교단 효고교구를 거쳐 교토교구 탄고미야즈교회(丹後宮津敎會) 주임목사로 활동했다.

최근작 :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아시아 공동체와 평화> … 총 10종 (모두보기)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사업단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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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국학연구소는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특성화 계획에 따라 설립한 인문· 사회 분야의 학제 간 연구소입니다. 본 연구소에서는 한국사회와 학문 분야 전반에 걸친 근대성을 탐구하고, 근대성이 드러나는 특정한 시기들에 대한 집중 연구를 수행합니다.


최근작 : <일본의 근대, 근대의 일본>,<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여성 독립 운동가 열전> … 총 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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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편집자의 말

근대와의 만남, 그리고 기독교와의 만남

서양에서 근대는 기독교와의 작별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니, 명확히 말하자면, 기독교가 지배하던 세계관과의 작별을 통해 이루어졌다. 기독교는 서구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직도 그 영향은 남아 있지만, 근대라는 물결 속에서 기독교는 부정되어야 했다.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시대’, 근대 속에서 인간들은 수많은 것을 이룩해 왔다. 물론 수많은 그늘 역시도 그 아래에서 탄생했음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의 근대는 이러한 서구의 양상과는 달랐다. 주로 선교사를 통해서 근대의 문물을 접한 동아시아에서 근대와의 만남이란 곧 기독교와의 만남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동아시아인들에게 기독교는 곧 근대라는 이름을 한 종교였다. 그리고, 근대를 마주한 삼국이 서로 달랐고 근대가 만든 삼국의 역사가 서로 달랐듯이, 기독교를 마주한 삼국과 기독교가 만든 삼국의 역사 역시 서로 달랐다.

제국과 식민지, 그리고 반식민지의 길을 걷다

사실, 근대를 마주한 삼국의 구호는 언뜻 유사한 점이 있었다. 조선은 ‘동도서기’를 내세웠고, 중국은 ‘중체서용’을 내세웠으며, 일본은 ‘화혼양재’를 내세웠다. 모두 뿌리는 전통에 두고 외피만을 갈아입으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는 제국이 되었고, 어느 나라는 식민지가 되었으며, 어느 나라는 이도 저도 아닌 반식민지 상태가 되었다. ‘도’와 ‘체’와 ‘혼’의 차이였을까?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근대가 가장 잘 자리 잡아 제국의 반열에 오른 일본에서 기독교는 그만큼 잘 자리 잡지 못했고, 근대를 가장 처참하게 맞이하여 식민지가 된 한국에서 기독교는 삼국 어느 나라보다도 잘 자리 잡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두 나라와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왜 ‘근대로서의 기독교’와 ‘기독교적 근대’는 분리 불가능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까? 또 얼핏 유사한 구호를 내세운 삼국은 왜 근대와 기독교를 서로 다르게 맞이했을까? 그리고 삼국은 왜 근대와 기독교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켰고, 근대와 기독교는 삼국을 다른 모습으로 바꿔놨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 책,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를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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